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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철가방/최광숙 논설위원

    1895년 10월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직후 경복궁. 홀로 남겨진 고종황제는 궁내의 친일파 세력이 자신마저 독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철가방’이다. 미국인 선교사들이 궁 밖에서 만든 음식을 양철통에 담아 자물쇠에 채워 가져간 것이다. 당초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중국집 짜장면 배달 가방인 철가방은 지금의 모습을 갖춘 이후에도 무한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씨는 버려진 철가방을 주워다 원고지나 취재수첩을 놓는, 간이 서가로 쓰고 있다고 한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경북 청도에 문을 연 코미디 전용극장은 짜장면, 짬뽕, 소주병 조형물로 장식된 철가방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도 철가방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배달의 기수 ‘철가방맨’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라고도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의 철가방에는 그래서 처절한 아픔과 슬픈 사연들이 배어 있다. 철가방 인생이 빚어낸 감동의 스토리가 유독 가슴 절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려대 앞 중국집에서 일하던 김대중씨. 짜장면을 시키면 짬뽕 국물도 주는 고객감동 서비스로, 그는 예전에 ‘고려대 철가방 번개’로 명성을 날렸다. 요즘 ‘태풍이 불어도 철가방은 달린다’는 주제로 대학 등에서 스타강사로 활약 중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얼마나 열의를 갖고 하는가에 따라 일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굳게 믿은 그였기에 희망의 전도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최근 또 한 명의 철가방맨이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한 달 70만원 벌이임에도,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을 후원하던 ‘철가방 아저씨’ 김우수(54)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1.5평의 고시원 쪽방에 살면서도 작지만 큰 이웃사랑을 펼쳤던 삶이기에 그를 향한 추모의 물결이 넘실댄다. 보험금마저 어린이재단 앞으로 남긴 그의 충만한 삶.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7세 때 고아원에 맡겨졌고,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돌았지만 불우 어린이들을 후원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의 삶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했던 그가 오히려 사랑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외로운 삶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은 우리보다 훨씬 풍요로웠는지도 모른다. 책상 위에 놓여진, 그가 후원했던 어린이들 사진을 보면 말이다. 그가 세상에 전해준 사랑의 온기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해남-끄트머리土末에서의 시작 기억이 사는 곳, 해남

    해남-끄트머리土末에서의 시작 기억이 사는 곳, 해남

    1 두륜산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까지 이르는 산책로는 소사나무 군락지다. 10월에는 그 열매를 볼 수 있다 2 땅끝 전망대를 향하는 길에는 어김없이 연인들의 맹세가 굳게 잠겨 있었다 3 수군들이 성을 세우고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길목에 자리잡은 이진마을. 지금은 평화롭기만 하다 끄트머리土末에서의 시작 기억이 사는 곳, 해남 해남은 첫사랑 같은 곳이다. 아주 오래전, ‘휴가’라는 것이 처음 생겼을 때, 해남을 선택했었다. 처음 만나는 남도. 그후 해남은 시간과 함께 멀어지기만 했었던 것 같다. 다시 찾은 해남에서 나는 적지 않은 기억을 되찾았고, 또 수정해야 했다. 익룡이 살던 중생대 백악기,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던 조선시대까지 다녀왔고, 시작을 위한 끝이라는 땅끝 전망대에서 ‘유구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아득하게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살아있는 것들, 첫사랑처럼 또렷한 기억의 각인들을, 말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전남대 생태관광연구센터 www.ecotourlab.org 되찾은 기억은 이런 것이다. 첫 해남 여행은 아주 추운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국토의 끝이라니. 돌아보면 청승 무모한 청춘의 자작극이다. 게다가 보길도에서 돌아 나오는 배가 풍랑으로 뜨질 못해 여행은 하루가 더 길어져 버렸다. ‘섬에 갇히는 로망’은 그때 그렇게 허무하게 이뤄져 버렸다. 아무튼 당시의 내게 해남은 고산 윤선도의 땅,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의 끝이었고, 김지하 선생이 그러했듯(그는 땅끝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단다) 청춘의 고뇌를 끝장내 버리고 싶었던 곳이었다. 수정된 기억은 이렇다. 땅끝의 사자봉 위에는 높다란 전망대와 미니레일이 있었고, 두륜산 정상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팀이 다녀갔던 여운이 곳곳에 진하게 남아 있었다. 불사는 대흥사, 미황사의 모습을 많이 바꾸었고, 그때는 템플스테이라는 것도 없었다. 우항리에 세워진 공룡박물관과 화석지는 ‘메가급’ 변화에 속했다. 10년 세월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내가 고이 품어 온 기억은 따로 있다. 문학과 풍류에 선행하는 생존 자체의 문제, 그래서 목숨을 걸고 이 땅을 지켜냈던 민초들의 어제와 오늘이 보였다. 쉽게 말해 ‘명량대첩’ 같은 전쟁의 기억이다. 주인공은 불멸의 이순신 장군이지만, 승리의 기쁨은 모두를 초대하는 축제가 됐다. ‘강강술래’를 추며 지역 주민들이 주도하는 축제의 마당에는 나름대로의 ‘격한’ 드라마가 있었다. 또한 달량진성처럼 아직도 ‘역사의 잔해’로만 남아있는 쓸쓸한 풍경들도 껴안았다. 고장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과 동동주 기울이며 그 마음도 전해 받았다. 더 나아갈 길 없는 막다른 곳, 땅끝에서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땅끝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해남 앞바다.바삐 오가는 노란 모노레일은 바다 속을 드나드는 것만 같다 ‘해남이쿠누스 우항리엔시스’를 만나다 한양에서 1,000리라 했나. 땅끝土末을 품고 있는 해남으로 내려왔으니 가장 먼 과거로, 무려 8,3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가뿐했다. 우항리 공룡박물관이다. 내게 공룡의 기억이 없으니, 공룡을 ‘노래’했던 기억을 좀 빌려 써야겠다.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그럼 무엇이 생겼었을까. 공룡이 헤엄치고 익룡이 날아다니고 아주 심심한 것 같은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80년대에 ‘꾸러기들’이라는 팀이 부른 이 엉뚱한 노래를 꽤 좋아하여 즐겨 불렀었다. 그 익룡들을 우항리에서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발자국(35cm)은 이곳의 지명을 따 ‘해남이쿠누스 우항리엔시스’로 명명되었다. 세계에서 7번째, 아시아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공룡 화석의 보고인 우항리의 백악기 퇴적층이 드러난 것은 금호 방조제 공사 이후 이 지역이 담수호를 낀 육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후반에 국내외 과학자들이 조사한 이후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에는 공룡박물관까지 설립할 수 있었다. 우항리 화석지(33만 평방미터)는 이런저런 공룡의 발자국 화석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발자국 크기가 작게는 52cm, 크게는 95cm나 되는 초식공룡의 몸집은 얼마나 컸던 걸까(몸통길이만 7m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발자국 105개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 보호각(대형 공룡관)이 세워졌다. 익룡 발자국 443점과 물갈퀴새의 발자국(전세계에서 발견된 물갈퀴새 발자국 중 가장 오래됐다) 1,000여 점을 보호한 익룡 조류관, 조각류 공룡관까지, 보호각은 총 3개가 있다. 화석으로만 남아있는 공룡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은 공룡박물관에서 얻을 수 있고 연꽃이 가득한 연못에 공룡 모형을 설치한 야외공원은 기념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우항리 공룡박물관 | 주소 전남 해남군 황산면 공룡박물관길 184 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문의 http://uhangridinopia.haenam.go.kr 1, 2 우항리 일대는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공룡뼈와 화석 모형을 전시하고 있는 공룡박물관의 규모도 공룡사이즈라 꼼꼼히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3 단청을 벗어버린 대흥사 대웅전은 한결 부드러운 인상이다 4 소가 멈춘 자리에 지었다는 미황사는 달마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전설은 알수록 재미있고, 절은 볼수록 아름답다 5 두륜산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고계봉(638m). 맑은날에는 제주도까지 보인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땅끝으로 달려가는 공룡의 등뼈 최고最古의 다음은 최장最長이다. 두륜산에는 국내 최장거리의 케이블카(1.6km, 왕복 성인 8,000원)가 연결됐다. 다행히도 직행으로 고계봉(638m)에 내려주는 것은 아니고 내려서 286개의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뿌연 안개가 사방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맑은 날에는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했지만, 전망대 위에 섰을 때에는 한반도 지도 모양의 마을도, 월출산도, 주작산도, 완도, 진도 등의 섬들도 모두 안개에 숨어들었다. 골짜기에 들어앉은 대흥사도 고계봉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힘차게 달려온 소백산맥이 두륜산(703m)을 통과해 남쪽의 달마산(489m)을 지나고 급기야 땅끝의 사자봉(155m)에 이르러서야 수그러드는 모습을 어렴풋이 목격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암봉으로 이어진 능선을 타고 바다까지 흐르고 싶지만 산행은 금지되어 있어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대흥사 입구까지는 차로 이동했다. 구림구곡九林九曲의 10리 숲길을 배신하는 마음이 아팠지만 해가 저물고 있었다.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地處로 불렸던 안전한 절집은 전쟁을 피해 곱게 늙었다. 1,000개의 불상이 모셔진 천불전뿐 아니라, 추사 김정희가 쓴 무량수각 현판,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 정조대왕이 쓴 표충사 현판도 남아 있어 살아있는 ‘서예 박물관’으로 불린다. 도를 닦는 것은 차를 마시는 것과 같다 했는데禪茶一如, 초의선사가 머물면서 차를 즐겼다는 일지암에 가지 못한 것도, 차 한잔을 마시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차창 밖으로 달마산이 나타날 때마다 내 시선은 고정되었다. 유홍준 교수는 암릉으로 솟아오른 산의 모양새를 ‘공룡의 등뼈’ 같다고 했었다. 그럴싸한 표현이다. 누군가는 달마대사가 살고 있다고도 했다. 달마Dharma·法산, 진리의 산이라니, 과감하고 멋진 이름이다. 설화 속의 어떤 이는 같은 산정을 두고 1만개의 불상을 보기도 했다. 그게 바로 미황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금인金人이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우전국(인도)에서 온 금인이 검은 소를 따라가다 주저앉는 자리에 불경을 모시라는 말에 따라 미황사가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黃’은 금인의 황금빛을 뜻한다. 1754년 이후 단청을 덧칠하지 않아 색이 바래 버린, 아니 화장을 벗은 대웅보전은 해질 무렵마다 아름다운 황금빛이 된다. 기둥 아래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가 새겨진 이유는 ‘대웅보전’이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알수록 흥미로운 절이다. 솟아오른 등뼈의 릴레이가 멈추는 곳이 땅끝土末(북위 34도17분21초)이다. 노란 모노레일(395m, 왕복 4,000원)을 타고 사자봉 정상의 전망대(38m)로 올라가는 대신 시비가 도열해 있는 산책로를 선택했다. 연인들의 간절한 마음과 언약은 이곳에서도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앞날을 어찌 알겠나. 꼭 그만큼 불투명한 전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희미해서 더 아름다운 풍경. 여기가 끝이 아니라 저 너머 무엇이 있으리라는 희망 없이는 사랑도, 여행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다의 눈물이 거둔 승리 해남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승리의 기억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대패시켰던 명량대첩(1597년 9월16일)에 대한 기억이다. 제갈량이 바람의 방향을 읽어 적벽에서의 승리를 이끌어 냈듯, 울돌목 거센 물살의 방향을 예측하여 이순신 장군이 승리를 거둬낸 명량대첩은 ‘기적의 해전’이라는 수식까지 달고 있다. 고작 13척의 전력으로 133척의 왜군은 대파한 것. 명량대첩은 매년 가을 축제를 통해 다시 재현되는데 올해는 9월30일부터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 보게 될 ‘우수영 국민관광지’에는 충무사, 어록비, 전시관 등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을 기념하는 여러 시설과 조각상,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또 우수영과 진도 사이, 울돌목 물길에는 여름 내내 거북배가 바삐 움직였다. 뱃시간을 놓쳐 버렸지만 울돌목의 물결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빠른 물길이 암초에 부딪치는 소리와 사방으로 소용돌이치는 물의 아우성. 예부터 바다가 운다鳴梁고 한 이유를 알겠다. 명량해전의 승리는 그 눈물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일 터. 때마침 주말이라 펼쳐진 명량역사체험마당은 흥겨운 시간이었다. 등에 ‘수水’를 새기고 행렬하는 수군들의 교대식은 사뭇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뒤이어 남도 소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판소리 한판과 절제된 듯 화려한 군무, 강강수월래 무대가 이어졌다. 목숨을 바쳐 땅을 수호한 선조들을 기억하는 따스한 몸짓, 갸륵한 아우성이었다. 1 명량해전을 펼쳐졌던 울돌목에는 아직도 ‘긴 칼 옆에 찬’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으니 듬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큰하다 2, 3 우수영관광지에서는 여름 동안 주말마다 명량역사체험마당을 펼친다. 각각 수문장 교대식과 강강수월래 공연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9월의 해남 여행, ‘초요기를 올려라!’ 알고 보니 9월의 해남은 여러 축제와 행사가 오버랩되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여름 내내 토요일마다 깃발을 나부꼈던 명량역사체험마당이 9월24일까지 개최되고, 곧 이어 명랑대첩축제가 9월30일부터 10월2일까지 개최된다. 땅끝작은음악회도 그 마지막 무대를 9월17일에 대흥사에서 펼쳐 놓는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생태관광연구센터의 기획으로 진행되는 해남여행상품 ‘초요기를 올려라’는 명랑대첩축제와 명량역사체험마당 등의 이벤트와 함께 땅끝마을, 두륜산, 대흥사 등의 해남 명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일정을 구성했다. 여행상품 초요기를 올려라 출발 2011년 6~11월 매주 토, 일요일 및 공휴일 출발. 명량대첩축제기간(9월30일~ 10월2일)에는 매일 밤 출발. 서울 교대역 9번 출구, 오전 7시 출발. 요금 1박2일 11만9,000원(왕복 교통비, 1박 3식, 가이드, 입장료, 보험 포함) 문의 여행스케치 www.toursketch.co.kr 당신이 아직 모르는 해남이야기 우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모든 여행지는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고, 그것을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찾아가 보면 초라하고 허망할 수 있는 해남 북평면의 무명소無名所들. 그 이름들을 기억해 두시라. 해남군의 예산 지원이 확정된 북평면 일대가 완도의 길목이었던 시절의 활력을 되찾을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허망한 남창장’에 언능 와보소” 박상일 지역활력연구소 소장 이름부터 에너지가 넘치는 지역활력연구소의 박상일 소장. <해남신문>의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해남포럼, 해남습지 보전모임, 남도문화관광센터를 만들었던 그는 남도의 음식과 풍습에 대해 막힘이 없다. 요즘 그가 ‘꽂힌’ 대상은 ‘남창장’이다. 혹시 ‘허망한 남창장’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다른 장에 비해 일찍 서고 일찍 파장이 되어 버리기에 낭패를 본 사람들에게서 나온 푸념이 허무한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해남에서 완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생기기 전에 남창장은 인근 섬에서 해산물을 가득 실은 채 모여들고, 제주도에서도 밀감을 싣고 올 정도로 흥한 장이었다. 현재는 규모도 손님도 줄었지만, 혹시 2일, 7일에 해남에 오게 되거든 장차 ‘풍물 어시장’으로 달라질 남창장을 기대해 달라는 것이 박상일 소장의 당부다.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옛 시절의 영광은 멀어졌지만 사람과 물자가 모이고 흩어지는 장터의 기능만은 유효하다. “달량진성, 이진진성, 그대로랑께요” 노명석 북평면 청년회장 40대의 청년회장이라고 소개를 받은 것이 쑥스러운 듯 웃기만 하던 그가 북평면 남창리에 도착하자 성큼 앞장서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돌담이 그대로 남아있죠. 이렇게 잘 보존된 성벽은 별로 없다네요. 저기, 저 집들은 안에 들어가 보면 뒷담이 모두 옛 성벽으로 되어 있어요.” 조선시대 이 자리에 수군의 진지였던 달량진達梁津이 설치됐고, 그 안에 남쪽의 조운창(조세를 거둔 현물을 모아두던 창고), 즉 남창을 두었기에 그 이름이 남창리다. 1498년(연산군 5년)의 일이니 500년이나 서 있었던 돌담은 정말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 지난해 달량진성이 향토유적으로 지정됐고, 이제 본격적으로 손님맞이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주민들에게 떨어진 즐거운 숙제다. 아직은 쇠락한 상태인 시골 마을의 풍경을 등에 지고 뭔가 고민에 빠진 듯한 그의 얼굴에 듬직한 ‘청년’이 있었다. 그가 두 번째로 안내한 곳은 멀지 않은 이진진梨津鎭성터였다. 약 2.5km의 석벽 중 940m 정도가 남아있으니 역시 양호한 상태다. 서문터에 남아있는 옹성에는 우물터까지 보존되어 있다. 마을에서 까만 현무암이 발견되는 것은 제주에서 이곳까지 배에 조랑말을 싣고 왔던 흔적이라고 했다. 역사의 파편들이 골목마다 박혀 있었다. “우리집의 포석정 볼라요?” 함박골큰기와집 김순란 여사 새로 지은 한옥집. 그러나 모양만 한옥집인 숙소가 아니라 한옥의 가치와 정신을 살리되 현대인 편의를 더한 한옥집. 그게 바로 ‘함박골큰기와집’이다. 고향인 해남 북평면 오산리에 돌아와 민박을 꾸린 김순란 여사는 직접 황토를 발라서 건강한 한옥집을 완성했다. 그 집에 머무는 자체가 일종의 치유였다. 직접 담그는 동동주는 가장 먹기 좋을 때 내놓는 것이라 실패가 없고, 숙취도 없다. 두 동의 사랑방은 각각 넓은 마당을 끼고 있으니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기 일쑤. 자리끼 물병에 민트 잎을 따 넣어 주고, 동동주에도 꽃잎을 따 넣을 줄 아는 그녀는 풍류의 고수이기도 하다. 마당 한쪽에 직접 고안하고 복원한 미니 포석정에 물을 채우고 동동주잔을 올리니 정말 술잔이 한 바퀴 돌아 내 앞으로 돌아왔다. 선비처럼 시를 읊어야 할 것 같은 밤이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은 뜻밖의 것이었다. 급하게 손끝으로 대충 짓이겨 새끼손가락에 얹어 주었던 봉숭아꽃이 지금 고운 살구빛으로 내 몸에 스며들어 있다. 각인된 추억이다. 주소 전남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 1016-2(차경리) 요금 4인실은 5~8만원, 8인실은 15~20만원 문의 011-9606-7557 www.hanbakgol.c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檢 “정관계 인사 10여명 수사 대상”

    검찰이 ‘마당발’ 로비스트 박태규(71)씨가 접촉한 인물 10여명을 압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의 ‘로비 리스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이미 박씨의 전화통화 내역을 바탕으로 자주 통화한 고위급 인사, 특히 금융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이 유심히 들여다보는 부분은 지난해 이뤄진 부산저축은행의 유상증자 과정. 지난해 6월 500억원을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삼성꿈장학재단의 경우 교육과학기술부가 관리한다는 사실을 검찰은 주목하고 있다. 당시 부산저축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5% 이하였다. 한마디로 퇴출 위기에 내몰린 부실 금융기관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실한 부산저축은행에 국가가 사실상 운용하는 장학재단 기금이 투입된 것은 외양상 KTB자산운용 사모펀드를 통해서라고 하지만 예사롭지 않다. 검찰은 박씨가 여권 고위 실세를 움직여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하도록 했을 것으로 보고, 이 여권 실세를 쫓고 있다. 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포스텍이 500억원을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과정에서도 박씨의 로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정·관계를 겨냥한 로비 수사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사흘간의 강도 높은 조사에서 박씨는 김양(56·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으로부터 거액의 로비 자금을 받았다는 점 등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자진 귀국해 조사에 응했던 만큼 로비의 실체를 상당 부분 밝힐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로비선상의 인물들이 거론될 때마다 “박씨의 신병 확보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이러한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이 때문에 당분간 수사는 돈을 건네받은 사실을 파헤치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정치권 수사를 논하기는 이른 면이 있다.”면서 “김 부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부분 등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박씨의 수사 협조 여부와 상관없이 체포영장 시한이 만료되는 이날 오후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김 부회장의 진술이 신뢰성이 있으며 관련 계좌추적을 통해 박씨에게 돈이 흘러들어간 정황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박씨가 김 부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황 등에 대한 진술과 관련자와의 대질심문 등이 진행되면 수사는 정·관계로 지체 없이 향할 전망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현금이 오가는 은밀한 로비에서 박씨가 입에 자물쇠를 채우거나 대상자를 야권 인사들만 선별적으로 진술할 경우 로비 수사가 겉돌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경우 자신이 자발적으로 준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보호하고 ‘돈을 뜯어 간’ 의원들만 분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가 절반만의 성공이라는 평을 받았다. 오이석·안석기자 ccto@seoul.co.kr
  • 엠마왓슨-조니시몬스 대낮 LA거리 공개키스…이젠 밝힐수 있다?

    엠마왓슨-조니시몬스 대낮 LA거리 공개키스…이젠 밝힐수 있다?

    조니 시몬스와 엠마 왓슨이 대낮에 LA 거리서 키스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6일(현지시간) 엠마 왓슨(21)과 조니 시몬스(24)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다정하게 포옹하며 키스를 나누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도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LA 산타모니카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촬영된 파파라치 사진에서 엠마 왓슨은 조니 시몬스의 허리를 자물쇠로 채운듯 두 팔을 교차시켜 꽉 껴안고, 달콤한 포옹과 키스를 나눠 소문대로 두 사람이 깊은 사이임을 알려준다. 화려한 맥시 스커트, 흰색 스웨터, 샌들을 신은 엠마는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인 조니와 함께, 승용차와 가로수 사이의 공간에 서서 사랑을 교환했다. 엠마 왓슨과 조니 시몬스는 영화 ‘월플라워(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의 주연을 함께 맡아 연기하면서 열애설이 불거졌지만, 그동안 계속 부인해왔다. 한 여성 목격자는 “엠마와 조니가 다정한 눈빛을 교환하며 키스와 포옹을 하고 있었다”며 “엠마는 남자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조니는 엠마가 친구들과 함께 머물고 있는 산타모니카의 한 고급주택에서 엠마와 밤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 소식통은 “조니는 이번 주 엠마와 함께 적어도 하룻밤을 보냈으며 둘 사이가 심각한 관계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엠마 왓슨은 작년 남자친구 제이 배리모어와 결별한 후 모델 조지 크레이그, 록가수 라파엘 케브리안 등과 열애설이 불거진 바 있다. 지난 6월에도 할리우드의 한 연예 전문매체가 엠마 왓슨과 조니 시몬스가 열애중이라고 보도했으나 엠마 왓슨은 측근의 입을 빌어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는 것은 맞지만 그냥 순수한 관계” 라고 부인했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名품, 狂풍] 명품브랜드 “한국부터 모셔라”

    [名품, 狂풍] 명품브랜드 “한국부터 모셔라”

    ‘2010년 상반기 롯데·현대·신세계·갤러리아·AK 등 국내 5대 백화점의 명품 매출 1조 1507억원’. ‘2010년 루이뷔통 코리아 매출 4279억원 달성’. 한국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최대 시장이자 테스트 마켓으로 변신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명품천국’으로 불렸던 일본·홍콩의 자리를 대신한 지 오래다. 명품 브랜드들은 전세계에 신상품을 출시하기 전 한국시장에 먼저 내놓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핀 뒤 다른 나라의 출시 여부를 결정하는 등 한국시장을 신제품 흥행의 가늠자로 여기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은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을 통한 입소문이 빠르고, 소비자들의 취향도 까다로워 ‘한국소비자를 만족시키면 다른 지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세계적인 명품 보석 브랜드 티파니는 자물쇠 모양을 본뜬 목걸이 ‘록(lock) 컬렉션’을 다른 나라보다 한달가량 앞서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앞서 3월에는 명품 브랜드 구치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아동라인 ‘구치 키즈’ 매장을 세웠다.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외에 해외매장을 낸 것은 홍콩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 구치 키즈는 대부분 구치 매장 안의 한 코너로 자리하고 있지만, 한국 소비자들의 명품 아동복 인기를 고려해 이례적으로 독립된 매장을 세웠다. 이처럼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이례적인 매출 성장세 때문. 실제 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명품 판매율이 부진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루이뷔통은 2008년 28.3%, 2009년 35.1%, 2010년 25.1% 등 최근 3년간 두 자릿수 영업이익 증가율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콧대 높은 최고가 명품들도 앞다퉈 한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에르메스는 파리·뉴욕·도쿄에 이어 지난 2006년 서울 신사동에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 ‘메종(masion) 도산점’을 오픈했다. 에르메스 코리아 홍보팀 관계자는 “에르메스가 스페셜 매장인 메종을 한국에 세계 4번째로 개설했다는 것은 그만큼 에르메스 패밀리가 한국을 중시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여야 정치인 상당수 수사선상 오를 것”

    “여야 정치인 상당수 수사선상 오를 것”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 검사장)가 부산저축은행그룹이 브로커 박태규씨를 통해 정치권에 로비했다는 진술을 확보함에 따라 정치권 수사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간 검찰은 ‘역풍’을 피하기 위해 신중한 행보를 보였지만, 박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갈았던 ‘칼’을 뽑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씨의 중량감과 광폭 인맥으로 미뤄 여야 정치인 상당수가 수사 선상에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중수부가 지난 3월 15일 부산저축은행그룹과 임원 및 대주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은 거의 없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대검 중수부 폐지 논의를 한창 벌이던 시기라 검찰이 ‘국면 전환용’ 카드를 끄집어냈다는 시각이 많았다. 당시 대검 관계자는 “중수부가 수사하면 꼭 정치권으로 간다고 생각하느냐?”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수사의 변곡점을 맞은 것은 지난 19일 브로커 윤여성(56)씨가 구속되면서부터. 윤씨는 처음 얼마간 스스로 입에 자물쇠를 채웠지만, 검찰의 끈질긴 압박에 심경 변화를 일으켜 말문을 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의 첫 번째 ‘데스노트’에 오른 인사는 실세 은진수(50)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었다. 윤씨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박연호(61·구속 기소) 그룹 회장과 김양(59·구속 기소) 부회장도 정·관계 로비와 관련한 진술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김 부회장이 브로커 박씨에게 로비자금 수십억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현 정권 인사와 친분이 있는 박씨가 이 자금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금감원 검사 무마나 퇴출 저지 로비 운동을 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일단 박씨의 신병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씨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난 3월 제3국을 거쳐 캐나다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수사 공조를 요청한 상태다. 정치권에 대한 검찰수사는 ‘신·구 정권’을 아우르는 ‘쌍끌이’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구속된 박형선(59) 해동건설 회장을 상대로 참여정부와 호남 지역 인사가 로비에 연루됐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마을 흉물이었는데… 이젠 아이들 꿈 키워요”

    “마을 흉물이었는데… 이젠 아이들 꿈 키워요”

    폐교였던 금곡초등학교가 되살아났다. 1998년 문을 닫은 이래 12년간 창고로, 공장으로 쓰이던 ‘마을 흉물’에서 다시금 아이들이 소리 내 공부하고, 마음껏 뛰어노는 ‘배움터’로 변했다. 지난해 12월 이곳에 ‘금곡작은도서관’이 문을 열고 올 2월부터는 ‘공부방’이 생겼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금곡리 학생’ 15명이 방과 후에 이 공부방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4시, 경기 파주시 법원읍 금곡2리 샛골마을의 ‘금곡작은도서관’에서 장근창(46) 도서관 대표를 만났다. 장 대표는 금곡초등학교 23회 졸업생(1979년 졸업)이기도 하다. 이날 그는 시끄럽게 뛰노는 아이들을 야단치면서도 그런 모습이 싫지 않은 듯 연방 웃음을 머금었다. 그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고향을 떠났다가 건강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2008년. 철문은 굳게 닫혔고, 쓰레기만 수북하게 쌓인 모교를 보면서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아파 교육청에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그의 뜻이 알려지자 주민들도 뜻을 모아 ‘모교 살리기 운동’에 동참했다.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꿈을 키우던 곳이 요란한 굉음이 진동하는 공장지대로 변해 있더라고요. 교문은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있고, 쓰레기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삭막하기도 하고….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정말 서글펐어요.”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뿐이 아니었어요. 밤에는 마을 아이들의 비행장소로 돌변하는 걸 보고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장 대표와 주민들이 해당 지역 교육지원청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 학교는 1998년부터 창고 용도로 대여된 상태였고, 임차인은 10년 가까이 이곳을 사무용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교육청은 임대만 해줬을 뿐 그동안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아 말이 공장이지 폐허 같은 황무지였다. 주민들은 “10년 가까이 교육청에서 감독 한 번 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말했다. 관리가 어려웠는지 교육청은 2008년 11월 이 폐교를 매각하려고까지 했었다. 결국 장 대표와 주민들이 교육청에 탄원서를 제출해 매각을 막을 수 있었다. 이후 장 대표와 주민들은 협의 끝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파주시청에 도서관·공부방으로 이용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해 각각 50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금곡작은도서관·공부방’이 만들어지게 됐다. “이름은 ‘작은’ 도서관이지만 프로그램은 도시의 학원보다 낫다.”고 장 대표는 말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인 및 주변 군부대 장병·주민 12명이 공부방 교사로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로 서양화가인 임명숙(63·여)씨가 도서관장 및 미술교육을 맡고 있으며, 서예가 황숙자(65·여)씨가 서예를, 부산 동아대 강사인 강인구(38)씨가 설치미술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또 1포병여단 소속으로 멘사 회원인 임찬(22) 상병 등이 수학을 맡고 있고,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호성중(22·뉴욕시립대) 병장 등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임 상병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군생활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 이주여성도 강사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3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주해영(33·한족)씨도 학생들에게 중국어 회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도서관 개관이 주민 화합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 대표는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군부대가 있어 마을이 번화해 전파사만 다섯 곳이나 됐고, 방앗간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미군이 철수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 마을이 비면서 사람들이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처음에 학교를 되찾자고 했을 때도 다들 ‘그런 일을 왜 해. 누가 우리 말을 들어준다고’라며 비관적이었다. 그때는 마을의 장래라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마을이 바뀌었다. “지금은 어디에서 모이든지 마을 발전에 대해 의견도 내고, 적극적으로 얘기들을 한다. 많이 바뀌고 있다. 죽어 있던 동네가 이제야 움직인다.”며 웃었다. 금곡작은도서관은 앞으로 사회적 기업으로의 변화도 모색하고 있다. 장 대표는 “봉사·관광·학습, 이 세 가지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촌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좋은 일자리도 제공하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가족들이 텃밭을 가꾸는 들에서 농촌체험도 하고, 예술인들이 공방을 만들어 자기계발도 하며, 주변 장애인학교인 새얼학교에서 봉사도 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얻는 보람이 무엇인지 묻자 장 대표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이 정말 달라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高경위가 ‘제 발로’ 유치장 들어간 까닭은

    高경위가 ‘제 발로’ 유치장 들어간 까닭은

    경찰청 수사과 고유석(30) 경위. 그는 지난 19일 ‘죄 없이’ 유치장에 감금됐다. 앞서 오전 10시 40분. 그는 ‘제 발로’ 서울 수서경찰서 유치장을 찾았다. 담당 경찰관에게 입감의뢰 요청을 한 뒤 유치인 보호관과 신체검사실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간이 신체검사’를 받았다. 통상 유치실에 들어가기 전에 죄질 등에 따라 옷을 전부 벗고 가운을 입은 뒤 신체 곳곳을 확인하는 ‘정밀 검사’나 속옷 상태에서 위험물 소지 등을 점검하는 ‘간이 검사’, 옷을 입은 채 소지품을 체크하는 ‘외표 검사’를 받는다. 이어 11시 20분. 금속탐지기를 거친 뒤 곧장 유치실 3호실로 입감됐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혔다. 어두운 실내 조명과 쇠로 된 잠금장치 소리에 위축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답답하고 처량했다. 가림막이 설치된 변기에 앉기가 수치스러워 용변도 보지 못했다. 식사로 나온 단무지, 김치, 콩나물국, 쌀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를 닦은 뒤에는 오후 4시까지 20㎡가량의 유치실 내부를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도대체 그는 왜 이곳에 와 있는 걸까? 이 이색 체험은 전국 유치장 개선방안의 하나로 마련됐다. 유치장의 대대적인 진화를 앞두고 실제 정책 입안자가 직접 불편한 점을 도출하기 위해 경험해 본 것이다. 이 경험은 고스란히 이번 개선안에 반영됐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경찰청의 ‘인권친화적 유치장 운영 개선 계획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고 경위처럼 신임 경찰관들이나 간부후보생 등도 이 같은 유치장 체험 프로그램을 거쳐야 한다. 이달까지 전국 경찰서 139개 유치장 시설 등도 전면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우선 유치실 내부가 밝아진다. 침침하고 어두울수록 심리적 불안정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유치실 조도를 200룩스(lx) 수준으로 밝게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자해를 막기 위해 날카로운 쇠창살도 둥근 안전창살로 교체한다. 문을 여닫을 때 마찰음이 심했던 출입문 쇠철봉도 소음 없는 자물쇠로 바꾸기로 했다. 또 유치장 1, 2층 사이에 가림막을 설치해 보온·단열 효과도 높이기로 했다. 유치인 면회 절차도 개선된다. 면회인이 유치장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동선을 고려한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고 약도도 제공한다. 교육용 유치장도 생긴다. 경찰청은 경찰교육원이나 수사연구원에 올 하반기까지 유치장을 설치하고, 교육과정에 유치장 체험 프로그램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현재섭 경찰청 수사과장은 “최대한 유치인 입장을 배려해 이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기고] ‘정보안심사회’ 구현 시급하다/김종구 한국개인정보보호협의회 상근부회장

    [기고] ‘정보안심사회’ 구현 시급하다/김종구 한국개인정보보호협의회 상근부회장

    ‘정보 사회’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정보화 사회’를 운위하며 컴퓨터 앞에 앉기 시작한 게 불과 20여년 전인데 어느새 우리 앞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폰까지 등장했다. 주요 도시의 지하철역이나 시외·고속버스 터미널 등에 설치된 현금입출금(ATM)기는 또 어떤가? 수수료가 비싸 그렇지 은행에 가는 수고를 상당 부분 덜어주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작용이다. 인터넷 기반의 SNS나 스마트폰에서 개인정보가 심심찮게 새나가는가 하면 엊그제는 급기야 ATM기에서 개인정보가 통째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2~3년 전부터 옥션 등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와 GS칼텍스 등 주유소, 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업체 등에서 대량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국내에서는 특히 지난 연말에 있었던 구글(Google)의 개인정보 불법수집 사건 이후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행정안전부가 주요 쇼핑몰 ·백화점·할인마트 등 20개 업체를 대상으로 개인정보 관리실태를 점검한 결과 절반인 10개 업체가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얼마 전엔 학교, 경제단체, 기업 등의 100여개 서버시스템을 해킹하여 760만건의 개인정보를 탈취하고 사회적 이슈가 된 인물의 개인정보를 추적(신상털이)해 인터넷에 유포한 고교생 2명이 검거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 5000만명의 개인정보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말이 정설이 돼 있다. 수많은 국민대중이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특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은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으나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은 사회적 폐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의 소중한 개인정보 유출을 막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핵심적인 관건은 기업과 단체의 윤리의식 및 사회적 책임의식이다. 얼마 전 이른바 ‘옥션 사태’에 대한 판결에서 법원은 제기된 집단소송에 대한 사업자의 직접배상 책임을 인정치 않았다. 미국 등 선진국의 판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직접배상 책임의 불인정은 기본적으로 ‘침해된 개인정보로 인한 개별적 피해 입증의 어려움’ 때문이지만, 예방조치의 강제 및 유출 때 의법 처리를 위한 법·제도적 미비점도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민의 개인정보(프라이버시) 보호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중대한 공익이다. 그럼에도,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적 보완을 ‘정부 규제’란 시각에서 접근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휴대전화 하나를 개통시키는 데도 ‘개인정보, 신용정보 및 위치정보 제공 동의서’에 서명해야만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앱 프로그램 ‘오빠’ 및 ‘구글 사태’에서 보듯 위치정보의 무단 수집과 제공으로 말미암은 ‘정보 인권’ 침해도 발등의 불이 됐다. 정보 사회의 ‘침해’와 ‘방어’는 ‘창과 방패’요 ‘열쇠와 자물쇠’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보 인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다. ‘정보 안심 사회’를 위한 정부와 의회의 특단 조치가 시급하다.
  • 이윤기 유고 소설·산문집 함께 출간… “63년 삶… 이런걸 배웠소”

    이윤기 유고 소설·산문집 함께 출간… “63년 삶… 이런걸 배웠소”

    번역가이자 소설가, 신화 연구가였던 이윤기는 지난해 8월 63세로 타계했다. 그의 유고 소설집 ‘유리 그림자’(민음사 펴냄)가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과 함께 출간됐다. ‘유리 그림자’에는 4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모두 ‘올바른 인간’에 대한 작은 이야기들이다. 문학평론가 백지은씨는 “사람은 완전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배울 게 있다는 것이 이윤기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 눈이 마주친 물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먹을거리에 식격(食格)을 부여하는, 자연 발생적인 한 경지’에 이른 중학생 아들(‘네눈이’)부터, 금방 불날 것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 차분하게 대처하는 아내(‘소리와 하리’), ‘가히 ‘항심’(恒心·항상 평정한 마음)의 경지’에 이른 개, 새들의 죽음을 막아 주는 유리창에 붙은 송홧가루에 이르기까지 그가 삶의 이치를 배우는 대상에는 한정이 없다. 백씨는 대부분의 이윤기 소설은 “자, 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겪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인생, 세상, 사람) 공부를 좀 하게 되었다, 이것을 한번 들어 보아라.”란 근본적인 태도를 지닌다고 평했다. 유고 소설집에서도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 미국에서 공부한 이야기, 학창 시절, 친구와 후배들 이야기 등 이윤기의 삶이 곳곳에서 녹아난다. 특히 소설집의 표제작인 1인칭 소설 ‘유리 그림자’에서 화자인 ‘베트남 아저씨’는 자신이 깨달은 ‘사물은 그림자가 있어야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깨달음을 여자 친구 딸에게 결혼식장에서 직접 들려준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계몽과는 거리가 멀다. 남을 설득하고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자기를 설득한 인생의 진실이 남에게도 전이될 것임을 믿을 뿐이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베트남 아저씨’와 같은 화자는 자기가 이해한 바를 이야기하는 것일 뿐, 남을 이해하게 하려는 것까지 이야기하진 않는다. 집에서 키운 진돗개가 여자 친구의 개를 물어 죽이자 진돗개를 ‘처분’할 것을 요구하는 아들에게도 그의 소설 속 화자는 “나는 아들을 논리로서 설득하지 않았다. 아들의 논리를 그럴 듯한 논거로 논파하지도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고 할 뿐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산 없는 아이들이 우산을 보면 훔치고 싶을 것이므로 우산을 벽장에 넣고 자물쇠를 채우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읽게 한다. 겸허하게 인생의 진실을 들려주는 이윤기의 소설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깔깔깔]

    ●특수자물쇠 철수가 자전거를 도둑맞고, 새로 산 자전거 자물쇠를 사기 위해 철물점에 갔다. “아저씨, 절단기로 안 잘릴 자전거 자물쇠 없을까요?” “응, 그럼 보통 자물쇠 말고 아예 쇠사슬로 해.” “그래요? 그럼, 그걸로 하나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 학생.” 하시던 아저씨. 길게 걸려 있던 쇠사슬을 알맞은 크기로 ‘절단기’로 잘라 주셨다. ●매를 부르는 말 1. 당신은 살아 있는 부처님입니다. -선행을 베푸시는 목사님에게 2. 당신의 화끈함이 맘에 듭니다. -화상을 입은 환자에게 3. 댁의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도둑에게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⑩ 논산 갈산리 쌍군송 마을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⑩ 논산 갈산리 쌍군송 마을

    나무가 견뎌내기에는 늦가을의 바람이 지나치게 매웠던 것이 분명하다. 단풍에도, 낙엽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거늘, 그 지당한 자연의 순서가 이 가을에 바뀌었다. 큰 나무들이 유난히 그렇다. 겨울 오기 전에 나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줄기 속에 담아두었던 물을 덜어내야 한다. 생명의 물이건만 자칫 몸 안에서 얼어붙으면 하릴없이 동해(凍害)를 입을 수 있어서다. 단풍은 나무가 수분을 덜어냈다는 증거다. 낙엽은 그 다음에 따라와야 맞다. 그런데 간간이 불어온 매운 바람은 나무들을 놀라게 했다. 수천의 가을을 겪었건만, 이 가을 바람에 든 추위가 뜻밖이었던 나무들은 채 단풍도 들지 않은 초록의 나뭇잎들을 서둘러 땅 위에 내려놓았다. 충남 논산시 광석면. 앞들에서는 쌀이 많이 나오고, 뒷산에서는 칡이 많이 자란다 해서 갈미(葛米) 마을이라고 부르던 갈산(葛山)리. 한눈에도 풍요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 마을에서 사람살이를 지켜주며 정확히 355년을 살아온 나무가 있다. 독야청청 늘 푸른 소나무다. 쌍군송(雙君松)이라는 이름의 갈산리 소나무는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나무다. 대개의 경우, 300년쯤을 넘게 산 나무의 나이는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나무는 낡은 세포 조직을 덜어내고, 해마다 새로운 세포를 키워낸다. 오래된 세포는 나무 줄기 안쪽에서 서서히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오래된 생명의 흔적은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갈산리 쌍군송은 정확히 355살, 틀려봐야 고작 두세살쯤의 오차가 있을 뿐이다. 누가 언제 심은 나무인지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나무가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건 1655년이다. 당시 이 마을에는 권육(1587~1654)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호위하기 위해 청나라에 따라 들어갔던 그는 중국의 앞선 문물과 과학서를 접했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이를 바탕으로 요긴한 생활품과 병기를 만들어냈다. 나중에 예조판서까지 지냈던 그가 67세에 세상을 떠나자, 효종은 손수 소나무 두 그루를 골라, 그의 묘 앞에 심도록 했다. 그것이 1655년의 일이다. ●효종, 신하 권육 죽자 손수 보내 마을 사람들은 임금이 내린 한쌍의 소나무가 황송했고, 임금의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임금 군(君)자를 내세워 쌍군송이라 불렀다. 그 소나무가 여태껏 푸르게 살아 있는 것이다. 처음에 튼실한 묘목을 심었을 테니, 당시 대략 3년쯤 된 묘목이었을 것이다. 나무의 나이를 360살쯤으로 추정하는 근거다. 소나무라 했지만, 정확히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송(海松), 우리말로는 곰솔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아름다운 곰솔들이 벼락을 맞거나 도시화의 피해로 잇달아 쓰러져 죽었다. 전주 삼천동 곰솔을 비롯해, 서천 신송리 곰솔, 익산 신작리 곰솔이 모두 생명을 잃었다. 오래된 곰솔을 보는 마음이 유난히 각별해지는 이유다. 더구나 임금이 손수 보낸 나무라니 더욱 각별하다. 쌍군송은 1982년 충청남도에서 지방기념물 제27호로 지정한 두 그루의 곰솔이다. 그중 한 그루는 16m의 키에 둘레가 3m 가까이 되고, 자람이 조금 늦은 다른 한 그루는 12m의 키에 둘레가 2m가 넘는다. 같은 시기에 심은 나무지만, 바람과 햇살에 따라 자람에 차이가 생겼다. 마을 안쪽 동산에 10여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는 한쌍의 곰솔은 제가끔 마을의 살림살이를 보살피듯 허리를 마을 쪽으로 살짝 굽혔다. 살아온 연륜에 비하면 규모가 큰 나무라 할 수야 없지만, 오랫동안 마을의 자존심으로 지켜온 만큼 여느 큰 나무 못지않은 도도한 기품을 갖췄다. 쌍군송은 지난 36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마을의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다. 나무 곁으로는 나무가 넉넉히 자랄 수 있는 생육 공간을 두고, 둘레에 울타리를 쳐서 엔간한 사람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울타리 한쪽에 여닫이문이 있지만, 커다란 자물쇠가 입을 앙다물고 나무를 지키고 있다. ●도도한 기품으로 사람살이 지키다 “나무 보러 왔어? 이게 임금님 나무야. 임금님!” 옛 선비와 그를 추모한 임금의 배려를 떠올리며 넋을 놓고 있는데, 지팡이에 의지해 더듬더듬 다가오던 노파가 말을 걸어온다. 쌍군송 바로 앞 집으로 시집 와 60년 넘게 살았다는 노파다. ‘나무 앞에서 마을의 특별한 행사는 지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노파는 들은 체하지 않고 제 이야기만 풀어 놓는다. 귀가 어두운 탓도 있겠지만, 60년 동안 보아온 나무의 사연이 많은 탓이 더 클 것이다. “얼마 전,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어. 그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지. 좋았고 말고. 그때까지만 해도 저 뒤에 있는 집에 살던 사람이 나무를 보살폈는데, 지금은 떠났어. 이제는 시(市)에서 나무를 봐 주지.” ‘어디 가실 참이냐’고 어두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묻자, 머리가 아프고 허리도 뻑뻑해서 병원에 가는 길이라 한다. 동구 밖으로 향하던 노파가 갑자기 나무 곁에 다가가려면 울타리 뒤로 돌아가야 한다며 나그네의 손을 잡아끌었다. 혼자 가도 된다고 만류했지만, 노파는 굳이 ‘내가 보여줘야 한다.’며 울타리 뒤편으로 접어드는 모퉁이로 나그네를 이끌었다. 어떻게든 나무를 잘 보여주려는 마음이 주름투성이의 깡마른 손아귀에 한가득 담겼다. 나무 줄기 바로 앞에까지 다가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노파는 동구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갈산리 쌍군송은 그렇게 사람과 나무가 서로 보살피고 자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침묵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기야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나무가 어디 갈산리 쌍군송뿐이겠는가. 나무 없이 세상의 어떤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으랴. 글 사진 논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남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산 26-22. 천안 논산 간 민자고속국도의 서논산나들목으로 나가서 셋으로 나뉜 갈림길의 가운데 길로 들어서야 갈산리로 들어갈 수 있다. 입체교차로를 한 바퀴 돈 뒤, 곧바로 오른쪽으로 난 마을 길로 들어선다. 100m쯤 가서 좌회전하면 700m쯤 앞에 옹기종기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인다. 쌍군송은 마을 뒤편에 있어서, 마을 밖에서는 안 보인다. 골목 길 300m쯤 안쪽에 마을회관이 나오고 그 앞에 쌍군송이 있다.
  • 화장실 갇힌 독거노인, 수돗물로 20일 기적생존

    화장실 갇힌 독거노인, 수돗물로 20일 기적생존

    프랑스에 홀로 사는 노인이 자신의 집 화장실에 갇혔다가 20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노인은 따뜻한 수돗물을 마시며 필사적으로 버틴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일드프랑스 에손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온 69세 여성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문에 달린 자물쇠가 고장 나면서 꼼짝 없이 갇힌 신세가 됐다. 단단히 잠긴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어서 외부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을 두드려 누군가 이 소리를 듣고 집에 찾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웃들은 이 소리를 듣고도 밤샘공사로 나는 소음이라고 착각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1일 새벽 화장실에 갇힌 그녀는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할 때까지 무려 3주 동안이나 따뜻한 수돗물을 받아 마시며 좁고 어두운 화장실에서 버텨야 했다. “10일 넘게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어왔을 때 화장실 문에서 작은 노크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오랫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야윈 여성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담당 경찰은 “고령인데다가 3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한 채 스트레스를 받아서 탈진해 있는 상태였다.”고 노인의 상태를 설명한 뒤 “곧장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현재 치료를 받으며 기력을 되찾는 중”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실종된 ‘양심 자전거’ 찾습니다

    실종된 ‘양심 자전거’ 찾습니다

    시민들의 양심이 실종되면서 ‘양심자전거’도 사라지고 있다. 2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저탄소 녹색생활 실천과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잇따라 도입한 양심자전거가 제대로 회수되지 않는 데다 파손까지 심해 존폐 위기에 처했다. 각 지자체는 대여절차 없이 주민의 양심과 자율에 맡긴 양심자전거를 도입했지만, 회수율이 낮아 대여소마다 텅텅 비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는 도입 수개월 만에 양심자전거제를 폐지하고 있다. 울산 남구는 지난 7월 여천천 둔치 자전거도로에 양심자전거 60대를 비치했으나 시행 3개월여 만에 모두 분실했다. 남구는 지난달 말 양심자전거제도를 폐지하고, 주택가 등에 고장난 채 버려진 양심자전거를 수거·수리한 뒤 저소득층 가정에 나눠주고 있다. 울산 북구도 지난 8월 동천강 일대 자전거도로 2곳에 양심자전거 26대를 비치했으나 한 달도 안돼 모두 잃어버렸다. 북구는 자전거 수거전담반까지 꾸렸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최근 양심자전거제도를 포기했다. 구청 관계자는 “일부 주민들은 양심자전거를 집에 가져가 자물쇠까지 채워놓고 있다.”면서 “아쉽지만 양심자전거 도입이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아 지난주 사업을 폐지했다.”고 말했다. 울산 중구는 다른 지자체의 양심자전거사업 실패를 토대로 ‘공공자전거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공공자전거는 신분증을 맡긴 주민에게만 1~2일 빌려주고 있다. 강원 화천군은 2005년 1차사업(100대)과 2006년 2차사업(100대) 실패를 거울삼아 지난해부터 3차사업(140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분실률이 높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송파구도 지난해 3월 30대의 양심 자전거를 도입했지만, 1개월여 만에 20대를 분실하면서 같은 해 10월 사업을 종료했다. 이와 함께 대전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역 양심자전거도 도난율은 적지만 하루 이용률이 14%에 그치고 있다. 대구 지하철역 양심자전거도 108대 중 10%가량은 파손됐을 뿐 아니라 이용률도 낮다. 충북 영동군도 2008년부터 군청에 12대의 자전거를 비치해 놓고 있지만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다. 자전거 도난을 막기 위한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광주시와 5개 자치구는 동사무소 등에서 공공 자전거 100~200대를 운용하고 있다. 서구는 운영 중인 자전거를 빨간색으로 도색, 도난을 막고 있다. 녹색에너지촉진시민포럼 황인석 사무국장은 “양심자전거는 녹색생활 실천에 중요 수단으로 뜨고 있지만, 시민의식 실종으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종합·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무허 디스코텍 단속반 뜨자 손님200명 볼모 대치

    무허 디스코텍 단속반 뜨자 손님200명 볼모 대치

    허가도 없이 영업을 하던 한 디스코텍이 손님 200여 명을 볼모로 잡고 단속반과 대치하며 ‘농성’을 벌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손님들은 2시간 만에 창문을 통해 겨우 탈출했다. 아르헨티나 중부지방 코르도바에 있는 디스코텍 ‘라소르다’가 황당한 상황을 연출한 문제의 업소. 라소르다에 단속반이 들이닥친 건 한창 손님이 몰린 지난 23일 밤(현지시간)이다. 무허가 업소가 규정을 어기고 술을 판다는 고발을 받고 단속반원이 출동하자 디스코텍은 바로 문을 걸어잠갔다. 이때부터 대치상황(?)이 시작됐다. 갑자기 문이 잠기자 디스코텍은 혼란에 빠졌다. 주말 밤을 즐기던 손님들은 탈출구 쪽으로 몰려갔지만 단단히 자물쇠가 걸려 있긴 마찬가지였다. 아우성대던 손님들은 약 2시간 뒤 창문을 뜯고 탈출했다. 역시 창문을 통해 들어간 단속반은 업소가 무허가인 데다 시간대 규정을 어기고 주류를 판 걸 확인하고 폐쇄조치를 내렸다. 단속반 관계자는 “문제의 디스코텍이 이미 여러 차례 단속을 받고 폐쇄됐었지만 재주 좋게 다시 문을 열곤 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선 지난 2004년 12월 한 디스코텍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 175명이 죽고 100여 명이 부상하는 대형 참사가 났다. 이후로 디스코텍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다. 사진=카피탈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전직 빈집털이범, 피해가정 도우려 특수 잠금장치 개발

    감옥살이가 끝나면 죄를 모두 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일까. 복역을 마치고도 피해자들을 돕기위해 나선 한 전직 빈집털이범이 있어 눈길을 끈다. 16일 중국 충칭시의 지역신문 충칭 이브닝 포스트는 “절도죄로 4년을 복역한 양귀화(29)씨가 특수 지문인식 잠금장치를 발명해 피해가정을 위해 무료로 설치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양 씨는 복역기간 내내 자신이 피해를 준 가정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새로운 잠금장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특허를 따냈다고.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직접 새로운 잠금장치를 개발할 회사를 차렸고, 지난 9월 한 피해가정에 첫 번째 자물쇠를 설치해줬다. 양 씨는 “내가 지은 죄를 갚기 위해 충칭 지역에 도난 피해를 입은 100 가구에 무료로 잠금장치를 설치해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피해 가정이 안전하도록 내가 조금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지문인식 잠금장치에는 특수한 기능이 하나 더 추가됐다. 집주인은 센서가 손상됐을 때 자신의 휴대전화로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원격으로 문을 열 수 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돈줄 마른 유럽정부… ‘도박稅’에 베팅하다

    돈줄 마른 유럽정부… ‘도박稅’에 베팅하다

    지구촌 국가들이 너도나도 ‘개평 뜯기’에 나섰다. 재정악화로 초비상이 걸린 각국 정부들이 인터넷 도박을 줄줄이 합법화해 세금을 걷겠다고 나섰다.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덴마크 등 인터넷 도박에 자물쇠를 채웠던 유럽 대표주자들은 최근 경쟁적으로 이를 합법화했거나 관련 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도박판을 슬쩍 눈감아 주면서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개평’을 뜯어내겠다는 속내다. 정부 돈줄이 말라 속이 타는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4년 동안 정책적으로 꽁꽁 묶어 금지시켰던 인터넷 도박을 다시 풀어 볼 요량으로 도박판을 기웃거리고 있다. 온라인 도박 합법화는 지금 유럽에선 한마디로 ‘대세’다. 온라인 카지노에 엄격하기로 소문났던 프랑스 정부까지 최근 사설 인터넷 도박 업체의 설립을 전격적으로 허가했다. 우선은 스포츠와 경마 쪽에만 허가를 했으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법을 개정한 지 불과 한달여만에 120여만개의 도박 계정이 새로 등록됐으며 이를 통해 1억 800만달러 규모의 도박시장이 창출됐다. 지난달 덴마크도 온라인 도박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스도 한창 비슷한 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두 지난 2005년 일찌감치 허용법안을 내놓은 영국을 벤치마킹하는 분위기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공격적인 ‘베팅’을 하고 나선 곳이 이탈리아. 온라인 스포츠 경기 베팅과 소액 도박만 할 수 있었던 것을 지난해 4월 고액 베팅도 할 수 있도록 한도를 높였다. 조만간 ‘온라인 룰렛’ 등 카지노 게임으로도 허가를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온라인 도박 규제를 푼 뒤 1년 만에 이탈리아는 ‘도박 세금’의 재미를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 라킬라 지진복구 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도박을 전면 허용해 1억 5000만유로의 세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관망하던 이웃 국가들로서도 더이상 뒷짐 지고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스위스, 스페인, 독일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허용 카드’를 들고 나왔다. 사정이 이쯤 되자 유럽연합(EU)은 아예 작정하고 카드판을 키워 볼 심산이다. EU는 올해 말까지 온라인 도박 허용 문제를 EU의 공동현안으로 내세워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유럽이 최근 경쟁적으로 온라인 도박에 대한 빗장을 풀자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음성화된 온라인 도박을 양지로 끌어내 관리하겠다는 게 합법화의 명분이지만, 유럽 국가들이 도박에 일일이 세금을 매김에 따라 해마다 수십억달러를 챙기게 됐다.”면서 “재정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 이보다 더 손쉬운 카드는 앞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유럽 각국들이 온라인 카지노를 철저히 규제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독점했던 카지노와 복권 사업을 철저히 보호하겠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전통 카지노 산업은 근년들어 눈에 띄게 쇠락했다. 프랑스의 경우 최근 몇년 동안 일반 카지노 업계의 전체 수익률은 두 자릿수나 떨어졌다. 영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맨체스터 슈퍼 카지노 프로젝트도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중도에 전면 백지화하기도 했다. 갈수록 악화되는 재정에 속이 타는 정부들로서는 일반 카지노 이용자들이 인터넷 포커나 스포츠 베팅 게임으로 눈을 돌리는 현실을 더이상 무시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 온라인 쪽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세계적 컨설팅업체 H2갬블링캐피털이 집계한 올해 유럽 전체의 온라인 도박시장 규모는 약 125억달러. 293억달러로 추산되는 세계시장 규모 가운데서도 무려 43%를 차지한다. 아시아(24%), 미국(17.2%) 등을 크게 앞지르는 수치다. 합법화 바람을 타고 탄력 받은 유럽의 온라인 도박 시장은 앞으로도 고공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세계 온라인 도박 업체로는 1·2위를 다투는 ‘파티 게이밍(Party Gaming)’과 ‘비윈(Bwin)’도 최근 합병을 선언, 시장규모의 대대적 확산을 예고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온라인 카지노 전문인 파티게이밍과 스포츠 베팅 전문인 비윈이 손잡음으로써 두 사이트간 방문교류가 활발해지면 이용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지브롤터에 본사를 둔 두 회사의 지난해 수익은 8억 9000만달러(약 1조원)에 이른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도둑 꼼짝마!”…철옹성 사는 中할머니

    “우리 집에 아무도 못 들어와!” 멀쩡한 현관문을 두고 사다리로 아슬아슬하게 창문을 넘나드는 할머니가 중국에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할머니는 행여 현관문으로 도둑이 들까봐 집을 단단한 철옹성으로 개조했다. 중국 후난성 창사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타오 할머니는 이름보다 ‘스파이더 할머니’로 더욱 유명하다. 2층에 있는 집으로 들어갈 때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3m사다리를 이용하는 탓에 생긴 별명인 것. 현관문을 단단히 잠그는 것 외에도 타오 할머니는 아파트 베란다를 단단한 쇠창살을 두른 뒤 각종 자물쇠 30여 개로 철저하게 봉쇄해 할머니 외에 누구도 이 집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타오 할머니는 이런 독특한 습관을 과거의 기억 탓이라고 했다. “집 문을 걸어 잠갔는데도 도둑이 몇 번이나 들었다. 화가 나서 현관을 아예 막아버리고 창문으로 다니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할머니가 팔순으로는 믿기지 어려울 정도로 능숙하게 사다리를 타긴 하지만 이웃주민들은 아슬아슬한 할머니의 행동에 가슴을 졸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보다 못한 이웃들이 여러 번 설득했지만 할머니는 이 기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정재용, ‘장어 절도’ 뒤늦은 사과…왜?

    DJ DOC 정재용이 배고팠던 시절 정어를 훔쳤다고 고백하며 뒤늦은 사과로 눈길을 끌었다. 정재용은 KBS 2TV 예능프로그램 ‘야행성’의 최근 녹화에 참여해 ‘DOC와 춤을’ 시절 굶주림에 지쳐 식당 수족관에 있던 장어를 훔쳐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정재용은 “당시 일산 지하 연습실에서 동고동락하던 댄서 동생들에게 보양식으로 장어를 가져다가 먹으면 어떠냐고 제안을 한 적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동생들이 정말로 영업이 끝난 장어 전문 식당까지 찾아갔고 장어가 들어있는 수족관의 자물쇠가 의외로 쉽게 열려 잘못을 저지르게 됐다”고 말했다. 또 정재용은 막상 동생들이 잡아온 장어는 한두 마리에 불과했으며, 동생들은 장어들을 잡다가 오히려 양팔에 심한 상처만 입고 돌아왔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에 정재용은 “무심코 한 말에 심한 상처만 입고 돌아온 동생들과 망가뜨린 수족관의 식당 주인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며 거듭 사죄했다. 오는 29일 오후 11시15분 방송된다. 사진 = 부다 사운드 서울신문NTN 뉴스팀 기자 ntn@seoulntn.com ▶ 홍은희, 과거사진 노출…성형의심 "눈이 너무 심심해" ▶ ’태도논란’ 김그림 아버지, 딸 대신 공개사과 "용서와 자비를" ▶ ’이기적 S라인’ 유인영, 뱃살굴욕 "과욕 vs 오해" ▶ ’절대 섹시’ 이효리 눈웃음 화보공개…"같은 사람 맞아?" ▶ ’당신의 PC를 꿰뚫고 있다’ 좀비PC 극성…확인법은?
  • 에스키모 족장이 된 체코인의 북극일기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아문센은 알아도, 에스키모 족장이 되어 30년간 북극에서 산 얀 벨츨은 낯설다. ‘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얀 벨츨 지음, 이수영 옮김, 천지인 펴냄)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체코인 얀 벨츨(1868~1948)의 삶의 기록이다. 체코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벨츨은 좌물쇠공 견습생이었던 1884년부터 걸어서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철도 교량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북극에 뿌리내릴 결심을 한다. 북극에서 자물쇠공이자 상인, 집배원이자 광산업자로 활약하던 그는 에스키모의 족장으로 뽑힌다. 벨츨의 이야기는 시간 차이를 참작하더라도 놀랍다. 특히 에스키모 여성들의 삶은 비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섯 살이면 성숙하는 에스키모 소녀들은 사실상 이때부터 아버지, 오빠 등 집안의 모든 남자들과 잔다. 소녀는 여섯 살에서 여덟 살 사이에 첫 아기를 낳는다. 개화되지 못한 에스키모 여인들은 스물두 살에서 서른여덟 살 사이에 사망한다. 에스키모들이 사는 동굴은 고래기름을 연료로 쓰는데 이 기름에서 심한 악취와 검댕이 난다. 평생 굴에서 탁한 공기를 마시며 사는 여인은 열세 살이나 열네 살에 눈이 머는 일이 흔하다. 아픔을 견디다 못한 여인이 식구에게 호소하면 남자들은 여자를 혹한의 땅에 눕히고 칼로 배를 갈라 한순간에 고통을 끝내버린다. 벨츨의 이야기 속에는 뜻밖에 조선 여인도 등장한다. 그가 입양한 에스키모 아이를 돌보았던 조선 여인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벨츨의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흰 비단 띠로 묶어주었다. 조선 여인은 정어리를 잡으러 온 원양어선을 타고 와서 북극에 남았을 것이라고 벨츨은 추측했다. 1930년 체코에서 출판되어 6개 언어권에서 번역된 벨츨의 이야기는 100년 전의 것이지만 오늘날의 독자까지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개썰매를 타고 바다얼음 위를 달리던 북극의 생활상이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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