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자본주의
    2026-02-21
    검색기록 지우기
  • 전자제품
    2026-02-21
    검색기록 지우기
  • 판타지오
    2026-02-21
    검색기록 지우기
  • 공화당
    2026-02-21
    검색기록 지우기
  • 유엔총회
    2026-02-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846
  • [주말 인사이드] 정도전 쥔 황우여 vs 조정래 든 김한길… 여의도, 한여름 인문학 열전

    [주말 인사이드] 정도전 쥔 황우여 vs 조정래 든 김한길… 여의도, 한여름 인문학 열전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한여름의 대지를 달구는 요즈음 여의도 정가에 인문학 바람이 뜨겁다. 휴가철마다 국회를 벗어나 각자 지역구에서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국회의원들이 이번 여름은 유독 인문학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의 원동력으로 인문학을 꼽은 것도 이런 열풍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책보다는 의정활동 보고서를 쥔 모습이 더 어울리는 의원들이 인문학 고전 읽기 모임 등에 앞다퉈 참여하고 있다. 인문학 열풍의 주역은 민주당 소속 신학용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만든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이다. 결성 두 달여 만에 회원이 40명을 넘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를 비롯해 유승우·강은희 의원, 민주당 이용섭·최재천·김재윤·도종환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참여 중이다. 6월 첫 모임엔 당시 개봉 영화 ‘고령화 가족’의 원작 소설가인 천명관씨가 연사로 초청됐다. 지난달 모임 땐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씨가 초대돼 ‘작가로서 본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강연하고 의원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신 위원장은 “훌륭한 작가들의 인생관, 세상을 보는 눈을 이해하면 직접 사회를 해부해 볼 기회가 생기고 입법활동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모임 배경을 설명했다. 강은희 의원은 “역사소설이 의외로 감성적인 면에 도움이 되더라”면서 “정보기술(IT) 기업 CEO 출신이라 예전엔 경영서적, 디지털 관련 책들만 들여다봤는데 김훈 작가의 책을 읽으니 잠시 다른 세상으로 빠져나갔다가 오는 것 같아 매료됐다”고 전했다. 다른 의원들도 “삶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니 영감을 얻게 된다”, “한동안 안 읽던 책을 다시 읽게 되더라”는 소감을 내놓았다.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친분 있는 당내 의원들 몇 명과 뜻을 모아 공부 모임을 결성했는데 주요 테마가 ‘인문학 고전’이다. 세계 주요 명연설과 선언, 국제협약, 헌법재판소 결정 등을 기본 삼아 공부한 이후에 인문학 고전 읽기로 범위를 넓혀가기로 했다. 김 의원은 “인문학을 통해서 정치 현안에 대한 시각을 더 깊게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여름 휴가 시즌이 끝나면 참석하는 의원들이 훨씬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전 읽기 목록은 ‘서울대 선정 인문학 고전 50선’을 참고해 결정하기로 했다. 국회도서관이 9일 지난해 4월 11일 이후 의원들이 많이 대출한 인문교양 분야 도서 20권을 뽑은 결과 1위는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가 차지했다. 2위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3위는 로버트 B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였다. 올해 서정태 시인이 27년 만에 낸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1Q84’,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 등도 의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법륜 스님의 주례사를 모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가 랭크된 것도 눈길을 끈다. 혜민 스님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여야 지도부가 탐독한 인문학 서적들은 무엇일까. 독실한 크리스천인 새누리당 황 대표는 최근 읽은 책으로 성경과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 필립 페팃의 번역서 ‘신공화주의’를 꼽았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공화주의를 현실 정치에 접목한 ‘신공화주의’는 상생의 정치를 고민하는 여당 대표의 관심사를 반영해 준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메이커스’, ‘생각에 관한 생각’, ‘정글만리’를 완독했다고 한다. 팍팍한 장외투쟁 국면이긴 하지만 손에서 인문 분야 책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측근들은 “베스트셀러 소설가였던 만큼 신간은 두루 섭렵하는 편이고 책 읽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고 전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평소 옆구리에 시집을 끼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팍한 정치현장에서 심신을 달래 주고 삶의 해법을 찾아 주는 것은 순수 시”라는 게 강 의장의 지론이다. 사석에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을 즐겨 암송하는 등 인문학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전국 민생탐방에 나선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수행차량 안에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갖고 다니면서 읽는다고 측근이 전했다. 국회 사무처가 의원 및 1급 이상 국회 공무원을 대상으로 매년 개설하는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도 부쩍 인기가 높아졌다. 2011년 9월 12주 과정으로 처음 열렸을 때 의원 38명이 신청했지만 지난해에는 51명으로 늘었다. 인문학 서적 읽기 붐은 ‘인문학 속에 답이 있다’는 진리 앞에 정치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방증한다. 특히 박 대통령이 문화계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새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등 유별난 인문학 사랑을 보이는 것도 여의도의 ‘인문학 바람’에 불을 댕긴 것으로 분석된다. 문화부장관을 지낸 4선의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정치권이 뒤늦게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치가 가장 후진적’이라는 비판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과거 세상이 권력의 힘으로 장악됐다면 이제는 정보의 힘으로 장악된다”면서 “인문학의 가치·철학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빛의 속도로 변하는 기술변화 과정도 따라잡을 수 없고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서민정치, 현장정치를 지향하는 의원들이 작가들이 고발하는 당대 사회상 속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인문학 예찬론을 폈다. 초·재선 의원들에게 인문학 서적은 큰 교훈이자 벗이 되기도 한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인류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 있는 인문학에서 사회를 조정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찾기 위해 인문학 서적을 접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민현주 의원은 “인문학은 사회 현안을 최종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설득력 있는 해답을 준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또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로 옛것을 지나치게 폄훼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옛것은) 새로운 것의 탄생 근거가 된다”면서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베를린장벽 붕괴후 이념 해체… 달라지는 사람들 면밀히 탐색”

    “베를린장벽 붕괴후 이념 해체… 달라지는 사람들 면밀히 탐색”

    “동독인에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는 모든 것의 마지막과 같았습니다. 음식도, 옷도, 화폐도, 심지어 공기와 사랑도 변했어요.” ‘심플 스토리’와 ‘아담과 에블린’ 등으로 국내 독자에게 알려진 독일의 소설가 잉고 슐체(51)가 올해 만해대상 문예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8일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통일이 가져오는 변화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면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변화된 체제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바뀌어 가는지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슐체는 1962년 옛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자느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못 봤지만” 20여년간 통일 전후의 독일을 면밀히 지켜봤다. 1998년 발표한 ‘심플 스토리’는 동독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통일 이후 달라진 동독인들의 삶을 그렸다. 그는 “독일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 두 언어의 체계와 관계를 알 수 있듯 한 체제를 경험하다 다른 체제를 겪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통일 이후의 가장 큰 변화로 그는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꼽았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일은 사라졌고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이 되었다. 이념이 떠난 자리에는 시장과 자본주의가 들어섰다. 베를린의 수돗물 민영화를 예로 든 그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성장과 민영화”라고 통독의 현실을 진단했다. 2011년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당시에도 “통일 이전에는 공산당 서기장에 대해 입도 뻥긋 못했다면 지금은 사장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슐체가 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장벽이 무너진 것은 어찌 됐든 큰 행운이었다”면서 “다만 조금 다른 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독에 급하게 편입되면서 동독의 경제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슐체는 설명했다. 그는 “생활 수준이나 교류 여부 등을 보면 북한과 동독은 비교하기 어렵다”면서도 “독일처럼 통일을 서두르는 대신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문혁은 역사의 비극” 中 홍위병 공개 반성

    신중국을 건립한 마오쩌둥(毛澤東) 탄생 120주년을 앞두고 마오의 최대 과오로 꼽히는 문혁(문화대혁명)에 참여한 홍위병 출신들이 잇따라 공개 반성 운동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변호사 장훙빙(張紅兵)이 과거 홍위병으로 활동하며 어머니를 총살당하게 만든 과오를 회고하고 문혁의 잘못된 역사를 후대에 알릴 것을 제안했다고 7일 신경보가 보도했다. 문혁의 광풍이 불던 1970년 8월 안후(安徽)성 벙부(蚌阜)의 한 시골 마을. 당시 16세의 홍위병이었던 장은 어머니 방중머우(方忠謀)가 가족 모임에서 마오를 비판하고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세력)의 수괴로 몰린 류사오치(劉少奇)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고 당국에 고발했다. 어머니는 그후 2개월 만에 반혁명 분자로 몰려 총살당해 생을 마감했다. 장이 공개 참회에 나선 것은 문혁 시대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는 좌파들의 최근 움직임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신문은 소개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 이 땅에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문혁으로의 회귀는 역사의 후퇴로 문혁 박물관을 건립해 잘못된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문화국 출신의 류보친(劉伯勤)이 한 잡지에 자신이 홍위병 당시 박해했던 교장·교사·급우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사과하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언급 자체가 금기시됐던 문혁 관련 증언이 속속 나오는 것은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 반좌파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마오를 추종하는 좌파들은 오는 12월 마오 탄생 120주년을 맞아 문혁 당시 필독서였던 ‘마오쩌둥 어록’ 신판을 출시할 계획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충분하다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충분하다

    찜통더위에 기신거리는데 웬 뜬금없는 사막 얘기냐고? 걱정하지 마시라. 테마파크처럼 짜릿한 즐거움이 샘솟는 사막 얘기를 들려드릴 참이다. 한낮에도 태양만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바닷가 모래사장에 선 것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어대는 곳이다. 세상에, 그런 사막도 있냐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예닐곱 시간 걸리는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 그곳에서 다시 서쪽으로 서너 시간을 달리면 이집트나 외몽골의 고비사막과 진배없는 샹사완(响沙灣)에 다다른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이게 무슨 사막이냐 싶었다. 네이멍구 제2의 도시 어얼둬쓰(鄂爾多斯·옛 오르도스)로 이동하며 설핏 봤던 옆모습이 되작여져 그랬다. 표를 끊고 리프트에 오른다. 만(灣)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리프트 아래 150m는 될 법한 폭의 옛 하천을 굽어보며 사막에 들어선다. 원래 이곳은 몽골어로 활시위를 가리키는 쿠부치(庫布其) 사막의 일부로, 일종의 사막 테마파크로 조성됐다. 쿠부치 사막은 동서로 262㎞나 되며 면적은 1만 6000㎢로 중국에서 일곱 번째,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사막이다. 삼사월 한반도 상공을 뒤덮는 황사의 40%가 쿠부치 등 네이멍구 사막들에서 날아오고 고비사막 것은 2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버선으로 신발째 감고 나니 영락없는 스머프인형들이다. 낑낑 오르는데 발로 어렵사리 감지되는 모랫바닥이 의외로 단단하다. 잘 미끄러지지 않으니 사방에서 재잘거림과 속살거림이 터져 나온다. 마치 사람들로 복닥대는 수도권의 놀이공원처럼. 아니나 다를까. 귓전을 때리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우리 노래 ‘여행을 떠나요’임을 알아챈다. 5분쯤 올랐을까. 사막 전경이 펼쳐지는데 눈이 시원해진다. 들머리에서 바라봤던 초라한 모습은 사라지고 사구(砂丘)들의 변주(變奏)가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배처럼 생긴 자동차에 오른다. 40~50명쯤 올랐는데 속력을 내니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부딪힌다. 재잘거림은 이내 환호작약으로 바뀌었다. 사막이 이렇게 서늘하다니. 이렇게 달려도 되나 싶을 즈음, 차가 멈추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선 것처럼 사람들에 떠밀려 차를 빠져나온다. 이제 놀이시설을 본격적으로 즐길 차례. 기사가 운전하는 지프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사구들을 헤집었다. 모래 바이크를 탄 뒤 마치 오아시스처럼 만들어 놓은 풀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나니 허기가 밀려온다. 500명쯤 들어갈까 싶은 뷔페 식당 한쪽에 광활한 사막의 풍경을 즐기며 식사할 수 있는 테라스가 꾸며져 있다. 다음은 낙타 타기. 앞다리를 꿇었다가 사람이 엉덩이를 안장에 붙이자 일어서는데 앞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렸다가 순간 하늘에라도 닿을 듯 훅! 올라간다. 현기증이 날 정도. 초원에서 말을 탔을 때보다 훨씬 안락했다. 몇 발자국 뗐을까. 허겁지겁 점심을 챙긴 여행객들이 줄줄이 낙타 등에 올라 더욱 깊은 모래뻘로 향한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隊商) 행렬처럼 꼬리를 문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이곳이 사막이란 사실을 계속 가로젓게 만든다. 이곳의 7월 평균기온은 섭씨 18~24도. 사막에서도 그늘막 아래만 들어가면 선선해졌다. 10분쯤 걸었을까, 내리란다. 마음은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자치구의 우루무치(烏魯木齊)를 지나 저 멀리 페르시아 언덕배기를 맴도는데…. 사막 열차에 올라 4시간 넘게 이어온 사막의 정경을 눈으로 다시 훑는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그랬다던가. ‘사막엔 인간의 욕망이나 호기심을 끌어당길 자연이나 인공의 사물들이 없기 때문에 영원을 관조하는 데 방해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사막화란 재앙을 테마파크로 꾸며 사람들의 욕망이나 호기심을 자본주의보다 더 철저하게 살피고 유도하고 돈을 받아내는 중국식 사회주의 논리가 철저히 투영돼 있었다. 그게 커다란 아쉬움이었다. 다음은 초원인데, 사막과 이렇게 닮은꼴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샹사완은 1950년대만 해도 양들이 풀을 뜯던 곳이란다.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놀랍기만 하다. 초원의 머지않은 미래가 사막이란 점을 깨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시라무런(希拉穆仁) 초원은 후허하오터에서 다이칭(大靑)산을 넘어 유채꽃과 해바라기가 만발한 평원 지대를 지나자 나왔다. 정말 시원(始源)으로부터 오는 듯한 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관광객을 받는 게르(몽골의 이동식 집)촌으로 변모한 목초지들은 4㎞, 많게는 10㎞ 이상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바람이 모든 여백을 메우고 그걸로 충분했다. 고비사막 아래의 이 동네도 몇십 년이 흐르면 샹사완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조선족 여성 가이드는 “2년 전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아 멀리 보이는 초지 색깔이 누렇기만 했다. 올해는 비가 제법 와 그래도 이만큼의 푸른 때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 한반도 황사도 여느 해보다 심하지 않았다. 유럽과 다른 지역에 견줘 키가 작다는 몽골말을 탔다. 세 시간 정도 그야말로 가없는 목초지를 돌아다녔다. 석양을 등에 지고 다른 게르로 향할 때는 정말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건맨들처럼, 아니면 고선지를 비롯한 옛 조상들의 기개가 가슴에 차오르는 자아도취에 빠졌다. 날이 흐려 그 멋지다는 노을은 구경하지 못했다. 또 주먹만 하다는 별들의 존재감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게르 옆 풀밭에 누워 술잔 기울이며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빛을 조명 삼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다. 밤 11시가 넘자 게르마다 쏘아올린 불꽃이 목초지와 하늘을 수놓았다. 시인 이육사처럼 ‘초인이 있어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던 광야의 밤이었다. 글 사진 후허하오터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가는 길:예전에는 베이징에서 비행기 갈아타고 후허하오터까지 간 다음 버스로 시라무런 초원이나 샹사완으로 향했다. 제주항공이 처음으로 지난 한 달 동안 주 2회 후허하오터 직항 전세기를 운항했다. 주요 여행사들이 베이징 경유나 직항편을 이용하는 4박6일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데 가격 대비 만족도가 낮지 않다. 준5성급(실제로는 그 이하) 호텔에서 3박하고 양변기와 샤워기까지 갖춰진 게르에서 1박한다. 놀라울 정도로 날씨가 서늘해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 정도만 초원과 사막 여행을 할 수 있다. →칭기즈칸과 왕소군의 발자취:어얼둬쓰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칭기즈칸 능은 꼭 찾을 만하다. 칭기즈칸이 서하(西夏) 정벌을 앞두고 이곳을 지나다 여기 묻힐 만하다는 내용의 시를 남겼다. 그런데 원정 도중 풍토병을 얻어 이듬해 세상을 떴고, 그를 묻을 장소를 물색하던 부하들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말들이 꿈쩍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생전에 그가 휘두르던 채찍을 묻었더니 그제야 말들이 움직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몽골에선 시신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해 봉분이나 묘비를 세우지 않아 그의 시신이 진짜 묻힌 장소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후허하오터 근교에는 고대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인 왕소군(王昭君) 묘가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다) 시구를 남긴 왕소군은 흉노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한나라 원제가 공주라고 속여 시집 보낸 궁녀인데 중국 정부는 민족 화합의 상징으로 영웅시하면서 묘역을 성역화했다. 이곳도 옷과 모자 등을 묻은 의관묘(衣冠墓)이며 실제 시신이 묻힌 곳은 추측만 무성하다. 바오터우(包頭)에서 멀지 않은 메이다이자오춘(美垈召村)은 한족과 몽골족, 티베트족의 생활양식과 건축 방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곳이다.
  • [깔깔깔]

    ●신 개미와 베짱이 버전 1. 자본주의 버전 개미는 전근대적인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다. 그러나 베짱이는 3차 서비스업에 종사하여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재화는 베짱이에게 몰려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을 하게 된다. 2. 일일연속극 버전 개미와 베짱이는 서로 사랑한다. 그러나 베짱이 엄마는 딸을 돈 많은 메뚜기와 혼인시키려 한다. 베짱이 아빠도 개미와 베짱이가 혼인하는 것을 막고 있는데 그것은 개미가 제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메뚜기와 베짱이가 혼인하자 개미는 복수를 다짐하며 해외로 떠나는데….
  • 富는 타고난다?… 재물 집착에 대한 충고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베트남을 떠난 난민선은 미국을 향하고 있다. 뒤집히기 직전이다. 선장은 살고 싶으면 가진 짐을 모두 바다에 던지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난민들이 가진 것은 목숨과도 같은 금괴뿐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들은 “체중이 무거운 사람이 더 많이 버려야 하는 게 아니냐”며 옥신각신 다툰다. 금괴 없는 이국에서의 생존은 더욱 지난하겠지만, 그조차 죽고 나면 끝이라는 것이 이들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퍼뜩 정신을 차리는 것은 앞서 가던 배가 난파하는 것을 목격한 뒤다. ‘부의 본심’은 제목 그대로 부(富)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전하는 난민선의 사례는 죽음 앞에서도 부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현대인의 일면을 보여준다. 책에 나오는 중국의 속담대로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 시대다. 저자의 주장은 ‘부는 물과 같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부는 흐르고, 증발하고, 얼어붙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고, 낮은 곳으로 흐르고, 더러운 것을 받아들인다.” 투자자가 은행에서 빌린 돈은 부동산과 공장으로 흐르고, 노동자는 공장에서 임금을 받아 시장에 소비한다. 부를 쌓는 데 탈세와 횡령 같은 더러운 수단이 동원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1978년 ‘상흔’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중국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저자 루신화의 이력이다. 푸단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문화대혁명 당시 반동으로 몰린 어머니와 그 딸의 이야기를 통해 문화대혁명이 중국에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졸업 후 문단을 떠난 저자는 사업이 실패하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인력거를 끌며 학비를 벌었고, 로스앤젤레스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하며 눈앞에서 엄청난 거액이 오가는 광경을 지켜본다. 역사의 상처는 자본주의의 상처로 환치된다. 저자는 “어느 시대나 각 시대의 ‘상흔’이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나 저자가 부를 대하는 태도는 다소 추상적이고 순진하다. 하늘의 도에 따라 부는 부자에서 빈자에게 흐르게 된다거나(1부 6장) 개인과 민족의 부는 우주의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2부 5장)는 주장에 이르면 뜨악해진다. 무엇보다 “하늘의 도에 순응하며 사람의 욕심을 조절하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원론적이다. 세상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中보수파 “민주화는 망국론” 여론몰이

    중국에서 좌우파 간 이념 대립이 치열해지고 있다. 보수파들은 헌정을 도입해 법치와 민주화를 실현하자는 자유주의파의 주장이 망국론이라며 관영 매체들을 앞세워 연일 비난 공세를 퍼붓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2일 ‘중국, 사회혼란 생기면 소련보다 참혹’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민주화 이후 구 소련은 붕괴됐고 국민들은 천연자원을 팔아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중국은 그나마 내다 팔 자원도 없다”며 민주화는 절대 수용불가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중국 사회주의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고 헛소문을 퍼뜨리며 서구 자본주의적 헌정모델을 찬양하는 세력이 있다”면서 “연일 인터넷에서 인민들을 호도하는 당신들은 중국이 (열강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가난하고 약한 나라, 미국인의 앞잡이가 되는 나라, 그 재난의 시대로 되돌아가길 바라느냐”고 따져 물었다. 칼럼은 법치와 민주화를 실현해 중국의 일당 독재 폐해를 근절하고 사회발전을 이루자고 말하는 자유주의파를 겨냥한 것이다. 실제로 중앙당교 연구원 왕창장(王長江)은 지난 5월 당 기관지인 월간 학습시보에 관직 대물림 현상과 고위 관료의 부패 문제를 거론한 뒤 “대안으로 공산당도 헌법과 법률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며 민주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헌정 도입에 대한 요구가 표면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에 관영 언론들은 연일 반대 논리를 펴며 일당 독재를 공고히 하는 여론을 쏟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번에 처음 ‘사회혼란’ 등 중국 당국이 극도로 기피하던 단어까지 쏟아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공연리뷰] 락앤롤 맥베스

    [공연리뷰] 락앤롤 맥베스

    권력에 대한 그릇된 욕망이 불러일으킨 피비린내 나는 살육도, 고통과 후회로 울부짖는 맥베스의 죽음도 한낱 광대들의 조롱거리일 뿐이다. 지난 23일부터 서울 세실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락앤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한바탕 광대극으로 각색하는 비틀기를 시도하면서 오히려 원작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내용이 다소 난해하고 세태풍자나 음악 활용 등 세부적인 세련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극의 기본 틀은 광대들이 연기하는 맥베스다. 종이로 만든 단검과 왕관을 가지고 놀던 광대들이 서로 맥베스와 그의 아내, 덩컨 왕과 뱅코 등을 맡는다. 마녀들로부터 자신이 영주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하나둘씩 죽인다. 그러나 광대들은 “맥베스가 400년이나 공연돼 왔는데, 아직도 사람을 찔러 죽이느냐”라고 비꼰다. 광대들은 맥베스의 권력욕을 부추기다가도 권력에 취한 맥베스를 비웃으면서 동시에 부와 명예, 권력을 위해 횡포를 일삼는 한국사회의 ‘갑’들을 함께 비웃는다. 광대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명쾌하지만 그 메시지에 다가가기까지의 전개 방식은 다분히 난해하다. 두서도 논리도 없는 대사와 행동들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광대극의 본질이지만, 극의 흐름이 이어지다가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논리 없는 대사와 행동들 탓에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또 극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세태 풍자가 그다지 매끄럽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광대들은 자본주의, 부동산 광풍을 비롯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국정원의 선거 개입,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 각종 시사 이슈들을 한번에 쏟아내며 한국 사회의 권력자들이 맥베스와 다르지 않음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나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면 더 날카로웠을 세태비판은 너무 직접적인 대사로 풀어내면서 풍자의 맛이 반감됐다. ‘락앤롤’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락 음악 못지않게 귀에 익은 1990년대 댄스가요와 팝도 주된 배경음악으로 활용된다. 강렬하고 시원한 광대들의 락앤롤 파티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다. 8월 24일까지. 전석 2만 5000원.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금감원, 은행 고액 배당 손본다

    금융감독당국이 은행권 연봉에 이어 고액 배당도 손보기로 했다. 은행권 수익이 반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고배당 관행이 개선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주 자본주의에 반한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금융지주사와 은행의 수익과 배당 성향의 적절성 등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25일 금융지주회장과의 회동에서 임금 및 인력 조정 등 군살 빼기와 더불어 고배당 자제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최 원장은 “경기가 어려울 때에는 내부 유보를 늘려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좋은 경영전략”이라면서 과도한 배당을 자제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금감원은 하나금융에 중간 배당을 하지 말라고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올 상반기 주당 200원의 중간 배당을 계획했던 하나금융은 배당 규모를 주당 150원으로 줄였다. 올 3분기에 고액의 중간 배당을 시도하던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계획에도 감독당국이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고배당은 경영진에게는 높은 배당 수익을 의미한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3939억원을 배당했고,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의 경우 퇴임 이후 보유 주식에 변동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배당 수익은 1억 4000여만원으로 추정된다. 하나금융은 1084억원, 우리금융은 2015억원, KB금융은 2318억원을 각각 배당했다. 김승유 전 회장은 퇴임 이후 주당 450~700원의 배당을 받았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3년간 매년 1800여만원을 배당으로 받았다. 그동안 은행권 실적이 그다지 나쁘지 않고 경영 건전성에 고액 배당이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 감독당국은 개입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은행의 모든 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연봉 성과 체계 및 인력 조정에 이어 고액 배당 문제까지 정조준하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배당은 투자에 대한 대가이고, 다른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금융기관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를 일률적으로 자제하라고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트위터에 오른 평 보면 총알구멍 300개 난 듯 심신이 너덜너덜해요”

    “트위터에 오른 평 보면 총알구멍 300개 난 듯 심신이 너덜너덜해요”

    지난 22일 ‘설국열차’의 언론 시사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은 “대작이다, 글로벌 작품이다 등등 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원작 만화를 읽고 구상을 시작했을 때부터 국내외의 엄청난 관심 속에 개봉하기까지 9년.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봉 감독은 “트위터에 평이 올라오는 걸 보니 심신이 너덜너덜하다. 온몸에 총알 구멍이 300개쯤 난 것 같지만 즐겁다”는 소감을 밝혔다. ‘설국열차’는 제목 그대로 기차 영화다. 감독은 전부터 “기차 영화의 종지부를 찍겠다”고 공언해 왔다. 원작 만화의 세계는 영화를 위해 거의 완전히 재창조됐다. 주인공 남녀가 열차의 앞칸으로 나아가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꼬리칸의 승객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설정을 더했다. 감독은 “과포화 상태의 뜨거운 에너지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기차라는 공간이 주는 엄청난 흥분이 있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컨테이너 영화’를 찍는 건 아닌가 덜컥 겁이 났어요. 머릿속으로는 기차가 끝내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매일 세트로만 출근하려니 탄광에 탄 캐러 가는 기분도 들었고요. 공간의 단조로움이 느껴지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얼굴로 빨리 다가가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기차에 대해서는 원 없이 찍었죠.” 그의 말대로 열차는 “하나의 폐쇄된 생태계”를 보여준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있고, 슬럼가와 학교가 있다. 감독은 “열차의 모습이 우리와 의외로 비슷할 수도, 섬뜩하거나 씁쓸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열차와 얼마나 같고 또 다른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엔진칸이 신비화되어 있지만 그게 영원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기차에는 양극화된 자본주의 사회도 있고 공산주의 독재의 모습도 있어요. 시스템에서 탈출한다는 게 뭘까 많이 고민했어요. 커티스(크리스 에번스)에게는 뒤에서 앞으로 가는 게 탈출이지만 남궁민수(송강호)는 다른 차원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거죠. 혹독한 대가가 필요하고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걸 말하고 싶었어요.” 장면의 디테일을 워낙 꼼꼼하게 챙겨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은 감독답게 어느 장면 하나 공들이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는 “가장 처절하게 찍은 장면”으로 중반부의 횃불 전투 신을 꼽는다. “아무 조명 없이 실제 횃불로만 찍었어요. 암흑 같은 세트장에서 불이 확 붙으면 연기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심장이 쿵쾅쿵쾅거리면서 이상한, 원시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외국 스태프들은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추가로 임금을 줘야 하는데 그 장면만은 매일 밤 늦게까지 연달아 찍었죠. 메이킹 필름에서 그때의 제 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차기작은 아직 정해 놓지 않았다. 2010년부터 작업한 ‘옥자’라는 장편과 7000만 달러 규모의 할리우드 SF 등을 놓고 고민 중이다. 그는 “언젠가는 잔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에 도전하고 싶지만 아직은 강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몸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체코에서 영화를 찍을 때 영화를 그만두면 뭐할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충격이었죠. 영화를 너무 찍고 싶어서 울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고. 정말 미친 듯이 달려왔거든요. 연출부 일하면서 다른 사람 결혼식 비디오 찍어주는 걸로 생활하고 그랬어요. 이런 생각을 좋게 승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빨리 이 상태에서 벗어나야겠죠.”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커버스토리-대한민국은 힐링 중] “멘토링은 자기 관리법일 뿐… 뒤틀린 사회구조 개선돼야 진정한 힐링”

    전문가들은 ‘힐링2.0’으로 나아가기 위해 먼저 힐링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힐링을 개인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보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2일 “그동안 힐링을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를 위안하는 것으로 본 것이 한계”라면서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우울증이나 자살 등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쉽지만 사람은 사회 변화와 조건에 따라 삶의 의미를 만들어간다”면서 “진정한 힐링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사회적인 고려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유행한 대규모 ‘토크 콘서트’나 멘토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자기 계발과 자기 관리법에 관한 이야기이지 진정한 힐링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위로받는 차원의 힐링을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하는 힐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힐링은 자아와 환경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전제한 뒤, “힐링이 필요한 여러 문제들은 개인이 아파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 왜곡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힐링은 주변 환경, 사회적 관계까지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갑을 관계 등 우리 사회의 뒤틀린 문화나 사회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힐링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힐링이 사회적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미옥 CMI연구소 대표는 “예전엔 유명 연사가 강연하는 대규모 토크 콘서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지만 최근엔 소규모 강연이나 모임 등이 늘고 있다”면서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강연자나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심 교수도 “힐링은 소비적이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식사, 산책, 영화 보기 등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주변 관계를 회복하고 ‘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조언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책속 ‘노는 나’를 보는 게 행복, 개념부터 익히고 들어가야…안 그러면 허우적대다 나자빠져요

    책속 ‘노는 나’를 보는 게 행복, 개념부터 익히고 들어가야…안 그러면 허우적대다 나자빠져요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의식, 전의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컴퓨터에서 현재 작동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파일이 의식이라면, 현재 가동되지는 않고 있으나 하드에 저장돼 있어 불러내고 싶으면 언제든지 화면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 파일이나 프로그램은 전의식이다. 무의식은 지워져버리거나 덧씌워져버린 파일들이다.” 이렇게 살뜰하게 ‘인문학 개념정원’(문학동네)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문학가가 있다. 문학평론가인 서영채(52)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다. “인문학이라는 건 수학과 비슷해서 기초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발짝씩 걸음을 뗄 수 있어요. 생경한 수학 공식을 이해하고 나면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죠.” 개념정원이라는 제목은 고대 그리스의 3대 명문 사립학교 가운데 하나였던 에피쿠로스의 정원학교에서 따 왔다. 학업과 텃밭 가꾸기를 병행한 정원학교에서는 흙을 돌보는 행위를 귀히 여겼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야 하는데, 자연의 근본이 흙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서 교수는 인문학의 ‘흙’이 되는 근본 개념 80여가지를 뽑아냈다. 2006~2011년 청소년 계간지 ‘풋’에 연재했던 개념들을 대학생, 일반 독자가 씹어 삼키기 쉽게 주물렀다. 3권까지 낼 계획이다. 기준은 이렇다.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 있는 학문이죠.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과 정치경제학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 이 두 가지가 핵심으로 놓여 있어요. 이 두 가지는 슬라보이 지제크라는 불세출의 스타 철학자가 등장해 쉽게 풀어주면서 다시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현재 인문학의 주류가 됐죠. 이 가운데 가장 어렵겠다 싶은 것을 뽑아냈어요.” 개념을 쏙쏙 빼서 설명했지만 서 교수는 사실 뼈대만 있는 사전이 아니라 원전의 문장들과 함께 노는 게 행복하다고 믿는 ‘원전주의자’다. “독서 방법은 책 속에 들어가서 알맹이만 읽는 방법, 책이랑 노는 방법 두 가지가 있어요. 책 속에 나를 집어넣고 ‘노는 나’를 바라보는 게 제일 행복했어요. 그러려면 개념부터 익히고 들어가야 되거든요. 그냥 들어가면 허우적거리다 빠져 죽고 지루해서 나자빠지죠(웃음).” 위키피디아 같은 인터넷 사전에 검색어만 넣으면 획득할 수 있는 몇 줄의 알량한 정보는 진짜 앎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인문학 개념정원’은 원전 속으로 풍덩 빠져들기 위한 디딤돌인 셈이다.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을 인터넷에 쳐보면 금방 설명이 나오지만 바로 그 책을 읽으면 사전에는 없는 풍경이 펼쳐져요.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죽어가는 얘기를 쓰면서 얼마나 손이 떨렸을지, 또 그의 기이한 유머 감각도 느낄 수 있죠.” ‘인문학 열풍’이 거센 시대다. 현대인들은 왜 인문학에 매달리는 걸까. “다들 인생 사는 게 힘들잖아요. 그건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안에 작동되는 근본적인 불안 때문이거든요. 그런 불안이 덮칠 때 사람들은 대개 인문학과 종교를 찾습니다. 인문학은 그런 자기 안에 있는 불안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응시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에요. 원전을 통해 힘껏 자기 삶을 책임지려 애썼던 사람들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마음을 쉬게하는 독서가 학교폭력 줄이죠”

    “마음을 쉬게하는 독서가 학교폭력 줄이죠”

    “꽤 오래전부터 학교를 무대로 10대가 주인공인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소년과 소녀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작품은 많이 썼지만, 그들의 사생활을 통해 학교 생활을 정면으로 그린 작품은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미야베 미유키(53)는 9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솔로몬의 위증’에 대해 이렇게 입을 열었다. 소설은 중학교와 중학생에 관한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아침 교정에서 2학년 남학생 가시와기 다쿠야가 시신으로 발견되고, 경찰은 그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린다. 끝난 줄 알았던 사태는 다쿠야가 불량 학생들에게 살해 당했다는 고발장이 학교로 날아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전작 ‘화차’가 다중채무에 빠진 여자의 실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서늘한 이면을 파헤쳤 듯 이번 작품 역시 학교 안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솔로몬의 위증’은 학교에서 교육으로, 교육에서 다시 일본 사회로 외연을 확장해 간다. 소설의 배경은 버블 붕괴 이후 1990년대의 도쿄지만, 학교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은 놀라울 만큼 지금의 한국과 닮았다. 공교육은 흔들리고, 가족은 무너진다. 관계가 표피화되면서 개인은 한없이 내면으로 침잠한다. 죽은 다쿠야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부모와 형제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 “언제부터 일본 사회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는 저도 뭐라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어떤 명확한 선 하나가 있어서 그것을 전후로 사회의 무엇인가가 결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명확한 선’을 긋는 것만이 문제의 원인을 찾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 듯 소설도 범인을 찾는 것에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그보다 작가가 집중하는 부분은 무너진 교육 체계의 세밀한 층층과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 전반적 과정이다. 학생과 교사, 가족, 경찰, 이웃의 시점으로 번갈아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솔로몬의 위증’은 미야베가 처음으로 쓴 법정 추리극이다. 학교도, 경찰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학생들은 직접 진실을 알아내기로 하고 교내 재판을 연다. 여기에는 1990년 지각해서 뛰어오던 여학생이 교사가 갑자기 닫아버린 교문 틈에 끼여 사망한 사건이 영감이 됐다. 이 학생의 불행한 죽음을 두고 고베의 한 고등학교에서 실제 모의 재판이 열린 것이다. 이번 작품은 2002년부터 9년여에 걸쳐 연재한 대작이다. 원고지 분량만 8500매에 이른다. 작가는 “세부적인 인물 설정이나 등장 시점 등은 처음과 비교해 꽤 달라졌다”면서 “구상 단계에서는 조연이었던 인물이 작품을 쓰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법률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과 함께 “무엇 하나 잘하는 것 없이 눈에 띄지 않았던” 학생 시절의 기억도 녹여냈다. “학교 폭력 같은 문제가 왜 이렇게 심각해졌는지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아침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학생들에게 독서를 시켰더니 상황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마음을 쉬게 하고 고독과 친해지는 행위잖아요. 학교를 비롯한 현실에서 독서와 반대되는 현상들만 넘쳐나는 것이 원인의 하나는 아닐까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재벌 ‘일감 몰아주기’로 수천억 배당 챙겨

    지난 5년간 재벌그룹 총수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운영한 계열사에서 받은 배당금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현대차, SK, GS, 삼성 순으로 많았다. 7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이 되는 30대 그룹의 계열사가 총수 일가에 배당한 금액은 4696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총수 일가가 지분 3% 이상을 보유하고, 그룹 내부거래 비율이 30% 이상인 계열사 7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의 총수 일가 배당금 총액이 가장 많은 곳은 현대차그룹이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11.5%, 정의선 부회장이 31.9% 지분을 가진 물류업체 현대글로비스는 5년간 두 사람에게 총 781억원을 배당했다. 정 회장이 10%, 정 부회장이 25.1% 지분을 보유한 현대엠코의 배당금은 666억원에 달했다. 이 밖에 현대모비스 485억원, 현대오토에버 99억원 등을 모두 합하면 현대차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총 배당금은 2456억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에 이어 배당 총액이 많은 SK그룹의 경우는 시스템통합(SI) 업체인 SKC&C가 최태원 회장과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에게 총 815억원을 배당했다. 이어 GS그룹은 내부거래 비중이 64.9%에 달하는 GS네오텍이 허정수 회장에게만 5년간 490억원의 배당금을 안겼다. 허씨 일가가 100% 지분을 소유한 부동산임대·개발업체 ㈜승산(180억원)을 비롯, GS아이티엠(78억원), 옥산유통(46억원) 등을 합치면 허씨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로부터 챙긴 배당금은 총 794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이씨 일가도 삼성SDS, 삼성에버랜드, 삼성SNS 등에서 총 224억원을 배당받았다. 전문가들은 배당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일감 몰아주기 배당은 총수 일가 ‘부의 세습’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말한다. 한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일감 몰아주기는 미국 등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주주이익 우선이라는 기업 경영의 근본 원칙을 뒤흔드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당신의 책]

    옛 그림으로 떠나는 낚시 여행(안국진 지음, 책읽는오두막 펴냄) 옛 조상들은 능수버들 휘날리는 따뜻한 봄날 쏘가리 낚시를 즐겼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찐다”는 당나라 시가 일러 주듯 봄은 낚시의 계절이었다. 여울과 소가 만나는 지점에 돌무더기가 솟은 곳이 최고의 낚시 명당이다. 이 같은 봄의 정경을 담아낸 그림으로는 이경윤의 ‘유하조어도’를 꼽을 수 있다. 능수버들 아래 삿갓을 쓴 고운 인상의 선비가 온 정신을 모아 낚시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미소를 절로 자아낸다. 부산 토박이로 월간 ‘일요낚시’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는 김홍도의 ‘조어산수’부터 최북의 ‘한강조어’까지 옛 그림 속에서 발견한 낚시꾼들의 흥미로운 자취를 따라간다. 지친 삶 속에서 낚시로 활력을 찾는 강태공들에게 낚시의 운치를 더해 주는 책이다. 232쪽. 1만 3000원. 자본과 언어: 신경제에서 전쟁경제로(크리스티안 마라치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펴냄) 이탈리아의 저명한 좌파 경제학자가 ‘언어’라는 잣대로 금융위기의 본질을 파헤친 책. 저자는 세계 경제의 현 단계를 ‘신경제’로 진단하면서 “신경제에서는 ‘언어와 소통’이 핵심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또 언어는 금융시장에서 자료와 정보의 전송 수단이자 하나의 창조적 힘이 된다고 설명한다. 중상주의, 산업주의, 신경제의 포스트포드주의적인 흐름에 이어 자본주의의 네 번째 단계인 ‘전쟁경제’가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252쪽. 1만 7000원. 다시, 관계의 집으로(최우용 지음, 궁리 펴냄) 요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집에서부터 아파트, 기만적인 랜드마크 빌딩의 허구까지 젊은 건축가가 신선하고 매서운 시각으로 의미를 포착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외딴 수도원, 전북 완주군 불명산 자락의 화암사 극락전, 서울 남영동 옛 대공분실 등 다양한 건축물이 등장한다. 저자는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경기 일산의 밤가시초가, 제주의 테쉬폰 주택, 경산 상엿집, 기찻길 옆 공부방 등을 둘러보며 사색에 잠겼다. 이를 다섯 가지 테마에 나눠 세상과 소통하는 글로 풀어냈다. 몽상가의 눈, 관찰자의 눈, 소설가의 눈, 여행객의 눈, 건축가의 눈이 그 테마들. 저자는 사라져 가거나 변방에 놓인 건축물들에 주목했다. 이제 진정한 관계를 맺는 건축물로 이 땅을 채우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도 고민했다. 288쪽. 1만 5000원. 사고 문화재 만년제(주찬범 지음, 신성북스 펴냄) 만년 재앙이 된 연못 ‘만년제’(萬年堤). 이곳에 얽힌 역사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화성태안 3택지 개발사업’과 ‘1번 국도 대체 우회도로 사업’은 2004년 돌연 중단된다. 경기도 기념물 161호인 만년제를 침범해 공사를 벌인 탓이다. 공사는 만년제의 위치를 잘못 표기한 경기 문화유적지도를 참고해 이뤄졌다. 국가사업 중단으로 수천억원의 혈세가 낭비됐고, 관계 부처 장관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도 해결하지 못해 결국 청와대가 관리하고 있다. 만년제는 ‘정조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조선 특유의 연못 양식. 중앙에 둥근 섬이 있는 네모난 인공 연못으로 규모가 대단하다. 저자는 문화재 당국이 만년제를 농업용 수리시설로 착각한 것이 비극의 단초였다고 말한다. 만년제에는 가난과 낙후함에 저항했던 정조의 도전과 좌절이 함께 투영돼 있다는 주장이다. 228쪽. 2만 3000원.
  • [주말 인사이드] “자본·소수권력에 휘둘리는 예술 싫어…함께 잘 살자” 문화계 개미들 뭉치다

    [주말 인사이드] “자본·소수권력에 휘둘리는 예술 싫어…함께 잘 살자” 문화계 개미들 뭉치다

    “그동안 극소수의 젊은 작가들만이 문화예술지원금에 의존해 활동해 왔습니다. 협동조합 설립이 궤도에 오르면 더 많은 작가들이 혜택을 받고 예술인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수아 이웃문화협동조합 사무국장) 경기 수원시 지동의 문화예술 공동체인 이웃문화협동조합은 지난 4월 창립총회를 갖고 출자금 2000만원으로 출범했다. ‘문화와 예술로 이웃과 함께 잘 놀고 잘 살자’는 취지에 공감한 예술가와 문화기획자, 문화소비자들이 모였다. 도예가·목공예 작가·대학 교수 등 20~50대 조합원 50여명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은 구도심 동네인 지동에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문화공동체 운동을 펼쳐왔고, 문화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사회에 안정적인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상품 판매, 임대사업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이를 모아 자립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문화·예술계에도 협동조합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 발효가 촉매가 됐다. 자본주의 논리와 소수 권력에 휘둘리는 기성 문화·예술계에 반발해 자신들만의 건강한 문화·예술활동을 펼쳐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5명 이상만 모이면 상조·공제 등 금융 관련 업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자유롭게 설립이 가능한 협동조합은 문화·예술인들에게 귀가 솔깃한 이야기다. 6일 ‘제1회 협동조합의 날’을 맞아 문화·예술계의 협동조합 현황과 의미 등을 살펴봤다.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7개월여 만에 새롭게 인가받은 협동조합은 전국에 1461개에 이른다. 매달 200개가 넘는 조합이 새롭게 인가받은 셈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405개의 일반협동조합 가운데 예술·스포츠 관련 조합은 84건(6%)이다. 아직은 도·소매업(402건)이나 교육·서비스업(158건)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협동조합이란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의사결정하는 영리·비영리 사업체를 일컫는다. 법에서는 경제·사회·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재화나 용역을 함께 구매·생산·판매·제공함으로써 조합원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조직으로 규정했다. 그동안 국내에선 8개의 특별법에 따라 농협, 수협, 신협 등 대형 협동조합만 설립할 수 있었다. 문화·예술계에선 현재 출판 쪽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지난 5월 첫 1인 출판협동조합이 법인 설립을 마쳤고, 출판·잡지사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었다. 1인 출판협동조합은 생존이 어려운 1인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초기 출자금은 310만원에 불과했지만, 법인 설립 한 달여 만에 협동조합에 참여 의사를 밝힌 데가 50곳이 넘는다. 조합 관계자는 “현재의 출판 유통체제에서 작은 출판사들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서모임에서 출발한 전자책 출판협동조합인 ‘롤링다이스’도 최근 정식 인가를 받았다. 2009년 한 출판사가 주최한 철학 세미나에 참가한 멤버들이 의기투합했다. 조합 측은 “전자책 출판은 각자의 본업을 유지하면서 병행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며 “종이책을 내려면 권당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전자책은 상대적으로 자본의 압박에서 훨씬 자유롭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선 35년 전 설립된 전설의 협동조합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1978년 부산에서 출범해 전국으로 확산된 ‘양서(良書)협동조합’과 비슷한 성격의 ‘땡땡책 협동조합’은 지난 4월부터 준비모임을 꾸려 이달 정관 마련에 착수했다. 양서의 유통을 목적으로 조합원 교육, 소모임, 공개 강연 등을 계획하고 있다. 양서협동조합이 군사정부에 의해 1년 6개월여 만에 문을 닫은 것과 달리 이들은 출판사와의 직거래 등 유통구조 개혁을 꿈꾼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휘둘린 ‘수동적 독서’와 ‘사재기’가 남발되는 구태 청산이 목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난립하는 협동조합이 성공적 대안경제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벌써부터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도 있다. 통상 1계좌당 수만~수십만원의 출자금(가입비)을 받고 조합원을 모집한 뒤 매달 일정 회비를 받지만 이것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 정부는 향후 중소기업이나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등을 위한 기존 지원정책을 협동조합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기고] 신생 협동조합 과제는 경쟁력 확보/명정식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기고] 신생 협동조합 과제는 경쟁력 확보/명정식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지 6개월 만에 협동조합이 1200여개 설립됐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37개로 적은 편이지만 연합회도 4개나 설립됐다. 하지만 사회적 반향은 아직 잔잔한 편이다. 기대가 컷던 탓일까, 아니면 경영상 또는 우리 토양 부적응의 문제일까. 협동조합의 날(6일)을 맞아 신생 협동조합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안착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본다. 통계적으로 보면 출발은 신선해 보인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5월 말까지 6개월 동안 1210개의 조합이 설립됐고 조합원 수는 2만 6000명에 이른다. 조합 관리를 위해 대표와 이사, 감사, 직원 등 최소 5명만 선임됐어도 일자리가 6000개 이상 창출된 셈이다. 평균 조합원 수는 22명이지만 100명 이상인 조합은 23개, 10명 이하인 곳은 393개로 소규모가 많다. 평균 출자금은 220만원. 1억원 이상은 64개, 500만원 이하는 625개로 소자본 조합이 절반이다. 업종도 제조, 도소매업, 교육, 의료, 사회복지, 예술, 에너지, 농림축산 등 다양하다.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자본 조달과 경쟁력 확보가 관건인데, 협동조합 자본의 성격상 쉬운 일이 아니다. 북미나 유럽처럼 자본조달이 용이하도록 1인당 출자한도 확대, 총출자액의 일정비율을 비조합원에게 출자 개방, 주식시장 상장 등 융통성이 필요하다. 검증된 가장 큰 경쟁력은 윤리적 경영이다. 안전한 농식품, 공정한 가격, 윤리적 경영 등 기본에 충실한 협동조합들은 위기 속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생존을 위해 협동조합과 기업이 상호 수렴해 가고 있지만, 시작하는 우리로선 무엇보다 협동조합 기본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협동조합은 가슴이 먼저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협동조합을 통해 큰 소득을 올리는 게 목적이라면 시작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1844년 영국에서 최초로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싹틀 때부터 오늘날까지 협동조합은 자본력이 아닌, 사회의 든든한 자양분으로서의 소임이 중요했다. 주식회사가 주주 이익에 최고의 가치를 둔다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에 목적을 둔다. 1인 1표의 민주적 의사결정과 사업 이용에 따른 이익분배 등 절차적 측면에서도 확연히 다르다. 조합원이 되는 데는 일정한 자격요건이 필요하고 객관적 심사와 가입승낙의 절차가 필요하다. 가입기준이 자본(돈)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이익을 위해 시작했다면 돈으로 인해 쌓아온 조합원 간 신의도 깨질 수 있다. 끝없는 욕망을 좇던 자본주의가 부작용을 나타내자 따뜻한 자본주의와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었고, 대안으로 협동조합이 부각되고 있다. 공정한 분배와 정신적 유대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고유의 가치가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협동조합 임원은 명예직인 경우가 많고 자본력도 크지 않아 전문성과 책임감에서 미흡하다. 민주절차에 따른 의사결정의 지연을 극복하기 위해 상시 대면 접촉도 중요하다. 기업엔 ‘규모의 경제’가 유리하지만 협동조합에선 때로 소규모의 대면적 가치가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기심을 통제하지 못하면 협동조합은 영원한 이상에 머무를 것이다.
  • “내 작품에 깊이가 없다고? 난 내 길을 갈 뿐이다”

    “내 작품에 깊이가 없다고? 난 내 길을 갈 뿐이다”

    로뎅의 ‘지옥의 문’ 양옆에 놓인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카이카이’와 ‘키키’. 일본어로 각각 괴상함과 기이함을 뜻하는 두 캐릭터는 마치 수호신처럼 해골 모양의 지팡이를 들고 나란히 섰다. 괴상하지만 인상적이고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작가의 독창적인 화법이다. 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51)는 “내가 처음 작품을 시작했던 20여년 전에 비해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 방 안에 놓인 로뎅의 작품과 내 인형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예전 종교가 음악과 과학, 예술, 정치를 아우르다 세분화된 것처럼 오늘날 예술이 다시 이 길을 걷고 있다”면서 “일각에선 내 작품에 깊이가 없다고 비판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내 길만을 걸어 왔다”고 말했다. “예술을 비즈니즈적 관점으로 확장했다”(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하위 문화인 오타쿠를 활용해 일본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안소연 플라토 부관장) 등의 찬사가 이어진 뒤에도 겸손했다. “예술가와 기업가, 정치가의 공통점은 세상을 바꾸려는 것인데, 난 아직 10%밖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일본 전통 미술과 대중문화를 원천으로 ‘슈퍼플랫’의 개념을 새롭게 제안해 서구 중심의 현대미술을 아시아적 감성으로 혁신한 작가다. ‘초평면’을 의미하는 슈퍼플랫은 일본의 오타쿠적 하위 문화가 이뤄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일본 에도시대의 표현주의 회화에 근거했다는 이론이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을 비판하고 평면화된 정보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꼬았다. 그는 일본에서 팽배했던 서방 아방가르드 미술을 극복하기 위해 오타쿠적 하위 문화야말로 가장 일본다운 특성을 드러낸다는 주장을 자신의 이론에 담았다. 영민하고 얄팍한 미키마우스와 다른 ‘미스터 도브’ 같은 변질된 캐릭터 창작에 몰두해 온 이유다. 작가는 “슈퍼플랫은 원래 얄팍하고 경박한 문화를 비판하려 처음 쓴 단어”라며 “이후 ‘세계화’ ‘컴퓨터라이징’ 등의 의미가 접목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라카미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또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과의 협업으로 상업적인 성공도 거뒀다. ‘카이카이&키키’라는 회사를 통해 예술의 산업화에도 도전하고 있다. 무라카미 회고전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다. 4일부터 오는 12월 8일까지 플라토에서 열리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플랫 원더랜드’전이다. ‘727-727’ ‘콘택트’ 등의 대표작과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 등의 신작 회화까지 30여점을 선보인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비견될 만한 엉뚱한 작품 세계를 회화, 조각, 풍선, 영상, 사진, 벽지, 커텐 등의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다. ‘베이글녀’를 꼭 닮은 대형 사이보그 피겨인 ‘미스 코코’는 여성의 몸을 정교하게 묘사해 포르노와 예술 작품의 경계를 오간다는 평을 듣는다. 1577-7595.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집은 ‘와초문학뜰’이다. 뜰 바로 아래에는 조용히 출렁이는 탑정호(塔亭湖)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는 조각가 류훈의 작품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때요’가 있다. 이 조각은 세 명의 인간형상이다.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시름에 빠진 중년의 노동자이고 나머지 둘은 서로 떠들다가 ‘술 한잔 하자’는 자세를 취하며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 노동자이다. 집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流留亭)라는 문패가 그럴듯하게 걸려 있다. 그가 직접 쓴 글씨로 새겨넣었다. 얼핏 보아도 붓글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부인은 10년 동안 서예공부를 했다. 부인이 그가 쓴 ‘흐르고 머무니~’를 보더니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쓰면 어떡하느냐”며 한동안 삐쳤다(?)고 한다. 정자 바로 앞에는 앙증맞은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졸졸 흐르고 붕어새끼들이 이리저리 뛰놀기에 딱이다. 정자에서 몇 발짝 걸어가면 텃밭이 있다. 상추와 고추 등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글을 쓰다가 소일거리로 잠깐씩 들러 자라는 식물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곳,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은 팬들을 위해 ‘행복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1년에 봄, 가을 두 번 공개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찾아온다. 글을 써서 인세로 장만한 집일까. “논산시에서 임대해 준 것이고 임대료는 내지 않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필실은 1층과 2층에 있다. 1층은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2층은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최근 ‘와초문학뜰’에서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해에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썼다.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2년여의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달 26일 고향에서 첫 작품을 쓴 박씨와 와초문학뜰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편하고 허름한 옷차림이다. 마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정자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원래는 마음 심(心)자를 써서 ‘심유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머무는 적은 없어요. 그래서 흐를 유(流)자로 바꿨더니 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요. 원래 붓글씨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직접 먹을 갈고 화선지에 쓰고 현판에 새겨 달아놓았습니다.” 머물고 흐르는 것이 곧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배도 고픈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미리 와 있던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인근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옮겼다. 식당 주인이 그를 단골손님처럼 반긴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닭도리탕’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주종과 주량을 물었더니 “오늘은 속이 별로 안 좋아 막걸리 두어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 소주 반 병 정도나 과실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2년 동안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원래는 고향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는데 하루는 40대의 젊은 시장이 ‘형님, 고향으로 오시죠’라고 해요. 그 형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금강문화권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탑정호수 건너편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계백이 깨진 곳이지요. 이 금강문화권은 또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 그리고 동학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혼이 많아 한밤중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단다. 밤에 술을 마시고 마당에 앉아 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라는 것. 누구냐고 했더니 ‘계백 장군 똘마니 장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안 가고 그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장수는 ‘계백 장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라고 했단다. 얘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웃으면서 패망한 군인들의 원혼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겠다고 했더니 “뼛골만 있어도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것이 작가가 아니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2년 동안 고향사랑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고향에 오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희생했다면 요즘은 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아버지들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가부장의 권위도 해체되고, 아버지는 늘 자식을 위해 과실을 따오고 30대의 장성한 자식조차 여전히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과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지, 지난 반 세기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에는 자식을 위해 수시로 돈을 뺄 수 있는 통장 역할을 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폭력과 쓸쓸함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아버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아버지10’을 다루고 있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며 웃는다. ‘은교’의 경우 시간의 반란을 그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을 원래 77세로 설정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젊은이들이 읽지 않는다며 65세로 해달라고 했다.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70세.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과 달리 20대 여자들이 책을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 쓴 ‘소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금’은 지금까지 7만부를 찍었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독서 인구는 그에 비해 적어요. 예를 들어 문학책이 10만부가 팔렸다고 할 때 문학을 알고 사는 사람은 2만명, 나머지 8만명은 사회적 이슈이거나 자극적인 데서 책을 구입합니다. 5만 독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문학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수준이 문화적으로 높아져야 잘못된 제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소설이란 마라톤과 같으며 빈틈없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작가들은 스타트는 좋으나 체력이 문제라면서 “소설이란 걸어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하며 달의 뒷면, 어두운 면까지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끈기와 투지가 있어야 하며 작가의 뒷심이 약하면 시대를 바라보는 뒷심 또한 약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보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이야기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문을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머지 인생을 굳이 정보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순간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단다. “30대에는 사랑받고 싶어 넓이에 정체성을 두고 글을 썼고 40대를 넘기면서 깊이를 추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써오는 동안 벌써 40년 연애한 것처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에게 아직도 순정주의 문학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15차례나 했다. 존재의 등반이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기, 초월적인 세계를 실감하기, 인간의 갈망이 있는 그곳에서 불멸과 순간, 현세적 삶과 초월적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비우니 향기롭다’, ‘나마스테’, ‘촐라체’ 등이 이 같은 산악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도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어 한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걷기’는 어떻게 될까. “여기 올 때 고전소설 몇십 권을 가져왔는데 다시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란 쿤데라 작품도 읽어봤고, 아마 다음은 역사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 후기 노론의 기반이 되는 곳이 바로 논산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활의 모토에 대해 물었더니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라고 했다. 달랑 물에 만 밥과 김치를 먹으며 육체와 정신의 기름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범신은 누구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까지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다.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장편소설로는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김동리문학상(2001년), 만해문학상(2003년), 한무숙문학상(2005년), 대상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 [시론] ‘튀기’에서 ‘코피노’까지/하성란 소설가

    [시론] ‘튀기’에서 ‘코피노’까지/하성란 소설가

    그 애가 지나가면 우리는 ‘튀기’라고 수군댔다. 좁은 양미간과 오똑 솟은 코, 고수머리와 흰 피부 등 그 애는 한눈에 띄었다. 몇몇 어른들은 ‘아이노쿠’라고도 불렀다. 나중에야 일본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 족’을 일컫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내뱉던 그 말이 암소와 수탕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을 뜻한다는 것도 알았다. 노새와는 달리 튀기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암소와 수탕나귀의 형질을 반반씩 닮았을, 그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형질이 툭 발현되었을지도 모를 그 모습, 기괴했을 듯하다. 한국 전쟁 직후 서양인들의 외모와 피부를 닮은 채 태어난 아이들의 모습에 놀란 한국인들의 모습도 쉽게 그려진다. 얼마나 신기했으면 ‘튀기’란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그 애는 김치볶음을 좋아하고 우리말도 우리만큼 잘하는, 다 같이 웃어야 할 때를 놓치고 한 박자 늦게 웃은 적도 없는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 애는 우리와 섞이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전쟁의 그림자는 너무도 넓고 깊었다. 어디 살고 있을까. 어쩌면 김치볶음의 붉은 기름이 반지르르 묻은 야무진 입술을 벌려 전상국 선생의 소설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의 수지처럼 한국과 제 어머니를 부정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지금 필리핀에는 ‘코피노’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필리핀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튀기’처럼 모욕적인 말이 아니지만 이미 그 말 속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의 한 단면과 함께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야만성이 들어 있다. 그 애들은 축복 받아야 할 탄생의 순간, 이미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다. 초창기 그들의 아버지는 물가와 교육비가 싸다는 이유로 어학 연수를 온 학생들이었다. 한순간 일탈에 빠져들었던 그들은 필리핀 애인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한국으로 줄행랑을 쳤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누구도 그 애들에게 책임을 따져 묻지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한국 사업가들의 현지처가 된 여성도 있었다. 코피노 수의 증가에는 피임과 낙태를 철저히 금하는 가톨릭 문화의 영향도 있었다. 낮에는 골프 여행, 밤에는 환락가. 필리핀을 찾는 한국의 남성 수가 급증했다. 단순히 쾌락과 욕망만이 남았다. 그들 중에 피임 기구를 착용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고 그 때문에 나이 어린 10대 여성을 찾는 추태가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예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코피노들도 급증했다. 많은 코피노들에게 아버지란 자신을 버린 사람일 뿐이다. 한국은 더 이상 아버지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반감을 가지는 필리핀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 다음 돈을 많이 벌어 한국의 아버지를 찾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듯하다. 한 사회단체에서 코피노들의 아버지 찾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코피노들 대부분이 극빈층이다. 어머니가 돈을 벌러 집을 떠나 있는 동안 학교에도 가지 못한 코피노들이 거리를 떠돈다. 돈을 벌기 위해 제 엄마처럼 윤락가로 흘러드는 아이들도 있다. 악순환이다. 한국의 아버지를 찾아 최소한의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이 취지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정부는 개인의 사생활이란 생각으로 방관하고 있었다. 하룻밤 대가치고 너무도 큰 대가라고 억울해할 남성이 많을는지 모른다. 필리핀 여성들이 돈을 노리고 일부러 접근해 임신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한동안 책임 공방으로 시끄러울 듯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한국의 아버지를 찾아주기로 했다는 소식에 가슴 한쪽이 내려앉았을 당신. 그렇다. 당신이 진작 느꼈어야 할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지금까지도 일말의 거리낌이 없이 잠잠한, 이미 죽어버린 건지도 모를 당신의 양심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