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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고 싶었어’…코로 애틋한 인사 나누는 개와 망아지 (영상)

    ‘보고 싶었어’…코로 애틋한 인사 나누는 개와 망아지 (영상)

    대형 수렵견인 로디지아 리지백과 망아지가 얼굴을 부비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이 많은 누리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폴란드 남부 실롱스크주 타르노프스키에구리 시에서 포착된 애완견 에단과 망아지 블루로의 애틋한 순간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에단은 마굿간 문 앞에 앞발을 올리고, 뒷다리로 서서 마굿간 쪽으로 몸을 기댔다. 그 안에 있는 친구 블루로가 보이자마자 코로 블루로의 얼굴을 문지르며 반가움과 그리움을 표했다. 블루로도 에단의 달달한 애정표현에 재빨리 보답했다. 에단에게 코를 가져다 대고 잠시 동안 에단의 체온을 느꼈다. 둘은 오랜만의 재회인 것처럼 얼굴을 맞댄 채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블루로는 에단이 걸고 있는 목걸이를 깨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지난 달, 페이스북 사용자 카타르지나 비잔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해당 영상은 210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를 시청한 누리꾼들은 “자물쇠가 채워진 마굿간에 하루 종일 갇혀 자유나 상호작용이 없는 블루로에게 에단은 선물과도 같은 존재 일 것”, “그들의 우정이 귀여우면서도 멋지다”라거나 “동물은 이 세상을 좀 더 멋진 곳으로 만든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유튜브 캡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불온한 어둠을 깨치고… 시대를 뚫고 나온 詩

    불온한 어둠을 깨치고… 시대를 뚫고 나온 詩

    파일명 서정시/나희덕 지음/ 창비/152쪽/9000원나희덕의 시가 독해졌다. 피 흘리고 찢기는 한편 늑대, 하이에나 등의 맹수들이 등장해 거친 숨을 몰아쉰다. ‘어쩌면 시인이 처음 내뱉는 거칠고 직설적인 어법’이라는 출판사 측 설명. ‘나희덕’ 하면 ‘배추의 마음’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이 변화가 생소할 듯도 하다. 무엇이 시인을 변하게 한 것일까. 시인이 4년 만에 펴낸 여덟 번째 시집 ‘파일명 서정시’(창비). 독해진 까닭에 대해 지난 14일 전화로 만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뿌리에게’, ‘배추의 마음’ 등 식물에 관한 시를 쓸 땐 수목적인 상상력, 유기체적인 세계관에 기반을 뒀어요. 하지만 현실에 대한 상처나 환멸이 깊어지면서 내 안의 동물성이 발현된 거 같아요.” 시인 내부의 동물성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근혜’ 시절이다. 세월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의 어둡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시인 자신도 ‘블랙리스트’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대면하고 발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내 개인의 서정이나 이전의 방식으로 쓰면 잘 견디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 것 자체가 시대에 대한 결례라고나 할까요.”시집 제목 ‘파일명 서정시’는 시인과 비슷한 처지였던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냉전기 구 동독 정보국이 시인 쿤체를 감시하며 만든 자료집 이름이 ‘Deckname Lyrik’, 파일명 서정시였다.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시 ‘파일명 서정시’) 블랙리스트에 따른 배제와 민간인 사찰이 자행됐던 우리네 현실과 비슷하다. 시집에는 시인을 ‘리스트’에 오르게 했던 그 시들이 실렸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난파된 교실’, ‘문턱 저 편의 말’ 등이다. ‘문턱 저 편의 말’은 광주에서 열렸던 세월호 재판 당시 참사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시인이 직접 듣고 썼다. “실제 학생들은 생각보다 차분하게 얘기를 하는데, 저는 그 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 경험을 했어요. 고통이라는 것은 논리 정연하게 얘기될 수 없어서 파편화된 말이나, 거대한 침묵으로 대체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인의 경험처럼 증인들의 말 곳곳은 말 줄임표로 대체된다. ‘우리 반에서…저 말고는…아무도…구조되지 못했…친구들도…살 수 있었을…아무도….’ 여성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자각, 이를 넘어선 연대 등을 주제로 한 시들도 눈에 띈다. ‘붉은 텐트’에서는 여자들더러 이 붉은 텐트 속으로 들어와 피를 흘리라고 말한다. ‘들린 발꿈치로’에서는 사람도 여자도 되지 못한 채 인간이라는, 남자라는, 군인이라는 짐승을 받고 또 받아야 했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혼령을 위무한다. ‘눈과 얼음’, ‘Rhythm 0’ 등은 ‘미투’와 맞닿아 있다.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던 구 동독 정권이 쿤체에게서 느낀 두려움이다. 시집 ‘파일명 서정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무슨 일’에 대해 쓰겠다는 시인의 다짐이자 실천의 결과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허리케인 플로렌스로 익사할뻔한 개들 구한 자원봉사자 (영상)

    허리케인 플로렌스로 익사할뻔한 개들 구한 자원봉사자 (영상)

    한 자원봉사자가 미국 남동부를 덮친 허리케인 플로렌스로 불어난 홍수에 익사할 뻔 한 개 여섯 마리를 구조해냈다. 1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릴랜드 마을에 있는 건물 밖 우리에서 개들이 구조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초강력 폭풍을 피해 주인들이 사라지고 난 뒤 우리 안에 갇힌 채 남겨진 개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개들은 뒷다리로 일어서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내보내주길 바라듯 필사적으로 짖어댔다.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해 텍사스 주에서 온 자원봉사자 라이언 니콜스는 우리 안에 버려진 개들을 발견했고,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무릎 높이 까지 오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초 후 그가 울타리 자물쇠를 열어주자 개들은 기다렸다는 듯 헤엄쳐 밖으로 나왔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낑낑거리는 개들을 달래며 숲이 우거진 지역으로 안내했다. 물 밖으로 달아난 개들은 먹이를 먹거나 들판에서 안정을 취했다. 구조 작업에 함께한 저널리스트 마르쿠스 디파올라는 지난 16일 “주인이 우리 안에 버린 개 여섯 마리를 꺼냈다. 우리가 떠날 때쯤에 빠르게 범람한 물살로 수위가 너무 높아져서 개가 빠져 죽었을 수도 있었다”면서 “피난 시 당신의 애완동물도 함께 데려가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해당 영상은 이미 4만 6000건 넘게 공유됐고, 대다수 네티즌들은 “자신들을 내보내 달라고 낑낑대는 개들이 안쓰러웠다”거나 “몇몇 사람들은 개들을 키울 자격이 없다. 그 같은 가혹한 상황에 개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잔인하고 무정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플로렌스가 주말을 거치며 열대성 저기압으로 강등된 후 폭우가 잦아졌으나, 그동안 쏟아진 많은 비로 인한 홍수 피해가 속속 보고됐다. 현재 사망자가 최소 32명으로 늘었으며 강물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어 홍수 피해는 며칠 혹은 몇 주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사진=로이터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세금 강화·대출 규제… ‘똘똘한 한 채’·투기 임대사업자 정조준

    세금 강화·대출 규제… ‘똘똘한 한 채’·투기 임대사업자 정조준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이르면 다음주 발표할 부동산 종합대책은 이른바 ‘똘똘한 한 채’ 보유자와 임대사업자를 정조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8·2 대책’을 비롯해 그동안 다주택자에게 초점을 맞춘 투기 억제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지만 최근 1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가 평균 16.4%나 뛰는 등 집값 급등세를 잡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현판식에서 “세제와 금융 등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 대책을 포함한 부동산 종합대책을 추석 전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은 세금 강화와 대출 규제 등 수요 억제 방안을 먼저 발표한 뒤 수도권 미니신도시 조성 등 공급 확대 방안은 추석 연휴 전에 추가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고가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에게 세금을 더 물린다. 전국 43개 청약조정지역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 중 실거주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다주택자 과세 강화와 맞물려 ‘똘똘한 한 채’로 몰리는 투기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단기 양도세도 강화될 전망이다. 지금은 1주택자가 1년 미만 보유한 집을 팔면 양도차익의 40%, 1년 이상은 6~42%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2년 미만인 경우 세율을 40~50%까지 올리는 것이다. 1주택자가 10년 이상 갖고 있던 집을 팔면 양도세를 최대 80% 깎아 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60%로 낮추거나 보유 기간을 15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임대사업자 세금 감면 혜택도 대폭 축소된다. 투기지역 내에서 새로 산 집에 한해 양도세나 종합부동산세 감면을 줄이는 식이다. 대출 규제는 강화된다. 임대사업자에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신규 적용하고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을 강화해 ‘2중 자물쇠’를 채우는 것이다. 현재 임대사업자는 LTV를 적용받지 않고 집값의 70~80%까지 대출받을 수 있어 투기지역에서 집을 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집을 샀는데 원래 살던 집을 팔지 못한 일시적 2주택자의 양도세 비과세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이는 방안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선의의 일시적 2주택자가 아닌 단기 매매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다주택자가 전세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사례도 있어 대출보증을 제공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에게 매기는 종합부동산세율은 더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보유세 개편안에서 고가주택 구간을 더 세분화하고 세율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에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은 현행 80%에서 5%씩 2년에 걸쳐 90%로 올리기로 했는데 내년에 바로 90%로 올리거나 100%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전문]‘송도 불법주차’ 캠리 차주 자필 사과문

    [전문]‘송도 불법주차’ 캠리 차주 자필 사과문

    주차 위반 스티커가 차량 앞유리에 붙어 있는 것에 화가 나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를 차량으로 가로막은 캠리 차주 50대 여성 A씨가 사과의 뜻을 밝혔다. 불법주차로 주차장 이용에 큰 불편을 겪은 아파트 입주민들은 A씨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캠리 앞바퀴에 채워뒀던 차량용 자물쇠(휠락)을 풀어 차량 이동을 허락했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 B씨는 전날 A씨의 집을 방문해 대화한 결과, 불법주차가 오해에서 비롯된 일임을 알게 됐으며 A씨가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아파트 입주민이 모인 인터넷 카페를 통해 설명했다. B씨는 “세대에 방문한 결과 혼자 사시는 분이었고 상황이 많이 안 좋았다”며 “(A씨가) 대인에 대한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몸을 못가누실 정도였다”고 말했다. B씨는 “A씨가 여러 번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진정성을 느꼈으며 사과를 받아들이고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중고차 매매상이 차를 가져가 일이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B씨를 통해 전달한 사과문에서 A씨는 “지난해 12월 관리사무소에 차량을 등록하고 정상적으로 주차장을 이용해왔는데 불법주차 스티커가 붙어있어 분을 참지 못했다”며 “(입주민 차량에 붙여야 하는)홀로그램 스티커 규칙을 오해하고 있어 생긴 일이다. 공동생활의 규칙을 위반한 잘못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A씨는 이번 일과 관계 없이 아파트를 떠나 이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번 ‘송도 불법주차 사건’은 A씨가 자신의 캠리 승용차를 지난 27일 지하주차장 진입로에 삐딱하게 세운 뒤 그대로 자리를 떠나면서 발생했다. 입주민 차량에 붙여야 하는 홀로그램 스티커를 A씨가 차량에 붙이지 않았고, 이에 관리사무소가 주차위반 스티커 4장을 A씨 차량 앞유리에 연달아 붙인 데 화가 났기 때문이다. 주차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불편을 겪던 주민들은 A씨 차를 손으로 밀어 인도로 옮기고 주변에 경계석과 화분으로 차를 움직일 수 없도록 했다. A씨는 “관리사무소가 주차위반 스티커를 다 떼고 사과하지 않으면 차를 옮기지 않겠다”고 버텨 입주민들의 공분을 샀다. 다음은 A씨가 자필로 쓴 사과문의 전문이다.
  • [이호준의 시간여행] 미시령휴게소, 추억이 되다

    [이호준의 시간여행] 미시령휴게소, 추억이 되다

    눈을 부비고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여전히 황량한 풍경만 가득했다. 공터를 둘러싼 철조망과 돌무더기들만 그곳에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부득불 말해 주고 있었다. 미시령휴게소가 있던 자리에서 마주친 풍경이다. 휴게소 건물이 철거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설마설마했었다. 하지만 설마는 냉정한 현실이 돼 있었다.‘멀쩡한 모습’의 미시령휴게소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것은 2010년 7월이었다. 그때 이미 휴게소는 쇠락의 기운이 역력했다. 생의 끄트머리를 그러쥐고 버티는 노인처럼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의 삭막한 풍경을 이렇게 적었다.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은 건물 밖이라고 다를 게 없었습니다. 나무 기둥과 계단은 삐걱삐걱 비명이라도 지를 것처럼 낡았고, 지붕 역시 손을 보지 못한 지 오래인 것 같았습니다. 건물 뒤로 가보니 더욱 참혹했습니다. 곳곳에 잡초가 무성했고, 한때 화려함을 자랑했던 것들이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외출중’이라는 팻말이 걸린 만남의 집 녹슨 자물쇠는 주인이 영원히 외출했음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낡은 모습으로라도 시간의 심술을 견뎌 주길 바랐지만, 그런 간절함을 외면이라도 하듯 미시령휴게소는 2011년 1월 31일 문을 닫았다. 내가 다녀온 다음해였다. 그리고 사람의 온기가 시나브로 식어 가면서 휴게소 건물은 흉물이 돼 갔다. 그러다가 2016년 8월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고 지금의 공터만 남은 것이다. 미시령휴게소는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건물로도 유명했다. 동해안으로 피서를 가는 이들이 주로 거쳐 가던 곳이었다. 미시령 길은 ‘곡예운전’의 대명사였다. 급커브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아찔한 순간을 만나고는 했다. 숙달된 드라이버도 조상님 찾으며 납작 엎드려야 통과시켜 준다는 길이었다. 하지만 고행길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 아니었다. 고갯마루에 닿을 무렵 자동차가 느닷없이 구름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경험은 특별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호한 것이 들개 떼처럼 몰려다니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천상을 거니는 듯 황홀하기까지 했다. 휴게소는 대형 식당과 간이음식점, 특산물 매점, 기념품 가게 등을 갖추고 있었다. 그 넓은 곳이 늘 인파로 북적거렸다. 밥을 먹으며 차를 마시며, 그저 담배 한 대 태우며 ‘특별한’ 풍경을 만끽하고는 했다. 맑은 날은 바다가 잡힐 듯 가까웠다. 한계령ㆍ진부령과 함께 동해로 가는 고개 중 하나이자 속초로 가기 위한 관문. 그곳 미시령휴게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1990년에 지어진 미시령휴게소가 문을 닫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6년 미시령터널이 뚫리면서부터였다. 애써 미시령을 오르는 차량이 없다 보니 휴게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고, 결국 경영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옛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이 부득불 고갯마루까지 오르고는 했지만, 그들만으로는 휴게소를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미시령휴게소는 세월 저쪽으로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 시간이 불러왔다가 데려간 것이다. 다시 똑같이 지을 리도 없겠지만 설령 복원된다고 해도 그 옛날 추억의 장소는 아니다. 휴게소가 있던 자리에 백두대간생태홍보관을 지을 계획이라고 하지만 공사를 시작할 기미는 아직 없다. 그래서 빈터가 더욱 황량하다. 그 무엇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의 뒷모습은 늘 안타까움을 남긴다. 사연이 깃들어 있는 곳은 더욱 그렇다. 다시 볼 수는 없지만, 가슴에는 미시령휴게소가 화석처럼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 근무하던 정육점서 돼지고기 훔친 20대 영장

    자신이 근무했던 정육점에서 1400여만원 상당의 돼지고기를 훔친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북 전주덕진경찰서는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훔친 혐의(침입 절도)로 A(27)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지난 5월 26일 오후 2시 33분쯤 전주시 덕진구 한 정육점 고기창고에 들어가 225만원 상당의 냉동 삼겹살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가위로 창고 자물쇠를 파손하고 삼겹살이 담긴 상자를 자신의 승용차에 옮겨 실은 뒤 도주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이날부터 지난 28일까지 8차례 같은 수법으로 총 1446만원 상당의 돼지고기를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창고에서 돼지고기가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업주 B(44)씨는 창고 주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지난해 정육점에서 일했던 직원’이라는 B씨 진술에 따라 그를 검거했다. A씨 자택에 남아 있던 60㎏의 삼겹살도 압수했다. 그는 “생활비가 부족해 돼지고기를 훔쳤다. 다른 정육점에 거의 다 팔아넘겼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여죄를 조사 중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4차 산업혁명 현장을 가다] ‘AI 공유자전거’로 교통체증·온실가스 줄인다

    [4차 산업혁명 현장을 가다] ‘AI 공유자전거’로 교통체증·온실가스 줄인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공유자전거 업체 오포(ofo)의 노란색 물결이 22개국 250개 도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공유자전거가 도입된 곳 가운데 95%의 도시에서 교통체증이 감소했다는 분석치도 나온다. 2014년 설립된 오포의 누적 이용 횟수는 60억회로, 이는 중국 베이징 면적의 두 배 크기의 숲이 324만t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한 것과 같은 효과로 평가된다. 오포는 자전거 정비와 배치에 AI 기술을 활용한다. 또 위성항법장치(GPS)가 달린 오포의 자전거가 수집하는 정보를 통해 도시의 교통 효율을 높이고 있다. 노란색 자전거 오포가 닦은 4차 산업혁명의 길을 달려보았다.오포는 중국판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한복판에 있다. 전자 제품 상가에서 시작한 중관춘은 현재 중국 창업기업의 요람이다. 거리에 들어선 창업카페에서 누구나 창업 관련 조언과 투자금을 얻을 수 있다. 오포의 10층 사무실에는 중국 최고의 두뇌집단인 베이징대와 칭화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포를 만든 5명의 공동 창업자는 베이징대 졸업생들이다. 중관춘은 중국 정부의 지원과 우수한 인력이 결합해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폰으로 QR코드 스캔하면 잠금 풀려 오포의 부사장 리저쿤(李澤)은 “오포의 공유자전거는 사람과 자전거 그리고 도시를 연결하는 전달자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골목 구석구석을 연결해 새로운 생활 방식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베이징대 생명과학원을 졸업한 리 부사장은 오포 창업 당시 고문 역할을 했으며 2016년 4월에 입사해 해외 마케팅과 시장 개발을 맡고 있다. 오포를 비롯한 중국 공유자전거는 휴대전화로 자전거의 QR 코드를 스캔하면 바퀴에 달린 자물쇠가 풀리는 편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잠금장치가 자동으로 열리는 오포의 전자자물쇠에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활용됐다. ●이용료 월간카드로 결제하면 1~20위안 요금은 대체로 한 시간에 1위안(170원)이지만 한 달 동안 하루에 20번씩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월간 카드를 1~20위안에 할인 판매한다. 오포는 서울시의 공유자전거 ‘따릉이’와 달리 거치대에 반납할 필요가 없다. GPS로 주변에 있는 자전거를 검색해서 탄 뒤 어디든 도착하면 전자자물쇠를 다시 잠그면 된다. 요금 결제는 모두 휴대전화로 이뤄진다. 오포를 창업했을 때의 사업은 지금과 같은 공유자전거가 아닌 자전거 여행이었다. 대만 전역을 자전거로 여행할 수 있도록 자전거를 빌려주고 적합한 여행 일정을 제안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수요가 너무 적어 사업을 접을 무렵 회사 계좌에는 단돈 400위안만 남았다. 오포는 2015년 9월 베이징대 학생들로부터 자전거를 기증받아 공유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당시 베이징대의 자전거는 대부분 도난당하거나 분실 사고가 잦았다. 게다가 강의를 들으러 가면 자전거는 세워져 있다는 데 착안해 개인 자전거를 공유하면 100분간 이용하는 사업 모델을 세웠다. 이 모델은 평균 5분이던 자전거 이용시간을 76분으로 늘린 오포 사용자의 통계 분석으로 입증됐다.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한 베이징대 학생들은 1000대의 자전거를 내놓았고 오포는 번호판과 전자자물쇠 잠금장치를 제공했다. 다른 대학으로 자전거 기증을 확대했지만 곧 자물쇠가 자전거마다 다른 문제가 생겼다. 결국 대량으로 자전거를 구매한 다음 규격을 통일해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고 2015년부터 베이징대에서 시작된 노란 자전거의 물결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사용자 기록 분석… 신용 낮으면 불이익 오포는 크게 네 가지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우선 오포 사용자들이 자전거의 고장 난 부분을 촬영해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전송하면 어느 부품에 문제가 생겼는지 AI로 자동식별이 가능하다. 오포 자전거는 GPS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데 자전거가 모은 빅데이터를 통해 교통량을 분석해 도시의 교통 효율을 높인다. 하루에 분석하는 빅데이터 규모는 40테라바이트에 이른다. 구글의 기계학습 알고리즘인 텐서 플로(tensor flow)와 기술적으로 협력해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였다. 공유자전거 도난 사고 방지에도 인공지능 기술이 이용된다. 사용자의 기록을 분석해 신용지수를 부여하고, 신용이 낮으면 자전거 사용에 불이익을 준다. 실제 위법행위는 공안(경찰)과 협력해 처벌한다. 리 부사장은 오포의 기업 목표에 대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언어와 국적을 뛰어넘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오포란 기업 이름은 자전거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누구나 직관적으로 오포가 자전거란 사실을 받아들인다. 또 알리바바의 투자를 받고 구글과 협력하는 것처럼 항상 오포의 문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한때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미니언즈와도 노란색을 사용하는 공통점 때문에 공동 마케팅을 벌였다. 공유자전거를 버스, 지하철 등 대중 교통체계와 결합해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교통 체계를 세우는 것도 미래 사업 방향이다. ●창업 4년 만에 직원 3000여명 회사로 성장 10명으로 시작한 오포의 직원은 현재 3000여명이다. 업무 환경은 미국 실리콘밸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인데 입사 1년이 지나면 책상에 ‘1’이란 숫자의 커다란 황금 풍선을 달아 애사심을 부여한다. 직원 편의를 위해 식당, 무료 간식대, 요가 수업, 수면실,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공간 등도 마련되어 있다. 오포는 올 초 한국의 부산에도 상륙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포화상태란 평가를 받는 공유자전거 사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알려면 오포의 노란색 번호판이 가는 길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글 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월드컵 트로피의 ‘명품’ 철통 보안…루이비통에 담아 경호원 2명 지켜

    월드컵 트로피의 ‘명품’ 철통 보안…루이비통에 담아 경호원 2명 지켜

    프랑스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황금색 트로피도 앞으로 4년간 프랑스에 보관된다. 프랑스는 16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크로아티아와의 월드컵 결승에서 4-2로 대승했다. 레블뢰(파랑)군단은 우승컵에 키스를 퍼부으며 1998년 이후 20년만에 차지한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 결승전에 앞서 월드컵 우승 트로피가 철통 보안 속에 루즈니키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높이 36cm, 무게 6.175kg의 우승컵은 18K 금과 준보석인 초록색 공작석으로 만들어졌다.2010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의 의뢰를 받아 우승컵 보관함을 제작해온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이번에 새로운 보관함을 제작했다. 루이비통이 자랑하는 파리 근교 아니에르 공방에서 장인이 손수 만든 세계 단 하나뿐인 여행가방(트래블케이스)라는 게 루이비통 측 설명이다. 티타늄으로 만든 보관함은 아름답고 가볍지만 견고하며 레이저로 루이비통을 상징하는 모노그램을 새겨 넣었다. 트렁크의 각진 8군데 모서리는 천연 소가죽으로 덧댔고 자물쇠와 6개의 걸쇠는 단단한 진회색금속인 루테늄으로 제작했다. 루테늄의 화학원소 기호인 Ru는 이번 월드컵 개최국인 러시아(Russia)를 상징하는 뜻이 담겨있다. 이날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 트로피 공개 행사가 열렸다.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국 독일의 축구선수 필립 람과 러시아 출신의 슈퍼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우승컵과 새로 디자인된 보관함을 관중들에게 공개했다. 보디아노바는 루이비통을 소유한 LVMH의 CEO 베르나르 아르노의 아들인 앙투완 아르노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 중이기도 하다.영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피파가 우승컵과 보관함을 철통같이 지켰다고 전했다. 우승컵은 결승전이 열리기 한시간 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도착과 즉시 전문가가 흰 장갑을 끼고 우승컵과 보관함을 검사했다. 또 2명의 덩치 좋은 경호원이 우승국이 결정될 때까지 우승컵을 곁에서 지켰다. ‘줄리메컵’으로 불리던 월드컵 우승트로피는 두차례 도난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줄 리메 FIFA 3대 회장은 1930년 제1회 월드컵 우승국 우루과이에게 순금으로 만든 우승컵을 수여했다. 1966년 제8회 잉글랜드월드컵을 개막을 앞두고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공개 전시되던 줄리메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회가 열리기 직전 런던 근교에 살던 농부의 개가 우승컵을 물고 나타나 무사히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줄리메컵은 1983년 브라질에서 또 한번 도난당했다. 브라질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제패했다. FIFA 규정상 통산 3회 우승을 한 나라는 줄리메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 그러나 브라질이 도둑 맞은 줄리메컵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FIFA는 1974년 서독월드컵 때부터 새로 제작한 우승컵을 공개했고 줄리메컵 대신 ‘피파 월드컵’으로 공식 명명했다. 우승국은 피파컵을 4년간 보관한 뒤 다음 우승국에 넘겨줘야 한다. 대신 실물보다 조금 작은 복제품을 받는다. 우승컵 하단의 공작석으로 만든 두줄의 녹색띠에 우승국 이름을 새겨넣는다. 공간의 제약으로 17개국의 이름만 넣을 수 있어서 2038년 대회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땡볕 아래 쇠목줄에 걸려 고통스러워 하는 개

    땡볕 아래 쇠목줄에 걸려 고통스러워 하는 개

    지난 25일 (현지시각) 외신 ‘데일리메일’은 뜨거운 땡볕 아래 쇠 목줄을 찬 개가 고통스러워하는 영상을 공개했다.영상에는 담에 묶인 채 쇠 목줄을 한 개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담겼다.개는 길이가 짧은 쇠 목줄로 인해 목이 조여와 숨을 헐떡거렸다. 녀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구조의 눈빛을 보내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뜨거운 태양 아래 개가 그대로 방치된 상황이라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잠시 뒤, 시민 한 명이 개를 구하고 주인을 불러내려 했지만 견주는 묵묵부답이었다. 시민은 쇠 목줄이 단단한 자물쇠로 잠겨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개가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이 이어졌다.이 영상은 필리핀 케손주 루세나 지역에서 이웃 주민에 의해 직접 촬영됐다. 주민은 “견주가 매일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개를 묶어 내버려둔다며 개를 도와줄 방법을 찾기 위해 영상을 촬영했다”고 밝혔다.곽재순PD ssoon@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공중전화 수난

    [그때의 사회면] 공중전화 수난

    지금은 이용자가 거의 없는 공중전화는 1889년 미국 발명가 윌리엄 그레이가 고안한 동전으로 작동하는 공중전화가 최초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전화국 안에 공중전화가 있었다고는 하나 동전을 넣는 사실상 최초의 공중전화는 1962년에 생겼다. 종전의 공중전화와 다른 점은 공중전화 부스가 있고 감시원이 없는 무인전화라는 것이었다. 빨간 네모 상자 모양의 본체 앞에 동그란 다이얼식 번호판이 붙어 있는 ‘벽괘형 공중전화’다. 그해 9월 20일 서울시청 앞, 서울역 앞, 서울 중앙우체국 앞과 남대문 로터리 등 서울시내 10곳에 처음 설치됐다.무인 공중전화는 처음부터 수난을 당했다. 보름 만에 절반인 다섯 대를 도둑이 통째로 훔쳐 간 것이다. 그나마 50환 동전만 쓸 수 있어 이용자가 적었던 바람에 잃어버린 돈은 많지 않았다. 송수화기를 절단해 가져가거나 전화번호부를 훔치는 도둑들도 있어 경찰이 골머리를 앓았다. 통째로 훔치지 않고 동전만 빼가는 절도범들도 잇따라 붙잡혔다. 못으로 자물쇠를 열어 공중전화 안에 있던 255원을 턴 20대도 있었고 시내 전역을 돌며 공중전화 동전을 훔친 이도 있었다. 그보다 큰 문제는 ‘돈 먹는 공중전화’였다. 전화기 품질이 떨어져 거의 모든 공중전화가 고장이 잦았다. 다급한 사람은 혹시나 해서 서너번 동전을 넣었다가 15~20원을 손해 봤다며 신문에 독자투고로 고발하기도 했다. 급한 일로 공중전화를 걸었다가 전화가 돈만 삼키고 걸리지 않자 법원에 5원 반환소송을 낸 시민도 있었다(경향신문 1969년 7월 11일자). 법원은 당연히 승소판결을 내려주었다. 소송은 더 있었는데 증거불충분으로 패소한 시민도 있었다. 1964년 4월 서울 공중전화는 99대였는데 고장건수는 한 달에 260건이었다. 전화 한 대가 한 달에 세 번 고장난 셈이다. 고장이 잦았던 이유 중 하나는 정해진 동전이 아닌 쇠붙이 따위를 넣고 전화를 걸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규격에 맞지 않는 조선시대 엽전이나 일본 동전 구화도 심심찮게 발견됐다(경향신문 1964년 5월 21일자). ‘이동공중전화차’라는 게 있었다. 공중전화 다섯 대를 설치한 차량을 시내 번화가를 돌면서 시민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매일경제 1969년 6월 16일자). 공중전화는 처음에 시간 제한이 없었다. 통화 시간이 늘어나 불편을 주자 3분으로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이었다. 시외 자동 공중전화기는 1977년에 처음 설치됐는데 일본 제조 회사의 이름을 따 ‘다무라 전화기’로도 불렸다. 최초의 공중전화 요금 5원은 당시의 물가 수준에 비해서는 싸지 않았다. 그래서 10여년간 올리지 않았다. 현재의 공중전화 요금은? 3분에 70원이다. 사진은 1962년 서울에 설치된 최초의 공중전화 부스 모습.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단독] 피팅모델 성추행 의혹 스튜디오 대표 “계약서 13장 외에 결백 증거 또 있다”

    [단독] 피팅모델 성추행 의혹 스튜디오 대표 “계약서 13장 외에 결백 증거 또 있다”

    유명 유튜버 양예원씨와 동료 이소윤씨가 과거 피팅모델 촬영을 빙자한 성추행과 협박을 당했다며 당시 촬영을 주선한 ‘실장님’ A씨를 고소한 가운데 A씨가 고소인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18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A씨는 양씨와의 계약서 13장을 꺼내놓으며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촬영일마다 작성된 계약서에는 2015년 7월 10일부터 9월 18일까지의 날짜와 함께 양씨의 가명이 적혀 있었다. 일부 계약서에는 가명 옆에 양씨의 실명이 함께 적혀 있었다. A씨는 3년 전 강압에 의해 5차례 촬영을 했다는 양씨의 주장에 대해 “양씨가 지어낸 소설”이라며 반박했다. A씨는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시간당 10~15만원씩 회당 2시간 촬영을 했다”면서 “30만원이나 35만원, 40만원까지 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현금 거래를 했기 때문에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계약서에도 모델료에 대한 부분은 적혀 있지 않았다. A씨는 성추행·협박 의혹에 대해 “모델에게는 손도 안 댔다”면서 “(그랬다가는) 바로 고소 들어오지 않겠냐”고 반박했다. 감금 의혹에 대해서도 “안에서 걸어잠근 적도 없고 자물쇠를 채울 만한 문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A씨는 “전 스튜디오의 문은 (리모델링 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해 사진을 찍어 증거로 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양씨 등에게 속옷을 입히고 촬영을 진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 하에 진행했다”고 인정했다. 미성년자가 아니기 때문에 합의 하에 진행된 촬영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나를 고소할 게 아니라 (사진) 유포자를 고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계약을 위반하고 사진을 유출한 점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A씨가 모델, 사진작가들과 작성한 ‘비공개 촬영회 모델 초상권 계약서’에는 ‘갑은 을을 비공개 촬영한 컨텐츠에 대한 일체 인터넷 공개 및 어느곳에도 무단 배포할 수 없다’고 쓰여 있었다. 계약서 하단에는 촬영에 참가한 사진작가들의 닉네임과 실명, 연락처, 서명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A씨는 촬영 이후 양씨, 이씨와 연락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A씨는 계약서 등을 경찰에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17일 양씨는 자신의 페이스북과 유튜브 채널에 올린 글과 영상을 통해 “피팅모델에 지원했다가 찾아간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를 든 20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싫다고 했지만 실장님은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적었다. 양씨는 이날 이후 촬영을 그만두려 했으나 이미 찍힌 사진이 유포될까 두려워 모두 5번의 촬영에 응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양씨는 “지난 8일 한 야동 사이트에 그 사진이 올라왔고, 3차례 자살을 기도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양씨의 글이 올라온 뒤 이씨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사한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마포경찰서는 18일 양씨와 이씨를 상대로 고소인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이르면 19일 A씨를 불러 피고소인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유튜버의 눈물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유튜버의 눈물

    “피팅모델 촬영 중 야한 옷 강요 당시 사진 음란사이트 등 유출” 경찰, 해당 스튜디오 등 수사 가해자 지목 실장 “강압 없었다” 유명 유튜버가 17일 자신이 당한 집단 성추행 피해 사실과 함께 자신의 반나체 사진이 음란물로 유통돼 자살까지 시도했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지난 11일 이 유튜버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나섰다.서울 마포경찰서는 유튜버 양예원씨와 동료 이소윤씨가 3년 전 스튜디오 사진 촬영 과정에서 성추행과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함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스튜디오 운영자(실장) A씨의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먼저 18일 양씨와 이씨를 불러 고소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마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과 2팀 5명과 서울경찰청 여청수사대 2명을 투입해 합동 수사를 벌인다. 양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영상을 올렸다. 양씨는 “알바 구직 사이트에서 피팅모델에 지원했고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스튜디오를 찾아갔는데 실장이 문을 자물쇠로 걸어 잠갔고 20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면서 “실장이 포르노에 나올 법한 속옷을 건넸고 남성들은 포즈를 잡아 주겠다며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양씨의 사진은 최근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양씨에겐 ‘별짓 다했구나’ 등 비난 메시지와 욕설이 날아들었고,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양씨의 사진이 전송됐다. 양씨는 “지난 8일 한 야동 사이트에 사진이 올라오고 나서 3차례 자살을 기도했다”고 밝혔다. 양씨의 폭로 이후 배우 지망생인 동료 이씨도 페이스북에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씨도 과거 피팅모델로 지원했다가 스튜디오에서 성추행과 협박을 당했고, 당시 찍힌 사진이 최근 공개됐다. 이와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A씨는 이날 “촬영은 양씨와 합의된 상황에서 진행됐고 강압은 전혀 없었다”면서 “촬영 콘셉트도 협의한 뒤 구두로 계약했으며, 시간당 10만~20만원 정도의 모델료도 지급했다”고 반박했다.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도 “말로 포즈를 취해 달라는 식이었고, 성추행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어 “당시 작가들로부터 사진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유출자를 찾아야 하는데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면서 “저도 (양씨를) 무고죄로 고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유튜버 양예원의 고백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유튜버 양예원의 고백

    ‘비글커플’로 활동하는 유튜버 양예원이 3년 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17일 양예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꼭 한 번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과 영상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양예원은 3년 전 배우의 꿈을 꾸던 당시 피팅모델을 시켜주겠다는 스튜디오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후 피팅모델 촬영이 아닌 선정적인 누드 촬영을 강제로 진행해야 했었다고 고백했다. 양예원은 스튜디오에 감금된 상태로 5회에 걸쳐 약 20명가량의 남성들 앞에서 신체 중요 부위들이 드러나는 선정적인 속옷을 입고 성추행을 당하며 촬영을 진행해야 했었다고 폭로했다. 또 양예원은 촬영 이후 3년 만인 지난 5월 8일 성인 사이트에 당시 촬영했던 자신의 사진이 공개됐으며, SNS 등을 통한 조롱 등의 충격에 세 차례 자살 기도를 했다고도 밝혔다. 양예원은 “저를 도와주시고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의 피해자들이 안 생기게 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퍼트려달라”며 “제발 저 좀 살려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양예원의 성폭력 고백 게시물 전문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꼭 한번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안녕하세요. 양예원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고 수없이 맘을 다잡았습니다. 너무 힘이 들고 죽고만 싶고, 눈물만 쏟아지는데 절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했습니다. 넌 피해자라고 숨고 아파하고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서 용기 내서 말을 해보려 합니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고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아직도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말해보려 합니다.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3년 전, 20대 초반이었던 저는 평범하게 배우를 꿈꾸며 공부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재수에 삼수까지 한터라 세상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 알바몬에서 알바를 구하던 중 피팅모델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을 보려 합정역 3번 출구 근처의 한 스튜디오를 찾아갔습니다. 처음엔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고 참 깔끔하고 예쁜 스튜디오라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제게 연락을 주신 그분은 ‘실장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절 보자마자 감탄을 하며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셨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자며 예쁜 배경 앞에서 앞, 옆, 뒤를 촬영했고 카메라에도 잘 나온다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일단 5회 정도만 촬영을 해보자고 했고 촬영은 평범한 콘셉트 촬영인데 여러 콘셉트가 있지만 가끔은 섹시 콘셉트도 들어갈 거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원 씨는 연기를 할 거면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여러 콘셉트로 찍는 건 연예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연기를 한다 하니깐 내가 그 비싼 프로필 사진도 무료로 다 찍어줄 거고, 아는 PD와 감독도 많으니 잘하면 그분들께 소개해주겠다고.. 그 말에 여기는 정말 좋은 곳이구나 생각을 하고 속았습니다. 정말 바보 같죠.. 그리고 제게 아무렇지 않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고 거기에 덜컥 제 이름 세자를 적었습니다. 그 후 촬영 일자가 되었고 저는 그 스튜디오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 실장님께선 문을 자물쇠까지 채워 걸어 잠그시더라고요. 철로 된 문 이였고 도어록으로 문이 한번 잠긴 것을 또 한 번 손바닥만 한 자물쇠로 걸어 잠갔습니다. 그리고 스튜디오 안에는 20명 정도 돼 보이는 남자들이 모두 카메라를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를 느꼈으며 그 두려움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도 열려있지 않은 밀폐된 공간이란 걸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실장님은 제게 의상이라며 갈아입고 오라고 옷을 건넸습니다. 속옷이었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속옷이 아닌 포르노에만 나올법한 성기가 보이는 속옷들이었습니다. 이게 뭐냐고 난 이런 거 싫다고 안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실장님은 제게 협박을 하였습니다. 너 때문에 저 멀리서 온 사람들은 어떡하냐, 저 사람들 모두 회비 내고 온 사람들인데 너한테 다 손해배상 청구할 거다. 고소할 거다. 내가 아는 PD, 감독들에게 다 말해서 널 배우 데뷔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거다. 이런 식으로요.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웠습니다. 분위기도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살벌함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집은 돈도 없는데 나 이렇게 불효하면 안 되는데.. 고소당하면 어쩌지.. 나 정말 매장당해서 데뷔도 못하면 어떡하지 등등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오늘만 참자..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20명의 아저씨들이 절 둘러싸고 사진을 찍으면서 한 명씩 포즈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포즈를 잡아주겠다며 다가와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며 제 가슴과 제 성기를 만졌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소리도 지를 수 없었고 덤빌 수도 없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만 있었습니다. 여기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강간을 당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강간만큼은 피하자, 말 잘 듣자.. 여기서 꼭 살아서 나가자..라는 생각이요. 그렇게 그 사람들이 웃으라면 웃었고 손 하트를 하라고 하면 하트를 했고 다리를 벌리고 혀를 내밀어 보라 하면 그렇게 했고 가슴을 움켜쥐라고 하면 움켜쥐었고 팬티를 당겨 성기가 보이게 하라면 그렇게 했습니다. 더 심각하게는 손가락을 성기에 넣어보라고도 했습니다. 왜 싫다고 안 했냐고요? 싫다고 했습니다. 그건 싫어요. 그건 안돼요. 그렇게 하면 항상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제게 욕을 퍼붓고 담배를 피워대며 “저런 년을 왜 데려왔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때마다 실장님은 제게 너 이런 식으로 할 거냐고 협박을 해왔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밀폐된 공간에서 이렇게 많은 남자들에 여자라고는 나 하나뿐인데 정말 너무 무서워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첫 촬영이 끝났습니다. 실장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지 않냐고... 그냥 조용히 끄덕였습니다... 전 그 스튜디오에서 나오자마자 펑펑 울었습니다. 죽고 싶었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실장에게 전화해 말했습니다. 하고 싶지 않다고. 안 할 거라고. 그러자 또 협박을 해왔습니다. 네가 이미 사인하지 않았냐, 다음 회차들 회원들 다 예약되어있는데 어쩌라는 거냐, 손해배상 청구하면 너 감당 못한다, 너 이미 찍힌 사진들 내가 다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난 이미 사진이 찍혔고 이게 혹시나 퍼질까 봐,가족들이 볼까 봐 나 아는 사람들이 볼까 봐였습니다. 그렇게 다섯 번의 촬영을 하고 다섯 번의 성추행을 당하고 다섯 번 내내 울었습니다. 그 촬영을 하는 기간 동안은 전 제정신이 아니었고 평생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잊고 싶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의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수치스러웠고 너무 부끄러웠고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으며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나만 입다물고 모른 척 조용히 살면 난 평생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신고도 하지 못한 채 전 정말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적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 자기 전에 항상 인터넷을 뒤져봤고 혹시나 사진이 올라왔을까 봐 매일 불안에 떨었습니다. 배우의 꿈은 당연히 버리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애는 배우를 할 수도 없고 배우를 하게 된다면 내가 혹시나 유명해진다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3년 동안 그 일을 잊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지만 3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으니 조금은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5월 8일, 한 야동 사이트에 그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유명세를 치르길 원하진 않았지만 유명세를 치른 덕에 내 사진이 퍼졌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고 제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별짓 다했구나, 창녀, 걸레, 잘 봤다 네 보지 등등... 심지어는 남자친구의 인스타 메시지로 제 사진을 캡처해 보내면서 “이걸 보니 기분이 어때요?” 묻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제 가족, 남자친구, 제 지인들에게까지도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이 캡처를 해서 심한 말과 함께 보내더군요 죽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죽고 싶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남자친구인 동민이가 보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부터 엄마가 알게 된다면 아빠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또는 내 동생들, 아직 사춘기인 내 남동생이 보게 된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날 다시는 보려 하지 않겠지..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일단 동민이에게 헤어지자 하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 후 죽으려 마음을 먹었습니다. 죽는 것만이 살 길이였습니다. 3차례의 자살기도, 그리고 실패하자 더 억울했습니다. 죽기도 이렇게 어렵구나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모든 게 어렵고 힘들까... 눈물만 흘렀습니다. 너무 억울하게도 사진 속의 제 모습은 웃고 있어서 더 부끄러웠습니다. 사람들은 결과물만 보게 되니깐 분명히 그 사진을 보고 내가 자의적으로 찍었을 거라 생각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어떤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이대로 숨어서 아무도 없는대서 혼자 서서히 죽어가기만 기다리는 게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사진은 많은 사람들의 성희롱 대상이 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저를 멋대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모에 대해... 가슴에 대해... 성기에 대해... 나의 행실에 대해... 그렇게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한숨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수면제 처방을 받아서 겨우 잠들어도 악몽 때문에 깨어나고 약 먹고 잠들고 깨고 잠들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민이가 알게 되었고 제 주변 사람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괜찮다고 말해줬습니다. 넌 피해자라고 격려해줬습니다. 이겨 내야 한다고, 싸워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고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제가 용기 내어 이 사건에 대해 세상에 알려 조금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나쁜 사람들을 잡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짓을 못하게 막고 싶었습니다. 그 사이트에는 저 말고도 수많은 여자들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던 중 그 안에서 저와 친하게 지냈던 함께 배우가 되기를 꿈꿨던 언니의 얼굴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언니에게 조심스레 연락을 했고 그 언니도 까마득히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제 전화를 받자 그 언니는 죽을 듯이 울었으며 나 정말 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언니가 당한 수법도 똑같았으며 저와 똑같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으며 매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실체들을 낱낱이 밝혀내고 싶습니다. 그들은 정말 여자를 단순한 상품 취급하며, 그 대상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 여학생들이며, 심지어는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사탕 발린 말로 정상적인 촬영을 한다고 말하며 촬영이 시작되면 문을 걸어 잠그고 분위기에 압도되도록 겁에 질리도록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짧은 원피스를 주며 티 팬티를 줍니다. 왜 티 팬티를 입나요?라고 물어보면 팬티라인이 드러나면 옷이 예쁘게 안 나온다고 말하고 촬영이 시작되면 나중에는 팬티를 벗으라며 강요합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협박은 기본이고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합니다. 심하게는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사진을 찍었던 사람 중 하나가 제게 집에 데려다주겠다 한 적도 있었으니깐요. 성희롱은 보통 이상입니다. “예원 씨 가슴이 참 예뻐요, 거기가 참 예쁘네요, 손가락을 대볼래요?” 이런 식 으로요. 그런 속옷이 너무 입기 싫어 생리 중이라고 말하면 템포를 쥐여줍니다. 그리고 “템포 껴 그러면. 템포 끼고 주변에 피는 닦고 나와”라고 말합니다. 제 엉덩이에 뾰루지 흉터가 있다고 보기 좋지 않고 더럽다며 컨실러를 제 앞에 툭 던지더군요, 엉덩이 화장을 하고 나오라고도 했습니다. 얼굴 화장을 대충 하고 온 날엔 얼굴을 보며 화장이 이게 뭐냐고 사진 잘 찍히려면 화장 고치고 나오라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스타킹을 주고 팬티를 입지 말고 스타킹을 신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도 생각보다 잘 안 비친다며 거짓말을 하면서 촬영할 때는 천천히 스타킹을 벗어보라고 합니다. 그때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엄청나게 나고요. 그리고 회원들이 너무 좋아한다며 한번 다시 하자고 신고 다시 벗으라고도 시킵니다. 그리고 촬영할 때 누구와도 연락 못하게 휴대폰은 뺏습니다. 그리고 자기네들 신상을 알려주지도 않으며 회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끼리는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릅니다. 00님~00님~ 이렇게요. 촬영을 하던 도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남자들은 모두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촬영 중 어떤 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더니 한마디 하고 끊더라고요. “어~ 아빠 일중이야~ 끝나고 전화할게~” 이렇게요.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 자식이 딸이고 나중에 자기 딸이 당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무서웠습니다. 이 사진들을 어떤 용도에 쓰려고 하는 거냐 물어보면 하나같이 입을 맞춘 듯 이렇게 말합니다. 소. 장. 용.이라고, 그리고 회원들이 모인 곳은 인터넷의 한 카페이며 그 카페 회원들은 이미 제 얼굴을 알고 있더라고요. 처음에 면접 시 찍었던 테스트용 사진, 그 사진을 카페에 올리고 가격을 적어놓듯 1번 올 누드, 2번은 세미누드 등 이런 식으로 올려놓고 사진 찍을 사람 신청을 받는 거 같았습니다. 무슨 상품 경매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촬영하는 여자들끼리는 절대 마주치지 않도록 합니다. 역까지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고 하면서요. 그리고 여기 오게 되는 여성들은 대부분이 피팅모델 알바를 하러 왔다가 당하거나, 길거리에서 촬영 문의를 받아서 오게 되거나, 또는 블로그 등에 일반적인 사진들을 올려놓고 촬영 모델 구한다고 해서 왔다가 당하는 경우입니다. 절대 그 여성들은 자의적으로 그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으며 야한 포즈를 취하고 웃는 것이 아닙니다. 압도된 분위기에서 겁먹은 채로 자세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습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신고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안에 여자 스텝은 단 한 명도 없으며 다수의 남자들과 걸어잠긴 문 그리고 반나체인 나 밖에 없으니깐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그냥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깐요. 더 무서운 건 그 사람들의 치밀함입니다. 그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유포 시키는 게 아니라 몇 년이 지나고 잊힐 때쯤 유포시킨다는 겁니다. 해외 아이피로 되어있는 불법 사이트에요. 그래서 더더욱 추적도 어렵고 잡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그때 그 안에서 일어난 일에 관련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으니 그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다고 잡아떼면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성추행하지 않았다 하면 그만이고 그런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폐기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 사진을 보신 분도 있을 거고 아닌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피해자입니다. 원하지도 않았고 너무 무서웠으며 지금도 괴롭고 죽고 싶은 생각만 듭니다. 다른 더 많은 피해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기고 있을 겁니다. 질책하지 말아주세요. 저를 포함 한 그 여성들은 모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피해자들입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들에게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 “신고를 안 했다는 건 조금은 원한 거 아니냐”, “싫다고 하지 그랬냐”, “네가 바보 같아서 그런 거다” 이런 식 의 말들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바로 2차 피해입니다. 그 말들에 더 상처받고 더 가슴이 찢어집니다. 막상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그게 얼마나 무섭고 그걸 주변 사람이 알게 될 것도 무섭고 신고하면서 여러 번 진술을 하게 되면서 받을 상처도 무섭고 무엇보다 내가 신고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 사진을 다 유포시킬까 봐라는 생각이 가장 큽니다. 앞서 말했듯이 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남자라도 잠겨있는 문에 많은 인원의 남성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분위기를 조금만 험악하게 만들어도 분명 겁이 날 테니까요. 전 정말 진심으로 강간만 당하지 말자라고 생각이 들었고 살아서 나가자는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 야동 사이트를 기점으로 총 5-6군데 사이트에 사진들이 퍼지고 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스튜디오처럼 보이는 곳에서 찍었던 다른 여성들의 사진도 너무나 많습니다. 몇 천 페이지가 모두 그런 사진들이며 이들은 대부분 극소수 빼고는 피해자일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과호흡 증세가 찾아오고 눈물이 흐르며 손이 떨리고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 괴롭습니다. 저를 도와주시고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의 피해자들이 안 생기게 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퍼트려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양예원 이어 이소윤도 성추행 고백 “날이 갈수록 수위 심해져”

    양예원 이어 이소윤도 성추행 고백 “날이 갈수록 수위 심해져”

    유튜버 양예원씨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백한 데 이어 배우지망생 이소윤씨도 같은 피해 사실을 당한 사실을 고백했다.이소윤씨는 17일 SNS 통해 “5월 초 야동 사이트에 사진이 올라온 걸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됐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지만 더 이상 혼자 아플 수 없어서 용기 내서 글을 쓴다”고 말했다. 이씨는 “성인이 되고 나서 극단에만 있었기 때문에 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고 사회생활이라는 걸 몰랐다. 극단에서 3년 정도 있다가 나와서 연기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그러던 어느 날 피팅모델 구인 글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양예원 씨가 밝혔던 피해 방식과 동일, 이어지는 증언도 상당 부분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촬영 당일 스튜디오로 갔다. 스튜디오에 도착 후 날 데려온 실장이라는 분이 남자 주먹만 한 자물쇠를 걸어 문을 잠갔고 위에 쇠사슬로 문을 감았다”며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너무너무 무서웠고 뉴스에서만 나올법한 강간, 성폭행, 살인 등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면 어쩔까 하는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리에 가득 찼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짧은 원피스와 티팬티를 줬다. 원피스에는 팬티라인이 보인다며 티팬티를 꼭 해야 된다며 강권했다. 옷을 입고 나가니 약 15~20명의 카메라를 든 남자들이 있었고 실장이라는 사람이 옆에서 지켜봤다”며 총 5회 촬영을 강요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당시 험악한 분위기와 강압적인 상황 때문에 촬영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면서 “날이 갈수록 수위는 더더욱 심해졌다. 팬티도 입지 못하게 했고 입지 않은 상태로 망사스타킹이나 일반 살색 스타킹을 입으라 하며 사진을 찍을 때 조금씩 벗어라, 포즈들도 다리를 벌려다 혹은 은밀한 곳이 좀 더 보일 수 있도록 팬티 끈을 잡고 올려봐라 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회원들이 내가 입길 바라는 옷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 티팬티가 입기 싫은 나는 생리 중이니 못 입겠다고 하자 생리대인 템포를 주면서 넣고 하라고 했고 나는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할 줄 모르겠다 했더니 그럼 본인이 웃으며 직접 해주겠다는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했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이런 내용을 토대로 고소인 조사를 한 뒤 당시 ‘실장’으로 활동한 남성 등 관련자들을 조사해 범죄 혐의점을 파악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따라 흘러간 비극, 영화처럼 남은 흔적

    강따라 흘러간 비극, 영화처럼 남은 흔적

    여행을 부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느낌은 조금씩 다르겠지요. 예컨대 국경은 어떤가요. 듣는 것만으로도 막다른 곳에 이른 느낌, 생경한 땅에 대한 동경, 넘고 싶은 욕망이 가슴 가득 들어찹니다. 영화 촬영지도 비슷합니다. 명화일수록 풍경을 단순 소비재로 쓰는 법은 없지요. 로케이션 장소나 지역에 여러 이야기와 의도를 배치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로케이션 장소 자체를 미장센(화면구성)으로 봐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촬영지를 즐겨 찾는 건 아마 이런 장소들에 대한 로망 때문일 겁니다. 독일 동남쪽에 이 두 가지를 겸비한 곳이 있습니다. 작센주의 고도(古都) 괴를리츠입니다.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독일관광청 측은 “영화 제작자를 위한 낙원”이라거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4000개가 넘는 매혹의 장소”라며 상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뭐 곧이곧대로 믿을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최소한 ‘고즈넉한 국경의 고도’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듯합니다.먼저 이 땅의 역사부터 간략하게 훑자. 그래야 풍경에 대한 이해도 달라진다. 괴를리츠는 독일 동남쪽 가장 끝에 있다.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두 나라의 경계가 되는 건 나이세강이다. 강폭은 우리 임진강의 절반 정도. 그리 크지 않은 강이다. ●2차대전 종전 뒤 獨 영토 20% 폴란드에 내줘 나이세강은 2차대전 종전 뒤 두 나라의 국경이 된 오데르나이세 선(Line)의 두 강 중 하나다. 1945년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연합국 측은 독일과 폴란드의 임시국경선을 오데르강과 나이세강으로 정했다. 이 탓에 독일은 나이세강 동쪽, 그러니까 남한보다 넓은 면적의 곡창지대를 폴란드에 내줘야 했다. 이는 당시 독일 영토의 20%나 됐다고 한다.임시 국경선은 1950년 동독과 폴란드 간 합의로 공식 국경선이 됐다. 그러자 내심 영토 회복을 노리던 서독에선 반발이 일었다. 서독 사람들은 동독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서독에서 통 큰 양보를 한 건 1989년이다. 당시 콜 총리는 독일 통일을 앞두고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경선 공식 확정이란 결단을 내렸다. 이 대목에서 슬며시 우리 현실이 오버랩된다. 전범국이었던 독일의 영토는 이리저리 찢었으면서 왜 일본은 그대로 두고 애먼 한반도만 반토막 냈을까.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나이세강 일대는 그대로 영화 세트장이다. 별도의 미장센이 필요없을 만큼 강렬한 미감을 가진 풍경들이 펼쳐진다. 연분홍 계열의 집들과 초록 숲, 파란 하늘이 색감의 향연을 펼친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국경이다. 가시적인 경계는 없어도 강 너머는 분명히 다른 나라다. 두 개의 나라를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느낌이 아주 독특하다.괴를리츠에서 독일과 폴란드를 잇는 다리는 두 개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보행자 다리다. 공식명칭은 알슈타트 다리다. 영어로는 ‘올드 타운 브리지’라 쓴다. 두 나라의 주민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다리를 오간다. 개울 건너 옆 마을로 마실 가는 정도의 느낌이다. 차로 건너는 다리는 좀더 상류에 있다. 이른바 ‘우의의 다리’다. 다리 너머는 폴란드 즈고르젤레츠다. 한때 독일에 속했던 지역이다. 두 지역이 각기 다른 나라라는 건 물건을 살 때 느낄 수 있다. 독일 지역에선 유로화가 통용되지만 폴란드에선 그렇지 않다. 음료수를 사거나 주차비를 계산하려면 소액이라도 환전을 해 두는 게 낫다. 물론 ‘물물교환’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나는 주민에게 부탁하면 흔쾌히 돈을 바꿔 준다. 보행자 다리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대표적인 곳은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다. 줄여서 성 베드로 교회라 부르기도 한다. 파란 지붕 위로 쾰른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첨탑이 곧추서 있다. 교회 옆은 니콜라이 츠빙거다. 츠빙거 하면 드레스덴에 있는 동명의 궁전을 연상하지만 중세의 성에 설치된 보루를 뜻하기도 한다. 니콜라이 츠빙거는 괴를리츠 성벽에 남아 있는 두 개의 보루 중 하나다. 중세의 정원처럼 적요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출입구가 교회 부속 건물처럼 보여 발을 들이기가 꺼려지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나이세강 일대를 좀더 높은 위치에서 굽어볼 수도 있다.●영화 속 호텔 배경 백화점 실제론 텅텅 비어 괴를리츠는 ‘괴를리우드’로도 불린다. 그만큼 많은 영화들이 촬영됐다는 과장 섞인 표현이다. 압권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이다. 2014년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등 여러 상을 휩쓴 작품이다. 1930년대 유럽을 완벽하게 재현한 미장센으로 이름값이 높다. 아마 좋아하는 배우 한둘쯤은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명배우들이 출연했다. 인디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흥행에도 성공해 ‘아트 버스터’(아트영화+블록버스터)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영화는 호텔 여사장 살인사건을 통해 여러 인간 군상들을 유쾌하게 그려낸 코미디 드라마다. 1930년대 파시즘의 고통과 공산주의의 몰락, 당시 유럽의 낭만과 예술 등을 함께 재현하고 있다. 제작진은 이런 시대상황을 담을 만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괴를리츠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백화점을 발견했다. 이어 폐쇄된 백화점 안에 시대를 반영한 세트를 짓고, 기상천외한 사건이 펼쳐질 주 무대를 탄생시켰다. 물론 영화 포스터 사진 속 호텔의 이미지는 합성이다. 하지만 건물 자체는 괴를리츠 시내에 실재한다. 백화점은 예나 지금이나 쓰임새가 없다. 시내 한복판에 당당한 자태로 서 있으면서도 여태 주인을 찾지 못한 게다. 백화점에선 간혹 패션쇼 등의 일회성 이벤트가 간헐적으로 열릴 뿐이다. 현관문도 자물쇠로 잠겨 있다. 그러니 여행자가 볼 수 있는 것도 외관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내부 모습이 전부다. 그래도 수많은 배우들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안겨 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주변으로 역사적 건축물과 옛 동독 시절 복고풍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투름이 인상적이다. 꼭 고깔모자를 쓴 원형의 기둥을 보는 듯하다. 투름은 영어로는 ‘타워’다. 츠빙거와 함께 도시 방어 목적으로 세운 전망대다. 니콜라이 츠빙거 앞에도 한 기가 서 있다. 건물의 지붕도 눈여겨볼 만하다. 옛 건축물 지붕엔 으레 사람의 눈을 닮은 창이 나 있다. 멀리서 보면 꼭 괴물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글 사진 괴를리츠(독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여러 목적지를 돌아보려면 차를 렌트하는 게 가장 유효하다. 드레스덴 시내에 다국적 렌터카 업체가 있다. 소형 차량의 경우 하루 7만~8만원 선이다. 주행 거리에 제한을 두는 경우도 있으니 꼼꼼하게 살피자. →치타우의 작은 삼각주는 치타우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다. 내비게이션에 ‘small triangle’을 입력하면 된다. 괴를리츠의 보행자 다리는 알슈타트 다리(Altstadtbrcke)를 찍고 찾아가면 된다. →폴란드나 체코 국경을 넘을 생각이라면 약간이라도 환전을 해 가는 게 좋다. 주차비나 식음료비 등 소소하게 쓸 곳이 생긴다. 예컨대 화장실이 그렇다. 폴란드 국경 지역의 경우 개방형인 우리와 달리 화장실을 찾기조차 힘들다. 애써 찾았어도 유료라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물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무료로 이용하게 해 주긴 한다. 어쨌든 환전해 가는 게 낫다는 얘기다. →편의점이 우리처럼 흔하지 않다. 게다가 오후 8시쯤이면 문을 닫는다. 필요한 물품은 미리 사 둬야 한다. 식당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은 늦게까지 문을 여는 경우도 있다.
  • [월드 Zoom in] 명품가치 높이는 ‘메이드 인 프랑스’…‘수작업 기술’로 경제 살리는 마크롱

    [월드 Zoom in] 명품가치 높이는 ‘메이드 인 프랑스’…‘수작업 기술’로 경제 살리는 마크롱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직원인 아델린 베셀(33)은 10년 전만 해도 동부의 대표적인 ‘러스트 벨트’ 지역 프랑슈콩테쥬의 한 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팔아 생계를 이었다. 경기 침체가 20년간 지속되자 지역의 자동차 회사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수작업 기술’ 일자리 새 탈출구로 생업을 접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베셀에게도 최근 기회가 찾아왔다. 에르메스가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작업 기술자’를 고용하기 위해 마련한 워크숍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한 그는 바로 7400유로(약 950만원)짜리 켈리백을 만드는 ‘수작업 기술자’ 직군에 채용됐다. 전 세계에 수출되는 켈리백은 금속 자물쇠를 가방에 고정하는 마무리 작업을 담당하는 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노동 개혁과 적극적인 창업 지원 등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수작업 기술’이 프랑스 일자리의 새로운 탈출구로 떠오르고 있다고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에르메스 작년 매출·영업익 사상 최대 수작업 기술자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은 프랑스 명품업체들이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이들 제품은 대부분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명품 특성상 ‘메이드 인 프랑스’라는 생산지 태그는 브랜드 가치를 훨씬 높여 주는 데다 해외 소비자들도 선호하기 때문에 에르메스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베셀과 같은 ‘가죽 장인’을 매년 250명씩 탄생시킨다. 경쟁업체인 루이비통그룹도 내년 말까지 수작업 기술자 양성을 위한 두 개의 교육 프로그램을 열 예정이다. 이는 매출 증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에르메스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프랑스 가죽 산업 수출도 2017년에 7% 성장했으며 2009년 대비 두 배 늘었다. ●마크롱, 기술 교육 전폭적 지원 마크롱 대통령도 자국의 패션 산업이 경기 활성화를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파리 패션위크 기간 엘리제궁에 120명의 패션업계 관계자들을 초청해 “내 소망은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이 프랑스로 오는 것”이라며 “프랑스를 선택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마크롱 정부는 높은 실업률의 가장 큰 원인으로 기술 격차를 꼽고, 재취업을 위한 기술 교육 프로그램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유럽 경제학자인 기욤 므뉴에는 “교육 투자에 있어서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이 치열하고 이윤이 높지 않은 다른 산업군에 비해 프랑스 명품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사설] 美 철강 고율 관세 피했지만 쿼터 회복이 과제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면제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미국 백악관은 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의 수정을 승인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에 대한 철강 수출 규모를 2015∼2017년 평균 수출량의 70%로 줄이는 조건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25%의 고율 관세 부과 조치를 받지 않게 됐다. 한국이 관세 잠정 유예 7개국 중 유일하게 고율 관세 면제 지위를 확정지은 것은 일단 급한 불을 껐다는 의미를 지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물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미국 정부는 행정명령의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22일 한국을 비롯한 7개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4월 말까지 잠정 유예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백악관은 이번에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철강 고율 관세 유예기간을 당초 예정된 5월 1일에서 한 달 더 연장했다. 이 국가들은 6월 1일 이전까지 미국과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고율 관세가 일단 부과되면 언제 바뀔지 모르는 현실에서 한국이 조속히 철강분쟁을 매듭지은 것은 한·미 동맹이 그만큼 굳건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우리가 이번 조치를 평가하면서도 걱정스럽게 여기는 대목은 한국이 철강 수출에 대한 쿼터(수입할당량) 제한을 대가로 관세 면제를 얻어 냈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에 한국산 철강에 대해 ‘영구 면제’란 표현을 썼다. 그러나 국제 통상관계에서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정부와 철강업계가 철강 관세면제 확정을 두고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며 마냥 반길 수만 없는 이유다. 실제로 미국이 쿼터량 제한과 무관세를 맞바꾼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1980년대 미국은 일본에 수출량을 줄이도록 하는 대신 반덤핑 관세를 면제해 준 일이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지난 3월 23일부터 25% 관세를 물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 면제는 영구적이지 않고, 중도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수출 물량을 줄여 놓고서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때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미국이 나중에 다른 소리 못 하도록 이참에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야 한다. 그 시발점은 70%로 줄어든 물량을 조속히 100%로 원상회복하는 일이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한·미 공조가 공고한 상황이다. 정부는 한·미 공조를 지렛대 삼아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 [서울포토] ‘드루킹’ 느릅나무 출판사, 굳게 닫힌 문

    [서울포토] ‘드루킹’ 느릅나무 출판사, 굳게 닫힌 문

    24일 경기도 파주시 느릅나무 출판사 출입구가 자물쇠로 굳게 닫혀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점자블록 따라가 보니… 출입구는 막혀 있었다

    점자블록 따라가 보니… 출입구는 막혀 있었다

    서울시청 서문·남부지법 후문 일부 폐쇄 서울시 “개방된 다른 곳으로 가면 돼” 커피숍 등 편의시설은 계단·턱 많아 점자블록 파손 등 민원도 월평균 46건“점자블록을 따라가 보니 출입구가 폐쇄돼 있네요. 공공기관마저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성에 무관심한 것이죠.” 장애인의 날인 20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문 출입구. 점자블록으로 이어진 출입구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많은 조모(30)씨는 “시각장애인들은 공공기관 출입에서부터 닫힌 벽을 만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점자블록으로 연결된 문이 닫혀 있다”는 시각장애인들의 민원이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지원센터 상담실로 접수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4개의 출입구 중에서 서문을 제외한 3개 문을 개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면서 “서문은 짐을 들일 때만 사용하는 문이라 앞으로도 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홍서준 편의시설지원센터 연구원은 “출입구를 개방할 생각이 아니라면 점자블록이라도 없애야 한다”면서 “둘 중 하나는 해야 폐쇄된 문을 만지며 허탈해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줄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후문 출입구도 마찬가지다. 법원 후문으로 들어와 노란색 점자블록을 따라가면 법원 출입문이 2개 나오는데 점자블록 앞에 있는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고, 왼쪽에 있는 문만 열려 있다. 김훈 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연구원은 “열려 있을 것으로 생각한 문이 닫혀 있으면 옆으로 움직여서 문을 찾아야 한다”면서 “시각장애인은 열려 있는 문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알 수 없어서 탐색하다가 주변 보행자들과 충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점자블록에 대한 민원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신문고와 110 콜센터 등을 통해 접수한 점자블록 관련 민원이 지난해 월평균 39건에서 올해 월평균 46건으로 증가했다. 권익위가 2015년 4월부터 지난 3월까지의 점자블록 관련 민원 1672건을 분석한 결과 점자블록 파손·훼손과 관련한 신고가 1020건(61.0%)으로 가장 많았다. 불법 주차나 옥외 광고물 등 점자블록을 가리는 데 따른 신고 185건(11.1%), 잘못 설치된 점자블록 재설치 요구 146건(8.7%), 점자블록 미설치 지역에 대한 설치 요구 130건(7.8%) 순이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편의시설 접근에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 중구와 종로구 일대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 29개 매장 중에 계단이 2개 이상이거나 턱이 있어 접근이 어려운 곳이 13개(45%)라고 밝혔다. 조현수 전장연 정책실장은 “해당 기업 말고도 대부분의 시설들이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면서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민간사업자들이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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