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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확산 우려되는 사회병리(사설)

    “요즘은 신문을 펼치기 전에 기도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 성직자는 말했다.그만큼 어둡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어제 아침 신문 사회면도 예외가 아니었다.대학생이 달리는 전동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이 사고를 수습하던 지하철 역무원이 다시 열차에 치여 죽은 참변,슈퍼마켓 주인의 발목절단 사건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자작극으로 밝혀진 일,무기고 절도범으로 검거된 주민이 자살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 등 어두운 사건들이 지면을 덮고 있다.참으로 우려되는 사회병리현상이다. 경제난 속에서 빚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은 지난 가을 보험금을 노려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강도극으로 꾸몄던 아버지의 인륜파괴 행위에서 이미 극에 달했음이 드러났다.보험금을 노린 자해(自害)나 범행이 빈발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해 장기(臟器)를 매매하거나 귀중한 생명을 쉽사리 내던지는 자살행위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이런 현상에 새삼 주목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을 자살이나 범죄로 해결하려는 심리적 파탄이 전염병처럼 그 독소를 키워 우리 사회를 와해시킬 가능성까지 보이기 때문이다.보험금을 노려 발목절단 자작극을 꾸민 사람의 정신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돈을 받는 조건으로 그런 기막힌 일에 동조해 남의 발목을 자른 사람의 정신건강도 비정상적인 것이다.자살하기 위해 경찰초소의 무기고를 턴 사람이나 취업이 안됐다고 달리는 지하철 전동차에 뛰어든 대학생도 제 정신을 잃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지난 50∼60년대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배곯았고 실직자도 더 많았지만 요즘같은 사회병리 현상은 없었다.경제우선의 사회풍토 속에서 물질만능주의의 포로가 된 탓에 상대적 빈곤감이나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우리 사회가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이런 정신적 공황은 경제위기보다 더 큰 문제다. 실직수당 지급이나 재취업훈련 대책 못지않게 심성(心性)의 파탄현상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물론 변화된 사태에 맞게 각기 마음속의 거품을 걷어내고 겸허히 현실을 받아들여 헤쳐나가는 굳센 자세를 가져야겠지만 IMF형 범죄나 자살을 개인적 부적응이나 한 가족차원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된다.소리 없이 무너져가는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 종합적인 사회복지서비스 체계를 구축해 국민 정신건강을 지켜야 한다.경제적 지원과 별도로 정서적 지원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종교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 銃風·稅風 3차 공판 이모저모

    ◎변호인­“단순사업 위해 북 인사 접촉” 입증 안간힘/검찰­여권 인사들 거론되자 “공조사실과 무관” 19일 열린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공판에서 한나라당 변호인단은 총풍 3인방이 단순히 대북사업을 위해 북측 인사를 만났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이 과정에서 현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대거 거론되자 검찰은 공소사실과 관계가 없다면서도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검찰은 “韓成基·張錫重 피고인의 변호인 반대신문 가운데 일부가 공소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재판부에 10여차례 이의를 제기하는 등 변호인단과 신경전.沈揆喆 변호사가 張피고인에게 “옥수수박사인 金順權 교수가 대선때 국민회의 金大中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원했느냐”고 묻자 朴澈俊 부부장검사는 “공소사실과 관계가 없다”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북한’을 국가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공방.한나라당 金映宣 변호사는 張피고인에게 “북한이 못사는 나라라도 국가인데 남한 대선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자,검찰은 즉각 “金변호사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느냐”고 따졌다.金변호사는 표현을 정확히 하라는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사실상 국가의 형태를 띤 북한’으로 정정했다. ●변호인단은 이날 총풍사건이 안기부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사건임을 입증하기 위해 고문 여부를 부각시키려 노력.변호인단은 韓·張피고인에게 “안기부에서 맞았을 때를 자세히 설명해달라”거나 “고문자의 인상착의를 기억하는가” 등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공판이 끝난 뒤에도 증거제출을 놓고 또 한차례 설전.변호인단은 “韓피고인의 컴퓨터에서 찾아냈다는 대선보고서 등 각종 증거를 다음 기일까지 제출해야 추가변론이 가능하다”고 조속한 증거 제출을 요구.이에 검찰은 “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다음 기일까지 제출할 수 없다”고 대응했다. ●검찰은 세풍사건에 대한 공판이 열린 지 30분만에 林采柱 전 국세청장으로 부터 지난해 12월 초 李會昌 후보가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어 통화했다는 진술을 이끌어냈다. 林 전 청장은 “李후보가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어 통화했느냐”는 검찰의 신문에 “예”라고 답변한 뒤 “대선자금 불법모금 등 내가 맡은 종합적인 업무에 대한 격려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한편 林 전 청장은 지난해 11월 하순 서울 프라자호텔 객실에서 李會晟씨를 만난 사실에 대해서는 “격을 높이기 위한 만남 같다”고 해석했다.
  • ‘발목 절단’은 자작극/보험금 노려… 공범 택시운전사 구속

    지난 11일 발생한 서울 금천구 독산동 슈퍼마켓 주인 발목절단 사건은 주인 丁모씨(51)가 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남부경찰서는 20일 “丁씨를 추궁한 결과 ‘보험금을 타 빚을 갚기 위해 이웃에 살던 택시운전사 金貴龍씨(41·금천구 가산동)와 짜고 발목을 잘랐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자작극은 丁씨가 지난해부터 1급 장애판정을 받으면 모두 20여억원의 보험금을 탈 수 있는 24개의 상해보험에 가입했고 몇달 전부터 공범을 물색하고 다녔으며 인근 약국에서 마취제를 구입한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탄로났다. 증권투자와 도박으로 3억원 가량의 빚은 진 丁씨는 지난 7일 자신의 뒷집에서 하숙을 했던 金씨를 만나 “발목을 잘라 먼곳에 버려주면 보험금을 타서 5,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경찰은 이날 金씨에 대해 중상해 및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丁씨가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땅한 처벌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丁씨는 자작극임에도 불구하고 ‘자해나자살의 경우 보험가입 2년 미만의 보험은 자동해약돼 납입 원금을 돌려주며 2년 이상이면 사망에 준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재해특약에 따라 2년이 넘은 4개 상해보험의 일부인 2,000여만원과 해약에 따른 납입금 2,000여만원 등 모두 4,000여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金 중사 혐의 완강히 부인/金勳 중위 사망 軍 수사 점검

    ◎“북한군 접촉했지만 포섭 안됐다” 주장/金 중사외 제3의 인물 관련여부 등 추적 “단순히 호기심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군사분계선 상에서 북한군과 만났다. 결코 포섭되지 않았다” 지난 4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金榮勳 중사(28)는 12일까지 9일동안 기무사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단순 접촉의 정도를 지나 북한에 포섭됐던 것은 아닌가”라는 추궁에 이처럼 일관된 대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무사는 지난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제3벙커에서 권총에 맞은채 숨진 金勳 중위 사망사건과 관련,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金중사가 ‘金중위의 타살’에 연루돼 있다면 이를 설명할 만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金중사에게 이 대목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30차례 가량 북한군과 접촉했으면 포섭됐을 가능성이 크고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의 귀순에 따른 보복으로 북의 지령을 받고 金중위를 살해했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金중사의 완강한 부인으로 수사에는 진전을 보지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한 전역병 및 현역 병사 11명으로부터 ‘金중사 외에 여러 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적공조원들과 만나고 돌아왔다’는 진술을 확보,金중사 말고 제3의 인물이 관련됐을 가능성도 함께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인데도 기무사는 이번 주 안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구체적인 혐의를 확인하고도 ‘연막전술’을 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군 수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새로 드러난 숱한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金중사의 북한군 접촉과 金중위 사망사건을 연계시킬 만한 구체적인 물증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군 고위 관계자는 “올 1월5일 경비대대에 전입,신임 소대장 교육등을 받은 후 1월20일부터 사고일인 2월24일까지 2소대장으로 근무한 金중위와 부소대장이던 金중사가 함께 근무한 기간은 1개월여에 불과하다”면서 “이토록 짧은 기간에 金중위에게 위해를 가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찾아내는 게 이번 사건을푸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金중사의 자백에 의존한 수사가 벽에 부딪히자 14일 새벽 金중사의 신병을 넘겨받은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은 金중위 사망사건 발생 당시 근무했던 전·현역병 등 모든 소대원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金중사와 대질 신문을 하는 등 구체적인 물증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金중위 사망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모든 의문점을 리스트로 정리해 자살 또는 타살가능성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 축협 권총 강도 검거/어젯밤 남양주서… 범행 일체 자백

    ◎“권총 3∼4년전 미군부대 앞 술집서 주워” 충남 천안시 신방동 축협지소 권총강도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柳성호씨(33·경기도 안산시 사동)가 14일 오후 9시 30분쯤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천마산기도원 입구에서 잠복근무중이던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柳씨가 어려울 때마다 천마산기도원을 찾는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잠복근무를 해 왔다. 柳씨는 경찰에서 범행에 사용한 권총은 지난 83∼84년쯤 경기도 송탄에 있는 미군부대부근 술집 앞에서 실탄 7발이 들어있는 상태로 주었으며,그동안 서울 강남의 금식기도원에서 숨어지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거당시 현금 200여만원을 소지하고 있었으며,범행사실은 인정했으나 동기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했다. 柳씨를 검거한 남양주경찰서는 이날 柳씨의 신병을 충남 천안경찰서로 인도했다. 柳씨는 지난 12일 충남 천안시 신방동 축협신방지소에 권총을 들고 들어가 직원2명을 쏘고 현금 1천여만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李會晟씨 긴급체포 파장­수사 이모저모

    ◎李씨,결정적인 부분서 진술 거부/호텔주차장 출입 시인… 돈 받은 것은 부인/검찰 소환조사 대비 충분한 대책 세운듯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인 李會晟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상대로 이틀째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 대검 중앙수사부는 李씨가 혐의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사법처리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李씨가 검찰의 소환 조사에 대비해 충분한 학습을 한 것 같다”면서 “결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李씨와 대선자금을 운반한 운전기사 李모씨는 조선호텔 등 돈이 전달된 호텔의 주차장을 드나든 사실은 대체로 시인하면서도 돈을 건네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李씨는 한나라당이 선임한 변호인단에게 “30억원을 모금해준 H증권 李모사장과 평소에 잘 알던 사이여서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이나 林采柱 전 청장을 중간에 넣어 소개받을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은 “李씨를 만날 때 얼굴을 못알아볼까봐 걱정했다는 李사장의 진술을 확보했다”면서 “아는 사이이면 그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검찰 관계자는 “李씨의 진술 거부 및 혐의사실 부인으로 자백을 얻어내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법정시한인 48시간을 최대한 활용,가능하면 모든 의혹에 대해 신문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李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체포영장 발부 후 48시간에 해당하는 12일 아침 9시쯤에야 법원에 접수될 것으로 보인다. 구속영장 청구요건에 피의자의 자백은 필수 구비요건이 아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李씨가 직접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건네 받은 사실이 확인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 영장을 청구할 때 필요하면 넣겠다”고 말해 대질신문 등을 통해 李씨가 대선자금 모금과정에 직접 개입한 사실을 확인했음을 시사했다. 한편 한나라당 金兌原 당시 재정국장은 李씨가 건네받은 삼성그룹의 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 안기부 증거물 누락시킨 이유는

    ◎한씨 컴퓨터 등 9월12일 압수/송치과정서 검찰에 일부러 안넘겨/“보완수사 통해 신빙성 높이려 했을 것” 분석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을 1차 수사한 국가안전기획부가 수사 때 압수한 증거물 가운데 배후 의혹과 관련된 일부 물증을 검찰에 누락한 채 송치한 것으로 밝혀져 그 경위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가 지난 19일 韓成基·吳靜恩·張錫重 피고인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결과 안기부가 吳씨 등을 검찰에 송치하기 13일전인 지난 9월12일 이들로 부터 상당량의 증거물을 압수하고도 일부를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이에 따라 검찰은 안기부에 누락 압수품을 즉시 송치토록 요구,지난 21일 韓씨의 컴퓨터 본체와 디스켓 등을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누락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이날 첫 공판에서 韓씨가 진술함에 따라 이를 공개했다. 검찰은 韓씨의 물품에 대한 정밀검토 결과,韓씨가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측 인사들을 만나 무력 시위를 요청한 시점을 전후해 당시 李會昌 한나라당 후보측에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파일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韓씨의 파일에서 확보한 새 증거물은 ▲韓씨가 베이징으로 가기 하루전인 지난해 12월9일 아시아나 항공편을 이용,李후보가 유세중이던 부산으로 내려가 李후보측에 ‘특단카드 협상정보 보고서’를 전달한 것과 ▲베이징에서 귀국한 뒤인 지난해 12월15일 ‘존경하옵는 이후보님께’란 편지를 작성,서울 종로구 구기동 李후보 자택 앞에서 李후보 운전기사에게 전달한 것 등이다. 안기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며 유죄 입증에 자신감을 보여왔다.야당쪽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주장을 제기했을 때에는 “피고인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가족과 면회하는 장면을 폐쇄회로 TV로 녹화해두었다”면서 미공개 증거물을 상당 부분 확보했음을 시사했다. 이런 맥락에서 안기부가 일부 물증을 뒤늦게 넘긴 것은 심증적으로는 신뢰가 가지만 배후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보완수사를 통해 물증의 신빙성을 높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안기부는 “공식적으로 언급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첫 공판­재판 이모저모

    ◎검찰 “이 후보 보고서 봤을것”/한씨 “승용차안에 이 후보 있을 보고서 전달”/“봉투에 발신·수신인 안쓴건 오씨 방식 모방” 30일 열린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첫 공판은 韓成基 피고인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에게 북한측과의 접촉 계획 및 결과를 서면으로 보고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진술하면서 시종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李會昌 총재측은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검찰이 韓피고인의 컴퓨터에 입력됐던 보고서 내용을 증거로 제시함에 따라 정치권은 또다시 ‘총풍’의 회오리에 휩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심리에 앞서 변호인단의 모두(冒頭)진술 허용 여부를 놓고도 신경전을 펼쳤다. ○재판 끝난뒤 보고서 공개 ◆검찰은 재판이 끝난 뒤 韓成基 피고인이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측에 전달한 ‘보고서’를 공개했다.검찰은 韓씨가 “법정에서 李후보가 보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李후보가 보고서를 직접 본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사전 보고서인 ‘특단카드 협상 정보 보고서’를 전달할 때는 유세차량에 李후보가 앉아있는 것을 확인한 뒤 수행비서에게 건넸으며,‘존경하옵는 李후보님께’라는 편지 형식의 보고서도 승용차안에 李후보가 있는 것을 보고 운전사에게 주었다는 韓피고인의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문건전달때 눈도장 찍어 ◆韓피고인은 5차례에 걸쳐 문건 및 보고서를 李후보에게 전달하면서 봉투에 발신인과 수신인를 적지 않은 것은 吳靜恩 피고인의 방식을 모방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특히 韓씨는 문건 전달 때 반드시 李후보와 ‘눈도장’을 찍은 것도 吳피고인으로부터 배웠다는 사실도 진술했다는 것이다. ◆총격요청 사건의 변호인단인 鄭寅鳳·沈揆喆·姜信玉 변호사 등은 재판이 시작되기 20여분 전부터 나와 1,000개 항에 달하는 신문사항을 검토하며 이번 사건이 안기부의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임을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서울지검 공안1부 朴澈俊 부부장검사는 직접 신문에 앞서 피고인별로 혐의 사실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朴부부장검사는 “吳靜恩 피고인은 국가공무원 신분으로 李會昌 한나라당 선거 비선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으며 吳피고인을 비롯,韓成基·張錫重 피고인은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보이자 북측에 무력시위를 요청했다”고 지적한 뒤 “權寧海 피고인은 총풍 3인방이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신빙성있는 보고를 받고도 수사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공소취하 요구 ◆총풍사건의 변호인단인 鄭寅鳳 변호사는 모두진술에서 “처음 보도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지만 변론을 맡으면서 안기부가 주도면밀하게 총풍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특히 검찰은 변호인 접견권을 제한하고 신체감정과 검증과정에서도 고문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무리하게 공소를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鄭변호사는 또 “변론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과연 500만원의 여비를 갖고 피고인 3명이 총격요청이라는 엄청난 일을 꾸밀 수 있었겠느냐”면서 “검찰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공소를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변호인단에게 모두진술을 허용하는 문제와 관련,“형사소송법에 변호인단이 의견을 진술할 권리가 규정돼 있지 않다”면서 “특히 변호인단이 본안 소송과 관련이 없고 검찰이 수사 중인 고문사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장인 金澤秀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에는 변호인 모두 진술권이 규정돼 있지 않지만 검찰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진술권을 허용하고 있다”면서 검찰의 주장을 일축했다.
  • 어린이 2명 유괴 살해

    ◎5세 여아 성추행까지… 사체 1구 바다서 발견/부산서,인근동네 사는 40대 범행일체 자백 40대 남자가 인근 동네에 사는 남녀 어린이 2명을 유괴,살해한 뒤 바다에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16일 어린이 2명을 유괴,살해한 張世明씨(42·무직·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147)를 붙잡아 조사중이다. 張씨는 지난 15일 하오 9시10분쯤 부산시 수영구 광안1동 충남슈퍼 앞에서 놀고 있던 이 동네 金모군(7)과 文모양(5)을 1㎞ 가량 떨어진 민락동 수변공원 선착장에 데려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張씨는 경찰에서 “친척 결혼식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중 슈퍼앞에 있던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주고 ‘바닷가에 놀러가자’고 꾀여 선착장에 갔는데 金군이 정박중인 어선에 올라가는 순간 넘어지면서 선미에 머리를 부딪쳐 깨어나지 않아 죽은 줄 알고 밧줄을 온몸을 감았다”고 말했다.張씨는 이어 “옆에서 우는 文양을 성추행한 뒤 목졸라 죽이고 밧줄로 묶어 바다에 버린 뒤 金군을 10여m 떨어진 다른 어선위로 올라가 바다에 던졌다”고 진술했다. 金군은 16일 하오 7시쯤 수심 5m 아래 바다에서 얼굴에 비닐봉지가 씌워지고 온몸이 밧줄에 감긴 상태로 인양됐다. 경찰은 張씨가 지난 95년 이혼한 뒤 혼자 살아왔고 직업이 없는 점으로 미뤄 돈이 궁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정확한 동기를 조사중이다.
  • 팔,아라파트 암살조직 적발/이란서 자금·훈련 제공

    【라말라(팔레스타인)AP 연합】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에 대한 암살 모의가 잇따라 적발됐다. 팔레스타인 보안군이 최근 몇달 사이에 이란의 지원을 받아 아라파트 등을 암살하려는 회교 과격파를 적발했다고 아라파트 수반의 고위 측근이 3일 밝혔다. 타이엡 압델 라힘 비서실장은 “암살 모의를 한 여러명의 과격분자를 체포했다”면서 “이란이 암살과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을 노리는 과격단체 하마스의 지하조직에 자금과 훈련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라힘은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정보요원들이 요르단강 서안의 헤브론에서 하마스 행동대원 1명을 체포해 아라파트 암살 지령을 이란으로부터 받았음을 자백받았다고 덧붙였다.
  • 銃風·稅風 어물쩍 안된다(사설)

    金大中 대통령은 3일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불법모금사건과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고,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사건’으로 규정하고,국가기강과 안보를 위해 두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낼 것을 검찰에 강력히 요구했다. 우리는 두 사건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왔던 바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볼 필요를 느낀다.대통령이 두 사건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고해서가 아니다.국세청 불법모금사건 관련 혐의로 법원의 영장이 발부된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이 검찰 소환을 거부한채 국정감사를 하고 있고,검찰이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음에도 야당이 고문의혹을 내세워 ‘조작설’을 들고 나와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을 동원해서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한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은 단순한 선거자금법 위반사건이 아니다.국가의 징세권을 악용해서 정권을 잡으려 한 파렴치하고도 반국가적인 국가기강문란 범죄다.지난 대선 당시 그 범죄에 가담했던 林采柱 전 국세청장이 구속돼 있는데도,이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李碩熙 전 국세청차장이 미국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에 기대어 徐相穆 의원과 한나라당은 그 사건과 무관하다고 버티고 있다.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설혹 대선 당시에는 국세청 불법모금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그 자금이 대선에 사용된 사실이 밝혀진 이상 이제라도 국민에게 깊이 사과해야 옳다.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은 더더욱 그렇다.선거에 이기기 위해 판문점에서 남쪽을 향해 총격을 해달라고 적에게 요청한 행위는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한 중대한 반국가행위다.만에 하나,북쪽이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겠는가.생각만 해도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총격을 요청한 3인방은 대선 당시 李會昌 후보 캠프와 연락이 빈번했던 사람들이다.이들 3인방은 안기부에서 배후에 대해 자백을 하고는 검찰에 넘어와서는 그 진술을 부인했다.검찰은 기업체 책임자가 총격요청에 관해 그들과 협의한 사실을 시인했는데도,3인방이 그 자백을 부인한다며 배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물론 고문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바람에 검찰의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총풍(銃風)’수사는 그 죄질의 엄중함에 비춰 어정쩡하게 끝나서는 안된다.배후를 포함한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세풍’이나 ‘총풍’같은 범죄행위가 다시는 이땅에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그러나 검찰의 수사와 재판과정을 조용히 지켜볼 일이다.
  • 성철 스님 일대기 그린 소설 ‘산은 산 물은 물’

    ◎다큐멘터리로 엮은 구도자의 삶/문도 스님들 인터뷰… 사실묘사 충실 우리 시대의 ‘생불(生佛)’ 성철 큰스님이 열반에 든지 5년.오는 11월8일 입적 5주기를 맞는 불교계에선 성철 스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사리탑 봉정준비가 한창이다.이 즈음 문학 쪽에선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전2권,민음사)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지은이는 ‘소설 유마경’,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 등을 내며 불교문학에 정진해온 작가 정찬주씨(46). 올 초 성철 스님에 대한 영화가 고증보다는 미화에 치중했다고 해서 중도하차된 적이 있다.그런 만큼 작가는 무엇보다 성철 스님의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왜곡되지 않게 그리는데 역점을 뒀다.혜암 법전 도우 철웅 자광 묘엄백졸 등 수많은 스님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으며,성철 스님의 상좌이자 백련암 주지인 원택 스님과는 전화통화만 수백통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픽션이기에 앞서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읽힌다.“부처님 열반 뒤에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그대로 옮긴것이 경전이 됐듯이,자신도 그런 자세로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빌려 썼다”는 게 작가의 설명.성철스님문도회는 이 소설을 ‘성철 스님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산은 산 물은 물’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한다.소설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어 그 틀이 마치 액자의 꼴을 띠고 있는 것이다.성철 스님의 행적을 좇는 정 검사,환속했지만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성철 스님의 친필을 성철 스님의 상좌에게 전해주려는 원암,‘소리’를 통해 스님이 된 아버지를 찾으려는 서효 등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매개체.이들이 각각 자신의 구도문법대로 성철 스님을 찾아가는 것이 작품의 기본 얼개다. 작가는 이 전기소설에서 사실을 말하기 위해 과감히 픽션의 공간을 벗어나 스님들의 육성을 담아낸다.이 지점에서 담백하고 서정적인 문체는 대번 투박한 어조로 바뀐다.예를 들면 “부산 옥천사 주지이자 불필 스님의 평생 도반인 백졸 스님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하는 식이다.게송이나 출가시,오도송,법문 등을 옮겨 놓은 것도 이 소설의 깊이를 더해주는 매력.글줄을 따라 가다 보면 독자들은 이내 열반적정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2년의 세월을 바쳤다.그는 앞으로 자신의 구도세계를 단순한 불교의 울타리를 넘어 유가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할 작정이다.그는 우선 내년부터 중국 제자백가의 고향을 답사,이를 소설화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 총격요청 수사결과­안풀린 의문점들

    ◎안개속 銃風 배후 ‘의혹불씨’ 여전/3인방 혐의확인 ‘고문자백’ 논란은 불식/실체규명 미흡… 정치인 공방 계속될듯 검찰의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수사가 풀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긴 채 사실상 일단락됐다. 검찰은 26일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韓成基씨 등 3명의 총격요청 동기 및 경위 등만을 밝혔을 뿐 ‘배후’에 대해서는 확실한 설명을 못했다. 30여일 동안 여야 정치권의 첨예한 대치 상황을 불러일으켰던 파장에 비춰볼 때 수사 결과는 일반의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朴舜用 서울지검장도 “속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시간도 부족했다”며 수사결과가 기대 이하임을 시인했다. 물론 검찰은 “이번 것은 중간수사발표이며 수사의 끝은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발표에서 韓씨 등 3명이 ‘대선 직전 북측인물과 내통,판문점에서의 총격을 요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피의자들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이어 ‘무력도발을 통해 긴장을 조성,특정 후보의 당선을 기도한 것으로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한 사건’이라고 성격을 강도 높게 규정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吳靜恩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의 자금 지원을 받아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조직’을 결성,운영한 사실도 밝혀냈다. 아울러 이른바 ‘尹泓俊 기자회견,吳益濟 편지 공개’ 등 일련의 ‘북풍사건’을 이끌었던 權寧海 전 안기부장의 개입 사실도 검찰 수사의 성과이다. 權전부장은 대선 전 이 사건의 신빙성을 확인하고서도 사건을 묵살,한나라당 李후보를 음성적으로 지원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의 본류인 정치권 등의 ‘배후’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 필요’라는 등의 말로 얼버무렸다. 특히 사건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던 한나라당 李총재의 동생 李會晟씨(52)의 개입 여부와 관련,“韓씨가 중국 출국 전 판문점 총격요청계획을 보고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간다”는 수준에서 결론을 유보했다. 정황으로 미뤄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뜻이다. 韓씨가 안기부 수사에서는 李씨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가 검찰에서는 진술을 번복한 대목에 대해서도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의혹이 풀리지 않은 한 이 수사는 계속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총풍(銃風)’의 여진이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 발표와 상관 없이 ‘배후세력 규명’‘야당 파괴 음모’ 등을 주장하는 정치권의 공방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새로 밝혀진 사실들/3인방,李 후보 비선조직 결성 26일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는 權寧海 전 안기부장이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도 고의적으로 묵인했으며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이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權 전 부장은 지난해 12월 11일 무력시위 요청에 관한 첩보를 입수하고 李大成 전 해외조사실장에게 진상파악을 지시했다. 나흘 뒤 李 전 실장으로부터 ‘韓成基씨 등이 옥수수박사인 金順權 교수의 방북 대가로 북한측에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퇴임 때까지 관련 첩보 및 증거물을 수사 부서에 넘기지 않았다. 검찰은 權 전 부장이 지난 대선에서 ‘尹泓俊씨 기자회견’ 등 일련의 ‘북풍(北風)공작’을 지휘하면서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진로그룹 張회장은 韓씨로부터 무력시위 요청을 보고받은 뒤 안기부 직원을 연결시켜 주겠다고 제의했다. 특히 韓씨에게 북한주민접촉 신청에 필요한 무역업필증 등의 서류도 발급해줬다. 며칠 뒤 귀국한 韓씨가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자 그날 저녁 吳靜恩씨와 만나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쯤 자금압박을 받자 李會晟씨에게 진로그룹의 부동산 매각과 화의신청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부동산이 매각되면 탈당설이 나돌던 朴燦鍾 고문에게 자금을 지원,李會昌 후보 진영에 남도록 유도하는 것은 물론 대선자금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선자금을 먼저 지원해 달라’는 會晟씨의 요청에 ‘부동산 매각이 우선’이라며 거부했다. 한편 吳씨 등은 비선조직을 전국적 규모로 활용할 방침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선거기획업무 경험이 있는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 조청래씨를 먼저 끌어들였다. 이후 李明博 의원 보좌관인 尹만석씨,정치평론가 高성국씨 등과 李會昌 후보 비선 참모조직으로 구성했다. 또 20∼30대 청년을 중심으로 전국 규모의 청년홍보단을 조직했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인 崔동렬씨를 중심으로 중앙 관리단과 전국 시도지부를 결성,활동하려 했으나 張회장으로부터 7,000만원 이외 자금지원이 없어 중단했다. ◎총격요청 수사일지 ▲97년 12월 안기부,韓成基씨 총격요청 첩보 입수 ▲12월12일 안기부,韓씨 조사 ▲98년 3월 안기부 내사 착수 ▲8월17일 경찰청,韓씨 사기혐의 구속 ▲9월1∼7일 안기부,서울지검서 韓씨와 張錫重씨 조사 ▲9월9일 吳靜恩 전 청와대 행정관 구속 ▲9월17일 張씨 구속 ▲9월25일 안기부,吳·韓·張씨 서울지검 공안1부 송치 ▲9월28일 李會晟씨 출국금지 ▲10월2일 張씨 동생 錫斗씨와 韓씨 변호인 姜信玉 변호사,안기부 고문 주장 ▲10월3일 韓·張씨 신체검증 ▲10월5일 韓·張씨 국과수 1차 신체감정 ▲10월8일 張震浩 진로그룹 회장 소환. 변호인단,안기부 수사관 등 가혹행위 고발 ▲10월10일 吳·張씨 구속적부심 기각 ▲10월12일 金順權교수 소환.국과수 1차 신체감정결과 통보 ▲10월14일 韓·張씨 서울대병원 2차 신체감정 ▲10월21일 李會晟씨 소환조사 ▲10월22일 서울대병원,2차 신체감정결과 통보 ▲10월26일 기소 및 수사결과 발표 ◎검찰 열거 사항/李會昌­會晟 형제 연루 “정황증거뿐”/한성기­회성씨 수차 접촉 총풍추진 결과 등 보고/오씨 작성 대선전략안 이 총재에 직접 전달 검찰은 26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와 동생 會晟씨의 연루의혹에 대해 여러 ‘정황증거’를 열거했다. 會晟씨의 연루의혹은 특히 구체적이다. 검찰이 韓成基씨 등 피의자 3인의 배후가 있다고 믿는 것은 이들이 낮은 직급과 신뢰성에도 불구하고 북측에 비료 등의 지원을 약속한 점 때문이다. 검찰은 會晟씨가 韓씨와 수차례 전화나 직접 접촉을 통해 대선관련보고는 물론 총격요청 계획을 보고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우선 會晟씨가 대선기간중 조선호텔 스위트룸을 빌려 韓씨 등과 수차례 만난 데 주목하고 있다. 韓씨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 會晟씨와 12월1일 두차례,6·8·9일 각각 한차례씩 통화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韓씨는 특히 12월13일 안기부에서 조사받은 후 “그동안 별일 없었습니까,선거는 잘되고 있습니까”라는 내용으로 통화했으며 16일경 호텔 로비에서 會晟씨에게 전화를 걸어 “북풍을 일으켜 달라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다고 수사 초기 시인한 바 있다. 韓씨는 또 “선거때 열심히 하신 분으로 앞으로도 큰 몫을 할 분”이라는 會晟씨의 편지를 휴대하고 군입대한 會晟씨의 아들을 면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후원자 관계 이상임을 입증하는 증거라는게 검찰의 설명이다. 李會昌 총재의 연루의혹에 대해 검찰은 吳씨가 지난해 12월초 10여차례에 걸쳐 李총재의 이미지 제고방안 등 18건의 보고서를 작성,李총재에게 직접 전달한 사실을 확인한 데 만족하고 있다.이는 여권이 제기하는 ‘도의적 책임론’과 맥이 닿아 있다.
  • 權寧海씨 銃風 알고도 묵인/직무유기 추가 기소

    ◎李會星씨 의혹 계속 수사/검찰 수사결과 발표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韓成基씨(39·전 포스데이터 고문) 등 3명이 모의,실행했으며 權寧海 전 안기부장이 이 사건을 알고도 수사 지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李會晟씨(52·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가 韓씨 등으로부터 총격요청계획을 보고받았은지와 韓씨에게 500만원을 건넸는지 여부 등 배후 의혹에 대해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26일 이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韓씨와 吳靜恩씨(46·전 청와대 행정관),張錫重씨(48·대호차이나 대표) 등 3명을 국가보안법의 회합·통신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權 전 안기부장에게는 국가보안법의 특수직무유기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또 吳씨가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던 조청래씨 등 4명과 함께 ‘비선참모조직’ 및 ‘전국 규모의 청년홍보단’을 구성·운영키로 하고 張震浩 진로그룹 회장에게서 활동자금 7,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도 병합해 기소했다. 吳씨 등은 지난 해 12월 초 李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북한측에 휴전선 총격전 등 무력시위를 요청키로 공모,북한측의 朴충 등에게 이같은 뜻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韓씨는 지난 해 12월10일 중국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북한 아세아태평양 평화위원회 참사 朴충을 만나 자신을 ‘李후보의 특보’라고 소개한 뒤 “대선을 3∼4일 앞두고 TV화면이 잘 잡히는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여 긴장을 조성해달라”고 요청했다. 韓씨는 요청을 들어주면 새정부 출범 전까지 비료·영농자재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틀 뒤인 12일 朴으로부터 “우리 공화국에 전문을 보냈는 데 회답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귀국했다는 것이다. 權 전 안기부장은 韓씨 등의 이같은 행적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도 퇴임때까지 수사지시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건을 후임자에게 인계 조차 않는 등 은폐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韓씨가 안기부 조사에서 李會晟씨에게 무력시위 요청계획을 사전에 보고하고 베이징 여비조로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대목에 대해 수사했으나 韓씨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진술을 번복했고 李會晟씨도 강력히 부인했다고 밝혔다.
  • 총격요청 수사결과­발표문 요지

    ◎배후 등 공범 수사/한씨 “이회성씨에 보고” 진술 번복/피의자 3인 “총격요청 했지만 보고는 안했다” ▲수사배경=한성기가 안기부 조사 과정에서 이회성에게 무력 시위 요청 계획을 사전에 보고하고 경비 500만원을 지원받았으며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에게도 사전에 보고했다고 진술했다.오정은 한성기등이 이회창 후보 당선 시공을 인정받아 대가를 얻을 목적으로 범행에 이른점에 비추어 볼 때 추진 상황을 사전에 이후보 진영에 보고하였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돼 이회성 장진호 오정은의 비선조직과 통일부 안기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배후 및 공범관계 수사를 계속해왔다. ○‘이 후보 지시’ 아직 못밝혀 ▲이회창 후보 수사 결과=오정은은 97년 10월 한성기로부터 진로의 부동산 매각과 화의신청을 도와주면 장진호가 박찬종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해 박찬종을 이후보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정비서관과 민정비서관에게 부탁했다.11월 하순 한성기와 함께 이후보의 승용차에 동승,박찬종 고문 자택까지 안내해 이후보와 박고문의 회동을주선하는 등 이후보와 지속적으로 접촉했다. 피의자 등이 모두 이후보의 휴전선 무력시위 요청을 지시받거나 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어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로는 이후보가 지시했거나 보고받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회성 관련 의혹=이회성은 대선기간동안 조선호텔 객실에서 한성기를 1회 만난 것은 사실이나 10여분 동안 선거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 무력 시위 요청 내용에 대해 사전 사후에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극구 변명했다. 한성기는 안기부 조사에서는 97년 11월 하순 조선호텔에서 이회성을 만나 “이런 식으로 가면 대선에 절대 불리할 것 같다.4·11 총선과 같이 북풍을 일으켜 대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야겠다”고 했고 12월 다시 만나 “북경에 가서 북풍을 일으켜 달라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그러나 검찰에서는 그 진술을 번복했다. 결론적으로 한성기와 이회성이 단둘이 은밀히 만났다면 한성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출국전에 무력 시위를 요청할계획을 얘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출국전 계획보고 가능성 또 한성기는 12월8일 조선호텔에서 이회성을 만나 북풍 요청 사실을 말하려고 했으나 사람이 많아 말을 다하지 못했고 이회성의 지시에 따라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을 만나 “북경으로 가서 북한 사람과 만나 무력시위를 요청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면 한성기가 중국 출국전에 이회성을 만나 무력 시위 요청 계획을 보고했을 의심이 가므로 보고 여부에 관해 계속 수사할 필요가 있다. 한성기는 안기부 조사시 이회성고문에게 무력 시위 요청 사건을 사전에 보고하고 경비조로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번복했다.이회성도 자금 제공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진위에 관해서는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장진호씨가 자금 지원 ▲장진호 관련 의혹=장진호는 97년 10월 한성기 오정은으로부터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비선 조직을 결성할 계획이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7,000만원을 지원했으며 12월 초순에는 한성기의 북한 주민접촉 신청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발급해 주고 한성기가 북경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은 점이 확인됐다.장진호는 안기부 조사시 97년 12월초 한성기로부터 “12월10일쯤 북경을 방문해 북한측에 모종의 부탁을 하려 하는데 앞으로 휴전선에서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진술을 번복했다. 전후 사정을 종합해보면 장진호가 무력 시위 요청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였을 개연성이 있으나 장진호가 한성기 등에게 무력 시위를 요청하도록 지시했거나 자금 지원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향후 수사 계획=피의자들은 검찰 송치후 배후 관련 부분을 제외한 범행을 대부분 시인했으나 사건이 정치쟁점화되고 신체검증과 구속적부심 등을 통해 자백을 번복하고 배후를 부인하고 있어 계속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겠다. ◎범행 동기/이회창 후보 당선땐 승진·채무변제 등 기대 26일 검찰이 발표한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의 주요내용을 간추린다. 吳靜恩張錫重은 94년 현대종합상사 부장인 吳모씨의 소개로 알게된 뒤 吳靜恩은 張錫重의 대북 무역업에 관한 편의를 봐주고,張錫重은 북한관련 정보를 吳靜恩에게 제공했다.韓成基와 吳靜恩은 97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다니면서 알게 됐다. 吳靜恩은 별정직 공무원으로서 金泳三대통령 퇴임후의 신분유지에 불안을 느껴 韓成基와 함께 李會昌 후보 선거운동을 위한 비선조직을 구성키로 합의했다.한성기와 오정은은 97년 10월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의 집을 방문하여 비선조직 운영자금 7,000만원을 제공받아 2,000만원은 韓成基가,5,000만원은 吳靜恩이 조직운영비로 사용했다. 피의자들은 대선 기간중 吳靜恩 韓成基가 李會昌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이에 따라 張錫重이 97년 10월16일 북의 아세아 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방북 초청장을 받고 추진하던 金順權 박사의 방북을 대가로 북한측에 96년 4·11 총선 직전에 발생한 판문점 무력시위와 같은총격전 등을 요청하여 보수세력의 지지를 결집시켜 李후보의 지지율을 제고키로 했다. 李후보가 당선될 경우 오정은은 청와대 별정직 3급 공무원으로서 현직 유지가 가능하고 승진 또는 출신지역에서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를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성기는 안기부장 특보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장석중은 대북사업 중 발생한 현대측에 대한 2억원의 채무변제 유예가 가능하고 앞으로 오정은 등을 배경으로 원활한 대북사업을 할 수 있는 등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이와 같이 개인적 이익과 영달을 위하여 국기를 위협하는 판문점 총격요청 범행에까지 이르게 됐다. ◎총격요청 공모/“선거 이틀전 터트리면 야당서도 대응 못할것” 장석중은 북한에 농업용 자재를 제공하고 농산물을 받아오는 계약재배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경북대 김순권박사의 방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정은에게 김박사의 방북승인을 부탁했다.장석중이 현대에 대한 채무 2억원을 변제하지 못하고 담보물건에 대한 경매를 통보받는 상황에 이르러 오정은에게 그 해결을 부탁하자 오정은은 정·재계에 지면이 넓은 한성기를 장석중에게 소개했다. 오정은의 소개로 한성기 장석중이 만나 김박사의 방북을 고리로 현대의 대북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장석중의 현대에 대한 채무를 연기받는 방안을 논의하던중 오정은이 북한에 김박사를 보내면 장석중의 사업뿐 아니라 이번 대선과 관련해 활용할 수도 있을 것 아니냐고 제의했다. 이후 97년 11월 하순 오정은과 한성기가 만나 李후보 지지율 문제를 논의하다가 한성기가 국민회의 공작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휴전선 총격전인데 시시한 것 갖고는 안되고 한번 ‘쾅’하고 크게 터져야 한다고 말했다.이에 오정은은 만약 그런 사건을 일으키면 오히려 여당이 덮어쓸 가능성이 많다고 하자 한성기는 선거에 임박해 이틀 정도 하면 야당이 대응할 여유가 없다면서 내가 북경에 가서 북한사람들을 만나보겠다고 말했다. 97년 11월말경 삼청동 오복집에서 오정은 한성기 장석중이 만났다.이 자리에서 한성기가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4·11총선 때처럼 판문점에서 무력시위가 있어야 하며 홍보가 중요하므로 사전에 북측과 약속된 지점에 미리 카메라를 설치하여 북측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내려오는 장면을 실감나게 찍어 방영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장석중이 그런 문제는 자신있다며 북한측과 한성기를 만나도록 주선해주겠다고 했다.또 장석중이 오정은에게 김박사의 방북승인 일정을 책임져 달라고 하자 오정은은 챙겨보겠다고 약속했다. 오정은은 통일원에서 김박사의 방북승인을 얻어내고 장석중은 한성기를 북경으로 안내하여 북측인물과 접촉을 주선하며,한성기는 북측인사들을 만나 대선 직전 북한군의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 97년 12월 초순 장석중이 북경 방문시 대선문제 등을 논의할 목적으로 북경 주재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협력처장 리철운에게 전화하여 한성기를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김박사의 방북건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니 대선관련 요청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97년 12월9일 삼청동 오복집에서 3인이 만나 무력시위 요청에 관한 북한측과의 접촉상황 등을 최종점검하면서 만약 공안기관에 노출되면 김박사의 방북 등 남북교류 부분에만 목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자고 약속했다. ◎권영해씨 직무유기/사건내용 알고도 자료인계 안해 권전안기부장은 97년 12월 한성기가 북경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북측이 휴전선에 1개 소대를 보내 무력 시위를 일으키거나 김대중 후보의 친북활동 자료를 제공하여 주면 북한에 식량과 비료 등을 지원해주겠다고 언동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대성 해외조사실장에게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이대성은 12월12일 중국에서 귀국하는 한성기를 김포공항에서 임의동행해 조사한 결과 한성기는 부인했으나 소지품 등을 통해 첩보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이대성은 권영해에게 한성기 조사 결과와 동행한 장석중이 안기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보고했으나 권영해의 별도 지시가 없자 한성기를 석방했다. 권전안기부장은 첩보 내용의 신빙성을 확인해 한성기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고 특정 후보의지지율 제고를 위해 북과 내통해 휴전선에서의 무력 시위를 요청한 중대한 사안임을 인식했다.그런데도 대공수사실로 관련 첩보 및 증거물을 이첩하여 수사토록 하지 않고 퇴임시까지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건의 암장을 기도,이후보의 당선을 음성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장석중씨 사전인지 의혹 권영해는 범행의 동기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나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사건에 대해 은폐하려한 점에 비춰 피의자에게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그 동기를 추단해 볼 수 있다.권은 자신의 조사 지시로 범행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권 교체후 새 안기부 수사팀에 본건 관련 자료를 공식 인계한 사실도 없을 뿐 아니라 부장의 지시가 없을 경우 수사 부서로 이첩되지 않아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 비춰 범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이 후보당선 음성적 지원 특히 안기부에서 공작원인 장석중 등이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유는 12월12일 귀국하자마자 안기부에서 조사받은 한성기가 다음날 북경에있는 장석중에게 안기부에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알렸음에도 장석중이 상급자 공작관에게 이실직고하지 않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 등 때문이다.이 점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총격요청 경과/북 박충 만나 무력시위 부탁/“평양에 알아보겠다” 답변 97년 12월10일 오후 장석중 한성기가 중국 북경에 도착해 캠핀스키 호텔에 투숙했다. ▲1차 접촉=12월10일 오후 6시 한성기의 호텔 방에서 장석중의 전화를 받고 찾아온 북한 대외경제위 소속 리철운과 김영수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장석중은 한성기와 같이 북경에 온 목적은 첫째 김순권 박사 옥수수 계약재배건이며,둘째는 대선에 관한 특별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리철운이 무엇을 도와 달라는 것이냐고 묻자 한성기는 김대중 후보의 친북자료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 자료가 있으면 부탁한다고 말했다.또 판문점 무력시위 요청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사람과의 회담 주선을 부탁했다. ▲2차 접촉=같은 날 오후 8시 캠핀스키 호텔 다방에서 한성기 장석중과 북한의 리철운 김영수,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라고 소개한 박충이 만났다.한성기는 이 자리에서 현재 대선상황은 전쟁상황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이회창 후보 특보 자격으로 북한에 왔다고 밝혔다.또 박충에게 우리가 요청하는 사항을 들어달라고 요청,박충으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도와드리겠다는 답변을 들었다.이어 한성기는 박충과 따로 만나 TV화면이 잘 잡히는 판문점에서 무장군인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무력시위를 하여 긴장을 조성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요청했다.또 요청을 들어주면 김박사를 북한에 보내주고 신정부 출범 전까지 비료,영농자재 등을 대가로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박충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평양에 전문을 보내 출국하기 전에 답변을 주겠다고 말했다. ▲3차 접촉=12월11일 오전 11시쯤 캠핀스키 호텔에서 한성기 장석중과 리철운 김영수 등이 만나 계약재배건 등 대북사업계획을 논의했다. ▲4차 접촉=12월12일 오전 8시30분쯤 같은 호텔에서 한성기 장석중이 북한의 박충 리철운 김영수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박충은 한성기가 말한 부분에 대하여 우리 공화국에 전문을 보냈으나 회답이 없다고 전했다.박충은 또 지금 답변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라는 통보를 했다. ◎결론/적과 내통 긴장 조성/자유민주주의 뒤흔든 사건 ▲사건의 성격=이번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제15대 대선중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인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과 진로그룹 고문 한성기 등이 재벌의 자금지원으로 비선조직을 가동,특정후보의 당선을 위해 북측인물과 내통,판문점에서의 총격까지 요청,국가의 안녕과 자유민주주의 뿌리를 뒤흔드는 가증스러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져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특수직무유기 사건’은 국가최고정보기관의장이 총격요청사건을 수사에 착수도 하지 않아 대공정보·수사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또 하나의 대표적 사건으로 지난 대선기간 중 일어난 ‘북풍’사건과 궤를 같이 한다. ▲검찰의 입장=‘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적과 내통해 긴장을 조성,보수계층을 결집시켜 대선에서 특정후보의 당선을 기도한 것으로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한 사건으로 역사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 엄정하게 사법처리 했다. 관련자들은 소속 정당,신분,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배후관계 등과 관련,의심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증거법상 인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기소하였다. ▲향후 수사계획=북한과 관련된 사항이 많고,피의자들이 언론에 보도된 후 정치쟁점화되고 신체검증·감정절차,구속적부심 절차와 한나라당 소속 변호인들과 접견한 뒤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배후관계 등에 강한 의혹이 있음에도 수사 애로상 충분히 규명되지 못하고 증거법상의 제약으로 기소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나,▲혐의자들에 대한 공모,자금 지원 여부 ▲김순권 박사의 방북카드를 대가로 무력시위 요청 경위 ▲권영해의 특수직무유기행위와 정치권과의 연관관계 ▲판문점 총격요청을 전후한 한성기,장진호,이회성 등의 접촉과 관련한 일련의 의혹 등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할 것이다. 아울러,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제기된 가혹행위여부에 대해서도 인권옹호 차원에서 엄정하게 수사하겠다.
  • 北 억류 金鎭慶 총장 추방/중앙통신 “간첩혐의”

    【베이징 연합】 북한 당국이 24일 1개월이상 억류해 조사해오던 옌볜(延邊)과학기술대학 金鎭慶 총장(63)을 간첩 혐의로 추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이날 북한 중앙통신의 보도를 인용,북한 당국이 “한국 안기부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죄로 미국 시민권자인 金씨를 국외로 추방했다”고 전했다. 중앙통신은 “金씨가 93년 2월 한국 최고위층 및 안기부 중요 인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수차례 조선에 입국해 조선 내부자료를 정탐,보고함으로써 내부로부터 사회주의를 부식시키려 했다”면서 “金씨가 간첩행위를 숨김없이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조선의 주권을 침범한 그의 행위는 법에 따라 처벌돼야 마땅하나 현재의 조­미관계, 金의 조선적 미국인 신분 등을 고려,관대한 처리를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 부녀자 5명 연쇄 살해/40대,용돈 구하려 식당 등서

    용돈 마련을 위해 대전지역에서 한달여 동안 임신부 등 부녀자 5명을 살해한 40대 용의자가 다른 범행으로 경기도 수원중부경찰서에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대전 동부경찰서는 수원 중부경찰서에 강간치상 혐의로 지난 20일 구속된 黃鈴東씨(49·전과 14범)를 상대로 23일 조사를 벌여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黃씨는 지난 16일 오후 9시30분쯤 대전시 동구 삼성1동 C식당(주인 權용자·34·여)에서 맥주 등 6만원 어치 음식을 먹은 뒤 음식값을 요구하는 權씨의 가슴 등을 흉기로 3차례 찔러 숨지게 하는 등 용돈 마련을 위해 대전지역 다방·음식점 여주인 등을 상대로 모두 5차례 살인을 저지른 혐의다. 黃씨는 지난 18일 수원 H음식점 화장실에서 모 무용학원 강사 沈모씨(46·여)를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하려다 아르바이트 대학생 安재희씨(22·협성대 1년) 등 인부들과 격투끝에 붙잡혔다.
  • 銃風 수사 마무리 수순/李會晟씨 소환 안팎

    ◎韓씨 등 3명 “허위 자백” 진술로 꼬여/李씨 증거인멸 기도 등 확증 못찾은듯 검찰의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수사가 21일 李會晟씨(52)의 전격 소환으로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李씨는 사건 초기부터 한나라당의 ‘비선조직’으로 알려진 韓成基씨(39·구속) 등 3명의 배후로 지목돼 왔다.한나라당 지도부와 韓씨 등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검찰수사의 본류로 여겨지기도 했다. 李씨의 개입 여부는 단순히 韓씨 등의 과잉충성에 의한 ‘총격요청’인지, 아니면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대선공작’인지를 가리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韓씨가 안기부 조사과정에서 “총격요청 계획을 李씨에게 보고하자 ‘신중히 대처하라’며 여행비로 500만원을 줬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李씨에 대한 의혹은 증폭돼 왔다. 하지만 韓씨 등이 검찰에서 “안기부의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진술을 번복,수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검찰은 안기부와 통일부 등의 직원과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주변 조사를 했으나 李씨가 개입했다는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씨에게 여비 제공과 대선 이후의 증거인멸 기도 여부 등을 따졌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이 20일 李씨의 소환에 대해 “참고인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검찰이 “李씨가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귀가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때문에 李씨가 총격요청 사건으로 구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검찰의 李씨에 대한 소환이 韓씨 등 3명의 기소를 앞둔 시점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검찰은 이미 韓씨 등에 대한 공소장 및 발표문 초안작성 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이 기소 만기일인 오는 26일 韓씨 등 3명의 ‘판문점 총격요청’ 혐의 사실만을 확인하고 사건을 마무리할 경우 정치권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가을에 펼치는 화려한 춤잔치/20회 서울국제무용제 25일 개막

    ◎경연부문 12개팀 창작무 열연/佛 ‘몽탈보’ 등 국내외 8개팀 초청/전통춤 진수선보일 명무공연도 제20회 서울국제무용제가 25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오는 11월15일까지 개최될 이 무용제는 한국무용협회(이사장 조흥동)가 창작무용 진흥을 목적으로 주최하는 행사로,12개 참가단체가 대상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올해는 경연방식의 공연외에 98전국무용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광주발레단,프랑스의 몽탈보무용단,스위스의 필립 사레무용단 등 8개 국내외 무용단체의 초청공연과 한국무용계를 대표하는 원로들의 명무공연이 펼쳐져 축제분위기를 돋운다. 무용제의 하이라이트인 경연부문에는 예선을 통과한 참가작 10편과 자유참가작 2편이 오른다. 이중 김은이 ‘짓’무용단의 ‘지금은 부재중’,심가희錦林무용단의 ‘유리벽’,오율자백남무용단의 ‘바람의 강’,정은혜한밭무용단의 ‘달꿈’,장선희발레단의 ‘나비꿈 혹은 나비의 꿈’,황규자발레단의 ‘소래에서 고잔역’,안애순현대무용단의 ‘客·人’,툇마루현대무용단의 ‘고향 1302’,광주현대무용단의 ‘푸른 나부’,서울현대무용단의 ‘거미줄에 걸린 꽃잎’은 이번에 초연되는 것이다. 한편 이번 무용제에서는 지난 1년간 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중 우수작을 뽑아 참가자격을 줬다. 춤타래무용단의 ‘몽상록’,밀물현대무용단의 ‘마부 요나의 꿈’이 그것이다. 한국 전통춤의 진수를 보여줄 명무공연은 특별 전야제 형식으로 꾸며진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기능보유자인 강선영씨와 제27호 ‘승무’와 97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이매방씨의 춤,92년 춤의 해에 명작무로 지정된 김진걸씨의 ‘산조’,최현씨가 안무한 ‘비상’,김백봉씨의 ‘부채춤’,고(故)조택원씨가 안무한 ‘가사호접’(출연 김문숙)이 공연된다. 몽탈보무용단과 필립 사레무용단은 세계 무용계의 최근 흐름을 알려준다. 몽탈보무용단은 춤과 인접예술과의 접목을 통해 실험적 무용을 선보이고 있는 단체. 이번 무대에선 ‘파라다이스’를 올린다. 또 필립 사레무용단은 ‘가벼움에 대한 에튜드’란 작품을 공연한다. 대상에는 700만원,우수상에는 500만원의상금이 주어진다. 무용제 일정은 다음과 같다. △25일 명무공연 △27일 광주발레단·가림다현대무용단 △29일 필립 사레무용단 △30일 국립발레단·서울발레시어터·광주시립무용단·박금자광주발레단 △11월1일 황규자발레단 △2일 장선희발레단 △4일 오율자백남무용단 △5일 안애순현대무용단 △7일 몽탈보무용단 △9일 정은혜한밭무용단 △10일 심가희錦林무용단 △12일 광주현대무용단 △13일 툇마루무용단 △15일 김은이 ‘짓’무용단 △16일 서울현대무용단(이상 문예회관) △11월9일 춤타래무용단 △15일 밀물현대무용단(이상 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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