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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후 45년」 대북 배상/「북한­일 공동선언」의 파문

    ◎새로운 외교분쟁의 불씨로/「배상의미」 싸고 일 정계 논란/“한국과 균형 상실”… 대책 고심/중국·대만·필리핀과도 마찰 불가피 「가네마루 대표단」이 북한측에 약속하고 돌아온 「전후 45년의 손실보상」이 일본 국내외에 새로운 외교적 분쟁의 불씨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가 김일성 주석 앞으로 보낸 「자민당 총재 명의」의 사죄서한도 형식상 명의만 당 총재 명의였을 뿐,그 내용은 「내각총리 대신으로서」 사죄한 것이 밝혀져 문제가 되고 있다. 28일 북한의 조선 로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 3당간에 조인된 공동선언 제1항은 이같은 사실을 명기했다. 『3당은 과거에 일본이 36년간 조선인민에 끼친 불행과 재난,전후 45년간 조선인민이 받은 손실에 대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대해 충분히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보상해야 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자민당 가이후 총재는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한 친서에서 일찍이 조선에 대해 일본이 끼친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던 것에 언급,「그같은 불행한 과거에 대해서는 다케시타(죽하) 전 총리가 지난해 3월 국회에서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있는데,나도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그와 전적으로 동감이다」라는 것을 명백히 해 일·조 양국간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희망을 표명했다』 일본이 36년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동선언에 나타난 「전후 45년의 손실」은 무엇을 뜻하는가,일본정부는 이의 해석과 대응방법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민당 간부들과 야당 인사들도 『전후의 보상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의혹의 빛을 감추지 않는다. 공동선언에는 그 의미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북한측의 종래의 주장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의 한국일변도,적시정책이 북한과는 45년간의 소원한 공백상태를 빚었으며,그 결과 손해를 입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초 28일 상오중에 발표될 예정이었던 이 공동선언이 이날 하오 늦게 나온 경위도 바로 「전후 45년간」이란 대목 때문이었다. 공동선언문 작성은 27일 심야부터 시작돼 잠시 동안의 아침 휴식시간을제외하고 28일 하오 3시쯤까지 장장 16시간에 걸친 난항을 겪었다. 북한측의 논리는 전후 일본의 대북한정책이 적시정책이었으며,사죄와 보상은 식민지 통치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그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측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사회당측은 동조했으나 자민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난항을 겪자 28일 상오 김용순 로동당 서기를 비롯한 3당대표자회담에서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가 『내 책임으로 넣겠다』고 결단을 내려 사실상 해결을 보았다. 지난 26일 하오 사회당측 단장인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과 함께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마치고 나온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동행의원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측의 제안에도 충분히 이해해주었다.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다나베 사회당 부위원장도 『김 주석의 발언에 따라 북한·일본 관계는 새로운 밝음을 맞았다』며 27일의 답례연에서 흥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 문제를 인도적 견지에서 해결하고 45년간 닫혀있던 양국관계에 「바람구멍을 뚫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가네마루·다나베 양단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직접 선원석방의 언질을 받아내고 새로운 우호관계 수립을 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북한방문단이 큰 성과를 올렸다고 판단했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국교정상화교섭 제의를 하게 한 「국제적 빅 뉴스」(자민대표단)까지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합격점을 받았다』고 대표단이 자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만,이들을 맞은 북한측의 「계산」에는 미쳐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일성 스타디움에서의 10만 관객과 5만 군중에 의한 매스게임은 「김환 선생 환영」을 카드섹션으로 연출,일행을 감격시켰다.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위해 묘향산으로 가는 열차는 특별히 꾸며진 침대열차였다. 이러한 환대의 뒤에 「전후 45년간의 손실보상」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이 「전후 45년」 문제는 일본정부 자체에는 물론 여야 각 정당에도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자민당의 파벌회장인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회장은 『45년간 일본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도대체 말도 안되는 소리. 논평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이번 북한방문단의 성과는 전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쪽에서도 반론은 심하다. 스카모토 사부로(총본삼랑) 전 민사당 위원장은 『전후 45년간도 사죄와 보상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외교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어휘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양국이 민주적으로 선린관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외무성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북한과의 정부간 교섭을 벌여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정부의 입장을 주장할 때 식민지통치시대의 보상은 당연하지만 전후 45년간의 보상에는 응할 수 없다는 취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이유를 외무성 당국자는 이렇게 들고 있다. 『북한은 일본이 적친정책을 취했다는 것을 보상의 근거로 보는 모양이지만 그런 근거는 없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북한도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 적친정책을 취해오지 않았는가라고 반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무엇보다도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대한국 관계이다. 한국에는 36년 만을 대상으로 보상했기 때문에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대만·필리핀 등 아시아주변 제국에 대해서도 선례가 되며 외교적 분쟁의 소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북한측이 「45년간의 손실」을 정신적 손실이라고 주장한다면 다른 피해국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방문단」은 정당차원의 관계개선을 급진시켜 정부를 곤혹하게 하고 있으며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에 남긴 「가네마루 수표」는 일본정부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웠다는 것이 도쿄의 시각이다.〈도쿄=강수웅 특파원〉
  • “8개항 공동선언 구속력 없다”/귀국 일 정당대표단

    【도쿄=강수웅 특파원】 「전후 45년간의 손실」에 대한 배상문제가 정치·외교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자민당의 이시이 하지메(석정일) 외교조사회장과 사회당의 다나베 마고토(전변성) 부위원장은 29일 일본 NHK­TV의 정치좌담회에 출석,북한 조선노동당과 자민·사회 3당이 조인한 공동선언은 앞으로의 정부간 접촉에서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발언,전후 배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시이 의원은 30일 방영예정인 이 좌담회에서 『전후 45년의 손실에 대한 배상은 앞으로의 정부간 절충에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으며 다나베 부위원장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 북한ㆍ일 공동선언 전문

    ◎빠른 시일내 양국관계 정상화/국교 수립할때 식민지배 배상/재일 조선인의 법적지위 존중/통신위성 공용ㆍ직항공로 개설/핵위협 제거ㆍ아주평화 공동노력 일본 자민당과 사회당 대표단이 24일부터 28일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총서기 김일성주석은 가네마루 신(금환신) 일본 중위원의원을 단장으로 한 자민당 대표단과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중위원의원을 단장으로 한 사회당 대표단과 회견했다. 회견석상에서 가네마루단장과 다나베단장은 조선 노동당중앙위원회총서기 김일성주석에게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자민당총재와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중앙집행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방문기간중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과 조선노동당 사이에 몇차례에 걸쳐 3당 공동회담이 이뤄졌다. 3당은 자주ㆍ평화ㆍ친선의 이념에 입각,북한과 일본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양국국민의 이익에 합치되며 새로운 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함을 인식,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①3당은 과거에일본이 36년간 조선인민에 끼친 불행과 재난 및 전후 45년간 조선인민이 입은 손실과 관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가이후 자민당총재는 김일성주석에게 전한 친서에서 조선에 대해 일본이 끼친 불행한 과거가 존재함에 대해 언급,『그같은 불행한 과거에 대해 다케시타(죽하) 전 총리가 지난해 3월 국회에서 심심한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한 바 있는데 총리로서 나자신도 그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분명히 해 일본과 북한 양국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표명했다. 자민당 대표단장인 가네마루의원도 조선인민에 대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 3당 대표단은 일본정부가 국교관계를 수립하는 것과 동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에 끼친 손해에 대해 충분히 배상할 것을 인정한다. ②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간에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해소하고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에 국교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③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각 분야에서 교류를 발전시키며 우선 통신위성의 이용과 양국간에 직행항로를 개설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④3당은 재일 조선인이 차별받지 않고 그 인권과 민족적 제권리 및 법적지위가 존중돼야 하며 일본정부는 이를 법적으로 보증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3당은 또 일본당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일본여권에 기재한 사항을 삭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⑤3당은 조선은 하나이며 북과 남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합치됨을 인정한다. ⑥3당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아시아를 건설하기 위해 공동노력하며 앞으로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핵의 위협을 없애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⑦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간의 국교수립을 실현하고 현안인 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간 교섭이 올해 11월중에 개시되도록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⑧3당은 양국 국민의 염원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이익을 위해 자민당과 조선노동당,사회당과 조선노동당간의 관계를 강화하고 상호협력을 한층 더 발전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 북한·일,수교협상 11월부터/8개항 공동선언 발표

    ◎억류선원 석방각서 교환/일,한국에 자민당특사 파견키로 【도쿄=강수웅 특파원】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은 28일 하오 북한과 일본 양국간 국교수립의 실현과 현안인 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간 교섭이 오는 11월중에 개시될 수 있도록 정부에 강력히 작용하는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전문 및 합의사항 8개 조문으로 구성된 공동선언을 조인,이날 하오 발표했다. 이 공동선언은 『노동당 및 자민·사회 3당이 자주·평화·친선의 이념에 따라 북한·일본 양국관계를 정상화,발전시키는 것이 양국국민의 이익에 합치하며 새로운 아시아 및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고 전제하고 일본측의 사죄와 보상 문제,국교수립,통신위성의 이용과 직행항로 개설,재일 조선인의 권리 및 법적 지위 존중,일본 여권상의 북한제한 조항삭제 문제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3·4·5면〉 또 『조선은 하나이며,북과 남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합치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의 「공동선언」은 당초 「공동성명」으로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북한측의 대일접근 자세를 한층 강조하기 위해 「선언」으로 바뀌었다. 제18 후지산마루(부사산환)호의 선장 등 2명을 오는 10월중 석방한다는 각서도 공동성명의 부속문서로서 교환됐다. 이들은 오는 10월10일 조선 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석방될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선언은 당초 이날 상오중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에 쌍방의 의견이 엇갈려 하오 5시 넘어 발표됐다. 보상에 관해 공동선언은 일제 36년간의 불행과 재난에 대해서는 물론,「전후 45년간 조선인민이 받은 손해」에 대해서도 국교수립시 보상해야 된다고 선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날 선언에 연락사무소의 설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로써 전후 45년간 외교적 공백을 거쳤던 북한과 일본은 일거에 접근,한국은 물론 한반도에 영향력을 갖는 미·소·중국 등 주변 제국에 새로운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이같은 상황속에 일본의 집권 자민당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도 오는 11월의 국교정상화 교섭에 앞서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키 위해 북한을 방문키로 이날 결정했다. 또 일본정부와 자민당은 국교정상화를 둘러싼 북한·일본간의 움직임에 강한 경계감을 갖고 있는 한국에 자민당의 가토 무쓰키(가등육월) 정부조사회장(안배파)을 특사로 파견키로 했다. 지난 24일부터 북한을 방문한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은 김일성 주석을 비롯,조선 노동당 간부들과 일련의 회담을 갖고 새로운 우호관계 수립에 인식의 일치를 보아 거의 모든 현안을 일거에 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은 이날 하오 8시25분 일항(JAL)특별기편으로 평양을 출발,하오 10시40분 하네다(우전)공항에 도착,일본에 돌아왔다.
  • 한반도에 「교차승인」 기운 감돈다/북한·일본 급속접근의 파장

    북한이 27일 일본에 국교정상화 협의를 제의,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인정,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북한이 갑작스레 태도를 돌변,수교협상을 제의하고 나온 데 대해 갖가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접근하고 있는 데서 오는 고립감 탈피가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으나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2개의 조선」 반대정책을 포기했느냐는 점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을 정리해본다. ◎도쿄의 반응/“수교 앞세워 경협흥정 치중” 의구심/한·소 수교 견제 전술적 전환 시각도 북한의 전격적인 대일 수교제의는 일본에도 큰 충격파를 던졌다. 전혀 「예상밖의 사태」로서 각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어떤 판단이 작용했는가,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관계전문가들은 그 저의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외무성은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과 동행한 가와시마 유타카(천도유) 아시아국 심의관으로부터 상세한 귀국보고를 들은 뒤 대응책을 결정할 방침이다.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레벨 접촉인 외교 실무담당자 협의에서의 제안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천용복(북한 외교부 부부장)=곧바로라도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자. ▲가와시마 유타카=그렇다면,(북한의) 방침이 변했다는 것이냐. ▲천=그렇다. ▲가와시마=지금까지 한반도에 2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반대해오지 않았는가. 동·서독은 분단국가이면서도 통일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북과 남을 2중 승인하고 있는 국가가 84개국이나 되지 않는가. 일본 외무성은 이같은 북한의 대일정책 전환의 요인으로서 다음 3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한국의 활발한 북방정책에 의한 소련·동구제국과의 눈부신 관계진전에 압도되어 있는 점. 둘째 어린이들의 영양부족마저 지적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궁핍. 셋째 지난 9월 초순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으로부터 한국과의 국교수립방침을 통고받고 충격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북한의 정책전환에 대해 일본 외무성 수뇌는 27일 밤 『북한의 지금까지의 공식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기초로 자주·자립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일본 정부의 한반도정책에 대해 『한국 일변도로 북한에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다. 분단고착화를 위한 한·미군사동맹에 가담하고 있다』는 등 격렬하게 비판해왔다. 이번 일본의 북한방문단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인 지난 24일 밤 조선 로동당 주최 환영연에서도 국제부장인 김용순은 인사말을 통해 「2개의 조선」을 합법화하는 것에 의한 한반도 분단고착화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며 종전의 원칙론을 고수하고,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일 국교정상화 제안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북한이 일본측에 대해 국교정상화 교섭을 제의한 것은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한편,『통일의 깃발은내리지 않지만 당분간 정책을 변경,경제중심으로 힘을 쌓아 한국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에 김일성 주석의 78세라는 나이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이 건재해 있을 때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김 주석이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했던 것도,한국과의 경제관계를 착실하게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국에 대해 『최소한 중국만은 배신하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려 했던 것』(외무성 간부)이 아닌가 보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2개의 조선」 불인정은 「국시」와 같은 것이다. 그 근간에 영향을 미치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와 대일 국교정상화는 응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북한은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다나카(전중) 내각시절인 지난 72년을 계기로 『한·일기본조약의 파기가 북한·일본 국교정상화의 전제』라는 방침을 완화,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유연한 자세를 취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그후 관계개선은 기대했던 것 만큼 진전되지 않았으며,78년 일본 사회당의 아스카다 이치오(비조전일웅)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국교정상화를 거부,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제와서 느닷없이 국교정상화를 제의한 배경에 대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한·소 국교수립을 앞두고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술적 전환」이라는 것이다. 30일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소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의 국교수립은 결정적인 사실로 되어 있으며,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취해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국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후계자인 김정일에의 정권이양이 원활하게 될 수 없다는 고도의 정치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유력하다. 또 외무성에는 『북한측에는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호 석방과 때를 맞춰 일본측으로부터 배상·청구권 문제 등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속히 끌어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차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게오(경응)대오고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북한의 진의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함으로써 배상을 빠른 시일내 받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일본은 국교정상화가 안된 상태에서는 북한에 보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으며,정상화 교섭 없이는 대규모 경제협력을 얻기도 힘들다. 따라서 우선 국교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형식을 내놓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일본과 국교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한편 시즈오카(정강)대학 이즈미 겐(이두견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지난 연초부터 줄곧 일본과의 관계개선 준비를 해왔다. 일본의 국내정치가 당시 안정되지 못해 시간이 걸렸던 것뿐,의외성은 없다. 북한측은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교수립이 전제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북한의 논리로는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더라도 「2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본이 북한을 적시하지 않고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라도 국교를 맺는 것은 가능했다.북한은 기본자세를 변치 않고 있다. 일본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오해」가 풀린다면 분단고착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국교수립이라는 것이 된다. 다만 교섭은 쉽사리는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국내의 합의조성이 필요한데,거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일본 정부는 또 한국의 반응에도 배려하며 교섭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응/핵협정 가입 등 평화보장장치 선결/남북한 대화 고려,속도조절을 희망 한소 양국이 30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양국 수교 문제를 공식 협의하는 등 한소 수교가 임박한 가운데 북한이 일본측에 오는 11월 국교정상화 협의를 공식 제의함으로써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방북중인 일본의 가네마루(김환신) 전 부총리 일행이 『북한과 수교 전이라도 배상 문제를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일·북한 관계개선이 급진전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 급진전 관련보도에 대해 깊은 우려의 뜻을 일본 정부측에 전달하는 한편 이 보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강력한 대일 대응조치를 강구할 방침이어서 일·북한 관계개선 문제는 한일간 외교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일·북한 접근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범위내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특히 남북대화와 관계진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7·7선언에서 북방정책 추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조성을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거나 핵안전협정에 가입하지 않고 남북 관계개선이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일·북한간 급속한 접근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리어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일·북한이 접근하게 된 근본 동인은 한소 수교인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즉 한소 수교로 인해 일본과 북한의 「충족욕구」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독점적인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잃게 된 북한은 일본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게 됐으며 일본은 동북아의 주도권을 소련에 뺏기지 않기 위해 「북한카드」를 이용하게 됐다고 관측된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간 경제협력을 모색하지 않고 일본과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게 되면 결코 남북 문제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관계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이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는 북한을 이용,핵안전협정 가입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한일관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본이 대북접근에 적극적인 이유로는 또 ▲미·중국 수교의 닉슨쇼크(70년초) 이후 북한과의 수교는 미국보다 먼저 하겠다는 내부방침 ▲경제력에 상응한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압박감도 들 수 있다. 더욱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한반도 4강중 내심 한반도 통일에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 점을 감안할 때 「북한 카드」를 활용해 정치대국으로 운신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개선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북한 관계 급진전과 관련,우려하고 있는 핵심은 현상황에서 북한에 일본의 돈이 들어가면 중단기적인 면에서 북한의 대화·개방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소련의 원조 중단,중국의 대북 경제협력 한계성에 비추어 북한은 지금 상당한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런 때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돈이 들어가면 오히려 전반적인 대외개방보다는 김일성 노선의 고수 강화쪽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과 수교전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보상 문제를 오랜동안 어렵게 처리했던점을 감안할 때 한일 관계를 고려치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다. 북한측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제의에 대해 『그동안 견지해온 「1개의 조선」 정책의 변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교차승인과 2개의 조선 정책으로 전환했는지는 오는 10월16일 제2차 평양총리회담에서 그들이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를 보면 그 허구여부가 확연히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일·북한 관계개선 속도조절 문제는 한일 양국간 첨예한 외교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대북 관계개선 속도를 상당히 늦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북한의 조속수교 의사를 읽은만큼 일단 대북관계 속도를 조절한 뒤 한소 수교 진전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외교관계자들은 관측하고 있다.〈박정현 기자〉 ◎일 자민·사회당 대표 방북 4박5일/수교원칙엔 접근… 배상액수 등 난제/예상밖 성과로 되레 큰 짐 떠안은 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너무 많은 것을 안고 돌아왔다.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출발 당시의 계산은 제18후지산(부사산)호 선원 2명의 석방과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만 합의되면 대성공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4일부터 28일까지 4박5일간의 짧은 교섭과정에서 대표단은 스스로 당황할 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국교정상화」 교섭 문제가 공동성명에까지 포함됐다. 가네마루 단장은 묘향산 초대소에서 이틀밤을 머물며 김일성 주석과 3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외교적 성과」로 치부한다는 것은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성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측의 치밀한 「전술적 전환」에 타케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성과」란 하나의 목표를 놓고 대등한 입장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 목적을 갖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은,아무리 상대편이 원하고 있던 사항이라 하더라도 성과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상대방 전략에 대한 「대응의 필요」라는 짐만 지는 셈이다. 북한은 종래의 대일 파이프라인이었던 일본 사회당을 제치고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조준,전략의 카드를 마음껏 펼쳤다. 국제적 고립상황의 탈피,경제적 핍박의 해소,한국에 대한 견제 등 필요에 의한 카드였다. 어쨌든 이번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결과는 엄청났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물론 국교정상화 제의였다.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당국자들이 27일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과의 수교를 제의해온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때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한반도 전체의 안정,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미국과도 의견을 교환해가며 교섭을 진전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번 북한 방문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자민당의 첫번째 대표단 단장으로서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는 가이후(해부)총리의 자민당 총재 명의 서한을 전달하고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북한·일본 쌍방은 전면적으로 관계를 개선,새로운 우호관계를 수립한다는 데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28일 하오 발표된 북한 로동당과 자민·사회 3당의 공동성명에는 국교정상화 교섭을 양쪽 정부에 요청한다는 것을 비롯,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반성을 명기했으며 보상의 실현을 위해 정부간 교섭을 개시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일본 정부발행 여권에 북한 제외조항을 삭제한다는 사실,도쿄∼평양간 직행편 개설,연락사무소 설치,통신위성의 이용 등 현안도 명기됐다. 전문 8장으로 된 이 공동성명은 당초 28일 상오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에 의견이 엇갈려 난항을 거듭,이날 하오 5시 넘어 조인됐다. 기초작업은 자민당의 이시이(석정) 대표단 사무총장,사회당 야마하나(산화) 부서기장 및 북한 로동당 김양건 국제부 부부장 등 사이에 27일 밤부터 28일 상오 8시에 걸쳐 철야로 진행됐으나 결론을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가네마루 다나베 양단장과 로동당 김용순 서기가 대표자회의를 열어 조정했다. 이날 문제가 된 보상 문제에 대해 자민당측은 『앞으로 양국 정부간의 교섭을 개시,하루라도 빨리 실현에 노력한다』는 취지로 표현하자는 데 대해 북한측은 『실행해야 할 것은 당장 해야 한다』며 직접적 표현을 고집,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대일 국교정상화를 제안해놓기는 했으나 교섭의 본격화로부터 국교수립까지의 타임테이블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보상 문제의 조기타결과 확약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많은 과제를 안고 돌아왔다. 특히 한일관계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은 『몇년 전 같았으면 한국으로부터 맹렬한 반발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겠으나,한국에 대한 배려 때문에 「황신호」의 서행운전을 해야 할 것은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북한 관계의 급속한 접근은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미국·소련·중국 등 주변제국의 주목을 끌 것은 틀림없으며,일본 정부 자체로서도 일·소 관계 등과 관련되어 극히 어려운 외교교섭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북,일에 11월 수교교섭 제의/김일성,가네마루에… 배상규모 협의

    【도쿄=강수웅 특파원】 북한 조선노동당의 김용순 서기(국제부장)는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노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과의 3당대표 정치회담 석상에서 배상·경제협력 등 보상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오는 11월부터 전제조건 없이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 교섭을 개시하자』고 일본측에 공식 제의했다.〈관련기사 3·4면〉 또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별도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간 교섭인 외교당국실무자 협의석상에서도 북한측은 『오는 11월 상순 평양에서 전제조건 없이 국교정상화교섭을 하면 어떠한가』라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 외무성도 확인했다. 북한측의 국교정상화 제안은 26일과 27일 열린 묘향산에서의 김일성 주석­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 등과의 회담에서도 나왔다고 일본의 대표단원들이 밝혔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과 이미 국교를 맺고 있는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며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이번 북한측이예상을 뒤엎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제안해온 것은 북한 외교방침의 일대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나아가 한반도정세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소련·중국 등에도 큰 파문을 불러 일이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국교정상화 제안은 28일 발표될 공동성명에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조선노동당 김용순 서기는 이날 저녁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개최된 노동당과 자민·사회 3당 정치회담에서 현안인 제18 후지산마루(당사산환)사건으로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베니코 이사무(홍분용) 선장과 구리우라 요시오(율포호웅) 기관장을 10월 중에 석방한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26일 하오와 27일 상오 2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단독회담을 갖고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세계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는 남북통일방안·유엔가입 문제 등에 관한 북한측 입장의 설명이 있었으며,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남북이 하루라도 빨리 통일될수 있도록 대화를 넓혀나가도록」 김 주석에게 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은 김 주석의 돌연한 요청에 따라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묘향산 초대소에서 1박을 더하며 이루어졌다. 1차회담은 26일 하오 6시30분 김 주석이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숙소로 방문,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으며 2차회담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27일 상오 9시 김 주석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개최됐다. 이로써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북한방문에서 모두 3번에 걸쳐 김 주석과 회담했다. 이번 2차례에 걸친 단독회담에서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보상방법과 규모 등에 관한 구체적이고 깊이있는 협의가 있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는 별도로 자민·사회 양당대표단과 함께 동행한 일본의 외무·통상·운수·우정성 등 정부실무자들은 27일 상오 9시30분 사상 처음으로 북한당국의 실무자들과 정부간 접촉을 개시해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일본 여권상의 북한 적용제외조항 삭제,직행편 개설,북한­일본간의 무역채무 문제,통신위성 이용 등 현안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 북한 “3차회담서 수교 논의” 제안/방북 가네마루 기자회견

    ◎평양태도 예상보다 상당히 진전/김일성,간절히 독대 요청… 국제정세 토론 북한 김일성주석과 2차례에 걸친 단독회담을 가진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 부총리는 묘향산으로부터 평양에 돌아와 27일 하오 9시35분부터 고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회담내용을 설명했다. 어제(26일) 김주석으로부터 『어떻게해서라도 당신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전달이 있었다. 그때 나는 『혼자서는 곤란하다. 지금까지 같이 행동해 온 다나베(전변) 사회당 부위원장도 동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제발」이라는 바람에 만나게 됐다. 그날밤 김주석은 내 숙소를 찾아와 『세계정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회담에서는 지난번 김주석의 중국방문 및 이라크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라크문제에서 무력사용은 절대로 안된다고 말했더니 김주석은 『당신 생각에 찬성한다. 대화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보상문제에 대해 김주석은 돈문제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신의 성의는 잘 알겠다』고만 말했다. 이런 지도자가있어 오늘의 공화국이 있다고 절실히 느꼈다. 공동성명도 북한방문을 사전조정한 선발대에 맡겼다. 3당의 대화로 여러가지를 타결했다. 어느 신문사로부터 김주석에게 지국설치에 대해 진정해 달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했다. 이에 대해 김주석은 『공평한 보도를 해준다면,국교가 된다면 그런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어제부터 오늘에 걸쳐 국교정상화 및 후지산마루(부사산환)문제가 논의됐는가. ▲부탁은 했다. (이때는 석정일의원이 각론은 다나베 부위원장에게 부탁한다고 말했다) ▲다나베=각론이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시이=나의 표현이 잘못됐다. 서론이 끝났기 때문에 총론의 계속을 부탁한다. ▲다나베=3자회담에서 국교수립을 서두르자는 제안이 북한측에서 있었다. 여기에는 2개의 측면이 있다. 첫째는 국제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둘째는 일본정부의 일부에 국교수립전에 보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을 고려한 것이다. 공동성명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 교섭을 오는 11월부터 시작하자는 것을 정부에 권고하는 내용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북한의 태도가 상당히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다나베=정확한 판단이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진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상화의 전망은. ▲다나베=없다. 그런 것은 나오지 않았다. ­국교수립제안에 대한 자민당의 평가는. ▲이시이=논리적으로 옳은 것이다. 가네마루 선생은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 ­자주적 평화통일에의 협력은. ▲이시이=자민당도 그런 기분을 갖고 있다. 자주적 통일을 했으면 한다. 분담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의 기본적인 인식이다(이날 하오의 기자브리핑은 김일성주석­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단독회담 내용을 듣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서두에서만 잠시 언급했을 뿐이다. 「대물정치인 가네마루」는 무엇인가 절제하는 빛이 역력했다).
  • 북의 계산 “일본을 대 서방 접근창구로”/묘향산회담… 도쿄의 시각

    ◎「김환루트」 통한 돈줄 확보 타진/연락사무소는 한소수교 버금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일본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의 2·3차에 걸친 파격적인 단독회담은 북한측 자세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도쿄의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26일 하오 6시30분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 일행과 떨어져 묘향산 초대소에 혼자 남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숙소로 방문,1시간 동안 세계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회담에서는 남북통일방안,남북한 유엔가입 문제,남북대화 및 교류촉진 문제 등도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지난 20일 북한방문을 앞두고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나는 자리에서 하루라도 빨리 남북 두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대화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히고 『정치는 국민과 민족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남북대화를 촉진토록 하는 것이 이번 북한방문의 최대 바람』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같은 의욕을 가진가네마루 전 부총리와 45년간 북한을 이끌어 온 김일성 주석과의 한반도정세논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긴장완화를 위해 큰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동구의 사회주의 제국이 급격한 변혁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개방정책에 등을 돌려 온 북한측이 일본의 정치 지도자와 처음으로 세계정세를 논했다는 사실 자체가 태도변화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사회당부위원장을 포함한 26일의 수뇌급 3자회담이 북한·일본간의 새로운 우호관계수립을 위한 선언이며,쌍방의 현안 해결을 위한 방향 제시라고 본다면 26일과 27일의 2차에 걸친 단독회담은 북한의 입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구체적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번 단독회담은 북한측의 돌연한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묘향산체재 하루 연장은 대표단을 태우고 평양에 돌아오는 특별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조선로동당 김용순 서기를 통해 김 주석으로부터 『가네마루씨와 꼭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는뜻을 전해왔기 때문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26일 수뇌급 3자회담에서 일본을 지나칠 정도로 추켜올리는 발언을 해 일본 정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나는 지금 일본의 현상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치대국도 되어 있다. 여기까지 이른 것은 일본의 정책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채권국이며,미국은 채무국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의 저의가 무엇인지에 관해 북한관계 전문가들은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북한이 자존심을 꺾고 일본에 접근함으로써 경제협력이라는 실리를 취하고,동시에 고립화를 면해보자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동맹국인 중국·소련으로부터도 「다루기 어려운 상대」로 불릴만큼 폐쇄적 자존심이 강했던 북한이 이처럼 「대일추파」를 던지는 동기는 명백히 돈 때문이라고 27일자 산케이(산경)신문은 지적했다. 또 김일성 주석이 일본과의 우호친선을 꾀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한 것은 김일성체제 유지 및 북한의 당면 최대과제인 김정일 서기에의 세습을 어떤형태로든 굳히려는 의도에서 과감한 대일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평양정권은 지금 자본 기술은 물론 식량 에너지조차 부족,피폐상태에 있는 경제를 이대로 끌고 가다가는 김일성 주석 사후 후계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고 보아도 좋은 상황이다. 따라서 그 돌파구로서 일본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이번 김­김(환)단독회담이 내포하는 중요한 의미의 또 하나는 대일본 접근 파이프라인을 종전의 일본사회당에서 집권자민당으로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26일 하오 4시를 조금 지나 묘향산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특별열차내의 사회당 대표단 단장 다나베 부위원장의 표정은 착잡했다고 동행보도진이 전해왔다. 김일성 주석의 요청에 따라 자민당측 단장인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단독회담을 위해 묘향산에 그대로 남게되고 오래 전부터 대북한 파이프역을 자임해 온 사회당측 단장은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북한·일본의 외교주도권이 사회당으로부터 자민당으로 옮겨진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또한 북한측이 자민당내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가네마루 루트를 조준한 것이다. 이제는 북한·일본관계는 배상·경제협력 등 보상문제 등의 구체적인 타결책을 마련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번 대표단과 동행한 일본정부의 외무·통상·운수·우정성 등 실무자들은 사상 최초로 북한당국 실무자들과 접촉을 개시했으며,이와 병행해 자민당대표단도 북한조선로동당 관계자들과 개별회담에 들어갔다. 북한의 대일접근 의욕은 로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의 보도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7일자 로동신문은 1면 톱기사로 「위대한 김일성 주석이 가네마루 다나베 씨를 접견」이라는 제목아래 1면 거의 전부를 할애했다. 사진도 1면에는 김 주석을 둘러싼 가네마루 다나베 단장의 사진 및 대표단 전원과 김 주석과의 기념사진을 게재했으며,2면에는 동행기자단과의 기념촬영사진을 실었다. 이번 가네마루 대북한외교가 가져온 일련의 변화에 대해서는 일본의 학자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와다나베 아키오(도변소부) 동경대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이번 북한방문은 외교스타일로서는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당차원에서의 협의를 거쳐 정부레벨로 이행시키는 교량역으로서는 상당히 깊은 부분까지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로서는 이례적인 것이다. 한국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어 외교면에서 북한보다 앞서있기 때문에 전에 비해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일본 사이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그 의미는 크다. 한국도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북한에 서방측과의 파이프가 생겨 인적 정보교류가 가능해지면 북한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간의 문제이지만,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처럼 동서체제를 넘은 안전보장기구를 아시아에도 설치,한반도의 군사 정치 문제에 대해 무릎을 맞대고 협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북한의 대일 접근은 개방정책에로의 전환의 조짐일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나온 견해이다.〈도쿄=강수웅 특파원〉
  • 경협으로 풀리는 북한­일의 「빗장」/김일성ㆍ가네마루 회담의 의미

    ◎고립ㆍ경제난의 돌파구로 활용/「사죄ㆍ배상카드」로 서둘러 접근/격식 깬 묘향산대좌… 관계 정상화까진 험로 첩첩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마치고 나온 일본의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는 『일본을 위해 대단히 유익한 회담이었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사회당측 단장인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도 『주석의 관대한 결단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주목을 끌었던 김일성­가네마루­다나베의 3자회담은 일응 북한ㆍ일 쌍방이 만족할 만한 선에서 매듭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물론 김일성 주석이 자민당 총재명의로 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 총리의 「사죄서한」을 받아들고 새로운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자고 말한 것은 틀림없다. 또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방문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계기인 제18후지산마루(부토산환)호 선원 2명의 석방을 확약했다는 사실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본이 전후 45년 만에 처음 파견한 자민ㆍ사회 양당의 초당파적 대표단이 거둘 수 있는 제1차 목표는달성됐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에 의한 36년간의 식민지 지배와 전후 45년간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계속 되어온 일ㆍ북한 관계가 81년 만에 본격적 관계개선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이 이처럼 유화제스처를 보이고 나온 배경은 여러가지 있다. 최근 한­소,한­중의 접근 등으로 외교적인 고립감을 더해가고 있는데다,심각한 정도를 넘는 국내 경제문제 등으로 일본측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활로를 찾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ㆍ일 사이의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일본이 대북한 관계에서 짊어지게 될 짐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은 이번 3자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묘향산 별장에서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은 별장에 앉아 평양을 방문한 「손님」들을 불렀다. 가네마루라는 존재는 일본정계 최고의 실력자이다. 그가 이끄는 89명의 대표단은 25일 하오 6시30분 김일성스타디움에서 거행된 5만군중의 매스게임을 참관하기 직전,김일성 주석의 면담이 평양 이외의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는 통고를 받았다. 『1박할 준비를 하고 따라오라』는 말에 일본의 「최고실력자」는 3시간 동안 야간열차를 타고 1백50㎞나 떨어진 묘향산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북한방문단 멤버의 표현대로 『외교관례상 일본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24일 밤의 환영연이 30분 늦게 개최되었던 것도 같은 케이스에 속하는 일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가네마루­다나베 양단장이 흡족해 하는 것과는 달리,이번 대표단의 교섭이 결코 일본측의 페이스대로 움직여지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문제는 김일성 주석이 26일의 3자회담과 가네마루 단장만을 따로 불러 제2차 회담을 갖고 『우호관계 수립에 동의해 준 대가』에 있다. 이 대가는 배상과 경제협력을 통한 보상이며,결국 돈 문제에 귀착한다. 25일 조선노동당서기 김용순 국제부장과 자민ㆍ사회당 양쪽 단장 사이에 개최된 제1차 정치회담에서도 북한ㆍ일 쌍방은 사죄와 보상 문제의 선결로 관계개선을 꾀하자는 것에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단장은 보상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국교정상화가 안된 시점에서 보상한다는 것은 여러 이론이 있으며,국제법상의 관계에 비춰볼 때도 걸맞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온 이상,역시 정치적 결단으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국제법 및 관습이 있기 때문에 국가와 국가의 관계개선이 될 수 없다면 정치적 결단을 해서라도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다만 수속절차를 밟아야 될 필요는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정부간 절충의 창을 열고 사무소를 설치한 가운데 보상 문제를 착실히,가능한 한 조속히 실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나 자신은 일ㆍ북한 관계개선에 정치적 생명을 걸더라도 완수할 생각이다. 북한측이 응해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북한의 대일 청구권 및 경제협력은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을 진행시켜가는 과정중에 협의한다는 기본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있다. 단 일ㆍ북한 관계개선의 큰 전환점을 맞고 있는 단계에서 원칙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결과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우려도 강하다. 일본정부는 북한은 교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손해배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일ㆍ북한 쌍방이 각각 상대편에 갖고 있던 재산 및 청구권을 어떻게 처리할까라는 청구권 문제의 차원에서 다룰 방침이다. 전후 배상협정을 맺은 필리핀 등 아시아 제국과는 달리 식민지에서 독립한 북한에 대해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상 청구권 문제로 취급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한국과는 지난 65년 국교정상화때 청구권ㆍ경제협력협정으로 무상 3억달러,유상 2억달러의 경제협력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일본 외무성측은 북한과의 경우도 『한국과의 밸런스를 취한다』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처리할 생각이다. 이같은 일본측 입장에 대해 북한측에서는 지금 단계에서 그 어떤 견해도 나타내 보이지 않고 있다. 25일 김용순 서기와의 3자회담에서 『최종적인 타협점을 찾게 됐을 때 북한측의 견해를 밝히겠다』고만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주목을 끌었던 김일성 주석과의 수뇌급회담은 끝났다. 쌍방은 새로운우호관계를 수립한다는 데 동의했다. 남은 것은 세계 초일류의 경제대국 일본을 상대로 경제적 궁핍에 찌들어 있는 북한이 어떤 경제전략적 대가를 요구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일성ㆍ가네마루 제2차 단독회담은 바로 그 「전략」을 의미한다.
  • 묘향산회담 마친 일 대표단 1문1답

    ◎“일­북한 현안 충분히 이야기했다”/「가이후친서」 내용 김일성 주석도 납득/「보상」 문제 원칙합의… 규모는 결정안해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마친 일본 자민당대표단 단장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는 26일 하오 묘향산초대소에서 동행기자단과 회견을 갖고 회담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내일도 김 주석과 만나는 목적은 무엇인가. 오늘 회담의 감상은. ▲목적은 모르겠으나 다시한번 주석이 만나고 싶어한다고 김용순 서기가 전해왔다. 단둘이 대화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용은 이야기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오늘 나는 사죄와 보상 문제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사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본다. 보상은,오늘 여기서 금액을 결정하는 것 등은 일본의 관례ㆍ법률 등이 있기 때문에 창구를 정해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금액은 저쪽에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한가지,핵 문제로 일본에서도 여러가지로 말이 있는데,핵은 있는가. 그런 공장도 있는가를 확실히 물어보았다. 김 주석은 핵병기의 제조는 하고 있지 않다. 정찰위성에서 보고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그것은 소련이 이전에 만든 원자력연구소다. 개발할 능력도 없고 의사도 없다. 조사해보고 싶다는 경향이 있는데,그렇다면 동시에 남쪽 핵의 존재에 대해서도 조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주석은 세부적인 것은 노동당 서기와 이야기해 달라,법률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법률이 있더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는 모든 것이 합의됐다고 생각한다. ­김 주석은 보상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가. ▲김 주석은 금액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선발대와 김용순 서기가 충분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주석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락사무소의 이야기는 있었는가. ▲3당이 합의하고 있는 일이다. 연락사무소는 양쪽에 둔다. ­정부간 교섭에 주석도 합의했는가. ▲총체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한편 사회당측 단장인 타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도 묘향산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특별열 차안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주석과의 대화내용을 전했다. ▲김일성 주석=두분의 방문을 환영한다. 북한ㆍ일본 관계는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자민당과의 교류가 가능하게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가이후 총리의 친서를 받았는데,노동당과 자민당과의 관계개선을 확인하고 싶다. 3당이 협력해서 북한ㆍ일본 관계개선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전력해 나가자. 가이후 총재의 친서를 높이 평가한다. 가이후 총리에게 잘 전해주기 바란다. 도이(토정) 사회당 위원장으로부터도 친서를 받았다. 자민당과 긴밀한 관계가 됐기 때문에 10월10일의 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식에는 자민당 대표를 초청하겠다. 나는 지금 일본의 현상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치대국도 되어있다. 여기에서까지 이른 것은 일본의 정책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채권국이다. 미국은 채무국이다. 스타워즈 계획으로 빚이 다시 늘고 있다. 일본은 헌법에 군사대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규정,실행해왔다. 그것이 오늘날 일본의 좋은 상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 북한­일,「새 관계수립」 합의/김일성ㆍ일 대표단 회담

    ◎연락사무소 설치ㆍ선원 석방등 타결/김­가네마루 오늘 2차 단독회담 【도쿄=강수웅 특파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26일 상오 9시45분부터 약 1시간30분동안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1백50㎞ 떨어진 묘향산 회의장에서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부총리,사회당의 타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과 수뇌급 3자회담을 갖고 새로운 북한­일본 관계를 수립할 것에 합의했다. 이 3자회담 이후 가네마루 단장은 대표단 일행과 떨어져 묘향산에서 1박을 더하며 27일 상오 김일성과 단독 제2차 회담을 갖는다. 이날 수뇌급 3자회담에서 북한­일본 사이의 「새로운 우호관계구축」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하게 됨으로써 보상에 관한 정부차원의 절충,상호 연락사무소설치,제18 후지산마루(부사산환) 선원 2명의 석방 등 현안은 일거에 해결되게 됐다. 제18 후지산마루 문제에 관해 김 주석은 『가네마루ㆍ타나베 두분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시기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이들의 석방에 응한다는 자세를 보였다.이날 회담석상에서 김 주석은 핵 문제에도 언급,『북한은 핵을 제조하고 있지 않으며,핵을 제조할 수 있는 경제력도 없다』며 핵 보유 의혹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이날 1차회담에서 가네마루단장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의 뜻을 표명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의 자민당총재 명의 서한을 직접 전달했으며,속죄와 보상의 뜻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김 주석은 『높이 평가한다. 총재인 가이후 총리에게 잘 전해달라』며 사죄 문제는 이로써 일단락되었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로써 전후 45년간 외교적 공백기를 거쳤던 북한­일본 관계는 새로운 역사의 한 폐이지를 열게 됐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일본의 정권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자민당 실력자와 회담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예정에도 없던 제2차 단독회담을 갖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라고 일본 정가에서는 보고 있다. 이날 3자회담에는 김용순서기가 배석했다. 이날 회담은 지방순시중인 김일성의 일정에 맞춰 평양에서 떨어진 묘향산에서 실현됐다. 25일 밤 급거 특별열차편으로 묘향산으로 갔던 대표단과 동행기자단은 가네마루 단장만을 제외하고 26일 하오 2시 묘향산을 출발,하오 6시 열차편으로 평양에 되돌아 왔다. 자민ㆍ사회 양당의 대표단은 이날 상오 3자회담 종료후 김일성을 예방했다.
  • 일­북한,「사죄ㆍ보상」의견접근/일정당ㆍ북한노동당대표 어제 1차회담

    ◎일선 연락사무소 설치 공식제안/김일성­가네마루 오늘 연풍서 회담/가이후 친서도 전달할 듯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의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과 북한의 김일성주석과의 26일 회담은 평양을 떠난 별개의 장소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단을 수행취재중인 보도진에 따르면 북한측은 25일 하오 대표단에게 『모처로 간다. 일박할 각오를 하라』고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으로 볼때 현재 김일성은 지방을 순시중이며,회담장소는 연풍호반의 김일성별장이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표단과 기자들은 이날 하오 9시가 지나 열차편으로 묘향산 방면으로 30분 정도 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가네마루신(금환신) 전 부총리,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사회당 부위원장은 25일 상오 10시15분부터 약 2시간30분동안 평양시내 만수대 의사당에서 북한 조선노동당 서기 김용순 국제부장과 제1차 3당 정치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자민당측 단장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ㆍ경제협력 등 보상문제에 관해 『성의를 갖고 교섭에 임함으로써 착실하고 신속히 실시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네마루 단장은 또 김일성주석 앞으로 보내는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자민당 총재명의의 사죄서한을 26일 전달한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측도 사죄와 보상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일치,가네마루 단장의 발언을 평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제1차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26일 김일성주석과의 회담에서도 일ㆍ북한 관계개선이 더 한층 진전될 것으로 일본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는 일본측에서 양단장 이외에 이시이 하지메(석정일) 자민당 외교조사회장대리,구보 와타루(구보선) 사회당 부위원장이,북한측에서는 김양건 조선노동당 국방부 부부장 등이 동석했다. 이날 회담에서 일본측은 연락사무소 설치를 정식으로 제안했으며,제18차 후지산마루(부사산환)문제는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기본적 문제에 합의가 이루어지면 개별적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선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받아냈다.
  • 일「경협보따리」에 은근히 기대/평양/일본대표단 맞는 북한의 자세

    ◎실리 겨냥,교섭 관례 깨고 이례적 환대/가네마루­김일성 회담일정도 앞당겨 일본의 초당파적 방문단을 맞은 북한측이 종전의 교섭관례를 깨고 몇몇 대목에서 「특이성」을 보여 일본 정계와 외교가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 특이사항의 첫번째는 김일성주석과 가네마루 신(금환신),다나베 마코토(전변성)단장에 의한 수뇌급회담 일정이다. 이 회담에 대해 가네마루 전부총리는 『평양도착후 즉시 김주석과 만나고 싶다』며 25일 실현을 희망했었다. 그것은 우선 톱레벨에서 전체적인 방향을 정하고 실무차원의 현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하자는 복안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북한방문단의 일원인 사회당소속 참의원 후카다 하지메(심전조) 국민운동국장을 대표단 보다 한발 앞서 지난 21일 파견,회담일정을 조정토록 했던 것도 그런 뜻에서 였다. 그러나 이런 일본측 희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측의 지금까지의 관례대로 교섭 최종일인 27일에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북한측은 이러한 예상을 깨고 하루를 앞당긴 26일에 수뇌급 회담을 갖기로결정했다. 가네마루 단장이 희망한 25일과 북한측 관례인 27일의 중간시점,26일로 결정된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북한측이 가네마루 방문단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측의 기대는 물론 경제협력이며 돈이다. 대표단이 갖고 온 「선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한편 하루를 당겨주는 선심을 보임으로써 더 많은 「실리」를 얻자는 계산이다. 일본측도 이번 수뇌급 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전후 45년간 단절되었던 외교상의 공백을 이번 회담 한번으로 거의 메워 보자는 희망이다. 그러나 희망의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보는 것이 도쿄(동경)의 시각이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과 조선노동당의 접촉이 25일 상오,종래의 단체교섭으로부터 시작했던 관례를 깨고 갑자기 가네마루ㆍ다나베 양단장과 조선노동당 서기 김용순국제부장의 3자회담으로 막바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김일성주석과의 회담을 위한 일종의 예비회담의 성격을 갖는다. 이 예비회담에서 현안의 대강을 처리,26일 수뇌급 회담을 원만히 진행시키자는 준비절차이다. 25일의 3자회담에서는 일본여권의 기재사항문제,통신위성이용,연락사무소 설치 등 개별문제까지 토의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들 현안은 실무레벨에서 협의할 성격이다. 그러나 이것을 3자회담,나아가 수뇌급 회담에까지 끌고 올라가는 것은 일ㆍ북한 쌍방의 관계개선 전제인 배상문제 및 남북통일문제 등 정치테마를 우선 협의한 뒤 개별현안을 「톱다운」방식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실무자의 결정을 거쳐 확실하게 정부간 교섭에 위임하자는 북한측의 의사를 대변하는 사항이다.이것은 가네마루 단장의 속셈과도 일치한다. 현재 북한은 「2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것을 한사코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는 북한의 극적인 대외정책전환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나타내고 있는 「실리」에의 관심으로 볼 때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문제 등의 현안해결은 물론 일ㆍ북한 정부당국간의직접대화 실현을 한발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북한방문단의 카운터 파트인 김용순 국제부장은 24일밤 조선노동당주최 환영만찬에서 인사말을 통해 「2개의 조선」을 합법화하고 『한반도분단 고착화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며 종전의 원칙론을 고수했다. 그러나 「사죄」를 문제삼거나 다시 거론하는 일이 없이 기자단에 대해 『일본여권에서 북한제외조항이 삭제되고 정치활동금지의 제약이 없어진다면 일본에 가겠다고 나는 결심했다』고 말을 걸었다. 원칙론속에 감춰진 이같은 언동도 실상은 북한측 관료의 사고의 변화를 보여주는 특이점으로 관계자들은 꼽고 있다. 이번 가네마루 방북단의 평양 도착 때에는 김용순 국제부장만이 공항에 출영나왔다. 김이 북한의 실질적 외교부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요직에 있다고는 하나 그의 출영은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측의 지적이다. 가네마루 전부총리는 누가 무엇이라해도 일본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이다. 그의 북한방문을 일본정계에서는 일대 외교안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정도이다. 이같은 사람에 대한 공항출영은 최소한 「총리격」이 맡았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점 역시 북한측 「계산」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 격을 떨어뜨려 놓고 다른 기회에 기분을 전환시켜 줌으로써 더큰 「실리」를 취하자는 전략의 하나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 김일성­가네마루 내일 회담/일 의원단 평양 도착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꾀하기 위한 일본의 자민ㆍ사회 양당 합동방문단(단장 김환신 전부총리ㆍ전변성 사회당부위원장) 일행 89명이 24일 하오3시16분 일항(JAL)특별기편으로 평양공항에 도착,28일까지의 공식일정에 들어갔다. 그동안 주목을 끌어왔던 북한의 김일성주석과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부총리ㆍ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사회당부위원장간의 수뇌급 3자회담은 오는 26일 상오로 결정됐다. 가네마루 자민당대표단 단장은 평양도착 후 하오 6시30분부터 개최된 조선 노동당주최 환영만찬에서 인사말을 통해 『일본의 행위가 참기 어려운 고통과 장해를 초래한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반성하며 사죄한다』며 식민지지배에 대해 직접적인 표현으로 사죄의 뜻을 표하고 이번 북한방문의 목적에 대해 『이웃 나라와 창을 열고 우호적 관계개선을 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나베 사회당측 단장도 『일본과 북한의 3당이 「화해의 대의」에 서서 성실한 노력을 쌓아간다면 역사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다』며 정부차원의 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했다. 대표단은 이날 낮12시59분 하네다(우전)공항을 출발,사상 처음으로 평양으로 직행했다. 평양공항에는 조선 노동당 서기 김용순 국제부장 등 당 관계자들이 출영했다. 대표단의 일정은 ▲25일 상오 10시부터 가네마루ㆍ다나베ㆍ김용순 3자회담 ▲26일 상오 대표단 김일성방문 및 김­가네마루ㆍ다나베 수뇌급 3자회담 ▲27일 정부 관계실무자회담 및 자민­노동,노동­사회당 회담 및 전체회담 ▲28일 전체회담 등으로 짜여졌다. 이들 대표단은 방문 일정을 끝낸 뒤 공동성명 또는 보도용 커뮤니케이션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수행보도진은 대표단의 동정을 소련 등 제3국을 거치지 않고 처음으로 평양에서 직접 통신위성을 통해 내보냈다. 한편 이날 상오 다나베 사회당측 단장은 NHK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일성 조선노동당 총서기 앞으로 보내는 가이후(해부) 자민당총재의 서한을 휴대하고 간다고 밝혔다.
  • 일 정당대표단 오늘 평양에/가이후총리 사과친서 휴대

    【도쿄=강수웅특파원】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부총리와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민ㆍ사회 양당 북한방문단이 24일 하오 일항 전세기편으로 하네다(우전)공항을 출발,평양으로 직행한다. 가네마루 전부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문제와 관련,가이후(해부)총리가 자민당 총재자격으로 보낸 친서를 휴대함과 동시에 자신으로서도 사죄의 뜻을 표명할 생각인데 가이후총리는 이 친서내용에 다케시타(죽하) 전총리가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고 말한 지난해 3월의 국회답변을 인용,솔직한 사죄의 뜻을 표명키로 결정했다. 그 결과 가네마루 전총리의 방북의 최대 초점인 사죄문제는 ▲가이후총리의 김일성주석 앞으로의 서한 ▲가네마루 자신에 의한 구두사죄 ▲가을 임시국회에서의 가이후총리 답변 등 3단계로 대응키로 방침을 굳혔다. 또 북한에의 「사죄와 배상」문제와 관련,일ㆍ북한 관계개선의 장애가 되어 있는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선발대와 조선노동당과의 대화 결과승무원 2명의 조기석방의 방향으로 굳혀지고 있는데 자민ㆍ사회 방북대표단은 22일 이들 2명이 대표단과 같은 직행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교섭할 방침임을 확인했다. 이번 북한방문단이 조선노동당과 논의할 사항은 ▲식민지 지배에의 사죄 ▲배상 ▲위성통신 ▲직행편 개설 ▲일본여권상의 기재사항 변경 ▲제18후지산마루문제 ▲연락사무소 개설 ▲경제ㆍ기술교류 등 8개 항목이다. 한편 일본의 소식통은 일본대표단과 북한 노동당과의 공동성명이 방북단이 귀국하기 전에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 평양으로 달리는 일본「전방위 외교」/자민ㆍ사회당대표 방북의 함축

    ◎총리친서 휴대,경협 돌파구 모색/연락사무소ㆍ직항로 개설등 타진/북한,식민통치 사죄ㆍ「교차승인」 반대 요구할 듯 일본 집권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 부총리의 북한방문은 「역사적」인 것으로 일본정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전후 45년간 국교가 없이 외교적 공백기간을 거쳤던 일ㆍ북한관계를 개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일ㆍ북한 사이에는 이데올로기의 차이라는 깊은 간격이 있으며,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 등 현안도 많다. 지금 한반도의 기류는 변하고 있다. 한국의 폭넓은 북방정책과 미ㆍ일ㆍ중ㆍ소의 활발한 접근에 따라 한반도에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려 한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가네마루 전 부총리와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의 24일 북한방문의 뜻은 크다. 일ㆍ북한 양측 실력정치가들은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가,이점에 대해 일본 정계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지난 20일 『평양에 도착하면 곧바로 김일성주석과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일ㆍ북한 쌍방이 과거 현재의 관계 및 남북한문제 등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원칙론만을 고집한다면 교섭은 정체되어 버린다. 따라서 교섭이 미로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선 톱 클라스의 회담에서 대강의 방침을 결정하자는 계산이다. 북한은 이번 교섭에서 ▲일제에 의한 36년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전후 45년간에 걸친 적시정책에의 사죄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위해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교차승인등에 개입하지 말 것등을 주요 요구항목으로 정해 놓고 있다. 이 가운데 「배상」은 교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한국에 대해서도 「대일 청구권」이라는 형식으로 결말을 보았다. 그러나 북한측은 독립을 위해 대일투쟁을 했기 때문에 「배상」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점에 대해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한국과 같은 관점에서 대처하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북한은 기술혁신의 낙후등으로 경제정체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 때문에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자신이 사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가이후(해부) 자민당총재」의 친서를 휴대,제협력의 돌파구를 만드는 것으로 일ㆍ북한 관계를 한층 진전시키겠다는 의향으로 교섭에 임할 자세이다. 일본정부 내에는 『국가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에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강한 반발도 있다. 그러나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은 이런 원칙은 일단 제쳐두고 대 북한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표단에 있어서는 이같은 국교문제와 직결되는 한반도통일문제가 또하나의 짐으로 되어 있다. 현재 한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국가는 1백40여개국이며,북한과는 1백개 전후의 국가가 국교를 수립했다. 이 가운데 남북한 양쪽과 국교를 맺는 소위 「교차 승인국」은 80여개국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미ㆍ소ㆍ중ㆍ일 등 4개국의 교차승인에만 『2개의 조선을 고착화시킨다』는 입장을 고수하려 한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에게 비망록을 들이대며 한소 국교수립 에 반발했던 북한은 그 메모 내용을 기관지「민주조선」을 통해 공표함으로써 적의를 보였다. 북한에 의한 이같은 최초의 대소 공개비난에는 교차승인을 막으려는 저의가 담겨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정부로서는 긴장완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교차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운 원칙문제를 『단숨에 처리』(가네마루 주변)해 하나의 매듭을 지어보려는 것이 톱레벨과의 회담목적이다. 그러나 「정부승인」 문제가 김일성과의 회담이라고 해서 당장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다. 이번 북한방문에서 자민ㆍ사회 양당의 「공동작업」으로 펼치는 대 북한 외교는 일본의 36년간의 식민지 지배,전후 동서대립의 상황속에 서로 적대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쌍방사이에 직접 대화를 가짐으로써 적어도 제1차 정부간 교섭을 주선,궤도를 깔아 놓자는 것에 최대의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도쿄ㆍ평양에의 연락사무소 설치이다. 북한은 지난번 자민ㆍ사회 양당 선발대에 일본 여권상의 『이 여권은 북한을 제외한 모든 국가 및 지역에 유효하다』는 적용제외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정부는 『자국민 보호가 가능한 상태가 전제』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북한방문단은 일본과 대만사이의 형식을 모델로 일부 영사업무가 가능한 사무소 개설을 제안할 방침이다. 북한은 「2개의 조선」을 배제하기 위해 일본과의 국교는 바라지 않고 있으며 일본측의 연락사무소 제안을 수락한다면 점차로 「2개의 조선」을 스스로 인정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북한측이 일본여권의 제한조항 삭제,대일 경제교류의 확대를 요구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연락사무소 설치에 응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면에서의 실무적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방문을 결심하게 된 제18 후지산마루(부사산환)의 선장등 2명의 석방에 대해 그는 『이미 해결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인식을 나타내고 있으며 10월중에는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밖에 통신위성의 이용,직행항공로 개설,청소년교류 등에 대해서는 자민ㆍ사회 양당과 조선노동당측이 분과위원회에서 결정할 예정이어서 쌍방이 원하는 방향에서 해결될 전망이다. 이번 일본 대표단의 방북은 여야 공동대표단이란 전례드문 형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의 총력외교라는 점에서,또 그 완고한 북한의 벽에 일단 틈이 생겼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북한은 일본에 있어서는 미지의 부분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비롯한 이번 방문단의 앞길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할 것으로 이곳 정가에서는 지켜보고 있다.
  • 시장경제 압력에 「주체경제」 붕괴(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1)

    ◎「하나의 조선」­김일성 절대권력 포기 불가피 북한도 마침내 개방과 개혁의 변화로 나선 것인가. 남북총리회담,축구교류 합의,아시안게임에서의 개방적 자세,방북 소외무장관 냉내 등은 분단 45년 만에 처음 보는 북한의 변화다. 김일성주석이 중국을 방문하고 일본 자민당 중진 가네마루(김환신)의원이 이끄는 대표단이 도쿄ㆍ평화 직항편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평양에서 전해지는 소식통도 그동안과는 같지 않은 변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북한은 정말 변하고 있는가,변하고 있다면 어떤 변화인가,결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외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진단해 본다.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우선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북의 권력 그 자체인 김일성이라는 정치인격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현재까지는 북한과 김일성과는 같은 실체이며 양자가 분리될때만이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독일의 통일은 소련이 변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반면 대칭적으로 북한은 김일성이 변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과거 잔재적인 기독교문화를 기초하여 거의 「은혜」롭고 「자애」로운 기독교의 「아버지 하나님」에 가까운 「어버이 수령」의 나라라는 「신성국가」를 구축하여 왔다. 동독의 울브리히트는 처음부터 전 독일의 「공산주의화」 또는 「주체사상화」라는 생각은 없었다. 울브리히트 초기부터 「두개의 독일」정책으로 시발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분단」된 것이 아니라 두개의 독일이 「탄생」하였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동독은 소련의 「인조」국가였기에 소련이 변하면서 독일의 통일은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대신하거나 극한적으로 대칭적인 것이 북한의 「하나의 조선」정책이었다. 「하나의 조선」정책을 「민족통일」이라는 개념과 대비하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계급을 기초로하는,민족국가의 개념을 초월하는,세계혁명의 이론에서 출발한 북한의 「민주기지」였으며 노동당규약에 규정한 「전 조선의 공산주의화」였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조선」정책은 실질상 권력적 의미에서는 김일성이 북한을 통치하는 「대내용」 정치권력의 논리였다. 북한에게 있어서 김일성이라는 권력적 인격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하나의 조선」정책에 치명적인 결함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폐쇄를 기초로 한 「주체경제」를 유지하기에는 북한의 주변 즉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들이 강력한 「개방경제」 체제를 형성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4원칙」을 유지하는 중국마저도 경제면에서는 철저하게 개방체제를 형성시키고 있다. 북한의 이념적이며 경제적인 동맹을 유지해온 소련이 이미 시장경제라는 개방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북한과 대칭적인 남한이 거의 완벽하게 개방체제를 형성하고 성공했다는 점이다. 과거에 있어서 동서진영의 체제적 이념의 차이는 실은 시장경제를 기초로 하는 「개방체제」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였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주변의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소련이 정치경제적인 「개방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 형성되는 개방체제는 자본과 기술 나아가서 인적인 교류라는 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생활양식은 북한의 「주체경제」라는 체제를 갖고서는 적응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포위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과거 사회주의권의 물물교환을 기초하는 바터제를 거부하고 시장경제주의 현금주의를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대외적인 개방체제의 형성은 불가피하게 북한의 사회체제를 「폐쇄」에서 「개방」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방체제로의 이행에는 북한이 피할 수 없이 넘어야 할 하나의 장벽이 있다. 이것이 「하나의 조선」이라는 기치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한을 해방해야 한다는 북한인민을 통치하던 권력적인 「논리」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오늘의 북한이 「권력적인 고립」을 맞고 있는 이유다. 둘째,이러한 북한을 개방체제로 재촉하는 시장경제를 기초로 하는 정치경제적인 동북아시아의 국제환경의 변화는 안전보장면에서도 깊이작용하고 있다. 한반도의 냉전을 구축하고 있었던 중국과 소련이 이 지역의 부의 생산에 참여하기 위해서 시장경제와 이에 따른 개방체제로의 길을 서툴기는 하나 꾸준히 구축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모델」대신 거꾸로 남한의 시장경제를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히 군사적인 개방체제로의 길을 유도할 수밖에 없었으며 소련이 지난 셰바르드나제의 일본방문에서도 양국간의 문제를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이라는 측면에서부터 접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동북아시아 「시장경제」의 형성과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또 시장경제를 위해 소련과 중국이 북한과 같이해 온 「세계혁명」이라는 논리와 정책의 기치를 지금 내려놓고 있어서 이 지역의 안전보장의 조건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하나의 조선」(전조선의 공산화)을 실천해 보려 했었고 실패했던 한국전쟁 이래 최대의 시련기에 접어 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북한이 동독처럼 서독에 「흡수」되거나 루마니아처럼 「혁명」을 통해서 붕괴되리라는 전망은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다. 그 이유는 북한의 체제적인 측면에서 김일성이라는 권력적인 인격은 몰락할 수 있으나 그가 구축하여 놓은 북한이라는 정치체제는 간단하게 무너질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분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군사체제는 정치체제를 기초로 하는 중요한 체제적인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김일성 이후에도 지속될 북한의 「군사체제」는 북한사회를 다시 얼마간 지탱할 중요한 김일성 이후의 정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비교의 기준은 판이하나 1961년의 남한의 군사체제가 18년 이상 유지된 것과 비교하는 것이 북한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김일성 이후 북한의 변화는 군사적인 뒷받침이 이뤄질 때에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특히 김정일의 권력적인 한계는 이미 세계청년축전이라는 비생산적인 투자에 47억달러를 허무하게 낭비하고 김정일의 명령으로 보통강변에 1백5층으로 건설중인 시멘트 블록의 고층건물(유경호텔)의 건설이 중단된 데서 이미 그 한계는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의 변화」에서가 아니라 「북한의 변화」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김일성이 북한과 동일시 될수 없는 북한체제의 전환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일ㆍ북한 연락대표부 제의/가네마루등 일 정당대표 내일 방북

    ◎비자발급 등 영사기능 갖춰 【도쿄 연합】 오는 24일 일본 정당대표단이 북한 방문시 도쿄와 평양에 설치하자고 제의할 연락사무소는 비자발급,자국민 보호업무 등의 영사기능을 갖춘 연락대표부 형식이 될 것이라고 산케이(산경)신문이 22일 보도했다. 일본정부와 자민당은 그동안 이시이(석정) 자민당외교조사회 회장대리 등 선발대의 귀국보고를 토대로 연락사무소 설치문제를 검토한 끝에 민간 주도의 통상분야에 국한시키기보다는 재외공관업무와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이같이 방침을 정하고 북한측에 제의하기로 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그러나 한국과의 관계도 있고 국교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연락사무소는 대표권을 갖지 않으며 북경 주재 양국 대사관이 정식 교섭창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일ㆍ북한 직항로 합의/가네마루 밝혀

    【도쿄=강수웅특파원】 오는 24일부터 북한을 방문하는 일본 집권자민당의 실력자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부총리는 22일 북한과의 직행항공로 개설문제에 대해 『중국ㆍ북한ㆍ한국ㆍ일본 사이에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다. 내일이라도 띄울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가까운 장래에 직행항공로 개설문제에 이미 기본적인 합의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고 일본 마이니치(매일)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 체육교류도 제의

    【도쿄 연합】 일본 자민당은 가네마루 일행의 평양방문시 스포츠와 청소년교류 등을 북한측에 정식 제안할 것이라고 아사히(조일)신문이 22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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