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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범죄수사 아카데미/이용원 논설위원

    소설 및 영화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양들의 침묵’은 FBI 수사요원의 활약상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작품에 등장하는 수사요원의 실제 모델은 FBI에서 20년 재직한 로버트 레슬리이다. 그는 근무하는 동안 연쇄·흉악살인 현장에 출동, 범죄 당시의 심리 상태를 분석함으로써 범인 상을 정확히 제시한 심리분석관이었고 이를 토대로 흉악범 체포 계획(VICAP)프로그램을 개발한 과학수사의 대부였다. 아울러 평상시에는 ‘FBI 국립 아카데미’의 교관으로도 명성을 날렸다. 그의 첫 저서 ‘FBI 심리분석관’(원제 Whoever Fights Monsters)을 보면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있는 FBI 아카데미가 범죄 연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폭넓은 외부강사 초청이다. 레슬리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다중인격 장애자, 예언가까지 강사로 불렀다. 이때 초청 받은 로빈 르니에는 수강생인 경찰관들 앞에서, 레이건 미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가 그달 안에 일어나 왼쪽 가슴에 총격을 당하지만 죽지는 않겠다고 예언했는데, 사건이 발생한 뒤 그 사실이 알려져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레슬리는 또 VICAP 프로그램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FBI와 연계하려는 국가들을 지목했는데 그 중에 한국이 영국·호주·뉴질랜드 등과 함께 포함돼 있다. 대검찰청이 FBI 아카데미를 본떠 ‘첨단범죄수사 아카데미’를 오는 20일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이 곳에서는 검사·수사관 등 검찰 수사인력에게 회계 분석, 금융기법, 산업기술 유출과 지적재산권, 선진 신문기법, 조세 등 지능적인 경제사범에 대한 수사 실무를 가르칠 계획이라고 한다. 법원이 검찰에서의 피고인 진술·자백을 대부분 인정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엄격한 물적 증거를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을 감안하면 검찰이 수사인력을 전문화하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판 FBI 아카데미가 빠른 시일 안에 정착해 경제사범뿐만 아니라 강력범죄 수사에서도 큰 성과를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유영철과 같은 연쇄살인범이 다시 등장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씨줄날줄] 유주얼 서스펙트/이용원 논설위원

    영화팬들에게 막판에 가장 극적인 반전을 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9년 전에 국내 개봉한 스릴러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에 한표를 던지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제목은 경찰 용어로, 사건이 터지면 우선 소환되는 1차 용의자를 뜻한다. 영화에서 희대의 범죄를 저지르는 5명은 한 사건의 1차 용의자로서 각각 경찰에 소환된다. 이들은 범인 지목을 위해 경찰이 세워놓는 용의자의 줄(라인업)에 함께 섰다가 이를 인연으로 범행을 공모하게 된다. 영화는, 범행 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용의자가 형사에게 신문당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범죄 계획을 세워 실행했으며 성공 직전에 9100만달러를 제3의 인물에게 빼앗기고 오히려 대부분 살해됐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신문을 마친 형사는 그 생존자의 가담 정도가 낮고 그도 결국은 피해자라고 판단해 석방한다. 그러나 심리전에 속았음을 깨닫고 곧바로 생존자를 뒤쫓지만 그는 이미 사라졌다는 결말이다. 경찰을 멋대로 농락하고 완전범죄를 이루는 범인의 천재성이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영화였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구미 선진국에서는 경찰이 피해자에게 범인을 지목하게 하는 절차가 대단히 까다롭다. 피해자가 범인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거나 잘못 지목하게 되면 나중에 법정에서 범행을 입증하는 데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경찰은 ‘범인 지목’을 너무 쉽게 생각해온 모양이다. 대법원이 어제 성폭행 사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피고인 박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아울러 라인업의 신빙성을 높이려면 범인의 인상착의에 관한 목격자 진술을 상세히 기록하라든지, 라인업에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들을 함께 세워야 한다든지 여러 기준을 제시했다. 거꾸로 말하면 경찰이 그동안 그정도 기본 원칙도 안 지켰다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의 법원도 더이상 검찰·경찰에서의 피의자 진술을 적극 수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도 자백 위주로 수사를 진행하는 관행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한다. 경찰이 라인업을 허술히 해, 진범을 잡고서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피해자의 한을 어찌 보상하겠는가.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살인극으로 막내린 일확천금 망상

    일확천금을 꿈꾸며 머나먼 타국 땅으로 금을 캐러 떠났던 한국인 업자들이 한 명은 주검으로 나머지 3명은 살인자로 돌아왔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3일 사금을 캐러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으로 떠났다가 사업에 실패하자 이모(60)씨를 몽둥이로 때려 숨지게 한 윤모(62·경비원)씨와 김모(37·무직)에 대해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아직 시에라리온에 남아 있는 또 다른 김모(38·노동)씨에게도 같은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국제 공조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해 5월 우리나라에서 수억원의 투자금을 모은 뒤 자신들의 돈을 들이지 않고 사금 채취 기술만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현지로 떠났다. 사금채취를 시작했지만 5개월 동안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투자금이 바닥나자 조급해진 김씨는 사업 실패 원인을 이씨에게 돌리기로 하고 한국인 직원 2명과 함께 지난해 10월 캠프 안에서 이씨의 양손을 묶고 몽둥이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 돈을 벌어오겠다며 외국으로 떠났던 아버지가 사망한 소식을 듣고 이씨의 아들(35)은 현지로 달려가 기계에서 떨어졌다는 아버지의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져 있는 등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또 나이지리아의 한국대사관을 몇 번이고 찾아가 진실을 밝혀내려고 동분서주했다. 이에 한국에 있던 부인과 딸도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타살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국에 와 있던 김씨의 회사 종업원 2명을 불러 혐의를 추궁한 끝에 범행 사실을 자백받았다. 안동환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家봤다가 허탕

    ‘집 보러 왔다.’며 들어가 주부를 흉기로 위협하고 금품을 빼앗은 강도들이 경찰 미끼에 걸려 구속됐다. 김모(36)씨 등 2명은 지난 4월30일 낮 인천 학익동 박모(23·여)씨 집에 “집 보러왔다.”며 들어가 흉기로 위협, 금품 510만원어치를 빼앗았다. 이들은 이런 짓을 3차례나 더 저질렀고 신고하지 못하게 주부들의 알몸을 촬영해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인천 계양경찰서 강력반 김모 경장은 지난 13일 산곡동에 있는 자신의 25평형 아파트를 1억 5000만원에 급매한다는 광고를 생활정보지에 내 덫을 놓았다. 가족들을 모두 피신시키고 기다린 지 3일이 지나 문제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은 태연히 “아파트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아내가 집을 소개해 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 범인을 유인했다. 경찰은 현장 잠복 3시간후 나타난 김씨 일행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공중전화를 하며 수상하게 행동하자 임의동행해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전에 이들이 빼앗은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현금인출기 폐쇄회로(CC)TV 촬영 장면을 들이대며 추궁,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강도상해 혐의로 이들을 구속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검찰조서 증거능력 합헌”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주선회 재판관)는 26일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형사소송법 312조 1항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형소법 312조는 1항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조서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 상태)’에서 조서가 작성됐다면 증거능력을 인정토록 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이미 지난해 대법원이 “피의자 조서에 대해 ‘형식적 진정성립’이 아닌,‘실질적 진정성립’(내가 말한대로 조서가 작성됐다.)을 인정해야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이 법조항을 해석하는 판례를 내놓은 이상 법 자체를 위헌으로 볼 여지는 적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특신상태’에서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신속한 재판을 위해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면서 “대법원의 판례에 의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동의할 경우에만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위헌결정은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결정해야 하지만 윤영철, 권성, 김효종, 이상경 등 4명의 재판관만이 “특신상태라는 개념이 모호해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하는 등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헌법불합치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사개추위 “앞으로 일정 변화 없을 것”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지난해 대법원의 판례 변경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형소법 개정안을 마련 중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관계자는 “관련 조항이 합헌이라는 전제로 출발해 개선하자는 게 사개추위의 목적”이라면서 “앞으로 일정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놓고 사개추위와 이견을 보였던 검찰은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검찰 “사개추위 논의 과정서 반영” 검찰 관계자는 “특신상태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앞으로 사개추위의 논의과정에서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에 따라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검찰의 의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2003년 3월 사기 사건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던 중 형소법 312조 1항이 검사로 하여금 수사기법 개발보다는 자백을 강요토록 해 헌법상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노총 복지센터 보조금 수사

    한국노총이 중앙근로자복지센터와 관련해 업체들로부터 받은 발전기금을 축소 공개한 사실이 밝혀져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시공사인 벽산건설로부터 27억 6000만원을, 설계업체인 N사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고 공개한 노총의 발표가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실제로는 N사로부터 1억 3000만원을, 철거업체인 S산업개발로부터 7000만원의 발전기금을 더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남순 전 한국노총 위원장과 권원표 전 상임부위원장이 챙긴 리베이트 규모만 9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오세인)는 25일 복지센터 설계업체 N사와 하청업체 J전기로부터 2억 2000만원을 받은 이 전 위원장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이날 밤 복지센터 건립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권씨가 S산업개발 등에서도 리베이트를 받은 정황을 찾아냈다. 권씨가 받은 돈만 6억∼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N사는 노총에 감리대가로 1억원을, 설계업체 선정 대가로 3000만원의 발전기금을 냈으며 S산업개발도 용역선정 대가로 7000만원을 기부하고 권씨 개인에게도 따로 돈을 건넸다. 검찰은 노총과 지도부가 복지센터 건립과정에서 철거용역부터 하청업체까지 공사의 전 단계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권씨 본인이 자백한 것보다 상당히 많은 돈을 더 받았으며 당시 위원장인 이씨와 다른 간부와의 공모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노총이 334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는 과정에서 사업계획서 및 도급계약서의 일부를 누락하는 등 편법이 동원된 사실을 찾아내고 이에 대해서도 사법처리를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안동환 김준석기자 sunstory@seoul.co.kr
  • 中 공안들 변신 직접 민원 면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공안(公安·경찰)들이 ‘변신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전역의 일선 공안국장(경찰서장) 3000여명이 18일부터 민원인들과 직접 면담을 갖고 이들의 민원처리에 나섰다. 공안국장의 민원인 직접 면담은 지난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처음이다. 중국 공안은 일반 서민들에게 그동안 ‘공포의 대상’으로 유명하다. 고압적인 자세와 수시로 이뤄지는 인권유린 등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중국 공안의 과거 잘못된 관행과 나쁜 이미지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 1차 목표로 보인다. 공안국장들의 직접 면담 조치는 4공안국세대 지도부의 통치 이념인 인본주의(以人爲本)와 사회주의 조화사회(和諧社會) 건설을 위해 이뤄졌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일선 공안국장들의 면담 및 민원처리는 오는 8월17일까지 계속된다. 공안국장과의 면담에서도 고충이 해결되지 않으면 8월18∼9월6일 20일간 성·시·자치구의 상급 공안기관에 ‘상팡(上訪·읍소)’을 하도록 했다. 공안은 이번 공안국장 면담에서 ▲불공정 수사 ▲고문에 의한 자백 강요 ▲친지 이익을 위한 법 왜곡 ▲인민 이익을 해치는 권력 남용 ▲불법 벌금 등 6개항 민원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 oilman@seoul.co.kr
  • [‘강기훈 유서대필’ 진상 밝혀질까] ‘3년 옥고’ 강기훈씨 본지인터뷰

    “수십년간 자행돼 온 군사독재정권의 부도덕성을 덮기 위해 운동권 흠집내기를 시도한 사건입니다.”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인 강기훈(43·경기 고양시)씨는 8일, 이같은 주장을 하면서 어두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 1991년, 노태우 정권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김기설 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의 분신 자살사건을 포함해 각종 분신 사건이 잇따랐다. 강씨는 “그해 5월 청와대는 당정 고위회담을 거쳐 배후조종세력을 조사할 것이라는 방침을 정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전민련은 검찰이 유서대필 여부를 조사하려고 김씨의 필적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업무일지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는 게 강씨의 판단이다. 검찰은 업무일지와 김씨의 유서,1985년 시국사건으로 구속된 강씨의 자술서 필적 등에 대한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 그 결과 국과수는 강씨의 자술서와 김씨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을 내렸다. 강씨는 “조사과정에서 전민련 업무일지 작성자가 이동진, 임무영, 김기설씨 3인이 공동 작성한 것으로 진술했다.”면서 “당황한 검찰은 내가 조작해 작성했다고 자백할 것을 다그쳤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5월13일 김씨가 군대 동료 수첩에 20자 안팎으로 쓴 자필 자료를 검찰에서 압수해 갔고, 그 자료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건의 의혹은 증폭됐다. 강씨는 물론 당시 김씨의 상급부대 인사장교로 근무했던 이찬진 변호사는 “검찰은 그 자료를 찢어갔지만 증거자료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군대 동료들 사이에서는 ‘연애편지의 전설’로 불렸다고 한다. 따라서 검찰이 동일필적 여부를 밝혀내려고 했다면 김씨의 부대에서 수많은 필적자료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 변호사는 주장했다. 강씨는 “유서대필 사건은 수사를 담당했던 세력들이 정권 요직에 그대로 남아 변한 게 없다.”고 주장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사법개혁 진통] 검찰수뇌부, 평검사 설득 입지 좁아져

    [사법개혁 진통] 검찰수뇌부, 평검사 설득 입지 좁아져

    검찰은 사개추위가 5일 확정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서 핵심쟁점 중 하나였던 ‘영상녹화물의 증거부여 여부’에 대해 검찰측 요구(증거부여)를 수용치 않고,3개의 복수안을 올린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검 간부들이나 평검사회 모두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고, 논의와 입장 정리를 6일로 미뤘다. 서울중앙지검 평검사회의 대변인인 구태언 검사는 “의견수렴을 거쳐 6일 오후 중 입장발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개추위 논의 과정에 참여한 검찰 관계자는 “3개의 복수안 중 2개는 국민들도 납득할 수 없는 것들로 오히려 검찰·사개추위 합의안보다 후퇴한 것”이라면서 “나머지 초안들도 수사기관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법무·검찰 수뇌부는 조서의 증거능력이 없어져 수사결과가 법정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오히려 피고인의 인권만 보장하고, 피해자 인권보장이나 사법정의의 실현은 멀어진다는 판단에서 영상녹화물의 증거부여에 상당한 공력을 기울여 왔다. 김승규 법무장관이 4일 간부들을 대동해 서울남부지검의 전자조사실을 방문하는 등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무부는 청와대와 사개추위 관계자들에게 영상녹화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줘 여론을 돌이키려 했지만 동행을 거부함으로써 이마저 물거품이 됐다. 영상녹화물 부분이 복수안으로 상정됨에 따라 이를 ‘마지노선’으로 평검사들을 설득했던 검찰 수뇌부의 입지는 한층 좁아지게 됐다. 한 관계자는 “공판중심주의는 대세고, 인권 보호를 위해 녹화물을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해왔는데 사실상 복수안이 상정됨으로써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평검사들은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사개추위의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 사법방해죄, 허위진술죄, 참고인구인제, 양형기준표 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권보장과 함께 수사여건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인권침해와 권력의 비대화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참고인의 출석과 증언은 의무사항이 아닌 협조사항이다. 수사기관에서 협조를 원치 않는 사람의 진술을 강요하고 그 진술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지적이다. 사개추위측은 “현재도 법정에서 허위진술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면서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이 아니라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느냐가 공판중심주의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플리바게닝은 자백하는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어 형사사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형벌을 흥정한다는 인식을 심어줘 사법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아울러 검찰은 양형기준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같은 범죄라도 법관에 따라 선고하는 형량이 들쭉날쭉하다고 비판한다. 선고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형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자는 것이다. 이 부분은 사개추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김효섭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조직위기’ 수뇌부와 공감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의 생각은 결국 검찰 수뇌부와 같았다. 공판중심주의가 시대적 대세이기 때문에 형사사법시스템은 개선해야 하지만 검증 절차와 보완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에 이어 3일에는 부산지검에서 평검사 회의가 열리고, 전국 평검사 회의도 열릴 것으로 보여 사개추위와 검찰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성명서 국민표현 4곳… 호소문 성격 검찰 수뇌부에서 시작된 사개추위 형소법 개정 초안에 대한 반발이 평검사들까지 확대된 것은 이 문제가 검찰의 ‘명운’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사개추위 초안대로 형소법이 개정되면 검찰의 수사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된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검찰은 표면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반대 이유를 대고 있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피고인 신문을 폐지하는 등의 방안이 시행되면 뇌물이나 조직범죄, 성범죄 등과 같이 은밀하게 이루어진 범죄는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피해자가 법정에 출두해 증언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검찰은 사개추위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식은 사법방해죄나,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위증죄 등 보완책이 있으나 사개추위는 배심·참심제 등 재판제도만 수용, 사실상 ‘절름발이’라고 비판한다. 사개추위가 지난달 15일 공청회를 연 뒤 일주일만에 일방적으로 개정 초안을 결정하는 등 ‘졸속 추진’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 이유보다는 검찰 조직의 위기감이 평검사와 수뇌부의 생각을 한데 묶고 있다고 해석된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최근 “국민들의 의사에 무조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개추위의 인적 구성상 검찰의 입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이 이날 발표한 한장짜리 성명서에도 ‘국민’이라는 표현이 4곳이나 나온다. 성명이 국민의 뜻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을 상대로 한 호소문 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민변 “검찰 자백의존 관행 못버려” 회의는 검찰의 ‘위기감’을 반영하듯 굳은 표정속에 시작됐다.8시쯤 시작된 회의에는 서울중앙지검 평검사 거의 전원이 참석했다.127명중 유학, 파견,‘유전의혹’ 수사팀인 특수3부 소속 검사들과 일부 야근 검사들을 빼고는 다 나왔다. 회의실 뒤쪽에는 생수 4박스가 준비돼 있어 ‘마라톤 회의’를 예고했다. 박수 소리로 시작된 회의였지만 ‘수사력 약화’라는 위기감을 반영하듯 곧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사개추위가 추진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평검사들은 오후 11시30분 회의 중간 결과를 알린 뒤 또다시 회의장에서 새벽까지 논의를 계속했다. 그러나 민변 등에서는 평검사들의 이같은 회의 결과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사개추위가 이번 일을 성급하게 추진한 점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평검사들의 주장이 과연 옳은지는 더 논의를 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김효섭 홍희경 박경호기자 newworld@seoul.co.kr
  • 평검사 “형소법 개정 반대”

    서울중앙지검 평검사 100여명은 2일 밤 긴급 회의를 열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 초안을 놓고 논의한 뒤 “형소법 개정 논의는 국민들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했다. 검찰 수뇌부와 같이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 초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평검사들이 모은 것이다. 평검사들은 성명서에서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 논의가 국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짜여진 일정에 맞추듯이 성급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깊이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평검사들은 “인권보호와 국민편익 향상을 위해 기존 형사사법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사개추위의 노력에 공감한다.”면서도 “현재 진행되는 형소법 개정 논의는 사전 검증절차 없이 급격히 뒤바꾸는 변혁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피의자와 피해자의 인권이 모두 존중받고,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부정부패 척결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조화로운 형사사법 절차”라고 밝혔다. 검사들은 전국 평검사 회의를 여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 참석한 한 평검사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공청회도 없이 진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사개추위의 개정안대로라면 성범죄나 조직폭력범죄, 뇌물범죄 등과 같이 은밀하게 진행되는 범죄에는 수사력이 미치지 못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공판중심주의 논의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반인권적 자백위주 수사, 시대에 뒤떨어진 조서 중심의 형사 재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효섭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마약女 ‘엽기 패륜’

    마약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두 명과 어머니, 오빠 등 가족들을 실명시키고 집에 불을 지르는 등의 수법으로 6억여원의 보험금을 타낸 20대 여인이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8일 주부 엄모(29)씨를 현주건조물방화치사상과 존속중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엄씨는 2000년 5월 남편 이모(당시 26세)씨의 눈을 날카로운 핀으로 찔러 상처를 내 실명하게 한 뒤 4차례에 걸쳐 이씨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붓고 흉기로 배를 찔렀다. 엄씨는 2002년 2월 이씨가 후유증으로 숨지자 보험금 2억 8000여만원을 타냈다. ●남편 2명 잇따라 같은 방법으로 살해 엄씨는 4개월 뒤 임모(31)씨와 재혼해 같은 수법으로 오른쪽 눈을 멀게 했으며, 임씨도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2003년 1월 보험금 3900여만원을 수령했다. 엄씨는 이어 2003년 7월 같은 수법으로 친어머니 김모(55)씨, 같은 해 11월에는 친오빠(31)를 실명케 했다. 특히 친오빠가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링거호스에 기관지확장제를 주입, 심장발작을 유발하기도 했으며 올 1월에는 집에 불을 질러 실명한 오빠와 동생(27)에게 화상을 입혔다. 이를 통해 가족 명의로 들어 있던 보험료 2억 7100여만원을 챙겼다. ●보험금 노리고 친가족들에까지 범행 집에 불을 내 갈 곳이 없어진 엄씨는 이전에 파출부로 고용했던 강모(46·여)씨 집에서 생활했으나 지난 2월 이곳에도 불을 질러 강씨 남편(51)을 숨지게 하고, 강씨와 딸(24)을 다치게 했다. 엄씨는 강씨 집 방화과정에서 입은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 대치동 B병원에 입원했으며 이곳에서도 불을 내려고 비상계단에 석유를 뿌렸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그러나 엄씨는 두 번째 남편 임씨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구속수사를 면했고, 지난 1일 아들이 숨진 뒤에는 장례를 핑계로 경찰 수사를 피했다. 하지만 엄씨는 장례 중인 지난 3일 아들과 같은 중환자실에 있던 교통사고 환자를 문병 온 전모(24·여)씨에게 다이어트 알약이라고 속여 수면제를 먹인 뒤 역시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하게 했다. 경찰은 “누나 근처에만 가면 가족들이 다친다.”는 엄씨 동생의 진술을 확보, 엄씨의 행적을 추적해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엄씨의 남편들이 이미 오래 전에 사망해 엄씨 범행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단 살인죄는 적용하지 않았다. ●경찰 “딸 사고사 이후 마약에 손대” 경찰은 엄씨가 2000년 2월 첫 남편 이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사고로 숨지자 마약에 손을 대게 됐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엄씨는 딸이 사망한 직후 우울증과 불면증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며, 딸을 화장한 뒤에는 불만 보면 “딸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며 방화까지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엄씨가 9개월간 보험설계사로 일한 적이 있고 범행 전 첫 남편 이씨에게 한달 만에 4개의 보험을 들도록 권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핀으로 안구를 살짝 건드리면 염증이 퍼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 등 보험과 의학관련 지식을 범행에 악용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엄씨의 여죄를 추궁하는 한편 엄씨에게 마약을 건네준 공급책을 파악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씨줄날줄] 32년전 DNA/김경홍 논설위원

    유전자(DNA) 감식이 범죄수사에 활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로 DNA검사가 수사에 활용된 것은 1980년 초 영국에서였다고 한다. 강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영국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물들의 혈액을 채취해 DNA검사로 범인을 체포했다. 지금은 머리카락 한 올이나 담배꽁초, 옷에 묻은 정액으로도 범인을 식별할 수 있고, 우표에 묻은 말라붙은 침으로도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다. 심리수사나 자백, 증거를 찾아내는 콜롬보식 수사는 한물간 지 오래됐다. 최근 미국의 한 연쇄 성폭행범이 32년전 범행 현장에서 채취된 유전자 감식으로 덜미를 잡혔다고 한다. 다른 범죄로 수배중이던 범인이 붙들리자 검찰이 32년전 성폭행 희생자의 속옷에서 채취해 두었던 DNA를 대조해본 결과 완벽하게 일치돼 범행이 탄로났다는 것이다. 범인이 58세이니까 26세 때 저지른 살인과 성폭행이 입증된 것이다. 수십년이 지나더라도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획기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미제로 남아있다.1986년부터 1991년까지 한 지역에서만 무려 10차례나 강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이 잡힌 것은 8번째 강간살인사건 한 건뿐이다. 범인의 정액샘플을 일본에 보내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32년만에 범인을 검거한 예로 볼 때 흔적이나 유류품만 잘 보관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범인을 찾아내리라 기대해 본다. 지금의 과학수사기술로 밝혀내지 못할 증거품이나 체액샘플이라도 폐기하지 말고 범인이 잡힐 때까지 보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상습 성폭력범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칩이 부착된 전자팔찌 착용을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성폭행범의 재범률이 80%가 넘는다고 하니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더라도 도입해볼 만하다. 범죄자의 인권보다는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이다. 아울러 1차 성폭행범의 DNA샘플을 보관하고 있다가 새로운 피해자와 대조한다면 재범이라면 반드시 잡히지 않을까. 성폭행범은 반드시 잡힌다는 것도 범죄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말 안듣는다” 2주 감금 초등생 딸 굶겨 숨지게

    인천 부평경찰서는 22일 “말을 듣지 않는다.”며 초등학생 딸을 감금하고 폭행해 숨지게 한 천모(45)씨와 천씨의 남동생(35)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천씨 등은 지난 2일부터 15일까지 딸(12·초등학교 6년)을 “몸속에 마귀가 있으니 쫓아내야 한다.”며 금식을 이유로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방안에 감금한 채 딸이 “밥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다. 천씨는 딸이 숨지자 지난 17일 “딸이 20일 전부터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질러 등교시키지 않고 안정을 시키던 중 갑자기 사망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그러나 천씨의 행동이 미심쩍은 데다 부검 결과 딸이 쇼크사(탈진 등)로 숨졌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소견에 따라 천씨 등을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기독교 신자인 천씨는 경찰에서 “딸이 말을 듣지 않고 손버릇이 나쁜 데다 고집도 세 금식을 통해 고쳐주려 했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1733년 7월 전라도 남원성벽에 괴벽보가 나붙었다. 머지않아 영조 임금이 쫓겨나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벽보를 직접 작성한 사람은 남원 부자 김영건의 아들들이었다. 이 벽보에는 김씨들의 숙적인 이유성 일가의 이름이 도용돼 있어 이씨들을 모함하기 위해 그랬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그처럼 단순하고 우발적이었을까? ●이여매와 이여진 형제의 이름으로 된 벽보 남원성벽에 내걸린 벽보는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와 숙부 이여진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이 형방은 문서를 읽고 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에 이런 흉악한 문서에 제 이름 석자를 붙여 걸어둘 바보가 과연 있겠는가? 형방은 박 호장, 최 이방 등과 이 문제를 상의한 다음 이씨 집안과 다투고 있던 김영건 부자에게 혐의를 두었다. 일차로 김영건 부자를 연행한 다음 그 집안을 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벽보의 초안이 발견돼 사건은 싱겁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김씨들이 괴문서의 말미에 이여매 형제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러나 원수의 이름을 빌려 반역의 의지가 명백한 벽보를 붙일 만큼 김씨들은 무지몽매했을까? 벽보를 손수 쓴 김원팔로 말하면 제법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그 정도 계산도 못할 만큼 청맹과니는 결코 아니었다. 김원팔 형제가 남문 옆 성벽에 벽보를 붙여두고 집으로 돌아간 직후, 세 사람의 괴한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둘은 좌우에서 망을 보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벽보의 맨 끝에 “이여매와 이여진 씀”이란 글귀를 추가했다. 그 글씨체는 영락없이 김원팔의 것이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 보면 왼쪽으로 좀더 비스듬히 올라간 것이 눈에 띌 만도 했다. 눈썰미가 남다른 이방 최정도는 그 점을 이미 정확히 짚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필체의 미세한 차이를 말하지 않았다. “사건은 이 정도로 마무리돼야 한다. 만약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면 남원은 헤어날 길이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건의 근원적인 규명이 아니다. 확대 수사는 도리어 민심을 뒤흔들어 놓을 뿐이다. 여기서 종결시키자. 더 이상의 불필요한 잡음을 불러일으키지 말고 사적 원한에 근거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마무리하자. 그것이 모두에게 좋다. 어차피 이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것이 남원의 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던, 아니 18세기 한국사회의 물정을 정확히 파악했던 최정도 이방의 생각이었다. ●김영건 일가를 저버린 지하조직 따지고 보면 그랬다. 조직은 김원팔 일가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작정했다.18세기에는 하삼도만 해도 남원 운봉 함양의 지리산, 부안의 변산, 충청도 계룡산과 오서산, 합천의 가야산 등지를 잇는 지하조직이 결성돼 있었다. 조직원의 수가 얼마나 됐고 조직의 구성이 어땠는지 전모를 정확히 파악할 길은 없지만, 수십 수백 명이 가담한 비밀결사가 존재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런 지하조직의 최종 목표는 조선왕조를 전복시키고 용화세계 또는 미륵세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동학에서 말하는 지상천국, 후천세계의 원형이 이미 18세기에 형성되고 있었다. 지하조직은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비결을 앞세워 민심을 선동했다. 조직은 나라를 원망하는 각양각색의 인사들을 점조직으로 편성했다. 조직의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처의 부자들을 포섭하거나 도적질을 하기도 했다. 남원부자 김영건 같은 이는 지하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쓸모있는 인물이었다. 김영건은 천민출신이라서 기존의 사회질서를 반대했으며 자금력도 어느 정도 충분한 데다 김원팔과 같이 유능한 아들이 있어 지하조직의 한 귀퉁이를 맡길 만했다. 김영건 자신은 아마 짐작도 못했을 테지만, 지리산에 근거지를 둔 지하조직은 오래 전부터 김영건 일가를 포섭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 일찌감치 지하조직의 지도부는 김영건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남원, 운봉, 함양 일대를 제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아는 탁발승들이 바로 조직의 중추였는데,17세기 후반 영건의 어머니 분금이 무작정 노씨 집을 뛰쳐 나왔을 때 지리산에서 굶어 죽지 않고 무사히 남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 실은 어느 탁발 승려 덕택이었다. 그 인연은 영건이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됐었다. 나중에 분금이 아들 영건에게 남긴 유언 가운데 부처님의 원력을 말한 것도 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나온 말이었다. 양반 정 노인의 신분시비 사건으로 김영건은 큰 충격을 받아, 현세를 지배하는 논리에 회의를 품게 된다. 하지만 그는 천품이 온화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조직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희생을 바칠 사람은 못 되었다. 지하조직은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의 세 아들들에게 더더욱 큰 기대를 걸었다. 지하조직은 지도부에 속한 변산의 승려 태진과도 연줄이 있는 최봉희를 시켜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3형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최봉희는 우선 비결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려 했고, 가장 먼저 그 먹이를 문 사람은 김영건의 막내아들 김원택이었다. 그 덕분에 김원팔과 김원하를 조직에 가담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732년 가을부터 김원택은 조직을 이탈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김원택은 지하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이 지극히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고, 조직 활동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김씨 일가의 담당인 최봉희 보기를 꺼려했다. 그는 형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취하고 있었다. 조직은 김원택에 대해 다각도로 회유책을 폈으나 전혀 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 조직은 마지막 수단을 고안했다. 김영건 일가에게 괴벽보를 작성해 남원읍성에 부착하도록 지시했다.3형제가 공동으로 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들을 묶어두지 않으면 장차 조직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게 상부의 판단이었다. 김원팔 형제가 벽보를 붙이는 순간에도 조직은 멀리서 그 광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나타난 것은 약속한 3형제가 아니었다. 김원택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 담당책 최봉희는 상부와 긴급히 상의했고, 그 처방은 간단명료했다. 김씨 일가를 희생시켜라! 그리고 최봉희 넌 멀리 도망쳐라! 우리 조직의 남원 지부는 당분간 활동중지다! 그러나 이 벽보를 계기로 민심을 한 번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김원택과 최봉희의 머리싸움 거슬러 올라가 살펴 보면, 남원의 일부를 담당한 최봉희는 부자 김영건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김원택에게 접근했었다. 최는 세상 물정에 두루 밝은데다 붙임성이 대단히 좋았다. 게다가 남원에선 손꼽히는 양반가문의 후예였다. 집이 가난한 것만 빼놓으면 도무지 나무랄 데가 없는 선비였다. 출신이 미천해 고민하고 있던 김원택 일가로선 그런 최봉희와 사귀게 된 것이 큰 영광이었다. 최봉희의 지식에 매료된 김원택은 장형 원팔과 중형 원하에게 차례로 최를 소개했다. 김원팔 등은 매일 같이 최봉희를 만났고 그 때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후의를 베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마치 최봉희가 김원팔의 식객(食客)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처음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최봉희는 김씨 일가의 내면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고, 김원택은 바로 그 점을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원택은 최가 자기 형들과 함께 만든 필묵계에도 관여하길 거부했다. 그는 두 형과 아버지 김영건에게 최를 멀리하라고 몇 차례 간청하였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벽보를 붙이는 문제가 집안에서 거론되자 김원택은 최가 배후 인물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충직한 종 남산을 성밖으로 내보내 최봉희가 숨을 만한 곳을 미리 수소문하라고 했다. 만일의 경우 관가에 연락해 최봉희가 즉각 검거되도록 손을 써둔 것이었다. 김원택은 장차 아버지와 형들이 벽보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멸문의 화를 당할 게 너무 억울했다. 만일 집안에 화가 닥치면 최를 비롯한 지하조직도 분쇄되어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하조직은 점조직이라 최봉희 위에 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원택은 그동안 최봉희에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정리해 보았다. 문득 변산 승려 태진의 이름이 뇌리에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태진과 최봉희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원택은 배후조종자로 태진을 고발했다. ●‘정감록’ 사건의 마무리 김영건 4부자를 비롯해 최봉희, 태진 등은 제각각 검거된 장소와 시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창덕궁의 정문인 인정문(仁政門)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에 끌려가 엄한 취조를 받았다. 때로 국왕 영조가 직접 심문에 나설 정도였다. 제1급 시국사건으로 취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에서 서울까지 끌려가 조사를 받은 사람이 삼사십 명이나 됐고, 전라도 각처에서 일시 검거돼 취조받은 사람은 수백을 헤아렸다. 인정문 앞에선 열흘 넘게 날마다 지독한 고문이 계속됐다. 몽둥이찜질은 기본이고, 인두로 몸 지지기, 정강이뼈 뒤틀기, 무릎 관절 부수기 등은 이를테면 선택사항이었다. 혐의자들은 차례로 단독 심리를 거쳐, 관련자와 대질 신문을 받은 뒤 다시 재심리를 받았다. 중간에 말이 바뀌면 모든 수사과정이 처음부터 되풀이됐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듭된 고문과 그 중간에 잠깐 끼어든 달콤한 회유, 그리고 교활한 유도신문이 연달았다. 머리 좋고 경험 많은 의금부 관리들을 비롯해 조정대신들 그리고 국왕 영조까지 직접 심문에 나섰기 때문에, 그 자리에 끌려 나온 사람은 여간한 배짱과 지능으로는 조금도 숨기거나 속일 수가 없었다. 며칠만 닦달을 하면 고분고분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되었다. 특히 사건 심리의 초기 단계에는 가능한 모든 범위로 수사가 확대되었다. 털끝만큼이라도 혐의가 있어 뵈는 사람은 연일 추가로 체포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김원팔과 그의 아버지 김영건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판결도 내려지기 전에 형틀에서 죽고 말았다. 실상 벽보 사건에 전혀 가담하지 않는 김원택도 맞아 죽었다. 고문을 잘 견뎌 용케 살아남은 이는 김원하였다. 그는 역적의 아들이란 죄로 또다시 두들겨 맞은 다음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럴 때도 고수는 따로 있었다. 지하조직의 하급간부 최봉희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는 수사관들의 의견이 있긴 했지만 그의 죄를 증명할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아 외딴섬으로 귀양가는 데 그쳤다. 본래 점조직으로 운영된 조직이다 보니 김영건 부자는 최봉희의 윗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수사과정에서 최봉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지만, 특수 훈련을 받은 최봉희는 노련했다. 최는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지하조직의 비밀은 하나도 노출시키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제침으로써 수사본부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수사본부는 최봉희를 미치광이로 규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수사를 매듭지었다. 조직의 거물이자 당시 전라도내에서 이름난 승려였던 변산의 태진은 자신을 변호하기에 충분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남사고 비결’을 소장했다는 점만 인정했을 뿐, 벽보 사건과 무관하다는 점을 끝까지 주장했다. 영조는 “태진의 대답이 범행을 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구나!”라고 하여 태진이 사건에 관련돼 있다고 보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태진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섬으로 귀양보냈다. ●조정은 지하조직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 당시 도승지 홍경보는 영조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지금 영남 하도(下道, 경상남도)와 호남의 인심이 매우 험악합니다. 만약 수사를 여기서 멈춘다면 괴수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각별히 헤아려서 연루자를 체포해야겠지만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 뜻으로 공문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영조는 홍경보의 말이 옳다며 민심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를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불가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하조직에 음양으로 관련돼 있었던 데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정이 조금만 더 악화되면 조직에 대거 참여할 기세였다. 이런 판국에 혐의자들을 함부로 붙들어다 고문하게 되면 조정이 정말로 우려하는 반란 또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말처럼 될 수도 있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리들은 자신들의 임기에만이라도 그저 별일 없이 조용하기를 바랐다. 얼마나 애를 써서 얻은 벼슬자리인가. 아직 본전을 다 뽑지도 못했는데 만일 난리가 일어나 벼슬을 놓치게 되는 일이 생겨선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 관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뢰었다. “엄히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별탈은 없는 듯합니다. 백성들이 불안해서 생업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 수사를 종결해야 됩니다. 이번 사건은 배후에 무슨 특별한 조직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시골의 무식하고 못돼 먹은 반역자 김영건 4부자가 사적인 원한으로 엉뚱한 짓을 벌인 것입니다.” ●영조의 선택 영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역적 놈들은 과인의 목을 요구한다. 놈들은 이 나라가 망하기만 바라고 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사건을 축소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처리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것은 일부 몰지각한 놈들의 소행이라고!” 결국 왕의 생각이나 조정대신들, 지방관들의 뜻은 남원 이방 최정도의 견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둘러대긴 했지만 왕의 마음은 께름칙했다. 하필 왜 남쪽 지방, 그것도 전라도에서 이런 고약한 무리들이 자꾸 나오는 것일까. 왕은 자기의 친어머니가 전라도 출신의 미천한 나인인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산란했다. 그는 불편한 심기를 완전히 눅이지 못한 채 목청을 돋워 각도의 관찰사들을 독려했다. “전라도는 우리나라에서 잡술을 가장 숭상한다고 들었다. 근래 태진이란 중놈의 예언서를 보면 그 폐해의 심각성을 알만 하다. 예언서를 엄금해야 한다. 너희들 휘하의 지방관들에게 명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이 일체 그런 불온서적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라. 삿된 경전(邪經)을 버리고 성리학에 힘쓰게 하라.” 왕은 ‘정감록’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낡은 성리학으로 ‘정감록’을 이길 수 있을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사설] 檢·警의 경쟁적 인권보호 다짐

    검찰과 경찰 등 최근 수장이 바뀐 두 권력기관이 잇따라 인권보호를 다짐하는 약속을 내놓았다. 국민의 공복 신분에도 불구하고 국민위에 군림하여 국민을 한없이 왜소하게 만들었던 두 기관이 인권존중의 시대적 요구에 맞춰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수사권 독립을 놓고 두 기관이 힘겨루기를 하고있는 상황에서 경쟁적 선언에 대한 의구심 또한 고개를 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두 기관은 다짐을 제대로 실천해야 하겠지만 국민이 왜 불신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지도 헤아려야 한다. 추호라도 다른 속내가 있다면 반성할 일이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인권 존중의 선진검찰 구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불구속 수사의 최대한 확대, 자백위주의 수사방식 지양, 과학적 증거확보, 형벌에 앞선 설득과 중재의 중요성 등 새 검찰 총수가 역설한 것은 국민이 새시대 검찰상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바다. 제도화를 통한 정착을 기대한다.‘인권검찰’선언이 권력으로부터의 검찰독립 명제를 흐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일부 있지만 두 가치가 양립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인권 없는 정의 없고 정의 없는 인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청이 어제 발표한 인권보호 종합추진계획 역시 획기적 경찰활동 개선책을 담았다. 밤샘조사 금지, 범죄피해자 정신피해 치료서비스 제공, 피해자와 가해자의 직접대면을 막기 위한 화상대질조사실 설치 등은 그동안 경찰수사에 쏟아졌던 불만을 일거에 풀어줄 수 있는 내용들로 평가된다. 인권침해로 얼룩졌던 유치장 환경도 개선될 모양이다. 그러나 제도들이 실효를 거두려면 일선경찰의 의식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의식 업그레이드 대책이 없는 것은 아쉽다.‘인권검찰’‘인권경찰’이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수사상의 인권보호는 선진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두 기관의 인권보호 다짐이 말잔치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 김종빈총장 취임식… “감찰·인사권 일선 이양”

    김종빈총장 취임식… “감찰·인사권 일선 이양”

    김종빈 신임 검찰총장은 4일 수사관행을 개선하고 감찰을 강화해 ‘인권존중의 선진검찰’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감찰권과 인사제청권도 일선 검찰에 과감히 이양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김 총장은 “검찰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지원하고, 국민의 아픔과 불편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며 인권존중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불구속 수사의 확대, 자백 위주의 수사방식 지양, 과학적 증거확보, 형벌권 행사에 앞선 설득과 중재, 사회적 약자 보호제도 구축 등 새로운 수사제도·관행을 확립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검사에 대한 자체 감찰은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공표했다.“인사 혜택을 받고자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검사는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해치는 무서운 내부의 적”이라면서 “우리 스스로를 깨끗이 하기 위해 자체 감찰 활동을 더욱 엄정하게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선 고검에서도 감찰을 하도록 총장 고유 권한인 감찰권을 일부 이양할 것이라고 밝혔다.“국가인권위원회, 법원, 검찰이 인권보호를 중복해서 담당하듯 감찰 업무도 여러 기관이 함께 맡아야 사각지대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김 총장은 취임식 후 기자들과 만나 공직부패수사처와 상설 특검제 등 검찰 견제 움직임에 대해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파생된 문제인데 누구를 원망하겠느냐.”면서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유지·확대해 검찰이 제 기능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김종빈호(號)는 공수처 설립, 검·경 수사권 조정, 공판중심주의 강화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출항한다. 검찰의 반대에도 공수처 설립은 활발히 진행되고, 검·경 수사권 조정도 팽팽한 대립 속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20&30] “그게 바로 우리 직업이죠”

    [20&30] “그게 바로 우리 직업이죠”

    남들이 가는 길은 가지 않는다. 나만의 개성과 적성을 살린 이색 직업을 선택한 2030이 있다. 이들에게 직업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다. 낯설어하는 타인의 시선도 상관할 바 아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과 자아실현을 위해 희귀 직업을 선택한 당당한 20·30대들에게 그들만의 직업 이야기를 들어본다. ● 컬러리스트 유수진씨 “유행하는 색을 쓰시겠다고요? 올 봄 인기색인 핑크도 사람마다 어울리는 채도·명도가 따로 있습니다.” 태평양에 근무하는 유수진(28·여)씨는 컬러리스트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화장품 색을 골라주고, 만들어주는 게 그의 일이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유씨는 5년 전 전공과 상관없이 화장품 회사에 입사, 조색 업무를 맡았다.“처음엔 유행하는 색만 만들어내면 됐죠. 그러다가 컬러리스트 자격증을 따면서 달라졌습니다.” 2002년 자격증이 생긴 컬러리스트는 색깔에 대한 전문가다. 옷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화장품 등 각종 분야에서 최적의 색깔을 선택해주는 일을 한다. 고객에게 맞는 색깔을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 남짓. 경력 4년차인 그는 잠깐 보기만 해도 어울리는 색을 잡아낼 수 있다. 선택한 색깔을 제대로 된 조명 아래에서 실제로 화장을 해본 다음 약간의 수정작업을 거치면 고객에게 맞는 색 선택이 끝난다. 그는 “화장품 색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도 달라보이는 고객들을 보면 뿌듯하다.”며 웃는다. 고객들도 평소와 똑같은 화장법에 색깔만 바꿔도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확인하면 놀라고 감탄한다. 그런 고객들은 일반 화장품에 비해 고가임에도 그 색깔대로 화장품을 주문·제작해서 사용한다. 고객들은 대부분 구매력이 있으면서 개성을 중시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가끔 제가 골라 드려도 ‘고집대로’ 색을 쓰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럴 때마다 조금은 안타깝죠. 개성도 좋지만 사회생활에서 색 하나로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컬러리스트 자격증은 대부분 미술 관련 전공자들이 도전하지만 비전공자도 학원이나 스터디 그룹 등을 통해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자격증이 곧바로 취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컬러리스트의 위치는 디자인, 메이크업 등 전공 분야를 가진 이들이 자격증으로 시너지 효과를 얻는 정도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도청탐지전문가 최영선씨 “술술 새어나가는 정보의 구멍을 찾아라.” 정보의 흐름만 좇아도 누구나 대박을 기대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정보를 부당하게 빼내거나 상대의 약점을 캐내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려고 도청기를 설치하는 사람들. 삼성 에스원 최영선(35)씨는 이런 사람들이 장착해둔 도청기를 찾아내는 도청탐지전문가다. 우리나라에서 도청탐지전문가로 공식 활동하는 사람들은 60명 안팎. 대부분 전기·전자·통신 분야 전공자들이다. 최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부터다. 통신관련 업체에서 근무하던 중 유선 분야의 도청탐지전문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 회사로 옮겨왔다. 직업 자체가 워낙 희귀하고 전공을 살리면서 새 분야에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호기심이 마음을 움직였다. 그의 주업무는 유선전화에 장착된 도청기를 찾는 것이다. 바닥이나 천장에 가려진 전화선에 클립 형태로 도청기를 설치해 두거나 전화기 본체와 수화기 또는 전화선과의 접지 부분에 교묘하게 부착해둔 도청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일반 서류가방만 한 크기의 도청탐지기를 유선에 연결해 거기서 발생하는 전압과 전류를 측정해 도청기 설치 여부를 파악한다. 무작정 모든 유선에 도청탐지기를 연결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도청기가 있을 만한 곳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기술이다. 이런 감지 활동을 통해 도청기를 발견하는 경우는 2∼3%. 도청기를 찾아낸 후의 처리는 의뢰인들의 몫이다. 그는 한 해에 보통 170∼200차례 탐지 활동을 한다. 의뢰 업체는 국·내외 삼성 계열사 임원실이나 대기업 간부실, 고급 주택들이다. 출장도 잦고 야간작업도 빈번하다. 그는 “탐지작업은 주로 사람들이 퇴근한 시간에 하기 때문에 냉·난방 시설이 가동되지 않는 공간을 샅샅이 훑다 보면 땀이 비오듯 흐른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거짓말탐지관 김희송씨 매일매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남자가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심리연구실에서 범죄심리분석을 담당하고 있는 김희송(36)씨. 그는 거짓말탐지관이다. 우리나라에서 거짓말탐지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100명 안팎. 이들 대부분은 경찰이다. 민간인 신분의 거짓말탐지관은 김씨를 포함해 3명뿐이다. 그의 주된 업무는 거짓말 탐지 의뢰인들의 거짓말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형사상 수사 목적으로만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한다. 주로 경찰이 물증 없이 피해자나 가해자의 진술에 근거해 수사를 해야 할 때 거짓말탐지관을 찾는다.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정부기관에서 상담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2000년부터 거짓말탐지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사기, 고소, 절도, 강간, 살인 등 지금까지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거짓말 여부를 가려낸 사건만 2000여건에 이른다. 이 중에는 지난해 8월 아내에게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한 남편에게 법원이 처음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사건도 포함돼 있다. 당시 남편은 경찰에서 아내의 동의를 얻었다고 진술했지만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거짓인 것으로 판명됐었다. 그는 “거짓말탐지관은 단순히 기계를 조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도록 돕는 전문가”라고 말한다. 거짓말탐지관은 형사상 처벌을 받을 만한 중죄를 지은 사람이 거짓말을 했을 때 나타나는 호흡, 피부전기반사, 혈압, 맥박 4가지 요소의 차이를 비교해 거짓말 여부를 판단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피검사자들의 심리상태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는 검사에 앞서 피검사자들에게 거짓말탐지기의 원리와 정확성을 설명한다. 검사관의 질문에 피검사자들은 ‘예’,‘아니오’로만 답할 수 있도록 문항을 짜고 문제를 사전에 알려준다.98%에 가까운 거짓말탐지기의 적중률을 설명하면 검사를 받기도 전에 자백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개빵제빵사 이주리씨 “오늘도 개를 위한 간식을 굽고 고르며 하루를 보냅니다. 개를 사랑하신다면 빵을 구워보시는 건 어떠세요?” 서울 청담동 쓰리독베이커리의 이주리(34·여)씨는 개를 위해 빵과 과자를 만든다. 쓰리독베이커리는 미국에서 들어온, 개를 위한 프랜차이즈 빵집. 당근맛 조각 케이크에서 뼈 모양의 대형 케이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개 간식 제빵사 자격증은 어느 나라에도 없지만 미국에서는 프랑스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돌아와 개빵 제빵사를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보편화된 직업이다. “광고 쪽 일을 하다 1년 반 전 우연히 한국에 개 간식 전문 매장이 생기고 직원을 뽑는다는 걸 알았죠. 개도 좋아하고 요리에도 자신이 있어 도전하게 됐습니다.” 재료를 미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일반 제빵사에 비해 일은 많지 않지만 결코 쉽지 않다. 사람에 비해 미각이 둔한 개를 위한 빵은 밀가루가 거칠어 반죽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또 재료 선택은 사람을 위한 빵보다 까다롭다. 그는 “사람한테는 특별한 질병이 없는 한 좋은 재료를 쓰면 되지만 개는 다르다.”면서 “고구마, 유지방 등 사람에게는 괜찮지만 개에게 치명적인 재료들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만든 빵과 과자를 골라주는 것도 그의 일이다. 말 못하는 개를 위해 개의 종류, 크기에 따라 간식을 선택해줘야 한다. 개 주인은 모양을 보고 고르지만 개들의 입맛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씨는 “개를 사랑하는 마음도 필요하지만 개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얼핏 예쁜 빵을 만들어 그럴 듯한 매장에서 팔고 있어 쉬워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힘들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 개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개를 위해 빵과 과자를 굽는 일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규격화된 빵을 만들고 있지만 꿈은 따로 있다. 개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는 빵집을 차려 자기가 직접 만든 디자인으로 케이크와 과자를 구워 파는 것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기고] ‘개인정보 보호’ 고려한 통합형사사법을/박준모 통합형사사법체계 구축기획단 단장

    정보화에 따른 개인정보 누출의 위험은 정보화사업의 공통된 숙제이다. 형사사법절차의 정보화사업인 통합형사사법체계구축사업에 있어서도 개인정보의 유출가능성에 대하여 우려하고 그 보호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국민의 인권보호차원에서 극히 당연한 지적이다. 통합형사사법체계구축사업이란 각 형사사법기관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계하여 과거 사람에 의하여 주고받던 종이기록 내지 종이문서를 전자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하고 중복된 절차를 개선하는 업무절차 혁신 작업으로, 형사사건처리절차에서 국민에 대한 서비스 품질 향상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예컨대 피의자의 인적사항에 대하여 경찰·검찰·법원·교도소에서 각각 입력하던 것을 경찰에서 한번 입력하면 검찰 등에서 전자적으로 받아 활용하도록 하고, 단순한 행정법규 위반의 경우 범행을 자백하고 사안이 경미하다면 범행현장과 경찰서를 오가면서 조사를 받고 지문을 찍는 등 번잡한 절차를 현장에서 한번의 조사로 끝내고 해당 당사자를 불안정 상태에서 조속히 벗어나게 하여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통합’이라는 용어로 인하여 ‘정보를 한곳에 통합하여 관리한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여기서 ‘통합’은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그동안 사람에 의하여 수작업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수많은 종이문서 내지 종이기록의 송부 및 접수절차를 개선하고 전자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통합형사사법체계구축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개인정보 보호문제는 매우 중대한 사항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법률적·기술적 연구를 통하여 적극적인 정보보호의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통합형사사법체계가 구축되었을 때 인증을 받은 사람만이 자기가 관여하는 사건에 한하여 고도로 암호화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방화벽·암호화·인증키 시스템·네트워크상의 로그 확인 및 처리추적시스템 등 기술적인 노력은 물론, 담당자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책임 소재의 규명 등을 통하여 최고 수준의 보안 및 정보보호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은행의 인터넷뱅킹을 생활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고, 부동산등기부와 호적부마저도 전산화되고 있다. 형사사법절차에서도 이러한 정보유출의 우려로 정보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오히려 종이기록 내지 종이문서의 경우 이를 복사하더라도 누가 언제 어떤 기록이나 문서를 복사하였는지 후에 확인할 수 없으나, 시스템에서 암호화된 전자기록 내지 전자문서는 누가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하였는지 그대로 시스템 상에 남을 뿐만 아니라, 기록이 유출되거나 도난을 당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더욱 보호될 것이다. 다음 통합형사사법구축사업은 국내에서 처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미국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각 주별로 시작되었고, 현재는 콜로라도와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이미 시스템이 정착되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 있으며, 영국에서도 이미 사법개혁작업의 일환으로 2008년 완성을 목표로 시스템 구축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사면기구(Amnesty International)는 2003년 인권보호를 위하여 모든 수사과정의 전자기록화를 권고한 바 있어 이와 같은 형사절차에서의 정보화는 인권보호를 위한 전 세계적인 추세다. 통합형사사법 구축사업은 형사사건에 대한 업무처리절차에서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그 품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것을 거듭 말씀드린다. 박준모 통합형사사법체계 구축기획단 단장
  • [클릭 이슈] 수사기록 공개 공방

    [클릭 이슈] 수사기록 공개 공방

    공무원 A씨는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건설업자 B씨가 그에게 8000만원을 건넸다고 자백했기 때문이다.A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사흘간 검찰에 불려가 꼬박 12시간씩 신문받았다. 검찰은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본인은 물론 가족 등 참고인 20여명에 대한 계좌추적을 실시하는 한편 통화기록도 조회했다. 이런 수사기록만 수백장에 이르렀다. 검찰의 기소로 법정에 선 A씨는 다시 한번 당황했다. 검찰이 수사기록을 법정에 제출하지 않아 변호인이 아무런 사전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상사건은 검찰이 수사기록을 법원과 변호인에게 제출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검찰은 실제로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철거업자로부터 아파트 재개발과 관련해 1억 4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합장 김모씨를 기소했다. 검찰은 1차 공판에서 관행을 깨고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재판이 시작되면 검찰은 수사기록을 법원에 넘긴 뒤 확정 판결 후 돌려받는다. 불기소·무혐의 사건기록은 검찰이 관리하고 있다. 이런 관행을 깨고 현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만 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다른 지검으로 확산될 분위기다. 검찰이 수사기록을 내지 않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수사기록을 읽고 피고인이 증인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일이 일어나는 등 공소유지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또 수사기록에 등장하는 다른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이유다. 수사기록의 의존도를 낮추고 법정 진술과 증거로 유·무죄를 판단하자는 공판중심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법원의 잦은 영장 기각과 관대한 판결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다. 검찰은 어떤 자료를 법정에 낼지, 제출한다면 언제 어떻게 공개할지 등 수사기록에 관한 모든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판에서 효과적으로 유죄를 입증하려면 피고인에게도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만을 선별해 법원에 제출하고 그밖의 수사기록은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 판사도, 피고인도 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검찰청은 이에 대해 일률적인 지침을 내려보내지는 않고 각 지검과 지청이 자체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는 것은 공식적인 대검 입장은 아니고 일선 검사의 재량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검 예규는 피고인이 수사기록 중 본인의 진술만 열람·등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수사기록 전체가 아니라 검찰이 법원에 제출할 기록만 피고인에게 미리 공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제3자가 아닌 피고인의 수사기록 열람을 막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개인 기록인 수사기록은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집, 활용할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피고인의 방어권 확보를 위해서도 수사기록 열람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피고인이 첫 재판에 섰을 때 검사는 이미 수개월간 사건을 파헤친 전문가지만, 피고인은 무방비 상태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변호인은 수사기록을 읽으며 사건을 분석, 허점을 찾아내 피고인을 방어해야 하는데 수사기록도 보지 못하면 방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소동기 변호사는 “증거수집 능력이 탁월한 국가기관이 유리한 증거만 법정에 제출하는데 개인이 맞서 이길 수 있겠느냐.”면서 “법원 제출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수사기록을 피고인과 공유해야 대등한 재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독일도 피고인에게 원칙적으로 수사기록을 공개하고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수사기록은 무죄를 밝힐 자료가 될 수도 있다.”면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국가기관이 진실을 은폐한다는 의혹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도 1997년 검찰이 수사기록의 열람을 이유 없이 거부한 것에 대해 “피고인의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법도 김씨 사건에서 검찰은 수사기록을 피고인에게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수사기록은 국가기관인 검찰이 국민의 세금을 받아 수집·작성한 공문서란 주장도 있다. 피고인 등 이해 당사자뿐 아니라 언론매체나 사회단체도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공개를 청구하면,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해석이다. 대법원은 “공개될 경우 국가 안보나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는 구체적 설명 없이 단순한 가능성이나 주관적 추측으로 검찰이 수사기록의 공개를 거부해선 안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실제로 5·18 광주민주화운동,KAL858기 사건기록이 지난해 공개됐다. 방송사의 청구로 지난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 수사기록도 빛을 봤다. 지난 1월 서울고법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검찰의 공개 거부 결정은 대부분 행정소송을 통해 뒤집혔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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