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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안사건 피해자 재심 법무부, 법률지원키로

    변호사 선임 비용이 없어 재심 청구에 어려움을 호소(서울신문 7월12일자 1면)해온 ‘차풍길 간첩조작의혹사건’ 피해자 차풍길씨 등 과거 공안사건의 억울한 피해자들이 법무부의 재심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건 중 재심 권고사안에 대해 재심청구 및 진행 과정에 필요한 법률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법무부는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진실화해위 공문을 6월29일과 7월12일 두 차례에 걸쳐 받았다.”면서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나 공문 수령 직후부터 구체적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진실화해위의 권고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에 따라 대통령 훈령 제정을 통한 ‘권고사항 처리단’ 가동을 12일 결정한 바 있다. 법무부의 재심지원 방안은 크게 3가지다. 법무부는 ▲7월초에 재심지원 TF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고 ▲대검찰청에 진실화해위 결정내용을 통보해 재심에 필요한 법률지원 요청했으며 ▲법률지원구조공단에 협조공문 발송했다고 밝혔다.법무부 관계자는 “변호인을 선임할 돈이 없어 재심청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들이 재심 과정에서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이 나서서 재심을 청구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사의 재심청구 권한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제424조(재심청구권자)의 입법취지와 달라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해당 형소법 조항은 진범이 따로 있는 사건에서 허위자백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가짜 범인의 의사에 반해서 재심을 청구하고 진범을 기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분명히 할 점은 법무부의 재심지원은 검찰의 과거반성 차원임과 동시에 대승적 차원의 지원”이라고 강조,“재심은 실체적 진실규명을 다시 한다는 의미로, 청구인들이 죄를 지었으면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고 죄가 없다면 무죄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이에 대해 “법은 입법취지에 맞아야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평생 억울한 누명으로 고초를 겪어온 피해자들을 생각해서라도 검찰의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다음주쯤 구체적인 지원내용을 공개할 방침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백의종군하며 화성 살인사건 풀고 싶어”

    “백의종군하며 ‘화성 살인사건’을 해결해 보고 싶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수사과정에서 한화측과의 부적절한 접촉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강대원 전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경정)이 회고록 ‘형사 25시’를 탈고했다. 현재 대기발령 중인 강 경정은 8일 “상황이 잘 정리되면 화성경찰서에서 백의종군하며 화성 살인사건을 해결해 보고 싶다.”며 현장 복귀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임박한 상황에서 그의 희망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그의 회고록에는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현 광역수사대) 대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실종 여성의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유영철을 검거해 살인 행각을 자백받는 과정이 상세히 나타나 있다.●“日 민영방송이 `발길질 사건´ 유도”‘주운 휴대전화를 썼을 뿐’이라고 우기던 유영철에게 그의 지갑에서 나온 여성용 금발찌를 제시하자 ‘여기 있는 형사들 다 특진시켜 주겠다.’며 소리지른 뒤 종이에 ‘혜화동 2명, 구기동 3명…’ 식으로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써내려 갔다고 강 경정은 묘사했다. 당시 발생했던 미제 살인사건 지역의 이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고 희생자 수가 30명에 가까워질 무렵 반신반의하던 경찰관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것. 강 경정은 또 유영철을 검거하고도 용산서 형사과장으로 좌천된 계기가 된 ‘발길질 사건’을 일본 민영방송이 유도해 일으킨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극적인 장면을 유도하기 위해 일본 방송사가 희생자 어머니에게 부탁해 우산으로 유영철의 모자를 벗기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보복폭행사건 내사 중단 지시 받아”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해 강 경정은 “사건 발생 3일 후 첫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윗사람으로부터 내사 중단지시를 받았다.”면서 “각 정보기관과 언론도 이 사건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모두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경정은 서울청 기동수사대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유영철 사건을 처리하고 지난해 용산 초등생 성추행 살인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베테랑 형사’다. 하지만 유영철을 호송하는 도중 항의하던 유가족을 부하 직원이 발길질한 일에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됐다. 이어 용산 초등생 성추행 살인사건 때도 피해자의 장례식 전날 서울 강남 고급술집에서 술자리를 가진 것이 드러나 전보되는 등 ‘비운의 형사’,‘징계 전문’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갖고 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지참금이 뭐기에…

    생후 2일된 인도 여자아기가 지참금 때문에 생매장됐다 극적으로 구조됐다.BBC방송은 6일 “자기 외할아버지에 의해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산 채로 묻혔던 여자아기가 농부에 의해 발견돼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보도했다. 이 비정한 사건은 인도 하이데라바드 남쪽 150㎞ 떨어진 마을에서 일어났다. 이 아기를 살린 농부는 땅에 고사리 같은 손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땅을 파헤쳤다고 말했다. 현지 경찰은 아기의 외할아버지인 압둘 라만을 범인으로 체포했다. 라만은 아이를 산 채로 묻어 죽이려 했다고 자백했다.그는 “딸 넷을 아직 결혼시키지 못했다.”면서 “하나뿐인 손녀라도 다섯번째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아이의 엄마인 라만의 딸이 아기를 버릴 것에 동의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몸무게가 불과 1.7㎏인 이 아기는 아직 이름도 없으며 인근 병원에서 지금 치료를 받고 있다. 인도의 시골지역에서는 남아선호사상과 지참금 때문에 여자 아기와 어린이를 죽이는 일이 아직도 벌어진다. 인도정부는 지난 20년 동안에 1000만명가량의 여자아이들이 태내에서 혹은 태어나자마자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사법살인 법관 처벌법 만들어야”

    ‘사법 살인’ 등 고의로 법률을 왜곡해 판결을 내린 법관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법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동아대 법학과 허일태(56) 교수는 3일 발간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계간 논문집 ‘형사정책 연구’ 여름호에서 쓴 ‘법왜곡 행위와 사법 살인의 방지를 위한 입법정책’이라는 논문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허 교수는 “법관이 사실관계의 왜곡이나 조작, 부당한 법규 적용 등으로 인해 ‘법왜곡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형법으로 법관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한국형사법학회장을 지냈으며 사형제 폐지 주장과 함께 이를 대체할 ‘절대적 종신형’ 제도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주장했다. 허 교수는 논문에서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부당한 법적용 판결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논문은 당시 유신헌법에 의거해 선포된 긴급조치로 피고인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해 18시간 만에 이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는데 이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을 규정한 유신헌법 자체가 권력분립주의와 법치국가주의 등 헌법의 근본 규범에 반(反)하기 때문에 긴급조치 역시 무효라고 분석했다. 또 피고인들이 1965년 이미 ‘인혁당사건’에 의한 반공법위반으로 처벌받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국가보안법에 적용시킨 건 일사부재리 원칙에 반한 것이 된다고 밝혔다. 특히 피고인의 가족 중 1명과 수사기관원 등 일부에게만 재판을 방청하도록 해 공개 재판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변호인의 변호와 피고인의 최후 진술권마저 빼앗은 채 사법살인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도 법관이 강압에 의한 피고인의 자백이나 허위·날조된 증거 등을 의심할 이유가 있을 땐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면서 “이런 사건이 독일에서 일어났다면 담당 재판관들은 사법살인미수로 처벌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과 러시아,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나라와 타이완, 중국, 북한 등은 법왜곡행위에 대해 법관이 최고 10년 이하의 구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허 교수는 “‘수사절차나 소송절차에서 어느 당사자에게 유·불리하게 고의로 법률을 왜곡한 법관에게는 소정의 형벌을 가한다.’는 법 규정이 하루빨리 형법에 삽입돼 법왜곡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일생의 파멸이 초래되는 일이 다시는 없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1980년 8월21일, 석달윤(76)씨는 신군부가 장악한 당시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남산 대공분실 168호에서 47일간 고문을 당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고종 10촌 형님 박양민씨 탓이었다. 석씨가 간첩으로 남파된 박씨에게 전남 진도 해안 경비상황을 보고했다며 중정은 자백을 강요했다. 남파공작원 오모씨의 “박씨 간첩활동을 북에서 들은 바 있다.”는 막연한 진술이 근거였다. 수사관들의 고문은 가혹했다. 발로 배를 차고, 머리를 욕조에 담그고, 송곳으로 하반신 곳곳을 찌르고…. 잠은 안 재우면서 잠깨라고 볼펜 심지를 성기에 집어넣고…. 당시 중정 조사실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석씨는 결국 “내가 형님의 간첩활동을 도운 게 맞다.”고 자백했고,1981년 1월 안기부는 “고정간첩 15명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47차 전원위원회에서 1980년 발생한 ‘석달윤 등 간첩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진실위 “반인권적 사건… 재심조치를” 진실화해위는 “장기간 불법구금 및 강압적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하고, 사형 등 중형으로 처벌한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사건”이라면서 “국가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 및 재심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27년 만의 진실규명 결정이다. 석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떳떳하므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짓으로라도 자백하지 않았으면 난 아마 지금 땅속에 있을 것”이라면서 “일주일만 그런 고문을 받으면 김일성이라도 만났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18년 복역… 지금도 보안관찰 대상 석씨는 무기수로 징역 18년을 살았다. 함께 누명이 벗겨진 박씨의 외조카 김정인씨는 이미 1985년 10월31일 사형당했다. ‘간첩’의 처자식은 생계가 끊겨 두 달 동안 고구마로 연명했고, 고향 진도에서 살지 못해 내쫓기듯 이사했다. 1998년 8월15일 가석방된 석씨는 여전히 공안당국의 보안관찰 대상이고, 고문으로 굽은 허리는 지금도 하루 턱걸이 70개를 해야 펴진다고 한다. 진실화해위 결정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 것에 불과하다. 석씨의 ‘법적’ 간첩혐의는 바뀐 게 없다. 석씨는 “당연히 재심 청구한다. 백번 천번이라도 청구해서 무죄를 인정받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에서 배운 서예솜씨로 석씨는 국전에 수차례 입선했다. 그는 안산에서 통일운동가와 서예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水公본부장이 ‘운하 보고서’ 유출

    언론에 유포된 37쪽짜리 ‘경부운하 재검토 결과 보고서’는 한국수자원공사의 고위 간부가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유출 경위와 목적 등 석연찮은 점이 많아 의문을 낳고 있다.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24일 수자원공사 김상우(55) 기술본부장을 소환 조사해 문건 유출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지난 22일 김 본부장의 사무실과 주거지를 추가 압수수색해 언론사에 유포된 것과 똑같은 문건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경부운하 관련 정부의 태스크포스(TF)의 핵심인 수자원공사 조사기획팀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김 본부장은 지난 5월28일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함께 다니는 결혼정보업체 ‘퍼플스’ 김현중(40) 대표에게 문건을 직접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김 본부장은 대학원생들과의 술자리에서 대운하 얘기를 나누던 중 김 대표가 “평소 운하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료를 입수하고 싶다.”고 부탁해 건네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대표는 6월 초 37쪽 문건을 첫 보도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문건을 전달했다. 김 대표는 경찰에서 “기자와는 평소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진술했다.‘퍼플스’는 2001년 설립,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결혼정보업체로 알려졌다. 경찰은 문건을 유출한 김 본부장에게는 수자원공사법의 직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문건을 기자에게 건넨 김 대표는 직무상비밀누설 방조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으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적용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25일 김 본부장 등을 다시 불러 정치적 의도에서 문건을 유출했는지, 대가가 있었는지 집중 추궁하기로 했다. 해당 기자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연구와 관련한 선거법 위반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이번 주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고위 간부와 연구용역을 수행한 세종대 이모(37) 교수 등 관련자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24일 밝혔다. 이 전 시장이 시정연에 직접 연구를 지시했는지와 연구용역 의뢰 시점이 선거법 위반 여부를 가늠할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측의 박형준 대변인은 논평에서 “경찰 수사가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는 각본 수사로 전락하고 있다. 믿을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지난해 3월 시정연 원장으로 경부운하 문제를 검토했던 강만수 이명박 캠프 경선대책위 정책자문위원(전 재경부 차관)은 이날 서울신문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전 시장의 경부운하 문제 검토 지시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원 김병철 서울 유영규 임일영기자 kbchul@seoul.co.kr
  • [사회플러스] 김흥주 회장에 징역 7년 구형

    서울 서부지검은 22일 정·관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구속 기소된 김흥주(58) 삼주산업(옛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서부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본인이 자백하고 있고 혐의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구형 사유를 밝혔다. 김씨는 2001년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편의를 봐달라며 김중회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당시 비은행검사1국장)에게 2억 3500만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김씨는 2001년 3월부터 2002년 4월까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사무실 운영비 8000여만원을 내고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공직자의 인사를 청탁한 혐의도 받고 있다.
  • 꽃만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5·18 기념재단 엮음

    “…이대로 가다가는 어쩌면 광주가 피바다가 될 것이 뻔했기에 그대로 두고볼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손에 각목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고 금남로로 시민들은 모여들었다. 그것이 이상복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로는 상복씨를 아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1권 266쪽) 남은 자와 누리는 자들의 업(業)이요, 트라우마인 5·18은 어김없이 올해도 우리 곁에 돌아왔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했다.“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아직도 많은 상처는 가려져 있고, 밝혀지지 않은 상흔도 적지 않다. 행방불명된 사람과 항쟁 이후 사망한 사람의 가족들은 그 아픔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5·18광주민중항쟁 행방불명자와 상이 후 사망자들의 기록인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전2권,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5·18기념재단 엮음, 한얼미디어 펴냄)은 지금이 아니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기억’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항쟁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151명의 죽음에 대한 증언록으로 지난해 발간된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책들은 남겨진 가족들의 구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항쟁 이후 사망한 44명과 행방불명자 56명에 대한 유족들의 기억을 담고 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정수만 회장은 “증언집에 수록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 가족이 품고 살아온 회한의 세월을 통해 우리는 왜 아직도 ‘5·18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고, 그 상처를 사회가 함께 보듬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망각하느냐, 기억하느냐. 선택은 하나다.“이제는 잊고 화해하자.”는 망각의 해법은 “그만하면 됐다.”는 가해자 입장의 선택이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를 외면한 과거사 청산은 사죄와 용서를 전제로 한 화해가 아니라 야합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런 일은 더이상 안 된다.”는 자책의 심정을 담아 과거를 청산하려 한다.5·18기념재단 이홍길 이사장은 “이 책이 이분들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을 것이나,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어서 고통의 무게를 줄여 나갈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한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여든여섯살의 노모는 지금도 텔레비전에 국립 5·18묘지가 나오면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친다. 전에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어 그의 묘비라도 손으로 만지며 하염없이 울어줄 수 있었지만 이제 바깥 출입이 어려울 만큼 건강이 나빠져 그마저 할 수 없는 처지다.…가난한 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제화공으로 일하고 있던 장재근씨는 5·18민중항쟁에 참여했다가 1980년 6월3일 광주월산파출소에 연행되어 상무대 합동수사본부로 넘겨졌다. 그는 상무대에서 장갑차를 운전한 시민군으로 지목되어 허위자백을 강요받기 시작했다.”(2권 266쪽) 가슴속 깊이 묻어둔 기억을 재생시키는 것은 유족들에게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27년이라는 세월은 기억의 재생에도 긴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그 기억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지금이 아니면 영영 되돌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 책 곳곳에 넘쳐난다. 각권 1만 5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김승연회장 구속 수감] 법원, 구속영장 발부 배경

    [김승연회장 구속 수감] 법원, 구속영장 발부 배경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결국 ‘인신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김 회장은 청계산으로 가지 않았고, 폭행도 하지 않았다는 당초의 입장을 법정에서 뒤집었다. 자신의 혐의를 일부 인정하고 재판부에 읍소했다. 이처럼 계속되는 말바꾸기가 증거인멸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오히려 자충수로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특히 새로운 목격자 진술이 나오는 데다 조직폭력배 개입 의혹이 증폭되면서 법원은 김 회장을 구속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법원이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재천명하고 있지만, 국민적인 관심인 ‘사안의 중대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고려됐다. 김 회장측은 혐의를 인정하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데 부담을 가질 것이라는 대명제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 김 회장이 다른 경제인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어리석은 아비”라며 자책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다면 구속 사유 가운데 하나인 증거인멸 우려가 줄어든다. 게다가 죄를 뉘우친 피의자는 재판을 받을 때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김 회장의 자백은 태생적으로 ‘일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보복폭행을 사주했다거나 조폭을 동원했다는 부분까지 인정하는 것은 재판 과정에서 회복할 수 없는 부담으로 작용할 게 불을 보듯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부분에 승부를 걸었다. 경찰은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피해자 진술을 통해 신빙성 있는 증거가 확보됐다고 판단한 내용만 영장 혐의 사실에 적시했다. 조폭 동원설 등 정황이 포착된 단계의 혐의는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에 넣었다. 법원은 결국 일부 혐의를 시인한 부분보다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광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6개 혐의가 모두 소명됐다고 보이며 수사기관에서 더 조사하려고 하는 부분과 관련, 피의자들이 앞으로 증거를 더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수사에 힘을 실어줬다. 임일영 홍희경기자 argus@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9) 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9) 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18세기 일본에서 쇼군(將軍)이 정권을 세습하면서 가장 먼저 조선통신사를 맞을 준비를 했다. 박지원은 역관 이언진의 전기 ‘우상전’ 첫머리에서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가 준비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신사 일행을 접대하기 위해)저축을 늘리고 건물을 수리했으며, 선박을 손질하고 속국의 여러 섬들을 깎아서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 그밖에도 기재(奇才)·검객(劍客)·궤기(詭技·술수꾼)·음교(淫巧·기교꾼)·서화(書畵)·문학 같은 여러 분야의 인물들을 에도(江戶)로 모아들여 훈련시키고 계획을 갖추었다. 그런지 몇년 뒤에야 우리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마치 상국의 조서(詔書)를 기다리는 것처럼 공손했다.” 그러자 조선 조정에서도 문신으로 삼사(三使)를 선발한 뒤에, 말 잘하고 많이 아는 자들을 수행원으로 발탁했다. 박지원은 이렇게 기록했다.“천문·지리·산수·점술·의술·관상·무력으로부터 퉁소 잘 부는 사람, 술 잘 마시는 사람, 장기·바둑을 잘 두는 사람, 말을 잘 타거나 활을 잘 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한가지 기술로 나라 안에서 이름난 사람들은 모두 함께 따라가게 되었다.” ●여러 명이 범인 목격…외교문제로 비화 쇼군의 즉위를 축하한다는 명분 아래, 조선과 일본 두나라가 국력을 기울여서 온갖 전문기예자를 총동원해 맞섰다. 일종의 국제문화박람회라고도 할 수 있다. 무력으로 이름난 사람, 말을 잘 타거나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모두 군관이다. 이들은 사행단을 호위하며 무예를 과시하거나, 일본인들에게 마상재(馬上才)를 공연했다.1763년 사행 때에 486명 일행 가운데 4명이 사망했다. 선장 유진원은 배 밑창 곳간에 떨어져 죽고, 소동(小童) 김한중은 풍토병으로 죽었으며, 격군 이광하는 미친 증세가 일어나 제 목을 찔러 죽었다. 그러나 경상도 무관(장교)이었던 도훈도 최천종은 일본인 역관에게 찔려 죽었기에 외교문제로 비화했다. 이는 외국인을 보기 힘들었던 일본에서 200년 동안 연극이나 소설의 소재로 전해졌다. 일본에서 고구마를 처음 가져온 것으로 널리 알려진 통신사 조엄(1719∼1777) 일행이 에도에서 외교적인 의전절차를 마치고 돌아오던 1764년 4월7일 오사카(大阪) 니시혼간지(西本願寺)에서 도훈도 최천종이 피살됐다. 이 절에는 500명을 재울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었다. 조엄이 새벽에 보고를 듣고 의관과 군관을 급히 보냈더니, 곧이어 한사람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최천종이 피가 흥건하게 흘러 숨이 끊어지게 되었는데, 손으로 목을 만지면서 이렇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닭이 운 뒤에 하루 일과를 보고하고 돌아와 새벽잠을 자는데, 가슴이 답답해 깨어보니 어떤 사람이 가슴에 걸터앉아 칼로 목을 찔렀소. 급히 소리 지르면서 칼날을 뽑고 일어나 잡으려 하자, 범인은 재빨리 달아났소. 이웃방 불빛에 보니 왜인이었소. 나는 어떤 왜인과도 다투거나 원한 맺을 꼬투리가 없으니, 나를 찔러 죽이려 한 까닭을 모르겠소. 공연히 죽게 되니 너무 원통하오.” 첩약을 붙이고 약을 달여 마시게 했지만, 최천종은 해가 뜨자 운명했다. 자루가 짧은 창과 ‘어영(魚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칼이 현장에 남아 있었는데 왜인의 것이었다. 범인이 달아나다 격군 강우문의 발을 밟아 그가 “도적이 나간다.”고 크게 소리쳤기 때문에 여러명이 목격했다. 조엄은 “범인을 색출해 목숨으로 변상하라.”고 일본측에 통고했다. 밤늦게야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왕복행차를 호위하는 쓰시마 수행원과 살해사건이 일어난 오사카의 법관, 그리고 조선의 역관들이 함께 입회해 검시(檢屍)했다. 최천종은 조엄이 대구 감영에 있을 때부터 신임하던 장교였으므로 정성껏 장례준비를 했다. 14일에 주변 인물들을 신문하던 과정에서 쓰시마 역관 스즈키 덴조(鈴木傳藏)가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가 자백하는 편지를 보내고 달아났다. 일본측에서 목격자 진술에 의해 인상서(人相書)를 만들어 배포했다. 범인은 스즈키 덴조(鈴木傳藏), 나이 26세, 쓰시마 역관, 얼굴색이 희고 키는 5척3촌이라고 자세하게 밝혔다. 수백명의 수사력이 동원되어 그의 뒤를 쫓았다. ●범인 “거울 도둑으로 몰며 때려 살해했다.” 17일부터 군사 2000명과 배 600척을 동원해 범인 색출에 나서,18일 다른 지방에서 체포했으며,19일부터 니시혼간지 경내에서 신문했다. 최천종이 6일 거울을 잃어버렸는데, 스즈키 덴조가 훔쳐갔다고 의심하며 말채찍으로 때렸기 때문에 분을 이기지 못해 밤늦게 찾아와 살해했다는 동기까지 밝혀졌다. 그러나 과연 거울 하나 때문에 국제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범인을 처형하니 조선 역관과 군관들이 참관해 달라는 통고가 29일에 왔으며,5월2일 삼헌옥(三軒屋)에서 집행했다. 조엄은 김광호를 시켜 최천종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고, 원수를 갚았다고 아뢰게 했다. ‘명화잡기(明和雜記)’나 ‘사실문편(事實文編)’을 비롯한 일본측 기록들은 대부분 인삼 판매대금을 나눠달라는 독촉 때문에 살해했다고 설명했다. 몇달 걸리는 국제여행 경비를 조정에서 직접 지급하지 않고 인삼을 무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으므로, 수행원들까지도 일정한 양의 인삼을 가지고 가서 팔고 다른 물건으로 사왔다. 사대부들은 정량을 지켰지만, 역관을 비롯한 수행원들은 남몰래 더 가지고 갔다. 몇차례 단속에 발각되면 인삼도 빼앗기고 엄한 처벌까지 받았지만, 그래도 밀무역은 그치지 않았다. 쓰시마 역관들이 에도까지 따라가면서 호위하는 과정에서 인삼을 팔아주었으니, 인삼 판매대금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칼부림이 났을 가능성이 많다. 밀무역 죄를 감추기 위해 거울을 잃어버려 말다툼이 생겼다고 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한양에서 따라온 조선 역관들의 일본어 회화실력이 낮았으므로, 저간의 숨은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이야기는 계속 부풀었다. 중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있었던 당시 일본에서 외국인이 피살된 사건 자체가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최천종이 살해된 사건을 테마로 하는 일련의 작품을 ‘도진고로시(唐人殺し)’라고 한다. 도진(唐人)은 외국인을 가리키며 네덜란드인, 중국인뿐만 아니라 조선인도 포함된다. 박찬기 교수는 이들 수십종의 작품을 이국인(異國人) 살해, 통역관 살해, 혼혈아의 원수 갚기, 인삼 밀거래에 의한 보복 살해의 네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이국인 살해와 통역관 살해 유형은 가부키(歌舞伎)와 조루리(淨瑠璃)로 상연되었다. 박찬기 교수가 정리한 도표에 의하면 오사카와 교토의 여러 극장에서 1767년부터 1883년까지 42회, 에도에서 5회 상연됐다. ●막부 압력으로 연극 줄거리 바뀌기도 가장 먼저 1767년 2월17일 아라시히나스케 극장에서 상연된 ‘세와료리스즈키보초(世話料理 )’는 사건이 일어난 지 3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허구화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글자는 다르지만 제목에 ‘스즈키’라는 음이 들어간 것만 보아도 최천종 살해사건을 다루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작품은 열흘도 못 되어 같은 작가가 다른 제목으로 바꿔 같은 극장에서 또 상연했다. 가부키 연표에는 “첫날 둘째 날은 관객의 반응이 좋아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나, 사정이 있어 상연 중지”라고 기록되었는데, 외교문제로 비화할 것을 염려한 막부의 압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후에 줄거리가 바뀐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가장 많이 상연된 작품은 나카야마 라이스케(中山來助)와 지카마츠 도쿠조(近松德三)가 지은 ‘겐마와시사토노다이츠(拳揮廓大通)’이다.1802년에 초연을 시작해 1883년 5월까지 33회나 상연됐다. 이 작품에는 이국인을 살해하는 장면 묘사가 없고, 역관 고사이덴조(香齋傳藏)를 살해하는 유형으로 바뀌었다. 덴조(傳藏)라는 쓰시마 역관의 이름 정도만 남고, 이국인의 복장이나 언어 같은 이국적 정취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佛검찰 “천조각에 질식”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 검찰은 2일(현지시간) “한국으로부터 넘겨받은 서울 서래마을 영아 시신 2구를 부검한 결과 천 조각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서부 투르 지청의 필립 바랭 검사는 이날 기자들에게 “아기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천 조각으로 질식사했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이 뭉개진 뒤 부드러운 천에 의해 질식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같은 부검 결과는 ‘아기들을 목졸라 죽였다.’는 베로니크 쿠르조의 자백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vielee@seoul.co.kr
  • 제주 초등생 실종 40일만에 숨진채 발견

    제주 초등생 실종 40일만에 숨진채 발견

    지난달 16일 집 앞에서 실종된 양지승(9·서귀북초 3)양이 실종 40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곳이 양양의 집에서 불과 50여m 떨어진 곳이어서 경찰의 실종자 수색작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24일 오후 5시20분쯤 서귀포시 서홍동 S빌라 지승양의 집에서 50여m 떨어진 감귤 과수원 폐가전제품 더미 밑에 검은색 비닐에 담겨 있는 시신을 경찰견이 찾아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승양의 집 근처 과수원 관리사에서 살며 고물상을 하는 송모(49)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밝혔다. 지승양 실종 이후 경찰과 공무원, 주민,119소방대원, 군인 등 3만여명을 동원해 수색을 했으나 지승양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자 최근 지승양 인근 주택에 대해 정밀 수색작업을 벌였다. 경찰은 안경과 신발 등이 실종된 지승양의 것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보다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 연구소에 DNA 분석을 의뢰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신이 발견된 곳은 경찰이 지승양 실종 이후 세 차례나 집중 수색작업을 했던 곳이어서 경찰의 수색작업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접수 후 과수원을 대상으로 수차례 집중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지승양의 시신이 다른 곳에 있다가 최근에 이곳으로 옮겨졌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특히 지승양은 인천 박모군 유괴 살해 사건 이후 실종아동이 발생하면 고속도로와 국도 등의 전광판과 휴대전화 등을 활용해 신속하게 상황을 전파, 실종아동의 조기 발견을 유도하는 ‘앰버 경고(AMBER Alert)’ 1호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왔다. 경찰은 지승양 실종신고 하루 뒤인 지난달 17일 지승양의 사진 등을 언론에 공개하며 공개수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경찰이 사건 초기에 공개수사를 하는 바람에 지승양이 희생됐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승양은 지난달 16일 오후 5시쯤 서귀포시에 있는 피아노학원에서 교습이 끝난 후 학원 차량을 타고 돌아와 집 앞에 내린 뒤 실종됐다. 이후 오후 8시쯤 아버지 양모(43)씨가 경찰에 실종 신고,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 작업과 함께 탐문 수사를 벌여 왔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중국서 외가가던 자매 괴한에 ‘두눈 뽑혀’

    중국 안후이(安徽) 푸난셴(阜南縣)에 사는 자매가 외가로 가는 도중 두 눈을 뽑히는 사건을 당해 중국인들이 경악하고 있다. 양리(楊麗. 17)와 양메이(楊玫. 3) 자매는 지난 5일 외가에 가는 도중 스 모씨에게 폭행을 당해 동생 양메이는 죽고 언니는 눈이 뽑히는 중상을 입었다. 두 눈을 뽑힌 양리는 경찰 조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한 남자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며 “그는 울부짖는 동생을 죽이고 나를 유채밭으로 끌고 가 칼을 이용해 나의 두 눈을 뽑았다.”고 밝혔다. 23일 안후이 린취안셴(臨泉縣)의 경찰 측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용의자 스 모씨는 올해 37살로 홀로 쓰레기를 주워가며 살고 있다”며 살해 동기에 대해 “우발적 범행으로 동생 살해는 시끄러운 울음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후일 자신을 알아볼까 하는 우려에 양리의 두 눈을 뽑았다.”고 용의자의 자백을 전했다. 나우뉴스 신청미 기자 qingmei@seoul.co.kr
  • 日 피격 나가사키 시장 출혈과다로 사망

    日 피격 나가사키 시장 출혈과다로 사망

    |도쿄 박홍기특파원|지난 17일 밤 발생한 일본 나가사카시 이토 잇초(61) 시장의 피격 사망사건으로 일본 정치권이 뒤숭숭하다. 오는 22일 치러질 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일어난 만큼 수사 결과에 따른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이토 시장은 18일 새벽 2시28분쯤 권총 두 발을 맞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지 6시간30분 만에 출혈과다로 숨졌다. 범행 현장에서 이토 시장의 선거운동원들에게 붙잡힌 범인 시루 데쓰야(59)는 경찰 조사에서 “시장을 죽이고 나도 죽으려 했다. 시(市)측과 문제가 있었다.”고 자백했다. 현재 정확한 범행 동기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시루가 공공 사업 입찰을 둘러싼 이토 시장과의 마찰만 진술할 뿐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는 원한 관계와 함께 이토 시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정치 테러’ 쪽에 맞춰지고 있다. 특히 시루가 최대 폭력조직인 야마구치계 ‘스이신카이(水心會)의 행동대장이라는 점에 신경을 쓰고 있다. 경찰은 일단 시루가 시측에서 발주하는 공공부문의 토목·건축사업에서 제외된 데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에 비중을 둔 듯하다. 시루가 범행 직전 TV아사히에 이토 시장을 비난하는 편지와 녹음테이프를 우편으로 보낸 이유에서다. 그러나 시루의 진술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2년 전 자동차 파손 등의 사안만을 가지고 돌연 도로에서 권총 테러까지 저지를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때문에 이토 시장의 정치적인 성향에 비춰 시루의 범행 배후에 대한 의혹이 더해지고 있다. 이토 시장은 히로시마와 함께 2차대전 당시 원폭 투하지역인 시장이었던 만큼 국제회의 등에서 ‘반핵·평화’를 강하게 주장해 왔다. 특히 북핵 실험 이후 일본 내각에서 일었던 ‘핵무기 보유론’을 강력하게 비난하는가 하면 아베 신조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에도 비판적인 견해를 견지했다. hkpark@seoul.co.kr
  • ‘39전 40기’로 되찾은 생수공장

    사기꾼에게 수십억대의 생수공장을 빼앗긴 50대 사업가가 8년간 40차례의 고소 등 집요한 소송 끝에 되찾았다.12일 청주지검에 따르면 김모(50)씨는 1994년 경남 산청에 지인들과 함께 A음료라는 생수공장을 착공했다. 공사는 마무리를 눈앞에 두고 자금압박이 심해지면서 99년 5월 자금이 바닥 나 중단됐다.인생을 건 회사를 포기하기가 어려웠던 김씨는 지인을 통해 모종합건설사 박모 대표를 소개받아 ‘공사대금 미지급시 생수회사를 양도한다.’는 조건으로 돈을 받아 공사비를 충당했다.하지만 박씨는 이후 공사대금을 부풀려 김씨에게 청구한 뒤 대금이 미지급됐다는 이유로 생수공장을 빼앗아 자신이 대표로 있는 건설회사의 실제 사주인 유모씨에게 넘겼다. 김씨는 사기죄로 유씨 등을 처벌해 달라면서 고소를 했지만 사건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면서 무혐의 처분이 잇따라 내려졌다. 김씨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수사기관이란 수사기관은 죄다 찾아다니며 고소장을 냈고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 또다시 고소장을 냈다.8년 동안 수사기관에 낸 고소장만 39번. 힘든 싸움을 해왔지만 김씨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씨는 괴로움을 못이겨 여러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청주지검을 찾았다. 검찰은 상습 고소인인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한이 맺히지 않고서야 40차례나 고소를 했겠나.´란 생각에 재수사에 착수했다.검찰은 ‘생수회사 인수에 개입한 적이 없다.’는 유씨의 주장에 주목, 건설사의 주주명부 등을 통해 유씨가 건설사 실소유주임을 밝혀내고 유씨로부터 인수에 개입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유씨는 김씨에게 3일 후에 생수공장을 되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김씨는 검찰에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이란, 억류 영국군 15명 석방키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영국 해군 15명 억류 사건을 둘러싸고 13일간 고조돼온 이란·영국간 외교 갈등이 4일 전격 해소됐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날 테헤란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달 샤트 알 아랍 수로에서 이란 영해를 침범한 영국 해군장병 15명을 처벌하지 않고 석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들을 사법처리할 권리가 있지만 대통령령으로 사면, 용서한다.”면서 영국 국민들에게 이들의 자유를 ‘선물’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페르시아인들의 새해를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끝낸 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옆방으로 건너가 정장 차림으로 대기하고 있던 영국 해병 15명과 일일이 악수하는 ‘깜짝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기자회견 초반 이슬람 성전인 코란을 한동안 인용한 뒤 서방의 중동 침략 현대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영국 해병을 체포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에게 무공훈장 메달을 수여했다. 회견에서 아마디네자드는 “블레어 총리에게 남의 나라를 점령하지 말고 정의와 진실을 생각할 것, 그리고 자신보다는 영국 국민들을 생각하라.”고 일장 훈계를 했다. 이어 “불행하게도 블레어 총리는 자신의 국민들에게 진실(영국 해병이 이란영해를 침범했다는 사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로이터 통신은 병사들이 5일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의 석방 발표는 앞서 이란 최고 안보관리인 알리 라리자니(이란 국가안보최고회의 의장)가 영국의 나이젤 세인발드 총리 외교보좌관과 통화한 후 이뤄졌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런던 주재 이란 관리의 말을 인용,“토니 블레어 총리의 최측근인 나이젤 세인발드가 알리 라리자니와 3일 밤 전화 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가 이란이 그동안 주장해온 “영국 해군들이 이란 영해를 침범했음을 시인하라.”는 요구를 들어줬을 공산이 크다. 이란은 이들을 억류한 뒤 4차례에 걸쳐 국영 방송을 통해 15명 중 유일한 여군 1명을 포함해 이란 영해 침범을 자백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내보냈었다. 지난달 23일 영국 해병들이 억류된 이후 영국 정부는 이란과의 석방 협상에서 시종 이란에 끌려다니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비난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영국 정부는 시리아에도 영국 해군 병사들의 석방문제와 관련해 중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김수정기자 외신종합 crystal@seoul.co.kr
  • ‘否認 사건’ 전담재판부 첫 운영

    서울북부지법이 전국 법원 가운데 처음으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부인(否認)사건’ 전담 재판부를 설치, 운영해 법조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북부지법은 공판중심주의 강화 차원에서 형사1단독(윤종수 판사)을 부인 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로 운영하기로 하고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고 26일 밝혔다. 매주 화ㆍ목요일 개정되는 형사1단독 법정에서는 검찰이 조서 등 수사 서류를 한꺼번에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는 대신 일일이 구두로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고 피고인측이 이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즉석에서 반박을 하게 된다. 매주 20여건 정도 사건이 배당돼 온 형사1단독에는 새 제도 도입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심리가 더 어려운 부인 사건의 특성을 감안, 이달부터는 주당 사건 배당이 4∼5건으로 줄었지만 재판부가 느끼는 업무 스트레스와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윤종수 판사는 “부인 사건의 업무 부담은 자백사건의 20배는 족히 넘는 것 같다.”면서 “판결 후 검찰이 됐든 피고인이 됐든 100% 항소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도 신경이 더욱 쓰인다.”고 말했다. 서울북부지법은 부인사건 전담 재판부를 상시 운영하기로 했다. 사건처리 추이에 따라 배당 사건 수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계획이다.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유령 큰손’ 주가조작뒤 제3자에 누명 씌워

    주가조작을 한 뒤 범행을 제3자에게 뒤집어 씌운 일당이 적발됐다. 금융 당국은 이들이 내세운 이른바 ‘바지 시세조종꾼’ 노모(47)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도 수사 초기 노씨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부장 강찬우)는 2004∼2005년 J사 등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 주가를 조작해 156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박모(46)씨와 이모(33)씨를 23일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이들과 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던 노씨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고, 금융 당국과 검찰에서 허위 자백한 노씨를 범인도피 혐의로 다시 불구속기소했다. 노씨는 2005년 9∼10월 박씨로부터 1억원을 받고, 자신이 주가조작을 주도한 것처럼 행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금감원과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경기도 안양으로 도피해 있으면, 나중에 중국으로 보내주겠다.”며 노씨를 유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씨는 지난해 12월 초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됐지만, 박씨가 짠 각본대로 자신이 범행을 주도했다고 털어놨다. 검찰도 노씨가 받은 1억원이 이익분배금이라고 판단, 그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추가조사를 벌여 금감원 고발에서 제외된 이씨가 주가조작에 개입했음을 눈치챈 검찰은 노씨를 추궁해 진범들을 찾아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뭘 했길래…” 사내가 파출소서 맞아죽었을까?

    “헉! 뭐라구요,공안(경찰)이 시민을 인명을 지키기는 커녕 오히려 시민을 고문해 때려죽이다니!” 중국 대륙에 공안이 성폭행범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해 때려죽이는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 북부 간쑤(甘肅)성 핑량(平凉)시 좡랑(庄浪)현 파출소장과 민경(民警)은 성폭행 혐의로 덜미를 잡힌 동네 주민 리단단(李旦旦·54·가명)씨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해 죽인 혐의로 붙잡혔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 천룡(千龍)망이 22일 보도했다. 고문살해 사건은 지난 2004년 10월 발생했다.그해 10월10일 오전 농민 리씨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여중생 성폭행하다가 현행범으로 붙잡히면서 촉발된 것이다. 가을걷이로 돈이 조금 생긴 그는 즐거운 마음에 대낮부터 한잔 거나하게 걸쳤다.가을걷이도 대강 끝난 만큼 특별히 할일이 없어 무슨 재미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노량으로 동네를 배회했다.때마침 두고 온 물건을 가져 가기 위해 집에 들린 어린 여중생 왕징(王靜·14·가명)양을 본 순간,갑자기 욕정이 불타올랐다.그녀의 뒤를 따라 집을 들어간 리씨는 성폭행을 자행하다가 왕양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네 주민들에게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리씨가 동네 주민들에게 붙잡혀 좡랑현 파출소로 연행된 것은 10월10일 오후 1시쯤.리씨는 성폭행하다가 들켜 동네 주민들에게 3시간여동안 두들겨 맞아 거의 파김치가 된 상황이었다. 이에 좡랑현 파출소장 자완윈(賈滿運)과 민경 주쯔핑(朱自平)은 그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자백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4∼5시간 무차별 구타했다.이들은 그날 저녁 9시쯤 리씨를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그는 다음날 11시쯤 집에서 숨졌다. 핑량시 중급인민법원은 이들 두 사람에게 죄를 적용,주쯔핑은 징역 10년·자완윈은 징역 8년을 각각 선고했다.이들은 불복해 간쑤성 고급인민법원에 항소했으나,고급인민법원은 ‘이유없다’며 원심을 유지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살아있는 애 유수지 던졌다”

    지난 11일 발생한 인천 초등생 유괴사건 용의자 이모(29)씨는 “살려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박모(8)군을 산 채로 유수지에 던져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16일 인천 연수경찰서에 따르면 이씨로부터 “유괴한 당일 밤 박군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은 뒤 포대에 담아 인천 남동공단 유수지에 던져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씨는 당초 박군을 목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유수지에 유기할 생각이었으나 박군이 울면서 “아저씨 왜 그래요. 살려 주세요.”라고 애원하자 그냥 산 채로 유수지에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경찰에 체포된 후 처음에는 “시화지구의 공중전화에서 박군 부모에게 전화할 때 박군이 도망갔다.”라고 주장하다가 “테이프로 박군의 입을 막고 차 뒷좌석에 뒀는데 나중에 보니 숨져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16일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에서 박군의 사인이 ‘익사’로 나와 추궁하자 더 버티지 못하고 이같은 사실을 실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는 범행계획 단계부터 완전범죄를 노리고 어린이를 유괴한 뒤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괴 5시간 후인 오후 6시 30분쯤 시신을 유기할 때 사용할 목적으로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의 모 카센터에서 포대를 구입했다.30분 뒤에는 소래대교 부근에서 휴대전화로 “아빠 보고 싶어요.”라는 등의 박군 목소리를 녹음했다. 이어 박군을 살해할 장소를 찾아 경기도 부천, 시흥과 인천 남동구 일대를 돌아다니다 오후 11시 30분쯤 인적이 드문 남동공단 유수지에 빠뜨려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군이 살해된 시점은 이씨가 연수·남동구 일대 공중전화에서 7차례나 박군 집에 협박전화를 한 뒤여서 경찰이 발신지 추적 등을 통해 현장수사에 박차를 가했더라면 박군이 살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한편 이씨의 범행수법이 영화 ‘그놈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으나 이씨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군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버려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박군의 아버지는 “차가운 물에 아이를 던져 버리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박군 장례식은 16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인천적십자병원에서 치러졌다. 관이 옮겨지는 순간 박군 부모와 누나가 관에 매달려 한참 동안 울부짖자 친지들도 울음보를 터뜨려 빈소는 눈물바다로 변했다. 박군 시신은 집, 다니던 M초등학교, 교회를 차례차례 돈 뒤 인천가족공원 화장터에서 화장, 납골당에 안치됐다. 경찰은 오는 19일 납치 장소와 남동공단 유수지 등 이씨의 범행경로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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