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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마오당’을 아시나요”

    “‘우마오당’을 아시나요”

     중국 정부 기관의 직원들이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조작용 댓글을 직접 작성한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게리 킹 박사 연구팀은 최근 중국의 한 지방정부 인터넷 선전부에서 해킹으로 유출된 2000통의 메일에 포함된 인터넷 게시글 4만 3800개를 대상으로 중국의 인터넷 검열에 대해 조사·분석한 결과 이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이들 메시지의 53%는 정부 홈페이지에 게재됐으며, 나머지는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 등 소셜미디어(SNS)에 올려졌다. 해당 메일들에는 장시(江西)성 간저우(?州)시 장궁(章貢)구 인터넷 선전부가 지난 2013년 2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댓글 부대에 임무를 주고 결과 상황을 보고 받은 내용이 담겨 있다. 하버드 연구팀은 “이 지방정부 한 곳에서만 1년에 인터넷 게시판에 4억 8800만개의 댓글이나 게시물을 올려 비판 여론을 희석하고 있다”면서 “이들 댓글부대는 200여개 정부기관 공무원들로 별도의 보수는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하버드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 이들 댓글부대는 네티즌과 논쟁하거나 논쟁 소지가 있는 댓글을 올리지 않고 주의를 분산시키는 작업에만 집중했다. 국가와 공산당 지도자를 찬양하거나 공산당 혁명 역사를 선전하는 글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온라인 메시지는 선열의 날 등 주요 정책 행사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에 대한 정부의 선전,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내 폭동 등 주요 사건을 전후해 대량으로 게재됐다. 검열 당국은 단순히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보다 단체 행동을 요구하는 일반 네티즌들의 글을 삭제하는 데 더 관심을 보인다. 이런 물타기 작전은 중대한 사건, 정부의 정치 선전, 반정부 시위 등이 있을 때 집중적으로 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열 당국은 또 정부를 비판하는 게시물보다 집단 행동을 촉구하는 글에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삭제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조사·연구를 주도한 개리 킹 박사는 “정부 고용 인물들이 단 댓글들은 민심에 영향을 준다”며 “댓글부대는 댓글만 달 뿐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들과 함께 중국에서는 당국을 위해 인터넷 여론을 조성하는 ‘관변 평론가’들이 인터넷 공간을 쥐락펴락한다. 이들은 글을 올릴 때마다 돈 5마오(五毛·약 90원)를 받는다는 것으로 알려져 ‘우마오당’(五毛黨)으로 불린다. 우마오당은 2006년 안후이성(安徽省) 선전부가 600 위안의 월급을 주고 고용한 인터넷 평가원들이 댓글을 달고 건당 5마오씩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주요 업무는 인터넷 모니터링을 통한 여론 정화 작업이다. 공산당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거나 부정적 기사에 반박의 견해를 게재한다. 부정적인 기사를 실은 웹사이트에 대한 조치를 취하도록 행정부에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우마오당으로 활동 중인 한 대학생은 “우마오당 구성원들은 중국 정부 관련 기사가 뜨면 우선 온라인에 댓글을 달아 자신이 열심히 활동 중이라는 것을 알린 뒤, 이를 캡처해 대학의 선전부에 전송한다”고 귀띔했다.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우마오당의 규모는 1052만명에 이른다. 이 중 대학생은 절반에 가까운 402만명이었다. 대학생들이 많이 활동하는 까닭은 대학 졸업 후 좋은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공산당 입당을 위한 포석이라는 목적이 깔려 있다. 몇년이나 걸리는 공산당 입당 대신 우마오당 가입을 통해 또 하나의 화려한 ‘스펙’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마오당은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인터넷 사용자들에 대해 당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옹호하는 ‘좋은 누리꾼’이 되자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차오무(喬木) 베이징외국어대 교수는 “이번 연구가 중국 인터넷 검열 당국의 물타기 작전을 밝혀냈지만 자발적으로 온라인 논쟁에 가담해 여론을 형성하는 ‘우마오당(五毛黨)’은 더 위협적”이라며 ‘우마오당’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번 조사는 중국 온라인 생태계의 한 단면만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해양환경관리공단 ‘청렴윤리 주간’ 운영

    해양환경관리공단 ‘청렴윤리 주간’ 운영

    해양환경관리공단(이사장 장만)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선정한 오는 2일 ‘기업윤리의 날’을 맞아 임직원 청렴인식 증진 및 청렴실천력 강화를 위해 ‘청렴윤리 주간’을 운영한다. 청렴윤리 주간 동안은 ▲이사장 청렴메시지 공유 ▲ 임직원 청렴도 자가진단 ▲ 각 주요 업무별 청렴지킴이 활동 ▲ 청렴 가족사랑의 날 운영 등 다양한 청렴활동을 통해, 청렴윤리에 대한 임직원의 이해도를 높이고, 자발적인 청렴활동 참여를 유도한다. 해양환경관리공단 관계자는 1일 “이번 한 주 동안 전 임직원 모두가 다양한 청렴활동에 참여하여 자연스럽게 조직내 청렴문화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되며, “앞으로도 국민과 소통하는 청렴한 공단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글로벌 탄소시장 룰부터 정하자/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In&Out] 글로벌 탄소시장 룰부터 정하자/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지난 주말 독일 본에서는 역사적인 파리 기후변화 회의 이후 처음 개최된 유엔 기후변화 협상이 2주간 회의를 마치고 종료됐다. 신기후체제의 헌법과 같은 파리 기후변화 협정이 채택됐으니,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단연코 중요한 이슈의 하나가 국제 탄소시장 문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유엔에 제출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자발적기여방안(INDC)에서 2030년 온실가스배출전망치(BAU)의 37%를 감축하고, 이 중 11.3%는 국제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국제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현재의 우리나라 배출권 거래하의 거래 단위의 가격으로 환산해 보면 2조원 규모의 온실가스 감축의 문제다. 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2조원 규모의 해외시장 개척이 될 수도 있고, 고스란히 국민 세금 부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국제 탄소시장 활용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면서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국내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우면 해외에서 감축 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우리나라 감축 노력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 사업, 즉 상쇄사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 유력한 방법은 감축사업 추진 대상국과 감축사업 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국제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하겠다고 밝힌 70여 개도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둘째는 동북아 탄소시장 협력 레짐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 중국, 북한, 그리고 러시아를 연계하는 다양한 사업 추진 및 결과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동북아는 황사, 미세먼지 문제 등으로 나무 심기 혹은 산림 보전, 다양한 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등이 필요하다. 특히 북한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작업이 어느 나라보다 시급하다. 이와 함께 부족한 에너지 개발은 친환경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역설점 이점도 북한은 안고 있다. 마지막은 앞으로 구체화될 유엔 차원의 지속 가능한 메커니즘을 활용해 개도국 온실가스 저감 사업을 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법을 통한 우리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강력한 국제사회의 회계기준에 바탕을 둔 글로벌, 지역 그리고 양자 차원의 탄소시장 연계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음도 물론이다. 그런데 이 방법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들이 국제사회의 관련 규칙에 합의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게임의 룰 없는 게임을 할 수는 없다. 자유무역을 하면 사기업의 활동이 활성화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가들이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협정,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체결하고 이를 통해 사기업 등이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제 탄소시장에 관한 룰은 헌법에 해당하는 파리 기후변화 협정밖에 없다. 이 단계에서 성급하게 정부나 기업이 개도국에서 사업 추진을 구상하고, 거래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시장 연계를 먼저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 파리협정을 구체화하고, 그에 따른 회계규칙에 따라 양자 협력을 구축하고, 동북아 탄소시장 협력 레짐을 만들어 가는 국가 차원의 메가 협상에 집중하는 것이 국제탄소시장 활용을 통한 우리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 오늘 밤 스페인전… 슈틸리케호 전술 복안은

    오늘 밤 스페인전… 슈틸리케호 전술 복안은

    “수비라인 올려 중원서 압박” 무적함대에 정면 도전 선언 석현준 등 원톱 파괴력 중요 기성용·곽태휘 컨디션 관건 ‘후방 티키타카´란 달갑지 않은 말을 들어온 슈틸리케호가 ‘점유율 끝판왕’과 마주한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1일 밤 11시 30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레드불 아레나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위의 스페인과 정면 대결을 불사한다. 지난해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는 아시아의 만만한 상대들과 붙어 16승3무1패란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든 그가 지휘봉을 잡은 뒤 처음 만나는 최고의 적수다. 그는 지난 29일 오스트리아로 출국하면서 “스페인을 상대로도 점유율을 높이고 수비라인을 올려 압박하고 싶다”고, 어찌 보면 무모한 출사표를 던졌다. 이탈리아와 독일, 브라질 같은 강호들도 스페인을 상대로는 일단 꼬리를 내리고 역습을 노리는데 슈틸리케호는 정면 승부를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 보면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40년 친구’ 비센테 델보스케 스페인 감독과의 자존심 싸움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슈틸리케호가 지난해 17차례 무실점 경기, 20경기에서 4골만 내준 것도 볼을 소유하며 수비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막강 공격력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볼을 소유해야 하고 중원부터 효율적인 압박을 펼쳐야 한다. 최근 퇴색됐다는 평가를 듣지만 세르히오 부스케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상 바르셀로나), 코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다비드 실바(맨시티), 세스크 파브레가스(첼시) 등 ‘패싱 게임의 달인’들과 맞서 손흥민(토트넘), 윤일록(FC 서울), 남태희(알레퀴야) 등이 이름값에 주눅들지 않는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시즌을 마친 뒤 조기 귀국해 경기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자발적 휸련을 수행했던 손흥민도 “선수로서 지는 것이 싫다. 이기고 싶다”라고 각별한 각오를 밝혔다. 이어 “(스페인전의 중요성에 대해) 선수들이 더 잘 안다”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습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원톱의 파괴력이 독보적이어야 하는데 석현준(포르투)과 황의조(성남FC)가 기대에 부응할지 미지수다. 한편 주세종(서울), 이재성(전북), 이용(상주), 정성룡(가와사키), 정우영(충칭 리판) 등은 소속팀 경기를 마치고 뒤늦게 팀에 합류했다. 전날 몸만 가볍게 푼 뒤 먼저 숙소로 돌아간 기성용(스완지시티)과 몸이 좋지 않은 곽태휘(알힐랄) 등의 빠른 피로 회복이 관건이다. 경기 하루 전에야 20명 전원이 모인 슈틸리케호가 유럽 평가전의 서막을 통해 알찬 교훈을 얻어낼지 주목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리오넬 메시 부자에 대한 탈세 재판 스페인에서 시작

    리오넬 메시 부자에 대한 탈세 재판 스페인에서 시작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부자에 대한 탈세 재판이 31일 시작된다. 스페인 법원은 메시와 그의 금융 문제를 총괄하는 부친 호르헤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400만유로(약 53억원) 이상의 세금을 탈루하고 벨리즈와 우루과이의 조세 피난처를 우회해 초상권 수입을 누락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청구했는데 이날부터 6월 2일까지 사흘 동안 재판이 진행된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다섯 차례나 올해의 세계 선수로 뽑혔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축구선수 중 한 명인 메시는 6월 2일 법정에 출두할 예정이다. 스페인 세무당국은 이들 부자에게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고 징역형을 선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둘은 물론 어떤 비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메시의 변호인들은 메시가 일생의 어떤 한 순간이라도 초상권 계약을 읽거나 연구하고 분석하는 데 쓰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고등법원은 지난해 6월 부친이 부분적으로 수행했다는 이유로 메시가 재정 상황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이 면책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메시 부자는 2013년 8월에도 이자 소득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500만유로(약 66억원)를 납부한 일이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기관사 타고도 추돌사고 낸 무인 지하철

    기관사 타고도 추돌사고 낸 무인 지하철

    서울메트로 “직접 안전 업무” 구의역 대합실에 추모공간 조성 서울 지하철역 정비직원 사망사고에 이어 인천시 도시철도건설본부가 열차 추돌사고를 숨긴 것이 드러나는 등 지방자치단체 지하철공사의 안전 불감증과 무사안일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전 9시 30분쯤 시험운행 중이던 인천도시철도 2호선 열차가 남동구 운연역과 인천대공원역 중간 지점에서 서 있던 열차(4량 1편성)를 들이받았다. 후속 열차는 시속 40㎞ 속도로 달리다가 급제동했지만 70m 거리를 더 가 앞차와 추돌했다. 각 열차에는 기관사가 1명씩 타고 있었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인천시 도시철도건설본부는 후속 열차 기관사가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하고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탓에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열차 추돌 사고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인천시 도시철도건설본부의 사고 대응 방식이다. 인천시 도시철도건설본부는 그동안 사고 자체를 쉬쉬했다가 인터넷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30일 서둘러 발표했다. 인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안전한 인천지하철 2호선 개통을 위한 시민대책위’는 선행 열차와 신호시스템 간 통신두절(타임아웃) 현상 때문에 열차가 멈춰 섰다고 주장했다. 오는 7월 30일 무인으로 운영될 2호선 열차의 시스템상 문제가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지하철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지방자치단체와 지하철 운영기관들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메트로는 이르면 8월 자회사를 설립해 그동안 외주업체에 위탁했던 스크린도어 관리 등 안전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또 스크린도어 관리 직원들의 잡무를 줄여 줘 실질적인 안전 업무에 주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메트로 측은 조만간 개선책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메트로 노조 등에서는 자회사가 아닌 공사 본부가 안전 업무를 직접 맡으라고 요구하지만 매년 적자가 4000억원씩 쌓이는 현실에서 돈이 더 드는 방법을 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이날 관련인 소환조사를 하는 등 사고 원인 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찰은 구의역 역무실과 용역업체뿐만 아니라 서울메트로 등 유관기관을 모두 수사 대상에 올리고 지하철 안전사고의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메트로 측은 사고현장인 구의역 대합실에 사망자인 외주업체 직원 김모(19)씨를 추모하는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승객들은 이날 승강장에 자발적으로 김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국화꽃 등을 놓았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인분 교수’ 2심서 징역 8년으로 감형 “피해자가 처벌 원치 않아”

    ‘인분 교수’ 2심서 징역 8년으로 감형 “피해자가 처벌 원치 않아”

    제자를 폭행하고 인분을 먹이는 등의 잔혹한 학대를 가해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인분 교수’가 2심에서 감형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시철)는 27일 “피해자가 제출한 ㅎ바의서가 본인의 자발적 의사로 작성됐으며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장모(53) 전 교수에게 1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장 전 교수의 범행 내용 자체는 시쳇말로 엽기적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라면서 “범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가 피고인 모두에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법원에 냈고 일부 혐의가 공소장에서 제외된 점 등을 들어 이전보다 낮은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경기도의 한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자신이 대표를 맡은 학회 사무국에 취업시킨 제자 A씨가 일을 잘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2013년 3월부터 2년여 동안 인분을 먹이고 알루미늄 막대기와 야구방망이, 최루가스 등으로 수십 차례 폭행한 혐의9폭력행위처벌법상 상습진단·흉기 등 상해) 등으로 지난해 8월 구속기소됐다. 장 전 교수는 A씨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가 하면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운 채 최루가스가 담긴 호신용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화상을 입혔다. 그는 연구 관련 학회 및 재단 공금을 횡령하기도 했다. 앞서 1심에서는 “장 전 교수의 행위는 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것이며 정신적 살인행위”라며 1심 검찰 구형량인 10년보다 높은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가혹행위 가담으로 함께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년을 받은 장씨의 제자 장모(25)씨는 징역 4년을 받았다. 반면에 1심 징역 6년을 받은 제자 김모(30)씨는 징역 1년 6월로 대폭 형이 줄었다. 재판부는 “친구였던 김씨가 진지하게 반성하고 사과를 했으며, 법원 조사 결과 A씨는 ‘김씨가 없었으면 다른 피고인과의 합의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며 “A씨가 용서를 하고 사회 복귀 첫걸음을 떼는 데 김씨의 역할이 컸던 점을 고려하면 공범들과 같은 잣대의 형량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장 전 교수의 횡령에 가담해 1심 징역 3년을 받은 다른 제자 정모(28·여)씨는 징역 2년으로 감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업 미래 문화 특집] 삼성, 젊은 벤처처럼 자발적 ‘몰입’… 월급날은 ‘칼퇴’하는 패밀리데이

    [기업 미래 문화 특집] 삼성, 젊은 벤처처럼 자발적 ‘몰입’… 월급날은 ‘칼퇴’하는 패밀리데이

    삼성은 ‘젊은 조직’으로의 변신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타트업’(창업기업) 문화로의 변신을 선언한 삼성전자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기업과 같은 유연한 조직으로 탈바꿈한다는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임직원의 창의성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문화 전반을 혁신하는 ‘3대 컬처혁신 전략’도 제시했다. 삼성전자가 제시하는 젊은 조직문화의 골자는 ‘자발적인 몰입’이다. 눈치를 보며 회사에 남아 잔업을 하는 분위기를 없애고 일과 휴식의 공존 속에 자율적으로 일을 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월급 지급일인 매월 21일을 ‘패밀리데이’로 정해 야근과 회식 없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가족사랑 휴가나 자기개발 휴가 같은 다양한 휴가제도를 도입하고 임직원 전용 여행상품 개발, 배우자 유산 휴가제도 등 직원들을 위한 복지제도를 신설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옥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경기 수원 디지털시티에 지상 1층과 지하 1층, 총 3만 7259평에 달하는 센트럴파크를 개관했다. 지상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는 공원, 지하 1층에는 피트니스센터와 동호회 시설 등이 마련됐다. ‘C랩’에서는 직원들이 자유로운 토론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어린이 홍삼음료 함량 천차만별 “여러 병 마셔야 홍삼 효과 기대”

    어린이 홍삼음료 함량 천차만별 “여러 병 마셔야 홍삼 효과 기대”

    식품업체들이 홍삼 성분을 넣은 어린이 음료를 잇따라 출시하고 면역력 개선 효과 등을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홍삼 함량이 매우 적어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홍삼 성분을 표기한 시중 유통 어린이 음료 20가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홍삼의 지표 성분인 진세노사이드(Rg1·Rg2·Rg3)가 확인됐다. 하지만 진세노사이드 함량은 ▲0.1㎎이상∼0.5㎎미만 5개(25%) ▲0.5㎎이상∼1.0㎎미만 6개(30%) ▲1.0㎎이상∼1.5㎎미만 4개(20%) ▲1.5㎎이상 5개(25%) 등으로 차이를 보였다. 홍삼음료가 건강기능식품은 아니지만 건강기능식품인 홍삼제품에 적용되는 1일 최소 섭취량(홍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최소량)이 2.4㎎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수 제품의 경우 여러 병을 마셔야 홍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홍삼이랑 튼튼(8.94㎎, 제조·판매원 한국인삼공사), 6년근 고려인삼 레벨원(6.58㎎, 금산일품), 홍키통키팜(5.08㎎, ㈜함소아제약) 등 일부 제품의 경우 한 병만으로 기준 이상의 홍삼 성분을 섭취할 수 있었다. 모든 홍삼 음료에서 타르색소는 검출되지 않았지만 풀무원생활건강㈜ ‘홍삼키즈업(액상차)에서는 표시되지 않은 보존료 ’프로피온산‘이 0.0743g/㎏ 검출됐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제품에 사용된 어린잎발표추출액 등 원재료에서 유래됐을 가능성이 있으나 정확한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면서 “해당 업체도 자발적으로 해당 제품의 생산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키우고 지키는 우리아이 홍삼 오렌지맛‘(건강마을 제조·남양유업 판매)과 ’홍삼왕자'(제조·판매원 홍삼이야기)는 각각 “아이의 성장과 면역을 위한”, “홍삼은 아이들의 면역력을 높여주고…혈액순환에 도움을 줍니다” 등의 홍보 문구를 사용해 지적을 받고 표시를 삭제하기로 했다. 홍삼 음료는 건강기능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건강기능식품과 같은 효능을 광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어린이 홍삼 음료에 실제로 홍삼 성분, 당류 등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소비자들이 꼼꼼히 확인하고 구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최인수 조각가 초대전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최인수 조각가 초대전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은 24일 조각가 최인수 기획초대전 ‘Time of the Beginning’을 개막했다고 밝혔다. 전시회는 다음 달 25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되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이번 초대전은 인당뮤지엄 개관 9년 만에 처음 열리는 조각 작품전이다. 인당뮤지엄은 재학생들을 비롯한 지역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조각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최인수(70) 서울대 명예교수 작품전을 마련했다. 최 교수가 대구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도 처음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4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최 교수의 작품과 신작들을 엮어서 5개의 전시실에 설치 및 조각 35점과 드로잉 20점을 선보인다. 최 교수는 어떤 목적을 갖지 않고 작품을 시작했고, 자연의 흐름과 몸의 형편을 따라 놀이하듯 어떤 경계에 매이지 않고 자발적이고 유연하게 일해 왔다. 최 교수는 인간의 정서적 생존에 관해 사유해왔다. 그는 “전의식(前意識), 전논리(前論理), 전이지(前理知)의 상태에서 삶은 춤추고 생생해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원천의 감성적 시각을 소중히 여기며 작업함에 따라 그 결과들은 대체로 단순하며 질박한 모습이다. 미술가 김정락(51) 방송통신대 교수는 “최인수 작가의 작품은 사소하고 비본질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측량하기 어려운 깊이와 무게를 지닌 것으로 전환되고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실재에 이르고 있다”고 평했다. 인당뮤지엄 석은조(45·여·유아교육과 교수) 관장은 “최인수 교수의 철, 브론즈, 석고, 철사로 제작한 작품과 다양한 드로잉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며 “관람객 편의를 위해서 서포터즈 학생들의 작품 해설도 마련한 만큼 만족한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추모쪽지 보존 위해 자진 철거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추모쪽지 보존 위해 자진 철거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의 피해자 추모 공간이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서울시청 시민청으로 옮겨 운영된다. 23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추모 운동을 이끌어온 여성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10번 출구 주변을 뒤덮었던 추모 포스트잇(접착식 메모지)을 자발적으로 떼어내 스티로폼 판넬에 옮겨붙였다. 24일 비가 예보돼 추모 쪽지가 훼손될까 봐 자진 철거한 것이다. 철거 뒤 서초구청으로 잠시 옮겨졌던 추모쪽지는 이날 오후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으로 옮겨졌다. 시는 이곳을 추모공간으로 꾸며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9일 강남역 10번 출구를 방문해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고 관련 자료를 보존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추모 쪽지 가운데 상징성이 있는 내용만 시민청에 전시하고 나머지는 동작구 대방동의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에 영구보존하기로 했다. 여성가족재단에는 일본군 위안부 자료나 성희롱 판례 등 여성 관련 사료들이 보관돼 있다. 재단 관계자는 “구체적 보관 장소와 방법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추모 쪽지를 일일이 사진 촬영해 디지털 보관소에 남기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추모 쪽지는 서울뿐 아니라 대전, 대구, 부산, 전주 등 전국에 나붙었는데 이 쪽지도 서울시로 옮겨 함께 보존한다. 앞서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조현증세를 보인 남성에게 살해되자 강남역 10번 출구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고 쪽지 물결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강남역 여성 살인’ 자발적 추모 함의 읽어야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이 사회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된 20대 여성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연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17일 경찰은 정신병력이 있는 남성의 ‘묻지마 살인’으로 인식했다. 그런 것이 다음날 한 네티즌이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여성 혐오 살인에 경종을 울리자고 제안하면서 삽시간에 공감대를 넓혔다.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왔다고 말했다. 범행 동기를 여성혐오증으로 몰아가는 시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여성을 공격 대상으로 특정했다는 의심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화장실에 숨어 있던 범인은 6명의 남성이 오간 뒤 처음 나타난 여성에게 범행을 저질렀다. 강남역 부근의 추모 열기는 전국의 도시로 번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추모 카페가 만들어지고 오프라인에서는 촛불 문화제 등이 잇따라 계획되고 있다. 특정 단체나 구심체 없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시민운동을 주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단순히 흘려 넘길 현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 여성들의 폭력에 대한 불안감이 얼마나 컸는지, 억압된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웅변하는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공포는 일상적이며, 이번 사건은 그 공포가 현실이 된 것”이라고 여성들은 울분을 섞어 자조한다. 여성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걱정해야 하는 정황들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만 보더라도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이 84%를 차지한다. 된장녀, 김치녀 같은 여성 혐오 묘사가 흔한 데다 이런 표현에 공감한다는 남성은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사회 분위기를 무비판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남자 청소년들은 한술 더 떠 67%나 된다니 걱정스럽다. 여성 대상의 폭력과 범죄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절실하다. 오죽했으면 여성혐오 범죄는 법을 고쳐서라도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겠는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얼음판을 걷게 하는 세상은 야만사회다. 내 딸, 내 누이일 수 있는 여성들이 왜 이 무더위에 인터넷 사발통문을 돌려 거리집회에 나서려는지 헤아려야 한다. 며칠 뒤 발표한다는 범정부 여성 안전 종합대책도 졸속 땜질 처방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 ‘신이 죽은 시대’ 인간이 사는 힘은

    ‘신이 죽은 시대’ 인간이 사는 힘은

    무신론자의 시대/피터 왓슨 지음/정지인 옮김/책과함께/832쪽/3만 8000원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이 단호한 선언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렀고 여전히 회자되는 명언이다. ‘신의 죽음’ 이후 인간이 의지할 존재로서 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방법을 찾았을까. 실제로 니체는 신 없는 세상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이 책은 그 대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니체의 선언이 있은 뒤 신이 사라진 세계를 개탄하며 고통스러워한 이들도 있었지만 남겨진 것들에서 살아갈 힘을 길어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 세상에서 더욱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더욱 진지하고 치열하게 성찰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영국 출신의 언론인이자 지성사가인 저자는 바로 그들을 주목한다. 니체 직후 세대부터 현재까지 거대한 문화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연대기적으로 조망했다. 문학에서 미술, 철학, 심리학과 정치운동, 세계대전과 극예술 대중문화까지를 832쪽의 방대한 서사로 엮어 놓았다. 놀랍다. 종교적 신앙이 사라진 곳에서 대담하게 피어난 새로운 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에 드러난 극복의 방안은 이렇게 압축된다. 모든 것에 존재하는 끈질긴 실체성, 절정의 순간, 작은 기쁨, 휴일의 삶, 자발적 긍정…. 프루스트가 말한 ‘지복의 순간들’, 입센의 ‘정신적 가치의 섬광들’, 예이츠가 강조한 ‘황홀한 긍정의 짧은 순간’이 모두 그런 화두로 꿰어진다. 전체성과 단일성에서 벗어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순간을 붙잡으려 노력한 결과물들이다. 특히 저자는 ‘전체성’이나 ‘단일성’이라는 관념의 퇴조야말로 20세기에 이뤄진 큰 성취라고 꼽는다. 그런 차원에서 1·2차 세계대전기 문화·사회상의 변화를 꼼꼼하게 정리해 흥미롭다. 1차 세계대전 무렵 니체는 “새로운 무엇이 되고 새로운 무엇을 나타내고 새로운 가치들을 표상하라”고 제안했다. 그 말은 바로 기성의 고급문화에서 소외된 아방가르드에 대한 의미의 부여다. 실제로 표현주의 시인 에른스트 블라스는 독일제국 시기 베를린의 카페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내가 한 일은 당시의 거대한 속물주의에 맞선 전쟁이었다. 그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이들은 누구보다도 반 고흐와 니체, 프로이트, 베데킨트였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합리주의 이후의 디오니소스였다.” 저자는 2차대전으로 인류는 ‘0시’에 도달했고 장기적 결과와 마주했다고 쓰고 있다. 들끓는 전쟁과 점령 상황 속에서 결실을 맺은 실존주의의 태동, 미국 사회에서 깊이 각인된 자유방임적 방향 전환,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들의 생각에 남긴 영향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이 세 가지 결과는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무력 충돌이 다 끝난 뒤에도 종교적 맥락과 세속적 맥락에서 오래도록 사상과 문화를 형성했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형성하고 있는 관심사들이다.”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 이후 형성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쳐 온 일들을 놓고 저자는 이렇게 압축해 표현한다. “자기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면 나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론의 끝은 이렇게 맺어진다. “사람은 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이성의 빛 속에서 걷기보다는 스스로 다음 시대의 예언으로서 걸어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피랍 2년만에 4개월 아기와… 엄마가 된 소녀의 ‘슬픈 귀향’

    피랍 2년만에 4개월 아기와… 엄마가 된 소녀의 ‘슬픈 귀향’

    학교서 시험 준비중 276명 납치 57명 탈출… 나머진 생사 몰라 성적 학대·강제 결혼 등 시달려 다른 피랍 가족들 “희망 생겼다”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됐다 2년 만에 극적으로 엄마 품에 돌아간 10대 소녀는 배고픔과 질병 그리고 성적 학대로 매우 야위어 있었다. 발견 당시 그의 손에는 태어난 지 4개월 된 아이가 들려 있었고, 그의 옆에는 보코하람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남편이 서 있었다. 그가 집에 돌아오자 2년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오열했고, 엄마가 된 그는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라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보코하람을 격퇴하기 위해 민간에서 조직된 자경단은 17일(현지시간) 오후 보코하람의 근거지인 보르노주 삼비사 숲을 순찰하던 중 한 소녀를 발견했다. 아미나 알리 누케키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자신이 2014년 보코하람에 납치된 치복시의 여중생이라고 밝혔다. 함께 있던 남성과 아이는 자신의 남편과 딸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자경단원 아보쿠 가지는 “그들의 몸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고, 장기간 씻지도 못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누케키는 자경단의 보호를 받으며 치복시로 돌아갔고 18일 어머니와 2년 만에 재회했다. 누케키는 치료를 받은 뒤 19일 수도 아부자로 이동해 모하마두 부하리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반면 나이지리아 군 당국은 자신들이 누케키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군 당국은 성명을 내고 삼비사 숲에 배치된 25여단이 누케키를 구조했으며, 누케키와 함께 있던 남성은 보코하람의 조직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남성의 이름은 모하메드 하야투로, 그는 발견 당시 자발적으로 군에 투항했으며 현재 군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복시의 여자중학교를 다니던 누케키는 2014년 4월 14일 밤 기숙사에서 과학 시험을 준비하던 도중 학교 친구들과 함께 보코하람에 의해 납치됐다. 보코하람은 여중생 276명을 총으로 위협하며 강제로 트럭에 태워 본거지로 데려갔다. 이 중 57명은 납치 직후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지만 누케키를 비롯한 나머지 219명은 2년 동안 보코하람의 ‘노리개’가 되어야 했다. 보코하람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던 여중생들을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했고, 조직원들과 강제로 결혼시켰다. 보코하람의 지도자인 아부바카르 셰카우는 이들을 노예시장에 팔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중생의 가족들은 2년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누케키의 아버지는 딸의 납치 소식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숨졌으며 어머니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납치 사건이 벌어진 뒤 피랍자의 부모 16명 이상이 정신적 질환을 앓다가 숨을 거뒀다고 AP는 전했다. 피랍자 219명 중 처음으로 무사 귀환한 누케키는 다른 피랍자 가족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누케키는 납치된 여학생 중 6명은 이미 사망했지만 나머지는 삼비사 숲에 살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딸을 모두 납치당한 에노크 마크는 “우리 딸들이 살아만 있다면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 보러와요’ 속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 까다로워진다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 보러와요’ 속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 까다로워진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하는 제도를 개선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이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복지부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의료법일 일부개정법률안 등 12개 소관 법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자는 자신의 병을 알지 못해 입원치료가 필요한데도 환자 스스로 입원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가족이나 후견인 등이 입원치료를 대신 결정했다. 이같은 ‘강제입원’이 지금은 2명 이상의 보호의무자가 병원 입원이나 시설입소를 신청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이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하면 계속 입원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멀쩡한 사람도 정신질환자로 몰아 입원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최근 영화 ‘날 보러와요’도 이같은 맥락이다. 지난 2014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7만 932명 가운데 자의로 입원한 환자는 2만 2974명(32.4%)에 불과했고, 강제로 입원당한 비자발적 입원이 4만 6773명(69%)로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된 정신보건법 개정안은 정신병원 안팎에서 입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국공립 정신의료기관 등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 1명 이상 포함)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3~6개월까지 강제입원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또 지금은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 있거나 ▲환자의 건강·안전, 타인의 안전을 위해 입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오면 강제입원이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해야 한다. 환자 본인과 보호의무자의 동의로 입원을 신청하고 정신과 전문의 진단 결과 환자 치료와 보호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72시간의 범위에서 퇴원을 거부할 수 있는 동의입원 제도도 도입된다. 전문의가 환자의 강제입원을 결정해도 외부 기관인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입원의 적합성을 한 차례 더 심사하도록 규정하기도 했다. 심사위원회는 정신과 전문의뿐 아니라 법조인, 인권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며, 심사 대상이 입원한 기관에 소속된 사람은 심사에서 배제된다. 복지부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신을 구속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확인 과정을 까다롭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은 또 ‘정신질환자’의 개념을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우울증 치료만 받아도 ’정신질환자‘가 되는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다. 기존에는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정신병을 가진 자‘에 해당돼 ’정신질환자'로 분류됐다. 문제는 이런 정신질환자는 미용사, 영양사, 요양보호사, 조리사, 안경사, 화장품 제조판매업자 및 제조업자, 장례지도사 등의 직종 취업에 제한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울증 치료 기록이 있어도 이런 직종 취업에 제한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치푸드, 중국 절강성, 강소성, 사천성 3성과 멀티 매장 계약 체결

    리치푸드, 중국 절강성, 강소성, 사천성 3성과 멀티 매장 계약 체결

    -중국에서도 ‘피쉬앤그릴&치르치르’ 가성비 성공 확신 리치푸드의 여영주 대표가 지난 5월 17일 절강성, 강소성, 사천성과 ‘피쉬앤그릴&치르치르’ 멀티샵에 대한 계약을 진행했다. 중국 내 요리치킨 치르치르의 인기에 힘입어 현재 한국에서 콜라보 매장으로 주요 도시 및 제주까지 확산한 멀티매장 ‘피쉬앤그릴&치르치르’가 중국인의 외식 소비심리에 맞게 현지화하고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계기가 될 이번 계약은 마스터프랜차이즈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도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의 기본인 오퍼레이션 시스템과 매뉴얼을 통해 통일성과 표준화를 이룬 가운데 현장중심 핵심가치관리를 중시하고 기초와 기본을 철저한 준수를 강조해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더욱 확고한 브랜드 확산을 진행할 예정이다. 중국 전역에서 활발히 브랜드 확산을 전개하고 있는 리치푸드는 지난 4월 천진 마스터 프랜차이즈가 치르치르를 모방한 짝퉁 브랜드를 가지고 불법적인 운영을 지속해 이에 따른 손해를 만회하고자 중국 성의 마스터프랜차이즈를 모아 심도 깊은 신메뉴 교육과 마케팅 전략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메뉴 경쟁력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갖게 된 각 지역 대표들의 자발적인 계약요청에 이번 절강성, 강소성, 사천성과 계약을 진행하게 됐다. 리치푸드는 중국에서 한국의 음식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데 노력할 예정이다. 14년 업력의 리치푸드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멀티 콘셉트의 매장은 두 개의 브랜드가 만나 시너지를 높이고 소비자의 선택을 폭을 넓힌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사천성의 리쭌펑 총경리는 “해외 사업부가 있는 중국 랑팡에서 5월초 컨퍼런스를 통해 상반기 새롭게 출시되는 메뉴 조리 교육과 매장 내 스토어 마케팅과 더불어 웨이보, 바이두, 위쳇등 온라인 마케팅 확대 역량을 확대하는데 집중하는 가운데 전체 마스터프랜차이즈가 소통해 운영 매뉴얼을 준수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한편 리치푸드는 근 시일 내에 새로운 콘셉트의 브랜드 론칭과 함께 퓨전 한식 주점 브랜드 ‘짚동가리쌩주’를 리뉴얼해 글로벌 시장에 야심차게 내놓을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사설] 생활용품 유해성 검사 속도 더 내라

    가습기 살균제 파동으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믿고 써도 되는 제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런 가운데 환경부는 그제 생활용품 7개 제품에 사용금지 물질이 들었다며 시장에서 퇴출하기로 했다. 즐겨 써 온 생활용품들에 독성이 있었다니 아찔할 뿐이다. 신발무균정이라는 탈취제품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인 PHMG가 검출됐다. 옥시 파동이 터진 게 언제인데, 문제의 유해 성분이 포함된 제품이 어떻게 시중에 버젓이 유통될 수 있었는지 황당하다. 게다가 PHMG는 산업통상자원부가 3년 전 탈취제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필코스캠이란 업체가 만든 에어컨 살균 탈취제에 든 TCE도 10년 전 환경부가 취급 금지한 유해 물질이다. 이러니 국민들이 불안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정부 당국만 믿고 있다가는 어떤 낭패를 볼지 모른다는 인식이 심각하다. 최근에는 탈취제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페브리즈가 안전성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에 대한 환경부의 대응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유해 물질이 미량 들었다고 인정할 뿐 사용 여부에 대한 지침이 없다. 앞으로 독성실험을 하겠으니 사용 적합성은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이다. 터진 구멍만 메우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국민 공포증을 잠재울 수 없다. 환경부는 지난 1월에 퇴출 제품 7개의 유해성을 이미 확인했다. 적발하고도 넉 달이나 알리지 않았다니 소비자들은 분통이 터진다. 시판 제품에 든 화학물질 4만여개 중 정부가 관리하는 것은 530종뿐이다. 이마저도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 따라 제조사는 일부 유해 물질 성분만 표시하면 된다. 기업 규제를 줄여 주는 것도 좋지만 국민 안전이 뒷전이라면 시급히 손볼 제도다. 생활화학제품을 전수조사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이런 사정을 알고 보면 알맹이가 없는 얘기다. 제조사가 성분을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이상 유해성 여부를 속시원히 가릴 방법이 없다. 인력과 예산을 긴급히 늘려서라도 시중 제품들의 유해성 검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시판 제품이 8000개가 넘는데 한 해 고작 300여개를 조사하겠다는 환경부의 발상은 너무 안이하다. 조사와 결과 공개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판매량이 많은 인기 제품들을 우선 검사하고, 퇴출 제품만 밝힐 게 아니라 검사를 마친 안전한 상품의 이름도 공개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도와야 한다. 책임 있는 소비자 보호 행정을 하겠다면 그래야 한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번역을 할수록 내 글이 건강해졌다… 18년 만에 나의 소설을 쓰려 한다 충북 증평군 내성리에 자리한 ‘21세기 문학관’에 도착한 것은 지난 10일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였다. 하늘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을 한 그가 녹색 철문 뒤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18년 만에 재개한 소설 창작을 위해 얼마 전 제주도 집을 떠나온 그는 이곳을 ‘자발적 유배지’라고 불렀다. 점심 겸 해서 낮술 잔을 기울였다. 적당히 술기운이 올랐지만, 그의 유장한 말투는 빨라지지 않았고 간결한 문장들은 장황해지지 않았다. 중간에 말을 멈추는 때가 잦았는데 적확한 단어나 표현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기자 양반이나 나나 즐겁게 술 마실 만큼만 건강하게 살면 되는 거요.” 김석희(64)는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1979년 3월 어느 날 한참을 못 보고 지냈던 친구가 찾아왔다. 국사학과에 다니던 이종범이었다. ‘학생운동 하다가 제적됐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갑자기 어쩐 일일까.’ 전공은 달랐지만, 중간에 연결고리가 되는 친구들 덕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학교에서 잘리고 나서 작은 출판사를 하나 차렸다고 했다. “내가 불문과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김석희가 프랑스책 최고로 잘 읽는다고 하더라.” 다짜고짜 프랑스 고전을 하나 골라서 번역을 해 달라고 했다. “명색이 출판사이니 책을 좀 내야 하는데,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자니 번역료 줄 능력이 안 된다. 너한테는 술 한잔 사주면 되지?” 황당했지만, 학교에서 잘리고 뭐라도 해 보겠다는 그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안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곰곰 생각하다가 18세기 프랑스 심리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를 번역해 주었다. 나는 불어를 말하고 듣는 것에는 약했지만, 독해와 번역에 나름 강점이 있었다. 번역료는 정말 술 한잔이었다. 1980년 이종범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면서 출판사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그 책도 절판이 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내 인생의 이정표를 정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참, 이종범은 현재 조선대 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장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번역한 작품은 1982년 6개월 동안 작업한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1981년 메릴 스트립과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동명 영화가 개봉되면서 갑자기 원작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책은 1997년과 2002년에 다시 번역을 했는데, 내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가게 된 첫 작품이 됐다. -1952년 제주시 무근성(삼도2동)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경제사정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섬 소년에게 사방에 둘러쳐진 바다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갑갑함이었다. 섬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었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재수를 위해 서울로 와서 육십을 바라보는 2009년 4월에 다시 고향에 정착했다. 40년의 타향살이 끝에 그 바다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 나는 변덕을 부렸지만, 바다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듬어준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 가르쳐 주신 서예로 초등학교 때 웬만한 상들은 휩쓸었는데, 나한테 약간의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중학교 졸업 무렵에 알게 됐다. 제주일고 입학을 앞두고 도내 한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문예작품 공모전에 산문을 출품했다.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장원을 차지했다. 이 일로 입학을 하자마자 3학년 형들에 의해 반강제로 ‘향원’이라는 문학서클에 들게 됐다. 2학년 때는 동국대 문예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제주도립도서관은 제2의 집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뮈의 ‘이방인’을 이곳에서 읽었다. 모두 살인자인 두 책의 주인공이 꿈속에 뒤바뀐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큰 바다를 누비며 글을 쓰는 ‘마도로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국립해양대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6·25 때 서울 영등포에서 납북된 숙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있어 입학이 불허됐다. ‘마도로스 소설가’의 꿈은 그냥 ‘소설가’로 수정됐다. -1972년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갔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다. 어떤 친구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로 나갔고, 어떤 친구들은 술집으로 가 통음을 했다. 어떤 친구들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내 속의 울분을 터뜨리고 발산하기 위해 내가 택한 건 글쓰기였다. 일기를 쓰듯 글만 썼다. -수업에 들어간 기억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붕구(1922~1991) 교수님의 수업은 늘 감동 그 자체였다. 보들레르의 시를 설명하기 위해 직접 한시를 써서 읊으시다가 그걸 서양의 역사와 철학으로 이끌고 가셨다. 그러다가는 동양 인문학의 심오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셨는데,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처음의 보들레르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넓고 깊은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울림 있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79년 2월 졸업과 동시에 국문과에 학사편입을 했다. 소설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문학을 좀더 배우고 싶었다. 그때부터 등단을 향한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됐고, 그 과정은 1987년 12월 26일에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끝이 났다. 세상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담은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이었다. 당선되고 나서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칼의 노래’, ‘현의 노래’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이다. 당시 그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1시간에 걸쳐 그와 나눴던 대화가 지금도 또렷하다. 그날 진탕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한겨울 골목길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고상한 책만 번역한 줄 안다. 하지만, 내 손을 거친 책들 중에는 일본 잡지의 부록과 같은 것들도 상당수 있다. 번역은 그 자체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시사영어사 출판부에 다니던 친구가 맡겨 준 연애소설 ‘할리퀸문고’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한 달에 한 권씩 15개월을 번역했는데,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 있었다. 외국말을 입으로 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눈으로 읽는 능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불어야 전공이니까 자연히 접할 기회가 많았고 영어는 틈틈이 원서를 읽으면서 번역 실력을 키웠다. 일본어는 학사편입한 국문과에서 현대문학 연구를 위해 일본 문헌을 참고해야 했기 때문에 독학을 했다. -1979년 학사편입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7년까지의 시간들은 이제 와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계속되는 탈락에 마음엔 칼바람이 불었고,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제주의 어르신들은 나를 ‘백수’로 생각했다. “백날 써 봐야 안되는 소설, 그만 좀 하고 다른 일 찾아봐라. 서울대를, 그것도 과를 2개(불문과, 국문과)씩이나 나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 명절에 고향 내려가는 건 아주 고역이었다. ‘아버지의 감귤밭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을까,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촌형을 찾아갈까.’ 고민은 계속됐지만, 소설가에 대한 꿈은 결코 포기가 되지 않았다. 안되면 안될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한 번역은 계속해야 했다. 번역한 책에는 ‘김한경’이라는 필명을 썼다. 나와 아내, 아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땄다. 내 본명은 내 최초의 소설의 표지를 위해 남겨 두기로 했다. -1987년 재일교포 작가인 김석범의 ‘화산도’를 번역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5권짜리 대하소설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회 이호철 대표가 “6월 항쟁을 계기로 4·3 사건을 다룬 책도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올 테니 미리 준비를 하자”고 했다. 마지막 제5권은 이 대표가 번역을 했고 내게는 1권부터 4권까지 번역을 맡겼다. 일본어를 번역하며 곳곳에 제주 사투리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제주 출신 번역가가 필요했다. 제주 출신인 내가 4·3 사건 관련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김한경’이 아닌 ‘김석희’를 역자 이름으로 썼다. 이 일을 계기로 번역료가 크게 올라갔다. 그다음 맡은 일은 2년 6개월에 걸친 영국 브리태니커 사전 한국판 번역이었다. 매월 200자 원고지 1000장씩을 넘겼다. 아내의 가계부에 단비가 내렸다. -1994년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이 두꺼운 책 3권을 들고 번역가 정도영·오정환 선생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이 책들을 읽어보고 번역해 출판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책의 지은이는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였다. 정도영 선생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오정환 선생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내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당시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에서 제3권(나중에 총 15권으로 완결)까지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세 명 중 가장 젊은 내가 맡았다. 2주 정도의 검토 끝에 우리 모두 ‘OK’ 사인을 냈다. 그때부터 2009년까지 12년에 걸쳐 번역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로마인 이야기’의 내용은 상당히 진취적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귀납적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은 제1권 전체를 할애해 ‘국가 크기도, 문화도, 경제도 1위가 아닌 로마가 어떻게 패권(覇權)을 쥐었는지 궁금해 이 책을 쓴다’는 의문을 던지는 게 특별해 보였다. 투박하지만 힘 있는 문체도 흥미를 끌었다. 책은 번역 출간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베스트셀러 첫머리에 이름을 올렸고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내가 저들만큼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무리 해도 거장들의 작품과는 차이가 많은데, 이걸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나.” 힘들게 소설가로 등단을 하고 10여년이 흐른 1998년, 내 인생의 방향을 가르는 큰 선택을 했다. 그해 가을 중편 소설을 하나 냈는데 불현듯 소설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안되는 걸 들고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다. ‘나를 애먹이지 말자’고 했다. 소설을 중단했다. -2011년엔 ‘모비딕’을 출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번역이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정규 대학교육 없이 선원으로 살다가 작가가 된 사람이었다. 단정하게 완성된 문장이 아니었고, 단축형 비문이 많았다. 간혹 셰익스피어를 따라하는 도치문은 번역으로 그 느낌을 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번역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단어도 이유 없이 배열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대학 은사인 이휘영(1919~1986년) 교수님을 존경한다. 그는 1960년대에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홍수’를 번역했다. 독해가 번역의 초벌작업이라면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휘력과 문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신 분이다. -나는 ‘888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번역한다. 일은 주로 밤에 한다. 아직 번역하고 싶은 책들이 많다. 특히 판타지의 고전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해리 포터’를 어린이들이 먼저 즐기게 됐지만, 사실 판타지 소설의 세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고 심오하다.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다섯 살 손자를 위한 번역에도 욕심이 난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1998년 절필했던 소설 창작이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잡은 소설이다. 수많은 번역의 경험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많은 책을 번역하면서 내 글도 건강해졌다. 그저 예쁘게 다듬기만 한 미문,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고 할까. 젊은 날 나의 명함에는 ‘소설가·번역가’가 동시에 적혀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픈 열망이었다. 정작 등단한 후 소설을 접고는 ‘번역가·소설가’라고 썼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시 앞에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번역가 김석희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통한다. 영어와 불어, 일어로 된 해외 작가들의 소설을 한글로 재탄생시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허먼 멜빌의 ‘모비딕’, 재일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쥘 베른 걸작선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번역을 ‘장미 가시덤불에서 춤추는 것과 같은 고통 속의 쾌락’이라고 표현한다.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기도 한 그는 최근 18년 만에 자신의 소설 창작을 재개했다. ▲1952년 제주 제주시 출생 ▲제주제일중·고 ▲서울대 불문과·국문과 ,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중퇴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 ‘이상의 날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1997년) ●주요 작품 ‘화산도’(김석범) ‘아돌프’(뱅자맹 콩스탕) ‘여자란 무엇인가’(비올라 클라인)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에펠 탑의 검은 고양이’(아라이 만) ‘즉흥시인’(안데르센) ‘시간 박물관’(움베르토 에코 외) ‘인물 삼국지’(이나미 리쓰코) ‘빙벽’(이노우에 야스시) ‘칸의 제국’( 조너선 스펜스) ‘죽음을 삼킨 땅’(조르제 아마두)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스) ‘지구에서 달까지’(쥘 베른) ‘문명 속의 불안’(지그문트 프로이트) ‘살아 있는 역사’(힐러리 로댐 클린턴) ‘모비 딕’(허먼 멜빌)
  • [현장 행정] 강남대로 커피잔 쓰레기가 사라졌다

    [현장 행정] 강남대로 커피잔 쓰레기가 사라졌다

    쓰레기통이 없던 서초구에 대형 커피잔이 등장했다. 거리에 나뒹굴던 테이크아웃 커피잔이나 음료 캔 등 재활용 쓰레기들을 처리할 ‘이색 분리 수거함’이다. 이색 수거함으로 깨끗한 거리를 조성하고 재활용을 활성화하는 한편 독특한 디자인으로 거리 미관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주변 카페들이 자발적으로 수거함 설치에 나서면서 서초구 주민 세금도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석사조’다. 18일 서초구에 따르면 테이크아웃 커피잔 모양을 한 두 종류의 ‘재활용 분리 수거함’이 강남대로 5개 지점에서 19일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스테인리스 재질에 높이 120㎝, 폭 70㎝ 크기로 만들었다. 아이스커피 잔과 종이컵, 두 개가 한 쌍이다. 쉽게 알아보고 버릴 수 있게 한 배려다. 아이스커피 잔은 페트병과 비닐류를, 다른 하나는 종이컵과 병·캔류를 받는다. 다른 일반 쓰레기의 무단 투기를 막기 위해 투입구 모양과 크기도 커피잔에 맞췄다. 수거함은 2개가 한 세트로 100m 간격으로 설치한다. 특히 이번 사업엔 커피를 판매하는 인근 카페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눈길을 끈다. 구는 앞서 인근의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커피빈, 파리바게뜨 등 4개 업소와 ‘클린거리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 세트당 520여만원의 수거함 제작비용을 각 카페가 부담하기로 했다. 이번 수거함 설치는 조은희 구청장의 고심과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구는 2012년부터 ‘쓰레기통 제로’의 친환경 클린정책을 펼쳐왔다. 지나치게 많은 쓰레기와 무단 투기를 줄이고자 거리의 쓰레기통을 없애나갔다. 배출자 부담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실제로 쓰레기 양은 확연히 줄었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이나 음료 캔을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구가 지난해 12월부터 총 3회에 걸쳐 강남대로 쓰레기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 95%가 재활용 쓰레기였다. 유형별로는 ▲플라스틱컵 36.4% ▲종이컵 36.2% ▲병류 12.1% ▲캔류 10.3% 등이었다. 조 구청장은 “자원 재활용도 하고 거리도 깨끗히 유지하기 위해 낸 의견에 인근 업소들도 기꺼이 동참해줘 기쁘다”면서 “앞으로 3개월간 이곳에서 발생하는 재활용 쓰레기를 매일 수거, 분석해 일반 쓰레기 무단투기 근절 대책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리 수거함엔 향후 센서도 부착할 계획이다. 사물인터넷(IoT)을 활용, 쓰레기가 꽉 차면 실시간으로 환경미화원에게 알린다. 조 구청장은 “쓰레기통 설치 이전에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며 시민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테이크아웃 커피잔 쓰레기로 넘치던 강남대로? 서울 서초구 카페에서 나서 분리수거함 설치

    테이크아웃 커피잔 쓰레기로 넘치던 강남대로? 서울 서초구 카페에서 나서 분리수거함 설치

    쓰레기통이 없던 서초구에 대형 종이컵이 등장했다. 거리에 나뒹굴던 테이크아웃 커피잔이나 음료 캔 등 재활용 쓰레기들을 처리할 ‘이색 분리 수거함’이다. 이색 수거함으로 깨끗한 거리를 조성하고 재활용을 활성화하는 한편 독특한 디자인으로 거리 미관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주변 카페들이 자발적으로 수거함 설치에 나서면서 서초구 주민의 세금도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석사조’다. 18일 서초구에 따르면 테이크아웃 커피잔 모양을 한 두 종류의 ‘재활용 분리 수거함’이 강남대로 5개 지점에서 19일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스테인리스 재질에 높이 120㎝, 폭 70㎝ 크기로 만들었다. 아이스커피 잔과 종이컵, 두 개가 한 쌍이다. 쉽게 알아보고 버릴 수 있게 한 배려다. 아이스커피 잔은 페트병과 비닐류를, 종이컵 모형은 종이컵과 병·캔류를 받는다. 다른 일반 쓰레기의 무단 투기를 막기 위해 투입구 모양과 크기도 커피잔에 맞췄다. 수거함은 2개 한 세트로 100m 간격으로 설치한다. 특히 이번 사업엔 커피를 판매하는 인근 카페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눈길을 끈다. 구는 앞서 인근의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커피빈, 파리바게뜨 등 4개 업소와 ‘클린거리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 세트당 520여만원의 수거함 제작비용을 각 카페가 부담하기로 했다. 이번 수거함 설치는 조은희 구청장의 고심과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구는 2012년부터 ‘쓰레기통 제로’의 친환경 클린정책을 펼쳐 왔다. 지나치게 많은 쓰레기와 무단 투기를 줄이고자 거리의 쓰레기통을 없애 나갔다. 배출자 부담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실제로 쓰레기 양은 확연히 줄었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이나 음료 캔을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구가 지난해 12월부터 총 3회에 걸쳐 강남대로 쓰레기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 95%가 재활용 쓰레기였다. 유형별로는 ?플라스틱컵 36.4% ?종이컵 36.2% ?병류 12.1% ?캔류 10.3% 등이었다. 조 구청장은 “자원 재활용도 하고 거리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해 의견을 냈는데 인근 업소들도 기꺼이 동참해줘 기쁘다”면서 “앞으로 3개월간 이곳에서 발생하는 재활용 쓰레기를 매일 수거, 분석해 일반 쓰레기 무단투기 근절 대책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리 수거함엔 향후 센서도 부착할 계획이다. 사물인터넷(IoT)을 활용, 쓰레기가 꽉 차면 실시간으로 환경미화원에게 알린다. 조 구청장은 “쓰레기통 설치 이전에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며 시민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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