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자라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여진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신병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5만원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2,963
  • “매달 나가는 월세에 출산계획은 또 미뤄졌어요”[이슈픽]

    “매달 나가는 월세에 출산계획은 또 미뤄졌어요”[이슈픽]

    ‘전세대란’ 이어 ‘월세대란’도 닥쳤다월세의 비애…결혼 가능성 3분의1로 ‘뚝’올해 7월 출생아, 전년동기대비 8.5% 감소복지부 “출산율…코로나 이후 반등할 것”근본적인 저출산 정책 마련 필요“신혼집으로 어렵게 마련한 전세였는데…지금은 월세로 옮겨 출산계획은 뒤로 미뤘어요. 수입은 똑같은데 월 고정 지출이 크게 늘었거든요. 내 집 마련은커녕 이제 월급 받아서 월세로 다 나가게 생겼습니다”(경기도 거주 이모씨) “요즘 부동산 가보셨나요? 전세는 씨가 말랐고, 월세도 너무 올랐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결혼도 못 할 것 같습니다”(서울 거주 박모씨) 1일 주요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전·월세 대란으로 전셋값에 이어 월세마저 급등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불만과 불안감을 토로하는 세입자 글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도미노처럼 출산율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78% 급등했다. KB가 해당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4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0.12%) 대비론 상승률이 6배 이상 치솟았다. 수도권 월세 상승률도 지난달 0.6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품귀가 심화하고 전셋값이 급등하자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로 몰리면서 월세마저 오르는 상황이다. “월급으로 가족 아닌 집주인 먹여 살리겠어요”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월세 살면 결혼·출산도 ‘뚝’ 월세로 거주할 경우 자가 거주 대비 결혼 가능성이 65%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자녀 출산에도 영향을 미쳐 무자녀 가구가 첫째 아이를 낳을 확률도 56%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주거유형이 결혼과 출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주거요인과 결혼·출산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자가 거주보다 전세와 월세 거주 시 결혼 가능성이 유의적으로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자가 거주와 비교할 때 전세로 사는 사람의 결혼 확률은 23.4% 감소했고, 월세 거주는 65.1%나 줄었다. 월세가 전세보다 결혼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다. 또 전세 거주 시 첫째 자녀 출산 가능성은 자가 거주보다 28.9% 감소했고, 월세 거주는 자가 거주와 비교해 첫째 자녀 출산 가능성이 55.7%나 줄었다. 보고서는 주거유형에 따라 결혼과 출산율이 달라지는 만큼 저출산 문제 해결과 인구감소 완화 측면에서 부동산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택난으로 결혼을 거의 포기했다” 국민청원 등장 지난 26일에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으로 결혼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란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청원인은 “운 좋게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부족함 없이 이 사회 중산층으로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대학에 들어가 취업까지 성공했다. 그리고 저처럼 중산층으로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배필을 만나 올 초부터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이 나라에서는 세금 착실히 내고, 매일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 서울에 전세집 하나 구하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저는 주택난으로 결혼을 거의 포기하기까지 이르렀다”며 “의식주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가 불안해지며 청년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결혼 급격한 감소…합계출산율 2년 연속 0명대 우리나라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지난해 역대 최저인 0.92명까지 추락했다. 합계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국가는 2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틀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이는 1970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역대 최저치다. 2018년 0.98명으로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명 아래로 떨어진 뒤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같이 출생아 수가 급격히 줄어든 배경에는 결혼의 급격한 감소가 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23만9210건으로 전년보다 1만8412건 줄었다. 혼인건수는 2011년(32만9천87건) 이후 8년째 감소해 역대 최소로 줄어들었다.복지부 “출산율…코로나 이후 깜짝 반등할 것”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코로나 이후 출산율 깜짝 반등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전문가 분석을 통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종식 이후 출산율이 다시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득영 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지난 9월 온라인 백브리핑을 통해 “현재 출산율 전망치를 보면 일단 감소한 후에 반등을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의 예측이 나왔다”면서 “반등 정도는 코로나19 발생 기간, 경제 상황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7월 출생아는 2만306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55명(8.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1년 이후 7월 중 최소치다.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84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초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면서 출산율에도 영향이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이에 코로나19 종식 시 일시적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단, 코로나19 유행 기간이 장기화 될수록 출산율 반등 회복도 먼 얘기다. 또 최근 부동산 규제 정책과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서울 지역에서 전세난이 심해지고, 월세 매물 비중이 전세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가운데 점점 더 출산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갑작스러운 월세로의 전환은 무주택자의 주거 부담을 늘리고, 향후 생산인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고 “주거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단독 인터뷰] 이문열 “기억 흐려져 단어 찾는 데 5분…바로 쓸 말 찾는 건 큰 축복”

    [단독 인터뷰] 이문열 “기억 흐려져 단어 찾는 데 5분…바로 쓸 말 찾는 건 큰 축복”

    이문열(李文烈), 이름(글월 문, 매울 열)부터 문학적으로 압도한다. 문필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대학 시절, 그의 책들을 읽으며 사유의 폭을 키웠다. 위로를 받았고, 글이 주는 기쁨에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젊은 날의 초상’은 젊은 날의 방황을 어루만졌고, ‘사람의 아들’은 인문학의 깊이를 더했다. ‘시인’은 최고의 문장과 완벽한 구성으로 독서의 참맛을 알게 했다. ‘이문열’은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윤색됐다. 대학 졸업 후 20여년이 흐른 지난 15일 경기 이천시 부악문원을 찾았다. 고희를 훌쩍 넘긴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교정을 많이 해요. 내 평생에 다시 교정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마지막 교정이라 생각하고 신경 써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춰 봐도 쓴 글을 다시 고치는 게 쉽진 않던데요. “최근 ‘사람의 아들’ 서문을 다시 썼는데, 쓰는 데 20일 걸렸어요. ‘초한지’ 재판 서문은 원고지 10매 분량의 짧은 글인데도 한 일주일 시달린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예순여덟에 신장암 수술을 하고 3~4년 앓고 헤맸고, 요즘 치매 경고도 받고….” -충격적인데요. 작가님과 치매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기억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특히 명사가 심각해요. 별것도 아닌 명사들이 떠오르질 않아요. 그게 막히면 글도 못쓰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참고서든 기계든 용어에서 개념으로 가는 건 많은데, 개념에서 용어로 가는 건 없어요. 인터넷에 우울을 치면 우울의 뜻이 바로 나옵니다. 그런데 해는 지려하고 날씨도 그렇고 서글프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 우울을 알려주는 기계가 없어요. 그 단어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죠. 개념화하고 부풀려가는 사고 과정도 전만 같지 않아요. 예전엔 자연적으로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기억하고 있던 인용들도 마음대로 인용하지 못하고. 집사람은 사람들에게 치매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해요. 들키면 사람들한테 치매 취급당한다고. 들키나 안 들키나 사실이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단어가 막힐 땐 어떻게 하세요. “그 말을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요. 주로 딸에게 전화하는데, 그 말을 알게 되기까지 빨라야 5분 걸려요. 글을 쓸 때면 보통 1시간에 그런 일이 4~5번 반복되는데, 30분 정도가 그냥 날아갑니다. 그때그때 즉각 떠오르는 건 정말 큰 축복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시는군요. “읽고 쓰는 게 업이나 보니…. 몇 살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세상사 비춰보니 한 10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80년대엔 매달 평균 원고지 300매 정도를 발표했습니다. 1년에 3000매 정도 되죠. 두툼한 소설 두 권 분량인데, 그렇게 지금까지 60권의 책을 냈습니다. 근데 최근 6년 완고 목표로 연재물을 시작했을 때 한 달에 150매로 계약했습니다. 과거 300매에서 절반으로 확 줄였는데도 1년 반 만에 접었습니다. 중도하차 때까지 매달 150매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최대로 쓴 게 147매였고, 72매를 겨우 쓴 적도 있죠. 능력이 예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이젠 원고 집필 시간도 배로 계산해야 하는데, 그것도 지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내년이 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이런 변화가 사람을 자꾸 억누르니까 아주 울적합니다.” 치매 얘기로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진 듯했다. 그의 작품으로 화제를 돌렸다. 대학 때 ‘시인’을 읽고, 사람이 쓸 수 없는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시인’을 좋다고 한 독자는 정말 드물게 만났다”며 좋아했다. “‘시인’은 자부심을 갖고 쓴 글인데, 생각보단 국내에서 호응을 받지 못했어요. 판매도 보잘 것 없고, 평론도 정식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근데, 외국 번역판은 ‘시인’이 굉장히 많아요. 스웨덴,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 17개국에서 번역돼 나왔습니다.” -다른 안타까운 작품들도 있나요. “내가 다시는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냈던 작품들 중 빛을 못 본 게 ‘시인’과 ‘아가’, ‘호모 엑세쿠탄스’예요. ‘아가’도 상당히 자부심 갖고 냈는데, 평론조차 하나 없습니다. ‘호모 엑세쿠탄스’도 어떤 작품보다 중요한 작품이 될 수 있고, 그런 걸 상상하고 구상해서 쓰는 사람을 못 봤는데…. 근간 인용문 중 원고지 300매 분량을 덜어내고 새로 내려 합니다.” -작가님과 같은 글을 쓰려면 어느 정도 각오로 노력해야 할까요. “어떤 것들은 노력해서 되는 게 있는 것 같고, 어떤 것들은 학습이나 단련과 무관하게 종합적인 계기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내 감흥과 내 기억과 내 정서가 맞아떨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글이 쭉 이어져 나온다고 할까요.” -예를 좀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시인’을 쓸 때 시경이나 한시, 중국시론 같은 걸 엮어 놨는데, 그건 내가 공부한 게 아닙니다. 예전 어디선가 읽었는데, 그게 박혀 있다가 글을 쓰는 순간 튀어나와 줄줄이 연결됐습니다. 죽은 김현 선생이 아주 좋아한 ‘황제를 위하여’나 ‘금시조’에 담긴 시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그 시들을 외웠는지 모르겠는데, 필요할 때마다 인용해서 쓸 수 있게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글의 인연이나 기억의 인연인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것들은 지나쳐 들었는데도 굉장히 강하게 박혀 있다가 필요할 때 탁탁 튀어나왔습니다. 반면, ‘사람의 아들’은 노력의 산물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최초 단편에서 자라나는 책입니다. 시간을 갖고 되풀이해서 만지고, 보완도 여러 번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 가서 참고가 될 만한 책도 사오고 했습니다.” -작가님께선 어떠한 삶이 노년의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글쎄, 그걸 모르겠어요. 다 잘 아는데, 그걸 모르겠어요. 노년의 행복한 삶을 물으니 묵직하게 다가오는데, 나도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으니…. 다만 학문적인 감상 중에 ‘비추’(悲秋)라는 게 있어요. 요즘은 그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아요. 이 가을하고, 내 인생의 가을하고 연관되면서. 근래 3, 4년은 생의 마감을 생각했어요. 인생 칠십, 고래희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매양 죽음은 나와 관계없다, 나는 안 죽을 사람처럼 말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부터 어떤 인연으로 죽든지 간에 불행한 사고로 죽진 않을 거고, 억울한 마음도 없을 거라고 나를 다스리며 죽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작가 외 다른 삶을 생각해보신 적은 없나요. “작가는 가장 행복한 삶은 분명히 아닙니다. 쓸쓸한 삶, 외로운 삶과 관계있고, 이건 좋았다, 이만하면 됐다, 이런 삶도 아니고. 무엇보다 삶이 전부 다 나를 향해 있고, 남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나한테 완전한 자유가 있었다면 바꿨을 가능성도 있었을 법한데…. 40대 중반까지 가끔씩 세상을 바꾸는 걸 진지하게 상상하곤 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새로 시작해 볼까,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다 망상이 돼 버렸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중천의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정원으로 나왔다. 이 작가는 인근 산을 가리키며 “매일 저 산을 오르며 만보를 걷는다”고 했다. 먼 산 주위로 노을이 짙어져 갔다. 그는 비추의 감상에 젖은 듯했다. “내게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말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분한 기대 같아요. 말의 효과가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 시대는 말이 이상하게 망해 버렸습니다. 평생 말을 다루고 말의 효용과 활용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이런 시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말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논리도 뒤집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움이 못돼 미안할 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외교부, 유승준 “입국금지는 인권침해”에 “개인적 입장”

    외교부, 유승준 “입국금지는 인권침해”에 “개인적 입장”

    외교부는 27일 가수 유승준씨가이 자신에 대한 입국 금지는 “인권침해”라며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입국 허가를 공개 요청한 것과 관련해 “유씨의 개인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유씨 주장에 대한 외교부 입장에 대해 “해당 신청인이 개인적으로 표명한 입장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유씨에게 비자를 발급할 조건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비자 발급은 해당 영사가 제반 상황을 감안해서 발급하게 되는 재량사항”이라며 “비자 신청이 있을 경우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비자 발급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강 장관은 전날 국정감사에서 유승준이 최종 승소한 대법원판결 이후 재차 사안을 검토한 결과 비자 발급 불허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유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강 장관을 향한 장문의 글을 올리고 “부디 저의 무기한 입국 금지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주시고, 이제는 저의 입국을 허락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유씨는 “2002년 2월 한순간의 선택으로 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며 “제가 미국 시민권을 선택한 대가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병역기피자라는 낙인과 함께 무기한 입국금지 대상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군에 입대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팬들의 신의를 저버리고 현실적인 실리를 선택한 비겁한 행동이었다고 비판 받을 수 있지만, 적어도 저는 병역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18년 8개월 동안 병역기피 목적으로 외국 시민권을 취득한것으로 간주되어 입국금지를 당한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영구히 입국금지라는게 맞는 처사라고 생각하나”며 “저는 이것이 엄연한 인권침해이며 형평성에 어긋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유씨의 공개 질의에 답변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인도 소녀 카브야 “오빠에게 골수 이식시키려고 전 태어났어요”

    인도 소녀 카브야 “오빠에게 골수 이식시키려고 전 태어났어요”

    인도의 귀여운 소녀 카브야 솔란키는 생후 18개월이던 지난 3월 몸 속의 골수를 일곱 살 오빠에게 이식해줘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형제를 살리기 위해 제몸을 바친 미담으로도 여겨지지만 허술한 의료 규제를 틈타 어린 소녀에게 강요한 것이라 윤리적으로 온당하지 않은 일이란 지적도 만만찮다. 오빠 압히짓은 지중해성 빈혈(Thalassemia)이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유전적 결함으로 적혈구의 산소를 조직으로 운반하는 혈액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이 부족해 피를 퍼나르지 못해 자주 수혈을 받아야 했다. 20~22일에 한 번씩 350~400ml 수혈을 받았다. 여섯 살이 됐을 때 이미 수혈 횟수가 80번이나 됐다.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아흐메다바드에 사는 아빠 사흐데브신은 영국 BBC 델리 주재 기자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첫 딸에 이어 두 번째 얻은 압히짓이 “10개월 됐을 때 지중해성 빈혈이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막막했다. 몸이 약했고, 면역이 안 돼 계속 앓았다. 치료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내 슬픔은 배가 됐다”고 말했다. 아들을 돕기 위해 문헌을 뒤져 치료 방법이 있는지 찾고, 의사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그렇게 해서 골수를 이식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첫 딸과 가족 중에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2017년 ‘치료용 맞춤 아기(saviour siblings)’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유전학적 선별검사를 통해 유전적으로 문제 없는 것이 확인된 배아만 시험관 시술을 통해 낳아 기른 뒤 수술이 가능한 나이가 됐을 때 장기나 세포, 골수 등을 이식하는 것이다. 궁금해진 그는 인도에서 최고의 임신 전문의로 꼽히는 마니시 뱅커 박사에게 지중해성 빈혈이 없는 태아를 낳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한 병원은 그에게 미국에서 딱 맞는 골수 조직을 찾아주겠다며 유혹했는데 500만 ~1000만 루피가 든다고 하는 데다 성공 확률이 20~30%밖에 안 된다고 해 포기했다. 이렇게 6개월 이상 배아를 형성해 오빠 것과 일치하는지 살펴본 뒤 엄마의 자궁에 이식했다. 그 뒤 카브야가 세상에 태어나자 다시 16~18개월을 기다려 몸무게가 10~12㎏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지난 3월에 골수 이식을 마치고도 조직들이 잘 받아들이는지 지켜보느라 7개월을 다시 기다렸다.이렇게 긴 시간을 기다려 압히짓이 더 이상 수혈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아빠는 말했다. 최근 헤모글로빈 수치를 확인했더니 11을 넘겼다며 이렇게 되면 완치된 것이라고 의료진이 얘기했다는 것이다. 수술 직후 카브야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져 며칠 동안 상당히 통증이 심했지만 이제는 거의 나았다고도 했다. 아빠는 카브야가 태어난 것이 그들 모두의 인생을 구해줬다고 기꺼워했다. “우리 모두 그 아이를 다른 두 아이보다 사랑한답니다. 그녀는 단순히 우리 아기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구세주예요. 우리는 영원히 그 아이에게 고마워할 겁니다.” 카브야가 세계 최초 사례는 아니다. 미국에서 20년 전에 태어난 애덤 내시는 ‘판코니 빈혈(Fanconi anaemia)’이란 희귀 유전질환을 갖고 태어난 여섯 살 누나에게 유전자를 기증하기 위해 태어났다. 당시에도 부모가 원해서 낳은 아이인지, 아니면 누나를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인지 논쟁이 벌어졌다. 2010년 영국에서도 일종의 ‘디자인된 아기’가 태어나 또다시 논란이 이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유전자 편집의 윤리 전문가인 존 에반스 교수는 독일 철학자 에마뉘엘 칸트의 명언 ‘오로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예로 들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에반스 교수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면서 “우리는 부모의 동기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아픈 아이를 위해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일치되게 창조하겠다는 것이 아이를 갖는 단 하나의 이유였나? 그렇다면 아이들의 동의 없이 아이에게 그런 위험을 감수하도록 밀어붙인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앞으로 이런 방식을 널리 활용할 수 있을까. 에반스 교수는 “스펙트럼의 한 끝에는 아기 탯줄에서 세포를 추출하는 방법, 다른 끝에는 장기를 적출하는 방법이 있다. 골수를 얻는 것은 그 중간쯤일 것이다. 위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증자에게 영구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장기를 적출하는 것 만큼 위험하진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하는 윤리적 문제에 맞닥뜨린다고 했다.  그는 “아주 미끄러운 경사로여서 장벽을 세우기가 아주 어렵다. 골수만 채취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를 변형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기자 겸 작가인 나미타 반다레는 “영국이라면 유전공학에 대해 까다로운 승인 절차가 있지만 인도는 허술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솔란키 가족 일에 판단하고 싶지 않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부모로서 나도 같은 일을 했을지 모른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규제가 필요하다. 최소한 공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 아이는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고 잉태됐다. 레이더에 관측되지도 않은 채 이런 중요한 일이 진전된 것이냐?”고 되물었다. 구자라트주 정부 관리인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판단하면 적절치 않을 일”이라면서 “우리는 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행동 뒤에 숨겨진 의도를 들여다봐야 한다. 날 판단하기 전에 당신들을 내 상황에 들여놓아봐라”고 주문했다. 그는 “모든 부모는 건강한 아기를 원하고 아이들의 건강을 좋게 하려는 데 비윤리적이란 것은 없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가업을 잇기 위해, 가문의 명예를 잇기 위해, 하나뿐인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는 등 온갖 이유로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왜 내 이유를 탐문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뱅커 박사 역시 “기술을 이용해 질병이 없는 아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왜 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느냐?”고 되물은 뒤 “우리가 인도에서 살펴야 할 근본적인 물음들은 규제와 등록이다. 잠재적으로 누군가 그릇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70년대 이후 다운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있는지 초음파 검사를 통해 알아보고 있지 않느냐며 유전자 제거는 다음 세대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다음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압히짓의 기대 수명이 25~30세였는데 지금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며 동기가 정당함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입국 금지는 엄연한 인권침해”...유승준, 외교부 장관에 호소

    “입국 금지는 엄연한 인권침해”...유승준, 외교부 장관에 호소

    가수 유승준(44·미국명 스티브 승준 유)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입국 허락을 요구했다. 27일 유승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의 무기한 입국금지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이제는 입국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는 “군에 입대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병역 의무를 파기함으로 대중들에게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겼고 신의를 저버리고 현실적인 실리를 선택한 비겁한 행동이었다고 비판 받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병역법을 어기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과 관심으로 생존하는 직업이고 사랑과 관심이 없어지면 연예인의 생명은 끝이나 다름없다. 나는 한국 연예계를 떠난지 19년이 다 되어간다.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인기와 명예, 좋은 이미지는 이제 어디가도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잊혀져도 한참 잊혀진, 아이 넷을 둔 중년 아저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내가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관계 등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냐, 대한민국의 안보, 질서와 외교관계가 정말 저 같은 일개 연예인의 영향력으로 해침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외국인에게도 인권이 있고, 범죄자들도 지은 죄만큼만 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엄연한 인권침해이며 형평성에 어긋난 판단”이라고 덧붙였다.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6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승준에게 비자 발급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티브 유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강 장관은 “정부가 관련 규정(을 검토한 후) 결정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강 장관은 대법원이 지난 3월 유씨 손을 들어준 것과 관련해선서는 “(대법원 판결은) 절차적인 요건을 갖추라는 뜻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이 (판결한 취지는) 외교부가 제대로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씨를) 입국시키라는 게 아니라 절차적인 요건을 갖춰라, 재량권을 행사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판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유승준은 병역 기피를 이유로 2002년 한국 국적을 포기해 법무부로부터 입국을 제한당했다. 이후 유씨는 만 38세이던 2015년 9월 LA총영사에 재외동포 비자(F-4)로 입국하도록 해 달라고 신청했다. 당시 재외동포법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사람이라도 국익을 해칠 우려가 없는 한 만 38세가 되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LA 총영사는 법무부가 2002년 유씨의 입국을 금지했다는 점을 들어 비자 발급을 거부했고, 유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유씨 비자 발급 거부는 정당하다”라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7월 “LA 총영사는 법무부 지시가 아니라 법에 따라 유씨의 비자 발급 여부를 자체적으로 심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하다”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유씨는 파기환송심을 거쳐 올해 3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다만 대법원 판결 취지는 비자발급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으로, 비자를 발급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음은 유승준(스티브 유) 인스타그램 글 전문. 외교부 장관님, 가수 유승준입니다. 저를 아시는지요. 저는 아주 오래전 한국에서 활동했었던 흘러간 가수입니다. 1997년에 데뷔를해서 2002년 초까지 활동을 했었지요. 5년이라는 그리 길지도 ,또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정말 분에 넘치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 나이 20대 초반 이었고, 미국 영주권을 가진 재미교포 신분으로 활동했습니다. 조금 반항적이었던 청소년기를 이겨내고 이루었던 꿈이어서 그랬는지, 저는 당시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고 올바르게 살고자 했으며, 더 나아가 다음 세대들에게 모범이 되려고 늘 노력했습니다. 할수있는 능력 안에서 기부하는 일에도 앞장 섰으며 금연 홍보대사등의 활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 힘썼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땀흘리고 노력하는 모습에 남녀노소 할것 없이 정말 많은 사랑과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2002년 2월 한순간의 선택으로 그 모든것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제가 미국 시민권을 선택한 대가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병역기피자라는 낙인과 함께 무기한 입국금지 대상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에 입대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데뷔 때부터 이미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간 영주권자였고, 그 무렵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으면 영주권마저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팬들에게 이 사정을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고자 한국에 입국하고자 했지만, 인천공항에서 입국 자체가 거부되고 저에게는 아무런 해명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병역 의무를 파기함으로 대중들에게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팬들의 신의를 저버리고 현실적인 실리를 선택한 비겁한 행동 이었다고 비판 받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병역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내린 결정은 합법적 이었으며 위법이 아니면 법적 재제를 가할수 없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도 이제 19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제는 저를 기억하는 팬들도 저처럼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나이가 될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쁘신 분에게 제 얘기를 이렇게 드리는게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이번에 국정감사에서 장관님께서 저에게 비자 발급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연예인입니다.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과 관심으로 생존하는 직업이고요, 사랑과 관심이 없어지면 연예인의 생명은 끝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한국 연예계를 떠난지 19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냥 떠난 정도가 아니라 지난 19년간 온갖 말도 안되는 거짓 기사들과 오보들로 오명을 받아 왔습니다. 그 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인기와 명예, 좋은 이미지는 이제 어디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 군에 입대하거나 복무 중인 젊은 청년들 대다수가 저를 모르는 세대들입니다. 저는 이미 잊혀져도 한참 잊혀진, 아이 넷을 둔 중년 아저씨에 불과합니다. 장관님, 그런 제가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관계 등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대한민국의 안보, 질서와 외교관계가 정말 저 같은 일개 연예인의 영향력으로 해침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영향력도, 그런 능력도 없는 일계 연예인일 뿐 입니다. 저는 정치범도 테러리스트도 범죄자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악영향을 끼칠 인물은 더더욱 아닙니다. 연예인도 사람인지라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합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크고 작은 잘못을 하고, 법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처벌을 받고, 위법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정도만큼 인기를 잃고 자연스레 퇴출되기도 합니다. 제가 과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선택은 이민자들로서는 지극히 흔하고 당연한 선택이었고,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팬들을 실망시킨 잘못에 대한 평가는 팬들이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관님께서는 올해 초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만나, 한국 정부가 2020~2022년 인권 이사국으로서 국제적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신 바 있습니다. 외국인에게도 인권이 있고, 범죄자들도 지은 죄만큼만 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8년 8개월 동안 병역기피 목적으로 외국 시민권을 취득한것으로 간주되어 입국금지를 당한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영구히 입국금지라는게 맞는 처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것이 엄연한 인권침해이며 형평성에 어긋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관님께서는 2019년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이 단지 절차를 지켜 재량권을 행사하라는 정도의 의미라고 말씀하셨지만, 대법원 판결문에는 재량권 행사시 지켜야 할 지침이 다 나와 있습니다. 장관님께서 부디 저의 무기한 입국금지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고민해 주시고, 이제는 저의 입국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똥밭에서 굴러 봐야 사람이다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똥밭에서 굴러 봐야 사람이다

    대학교 2학년 때 교직과목 신청을 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졸업 후 생계 문제도 고민해야 했기에 교직 이수를 해서 교사가 되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범대 교학과에서 부르더니 검정고시 출신이 교직을 신청하려면 먼저 이런저런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나오지 못한 내가 어떻게 교사가 돼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을 가르치겠느냐는 얘기였다. 번거롭기는 해도 서류를 준비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난 그 자리에서 교직을 포기하고 수강 취소를 했다.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교육이란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일이 아닌가. 나 같은 놈이 함부로 덤빌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교육”이란 과연 뭘까? 4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난 후 조금씩 회의가 드는 요즘이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부모가 이끄는 대로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차곡차곡 학력을 쌓아야 정상적인 교육일까? 능력이나 인격도 좋은 성적, 좋은 대학에 정비례해 생기는 걸까? 나라가 학교가 부모가 정해준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비정상이 되는 사회, 그게 정상적인 교육이었던 걸까? 국정농단,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기어이 엘리트들의 민낯을 보고 만다. 일류대학, 일류학과가 키워 냈다는 인재들, 검사, 의사, 박사 등,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의 언행에는 판단 능력이나 합리성은커녕 최소한의 양심도 염치도 없는 듯 보인다. 악에 받친 혐오와 막말, 조금의 특권도 절대 내려놓지 않으려는 아집, 민중 따위는 개ㆍ돼지로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 온갖 편법과 탈법, 거짓으로 혹세무민하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기는커녕 뻔뻔스럽기만 하다. 입으로야 매일 국민을 거론한다지만 정말 우리들의 조소와 조롱이 들리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그마저도 개·돼지가 짖는다고 무시하는 걸까? 도대체 어떻게 자라고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저렇듯 후안무치에 안하무인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그 일면을 본 듯도 싶다. 어린 후배들이 민주화 시위하는 모습을 보며 대학원 선배들은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다 이해한다는 듯 훈수를 하고 지적질을 했다. 결국 타인을 위해 한 번도 아파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혼돈의 시대에도 시위현장에 들어가 보지 않고, 오로지 부모가 이끄는 대로 자기만의 영달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 몸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해 본 사람들…. 어쩌면 우리네 교육이란 그런 사람들만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높은 자리에 올라 온갖 특권을 누리는 것이 배움의 목표가 되고 홍익인간(弘益人間) 따위의 교육이념은 고리타분한 도덕론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교직 수업을 포기했을 때 아쉽기는 했어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억울은 오히려 요즘의 심정이다. 그런 교육을 하자고 내게서 기회조차 빼앗아버렸다는 말인가? 여전히 이런 교육이, 이런 대학이 정상이라고 확신하는지 되묻고 싶다. 학력(學歷)이 학력(學力)이 되지 못하고 지식이 지혜에 이르지 못하면 교육(敎育)은 교욕(校慾)에 불과하고 대학은 무지한 괴물들을 양산하고 만다. 나이 60이 넘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오로지 자기 영달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답게, 마치 특혜의 고치라도 뒤집어쓴 듯, 자기들 외에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엘리트의 옥상에 서서 내려다보면 천하가 다 내 것인 양 우스워 보이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실패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게 세상일이다. 우리 동네 텃밭 아저씨도 아는 얘기를 저들만 모르고 있다.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가 아니라 똥밭에서 굴러 봐야 비로소 사람이다.
  • 소상공인 새희망자금 주민센터서 신청 가능

    소상공인들은 앞으로 온라인뿐 아니라 전국 주민센터에서 새희망자금을 신청할 수 있다. 26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다음달 6일까지 새희망자금 지급 대상인 소상공인들은 읍면동 주민센터 등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전국 2839개 센터에서 현장 접수를 할 수 있다. 다만 첫 5일간은 5부제로 시행된다. 26일은 생년 끝자리가 1·6, 27일은 2·7, 28일은 3·8, 29일은 4·9, 30일은 5·0인 소상공인만 신청할 수 있다. 이후엔 5부제 구분 없이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다. 현장접수 때 소상공인들은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 사본 또는 사업자등록증명서, 통장사본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공동대표 사업체는 위임장을, 사회적기업 등은 설립인증서를 챙겨 와야 한다. 자세한 현장 접수처와 지참 서류는 새희망자금 전용 홈페이지(새희망자금.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3일 기준으로 212만 소상공인에게 새희망자금 2조 3029억원이 지급됐다. 아직까지 신청하지 않은 신속 지급 대상자는 26만명으로, 정부는 직접 전화를 걸어 지급 대상자라는 사실을 안내할 방침이다.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다음날 즉시 지급되지만 현장 접수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새희망자금 대상자에 해당되지만 행정정보로 확인이 어려워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한 소상공인들은 직접 매출증빙자료를 들고 센터에 방문해 확인절차를 거쳐 신청할 수 있다. 대상자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해 최종 지급까지 2주 이상 걸릴 수 있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한국인 어깨 펴게 한 분” “모든 분야 1등정신 심어”

    “한국인 어깨 펴게 한 분” “모든 분야 1등정신 심어”

    “세계의 삼성 키워내”총수들 감사 메시지IOC본부 조기 게양 베트남 현지 직원들도“영원히 기억” 애도“대한민국 최초, 최대의 글로벌 기업을 만든 분이다. 그런 분을 잃게 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최태원 SK그룹 회장) “우리나라 경제계 모든 분야에서 1등 정신을 아주 강하게 심어 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이틀째인 26일 재계 총수부터 스포츠계 인사, 삼성 임직원들까지 국내외에서 애도 메시지가 전해졌다. 추모 메시지는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워 낸 선구자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압축된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이날 서울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삼성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라며 “생각이 많이 깊은 분이었다. 그 배경으로 그동안 삼성이 성공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 회장 비서실 출신인 손 회장은 누나인 손복남 전 CJ 고문이 이 회장의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결혼해 삼성과 사돈 관계다.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친형님같이 모셨다. 가장 슬픈 날”이라고 했다. 지난해 부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하며 총수가 된 조원태 회장도 “위대한 분을 잃어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삼성전기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고 밝힌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세 경영자이나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바꾼 이 회장은 창업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삼성과 톱 파트너 계약을 통해 올림픽을 전 세계에 홍보했으며 스포츠와 문화의 유대를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올림픽의 성공을 이끌었다”며 스위스 로잔 IOC 본부의 올림픽기를 조기로 게양한다고 밝혔다. 삼성 사내 온라인망에 마련된 추모관에는 이날 오후 5시 현재 전 계열사를 합쳐 2만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한 직원은 “사회에 내디딘 첫발이 삼성이라는 것에 감사했고 그런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 가는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한국인의 어깨를 펴게 한 회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겠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위기의식을 항상 생각하겠다”는 글도 눈에 띄었다. 삼성의 최대 해외 생산 기지가 있는 베트남 현지 직원들도 “베트남 법인 설립과 발전을 이끌어 주신 회장님의 높은 뜻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추모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재명 “전기세 아끼자고 시한폭탄 방치…노후원전 폐쇄해야”

    이재명 “전기세 아끼자고 시한폭탄 방치…노후원전 폐쇄해야”

    “물질적 풍요 누리겠다고…생명·안전 뒷전 둘 수 없어”“탈원전 가야 할 길” 강조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6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노후원전은 폐쇄하고, 무리한 수명연장은 중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탈원전은 가야 할 길…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원전을 경제 논리로만 따져 가동하는 일은 전기세 아끼자고 시한폭탄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지만, 정부와 여권은 감사 결과와 관계없이 탈원전 기조를 유지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이 지사가 정부 입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 지사는 “2016년 경주, 2017년 포항의 진도 5이상 대규모 지진은 더이상 우리가 지진안전국이 아님을 보여줬고, 이로써 월성, 고리 등 인근 원전 지역의 안전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제기됐다”며 “지역 주민들 역시 지금껏 불안한 마음으로 원전 상황을 애태우며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겠다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뒷전에 둘 순 없다”며 “우선순위가 바뀌면 언젠가 우리도 후쿠시마 같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같은 글에서 일본 정부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 지사는 “자국 토양을 오염시키고 자국민 건강을 해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주변국 국민의 생명과 해양 생태계의 안전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며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비이성적인 방류계획을 철회하고, 특정비밀보호법으로 제한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여기 만져도 느낌와?” 신입 머리카락 만진 상사…결국 벌금형

    “여기 만져도 느낌와?” 신입 머리카락 만진 상사…결국 벌금형

    20대 여사원 머리카락 비비는 등 성추행1·2심은 무죄…대법원 “추행 행위 맞다”40대 남성, 결국 벌금 200만원 처해져 20대 여성 신입사원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느낌이 오냐”고 말하는 등 성추행한 40대 남성이 파기환송심에서 벌금형에 처해졌다. 앞서 1심과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26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1부(부장 성지호)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를 받는 A(40)씨에게 벌금 200만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A씨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의 한 회사 과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16년 10월부터 11월까지 신입사원 B씨에게 컴퓨터로 음란물을 보여주거나 성적 농담을 일삼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며 손으로 B씨의 머리카락을 비비거나 뒤쪽에서 손가락으로 B씨의 어깨를 두드리고 B씨가 돌아보면 혀로 입술을 핥거나 “앙, 앙” 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B씨를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또 “화장이 마음에 들어요, 왜 이렇게 촉촉해요”라고 말하거나 손가락으로 성행위를 나타내는 동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과 2심은 “A씨가 업무상 B씨의 상급자라 하더라도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B씨를 추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계속된 성희롱적 언동을 평소 수치스럽게 생각해오던 B씨에게 A씨가 머리카락을 만지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은 20대 미혼 여성인 B씨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도덕적 비난을 넘어 추행 행위라고 평가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이날 선고공판에 A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벌금 200만원을 구형했다. 결심공판에서 A씨 측 변호사는 “머리카락 탈색을 이야기하던 중 머리카락을 만졌고, B씨를 부르기 위해 어깨를 두드렸던 것”이라며 “손가락 모양을 한 건 B씨가 먼저 이런 행동을 해서 따라서 한 것이고 이는 모두 다른 날”이라고 항변했다. 이어 “이런 행동이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는지 아니면 성적수치심을 일으킨 것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남해군 특산물 시금치, ‘보물초’로 상표출원

    남해군 특산물 시금치, ‘보물초’로 상표출원

    경남 남해군은 남해군 지역 대표 특산물인 시금치 브랜드 이름을 ‘보물초’로 확정해 상표출원을 했다고 26일 밝혔다. 남해군 원예산업발전협의회는 최근 지역 농가 대표와 남해군농정단, 지역농협, 보물섬남해클러스터조합공동사업법인 등 관련 기관·단체 의견을 듣고 논의를 해 ‘보물섬 통합브랜드’와 ‘남해초’의 합성어인 ‘보물초’를 남해시금치 브랜드 명으로 최종 확정했다.남해군은 이에 따라 지난 18일 ‘보물초’를 특허청에 상표출원 했다고 밝혔다. 군은 남해지역 온화한 겨울 기온 속에서 해풍을 맞고 노지재배로 자라 독보적인 맛과 향을 자랑하는 남해시금치만의 장점을 ‘보물’이라는 남해군 통합브랜드와 짝지어 소비자들에게 적극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은 현재 쓰고 있는 ‘남해시금’라는 이름을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인근 남해안 지역에서 생산되는 시금치가 ‘남해시금치’ 명칭으로 출하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남해군 지역에서 생산되는 시금치를 남해안지역 시금치와 혼돈할 가능성이 높아 보물초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군은 ‘남해군=보물섬’이라는 인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있어 보물과 시금치를 합친 이름이 남해군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시금치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상표명으로 공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남해군 원예산업발전협의회는 ‘보물초’ 브랜드 확정에 따라 포장재 디자인을 하나로 단일화하는 사업도 추진해 통일된 ‘보물초’ 포장박스도 만들었다. 원예산업발전협의회는 그동안 군 각 지역농협마다 포장재가 달라 남해군에서 생산된 시금치가 유통사와 농산물 도매시장 등에서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군은 ‘보물초’ 명칭 확정에 따라 보물초 특성과 전년도 출하량, 가격 흐름 등을 담은 자료를 만들어 전국 유통사에 배포하는 등 본격 홍보에 나섰다. 군에 따르면 지난해 남해군 지역에서는 4451농가가 922㏊에 시금치를 재배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는 파종기 기상이 좋아 지난해 보다 시금치 파종면적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남해군은 최근 남면과 설천면, 창선면 등에서 ‘보물초’ 출하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장충남 남해군수는 “남해시금치 포장재가 보물초로 통일됨에 따라 다른 지역 시금치와 확실하게 차별화 되고 물류비용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송명화 서울시의원, ‘어린이 놀이환경 조성’ 조례 발의

    송명화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강동 제3선거구)은 지난 16일 어린이의 놀이환경 조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의 ‘서울특별시 도시공원의 어린이 놀이환경 조성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조례안은 어린이의 놀 권리, 쉴 권리를 인정하고 놀이문화의 주체인 어린이들에게 도시공원의 놀이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어린이의 건강한 성장과 자아실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송 의원은 올 초부터 조례안 발의에 앞서 다수의 아동전문기관들 및 전문가 집단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서울시 관계 부서들과 함께 조례제정을 검토해왔다. 놀이는 어린이의 신체적, 정서적 발달뿐만 아니라 사회관계의 역량을 키우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창의성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필수역량이라는 점에서 놀이의 가치와 의미는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 놀이환경 조성에 대한 논의는 미흡한 실정이며 놀 권리에 대한 인식수준 또한 저조한 현실이다. 이에 본 조례의 제정은 어린이의 놀이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나아가 어린이의 건강한 성장과 자아실현에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된다. 송 의원은 “그 동안 어린이의 놀이환경 조성에 대한 요구는 많았으나, 어린이의 놀이환경은 학교, 공동주택, 공원 등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고 관리주체와 관련기관이 상이하여 놀이환경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과 제도마련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이번 조례를 통해 우선 서울시 도시공원에서부터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놀이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며, 점차 학교와 공동주택에 대한 정책도 확대되어 어린이들이 개선된 놀이 환경에서 밝게 자라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상기 “조국 선처 부탁했다는 윤석열 어이가 없다”

    박상기 “조국 선처 부탁했다는 윤석열 어이가 없다”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은 26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선처를 부탁했다고 주장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감 발언에 대해 “참 어이가 없다”며 반박했다. 박상기 전 장관은 TBS ‘뉴스공장’에 출연해 “인사청문회를 앞둔 상황에서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해,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강제수사에 들어가 납득되지 않았고, 이를 알아보기 위해 만나자고 했다”라고 윤 총장과 만남에 대해 밝혔다. 박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법무부에 보고도 없이 강제수사를 한 윤 총장을 향해 “인사권 침해이고 정치행위”라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은 “보고를 하지 않은 합리적인 이유도 발견 못 했다. 최초로 강제 수사에 들어간 그 날로 돌아가 보면 결국은 조 전 장관을 사퇴시키기 위한 게 아니었는가 생각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아울러 박 전 장관은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선처 부탁할 일은 없다.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라고 그렇게 나와 있다. 선처라는 표현을 쓴 것이 저로서는 참 어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인지하만인지상’이라는 표현을 쓰며 “누구로부터도 통제받지 않고 모든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는 그런 그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라고 짚었다. 박 전 장관은 “검찰총장이 전국 14개의 검찰청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건을 구체적으로 지휘하는 것이 오히려 통제돼야 한다고 본다”며 “통제를 받지 않으면 누구의 통제를 받느냐”고 되물었다. 또 “검찰 출신이 법무부장관을 할 때는 공개적으로 지휘감독권 행사할 필요도 없었다”며 “비검찰 출신 장관이기 때문에 문제 삼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현직 검사 중에서 검찰총장 임명하는 것도 재고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이사오면 월급줍니다”…伊 시골 마을, 파격조건으로 청년 유혹

    “이사오면 월급줍니다”…伊 시골 마을, 파격조건으로 청년 유혹

    인구감소로 고민에 빠진 이탈리아의 한 마을이 청년 주민을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이주 조건을 내걸어 뜨거운 관심을 사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주(州)에 위치한 마을 산토스테파노디세사니오가 바로 그곳.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산토스테파노디세사니오는 지난 15일부터 이주희망자 접수를 받고 있다. 마을은 이주민 10명을 선정할 예정이지만 불과 열흘 만에 신청자는 1500명을 돌파했다. 당장 접수가 마감된다고 해도 경쟁률은 자그마치 150대1이다. 관계자는 "내달 15일까지 신청을 받을 예정이라 경쟁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한 건 조건이 워낙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산토스테파노디세사니오는 선정된 이주민에게 관광가이드 등 일자리를 제공하고 3년간 해마다 연봉 8000유로를 지급한다. 원화로 약 1070만원, 3년간 매달 꼬박꼬박 100만원 가까운 수입이 보장되는 셈이다.창업을 원한다면 사업자금도 지원한다. 약국이나 전통음식점 등을 내는 이주민에게 최고 2만 유로까지 창업자금을 대주기로 했다. 산토스테파노디세사니오에 기반이 없는 무연고자라도 주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을은 '상징적 금액'만 받고 이주민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관계자는 "금액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상징적'이라는 취지에 맞게 매우 낮은 임대료만 내면 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 조건이 파격적인 만큼 지원 자격엔 제한이 있다. 40세 이하만 지원이 가능하고, 선정되면 최소한 5년 산토스테파노디세사니오에 거주해야 한다. 마을 관계자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주택을 1~2유로에 판매하는 마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마을의 존립기반을 다지기 위해선 '살 만한 곳'을 만들어야 한다"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토스테파노디세사니오는 로마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고지대 마을이다. 여름 휴양지로도 널리 알려져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은 곳이지만 마을은 인구감소가 걱정이다. 마을주민은 현재 통틀어 115명, 이 가운데 절반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은퇴노인들이다. 현지 언론은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를 만끽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고 소개했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암투병에도 연락없던 엄마…사망하자 “보험금 나눠달라”

    암투병에도 연락없던 엄마…사망하자 “보험금 나눠달라”

    암에 걸린 젊은 딸이 숨졌단 소식에 28년 만에 나타나 보험금을 챙긴 생모가 논란이 되고 있다. 생모는 딸이 태어난 후 1년여를 제외하고 연락도 없이 지냈지만 현행법상 단독 상속자라는 이유로 딸의 모든 재산을 가져간 것도 모자라 유족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A(55)씨는 지난 4월 숨진 딸 B(29)씨의 새어머니와 이복동생을 상대로 딸의 체크카드와 계좌에서 사용된 5500여만원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서울동부지법에 냈다. B씨는 지난해 위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던 중 지난 2월 숨졌다. 딸의 사망 소식을 들은 A씨는 B씨를 간병해오던 새어머니와 이복동생에게 “사망보험금을 나눠달라”고 연락을 해왔고 사망보험금과 퇴직금, B씨가 살던 방의 전세금 등 1억5000만원을 가져갔다. B씨의 친부는 수년 전 사망했고 현행 민법상 직계 존속이라는 이유로 단독상속권자가 된 A씨는 새어머니와 이복동생이 딸의 병원 치료비와 장례비로 계좌에서 쓴 5000만원을 자신의 재산이라며 소송을 걸었다. 새어머니 측은 “일도 그만두고 병간호에 매달렸는데 갑자기 절도범으로 몰린 상황”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2차례 조정기일을 열었고, A씨가 유족에게 전세보증금 일부인 1000만원 미만의 돈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후 재판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 측 변호사는 “현행법에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부모를 상속에서 배제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며 “유족이 패소하거나, 도의적 책임을 적용해 합의를 보는 선에서 끝나는 사건이 많다”고 말했다.새어머니가 친자식처럼 키워도 법적으로 ‘의무 없는 일’이어서 양육비 반환 청구 소송도 제기할 수가 없는 것이 큰 문제로 꼽힌다. 앞서 가수 고(故) 구하라 씨의 오빠도 어린 구씨를 버리고 가출했던 친모가 구씨의 상속재산을 받아 가려 한다며 이른바 ‘구하라법’ 제정 입법 청원을 한 바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설] 국감 저질 언행, 국민은 부끄럽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는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의심할 만한 저질 언행으로 얼룩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원욱 과방위원장에게 야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발언을 중간에 끊었다고 항의하면서 말싸움이 시작됐다. 박 의원이 “당신이 중간에”라며 언성을 높이자 이 위원장은 “당신? 어디다 대고 당신이야? 여기 위원장이야!”라고 소리쳤고, 박 의원이 “건방지게 반말을 해”라고 발끈했다. 이 위원장이 박 의원 자리 앞으로 다가가자 박 의원은 “한 대 쳐 볼까”라며 팔을 올렸고 이 위원장이 “야 박성중”이라고 소리치자 박 의원은 “건방지게. 나이 어린 XX가”라고 맞받았다. 주위의 만류로 둘은 떨어졌지만 이 위원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분이 안 풀린 듯 정회를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다가 내동댕이쳤다. 이 모습은 국회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국민들에게 그대로 방송됐다. 21세기에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해외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벌인 행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상스러운 욕설과 폭행 위협을 가하는 대목에서는 저잣거리의 시정잡배와 뭐가 다른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이런 수준을 보고 자라나는 학생들이 뭐를 배울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한국 가수의 빌보드차트 1위로 자부심을 가진 국민들은 한국 국회의원들의 3류 정치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 모양이다. 국감은 10여분 뒤 재개됐지만 두 의원은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회 각 분야는 선진국을 닮아 가는데 유독 정치만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좌절한다. 수십 년 전 봤던 정치인들의 저질 언행이 여전히 계속되는 건 믿기 힘든 일이다. 정치인들 스스로 수준을 높일 수 없다면 깨어 있는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시정잡배와 같은 언행으로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수준 이하의 국회의원들은 기억했다가 선거에서 준엄히 심판해야 한다.
  • [열린세상] 마음으로 듣기/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마음으로 듣기/박산호 번역가

    몇 주 전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백설공주처럼 털이 하얗고 눈이 큰 강아지들을 둘러보던 나와 딸은 한쪽 구석에서 깡충깡충 뛰어오르던 까만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인형처럼 예쁘지만 어딘가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강아지들과 달리 검정콩처럼 까만 그 아이는 우리에게 `나를 봐 줘, 나를 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보자 까만 털, 까만 눈, 까만 몸집에 갈색 털이 군데군데 난 미니 반달곰 같은 그 강아지는 시바견이었다. 우리는 한눈에 반해버린 그 아이를 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해피”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행복하게 잘 자라고, 우리와 행복하게 살자고. 해피를 집에 데려오자마자 배변패드를 깔아 주고, 원래 있던 고양이 집을 해피에게 내주고, 울타리를 넓게 쳐 줬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강아지 양육법에 대한 책들을 훑어보다가 강형욱의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라는 책을 주문했다. 그동안 키웠던 개들과는 항상 어정쩡하게 이별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만큼은 제대로 키워 보고 싶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대충 이 정도였다. 먼저 집안 아무데나 배변 실수를 해서 내 일이 몇 배로 늘어나지 않도록 훈련시키는 법, 사람을 물지 않게 하는 법, 시끄럽게 짖어서 이웃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법, 산책을 잘 시키는 법 등.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나 편한 방법을 익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기대는 책을 읽으며 박살났다. 제목에서 예고했듯 작가는 개를 키워선 안 되는 사람들에 대한 사례부터 들면서 훈련하려 하지 말고 먼저 강아지의 생리와 습성을 배우고, 무엇보다 강아지의 마음을 알아 줘야 한다고 했다. 강아지는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같이 살아가는 생명이지 인간의 편의에 맞춰 훈련시키는 물건이 아니라고. 책을 읽다 보니 강아지나 아이를 키우는 것이나 똑같다는 말이 정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우리 손가락을 맛나게 깨물어대고, 사방에 대소변 테러를 자행하는 해피의 마음을 헤아리려다 문득 딸이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애정과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이상행동을 하는 강아지처럼, 딸도 꼬꼬마 때 일하느라 바빠서 좀처럼 놀아 주지 않자 내 노트북 마우스 끈을 가위로 자르며 침묵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놀아 달라고 조르다 지쳐 작업 중이던 내 컴퓨터 마우스를 제꺽 잘라버린 아이, 마감이라서 놀아 줄 수 없었던 엄마를 포기하고 아장아장 걸어서 혼자 놀이터로 나가버린 아이. 그때 딸과 내가 나눴던 대화가 진짜 소통이었을까, 내가 아이의 마음을 진실로 들어준 적이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사이토 하루미치가 쓴 ‘서로 다른 기념일’이란 책이 있다. 난청인 마나미와 사이토라는 사람이 만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 이쓰카를 낳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 책이다. 사이토는 이쓰카가 생후 3개월이 됐을 때 청력검사를 받게 한다. 그렇게 검사를 빨리 받게 한 이유를 지레짐작한 나는 또다시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사이토는 말한다. “듣는 게 좋다, 혹은 듣지 못하는 게 낫다와 같은 바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곁으로 찾아온 아이에게 적절한 소리를 전해 주고 싶고, 아이에게 어울리는 소리를 빨리 전해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였다”고.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단을 알아내기 위해 검사를 받았다는 말이다. 나는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노력한 적이 있었나,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말 못하는 강아지, 말 못하는 갓난아기, 말문은 트였지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말은 하지만 좀처럼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어른들과의 소통을 다시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소통의 핵심은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아니었다.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의지와 관심, 상대의 마음에 가 닿으려는 정성, 상대의 이해 속도에 맞춰 소통하는 배려였다. 강형욱의 책을 읽은 후 나는 강아지를 훈련시키려던 마음을 접고 강아지의 표정에, 몸짓에, 소리를 듣는 데 더 집중하게 됐다. 그러면서 딸과의 대화도 늘어났다. 오래전 내가 놓쳤던 아이의 작은 마음을 이제라도 다시 잡아 보고 싶어서….
  • “형제복지원 30년 전 악몽 남편 아픔 덜어주고 싶어” 그래서 아내는 투사가 됐다

    “형제복지원 30년 전 악몽 남편 아픔 덜어주고 싶어” 그래서 아내는 투사가 됐다

    “과거 형제복지원 사건을 하나하나 밝혀내지 못한 채 일부 범죄로만 기소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이제라도 수사와 재판상의 과오를 바로잡는 것만이 피해 생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고경순 대검 공판송무과장)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1호 법정에서 31년 만에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심이 열렸다.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는 이유로 지난 1989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다시 판단을 해 보자는 취지다. 이날 법정 한편에는 이향직(49)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집행위원장과 아내 이방울(40)씨가 있었다. 이 위원장은 중학교 1학년이던 1984년 형제복지원에 들어가 1987년 5월 폐쇄될 때까지 살았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가출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에게 붙잡혀 잠시 파출소에 맡겨졌던 게 화근이었다. 경찰은 “좋은 옷과 푸짐한 음식을 주고 학교도 보내 준다”는 거짓말로 회유했지만, 실제로 그가 마주한 형제복지원은 ‘한국판 아우슈비츠’였다. 박정희 정권 때 설립된 전국 최대 부랑아 수용시설인 부산 북구 형제복지원은 1975~1987년 3000여명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학대·성폭행·살인 등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7년째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활동을 해 오고 있는 이 위원장 곁에는 언제나 아내가 있다. 전국 길거리에서 서명운동을 할 때도, 대법원 앞에서 비상상고 심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할 때도, 피해자 모임에서도 두 사람은 늘 ‘세트’다. 서울신문은 지난 22일 경기 광주시 자택에서 “아직 형제복지원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씨를 만났다. 생존자 가족이자 활동가로서 이씨가 느낀 피해자의 고통과 남은 과제에 대해 물었다. ●결혼하고 나서 툭툭 피해 사실 털어놔 -남편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라는 사실은 언제 처음 알았는지.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 툭툭 던지듯이 형제복지원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하더라. 밥을 먹다가도 ‘내가 있었던 형제복지원에선 김치에 고춧가루가 너무 없어서 세면서 먹었다’고 하고, TV 군대 예능에서 흙벽돌이 나왔는데 ‘저 사람은 1~2장 들기도 힘들어하는 걸 10장씩 지게에 지고 날랐다’고 하고. 그때는 내가 잘 알지 못하니까 ‘당신 힘들었겠다. 고생 많았네’ 이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다 실상을 알게 된 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신이 저런 데 있었던 거냐’고 막 눈물이 났다. 그때 심경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나서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2013~2014년쯤 남편이 ‘진상규명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면서 ‘서명을 받고 다닐 건데 같이 해줄 수 있냐’고 묻더라.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가족이기 때문에 형제복지원 피해를 더 잘 알았고, 그 트라우마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빨리 해결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33년이 흘렀지만 형제복지원에서 보낸 3년은 지금까지도 피해자의 삶을 옥죈다. 매일 구타를 당했고, 또래 아이가 맞아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성폭행 피해를 입을 뻔하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배고픈 아이들은 지네와 뱀, 흙덩어리를 주워 먹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이 위원장은 옛 기억을 떠올리면 숨이 막힐 듯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이씨 역시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날 인터뷰를 앞두고도 부부는 비상약을 먹었다. 이씨는 “나도 남편도 트라우마 때문에 언제 쓰러질지 몰라서 항상 붙어 다닌다. 서로 챙겨 줘야 한다”고 했다. -활동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촛불정국 때 태극기부대가 우리에게 인분을 뿌린 일이다. 당시 남편과 가방에 서명서만 잔뜩 챙겨서 무작정 광화문에 갔는데 생각보다 시민들 반응이 좋았다. 반면에 일부 태극기부대에선 엄청 욕하고 삿대질은 기본에 인분까지 가져와서 뿌리더라. 남편은 ‘무시하자’고 하는데 상처가 컸다. 추위는 견딜 수 있었지만 그 모멸감은….” -피해자들의 노력으로 지난 5월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최근 대법원에서 비상상고심도 열렸다. “처음에 활동을 시작할 때는 막연한 희망만 있었다. 하나하나 반응이 올 때마다 놀란다. 비상상고심도 한참 소식이 없어 대법원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는데 어느 날 직원이 와서 피켓을 찍어 가면서 ‘좋은 일 있을 거예요’ 그러더라. 그리고 얼마 안 돼 공판기일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이 그만큼 열심히 해서 진전이 된 거니까 고맙다.” -비상상고심에서 특수감금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위원장) 부랑인 강제수용이 가능하다고 명시한 내무부훈령 410호 자체가 위헌이었다는 점을 이번에 대법원에서 밝혀 준다면 그걸 근거로 국가 상대 소송이 가능해진다. 지금은 소송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증거를 하나하나 찾아서 위법이 있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모든 활동을 함께하는 부부 -이 위원장 인터뷰나 페이스북 글에서 ‘아내가 모든 활동을 함께 한다’고 강조하던데. “이 사람은 항상 그런다. 대법원 방청 때도 그렇고 형제복지원 피해자 자격으로 정치인이나 변호사를 만날 때 ‘나도 가도 되나’ 싶어 머뭇거리면 늘 ‘너도 가야지. 피해자 가족도 같이 들어가서 얘기 들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이 위원장) 우리 단체 이름이 피해자협의회인데 ‘피해자’라는 단어 속에는 피해 생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 사망자 유가족, 실종자도 다 포함된다.”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도 많을 것 같다. “저번에 부산역 앞에서 서명을 받는데 노숙인들이 와서 ‘나도 여기 있었다’고 막 그러더라. 남편이 가서 보니까 얼굴들이 다 낯이 익었다고 한다. 한 분은 남편 전화번호를 받아 가기도 했다. 과거사법이 통과된 것도 모르고 계셨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궁금하다고 하더라.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남편한테 ‘우리는 그분들에 비하면 호텔에 사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피해자들이 너무 힘들게 살고 있으니까 빨리 보상받고 남은 생이라 도 편하게 살면 좋겠다.” -가정을 꾸린 생존자들이 드물다고 들었다. “혼자 사는 분들이 대다수다. 경제적 어려움과 트라우마 때문에 가정을 꾸리기 힘들다고 하더라. 남편과 나도 모아둔 것 없이 신혼살림을 시작해서 단칸방과 반지하를 전전하며 힘들게 살았다. 결혼 전에 남편도 처음에는 나를 많이 밀쳐냈다. 당신 옆에 있어 준다는데, ‘그냥 가라’고 하더라. 그래도 그때는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피해자들의 삶은 달라진 게 없다 -어떤 점이 끌렸는지.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모습(웃음). 그 시절엔 ‘폰팅’이라는 게 있어서 전화로만 연락을 하다가 처음 만난 날 흰 티에 청바지 입고 안경 딱 쓰고 평범한 가르마를 해서 나왔는데 느낌이 좋더라. 나도 가정사가 좋지 않아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겉돌았는데 남편을 만나고 남편한테 기댈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바라는 건. “많은 이들은 ‘과거사법이 통과됐으니까 끝난 거 아니냐’고, ‘30년 전 얘긴데 아직도 해결 안 됐냐’고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삶은 똑같다.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형제복지원 문제가 빨리 해결되고 국가가 책임을 져서 남편이 아픔을 덜어내고 평범한 가족처럼 살고 싶다.” “(이 위원장) 조만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잘못된 테두리를 만든 건 국가지만 우리한테 직접적으로 다가온 가해자는 부산시니까 부산시를 상대로 먼저 싸우고 싶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정경유착 등 그늘도” “대한민국 위상 세워”… 민주·국민의힘, 이건희 추모 속 평가 엇갈려

    정치권은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에 한목소리로 애도를 표하면서도 고인의 공과 과에는 분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이 회장이 남긴 부정적 발자취와 과제에 집중했고, 국민의힘은 기업가로서 고인이 세운 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민주당은 주요 정당 중 가장 늦게 공식 논평을 내는 등 추모 메시지 내용에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이낙연 대표는 페이스북에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한다”며 양면을 모두 조명했다. 이 대표는 “고인께서는 고비마다 혁신의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끌었다”면서도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평가했다. 정의당도 정호진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제 그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지우고, 재벌 개혁을 자임하는 국민 속의 삼성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종철 대표는 이 회장의 조문을 가지 않을 계획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데 무게를 뒀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가족 빼고 모두 바꾸자는 파격의 메시지로 삼성을 세계 1등 기업으로 이끈 혁신의 리더,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며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까지 세계 속에 우뚝 세운 이 회장의 기업사를 후대가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배준영 대변인도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혁신과 노력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기업가정신으로 도전해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리더기업을 우뚝 세워냈다”고 고인을 기렸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국내 재계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신화를 쓴 총수, 삼성을 글로벌 정보기술(IT) 최강자로 키워 낸 경영인, 무노조 경영을 견지한 자본가, 그리고 은둔의 황제. 이 같은 이름으로 수식돼 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미래를 꿰뚫는 혁신의 리더십, 과감한 결단으로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우며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그는 수많은 기로에서 발휘한 승부사적 결단, 품질에 대한 집념으로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TV 등에서 글로벌 1위를 거머쥐며 삼성을 ‘제2의 창업’ 수준으로 발전시켰다.외로운 유년기 바쁜 부모님·日유학으로 외로움에 익숙 자동차·레슬링 등 ‘마니아적 기질’ 키워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씨 사이에서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등 두 명의 형이 있어 아들 중에서는 막내다. 여자 형제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 등 네 명의 누나가 있으며 여동생으로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있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경남 의령의 할머니댁에서 세 살 때까지 자랐다. 국내에서 초등학교를 다섯 차례 옮겨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학교 때 귀국해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 동양방송에 이사로 입사해 법무·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결혼했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회장된 3남 두 형 제치고 46세에 삼성그룹 회장 취임 승부사적 결단·혁신으로 韓경제 신화 써 1966년. 이 회장의 둘째 형인 창희씨가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구속되고, 맏형인 맹희씨도 밀수에 관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청와대 투서 사건 등 혼란이 이어진 가운데 호암은 1971년 막내아들 건희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도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 보겠다는 뜻을 가져다 주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다.” 호암이 유언장에 남긴 말이다. 1987년 11월 19일 호암이 노환과 폐암의 합병증으로 78세의 일기로 별세하자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건희 당시 부회장을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의 나이 46세 때의 일이다.어린 시절 환경이 자주 바뀌며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익숙했던 고인은 마니아적 성격으로 집중력이 강했는데 이런 기질로 자라난 집념은 세계 1위 삼성의 원동력이 됐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취미와 관심사는 다방면에 뻗쳐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 줬던 건 프로레슬링이었다. 와세다대 재학 시절 역도산을 직접 만날 만큼 레슬링에 몰두했던 그는 눈자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그만둘 때까지 1년여 동안 레슬링을 하면서 치열한 목표 의식을 키웠다. 그의 레슬링 사랑은 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내며 이어졌다.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의 영화를 봤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각종 기계를 직접 분해, 조립하면서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도 즐겼다. 이에 평생 즐겨 쓴 휘호가 ‘무한탐구’였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1년 반 동안 차를 죄다 뜯어 보며 차를 6대나 바꾸기도 했다. 1987년 취임과 함께 그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일성을 내놨고 그 약속을 지켰다. 흑백 TV가 삼성의 주력이던 1974년 호암이 반도체산업 진출을 선언하도록 설득하며 사업을 주도한 것도 그다. 당초 동물적인 사업감각의 소유자였던 호암도 아들이 반도체 얘기를 꺼내면 “이놈아, 그 돈이면 TV를 몇백만 대나 더 만들 수 있는데 그 쪼그만 것 만드는 데 쓰겠다는 거냐”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면서 첨단 하이테크 산업만이 살길이라고 믿은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호암의 지원을 이끌어 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이 된 뒤에도 ‘2등 구제불능론’(2등은 현상 유지밖에 못 한다. 조금이라도 지면 완전히 진 것이다) 등 늘 위기론을 부각시키며 ‘초격차’를 위한 고삐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3년 사상 최대 실적에도 이듬해인 2014년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며 체질과 구조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는 ‘마하경영’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의 마지막 신년사이기도 했다.어두운 유산 정관계 로비로 퇴진, 위기론 들고 복귀불법 승계 의혹, 삼성의 리스크로 남아 성공만큼 시련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검찰과 질긴 악연을 이어 가며 재임 기간 세 차례나 법정에 섰다. 19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공소시효 완료로 무혐의 결정이 났지만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때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는 삼성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전직 법무팀장이던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50여억원을 자신이 직접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방식과 정치인, 법조인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 등이 공개되며 지탄을 받았다. 2008년 4월 22일 이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직을 내놓으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듬해 재판부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이어 2010년 3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정관계 불법 로비, 불투명한 지배구조, 노조 설립 불허 등 그의 체제에서 이뤄진 삼성의 각종 문제들은 지금도 삼성과 재벌에 대한 불신을 만든 ‘어두운 유산’으로 남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