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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키워드로 본 인물] 글로벌 경제위기

    [2011 키워드로 본 인물] 글로벌 경제위기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올해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면서 국제사회는 큰 혼돈 속에서 1년을 버텼다. 위기를 수습할 정치 리더십은 실종됐고 각국 지도자들은 우왕좌왕하며 혼란만 부채질했다. 실망을 넘어 분노한 민심은 권력자를 갈아치웠다. 특히, 재정위기의 진앙이었던 피그스(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의 정권이 한해 동안 모두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미성년자와의 성추문 등 각종 스캔들에도 끄떡없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5) 이탈리아 전 총리는 이탈리아 경제에 신뢰를 거둔 국제 금융시장의 압박 속에 지난 11월 사임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총리직을 수행했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59) 전 총리도 국가부채의 덫에 걸려 같은 달 물러났다. 전세계 20여개국에서 대선이나 총선이 예정된 내년에도 경제난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이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집중되면서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99%’의 보통 시민들이 응전을 시작했다. 금융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는 지난 9월부터 금융권의 탐욕과 양극화를 비판하는 ‘반(反)월가 시위’가 불붙었다. 이 운동은 폭넓은 공감을 얻으며 미국 전역은 물론 북미를 넘어 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시위대는 내년 11월 미국의 대선을 앞두고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는 등 ‘2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생명의 窓] 이제 문화대국을 꿈꾸자/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생명의 窓] 이제 문화대국을 꿈꾸자/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오늘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경제’다. 특히 한국은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라가 온통 경제를 신(神)으로 섬기며 그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 하나하나에 따라 일희일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여러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종교에서 가르치는 신을 섬기고 있지만, 그것도 결국은 경제라는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을 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라는 이 맘몬 신은 가히 전지전능, 무소부재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경제제일주의가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제 생산지수(GNP)의 상승이 그대로 행복지수(GNH)의 상승을 의미한다는 것에 회의를 품는 이들이 는다는 뜻이다. 이럴 때 백범 김구 선생이 다시 생각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세기도 전에 김구 선생은 이미 경제제일주의의 한계를 예견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고 경제력도 아니다.” 백정(白丁)과 범인(凡人)임을 자처하고 ‘백범’이라 이름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번쩍이는 혜안이야말로 실로 대범(大汎)이요 비범(非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어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지금껏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가 부끄러울 뿐이다. 서양의 문화, 서양의 종교, 서양의 사상을 모방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던가? 특히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서양의 이데올로기를 통째로 받아서 서로 으르렁거리기까지 하며. 이제 ‘높고 새로운 문화’를 우리가 되찾고 이를 세계로 수출할 때가 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당연히 지금 세계로 퍼져 나가는 한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류도 물론 문화 수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는 지금의 한류보다 한층 더 심원하고 고매한 무엇이다. 얼마 전 TV에서 아프리카와 남미 여러 곳에 가서 학교를 지어주고 병을 치료해 주는 자원봉사자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온통 경제적인 이(利)만을 밝히는 소인배적 가치에서 해방되어, 혹은 자기 종교를 전파하겠다는 종파주의적 관심에서 벗어나, 순수한 사랑과 자비와 인의를 펴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아닌가. 또 있다. 그것은 곧 사랑과 자비와 인의의 바탕이 되는 우리의 ‘정신적’ 유산을 나누는 것이다. 서울 농대 학장을 역임하고 성천재단을 설립한 류달영은 20세기 다석 류영모 선생의 등장으로 한국도 사상의 수입국에서 사상의 수출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제나’에서 ‘얼나’로 ‘솟남’의 길을 가르쳐준 류영모도, 인내천(人乃天)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모두 하늘임을 일깨워주고 사람을 모두 하늘 섬기듯 섬기라고 가르쳐준 동학(東學)도 진정으로 자신과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우리들의 최고급 문화 상품이다. 김구 선생의 말대로 이 ‘훤훤효효’(喧喧??)하는 요란한 세상에, 우리나라가 이제 무엇보다 문화대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꿈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모두가 꾸어야 할 아름다운 꿈이 아니겠는가.
  • [‘나눔정신’ 실천하는 기업] 사랑 나누며 더하는 훈훈한 감동

    유럽연합(EU) 재정위기 등 글로벌 경기불안 속에서도 ‘나눔 정신’을 실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십시일반의 나눔 가치가 더 빛을 발해 훈훈한 감동을 전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간한 ‘2010 기업 및 기업재단의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전경련이 매출액 순위 500대 기업 중 2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회공헌 활동 지출 비용은 2004년 1조 2284억원에서 지난해 2조 8735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8~2010년은 금융 위기로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된 시기였는데도 사회공헌 관련 지출은 꾸준히 증가했다. 기업들이 사회공헌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올 상반기에 펴낸 ‘기업 사회공헌의 본질 보고서’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사회공헌은 기업에 더 이상 부수적 활동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라 기업이 반드시 추구해야 할 필수 경영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시혜적 성격의 비용이 아니라 사회와 기업 가치를 동반 제고하는 투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로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도 성금 전달, 급여 1% 나눔 등 기부·후원에서부터 장애인·저소득층 등 취약 계층에 전문 정보기술(IT) 교육 제공, 김장·연탄 배달 등 봉사활동, 법률·세무·인사노무 같은 전문 분야 조언 및 전문기술 공유 등 재능 기부, 다문화 가정 지원 등으로 폭넓게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의 ‘나눔 경영’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데 중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금융거래세 1% 거둬 빈자에 돌려줘라”

    “금융거래세 1% 거둬 빈자에 돌려줘라”

    ‘99%’의 시위는 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폐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치 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월가 시위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분석에 따른 것이다. 월가 시위대도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금융업계 규제 강화와 조세제도 개혁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든 금융거래에 1%의 세금을 물리는 ‘로빈후드세’의 도입이다. 시위대는 모든 금융·통화 거래에 세금을 물려 빈자(貧者)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금융시장 위축을 우려하는 미국, 영국 등이 반대하고 있어 입법화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시위대는 글라스스티걸법의 재도입도 과제로 내걸었다. 은행 개혁과 투기 규제를 목적으로 1933년 제정된 글라스스티걸법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각각 여·수신과 증권업무로 엄격하게 분리해 일반 상업은행이 고객의 예금으로 주식투자를 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우선순위를 둔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과 월가 은행들의 로비로 이 법은 1999년 폐지됐다. 초단타매매처럼 무수히 많은 매매를 반복해 결국은 개미 투자자를 울리는 고빈도 매매 금지도 시위대가 내세운 정책 가운데 하나다. 시위대는 또 부유층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 폐지와 ‘버핏세’로 불리는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연 100만 달러(약 11억원) 이상을 버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버핏세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이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버핏세는 일단 무산됐다. 시위대는 정치후원금을 내는 기업이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습을 막기 위해 정치인이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지 못하도록 선거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학자금 부채 탕감과 월가 범죄자 기소, 증권거래위원회의 금융 규제 권한 강화 등도 이들의 요구사항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정일 사망즉시 부검한 진짜 이유 알고보니…

    김정일 사망즉시 부검한 진짜 이유 알고보니…

    지난 17일 사망한(것으로 발표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부검이 이뤄졌다. 아무리 사인규명을 위해서라지만 북쪽 정권이 그토록 칭송하던 ‘위대한 영도자’의 몸에 칼을 댔다는 사실은 많은 남쪽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국내 많은 전문가들은 “두루뭉술하게 넘긴다면 암살이나 쿠데타 등 음모론이 확산될 수 있으니 화근을 없애려고 부검을 했을 것이다.”는 등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관점의 해석이다.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공산권 국가에서 부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자본주의권보다 너그럽다. 유물론(唯物論)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사망한 육신에 영혼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시신 훼손 등 사회적 논란도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서 김일성 주석도, 소련의 레닌·스탈린도 부검대에 올랐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검시나 부검에 대한 법률이 발달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련,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북한은 이미 1950년대부터 부검·검시에 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이 법은 외인사(外因死)와 사인불명 죽음에 대해선 반드시 검시나 부검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혹이 있는 죽음을 빠짐없이 조사할 수 있도록 한 검시 관련 법규가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다. 주검을 다루는 법 제도만큼은 최악의 인권국가인 북한보다 뒤처져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인우보증(隣友保證) 제도가 아직 남아 있다. 예전에 의사가 드물던 시절, 동네 사람 몇몇이 보증을 서면 죽은 사람을 그냥 땅에 묻어도 좋다고 허가한 제도다. 이 제도는 범죄에도 악용된다. 이웃의 보증만으로 자연사 처리될 뻔했던 2009년 4월 충남 보령 청산가리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 제도 때문에 한해 1만 7000명이 아무 확인절차 없이 사망처리된다. 김정일이 타살된 건 아닌지 의심하기 전에 오히려 매년 검증 없이 장례가 치러지는 대한민국 국민 중 억울한 죽음이 없는지 되돌아볼 때다. whoami@seoul.co.kr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김정일 사망 이후] 새터민 출신 공무원 3인 北전망

    [김정일 사망 이후] 새터민 출신 공무원 3인 北전망

    “지금 북한 주민들은 집단 최면 상태에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주민 가운데 80%는 진심이 아닐 것입니다. 당장의 체제 변화는 없을 테지만 북한 정서상 결국 김정은의 어린 나이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북한군 호위사령부에서 근무하다 2006년 북한을 탈출해 경기북부청에서 새터민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 김모(37)씨는 2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주민 사이에서 김정일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몇 개월 전 하나원을 방문했을 때 북한을 이탈한 주민들에게 들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주민 대부분이 김정일을 싫어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일의 죽음은 하나의 ‘거대한 가족’으로 각인돼 온 결과로, 일종의 집단 최면과 같은 것”이라며 “좋은 아버지든 나쁜 아버지든 아버지가 죽은 게 서러울 뿐 그 눈물이 김정일에 대한 진심은 아니다.”라고 했다. 북한에서 대학을 나온 뒤 2009년 탈북한 공무원 염모(35·여)씨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를 회상하면서 “김정일 사망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그 많은 꽃을 어디서 꺾어 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동원되는 주민이 많고, 김정일의 죽음보다 이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될 주민들이 더 걱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어릴 때부터 자기 생일은 챙기지 않아도 김일성이나 김정일 생일은 꼭 챙기는 것처럼 오래 지녀 온 무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터민 가운데 지방공무원 1호인 김모(40·여)씨도 이날 대화를 거들었다. 김씨는 하나원을 드나들며 최근 탈북한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장 체제의 변화는 없겠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세습도 정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조그만 애가 뭘 할 수 있겠냐’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만연했다.”며 “이미 북의 기득권층은 미숙한 김정은을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권을 장악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군복무 할 때 김정은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고 폄훼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북한의 경제체제가 ‘불완전한 자본주의’라고 정의했다. 재래시장에서 장사해서 먹고살고 부동산도 소유하는 등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적인 모습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하부구조는 초기 자본주의화됐다.”면서 “중국과 밀무역을 하면서 돈을 번 사람들이 모여서 아파트를 짓고,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탈북자들은 김정일 사망 소식을 듣고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전에는 김정일이 죽으면 만만세를 부를 것처럼 생각했는데 실권자들이 여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글 사진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특파원 칼럼] 우울한 크리스마스/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우울한 크리스마스/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마이크 설리번(54). 집 근처 공원에서 조깅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아저씨다. 그는 매일 아침 9시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출근을 한다. 침실에서 거실 컴퓨터 앞으로. 그는 석달 전 컴퓨터 시스템 판매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그 후 평일엔 하루종일 인터넷으로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는 그는 “직업(job)을 찾는 일이 내 정규직업(full time job)이다.”라고 말한다. 얼핏 농담같이 들려 웃을 뻔하다 그의 진지한 표정에 화들짝 놀라 거둬들였다. 그는 지난해 허리 수술을 받는 바람에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거의 다 까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달 안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파산할 위기라고 했다. 린다 하딩(27). 동네 교회에서 식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우연히 앉게 됐다. 그녀는 직장이 4개나 된다. 모두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작은 출판회사에서 해고된 뒤 생계의 벼랑 끝에 몰린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수집’했다. 리버티대학에서 영문학 석사까지 공부한 그녀는 지금 어학스쿨 2곳에서 파트타임 강사를 하는 한편 한 아시아계 부부에게 영어 개인교습도 하고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맞벌이 가정의 가정부로 일한다. 정규직업이 생기면 어떤 일을 가장 먼저 그만두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가정부 일”이라고 답했다. 토미 울프(41). 내가 사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고향(뉴욕)에 갈 거냐고 며칠 전 물었더니 그는 “올해는 여의치 않아서 내년에나 가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달 추수감사절 연휴 직전 내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갈 것”이라고 했었다. 그보다 앞서 지난여름 왜 휴가를 안 가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는 “추수감사절에 고향에 갈 것”이라고 했었다. 내가 그의 ‘답변의 역사’를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몰랐으면 좋겠다. 물론 경기가 좋을 때도 마이크, 린다, 토미 같은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은 그런 사람의 비율이 과거에 비해 너무 커졌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엔 미국의 5~17세 학생 가운데 45%가 빈곤층이라는 통계까지 나왔다. 사상 유례 없이 길게 이어지는 경기침체로 올해 미국에서는 예년에 볼 수 없던 현상들이 나타났다. 연중 최대 할인행사가 펼쳐지는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 날)는 과거 가족이나 친구끼리 쇼핑을 즐기는 낭만적 성격이 강했지만, 올해는 그야말로 전쟁 같았다. 좋은 물건을 먼저 차지하려고 한 쇼핑객이 최루가스를 뿌린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대낮에 쇼핑센터 앞에서 총기강도 사건도 일어났다. 자본주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 1% 부자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난 것도 사실은 전혀 ‘미국스럽지’ 않다. 워런 버핏 같은 억만장자가 스스로 자신의 세금을 올려달라고 나선 것은 빈부격차의 정도가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한국도 지금 미국 못지않게 경제가 어렵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반드시 ‘너무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안방에서 자신들의 행운을 쓰다듬으며 미소지을 때가 아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져 경제기반 자체가 무너지면 그 화는 결국 부자들에게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 버핏처럼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선 부자가 한국에는 한 명도 없는 것을 보면, 한국 부자와 미국 부자의 수준차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97.1’은 워싱턴 시민들이 즐겨 듣는 라디오 채널이다. 이 방송은 11월 초부터 하루종일 크리스마스 캐럴을 내보내고 있다. 불경기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일부러 띄우려고 그러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운전 중 나도 모르게 캐럴을 흥얼거리다가도 마이크, 린다, 토미를 떠올리면 기분이 심란해진다. 그들이 캐럴을 들으면 행복해할까, 아니면 우울해할까. 기자된 욕심에 꼬치꼬치 그들에게 사생활을 캐물었지만, 차마 이 질문만은 건네지 못할 것 같다. carlos@seoul.co.kr
  • [CEO 칼럼] 문명과 역사, 그리고 토목/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CEO 칼럼] 문명과 역사, 그리고 토목/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고대 로마가 전성기에 로마를 중심으로 372개의 거대한 도로를 113개의 각 속주를 비롯한 주요 지역으로 연결되도록 건설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이 도로는 로마의 경제를 움직이고 지역의 안정을 가능케 하는 ‘제국의 혈맥’이었다. 중국은 운하라는 수단을 통해 대륙의 거대한 영토를 소통하도록 만들었다. 흔히 수나라의 양제가 베이징에서 뤄양(陽)을 거쳐 항저우를 잇도록 만든 대운하만을 중국의 운하라고 생각하지만, 이보다 훨씬 전인 춘추전국시대부터 중국의 운하는 지역을 서로 연결해 왔다. 진(秦), 한(漢), 수(隋),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을 걸쳐 2500년 동안 운하는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며 경제, 문화, 정치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도로, 운하와 같은 토목사업은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토목공학을 영어로 시빌 엔지니어링(Civil Engineering)이라고 한다. ‘시빌’의 사전적 의미인 ‘문명의’, ‘시민의’라는 뜻은 도로·항만·공항·다리·철도·상하수도 등 토목이라는 건설 분야가 문명의 기초이며, 역사와 맥을 같이해 왔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토목 분야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한 것이 현실이다. 건설 산업 종사자를 속칭 ‘노가다’라고 폄하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며, 최근엔 ‘토건족’이라는 단어도 생겼다. 건설 분야를 단기간의 경기 부양을 위한 수단이나 일시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것 역시 구시대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토목 분야는 일반인들의 편견과 달리 매우 정밀한 계산과 최신 공법들이 동원되는 첨단 산업이다. 초장대 교량, 해저터널 등 눈으로 보이는 화려함뿐 아니라 안전과 편리함, 경제성, 지역의 문화 등을 고려한 문명의 발전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인프라는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건설 산업을 박대해야 할 정도로 모든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도로 연장(2.12㎞)은 2010년 말 기준으로 영국의 3분의1(6.78㎞), 일본의 4분의1(9.46㎞), 미국의 10분의1(20.48㎞)에 불과하다. 인구와 면적을 감안한 도로 연장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인 28위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겐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최근 한여름과 한겨울 전력난으로 인한 정전대란이 우려되고 있으며,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한 도서 지역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도로, 항만, 교량, 발전 등의 인프라 자체가 모자란 상황임에도 매년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은 줄고 있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공공 분야 국내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인프라 구축 산업 수주를 위해 노력하는 아이러니를 보여 주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정표에 ‘아시안 하이웨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중국, 인도를 지나 터키까지 연결되는 21세기 실크로드를 일컫는 아시안 하이웨이는 2004년 ‘아시안 하이웨이 네트워크 정부 간 협정’이 체결되면서 본격화됐다. 서구 자본주의 중심의 세계 경제 축이 아시아로 옮겨 갈 것을 예측하는 미래학자들에게 ‘아시안 하이웨이’는 문명학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지표가 될 것이다. 도로가 연결되고 물류가 이동하면 경제가 흐르고, 문화가 자연스레 소통된다. 미래에 ‘아시안 하이웨이’의 상습 정체 구간으로 대한민국이 지목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SOC 분야의 투자는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 [열린세상] 감성 없는 사회의 불만·불안/국중호 日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열린세상] 감성 없는 사회의 불만·불안/국중호 日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부자와 빈자 간의 부(富)나 소득 차이가 예전에 비해 더욱 벌어지는 양극화라 하지만, 부는 위쪽으로 쏠리고 사람숫자는 아래쪽으로 쏠린다. 자본주의 사회를 그냥 두게 되면 소수의 부나 소득이 상층으로 쏠리는 ‘버섯모양’이 된다(11월 15일 자 서울신문 ‘열린 세상’ 칼럼 참조). 유감스럽게도 자본(돈)의 힘은 냉정하다. 부를 거머쥐려 해도 대부분은 큰 자본에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러니 사람 수 분포로 치면 미끄러진 아래층에서 많은 사람이 아우성치는 ‘거꾸로 선 버섯모양’이 된다. 버섯모양이건 거꾸로 선 버섯모양이건 중간층이 엷어져 불만이 증폭된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국가가 소수에 집중된 부나 소득을 쪼아내 아래로 끌어내리고, 아래층에 있는 사람을 끌어올려야 그 병폐로 인한 불만이 사그라진다. 이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논리나 과학’의 세계가 아닌 ‘감성과 예술’의 세계이다. 아래로 쏠린 많은 사람들을 감싸고 보듬어 위로 끌어올리고, 위로 쏠린 부의 소유자에게 나눔의 동참을 설득해야만 불만 해소의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애플사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후, 2005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이 새삼 주목을 받았다. 그 연설은, 지금 하는 일과 미래의 일이 어떤 시점에서 연결될 것으로 믿으라는 ‘점(點)의 연결’ 얘기(그가 리드대학에서 청강으로 배운 서체가 그후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아름다운 서체로 살아났다는 점),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라는 얘기(그는 자신이 만든 애플사에서 쫓겨났지만 자신은 여전히 그 일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애플사 CEO로 복귀), 그리고 ‘마음과 직관을 따라 살아가는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며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살아갈 것)로 메시지를 전한다. 스티브 잡스의 매력은 이처럼 ‘가슴과 직관’에 따르며 사는 용기를 호소하고 그 자신이 그렇게 실천하며 살아간 데 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일본 NHK ‘클로즈업 현대’라는 TV프로그램에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어 낸 스티브 잡스의 위대함은 제품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작품’을 만드는 열정에 있다고 했다. 우리의 손에는 작품을 느끼는 무한한 감각이 있다. 그 손 안에 놓인 애플의 ‘아이’ 시리즈가 감성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세계인이 열광했다. 이명박 정권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발전 수주, 카자흐스탄 화력발전소 공사 수주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주하였다. 이들 수주에 대해 국민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다가도 다시 금방 불만으로 변한 데는 바로 감성의 결여에 그 원인이 있다. 그 수주가 일부 계층의 부를 키워 버섯의 위층을 살찌게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 부를 향유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런 허탈감이 불만으로 표출되었고 또 삶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조선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순서였으나 이제는 좋은 대학을 나와 멋진 상공(商工)을 잡는 것이 큰 목적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사농공상은 파괴되었지만, 이제는 대학 간판이 감성 배양을 저해하고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상공(商工)으로 성공하려는 이면에는 ‘망치를 두드려 작품을 만들겠다.’는 현장 상공인을 주눅들게 하는 공포가 있다. 무겁게 짓눌린 이 불안과 공포는 우리가 ‘마음과 직관’에 따르는 용기를 잃지 않아야 걷어낼 수 있을 듯하다.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는 것은 앞으로 절실한 ‘감성정치, 감성경영’에 부과된 숙제이기도 하다. 대학 중퇴자인 스티브 잡스는 ‘무엇인가에 허기져 갈구하는 바보처럼 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말로 연설 마지막을 장식한다. ‘허기져 갈구하는 바보’ 같은 삶이 가장 충만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용기를 내기가 무척 어려운 곳으로 변해가는 한국이 불만과 불안을 넘어 어떤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만의 두려움일까?
  • [저자와 차 한 잔] ‘기로에 선 북한… ’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위원

    [저자와 차 한 잔] ‘기로에 선 북한… ’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위원

    “김정은 체제는 확고하며 안정됐다. 나이와 경험만을 갖고 그의 권력 장악력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9일 “김정은은 2009년부터 당·군·정 엘리트들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됐으며 최고위 엘리트를 제외하고는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광범위한 권력을 쥐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나온 ‘기로에 선 북한, 김정일의 선택’(한울 펴냄)은 “김정은 체제의 구축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반성 속에서 정 위원 등 현대북한연구회 회원 8명이 함께 펴냈다. 8명의 전문가가 북한 경제 변화 등 7가지 주제로 북한의 오늘과 내일을 보려 했다. 정 위원은 ‘김정은 후계 체계의 공식화와 북한 권력 변동’을 첫 장에서 소개했다. →김정은의 권력 승계는 어느 정도까지 이뤄졌고 얼마나 유지될까. -김정은은 최고위 핵심 엘리트인 정치국 위원과 후보 위원 30명을 제외하고는 독자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09년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맡음으로써 북한 엘리트들에 대한 감시 통제권도 갖게 됐다. 김정일은 2009년 1월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운 뒤 군대 지도권을 넘기기 시작했고, 북한군은 ‘김정일과 김정은의 군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2010년 제3차 당 대표자 회의를 계기로 그를 도와 북한을 이끌어 갈 파워 엘리트 그룹을 새로 충원해 북한 체제는 안정적인 체계를 갖췄다. 김정일이 당장 사망하더라도 10여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후계 체제의 특징은. -더 군사주의적이고 모험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면서도 경제를 중시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실리를 위해서는 급격한 정책 변화도 수용하고 있다. 군사 공격 우려도 커졌다. 남북관계 및 대미 정책이 지그재그식으로 급변할 수 있고 초강경과 실용적인 유화정책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경제를 희생시켜 군수공업·국방을 강화하는 ‘선군·후경(先軍後經) 정책’으로 나타났다. 김정은은 군대와 경제를 동시에 중시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한다.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김정은의 권위가 미치나. -2009년 말 화폐개혁으로 북한 국민들 사이에 ‘애써 모은 돈을 국가가 빼앗아 갔다.’는 피해의식이 퍼져 있다. 당과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 강하다. 이는 새 지도체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후계 체제는 북한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전례 없이 나타나고 있다. CNC(컴퓨터 수치제어)라는 영어 이니셜이 2009년부터 노동신문에 등장하더니 2010년 신년 공동사설에도 나왔다. 첨단기술과 실용주의 강조를 비롯해 경제적 자본주의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난 속에 사회주의 평등교육이 무너지고 특권층 자제들이 다니는 특수·영재학교가 번성하고 있다. 영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 교육도 강화되고 있다. 스위스에서 4년 반 동안 중·고교 생활을 한 김정은은 ‘자본주의는 악’이란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있지 않고 자본주의의 장점을 알고 있어 장기적인 체제 생존을 위해 개방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권력 기관에서 30~40대 엘리트들이 핵심 간부로 부상하고 있고, 젊은 세대가 수혜 계층이 됐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3대혁명소조 운동이 전개된 것과 유사하다. →대중 의존도 심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자주 외교에서 대중 편승 외교로 바뀌고 있다. 중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중국의 대북 전략도 바뀌었다.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에 북한을 바꾸기 위해 개방이 필수적이라고 보면서 경제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전략적인 관점에서 황금평 개발 등에 관여하고 있다.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르 아브르’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르 아브르’

    비토리오 데시카의 ‘구두닦이’(1946)는 천진난만한 구두닦이 소년에게 닥친 비극을 다룬다. 말을 가지고 싶었던 소년의 꿈은 어른들의 추악한 세계와 접촉하면서 산산조각 난다. 데시카는 2년 후 발표한 네오리얼리즘의 걸작 ‘자전거 도둑’에서 세상이 여전히 차갑고 쓰라린 곳이라고 탄식한다. 결국 그는 다음 작품인 ‘밀라노의 기적’(1951)에서 리얼리스트가 해서는 안 될 짓을 벌인다. 종이와 천 조각으로 차가운 겨울의 땅을 버티는 하층민의 이야기인 ‘밀라노의 기적’은 마지막 장면에서 기적을 베푼다. 가난한 자들이 빗자루를 타고 천국으로 가는 판타지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다. 데시카는 그 장면 위로 ‘안녕이라는 말이 정녕 안녕을 뜻하는 세상을 위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데시카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 아마도 지금 세상에서의 유일한 감독이다. 8일 개봉한 ‘르 아브르’에서 카우리스마키는 또 한 명의 ‘구두닦이’를 현재의 세상으로 데려와 가난한 자들의 연대를 통해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꾸기로 한다. 알다시피 세상은 더욱 메말랐고, 구두닦이는 한물간 노인네다. 살아 있다면 데시카조차 기적이 불가능하다고 말릴 상황이다. 카우리스마키는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위대한 스승의 등을 두드리며 염려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필코 ‘르 아브르의 기적’을 만들어 보인다. 마르셀은 프랑스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서 거리의 구두닦이로 일한다. 아내 아를레티는 그를 사랑으로 대하고, 그는 그녀를 과분한 존재로 여긴다. 어느 날 치료가 불가능한 병에 걸렸음을 통보받은 아를레티는 의사에게 남편이 사실을 모르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내에게 임박한 죽음을 알 리 없는 순진한 남자 마르셀은 요즘 다른 일에 전념 중이다. 얼마 전 아프리카 난민을 태운 컨테이너가 항구에 잘못 도착했는데, 난민 무리에서 탈출한 소년 이드리사가 마르셀과 우연히 마주쳤다. 마르셀은 소년이 영국 런던에 있는 엄마와 만날 수 있게 작전을 펼친다.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풍요로운 현대사회가 기실 ‘위험사회’라고 경고한 바 있다. 물론 카우리스마키의 영화가 베크의 사회분석처럼 ‘성찰적 근대화’의 시선으로 ‘진보’를 바라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는 작금의 사회가 살기에 좋은 곳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풍요롭다 못해 먹을 게 넘쳐나는 자들이 왜 나누기보다 더 소유하기를 바라는 걸까. 착취와 강탈로 유지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1000억원을 번 자가 그 돈을 뱉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이미 1000억원을 쥔 대다수는 앞으로 그만큼을 더 원하는 것들이니, 지금껏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그런 쓰레기들의 영역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다. 기적이 일어나야 치료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아를레티가 “내 주변에 그런 건 없어요.”라고 대꾸할 때 마음이 아팠다. 기적은 신의 축복이다. 마르셀의 말대로 구두닦이는 서민과 친밀한 직업이며 예수의 산상 수훈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가난한 자들에게 축복은 당연한 일 아닌가.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보다 침묵을 주목했다면 이제는 빈곤한 공간을 살필 일이다. 사는 데 꼭 필요한 것 이상을 갖지도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 신은 가난한 그들에게만 기적을 행한다. 현대인은 타자가 몰려와 자신의 풍요를 빼앗는 위험사회를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난민을 막는 그들의 마음이 진짜 위험사회를 만든다는 건 알지 못한다. 영화평론가
  • 금융계 文史哲에 길을 묻다

    금융계 文史哲에 길을 묻다

    금융계에 문사철(文史哲)로 대표되는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반(反)월가 시위 등을 겪으면서 인문학적 바탕이 없는 금융은 소비자와 시민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기관 직원들은 금융소비자 보호에서 나아가 인문학적 문제 해결력을 요구받고 있다. 신입사원으로 경영·경제 분야뿐 아니라 인문학도를 채용하는 것도 거론된다. 금융계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가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요즘 ‘문사철 총재’로 불린다. 간부회의에서 ▲‘박원순(서울시장)식 정치와 행정이 한국은행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느냐.’ ▲‘월가 시위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는 있느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물가와 금리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뭐냐.’ 등의 질문을 서슴없이 던진다고 한다. 지난 5월부터 3차례 열린 한국은행 팀장 워크숍에는 일본에서 귀화한 독도문제 전문가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와 중국 실크로드 전문가인 박한제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를 초청해 강의를 듣도록 했다. 김 총재는 최근 신입사원 선발과정이 끝났지만 중장기적으로 인문·사회과학적인 소양을 갖춘 인재를 뽑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거래소 역시 인문학 분야의 인재 선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고위관계자는 “시민들이 증시의 이익을 불로소득이 아닌 투자의 결실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인문학의 문제”라면서 “반월가 시위에서 볼수 있듯이 인문학 바탕이 없는 금융은 호응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의 행보도 파격적이다. 금융업계에 연일 소비자 보호를 제대로 하라면서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그는 “과거 금융회사들은 소비자 위에 군림했다.”면서 “정작 이들이 어려움에 빠졌을 땐 ‘비 올 때 우산 뺏는 격’으로 외면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금감원에서는 점심시간에 햄버거를 먹으며 인문학 강좌를 듣는 ‘도시락 창조교실’이 인기다. 최근들어 표창원 경찰대 교수의 ‘대화와 협상기법’을,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한국의 소비트렌드’ 강연을 들었다. 연초에는 김정운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로부터 행복을 위한 여섯 가지 노하우를 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느끼는 접촉 ▲서로 즐거움을 흉내내는 정서 공유 ▲부하직원을 폼나게 활약하게 하는 리더십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 보기 ▲감탄 잘하기 등이 주요내용이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현자는 역사에서 배우고 바보는 경험에서 배운다.”면서 “상생, 동반성장, 중소기업 지원 강화 등은 경제논리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인문학적인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행장의 내년도 경영화두는 축기견초(築基堅礎). 속도보다는 완벽한 준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한 은행 관계자는 “그간 이윤을 늘리는 직원이 회사에서 무조건 최고였는데 직원들과 잘 소통하고 사회적 공헌에도 관심을 받는 이들이 주목받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면서 “반월가 시위의 기류가 금융업계의 수수료만 낮춘 게 아니라 문화도 달라지게 했다.”고 말했다. 이경주·오달란기자 kdlrudwn@seoul.co.kr
  • [사설] 무역 1조달러 시대… 이젠 질적인 변화다

    우리나라가 마침내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9번째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내수시장마저 빈약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수출입국’ 정책에 힘 입어 반세기 만에 이룩한 쾌거다. 한국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2009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5위, 연구개발(R&D) 지출 세계 7위이며,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은 세계 7위, 국제특허출원 건수는 세계 5위다. 또 디스플레이 세계 1위, 조선과 휴대전화 세계 2위, 반도체 세계 3위, 자동차와 석유화학 세계 5위 등 제조업 및 신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1960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 GDP가 6배 증가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무려 31배나 커졌다. 앞으로 3년 내 영국 등을 제치고 세계 5위의 무역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으로도 불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내·외자를 총동원한 국가 주도의 성장전략과 근면한 국민성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이룩한 결과다. 하지만 무역 확대를 통한 고도성장은 88%에 이르는 대외의존도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야기했다. 글로벌 악재가 터질 때마다 우리의 자본시장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외부 충격에 극히 취약하다. 수출이 특정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전체 수출에서 상위 5개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42%까지 높아졌다. 대기업 의존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수출이 늘어나도 혜택이 대기업에만 집중되고 투자와 고용은 별로 늘지 않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에 양극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특정 품목의 경기 변동에 따라 국가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주력산업은 평균연령이 20년을 넘을 정도로 노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잠재성장력이 급속도로 위축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이 시급하다. 특히 ‘승자 독식’의 약육강식 구도로는 지속성 측면에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따뜻한 자본주의로의 진화가 불가피하다. 그러자면 수출 대기업들은 성과 위주의 경영 전략에서 나눔과 배려 등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사랑받는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것이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과제다.
  • [CEO 칼럼] ‘융합’이 진정한 경쟁력이다/김영호 대한지적공사사장

    [CEO 칼럼] ‘융합’이 진정한 경쟁력이다/김영호 대한지적공사사장

    우리는 ‘경쟁’과 ‘경쟁력’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입시경쟁은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한 이후에도 형태를 달리해 계속된다. 기술경쟁, 가격경쟁, 제품경쟁, 학벌경쟁, 취업경쟁 등 무한경쟁에서 이기는 기업, 기관, 개인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됐다. 각국 정부는 노동 시장의 유연화, 작은 정부, 자유 시장,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 금융 위기를 계기로 공공과 민간부문을 불문하고 경쟁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효율성을 높이고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경쟁은 양극화와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 고조 등도 수반한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이념과 명분에 사로잡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 왔다. 때문에 ‘시장경쟁’만이 능사가 아닌 상황이 온 것이다. 영국의 경제평론가 아나톨리 칼레츠키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자본주의 4.0’을 제시했다. 자본주의 4.0의 특징을 칼레츠키는 ‘적응성 혼합경제’라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민간·공공부문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혼합경제이며,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경제 규칙들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적응성 경제라는 것이다. 시장경쟁의 전능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정치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시장과 정치의 새로운 융합을 통해 자본주의의 진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융합’ 바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산업 전 분야에서 불어 왔다. 최근에는 기업경쟁이 격화되는 한편 업종 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산업과 기술의 융합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경쟁하면서 협력한다(copetition)’는 신조어처럼 경쟁기업 간 전략적 제휴가 일반화되는 추세다. 외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다른 기업들과 협력해 다양한 기술과 제품, 새로운 사업영역이 만들어진다. 특히 정보기술(IT)이 다른 산업분야와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딜로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지난 2005년 277억 달러(약 34조원) 규모이던 융합산업 시장이 오는 2015년 1628억 달러(약 202조원)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공간정보산업은 대표적인 융합산업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실시간 교통정보와 지리정보, 속성정보를 결합시켜 스마트폰으로 제공하는 등 ‘장소’를 기본값으로 하여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간정보산업의 특징이다. 며칠 전 ‘측량·지적 융합 시너지 창출 워크숍’이 국토해양부 주최로 열렸다. 대한지적공사를 비롯해 대한측량협회, 관련 학회 관계자들이 두 분야 간 상생협력 체계 구축방안을 논의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일반측량은 위치를 측정하여 지도를 제작하거나 건설사업에서 요구하는 도면을 작성하는 것이며, 지적측량은 토지의 소유권과 위치·경계·면적 등을 공적장부에 등록하기 위한 측량이다. 측량 결과의 다른 쓰임새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두 분야는 기준점 체계 및 기술자격의 중복운영, 측량 결과 상이, 기술개발(R&D)투자 저조 등의 문제점을 지적받아 왔다. 지적측량의 시장 규모는 연간 4500억원, 일반측량은 연간 1000억원 정도이다. 만약 두 영역이 서로 융합하고 첨단 IT기술을 접목해 국가공간정보 인프라를 창출하면 그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다. 더구나 세계 공간정보시장은 2015년에 150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좁은 국내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싸우기보다 대승적인 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면 세계 공간정보산업의 주도권은 대한민국이 쥐게 될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1년을 보내면서 내년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융합과 화합의 바람이 세차게 불기를 기대한다.
  • [김문이 만난사람] 최승희 탄생 100주년… 탈북제자 김영순 최승희무용교육원 원장

    [김문이 만난사람] 최승희 탄생 100주년… 탈북제자 김영순 최승희무용교육원 원장

    갈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서울 여의도 공원이다. 사뿐사뿐 춤사위를 연출하던 노()제자가 잠시 의자에 앉아 편지를 꺼냈다. 만지작만지막, 이윽고 소리내어 사무치도록 읽었다. ‘선생님은 그 자체가 예술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춤 가작(佳作), 아름다운 나비이런가, 아니면 매력적인 여신이었던가. 참으로 지구 상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고 무대를 날던 선생님! 전 세계의 무대를 빛내시던 대한민국이 낳은 무희! 비록 일찍이 세상과 이별하셨지만 선생님이 남겨놓은 춤은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보석 같은 춤, 우리 춤의 원조이신 선생님, 우리들은 영원토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후략)’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1월, 강원 홍천(원래는 서울이었으나 최근에 홍천으로 밝혀짐)에서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가 태어났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최승희의 마지막 제자’를 자처한 김영순(74)씨는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김씨는 현재 ‘최승희 춤 발전협회 회장’이자 ‘최승희 무용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북한에서 1967년 최승희가 숙청될 때까지 17년 동안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런 까닭에 누구보다도 국내에서 ‘최승희의 춤’을 가장 잘 기억하고 제대로 되새기는 특별한 제자인 셈이다. 김씨는 2003년 탈북해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온 이후 ‘최승희 춤’을 전도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해 질 녘 여의도 공원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물어볼 틈도 없이 계속 열변을 토해냈다. “20세기에 마라톤 손기정 선생이 있다면 최승희 선생은 무희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빛냈습니다. 실로 위대한 춤꾼입니다. 그러한 춤을 전수받아 제2, 제3의 최승희가 나와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미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최승희 선생의 춤을 접목시킨다면 한층 더 아름다운 한류 스타들이 세계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최승희 선생의 춤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우아한 모습을 스스로 창작한 우리 춤의 기본이자 아름다운 멋입니다. 관중을 사로잡는 눈빛과 동양의 신비한 매력을 가진 선생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선생 서울 남았다면 현재 무용가들 다 제자일 것 질문을 하려 해도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따발총을 쏘듯 말을 잇는다. “최승희 선생은 이념적으로 월북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 월북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붉은 사상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이념적으로 월북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데 무슨 사상이 있겠습니까. 순수한 참예술가로 하루속히 복권돼야 합니다. 해방 후 북으로 간 예술인들 대부분은 이념보다는 ‘예술 우대’ 선전에 속아 넘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최승희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이념의 희생자인 최승희 선생을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K팝 열풍의 주인공들,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의 디지털 기술에 선생의 춤을 접목시키면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숙청됐던 최승희가 후에 어떻게 복권됐는지를 물었다. “사후 30년 만에 선생님의 유해가 평양의 열사릉에 안치됐지요.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쓴 ‘세계와 더불어’란 책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조선 무용가 동맹위원장으로 민족무용을 살리고 인민 문화적 수양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요. 이것이 계기가 돼 복권됐습니다. 선생의 탄생일인 지난 11월 24일에도 북한 정부에서 열사릉 비석에 조화를 보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남한에서도 반드시 복권돼야 하고 진정한 무희로 자리매김돼야 합니다. 아마 최승희 선생이 서울에 있었다면 현재의 무용가들은 죄다 선생의 제자였을 것입니다.” 현재 남한에는 최승희의 제자가 얼마나 있을까. 김씨는 “무용가 김백봉씨는 친척이자 제자이며 전황씨는 유일한 남자 제자”라고 말했다. 또한 김씨 자신도 탈북해 남한에 있으니 대표적으로 3명이 되는 셈이라며 웃는다. 그렇다면 북한에는 제자가 어느 정도 될까. “약 50명은 됩니다. 유명한 무용가 등 그들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지만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습니다. 최승희 선생이 숙청당하고 복권될 때까지 한때 최승희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금기사항이었습니다. 다만 편무인 상태로 조심스럽게 흘러오다가 복권되면서 다시 살아나 활발하게 전수되고 있지요.” 북한에서도 추앙받던 최승희가 왜 갑자기 숙청당했을까. 잠시 뭔가 생각하던 김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57살 때, 그러니까 무대 데뷔 30년을 맞아 남자 제자 오몽희가 닭을 30마리 잡아다 드렸는데 당에서 이를 보고 ‘자본주의 뇌물’이란 말로 엄격하게 비판을 했지요. 이후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장 김창만이 주재한 회의에서 당 중앙위로부터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그러니까 가택연금의 벌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때 무대를 떠났고 그렇게 쓸쓸하게 지내다가 2년 뒤에 세상을 떠나셨지요.” 최승희와의 인연에 대해 묻자 그는 “평양예술대학 다닐 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며 당시를 잠시 회상했다.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춤에는 직선이 없다. 춤은 반드시 강약이 있어야 하고 굴곡과 매듭, 굴신의 호흡이 있어야 한다. 예술은 싫증이 나지 말아야 하고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선생은 무대에 서 있기만 해도 그 자체가 예술이었습니다. 의상이면 의상, 조명이면 조명, 그리고 음악 등 모든 것을 안무하고 연출하는 말 그대로 종합예술을 갖춘 타고난 분이셨습니다. 북한에 있는 제자들도 한결같이 지혜롭고 재능 있는 분이 57살에 무대를 떠난 것, 그리고 59살에 세상을 떠난 것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뒤 해방이 되자 1945년 10월 가족과 함께 평양에 들어와 살았다. 3년 뒤인 1948년 평양 제2인민학교 시절, 김구 선생과 김일성 등이 참석한 남북연석회의 때 춤 공연 출연자로 뽑히면서 무용가의 길을 걷게 됐다. 14살 때에는(6·25전쟁 발발 직전), 대동강변에 위치한 최승희 무용연구소(지금의 옥류관 자리)에서 춤추는 최승희를 담장 너머로 보면서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흠모하기 시작했다. 당시 최승희 무용연구소는 김일성 주석의 파격적인 배려로 설립됐다. 이런 인연으로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양예술대에 진학해 최승희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직접적인 만남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김씨는 북한에서 비운의 삶을 살았다. 1970년 10월 영문도 모른 채 국가보위부 조사를 받은 뒤 시부모와 1녀 3남의 자녀 등 가족들과 함께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다. 김씨 자신은 겨우 견뎠지만 가족들은 모진 수감 생활을 견디지 못해 죽었고 남편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수용소로 다시 끌려가 생사조차도 모르는 상태라며 눈가를 훔친다. ●“무용단 만들어 춤 보급·복권에 여생 바칠 것” “알고 보니 제가 성혜림의 친구라는 이유로 그랬더군요. 당시 보위부 조사를 받을 때 알고 있는 얘기를 전부 쓰라고 해서 자필로 ‘성혜림이 우리 집에 와서 자신이 5호댁(김정일 가족)이 된다고 했다’는 얘기 등을 다 적었지요. 그러고 나서 우리 가족이 몽땅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에 잡혀갔습니다.” 해는 이미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살다가 비록 탈북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인생살이가 못내 미운 듯 하늘을 쳐다본다. 애써 웃음을 짓지만 파란만장한 여인의 삶이 참으로 기구했을 터. 그런 찰나 김씨는 다시 최승희의 가족 얘기를 꺼낸다. “선생이 숙청당할 때 남편(안막)도 같은 신세가 됐지요. 선생은 안성희라는 딸을 두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선생의 오빠 최승일의 딸과 아들을 여러 차례 봤습니다. 딸은 작곡가, 아들은 무용가로 활동하면서 선생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그에게 앞으로 할 일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우선 대한민국에서 최승희의 복권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런 차원에서 ‘최승희 무용단’ ‘최승희 예술단’ 등을 만들어 최승희 춤 보급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최승희 작품으로 무용단을 만들어 선생의 춤이 이 땅에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북한에서 접한 진정한 선생의 춤을 남한에서 다시 꽃피울 수 있는 춤꾼 양성에 앞장서겠습니다. 선생의 작품은 표현력이 뛰어난 전통무용인 만큼 보석 같은 춤사위를 젊은 세대들에게 접목시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다시 알려야 합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정치범 몰려 9년 옥살이 후 탈북… 최승희 춤 전도 앞장 ●김영순 원장은 1937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된 1945년 가을 가족과 함께 평양에 건너와 살았다. 1948년 남북연석회의 때 평양제2인민학교 학생으로 무용 공연에 참여하면서 무용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4살 때에는 대동강변에 위치한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먼발치에서 보며 최승희를 흠모했다. 이후 평양예술종합대학에 진학했고 이때 최승희를 만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최승희와 함께 수십 차례 춤 공연에 출연하면서 최승희의 춤과 정신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최승희가 숙청당한 1967년까지 지근거리에서 춤을 배웠다. 최승희가 사망한 이듬해인 1970년 10월 성혜림(김정일의 첫째 부인)과 친구 사이라는 것이 드러나 국가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가족들과 함께 정치범으로 몰려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다. 9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중 불운하게도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 이후 2003년 1녀 3남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1명과 함께 탈북해 중국을 거쳐 남한에 왔다. 현재는 ‘최승희 무용교육원 원장’이자 ‘최승희 춤 발전협회 회장’을 맡아 최승희 춤 전도에 앞장서고 있다.
  • 30년 달려온 지하철 2호선 어제와 오늘

    30년 달려온 지하철 2호선 어제와 오늘

    총구간 48.8㎞의 서울 지하철 2호선, 30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2호선은 서울 대중교통의 심장이다. 2호선을 타고 가면 어느 쪽으로든 45분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KBS 1TV ‘수요기획’은 30일 밤 11시 40분에 지하철 2호선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지하철 2호선, 30년의 연가’를 방송한다. 2호선은 강북도 가고 강남도 간다. 가난하고 고된 삶이지만 꿈을 안고 살았던 봉천동과 구로 공단, 망각 속으로 사라진 80년대 스포츠의 메카 동대문 운동장, 허허벌판에서 한국형 부르주아의 도시로 탈바꿈한 강남, 그리고 민주화를 외치던 80년대 청춘들과 자유와 예술의 거리 홍대입구까지 30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을지로 순환선’이라는 작품을 통해 도시민의 삶과 풍경을 그림에 담아낸 만화가 최호철에게 봉천동은 특별한 장소다. 프로그램은 크로키북 하나 달랑 메고 봉천동 골목을 누비는 그를 따라 가난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던 그때를 떠올린다. 노동운동가 심상정 전 국회의원은 8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인 구로공단에서 20대 청춘을 보냈다. 이제 공단이 있던 자리에는 공장 굴뚝보다 더 높은 첨단 빌딩들이 들어섰다. 구로공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공장의 불빛들. 우리 현대사에서 잊혀져간 노동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조명한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강남, 2호선 강남역 근처는 온통 거대한 랜드마크다. 먹고 입고 소비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소비되고 유행처럼 번진다. 우리는 강남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욕망한다. 30년 전 논과 밭이 주를 이루던 한강 근처에 살던 평범한 소년은 이제 너무나 변해 버린 강남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었다. 강남 토박이인 ‘오렌지 리퍼블릭’의 노희준 작가와 함께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욕망의 청사진이 된 강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소설가 성석제는 만추의 끝자락에서 그가 20대를 보낸 신촌을 찾았다. 1987년 민주화를 외치는 뜨거운 함성이 이어졌던 그때와 달리 25년이 지난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살고 있을까. 그리고 청춘들이 내뿜는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 2호선 홍대가 있다. 그곳의 상징인 클럽 문화와 쇠락해 가는 지금의 모습까지 청춘의 공간을 따라가 본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은 저마다의 사연을 실어 나른다.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면서 우리 곁을 스쳐간 30년의 시간들. 그 기억들 위로 오늘도 지하철 2호선은 달려간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35)문예 비평가 발터 베냐민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35)문예 비평가 발터 베냐민

    곁눈질로 무언가를 뒤돌아보는 듯한 천사가 앙상한 날개를 펴고 막 날아오르려 한다. 발터 베냐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파울 클레의 작품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1920년)에 ‘역사의 천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에서 비극적인 자살로 48년 삶을 마감하던 1940년까지 자신의 분신처럼 소중히 간직했다. 그가 보기에, 이 천사의 이미지는 진보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채 미래를 향해 질주하던 당시의 시대적 가치에 반기를 드는 것이었다. 그는 역사에서 ‘구원’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다고 생각했고, 파탄 난 역사의 잔해에서 긍정적 가치를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20세기 초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던 당시 독일은 진보와 파국이 교차하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현대’라는 이름으로 쌓아올린 이 번영의 시대 이면에는 파탄난 전통의 잔해가 쌓여가고 있었다. 이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흔치 않게 기회를 쟁취한 계층이 있으니, 바로 유대인들이다. ●과거의 잔해로부터 구원을 이끌어 내다 베냐민의 가계는 당시에 부상하던 신흥 유대인 부르주아였다. 1892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난 베냐민은 부르주아 가정의 질식할 것 같은 안락함 속에서 성장한다. 촘촘하게 구획된 실내의 공간 속에서 보낸 자신의 유년기를 베냐민은 ‘감금의 경험’으로 회상한다. 베냐민의 부친은 골동품 거래상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의 집을 가득 채운 고가구와 골동품들, 이 낡은 과거의 잔해들은 베냐민에게 마법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일상적인 것 아래에 뚫려 있는 가장 깊은 갱도의 바닥에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골동품 보관소가 놓여 있는 것일까?” 베냐민은 이 폐허의 잔해더미에서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전통과 현재에 대해 질문했다. 1905년 튀링겐에 있는 진보적 교육기관 하우빈다 학교에 진학한 베냐민은 당시 청년운동의 지도자였던 구스타프 비네켄을 만난다. 그는 청년문화 부흥을 통해 중세의 공동체적 가치와 정신적 삶을 되살려 내려는 낭만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영향으로 베냐민은 요새처럼 그의 유년기를 감싸온 부르주아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한다. 이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지만, 청년운동으로 인해 각인된 기성세대와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염증은 베냐민을 전통 유대사상으로 이끌었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구원의 천사는 늘 파국의 상황에 섬광처럼 도래한다. 그렇기에 절망적인 상황은 소중한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그 절망 속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알 때,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베냐민은 유대 정신이 위기에 처한 유럽 문화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유대교의 랍비처럼 직업을 거부하고 공부에 매진하게 되는데, 당시의 대학사회는 유대인에게 교수의 길을 허락할 만큼 개방적이지 않았다. 베냐민의 아버지 역시 무모한 길을 가려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부자 간의 갈등과 함께, 베냐민의 파란 많은 인생도 본격화된다. 대학을 졸업한 베냐민은 프리랜서 작가의 길을 간다. 그는 지식인이 프롤레타리아의 대변자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지식인에게 열린 실천의 길은 글쓰기뿐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신의 창조를 이어받아 사물의 이름을 명명하는 일을 했던 아담의 사역처럼,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망각된 사물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 베냐민은 이런 자신의 작업을 ‘구제비평’이라 명명한다. 고대의 랍비들이 성서의 경구에 기대어 주석을 다는 ‘주석가’였다면, 베냐민의 ‘비평가’는 위기의 상황에 처한 전통을 해석을 통해 ‘구제’하는 자였다. ●비평, 과거의 전통을 구제하는 글쓰기 1920년부터 베냐민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친다. 괴테, 프루스트의 작품 비평을 비롯해 ‘번역가의 역할’, ‘폭력비판을 위하여’ 그리고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까지, 전반기 그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글들이 이 시기에 발표된다. “나 스스로를 위해 설정한 목표는 독일 문학 비평의 제일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에게 비평은 시대를 초월한 문학작품의 교훈을 논하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이 지금 여기에서 말해 주는 바를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작품이 가진 전통과 권위를 파괴해야 했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작업 방식은 ‘인용구’였다. 이는 언어를 작품의 맥락으로부터 끄집어내 전통과 권위의 베일을 걷어내고, 작품의 내재된 진리가 곧바로 드러나게 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당시에 이런 파격적인 글쓰기가 이해받을 리 만무했다. 인용구로 이루어진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는 평을 받았다. 파국이었다. 그러나 이 파국은 구원으로 이어졌다. 이 무렵, 러시아의 혁명적 지식인 아샤 라시스와 사랑에 빠졌고, 마르크시즘 및 공산주의와 접속했으며, 시인 브레히트를 만나게 된다. 그는 브레히트로부터 지식인이 어떻게 현실에 밀착하는지를 배웠다. 그 영향으로 저술된 책이 ‘일방통행로’다. 여기서 그는 비의적인 문체와 문헌학적 연구태도에서 벗어나 팸플릿, 기사 등의 대중 매체에 부합하는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신속한 언어만이 순간 포착 능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새로운 글쓰기를 얻는 대신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해 왔던 유대인 친구 숄렘과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이혼 소송으로 파산 직전에 이르렀으며, 아샤와의 사랑도, 차일피일 미루던 공산당 가입도 불발로 그쳤다. 나치의 압박이 심해지던 1933년, 그는 결국 파리로 망명길을 떠난다. 그리고 파리의 도서관에 앉아 “전쟁과 경주라도 벌이는 심정으로”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저술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파국이야말로 구원의 순간이라는 여전한 믿음으로, 그는 이 책의 저술에 모든 것을 걸고 난관을 돌파하고자 했다. ●인용으로 이루어진 역사서 ‘아케이드’ 아케이드는 초기 자본주의를 대표하던 건축물로 당시엔 대형 백화점에 밀려나 쇠퇴일로에 있던 공간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낡은 사물을 몽타주해 작품을 만들 듯이, 베냐민은 19세기가 남긴 이 폐허의 공간을 ‘인용’으로 재구성하려고 한다. 넝마주이가 쓰레기를 모아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수행하듯이, 그는 일상의 편린들을 수집하는 인용의 작업이 역사에 대한 구원의 계기가 된다고 믿었다. 1940년 가을, 베냐민은 스페인의 국경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사인은 모르핀 과다복용. 그의 묵직한 가방 안에는 온통 인용으로 가득한 유고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들어 있었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소중한 원고. 실패와 중단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을 대변하듯 이 책은 미완의 저작으로 남았다. 베냐민은 평생 어떠한 학파에 소속된 적도, 공인된 직함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의 대표 저작은 거부된 논문이거나 미완의 저작이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파국 속에서도 그는 당당히 ‘아웃사이더’의 삶을 선택했다. 파국과 위기의 상황을 각성의 계기로 벼려냈던 사상가, 발터 베냐민. 실패의 대가(大家)인 그는 우리에게 실패와 중단의 미덕을 가르친다. 그가 곧잘 인용하듯이,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재앙”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파국의 순간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꿈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힘이다. 폭풍과 같은 휩쓸림에 중단을 고할 때 우리는 섬광처럼 드러나는 자신의 본 모습을 대면할 수 있다. 질주하는 기관차의 브레이크를 당기고 역사 속에서 ‘진보의 폭풍’에 떠밀려 가는 구원의 천사를 멈추어 세우기. 그 순간, 삶은 다시 시작된다. 손영달 남산강학원 연구원
  • 화이트 교수 ‘오바마 독트린’ 분석

    2009년 이후 중국은 그전까지 미국이 아시아에서 누리던 주도권에 강하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아시아 순방을 하면서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미국이 수십년간 이 지역에서 행사해 온 헤게모니를 유지하고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도전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전략학 전문가인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를 반세기 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옛 소련을 겨냥해 제시했던 ‘트루먼 독트린’에 버금가는 ‘오바마 독트린’으로 명명하며 배경과 허실을 분석했다. 화이트 교수가 보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보듯 중국을 배제한 채 미국 주도로 아시아를 정치·경제적으로 재조직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오바마 독트린은 중국이 도전을 포기하고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발적으로 안 된다면 강제로라도 그렇게 되도록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군사적으로 호주 주둔군 확충을 통해 중국 군사력을 견제하는 한편 우방들과의 친선·동맹 관계를 더 넓고 탄탄한 전략적 연합 관계로 발전시키려 한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은 군사적으로 과거 소련보다 약하고 덜 위협적이지만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소련보다 더 부유해서 결국 훨씬 더 강한 적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순수 경제력에서 가장 근접하게 미국에 다가온 유일한 국가이고 미국이 맞닥뜨린 어느 국가보다도 강력한 전략적 경쟁자이다. 오바마 독트린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굴복하거나 중국 경제가 비틀거릴 것으로 기대하지만 중국은 “중국식 자본주의 모델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과거 30년간의 예측을 벗어나 이 기간 연평균 10% 성장했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과 미국의 상호 반작용으로 전략적 경쟁이 끝없이 고조되고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점점 잠식되면서 특히 미국에 막대한 비용을 안길 수 있고 최악의 경우 타이완이나 난사군도에서 전쟁 국면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화이트 교수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양국 간 세력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오바마 독트린을 ‘매우 심각한 실수’라고 규정한 화이트 교수는 서로 한 발짝 물러서서 아시아 평화를 위해 더 나은 기초를 다지는 방안을 중국과 미국이 타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Weekend inside] 反월가시위 점령 두달 ‘행동의 날’

    ‘월가 점령 시위’가 두 달째를 맞은 17일(현지시간) 미국 전역과 전 세계 주요 도시가 반(反)자본주의 구호로 요동쳤다. 월가 시위의 탄생지인 주코티 공원 등 시위장소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잇따라 쫓겨난 월가 시위대는 이날을 ‘전 세계 행동의 날’로 정하고 대규모 인파를 결집해 건재를 과시했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수천명이 시위에 참가한 가운데 최소 3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AP가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 참석자 10명, 경찰 7명이 다쳤다. 특히 오전 맨해튼 월가의 상징인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는 시위대 1000여명이 “매일, 매주 월가를 폐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래소 외부를 45분간 에워쌌다. 하지만 경찰이 해산에 나서면서 거래소는 제 시간(오전 9시 30분)에 장을 열 수 있었다. 국제서비스노조(SEIU) 소속 노조원 등 3000여명은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고 폴리광장에서 브루클린 브리지 쪽으로 거리행진을 이어갔다. 로스앤젤레스(LA), 라스베이거스, 보스턴, 시카고, 워싱턴, 포틀랜드 등 미국 전역에서는 이날 460건 이상의 동조 시위가 동시에 진행됐다. LA에서는 70명, 포틀랜드에서는 48명, 라스베이거스에서는 21명이 각각 경찰에 체포됐다. 세계 주요 도시의 시민들도 힘을 보탰다. 런던의 반월가 시위대는 이날 오후 6시까지 세인트폴 성당 바깥에 진을 치고 있는 캠프촌을 철수하라는 시 당국의 마감시한을 넘겼다. 런던시는 곧 사법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AFP가 보도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와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공공지출 감축과 긴축 조치 등에 반대하는 시민 수천명의 거리 행진이 이뤄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위험한 철학자 지젝 전도사로 나선 ‘로쟈’ 이현우-번역·서평서 출간

    위험한 철학자 지젝 전도사로 나선 ‘로쟈’ 이현우-번역·서평서 출간

    “그들은 우리가 모두 루저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루저들은 저곳 월 스트리트에 있다. 우리가 낸 돈으로 수십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가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밤낮으로 몇 주 동안 사유재산을 파괴한다 해도, 2008년 금융 시장 붕괴 당시 파괴된 사유재산의 양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피땀 흘려 이룬 그 사유재산 말이다.”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62)이 지난달 10일 미국 월가 시위에서 위와 같이 시작한 연설을 한마디 할 때마다 사람들이 따라서 외쳤다. 뉴욕시가 확성기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젝의 연설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지만, 현장의 육성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장됐다. 틱 증상이 있는 지젝은 월가 시위 연설에서 한마디를 할 때마다 티셔츠를 잡아당겼고, 보통은 끊임없이 코를 문지른다.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나 라캉과 헤겔의 철학을 크로스오버하는 시도를 처음으로 한 지젝은 공산주의자이자 행동가다. 워낙 많은 사람이 그의 책과 철학을 언급해 ‘지젝거린다’(지젝을 인용한다)는 조어가 있을 정도다. 70여권의 책을 썼고 이 가운데 30권 정도가 한국에서 번역됐다. 인터넷에서 필명 ‘로쟈’로 유명한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가 번역서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9·11 테러 이후의 세계’와 직접 쓴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상 자음과 모음 펴냄)를 통해 지젝 전도에 나섰다. ‘실재의 사막’에서 지젝은 9·11 테러를 통해 진정으로 읽어내야 했던 것은 “승자 독식의 안온한 자본주의 체제(지젝은 이것을 매트릭스에 비유했다)의 균열 그 자체”라고 강조한다. 지젝은 공산주의 시절에 나돌던 구닥다리지만 매력적인 농담 하나를 소개한다. 한 동독 인민이 시베리아에 파견되어 일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보내는 우편물이 검열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두었다. “암호를 정해 두세나. 만일 내가 파란색 잉크로 편지를 써 보낸다면, 그건 내가 쓴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일세. 만일 빨간색 잉크로 씌어 있다면, 편지 내용은 거짓일세.” 그가 떠난 지 한 달 뒤에, 그의 친구는 시베리아에서 온 첫 편지를 받았다. 파란색으로만 쓰인 편지였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굉장하다네. 상점은 질 좋은 음식으로 가득 차 있고, 극장에서는 서방에서 만든 유명한 영화가 상영되지. 아파트는 널찍하고 고급스럽다네. 여기서 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빨간색 잉크뿐이라네.” 그는 월가 시위 연설에서도 언급했던 이 농담을 영화 ‘매트릭스’와 연결해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은 지금의 안전하지만 통제되는 삶에서 한걸음 밖으로 빠져나올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자본주의 매트릭스의 안온한 삶에 머물면서 ‘최후의 인간’으로 살아가겠는가?’ 지젝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빨간 알약을 삼키고 밖으로 걸어나와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라고 선동한다. 이현우 교수는 “지젝만큼 진보적인 좌파 철학자는 있지만 지젝만큼 이해하기 쉽진 않다.”며 “지젝은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젝!’이란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의 강연 분위기는 ‘나꼼수’(나는 꼼수다) 콘서트처럼 열광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넷 방송 ‘나꼼수’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으로 정권의 실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있다.”며 지지했다. 지젝이란 이 시대의 철학자를 ‘나꼼수’처럼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방식으로 알리는 것이 서평꾼 ‘로쟈’의 역할이라는 이야기다. 소수 지식인이 지젝의 철학을 이해하기보다는 대중이 그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젝 읽기는 타성과 기득권과 편의주의와 무사안일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나 ‘우리 집안만 빼고 다 망해라!’와 같은 유구한 심보에 대한 저항이다. 가진 게 많다고 믿는 ‘대한민국 1%’는 지젝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재의 사막’ 1만 9000원, ‘로쟈와’ 1만 35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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