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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때 사망설 장쩌민 건재

    중병설과 사망설이 나돌던 장쩌민(江澤民·85) 전 중국 국가주석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 전 주석은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 40여분 동안 후진타오 주석 옆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장 전 주석은 지난해 4월 상하이엑스포 개막 직전 리펑(李鵬),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등과 함께 엑스포 현장의 중국국가관 등을 참관한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과 관련된 소문이 무성했다. 특히 지난 7월 1일 그가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대회에 불참하자 미국에 서버를 둔 중국어 뉴스사이트 보쉰(博訊) 등이 사망설을 전했으며, 관영 신화통신을 통한 공개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뇌사상태”라는 등의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날 장 전 주석은 대회가 시작되자 후 주석 뒤를 이어 입장했으며 바로 선 채 국가를 합창하고, 후 주석이 연설하는 동안 주의깊게 원고를 넘겨보는 등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대회를 생중계하면서 이런 장 전 주석의 모습을 여러 차례 내보냈다. 장 전 주석의 ‘건강’에 주목하는 것은 내년 권력교체를 앞두고 그의 생존 자체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장 전 주석은 이른바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출신 그룹)의 맹주로서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 그룹)의 좌장인 후 주석과는 사실상 이해관계가 다르다.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으로 대표되는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 그룹)의 막강한 지원세력이기도 하다. 실제 장 전 주석은 지난 2007년 제17기 공산당 대표대회에서도 시 부주석 등 지도부 선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우리구 예산절감 이렇게…] 전자결재로 종이 사용 20% 감소

    기초단체가 복사 및 출력을 하는 데 쓰는 복사지(A4 용지)는 보통 한해 1000만장을 웃돈다. 용산구는 이 복사지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한해 2000만원의 예산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3일 용산구에 따르면 전자결재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2009년 8895만원어치 총 4681상자(상자당 2500장)를 구매했던 복사지가 지난해 7474만원어치 3737상자로 20%가량 줄었다. 용산구는 내년에는 지난해 대비 30%가량 사용량을 더 줄여 2200만원가량을 절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용산구는 업체와의 계약에 관련된 회계 서류 등을 획기적으로 간소화한다. 통장사본이나 입찰 유의서, 제안 요청서 등 따로 확인할 수 있거나 저장매체를 활용해 전달이 가능한 자료는 출력하지 않도록 하고, 전산 처리가 되면서도 관례라며 출력·보관하던 자료들도 없앤다. 각종 계약 통장사본이나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 가능한 공공근로 참석 확인 자료 등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반드시 출력이 필요한 회계 증빙서류도 2쪽 모아찍기 인쇄를 의무화했다. 구 관계자는 “종이 문서가 줄면 문서 보관에 따른 번거로움도 줄어 업무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디아지오코리아 김종우 사장 “맥주시장 도전장… 종합주류사로 도약”

    디아지오코리아 김종우 사장 “맥주시장 도전장… 종합주류사로 도약”

    위스키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디아지오코리아가 맥주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며 ‘프리미엄 종합주류회사’로의 도약를 선언했다. 오는 11월 아일랜드 전통 맥주 ‘스미딕스’를 수입, 흑맥주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기네스를 묶어 국내 맥주시장 빅3 진입을 목표로 했다. 김종우 디아지오코리아 사장은 26일(한국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먼저 김 사장은 정체된 국내 위스키시장의 돌파구를 해외시장 개척에서 찾았다. 김 사장은 “그동안 아시아시장에 머물러 있던 ‘윈저’ 위스키를 동유럽시장 수출을 시작으로 위스키 본고장 유럽은 물론 글로벌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현재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와 수출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구체적인 성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에 윈저 12의 선전으로 위스키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며 ”지난해 매출 47% 성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기네스 맥주의 성공을 토대로 올겨울에 스미딕스 등 세계적인 프리미엄 신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182만 6761상자(상자당 9ℓ) 를 판매, 37.8% 점유율로 국내 1위를 차지했다. 앞으로 이를 토대로 위스키·와인·맥주를 중심으로 한 제품 포토폴리오와 아일랜드 수입맥주를 통해 맥주 라인업을 보강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현재 디아지오코리아의 매출에서 논위스키(Non Whisky) 비중은 7~8%에 불과하지만 2~3년 내에 이 비중을 20~30%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독일)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부고] 노태우 오른팔이자 5·6공 ‘특급소방수’ 이춘구 전 의원 별세

    [부고] 노태우 오른팔이자 5·6공 ‘특급소방수’ 이춘구 전 의원 별세

    제11∼14대 국회의원과 옛 민자당 대표를 지낸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20일 별세했다. 78세. 대한민국 헌정회는 이 전 의원이 이날 새벽 숙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직접 사인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군사정권인 5공화국과 6공화국은 물론 김영삼 문민정부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이다. 육사 14기 출신으로 준장으로 예편한 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직후 국보위 재무위원으로 신군부 세력에 합류, 사회정화위원장을 지냈다. 11대 국회 때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고향인 충북 제천에서 내리 당선돼 4선의 관록을 쌓았다. 고인은 특히 5공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차관으로 일하면서 빈틈없는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를 계기로 5공 말 노 전 대통령의 천거로 민정당 사무총장에 전격 기용되면서 여권 실세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1987년 대선에서는 민정당의 선대본부장을 맡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이후 5공 청산과 ‘정호용 의원직 사퇴’ 등 정치적 고비 때마다 전면에 등장해 ‘특급소방수’로 불리기도 했다. 고인은 ‘6공 황태자’라고 불린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두고 노 전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한 유일한 여권 인사로, 박 전 장관 처리 문제에 불만을 품고 노 전 대통령 초청 모임에 불참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1990년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 간 3당 합당에 대해서는 “성급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14대 대선에서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해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도 신임을 받았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1994년에 예상을 깨고 군 출신에다 5·6공 핵심 인사인 고인을 국회부의장에 중용했다. 1995년 민자당 대표, 1996년 신한국당 대표 등을 역임하며 YS 정권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춘자씨와 아들 재용(개인사업), 딸 서영, 사위 권기연(에스에스모터스 대표이사)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 발인은 22일. (02)2258-5971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이춘구 전 민자당 대표 별세

    이춘구 전 민자당 대표 별세

    제 11∼14대 국회의원과 옛 민자당 대표를 지낸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20일 별세했다. 78세. 대한민국 헌정회는 이 전 의원이 이날 새벽 숙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직접 사인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알려졌다. 충북 청원 출신의 고인은 육사 14기로, 준장 예편한 뒤 5·17 직후 국보위 재무위원으로 신군부 세력에 합류, 사회정화위원장을 거친 뒤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고인은 5공과 6공을 거치며 충북 제천에서 4선을 하며 민정계의 실세로 활동했다. 특히 5공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내무차관으로 보필하며 신임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1986년 민정당 사무총장에 기용됐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평가됐던 그는 1987년 13대 대선 선거대책본부장에 이어 이듬해 노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는 등 6공의 정권인수 작업을 지휘했고 6공이 출범하면서 내무장관에 기용됐다. 고인은 1992년 민자당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14대 대선 당시에도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그 공로로 국회부의장과 민자당 대표를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춘자씨와 아들 재용(개인사업), 딸 서영, 사위 권기연(에스에스모터스 대표이사) 등이 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 발인은 22일이다. (02) 2258-5971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中, 성장보다 분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공동부유론’을 제시했다. 인민에 의지해 성장하고, 그 과실은 인민이 공유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차기 최고지도자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30여년 전 제창한 이른바 선부론(先富論·능력이 되는 지역,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의 종언을 고한 셈이다. 앞으로 성장보다는 분배를 정책의 우선 순위에 놓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시 부주석의 공동부유론은 지난 4일 광시(廣西)좡족자치구 난닝(南寧)에서 개최된 아시아정당국제회의 개막식 축하서한을 통해 공개됐다. 시 부주석은 “중국은 공동부유의 길을 확고하게 걸어나갈 것”이라면서 “성장의 과실을 전체 인민이 향유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발전과 인민의 접근: 발전의 과실을 인민에게 전하기’라는 회의 주제와 부합하는 것이긴 하지만, 차기 지도자의 입에서 공동부유론이 언급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시 부주석은 지금까지 성장론을 고수했던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출신)과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그룹)의 지지를 받고 있어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성장과 선부 보다는 분배와 균부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그런 분위기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태자당 일원으로 차기 최고지도부 입성이 유력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서기 역시 균부론과 공동부유론을 주창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보 서기는 지난 7월 충칭시 당위원회 전체회의 석상에서 적극적으로 공동부유론을 설파했다. ‘파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덩샤오핑이 궁극적 목표로 제시한 공동부유를 실현시킬 수 있는 상황까지 중국이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했다는 게 보 서기의 연설 요지다. 당시에는 보 서기가 공산당 정신 고양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분히 ‘민심용’ 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시 부주석의 ‘지원 발언’으로 공동부유론이 중국의 차기를 이끌 지도자들이 주목하는 공통 주제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중국에서는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성장의 과실을 공산당 간부와 일부 기득권층이 독식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혼란을 중국 최고지도부는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손석희 “내가 서울시장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냐”

     한나라당이 ‘안철수 돌풍’에 기세가 한풀 꺾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제기한 ‘반(反)한나라당 정서’에 대한 자성론을 쏟아냈다. 그러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대비한 묘수는 찾지 못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5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철수 바람의 의미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경고”라면서 “여야가 손잡고 민생을 위해 국회에서 노력해야 이런 기현상이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나 최고위원은 “구태를 벗어던지고 변화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면서 “안철수의 존재를 백신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최고위원은 “우리 당이 정책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최고위원도 “속칭 ‘강남아줌마’도 안철수 같은 사람이 나오면 찍겠다는 사람이 많다.”면서 “기득권과 구태에 안주하는 관성을 깨지 않으면 정치권 전체의 대지진이 될 것”이라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작 안철수 돌풍에 맞설 서울시장 후보 선정 작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안 원장이 “우리나라 정서상 한나라당은 아니다.”라고 밝혀 영입 가능성이 없는 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독주 체제’가 드러난 상황에서 외부 인사 영입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 대표가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진행자 손씨에게 “출마할 생각은 없느냐.”며 ‘공개 러브콜’을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손씨는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냐.”면서 거부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선거 지원 여부도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명분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절차를 거쳐 당 후보가 정해지면 선거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다만 박 전 대표의 선거 지원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안 원장과 가까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자당 후보를 지원하면 승산이 높다고 보는지에 대해 “그렇다.”면서도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두려워할 영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與野, 서울시장 보선 3대 딜레마

    정치권이 오는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체제로 본격 돌입한 가운데 여야 공히 ‘말 못할 딜레마’에 빠져 속앓이를 하고 있다. 여야가 안고 있는 커다란 딜레마는 여성 후보, 외부 인사, 경선 시점 등 세 가지다. 이는 서울시장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요인들이다. 여야가 이 같은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10월 재·보선의 승패와 함께 내년 총선·대선의 명운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1. 여성후보 - 與 대선영향 고심… 野 두 번 패배 부담 서울시장 보선 초반전에서 여성 후보의 위력이 거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민주당 한명숙 전 국무총리, 박영선 의원 등이 지지율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강하게 불어오는 여풍(女風)을 접한 여야의 속내는 복잡하다. 한나라당은 우위에 선 나 의원 너머로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떠올리고 있다. 여성 후보 트렌드가 2012년 대선까지 이어질지, 즉 여성 시장 후보와 여성 대선 후보라는 조합이 효과적일지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나 의원이 승리할 수 있다면 현찰부터 챙겨야 한다.”는 쪽과 “나 의원이 이기더라도 대선을 놓친다면 소탐대실 아니냐.”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2006년, 2010년 두 차례의 서울시장 선거에 여성 후보를 내세웠던 민주당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크다. 당장은 여성 후보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지만 막판에 또 뒤집히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특히 한 전 총리 추대론의 경우 당내 엄정 경선론과 부딪치고 있다. 진행 중인 두 건의 재판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자칫 소모적 선거 책임론에 휩싸일 수도 있다. 박 의원의 경우 정책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문제는 이번 보궐선거가 정책보다는 정치적 대결로 흐를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당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2. 외부인사 - 영입할 사람 많은데 당내 경선이 문제 여야 모두 외부 인사 영입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필승 카드’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 경선이라는 높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터라 내로라하는 외부 인사들이 정치권의 제안에 응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외부 인사를 영입해 시장 후보로 내세우려면 당 지도부가 당내 예비후보들을 압도할 만한 파워가 있어야 한다. 여야 지도부 모두 그런 힘을 가진 것 같지 않다. 외부 인사 영입을 둘러싸고 여야 모두 고민하는 이유다. 현재 여야가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영입 대상으로 눈독 들인 인사들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골의사’ 박경철 의사 등이다.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에서도 곁눈질이 한창이다. 한나라당은 이 밖에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교수도 영입 대상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 외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유인촌 대통령 문화특보,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심지어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도 거론된다. 민주당은 출마 의사를 가진 인사만 10여명에 이르러 외부 인사를 영입할 경우 ‘교통정리’가 걱정이다. 다만 박원순 상임이사와 안철수 대학원장, 박경철 의사 등 지명도와 호감도를 지닌 인사들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으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3. 경선시기 - 서로 우위 장담 못해 치열한 눈치작전 서울시장 보선에서 여야는 누구를 후보로 내세우느냐 못지않게 언제 후보를 정하느냐를 놓고도 고민에 빠져 있다. 여야 모두 승리를 장담할 ‘절대 강자’를 내세우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 당 후보보다 비교 우위에 설 ‘대항마 찾기’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후보 확정 시점을 최대한 늦추며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자당 후보의 경쟁력이 밀릴 경우에 대비해 외부 인사 영입 카드를 마지막까지 열어 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가 대표적 사례다. 민주당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내세워 기선을 제압하자 한나라당은 당내 경선 후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오세훈 전 의원을 급거 영입해 전세를 뒤집은 바 있다. 한나라당은 29일 재·보궐 선거 기획단을 구성하는 등 선거 체제로 본격 전환했다. 시장 후보를 놓고는 백가쟁명식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후보 확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춘식 제2사무부총장은 “시장 후보는 일찌감치 공천을 주지 않아도 언론에 다 소개되는 만큼 여론의 추이를 봐야 한다.”면서 “10월 초 정도에 해도 된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역시 후보 확정 시기를 여권 후보 확정 이후로 잡고 있다. 2006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다음 달 말까지 후보를 정하고, 10월 7일 후보 등록일 이전에 야권 단일 후보를 확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박형준 靑사회특보 “15代 때처럼 거물·신인 영입해야 산다”

    박형준 靑사회특보 “15代 때처럼 거물·신인 영입해야 산다”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는 18일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핵심화두로 제시된 ‘공생발전’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글로벌 외교를 한 경험과 거기서 비롯된 통찰, 3년 반 동안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얻은 종합적인 인식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박 특보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생’이라는 표현도 이 대통령이 직접 말씀을 해서 그 말을 가지고 경축사를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생발전이 대기업 압박 아니냐고 하는데. -압박이라고 느끼지 말고 위기 속에서 대기업이 더 잘되기 위해서 어떻게 책임을 더 질까 하는 인식이 더 중요하다. 대기업 최고경영진 사이에서는 이런 인식이 상당히 확보됐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미흡하다. 대기업을 혼내고 중소기업을 위한 게 아니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2000억원 사재 출연 발표는 사전 교감이 있었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점이 잘됐다. 정무수석을 할 때 정 전 대표와 자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당히 그런 마음,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부가 감세 철회로 갈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니다. 성장률을 높이려면 감세가 도움이 된다. 세원을 보다 투명하게 하고, 세입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대통령도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나. -대통령이 가진 인식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다만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말씀을)안 하고 있을 뿐이다. →투표가 6일 남았는데 전망은. -쉽지 않은 싸움인 것만은 틀림없다. 핵심은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하느냐, 전면적으로 하느냐가 아니다. 앞으로 나라의 정책 기조를 어떤 방식으로 가져갈 것인가다. 프레임(정책틀) 싸움이라고 본다. →만약 투표에서 지면 오 시장이 물러날 수도 있고 10월쯤 선거를 해야 하는데. -진퇴는 오 시장 개인의 거취 문제로 생각할 사안이 아니다. 시장은 혼자서 된 게 아니다. 여권 전체의 스케줄 및 전략과 맞아떨어져야 된다. 혼자 책임지고 할 건 아니다. →남북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이번에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 전향적으로 풀어 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다만 과거처럼 늘 대한민국이 일방적으로 베풀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뒤로 돌아가는 건 안 된다는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관계를 새롭게 열 수 있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인식이 확고하다. →대일관계는. -넓고 큰 시야로 봐야지, 즉자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이 미래를 향해 가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동북아와 세계에 이익을 주는 차원에서도 이를 악화시킬 장애물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인식이다.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우리 영토다. 대통령으로서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다. 독도는 열려 있다. 다만 (방문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 총선 전망은. -어렵다. 야권이 통합되면 특히 그렇다. 총선이 어려우면 대선도 어려워질 수 있다. →부산·경남(PK)이 더 어렵다고 보나. -핵심적 지역이 수도권과 함께 부산·경남이 될 것이다. 부산·경남은 이전과 달리 텃밭이라고 보기 어려워 격전지가 될 가능성 높다. 지역주민의 여망에 맞는 공천을 해야 한다. →현역의원 40% 이상 물갈이 얘기도 있는데. -내가 함부로 말할 건 아니다. 수치로 하는 건 논란만 일으킬 소지가 있다. →여권에선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의 공천 방식을 많이 얘기한다. -당시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정했고, 두 가지 공천 개혁을 했다. 하나는 범여권의 거물 정치인을 영입했다. 이회창, 박찬종, 이수성씨 등이 그때 영입됐다. 국가지도자급의 무게감을 갖는 인물들이다. 또 개혁 성향의 정치 신인들도 대거 수도권에 배치했다. 그 결과 처음 수도권에서 여당이 이겼다. 그 정신을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다만 당시는 제왕적 총재가 있어서 위로부터의 개혁이 완벽히 가능한 여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력관계도 복잡하고, 누가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그만큼 지금은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방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영향력은. -잠재적 파괴력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 부산·경남이 무주공산 비슷한데, 이곳에 기반을 둔 야권의 지도자다. 그러나 대선 지형은 총선 이후에 새롭게 짜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으로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앞서 있다. 박 전 대표의 장점은 핵심 지지층이 견고하다는 것이고 쉽게 흔들리지 않을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회창 대세론과는 다르다는 말인가. -대세론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이 전 총재보다는 상당히 견조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당장 흔들릴 요인도 없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 이후 관계개선은. -그 얘기는 하지 말자(손사래). 뻔한 얘기로, 괜한 오해만…. 뭐 잘되고 있다. 채널은 다 있다. →대통령이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인사에 있어서 분명히 국민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청문회 제도 하에서 인재풀이라는 게 좁을 수밖에 없다. 5년 단임제 하에서 인사를 탕평으로 하라고 자꾸 얘기하는데, 한계가 있다. 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대선 때 기여한 사람 다 자르고 하라는데 쉬운 일인가. 대통령은 누구와도 대화하는 스타일이다. 대통령 자신이 귀를 막고 있거나 닫힌 사람은 절대 아니다. →여권에서 동남권 신공항 얘기를 다시 하는데.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영남권에서는 한번 속았다는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을 포기한 건 정치적 유불리를 배제한 결정이었다. 김성수·윤설영기자 sskim@seoul.co.kr
  • 공청단 출신 왕양 띄워주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부터 닷새간 남부 광둥성 곳곳을 시찰했다. ‘리틀 후진타오’인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는 16일부터 3일간 홍콩을 첫 방문 중이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의 중국 최고지도부 두 명이 동시에 ‘남행’을 했다. 배경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후주석 광둥성 2년간 3번 찾아 광둥성에는 역시 공청단 출신 핵심인사인 왕양(汪洋) 당서기가 버티고 있다. 지난 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이어 선전 하계유니버시아드를 치러내고 있는 왕 서기는 선전, 광저우 등을 둘러보는 후 주석을 밀착수행했다. 후 주석은 최근 2년 동안 세 번씩이나 광둥성을 찾았다. 2009년 12월 마카오 반환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광둥성 주하이(珠海)를 시찰했고, 지난해 8월에는 선전에서 경제특구 지정 30주년 행사를 주재했다. 그런 그의 곁에는 항상 왕 서기가 있었다. 공청단 대표주자인 왕 서기는 경쟁상대인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그룹) 출신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와 함께 내년 권력교체 때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라 최고지도부 입성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보 서기 뒤에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 등 태자당과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출신 세력) 출신의 상무위원들이 버티고 있다는 점에서 후 주석의 잦은 광둥행과 리 부총리의 홍콩행은 다분히 같은 공청단 출신인 ‘왕 서기 띄우기’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자당·상하이방 출신 견제 효과 실제 후 주석은 선전 등에서 광둥성의 첨단산업 육성정책 등을 극찬했다. 홍콩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상무위원으로는 처음으로 홍콩을 방문한 리 부총리는 이날 공항 도착 성명을 통해 “많이 뛰고, 많이 보고, 많이 듣겠다.”며 차기 총리로서 홍콩과의 경제협력을 확실히 챙기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홍콩은 인접한 광둥성과 사실상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여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회고록(回顧錄)/최용규 논설위원

    회고록 집필로 훨씬 더 유명해진 이는 영국의 정치가 원스턴 처칠(1874~1965)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 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01년 프랑스 시인 르네 쉴리프뤼돔(1839~1907)부터 2010년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이르기까지 노벨문학상 100여년 역사에 시인·소설가가 아닌 정치인이 이 상을 받기는 처칠이 유일하다. 정치가·웅변가 외에 저술가란 ‘고급스러운 훈장’이 붙은 것도 회고록 덕이다. 총리 재임시절 받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혜경궁 홍씨(1735~1815)의 ‘한중록’(閑中錄)은 우리가 자랑할 만한 ‘국보급’ 자전적 회고록이다. 71세 때인 1805년(순조 5년)에 썼다. 남편인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생을 회고했다. 한문본에는 泣血錄(읍혈록)으로 되어 있다. 눈물을 쏟고 슬피 울면서 기록했다는 뜻이리라. 회고록은 더 이상 한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예술·스포츠 스타에 이르기까지 외연이 크게 확대됐다. 회고록이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자전적 에세이로 명찰을 바꿔 달기도 한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표현의 절제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폭로투성이다. 미국 백악관 인턴이던 모니카 르윈스키는 1995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했다. ‘모니카 이야기’다. 클린턴은 탄핵, 이혼 위기로까지 몰렸다. 올봄 국내에서는 신정아의 자전적 에세이 ‘4001’이 화제를 몰고 왔다. 회고록은 과거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인생 전반을 다루는 자서전과는 차이가 있다. 자기가 겪은 일을 기록하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자기 해명서나 변명서가 될 개연성이 높다. 1992년 대선 때 민자당 후보인 YS(김영삼)에게 선거자금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고백한 ‘노태우 회고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5·17 비상계엄 확대를 ‘서울의 인명·재산 보호를 위한 치안유지 차원’, 5·18 광주민주화 운동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라고도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도 회고록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복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 등의 형태로 자신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힐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군사반란의 주범으로 한국현대사에 큰 오점을 남긴 5·6공 최고통치자들이 자기들의 역사를 고쳐 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SKT 2분기 영업이익 6597억 ‘好好’

    SK텔레콤이 신규 사업인 플랫폼 성장세에 힘입어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상승했다. SKT는 4일 국제회계기준의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올해 2분기 매출 4조 410억원, 영업이익 6597억원, 당기순익 4654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플랫폼 등 신규사업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4.9% 급성장해 전년 동기와 비교할 때 5.7%가 늘었다. 특히 인터넷 마켓인 11번가와 애플리케이션 장터인 T스토어, 내비게이션 서비스인 T맵의 실적이 좋았고,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 등 유선상품을 재판매하는 신사업도 매출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0%, 전분기 대비 7.4%가 늘었다. 반면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7% 늘었지만 전 분기와 비교하면 13.4%가 줄었다. SKT는 전 분기와 대비할 때 감소한 이유는 1분기에 SK C&C 지분을 매각하면서 일회성 처분이익 1525억원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은 1조 2655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동기 대비 8%, 전분기 대비 5.4%가 각각 증가했다. 스마트폰 가입자는 6월 말 기준으로 750만명이고,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는 2626만명으로 집계됐다. SKT는 연말까지 목표치인 스마트폰 가입자 1000만명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동전화 가입자당매출(ARPU)은 2분기 4만 738원으로 전분기 4만 393원보다는 늘었다. 9월 시행이 예정된 기본요금 1000원 인하가 이뤄지면 매출 및 ARPU의 하락이 예상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라진 구심점’… 의원들 각개전투 총력

    19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곳곳에서 조기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민주당 쪽 진폭이 넓고 센 편이다. 기득권(호남) 포기, 사지(死地) 선택 등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번진다. 그것도 무게감 있는 중진 의원 중심이다. 유권자들의 개혁 공천 요구가 어느 때보다 거세다. 같은 해 대선이 치러지는 터라 차기 주자들의 공천 리더십과도 연관 있다. ‘때 이른 변화’는 19대 총선 전후의 복잡한 정치 환경 때문인 듯하다. ●총선·대선 동시 실시 2012년 총선은 대선 8개월 전 치러진다. 총선 승패가 대선은 물론 이후 짜여질 권력 지형 내 진입 여부를 가늠하게 한다. 19대 의회는 임기 대다수를 차기 대통령과 함께한다. 19대 총선은 이런 차원에서 1992년 3월에 치러진 14대 총선과 엇비슷한 관전법을 갖고 있다. 14대 총선은 양당 체제로 치러졌다. 세력별로 대응하는 구조였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의 깃발 아래 총선을 치러야 한다며 대선 후보 조기 가시화를 요구했다. 차기 정권의 예비 선거로 치러야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총선 결과 여당인 민자당은 13대 의석 수의 3분의2에 그친 149석을 얻었지만 민주계의 김 전 대통령이 새 주류로 등장하며 판을 정리했다. 이때는 김영삼·김대중이라는 강력한 보스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만한 구심력이 보이지 않는다. 2012년 총선에서 개인의 생존 문제가 우선순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세력 담론이 먹히지 않는다. 개별 경쟁력이 강화되는 구도에선 중진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춘패동승(春敗冬勝·봄에 지고 겨울에 이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총력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환경 변화 급물살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움직임이 빨라진 데는 그만한 징후가 있다. 몇 차례 치러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강세 지역을 취약 지역으로 분류해야 했다. 수도권과 부산·경남 지역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중진 현역 의원들이 서둘러 깃발을 꽂고 있는 지역이다. ‘희생적 결단’이라 평가하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수도권의 경우 민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바닥 인프라를 장악했다. 역대 총선과 달리 정책 경쟁, 세대 결집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지역 대결 양상은 줄어들었다. 17대와 18대만 하더라도 각각 탄핵과 이명박 정권 취임 초 지지율 반감으로 여야는 총선전에서 치열한 정치 대결을 벌였다. 그만큼 선명한 전선이 그어졌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19대 때는 한나라당마저 좌클릭으로 이동하면서 전선이 불분명해진다. 개별 생존력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부산·경남과 강원도 등은 기존 투표 행태를 떨쳐 버렸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역 기반의 정치 활동은 앞으로 대세를 좇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현역 의원들의 선제적 대응에 대한 분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4·27 재·보선의 분당 선거 이후 유권자들은 기존 정책 경쟁에 ‘감동과 결단의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주류 교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민주당의 손학규 체제에 이어 한나라당이 홍준표 체제로 구성됐다. 민주당은 올 연말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정치평론가 김종배씨는 “정당 체제 개편이 예고된 데다 민주당은 야권 연대(통합)라는 변수도 있다.”면서 “기존 지역구에서 한계를 느낀 현역들이 공천 막바지에 움직이면 ‘결단’ 효과가 반감된다.”고 설명했다. 아직 대선 구도가 완성되지 않아 총선 정치가 더 중요해진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中 공산당 90주년] 공산당을 이끈 10명의 주역

    ●천두수(陳獨秀·1879~1942) 공산당 초기 지도자. 청년 시절 반청(反淸) 활동에 몸담고, 5·4운동 후에는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 베이징대 교수 시절 ‘매주평론’ 등 사상지 발간. 상하이 지역 공산당 조직 결성. 제1차 당대회에 불참했지만 초대 중앙국 서기에 선임되는 등 5차 때까지 중앙국 서기, 중앙국 집행위원장, 총서기 등 역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두 말할 필요 없는 중국 공산당 역대 최고지도자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주역. 자신이 결성한 후난성 공산당 조직을 대표해 제1차 당대회 참석.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며 무장봉기 주도. 대장정 도중인 1935년 1월 ‘준이(尊義)회의’에서 당권 장악. 신중국 건국 후 당과 국가의 전권을 장악.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의 대오류에도 불구하고, 건국의 아버지로 신격화.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혁명운동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마오쩌둥과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자 영원한 2인자. 건국 후 초대 총리(외교부장 겸임)를 맡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역임. 탁월한 정치적, 외교적 수완과 함께 고도의 청렴성으로 사망 후에도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대 총리로 추앙받음. ●주더(朱德·1886~1976) 중국 10대 원수 가운데 한 명. 독일 유학 중 저우언라이의 추천으로 중국 공산당 가입. 소련에서 군사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국민당군에 합류. 1928년 병력 1만명과 함께 마오쩌둥의 징강산 해방구에 가담. 제2차 국공합작 때는 8로군 총사령관으로 항일전쟁을 지휘. 건국 후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국가부주석,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을 역임. 문화대혁명 때 물러났다가 1971년 복권. ●펑더화이(彭德懷·1898~1974) 6·25전쟁에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으로 참전한 중국 10대 원수 가운데 한 명. 1928년 입당해 항일전쟁 때 부총사령관으로 주더 총사령관을 보필. 건국 후 국방위원회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국방부장 등을 역임하며 군 현대화 추진. 1959년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실패 등을 지적하다 실권.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중화인민공화국 제2세대 지도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두 차례 실권됐다가 복권된 ‘오뚜기’. 항일전쟁 및 내전 시기에는 정치공작, 건국 후에는 국정에 참여. 실용주의 노선을 주창해 마오쩌둥 추종자들과 대립. 마오쩌둥 사후 화궈펑(華國鋒)과의 권력투쟁 끝에 실권 장악. 개혁·개방 선도하며 중국의 발전 견인.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며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개혁파 지도자. 1989년 4월 사망하자 청년학생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여들면서 ‘톈안먼 사태’ 촉발. 1928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한 뒤 홍군의 일원으로 대장정 참여. 건국 후 공청단 제1서기 등으로 공청단 업무 주관. 1980년 2월 당 총서기로 선출된 뒤 개혁 및 실용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1987년 대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 등으로 실각. ●장쩌민(江澤民·1926~ ) 제3세대 지도자. 상하이교통대 재학 시절인 1946년 입당. 건국 후 공장 관리자 및 공업연구소 책임자 등으로 일하다 문화대혁명 때 공직에서 축출. 복권된 뒤에는 상하이시 당서기 등으로 승승장구하면서 핵심인물로 부상. 1989년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가 실각하자 총서기로 선출됨. 1990년 4월 덩샤오핑의 마지막 공직이었던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전권 장악. 재임 중 한·중 수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성사. ●후진타오(胡錦濤·1942~ ) 제4세대 지도자.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의 대부. 칭화대 수리공정학과 졸업 후 학교에 남아 정치보도원으로 후배들의 정치교육 담당. 문화대혁명 때 간쑤성 수력발전소 노동자로 하방됐지만 승진을 거듭해 덩샤오핑에 의해 4세대 지도자로 낙점돼 1992년 최연소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 이후 2002년 당 총서기, 2003년 국가주석, 2004년 중앙군사위 주석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장악. ‘과학발전관’을 주창. ●시진핑(習近平·1953~ )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5세대 핵심지도자. 아버지는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한 시중쉰(習仲勳)으로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들의 자제그룹) 계열.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의 실각 등으로 중학교 재학 중 산시성 오지로 하방. 10번이나 입당이 거부될 정도로 시련을 겪었으나 경력을 쌓고, 저장성 당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에 오른 뒤 같은 해 제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 이듬해 국가부주석, 지난해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돼 후계 입지 공고화.
  • “다이어트 음료가 되레 허리 사이즈 늘린다”

    “다이어트 음료가 되레 허리 사이즈 늘린다”

    비만 방지를 위한 다이어트 음료가 되레 체중 증가와 혈당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됐다. 영국의 대중지 데일리메일은 29일 이같은 다이어트 음료의 역설적인 부작용을 규명한 2편의 연구보고서를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텍사스 대학 의과대학 보건센터의 헬렌 하즈다 박사는 474명을 대상으로 평균 9.5년 동안 3차례에 걸쳐 체중, 허리둘레, 다이어트 음료 섭취 등을 조사한 결과 다이어트 음료를 마신 그룹이 마시지 않은 그룹에 비해 허리둘레가 70%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이어트 음료를 하루 2 캔 이상 씩 마셔온 사람들은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허리둘레가 500%(약 5cm)나 더 많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다이어트’, ‘무가당’, ‘저칼로리’ 를 강조하는 음료에는 자당이나 과당 대신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가 들어 있으며 인공감미료는 식욕을 촉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비만 방지를 위해 다이어트 음료를 권장하는 정부 정책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즈다 박사는 “다이어트 콜라 등은 칼로리가 적다는 뜻이지, 결과적인 칼로리 과잉 섭취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비만한 사람은 갈증이 생기면 다이어트 음료를 찾을 게 아니라 물을 마셔야 한다고 권고했다. ㅣ 한편 같은 대학 류머티즘-임상면역학 교수 가브리엘 페르난데스(Gabriel Fernandes) 박사는 또 다른 연구보고서에서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이 혈당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당뇨병 위험이 큰 일단의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엔 먹이와 함께 옥수수기름과 아스파탐을, 또 다른 그룹은 옥수수기름만 3개월 먹인 결과 아스파탐 그룹의 상대적으로 혈당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진= 데일리 메일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기획]최고경영자=②락희(樂喜)「그룹」구자경(具滋暻)씨

    [기획]최고경영자=②락희(樂喜)「그룹」구자경(具滋暻)씨

     「러키6」3대(代)의 우애(友愛)로 뭉친「러키·그룹」  푼돈 아껴쓰고 큰돈은 아낌없이 쓰라는 선대(先代)의 유훈(遺訓)이어  선대인 구인회(具仁會)씨가 6형제, 2대째인 자경(滋暻·54)씨도 6형제, 자경(滋暻)씨 역시 6남매를 두고 있으니 오늘의 락희(樂喜)「그룹」은「러키·6」3대의「러키·그룹」이라고 할만도 하다.  락희(樂喜)화학·금성(金星)사·반도(半島)상사와 호남(湖南)정유·호남(湖南)전력 등「러키」산하 20개 업체의 1년간 외형 거래액 총액은 9백억원. 하지만「러키」의 진짜 자본은 돈 아닌 우애(友愛)라는 것이 자경(滋暻)씨의 얘기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재벌 중 완전하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재벌이 바로「러키·그룹」이다. 70년 1월 창업주이던 1대 총수 연암(蓮庵) 구인회(具仁會)씨가 작고하자 맏아들인 자경(滋暻)씨가 그 뒤를 이어 2대 회장에 취임함으로써「러키」의 세대교체는 창업 23년만에 이루어졌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맡기는 맡아야 할텐데 그저 아득하기만 하더군요. 빚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어떻게 요리해야 할 지 정말 몰랐어요』  자경(滋暻)씨는 제2대 회장에 취임한 뒤 1년 동안을『생애 중 가장 바빴고 1년 동안 정신이 없었던 해』라고 회고했다.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데 공헌한 것이 바로 구(具)씨 일가의 돈독한 우애(友愛)였다는 얘기다. 형님(仁會)은 돌아가셨지만 남은 5형제가 장조카 자경(滋暻)씨를 도와 뿌리 깊고 가지 많은「러키」를 흔들리지 않게 이끌어온 것.  비록 회장직은 장조카인 자경(滋暻)씨에게 넘어왔지만 자경(滋暻)씨의 다섯 삼촌들은「러키」안에 건재하다. 큰 삼촌인 철회(喆會)씨가「러키」운영위원회 의장으로 집안의 어른 겸 사업상 자경(滋暻)씨의 후광이 되어 주고 있으며 3째인 정회(貞會)씨는 금성(金星)전기, 5째 평회(平會)씨는 호남(湖南)정유, 6째 두회(斗會)씨는 범한(汎韓)화재를 맡고 있으며, 4째 태회(泰會)씨는 정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또 선대때부터 함께 일해 온 허준구(許準九·금성전선 사장)씨 허신구(許愼九·러키화학 사장) 형제와 먼 일가뻘인 하태(河泰·대한유조선 사장)씨, 하종배(河鍾培·국제신보 사장)씨가 있고 경영자로 모셔온 박승찬(朴勝璨·金星 사장) 이보형(李寶衡·汎韓해상화재보험 사장) 윤욱현(尹煜鉉·金星통신 사장)씨가 선대에 이어 계속「러키」의 주춧돌로 일해 오고 있다.  당초 자경(滋暻)씨가「러키」를 이어받을 때 항간에선 다섯 삼촌과 30여명이 넘는 사촌 등 방대한 가계(家系) 때문에 필경은 재산 싸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왔다. 그러나 이 예상은 3년이 지난 오늘 오히려 선대 때보다 더 굳은 단결력을 보임으로써 예상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버님은 늘 가족간의 화목·우애를 제1로 삼으셨죠. 그 다음이 푼돈은 아껴쓰고 큰돈은 아낌없이 쓰라는 거였죠』  「러키」의 첫 출발은 1947년 부산에「러키」화학공업사를 세우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적산(敵産)에 손을 대 돈을 벌었으나 인회(仁會)씨는 적산에 한번도 손댄 일이 없다는 것이 자랑이다.  「러키」가 본격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6·25동란 중이던 1952년「러키」치약을 생산해 내면서부터 였다. 당시 미제「콜게이트」치약이 판을 치고 있던 국내시장에서「러키」치약은 싼 값으로 동네 구멍가게부터 파고들기 시작, 끝내는「콜게이트」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말았다.  「러키」의 2번째 큰 싸움은 외래품으로 충당해 오던 합성수지에 손을 댄 것. 여러 차례 합작투자의 유혹이 있었지만 이를 물리치고「홍콩」「마카오」등지서 화상(華商)들을 통해 들여오던 외제 합성수지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이 선풍기·「라디오」등 가전(家電)전기제품.「플래스틱」선풍기의 생산으로 일제 선풍기를 몰아냈고, 4·19 직후「외래품 판매금지법안」통과로 우리나라 각 가정에 금성사(金星社)「라디오」를 보급시키는데 성공했다.  한편 53년에 세워진 반도(半島)상사를 통한 수출입업은 계속되었으며, 62년 세워진 금성(金星)전선이 체신부에 납품된 전기 제품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여력을 몰아 해외에 진출하게 됐다.  한해 1천5백만달러를 차지하는「러키」수출고의 대부분은 금성(金星)전선의 제품. 통신기의 금형(金型)을 서독에 수출하는가 하면「브류셀」에 있는「나토」본부의 자동전자교환대는 모두 금성사(金星社) 제품. 또「프랑크푸르트」「멕시코」공항에는「러키」제품의 ESK자동전자교환대가 설치되어 있다.  67·68년에 세워진 호남(湖南)정유·호남(湖南)전력에 투자하는가 하면 이를 실어나를 대한유조선·범한(汎韓)해상보험도 인수했고 대한(大韓)전선과 합자로 한국(韓國)제련광업을 인수했다.  한편 부산 국제신보와 부산 MBC-TV·「라디오」도 인수, 문화사업에도 손을 댔다. 창업 23년만에 총 산하업체 20여개의「매머드」기업「러키·그룹」으로 성장한 것이다.  『50년 처음「러키」화학에 제가 평사원으로 입사했을 땐 종업원이 통틀어 60여명이었습니다. 지금은 2만명 가까운 대식구로 늘어났습니다만. 말단 직원과 함께 섞여 치약을 만들고「플래스틱」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러키」의 총수이지만 자경(滋暻)씨는「러키」입사후 만 12년만인 62년 겨우 전무 자리에 앉은, 지독히도 승진이 늦은 편이었다.  『실무를 알아야 한다는 선친의 뜻이었죠. 회사에선 평사원으로 일하고 가족 사이에 무슨 「트러블」이 생기면 가족대표란 뜻으로 꾸중은 혼자 들으며 자랐읍(습)니다』  자경(滋暻)씨는 경영합리화 과정에 선친과 함께 일해 오던「러키」의 노신(老臣)들을 자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프다고 했다.  『이제「러키」는 국내시장보다 수출에 눈을 돌릴 겁니다.「플래스틱」제품의 경우 원료인 PVC만 충분하면 수출시장은 얼마든지 열려 있읍(습)니다. 그래서 75년께는 제품 생산만이던「러키」를 원료 생산에도 손대게 할 생각입니다』  자경(滋暻)씨는 또 회장직을 맡으면서부터「러키」총 재산의 40%를 들여 부친의 호를 딴 연암(蓮庵)문화재단을 세웠다.  연암(蓮庵)재단은 매년 서울대·고려대·연세대·부산대 등 4개 대학 공과계통 대학생 1백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대어주는 한편 1년 6백만원의 연구비를 국내 과학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연암(蓮庵)재단은 지난 번 종합감사서 3·1문화재단과 더불어 가장 실적이 우수한 문화재단으로 뽑혔다.  지금까진 한해 4천5백만원의 예산을 써왔으나 올해부턴 7천만원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러키·그룹」은「매머드」기업답게 가족 또한「매머드·그룹」이다. 인회(仁會)씨 6형제 말고도 자경(滋暻)씨대에 벌써 4촌간이 30여명. 3대째 자녀들까지 합치면 1백여명이 넘는다. 이들「매머드」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일년에 단 두번뿐. 5월8일 어머니 날과 8월 초순 모든 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간때 뿐이다.  어머니 날이면 생존해 계신 자경(滋暻)씨 자당(慈堂)에게 모두 모이며 여름방학 땐 부산 교외 송정리(松汀里)에 있는 여름별장이 모두 모여드는 것.  형제간의 우애 못지않게 효성이 지극한 것도「러키」의 특징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이해타산이 빨라 깊은 맛이 없읍(습)니다. 젊은이에겐 사회 첫발이 가장 중요하고 일단 어느 분야에 투신하면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자경(滋暻)씨는「러키」의 젊은 사원들에게 새해부턴 대폭 승진의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예전엔「골프」나 낚시, 사냥을 자주 즐겼지만 지금은 워낙 바빠 전혀 못하는 형편. 그 대신 틈이 나면 젊은 사원들과 어울려 김치, 깍두기에 막걸리를 마시는 소박한 재벌 2세다. <昌> <구자경(具滋暻)씨 약력>  ▲1914년 4월24일=경남 진양군(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 367의 2서 태어남  ▲1944년=진주중학교(5년제) 졸업  ▲1945년=진주사범학교 졸업  ▲1945년=부산공립사범학교 교사  ▲1950년=락희화학공업사 이사  ▲1959년=금성사 이사  ▲1962년=락희화학 전무이사  ▲1963년=부산시교위 위원  ▲1967년=대한상의 특별위원  ▲1968년=금성사 부사장  ▲1970년=락희그룹 제2대 회장,전경련 이사,연암문화재단 이사장,수출유공 동탑산업훈장  ▲1971년=부산문화TV 회장  ▲1972년=한국과학기술재단 이사 [선데이서울 73년 1월14일 제6권 2호 통권 제222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씨줄날줄] 호롱불/이춘규 논설위원

    형설지공(螢雪之功). 중국 진나라 손강은 집이 가난해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눈(雪) 빛에 책을 비춰 글을 읽었다. 어사대부 벼슬까지 올랐다. 역시 진나라 차윤은 기름을 구할 수가 없어 여름이면 수십 마리의 반딧불을 주머니에 담아 그 빛으로 밤을 새우며 책을 읽었다. 이부상서가 되었다. 이 고사를 토대로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형설지공’ 또는 ‘형설’이라고 한다. 공부하는 서재를 형창설안(螢窓雪案)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 그의 어머니 글닦기는 유명하다. 한석봉은 문전박대 소동 끝에 8년을 공부한 뒤에 어머니를 다시 찾는다. 어머니는 밤중인데도 호롱불(촛불로도 표현)을 끈 채 떡을 썰고, 석봉은 ‘자당임문안’(慈堂任問安)이라는 글을 쓰게 한다. 불을 밝히자 어머기가 썬 떡은 모양이 일정한데 석봉의 필체는 균형이 맞지 않자, ‘명백하게 서투르니 나머지 2년을 마치고 오라.’고 했다. 호롱불과 연결되어 전해지는 전설 같은 얘기다. 호롱불 전설은 참으로 많다. ‘호롱불 아래 천년의 이야기-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작가로부터 우리 역사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4년 전인 2007년부터 매년 열렸다. 종묘와 가묘의 차이점 등 다양한 주제로 스토리텔링이 펼쳐졌었다. 전문가들이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의 안내자가 됐다. 지난해 5월 28일부터 6월 25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종묘 향대청에서 진행됐다. 강원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첩첩산중의 ‘깊은 터’ 마을. 5가구 10여명의 주민이 살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다가 지난달에야 전기가 들어왔다. 주민들은 전기가 들어오기 전 호롱불과 양초로 어둠을 밝혔다. 일주일에 한두 번, 2시간가량은 발전기를 돌렸지만 보일러를 가동시키거나 세탁기를 돌려 미뤄둔 빨래를 하면 금세 닳았다. 도시 사람들이 일상으로 사용하는 냉장고나 TV, 컴퓨터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저녁밥을 지어먹고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이 마을처럼 전국적으로 221가구가 아직도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가 129가구로 60%가량을 차지하고, 경북 37가구, 경남이 24가구로 뒤를 잇는다. 지역 특성상 산지나 도서, 벽지에 한두 집씩 띄엄띄엄 있는 가구들은 전기를 공급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농촌의 특별 전기 공급이 아직도 특혜가 되나 보다. 1996년 가을에야 고향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던 충격이 새롭다. 전기 혜택은 아직도 꿈이자, 추억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열린세상] 진정한 정당개혁이란/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진정한 정당개혁이란/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달 재·보궐 선거에 참패한 한나라당이 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을 개혁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30석을 차지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야당보다 계속 높았으나 최근 들어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했으니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당명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에 대비하여 과거 공천심사위에서 하던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국민참여형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현행 제도 대신에 과거처럼 대선 후보가 당 대표를 맡을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친박은 이 제도가 박근혜 전 대표를 불러내어 정치적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젊은이가 당대표를 맡아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새로 선출된 황우여 원내대표는 감세정책 철회, 대학 등록금 반액 추진 등 서민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인물 교체, 제도 개선, 정책 변화를 통해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과연 우리들은 이러한 개혁 노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우리들은 민주화 이후 정당들의 개혁 경쟁을 여러 차례 보았으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였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지지 세력은 새천년민주당을 뛰쳐나와 국민 참여의 진정한 손발이 되겠다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으나 실패하였다. 당시 강준만 교수는 신당 창당을 위해 국민개혁당을 해체하는 것을 준열하게 비판했으나 유시민 대표는 갖은 교언영색으로 창당을 정당화했고 그의 열린우리당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당 개혁의 기치 아래 소위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하여 흥행에 성공하였으나 이 제도를 통해 대선후보가 된 노무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을 버렸다. 이뿐이 아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론’을 앞세우고 자신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를 없애고 천년 가는 정당을 만든다며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으나 10년도 못 가고 해체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의 조순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탄생하였다. 사실 신한국당은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 지방선거 패배 후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전략상 간판을 바꾸었다. 이처럼 민주화 이후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정당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당 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창당을 하거나 당명을 바꾸었다. 그 결과 한국 정당은 파리 목숨처럼 단명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여당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반드시 없어지는 매우 신기한 법칙이 등장하였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공들여 만들었던 민자당, 신한국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은 예외 없이 대통령의 임기 이후에 사라졌다. 이제 한나라당의 운명도 과거 여당과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인지, 예외가 만들어질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들은 정당이 진정으로 개혁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개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정당 개혁을 수없이 외쳤으나 아직도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문제점은 정당이라는 점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왜 아직도 한국 정당은 개혁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가. 그것은 한국 정당이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고 삐딱한 얼굴에 분칠만 한 탓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1년 정도 효과가 나는 화장품이나 덕지덕지 바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당 개혁이란 지도자의 손에서, 정치인들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정당을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되돌려 주는 일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당을 위해 일하는 국민들이 많아져 아무도 함부로 당을 해체하거나 다른 당과 통합하거나 간판을 바꾸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수백년을 견디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이 진정한 당 개혁을 통해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 영국의 보수당이나 노동당처럼 반석 위에 우뚝 서기를 바란다.
  • [부고] 김학원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학원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22일 오후 별세했다. 64세. 김 전 의원은 지난달 18일부터 패혈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숨을 거뒀다. 고인은 충남 청양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로 재직하다 1994년 민자당 서울 성동을 지구당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 조세형 부총재를 2000여표 차로 따돌리고 금배지를 달았다. 1998년에 김종필 전 총재의 권유로 자민련에 입당했고 이후 사무부총장, 대변인, 원내총무를 거쳐 대표까지 올랐다. 2006년 한나라당에 입당, 최고위원을 지냈지만 18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고인은 지난달 14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전·충남 지지모임인 ‘충청미래정책포럼’의 상임공동대표를 맡는 등 최근까지 활발한 정치 활동을 벌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차명숙씨와 상기·정기씨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7시 30분이며, 장지는 충남 천안추모공원이다. (02)2227-7550.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정치권-방통위-이통사, 통신비 인하 ‘3색’

    정치권-방통위-이통사, 통신비 인하 ‘3색’

    정부의 통신비 인하 태스크포스(TF)의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샌드위치 신세다. 한나라당은 방통위가 내놓은 인하 방안에 알맹이가 없다는 질타를, 통신업계는 시장질서를 뒤흔드는 포퓰리즘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통신비 인하에 대한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책 조율도 이통 3사가 구체적인 인하 방안을 제시하는 다음 주에나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9일 방송통신위원회 및 업계 등에 따르면 SK텔레콤 등이 오는 23일 구체적인 인하 방안을 방통위에 제시한다. 업계가 내놓을 인하 윤곽도 다음 주면 드러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현재 거론되는 통신비 인하 방안에 반대하며 ‘대폭 인하’를 주문했다.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8일 신용섭 방통위 상임위원으로부터 TF 방안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현재 방안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휴대전화 기본료 인하 및 가입비 폐지, 문자메시지(SMS) 무료화, 정액요금제 개편 등을 주문했다. 방통위는 애초부터 직접적인 요금 인하보다는 요금 정책 개편에 무게를 뒀다. 휴대전화 요금제와 유통구조의 개편, 재판매 사업(MVNO) 도입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하 효과를 가져오는 방안에 중점을 뒀다. 이통 3사의 반발이 큰 기본료 인하와 가입비 폐지 등을 강제할 적절한 정책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통신기업의 직접적인 매출 감소를 유발하는 방안은 손대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통신비를 둘러싼 정부와 한나라당의 불협화음은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오락가락하는 행보도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 위원장은 지난 3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20% 요금 인하는 지켜졌다.”며 추가 인하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같은 달 취임사에서는 “기본료와 가입비의 인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어 4월 기자간담회에서는 “국내 통신요금은 다른 비용에 비해 굉장히 싸다.”는 발언을, 같은 달 국회에서는 “SMS 무료화를 검토하겠다.”고 말한 후 곧바로 “발언이 와전됐다.”고 뒤집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인하 방안이 통신비의 몇%를 인하하게 되는 것인지는 들여다 봐야 한다.”면서도 “기본료와 가입비는 왜 내리는가.”라고 말해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직접적인 인하 효과가 큰 기본료 및 가입비 수술은 우회하고 곁가지만 논의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통신업계는 현 매출 구조에서 기본료 인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통 3사 전체 매출액의 50%에 이르는 기본료가 인하되면 망 고도화 투자도 타격을 입게 된다는 주장이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한 올해부터 이통사의 성장성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 1분기 이통 3사의 전체 매출은 10조 5523억원. 영업이익 1조 4681억원, 순이익 1조 1729억원을 기록했지만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SKT는 3.9%, KT 3.3%, LG유플러스는 8.6% 추락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요금 인하의 파장이나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아니면 말고’ 식의 포퓰리즘 정책이 남발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선심쓰듯 내놓는 정책에 이통사만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힐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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