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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실 출입문 ‘자물쇠’

    기자실 출입문 ‘자물쇠’

    국정홍보처가 1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본관 및 별관(외교통상부 청사)의 기존 기자실에 자물쇠를 채웠다.11일 기자실 인터넷·전화선을 차단한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취해진 조치다. 기자실 출입이 원천 봉쇄된 해당 부처 출입기자들은 기자실 앞 복도와 청사 1층 로비 등지에서 ‘출근 투쟁’을 벌이는 등 곳곳에서 충돌했다. 홍보처는 이날 총리실·외교부·행정자치부·통일부·교육인적자원부·여성부 등 정부중앙청사 기존 기자실 출입문을 모두 봉쇄했다. 홍보처는 문을 강제로 열 것에 대비한 듯 청사 10층 총리기자실에는 자물쇠를 추가 설치했으며,5층 합동브리핑실 자물쇠는 교체해 기존 열쇠로 열리지 않았다. 일부 기자들은 “기자실 전원을 차단하고 문까지 잠근 것은 업무 방해이자, 언론 탄압이며, 국민들의 알권리 침해”라며 김창호 홍보처장을 항의 방문했지만, 김 처장뿐 아니라 홍보처 직원들은 모두 모습을 감췄다. 홍보처 관계자는 “기자들이 최대한 빨리 짐을 옮겨 주는 것이 사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부과천청사 건설교통부 기자실도 이날 오전 출입문이 봉쇄됐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과 건교부 직원간에 설전이 오고 가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각 정부부처 출입기자들은 항의 농성 등 본격적인 단체행동에 나서고 있다. 특히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은 청사 2층 로비 ‘임시 기자실’을 급조했다. 기자들은 100m짜리 케이블과 멀티탭을 이용해 전원을 확보했고 끊겨버린 유·무선 인터넷은 기사송고 수단인 무선모뎀으로 대체했다. 통일부 출입기자단도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앞으로 한 곳에 모여 기사를 작성하고, 전송한다.”고 결정했다. 또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중앙청사 5개 부처 출입기자 대표단도 중앙청사 로비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한편 출근 투쟁 등 대응책을 공동으로 마련하기로 결의했다. 부처종합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정부 기자실 폐쇄] 로비 바닥서 송고 하느라 진땀

    [정부 기자실 폐쇄] 로비 바닥서 송고 하느라 진땀

    12일 오전 7시 세종로 정부청사 10층 총리실 기사송고실 앞.‘설마 기자실에 대못질이야 할까.’ 이같은 생각을 하고 출근한 기자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원래 있던 자물쇠로 문을 잠근 것도 모자라 문 아래 튼튼한 새 자물통까지 설치해놓았던 것. 문에는 짐을 꺼낼 때만 열어주겠다는 내용의 종이 한 장만 달랑 붙어 있었다. 분통이 터졌지만 마땅히 방법이 없었다.1개면 분량의 기사를 오전에 출고하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일찍 기자실에 나갔다. 기사작성에 필요한 자료도 꺼내야 했다. 종이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10여분간 걸어도 받는 이가 없었다. 7층 홍보처로 뛰어내려가 상황실 직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할 뿐 누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홍보팀장과 가까스로 통화가 됐다. 급히 문을 좀 열어달라는 말에 그는 “짐을 빼라고 미리 얘기하지 않았느냐. 전화 끊겠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예 받지도 않았다. 결국 기사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꺼내지 못하고 자료를 다시 받아야 했다. 8시가 넘자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출근하기 시작했다.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 오늘 넘겨야 할 기사 목록이라도 신문사로 보내기 위해 국무조정실 홍보팀을 찾아가 전화선을 이용한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노트북에 말썽이 생겼나 보다. 하는 수 없이 회사 데스크에게 전화로 출고 기사 제목만 간단히 보고했다. 기사 작성을 위해 청사 후문쪽 로비로 내려갔다. 민원인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가 몇개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화장실 입구에 콘센트가 있어 전원을 연결할 수 있었다.D일보,K신문,S방송,K경제신문의 출입기자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기자들은 별 말이 없었다. 쫓겨난 게 분통터지지만 저마다 보고하고, 기사 작성할 게 많은 모양이다.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불편한 자세로 기사를 작성하는 게 안쓰러워 보였을까. 지나가는 공무원과 민원인들이 동정 어린 표정을 짓는다. 결국 오전에 기사 마감을 못했다. 회사로 들어와 오후 2시까지 기사를 마무리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엔 어디로 가야 할까. 정부 부처 출입기자가 청사내에 있을 곳이 없다. 한 나라의 총리가 전용 브리핑룸 하나 갖지 못하고 있다니. 그것도 참여정부가 그렇게 내세우던 책임총리가 아닌가. 다른 나라도 이런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결국 쫓겨난 청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냄새 나는 화장실 옆 공간. 그래도 출입 부처와 동떨어져 있는 합동브리핑센터보다는 소중하지 않은가.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아프간 석방 이후] 피랍에서 석방까지

    [아프간 석방 이후] 피랍에서 석방까지

    |두바이(아랍에미리트) 류지영특파원·카불 공동취재단|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돼 40여일간의 억류 생활 끝에 풀려난 한국인 피랍자 19명을 대표해 유경식(55)씨와 서명화(29·여)씨는 3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내의 세레나 호텔에서 처음 국내 언론과 기자회견을 갖고 납치 상황과 억류생활, 석방 상황 등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납치에서 석방까지를 재구성했다. ■ 출발직전 운전기사 바뀌어 막무가내로 2명 합승시켜 아프간으로 봉사활동을 떠난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원 23명은 지난 7월19일 아프간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전세버스를 이용해 가는 길에 운전기사가 “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다른 운전사를 소개시켜 주었다. 봉사단원들은 당시 “밤엔 위험하지만 낮엔 안전하다.”는 말을 믿었다. 새로 온 운전기사는 가즈니주를 지나는 길에 현지인 2명을 태웠다. 봉사단원들이 “왜 모르는 사람을 태우냐.”고 항의했더니 운전기사는 “가면서 내려주면 된다. 아는 사람이다.”고 막무가내로 버스에 태웠다. 2명을 태운 뒤 20∼30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당시 이들은 운전기사에게 총을 겨누면서 정지하라고 했는데 운전사가 무시하니까 발포했다. 이어 운전사가 정지를 하자 탈레반이 차를 옆으로 빼라면서 차 바퀴에 한발을 쐈다. 차 안으로 무장한 2명이 올라와 운전사를 구타했고, 전부 내리라고 요구했다. 당시 고 배형규 목사는 실신을 하는 등 일행 대부분이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이어 탈레반은 이들을 오토바이 등에 태워 비포장도로로 10분 정도 달려 한 마을로 데려갔다. 맨 처음에 전체를 집합시켜서 일렬로 세우고 담벼락 앞에 기관총 소총으로 위협했다. 서너명이 무기로 위협하고 한 사람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다. 총을 겨누자 이들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러더니 자기들이 알카에다라고 밝히는 등 그제서야 신분을 드러내면서 돌변했다.“너희들 잘못하면 이렇게(총쏘는 시늉을 하면서) 한다.”고 위협했다. 탈레반의 납치극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탈레반이 사전에 치밀히 준비한 것이었다. ■ 5일째부터 3~4명 분산 억류 감자 2개로 4명이 끼니 때워 AK 소총으로 무장한 탈레반은 회당안에 강제로 몰아 넣었다. 회당에서 이들은 단원들이 가지고 있던 핸드캐리용 짐 배낭과 몸을 수색하면서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회수했다.“우린 정부의 사복 경찰인데 너희들을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하려고 임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돌려 줄테니 걱정 말라.”면서 노트북 1대, 카메라, 캠코더, 휴대전화 등을 가방 2개에 집어넣고 갈 때 돌려주겠다면서 자물쇠를 채웠다. 탈레반은 반 지하에 짐승 우리 같은 창문 없고 환기통 하나 있는 곳에 감금했다. 이어 이곳에서 나흘 밤을 자고 4박5일 만에 분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11명이 나눠지고 12명은 그 다음에 6명으로 나뉘고 다시 3∼4명씩 나눠졌다. 이들은 주로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10차례 이상 자리를 옮겼다. 이동은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 때 오토바이에 태워서 헤드라이트를 끄고 불빛 신호를 보내면서 이뤄졌다. 도보로 이동한 적도 몇번 있다. 초반에는 민가에서 보호되면서 그 사람들도 못 먹고 못 살고 해서 적응이 안 됐다. 비스킷 먹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 달라고 손짓 발짓했다. 감자 2개를 절반으로 쪼개서 4명이서 먹었다. 토굴에도 머물렀다. 집 마당에 한 사람 겨우 들어갈 토굴이 있었는데 4m 깊이 끝엔 T자로 25m 크기였다. 몸집 작은 사람이 겨우 갈 정도였다. 첨엔 걸려서 못 들어갔는데 어떻게 해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 기도를 했었다. 탈레반은 “너희가 아프다고 해야 빨리 구출해 준다.”며 육성을 녹음하기도 했다. ■ 29일 탈레반이 석방 알려줘 동료 2명 살해소식에 눈물 8월25일쯤 탈레반이 2명 와서 4일 밤을 자면 석방된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통화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건강 이상없냐. 누구 있냐.”고 물어 “언제 나갈 수 있냐.”고 했더니 며칠만 참으라고 했다. 29일쯤 탈레반이 와서 석방이라며 2명 먼저 간다고 했다. 그날 서씨에게 여자 1명과 함께 나오라고 요구했다. 서씨는 “함께 있던 4명이 같이 나가게 해달라.”고 하자 보스처럼 생긴 사람이 “너희 정부에서 다 내보내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쯤 서명화, 차혜진씨 2명을 탈레반이 오토바이로 접선 장소에 떨어뜨려 놓고 망원경으로 살펴볼 때 둘러보니 적십자 차와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31일 오전 1시쯤 카불 세레나 호텔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의 재회를 했다. 탈레반에 의해 마지막으로 풀려난 제창희(38)씨 등 7명은 30일 밤 먼저 풀려난 12명과 합류했다. 제씨 등은 풀려날 당시 배 목사와 심성민씨가 살해됐다는 사실을 몰랐고, 먼저 풀려난 동료들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superryu@seoul.co.kr
  • [여성&남성] 우린 ‘판박이 여름휴가’ 탈출을 꿈꾼다

    [여성&남성] 우린 ‘판박이 여름휴가’ 탈출을 꿈꾼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 하루를 달리는 직장인들에게 여름 휴가는 ‘사막의 오아시스’, 그 이상이다. 상사의 질책이나 고된 야근도 휴가를 생각하면 얼마든 참아낼 수 있다. 최근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 7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번 여름휴가 때 무엇을 하면서 보낼 예정인가.’라는 질문에 남녀 모두 ‘일상 탈출을 위한 여행(71.5%)’을 꼽았다. 굳이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처럼 낯선 곳에서의 특별한 만남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혹시나’하는 기대만으로도 여름 휴가는 즐겁다. 가족이나 연인, 아니면 혼자만의 휴가를 꿈꾸는 남녀의 생각을 들어봤다. ●그곳에 가면 왠지 특별한 행운(?)이 있을 것 같은데… 회사원 김모(32)씨는 여름 휴가만 생각하면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2주 뒤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기로 돼 있다. 김씨는 스포츠카를 빌려서 1주일 동안 뉴질랜드 곳곳을 누빌 계획이다. 휴가 예산은 150만원 정도로 다소 부담스럽지만 8년 동안 별러온 ‘로망’이 이뤄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1999년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났던 김씨는 형편이 어려워 하루에 3뉴질랜드달러(당시 환율기준 2000원)로 버텨야 했다. 아침은 식빵 3조각, 점심과 저녁은 서울에서 공수해 온 ‘봉지라면’으로 해결하는 등 처절한 연수 생활을 했다.8년 전 한국으로 돌아오던 순간부터 그는 뉴질랜드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것을 결심했다. 김씨는 “당시 지겹게 먹었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이민자가 하는 식당에서 탕수육과 볶음국수로 된 콤보메뉴도 먹으며 그 때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물론 딱 한 끼니다.”며 웃었다. 당시에는 꿈도 못 꾸던 남섬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연수 시절 클래스메이트였던 늘씬한 스위스 미녀가 남섬 여행을 제안했지만 형편이 안 돼 못갔던 한도 이 참에 풀 계획이다. 물론 그 곳에서 특별한 행운(?)이 생길 거라는 기대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다. 회사원 이모(33)씨는 “언제부턴가 와이프를 집에 두고 홀로 베낭을 꾸려 유럽으로 떠나고 싶다는 공상을 했다.”면서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어울릴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냐. 항상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와이프랑 휴가까지 가야 한다면 우울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씨는 “올 여름 ‘로망’을 이룰지는 모르겠다.”면서 “뒤탈을 막기 위해 아내와 함께 갈지, 솔직히 말하고 혼자 떠날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붕어빵 같은 바캉스는 싫다” 회사원 장모(27)씨는 8월 말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계획이다. 그때 쯤이면 성수기가 끝나갈 때라 경제적 부담도 적은 데다 북적거리는 관광객도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쌀국수나 양꿍 같은 태국 전통 음식을 실컷 먹고 틈날 때마다 한가롭게 마사지사에 몸을 맡길 생각이다. 정씨는 “이름난 관광지에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사진이나 찍는 해외여행 따위는 관심없다.”면서 “1년에 한 번뿐인 휴가인데 아무 생각없이 푹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신선놀음 아니냐.”고 말했다. 은행원 박모(32)씨의 휴가 테마는 ‘애니메이션’이다. 혼자서 애니메이션의 천국인 일본에 가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손때가 묻은 지브리스튜디오를 둘러보고 좋아하는 애니매이션을 보며 올 때는 DVD와 관련 상품을 가득 사올 계획이다. 박씨는 “몇달 전 여자친구와 헤어져 여름휴가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어설프게 친구들과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에 가서 안 되는 작업(?)을 하는 것보다 일본에 가서 혼자 만의 휴가를 즐기고 싶다. 여름휴가 때 꼭 바닷가나 계곡, 유명 관광지에 가야 한다는 것도 고정관념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일본 문화에 푹 빠져보기 위해 지인의 집과 호텔 대신 일본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40대 가장 ‘방콕 vs 해외여행’ 회사원 진모(40)씨에게 ‘주 5일 근무제’는 남의 나라 일이다. 설상가상 최근 2주 동안 새벽 1시에 퇴근하는 등 격무에 시달리느라 몸은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마음 만은 가뿐하다. 새달 초 예정된 휴가를 생각하면 2주쯤이야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다. 진씨는 “해외리조트에 가서 아무 생각없이 쉬고 올 생각도 해봤지만 올 해는 집에 틀어박혀 있을 생각이다.1주일 내내 뒹굴면서 푹 잘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른 가장들처럼 휴가에 대한 가족들의 정신적 압박도 없다. 둘째 아이를 가진 아내가 임신 8개월째 접어들어 몸이 무거운 탓에 꼼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씨는 “무거운 몸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도 ‘방콕 프로젝트’(집에서 푹 쉬는 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덕분에 아무런 장애없이 ‘방콕’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직장인 조모(41)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인터넷 여행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올 여름 휴가때 아내와 아들과 데리고 모처럼 해외에 나갈 생각이다. 조씨는 “주변에서 해외로 하도 많이 나가니까 한 번쯤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는데 한 번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면서 “단 1주일이라도 해외에 다녀오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견문을 넓혀주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아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어 아직까지는 비밀로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통장에 자물쇠를 채워놓은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다. 조씨는 “해외로 나가려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해외 운이라도 슬쩍 내비치면 아내가 눈을 흘기곤 한다. 밤낮으로 작업(?)을 해서 아내를 설득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나홀로 휴가’를 꿈꾼다 경기 안산시에서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윤모(30·여)씨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꿈이다. 주변에서는 여름방학을 하면 다녀오라고 하지만 실상 방학 때는 보충수업과 교내외 연수 등으로 더 짬이 안 난다. 게다가 올해는 평생 한번 받는 연수까지 겹쳐서 휴가는 머릿속에서만 다녀올 형편이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4년 전 시간에 쫓겨 못 보았던 루브르박물관을 열흘 정도 샅샅이 관람하고 싶다.”면서 “혼자 개선문이 보이는 거리에서 홍합요리나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마음 속의 휴양지로 박물관을 고른 이유는 하루 4시간의 수업에 조례, 종례 시간까지 시달리는 자신에게 뭔가 정신적인 휴식을 주고 싶어서다. 윤씨는 “점심시간에는 급식 지도하며 떠들고, 쉬는 시간마저 아이들이 몰려와 떠들곤 한다.”면서 “한 동료 교사는 아이들끼리 싸운 것을 가지고 학부모들이 담임 탓이라며 교육청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해 학교를 그만두기도 했다. 이런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회사원 권모(27·여)씨는 여름휴가에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배워볼 계획이다. 평소 참하다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는 자신에게 용기와 힘을 길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등을 배우며 여름휴가를 보내고 싶다.”면서 “물론 무섭겠지만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면 나도 미래로 비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와 집안 일에 매여 있는 전업주부 신모(35·여)씨는 서비스를 하는 휴가가 아니라 서비스를 받는 휴가를 꿈꾼다. 가족끼리 가는 휴가는 결국 자신이 밥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남편 비위를 맞추게 된다는 것. 그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나홀로 여행’을 원한다. 매일 피곤이 쌓여 멀리 갈 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는 “근처 특급호텔 패키지를 신청했다. 마사지 받고 밥도 안하고 식사도 객실로 시켜 먹으며 뒹굴뒹굴 게으름을 맘껏 피우고 싶다.”면서 “책도,TV도, 컴퓨터도 필요없고, 곁에 있을 사람들도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얼마나 홀로 보내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일주일까지는 남편이 아이를 돌보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다가도 “아이가 걱정돼 길어야 이틀밖에 안 되겠네요.”라며 웃었다. ●“역시 휴가는 친구나 그이와 가야…” 대기업에 다니는 전모(25·여)씨는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 지금 일본으로 3박4일 쇼핑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홍콩의 쇼핑 페스티벌이나, 떠오르는 신흥 쇼핑시장 중국 상하이도 유명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으로 결정했다. 자칭 쇼핑 전문가인 친구 3명과 각자의 여름 보너스 200여만원씩 들고 가서 옷, 가방 등을 싸게 살 계획이다. 유씨는 “요즘 같은 경우 일본에서 쇼핑만 잘하면 비행기값 정도는 빠진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 “어떤 친구는 과소비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1년 동안 돈 버느라고 고생한 나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만난 사람들로부터 해방돼 친구들과 진정한 수다를 나누고 싶다.”며 웃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29·여)씨는 “남자 친구와 밀월 여행을 가고 싶다. 가장 즐거웠던 여름여행은 역시 남자친구와 다녀온 여행이었다.”면서 “밤에 안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 “물론 부모님께 거짓말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약간의 스릴이 여행에 짜릿함을 더한다.”고 속내를 밝혔다. ●“추억 속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꿔요” 대학생인 손모(21·여)씨는 아직도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 같았던 지난해 여름의 유럽 기차여행을 잊지 못해 한 번 더 스치는 인연을 고대한다. 당시 그는 여행 직전 특별한 인연을 기대하며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 전통 기념품 등을 준비했다. 그런데 정말 선물을 주고싶은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 스위스로 이동하던 기차 안에서 한 취객이 혼자 있던 여성을 괴롭혔고, 손씨 일행은 당황하며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인도계 유럽 남성이 다가와 행패를 부리던 취객을 오히려 달래면서 부드럽게 진정시켰는데 황홀하게도(?) 그의 좌석은 바로 손씨의 옆자리였다. 그녀는 “참 멋진 남자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한 장면이 내게도 우연처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면서 “용기를 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서로 통성명을 하고 여행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일행들이 옆에 와서 대화를 방해했지만 한국에서 준비해간 한국 전통 문양의 책갈피를 그에게 주었고, 그는 한국에 꼭 한번 가겠다는 말과 함께 먼저 기차에서 내렸다. 손씨는 “아직도 그가 연락을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면서 “휴가에서의 로망은 스치는 인연에 대한 추억인 것 같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8)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28)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 Ⅱ

    인조반정을 일으키던 당일, 대장 김류는 미적거렸다.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경에 모이기로 했던 약속을 어겼고, 그가 나타나지 않자 반정군 진영은 동요했다. 바로 그 때 군사들을 다잡아 대오를 안정시킨 사람이 이괄이었다. 반정 성공 직후 ‘이괄이야말로 병조판서 감’이라는 칭송이 있었지만 병조판서는커녕 궁벽진 변방으로 발령이 났다. 이등공신으로 녹훈하여 불만을 돋우더니 ‘역모를 꾀하고 있으니 잡아들여야 한다.’는 소식까지 날아들었다. 이괄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것이다. ●이괄군의 승승장구 자신을 잡아가려고 금부도사가 영변(寧邊)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이괄은 구성(龜城)에 있던 순변사(巡邊使) 한명련(韓明璉)을 시켜 자산(慈山)으로 출격하게 했다. 이윽고 금부도사와 선전관이 당도하자 그들을 난자한 뒤 불 속에 집어 던졌다. 이어 자신도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괄은 안주를 우회했는데, 그곳에는 상관인 도원수 장만(張晩)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산에서 한명련의 부대와 합세했다. 당시 삼남에서 선발된 병력과 평안도 군병의 대부분이 이괄의 휘하에 있었다.1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안주의 장만은 허를 찔린 셈이 되었다. 반란군을 정면에서 막지 못하고 뒤에서 추격해야 하는 형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반란군은 1월28일 상원(祥原)을 지나 2월1일에는 수안(遂安)으로 접어들었다. 황주(黃州)의 신교(新橋)에 이르렀을 때 정충신(鄭忠信)과 남이흥(南以興)이 이끄는 진압군이 막아섰다. 두 장수가 역순(逆順)의 도리를 내세워 반란군을 선무하자 이괄 진영에서는 동요가 일어났다. 하지만 선봉을 맡은 항왜(降倭)들이 칼을 휘두르며 돌격하자 진압군은 싸우지도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다. 항왜란 임진왜란 시기 조선에 귀순했던 일본군과 그 후예들을 말한다. 검술이 뛰어나고 조총을 잘 다루는 데다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하는 용맹한 자들이었다. 이괄 휘하에는 수백명의 항왜가 있었는데 그들이 선봉을 맡음으로써 반란군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인조와 조정은 당황했다. 내응을 우려하여 서울에 남아 있던 이괄의 인척들을 잡아들여 처형했다.2월6일에는 이괄의 장인 이방좌(李邦佐)를 참수했다. 이방좌는 이괄이 군대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주변 사람들에게 ‘사위의 올해 운이 한 번 외치면 만인이 응답하는 형상이라 자신도 부원군(府院君)이 될 것’이라 자랑했다고 한다. 관군은 평산(平山)의 마탄(馬灘)이란 곳에서 다시 막아섰지만 또 패하고 말았다. 방어사 이중로(李重老)가 전사하고 병사들은 대부분 항복하거나 도주했다. 이괄군은 이제 임진강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仁祖, 파천길에 오르다 마탄의 패전 소식이 날아들었던 2월7일, 인조는 밤중에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대사간 정엽(鄭曄)이 서울을 버리고 파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좌우의 신료들은 서로 돌아만 볼 뿐 다른 말이 없었다. 대신들은 세자에게 분조(分朝)를 이끌게 하자고 건의했다. 이윽고 장유(張維)는 공주(公州)로 가자고 주장했다. 공산성(公山城)이 있는 데다 금강이 흐르고 있어 방어하기에 편리하다는 것이었다. 반정 성공 이후 맞이한 최대의 위기였다. 인조는 훈련대장 신경진(申景 )에게 훈련도감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적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신경진은 미적거리면서 명을 따르지 않았다. 당연히 군율로 다스려야 할 사안이었지만 인조는 그러지 못했다. 그가 인척인 데다 반정공신이었기 때문이다. 2월 8일 반란군이 임진강을 건넜다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이괄은 관군이 개성에서 저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항왜 수십명을 앞세워 개성을 우회하여 파주로 진격하게 했다. 파주에서 임진강의 방어를 맡고 있던 목사 박효립(朴孝立)은 이괄의 회유에 넘어갔고 병사들은 달아나버렸다. 밤에 인조는 궁궐을 나섰다. 숭례문에 이르렀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승지 홍서봉(洪瑞鳳)이 하인을 시켜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열었다. 한강변 나루에 도착했지만 배가 없었다. 강 건너편에 몇 척의 배가 있었지만 사공을 불러도 오지 않았다.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무사 우상중(禹尙中)이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는 헤엄쳐 건너가서 사공 한 사람을 베고 배를 저어 건너왔다. 곧 이어 전라병사 이경직(李景稷)도 배 한 척을 구해왔다. 배가 도착하자 수행원들이 서로 먼저 타려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위기의 순간에는 임금의 존재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경직이 칼을 뽑아들고 위협하자 비로소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인조가 배에 올랐지만 배는 한참 동안 강물 가운데 떠 있어야 했다. 인조를 경호할 군사들이 강 건너에 상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겨울 밤의 습기가 몹시 차가웠지만 황망한 와중에 장막도 준비하지 못했다. 인조가 탄 배가 강 가운데 이르렀을 때 도성 쪽에서는 불꽃이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난민들이 궁궐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이괄, 서울에 입성하다 인조의 피난길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반란군이 어가를 쫓아올까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었다.2월9일 아침, 인조 일행은 양재역(良才驛)에 도착했다. 유생 김이(金怡) 등이 콩죽을 쑤어 갖고 나와 인조를 마중했다. 김이는 이 때의 공으로 뒷날 의금부 도사(都使)에 임명되었다. 당시 인조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컸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2월9일 한밤중에야 인조 일행은 수원에 도착했다. 위기 상황에 몰리자 대신들은 응급책을 내놓았다. 이정구(李廷龜)와 오윤겸(吳允謙)은 항왜들의 공격을 도무지 막아낼 수 없으니 동래의 왜관(倭館)에서 왜인 1000명을 빌려다가 적을 치자고 했다. 평소 품고 있던 일본에 대한 원한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인조도 동의했다. 즉석에서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경험이 있는 이경직을 청왜사(請倭使)로 임명했다. 이경직은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군을 요청하려면 대마도주(對馬島主)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보나마나 시간이 지체될 것이고, 또 일본군이 대거 몰려올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인조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없었던 일로 하라고 지시했다. 위기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해프닝이었다. 2월11일 피난 행렬은 직산(稷山)을 거쳐 천안에 도착했다. 천안까지 밀려왔음에도 도원수 장만으로부터는 이렇다 할 진압 소식이나 승전보가 전해지지 않았다. 더욱이 경기도 일원에서는 명령도 통하지 않았다. 호남에서 강화도로 이어지는 조운로(漕運路)를 탈취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터져나왔다. 인조는 급히 지방의 관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이괄이 지방관을 임명하여 파견할지도 모르니 그들을 베어버리고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2월10일 이괄의 반란군은 마침내 서울에 입성했다. 반란군이 서울을 점령한 것은 조선시대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괄은 경복궁의 옛 터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이윽고 인조의 숙부인 흥안군(興安君)을 국왕으로 추대했다. 흥안군은 일찍이 이괄로부터 언질을 받았기 때문에 인조를 수행하다가 중간에 도주하여 서울로 들어왔다. 이귀가 반정 성공 직후부터 ‘흥안군이 수상하니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이괄이 승승장구 끝에 도성으로 들어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휘하로 몰려들었다. 수원부사 이흥립(李興立)도 그 안에 끼어 있었다. 한번 배신하면 계속 배신한다고 했던가? 인조반정이 일어나던 당일, 반정군이 창덕궁으로 진입하는 것을 방관하여 광해군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던 그였다. 그런 그가 이제 다시 이괄에게 붙은 것이다. 이괄은 지인들을 끌어모아 조정을 꾸리기 시작했다. 반정 이후 세력을 잃거나 소외되었던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이 대목까지는 일단 이괄의 거사가 성공한 셈이었다. 인조 일행은 이미 서울을 버리고 떠났고, 진압군의 존재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624년 2월, 조선에서는 또 다른 정권교체가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프랑스의 ‘자전거 혁명’

    프랑스의 ‘자전거 혁명’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에 ‘벨로 뤼시옹’(자전거 혁명, 자전거를 뜻하는 벨로(Velo)와 레볼뤼시옹(Revolution, 혁명)의 합성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2005년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에서 자전거 혁명이 성공한 것을 거울 삼아 최근 주요 도시마다 곳곳에 자전거 정거장 및 대여소를 대폭 설치해 자전거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를레앙에서 ‘혁명의 페달’을 밟은 것을 시작으로 몽펠리에(28일), 액상프로방스(30일) 등 주요 도시가 혁명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어 마르세유(7월) 브장송(9월) 등도 가세한다. 거센 자전거 물결은 오는 15일부터 파리에도 몰아닥친다. 파리 시는 750곳에 정거장 겸 대여소를 마련하고 1만 648대의 자전거를 비치한다. 주요도로에 300m마다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 시민이나 관광객들이 필요할 때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내년에 대여소가 두배로 늘어나면 지하철역보다 더 많은 곳에서 자전거 대여소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올 고정 이용자 20만명 예상 ‘벨리브(자전거(velo)+자유(liberte))’라 명명한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지하철이나 버스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려는 사람을 위한 시도로 차츰 자동차 운행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번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올해 고정 이용자가 20만명쯤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에 대비해 9월까지 대여소는 1000곳, 대여 자전거는 1만 4000여대로 늘린 뒤 내년부터는 1451곳에 2만 600여대의 자전거를 비치할 계획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年 이용료 3만 6000원으로 저렴 이용 가격은 무료에 가까워 상징적인 수준이다. 파리시는 지난달 23일부터 회원 가입 신청을 받고 있다.1년 동안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비용은 29유로(약 3만 6000원)로 저렴하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은 이용자는 자전거를 고른 다음에 신용카드로 대여료를 결제한 뒤 자물쇠를 풀고 나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30분 미만이면 무료이고 이후 30분마다 1유로씩 계산된다.1주일 대여료는 5유로다. 예약한 시간 내에 자전거를 반납하지 않으면 경보음이 울린다. 만약 잃어버리면 150유로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여왕’이라 이름 붙인 금회색빛 자전거는 3단 기어를 구비하고 있다. 안전을 고려, 무게는 22.5kg으로 약간 무거운 편이다. 자전거 앞에는 서류 가방 등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를 설치했고 도난 방지 장치도 갖췄다. 또 정거시 안전을 감안해 뒤에 브레이크 등이 달려있다.14세 이상, 키 150cm 이상의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과 맞먹는 속도 파리 시가 도입하는 자전거 혁명은 환경 친화적 요소 외에 다양한 이점이 있다. 먼저 다른 교통수단에 견줘도 결코 속도가 뒤지지 않는다. 파리 시측의 모의실험에 따르면 도심인 샤틀레 지하철역에서 남쪽 포르트 디탈리 역까지 자전거로 2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같은 구간을 지하철로 가면 22분 걸린다. 또 교통 체증때 차로 달리면 43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자전거의 속도를 실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처럼 정체되지 않고 주차 공간을 찾느라 이러저리 돌고 목적지에서 멀리 주차하는 불편함이 없다. 또 불규칙한 운행으로 악명 높은 버스보다 훨씬 편리한 것도 이점이다. 이 밖에 루브르 박물관 등 특별 관리가 필요한 일부 명소 외에 대부분의 관광지 곁에 대여소를 설치해 접근이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자전거 급증…혼란 예상” 우려도 파리시는 자전거 이용이 급증해도 모두 371㎞에 이르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혼란이 초래되고, 자전거 이용자에게 헬멧을 착용토록 한 법이 없어 사고가 예상된다고 우려한다. 또 음주 후 자전거를 탈 가능성이 많아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프로젝트는 광고업체 JC데코가 시내 곳곳에 회사 광고를 하는 조건으로 자전거를 제공한다. vielee@seoul.co.kr ■ 리옹시의 성공 비결 |파리 이종수특파원|파리 시가 자전거 혁명의 모델로 삼고 있는 도시는 프랑스 남부 리옹이다. 리옹 시는 2005년 5월부터 ‘자전거 혁명’을 점화했다.2년이 지난 현재 시민 6만여명이 정기 회원으로 가입해 대여소의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시민 10명당 1명 꼴로 ‘자전거 혁명’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리옹의 성공 비결은 대여 장소가 많다는 데 있다. 시는 대여소 350곳을 마련하고 1만 4000여대의 자전거를 배치했다. 도시 곳곳에 평균 300m 간격으로 자전거 대여소를 설치한 셈이다. 시민들이 자전거가 필요한 공간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이용률이 늘어났다. 중도파 정당 민주운동의 시당 부대표인 질 베스코는 “어디서나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자전거 이용 확대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비결로는 공짜도 아니고 너무 비싸지도 않은 적절한 대여료를 꼽는다.1년에 10유로(약 1만 2400원)를 내면 회원이 될 수 있다.30분 미만을 빌리면 무료이고 이후 1시간당 0.5유로를 받는다. 그 결과 리옹시의 자전거 이용률은 10년 동안 4배나 늘어났다. 자전거 이용자 가운데 80%가 출퇴근에 이용한다. 이용자의 60%는 남성이다. 또 55%가 30대 미만이고 학생도 33%여서 앞으로 이용률이 높아질 전망이다. 대기업 간부도 23%나 된다. 평균 15분 동안 2.4km를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여 횟수도 늘어나 하루 2만 6000여회에 이른다. 자전거 1대당 하루 평균 10명이 이용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리옹시의 자전거 이용이 늘면서 자동차 사용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전거 이용의 생활화로 도심 공기가 눈에 띄게 맑아졌다. 질 베스코는 “2005년 이후 자전거 이용률이 늘어나면서 지구와 달의 50배 거리인 2000만km 정도의 자동차 주행 거리가 줄었다.”며 “이는 3600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라고 평가했다. vielee@seoul.co.kr ■ 유럽 주요도시의 ‘자전거 문화’ |파리 이종수특파원|유럽의 ‘자전거 혁명’은 1970년대 시작됐다. 급증한 자동차로 인한 심한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에 대한 거부감, 건강 증진에 대한 욕구 등이 어우러져 자전거 동호회를 중심으로 ‘페달’을 밟았다. 지금도 주요 도시에서 매달 한 차례 자전거 이용 캠페인을 벌인다. 그 결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몇몇 도시에서는 자전거를 주요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생활 패턴이 자리잡았다. 자전거 혁명이 성공한 대표적인 도시는 인구 73만 5000여명의 암스테르담. 시민 40%가 자전거를 이용해 도심을 지나간다. 도심 곳곳에 만든 자전거 전용 도로에다 비교적 기복이 심하지 않은 도로, 거대한 면적의 자전거 전용 주차장 등이 자전거 혁명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시는 60만대의 대여소에 자전거를 배치해 하루 6∼10유로의 대여료를 받는다. 자전거 혁명의 선구자는 독일 베를린이다. 시는 7년 전부터 1350만 유로(약 17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했다. 그 결과 시민 10%가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한다. 이 밖에 ‘벨로 택시’라 불리는 삼륜식 자전거도 인기다. 대여료는 10분당 160원정도다. 하루에는 1만 8600여원이다. 영국 런던은 아직 초보 단계다. 교통량이 많아 자전거를 이용하는 게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해 자전거로 이동하다가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사람이 300명일 정도다. 그러나 자전거 이용자가 차츰 늘고 있다.5년 전에 견주면 자전거로 이동하는 인구가 50%가 늘어났다. 현재 자전거 이용 횟수는 하루 45만건으로 집계된다. 런던시 교통당국은 2020년까지 자전거인구를 두배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스페인도 자전거 이용률이 낮다. 수도인 마드리드는 0.1%에 불과하다. 대도시인 바르셀로나도 1% 정도다. 자전거 전용도로도 적고 구간도 짧다. 그러나 마드리드는 누드 자전거운동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지난달 9일에도 공해에 반대하는 누드 자전거족이 도심을 질주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vielee@seoul.co.kr
  • 영변·태천 원자로 등 폐쇄 범위 결정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이 26일 방북, 북측과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관련 활동범위를 협의함에 따라 6자회담 2·13합의 초기조치 이행이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는다. 이번 협의 결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가늠할 수 있어 향후 불능화 과정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실무대표단 단장인 올리 하이노넨 IAEA 사무부총장은 25일 베이징에 도착,“우리는 IAEA를 대표해 영변 핵시설 폐쇄를 검증하고 확인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항을 협상하러 간다.”며 “이번 방북은 (핵시설 폐쇄의) 긴 여정을 위한 하나의 후속 조치”라고 말했다. 하이노넨 부총장은 베이징에서 칼루바 치툼보 IAEA 안전조치국장 등 3명의 대표단과 합류한 뒤 26일 북한으로 들어가 30일까지 4박5일간 북한에 머물며 영변 핵시설 감시·검증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IAEA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지난 3월 방북,1차 협의를 했으며 IAEA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핵시설을 동결했던 경험이 있어 이번 협의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특히 6자회담 당사국들이 2·13합의 이후 IAEA에 일종의 ‘하청’을 준 뒤 IAEA측과 핵폐쇄 전략을 협의해온 만큼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IAEA측과 핵시설 폐쇄 등 비핵화 과정을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표단은 북측과 폐쇄·봉인할 핵시설 범위를 결정하고, 이를 감시할 IAEA 검증단의 규모와 권한, 활동범위 등을 협의해 합의문을 도출하게 된다. 폐쇄 대상 시설은 영변 5㎿ 및 50㎿ 원자로, 태천 200㎿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핵연료봉 생산시설 등 5개 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IAEA가 이들 시설 외 추가적인 폐쇄 대상을 제시하거나 그동안 생산한 플루토늄 등 핵물질도 협의 대상에 넣을 경우 이견이 생길 수 있다. IAEA 실무대표단과 북측이 30일쯤 합의문을 내면 다음달 초순쯤 IAEA 특별이사회가 열리고 곧이어 IAEA 검증단이 방북,14일쯤까지 핵시설 폐쇄·봉인에 대한 감시·검증작업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은 먼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뒤 핵연로를 식혀 연로봉을 뽑아내고, 핵시설을 재가동하지 못하도록 덮개를 덮거나 자물쇠를 채우는 봉인 작업이 이뤄진다. 정부 소식통은 “봉인 대상 시설 및 장비는 700∼800여개에 이르며, 봉인 이후 북측의 훼손 여부를 상시 감시하기 위해 20여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무대표단은 방북 이후 6자회담 참가국들을 상대로 방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국제플러스] 英 “쓰레기 많이 버리면 벌금”

    영국에 자물쇠 달린 쓰레기통이 등장할 것 같다. 친환경정책의 일환으로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영국 정부가 쓰레기 무단 투기를 둘러싼 이웃간의 분쟁을 차단하기 위해 가정마다 자물쇠 달린 쓰레기통을 도입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탓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은 25일 이같은 계획과 함께 영국 정부가 재활용 분리수거를 모범적으로 실시하는 가정에는 격려금을 지급할 것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또 그렇지 못한 가정에는 연간 30파운드(약 5만 5000원)의 벌금을 물리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덧붙였다. 데이비드 밀리밴드 환경부 장관은 “쓰레기를 과다 배출하는 가정에서 벌금을 거둬 친환경 가정에 격려금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지방정부에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3국)] 전주국제영화제 ‘기성 오청원’ 상영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3국)] 전주국제영화제 ‘기성 오청원’ 상영

    제8보(93∼106) 현대바둑의 창시자 오청원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기성 오청원’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7일과 5월1일 두차례에 걸쳐 상영된다. 오청원 선생은 기타니 미노루 9단과 함께 ‘신포석’을 제창해 바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물이다. 특히 1940∼1950년대 치수고치기 10번기를 통해 일본의 정상급 고수들을 모두 제압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기성 오청원’은 ‘The Go Master’라는 제목으로 2006년 중국에서 상영되었던 작품이다. 영화 ‘푸른색 연’으로 1993년 도쿄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던 중국의 톈 좡좡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흑이 93으로 틀어막자 엷어 보이던 중앙에 통통하게 살이 붙는다. 이제 바둑은 흑이 다소 편한 흐름으로 바뀌었다. 물론 백도 뚜렷한 악수를 둔 것은 아니어서 그 차이는 아직 크지 않다. 굳이 집으로 따지자면 덤을 제하고 2∼3집가량의 우세일 것이다. 96은 101로 내려 뻗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김대희 3단은 좀더 확실한 현찰을 선택한다. 흑이 <참고도1> 정도로 집을 짓는 것은 백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판단 때문이다.97이 원성진 7단의 날카로운 감각을 보여준 호착. 이제 와서 백이 <참고도2> 백1로 저항하는 것은 흑2로 뛰어 백 석점이 무사하기 힘들다. 또한 우변의 백대마도 아직 완생의 형태가 아니므로 백은 함부로 싸울 수도 없다.99,101이 백으로서는 아픈 자리이다. 석점머리를 양쪽으로 얻어맞은 꼴이다. 103으로 자물쇠를 채우자 중앙일대에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흑집이 생겨났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열린세상] 외국인 보호체계 재정립의 과제/설동훈 전북대 사회학 교수

    출입국관리법에 의한 외국인 ‘보호’는 일상적 용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권력적 행정작용으로서 행정처분이고, 인신의 자유를 박탈하는 ‘억류’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외국인 보호시설은 ‘구금시설’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11일 새벽 전남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에서 외국인 9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경찰은 304호실에 수용되어 있던 한 중국인이 혼란을 틈 타 탈출할 목적으로 일회용 라이터를 이용해 바닥재에 불을 지른 사건으로 잠정결론을 내렸다. 보온을 위해 깔아놓은 매트리스가 화재시 유독가스를 뿜는 우레탄 재질이었고, 보호실들이 방화벽 없이 쇠창살로만 구획되어 있으며,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화재 발생시 수용자들이 대피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당직 직원들이 소화기 등을 이용한 화재 초동 진압에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보호실 화재시 대처 요령을 숙지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서 수용자 대피가 지체되는 바람에 단순화재에 그칠 수 있었던 사고가 대형 참사로 커졌다. ‘감금시설’ 화재 참사는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2001년 5월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기숙형 대학입시학원에서 담뱃불에 의한 화재로 학원생 10명이 사망했다. 불이 난 강의실은 불법으로 지은 가건물이었는데, 스프링클러·방화문 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화재감지기가 화재를 감지해 내지 못했으며, 출입구는 학원생들의 무단이탈을 막기 위해 밖에서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둘째,2002년 12월 충남 서천시 복지원 화재로 장애노인 10명이 사망하였고,2006년 12월 광주시 남구 송하동의 복지선교원 방화 사건으로 보호실에서 잠자던 수용자 4명이 숨졌으며,2000년 11월에는 서울 중곡2동 신경정신과 화재로 환자 8명이 사망하였다. 그 사건들은 쇠창살, 밖에서 걸린 자물쇠, 폐쇄회로 TV라는 공통 요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셋째,2000년 9월 군산 대명동 쉬파리 골목 집창촌 화재사건(5명 사망),2001년 2월 부산 완월동 성매매업소 화재사건(4명 사망),2002년 1월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사건(14명 사망),2005년 3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미아리 집창촌 성매매업소 화재사건(5명 사망) 등으로 감금 상태에 있던 성매매 여성들이 사망하였다. 그들은 감금장치 때문에 제때 몸을 피하지 못하고 숨져갔다. 이 모든 사건들이 작은 화재로 그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대형 참사가 되었다. 과거 감금시설 화재 사건들이 민간업주의 관리 소홀 또는 강제감금이라는 인권유린의 결과였다면,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 화재 참사는 국가의 관리 미숙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외국인 보호 체계 자체를 재정립하는 게 필수적이다. 첫째, 정부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여 ‘보호’의 내용과 절차를 명시하여 인권침해 시비를 없애야 한다. 현행처럼 출입국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방식은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보호 받는’ 외국인에게 안전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호 제도와 그 운영 방식을 점검해야 한다. 위기 대응 체계를 개발하여, 직원들이 체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생명 존중과 안전 보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함은 부언할 필요가 없다. 셋째, 피보호 외국인을 충실히 관리할 수 있는 인적·물적 기반이 확충되어야 한다. 여수 참사는 폐쇄회로 TV를 통한 전자 감시가 인간 노동을 대체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 교수
  • “이주노동자 무시 여수참사 불러”

    “1년 동안 보호시설에 머무른 뒤 우울증까지 앓게 됐습니다.” 12일 서울 중구 예관동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 아노아르 후세인(36) 전 위원장은 지금도 병원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2005년 4월24일 이주노조를 설립하고 초대 위원장으로 오른 아노아르는 불법체류 등으로 경찰에 체포돼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됐다가 지난해 4월24일 풀려났다. 외국인과 관련해 처리되지 못한 진정 등이 있으면 출국되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에 딱 1년이 흘렀다. 아노아르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환경과 안전문제를 계속 제기했지만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여수참사는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노아르에게 보호소 경험은 혹독했다. 직원들은 욕설을 서슴지 않았고 폭행도 저질렀다. 출입국관리법과는 별개의 문제인 임금체불을 호소해도 묵묵부답이었다. 이중으로 된 쇠철문으로 구금한 데다 복도에도 자물쇠로 잠겨 있었는 감옥이었다. 화재경보시설도 없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맑은 공기 꿈꾸는 서울, ‘자전거 천국’] (2) 두바퀴 정책, 이것이 문제다

    [맑은 공기 꿈꾸는 서울, ‘자전거 천국’] (2) 두바퀴 정책, 이것이 문제다

    ‘자전거도로 648㎞, 자전거 보관대 2540곳(7만 3273대), 한강교량 연결로 12곳. 자전거 대여소 25곳’ 서울의 자전거 시설을 숫자로만 나타내면 ‘자전거 천국’이 가까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형을 넓히는 데 만족하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엉터리가 많다. #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서 사고땐 무조건 자전거 잘못 10년 동안 자전거로 출퇴근한 임형태씨는 서울시의 보행자·자전거 전용도로 확장 정책에 대해 반대의견을 냈다. 임씨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자전거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자전거 잘못이다. 도로교통법상 차가 사람을 다치게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해 10월20일 여의도 둔치 자전거전용도로에서 자전거로 시속 10㎞로 달리다 산책 중이던 B(60·여)씨와 부딪혔다.B씨는 넘어져 무릎 등을 다쳤고 8주 진단을 받았다. 법원은 좌우를 살펴 사고를 예방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약식명령했다. # 장애물투성이 자전거 보행자 겸용도로 보행자가 무섭다고 차도로 내려와도 안된다. 자전거전용도로가 있기 때문에 차도로 달리면 불법이다. 이때 자동차와 추돌하면 자전거 과실이 10% 늘어난다. 임씨는 “손해만 보는데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 확장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자전거도로 648㎞ 가운데 자전거 전용도로는 22㎞뿐이다. 나머지 626㎞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다. 게다가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장애물투성이다. 여의도 증권가의 겸용도로에는 지하철 환기구가 즐비하다. 청계천5가∼을지로5가 자전거도로는 상점이 장악했다. 물건을 내놓아 보행자도 다니기 힘들다. 서울 자전거도로는 언제 끊길지도 모른다. 골목길이든, 교차로든 교통안내가 꼭 필요한 지점에 이르면 변심한 연인처럼 자전거를 내팽개친다. 교차로에서 자전거가 좌회전을 하려면 육교나 지하도를 오르락내리락하거나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달려야 한다. # 비좁은 터널·한강다리 자전거를 타고 터널과 다리를 지나는 것은 고행길이다. 대부분 자전거도로가 없어 위험하다. 있어도 너무 좁고 보행자 겸용이다. 옥수터널과 동호터널에는 보도에 두 개의 봉이 세워져 있다. 자전거의 통행을 막기 위한 방책이다. 사고위험이 높지만 자전거도로도 없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자동차와 나란히 달려야 한다. 잠수교는 보도가 보행자·자전거 겸용이지만, 보행자와 자전거가 동행할 수 없다. 도로가 좁아 부딪히기 일쑤고, 오른쪽·왼쪽에 난간이 세워져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 김상일(24)씨는 “잠수교를 지날 때마다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올 하반기에 잠수교를 차량이 다니지 않는 보행자도로로 바꿀 계획이다. 교통국관계자는 “비좁은 자전거도로를 확장해 도로를 다시 설계하겠다.”고 말했다. # 공공기관도 애물단지 취급 박모씨는 지난해 10월 자전거를 타고 마포구청에 방문했다. 자동차주차장은 넓은데 자전거 보관대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현관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 그때 수위가 박씨를 불러세웠다.“자전거를 건물로 갖고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찮은 자전거를 아무데나 세우면 되지.”라며 소리질렀다. 박씨는 “공공기관이 자전거를 이렇게 천대하는데 누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겠냐.”고 반문했다. 자출족 이모(37)씨는 지난해 12월 마포구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자전거를 찾으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몇 주 전에 주차한 자전거는 물론 보관대까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기장 주변을 몇바퀴 돌고나서야 구석에서 ‘자전거 무덤’을 발견했다. 다른 자전거 10여대를 옆으로 옮겨놓자 자신의 자전거가 보였다. 자물쇠는 잘려나가고 자전거도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다. 경기장을 관리하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항의하자 “홈에버가 할인점 오픈행사를 열어 보관대를 일시적으로 치운 것”이라면서 “안내문을 통해 충분히 공지했다.”고 해명했다. 공단은 현재까지 자전거 보관대를 다시 설치하지 않고 있다. # 자전거도로 점유땐 벌금 20~50유로 내야 암스테르담 자전거도로는 자동차·보행자 도로처럼 끊김이 없다. 얼렁뚱땅 사라지는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공사 중이라도 자전거가 어떻게 우회해야 하는지 표지판으로 명확히 안내한다. 교차로에서는 좌회전하는 자전거를 위해 1차선 앞쪽에 자전거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자전거도로를 무단 점유하면 벌금 20∼50유로(2만 4000∼6만원)를 내야 한다. 자전거도로 800㎞가 모두 보행자·자동차와 완전 분리된 전용도로다. 각 도로의 높이가 다르고, 그리고 구간이 명확하다. 따라서 자동차·자전거·보행자가 제 길만 가면 된다. 도심을 관통하는 운하의 경우 자동차와 자전거가 나란히 건너지만 자전거도로는 붉은색으로 표시돼 있다. 자전거 보관대는 공공기관, 자동차주차장, 지하철, 버스정류장, 백화점, 상점 등 어디에나 있다. 가로수에 나선형 모양의 철막대를 설치해 자전거를 보관하기도 한다. 특히 지하철에는 밀폐된 장소에 자전거를 집어넣어 보관하는 무인주차장도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자전거도둑 어떻게 막나 #1 자출족 한모(32)씨는 지난 23일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출퇴근용으로 자전거를 구입한 지 일주일만이다. 회사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경비아저씨에게 부탁도 했지만, 자전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2 자전거동호회 회원 김모(54)씨는 눈앞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자전거를 타다 한강변에서 쉬고 있는데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최신형이죠? 저도 자전거를 하나 구입하려고 하는데…. 시험운전 좀 해봐도 될까요?” 김씨는 의심 없이 자전거를 넘겨줬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택가에서도 자전거 도둑이 날뛰고 있다. 회사원 강모(47)씨는 “아이들이 최근 2년 동안 새 자전거를 학원앞과 친구집에 세워뒀다가 모두 4대를 잃어버렸다.”면서 “자전거를 훔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무리 비싼 자물쇠를 채워도 도둑을 당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자전거 보관대 역시 도난방지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 이상훈(34)씨는 “낡은 자전거만 즐비한 보관소에 새 자전거를 주차하면 금세 눈에 띈다. 그래서 보관대에 주차하면 자전거 도둑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보관대가 ‘바퀴 고정식’이라 바퀴가 분리되는 자전거에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자출족은 자전거 보관대를 ‘자전거 도난대’라고 부른다. 도난방지책은 관리인이나 폐쇄회로(CCTV)가 있는 자전거 주차장을 시내 곳곳에 설치하는 것이다. 다행히 내년 12월 전국 최초의 자전거 토털 센터가 4호선 수유역에 세워진다. 서울시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첨단 도난방지 장치의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전거에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을 갖춘 전자칩을 부착해 도난을 예방하는 방식이다. # 암스테르담에서는 암스테르담 역시 도난이 골칫거리다. 전체 자전거의 10%인 6만여대가 매년 도둑맞는다. 암스테르담은 이를 첨단시설을 갖춘 실내주차시설(25곳)과 분실·도난보험, 자전거등록제로 해결한다. 주차장은 오전 6시∼오후 11시30분 운영하며 보관료는 하루 1유로(1200원), 일주일(4유로·4800원), 한 달(11유로·1만 3200원),1년(90유로·10만 8000원) 단위로 나뉘며 주차장 이용 계약기간이 길수록 요금이 싸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사설] ‘자물쇠 학원’에 아이 맡기는 부모

    겨울방학을 맞아 ‘자물쇠 학원’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자물쇠 학원’이란 아이들을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붙잡아 두고, 외출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학원을 말한다. 이런 학원에서는 몽둥이를 든 감시원이 아이들을 통제하고 학원강사들의 체벌도 자주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학생 관리 시스템이 부모의 요구에 따라 생긴 데다 학부형·학생 할 것 없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니 정말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물쇠 학원’이 성행하는 세태를 이 시대 사회병리적 현상의 하나라고 판단한다. 아울러 그 바탕에는 부모의 잘못된 자녀관·교육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먼저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무리 학업 성적을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나 방학을 맞은 자녀를, 외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몽둥이 찜질’까지 벌어지는 공간에 매일 12시간씩 잡아둔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다. 또 무작정 아이들을 붙잡아 두고 공부를 시키면 성적이 나아지리라는 인식도 교육에 관한 무지·몰이해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듯해 안타깝다. 학교에서는 가벼운 체벌을 당해도 학생·학부모가 난리를 치면서 학원에서는 매를 맞아도 싸다고 동의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학부모의 의식 변화가 선행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이 믿음을 되찾아야 한다. 교육당국도 관련법규가 없다고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청소년 인권보호라는 차원에서 ‘자물쇠 학원’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 [신나는 과학이야기] 우리도 ‘국립’ 자연사 박물관을 갖자

    [신나는 과학이야기] 우리도 ‘국립’ 자연사 박물관을 갖자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의 주인공 래리는 이혼남에다 하는 일마다 실패만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는 멋진 아빠이고 싶어 박물관 야간경비로 어렵게 취직을 한다. 출근 첫날밤 선임자는 “아무 것도 내보내지 말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고 사라져버리고 래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박물관 중앙 홀에 전시돼 있던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아서 래리에게 돌격해오는 것이 아닌가. 공룡뿐이 아니다. 박물관 안의 모든 전시물이 밤이 되면서 살아나 래리를 위협한다. 사자가 못나오게 자물쇠로 잠가야 하고 사나운 훈족도 피해 도망가야 하고….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그에게 선임자는 역사를 공부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충고한다. 래리는 도서관에서 인류와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마법의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시공간을 넘어 공룡과 사자와 훈족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이 박물관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연사박물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 그것은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다. 자연사박물관은 말 그대로 자연의 역사를 기록한 곳이다. 지구가 생긴 이후 지층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여러 동식물은 어떻게 진화돼 왔는지, 인류는 어떻게 문명을 이뤘는지에 이르기까지 지구를 이루는 모든 것의 진화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은 곳이다. 자연사박물관을 가면 대부분 영화에서처럼 거대한 공룡이 중앙 홀에서 손님을 맞는다. 중생대에 지구를 호령했다 사라진 공룡은 늘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존재이기에 자연사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백만년 전 그 공룡을 과학자들은 뼈와 화석만으로 복원해 살려낸다. 공룡뿐 아니라 화석과 지층, 암석을 토대로 과거에 살았던 생물들과 지구환경을 복원해내 전시한다. 자연사박물관에는 고생물뿐 아니라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종이 전시돼 있다. 우리 땅에 사는 생물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사는 생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실물과 모형을 보면서 체험할 수 있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우리 조상의 진화 과정과 문명의 발전사를 살핌으로써 인류의 진화와 여러 문화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다.“우리가 미래를 볼 수 없다면 인생에서 가장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라고 한 자연과학자 고드리의 말처럼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봄으로써 인류가 나아갈 미래의 모습을 모색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다. ●살아있는 박물관을 꿈꾸며 현재 우리나라는 OECD 29개 회원국 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런던에도, 파리에도, 워싱턴에도 멋지고 특색 있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있다. 그곳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기업과 개인의 기부, 박물관 직원들의 연구와 교육활동 등 많은 이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사명감이 합쳐져 운영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교육의 장을 넘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이자 시민들의 휴식처, 관광자원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영화에서 밤새 벌어진 사고의 책임을 물어 래리를 해고하려던 박물관장은 박물관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 결심을 바꾼다. 사람들이 넘치는 박물관이 진정 살아있는 박물관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에도 어서 빨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생겨 생생한 자연의 역사를 느끼려는 아이들로 넘쳐날 날을 꿈꿔본다. 한 문 정 숙명여고 교사
  • 주부 24명이 일구는 ‘기적의 마을문고’

    주부 24명이 일구는 ‘기적의 마을문고’

    동네 마을문고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찾는 사람이 없어 문을 닫았던 새마을문고가 부활 5년 만에 전국 최고로 발돋움한 것이다. 동네 주민이 회원인 이곳에서 세살배기에서 칠순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회원 2000여명은 소장도서 7000권을 맘껏 즐긴다. 자원봉사자 24명이 펼치는 동화구연, 토요 체험학습, 슬라이드 동화구경은 덤이다. 관악구 봉천5동 ‘파랑새문고’가 기적의 주인공이다. 문턱은 낮고 속은 꽉 찬 파랑새 문고의 험난했던 부활의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닫힌 문을 열어라 주부 김진희(45)씨는 2001년 초 봉천5동 아파트단지로 이사한 후 마을문고부터 찾았다. 그러나 동사무소 2층에 자리한 문고는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자원봉사자도, 회원도 없어서 운영을 포기한 상태였다. 김씨 등 아파트 주부 6명이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사랑방처럼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마을문고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널브러진 책 3000권을 연령별·내용별로 분류했다. 책표지를 일일이 비닐로 싸고 분류표를 만들었다. 낡은 시설을 바꾸기 위해 봉사자들이 수십만원씩 십시일반했다. 부족한 책은 주민들에게서 기증받았다. ●동화구연·체험학습 진행 준비를 마치고 2001년 9월 다시 문을 열었다. 평일에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방학 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했다.3권씩 7일간 대출하며 연체료는 하루 100원씩 받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좀처럼 문고를 찾지 않았다. 좋은 책이 없을 것이란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채로운 홍보이벤트를 기획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유치원 교사 출신 자원봉사자가 나서 아이와 엄마를 대상으로 옛이야기를 들려줬다. 입소문을 타고 5∼8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동화책을 슬라이드로 촬영해 상영도 했다. 아이들은 낯선 그림동화에 매료되고, 엄마들은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놀토(학교가 노는 토요일)에는 유적지나 박물관으로 토요체험학습을 떠났다.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퀴즈 이벤트를 펼쳤다. 자원봉사자가 체험학습 현장을 미리 탐방해 퀴즈 문제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보물찾기하듯 답을 맞춰가며 신나게 체험했다. 방학에는 미술교실, 예술교실, 양초공예, 여치집 만들기 등도 마련했다. ●아이들이 변했다 3년쯤이 지난 2004년부터 매일 100여명이 찾아오는 인기 마을문고로 변신에 성공했다.15평 규모의 문고에는 책이 가득 찼다. 올해만 새책을 900여권이나 구입했다.‘꿈을 찾아 날아가자.’는 뜻에서 파랑새문고라고 이름도 바꿨다. 아들 은수(3)를 데리고 문고를 찾은 주부 이동은(31)씨는 “좋은 책이 많아 오가며 자주 들른다.”면서 “아이가 놀이터처럼 즐기는 마을문고가 참 소중하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엄마의 자녀들도 달라졌다. 김진희씨는 “엄마를 보러 문고에 왔다가 책을 읽게 된다.”면서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방학 때 문고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파랑새문고는 지난 21일 새마을문고중앙회가 주최한 ‘전국 국민독서경진대회’ 새마을문고 운영부문에서 최우수 문고로 뽑혔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서울 대공원에 가보았지] 눈먼 어미곰과 ‘눈물의 상봉’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는 동물원 곰사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눈물의 상봉식’이 열린다. 아리(♂)와 쓰리(♀) 남매가 엄마를 만나는 날이다. 이들의 만남이 애처로운 것은 바로 어미곰(10살)이 앞을 볼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다. 아리와 쓰리가 태어난 것은 지난 1월. 선천적으로 눈이 먼 어미곰은 산실에서 하루 꼬박 진통을 했다. 무사히 아리와 쓰리를 낳은 뒤에도 사육사들의 걱정은 계속됐다. 앞이 보이지 않아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어미가 새끼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동물원측은 잠시 경과를 지켜본 뒤 새끼들을 인공포육실에 맡길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약한 새끼는 가차없이 내쳐버리는 여느 맹수들과 달리 눈먼 어미곰은 두 마리 모두를 보듬었다. 눈을 뜨지 못한 새끼들을 양 옆에 끼고 손으로 더듬어 젖을 먹였다. 정작 자신은 한치 앞도 못 보면서 새끼들이 지나가기 전 먼저 네 발로 땅을 더듬어 튀어나온 돌을 피해가게 했다.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자란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하지만 새끼들이 자라면서 이별의 시간도 가까워졌다. 어느새 한 살이 다 되어가는 새끼들도 이제 독립해서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동물원측은 몇 달 전 어미곰을 우리 뒤쪽의 내실로 옮겼다. 처음에는 어미를 잃고 허둥지둥하던 아리와 쓰리도 엄마 없는 생활에 점점 적응을 했다. 오히려 녀석들이 벌써 어미를 잊은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분리 한 달 만에 내실 청소를 위해 다시 어미곰을 곰사로 내보냈을 때 이러한 걱정은 기우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내실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문에서 자물쇠 소리가 나자마자 눈치를 챈 아리와 쓰리가 쏜살같이 달려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문을 발톱으로 긁어대며 안절부절못하던 남매 앞에 드디어 어미곰이 나타나자 세 마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비비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앞으로 이들이 함께할 시간보다는 떨어져 있을 시간이 더 길지만, 이들의 애틋한 마음은 아리와 쓰리가 다 자라 어른이 된 뒤에도 변함없을 것이라 믿는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아빠, 뜨거워…” 부모 일 간뒤 불 남매 질식사

    3일 오전 7시10분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 온모(40)씨의 집에서 불이 나 30여평을 태우고 30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집에 남아 부모를 기다리던 딸(9·초등 2년생)과 아들(6)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온씨는 불이 나기 직전인 오전 6시50분쯤 전날 모은 폐지를 고물상에 넘기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나섰다. 부인 김모(34)씨 역시 일터에 있었다. 평소 자폐 증세를 보이는 아들이 부모가 집만 비우면 뛰쳐나가 번호 자물쇠로 문을 밖에서 잠근 터였다. 딸이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문을 여는 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마가 오래된 슬래브 건물을 집어 삼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린 딸은 급히 아버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불이 났다고 외쳤지만, 온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이 검은 숯덩이가 된 뒤였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죽여도 좋다’ 각서를 쓸때

    ‘죽여도 좋다’ 각서를 쓸때

    연약한 여자를 고위층과 친분이 두텁다고 속여 정조를 유린한 다음, 못질을 한 방에 가두고 폭행을 일삼는 등 모진 학대를 해온 파렴치한이 경찰에 붙들렸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1월 16일 자칭 철도청 영등포 공작창 화물 하역소장이라는 민병진(閔丙振)(35)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여심(女心)을 울린 이 사기한의 행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민(閔)은 지난해 9월 10일, 전직 국회의원 金모 여사의 중매로 알게된 신정숙(申貞淑)양(24·가명·서울영등포구 상도동)을 총각이라고 속이고 농락한 뒤 강제로 자기 집 방에 가두어 놓고 모진 학대를 하며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모여인으로부터는 돈까지 갈취했다는 것. 주로 처녀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해온 민(閔)이 행여나 다른 여자에게 또이런 사기행각을 할까 두려워 경찰에 고발한 것이라고 신(申)양은 한숨짓듯 말한다. 민(閔)의 사기극에 걸려들어 감금생활을 하면서 학대를 받아오던 신양의 입을 통해 그의 행각을 들어보면-. 신(申)양이 민(閔)을 알게된 것은 지난해 9월. 이미 작고한 신(申)양의 아버지가 어느 고을 군수로 재직때 뒤를 도와주던 전직 국회의원 김모여사의 중매로 맞선을 본 것이 신(申)양에게 인간 지옥 속을 헤매게 한 동기였다. 지난 해 9월, 신(申)양과 민(閔)이 맞선을 보는 자리에는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여인과 중매를 선 김여사가 자리를 같이 했다. 김여사의 신랑감에 대한 칭찬은 정(鄭)여인으로 하여금 딸을 맡겨도 안심이 될 정도로 홀딱 반하기에 충분했다. 소개가 끝나자 두 여인은 이 남녀들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위해 자리를 떠났다. 민(閔)은 신(申)양에게 자신이총각이라면서 35세가 되도록 장가를 못간 것은 청년운동을 하다 때를 놓친 때문이라면서 자기 소개를 그럴듯 하게 청산유수 처럼 늘어놨다. 『그 사람 첫 인상은 별로 탐탁치 않았지만 그만 그의 감언이설에 제가 속은 것이지요』 신(申)양은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민(閔)은 신(申)양에게 『앞날의 설계를 세울 우리 집을 가보자』고 유인, 민을 따라간 신(申)양은 그 날로 그의 집에서 정조를 빼앗겼다. 그가 신(申)양에게 들려준 학력과 이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학생운동에 참여해 오다가 도덕재무장 한국본부 부총장을 거쳐 대한 국토건설단 중앙단 부단장, 전국 청년단체연합회 기획위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국민도의선양회 회장에 있노라고 제법 굵직굵직한 직함들을 장광설로 늘어놓았다는것. 신(申)양은 민(閔)의 거짓말이 뻔히 들여다 보일 때도 남자의 허세이거니 생각하고 탓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민(閔)의 가면은 신(申)양앞에 하나씩 그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민(閔)은 자신의 가면을 벗기지 않으려고, 차차 의심을 품기 시작한 신(申)양의 어머니를 찾아가 신(申)양과 약혼식을 올려줄 것을 강요하면서 만약에 이를 거절한다면 폭탄을 들고와서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했다. 민(閔)의 강압에 못이긴 정여인은 지난해 10월 25일 8만원을 들여 약혼식을 올려주었다. 민(閔)은 전처의 소생이 3명이나 있는 홀아비. 신(申)양은 약혼식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신(申)양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나 민(閔)은 신(申)양의 태도가 점점 자기 곁을 빠져 도망칠 것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지난해 11월 2일부터 밖에 나갈 때는 신(申)양을 방에 가두고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민(閔)은 신(申)양을 방에 가두고 방문을 쇠창살로 굳게 못질하고 큰 자물쇠를 채워놓고는 식사는 식모를 통해 부엌으로 통하는 샛문으로 들여보내게 하고 대소변까지 방안에서 보도록 했다. 『작년 가을이었읍니다. 일요화가회에서 미술전을 열었을때의 일입니다』 그때 민(閔)은 신(申)양이 보는 앞에서 방문객 「사인」난에 「金鍾X형」이라고 쓰고는 『이래도 날 의심하느냐』고 할 정도로 지능적이었단다. 신(申)양은 68연도 M미술대학 서양화과를 나온 아가씨. 『그래도 저는 모든 것을 믿으려 했읍니다.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읍니다. 아마 학대만 하지 않았어도 그를 고발치는 않았을 것』이라고 신(申)양은 한숨짓는다. 그의 감시·학대벽은 점점 극에 달해 하다못해 극장에서 화장실을 가면 여자화장실까지 쫓아와 도망치려고 하느냐면서 마구 엉덩이를 구둣발로 차기도. 이런 날은 집에 들어와 단도를 빼어들고 『배반하면 죽여버려도 좋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강요하기가 일쑤였다. 만일 신(申)양이 각서를 쓰지 않으면 뜨거운 주전자물을 머리에 붓는 등 그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했다. 그 때 그가 신(申)양의 머리에 부운 물에 신(申)양은 화상을 입고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이렇게 난폭한 민(閔)은 항상 주머니에 명함대신에 요인들과 찍은 사진 3장을 넣고 다녔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할때는 사진을 내보이며 요인들의 팔과 같은 일꾼이라고 속여 청와대를 무상으로 출입한다고 큰 소리쳐 왔다는 것. 딸의 이런 생활을 까마득히 모르던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여인은 신(申)양이 지난해 12월 29일 수면제를 먹고 음독자살을 기도했을 때야 뒤늦게 알고 경찰에 고발했다. 지금은 K병원에 입원해 있는 신(申)양은 『더 이상 상고 싶지 않았다』면서 그 때의 감금생활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난다고 부르르 떨었다. 경찰이 민(閔)의 집을 수색한 결과 그의 「캐비니트」 속에서 신(申)양 이외에도 다른 여자로부터 『배반하면 죽여도 좋다』는 내용의 각서를 발견, 경찰은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민(閔)은 경찰신문에 1건의 전과도 없다고 딱 잡아떼어 그의 사기술을 활용하려다 지문조회결과 68년 6월28일자 서울 서대문서에서 폭행혐의로 구속된 것을 비롯, 전과 5범으로 판명됐다. 민은 경찰에 검거되던 날도 전화로 당직형사계장을 찾아 『나같이 높은 사람이 어떻게 경찰에 출두할 수 있겠느냐』면서 담당형사가 직접 찾아와 조서를 받도록 하라고 호통을 칠 정도로 허풍을 떨었다. 장석영(張錫英)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판돈 2000억대 사설카지노 적발

    판돈 2000억원대의 대규모 도박단 72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유흥가와 주택가를 오가며 하루 7억원짜리 도박판을 10개월간이나 벌여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1일 김모(39)씨 등 2명을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로 구속하고 도박꾼 모집·알선책, 딜러, 감시조 등 2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주부, 회사원 등 상습적으로 도박을 해 온 44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달 초까지 10개월 동안 150평 규모의 ‘바카라’(카드게임) 도박장을 개설, 전체 판돈 2175억원 중 1300억원을 딜러 수수료 등 명목으로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유흥가의 13층 건물 중 5층 전체를 임대, 테이블 7개를 갖다놓고 하루 7억원 규모로 24시간 도박판을 운영해 왔다. 하루 평균 150여명씩 연 인원 4만 5000여명이 1인당 하루 400만∼500만원을 기본베팅액으로 걸고 도박을 했다. 도박꾼 모집·알선은 조직폭력배 출신들이 담당했다. 딜러로는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일했던 사람도 18명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인력감축으로 정선 카지노에서 일자리를 잃자 2배가량의 보수를 제안받고 불법 카지노로 옮겨왔다. 회사원, 주부, 택시기사, 자영업자, 건축업자, 유치원 원장 등 도박을 했다가 적발된 44명 중에는 여성이 19명이나 됐으며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해 이혼한 주부도 있었다. 이들은 지난 8월 경찰단속이 심해지자 유흥가를 벗어나 주택가로 옮겨 도박판을 벌였다. 외부에 폐쇄회로 TV를 5대 설치하고 입구에는 건장한 체격의 단속 감시조들을 뒀다. 특히 30㎝ 간격으로 자물쇠 달린 철문을 설치, 경찰이 철문을 여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건물 위층의 모텔로 숨는 시나리오까지 마련해 둔 것으로 드러났다. 주범 김씨는 도박으로 10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얻고도 본인 명의로 재산을 등록해 놓지 않아 세금을 포탈했다. 도박꾼들 중에는 2억∼3억원을 잃은 사람이 수두룩하고 많게는 10억원을 잃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모(39)씨는 경찰에서 “도박으로 집, 차, 사업장 등 재산을 다 날리고 사채에 시달리면서 신변의 위험까지 느끼며 살고 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가정집 등을 개조한 소규모 사설 카지노는 더러 적발됐지만 시설을 제대로 갖춘 대규모 사설 카지노가 적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판돈도 국내 최대 수준”이라면서 “운영자들의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조직폭력배와 연계 여부 등을 집중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파업참가 저조·발전소 정상가동에 ‘백기’

    발전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지 15시간 만인 4일 오후 파업을 전격 중단했다. 파업을 철회한 배경은 여러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파업을 계속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현실론이 작용했다. 이는 중앙노동위원회가 3일 밤 직권중재 회부 결정을 내리면서 예고됐다. 이후 파업이 불법인 만큼 파업을 계속할 경우 조합원의 엄청난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위기의식은 4일 오후 집행부들이 모인 간담회에서 여과없이 표출됐다. 조합원을 볼모로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대세로 굳어졌다고 한다. 정부도 공권력을 투입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원칙대로 대응하기로 한 점도 이번 파업의 입지를 좁힌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발전사 사장단도 이날 오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더이상 양보할 것은 없다.”며 자물쇠를 채웠다. 또 이번 파업이 ‘명분없는 파업’이라는 여론의 싸늘한 반응도 파업을 접게 만들었다. 발전회사들의 임금 수준이나 근무 여건 등을 감안할 때 국가의 핵심동력인 전력과 국민 생활, 국가 경제를 담보로 불법파업을 강행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또 발전노조가 사측에 요구한 것에 무리한 부분이 많은 점도 노조가 파업을 철회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노조는 이미 국회에서 통과된 발전회사 분할에 대해 통합을 요구하는 등 사측이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요구해 왔다. 발전회사 사장단은 ▲발전 5사 통합 ▲해고자 복직 ▲교대근무를 4조 3교대에서 5조 3교대로 확대 ▲노조의 인사위원회 참여 등 7개 사안에 대해서는 노사협상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사장단은 한국전력 본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중노위의 직권중재 회부가 결정됨에 따라 현재 발전노조의 파업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노조원들에게 오후 1시까지 전원 복귀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원칙에 따른 대응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발전 5사는 또 대화를 통한 타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중노위의 중재안을 받겠다고 밝혀 사실상 대화에 미련이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밝힌 것도 노조에는 부담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원걸 산업자원부 차관은 이날 발전 5사 사장단과 가진 대책회의에서 “파업의 조기 마무리를 위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해 달라.”고 원칙대응을 주문했다. 노조의 첫날 파업에도 불구하고 파업 참가율이 39%에 그치면서 발전소 32개가 정상 가동된 것도 노조의 힘을 약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된다. 노조 파업이 ‘전력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아 파업의 영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파업 찬반투표에서도 60%를 밑도는 찬성률을 보였었다. 전면파업을 하기에는 찬성률은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발전노조는 이에 앞서 지난 2002년 2월말부터 4월초까지 38일간 파업을 벌였으나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해 사실상 실패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4년 반 만에 들어간 이번 파업도 싸늘한 여론으로 실패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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