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자백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72
  • 이근안씨, 김근태의원 고문 시인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61) 전 경감은 납북어부 김성학(金聲鶴·48·강원도 속초시)씨 고문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김근태(金槿泰)국민회의 부총재에 대한 고문혐의는 시인했다. 이전경감은 25일 오전 10시 수원지법 성남지원 1호 법정에서 형사합의1부(재판장 具萬會부장판사)심리로 열린 납북어부 고문사건 첫 공판에서 “지난85년12월 간첩혐의자에 대한 수사 관행상 김씨를 불법 연행,70여일 동안 감금한 것은 사실이지만 폭행하거나 고문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피고인은 또“당시 상부의 빗발치는 요구로 김씨를 철야조사하는 과정에서 잠을 제대로 재우지는 못했으나 김씨가 혐의사실을 순순히 자백해 고문을할 이유도 없었고 경기도경찰국 대공분실에는 전기고문을 할 만한 시설이나기구도 없었다”며 고문혐의를 부인했다. 이피고인은 그러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김근태 국민회의 부총재에 대한 고문혐의를 묻는 백오현(白五鉉)공소유지 담당변호사(특별검사)의 신문에는“지난 85년9월 5∼13일까지 당시 김근태씨 수사 팀장을 맡고 있던 박처원 전 치안감의 지시를 받고 차출된 뒤 4차례 조사과정에서 처음으로 전기고문을 했다”고 고문사실을 시인했다. 이피고인은 전기고문 기술을 익힌 경위에 대해“85년6월 중순 직원들이 AN2모형비행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형 전동기를 구했는데 전동기를 통해 감전된 경험이 있었다”며 “실험결과 위험하지도 않고 짜릿짜릿한 점에 착안,처음 사용했다”고 말했다. 전기고문 방법에 대해서는“전동기에서 나온 전선을 사람 발가락에 한줄씩묶고 회전축을 돌려 전류를 통하게 했으며 전기 막대기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는 납북어부 김씨와 민주화실천운동가족협의회(민가협)회원 등70여명이 나와 재판시작 전부터 붐볐으며 일부 민가협 회원들이 소란을 벌여 재판이 20여분 동안 중단되기도 했다. 다음 재판기일은 12월16일 오전 10시.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발언대] 80년대 당한 고문에 아직도 후유증 시달려

    요즘 신문기사를 보면 고문얘기가 많이 나온다.나는 5·18때와 구로구청사건때 별 일이 아닌데도 지나친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 경우는 그래도 덜한 것 같다.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렇게 고문을 했는데 서경원씨나 김근태씨 그리고 간첩사건에 연루되었던사람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지난 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가담했다며 전두환 군사정권으로부터 모진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당시 평범한 공무원(익산시청 도시과 근무)이었던 나는 우연히 입수한 광주관련 유인물때문에 그해 7월30일 중앙정보부전주분실에 끌려갔다.그곳을 시작으로 전주 도경찰국 대공분실과 전주헌병대,광주 상무대 보안사 등 여러 관계 기관을 거치면서 직장을 잃고 처절한 인격파괴까지 감내해야 했다.1주일간 발가벗겨진 채 받은 구타는 고문의 시작에 불과했다.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당시 그들은 간첩혐의를 씌우기 위해 월북(越北)을 허위자백하라며 세뇌를 거듭했다.반복 질문에기계적인 대답이 되풀이될수록 ‘내가 월북했었구나’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같은해 9월 광주 상무대로 이첩됐을 때 전주MBC에선 “황씨는 고정간첩”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광주에서의 고문은 대검으로 허벅지 찌르기까지 가해졌다.며칠동안 기절과고문이 반복됐다.결국 극심한 고문에 우측 안구망막이 파손되었으나 치료를받지 못해 시력을 잃어야 했다.간첩혐의는 씌워지지 않고 북한을 이롭게 했다며 국가보안법 7조2항 및 계엄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러야했다.출소후에 서울로 상경,본격적인 재야운동에 뛰어들었다.하지만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부정선거를 항의했다는 이유로 조직깡패에게 얻어맞고 구로구청에서 연행돼 조사과정에서 머리털이 뽑히는 등 또 다른 고초를 겪었다. 이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무겁고 어두웠던 시대는 갔다.그러나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아직도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내게는 무서운 악마들이다.시류를 거부하고 외길만을 고집한 인생이지만 내게 남아있는 것은 ‘야성 강한 운동권출신’이라는 꼬리표뿐이다.내가 아직도 창살 없는 감옥에사는 느낌이 드는 것은,고문이라는 인간정신을 말살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더러운 행위에 대항해 싸워보지 못한 분노로부터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일것이다.그리고 ‘운동권 출신’이라고 못박으며 접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사회에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세연[도서출판 청사 대표]
  • 참고인 진술·정황증거에 나타난 실체

    지난 88년 당시 평민당 김대중(金大中)총재가 서경원(徐敬元)의원으로부터북한의 공작금 1만달러를 받았다는 검찰 발표는 검찰과 안기부의 공조 조작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참고인의 진술과 정황 증거 등을 종합하면 안기부가 89년7월10일쯤 서 의원의 비서관 방양균(房羊均)씨로부터 “흰 종이에 1만달러를 싸 갖고 가는 것을 봤다”는 자백을 받아내 검찰에 넘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검찰이 7월28일 서 의원으로부터 ‘1만달러 제공’ 진술을 얻어냈을 가능성이 짙다.검찰과 안기부가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다. 방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당시 안기부가 서 의원이 1만달러를 솔 담뱃갑2개 크기로 포장해 김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강요했으며 고문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했다고 밝혔다.수사는 정형근(鄭亨根) 당시 대공수사국장이 총괄했다.방씨는 자신을 직접 고문한 김모씨를 최근 만나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방씨 진술대로라면 ‘1만달러 수수 공작’은 안기부에서 시작돼 검찰이 마무리한 셈이다.정형근 의원이 ‘1만달러 수수’ 부분은 검찰이 밝혀낸 것이라고 한 발언과도 배치된다. 더욱이 당시만 하더라도 대공업무과 관련해서는 검찰과 안기부는 탄탄한 공조를 유지했다.안기부가 수사해 송치한 공안사건을 수사하다 송치내용과 다른 점이 발견되면 검찰이 반드시 안기부와 협의 또는 조정을 거치는 게 관례였다.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 책임자가 당연히 검찰의 수사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며 조율가능성을 내비쳤다. 서 전 의원과 방씨는 안기부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방씨는 자신이 당시 안모검사에게 안기부의 수사가 조작됐다고 하니까 ‘사형을 면해줄 테니 시인하라’고 회유했다고 진술했다.서 전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김용래(金容來)씨와 김씨의 친구인 안양정(安亮政)씨가 당시 검찰에제출한 진술서와 2,000달러 환전영수증이 누락됐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것도 검찰의 공작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수사검사팀은 안기부와의 합작 수사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좀더 진행되어야 ‘공작’의 실체가 명백히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주병철기자 bcjoo@ *“어느선까지 소환”고민하는 검찰 검찰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지난해 대전 법조비리사건에 이어 조폐공사 파업유도 및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특별수사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 1만달러 수수 공작’사건으로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검찰 내부에서는 심각한 위기라는 탄식의 소리와 함께 ‘이번 기회를 통해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권의 논리로 검찰이 수사 검사를 수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앞으로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만도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재수사’라는 칼을 뽑아든 것은 당시 수사에대해 조작 의혹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검찰 수사 발표에서 빠져서는 안될 서경원(徐敬元)전 의원의 보좌관 김용래(金容來)씨와 조흥은행 영등포지점 외환담당 대리 안양정(安亮政)씨 등 참고인의 진술과 물증의 누락 확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이 같은상황에서 그대로 덮을 경우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검찰은 특히 당시 수사검사를 어떻게 조사할 것이며 어느 선까지 소환해야하는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검찰 수뇌부는 계속해서 회의를 열어 대책을숙의하고 있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정형근(鄭亨根)수사국장,안응모(安應模)1차장,徐東權(서동권)·박세직(朴世直)안기부장이 수사 보고라인이었다.검찰에서는 서울지검 安鍾澤(안종택)·이상형(李相亨)검사,안강민(安剛民)공안1부장,김기수(金起秀)1차장,김경회(金慶會)검사장,김기춘(金淇春)총장라인이었다. 이와 관련,안기부에서는 당시 안응모 1차장,검찰에서는 안강민 공안1부장까지 소환하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적지않다. 주병철기자
  • 徐 前의원 비서관 房羊均씨‘1만弗 수수’허위진술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 비서관인 방양균(房羊均)씨는 18일 “서전의원 밀입북사건 수사 때 당시 안기부 수사국장이었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게 직접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방씨는 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만달러 수수 부분은 안기부 조사 때고문을 이기지 못해 허위 자백했던 내용”이라고 말했다.다음은 일문입답. ■1만달러 수수는 검찰수사 때 밝혀진 내용 아닌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안기부 수사 때 고문을 이기지 못해 허위 자백했다.안기부와 검찰이 ‘김대중평민당 총재 죽이기’ 차원에서 함께 조작한 것이다.안기부는 서전의원이 1만달러를 솔 담뱃갑 2개 크기로 포장해 김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강요했다. ■정형근 의원에게 고문을 당했나. 당시 대공 수사국장이던 정의원이 직접구타했다.정의원은 수시로 수사실에 들어와 안기부 직원 특별채용을 약속하며 수사에 협조하라면서 김대중 총재만을 겨냥한 질문을 주로 했다. ■검찰에서도 고문을 받았나. 1만달러 부분을 자백할 시점에 사흘간 잠을자지 못했다.수갑을 채우고 포승에 묶인 채 밥을 먹고 대·소변을 봤다.22일간 주임검사였던 안모 검사에게 안기부 조사내용이 조작됐다고 하니까 ‘왜죽을려고 하느냐.사형을 면해줄 테니 시인하라’고 회유했다. ■고문증거가 있나. 당시 재판과정에서 신체감정을 신청,서울대 이정빈 교수가 작성한 신체감정 소견서가 있었다.그러나 지난 12일 조사받는 데 검사가 오히려 나한테 (소견서가)있느냐고 물었다.당시 기록에 첨부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서전의원의 밀입북 사실을 얘기했다고 허위진술한 부분도 기록에 없더라. ■안기부에서 고문을 주로 맡았다는 김모 수사관은 누구인가. 내게 처음으로 1만달러 부분의 허위 자백을 받아낸 인물로 정의원의 총괄지휘를 받아 수사했다.30년간 대공수사에 몸담아오다 지난 93년 퇴직해 경기도 양평에서 살고있다.그는 만일 검찰에 나가게 되면 진실을 얘기하겠다고 했다. 이종락기자
  • [1만弗 공작설]

    * 재수사 중간 점검 지난 89년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의 밀입북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고의로 간과하거나 누락시킨 증언과 물증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이 사건의 실체가 다시 확인되고 있다. 이번 수사는 당시 김대중(金大中) 평민당 총재의 ‘1만달러 공작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불고지’ 혐의는 자민련 박세직(朴世直)의원(당시 안기부장)과 국민회의 김원기(金元基) 고문(당시 평민당 원내총무)등의 증언으로 사실상 털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은 서 전의원의 보좌관이었던 김용래(金容來)씨의 친구인 조흥은행 호남기업센터 지점장 안양정(安亮政·당시 조흥은행 영등포지점 외환담당 대리)씨로부터 “지난 88년 9월5일에 2,000달러를 김 보좌관으로부터 받아 환전해준 사실을 89년 7월 검찰 조사에서 밝혔는데도 묵살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놓았다. 김용래씨에게는 당시 8,000달러를 환전한 영수증을 제시했는데도 검찰 발표에서 누락됐다는 진술을 들었다. 이에 따라 과연 당시 안씨와 김씨의 진술조서와 환전 서류 등이 남아 있느냐가이번 수사의 최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만약 두 사람의 진술조서 등이 있으면 고의 누락 여부는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술 조서 등이 없다면 당시 수사를 맡았던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서울지검 임승관(林承寬) 1차장은 당초 “89년검찰수사 때 김씨가 진술한 2,000달러 부분은 조사가 안됐다”고 했다가 두사람의 증언이 잇따르자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후퇴한 뒤 일체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고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같은 임 차장의 태도는 검찰이 89년 당시 수사가 상당 부분 소홀한 점이있었다는 정황 증거를 포착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번 사건은 검찰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다.실체가 확인되는 과정에서 당시 수사 검사 등 검찰 내부의 비판과 동요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따라서검찰은 당시 수사 검사 등의 반발을 정리한 뒤에야 본격 수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락기자 jrlee@* 金元基고문 일문일답서경원(徐敬元) 전 의원 밀입북사건의 참고인으로 검찰에 출두한 국민회의김원기(金元基) 고문은 17일 “지난 89년 노태우(盧泰愚)정권이 당시 평민당 김대중(金大中) 총재의 1만달러 수수설을 발표한 것은 공안정국을 조장해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노림수였다”고 말했다.다음은 일문일답. ?1만달러 수수설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고 있나. 당시 평민당의 원내총무여서 그때 상황을 이길재(李吉載)의원과 서 의원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당시 여당이 왜 김 총재와의 관련설을 발표했다고 보나. 당시 집권 여당의 분위기는 일단 야당의 약점을 언론에 흘린 뒤,거짓으로 드러나더라도 국민에게 각인되는 효과를 주로 이용했다.당시 여당은 김 총재가 김일성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는 등 온갖 음해를 끊임없이 했었다. ?서 전 의원의 방북사실을 당시 박세직(朴世直) 안기부장에게 알리게 된 이유는. 워낙 사안이 중요해 박 부장한테 직접 얘기했다.박 부장이 출장중이어서 2∼3일 뒤에 만나자고 해서 기다렸다.박 부장은 모 호텔 커피숍으로 서 전 의원을 보내라고 연락하면서 국회의원 신분이어서 불구속 수사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었다. ?왜 서 전 의원을 검찰에 자수시키지 않았나. 검찰에 자수시키는 것이 옳았다고 여겨진다.나는 박 부장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도 지냈고 국제적인인물이어서 믿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이종락기자 *‘재수사’청와대 시각 서경원(徐敬元) 전 평민당의원의 명예훼손 고소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바라보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생각은 뭘까.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문제 제기로 수사가 시작된 이후 김 대통령의 공식 언급은 아직까지 없다.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도 브리핑때마다 “대통령이 특별하게 언급한 것은 없다”며 대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은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 사건을 예의주시하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기류 속에 김 대통령이품고있는 생각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김 대통령은 취임이후 검찰의 정치권사정설이 제기될 때마다 “정치보복은 없다”고 강조해왔다.“과거 나를 음해하고 모략했던사람들이 여전히 정치를 하고 있지 않으냐”고 그 증거를제시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김 대통령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기조에는 결코 흔들림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이번 조사는 정의원이 먼저국가원수를 모독하는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박 대변인도 “대법원에서 최종판결이 난 사건이라고 진실이 아닌 것을 그대로 놔두면 거짓이진실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뒤 “그것이 역사의 정의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재수사를 통해 잘못된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자는 게 김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그러지 않고서는 역사발전이 있을수 없다는 소신의 반영인 셈이다.이는 그만큼 김 대통령의 진실규명 의지가확고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번 재수사를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려는 일각의 분석을 우려하는 분위기다.피해 당사자인 김 대통령이 공식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박 대변인도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진상규명 의지일 뿐,어떤 정치적 함의도 없다는 게 청와대관계자들의 일관된 설명이고,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들추기’는 아닌 게 분명하다. 양승현기자 yangbak@ *李吉載의원이 밝힌‘89년수사’ 지난 89년 서경원(徐敬元) 전의원으로부터 밀입북사실을 전해듣고 당(평민당)에 알려 자수 등 대책을 마련토록 했던 국민회의 이길재(李吉載)의원은 17일 “당시 안기부와 검찰은 서의원과 김대중(金大中)총재의 사전협의설 각본에 따라 수사를 꿰맞추려 애썼다”고 밝혔다.이어 “박세직(朴世直)안기부장은 서의원이 자수를 했고 현역의원임을 감안,불구속기소를 약속했지만 정권은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상황은 불고지죄 혐의를 받아 안기부와 검찰에 불려갔다.그러나 검찰은 처음부터나의 불고지죄 부분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두 기관에서 각각 22일씩 44일간 조사를 받으면서 나에 대해 물은 것은 극히 일부분이었다.대부분 서의원과 김총재의 사전협의와 사후보고에 관한 것만 캐물었다. ?어떤 방식이었나 “서의원이 다 자백했으니거짓말할 생각 말라”며 엉뚱한 사실을 추궁하는 식이었다.수사가 마무리될 무렵 김총재가 검찰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다음날 새벽녘 자는 나를 깨운 뒤 김총재의 진술서라면서 서류뭉치를 던져주고는 “모든 게 밝혀졌다.서의원과 김총재의 진술이 일치했다”며 자백을 요구했다.진술서는 물론 가짜였다. ?왜 불고지죄 혐의를 받았나 서의원이 언젠가 무슨 행사장을 가던 길에 내게 “북한을 다녀왔다.김일성도 만났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그가 정색을 하고 얘기를 했더라면 나도 진지하게 물어봤을 것이다.내가 “무슨 말이냐”고 되물어도 서의원은 대답이없었고 더 말할 상황도 아니었다.당시 서의원은 방북사실을 여러사람에게 얘기하고 다녔다.나중에 알았지만 몇몇 기자와는 몰래 인터뷰를 한 뒤 출고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김총재와의 사전협의나 사후보고가 없었나 서의원이 당시 나와 상의를 하면서 2가지 해법을 제시했다.그 중 하나가 “총재에게 보고해서 정치적으로 해결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만일협의를했거나 사후보고를 했더라면 몰래 총재를 찾아가 상의를 하지 뭐하러 나를 찾아왔겠나.나는 서의원에게 “당과 총재에게 부담을 지우는 짓은 하지 말라”고 말리며 총재를 찾아가는 것도 말렸다.수사당국의 사후보고설 주장은 사건이 터지기 몇개월전에 총재가 동구권을 방문했는데 이때 서의원이동행한 사실에 초점을 맞춰 꿰맞춘 것이다. 이지운기자 jj@
  • [특별기고] 진실위원회를 만들자

    “그 사건은 제발 들추지 마세요 DJ,정치보복 생각나요 DJ,국민에게 도움도안 되는 사건을…” 한 텔레비전 방송의 사이버 해설가 나잘난 박사는 검찰의 ‘서경원 사건’재수사를 이런 노래로 비꼬았다.아무래도 모를 일이다.김대중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이기 때문에 자연인이 아닌 사이버 인간을 내세워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일까.아니면 방송이 이렇게도 말이 안 되는 주장을 마음대로해도 좋을 만큼 언론의 자유가 꽃핀 것일까. 우선 사실관계를 보자.도대체 누가 ‘그 사건을 들추어’ 냈는가.한나라당정형근의원이다.그는 DJ가 야당 총재 시절 서경원의원의 비밀 방북 사실을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음으로써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를 범했고,서의원이 북에서 받은 돈인 줄 알면서도 미화 1만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싹싹 빌어서 겨우 용서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럼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히 있으면 정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된다.그게 싫으면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그런데 야당과 일부 언론인들은 이것을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한다.어떻게 하라는 말인가.김대중 대통령은야당과 전임자에게서 연일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그런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정의원이 던진 덫에는 속절없이 걸려든다.색깔론의마법은 이토록 강력하다.평범한 시민이 걸려들면 인생이 여지없이 끝장나고만다.무서운 일이다. 그러면 ‘국익론’과 ‘정치보복론’은 타당한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서경원 씨는 안기부와 검찰에서 고문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DJ에게 1만 달러를주었다는 허위진술을 했다고 말한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진상이 밝혀지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89년 당국의 수사결과 발표 시점에서 서씨의 자백 말고는 정의원의 주장을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불고지죄로 함께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서의원의 보좌관 방양균씨가 일찍이 고문 사실을 폭로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가해자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폭로함으로써 이근안씨와 한 팀을 이루어 반인륜적 고문범죄를 자행한 대공수사관들을 법정에 세운 것은터무니없는 간첩 혐의를 썼던 납북 어부 김성학 씨였다.김대중 정부는 이근안씨의 예기치 못한 자수와 정형근 의원의 색깔론 공세로 군사독재 정권 시대의 고문범죄를 둘러싼 의혹이 터져 나오기까지 사실상 아무 일도 한 것이없다.부총재를 포함하여 집권당의 요직에 있는 인물들 가운데 고문 피해자가 한둘이 아닌데도 정부는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일을 외면한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서경원 사건’의 재수사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독선과 오만과 무지의 산물이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고문은 가장 기본적인권인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헌법 파괴행위다.헌법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것보다 더 큰 국익이 무엇이며 자유민주주의 기본가치를 짓밟는 일을 묵인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국익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서경원사건’이 그나마 재수사의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은 대통령이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다.평범한 시민과 학생들에게 고문을 가했던 수많은 ‘아직이름이밝혀지지 않은 범죄자들’이 지금도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면서 공권력을행사하거나 국가의 연금을 타먹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지난 시대의 모든 고문의혹을 밝히기 위한 한국판 ‘진실위원회’를 만드는 일에 나서야 한다.이것은 정치보복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그리고 한나라당은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할 것이다.반인륜적 고문범죄와 관련된 혐의를 받는 사람을 감싸고 그러한범죄의 근거가 되었던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지키려는 정당과 민주화 투쟁은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柳 時 敏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 [사설]‘1만달러 공작’철저 규명을

    ‘서경원(徐敬元)밀입북사건’을 둘러싼 명예훼손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서 전 의원이 88년 9월 ‘김대중(金大中)평민당총재에게 1만달러를 전달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증언’이나와 주목된다.88년 당시 조흥은행 영등포지점 외환담당 대리였던 안양정(安亮政·48)씨는 16일 대한매일 취재진과 만나 “88년 9월5일 의원회관에서 김용래(金容來)보좌관을 통해 서씨에게 2,000달러를 환전해주었다”고 증언했다.안씨는 16일 검찰에 가서도 같은 증언을 했으며 “89년 7월 검찰에서 이같은 사실을 증빙서류까지 첨부해서 진술했지만 검찰 수사 발표에서는 빠졌더라”고 덧붙였다. 안씨의 증언이 의미를 갖는 것은 당시 검찰이 서씨가 북한에서 받은 5만달러 가운데 3만9,300달러는 처제에게 맡겨놓고 700달러는 서씨가 사용했으며나머지 1만달러는 김 총재에게 주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서씨는 이같은진술이 당시 검찰의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따라서 안씨가 서씨에게 2,000달러를 환전해준 것이 사실이라면 서씨가 김 총재에게 1만달러를 전달했다는 발표는 원천적으로 조작된 것이 된다. 문제는 은행의증빙서류(환전표)보존기간이 10년이라는 점이다. 환전표를 찾아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안씨는 89년 당시 검찰 발표를 보면서 “김 총재를 옭아매기 위한 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안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당시 많은 국민들은 ‘1만달러 공작설’이 김 총재와 평민당에 타격을 주기 위한 용공조작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당시 노태우(盧泰愚)정권은 문익환(文益煥)목사 방북사건과 동의대사건,임수경양 방북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서 전 의원 방북사건을 악용했다.당국은 서씨가 방북때 김 총재의 친서를 전달했다느니 김 총재가 방북자금을 제공했다는 등의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김 총재에게 용공 혐의를 씌움으로써 김 총재와 평민당을 탄압하고 나아가 공안정국을 조성해서 여소야대 정국을 반전시켰기 때문이다.89년 당시 김 보좌관의 진술과 안씨의 진술기록이 통째로 증발했다는 주장이 나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마당이다.따라서 이제라도 ‘1만달러 용공조작’의 진상은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김 총재는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러한 혐의는 국민들에 의해 벗겨졌기 때문에 10년 전 일을 재론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그러나 음해성 용공조작이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 김원기씨가 밝힌 사건진상

    지난 89년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의 밀입북 사건 당시 평민당 총무였던 국민회의 김원기(金元基)상임고문은 16일 “사건발생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서 전 의원으로부터 1만달러를 받았다는것은 조작치고는 아주 유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이 사건은 개인의 실정법 위반사건이 정권의 필요에 의해 공안정국으로 발전된 것”이라며 ‘공작 의혹’을 제기했다. 김 고문이 밝힌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김대중총재 및 평민당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문익환(文益煥)목사 방북사건과 동의대 사건,임수경양 방북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서경원 방북사건을 왜곡,날조해 김총재와 평민당을 탄압하고 나아가 여소야대 정국 반전용으로 발전시켰다.문목사 사건 이후 서의원은 자신의 방북사실을 극히 일부에게 언질했고 이 사실을 이길재(李吉載·당시 평민당 대외협력위원장)의원이 나에게 알려왔다.이 사실을 접하고 지체없이 김총재댁으로 찾아가보고했다. 김 총재는 기막힌 사건이라고 하면서 서의원으로부터 직접 사실을확인한 후 자수시키라고 지시했다. 김총재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박세직(朴世直)의원에게 직접 자수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이에따라 내가 박부장에게 곧바로전화를 걸어 ‘중대 사안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으나 박부장은 출장중이라며 2∼3일 후에 만나자고 했다.그후 남산 공관으로 서의원을 데리고 가 박부장을 직접 만났고,서 의원은 방북 경위를 설명했다.박 부장은 이에 대해 김대중총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현역의원이고 자수했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기부는 공관에서 며칠 지난뒤 수사관을 시내 호텔로 보내 서 의원과 만나게 해 수사를 진행했다.이때 ‘김대중 총재 친서 전달설’ ‘밀입북 자금전달설’ 등 날조한 사실을 공안세력이 유포했다.그로부터 김총재와 평민당을타깃으로 해 국민에게 각인된 반공 이데올로기를 악용,용공으로 몰아갔다.1만달러 수수설은 당시 전세를 구할 돈도 없어 의원회관에서 숙식하던 서의원의 경제상태에 비춰볼 때 상상조차 힘들다. 박찬구기자 ckpark@ * 서경원 밀입북사건 쟁점 뭐가있나 ‘서경원(徐敬元) 밀입북사건’을 둘러싼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그러나 당사자들이 당초 검찰의 수사기록을 번복하는 진술을 하고 있어 진상규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만달러 수수여부 이번 사건의 최대 핵심 사안이다.검찰은 89년 수사발표에서 서의원이 88년9월초 여의도 평민당 총재실에서100달러짜리 지폐 100장을 흰종이에 싸 김총재에게 건넸다고 실토했다고 밝혔었다.서의원이 받은 5만달러 중 1만달러를 제외한 4만달러는 처제에게 3만9,300달러를 맡겼고 나머지 700달러는 본인이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 전 의원은 최근 검찰조사에서,강압에 못이겨 당시 김총재에게 1만달러를 줬다는 허위자백을 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서 전 의원은 이와함께문제의 1만달러 가운데 2,000달러는 88년9월5일 귀국 당일 당시 김용래 보좌관을 통해 환전했다고 진술했다.김보좌관도 서 전 의원과 같은 진술을 했으며 당시 환전을 담당한 조흥은행 안양정씨도 이를 검찰에서 확인해 줬다. 만약 김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서 전 의원이 이미 2,000달러를 환전해 간 사실이 맞다면 많아야 8,000달러밖에 남지 않아 김대통령에게 1만달러를 줬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이럴 경우 1만달러 수수설은 뒤집어질 가능성이크다. ■불고지 김대통령이 서 전 의원을 방북사실을 보고받은 시기가 ‘4월’이냐‘6월’이냐이다.검찰은 서의원이 89년4월쯤 김총재에게 밀입북한 사실과 한겨레기자와 인터뷰한 사실을 보고하자 김총재가 보도를 중단하도록 지시한 점을 시인했다고 밝혔다.그러나 국민회의 김원기(金元基) 상임고문(당시 평민당 원내총무)은 “서 전 의원의 방북보고를 이길재(李吉載) 당시 대외국장으로부터 들은 것은 6월”이라면서 “이를 총재에게 곧바로 알렸으며 총재가신고하라고 해 당시 박세직(朴世直) 안기부장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고문 여부 검찰은 당시 서의원을 결코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서 전 의원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안기부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구타하고유도신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향후 수사전망 검찰은 김대통령의 1만달러의 행방이 이 사건의 결정적인단서라고 판단,당시 서 전 의원이 환전한 영수증과 은행직원 증언 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진술이 엇갈리는 만큼 물증확보가 관건이라는 판단이다. 검찰은 주변조사와 함께 당시 검찰의 수사기록을 정밀히 분석하고 있으며필요하다면 당시 수사검사 등도 소환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주병철기자
  • 치안본부 대공분실이란

    치안본부(경찰청의 전신) 대공분실은 군사독재시대의 전위부대였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과 서대문구 홍제동에 각각 위치한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에게는 ‘저승사자’였다.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이 터진 남영동분실은 남파간첩 등 간첩사범을 주로 다뤘다.홍제동분실은보다 덜 조직적인 좌익사범을 잡아 들였다.김근태(金槿泰)씨도 남영동에서이근안(李根安)전 경감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박군과 김씨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대공분실은 ‘옥석’을 가리지않고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을 경쟁적으로 검거해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냈다.본연의 임무인 대공수사를 떠나 반독재투쟁에 나섰던 인사들을 국보법이라는 그물에 얽어매는 일에 더 매달렸다. 박군 사건 당시 남영동분실에서 근무한 한 전직 경찰관은 “한번 들어오면혐의가 없어도 똥물을 토할 때까지 고문한다”고 실토했다.“그래야 아는 사실을 모두 말할 뿐아니라 분실에 왔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대공분실은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와 함께 체제유지의 양축 역할을 했다.전체 국보법 위반사범의 3분의 2를 대공분실에서 처리했다.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현재는 경찰청 보안국 보안분실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남영동분실은 보안국 보안3과,홍제동분실은 보안국 보안4과 소속이다.서울지방경찰청도 장안동과 옥인동에 비슷한 성격의 대공분실을 운영하고 있다. 각 지방청에도 1개 이상의 대공분실이 있다.직제 이외의 모든 것은 철저하게베일에 가려져 있다. 노주석기자 joo@
  • 徐敬元 前의원등 3명 참고인조사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빨치산식 수법’ 등의 발언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丁炳旭 부장검사)는 11일 오전 서경원(徐敬元)전의원과 비서관이던 방양균(房羊均·44)씨 등 3명을 소환,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서전의원 등을 상대로 정의원이 지난 4일 한나라당 부산집회에서 서전의원의 밀입북 사건과 관련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해 언급한 내용의 진위 여부를 조사했다. 서전의원은 검찰 조사에서 “지난 89년 안기부에서 조사받을 당시 정의원이 직접 수사를 하면서 2주동안 잠을 안 재우고 구타와 고문을 가했다”면서“북한 허담(許錟)에게 받은 공작금 5만달러 중 1만달러를 당시 김대중(金大中)평민당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진술도 고문·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서전의원 등이 지난 4월 자신들을 ‘고정간첩’으로 표현했다며 정의원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서전의원은 평민당 의원 시절이던 지난 88년 8월 2박3일간 밀입북,북한 김일성(金日成)과 허담을 만나고 공작금 5만달러를 받아 온 혐의로 89년 8월구속기소된 뒤 징역 10년형을 확정받아 8년여를 복역하고 지난해 특사로 석방됐다. 이종락기자 jrlee@
  • 콜롬비아 금세기 최악 연쇄살인사건

    [보고타 AP 연합] 콜롬비아에서 지난 5년간 어린이 140명이 동일범에게 연쇄 살해됐다.피해자 수로 볼때 금세기 최악의 연쇄 살인 사건이다. 알폰소 고메스 콜롬비아 검찰총장은 29일 지난 4월 어린이 성폭행 기도죄로 투옥돼있던 루이스 에두아르도 가라비토(42)가 지난 5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어린이 140명을 유인,살해했다고 자백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가라비토는 콜롬비아의 수십개 마을을 배회하며 장애인,사제,자선사업가,거지,세일즈 맨 등으로 행세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음료수를 사주거나 돈을 주겠다며 외진 곳으로 유혹,흉기로 살해했다. 가라비토는 머리 스타일을 바꾸거나 돗보기 안경을 쓰는 등 자주 변장을 했으며 학교에 직접 들어가 범죄 대상을 물색한 것으로 드러났다.피해자들은주로 남자아이로 8세에서 16세까지며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이지만 곱상한외모를 갖고 있는게 공통점이다. 고메스 총장은 지금까지 140명 가운데 114명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히고가라비토에 대해 우선 정신감정을 실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가라비토는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옷 로비’’파업 유도’청문회와 언론보도 긴급토론회

    ‘고급 옷 로비’‘조폐공사 파업 유도’ 관련 청문회가 진실규명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언론재단이 1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청문회와 언론보도’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청문회 진행과정의 모순과 문제점,언론의 잘못된 역할 등을 집중 논의했다. ‘옷로비 청문회와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발제한 광운대 주동황(신문방송학)교수는 “진실규명보다는 정치 공방에 치우쳤던 청문회와,매일 신문지면과 TV화면을 채웠던 상업주의적 언론보도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 마땅하다”고 꼬집었다.이어 청문회 보도의 문제점으로 ▲사건과 관련없는 과다한 스케치기사 ▲증인을 희화화한 앙드레 김 관련기사 ▲여성에 대한 편향적 보도시각 ▲성급한 청문회 무용론 ▲여·야 대립을 부각시킨 정치적 선정주의 ▲사투리를 부각한 지역차별적 시각 등을 들었다. 그는 “옷 로비 청문회가 의혹과 불신만을 남긴채 끝났지만 옷 로비 사건이 과연 청문회를 할 만한 것이었는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며 “특히 독자적인 취재를 통한 진실규명의 노력없이 선정적인 보도 태도로 일관했던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열린 토론회에는 언론시민운동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현직 언론인·학자·정치인 등이 참석,열띤 토론을 벌였다.고계현 경실련 시민입법국장은 “청문회를 통해 파업유도,옷로비 등 검찰의 수사가 잘못됐다는 것이 입증됐지만 구체적 사실 여부를 가려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제도상의 문제점을 노출했다”면서 “심층취재 없이 선정적으로 보도한 언론도 청문회의 핵심사안을간과했다”고 말했다. 김은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모니터팀장과 노영란 매비우스 방송모니터팀장은 각각의 모니터 결과를 통해 “옷로비는 흥미위주로 확대 보도된 반면 파업유도는 지나치게 축소 보도됐다”고 지적했다.시사평론가 유시민씨는 “자기정체성을 결여한채 선정주의식 보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론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천정배 의원(국민회의)은 “짧은 시간동안 자료수집의 한계에 부딪치는 국회의원들이 ‘증인들의 무조건적 자백’을 기대하는 언론과 국민의 기대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격침된 北 반잠수정 유류품서 단서 발견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2월 남해에서 격침된 반잠수정에서 발견된 ‘전화번호 기재 수첩’ 등을 단서로 사살간첩의 행적과 국내 연계망을 추적한 끝에암호로 적혀있던 김영환씨를 비롯한 용의자들의 전화번호를 밝혀냈다. 때마침 97년 10월 이후 중국에서 장기 체류하던 김씨가 어머니 조성자씨를통해 청와대에 입국 허용 탄원서를 제출한 뒤 지난 7월 29일 자진 귀국하자수사에 활기를 띠었다. 국정원은 8월9일부터 16일까지 김씨를 상대로 4차례에 걸쳐 조사를 벌인 끝에 “89년7월 남파간첩 윤택림(56·북한 대외연락부 5과장)에게 포섭돼 노동당에 입당한 후 91년 5월 서울대 1년 후배인 조유식씨와 함께 입북했다”는진술을 받아냈다.김씨 등은 공작원 전용시설인 모란 초대소에서 14일동안 체류하면서 국내정세 등을 보고하고 김일성과 묘향산 별장에서 2차례에 걸쳐면담한 뒤 김일성 훈장까지 받았다. 김씨는 91년 8월 경기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의 드보크에서 미화 40만달러(당시 약 3억원)와 권총 2정,무전기 3대,난수표 등을 확보한 뒤 92년 3월16일 북한의 지령에 따라 주사파 운동권인 반제청년동맹을 주축으로 민혁당을 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김씨는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주사파 활동뿐만 아니라 민혁당에 대해서도 수사를 시작하자 심경변화를 일으켜 지난달 16일 ‘말’지를 찾아가 “국정원이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하려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고 잠적했다.국정원은 소재를 추적하던 중 18일 홍콩으로 출국하려던김씨를 김포공항에서 긴급체포하고 관련자 조유식,하영옥,심재춘,김경환 등을 차례로 연행,혐의 일체를 자백받았다. 김씨는 95년부터 북한이 남한의 진보운동에 대해 배려하지 않고 탈북자의증언을 통해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유린 실태 등을 알게 되자 민혁당을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였다.이를 눈치챈 북한은 지난해 12월 민혁당의 합법연락원 등으로 활동하던 간첩 진운방을 남파시켰다. 하씨는 김씨가 97년7월 민혁당을 해체하려 하자 이를 인수한뒤 지난해 10월 남파 간첩 진운방에게 ‘원진우’라는 이름의 주민증을 발급받게 해주고 같은해 12월 진을 태운 반잠수정이 격침되자 인터넷 메일을 이용해 북한측과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사이버 간첩’ 활동을 해왔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심씨는 지난해 9월 하씨에게 포섭돼 진운방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무전 및 인터넷을 통해 북한과 접촉한 혐의를,김경환씨는 89년 9월 진운방을 알게된 뒤 노동당에 입당하고 지난해 10월 다시 남파된 진운방이 하씨와 접선토록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진운방은 지난 87년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 침투,강남 논현동에 ‘삿떼리아 코리아’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5년간 암약하다 92년 출국한뒤 98년 10월 재침투,‘정성용’,‘원진우’란 가명으로활동해오다 지난해 12월 반잠수정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가려다 사살됐다. 이종락기자 jrlee@
  • 재소자·교도관 집단충돌 파문, 법무부 “사실무근” 부인

    법무부는 29일 부산구치소가 일반 재소자들과 공안사범들 간의 패싸움을 유도했다는 주장과 관련,“진상조사 결과 허위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법무부 교정국은 이날 해명자료에서 “히로뽕 복용 혐의로 수감중인 송모씨가 ‘구치소 하모 관구계장의 요청에 따라 영남위원회 사건 재소자들과 일반 재소자들간의 패싸움을 주도했다’고 변호인에게 낸 청원서 내용은 사실무근”이라면서 “송씨로부터 규율 위반으로 적발됐을 때 써먹기 위해 허위사실을 꾸며 낸 것이라는 자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3월26일 일부 재소자와 공안사범 간에 시비가 있었으나 직원들이 제지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또 부산구치소 교도관들이 지난 24일 재소자들을 집단 폭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히로뽕이 구치소내에 반입됐다는 신고에 따라 수색 중 일부재소자를 분리 수용하자 김모씨 등 재소자 9명이 항의하며 소란을 피워 교도관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재소자 3명이 무릎,팔 등에 찰과상,염좌 등을 입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구속기간 5일로 줄인다

    앞으로 형사사건 구속기간이 종전 20일에서 15일로 줄어들고 다툼이 없는사건에 대해서는 즉시 재판에 들어가는 등 무리한 인신구속이 대폭 줄어든다. 대통령직속 ‘사법개혁추진위’(사개위·위원장 金容俊)는 26일 이같은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마련,다음달 6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했다. 이 안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형사사건의 구속기간이 1차 10일에서 한차례 연장해 20일까지 가능했지만 5일을 줄인 15일로 단축,무리한 인신구속을 피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사범에 대한 구속기간은 종전대로 30일을 유지할 것으로알려졌다. 피고인이 스스로 혐의를 인정하는 폭력 등 형사사건은 검찰의 기소 후 가능한한 한 차례의 재판으로 형을 확정지을 방침이다. 또 지금까지는 피의자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는지에 대해 ‘가’‘부’‘검토해 보겠다’는 세가지 항목에 대해 의사표시를 하도록 유도됐지만 ‘검토’부분을 삭제해 최대한 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피의자들이 재판과정에서 혐의를 번복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수사에서수형단계까지 변호인의 참여를 보장하는 ‘공익변호사제’도 활성화된다. 법원에서 피고인이 자백하는 사건도 지금까지는 결심 후에 2주 정도 유예기간을 두었던 것에서 결심 후 즉시 선고하게 된다.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날 수 있는 피고인들의 형을 빨리 확정하기 위한 조치다. 사개위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법규정과 비교할 때 인신구속에 대해 혁신적인 방안들이 다수 포함됐다”면서 “이번 개혁안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의 기반이 본격적으로 마련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옷로비 청문회] 이모저모

    24일 국회 법사위의 ‘옷로비의혹 청문회’는 김태정(金泰政) 전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에게 초점이 맞춰졌다.여야 의원들은 호피무늬 반코트를 받은 시기,경위와 입고 다녔는지를 집요하게 추궁했다.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사건을 ‘밍크게이트’로 명명(命名)했다.국민회의측은 연씨의 검소했던 생활태도와 ‘봉사활동’ 등을 부각시키며 방어를 시도했다. ?연씨는 밍크코트를 입은 사실을 부인하면서 야당의원들의 거센 공격에 시달렸다.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증인의 답변태도를 보고 의원회관으로 시민들의 불만전화가 쏟아져 일을 못할 지경”이라고 공격했다.연씨는이 사건 이후 남편인 김 전총장이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 데 대한 심경을 묻자 “죄송하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의원은 신문에 앞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옷로비와 관련된 ‘모피코트는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는 책을 보여주며 연씨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민회의 조홍규(趙洪奎)의원은 정형근 의원이 전날 신문에서 배정숙(裵貞淑)씨가 “연씨는 1,000만원 이하 옷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고다그치자 반격했다.“어제 신문에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속기록확인을 요청했다.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의원은 “경찰이 문제의 코트를 입고 다닌 것을 자백했다고 인정했다”고 몰아세웠다.그러나 연씨는 “입고 간 게 아니라 걸친것”이라면서 “사직동팀도 의원님처럼 다그치더라”고 맞섰다. 전날 배정숙씨의 답변내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왜 내 말은 믿지 않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연씨가 심경을 밝히는 원고를 읽는 문제를 놓고 여야간에 한때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국민회의 조홍규 의원이 시간을 주자 연씨는 “남편의 30년공직자 생활 동안 변변한 옷 하나 장만하지 못하고 살아왔다.잠시 동안 철없는 욕심으로 인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에 목요상(睦堯相)위원장이 제지했고 조의원이 즉각 항의하면서 정형근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또다른 증인인 라스포사 정일순(鄭日順)사장은 건강문제를 이유로 이날 청문회에 나오지 않았다.남편 정환상씨는 “아내가고혈압에다가 협심증과 당뇨증세도 보이고 있다”면서 “의사가 입원을 권유해 오늘 입원시킬 예정이지만 내일은 반드시 출석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의상 디자이너인 김봉남씨는 증인선서에서 예명인 ‘앙드레 김’을 이름으로 댔다가 시정지시를 받았다. 박대출 박준석기자 dcpark@
  • 부산 녹산공단 전자단지로 전환

    부산이 첨단 고부가가치 신발산업의 메카로 육성된다.또 삼성전자의 생산기반이 대거 이전돼 전자산업의 요충지로 거듭난다. 산업자원부는 9일 이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부산지역 경제활성화 대책’을 마련,관계부처간 최종 조율을 거쳐 다음주 초 발표할 예정이다. 일명 ‘녹산 프로젝트’로 이름 지어진 ‘부산 신발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은 오는 2003년까지 4,000억원의 재원을 투입,부산을 첨단 신발산업의 메카로 육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자부는 이를 통해 98년 현재 2조여원에 불과한 국내 신발생산액을 2003년 5조원으로,수출은 10억달러 수준에서 40억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려 세계 3대 신발생산국으로 재도약한다는 방침이다.한편 삼성그룹은 수원의 삼성전자백색가전공장을 부산으로 옮기거나 새로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또 부산 녹산공단의 삼성전기 자동차부품공장을 첨단 전자부품사업단지로 전환할 계획이다. 삼성측은 삼성전자의 세탁기·전자레인지 등 2개 백색가전제품의 경우 연매출액이 1조3,000억원에 이르고 고용효과도 1만3,000명이나 돼 자동차사업철수를 대체할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밖에 가덕도 신항만 건설 등 부산지역에 예정돼 있는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의 착공시기를 단축,이 지역의 실업난과 자금난을 조기 해소해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 고위관계자는 “녹산프로젝트와 전자산업 이전,SOC 조기착공이 올하반기부터 본격 추진될 경우 부산 지역의 실업난과 자금경색에 적지 않은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삼척 신혼부부 살해범 검거…추월시비끝에 엽총 쏴

    ‘그랜저 승용차가 먼지를 내며 추월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가 결혼이틀 만에 새삶을 설계하던 젊은 신혼부부의 꿈을 앗아간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6일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서 지난 1월 발생한 신혼부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정모(36·강원도 동해시 발한동),한모(33·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씨를 붙잡아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경찰은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뒤 대전 서부경찰서에 영치한 이탈리아제 베넬리 엽총 1정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사건발생 정씨 등은 지난 1월19일 오후 4시10분쯤 경기3즈 엑센트승용차를 몰고 사냥을 가다 삼척시 노곡면 상마읍리 문의재 능선 비포장도로에서김우정(28)씨와 부인 장일랑(27)씨가 탄 그랜저승용차를 만났다.정씨는 김씨 부부가 탄 차가 먼지를 내며 추월하자 이들의 차를 다시 앞서는 등 3∼4차례에 걸쳐 추월경쟁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서로 욕설을 했다.이에 격분한 정씨는 앞서가는 김씨 차량을 향해 멧돼지 사냥에 주로 사용되는 엽총 4발을쐈으며 이 중 2발이 김씨 머리 등에 맞았다.김씨의 승용차는 멈춰섰고 부인장씨가 차에서 내려 남편을 끌어내리며 정씨에게 병원으로 데려다 줄 것을요구했다. 정씨는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S건설 감리 김모(42)씨가 현장을 목격하자 김씨가 탄 승용차를 향해 총을 쏜후 곧바로 장씨의 가슴과 머리에 총 2발을 쏴 숨지게 했다.정씨 등은 부인 장씨가 숨진 사실을 확인한 후 강도사건으로위장하기 위해 김씨 부부가 갖고 있던 지갑과 핸드백을 훔쳐 300여m 떨어진길 옆 숲 속에 버렸다. 검거경위 경찰은 삼척 신혼부부 살해사건의 범인이 수원과 안산에 산다는 첩보를 입수,탐문수사를 벌이다 최근 정씨가 운영하는 회사 직원으로부터결정적인 제보를 받았다.경찰은 삼척경찰서의 협조를 받아 정씨의 총에 맞아 상처를 입은 목격자 김씨 등으로부터 정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을 얻고 이들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새벽 1시30분쯤 수원시 세류동 S호텔앞에서 한씨를 검거한 데이어 새벽 6시쯤 팔달구 D모텔에서 잠자던 정씨를 추가로 검거했다.검거과정에서 정씨 등은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용의자들 주변 강도 강간 등 전과 6범인 정씨와 절도 등 전과 5범인 한씨는 지난 96년 10월 수원 매산로에서 팔도강산이라는 술집을 운영하면서 사장과 종업원 관계로 알게 돼 그동안 형과 동생 사이로 지내왔다.이후 사업에실패한 정씨는 수원과 대전 일대를 전전하며 방황하다 한씨와 함께 강원도로 사냥을 떠났다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후 정씨 등은 수원으로 돌아와 최근 직원 7∼8명을 채용,생필품을 도매하는 선우종합무역이라는 회사를 운영해 왔다.정씨는 지난 96년 수원에서유흥업소를 운영하던 중 웨이터로 일하는 한씨를 만나 사냥을 하며 가깝게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돈먹은 공무원 들키면 ‘오리발’/大檢연구관 93∼97 통계분석

    수뢰 공무원들의 범죄사실 자백률이 매년 낮아져 수뢰사건 공판이 장기화되고 있으며,수뢰 공무원들의 생활수준은 중류층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 이의경(李義景) 연구관이 21일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한국범죄방지재단(이사장 丁海昌 전 법무부 장관) 주최 ‘부정부패의 현실과 대책’ 세미나에서 발표한 ‘93∼97년 범죄통계 원표’ 분석에서 이같이 나타났다. 분석자료에 따르면 수뢰 공무원들의 범죄사실 자백률은 94년 40.9%에서 95년 28. 9%,96년 24.5%,97년 19.0%로 매년 큰 폭으로 떨어졌다.이 연구관은“이는 일단 범죄사실을 부인한 다음 기소후 공판과정에서 증뢰자의 진술 번복을 유도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라며 “자백률이 낮아지면서 항소·상고율이 높아져 수뢰사건 공판이 장기화되고 있다”고설명했다. 수뢰 공무원들의 생활정도는 93∼97년 평균치로 중류층이 44.3%로 가장 많았고 하류층 26.5%,상류층 3.1% 등이었다. 한편 숭실대 법대 강경근(姜京根)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일정 형을 선고받은 자는 피선거권 등 공무담임권을 박탈,정치의 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강교수는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면 현행 정치자금법을 ‘정치자금실명법’으로 바꾸고 국고지원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숭실대 경제학과 김일중(金一仲)교수는 “우리나라의 높은 부패지수를 치유하려면 과다규제와 공공부문 비만화를 해소하고,뇌물 증여자 처벌을 강화할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양주상자에 돈있는줄 몰랐다

    ‘양주병 한 상자에 1,000만원,모두 두 상자에 2,000만원’‘D종합관리의허위 지출계리서’ 19일 구속된 경찰청 전정보국장 박희원(朴喜元)치안감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 자료다. 검찰은 아파트관리 전문회사인 D종합관리 대표 김모씨의 수첩에서 우연히박국장의 이름을 발견했다.예사롭지 않은 예감에 김씨를 소환,추궁했으나 김씨는 박국장과의 뒷돈 거래를 철저하게 부인했다. 검찰은 동시에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지출계리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2,000만원의 지출내역이 불분명한 사실을 확인했다.뭔가 ‘검은 커넥션’이 있을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수사 관계자들은 털어놓았다.검찰은 김씨를 다시소환,2,000만원의 사용내역을 집중 추궁한 끝에 결국 박국장에게 준 돈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검찰은 또 김씨가 박국장의 사무실에서 돈을 줄 때 동행했던 김씨의 고향후배 K씨의 신병도 확보했다.K씨는 검찰에서 “김씨가 양주 두 병이 든 쇼핑백을 박국장에게 건네는 것을 봤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했다. 검찰은 이같은 증거 및 진술에따라 김씨의 수첩에 기재된 박국장과 2,000만원의 행방을 연결시킬 수 있었다. 박국장은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지난 18일 오후 6시30분쯤 검찰에 자진출두하겠다고 통보했다.박국장은 고향후배인 김씨로부터 받은 ‘떡값’ 200만원만 인정하고 ‘몸통’인 2,000만원은 받지 않았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박국장은 그러나 김씨와 K씨 등의 진술 등을 증거로 들이대자 마침내 무너졌다.“양주인 줄만 알았다.양주갑 속에 돈이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혐의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박홍기 김재천기자 hkpar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