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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구의 시시콜콜] 세월호, 반복되는 가해와 피해

    [박찬구의 시시콜콜] 세월호, 반복되는 가해와 피해

    영화 ‘밀양’은 이창동 감독의 2007년 작품이다. 아들이 납치 살해당한 피해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가해자는 스스로 신의 구원을 받았다고 강변한다. 피해자는 울부짖지만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부조리와 모순이다. 김기덕 감독은 최근 개봉한 ‘일대일’에서 ‘오민주’라는 여학생을 살해한 권력과 하수인들, 그리고 이들에게 가해의 죄를 묻기 위해 테러를 감행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그린다. 가해자들은 책임을 윗선과 조직에 미루며 또다시 가해를 자행한다. 이 감독의 2010년 영화 ‘시’에서는 여학생을 유린한 남학생들의 부모들이 돈 몇 푼으로 입막음을 하려는 철면피한 행태를 보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의 가해는 되풀이된다.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는 국가 권력과 자본이다. 국가 권력은 불통의 리더십을 대변하듯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며 골든타임을 놓쳤다. 나쁜 자본은 공공성과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고 이윤 추구에만 집착했다. 참사 이후에도 권력과 자본은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하고 치유하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물러난 총리가 다시 등장하고, 편협한 리더십은 2기 내각 인사에서도 여전했다. 선사와 권력자의 검은 유착을 겨냥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의회 권력은 진상 규명을 한답시고 국정조사를 열어 놓고 유가족에게 ‘당신 누구냐.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을 친다. 보다 못한 피해자 가족들은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사고 71일 만에 복귀한 단원고 학생들은 “진짜 죽을 때는 잊힐 때”라며 “잊히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는 걸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학생들은 과도한 취재경쟁과 일방적인 치유 프로그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비아냥으로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왜 피해자들은 온전히 위로받지 못하고 2차, 3차 피해에 시달려야 하는가. 왜 국가 권력은 그들에게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올곧게 진행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지 못하는가. 무책임과 불통의 가해가 반복되면서 피해자들은 한줄기 미련마저 유린당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책임과 배려의 사회를 만들어 방향을 잃은 자본주의의 새 모델로 삼겠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라며 경제민주화와 공정한 시장질서도 언급했다. 말의 성찬에 불과했던가. 아니라면 다시 취임사로 돌아가라. 공동체와 사람의 가치를 복원하고 가해와 피해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관건은 진정성과 실천이다. ckpark@seoul.co.kr
  • “헌신했지만 초처럼 닳아버린 존재, 그게 우리 모습”

    “헌신했지만 초처럼 닳아버린 존재, 그게 우리 모습”

    쉰은 넘겼음 직한 중년의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다. 그가 투명인간이라는 걸 또 다른 투명인간이 알아본다. 남자는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그를 둘러싼 수십 명의 화자들은 이제 타고난 이야기꾼 성석제(54)의 입담을 타고 한 남자가 투명인간이 되어야 했던 사연을 풀어놓는다. 작가가 2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투명인간’(창비)은 한 개인의 연대기다. 김만수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의 이 사내는 그의 할머니의 말을 빌리면 ‘대가리만 절구통겉이(같이) 크고 팔다리는 쇠꼬챙이겉이 빌빌 돌아가는’ 외모만큼이나 재주도 머리도 보잘 것 없는 범인(凡人)이다. 소설은 한번도 만수의 속은 내보이지 않는다. 대신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누나, 형, 동생, 친구, 동료, 아내 등 그가 전 생애 동안 인연을 맺은 수십 명의 화자가 대신 김만수를 ‘이야기하게’ 한다. 제각기 다른 시대, 다른 인물들의 시점과 대상에 대한 감정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김만수라는 인물이 입체적으로 빚어진다. “압축성장 시대의 ‘사회’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고뇌와 좌절이 실물 크기로 어우러져 있다”(염무웅 문학평론가)는 평대로 김만수의 일대기는 베이비부머가 통과해 온 어지러운 현대사를 개인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집안의 기둥에서 베트남전에 파병됐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죽은 큰형,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 두메산골 집에서 가출해 의류공장에서 단내 나게 일하는 큰누나, 연탄가스를 마시고 바보가 된 작은누나, 명문 여대 출신으로 운동권에 뛰어들었다가 기사식당 사장으로 전락하는 여동생 등은 시대를 모자이크처럼 촘촘하게 꿰어내며 그 안에서 살아 숨쉬었을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게 한다. 그 안에서 촌지를 요구하는 폭력적인 교단 풍경이나 채변검사, 혼분식운동 등 당시의 ‘세속 박람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가가 또래인 베이비부머에 시선을 맞춘 것은 그간의 소설은 보편성을 갖는 인물보다 ‘튀는 사람’ 위주로 다뤄왔다는 판단에서였다. 살인적인 경쟁 상황에서 태어난 이들 세대에 대한 연대기적인 언급이 소설에서 부족했다는 생각이 ‘김만수’라는 인물을 만든 이유였다. “1955~1963년생에 이르는 베이비부머들은 모든 물자가 모자라고 조직화되지 않은 사회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던 때 태어난 사람들이죠. 살아남기 위해 2부제 수업, 콩나물 버스, 입시 지옥, 군사 문화 등 우리 현대사를 존재 자체로 겪어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인간에 내재한 운명적인 삶의 경로 같은 것들을 반죽해 빵처럼 한번 구워본 거죠.” 김만수는 미련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헌신을 내려놓지 않는다. 고된 노동으로 온 식구를 먹여살려도 돌아오는 것은 무시와 냉대, 외면뿐이지만 그의 희생은 마침표를 모른다. 숭고한 삶이라곤 말할 수 없다. 전경 시절엔 교통단속을 하다 뇌물도 받아 챙기고, 취직을 해서는 사측과 노조를 왔다 갔다 한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투명인간이 된다. “인간은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만수는 가족을 위한 헌신이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체질화된 사람이죠.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 같고 뭔가 모자란 사람 같은데 실제 우리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이 잔악한 세상에서 아직은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이기적이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남을 누르고 악다구니를 벌인다면 결국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그는 굉장히 귀중한 존재죠.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걸 남에게 다 바쳐, 존재가 초처럼 닳아버린 인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도태되는 사람은 모든 조직에서 ‘투명인간’이 되는 게 요즘 세태다. 김만수는 이를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오래도록 신용불량자였고 그때 은행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는 투명인간이었다. (중략) 투명인간이 되면 어차피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옷 자랑, 돈 자랑, 피부 좋다 자랑할 일이 뭐 있는가.’(363쪽) 결국 ‘투명인간’은 우리 모두가 종내에 맞닥뜨릴 운명은 아닐지, 소설은 긴 여운의 물음표를 남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옌거링의 ‘루판옌스’

    [지구촌 책세상] 옌거링의 ‘루판옌스’

    “중국이여,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가.” 소설 제목 ‘루판옌스’(陸犯焉識)는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년) 당시 노동교화소에서 죄수인 주인공 루옌스(陸焉識)를 부르던 이름이다. 문혁 당시 지식인들은 타도 대상으로 지목돼 변방 노동 현장이나 감옥으로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명 사이에 죄수를 뜻하는 ‘판’(犯)을 넣은 이름으로 불려졌다. 루판옌스의 루(陸)는 ‘중국 대륙’을, 옌스(焉識)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가’란 뜻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처참한 문혁의 역사를 기억하는지를 묻고 있다. 책은 재미 화교 작가 옌거링(嚴歌?)이 2012년 초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지난 5월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에 의해 영화 ‘귀래(歸來·돌아오다)’로 각색돼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원작도 덩달아 베스트셀러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문혁은 중국을 무질서와 파국으로 이끈 광기의 역사다. 홍위병들이 부르주아 세력과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며 전역에서 파괴 행위를 일삼았고 이 과정에서 신장(新疆) 등 변방 오지로 끌려가 얼어죽고 굶어죽은 지식인만 수백만명에 달한다. 당시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비판하는 투쟁이란 이름의 잔혹행위 속에서 중국인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무너졌다. 소설 ‘루판옌스’는 문혁으로 망가진 루옌스와 그 가족의 인생을 통해 문혁을 고발하고 있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유학파 루옌스 교수. 서양 문화와 풍류를 즐기던 그는 문혁 때 부르주아로 지목돼 변방 노동교화소로 끌려간다. 참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기는 무기징역으로 늘어난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버텨냈지만 그의 지성과 낭만 그리고 자존은 산산조각이 난다. 정략결혼으로 만나 지루하게만 여기던 아내 펑완위(馮婉玉)와의 평범한 결혼 생활을 동경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막상 문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가족 사이에서 그의 존재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영화 ‘귀래’는 이 책의 마지막 30쪽가량을 각색해 만든 것이다. 소설은 문혁을 고발하고 있지만 정작 문혁의 피해자인 소설 속 주인공들은 조금도 저항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문혁으로 인해 망가진 자신의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거나 망각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은 감시와 탄압에 밀려 광기어린 마오쩌둥(毛澤東)의 역사와 공산당 일당독제 체제에 순응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닮아 있는 듯하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경제 무너뜨린 주류 경제학 문화의 힘에서 대안 찾아라

    경제 무너뜨린 주류 경제학 문화의 힘에서 대안 찾아라

    세계 경제를 뒤흔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년째 경제학이 이슈가 되고 있다. 충격적인 금융위기를 맞아 기존 경제이론들이 가진 맹점을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비판의 주요 대상은 ‘공공의 적’이 된 신자유주의다. 숱한 논쟁에도 말만 무성할 뿐 글로벌 금융자본주의가 초래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위기를 극복했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사상이자 경제정책이고 수요와 공급의 시장 메커니즘으로 세상만사를 재단하는 신고전학파는 주류 경제학의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무분별한 팽창적 금융경제가 한계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줬음에도 ‘시장근본주의의 마법’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계속되는 위기상황에 무감각해진다. 이렇게 세상은 굴러가는 것일까. 신간 ‘여파’(Aftermath, 마누엘 카스텔스 외 지음, 글항아리 펴냄)와 ‘문화유전자 전쟁’(Meme Wars, 칼레 라슨 지음, 열린책들 펴냄)은 자본주의와 금융위기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돕는 동시에 합목적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여파’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가 단순히 경제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문화의 가장 깊은 층위까지 스며들어 사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지은 제목이다. 위기의 여파, 그 너머를 봐야 한다는 명확한 문제의식 아래 모인 다수의 학자들은 그 여파는 아직 진행 중이라며 위기의 사회과학적 측면을 주목한다. 미국, 프랑스, 스페인, 칠레 등에서 활동하는 15명의 학자들은 모든 경제는 문화와 연결되고, 문화는 경제형태를 결정한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시스템의 위기가 발생했다면 이는 인간의 어떤 가치관이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 문화위기의 조짐이다. 한편 위기의 여파는 변화의 시기인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며 스스로 성찰해 나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책은 문화적 변화를 통한 사회변동이 새로운 형태의 경제조직과 제도가 탄생하고 경제시스템이 진화할 가능성을 보장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현대사에서 반복된 위기 국면이 어떠했는지, 위기의 현실에서 기업, 언론 등 사회 각층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대중은 어떠한 움직임을 보여왔는지 등을 고찰한다. 또 고도의 네트워크 환경에서 새로운 사회 형태 및 문화 창출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문화유전자 전쟁’의 저자는 금융위기 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를 처음으로 제안하고 이 시위를 세계적 차원으로 이끈 칼레 라슨이다. 유명상업 광고의 패러디로 유명한 ‘애드버스터스’지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인 라슨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도발적인 문구와 이미지들로 가득한 책에서 “주류 경제학을 점령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인 신고전파 경제학의 논리에 도전하고,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유전자의 창출과 확산을 시도한다. 문화유전자(meme)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만들어낸 신조어로,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요소를 가리킨다. 문화의 전달은 유전자처럼 진화의 형태를 취하고, 전달에는 유전자처럼 복제 역할을 하는 중간 매개물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정보의 단위, 양식, 유형, 요소가 문화유전자다. “경제학은 다음 세대와 인류의 미래를 걸고 벌이는 문화유전자 전쟁의 최전선”이라고 라슨은 강조한다. 월스트리트 점령시위는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와 벌인 문화유전자 전쟁이다. 2011년 11월 2일 입학한 지 2개월째인 하버드대생 70명이 저명한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 원론 수업을 거부한 ‘하버드를 점령하라’도 캠퍼스에서 벌어진 문화유전자 전쟁의 대표적 사례다. 맨큐 교수는 주류경제학인 신고전파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윤 극대화, 끝없는 성장, 완전 경쟁 시장 등의 ‘신화’에 사로잡힌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책은 “지구를 인간 경제의 하위 체계에 두고 있는 신고전파 패러다임은 인간 경제가 지구 생물 경제의 부분 집합으로 인식되는 생태주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사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경제학 서술은 ‘오만한 시도’라며 경제학의 본령을 “진화하는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고안하는 학문”이라고 갈파했다. 경제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하나둘씩 내놓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가짜 진보를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가짜 진보를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김성구 지음/나름북스/402쪽/1만 8000원 김대중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면서 전면적으로 수용한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 말부터 10년 가까이 한국 경제의 지형을 뒤흔들면서 사회의 변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시장근본주의 또는 시장원리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효과가 드러나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한국의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국내뿐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는 현재 자본주의 세계의 모순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사상이자 정책으로 남아 있다. 신간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은 이 같은 역설적 상황과 의문에 국내 대표 좌파 경제학자인 김성구 교수가 답한 칼럼집이다. 1995년 국내에서 처음 신자유주의 비판을 제기했던 저자는 도대체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시대의 흐름이 됐으며, 또 파국의 주범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현실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밝힌다.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저지하고, 위기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진보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그가 지난 몇 년간 기고한 글들을 한데 모은 책은 우선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 이론사적 계보 등을 훑는다. 신자유주의와 구자유주의, 영미권 신자유주의와 독일권 신자유주의 등을 비교하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는다. 이어 세계화 물결 속에서 자본 및 금융시장이 본격 개방되기 시작한 김대중 정부로부터 오늘날 박근혜 정부까지 우리 사회를 점령하는 신자유주의의 기록을 담았다. 책의 핵심은 3부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지배에 공모한 시민단체 등 ‘가짜 진보’와의 논쟁을 담았다. 그는 이들이 신자유주의와 투쟁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신자유주의 확산을 도모했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물론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에도 비판의 칼날을 겨눈다. 그는 이들 간의 신자유주의 연대가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관철에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고, “진정으로 신자유주의를 넘어가고자 한다면 이들과의 논쟁을 우회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보수 진영도 그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4부에서 그는 단편적 지식을 내세우는 보수 학자들의 경제민주화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는 한국에서 보수-진보 간 경제민주화 논쟁은 본질적으로 영미형 신자유주의와 독일형 신자유주의의 논쟁일 뿐 진보적 전망은 없었다고 비판한다. 김 교수는 “자본주의의 발전은 위기 속에서 불가피하게 사회화의 경향을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논지를 펴면서 위기를 넘어설 가장 과학적 대안으로 ‘사회화’를 제시하며 마무리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경고문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자는 기소한다.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자는 추방한다. 여기에서 이야기 줄거리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자는 총살한다. 이 경고문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서두에 써 있는 문구다. 1885년에 발표된 이 책은 미국 현대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어릴 적 누구나 만화 영화나 책으로 접했을 익숙한 책이다. 어릴 적 읽었던 이 책에는 주인공과 같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겠다는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했었다. 혹자는 말한다. 고전을 읽어야 할 시기는 나이가 지긋이 들어 인생의 무게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을 때라고. 나 역시 어려서부터 수많은 고전을 읽었고 나름대로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불혹의 나이에 다시 접하게 된 고전 속에서 청소년 시기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인생의 깊은 맛과 묘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이 그러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같은 모험류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처음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펼쳐 들었을 때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뗏목 여행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다. ‘모험을 받아들이기에는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구나’하고 생각하며 무심코 책장을 넘기던 때 ‘반짝’하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주인공의 모험 속에 숨겨진 다양한 미국사회의 진실과 영혼이 하나하나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이분법으로 읽어 보기를 권한다.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순수한 모험이야기에 집중하는 절대주의적 관점으로 읽거나, 외재적 관점, 즉 모험 속에 숨겨진 다양한 삶의 모습과 사회·문화·역사적 배경에 충실한 반영론적 관점이나 작가의 체험, 사상, 감정에 관심을 갖고 읽는 표현론적 관점으로 접근해 보라는 말이다. 양쪽의 재미에 집중할 장치들은 풍부하다. 트웨인은 서두에 위와 같은 경고문을 써서 작품 자체의 순수한 의미와 가치에 집중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당시 인위적인 교육이나 교양의 쓸모없음에 대한 각성, 그리고 자연과 자유를 열망하는 지칠 줄 모르는 영혼을 만나보라는 의도로 보인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선 이 소설은 당시 미국 사회의 노예와 인종차별 문제를 공론화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책에는 반전 운동가로 살았던 트웨인의 생각도 담겨 있다. 그는 당시 사회와 도덕의 딜레마를 양심의 잣대로 풀어나가고자 했다. 그리고 주인공 노예 짐과 헉이 뗏목을 타고 내려가며 자기를 발견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카이로 자유주를 찾아 떠나는 두 주인공의 자유와 이상에 대한 열망은 결국 진정한 자기를 찾아보겠다는 의지였다. 이렇게 작품 속에는 기회의 땅이자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할 공간으로서의 19세기 미국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 현대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했다.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더글러스 아줌마와 동생 왓슨 아줌마에게 입양돼 지루한 성경이야기와 규범에 시달리던 허클베리 핀은 돈을 좀 손에 넣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돌아온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납치돼 심한 매질에 못 이겨 잭슨 섬으로 탈출한다. 이때 자유를 찾아 탈출한 왓슨 아줌마의 흑인 노예 짐을 만나 홍수로 떠내려 온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의 남쪽에 있다는 자유주 카이로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둘은 수많은 사건과 위험을 겪으며 다양한 사람과 삶을 만난다. 육지에서 만난 대부분은 물질에 집착하고, 허위의식과 위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레인저포드 가문은 이유도 모르는 채 셰퍼드슨 가문과 30년간이나 싸우고 젊은 목숨이 희생되며, 가짜 왕과 공작이라고 자처하는 사기꾼은 당시 타락한 인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결국 흑인 짐까지 농가에 팔아 버렸고, 헉은 톰과 공모하여 짐을 탈출시키려고 시도하던 중 돌아가신 왓슨 아줌마의 유언으로 짐이 자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헉은 샐리 아줌마가 자신을 ‘교양 있는 문명인’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준주 지역인 인디언 정착지로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미국은 농업이 활발하던 남부와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 사이에 노예제를 둘러싸고 대립이 심하였고, 남북전쟁 이후 북부가 승리하면서 급속한 산업화를 겪던 시기였다. 이 책에는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가 부각돼 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보편적인 것이었고, 노예는 동물처럼 학대받고 혹사당했다. 하지만 헉은 짐과 같이 뗏목 생활을 하면서 흑인 짐도 올바른 양심과 애정을 가진 존재이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의지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짐의 탈출을 도우면서 기존 사회의 법률과 규범을 깨뜨린다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짐의 소유주인 왓슨 아줌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찢으며 “좋아 난 지옥에 가겠어”라고 외친다. 그의 다짐은 양심을 기준으로 당시 사회 규범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뗏목 위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헉의 내면과 일맥상통한다.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뗏목 위는 안락한 보금자리로 새로운 가정이자 사회였다. 뗏목 위에서 헉과 짐은 동등한 인격체로 만날 수 있었다. “결국 세상에 뗏목 같은 집은 없어. 다른 장소는 북적거리고 숨 쉴 수도 없이 답답해. 그런데 뗏목은 그렇지 않아. 여기서는 지독히 자유롭고 편하며 안락하단 말이야”라고 말한다. 육지와 대비되는 미시시피 강은 사회의 부조리와 욕심으로부터 헉을 지켜주고 감싸주는 배려의 공간이었다. 이들이 향하는 카이로는 헉과 짐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짐에게는 노예 신분을 벗어나 자유를 얻고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희망의 장소였고, 헉에게는 자신을 옥죄는 사회의 모든 규범과 곳곳에 숨어 있는 위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이상향이었다. 이것을 통해 초기 자본주의 시기 미국 속에 존재하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희망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트웨인은 이 책이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후 이 작품이 갖는 본질적인 주제는 “건전한 마음과 왜곡된 양심이 갈등하게 되고 그 갈등에서 왜곡된 양심이 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노예제로 상징되는 왜곡된 양심을 건전한 마음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모험 같은 삶을 살았던 마크 트웨인. 우리는 작품 속 헉과 짐의 흥미진진한 여행에 동참하면서 잊어버렸던 동심과 꿈을 찾아보고, 세상의 올바른 이치와 양심을 찾아내서 외치는 용기 있는 자신을 만났으면 좋겠다. ■마크 트웨인은 美 자유로운 영혼 묘사…‘톰 소여의 모험’ 등 미시시피 3부작이 대표작 마크 트웨인(1835~1910)은 ‘배가 지나가기 안전한 수심’이란 뜻을 가진 필명이다.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다. 4살 때부터 살았던 미시시피 강변이 그가 쓴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됐다. 트웨인은 “나에게는 인생에서 두 가지 야망이 있는데 하나는 수로 안내인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형에게 보냈다. 문학의 꿈은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치며 이뤘고, 수로 안내인의 꿈은 자신의 필명에 투영시킨 셈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추억’은 이른바 ‘미시시피 3부작’으로 작가의 대표작이 됐다. ‘왕자와 거지’, ‘아서왕과 코네티컷 양키’ 등도 유명하다. 작품 속에서 트웨인은 미국 특유의 자유로운 영혼을 묘사했지만, 한편으로 자유의 이미지와 정반대인 당시의 흑인 노예제를 비판했다. 부인이 먼저 죽은 뒤 트웨인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는 핼리혜성이 지구에 온 해에 태어났으니 다시 핼리혜성이 올 때 죽으리라고 말하곤 했는데, 정말 76년 만에 핼리혜성이 돌아온 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근현대 100년 건축사에 한 조각 남은 퍼즐 맞춘 셈”

    “근현대 100년 건축사에 한 조각 남은 퍼즐 맞춘 셈”

    “(전시 총감독인) 렘 콜하스가 기획한 이번 건축전은 그간 건축 담론을 이끌던 (서구 중심의) ‘문법’을 무시하고 단어나 의미부터 다시 살피도록 했어요. ‘문법’을 따르도록 강요당한 변방 국가들에 기회가 왔고, 그래서 ‘뒤집어지게’ 만들었죠. 우리가 안 받았다면 칠레나 인도네시아가 받았을 겁니다.”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의 조민석 커미셔너는 스승 격인 렘 콜하스 총감독 얘기부터 꺼냈다. 1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조 커미셔너는 “콜하스가 현지 기자회견에서 누군가가 볼 만한 국가관을 물으면 한국관부터 언급했고, 심사위원단이 30분 넘게 한국관에 머물러 상을 타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지인이 전화를 걸어 울면서 수상 소식을 전했을 때도 사실 담담했다”고 덧붙였다. 조 커미셔너는 이번 수상을 100년간 이어 온 근현대 건축의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하나 남은 퍼즐 조각을 맞춘 것으로 표현했다. 서구에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담론이 일어나 건축에 영향을 미쳤으나 우리는 남북으로 갈려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제로 ‘한반도 오감도’전을 내놨고 한국이 처음으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기자회견에선 조 커미셔너와 총감독인 콜하스의 ‘인적 네트워크’에 대해 질문이 쏠렸다. ‘차세대 건축가’로 두각을 나타내 온 조 커미셔너는 콜하스가 소장으로 있는 네덜란드 설계사무소 OMA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지난해 이런 배경을 참고해 국제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조 커미셔너를 공모에서 최종 낙점했다.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 한국관 큐레이터는 “스승과 제자인 콜하스와 조 커미셔너의 관계는 각별하다”며 “조 커미셔너는 콜하스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관 관계자들은 “국내에는 제대로 된 건축박물관 하나 없다”며 “이번 수상이 건축을 문화로 만들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이미지 인문학 1(진중권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전방위 문화평론가로 분류되는 저자가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빚어낸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의 보여준다. ‘파타피직스’란 형이상학을 의미하는 ‘메타피직스’를 패러디한 개념이다. ‘온갖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 철학’을 뜻하며 프랑스의 극작가 알프레드 자리가 처음 제시한 이후 호안 미로, 마르셀 뒤샹, 장 보드리야르 등이 그 개념을 받아들였다. 책은 회화, 사진 등의 전통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물, 생물, DNA, 비트, 나노 등 다양한 디지털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오늘날 기술 매체와 관계를 맺은 인간의 정신을 탐구한다. 현대인들은 특정 기술을 받아들일 때 그 기술의 창조자가 의도한 사유의 패러다임까지 무의식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본성에 대해 철학적인 성찰을 하도록 이끈다. 336쪽. 1만 7000원. 세상을 바꾼 작은 우연들(마리 노엘 샤를 지음, 김성희 옮김, 윌컴퍼니 펴냄) 세균으로부터 생명을 구한 항생제 페니실린, 수술의 고통을 덜어 주는 마취제, 꺼져 가는 심장을 살리는 심박 조율기, 운전자들을 보호하는 안전유리…. 인류의 삶을 발전시킨 발명품들의 공통점은 거짓말처럼 우연히 탄생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발명품 중에서도 뜻밖의 계기로 빛을 본 50가지를 추려 소개한다. 화약의 재료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안전하게 길들이는 방법을 우연히 발견한 뒤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노벨, 부주의로 페니실린이 탄생한 사연 등이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행운으로 이어진 실수, 큰 소득을 낳게 한 부주의, 더 큰 열매를 맺게 해 준 실패 등은 책 읽는 맛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예측 불가한 인간 삶의 묘미까지 생각해 보게 한다. 280쪽. 1만 5000원.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등 옮김, 열린책들 펴냄) 남미 문학의 거장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작품 컬렉션이 완간됐다. 지난 5년간 출간된 그의 소설은 2010년 ‘칠레의 밤’부터 ‘야만스러운 탐정들’(2012), ‘2666’(2013), ‘아이스링크’(2014)에 이르기까지 12종 17권이다. 200매 원고지로 따지면 1만 8220매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1993년 데뷔 이후 작품 발표 때마다 스페인권의 문학상을 휩쓸며 ‘제2의 마르케스’로 불린 볼라뇨는 문학의 역할과 악의 근원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작품에 녹여 왔다. 그의 작품은 1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독자들에게 ‘볼라뇨 전염병’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일으켰다. 출판사는 볼라뇨 작품 완간을 기념해 컬렉션 도서를 특별 제작한 목재 책장에 담은 한정판 세트를 내놨다. 전권 21만 4600원.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에릭 윌리엄스 지음, 김성균 옮김, 우물이 있는 집 펴냄) 서양 역사의 근본적 치부인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의 태생적 내연 관계를 폭로한 책. ‘노예해방의 진정한 원동력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경제 논리’라는 주장을 담은 책은 1944년 출간 당시 많은 반론을 유발했으나 결과적으로 노예해방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집는 역사적 명저로 자리 잡는다. 저자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 총리를 역임한 정치인이자 학자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초기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식민자본주의가 태동기부터 노예제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를 활용한 덕분에 중기 자본주의, 즉 산업자본주의로 순조롭게 이행했음을 풍부한 증거 자료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472쪽. 2만 4000원.
  • 주식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춤추는 이유

    주식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춤추는 이유

    비이성적 과열/로버트 실러 지음/이강국 옮김/알에이치코리아/504쪽/1만 8000원 1996년 주가가 치솟을 무렵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을 했다. 지금 월가와 학계에선 증시와 관련한 ‘비이성적 과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실제로 과열 현상은 도처에서 진행 중이다. ‘비이성적 과열’은 증시와 집값의 붕괴를 정확히 예고했던 저자가 버블의 원인과 대안을 밝힌 책이다. 저자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예일대 교수다. 2000년 책이 발간된 직후 실제로 주가가 폭락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전면 개정판인 이 책은 집값 거품을 경고했고 그 예상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현실화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전통 경제학에 사회심리학을 결합한 책의 핵심은 아주 명쾌하다. 무엇보다 시장 변동의 진정한 요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장 변동이 경제와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주장의 끝에는 놀랍게도 이런 결론이 맺어진다. 시장 변동을 이끄는 진정한 결정 요인의 많은 부분은 바로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든 시장 과열의 커다란 원인은 자본주의 시장의 폭발적 확대와 물질적 가치의 지나친 존중이다. 잘 알려졌듯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몰락 이후 노동조합·협동조합 운동이 쇠락한 자리는 거대한 국제 금융시장과 온라인 경매시장으로 메워졌다.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안정적 자산 확보를 위한 투자처로서 주식·주택시장의 가치가 상승했고 기업 경영진과 핵심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스톡옵션은 주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의 바탕 위에 저자가 주목한 건 바로 문화심리적 요인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조만간 다시 오르며 장기적으로는 주식이 채권보다 수익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상식의 오류일 뿐이다. 왜냐하면 시장의 진정한 가치는 이론적으로 규정하기 힘들고 대중이 계산하기란 더 어렵다. 결국 책의 결론은 비이성적인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이다. 먼저 주식 보유를 줄이고 더 나은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라고 한다. 계획을 세워 저축을 늘리고 여론 주도층이 시장 안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라고도 촉구한다. 두 차례의 세계적인 붕괴를 예고했던 그가 제시하는 해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소설 ‘소소한 풍경’이 그리는 죽음의 본원과 사랑의 불완전성이란?

    소설 ‘소소한 풍경’이 그리는 죽음의 본원과 사랑의 불완전성이란?

    박범신/소소한 풍경 1973년 ‘여름의 잔해’로 등단한 뒤, ‘소금’, ‘은교’, ‘그리운 내가 온다’, ‘촐라체’ 등 40여 권의 소설을 발표한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이 지난달 30일 41번째 장편 소설 ‘소소한 풍경’을 출간했다. 죽음의 본원과 사랑의 불완전성을 주제로 한 소소한 풍경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가인 ‘나’와 어렸을 때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은 제자 ‘ㄱ’, 형과 아버지를 잃은 떠돌이 ‘ㄴ’, 국경을 넘다 아버지를 잃은 탈북자 처녀 ‘ㄷ’ 등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성별이나 나이, 계급 등을 초월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두 여자와 한 남자는 서로를 사랑한다. 이들의 관계는 소설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분신인 ‘나’를 통해 그려진다. 사건의 시작은 집주인에게 억울하게 내쫓긴 세입자 ‘ㄴ’을 발견한 ‘ㄱ’이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함께 하며 서로에게 만족감을 얻은 그들은 집 뒤란에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한창 우물을 파고 있을 때 그들 앞에 ‘ㄷ’이 나타난다. ‘ㄷ’과도 함께 생활하기로 결정한 세 남녀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불완전한 사랑을 완전하게 받아들인다. 어찌 보면 ‘소소한 풍경’은 사랑이라는 말이 인간의 본질적 운명에 대해 매우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소설의 함의를 너무 한정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작가 박범신의 독특한 소설론과 인식론이 담겨 있음에는 분명하다. 박범신 작가는 ‘소소한 일상’에 대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파르게 넘어온 그들이 오염되지 않은 상태의 인간으로서 느끼는 사랑, 존재, 신비 등 다양한 감정을 시적으로 접근했다”며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 ‘비밀’이다. 작가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의 인물들이 최종적으로 그리워 한 지점도 그럴 것이다. 그들이 가졌을지 모르는 불멸에의 꿈도 그렇다. 감히 ‘비밀’의 봉인을 열고자 한 나에게 죄 있을진저”라고 밝혔다. 박범신 작가의 신작 ‘소소한 풍경’은 갈망 3부작과 자본주의 폭력성을 비판한 3부작에 이은 소설로, 전국 오프라인 서점 및 온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면 칼럼] 안대희는 국민정서법을 몰랐다

    [김종면 칼럼] 안대희는 국민정서법을 몰랐다

    행로난(行路難)이라고 할까. 사필귀정이라고 해야 할까.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안대희 전 대법관이 어제 결국 국무총리 후보직을 사퇴했다. 세상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청렴강직한 ‘국민검사’라는 말을 듣던 사람이 졸지에 물욕에 찌든 ‘전관예우의 상징’이 돼 버렸으니 말이다. 주위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다 보니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 아닌가. 그는 엊그제까지만 해도 늘어난 재산 1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지금까지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려 했으나 모든 면에서 그렇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총리직에 대한 미련은 여전해 보였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모든 면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고 살아야 인간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것이다. 5개월에 16억원, 하루에 1000만원을 벌었다니 ‘돈버는 기계’도 아니고, 하루하루 일상에 부대끼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서민들로서는 부아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전관예우에 따른 고액 수임료 논란이 확산되자 재산 사회 환원 카드를 뽑아든 것은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죽을 꾀’가 되고 말았다. 전관예우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은 접어두고 어설픈 ‘기획 기부’ 이벤트로 오히려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꼴이 된 것이다. 당장 야권에서는 돈으로 총리 자리를 사려 한다며 ‘매관매직론’까지 들이댔다. 앞서 3억원을 기부한 시점도 그가 총리 하마평에 오르고 나서이니 기부의 순수성은 애초부터 의심받을 만했다. ‘안대희 파문’은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평생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고 꼬깃꼬깃 모은 돈을 조건 없이 사회에 내놓는 ‘김밥 할머니류’의 기부가 진짜 기부다. 목적성을 띤 재산 환원이라면 그것은 기부정신에 대한 모독이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돈이면 다 된다는 저열한 천민자본주의 행태다. ‘속량금’(贖良)이라도 내고 벼슬을 하겠다는 모양새라면 이보다 더 안쓰럽고 구차스러운 일도 달리 없다. 너도나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마당에 이 같은 비정상이 ‘관행 아닌 관행’으로 자리 잡아서는 결코 안 된다. 지금 시중에는 정승같이 쓰지 않아도 좋으니 개같이 벌지만 말아 달라는 치욕에 가까운 비아냥이 나뒹군다. 그만큼 전관예우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다. 세월호 참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관피아의 검은 유착은 대한민국호 자체를 침몰시킬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 대책을 발표하며 내놓은 화두도 다름 아닌 관피아 척결이다. 관피아 개혁을 통한 국가개조는 확고한 대통령 어젠다다. 그런 점에서도 법조계 전관예우가 ‘관피아의 원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관피아 척결의 역사적 사명을 띤 총리 후보자가 역대 전관예우 법조인 중에서도 최상의 대우를 받은 ‘법피아 중의 법피아’임이 드러났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개혁적 리더십을 발휘해도 관피아의 저항을 뚫고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안 후보자가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총리직을 거머쥐었다 해도 어차피 그것은 ‘피루스의 승리’일 뿐이다. 거대한 희생으로 피폐해진 이빨 빠진 호랑이에게 관피아 척결의 대업을 맡기는 건 무리다. 도덕성이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사람에게 개혁의 칼을 쥐여준들 그 무뎌진 날로 썩은 무 하나 제대로 자를 수 있었겠는가. 관피아로 상징되는 관료사회의 적폐를 일소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지금 총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소임도 같은 맥락이다. 공직 기강을 세울 적임자를 제대로 뽑아야 한다. 평균적인 국민의 생각이 중요하다. 국민 눈높이, 국민 정서를 외면하고는 그 어떤 국가적 과제도 원만히 수행하기 힘들다. 인사 포인트를 분명히 해야한다. 후임 총리는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되 진정으로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통합형 서민풍’의 인물이어야 하지 않을까.
  • “김정일 타도하자 글귀 북한 파출소에 흔했다”

    “김정일 타도하자 글귀 북한 파출소에 흔했다”

    “사람들이 아는 북한은 1990년대 이야기일 뿐이에요. 젊은 세대의 생각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북한 장마당 세대의 희망’이란 칼럼을 기고한 탈북자 박연미(21)씨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20대는 자본주의에 친숙하고 오히려 사회주의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2007년 탈북해 2009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홍보대사로 일하는 민간 싱크탱크 ‘프리덤 팩토리’의 관계자와 상의해 메일로 WP에 기고문을 보냈더니 싣고 싶다고 바로 연락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어로 쓴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의 기고문에서 ‘장마당 세대’를 소개했다.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나 국가의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시장 경제를 체득했다. 그는 ‘김씨 왕조’에 대한 충성심이 없고, 외부 미디어와 정보에 익숙한 장마당 세대가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씨는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죽고, 시장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북한 파출소에 ‘김정일 타도하자’라는 글귀가 붙는 건 흔한 일이었다”면서 “나조차도 레닌, 공산당선언 등을 오히려 한국에 와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공부를 많이 해서 통일 한국과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기본을 지키자 교통법규] 교통사고율 OECD 꼴찌…사회적 비용 年23조원 GDP 1.9%

    ‘연간 23조 5900억원.’ 도로교통공단이 2012년 한 해 교통사고로 지출된 총사회적 비용을 추산해 올해 초 발표한 금액이다. 사망, 부상 등의 인적 피해 13조 6776억원, 차량 수리 등 물적 피해 8조 6858억원, 경찰 조사 등 기관 소요비 1조 2265억원을 합친 돈이다. 그해 서울시 예산 19조 8920억원보다도 많다. 또 그해 국내총생산(GDP)의 1.9%, 국가 전체 예산의 10.6%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안전사업실장은 “교통사고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면서 “1950년대부터 이어진 급속한 경제 성장 속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뿌리 내린 이유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법, 제도적 허점과 정책이 이를 더 부추긴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것이다. 중앙선 침범 사고 등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명시된 11대 중과실 사고를 빼면 대다수가 공소권이 없고 자체 처리로 끝난다. 보험이 교통사고의 면죄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실장은 “1980년대부터 자동차가 급증하면서 차를 많이 보유한 공무원이나 공직사회에서 자기보호 차원에서 보험이라는 것을 도입했다고 한다”면서 “보험에서 다 처리하니 사고를 내고도 피해자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는, 도리를 저버리는 가해자가 많다”며 혀를 찼다. 그는 교통사고특례법은 우리나라에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또 “교통 위반 과태료나 범칙금이 20년 전과 비슷하다. 영국 등 선진국은 과태료, 범칙금 모두 엄청 세게 부과한다”면서 “대통령이 취임한 뒤 교통 위반 벌점 등을 사면해 주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경찰청 통계는 2007년 21만 1662건이던 교통사고가 대통령 특별사면이 있었던 이듬해 21만 5822건으로 늘었고 재차 사면이 단행된 2009년에는 23만 1990건으로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선 사람보다 자동차가 우선이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농어촌은 학교, 마을 주변 도로에 인도가 없는 곳이 부지기수”라며 “유모차도 마을을 활보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유모차가 도심을 마구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교통 시스템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차량 운전자, 교통사고 가해자의 천국”이라고 개탄했다. 인도는 짜장면과 퀵서비스 등의 배달원 오토바이에 점령당했다. 김민경 충남경찰청 경위는 “농어촌은 도로 사정이 나빠 차량 단독 사고가 많은데 도시에서는 보행자 사고가 많다”고 전했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교통 약자를 위한 대중교통 시스템은 아직 많이 부실하다. 정책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세월호 참사처럼 컨트롤 타워가 없다. 장 박사는 “일본은 교통의 최고 책임자가 수상인데 우리는 일본에서 법을 가져오면서 이 부분을 뺐다.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만 돼 있을 뿐 책임자를 명시하지 않았다”며 “총리 이상이 컨트롤 타워를 맡고, (대형 사고 때) 누가 옷을 벗는다고 명확히 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이 말을 안 듣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치단체도 교통 전담 부서와 공무원을 둬야 한다”며 경찰과 교육 공무원까지 합쳐 ‘교통안전과’를 만들어 전담시킨 일본 요코하마시를 예로 들었다. 일본은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합숙도 서슴지 않지만 우리는 취득이 쉽고 비용도 적다. 교통안전 교육도 거의 없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가 초등학교 때부터 의무적으로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고교 때는 이를 테스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억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 사건의 65%가 보행, 29%가 승하차 때 발생했다”면서 “어릴 적부터 교통안전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교사들부터 안전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구조와 사회적 분위기가 난폭 운전 등을 부추긴다. 무단 횡단, 갓길 걷기, 전방 주시 태만, 신호 무시, 음주운전, 과속, 안전모 미착용, 경운기 반사지 미부착 등 도로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통안전 교육 의무화와 함께 과태료 증액 등을 제안한다. 일부는 자본주의 약점을 적극 활용해 재산에 따른 범칙금 등 연동제를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21만 5354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해마다 5000여명이 숨지고 30만명을 훨씬 웃도는 이들이 부상을 입는다. 장 박사는 “10년에 소도시 하나씩 사라지는 셈”이라면서 “교통시설은 선진국 못지않은데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보험이 형사 처벌까지 해결하는 단계에 와 있는 등 법과 제도가 거꾸로 가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도 교통질서를 파괴해 교통사고 공화국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전 세계 달구는 ‘피케티 신드롬’

    전 세계 달구는 ‘피케티 신드롬’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43)가 일으키고 있는 ‘피케티 신드롬’이 심상찮다. 외국에서 시작된 열기는 우리나라에도 일찌감치 상륙했다. 급기야 이 신드롬의 시사점을 분석한 보고서까지 나왔다. 국제금융센터는 22일 ‘21세기 자본론의 글로벌 반향 및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21세기 자본론’은 피케티가 지난해 프랑스에서 낸 책이다. 신드롬으로 번진 것은 올 3월 영문 번역본이 나오면서다. 책이라고 말하기에는 두께가 ‘공포’스럽다. 무려 685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단숨에 판매 순위 4위에 올랐다. 영문판을 낸 미국 하버드대 출판사는 “출판사의 100년 역사상 (연간 판매량 기준) 최대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유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등은 앞다퉈 ‘피케티 모시기’에 극성이다. 쏟아지는 강연과 면담 요청에 피케티는 그야말로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한글 번역본은 올가을 나올 예정이다. 석학들 사이에 찬반 논쟁이 뜨거운 ‘21세기 자본론’은 미국, 프랑스, 영국, 인도 등 20여개 국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들 국가의 300년에 걸친 경제지표와 소득 자료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두 번의 전쟁(세계대전), 대공황 등 특정 시기 몇 번을 제외하고는 소득 불평등이 꾸준히 심화됐으며, 그 원인은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지금도 주요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은 연 1~1.5%이지만 자본 이익률은 4~5%나 된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 만큼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고 결국 ‘세습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야기할 것이라는 게 피케티의 경고다. 여기서 그쳤으면 신드롬까진 안 됐을 것이다. 피케티는 이런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전 세계 부자들에게 10%의 세금을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름하여 ‘글로벌 부유세’다. “세제나 복지를 간과한 이상론”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다소 과격하지만 고려해볼 만한 해법” 등의 긍정적 평가가 더 많다. 한글판이 나오기도 전에 국내서도 열기가 뜨거운 데는 금융사 및 대기업 총수들의 고액 연봉 논란, 갈수록 쪼들리는 가계, 10%가 넘는 실질 실업률 등의 경제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이중도시 서울, 북촌·남촌에서 강북·강남으로 양분화 조선 내내 사대문 안 북촌과 남촌의 양촌 체제가 공고했다. 그러나 대한제국기 고종이 중국의 천자나 일본 천황과 같은 황제에 오르는 이른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고서 북촌 체제의 중심인 경복궁을 버리고 서촌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정궁을 옮겨 가면서 상황이 변했다. 건국 500년 만에 나라의 중심이 백악(북악)을 중심으로 한 북촌에서 종로를 넘고, 청계천을 건너 서울시청 쪽으로 이전한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이러한 정치권력의 공간이동은 이후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시대에는 없던 태평로를 서울의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1926년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경복궁 안에 건립돼 정치권력은 북촌으로 회귀했지만, 자본주의의 꽃인 경제권력은 태평로에 남았다. 확장된 경제권력이 1970년대 한강을 넘어 강남과 여의도를 향해 중심이동하기 전까지. 강남으로의 팽창과 더불어 서울은 2000년 전 한성백제의 수도 한강 이남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는 강북에 남았지만, 자본주의 권력의 원천인 경제자본과 대의기관인 국회가 강을 건너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선의 서울이 강북 사대문 안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서울은 강남이 됐다. 사대문을 남북 체제로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하던 개천(청계천)이 복개되면서 남·북촌이 하나로 통합되는가 했더니 급기야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돼 버린 것이다. 서울의 남북 경계선이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옮겨 간 셈이다. 도시사학 분야에서 ‘이중 도시’(Dual City)의 개념은 식민지를 경험한 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박찬승(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식민지 도시는 토착 집단에 대한 외래 집단의 지배 공간이었고 양자의 문화적 이질성은 사회적, 공간적 격리로 나타났다. 대체로 토착민들의 자생적 주거지는 전통적·전근대적 성격을 띠었고, 식민권력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주거지는 근대적·서구적 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식민지 권력은 외래 식민집단의 주거지를 토착민들의 열악한 주거공간과 분리시켜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주거지로 만들어 식민권력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문명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양분 정치적 기획의 산물인가, 체제경쟁의 산물인가 조선시대 한양도성이 북악 아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를 잡은 북촌, 낙산 아래 동촌, 인왕산 아래 서촌 그리고 남산 아래 남촌과 청계천변 중촌이 서로 아우르는 모습을 보였다면 식민 시기 경성은 일제의 의도적인 정치적 기획의 산물로서 남·북촌 체제로 양분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서·남·북촌을 중심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어울린 사색붕당(四色朋黨)이 식민지 사관의 혐의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다른 풀이도 있다. 안창모(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청계천을 품에 안고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만명을 수용하는 계획도시로 출발한 한양이 60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강을 품에 안고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외견상 인구는 100배 이상 증가했고, 면적도 30배 이상 확대됐다. 600년 시차를 가진 조선의 한양과 한국의 서울은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존재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서울은 계획됐다기보다는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하려는 방편으로 확장됐고 결과를 추인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도시의 물리적 성장과 변화 배경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북 분단과 강남 개발은 서로 얽혀 있다. 비록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이지만 1976년 건설된 잠수교로 말미암아 한강은 서해 뱃길이 끊어지면서 자연 울타리가 됐다. 유사시 30만~4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요새화 차원에서 뚫린 3개의 남산터널과 정부청사의 과천이전 등은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이 서울의 도시구조 변화에 남긴 대수술 자국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제3한강교)의 건설로 강남이 개발돼 현대 서울의 모습이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 두 개의 도시로 나뉜 것도 결국은 남북 체제경쟁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 서울은 어떻게 분열됐을까 서울은 식민시기 어떤 분열과정을 거쳤을까. 일본인의 서울 진출과 일본인 거류지의 형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일본공사관은 1880년 서대문 밖 천연동 청수관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임오군란 때 소실되자 1884년 교동 박영효 저택에 공사관을 지어 사대문 깊숙이 진출했으나 같은 해 갑신정변 와중에 또 타버렸다. 1885년 남산 아래 예장동으로 옮긴 뒤부터 식민지배 권력의 본거지가 됐다. 남산과 일본을 잇는 역사의 끈은 질기고도 질겼다. 일본 사신이 묵었던 왜관(동평관)이 조선 초 자리 잡았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7년 동안 진지를 구축한 왜장대가 있었다. 개항기 조선과 대한제국 조정은 일본공사관을 사대문 안에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개천을 건너지 못하도록 했다. 삼강오륜에서 부부유별(夫婦有別) 따지듯 북남유별(北南有別)을 따졌지만, 결과는 남북 역전으로 나타났다. 남촌은 식민지 조선의 새로운 메인스트리트였다. 조선 신궁(남산식물원)이 일본 정신을 상징했고, 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헌병사령부(남산한옥마을)가 무력통치를 상징했다. 일본인 거주 지역인 충무로, 진고개 일대는 본정통(本町通)이라고 하여 조선의 유일한 동서 간 대로인 종로를 대신했다. 일제는 황토마루(黃土峴)를 광화문통, 구리개(을지로)를 황금정(黃町), 명동을 명치정(明治町), 소공동을 장곡천정(長谷川町), 다방골(茶洞)을 다옥정(茶屋町)으로 멋대로 바꿔 버렸다. 남촌에는 조선은행(한국은행)과 경성우체국(중앙우체국)이 들어서고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과 히라타(平田) 등 대형 유통업체가 진출해 상권을 장악했다. 2~4층의 현대식 상점 진열대에는 일제와 서구 외제 상품이 휘황찬란한 전등불 아래 진열됐다. 도로는 포장되고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식재됐다. 광고탑과 마네킹,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뤘다. 본정통은 식민지 서울이 아니라 도쿄를 여행하는 듯했다. 지금의 강남 격이다. 한국인이 상권을 쥐고 있던 종로통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1935년 시인 임화는 ‘다시 네거리에서’라는 시에서 “번화로운 거리여/내 고향 종로여/웬일인가/너는 죽었는가/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라고 외쳤다. 별건곤 1930년 6월호에서 김화산은 “달리는 차, 매연, 여자의 스커트, 자욱한 연애, 주머니 속의 1전짜리 동전, 비애, 주점, 여자에 대한 증오, 정거장, 잡다한 사상을 가진 군중, 쇼윈도, 밤의 샹들리에와 카페의 홍수, 길에 버려진 영화광고지…”라면서 남촌의 화려함을 묘사했다. 당시 경성은 전차 120여대, 자동차 250여대(관용차와 자가용 제외), 승합차 70대, 버스 40대가 뒤섞여 달리는 혼잡한 대도시였다. 식민지 통치권력과 외국 자본에 의해 서울 사람은 서울의 객이 돼 버렸다. 1936년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과 시흥군, 김포군이 서울로 각각 편입됐다. 고양군 용강면(오늘의 공덕동, 아현동)과 연희면(신촌), 은평면(홍제동), 숭인면(성북동, 청량리), 한지면(이태원, 서빙고)이 서울 땅이 됐다. 시흥군 영등포와 노량진, 상도동이 서울에 포함됐다. 서울의 팽창은 인구 집중과 더불어 지역 분화를 재촉했다. 동소문 일대 주택지대를 문화촌이라고 했고, 광희문 밖 신당동에는 달동네가 형성됐다. 정동 일대에는 서양인촌이, 용산 일대에는 공업촌, 서울역과 봉래동 일대에는 노동촌, 다동·청진동·관철동 일대에는 기생촌 등 특수촌이 형성됐다. 홍제동, 돈암동, 아현동에는 경성부가 운영하는 토막 수용 시설이, 종로와 본정통, 명치정, 장곡천정에는 다방과 카페, 영화관 같은 유흥업소가 밀집했고, 쌍림동에는 유곽이 있었다. ●서울·지방 나누듯 서울도 신분 따라 거주지 나눠져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에서 “서울(사대문)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오촌(동·서·남·북·중촌)과 양대(윗대·아랫대), 자내(성밖 거주지)와 오강(한강변 거주지) 지역의 문화가 달랐다. 18~19세기 양반문화만 놓고 보아도 동서남북 사촌이 다 달랐고, 그들 사이에는 쉬 해소될 수 없는 차별의식과 적대감이 가로놓여 있었다”고 분석했다. 서울은 조선 500년 내내 유일한 도시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한양이라는 도시와 나머지 지방으로 나눠졌다. 중엽 이후 서울과 지방의 인적 교류가 막히면서 경인(京人)과 향인(鄕人)의 차이가 벌어졌다. 지방 출신이 벼슬길에 오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말씨와 문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시골 선비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영조 대 이후 지방 출신을 과거급제자에 할당할 정도였다. 심지어 고종 때 서울내기 군관이 시골뜨기 예조좌랑(교육부 사무관급)을 멸시하고 구타하는 하극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라가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졌듯 서울도 나눠졌다. 궁궐 주변인 북촌과 동촌, 서촌에는 고관대작과 그들의 시중을 드는 아전, 겸인배(집사)들이 살았다. 남산 아래에는 쇠락한 양반이나 무반이 거주했고, 인사동과 청계천 주변에는 역관이나 의관, 화원 같은 중인들이 중촌을 이뤘다. 상민은 윗대나 아랫대 혹은 사대문 밖 자내, 오강에 터전을 잡았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 정보가 새겨졌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문화마당]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 필요하다/이애경 작가·작사가

    [문화마당]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 필요하다/이애경 작가·작사가

    알고 지내던 가수 지망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는 서른 살이 훌쩍 넘어버렸다는 그녀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다. 몇 년 전 진로를 고민하며 상담을 요청해 왔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년간 연예기획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데뷔가 계속해서 미뤄졌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연예기획사에 들어가 서른이 다 될 즈음, 연예인으로서 가장 예쁘게 꽃피울 수 있는 시기를 다 흘려보내고 나왔다. 데뷔 앨범을 내고 잠시 활동을 했지만 인기를 얻지 못해 조용히 지내다가 몇 년 뒤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 이도 있다. 몇 년간 방황하던 그는 마음을 잡고 현재 입시·취미 학원에서 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때의 상처는 아리기만 하다. 연예인 지망생 100만명 시대. 대중이 TV에서 볼 수 있는 스타들은 연예인을 꿈꾸는 100만명의 아이들 중 살아남은 0.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다. 화려해 보이는 데다가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주어지는 듯한 모습은 분명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되지 못한 채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99.9%의 남은 아이들이 있다는 이면은 보지 못한다. 아이들이 ‘꿈’을 꾸는 데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은 없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대통령을 꿈꾸고, 과학자를 꿈꾸고 외교관을 꿈꾼다. 꿈을 꾸고 오롯이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꿈을 꾼 자의 몫이다. 내가 과학자가 되지 못했다고 세상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꿈을 꾸는 데 어른들의 책임이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연예인 꿈이 그렇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TV에 잠시라도 얼굴이 비춰졌던 아이들, 길거리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은 아이들, 연습생이 된 아이들, 또 동영상 반짝 스타로 떠올랐던 아이들. 자신들의 꿈이 일장춘몽이 아니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받기 시작한 그때부터는 그 아이들의 미래에는 어른들의 책임이 따른다. 물론 자본주의 논리에서 연예인을 상품으로 비유하자면 경쟁력 있는 상품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 팔리지 않는 물건 생산을 중단한다고 공장이 비난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예인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격을 가진, 또 우리와 마음을 맞대고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이기도 하다. 연예인을 꿈꾸다 날개가 꺾여버린 수많은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소위 ‘화류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마음이 무너진다.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면, 어른들은 그들의 인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현실감 있게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줘야 한다. 연예인에서 자동차 딜러, 학원 강사로 전향해 성공한 이들도 있다. 특기를 직업이 아닌 취미로 삼고 살아도 충분히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그들을 상품이 아니라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 그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다. 어른들에게 안내자로서의 책임의식이 있다면 세월호 사고도 이렇게 비극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책임을 다했지만 어른들 중 길을 알려주고 내어줘야 할 자기 책임을 다한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 라가르드, 美여대 졸업식 연설 불발

    라가르드, 美여대 졸업식 연설 불발

    국제통화기금(IMF) 최초의 여성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58) 총재가 미국의 명문 여자대학 가운데 하나인 스미스칼리지의 졸업식 연설자로 서지 못하게 됐다. 12일(현지시간) 캐슬린 매카트니 스미스칼리지 학장은 성명을 통해 오는 18일 졸업식 연설자로 라가르드 총재 대신 루스 시먼스 브라운대학 학장이 나선다고 밝혔다. 라가르드 총재의 졸업 연설이 불발된 것은 일부 학생과 교직원들의 반발 때문이다. 반대자들은 청원을 통해 “모든 여성의 평등과 단결을 위해 일한다는 스미스칼리지의 이념과 IMF는 성격이 배치된다”며 라가르드 총재의 졸업 연설에 거부감을 표했다. IMF가 성차별이나 저개발국 문제 같은 세계 자본주의의 단점을 대표하는 기구 중 하나라는 주장이다. 매카트니 학장은 이에 대해 “특정인을 졸업식 연설자로 초청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시각이나 정책을 대학이 승인함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반대론자들은 원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뫼비우스의 띠/정기홍 논설위원

    토론자들이 갖는 맹점이 있다. 자기의 주장을 할 땐 논리가 맞지만 상대를 부정할 땐 틀린 경우가 많다. 자신과 상대방의 생각이 양립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과 상대에 대한 불신을 저변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갈등과 논쟁은 물론 복수와 배신을 불러온다. 우리는 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반대 진영의 논리엔 화를 버럭 낼까. 남 탓만 하는 우리 사회가 곱씹어야 할 일침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함께 만든 제퍼슨과 애덤스는 라이벌이었다. 수많은 논쟁으로 서로가 성가신 존재였지만 애덤스는 그가 직접 쓴 선언문을 제퍼슨에게 집필하게 했다. 둘은 이후에도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했지만 미국을 만들었다. 이후 애덤스는 2대 대통령에, 제퍼슨은 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둘은 건국 50년이 되는 해 같은 날에 사망했다. 야사(野史)에는 앙숙이면서도 동지였던 둘 간의 관계를 들어 양쪽의 부음 심부름꾼이 중간지점에서 만났다는 우스갯말로도 전해진다. 중간지대가 지닌 가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대립을 극복한 ‘제3의 길’(Third Way) 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2005년 설립된 유럽의 싱크탱크인 ‘제3의 길’은 우파와 좌파를 초월해 이념 논쟁을 잠재웠다. 초당파적인 두뇌집단인 ‘제3의 길’은 유럽 국가들에 발전적 정책을 조언하면서 사회·정치적 갈등을 조율했다. 이 이론은 미국 등 세계 국가에도 접목돼 열풍을 이었다. 이분법적인 격한 주장이 세월호의 사고를 비집고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위 관리는 “사건만 나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며 국민 탓을 하고 반대쪽은 “대통령을 때려잡자”며 극한 말이 난무한다. 양쪽의 주장에 실린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마땅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때같은 학생들이 바다 밑에서 지금도 시신으로 나오는 데도 유족의 의중과 동떨어진 보·혁 간 주장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자기만의 사고와 주장에 함몰돼 있는 듯하다. 이 기회에 함몰된 아집과 일도양단의 사고를 허물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장이 대립하면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는 ‘삼각형 이론’이 요구되는 요즘이 아닌가 싶다. 재래식 방앗간의 벨트는 항시 꼬아 건다. 벨트를 꼬아서 걸면 양면을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긴 종이를 꼬아 이으면 안과 밖이 골고루 연결된다는 ‘뫼비우스의 띠’의 이론을 이용한 것이다. 이 이론은 물질에 양면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란 뜻으로 원용된다. 세월호를 치유하는 데 이타적인 좌와 우가 어디 있겠나. 세월호 사고를 앞에 놓고 벌이는 서로 간의 타박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박찬구의 시시콜콜] 분노하되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박찬구의 시시콜콜] 분노하되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인내천(人乃天), 권력의 탐욕과 학정에 깃발을 든 동학혁명의 정신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과 다르지 않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가르침도 사람이 중심이다. 조선 세종·정조 치세는 인문학의 시대였다. 그 근간은 백성이요, 사람이었다. 이처럼 한민족의 뿌리에는 ‘사람’이 살아 있었다. 수백년, 수천년이 지난 오늘 사람의 가치는 침몰됐다. 이미 형해화한 공동체가 세월호를 만났을 뿐인지 모른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시민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배제됐다. 친일파는 영리영달을 좇아 나라를 팔았고, 정치 군인들은 4·19 혁명의 민의를 쿠데타와 유신으로 억눌렀다. 군사 정권에 반대한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은 유혈 진압을 맞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친 촛불은 이윤과 자유무역을 앞세운 공권력에 막혔다. 무도한 권력과 천민자본주의가 사람의 가치를 침탈한 족적들이다. 사람을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이성과 정의가 만발하고 부조리와 모순이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사람의 가치보다 권력의 독선이, 공동체의 안전보다 자본의 탐욕이 앞선 사회에서 국민은 객체와 타자에 머물 뿐이다. 통치의 대상, 이윤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적폐라면 이것이 적폐다. 비정상이라면 국민의 안전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목소리를 억누르는 권력, 그것이 비정상이다. 대가는 참혹하다. 대형 참사가 날 때마다 민심은 또 다른 비극을 염려하고 위기를 경고했지만, 권력은 통치이고 자본은 이윤일 뿐, 소통과 양심은 없었다. 그 틈새로 환부는 살아남았다. 살아서 세월호를 수장시키고 어린 생명들을 앗아갔다.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일그러진 사회가 잉태한 명백한 타살이다. 역사의 교훈을 무시한 몰가치와 비상식의 범죄행위다. 특정 개인과 집단에만 죄를 물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오로지 희생자의 입장에서 죽음을 바라봐야 한다. ‘모두의 공동책임’이라는 전지적 관점이나 씨날로 얽힌 권력과 자본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지 않는 제3자적 논리는 참상의 근원과 본질을 묻어버리는 책임 회피와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 권력과 자본이 사람의 가치를 외면하면 어떤 희생이 따르는지, 그 부조리한 구조의 뿌리와 줄기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낱낱이 가르치고 사람다움의 가치를 공유해 나가야 한다.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공약은 어디로 갔는지 묻고 따질 일이다. 슬퍼하되 좌절하지 않고 분노하되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다.ckpark@seoul.co.kr
  •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슬픔 오롯이… 아직도 난 섹시하게 늙고 싶다”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슬픔 오롯이… 아직도 난 섹시하게 늙고 싶다”

    “내일모레 일흔인 인간 박범신과 작가 박범신 사이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어요. 문학적 감수성은 일흔에 도달하려면 아직 까마득하거든요. 예전엔 ‘유일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쓴 적이 많은데 요즘은 그게 불완전하고 강력한 억압이라 여겨요. 그런 상상이 이번 소설의 모티브가 됐죠. 안 그래도 ‘은교’ 때문에 추악해졌는데 더 추악해진 거 아닌가 몰라(웃음).” ●“위험한 노인이고 싶다”는 영원한 청년작가 ‘위험한 노인인 것이 좋다’는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68)이 말하는 새 장편 ‘소소한 풍경’의 출발점이다. 7일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나의 슬픔을 정면으로 말했다”고 했다. 작가에게 ‘촐라체’와 ‘고산자’, ‘은교’가 삶의 유한성이 주는 슬픔에 사로잡혀 쓴 갈망의 3부작이라면, 이후 ‘소금’,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비판한 3부작이다. 작가는 ‘소금’을 쓰고 나서 좌초했다. 논산 집 호숫가를 배회하면서 소설 쓰기를 그만둘까 생각하자 가속적으로 늙었다. 그때 불현듯 ‘소소한 풍경’이란 제목이 작가에게 스며들었다. 이 소설이 매순간 그를 당황스럽게도 행복하게도 했던 이유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당하지 않고 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설가는 평생 논리에 사로잡혀 있거든요. 그게 작가한테는 늘 너무 억압이야. 그래서 딱 짜여진 서사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써본 소설이에요. 그건 내가 아직 젊다는 뜻이겠죠.” 그의 화제작 ‘은교’가 노인의 늙어가는 슬픔으로 배태된 욕망을 말했다면 ‘소소한 풍경’은 사랑의 순간을 동결하려는 열망과 그 밑바닥에 깔린 살의를 드러낸다. 죽음에서 놓여나지 못했다는 그에겐 또 다른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죽음에 대한 나의 반응이 한 축이고 어떻게 해도 완전해질 수 없는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한 축을 이룹니다. 생의 본원적인 비밀이 뿜어올리는 물방울 같은 연약한 이미지들을 담아내려 했죠. 시적인 감수성으로 읽으면 소통이 더 잘 될 거예요.” ●두 여자와 한 남자… ‘1대1 사랑’ 은 폭력 책은 소도시 소소(昭昭)로 찾아든 두 여자와 한 남자를 다룬다.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고 결혼에도 실패한 뒤 고향인 소소시로 돌아온 ㄱ,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때 형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남자 ㄴ, 국경을 넘다 아버지를 잃고 한국에서 조선족 처녀 행세를 하는 탈북자 처녀 ㄷ. 삶의 내력은 다 다르지만 ‘많은 죽음을 통과해온 사람들’이다. 셋은 하나의 ‘덩어리’로 충일한 관계를 이룬다. 영원히 봉인될 수 있었던 셋의 서사는 ㄱ의 집에서 시멘트로 뜬 한 남자의 데스마스크(죽은 사람의 얼굴을 본떠 만든 안면상)가 발견되면서 추동된다. 세 사람이 질투나 배제 없이 서로에게 포개지는 사랑이 가능할까. “우리가 믿고 있는 사랑의 형태인 1대1 관계라는 건 80~90%가 폭력으로 느껴져요. 소유를 전제로 한 관념인데 그건 불가능한 꿈이죠. 현실에선 결혼 때문에 겨우 1대1 관계가 남아 있고, 정치사회적인 제도일 뿐이지. 그 관계가 폐기처분된 게 현실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간 본질이라고 봤어요. 그걸 소설에 반복해 드러냈죠.” ● “글 안쓰면 견딜수 없어… 예술가로 죽고파” 작가로서 존경과 사랑, 두 가지 다 가지고 싶지만 하나를 선택하라면 존경 없는 사랑을 택하고 싶다는 그는 “아직도 섹시하게 늙어가고 싶다. 그래서 불온한 소설을 골랐나 보다”라면서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예술가로 죽고 싶은 게 내 꿈입니다. 그게 아니면 생이 지닌 본원적인 쓸쓸함을 이길 수 없더라고. 그러니 아무것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지. 하지만 독자들이 (전작과) 동어반복이라고 하면 은퇴할 겁니다.” 글 사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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