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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시간 도둑의 시대/이득재 대구가톨릭대 노문학 교수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장편 동화 중에 ‘모모’가 있다. 이 동화의 부제는 ‘시간 도둑과 잃어버린 시간을 인간에게 돌려준 소녀의 불가사의한 이야기’다. 평화로운 마을에 온 몸을 회색으로 칠한 시간 도둑 일당이 나타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꾀어 시간을 절약해서 저금하게 만든다. 그러나 절약한 시간은 쌓이지 않고 결국 조금도 손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시간 도둑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저금한 시간을 훔쳐갔기 때문이다. 애정을 갖고 자기 일을 하던 이발사는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가 시간을 아껴 일하게 되었고 그 탓에 일을 사무적이고 능률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발사는 시간을 아낀 만큼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는 통에 차분하지 못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아이들은 시간 도둑 일당이 준 신식 장난감에서 즐거움을 찾고 놀 줄 모르거나 공상할 시간을 잃어간다. 이런저런 일이 일어난 후 모모가 시간 도둑 일당과 싸워 잃어버렸던 시간을 돌려준다는 것이 동화의 줄거리다. 엔데의 동화는 공상할 시간을 잃어버리고 밤늦게까지 학원가를 배회하는 우리 시대의 아이들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어른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이의 시간 도둑이지만 일상을 돌이켜보면 자본주의는 남자의 시간 도둑이고, 남자는 여자의 시간 도둑인 셈이다. 전업주부(專業主夫)가 15만명이라지만 여자는 아직 남자의 시간 도둑 축에 끼지 못한다. 여자가 휴식을 취하고 명상할 시간에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남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그 여자의 문화적인 시간을 도둑질한다는 뜻이다.‘모모’에 나오는 회색빛 시간 도둑 일당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횡령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한국인의 일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305시간으로 세계 1위다.‘시간이 금’인 줄 알고 시간 절약하며 몸 빠지게 일하는 동안 사회적·문화적 시간으로 활용되어야 할 시간이 모조리 노동시간으로 ‘이체’된 기분이다. 새벽 늦게까지 포장마차에 불 켜고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노동시간에 포함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회적·문화적 시간 통장에는 잔고가 없다.‘모모’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처럼 우리 시대에도 사람들은 시간을 아껴 일한 만큼 시간은 쌓이질 않고 점점 없어지기만 한다. 부패한 세상에 여러 종류의 횡령이 있다지만 자본에 의한 이러한 시간 횡령만큼 큰 것이 있을까. 회색 인간들의 냉장고에 ‘냉동된 시간’은 사람들로부터 빼앗아온 시간이다. 사람들의 감성과 능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사회적·문화적으로 쓰일 수 있는 살아있는 시간을 냉장고에 처박아 죽게 놔두는 것이 자본주의다. 최근 대통령 후보들 중 어느 후보가 4조 3교대 근무방식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동일한 시간을 시간 도둑이 훔쳐가지 못하게 하고 서로서로 횡령한 시간을 내어놓고 공유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얘기도 나온다. 노동시간을 줄여 남는 시간을 회색빛 시간 도둑들에게 넘겨주지 말고 노동자들이 쓰자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절약한 시간이 노동자들 혹은 시민들의 시간 통장에 저금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그만큼 줄어든 시간을 공유해야 마땅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해서 절약된 시간이 시간 통장에 쌓일 새도 없이 욕망의 시간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 욕망의 시간은 절약한 시간을 과외를 받고 학원에 다니는 데 낭비하는 시간으로 둔갑돼 사회적인 신분 상승에 소모되게 된다. 사람들 사이의, 사람과 자연 사이의 교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시간 도둑의 시대다. 내 시간을 틈틈이 엿보며 훔쳐가려 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노문학 교수
  • 鄭 “중소기업부 장관 둬야”

    鄭 “중소기업부 장관 둬야”

    문제는 ‘금산분리’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23일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경우는 7개뿐”이라며 금산분리 고수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립전선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정 후보는 이날 오전 중소기업중앙회와 대한상공회의소를 잇따라 방문했다. 후보 선출 이후 첫 경제계 방문이다. 본격적인 ‘정책 투어’ 시작인 셈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 후보와 차별화된 경제 정책을 내놓기 위해 노력했다. 정 후보는 대한상의를 방문한 자리에서 “야당과 야당후보가 은산(은행-산업자본)분리 해체를 주장하는데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건 정글자본주의로 가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행한 김진표 통합신당 정책위의장도 거들었다. 그는 “일전에 부시 대통령과 만났을 때 ‘일본과 독일 경제의 문제는 산업자본의 금융시장 지배’라고 지적하더라.”며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의견차이가 존재했다. 재계 지도자들은 금산분리 완화를 건의했다. 대한상의 손경식 회장은 “융통성이 필요하다.”며 “IMF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여러 불씨는 금융감독체계가 정비되면서 개선됐다.”고 말했다. 이에 정 후보는 경제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다. 그는 “정동영이 통합신당 후보가 된 것을 걱정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업계 대표 여러분을 존경한다. 마음 놓으셔도 된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은 자리에선 중소기업 육성책을 역설했다. 정 후보는 “차별없는 성장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시대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재벌경제 이명박 대 중소기업경제 정동영 구도를 만들겠다는 계산으로 읽혔다. 그는 “대기업 하청구조에 신음하는 억울함이 없도록 불공정한 현실을 개선하고 개편해내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했다. 정 후보는 또 “다음 정부에서는 중소기업부 장관을 두어야 한다.”고 복안을 밝히기도 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정책선거’ 실천하는 보도 기대/전혜영 고려대 국문과 4년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경선으로 한바탕 내홍(內訌)을 치렀던 한나라당은 어느 정도 수습되어 이명박 후보가 단일 후보로 막바지 표심 모으기에 한창이고,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후보가, 민주당은 이인제 후보가 대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대선정국 초기부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로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대통합민주신당이다. 지난 몇 주 간 각종 언론에서 앞다투어 1면에 다뤘을 만큼 이들의 진흙탕 정치는 독자로서, 국민으로서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박근혜, 이명박 후보의 경선으로 네거티브 정치의 한 단면을 이미 볼 대로 봐버린 독자로서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문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에 대한 일말의 희망마저 없애버리는 듯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정동영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지만 네거티브 정치의 극단을 지켜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번 주 서울신문에서는 본격적 대선구도가 가시화됐음을 보여주듯 15일자 1면의 “정동영 신당 대선후보 확정” 기사를 시작으로 16일자 1면의 “鄭 ‘이명박 공약 입시지옥 만들 것’”,17일자 1면의 “李 ‘국정실패 주역’ 鄭 ‘정글 자본주의자’” 등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공방전을 1면 톱기사로 내보냈다. 헤드라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두 후보의 대선 레이스도 네거티브 공방으로 얼룩질 조짐이다.18일자 1면의 “후보검증 공방 멱살잡힌 국감”에서 이러한 조짐은 현실로 나타났다. 국가기관의 국정운영 실태를 감사하는 국정감사가 후보검증의 장으로 변질된 것이다.18일자 1면 톱사진은 “첫날부터…”란 제목과 함께 사건의 실상을 잘 보여줬다. 이어진 관련기사들도 국감중계, 국감하이라이트, 국감뉴스라인, 국감 말말말, 행정 국감메모 등으로 나누어 국감의 면면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러나 단순한 스트레이트 기사만이 나열돼 있어 아쉬웠다. ‘가장 객관적인 기사는 가장 주관적인 기사’라는 말이 있다. 사건 자체는 객관적으로 보되,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기자나름의 해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사건 자체만 나열하는 것은 기자가 아닌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글이다.‘기사’는 기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국정감사 기사들은 객관적인 보도에 너무 치우쳐 있다. 또한 실질적으로 독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됐다. 국정감사는 국정전반에 대한 점검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다. 따라서 독자들은 국정감사 기사를 통해 국정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정작 신문에서는 공직자의 비리나 공공기관의 부정에 관한 기사들이 정치적 공방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작게 보도되고 있다. 국정감사가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국정’은 없고 ‘감사’만 있는 보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지역 대학생의 66%가 이번 대선에 꼭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386세대들이 보면 한숨 쉴 만큼 낮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음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국정감사까지 후보검증의 진흙탕이 되어버린 판국에 젊은층을 막론하고 누가 대선에 참여할 마음이 들겠는가. 이런 가운데 서울신문이 매니페스토운동의 선두에 서서 정책선거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뜻에서 꾸준히 연재하고 있는 ‘대선후보 정책진단’시리즈는 바람직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면 언론은 이를 알리고 바로잡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아무리 후보들끼리 네거티브공방이 치열하더라도 언론은 결코 이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반드시 중심을 잡고 정책 중심의 정정당당한 선거가 되도록 여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전혜영 고려대 국문과 4년
  • 鄭 “가치논쟁 토론 붙자” 李 “단일화 후보와 할것”

    한쪽은 만나려 하고 다른쪽은 피하려 한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연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1대1 토론’을 요구하고 있다.21일에는 “이번 대선에서 가치로 승부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밤샘토론’과 ‘국감 동반 출석’도 요구했다. 정-이 후보간 1대1 구도를 만들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반면 이 후보는 “범여권 단일화부터 이루고 오라.”고 일축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애걸해도 체급이 안 맞다.”고도 했다. 철저한 ‘무시모드’다. 정 후보는 이날 당산동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간 끝장토론을 요구했다. 또 통합신당의 ‘차별없는 성장 특별위원회’와 한나라당 ‘경제살리기 특별위원회’의 정책전문가 대토론회 개최도 공개 제안했다. 그는 “1997년 대선에서 45차례 토론이 있었고,2002년에는 TV 토론을 포함해 85회의 토론이 있었다.”며 이 후보에게 맞대결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자신 있으면 나와서 토론 못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가치에 대해 토론하자.”고 했다. 이 후보측의 무대응 전략에 답답한 기색이다. 그는 “이 후보가 유일하게 내세우는 게 지지율인데, 지지율 믿었다가 나중에 망신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상대를 자극하기도 했다. 정 후보는 다급하다. 이 후보의 대세론은 벌써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지지율은 50%를 넘는 고공행진이다. 대세론을 넘어 아예 ‘독주체제’다. 이제 막 추격에 나선 정 후보로서는 갈길이 멀다. 공격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정 후보는 연일 공격 수위를 올리고 있다.‘정글자본주의’‘냉전노선’‘약육강식’등 적나라한 표현도 쏟아낸다. 대립각을 명확하게 세워 전통적 지지층을 붙잡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빨리 1대1구도를 만들어 범여권 단일화 국면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셈법도 포함돼 있다. 이 후보에 맞서는 범여권 대표선수로 먼저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반면 이 후보는 ‘충돌’을 피하고 있다. 지지율 20% 미만에다가 아직 범여권 단일 후보도 아닌 정 후보와 맞대좌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에서 “만약 대선 후보간 토론회를 한다면 여타 후보들이 단일화된 후 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에서 후보간 토론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정동영 후보, 이인제 후보, 문국현 후보등 일부 대선후보들 사이에 후보 단일화하겠다는 말이 많은 만큼 이들 후보가 단일화를 이룬 후 특정 후보와 토론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나 대변인도 정 후보의 제안에 대해 “‘토론하자.’‘국감에 함께 가자.’고 애원하는 것은 1등 후보와 함께 지지율을 올리려는 수법”이라고 폄하했다. 공식적으로는 “범여권 단일화가 이뤄진 뒤에야 상대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속으로는 다른 계산법도 있다. 방송기자 출신에 달변인 정 후보와 벌써부터 TV토론을 벌여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이다. 자칫 말실수라도 했다간 오히려 손해보기 십상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게다가 이 후보는 지난 11일 ‘MBC 100분 토론’에서 동문서답을 하는 등 당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당시 일부 네티즌들은 MBC홈페이지에 몰려가 “이게 토론이냐.”며 성토하기도 했다. 어쨌든 정 후보와의 토론은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최측근은 “TV토론으로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최대 3%포인트 안팎”이라며 “두 후보가 근접해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 왜 우리가 TV 토론을 거부하겠냐. 일단 후보단일화부터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규 박지연기자 nada@seoul.co.kr
  • [中 17전대 결산] (상) 과거와의 공존

    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21일 폐막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날 204명의 당 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선출했으며 22일 제17기 중앙위 1차 전체회의를 열고 최고 권력집단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선출한다. 이번 공산당 대회를 분석하는 ‘17차 당 대회 결산 시리즈’를 3회에 나눠 싣는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과거와의 공존’.21일 폐막된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선에 끼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이날 “17차 당 대회 인사는 장쩌민-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의 작품”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정치 3세대의 그늘은 4세대의 전반기에 이어 후반 5년까지 짙게 드리우게 됐다. ●‘조화 사회’의 실종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인사 장악 실패 못지않은 타격은 ‘조화 사회’를 당장(黨章)에 넣지 못한 것이다. 상하이방(上海幇)과의 치열한 사상 투쟁의 결과다. 새 당장에는 후가 주창한 이념 가운데 절충안으로서 ‘과학적 발전관’만 포함됐다.‘조화 사회’를 당의 헌법인 당장에 포함시킨다면 자칫 근본적인 모순을 야기할 수 있다는 반론에 밀린 것으로 전해진다.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치유한 사회주의 국가가 빈부 격차 등을 염두에 둔 조화사회를 표방할 수는 없다는 논리에서다. ‘과학적 발전관’은 발전에도 무게 중심을 둘 수 있기 때문에 개념상 큰 거부감을 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화사회는 사회의 한 모델로서 사회주의와 등급상 충돌이 생길 수 있지만, 과학적 발전관은 수단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쉬웠다. 현실적으로도 조화 사회의 추진은, 상하이방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에게 일정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으로 간주됐다는 후문이다. ●틀로 굳어지는 전임자의 영향력 차세대 지목에서 전임자의 영향력 행사는 향후 중국 정치에서 하나의 틀로 형성될 개연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장쩌민이 덩샤오핑(鄧小平)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덩은 2세대의 주인공으로서 장쩌민의 3세대를 운영했으며, 후진타오의 4세대의 인선을 결정했다. 전반적으로 최고 영도자의 영향력은 떨어져가고 있음을 전제로 하더라도,3세대의 장쩌민은 4세대에 영향을 끼치며 5세대 인선에 개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앞서 중국 정치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지명한 류사오치(劉少奇)·린뱌오(林彪)·화궈펑(華國鋒), 덩이 지명한 후야오방(胡燿邦)·자오쯔양(趙紫陽) 등은 모두 중도탈락했다. 장쩌민에 대한 지목부터 성공한 셈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사회 일각에서는 “5년이후에야 비로소 후진타오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공청단 출신인 한 30대 중앙공무원은 “후가 뿌린 공청단의 씨앗이 5년이후 중앙 정치무대에서 본격적인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힘의 크기는 줄어들더라도 ‘태상황(太上皇)의 정치’가 잔재할 여지를 제기한 것이다. ●“한 뿌리 두 가지” 이처럼 자신의 집권2기 인사의 몫을 떼어주고 차세대 구도까지 흔들리게 된 이번 17차 당대회지만, 이는 후진타오-장쩌민 간의 ‘충돌’이 아닌 ‘타협’의 산물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장과 후는 덩샤오핑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일 뿐”이라면서 “적대적 관계로만 봐서는 상호간의 전략적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후진타오 개인의 스타일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후는 지금까지 특정 정치세력과 ‘대립’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스 파동 때 은폐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장원캉(張文康) 위생부장을 쳐내며 상하이방에 맞선 정도가 한 사례로 꼽힌다. 비리 문제로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서기를 체포한 것도 포함될 수 있으나, 이 역시 후-장이 타협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인사에서도 후는 제목소리를 강하게 내거나 서두른 적이 없다. 공청단 1서기 출신 후야오방이 총서기 시절 후치리(胡啓立)와 후진타오를 포함, 리커챵(李克强) 등 공청단원을 중앙으로 발탁했던 것과는 달리 후는 도리어 공청단 멤버를 지방으로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군과 중앙 요직에 자신의 측근을 앉히기 시작한 것도 집권 5년이 다 된 최근의 일이다. 개막식을 포함, 이번 당대회에서 언론 등을 통해 장쩌민을 적절히 부각시킨 것도 후 자신의 퇴임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은 향후 공식무대에서는 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번 행사를 통해 상하이방 등 추종자들에게 건재함을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앞으로 얼마간은 ‘장쩌민없는 장의 시대’라 부를 만하다.”는 관측도 대두된다. 향후 5년 중국 정치의 미래는 3,4,5세대 간의 ‘동거’ 관계속에서 전개될 전망이다. jj@seoul.co.kr
  • “금산법 완화” vs“기업규제 유지”

    “금산법 완화” vs“기업규제 유지”

    대선 최대 이슈인 ‘경제’를 놓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본격적인 선점 경쟁에 돌입했다. 이 후보와 정 후보는 18일 오후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매일경제신문 주최 세계지식포럼 강연에서 확연히 구별되는 경제 정책을 역설했다. 두 후보 모두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강조했지만 세부적인 실행방향에서는 차이점을 보였다. 정 후보가 ‘함께하는 성장’을 강조,‘분배’에 힘을 실었다면 이 후보는 ‘친시장·친기업 지도자’를 주장하며 ‘성장 중심’의 기조를 유지했다. 특히 금융정책인 ‘금융산업 분리법’ 규제 완화와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정책에서 이견을 드러냈다. 먼저 연설을 한 이 후보는 “1987년 민주화에서 이정표를 만들었듯이 ‘2008년 신발전체제’를 통해 세계일류 국가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며 기업 규제 완화와 ‘인재 대국’을 위한 특성화 교육을 주장했다. 이 후보는 ‘금산법’에 대해 “(정부는)너무나 경직적인 원칙을 갖고 있다.”면서 “산업자본의 참여를 원칙적으로 봉쇄할 필요는 없고 감독을 철저히 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 기능이 상실된 국책은행은 민영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 집권시 금융분야에 대한 일대 개혁이 있을 것임을 시사, 주목됐다. 이 후보에 이어 연설에 나선 정 후보는 “투자 마인드가 살아날 수 있도록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겠다.”면서도 “공정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는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기업규제 완화 정책이 가져올 문제점을 겨냥한 발언이다. 정 후보는 이어 “세계적 금융강국인 영국과 미국도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고 있다.”면서 “금융강국이 되려면 ‘정글 자본주의’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의 건강한 경쟁질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관 차이는 교육분야에서도 나타났다. 정 후보는 “자율형사립고 100개 등 300개 특별고교를 만드는 것은 고교 입시의 부활”이라며 이 후보의 특성화 고교 설립 정책을 비판했다. 특성화 고교 300개 육성을 주장한 바 있는 이 후보는 이날도 “고액의 등록금을 받는 대신 저소득층의 우수한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과 함께 고교 교육의 다양화를 추구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논리다. 정 후보는 이에 대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는 입시지옥으로 변해 사교육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반박 논리를 펼쳤다. 한편 이날 주최측이 두 후보의 ‘어색한 조우’를 막기 위해 30분 간격의 연설 시간을 배정했으나 두 사람은 행사장 입구에서 맞닥뜨렸다. “어이구, 나중에 봅시다.”라는 이 후보의 인사에 정 후보는 “건강 조심하십시오.”라고 짧게 답했다. 한상우 박창규기자 cacao@seoul.co.kr
  • 李“국정실패 주역” 鄭“정글 자본주의자”

    李“국정실패 주역” 鄭“정글 자본주의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이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선출로 양대 정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서 미궁 속이던 대선 정국이 범여권과 한나라당의 대치국면으로 재편될 조짐이다. 정 후보는 이 후보와의 대립각을 부각시켜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중심축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대선후보 경선 승리에 따른 반사효과로 10% 중반대로 소폭 상승한 여론조사 지지율을 높이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정 후보측의 ‘이명박 대립각’ 전략을 외면하고 있다.‘무능력·무책임·무반성’의 ‘3무(無)’ 후보이자 범여권 대표주자가 아닌 후보 단일화 주자군의 한 명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신 노무현 정권과의 대립구도로 대선전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자세다. 정 후보측은 16일 경제 및 대북정책, 지역구도, 후보 이미지 등 각 부문별로 이 후보측과 대결구도를 형성,‘정 후보 띄우기’에 나설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후보의 경제·교육공약 등이 ‘소수의 가진 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이른바 ‘20(특권층)대80(중산층·서민층)의 대결’로 대선구도를 몰아간다는 방침이다. 정 후보측 전략기획실장인 민병두 의원은 “지난 두 번의 대선이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개혁 전선으로 치러진 반면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와 평화라는 두 가지 전선이 형성됐다.”면서 “두 전선 모두에서 확실한 각을 세워 (이 후보와) 정면 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이른바 ‘이명박 경제’는 철저하게 강자만을 위한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로, 이른바 ‘20대80’의 사회구조를 고착화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 후보가 16일 당 후보로서 첫 공식일정으로 모친이 삯바느질하며 생계를 꾸려간 평화시장을 찾은 것도 ‘서민대통령’ 이미지를 제고함으로써 대치전선을 ‘20대80’의 대결구도로 몰아 서민 다수의 지지세를 넓히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에 이 후보측은 정 후보를 국정실패 세력의 주역,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아세워 정 후보측의 칼날을 봉쇄한다는 입장이다. 나경원 대변인은 “양극화를 심화시킨 참여 정부의 실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이 후보 정책은 오히려 80%를 더 잘살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 후보측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포용주의와 대결주의’의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경제’에서 ‘경제와 평화’로 이동하는 흐름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정 후보는 17일 개성공단을 찾아 한반도 평화정책 비전을 발표하는 것으로 ‘개성동영’을 부각시켜 ‘운하명박’과 대립전선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이 후보측은 정 후보 당선이 ‘일방적 퍼주기 세력’의 재등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정 후보측을 압박하는 한편 이 후보의 유연한 대북 상호주의를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 나 대변인은 “정 후보는 통일부 장관 시절 북이 핵무기를 개발해도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북의 핵개발을 수수방관한 인물”이라며 “이러고도 진정한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느냐.”고 힐난했다. 전북 전주 출신인 정 후보는 경북 포항에서 자란 이 후보와 맞서기 위해 ‘서해안 벨트’ 형성에 주력할 예정이다. 충남 논산 출신인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호남과 충남을 묶는다는 구상이다. 수도권과 20∼30대 화이트칼라들이 호감을 보이고 있는 문국현 후보와도 단일화를 완성, 이명박 후보와 맞선다는 복안이다. 반면 이 후보는 역으로 정 후보의 지지기반인 호남 껴안기에 나서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충청권의 경우, 이 후보측에서도 국민중심당과의 연대 등 외연확대를 노리고 있다. 리더십 이미지 대결에서도 정 후보는 ‘열린 자세의 소통’을 강조해 이 후보의 ‘독선적 권위주의’를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반면 이 후보는 강한 추진력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정 후보의 기회주의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노벨문학상 英소설가 도리스 레싱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영국 출신 여성 소설가 도리스 레싱(88)이 선정됐다. 스웨덴 노벨재단은 11일 레싱의 수상 사실을 공식 발표하며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 서사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노벨재단은 “레싱의 작품 가운데 1962년에 발표된 ‘황금빛 노트’가 특히 두드러졌다.”며 “이 작품은 여성주의 운동의 태동기와 맞물린 선구자적 작품이며,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20세기적 시각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저작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1919년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태어난 레싱은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부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에서 성장했다. 그 후 영국으로 이주한 레싱은 한때 영국 공산당에 몸담기도 했다.1950년 첫 장편 ‘풀잎은 노래한다’를 발표한 데 이어 5부작 ‘폭력의 아이들’(1952∼1969), 그녀의 대표작인 ‘황금빛 노트’와 ‘생존자의 회고록’(1974),‘다섯째 아이’(1988),‘가장 달콤한 꿈’(2002) 등을 잇따라 출간했다. 레싱은 일련의 작품을 통해 페미니즘은 물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 인간의 광기와 인종 차별, 생명과학, 신비주의 등 20세기의 다양한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뤄 일찌감치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FTA시대 ‘협업농업’에 길을 묻다

    FTA시대 ‘협업농업’에 길을 묻다

    1980년대 중반 사회구성체논쟁이 뜨거울 때 일이다.‘현대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단계에 관한 연구’란 논문으로 논쟁에 불을 지폈던 박현채(당시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유인호(당시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요즘 진행되는 ‘사구체논쟁’을 잘 모르겠으니 내게 내용의 진의를 좀 알려주시오.”라고 부탁했다. 박현채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논쟁은 내가 알고 있는 논쟁이 아닙니다.”하고 답했다. 후기 사구체논쟁이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파벌적으로 흐르자, 논쟁 촉발자인 박현채도 논쟁에 주목했던 유인호도 논쟁에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현실에 기반해 실천과 결합한 논쟁이라야 성과가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구별된 입장 정립을 위한 논쟁은 말싸움에 불과하다.”며 유인호는 일침을 가했다. ●‘피치자(被治者)를 위한 경제학’ 유인호와 박현채에게 ‘민중의 구체적 생활상’과 유리된 논쟁은 무의미했다. 두 사람은 생전 ‘민족경제론’의 동지였고, 세상에 올 때(유인호 29년생, 박현채 34년생)도 갈 때(유인호 92년 작고, 박현채 97년 작고)도 꼭 다섯 살 터울을 지켰다. 작고 10년째부터 시작된 박현채 재조명 시도<서울신문 9월18일 24면>에 이어, 작고 15년째인 일곡(一谷) 유인호 경제학의 현재화 움직임 또한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일곡기념사업회는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유인호의 삶과 학문세계를 조명하는 심포지엄을 연다.‘과거의 경제학자’로 잊힌 듯했던 박현채와 유인호가 거듭 호명되는 까닭은 점점 화려해지는 성장의 앞면과 점점 그림자 짙어지는 성장의 뒷면을 함께 돌아보지 못하는 주류경제학의 맹점 때문이다.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맡은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선 2007년의 한국사회는 소수 재벌기업의 정치·경제적 장악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고, 농촌은 피폐하며, 도시의 중소상공인·자영업자·노동자들의 생활은 어려움을 더해가고 있다.”면서 “국민총생산(GNP) 증대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성장을 넘어 생활경제의 풍부함을 고민한 ‘유인호 경제학’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인호는 당파성이 뚜렷한 경제학자였다.‘모두에게 좋은 경제학’보다는 ‘힘없는 이들을 위한 이론과 대안’이 자신의 주된 관심사임을 늘 선명히 했다. 그는 자신의 학문연구 최대 과제를 “가난한 자와 슬픈 자를 위한 경제학의 복원”으로 요약하곤 했다. 그는 이를 ‘피치자(被治者)를 위한 경제학’이라고 표현했다. 유인호가 성장의 그림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은 단순히 약자들에 대한 연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는 성장일변도 정책이 결국은 성장의 밝은 면까지 삼키게 될 것(‘민중경제론´,1982)”이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농업협업화´, 한·미FTA 대안으로 주목 유인호의 후학들이 그의 경제학을 재조명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유인호 시대’ 외채누적이 불러온 민족경제 붕괴 우려는 ‘현 시대’ 주주자본주의 아래 외국인 주식의 국내 기업 잠식으로 이어졌고, 유인호 시대 극소수에게 집중됐던 부의 편중은 현 시대 쉽사리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사회양극화로 심화됐다. 유인호가 선구적 관심을 기울였던 공해와 환경문제는 지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와버렸고, 유인호가 ‘협업농업’을 고안하며 그토록 지키고자 애썼던 농업은 지금 한·미FTA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유인호 경제학의 복원 노력은 한국사회의 불안요소가 통제불능 지경이 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도 유인호의 농업협업화 구상이다. 유인호는 농업협업화를 “농민의 조직화를 통해 농업의 생산과 분배를 조직화하고, 농업생산력 증진과 농민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경제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일곡기념사업회 학술위원회 김수행(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위원장은 “유 교수가 당시 농업을 죽이는 미국 잉여 농산물 의존 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던 ‘협업경영’ 모델은 한·미FTA 등 개방 파고에 맞서 농민이 살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며 유인호 이론의 현재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열린세상] 종교와 가난/김형태 변호사

    [열린세상] 종교와 가난/김형태 변호사

    며칠전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분은 가난과 병고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을 어린이들에게 심어주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불교신자가 23%, 개신교 18%, 천주교 10%로 전체 종교인구는 53%에 달한다. 사랑, 자비를 최고의 가치 규범으로 믿고 실천하는 이들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세상은 오히려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점점 더 세를 넓히고 있다. 신앙인들이 정말로 믿고 따르는 것이 무엇일까. 사랑, 자비가 아니라 돈인 듯 보인다. 요즈음 절이고 교회고 성당이고 돈이 많다.1년 예산이 수십, 수백억 되는 절이며 교회가 적지 않다. 아는 스님, 신부님 따라 가 본 절이나 수도원에서 받은 밥상은 평균치 신자가정에 비해 고급이다.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기독교 세례를 받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든 아니면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자아중심의 생활태도를 포기하고 헌신과 사랑의 삶을 산다면 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는다는 게 그 요지다. 이 주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에 이렇게 구현되었다.“구원은 비단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역사하는 은총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모든 선의의 인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을 만한 이로 마하트마 간디가 있다. 그는 권력이나 재산에는 관심이 없었다. 조그마한 천조각 하나 두르고 형편이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 전 인도를 돌아 다녔고, 자아포기와 이웃에의 헌신을 호소했다. 그는 힌두교인이었으나 성서중의 ‘산상설교’를 최고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따랐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예수의 삶도 가난한 이, 우는 이들과 함께였고 그 분 스스로 가난했다. 석가세존 역시 그러했다. 금강경의 첫 대목처럼 ‘세존께서 성안을 걸어 다니며 밥을 빌고 그것을 드시고 발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물론 스승들의 가난과 탁발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이 가난은 돈,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자아 중심의 생활 태도와 정반대 길을 걷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나아가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지향을 가진다는 점에서 가난은 이중의 의미가 있다. 2007년 현재 4인 가족기준 최저생계비는 120만원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그저 최저 수준의 생존을 유지하는 데 드는 돈조차도 못 버는 이들이 10만,20만명도 아니고 무려 167만명이나 된다. 우리는 돈과 효율만을 섬기는 고도자본주의사회에 들어섰다. 빈부의 양극화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극심해져 간다. 삼성전자가 일년에 10조원의 이익을 내도, 현대자동차가 아무리 외국에 차를 많이 팔아도 최저수준의 생계유지가 안 되는 이들이 무려 170만명에 가까운 현실에서 종교 스스로가 돈과 효율만을 숭상하는 자본주의와 한 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부자인 교회나 절은 가난한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파란 잔디 위에서 골프에 열심인 신부, 목사, 스님들이 단돈 만원에 벌벌 떠는 가난한 이들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가난이나 탁발은 그저 ‘마음’으로만 하기로 하고 ‘몸’은 돈을 좇는 한, 종교인구가 53%가 아니라 100%가 되어도 이 사회는 여전히 고통의 바다(苦海)일 게다. 당신 스스로 가난하고, 당신 스스로 탁발을 하셨던 스승들이 ‘지금 여기’다시 온다면 아마 저 화려한 절이나 교회로는 가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믿지 않는 47% 가운데로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찾아 다시 탁발행을 떠나지 싶다. 김형태 변호사
  • [문화마당] 작가의 수명과 문학의 깊이/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인간은 ‘시간의 벽’에 부딪히면서부터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에 눈뜨게 되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축제일이 되면 시간의 변화를 차단하는 가면을 쓰고 영육(靈肉)이 일치되는 춤을 추었으며, 사물의 영원한 현상에 대한 신화를 창조했다. 어찌 그것뿐이랴! 현대 철학자 베르그송은 시간의 흐름을 “바닥과 제방이 없는 강물”에 비유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변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것이라고 주장했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시간을 초월하는 ‘추억’이란 경험 속에서 지속적인 자아(自我)와 직관의 힘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고 했다. 또 이러한 지속적인 시간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는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소리와 분노’의 주인공 틴은 시간의 한계로부터 자신을 탈출시키기 위해 시계를 부숴버리지 않았던가. 시간의 한계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절실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삶과 죽음에 차가운 시선을 던지고 지나가는 마상(馬上)의 가인(街人)”과도 같이 자의식이 강한 시인들에게는 피부에 닿을 정도로 절박하고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일어난 일이지만 작금의 우리 문단의 일부에서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출판계가 작가의 생명을 확대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는 목소리가 높다. 비록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인간의 정신적 산물인 예술 작품을 취급하는 문화계만은 인간을 일회용 소비 상품으로 만들지 않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자제력을 잃은 상업주의 출판사들은 물론 문예지들마저 젊은 독자들을 의식해서 연륜이 쌓인 무게 있는 글보다 새롭지만 가볍고 감각적인 젊은 작가들의 글을 선택적으로 선호해 왔다. 그래서 아직도 가능성이 풍부한 수많은 작가들은 나이 때문에 폐품처리되듯 버림을 당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역사 속에서 자기가 속해 있는 ‘시대’가 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영겁으로 흐르는 시간과 비교해 볼 때, 찰나적인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만일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의 ‘시대’마저 젊음이나 혹은 설익은 ‘젊은 감수성’이 머무는 시간만으로 한정시켜, 인간 정신의 움직임마저 일회용 상품처럼 취하고 버린다는 것은 크나큰 낭비이고 비극이다. 물론 젊은 작가들에게서 일시적으로 참신하고 감각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원숙한 경험과 지혜는 얻기 힘들다. 세계 문학사에서 정전(正典)에 오른 대부분의 작품들은 작가들이 원숙한 나이에 접어든 이후에 쓰인 것들이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60이 지난 후에 썼다는 것을 새삼스레 밝힐 필요도 없겠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연구하는 작가들에게 연륜은 죽음의 자국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축적하는 그릇이자 성숙을 의미한다.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창간된 계간 문학지 ‘문학의 문학’이 우리문단에 시사하는 바는 대단히 크다. 이 문예지는 새로운 숨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과감히 투자하는 한편, 대부분의 문예지들과는 달리 상업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듯, 젊은 작가들보다 연륜이 깊은 작가와 시인들에게 지면을 대폭 할애하고 있다. 원로와 중견 작가들에게 역점을 두는 것은 나이만 먹으면 경험이 풍부해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극을 부여하여 묻혀있는 창작 에너지를 잠깨워 쓸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우리는 사물이나 현상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모든 것을 분리하고 해체하는, 과학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 정신의 산물은 물리적 현상과 같을 수 없다. 워즈워드가 “분해하기 위해 살해”하는 그 당시 현대인들을 두고 슬퍼한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 [열린세상] 북·미 협상과 동북아 정세/이성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 북·미 협상과 동북아 정세/이성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모처럼 순풍에 돛단 듯 나아가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동북아의 냉전질서에 빅뱅이 올 가능성까지 보인다. 물론 곳곳에 숨어있는 복병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큰 흐름은 바뀌지 않을 성싶다. 무엇보다 미·중관계의 안정화, 북·미 대화에 대한 미국의 의지,6자회담의 순항, 남북한 정상회담, 후쿠다의 아시아 중심외교가 긍정적 조짐으로 읽힌다. 북·미협상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한·미 FTA 협상 타결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내린 닻이 더욱 공고해졌다고 판단했다. 내친김에 북한에도 닻을 내려 역외 균형자로서 역할을 강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할지 모르겠다. 과거 미국은 한·미동맹이 약화된다면, 일본에서의 미군 지위도 약화될 것이고,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개입능력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란 불안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악의 축’,‘전제정치의 교두보’였던 북한을 다시 대화상대로 받아들인 것은 진퇴양난에 빠진 이라크 사태와 이란 핵 위기의 여파이기도 하지만, 한·미 FTA 협상 타결로 얻은 심리적 안정감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북한도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정권의 안보이며, 다른 한편으로 핵 위기 타결을 대가로 최대한의 원조와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딜레마는 오래된 것이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다. 상품주기설로 유명한 레이먼드 버논은 ‘멕시코의 딜레마’란 책에서 1970년대 제도혁명당 정부가 처한 이중의 딜레마를 지적한 바가 있었다. 국가자본주의 발전전략을 취한 제도혁명당 정부는 국가부문의 비효율성과 부패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과 정당성의 하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제도혁명당 정부는 기존 상황을 고수한다고 해도 조만간 정권을 잃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개혁과 개방 노선을 스스로 취한다 해도 선거에서 지지층을 잃게 되어 정권을 넘겨줄 것이다. 제도혁명당은 어쩔 수 없이 후자의 길을 택했다. 딜레마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도 1970년대 멕시코처럼 비슷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다. 현재의 경제적 난국이 지속된다면 조만간 내부 붕괴의 위험에 처할 것이다. 핵문제를 타결하고 북·미 수교, 북·일 수교가 된다면, 경제적 어려움은 극복하겠지만 현재의 정치판도가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당국도 이러한 어려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후쿠다의 등장도 한반도에는 서광이다. 고이즈미 총리 이래 한·일관계와 중·일관계는 냉각되었다. 하지만 후쿠다 총리가 등장하면 동아시아 중시외교가 복원될 것이고, 중·일관계도 풀릴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6자회담이나 북한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일본 외교도 보다 적극적으로 바뀌고 급기야 북·일수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연내 핵신고, 불능화 합의와 실행이 한반도 주변정세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신호탄이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급류를 탄 동북아시아 정세 가운데 개최될 것이다. 일단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미국의 우려가 어느 정도 줄고, 한·미동맹과 남북관계의 엇박자가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의 조짐도 밝다. 미국이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지지하는 것도 하나의 전진이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북·미관계 개선에 나선다면, 중국의 입장이 다소 미묘하게 바뀔지 모르겠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모두가 자신에게 구애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몸값 불리기에 나설 것이다. 중국은 북·미 관계를 중시하여 작년 8월에 주북한 대사에 미국통인 류샤오밍을 임명했다. 나름대로 대비한 것이다. 조만간 북·일 수교도 진행된다면 북한의 몸값은 더 오를 것이다. 앞으로 평양은 외교가의 전쟁터가 될 것이다. 남북한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만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성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 ‘민족경제론’ 외친 故박현채 그의 삶과 사상 되짚어본다

    ‘민족경제론’ 외친 故박현채 그의 삶과 사상 되짚어본다

    ‘지구화시대의 자립경제’,‘국경 없는 자본’과 ‘민족경제’,‘신자유주의’와 ‘경세제민(經世濟民) 경제학’….2007년 현재 이런 의미쌍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언어조합이 아니다. 비현실적인 이항대립이자 형용모순 취급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초국적 자본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 민족경제란 시대착오적 화두(?)를 붙들고 끙끙대는 이들이 있다. 민족경제론의 주창자 고 박현채(1934∼1995) 교수(조선대 경제학과)의 후학들이다. ●진보사회과학 중요유산 박현채 사망 10주기(2005년 8월17일)에 맞춰 계획된 ‘지구화시대 박현채 경제사상의 의의와 재구성’ 토론회가 2년여를 끈 끝에 21일 개최된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고 박현채 전집발간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다. 토론회는 박현채 사상의 핵심이자 산업화시대 저항담론의 구심점이었던 민족경제론을 지구화 시대의 맥락에서 재성찰·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독재권력에 맞설 언어가 빈곤했을 때, 민족경제론은 시대가 공유한 무기였다.1978년 ‘민족경제론’(한길사) 출간은 한국 토착경제학의 싹을 틔우는 일대 사건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외자주도형 산업화에 대립각을 세우며 자립경제를 주장했던 박현채의 사상은 비판지식인들의 이론적 전진기지가 됐다.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학자와 책을 묻는 여론조사들은 박현채와 ‘민족경제론’을 늘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왔다. 산업화시대는 갔고, 지구화시대가 도래했다. 민족경제론은 ‘과거의 이론’으로 버려졌다. 국민국가를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파악할 수 있는 이론적 확장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92년 대선 때까지 박현채가 골간을 잡았던 김대중의 ‘대중경제론’도 97년 대선 땐 유종근 전 전북지사와 이강래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의 손을 거치며 박현채의 흔적을 지웠다. 박현채는 잊혀진 존재가 됐고, 민족경제론은 재벌의 경영권 방어논리로 오용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가 불러온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박현채 후학들은 왜 ‘폐기된’ 민족경제론을 복원하려 하는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민족경제론의 문자적 복원’이 아닌 ‘민족경제론적 문제의식의 복원’이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민족경제론의 문제의식은 경제총량지표로 파악되는 국민경제가 아닌, 민중 삶을 보장하는 국민경제의 확립”이라면서 “민족경제론은 민중의 기본적 삶과 직결된 공공성이 해체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반드시 재검토돼야 하는 한국 진보사회과학의 중요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주류경제학이 돌보지 못하는 ‘생활하는 민중의 구체적 삶의 요구’를 지탱하려면 민족경제론의 발전적 재구성이 시급하다는 절박함이 토론회 저변에 깔려 있다. ●DJ 대중경제론에도 영향 토론회의 행간을 읽는 핵심 키워드는 ‘대안적 상상력’이다. 민족경제론 재해석 작업이 당장의 대안을 내놓긴 힘들지만, 대안의 단초가 될 다양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획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조희연 교수는 민족경제의 재구성 방안으로 공공성 강화를 강조하고,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글로벌 체제의 급진적 변혁 가능성을 탐구한다. 또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은 자립경제의 단초로 쿠바 모델에 주목하는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화석연료에 의존한 탄소경제’라고 정의하는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석유 고갈과 동반할 자본주의 파국에 대비하려면 지역공동체 운동과 에너지·식량 자립, 지역자치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며 생태적 자립경제를 주장한다. 박현채 10주기 및 전집발간에 맞춰 기획된 토론회는 발간작업이 늦어지며 한 차례 연기됐고, 박현채 사상을 계승하는 민족경제연구소 설립이 난항을 겪으며 또다시 늦춰져 이번에 열리게 됐다. 박현채가 몸담았던 조선대가 설립을 거부한 이후 연구소는 성공회대·한신대·상지대가 컨소시엄으로 운영하는 민주사회정책연구소가 내부 기관 형태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사회정책연구소는 한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구화와 공공성’이란 주제로 민족경제론의 현재화작업을 체계화하고 있다. 민족경제론의 재구성은 이제 첫발을 떼고 있는 중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민족경제론은 국가 경제자립에 대한 분석”

    ‘지구화시대 박현채 경제사상의 의의와 재구성’ 토론회에서는 특히 와쿠이 히데요키(메이지가쿠인대)교수의 발표가 눈길을 끈다. 생전에 박현채를 만나본 적 없다는 와쿠이 교수는 민족경제론의 시각을 빌려 한국의 산업화를 분석할 뿐 아니라, 박현채가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의 숙제로 남겨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족경제론의 현재적 의미를 재정의하고 있다.‘아시아의 공업화와 한국 자본주의’(1989년) 등의 논문을 쓰며 한국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와쿠이 교수는 이번 토론회에 ‘세계화시대 자유무역과 자립경제·민족경제론’이란 제목의 논문을 냈다. 그는 “1945년 이전 한국의 독립은 ‘식민지 수탈에서의 해방’을 의미했지만,1950년대 이후 미국 원조경제 하에서의 독립은 ‘경제적 자립’을 뜻했다.”면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국민국가 안에서의 경제적 자립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평생 마르크스 연구하고 가르쳐… 자본론은 세상을 보는 올바른 눈”

    “평생 마르크스 연구하고 가르쳐… 자본론은 세상을 보는 올바른 눈”

    지난 3일 김수행(65)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 강의를 시작했다. 학부의 ‘현대 마르크스경제학’과 대학원의 ‘고급 마르크스경제학 연구’ 두 과목을 맡았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 ‘자본론’의 한국판 최초 완역자이자, 국내에서 마르크스경제학으로 외국 대학(런던대) 박사학위를 받은 1호 학자다. 어떤 이는 그를 ‘구좌파’라 부르고, 누군가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로, 혹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라 일컫는다. 이 ‘동의이음어’들은 국내 학계에서 그가 속한 사상적 지형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의 일관된 학문적 고집을 뜻한다. 한국 마르크스경제학의 좌장인 그의 서울대 임용과 퇴임 과정은 국내 마르크스주의가 처한 과거와 현재를 그대로 상징한다. ●마르크스 전공자 채용 재논의결정 아쉬워 1982년, ‘불온사상’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김 교수를 받아들인 첫번째 학교는 당시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던 한신대학교였다. 김 교수는 그런 한신대의 민주화를 주장하다 고 정운영 교수와 동반 사직했고,89년 2월 서울대에 자리를 얻었다. 그의 서울대 임용은 ‘정치경제학’ 전공 교수를 원하는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수업거부 및 타교 학생들의 연대시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교수는 “이 사건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크게 확장하고, 각 대학이 진보적 교수들을 대거 영입해 교과과정을 대폭 개정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근무 19년째가 되는 올 8월29일, 서울대 경제학부 인사기획위원회는 퇴임을 앞둔 김 교수의 후임으로 마르크스경제학이 아닌 ‘경제학일반’으로 채용자격을 결정했다. 마르크스경제학으로 특정할 경우 우수 교수를 영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김 교수는 “나를 끝으로 서울대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이란 과목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5일 서울대 교수회의는 ‘경제학일반’으로 채용자격을 확정하고,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 채용여부는 다음 학기에 재논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자본론 완역 학계기여 가장 뿌듯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나아가 ‘종언’을 이야기하는 시대. 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가 위기였던 적은 없다.”고 단언한다. 평생 마르크스를 읽고, 연구하고, 가르쳐온 그는 “90년대 이후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급격한 쇠퇴는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쇠퇴가 아니라, 학문적 유행에 민감하게 처신하며 마르크스주의를 폐기처분한 지식인들의 위기”라고 진단했다.‘변종 마르크스주의’인 스탈린주의가 맹위를 떨쳤던 한국 사회에서 ‘스탈린주의 몰락’을 ‘마르크스주의 몰락’으로 등치시킨 지식인들이 철저한 반성적 평가 없이 너무 빨리 사상적 포기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과학계는 하나의 화두에 천착해 평생을 연구하는 풍토가 취약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심각한 과제 중 하나로 거론되는 학문후속세대의 재생산 문제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비관하지 않았다.“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급증 등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현실적 문제가 대안적 사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고, 대안적 사상의 중심엔 늘 마르크스주의가 있어 왔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감지된다.”면서 “현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주류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제3회 ‘맑스 코뮤날레’를 개최하며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가 “우리는 전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올해는 한·미 FTA가 타결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돼 사회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되는 원년”이라면서 “공동체적 연대가 점점 약화되는 지금 마르크스주의를 통하지 않고서는 대안을 모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퇴임후도 사회과학대학원서 강의 김 교수는 무엇보다 제대로된 연구와 공부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회의를 갖기 전에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면서 “그 후에야 어떻게 실천할지, 어떻게 마르크스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 ‘마르크스주의 전파자’로서 역할을 설정하고, 평생 수많은 책을 읽고 쓰며 마르크스주의와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지적이다. 김 교수가 한국 학계에 기여한 가장 큰 공로는 역시 ‘자본론’ 완역을 꼽을 수 있다. 엄혹했던 시절, 일본에서 귀국하는 친구 이삿짐 속에 북한판·일본판본까지 숨겨와 번역한 ‘자본론’은 마르크스주의에 목말랐던 국내 학계의 지적욕구를 해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교수는 여전히 ‘자본론’을 “세상을 올바로 보는 눈이자,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파악하는 유익한 도구”라고 믿는다. 다만 “‘자본론’의 현재화를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독점과 금융공황, 대외관계 등을 오늘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퇴임 후 김 교수는 비판사회과학 전문 교육기관인 사회과학대학원(가칭)에서 ‘자본론’을 강의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마르크스 전공자들이 생계 위협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직장인들과 상호부조시스템으로 결합된 학문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그의 마지막 꿈이다. 그는 “‘자본론’ 전파에만 몰두하느라 구체적 정책대안을 만드는 데 적극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면서 “이젠 짐을 좀 덜었으니 앞으론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가까운 지인들을 초청해 오는 11월22일 조촐한 퇴임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빈 라덴, 환경운동가로 변신?

    빈 라덴, 환경운동가로 변신?

    9.11 테러 6주년을 앞두고 공개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비디오 메시지에는 미국과 서방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은 없었다. 대신 전에 없던 새로운 내용들이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인 것이 환경 문제. 9일 선데이 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빈 라덴은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 TV를 통해 방영된 26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서방의 ‘자본주의 기업들’을 지목했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특히 아프리카 등에서 수 백만명의 목숨은 물론 삶의 터전을 잃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대기업 공장의 배출가스가 주요 원인인 지구 온난화 때문에 모든 인류의 삶이 위험에 처해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백악관에서 이들 기업을 대표하는 이들은 교토 협약을 지키지 않겠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빈 라덴은 또 “미친 듯이 오르는(insane) 세금과 부동산 모기지”를 언급,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빈 라덴이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4년 이후 3년여만이다. 선데이 타임스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인 빈 라덴의 새로운 모습이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일간 알-쿠드스의 편집자인 압델 바리 아트완은 “빈 라덴은 ‘나는 옛날의 빈 라덴이 아니다. 나는 새롭고 성숙한 빈 라덴이며 알-카에다의 정신적 지도자다’라고 말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또 미국인에게 이슬람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 빈 라덴의 메시지는 예언자 모하메드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UPI 통신에 따르면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 종교관련 단체인 ‘휴머니티스 팀(Humanity’s Team)’은 “빈 라덴의 성명은 분열을 일으킬 뿐 아니라 인류 화합을 강조한 모하메드의 가르침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50세인 빈 라덴은 비디오 영상에서 짙은 검은색 턱수염 등 한결 젊어진 모습이었지만 가짜 수염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백악관 전 대테러 관리인 리처드 클라크는 “가짜 수염을 단 것처럼 정말 이상해 보였다”면서 “3년전 테이프에서는 수염이 희끗희끗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특파원 칼럼] 프랑스 사회당 재기 몸부림 그러나…/이종수 파리 특파원

    프랑스 사회당이 ‘수렁’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언론들은 최근 침체 일로에 있는 사회당의 재기 가능성을 잇따라 조명하고 있다. 한동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사회당이 다시 눈길을 끌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달 31일 열린 사회당 연례 당원총회다. 현재 사회당 안팎의 주요 관심은 차기 대권과 당권 주자가 누가 될 것인가로 압축된다. 이와 맞물려 지난 5월 25년 동안의 동거 관계를 청산한 프랑수아 올랑드 당 제1서기와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이 라이벌로 부상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관심의 다른 축은 당 재건을 향한 구체적 프로그램이다. 사회당은 연말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당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를 위해 20명으로 구성된 당 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구체적으로 오는 13일부터 12월6일까지 2주일에 한번씩 좌파 지성인,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포럼을 개최한다. 또 11월부터는 새해 1월까지 매월 전국 단위의 토론회를 연다.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민족(함께 사는 방법) ▲시장(성장과 재분배) ▲개인 등을 둘러싼 개혁 방안이다. 혁신위원회는 다양한 토론회의 결과를 모아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사회당이 이처럼 당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지난 5월 대선 3연패(連敗)의 충격에 이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파를 초월하는 인사 정책인 이른바 ‘개방’의 폭풍 앞에 당 중진들이 추풍낙엽처럼 사르코지 내각에 흡수돼 갔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쿠슈네르가 외교장관직을 수락한 뒤 숱한 ‘코끼리’(사회당 중진을 의미하는 말)가 사르코지의 품에 안겼다. 그 행보는 최근까지 이어지면서 당원대회에 많은 중진들이 불참한 채 열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오넬 조스팽, 로랑 파비위스 전 총리 등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조스팽 전 총리 계열의 사회당원들도 16일 ‘좌파의 새로운 전망’을 주제로 인터넷 토론회를 개최한다. 파비위스 전 총리도 29일 파리정치대학원에서 측근 인사들과 함께 모임을 갖고 사회당 재기 방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이런 재기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의 앞날은 험난해 보인다.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나 조스팽처럼 당을 일사불란하게 끌어갈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차기 당권과 대권을 향한 내분으로 이어진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회당이 의사소통이 없는 바벨탑을 연상케 한다고 꼬집기도 한다. 또 저마다 당 혁신을 외치지만 ‘휘황찬란한 구호’만 난무하는 것도 혁신의 장애물이다. 자본주의는 현실에 맞게 신자유주의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데 정작 그에 맞서 대안을 찾으려는 사회당은 아직 원론과 구호에 머물고 있는 한 승부는 뻔한 것이 아닐까? 이와 관련, 파비위스 전 총리 계열의 사회당원 기욤 바셜레의 진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사회당 이데올로기의 위기를 주제로 ‘미래의 사막?’이란 저서를 낸 바셜레는 사회당의 위기에 대해 “1983년 이후 사회당은 두 가지 신화를 잃었다.”며 “사회당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려 했지만 결과는 자본주의가 사회당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사회당은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유럽을 바랐지만 결과는 반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위기를 낳은 원인의 하나로 사회당이 노동자와 화이트칼라와 멀어진 점을 들었다. 그는 대안으로 “이전의 ‘신화’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사회당이 다시 역동적으로 태어나 프랑스가 ‘좌우의 날개’를 펼지 주목된다.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 [문화마당] 베이징에 다녀와서/신경숙 소설가

    중국인민문학 출판사에서 ‘외딴방’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계기로 베이징을 다녀오게 되었다. 박완서 선생, 은희경 작가와 함께였다. 중국에 아직 한국문학이 다채롭게 번역되어 있지는 못하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에겐 일찍이 번역되어 중국 대중들에게 많이 읽힌 인터넷 소설을 쓰는 귀여니나 ‘국화꽃 향기’ 정도가 한국작가이고 한국문학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중국에서 대표성을 지니는 출판사에서 이번 베이징에 간 세 작가의 ‘그 남자네 집’‘새의 선물’‘외딴방’이 동시에 출간된 것은 뜻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이 이룬 성과이기도 하다. 겉보기에는 중국이 거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내부 깊숙이 들어가면 사회주의의 큰 통제 속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실감한 계기가 되었다. 최근 들어 한국에 중국문학이 봇물 터지듯 번역되어 나오고 작품의 질도 상당한 수준을 이루고 있다고 여기고 있던 나로서는 사뭇 새로운 경험이었다. 중국소설의 대부분(번역되어 있는 것밖에 읽을 수 없긴 했으나), 특히 비판적인 어조로 쓰여진 작품들이 당대의 중국 현실을 피하고 문화혁명 때의 시기가 초점이 되는 것이 나에겐 늘 의문이었다. 그것이 고도의 정치적 통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어내면서 의문이 풀렸다. 작가가 작품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건 작가로서의 권리이며 의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비판의 한계선을 작가의 고민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국 당국이 정한다는 느낌이었다. 번역 작업이 다 된 김훈의 ‘칼의 노래’가 명나라 적장을 호감 있게 그리지 않는다고 해서 출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이상하기도 하다, 대국의 속이 그렇게나 좁을까, 싶었는데 그 또한 중국사회가 고도로 발달된 감시와 통제로 이루어진 사회라는 것을 감안하고 나니 나름의 이해가 생겼다. 세세한 이야기는 해 볼 수 없었지만 중국 태생이면서 프랑스로 건너가 불어로 소설을 쓰는 샨사라든가 미국에서 역시 영어로 작품을 쓰는 하진이라는 중국작가들을 중국내의 현역작가들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샨사나 하진이 그들의 조국이랄 수 있는 중국에서 작품으로 소통되는 것이 얼마간 통제받고 있다는 느낌은 묘한 것이었다. 몇해 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도 우리는 중국작가라고 생각하지만 중국내에서는 프랑스 작가로 여기고 있었다. 중국사회의 통제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이 이유인 것 같았다. 특히 하진의 작품을 읽어보면 지금의 중국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많다. 이렇게 다른 나라로 나가야만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중국작가의 상황이라고 생각하자 그동안 광대한 스케일의 중국작품을 읽으면서 가졌던 은근한 두려움이 슬쩍 삭감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새삼 그냥 단순하게 평가해서 어떤 이야기를 쓰든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베이징은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이었다.88년도의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베이징도 어딜 가나 건물을 신축하고 길을 새로 내느라 분주했다. 그 와중에 오래된 것들이 낡았다는 이유로 무너지고 있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대체 올림픽이 뭔데 저럴까 싶은 마음은 내 마음에 불과하지만 옛것을 마음대로 부수고 나서야 그 가치를 실감하는 건 베이징이나 서울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올림픽을 치르고 난 후에 베이징이 어떻게 달라질지 새삼 궁금해진다. 다른 건 몰라도 그때쯤엔 중국작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통제받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당대의 중국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하여 은근히 삭감된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복원되기를…. 신경숙 소설가
  • [아프간 피랍이후 해외선교 어디로] (2) 해외선교에 목매는 이유

    지난 1970∼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폭발적인 교회성장을 일군 한국 개신교는 세계 기독교계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인식된다. 짧은 기간 그 많은 신자를 교회로 불러들인 방식과, 도시는 물론 오지 구석구석까지 교회를 우뚝우뚝 세울 수 있는 힘이 과연 무엇인지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전 세계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갖는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전파과정에서 자본주의를 앞세운 미국 기독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는 자본주의 속성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다. 실제로 신자 수와 헌금액 같은 외형적 규모가 ‘좋은 교회’‘나쁜 교회’의 일차적인 척도가 되고 있다. 한국 개신교가 해외선교에 목을 매는 것은 바로 이 성장주의와 실적주의의 함정에 빠진 탓이 크다. ●90년대 교세 위축… 해외선교 돌파구로 70∼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 들어 개신교가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당연히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회의 조직 메커니즘 차원에서 계속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태생적인 속성상 90년대 이후 교세가 위축되면서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교세가 늘면서 몸집을 키워온 교회들의 예산은 매년 늘어나는 데 비해 성장 위축으로 적자가 쌓이면서 해외선교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교회가 계속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기대에 부풀어 각 교단이 앞다투어 늘려 왔던 신학자의 공급과잉도 해외선교의 큰 이유. 가장 큰 교단인 장로교단(통합)만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교회와 교인 수가 각각 23%,15% 증가한데 비해 목사 수는 63%나 늘어났다. 해마다 300명의 잉여 목회자가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졸업생의 45%만이 전임전도사로 진출한 것을 보면 절반도 안되는 인원만 임지를 찾아가는 실정이다. 성장주의에 익숙한 교회들의 내적 동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는 잉여 목회자들을 밖으로 밖으로 쏟아낸 것이다. 교회들이 선교 불모지대인 위험지역에 더 눈독을 들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실제로 교계에서는 위험한 곳에 얼마나 더 많은 선교사를 파견했는지를 ‘독실한 신앙심’의 척도로 여긴다. 공격적 선교에 치중하는 복음주의 교회들일수록 위험지역과 오지에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수천명이 사는 외딴 작은 마을에 한국인 선교사 수십명이 몰려드는 경우도 생긴다. ●위험지 파송 선교사 수가 교회 세 좌우 위험지역에 파송되는 선교사들이 차세대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 분쟁지역과 이슬람권 등 위험지역에서 선교를 이끄는 목회자가 귀국후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아 부상하는데 “정치인들의 커리어쌓기와 아주 유사하다.”고 교계의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위험지역 선교를 개인적인 지명도 향상의 수단으로 삼는 젊은 목회자들은 이들 지역 파송을 주저하지 않는다. 위험지역에서 선교경력을 쌓은, 인기있는 젊은 목회자들을 따라 교인들이 많이 몰려들고 당연히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충성도와 헌금 액수도 높아진다. 위험지역에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위험지역에 파송되는 선교사 수가 교회의 세와 인기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만 것이다. 교회들은 인기있는 차세대 리더들을 보고 몰려드는 젊은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교회의 노령화 극복이란 이득도 얻고 있다.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장)는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은 한국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지배의 제국주의적 선교 성향이 강하다.”면서 “해외선교의 깊숙한 늪에 빠진 한국 교회들이 태생적인 성장과 실적주의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구원’의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시론] 학벌사회는 현대판 신분사회다/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장

    [시론] 학벌사회는 현대판 신분사회다/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장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사건이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다른 이들의 학력 위조문제로 일파만파 번진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그늘인 학벌사회를 단숨에 수면 위로 올려 놓았다. 사람을 처음 소개받거나 알게 됐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람, 어느 대학을 나왔어?”라고 묻는 사회가 한국 사회다. 출신 대학에 따라 능력은 물론 교양과 인품까지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구별하려는 경향에서 자유로운 한국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학벌이 부재한 사회는 없다. 오랫동안 대학평준화를 이뤄온 독일에서도 어느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했는가는 자연스러운 관심사다. 다만 우리 사회처럼 어느 대학 출신인가가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학벌사회라는 말 자체가 문제를 웅변한다. 산업사회·자본주의사회라는 말처럼 학벌이 구조화돼서 전체사회의 재생산 메커니즘이 돼있는 것이 학벌사회다. 학벌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벌이 개인의 사회적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튼튼한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학벌을 기준으로 내(內)집단과 외(外)집단을 나누어, 내집단에는 더없이 관용스러운 반면 외집단에는 대단히 냉정한 사회가 학벌사회이자 바로 한국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이 중시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능력보다는 학벌이 중시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자리잡은 경향은 이후 일류대 입학에 모든 것을 거는 교육의 무한경쟁을 낳았고, 이는 다시 학벌사회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왔다. 학벌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가는 이른바 결혼시장에서도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가 개인의 주요 자산을 이루고 있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학벌사회를 어떻게 개혁할지에 대해선 그동안 여러 정책들이 제시돼 왔다. 어떤 이는 직접적 원인인 대학간 서열을 해체하기 위한 대학평준화를 주장하고, 어떤 이는 국립대학들을 네트워크화함으로써 학벌사회의 폐해를 완화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이는 학벌사회의 정점인 서울대학교를 해체하자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제안들이 세계화시대에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일례로 수백년간 대학평준화를 유지해 온 독일도 최근 엘리트 대학들을 선정해 대학간 경쟁을 부추기는 등 오히려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그럼에도 학벌사회를 이대로 놓아둘 수 없다. 학벌사회가 아닌 능력사회로 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기업과 정부를 포함한 사회조직들은 학벌이 아닌 능력을 중시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 학력기재란을 삭제하거나 공직의 경우 지역할당제를 실시하고, 학벌에 따른 차별금지법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의식의 변화도 중요하다. 공적 영역에선 비판하면서도 사적 영역에선 학벌을 따지는 우리의 이중의식이 학벌사회를 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일지도 모른다.10대 후반에 선택한 대학이 삶의 너무도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반민주적인 학벌의식과의 결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패자부활전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현대판 신분사회로부터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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