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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뉴욕증시와 협정/금융정보ㆍ인력 교환

    【모스크바 로이터 UPI 연합】 소련은 10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 업무 협력협정을 체결,자본주의 금융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증권시장의 도입을 위한 서방제국과의 구체적인 협력 발판을 마련했다. 소련이 서방국가의 증권거래소와 업무협정을 체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발렌틴 파블로프 소련 재무장관과 존 필렌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이 이날 모스크바에서 서명한 양측간 업무협력협정은 ▲정기적인 업무자문 ▲금융시장정보 교환 및 시장전문가 교류 ▲인력양성 등에서 양측이 서로 협력하도록 돼있다.
  • 소 경제개혁안/국민투표 제의/레닌그라드 서기장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의 일부 고위 당간부들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당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제개혁에 대한 저항세력들에게 비난을 퍼부은지 하루만인 지난 9일 또다시 시장지향 경제개혁안에 의문을 제기했다. 관영 타스통신은 레닌그라드 당 서기장 보리스 기다스포프의 말을 인용,시장경제로의 전환계획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제의했다고 보도했다. 기다스포프는 이같은 경제개혁을 수행하려면 일촉즉발의 국내 정치상황을 안정시킬 조치들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늘날엔 과거 어느때와 달리 국민투표나 아니면 다른 형태로 국민들과 폭넓게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크 당 서기장 리마존 후다이베르게노바도 국민 대다수가 소련 지도자들이 만든 이같은 경제개혁을 진실로 믿지 않는다면서 『여러 인민들은 경제개혁에 대한 완전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경제를) 시장과 연계시키는 것을 자본주의로 한 발짝 후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국영중소기업 민영화 허용/당중앙위 사실상 자본주의 복귀 조치

    ◎“대기업ㆍ토지 사유화는 반대” 이바슈코 부서기장 【모스크바 AFP 연합】 소련 공산당은 소규모 기업의 민영화를 지지함으로써 소련에 자본주의가 복귀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소련 공산당의 블라디미르 이바슈코 부서기장이 10일 말했다. 이바슈코는 지난 8∼9일 양일간 열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승인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당분간 사유화는 소규모 기업에 국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공산당은 생산수단의 민간소유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그러나 사유화는 단계적으로 시행돼야 하며 민간기업은 향후 10∼12개월내에 전체 소규모기업 가운데 약 7% 정도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바슈코는 그러나 공장과 대기업의 사유화 가능성에 관해서는 국민들이 이들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견해를 표시했다. 그는 또 주식을 노동자들에게 무상분배하는 문제에 관해서 『너무 많은 입법적 작업이 필요하다』며 거부의사를 표명했으며 토지의 사유화에도 반대했다. 이바슈코는 중앙위 전체회의는 경제개혁과 소연방의장래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됐었으나 포괄적인 경제개혁의 형태에 관해서는 공산당의 입장을 결정하는 것을 유보한 채 폐회됐다고 전했다.
  • 김일성­도이ㆍ오자와 연쇄회담 내용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10일 상오 10시52분부터 11시15분까지 평양의 금수산의사당에서 일본 집권 자민당의 오자와 이치로(소니일랑)간사장을 비롯한 자민당 대표단과 회담을 갖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강한 의욕을 표시했다. 김주석은 이 회담이 끝난후 오자와 간사장 등을 위한 오찬을 베풀고 계속 환담을 나눔으로써 대일수교에의 열의를 나타냈다. 이보다 앞서 9일에는 일본사회당의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위원장과도 만나 남북통일문제등을 둘러싼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북한ㆍ일 관계정상화에 장애 없다”/“이제 문 열렸으니 친선ㆍ우호관계로 발전” 김일성/“한 테이블서 정부차원의 정상화 노력을” 오자와 ▷김일성­오자와 회담◁ ▲김일성=나는 귀하가 우리의 초청을 받고 조선을 방문해 준데 대해 감사한다. 특히 가네마루(금환) 전부총리가 방문한 이후 자민당이 우리 로동당의 45주년 기념식에 초청을 받아들여 간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맞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열렬히 환영한다. 선생들의 북한방문으로 창당기념일이 빛나게되었으며,더욱 기쁜 것은 조선 로동당과 자민당이 관계를 수립한 사실이다. 축하할 만한 일이다. ▲오자와 간사장=초대를 받아 감사한다. 가네마루회장이 방문 했을 때 신세를 져 고맙다. 당을 대표해 평양을 방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양당ㆍ양국간의 교류가 깊어져 친선ㆍ발전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김=간사장을 비롯,자민당을 대표하는 여러분이 방문해 줄 줄은 몰랐다. 열렬히 환영한다. 크게 감동하고 있다. ▲오자와=새로운 역사의 또다른 한 폐이지다. 가네마루회장을 비롯한 양국 대표단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될 수 없었던 일이다. 이것을 계기로 양국간의 우호를 장래에 걸쳐 한층 더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가이후(해부)총리에게도 잘 전해 달라. 먼길 외유를 마치고 귀국한 인사를 드려달라. 가네마루 선생에게도 안부 전해달라. 가네마루 회장은 『바람구멍을 열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문을 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깝고도 밀접한 관계가 되어가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자와=국회에서는 일상 사회당과 상당한간격이 있지만 이번 일에 관해서는 일치 협력,무겁고도 무거운 문이지만 여는 것이 가능했다. 앞으로도 이 무거운 문을 다시 열어 보다 훌륭한 관계를 구축했으면 한다. ▲김=문은 열렸기 때문에 드디어 정상화의 관계에 들어간다. 3당합의에 대해서도 장애물은 없다. 이제부터는 결정해 들어가야 한다. ▲오자와=나도 동감이다. 가능한 한 정부사이에 같은 테이블에서 정상화를 위한 한층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김=매스게임은 어제 예정을 오늘로 변경했다. 술(와인 글라스)은 4잔밖에 마시지 않는다. 담배는 60살부터 피우기 시작했다. 75살 생일날 의사들이 말려 관두었다. 가네마루씨는 『내년은 조선ㆍ일본 관계개선을 위해 진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오자와씨에 달려있다. 가이후총재에게도 그렇게 전해달라. ▲오자와=꼭 그렇게 하겠다. ▲김=아시아대회에서 중국대표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면 분규가 일지 않겠는가』라고 걱정했는데, 대회에서 하나가 되어 성원하는 장면을 보고 놀랍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축구팀이 민족애라고 말할까.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있었다. 나는 TV로 보았다. ◎“분단 50년 되기전에 고려연방제로 통일” 김일성/“남ㆍ북한,자주적 평화통일 조기성취 염원”도이 ▷김일성­도이 회담◁ ▲김=통일에 대해서는 조선인민의 바람은 매우 깊다. 전 조선인민이 분열되어 50주년이 되기 전에 통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군이 2000년에도 남에 주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분열 50주년까지는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민심은 하늘을 이긴다』고 한다. 민심이 하나로 뭉치면 그것을 꺾을 수는 없다. 우리는 통일은 다른 하나가 또다른 하나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하나의 민족,2개의 제도,2개의 자치정부로 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연방공화제라는 것이다. 2개의 제도를 남겨 두어도 큰 문제는 없다. 하나는 사회주의제도,하나는 자본주의제도인데 하나의 세력이 한쪽을 통합하려고 하면 또 싸움이 된다. 연방공화제로 통일하는 것이 인민의 소원이다. 남북총리회담을 위해 16일에 남쪽 총리가 평양에 온다. 이쪽 총리가 남쪽에 가서 노태우대통령과 만났을 때,대통령은 『김일성주석이 말하고 있는 자주ㆍ평화ㆍ대단결을 지지하는 뜻을 꼭 주석에게 전해달라』고 발언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3개 원칙을 대통령도 지지하고 승인까지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연방공화제에 찬성한다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쪽 총리가 서울에 갔을 때 통일에 대해 3가지를 제안했다. 총리회담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팀스피리트를 중지하든가,적어도 2년간은 연기해야 한다. 칼을 갖고 평화의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노대통령은 7ㆍ7선언에서 북한도 동료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방문해서 붙잡힌 문목사ㆍ임학생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 우리총리가 노대통령이 꼭 결단을 내려 두사람을 석방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대통령은 자신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직접 남쪽 총리에게 어떤 결단을 노대통령이 내렸는지 들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유엔 단독가입은 중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도록 했다. 단독가맹은 2개의 조선이 되어 통일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제기한 3가지 점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회답이 없다. 16일에 남쪽 총리가 오는데 3가지중 일부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도이=하루라도 빠리 자주적ㆍ평화적인 통일을 마음으로부터 염원한다. ▲김=3당 공동선언에는 조선은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써 넣었다. 조선은 반드시 하나가 된다. 3당이 바라고 있으며,또 하나의 당이 이 3당처럼 된다면 통일은 빨리 이루어진다. 또 하나의 당이란 남한의 민자당이다.
  • 어려운 나라살림/북경의 정치아시아드:3

    ◎“개혁보다 빵이 우선””… 경제안정에 주력/아주대회 큰 부담… 올 적자 25억불 추정/“소ㆍ동구식 변화는 혼란 가중” 인식 팽배 이번 아시안게임은 겉으론 성대하게,성공적으로 치러져 중국당국이 정치적 선전효과는 크게 얻은 것으로 예측되지만 손익계산을 하면 적자운영을 면치 못했다. 중국은 올해 재정적자가 1백20억원(25억3천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이같은 재정난때문에 이미 25억원의 아시안게임 국채를 발행했다. 외국기업들로부터 광고비와 기부금을 받고 TV중계료 등의 수입이 있기는 하지만 적자를 메우기엔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회의 적자운영과 함께 국내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에 지난달말쯤 이붕총리 주재로 각 성장과 중앙부처 관계자들이 합동대책회의를 가졌다. 성장들은 명목상 대회개막식에 참석키 위해 북경에 모인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목적은 범국가적인 경제현안을 논의키 위한 것이었다. 합동회의에서 성장들은 관할지역의 문제점 등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협의했으며 특히 광동 복건성 등 경제개방지역 관리들은 경제개혁을 가속화,침체국면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붕을 비롯한 중앙부처인사들은 빠른 속도의 개혁이 경제안정을 해친다고 반박,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등 강경보수파는 천안문사태 이후 강력한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를 추진,개방개혁의 부작용인 과열경제ㆍ물가폭등ㆍ계층간 격차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또 긴축정책으로 어느정도 물가를 안정시키기는 했지만 많은 국영기업 및 개인기업이 문을 닫는 등 심한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통제경제를 신봉하는 보수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게 요즘의 중국인 것 같다. 얼마전 중국 사회과학원부원장 유국광은 당기관지 인민일보에 발표한 글을 통해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인민을 배불리 먹게 하는 일이다. 경제건설은 그 다음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소련ㆍ동구가 급진적으로 자본주의 지향의 개혁을 추진해서 경제가 크게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 경제이론가인 진운 중앙고문위주임의 조롱경제론을 찬양했다. 이 이론은 중국의 경우 개혁(새)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새장)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으로 중앙계획의 경제운용방식을 강조하기 위한 보수파의 지론이며 등소평의 흑묘 백묘론(검든 희든 쥐민 잘 잡으면 된다)에 배치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자율적인 개방개혁은 지역간 불균형발전과 계층간 빈부격차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키기 때문에 11억 인구를 다스리기 위해선 경계통제를 강화,안정위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또 한정된 자원의 균등배분과 물가안정을 위해 긴축이 불가피함을 강조하는게 보수파들의 입장이다. 따라서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 중국지도층이 대외적으로 개방ㆍ개혁의 추진을 부르짖는 것은 서방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고 이 정책의 틀을 마련한 등소평의 체면을 의식하는 두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개방ㆍ개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모든 정책가운데 안정을 절대우위에 놓고 이 목표가 달성된 후에 장기적으로 균형을 잃치않는 범위안에서 천천히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때 중국이 내년부터 추진할 제8차 5개년계획(91∼95년)은 긴축기조위에서 짜여질 것이며 개방개혁은 정체될 것이라는게 북경주채 외국상사원들의 견해이다. 때문에 앞으로 상당기간 중국이 신규개발사업을 벌일 것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현지 영업활동도 신장세가 둔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또 아시안게임으로 적잖이 느슨해진 경제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 대회가 끝나면 단기적으로 긴축과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통독이 한반도에 준 교훈(새 독일 탄생:5ㆍ끝)

    ◎「통일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서독,69년 동방정책 이후 꾸준히 접촉/물적ㆍ인적 교류 늘려 갈등해소 노력을/한민족 공감대 형성… 북한 개방분위기 조성 도와야 독일 통일은 동독국민들의 「대탈출」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1월이후 불과 1년도 못되는 사이 ▲2월6일 동독내의 비공산당연립정부 출범 ▲6월17일 동독국가 해체작업 시작 ▲7월1일 동서독 경제ㆍ사회 통합 ▲9월14일 통독조약 조인 등 급템포로 이루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패전의 페허에서 49년 출범한 서독 기민당(CDU)의 아데나워 정권은 자유민주정치제도와 친서방 보안정책으로 서방진영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하면서 경제 재건과 번영을 바탕으로 착실한 분배정책을 펴 내부적인 안정을 다졌다. 이어 69년에 출범한 사민당(SPD)의 브란트 정권은 CDU 정권의 업적을 토대로 이른바 동방정책을 추진,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관계개선을 이룩했으며, 「일민족 이국가」론에 기초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동독과의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독관계를 안정시키고 인적ㆍ물적 교류 확대의 물꼬를 텄다. 82년에 다시 집권하게 된 CDU의 콜 정권은 SPD의 동방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동독 교류의 폭을 넓히면서 동독국민들 가슴 속에 개방과 민주화의 씨앗을 묻었다. 그 씨앗이 때마침 불어닥친 소련 개혁정책의 화풍 속에 발화,마침내 통일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 저간의 과정이다. 이같이 치밀하고 장기간에 걸친 통일작업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숨쉬던 조직들이 하나로 묶이기까지에는 겪어야 할 많은 후유증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4일 독일 통일 후 베를린 제국의회 건물에서 가진 첫번째 전독의회에서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된 헬무트 콜 총리는 『이제 독일이 통일되었으나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모든 분야에 내재되어 있는 내부적인 분단을 공동의 목표에 맞게 조정해나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수년간 정신적ㆍ문화적ㆍ경제적ㆍ사회적인 분단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통일 작업은 이처럼 역대 정권들의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 얻어진 것이지만 막상 통일이 이루어진 오늘 독일 사회에서는 내부적 갈등의 해소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서분단 이후에도 경제적인 교류와 인적왕래가 이루어지고 TV시청 등을 통해 양 체제 속에 사는 국민들이 서로를 잘알고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반분야에 남아 있는 갈등과 후유증 극소화가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동서독과 같은 인적ㆍ물적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양체제의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통일이 되더라도 문화적ㆍ사회적 갈등과 충격이 심각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볼 때 같은 냉전의 결과로 빚어진 한반도의 분단과 독일분단은 「지리적인 분단」이라는 점을 빼 놓고는 서로 비교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독일은 하나의 게르만민족이라는 정신 아래 상호신뢰의 기틀을 다져 왔으나 우리의경우는 적개심의 심화만이 가속화되었다고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의 개방과 상호교류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와 함께 통일에 대비한 힘의 축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서독은 시장경제에 뿌리내린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과의 경제교류를 의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추진해왔다. 서독은 동독과의 무역거래에 있어 동독이 제15위의 교역상대국이지만 동독의 입장에서 볼 때 서독은 소련 다음의 교역상대국이어서 동독경제가 서독경제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대서독 무역거래에 있어 매년 20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보았으며 서독으로부터 지난 10여년간 1백억달러의 무이자 신용대출을 받아 그 결과 서독의 경제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파산될 취약구조로 바뀌로 말았다. 특히 서독은 지난 83년 동독이 외화부족으로 외채지불 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7억달러의 현금차관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동독의 개방과 양독간의 교류증대를 요구하는 등 동독의 개방을 계속해서 유도했다.이와 함께 독일통일이 대중매체인 TV의 상호시청으로 가속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동서독간에는 TV시청에 관한 합의는 없었지만 동독국민들은 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서독 TV를 시청하고 있어 서독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동독국민들은 TV를 통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으며 결국 트라비승용차 한대를 구입하는데 신청 후 13년이 걸리고,냉장고나 TV를 구입하려면 3∼5년이 걸리는 사회주의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에 염증을 느껴 대탈출을 결행했던 것이다. 통독으로 독일이 하나의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동안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동독지역을 얼마나 빨리 서독지역 수준으로 끌어 올리느냐는 것이다. 통일독일정부는 앞으로 10년 안에 가장 시급한 도로ㆍ상하수도ㆍ주택 문제를 서독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 아래 이미 복구작업에 착수했다. 독일의 통일 뒷마무리 작업이 이같이 순조로울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로는 단단한 내실과 이해득실을 떠난 한민족이라는공감대가 강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독일의 상황과 한반도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통일에 대비한 노력과 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이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하겠다.
  • 베를린의 한국교민들이 본 통일 현지좌담

    ◎“「중단없는 교류」가 통독 앞당겼다”/60년대부터 동독지원… 공감대 넓혀가/「반세기의 벽」실감… 국민성격까지 차이/“장벽 무너질 땐 남다른 감회… 통일은 개인업적 될 수 없어” 분단 45년만에 통일을 맞은 통독은 이제 단일국가로서의 힘찬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같은 냉전체제의 유물이었던 우리나라의 분단과는 달리 양쪽체제가 재결합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주어진 통일이 아니라 얻어낸 통일이라는 것이 현지에서 통일과정을 지켜본 대부분 한국교민들의 소감이다. 현재 베를린에만 3천5백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통해 통일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체험했으며 남다른 통일염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눈에 비친 독일통일의 원동력,통일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일들을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이일남 (베를린 한인학교 교장) △조종식 (베를린 한인학교 추진위원장) △박춘식 (재독한국과기자협 회장) △정동양 (한인회장) △이석순 (베를린 한국간호협 부회장) ▲박춘식=지난해 11월 동독 국민들의 대탈출로 독일통일이 급속히 진전됐지만 사실 독일은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양쪽 체제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으로 중단없는 교류를 추진해 왔으며 이러한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0월3일 독일의 통일에 앞서 동독축구팀이 분데스리가에 편입되고 2개밖에 없는 동독 아이스하키팀이 서독협회에 들어와 대표팀으로 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통일작업을 계획적으로 추진해 왔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자본주의 우월성 확인 ▲이일남=이번 독일통일은 그동안 반세기동안에 걸친 사회주의 운영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 비교가 끝났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온 서독정부는 60년대부터 동독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동독 국민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서독측이 동독측에 너그럽게 대해 왔다는것이 우리와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일례로 동서독이 분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독정부가 경제적인 이유로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가는 차량들의 검문을 강화하면 그 이유를 눈치채고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동독정부는 모르는 척 하며 종전과 마찬가지로 서독지역과 서베를린을 오가는 차량통행에 대한 검문을 완화했습니다. ○서독 자신감이 원동력 ▲조종식=상대에게 관대하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도움을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그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래전에 남한이 큰 홍수가 나 북한이 쌀과 옷감을 보내왔을 때 쌀에서 냄새가 난다느니 옷감의 질이 어떻다느니 하는 기사가 신문에 나는 것을 보고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가 흘린 것인지 신문이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그런 기사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성숙한 통일의식을 갖고 상대방에 너그러운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0년을 넘게 독일에 살아왔지만 이곳 매스컴들이 생색을 내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동독국민들은 그러나 어떤 체제가 살기 좋은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대탈출로,또 통일로 발전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서독은 자신감을 갖고 동독의 투정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정동양=이곳에서 볼 때 우리정부의 시책에 현실감각이 결여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동서독이 이미 통일을 하기로 합의를 하고 지난 7월1일 경제통합을 이루어 동서베를린의 왕래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음에도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과 여행자들은 동베를린에 가기 위해서는 현지공관에 사전신고를 하도록 해 많은 불편을 주었습니다. 분단국의 국민으로 통일이 되는 나라에 찾아와 여러곳을 보고 싶은 심정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는 동베를린이 동구권에 속하는 만큼 동구권 여행지침에 따라 동베를린을 여행할 경우 외교관ㆍ언론인들은 사후신고를,일반인은 사전신고를 의무화해 현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간섭을 고수해왔습니다. ○통일 뒷처리 완벽 준비 ▲이일남=최근 베를린 시내에는 전 동독지역에서 관광을 하러 오거나 쇼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 익숙해져 있는 전 서독 사람들이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때문에 좋게 말하면 세련되고 나쁘게 말하면 까졌다고 할 수 있는 데 비해 전 동독 주민들은 순박하고 어수룩한 면이 있을 정도로 행동과 표정만 보아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동부지방 사람들은 가난에 익숙해 인내심이 강하고 관대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체험론입니다. 이에 비해 서부지방 사람은 풍족한 생활을 하다보니 까다롭고 외국인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한민족이 반세기 가까이 떨어져 생활을 하다보니 국민들의 성격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이석순=서독정부는 통일에 대비해 말없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통일과 더불어 도로ㆍ통신ㆍ주택확충을 위해 서독은 앞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 이 때문에 서독국민들은 더많은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통일과정에서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정부는 장기간에 걸친 재정적인 축적으로 국민들의 납세를 최소화하고 동독의 재건에 신속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현재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이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지내도 3년을 먹고 지내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형편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가기도 전에 흥청망청 지내는 바람에 막상 통일이 될 경우 통일 뒤처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군요. 최근 통일열기가 고조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에 대비한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동양=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중 분단국인 한국인만큼 독일통일에 대한 감정이 착찹했던 국민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마르크시즘이 독일에서 발전돼 한세기에 걸쳐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 시험의 시기를 거쳤는데 처음 시작한 국가들에서 자체내의 문제점들이 곪아터져 막을 내리는 마당에 북한과 중국에서만 아직까지 변화의 징조가 없다는 것이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출발한 사회주의가 동양국가에서 열매를 맺을 것으로는 아무도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완 크게 다른 여건 ▲조종식=우리나라에서도 통일이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소수에 의한 정치체제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논의의 대상도 되지 않지만 해방후 남한의 권력구조가 소수의 그룹으로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통일문제도 그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독일의 경우 동방정책은 아데나워 총리시절부터 추진돼 브란트 콜총리에 이르기까지 같은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콜총리시대에 꽃을 피운 독일통일이 특정개인이나 특정정당의 성과로 평가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국민과 더불어 이루어졌다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정동양=제가 독일에 올때는 그야말로 잘 살아보겠다는 한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제 잘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다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통일에서 보다시피 동독의 모든제도가 서독에 통합흡수됨으로써 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제는 시장경제이나 사실은 사회시장경제체제 입니다. 물론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와 다르다 하겠습니다. 국가가 세제를 통해 꾸준히 사회복지 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 괴리감이 없어 통일문제에 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통일과제에 대해서는 자체내의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해 내부적으로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다가 정부가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그 찬스를 재빨리 나꿔챘다고나 할까요. ○한반도에도 기쁨 올 것 ▲이일남=그에 비해 우리의 정치상황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통일을 당쟁차원에서 다루다보니 그럴듯한 제안들만 풍성할 뿐 힘의 축적이나 발전이 없습니다. ▲이석순=최근 포츠담 경찰국장이 공산치하에서의 경찰국장을 했다는 데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포츠담시 당국은 한달여의 공백기간이 있음에도 통일정부가 경찰국장을 임명해야 한다며 새국장의 임명을 미룬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국장이 사임한 뒤 누구도 그의 비리를 비난하거나 인신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춘식=독일통일이 우리에게는 부러움을 주지만 우리도 어느땐가 통일의 기쁨을 누릴 때가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신의 일에 충실해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무척 다른 것만은 사실입니다.
  • “소는 실익 앞세워「동맹국」도 배신”/북한로동신문,한ㆍ소수교 비난

    ◎“「두개 조선」 고착화… 통일역행 처사/미와 손잡고 사회주의 와해 시도” 북한은 5일자 로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소국교수립은 소련의 배신행위이며 한반도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책동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다음은 로동신문논평 내용이다. 역사의 전진 협정에는 나라와 민족들의 흥망성쇠와 이합집산 과정이 항상 동반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영광과 영예로 빛나는 때도 있고 또한 추문과 오점으로 얼룩진 사건들도 적지 않다. 이번에 소련이 자기입장을 1백80도 전환하여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한것은 이 후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외신들이 전하는데 의하면 지난 9월30일 미국 뉴욕에서는 소련과 남조선사이에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끊임없이 유포되어온 여론이 현실적으로 나타났을 따름이고 별로 신기할 것은 없다. 냉정하게 관찰하면 도리어 물이 재골수로 흐르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련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하는 이 외교관계 설정은 소련이 개편바람의 자국과 혼란에 빠져 쇠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때에 산생된 현상이란 것이다. 지난 9월초 평양에서 있은 조소외교부장 회담때 소련측은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키로 결정하게 된 불가피한 사정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지금의 소련은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로 되었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였다. 그후 소련측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소련의 이익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자주국가인 소련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므로 그 누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말들을 종합하여 보면 지금의 소련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를 견지하던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고 그 어떤 다른 성격의 국가로 변질된 것 만큼 그에 상응하게 새로운 벗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나라 다른민족 심지어는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도 주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 소련이 이 엄연한 공약들을 다 휴지통에 집어던지고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기로 하였으니 이것이 배신이란 말 이외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소련으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38선으로 분열시킨데 책임이 있는 나라이며 동시에 조선을 맨 선참으로 조선민족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나라이다. 소련이 이제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현실인정의 구실을 붙이건 말건 결국은 조선에 두개 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자기들의 공약을 완전히 뒤집어 엎고 조선의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행동을 하는 것으로 된다. 하기야 오늘 소련에서는 10월혁명 후 소련인민이 걸어온 간고분투의 영광스러운 역사자체를 하나의 암흑시대로 규정하면서 투정하고 있는 판국이니 그들에게 있어서 그 전날에 우리와 한 언약들을 집어던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면 주관적 의도야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는 두개조선으로 분열을 고착시키고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며 소위 개방에로 유도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제도를뒤집어 엎으려는 미국의 기본 전략에 공공연히 가담하는 것으로 밖에 달리 될 수 없다. 이것은 조선을 둘러싼 미국 소련 남조선의 3각 결탁관계의 형성을 의미하게 되며 평화적 이행 조약에 따라 아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와해하기 위한 포위망 형성의 일환으로 되게 될 것이다. 오늘 분열된 나라들이 통일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다. 조선에서도 통일에 대한 북남 전체인민들의 열망은 어느때 보다도 높아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소련이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여 남조선을 국가로 인정하고 조선의 두개 국가가 존재한다면서 통일을 방해하고 분열을 고취하는데로 방향전환한 것은 오직 미국과의 보조 일치를 위해서라고 밖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 소련측이 평양에 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도 한가지 불가피한 사정에 대하여 설명한데 의하면 지금 소련 경제가 다 파괴되는 위기에 직면하였기 때문에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 설명을 듣고 보면 물에 빠진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세상에는 실지로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허무감마저 없지 않다. 보도에 의하면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하였다는 소식과 때를 같이 하여 남조선이 소련에 경제협력자금으로 23억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대국으로서의 존엄과 체면,동맹국의 이익과 신의를 23억달러에 팔아먹은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체계를 시장경제체계로 넘긴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운영 방법에 기초지식을 습득하는데 애쓰고 있는 소련의 학자들로서는 외교관계설정이라는 무형의 상품을 비싼 값으로 팔아먹은 것이 아주 수지가 맞는 자본주의적 상거래 행위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흡족해 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의 남조선의 형편에서는 그 막대한 돈을 낼 원천도 없거니와 아마도 그것은 사회주의를 와해시키기 위한 미제의 특별기금에서 나올 것이 뻔하다. 우리는 아무리 우여곡절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부닥치는 암초를 외도리면서 자기가 갈길을 끝까지 갈 것이다. 역사는 배신과 변절,부정과 전횡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그럴 것이다.
  • 외교성과(북경의 「정치 아시아드」:1)

    ◎대서방 관계개선의 최대 호기로/미 기술이전·세은 차관협상등 이미 성공/국경분쟁 베트남과도 화해,관계정상화 아시안게임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북경정권은 이번 대회가 건국 이후 41년 만에 열리는 최대의 국제체육행사라는 점 외에도 외교관계 및 정치·경제 등 대내외적인 모든 부문에서 신기원을 이룰 수 있는 전환점이란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북경정권은 특히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지난해 천안문사태로 여지없이 훼손된 그들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국민적 단합을 유도,애국심을 고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북경 정권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거두게 될 게임 외적 성과는 무엇이며 앞으로 중국의 기본정책노선은 어떤 방향을 취하게 될 것인지와 한중 관계개선 전망 등을 현지에서 시리즈로 엮어본다.〈북경=우홍제 특파원〉 「세계 인민의 단결과 우의 만세」 「벗들이 먼곳에서 왔다」(유붕자원방래료) 북경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같은 포스터는 중국당국이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아시아뿐 아니라 보다 폭넓게 전세계와의 유대를 긴밀히 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말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6·4 천안문사건」 이후 오랫동안 국제적으로 심하게 고립됐던 중국은 이번 대회를 사상 최대로 성대하게 운영하면서 아시아 각국은 물론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개선 돌파구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외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이번 대회에 베트남 부총리 보 구엔 지압을 초청,국경분쟁으로 적대관계에 있던 두 나라 사이를 정상화했다. 소련·동구의 자본주의식 민주개혁을 철저히 거부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더욱 다지려는 중국으로선 역시 같은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베트남과의 우의를 깊게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부주석 리종옥이 귀빈으로 초대된 것도 사회주의 진영 강화의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중국은 또 다케시타(죽하등)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고위인사를 귀빈으로 맞았으며 이를 계기로 중일 양국은 정부고위층의 상호왕래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케시타 등은 중국 고위층과 만나 주로 엔화 차관공여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도 파키스탄 대통령과 이라크를 제외한 중동국가들의 고위층을 불러들여 중국이 변함없는 제3세계의 중심세력임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박철언 민자당 의원이 북경을 방문,중국과 북한측 고위인사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 상호 교류확대 등 관계개선 방안들을 협의했으나 중국 외교부가 발표한 초청 귀빈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은 특히 대회 이전 발생한 페르시아만사태와 관련,서방측 결정에 보조를 같이한 데다 현재 성황리에 진행되는 대회의 후광에 힘을 얻어 미국과의 우호관계 회복을 위한 로비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며 성과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중국당국은 얼마전 전 중국 주미대사 한서를 미 부시 대통령에게 보냈고 한은 아시안게임 이후 양국 고위층의 상호왕래 재개 및 미국의 대중 첨단과학기술 제공 등의 확약을 받아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중국의 재정부장 왕병건은 최근 워싱턴에서 세계은행(IBRD) 관계자들을 만나 올해안에 5억9천만달러의 공공차관을 도입하는 협상에 성공했다. IBRD측은 대회가 끝나면 부회장단을 북경에 보내 중국 경제체제개혁위원회 진금화 주임과 세부적인 차관운용계획을 세우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IBRD가 대중 차관을 공여키로 확정한 것은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에 대해 취해졌던 서방의 모든 경제제재가 종료됐음을 알리는 의미깊은 사실이다. 따라서 중국측은 이번 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날 것을 확신하면서 그 이후 국가경제발전과 외교전략도 순조롭게 추진될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다.
  • 소 혁명 70년만에 자본주의 실험 본격화

    ◎최고회의 「경제개혁안」 채택의 의미/국유재산 매각ㆍ소규모 기업 사유화/시장경제 도입… 값 자유화 전면 실시/물가불안ㆍ실업 등 도사려 시행엔 “산넘어 산” 「5백일 계획」으로 불리는 급진경제개혁안이 최고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소련은 사회주의혁명 70여년만에 다시 자본주의 경제원리를 대폭 수용하는 역사적인 대전환을 이루었다. 스타니슬라프 샤탈린이 입안한 개혁안을 기본골격으로 하고 리슈코프총리의 온건개혁안을 약간 절충해 만든 이 개혁안은 토지의 사유화를 포함한 시장경제원리의 도입과 정치적으로 15개 연방공화국에 경제주권을 대폭 이양하는 탈크렘린화를 주내용으로 담고 있다. 볼셰비키 혁명의 대의가 토지국유화,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그리고 민족ㆍ계급을 초월한 단일 소비에트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창설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개혁안 채택이 갖는 의의는 가히 역사적이라 할만하다. 최고회의 1차 투표에서 통과된 절충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샤탈린이 제출한 급진개혁안의 정신이 거의 90%이상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세부적인 시행규칙과 시행시기 등은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1차 최고회의 표결 결과가 찬성 3백23,반대 11표로 나타난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급진개혁안의 채택은 거의 기정사실화한 것 같다. 샤탈린안을 토대로 해서 본다면 이번 개혁안은 본격적인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위해 5백일간의 시행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1백일까지 공화국간 경제개혁위가 구성돼 개혁일정을 조정한다. 따라서 기존 경제부처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다. 그리고 국가자산의 매각과 농민에 대한 토지매각이 시작된다. 그동안 가장 논란이 돼 왔던 부분이 바로 토지매각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기본정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토지 사유화를 싸고 「이념적으로 고려된」 여러 절충안이 제시됐다. 그중의 하나가 23일 발표된 토지종신보유제이다. 고르바초프의 경제보좌관인 니콜라이 페트라코프가 제시한 이 안은 「사유」라는 표현만 피한 채 토지의 상속권까지 인정한다고 돼 있다. 이 안은 또한 초기단계에서 군ㆍKGB 등의 예산을 줄이고 대외원조의 76%를 삭감,국가세출 규모를 대폭 줄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미국식 연방준비은행을 설립,민간 상업은행과 함께 은행제도를 2원화한다. 2백50일까지는 가격자유화를 전면 실시하고 소규모 기업의 절반을 일반에 매각한다. 4백일까지는 제조산업의 40%를 매각하고 자본자유화를 전면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5백일까지 제조업체의 70%,건설ㆍ소규모 기업의 90%를 사유화하기로 돼 있다. 소련경제가 처한 현 상황은 사실 이런 급진개혁안의 도입으로도 회생여부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미 컨설팅회사인 플랜이콘사 조사에 의하면 소련의 연간 총생산량은 매년 3%씩 감소하고 있다. 여기다 그동안 실시해온 부분적인 개혁정책으로 각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무리하게 임금인상을 단행,엄청난 통화가 시중에 나돌아 인플레가 위험수준에 와 있다. 그 결과 최근 인플레는 연 10%선에 육박해 있다. 샤탈린안은 국유재산의 매각을 통해 시중의 돈을 흡수하고 세출을 줄이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급진개혁 도입의 충격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예를 들어 과연 1백일안에 어떻게 은행체제의 2원화가 이루어질 것인지,그리고 물가인상에 대한 불만,실업문제 등을 어떻게 극복할지 여전히 회의적이다. 샤탈린안이 시행될 경우 실업발생률은 초기에 5천만∼1억명선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번 급진안과 온건개혁안 사이에서 수차례 지지와 번복을 되풀이한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어느 쪽도 현 소련 경제위기해결에 대한 모범답안이 못 된다는 데에 소련의 문제가 있다. 고르바초프가 중재한 절충안이 채택된 셈이지만 리슈코프 총리는 이미 사임을 공언한 상태여서 앞으로 크렘린은 또 한차례 정치적인 혼란을 겪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만한 일은 몇차례 오락가락했지만 고르바초프가 결국 샤탈린안을 기본으로 한 절충안을 제시,통과시킴으로써 급진개혁쪽으로 확실히 방향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연방 각공화국의 주권회복에 기초한 새연방체제 구성과 시장경제화를 적극 주장하고 있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의 개혁요구 목소리가 앞으로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고르바초프로서는 현재 소련국내의 분위기로 보아 현실적으로 이들과의 협조 외에 다른 길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급진개혁안 채택으로 소련은 이제 점진ㆍ보수의 「제동장치」를 포기한 셈이 됐다. 그것이 과연 소련을 살리는 길이 될지 아니면 후퇴를 가속화하는 길이 될지 지금은 누구도 점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다.
  • “소,북한ㆍ쿠바와 관계 청산해야”/솔제니친,프라우다지에 기고

    ◎새러시아 건설 위한 4가지 방안을 제시/“공산당은 착복한 재산 국가에 반환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소련의 저명한 반체제 작가인 알렉산데르 솔제니친(71)은 18일 자본주의의 착취와 같은 서방 문화의 쓰레기를 배제한 상태에서 인민 민주주의와 러시아 정신을 부활시키고 슬라브족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소련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솔제니친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 게재된 「어떻게 러시아를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가」라는 제목의 4페이지에 걸친 기고문에서 물질주의 보다는 유심론에 대한 오랫동안의 선호,통합된 슬라브 국가에 대한 열망,서방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민주사회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을 피력했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공산주의의 실질적인 구조는 아직 붕괴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그 잔재 아래 남을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ㆍ백러시아ㆍ우크라이나 등 3개 공화국만으로 구성된 단일국가,즉 러시아 연방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면서 『거대한 왕국(소련)을 유지하는 것은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제니친이 조국 소련에 대한 희망을 밝힌 이 기고문은 지난달 그가 복권된데 이어 소련 사회에서 그의 공식적인 재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이어 소련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소련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을 4가지 꼽았다. 첫째 사람들에게 일하는 맛을 줘야 하고 둘째 러시아의 부를 축내고 있는 모든 정권,특히 쿠바 및 북한과 관계를 끊는 일이다. 셋째 공산당이 착복해온 엄청난 부와 재산을 국가에 반환하는 일,넷째 현 소련정부 부처의 5분의 4를 폐지하고 공산당이 경제와 국가운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몸에 밴 안일… 삐꺽거리는 「개혁」

    ◎송복교수 소ㆍ동구 학술 기행 특별기고/대부분 공장 주 40시간 가동에 불과/“힘든일 왜 하나”… 농부도 주말엔 휴무/뇌물 없인 일처리 안돼… 사회기강 급속 붕괴/지식인 푸대접 심해… 청소부 봉급이 신문사 사장보다 많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할 것인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운명은 세계의 향방은 물론 아시아 한반도의 운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최근 2주간 소ㆍ동유럽을 방문,페레스트로이카의 현장을 살펴보고 돌아온 본사 논평위원 송복교수(연세대ㆍ사회학)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 특별기고문이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소련을 다녀왔고 또 동구 여러 나라들을 보고 왔다. 이 다녀 오신 분들의 사회주의 사회의 실상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이나 느낌도 거개가 일치해 있다. 평소 사회주의 사회나 그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떤 태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건 그 사실에 대한 인식에는 대차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세상은 있는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다」라는 미국 초기 사회학자 윌리엄 토머스의 명구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그것을 세상의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도 처음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부정적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고 반대로 긍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나 동구사회에 관한한 보고 싶은 것만 보았건,보기 싫은 것은 애시당초 보지 않았건 관계없이 대체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그것은 첫째로 소비재가 아주 귀하다는 것,그래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것. 둘째로 사회관계에 부드러운 기가 없고 윤기가 없고 활기를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셋째로 사람들이 너무 느리다는 것,바쁜 것도 없고 안달하는 것도 없고 그리고 성취동기가 전혀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 넷째로 너무 관료주의화해 있다는 것,그 어느 사회보다 관료주의의 병리가 골수에까지 깊이 박혀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다섯째로 그러면서 너무 부패해 있다는 것,도덕적 기강이 관료사회에서나 일반 시민사회에서나 다같이 급속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던져준다는 것,대개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흔히 말하는 「소비에트 엑스페리먼트」(Soviet Experiment)가 실패한 것이라는 결론을 어느 시각에 입각해 있는 사람들이든 다 같이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난 이후 70수년간 인류사회 최초로 소련이 시도한 공산주의사회의 실험은 그 실험 3세대가 지난 오늘날의 결과에서 보면 그것이 하나의 결과이든 조짐이든 어쨌든 실패했다는 결론을 다같이 도출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살아 있는 공산주의 최고 이론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어니스트 만델(Ernest Mandel)의 최근 저서 「페레스트로이카를 넘어서(Beyond Perestroika)」에서도 꼭 같이 지적되고 있다. 누가 보든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도대체 그동안 뭘 「어떻게 했길래」 저러고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맥도널드 빵을 사먹기 위해 1㎞ 이상의 줄을 서 있어야 하고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의 말보로담배가 자기네 돈(루블)값보다 오히려 더 귀하고 더 태환성이 높아 보이고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TV 프로가 텔레비전에 비치기만 해도 하던 일을 멈추고 저렇게 넋이 빠져 보고 있는냐는 것이다. 담배를 사기 위해서,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옷을 사기 위해서,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렇게 긴 줄을 서 있어야 하고 누구나 비닐백을 한 둘씩 상시로 들고 다니면서 줄만 보이면 뭘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이 저렇게 무작정 긴 행렬에 끼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런 생활의 연속이 일과의 시작이며 끝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소련 전가정주부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 줄서 있는 시간은 연 3백억 시간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대개의 가정주부들은 하루 2시간 이상을 꼬박 줄서는데 바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 3백억 시간의 생산손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을 계산하지도 않고 계산할 필요도없고 더구나 생산과 연관해서 계산하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이 나라의 생활습성처럼 보인다. 건물 도로 전철로 공원시설 등 사회간접자본도 모두 마찬가지다. 지을 때는 거창하고 웅장하기 더할 데 없이 지었을 것이다. 과연 큰 나라답게 웅대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모두 지어져 있다. 아마도 국가예산으로 국가가 관장해서 짓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하기는 해도 위용이 없고 오래된 것 같기는 한데 고풍스러움을 찾기가 어렵고 공사기간이 결코 짧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날림으로 보인다. ○관료주의 병리 극심 더구나 안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건물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1∼2㎞에 이르는 거대한 상가를 지어 놓고도 안은 텅텅 비어 있고 거기에 부서진 것 허물어진 것 망가진 것은 일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호텔시설도,그것도 외국손님들로차 있는 손꼽히는 호텔도 변기통이 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문이 부서져 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국가는 예산이 없고 개인은 그것이 어디 내것이냐는생각에서 일 것이다. 참으로 「만인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인가. 이 사회는 마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증명하기 위해서 존속하는 사회로 느껴진다. 이 증명은 농촌에서도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호텔내에서의 식사나 호텔 밖에서의 식사나 이 광활한 농업지대에서 생산되는 채소라는 것을 식탁에서 구경할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캤더니 지금 소련 농장에서 채소의 60%가 출하되지 않고 밭에 심어진채 그대로 썩고 있다는 것이고,곡물은 10%가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국가는 운송시설 냉동시설이 모두 부실해서 손 쓸 여력이 없고 농부는 그것이 「내 것도 네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따가운 햇살에 수고로움을 끼칠까 보냐이다. 자본주의사회의 농부들처럼 기를 쓸 이유도 없고 안달할 필요도 없다. 고추값이 떨어진다고 고추를 자동차에 싣고 여의도 광장에서 농성하는 한국의 농사꾼은 이나라 농부들의 눈으로 보면 실성한 사람들이나 하나도 진배가 없다. 왜 그렇게 살 것인가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고 무엇하려고 그렇게한푼의 값을 더 올려 받으려고 애를 쓰는냐이다. 더구나 토ㆍ일요일의 이나라 농부들은 밭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 모스크바 근교의 어느 농촌마을을 돌아다녀도 토ㆍ일요일 이틀동안 들판에 나와 일하는 농부는 그 어느 한 사람도 그림자조차 구경할 길이 없다. 이는 불가리아의 그 넓은 농업지대에서도,유고의 그 많은 농촌마을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때(시)라는 것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없는 것인지 해당이 안되는 것인지 어쨌든 토ㆍ일요일은 어디든 일하지 않는다. 정말로 마르크스의 이상대로 「능력껏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갖는 것」인지,고전 경제학파들의 주장대로 「능력에 따라 일은 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고만 하는 것」인지,자본주의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풍습도를 볼셰비키혁명 70수년동안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제가 아니고 또 오늘도 아니고 내일이다. 글라스노스트는 「개방」하자는 것이고 페레스트로이카는 「개편」하자는 것이다. 어디를 향해서 개방하고 어떤 문제를 새로이 개편ㆍ개혁하자는 것인가. 지금까지 소련ㆍ동구에서 시도해 온 교환방식은 시장메커니즘으로,소유는 사소유로,관리는 기업경영체계로,생산은 소비재 위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서구사회를 준거로 해서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나 길고도 험난한,그러면서 성공이 전혀 보장이 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그 누가 이 사회를 얼핏 보든 선뜻 짐작할 수 있는 길이다. 첫째로 이 사회는 개방하면 더빨리 부패할 것이라는 것이다.지금도 도덕적 위기를 어디서든 맞고 있다. 개방하면 그 위기는 일로상승할 것이다. 지금까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안정은 도덕적 안정감에서 왔다. 그 누가 그 얼마나 부패해 있든 정보통제로 사람들은 부패의 종류를 잘 인식치 못했고 그 수준을 제대로 측량치 못했다. 그러나 개방은 남의 부패를 가장 먼저 인식시키고 그 수준을 실제보다 수배로 과장해서 측량시킨다. 그래서 어떤 사회든 개방과 동시에 정보흐름이 자유화되면서 예외없이 부패가 역상승으로 가속화했다. 이 부패의 속도도 문을 닿아놓은 기간과 정도에 비례했다. ○빵등 소비재난 최악 더구나 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폐쇄사회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홍수져가면서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자본주의의 장점이 아니라 가장 타기되어야 할 결점들이다. 애들이 밖에서 다른 애들과 섞여 놀때 부모가 아무리 사회화시켜도 못된 것을 먼저 배워 온다.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카트를 쓰려해도 말보로 담배 한값을 먼저 내야 쓸 수 있고,호텔 청소부도 담배나 스타킹을 미리 테이블 위해 얹어 놓아야 청소를 제대로 해준다. 이것이 어디 밑바닥에서 일하는 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랴. 저변에서 상층에 이르기까지,교육수준이 낮은데서 높은데를 가릴 것 없이,무슨 안개처럼 덮여 있는 듯하다. 어디를 가나 뇌물을 주어야 하고 어디로 가든 암달러상이 있다. 둘째로 노는데 모두 이력이 나 있다는 것이다. 공장은 1주 30시간에서 40시간 일하는 것이 보통이고,일거리가 많아도 40시간 이상 일하는 곳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것도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토ㆍ일요일은 반드시 논다. 그리고 1일 6시간 일하든 8시간 일하든 5일 일하는 중에도 정작 일하는 시간은 2시간 뿐이고 나머지 시간들은 대부분 잡담으로 채워진다고 한 관리자는 말한다. 이 관리자는 잡담도 노동의 하나라고 조크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이 노동하는 주중에도 담배를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길가의 긴행렬에 가담해 줄 서 있다면 결근하는 것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하긴 줄서는 것도 고된 노동임엔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사람의 경우 줄서는 것은 그 어떤 고된 노동보다 고된 행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줄서기 위해서 결근하는 것도 합리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줄서기 위해선 결근해도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상상을 불허하는 극히 희귀한 노동현상이 이 나라의 노동관행이다. 고르바초프의 말대로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사회」­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벌고,더 많은 업적을 내서 더 많은 냉산성을 올리자는 성취동기는 이 나라에선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소유에 대한 욕망도여느사회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현재 사는 아파트를 싼 값으로 사서(2백50달러 미만) 개인소유화하라고 해도,그것을 왜 사냐고 반문한다. 지금 이대로 살아도 죽을 때까지 이 아파트에서 살 수 있고,더구나 국가에서 수리비까지 부담하는데 왜 그것을 사서 그 돈을 쓰고 그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에덴동산이 그런 것인지,어떻게 보면 낙원에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순진하고 그리고 착해 보인다. 저런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보는 그 악마구리 같은 경쟁문화­비단 한국사회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보아지는 경쟁문화가 심어지고,경쟁행위가 주도적 행위로 등장했을때 이 사회가 어떻게 요동칠 것인가. 미상불 대혼돈과 고통이 말할 수 없이 따르는 소용돌이가 전국 각지에서 넘쳐 흐르게 될 것이다. 셋째로 지식인의 푸대접이다. 교수나 의사 기자가 노동자보다 월급이 훨씬 적다. 보통 공부많이한 지식인은 한달 2백50루블이고 노동자는 3백50루블,당관료는 4백루블이 되어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신문사 사장이 5백레바를 받는데(8레바가 1달러),청소부가 7백레바를 받는다고 했다. ○암달러상 거리활개 불가리아 칼 마르크스 대학의 손체브(Rasdoslav Tsonchev)교수에게 그 차이의 합리성을 따졌더니 노동자가 주도세력이 돼 있는 나라의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산성은 아무리 올라도 3배가 오르기 어려운데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지식인의 경우 그 생산성은 열배 백배 심지어는 무한대로 확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어떻게 발전을 가속화하려 하는가.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리고는 손으로 마르크스 석상을 가리켰다. 칼 마르크스대학의 높이 세운 마프크스 석상의 큰 마르크스 이름에 학생들이 페인트로 곱표(×)를 크게 치고 무어라고 불가리아어로 갈긴 낙서를 보라는 신호이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마르크스를 싫어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모스크바대학 교수들도 요사이 모스크바 대학생들도 한결같이 비판적이되어 간다고 조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ㆍ학생들의 부르짖음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얼마나 야기시키고 있는가. 루마니아에서의 광산노동자들의 데모학생 살해수가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인센티브는 좀체 유발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업화를 촉진해 갈 것인가. 소련에서의 개방화와 개혁화는 모스크바 까마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큼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까마귀는 도시에서 관광객이 던져주는 빵조각을 먹고 혹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쉽게 쉽게 살고 있다. 우리네 갈가마귀처럼 멀리 하늘을 높이 높이 비상하지도 않고 먹이를 찾아 끼옥끼옥 울며 아귀다툼을 벌이지도 않는다. 색깔도 우리 까마귀와는 달리 목과 배ㆍ등 일부가 오히려 회색으로 보인다. 주둥이와 우는 소리는 까마귀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까마귀는 야성이 없고 사람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고픈대로,부르면 부른대로 게으르게 살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본성을 되찾을 것인가. 정녕 되찾게 할 필요가 있을것인가.
  • 유러코뮤니즘의 「탈 교조주의」/서병철 외교안보연교수(세평)

    ○공산주의 정당의 흥망 공산주의 정당은 2차대전이 끝난후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국가를 이끌어 오면서 승승장구하여 서유럽에까지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비록 소련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당세를 확충하여 저항세력을 무력하게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반세기에 걸쳐 공산당이 유럽의 동부 및 남동부 지역을 석권하는데 성공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당세를 몰아 일부 서유럽지역에까지 공산당 추종세력이 발붙이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역사적 유물론에서 선언했던 공산주의로의 역사적 귀결이 이루어질 가능성까지도 한때 내비치는 상황이 전개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작년 후반기부터 시작돼 금년 상반기에 이르는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공산당은 정치세력을 상실하고 정당으로서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국가에서 공산주의성 정치이념을 내세운 정당은 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국민생활을 도탄에 빠지게한 공산주의 체제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는 저주받을 체제로 낙인찍혔다. ○서유럽 공산당의 쇠퇴 그러면 자본주의체제에 회의를 느낀 일부세력을 규합하여 결성된 서유럽의 공산당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여 있는가 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다. 서유럽 정치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이탈리아ㆍ프랑스ㆍ스페인 및 포르투갈의 공산당 당수들이 1977년 3월 마드리드에 모여 행동통일을 결의하고 각국 정부의 정책결정에 적극 참여할 것과 유럽공동체에도 창구를 일원화하여 발언권을 강화할 것을 다짐할 때만해도 위세가 등등해 보였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 정통공산주의자들을 제치고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진출하여 정책방향을 강경에서 온건으로 전환시켰고 수구세력과 개혁세력간의 분규도 커졌다. 이와 동시에 각국 공산당의 세력이 급속도로 감퇴되었다. 특히 서유럽 공산당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이탈리아의 경우만 봐도 지난 10년동안 30만명의 당원이 당을 떠나 오늘날에는 1백50만명으로 감소되었다. 지난 87년 이탈리아 총선거에서 공산당의 득표율이 30%에서26.8%로 줄어들었으며 그후 선거가 있을때 마다 이와 같은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당의 핵심을 이루던 20세를 전후한 젊은층의 이탈이 심하여 전당원의 3.2%에 불과한 것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앞날에 암영을 던진다 프랑스 공산당은 이탈리아 공산당보다도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년동안 지지세력이 절반으로 축소되었으며 공산당 자체발표에 의하면 60만명이 등록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5만명 정도로 추산되어 존립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78년 총선거에서 20.5% 득표했던 것이 86년에는 9.8%로 감소하였으며 88년 대통령선거에서는 6.8%에 그쳐 앞으로 실시될 국민의 의사를 묻는 행사자체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스페인 공산당은 1982년 이래 당원상실,분규 및 재조직 등 격동을 겪으면서 의회선거에서 득표율이 4.6%에 그쳐 영향력행사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포르투갈 공산당은 당원이 10만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특히 노동조합과 젊은층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공산주의 신뢰 상실 이와 같이 서유럽의 모든 공산당이 쇠퇴의 길을 걷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유럽의 지식층에서 일기 시작한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공산당이 채택하고 있는 정책과 사회에 대한 관념 등은 당초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에서와 같이 산업시대의 산물이며 그 표현이다. 즉 국영화와 같은 국가주의적 경제체제,양적인 성장,집체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발전에 대한 긍정적 전망 등이 공산당의 기본노선이었고 오늘날까지도 이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공업화를 이미 넘긴 시대의 서유럽이 정치ㆍ경제ㆍ사회 및 세계관에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고 공산당은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국가의 경제규제 기능의 범위와 성격이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게 되어 공산당의 중앙계획통제체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에 이미 낙후되었으며 그 제도가 운영한 경제가 파탄되면서 쓸모없는 것으로 재확인 되었다. 또한 후기 산업사회에 대두된 개인중시 경향은 집단위주의 공산혁명 이론과 정면대립되며,유럽을 포괄적으로 한 공동협력추세는 공산당의국가단위세력확장 계획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동서진영간의 냉전체제 찌꺼기를 씻어버린 새로운 정치사상 「고르바초비즘」도 서유럽 공산당의 붕괴를 촉진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서방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고 특히 다당제 정치제도의 실적 높은 기능과 성장우선주의적 경제운영방식의 성공을 솔직하게 시인함으로써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방향수정,명맥을 유지 한편 정통공산주의를 고집하다가는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고 예견한 선견지명이 있는 고르바초프는 서유럽 공산당들에 경직된 강경노선을 과감히 수정하도록 강력히 권유하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탈출구를 찾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자유,평등,정의,공동책임 등을 강조하는 당강령의 개정을 통하여 새로운 구심력을 획득한 것과 같이 공산이념에서 탈피하여 금세기말까지도 최소한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탈리아 공산당은 작년 3월 개최된 18차 당대회에서 『민주주의는사회주의의 유일한 길』이라고 결의하고 『경제와 기술은 공산 혁명완수를 위한 도구가 아니며 인간생활 향상의 수단』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공산교리에서 이탈하였다. 이와는 달리 다른 서유럽 공산당들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를 배격하고 공산이념에 집착하므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여 정당으로서의 존립자체가 위태롭게 되었다. 따라서 유럽공산당들도 결국에 가서는 탈바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는 순수공산주의의 소멸을 의미한다. 동부에서는 정권을 상실하고 서부에서는 디디고 설 땅을 잃은 유럽에서의 현상이 지구의 다른 곳으로 파급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 윌리엄 테일러 미 전략연 부소장 본지 특별회견

    ◎“북한,경제난 타개하려 「실질군축」 원한다”/「통제된 개방」 선택,자본ㆍ기술도입 서두를 듯/군사훈련 상호참관등 신뢰회복뒤 군축회담을/선전효과 겨냥,전방사단 전격철수 가능성 군축이 남북한문제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저명한 관계 전문가인 윌리엄 테일러 미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북한의 군축제의는 단순히 선전적 차원만이 아닌 진지한 것으로 평양당국은 경제개혁 투자를 위해 군비축소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일성은 한반도 긴장완화의 극적인 효과를 노려 휴전선에 배치된 1∼2개 사단의 전격철수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테일러 부소장은 미군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는 한반도문제 전문가로 10여차례 서울을 직접 방문한 바 있다. 다음은 테일러 부소장이 최근 본지와 가진 회견내용이다. ­북한의 가장 심각한 당면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경제문제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간의 관계에 있어 경제적 요인이 정치ㆍ군사전략을 대체하고 있다. 북한이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은 김일성이 사망하기전까지 북한의 경제구조와 정치적 변화를 강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김일성의 생존시 개방이 가능하겠는가.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개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북한은 지금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외국의 자본과 기술 및 경영관리기법 등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들은 개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유럽의 개혁은 공산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북한도 개방할 경우 현 정권의 붕괴를 가져오지 않겠는가. ▲북한은 오히려 개방하여야만 현 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개방을 거부하면 자체붕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한계에 부닥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고집할 경우 경제난이 더욱 악화돼 인민의 불만이 폭발하거나,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동구에서와 같은 급진적 개혁을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89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개스턴 시거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로부터 허담을 비롯한 북한의 고위 지도자들은 동유럽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더라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때문에 북한은 「동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통제된 개방을 할 것이다. 북한은 또 김일성체제내에서 점진적인 개방을 하는 것이 현체제 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경직된 체제내에서 김일성이 사망할 경우 북한은 심각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전아닌 진지한 제의 ­북한은 최근 미국의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군축회담에 참석하는등 군축회담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지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은 실제로 군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북한은 과중한 국방비 지출 부담에서 벗어나 경제개혁에 더많은 투자를 희망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의 군축제의는 단순히 선전만이 아닌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반도에서의 군축은 어떤 식으로 가능하겠는가. ▲북한은 한반도 긴장완화의 「극적인 효과」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전력상의 큰 손실이 없는 범위내에서 휴전선 부근에 전진배치된 1∼2개 사단을 전격적으로 철수시킬 가능성이 있다. 김일성은 이렇게 함으로써 대외적으로는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북한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대내적으로는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그러나 이같은 전략보다는 실질적인 군축을 위한 진지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다. 미소 군축회담에서 볼 수 있듯이 군축의 기본전제조건은 상호 신뢰이다. 남북한은 우선 군사훈련의 참관이나 상호검증 등을 통해 군사적 신뢰와 함께 정치적 불신을 제거해야 한다. 그 바탕위에 군축회담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김,죽기전 통일 어려워 ­김일성이 살아있는 동안 한반도 통일이 가능하겠는가. ▲김일성의 통일전략은 한반도의 공산화이다. 그는 무력을 사용해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미 전략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북한이 만약 남침을 한다면 미국이 페르시아만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지금이 적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 전쟁을 일으킬 상황이 아니다. 동맹국인 소련과 중국이 이를 원치않으며 각각 국내문제로 북한을 지원할만한 입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민주정치와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김일성이 살아있는한 한반도 통일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남북한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남북한간의 신뢰구축이다. 지난 45년동안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던 두 체제가 하루아침에 결합될 수는 없다. 상대방을 비방하기에 앞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의 폭을 확대하며 특히 꾸준한 인적ㆍ경제적 교류를 통한 동질성회복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남북한은 아직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정상회담 가능성 희박 ­한국은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해 놓고 있다. 가능하겠는가. ▲남북한 정상회담은 언젠가는 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정상회담을 위한 여건이 성숙된 것 같지 않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더많은 남북교류가 필요하다. 남북 총리회담은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아직도 높지 않다고 생각된다.
  • 한ㆍ소수교에 위기감… 대중 “결속행보”/김일성 왜 심양에 갔나

    ◎한반도정세 급변… 고립탈출 모색/한ㆍ중 관계개선 저지가 목적인 듯 북한 김일성주석의 이번 중국방문은 제1차 남북 고위회담이 열린 뒤 돌연 비밀리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일성이 중국을 「암행」한 것은 지난 85년 12월,89년 11월에 이어 3번째이며 특히 지난해 11월 극비리에 북경을 방문,중국의 최고실력자인 등소평을 비롯한 최고위급 지도자들과 만나 동구의 개혁사태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개방과 개혁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데 이어 10개월 만이다. 김일성의 방중이 북한ㆍ중국간의 우호관계 확인을 노린 것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국내외 과시용으로 공개적이고 요란스럽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의 지난 두번의 비밀 방중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번 행보도 정치적인 현안해결에 그 목적이 있다고 관측된다. 특히 돌연한 방문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북한이 당면한 정치적 현안이 시급하며 긴박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김일성은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의 방중기간중 중국의 최고위급 인사들과일련의 회담을 갖고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김일성은 북경이 아닌 심양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최고실력자인 등소평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중국문제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오는 22일부터 개최되는 북경아시안게임 준비에 여념이 없기 때문에 김일성은 총서기 강택민,국무원총리 이붕,국가주석 양상곤 등의 실력자가운데 1∼2명정도와 면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이번 중국방문은 우선 한소간의 수교시기가 임박했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의 한 당국자도 김일성 방중이 알려진 12일 『김일성은 중국의 최고위급 지도자들과 만나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이후 급박히 전개되고 있는 한소간 국교정상화문제등에 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실 북한은 한소간의 급속한 접근에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북한을 방문,한소관계정상화의 불가피성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련내부에서도 셰바르드나제 북한방문은 그가 취임한 이후,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방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데서 그의 대북메시지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또 이달말쯤 유엔총회에 참석할 최호중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이 뉴욕에서 한소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양국간 수교일정과 구체적인 절차등을 협의할 예정이어서 북한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어 간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6공출범이후 우리측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북방정책으로 한중 경제협력관계도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양국의 왕복 교역량은 중국 천안문사태등의 영향으로 88년 수준인 30억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항공기 취항등 항공ㆍ해운ㆍ어업분야에서의 협력 등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중국은 우리측과 정치적인 관계개선을 희망하고 있지는 않지만 북경아시안게임이 서울ㆍ북경간 무역사무소교환 설치등 한중 관계개선의 분수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점을 감안할 때 김일성은 한소수교는 이미 저지할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한중 관계개선만은 이번 방중에서 적극 저지하려들 것으로 보인다. 즉 김일성은 중국의 최고위급 지도자들과 만나 한중관계를 개선하지 않겠다는 확언을 받아내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의 부총리 오학겸은 지난 3월 『중국의 1국2체제 통일방안은 중국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한반도에까지 적용시킬 수는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외교부장(장관) 전기침도 이같은 방침을 확인했다. 중국은 당초 1국2체제 통일방안을 내세웠으며 따라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해왔다. 따라서 중국이 기존의 한반도 통일방안을 이처럼 바꾼 것은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제에 대한 지지를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북한의 통일방안에 대한 지지철회는 남한의 유엔 단독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사실 북한이 최근의 남북 총리회담에 응해 나온 가장 큰 이유가 남한 유엔 단독가입 저지에 있었던 것으로 남한문제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북한대표단가운데 한 수행원은 서울방문에서 우리측 수행원이 선물을 건네주자 『김일성주석이 갑자기 내려가라고 지시해 당신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한 데서 북한이 남한 유엔단독가입을 저지할 목적으로 화급하게 총리회담에 응해 나왔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결국 김일성은 중국지도부에 남한 유엔 단독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도 자본주의체제를 유입하지 않고 사회주의만을 고수하고 있는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을 사회주의 강경국과의 연대강화 차원에서 북한의 이같은 요구는 받아들일 것으로 중국문제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일성은 또 중국에 경제원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으며 특히 최근 중동사태로 원유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연간수입 25억달러,수출 15억달러의 무역규모로 연간 1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보고있다. 소련도 최근 대북 원유공급 감축과 함께 그 값도 국제원유가로 따져 경화인 달러로 결제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에 소극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중국도 외환결제능력이 없고 북한을 원조할 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번 북경아시안게임에 맹방의 김일성을 초청하지 않은 사실도 김일성의 경제원조 요청을 우려한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번 방중에서 김일성은 미국ㆍ일본 등 우리의 우방국과의 관계개선문제를 협의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ㆍ일 등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중국이 중재역을 맡아 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의 방중이 대남정책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일성이 남북한 관계개선에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중대결단」을 내릴 확률은 그다지 높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내ㆍ외부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가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지도부와의 면담결과에 따라 모종의 결심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서울 「총리회담」을 지켜보고… 전문가좌담

    ◎“명분ㆍ실리 제공… 남북 교류길 터야”/적십자회담 재개 합의에 큰 의의/북측 입장 대폭 수용… 대화 지속을/“양보도 원칙에 따라”… 군축협상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지난 4일부터 3박4일동안 서울에서 이뤄진 남북 총리회담은 새로운 남북관계의 모색과 평화통일의 지평을 여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총리가 대좌했던 이번 회담이 어떤 의미를 남겼으며 앞으로 평양에서 있을 제2차 남북 총리회담및 각급 대화등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북한문제 전문가ㆍ교수 등 3인의 대담을 통해 분석했다. □참석자 김창순 남주홍 서병철 ▲서병철교수=우선 이번 회담에서 거둔 성과는 구체적으로 적십자회담의 재개및 유엔가입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대표접촉의 합의등 몇가지에 불과하지만 분단 45년 만에 남북총리가 공식대좌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이산가족의 고향방문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적십자회담을 재개키로합의한 것은 우리측의 제안에 북한측이 호의적으로 반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유엔가입문제는 우리의 단독가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데 대한 북한측의 당혹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실상 타협이 어려운 문제라 생각됩니다. 북한측은 「단일의석 공동가입」을 계속해 주장하고 있으나 유엔의 규약과 관행상 현실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측이 북한측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다해도 그 제안은 보다 현실성을 띠는 형태로 가다듬어져야 할 것입니다. ▲김창순이사장=단 한차례의 만남으로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지만 이번 총리회담이 역사적인 큰 의미에 비해 결실이 충분치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서로가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연형묵총리등 북측 대표들의 발언은 7ㆍ4 공동성명이 발표된 70년대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우리측은 쉬운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하자는 데 반해 북한측은 정치ㆍ군사문제로 귀결되는 중심고리를 풀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을 시종 견지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을 새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측이 강영훈총리를 「수석대표」라고 부르는등 처음에는 남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나 연총리는 청와대예방시 지킬만한 예의는 다 지켰다고 하는데 이점을 존중하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해야 합니다. 북한측이 「원리」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현저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으나 만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주홍교수=미소간 또는 동서독의 경험에서 보듯 외교상의 용어중에는 「의견을 달리하기로 합의하여」(Agree To Disagre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즉 국가간의 회합은 그 자체가 서로의 기본입장을 확인,얼마나 차이가 있으며 얼마나 유사한 점이 있는가를 대내외적으로 공개하는 것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한 국가의 외교정책은 실제적인 것과 선언적인 것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측 대표나 기자들이 『총리회담이 곧 남측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외교적인관례나 「상호공존의 의지확인」이라는 외신보도들의 평가를 유념,선언적 표현에 구애받지 말고 실제적인 정책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펴야할 것입니다. 북한의 변화는 제반 대외적인 여건으로 미뤄볼때 불가피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평화통일여건 조성에 기여하는 것이냐 아니면 체제유지에 필요한 만큼의 것이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노태우대통령이 6일 『우리는 북한의 안정을 위협하는 일은 일체 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발전을 위해 도울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돕겠다』는 발언은 이점에서 매우 적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우리는 북한이 조국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필요한 만큼의 명분과 실리를 제공,어떠한 형태로든 대화를 지속해야 합니다.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모든 국가간의 외교행위의 특징은 바로 상호교화작용,즉 선의와 진의를 서로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인 것입니다. ○실무논의 병행 필요 ▲서교수=실무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정상회담에 가까운 형태로 이뤄진 이번 회담은 20년전 숱한 실무접촉을 거쳐 성사된 동ㆍ서독 정상회담과 비교할때 결코 뒤지지 않는 성과를 거뒀다고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ㆍ서독이 정상회담후 통일까지 걸린 20년이라는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물론 이번 회담의 성사과정을 지켜볼때 북한은 분단극복의 의지보다는 소련의 압력,동구공산권의 변혁 등 주변정세에 「밀려서」 회담장에 나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정세를 보다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현재의 북방정책을 더욱 활기차게 추진하는 동시에 이번에 확인된 양측의 기본입장을 좀더 좁히기 위해 실무자급의 논의를 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이사장=이번에 남과 북은 서로의 제안을 하나씩 수용하는 면모르 보여줬으며 이같은 「상호성 인정」은 곧 남북관계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할 때 북측은 이산가족문제에 있어 우리측의 제안을 수용했다기 보다는 국제여론및 인류사회의 양심에 반할 수 없다는 측면을 보다 고려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유엔가입문제는 현실성보다는 우리측의 단독가입을 막기 위해 「논쟁적 개념」으로 내놓은 제안을 우리측이 너그럽게 수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측도 2차회담부터는 굽히거나 후퇴할 것 없이 「할 이야기」를 하면서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서교수=이번 회담에서 논의된 의제등과 관련해서 볼때 남북교류문제는 역시 인적 교류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전면적인 인적 교류를 실현할 수 없겠습니다만 우리측이 이미 제안했던 바와 같이 고연령 남북주민들의 상호방문등 실향민들의 교류를 성사시키기 위한 단계적인 접근방법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경협문제는 이미 동구등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가 정치적인 개혁에 앞서 경제개혁부터 추진했다는 사실을 유념해 두고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헝가리와 같은 나라는 이미 68년부터 중앙계획경제체제를 극복하는 경제개혁에 착수,정치개혁으로 연결시킨 것입니다. 북한과의 경협문제를 논의할 경우 그쪽에서는 자유사상이 침투될 것을 우려하게되고 체제경쟁면에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두려워할 것이므로 북한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하는 방법으로 논의해 나가야 합니다. ▲김이사장=최근 북한이 미국과 일본에 접근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복안도 그중의 하나로 생각됩니다. 남북대화에서 진실성을 보여야 테러국가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고 미ㆍ일이 자신들을 교역상대국으로 인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북한측 대표단 일행을 접견했을 때 밝혔듯이 북한의 서방국가들과의 접근을 도와주고 남북 상호간에 서로의 이익이 되도록 지원해 나간다는 입장을 확인시킬 수 있도록 신뢰조성 작업에 우리가 적극성을 보여야 합니다. ○인적 교류가 더 중요 ▲남교수=군축 좀더 정확히 말해 군비통제문제가 이번 회담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부문인 것 같습니다. 북측이 제안한 군축안을 보면 그들이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군축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쟁의지가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과 전쟁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보여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바꿔말하면 북한이 남침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고 전쟁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검증시켜주고 우리도 같은 면을 보여줄 때 군비통제논의를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주한미군의 철수문제도 우리와 미국 양국간의 쌍무문제로 양국간에 해결할 문제지 북한이 이래라 저래라 논의할 사안이 아닙니다. 아무튼 이번 회담을 통해 군축에 관한 양측의 입장을 확인한 만큼 우선 상호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노력을 해나가면서 군비에 관한 상호검증체계를 갖추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양측 주장의 차이점을 강조하기 보다는 유사점을 강조함으로써 저들로 하여금 계속 대화에 임하고 대화과정속에 스스로 변화해 나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불가침선언 우선을 ▲서교수=우리의 입장에서는 남북대화가 계속돼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큰만큼 앞으로의 회담에서도 북의 입장을 가능한 한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앞으로 평양에서 있을 2차 총리회담도 쉽지 않을 것으로보이지만 가능한 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 나간다면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이사장=이번 회담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북측이 달라진 게 없다고 실망하며 앞으로의 회담전도를 어둡게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북측을 능히 초월할 수 있다는 성숙된 의식을 갖고 그들의 본질에 대해 과학적인 인식을 하며 우리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교수=통일문제는 우선 우리 내부에서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경제ㆍ문화ㆍ외교분야 등에서 북한에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느냐는 컨센서스를 이뤄야 합니다. 또 남북이 만나서 서로 확인하고 합의를 이뤄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 예컨대 군비축소 같은 문제는 남북간의 협상대상의 분야는 될 수 있지만 일방적인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와함께 남북이 상호실체를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확인하는 문제는 절대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에게 알리고 북측에도 인식시켜야 합니다. 대화는 지속하되 우리가 지킬 원칙은 분명히 지켜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두 얼굴 지닌 「보도 일꾼」/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사흘간 북측 손님들을 지켜보면서 북한사람들은 두얼굴을 가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표리부동이라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얼핏 순박한 외모에 무엇인가 정이 통할 것 같다가도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독선적인 「논리꾼」으로 변하며 표정도 투쟁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두 얼굴」현상은 남북 회담대표등 고위인사 보다는 「보도 일꾼」(기자)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북한사회에서 충분한 기득권을 향유하며 그 체제의 속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북측 고위인사들은 좀더 부드러운 태도로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물론 통일의 방법ㆍ전제 등에 있어서 그들나름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었으나 미소와 수사로서 그를 은폐할 다소의 여유는 있는 것 같아 북한도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TV에 비치는 북측 연형묵 총리의 유연한 태도는 자칫 일반인들에게 북한이 극도로 폐쇄된 사회란 인식을 흐리게 할 수도 있는 일종의 「유혹」이었다. 그러나 북측 기자들을 접촉해 보면 아직 북한사회의 개방이 멀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북한에서 기자들은 상당한 정도의 권리를 누리는 계층으로 분류되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북측 대표단 만큼은 덜 「훈련」되어졌다고 보여지며 이 때문에 자주 허점을 드러내곤 했다.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는 자본주의 생활방식에 대한 동경과 자신들이 속한 제도적 틀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엿보였으며 이 고민이 단순한 이념갈등이 아니라 「생활」과 관련된 것이라는 느낌을 주어 삭막한 감정마저 일게 했다. 지난 85년 남북 적십자회담 북측 수행취재기자중 한 사람이 숙소인 호텔 이발소에서 「자본주의적」 서비스를 받았다는게 알려지자 평양에 돌아가 해직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는 소문은 북측 기자들이 고민하는 표정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측 보도진이 극성인 탓도 있겠지만 북측 기자들이 「타지」에 왔다는 이유 이상으로 긴장하고 외부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기자실 출입금지,공식인터뷰거절 등 폐쇄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북측 기자들은 공식회담 대표보다 북한측 입장을 더욱 소리높여 옹호하고 있으나 역으로 「생활」에 대한 보장만 된다면 이런 완강한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 「경제연합」은 지구촌 현상이다/안충영 중앙대교수ㆍ경제학(서울시론)

    ◎서울 「총리회담」을 보고 민족분단 이후 45년만에 처음으로 대좌한 남북 총리의 환한 모습을 보면서 틴버겐교수의 「동서체제수렴론」과 런던대학의 모리시마교수의 「기술과 체제수렴론」을 다시 생각케 한다. 그들에 의하면 20세기를 통해 인간이 영위해 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가지 기본적 삶의 틀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기초로하는 공동체형 이익사회로 결국 수렴될 것이며 만약 이것에 실패한다면 인류는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로 모리시마교수는 오늘날 체제를 막론하고 전개되고 있는 통신과 수송수단의 발달,생산라인의 자동화,그리고 산업화에 따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지구촌 규모의 공해문제 등을 들었다. ○공동체형 사회로 수렴 오늘날 정보유통의 세계적 동시화 현상과 수송수단의 지속적 진보는 종래의 국가나 국경이라는 개념을 허물기 시작하고 있으며 체제를 막론하고 수개의 국가가 경제적으로 연합되는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EC의 92년 목표의 경제통합을 현재 목격하고 있으며 여기에 동구까지 포함된 「우랄」까지의 유럽공동의 집 구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적 국경의 광역화 현상은 틀림없는 지구촌 현상이다. 한편 생산공장의 자동화 및 로봇화 현상은 기업의 개념을 자본주의위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다같이 바꾸어 가족단위 소규모 공장을 출현시키게 되며 생산의 잉여가 자본가와 근로자에게 배분되는 양식을 변모시키고 있음을 본다. 오늘날 일본과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보너스가 생산설비의 소유자와 근로자에게 동시에 지급되고 있는 현상에서 두 체제의 수렴현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한편 체제를 막론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산활동은 에너지의 사용과 함께 공해를 배출하여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두 체제는 상호조율된 생산활동을 전개해야 되며 필요에 의한 국가간 상호의존은 깊어 갈 수 밖에 없다. ○분단 40년은 아이러니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체제를 초월하여 국가간 경제협력은 앞으로 필연적 과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제 국가별 경제단위의 연합화 현상은 앞으로 계속 확대심화되어 노동력ㆍ원료ㆍ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 회원국들 사이에 일어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공동의 선을 향한 지구촌의 지역적 경제연합은 자연스러운 역사의 추세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사회주의는 교조적 획일주의를 벗어 던지고 노동력을 포함한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다원주의로 지향케 되고 자본주의는 새로운 분배윤리를 모색케 되어 두 체제는 같은 모습으로 접근하게 된다. 모리시마교수는 체제수렴을 통한 상호의존의 지역적 경제통합은 아시아에서도 멀지 않아 일어날 것으로 예단하고 있다. 특히 극동의 유교문화권은 교육중시의 전통적 덕목을 지니고 있으며 가족중심의 사회적 기초단위는 새로운 기술진보 속에서 공동사회 건설에 서구보다도 훨씬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한반도에서 일어난 민족분단 40여년의 세월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피비린내나는 동족상잔의 적대감정만 역사의 뒤안길에 남북이 다같이 묻어 버린다면 우리는역사ㆍ문화ㆍ언어ㆍ풍습에서 민족공동체 형성에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가장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체제수렴론의 차원에서 볼 때 남북한은 민족공동체의 자유사회로 통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협력은 가장 실질적이고 가장 빨리 민족통합을 촉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남북 고위당국자의 공식대좌는 이제 상호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을 뜻하며 장기적으로 체제수렴의 긴 도정에 우리도 들어설 수 있음을 뜻한다. 중국의 개방화와 연해경제 특구건설에 따라 상당한 규모의 공해물질이 벌써 한반도로 몰려오고 있다. 남북한 중국의 공동대응이 당장 필요한 부문이다. 한반도의 영해오염을 예방하고 생태계를 보전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국토를 배달의 후손들에게 몰려줄 궁리를 남북은 당장 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쌍방 교역량이 연간 30억달러를 벌써 넘어섰다. 한소간의 교역도 불과 최근 몇년의 역사에 불과하지만 벌써 연간 10억달러 규모에 이르고 시베리아의 자원개발에 참여할 채비를 우리는 갖추고 있다. 사회주의의다른 종주국들과도 경제교류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데 상호물자 교류가 허용된 88년 이래 남북 교역규모가 불과 3천만달러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세계인에 대한 배달민족의 자존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몇년전 남쪽에서 물난리가 났을때 북은 남쪽에 긴급 구호품 전달을 제의해 왔으며 남쪽은 이를 받아들였다. 남북이 전술전략의 차원이 아니라 진실로 동포애에서 출발하여 자연재해의 아픔을 같이 나누었다면 상호보완의 교역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경협은 통합의 촉진제 이번 남북 총리회담에서도 몇가지 합의점은 있으나 정치ㆍ군사ㆍ경제적 측면에서 남북한의 기본적 시각에는 아직도 현격한 차이가 있음이 발견된다. 간접적이나마 이미 시작된 남북간 경제교류는 반드시 증폭 가속화 되어야 한다.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의 과정에서 남북 쌍무거래가 흑자냐,적자냐는 따질 필요가 없다. 당장 직교역 확대→공동자원개발 및 기술교류→공동사회 간접자본개발→공동해외진출의경험을 쌓으면서 정치ㆍ군사적 문제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체제수렴론의 차원에서 볼때 남북이 역사의 순리에 따라 조국통일의 성업을 달성하려면 경제교류의 확대와 함께 체제의 내부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북은 개방화와 함께 다원주의의 정착을,남은 고도성장과 함께 새로운 분배윤리를 정립시켜 가야 한다. 지구촌의 개방시대,2000년의 문턱에 서서 남북은 세계사의 진운에 너무나 둔감했던 구한말의 역사적 과오를 또다시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만찬회」서 있었던 일/황석현 북한부장(데스크메모)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역사적인 장면을 감회어린 심정으로 지켜봤다. 분단 이후 45년만에 북한의 정무원 총리가 처음으로 남쪽땅을 밟았다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큰 뜻을 지니고 있지만 필자에게는 40여년이나 헤어져 있던 고향이웃이 불쑥 집으로 돌아오는 것같은 감상적인 느낌이 우선 와 닿았다. 이같은 감상은 필자 뿐만 아니라 북쪽의 대표들이 휴전선이란 장애물을 걷어버리고 성큼 남쪽땅에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본 모든 이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올해 65세인 연형묵 총리는 퍽 건강해 보였고 환영의 꽃다발을 안겨준 어린 소녀를 붙들고 귀여워하는 모습은 인자한 우리들 할아버지의 바로 그것이었다. ○「역사적 만남」 감회 깊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필자는 또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들어온 첫날 밤,이들을 환영하는 만찬회에 참석,북한동포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는 행운을 맛보기도 했다. 이날밤 필자의 짝이된 사람은 「통일신보」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영상씨였다. ­나이는 50세.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 아들(24)은 「머리가 나빠」 노동을 하고 있고 둘째 아들(22)은 다행히 자신을 닮아 김책 공과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자랑. 생활은 그쪽 수준으로는 중상으로 괜찮은 편. 서울은 처음­.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얻어낸 그의 짧은 신상명세서이다. 보기보다는 소탈하고 사교적인 그에게 서울의 첫 인상을 물어보았다. 『말로는 들었지만 이처럼 복잡하고 공기가 탁한줄은 몰랐다. 자동차에서 뿜어 나오는 배기가스가 사람몸에는 제일 나쁜데 웬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가. 자가용 안가지기 운동을 펼쳐야 할 것 같다. 또 외국어간판이 너무 많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간판만 보아도 남조선에는 주체의식이 없는 것 같다. 서울에 비하면 평양은 아주 쾌적한 도시이다』 ­평양은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특별한 도시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평양은 혁명의 수도이기 때문에 수준높고 재간많고 기술좋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양에는 이런 사람들이 다른 도시보다 많이 모여있을 뿐이다. 남조선에서도 큰기업은 질좋은 일군들을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으고 있지 않는가. 그런 것을 뭐라고 그러던데…』 ­스카우트 말인가. 『그렇다. 말하자면 평양이란 도시가 수준높고 재간많고 기술좋은 사람들을 많이 스카우트 한 것 뿐이다』 ­동구의 대 변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 변화라니…』 ­대 변화가 아니고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거의 몰락하고 있는 사태에 대한 얘기다. 이 질문에는 박영상 기자는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그 나라들의 내부문제일 뿐 우리가 이렇고 저렇고 할 것은 못된다. 사회주의제도가 나빠서 그쪽 국가들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우리인민은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되어 있고 주체적인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인민은 자본주의를 원치 않는다』 ○서로 이해의 폭 넓혀야 박기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주체사상이 얼마나 위대한 사상이며 고려연방제가 얼마나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며 북쪽의 군축제의가 또 얼마나 건설적인가를 역설하다가는 「왜그렇게 말귀를 못알아 듣느냐」는듯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정치적인 논쟁을 애써 피하려는 필자를 향해 『황선생은 워낙 겸손하셔서…』라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우리가 이날밤 유일하게 합의한 것은 『계속 만나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는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날 밤의 만남이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분나쁜 것도 아니었다. 비교적 담담한 심경이었다고 할까, 우리민족이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어떤 모양새로든 서로 자주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수순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남북 총리회담은 이틀째인 5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서울회담에서는 「군비축소」「유엔 가입문제」「남북 정상회담」「경제 및 인적교류」 서로가 시각을 달리하는 많은 현안문제가 걸려있다. 이 많은 쟁점사안중 한 분야만이라도 합의가 된다면 더말할나위가 없이 기쁘겠지만 설사 모든 분야에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해도 실망할 것은 없다. ○들뜨지말고 차분하게 서울회담에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도 합의가 안된다면 다음 평양회담을 기대하고 그것도 안된다면 다시 서울ㆍ평양을 오가면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총리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은 이번 서울회담이 첫 걸음이라는 점을 인식,보다 폭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냄비문화」라는 속어가 등장하고 있지만 통일문제에 관한한 냄비문화의 속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대를 하는 것은 좋지만 들뜨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서로가 일깨워주어야 한다. 과거의 숱한 회담에서 좌절을 겪었던 우리는 이제 들뜨지말고 차분하게 회담의 진행을 지켜보는 성숙된 자세를 지녀야 한다.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지만 북한 대표단에게 섭섭한 일 두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하나는 문익환ㆍ임수경 등 밀입북했다가 실정법에 의해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싶다는 것과 또 하나는 남쪽의 강영훈 총리는 북쪽의 연형묵 총리를 「총리」로 예우하고 있는데 반해 연총리는 강총리를 「수석대표 선생」으로 호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입북했다 구속된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싶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것이 이번 회담의 공식의도가 아니고 또 회담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요구는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것이고 강총리에 대한 호칭문제도 북한의 기본전략 즉 「두개의 조선」 부정논리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어차피 서울에 왔고 또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까지 하는 마당에 예의상으로라도 「총리」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북측 대표단을 탓하거나 항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총리회담을 보다 원만하게 또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면 하는 필자의 충정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 “도덕성회복은 퇴계의 「인본」서 찾을 때”

    ◎모스크바 「퇴계학 국제학술회의」/개인의 삶 소홀히 했던 사회주의 오류 반성/소련에 분회설치… 사상의 동구진출을 모색 【모스크바=나윤도특파원】 모스크바 중앙관광호텔에서 27일 개막된 제12회 퇴계학 국제학술회의에서는 한국학자 27명을 비롯,중국학자 7명,소련학자 30명,미국학자 8명,일본학자 4명이 주제 발표자로 나서게 된다. 서구 산업혁명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논쟁이 신사고의 출현으로 지양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인간화의 가능성을 조선의 성리학자인 이퇴계의 철학에서 찾았다. 첫날 주제발표에 나선 서울대 이남영교수는 퇴계의 윤리적 실천과 현대의 규범정신에서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 회복은 타인을 헤아리는 퇴계의 인본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영남대 이완재교수는 비인간적 폭력을 인류의 비극으로 규정,이러한 현상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퇴계철학에 강하게 나타나는 윤리정신을 제시했다. 인격형성을 제일 큰 뜻으로 삼아 도학을 새로이 정립한 퇴계학을 현대 세계위기에 적용시킨 발표자들은 퇴계철학을 통한 인간화 실천을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이번 퇴계학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사회주의 사회가 그동안 개인의 구체적 삶의 문제에 대해 소홀하였음을 스스로 반성한 흔적이 뚜렸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련과학원 브로프박사와 쿠조네초프등 소련측 발표자들은 신사고 의한 수정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제도가 아직도 물질적 개선만으로 인간화를 이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쿠조네초프는 물질적 개선에 의한 인간화노력에 앞서 퇴계의 신유학에 함축된 철학에서 러시아사회의 이상을 추구했다. 특히 이성의 주체됨과 그 경건한 자기 통제및 자정의 기능을 객관적으로 살려내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들추어 낸 퇴계철학은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소련에 전파됨으로써 동구권 전역에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소련이 지금까지 퇴계에 대해 관심을 전혀 안가진 것은 아니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기념행사로 치러졌던 퇴계학 국제학술회에도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모스크바의 퇴계학 국제학술회의는 소련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련학계가 퇴계의 학문의 적극 수용할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소련 대통령자문회의위원 스타니슬라프 샤탈린씨(경제학자ㆍ과학원회원)가 고문자격으로 국제학술회의 대회조직에 참여하는등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쏟았다. 이밖에 극동연구소 M L 티타렌코 소장이 대회장으로,소련과학원 경제연구소 L A 아노사파 학술비서가 의장을 맡았다. 어떻든 이번 퇴계학 국제학술회의는 우리의 공식 국호를 걸고 동서간 학문교류를 통해 현대문명과 휴머니즘의 조화를 모색했다는 점이 높히 평가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 대한 개략적 지식을 가진 소련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제퇴계학회는 소련에서의 한국학의 지속적인 연구와 교류를 계속 모색하는 가운데 이번 회의성과를 바탕으로 다방면의 2차연구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지난해 중국 북경에 이어 공산권국가에서 두번째 국제학술회의가 열림으로써 퇴계학이 세계적 학문으로 발돋움하는 확실한 발판을 굳혔다. 퇴계학연구소는세계 여러나라에 퍼져있다. 일본에 3개소를 비롯,미국 3개소가 있으며 이밖에 대만,서독 등에도 분포되었다. 국제학술회의도 일본,미국,서독,이탈리아 등 서방지역 여러나라에서 열렸다. 국제퇴계학회는 이번 모스크바 국제학술회의를 계기로 소련에 분회를 설치키로 하는등 퇴계학의 동구권 진출을 여러 갈래로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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