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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들 일단 세금부터 더 내 쓸 곳도 당신들이 정하면 돼”

    “재벌들 일단 세금부터 더 내 쓸 곳도 당신들이 정하면 돼”

    저자의 제안 가운데 흥미로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경쟁’ 민주주의 대신 ‘일치’(Concordare)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경쟁 민주주의란 지금처럼 선거에서 승리한 이들이 정권을 배타적으로 차지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일치 민주주의는 선거 득표율에 따른 권력 분점을 뜻한다. 가령 대선에서 A후보가 60%, B후보가 40%의 지지를 얻었다면 내각의 40%를 B후보 정당에다 떼주는 것이다. 외교·국방은 A후보의 정당에서, 재정·보건은 B후보의 정당에 맡기는 방식 같은 것이다. 이런 제안을 내놓는 이유는 권력을 배타적으로 부여하다보니 정치가 극단적인 말과 이념 쇼를 통해 상대를 매도하는 소모적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진보, 보수할 것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비웃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경쟁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다수결 사상은 정당이 지금보다 명확한 세계관과 어느 정도 서로 다른 체제사상으로 차이가 있던 시절에서 기인한 것”인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차이를 보이는 정당이 있기는 할까 싶은 현 상황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전봇대 뽑고 비즈니스 프렌들리하겠다고 요란을 떨더니 결국 재벌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음미해볼 법하다. 또 하나는 증세에 대한 얘기다. 저자는 부자나 재벌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 증세하되 증가분이 어디에 쓰일지는 그들에게 맡겨두자고 제안한다. 가령 5% 증세를 해서 세수가 10조원 증액된다고 하자. 정부는 이 10조원이 쓰일 곳이 적힌 리스트를 공개한다. 무상급식이나 보육비 지원 사업, 학교폭력 예방 사업, 영어 공교육 지원 사업, 소상공인 보호 사업 하는 식이다. 그러면 A그룹 회장은 자기가 더 내는 세금 가운데 일부는 여기에, 다른 일부는 저기에 사용하도록 지정토록 하고 그에 맞게 집행한다. 이는 이익 분배가 겉으로는 경제논리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논리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다. ‘회장님’들은 꼭 검찰청이나 법원을 드나든 뒤 사회공헌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좋다는 사회공헌임에도 대개의 반응은 “일단 세금부터 똑바로 내시지.”라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의 제안은 기부금과 세금 사이의 타협이다. 세금이라는 국가 공식 체계를 존중하되, 납세자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오해는 말길. ‘내 행복에 꼭 타인의 희생이 필요할까’(리하르트 프레히트 지음, 한윤진 옮김, 21세기북스)는 이런 심각한 문제만 다루진 않는다. 2008년 한국에 소개된 ‘나는 누구인가’라는 교양철학서로 인기를 모았던 저자는 경제학이 상정하는 이기적 인간,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반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인간의 본성은 이타적이며, 사회제도는 이 이타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이론 덕분에 철학, 뇌과학, 신경학, 심리학, 생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에까지 이 논쟁은 번졌다. 이들 학문들을 연결해 복잡계 연구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나오면서 전방위로 뻗어나가고 있다. 책에도 이는 고스란히 반영됐다. 책은 모두 38장인데, 각 장마다 이런저런 이론과 실험이 최소한 2~3가지씩 등장한다. 저자에게 고마운 점은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글쓰는 철학자답게 이를 매끄럽게 정리해뒀다는 사실이다. 곳곳에 위트도 넘친다. 가령 꼬리말이원숭이 실험결과를 두고 인간 본성에 정의감이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다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 ‘아빠, 이건 옳지 않아요’라는 말로 나를 공격했다. 그 불공평의 대상은 나다. 아들은 자신이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그때까지 즐거웠던 베개 싸움이 불공평하다고 한다. 대게 네 살에서 다섯 살의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꼬리말이원숭이의 정신이 나타난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것을 정의감이라 불렀다.” 그래서 책을 덮을 때 떠오르는 인물은 알랭 드 보통이다. 적당한 지적허영에다 이런저런 실험결과를 핵심만 추려 잘 던져주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가 독일 사람이어서인지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섬세하고 장황한 문장 대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한다. 동시에 복잡계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산타페연구소 대신, 영장류에 대한 학제간 연구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등장한다. 저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끌어들이지만 본격적 논쟁은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에서 시작한다. 다윈의 오른편에 ‘사회적 다위니즘’을 주장한 토머스 헉슬리를, 왼편에 ‘상호부조론’을 통해 헉슬리를 강하게 비판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을 앉힌다. 보통 아나키스트하면 ‘국가 없이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책 없이 낭만주의적인 공상가’를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각종 실험 결과들이 크로포트킨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는 사실을 지적해나간다. 인간 본성이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한 지적유희가 아니다. 앞서 봤듯 오늘날 한국 사회에 음미할 대목이 많다. 가령 ‘감성 대 이성’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2001년 심리학자 조나단 화이트의 연구결과를 등장시킨다. 그 결과를 보면 ‘나꼼수’ 김어준이 지난해 내놓은 ‘닥치고 정치’(푸른숲 펴냄)에서 ‘무학의 통찰’이라는 이름으로 주장했던, 이성이란 결국 감정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맞닿는다. 인간이 경제에 대해 윤리와 도덕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배후세력의 조종’이나 ‘좌파 관점으로 덧칠된 경제·역사교과서’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으로서의 ‘직관’ 때문이다. 또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찬양하는 바람에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한 미국에 대해 저자는 “21세기임에도 여전히 19세기적 비스마르크 사회개혁입법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웃는다. 이는 “미국이 역사가 짧아서 그렇지 결국은 유럽을 따라갈 것”이라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자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박사의 판단과 맥을 같이한다. 김종인 박사는 독일 유학파인데, 유학 당시 독일은 질서자유주의(책에서는 ‘신자유주의’라 표기된다)가 대세를 장악했다. 저자는 31장 ‘프라이푸르크로 돌아가는 길’에서 질서자유주의의 본산 프라이푸르크학파를 다룬다. 2만 2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소득 2만弗 넘으면 ‘행복도’ 더 안 오른다

    한 때 ‘747’이 유행이었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곧장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점보기의 이미지가 경제성장이었다. 지금으로선 가망 없지만, 실제 성취됐다 한들 우리는 정말 행복했을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내는 계간지 ‘민주’ 2012 신년호에 실린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패러다임의 전환 - 성장에서 공존과 행복으로’라는 글에서 ‘아니오.’라고 답한다. 사실 아니오라는 대답은 쉬워 보인다. 돈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살라는, 자기합리화에 쓰라는 건지 약 올리는 건지 헷갈리는 어법은 늘 있었다. 이 교수의 접근법이 다른 것은 이를 경제학적으로 풀었다는 데 있다. 이름 붙이자면 ‘행복친화적 성장’이다. 먼저 돈 많이 벌었다고 행복한가. 미국은 1945년부터 200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3배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전국여론조사본부에 축적된 자료를 뒤지다 보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은 변동이 없었다. 일본은 1958년에서 1991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6배나 증가했는데 행복하다는 대답은 비슷한 비율로 나왔다. 왜 그럴까. 로널드 잉글하트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소득과 행복감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각국의 통계를 모아 분석해 봤더니 기준점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결론이 나왔다. 2만 달러 이하일 때 경제성장이 이뤄지면 행복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그런데 2만 달러를 넘어서고 나면 경제가 성장해도 행복도는 그리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잉글하트 교수는 이를 ‘경제성장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30평대 아파트, 중형차, 대형TV 같은 중산층의 아이콘들이 처음 마련했을 때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감흥을 주지 못하는 까닭이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747이 달성되지 못했지만, 달성됐다 한들 행복은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장의 약발이 떨어질 때”가 된 것이다. 그러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2만 달러가 평균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만 달러 이상의 사람들은 소득이 늘어봐야 행복이 늘지 않는다. 우리 사회 2만 달러 이하의 소득자들을 2만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행복도는 증가한다. 이 교수는 “통계적으로 보면 우리 국민 태반이 연소득 2만 달러 아래 묶여 있다. 행복친화적 성장은 이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득을 끌어올리는 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1. ‘저항’의 시대와 그 기원 누군가 제게 2000년대 문학에게 주어질 단 하나의 이름을 꼽으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저항의 시대’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저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저항’의 기표, 이를테면 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주체를 둘러싼 폭력들에 대한 투쟁 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최근의 문학이 보여주는 강렬한 ‘저항’들은, 오히려 역사적 투쟁이 끝났다는 저 냉엄한 현실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제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지난 몇 해간 문학은 끊임없이 그가 떠맡을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에 대해 고민해왔고, 또 우리 앞에 그 실천적 노력을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실은 저의 고민도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갑작스럽게 대두된 ‘시와 정치’에 대한 격렬한 저 논쟁의 배경에는, 과연 일반적인 평가에서처럼 단지 촛불시위나 용산참사와 같은 문학 외적인 요인만이 작용했던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진단은 문학이 예술적인 층위에 안주하면서도 대중적 관심을 추수하는, 일종의 권위적 시장주의를 드러냈다는 음울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심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보기에, ‘시와 정치’논쟁은 지나치게 끈질기고 또 적극적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단순한 사회적 정세 이상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저항의 시대’가 숨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2000년대 들어서 낯선 감각과 새로운 어법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출현과 반응, 이 집단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소통불능의 자폐적이고 이기적인 문학이라는 신랄한 비판이나 조금만 더 자아 밖으로 나오라는 애정 어린 충고에서부터, 여러분이야말로 ‘도래’할 문학적 민중이 될 거라는 뜨거운 격려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반응들의 폭발에 정작 시인들은 당황했다. 새로운 시들을 둘러싼 이 논의들은 여러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문제, 즉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로 느껴진다.(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 ‘창작과 비평’ 2008년 겨울호. 69쪽) 문학이 고민하는 정치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와 정치’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에서부터 이미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가 미학적인 완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귀결은,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당연한 정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진부한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라는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어째서 진은영은 특정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낯선 시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80년대와 결별한 후 정치에 대한 반동적인 면모를 보여 왔던 문학이,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목격한 후 뒤늦게 정치성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는 해석은 지나친 음모론같이 보입니다. 반면에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젊은 시인’들을 주목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진은영이 가진 문제의식이란 현실과 문학 사이의 괴리에 대한 즉흥적인 고민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시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면에서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책제목 ‘감각적인 것의 분배: 감성론과 정치’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의 문제의식과 결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진은영, 앞의 글, 71쪽) 진은영이 소개한 랑시에르의 감성론은, 미적 자율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단에서 이 이론을 열렬하게 환영했던 데에는, 혹시 ‘시와 정치’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의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 문학이 직면했던 거대한 과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넘어설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근대문학’이며, 근대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일종의 상상적 권위에 불과하다는 이 충격적인 선언 앞에 당시 우리 문단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유령처럼 배회하던 ‘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울과 겹치면서, 가라타니의 종언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으로 다가왔던 까닭이죠.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비평가들은,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문학의 종언-이후’에 대한 갖가지의 견해들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가라타니의 태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종언의 기표일 뿐이라거나, 그가 논의하는 내용이 일본문학만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식의 비생산적인 사족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애초에 가라타니가 종언을 이야기한 맥락이 문학의 소멸을 말하는 비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라타니가 문학에 요구한 것은 종언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표제를 내걸었음에도 실제로 그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 세계자본주의의 전개양상이었던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따라서 문학에 대한 기대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말은, 철저하게 ‘근대문학’에 부여된 상상적 층위의 정치적 역할과 그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라타니에게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었지만, 당시 우리 문단은 그것을 성급하게 ‘문학’에 국한시키며 오해를 낳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급조된 대응담론이 아니라, 고진이 ‘종언’을 선언한 이후에 등장했던 우리의 문학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정치’의 자유, ‘정치’로부터의 자유 ‘근대문학의 종언’이 등장했던 해는, 우리 문단에서 ‘미래파’라는 새로운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보내던 우려와 달리, ‘미래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환영하는 이들과 비판하는 이들 모두에게 중심담론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인들이 과거와 같이 (담론화하기 쉬운)특정 논의의 틀 안에 규정되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미래파 논의가 이토록 빠르게 문단의 중심담론으로 부상한 데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이후 전개된 ‘미래파 논쟁’의 주된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연 ‘미래파’란 존재하는가, 둘째는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논쟁에 참여한 거의 모든 이들이, 별다른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래파 논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세가 한풀 꺾였던 것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적 ‘새로움’에 대한 믿음은 ‘미래파’라는 분류가 유명무실해진 지금까지도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단순히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작업을 분석하여 그것이 ‘미래파’의 증거가 되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우리 문단에 이러한 논의가 등장했고 또 불붙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시의 미래는 이들이 적어나갈 것이다. 이들에게는 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이 없고, 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다. 그 대신에 다른 게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있다.(권혁웅, ‘미래파: 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149~150쪽) 가라타니는 문학의 종언을 가져온 중요한 전제로서, 이제 더 이상 문학이 현실의 ‘정치’나 ‘실천’을 대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권혁웅은 ‘채무의식’이 없어짐으로써 우리 시가 시적인 새로움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차이로부터 시의 ‘새로움’이 가진 기원을 엿보게 됩니다. 이제 시는 80년대적인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 즉 ‘실천’이라는 기표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현실이 80년대의 시가 직면했던 폭력적인 억압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의 억압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실천을 상상적으로 담보하던 과거의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는 ‘우리에게/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진은영, ‘70년대産’)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들과 맞설 것을 요구받습니다. 가라타니가 ‘정치의 자유’로 인해 발생한 이 모순적 상황을 종언의 원인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이 모순된 상황을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후 겪는 일시적인 홍역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분기점이야말로 어째서 진은영이 랑시에르의 감성론을 급히 ‘수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는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새로운’ 시가, 어떻게 여전히 남아있는 저 정치에 대한 요구를 떠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도 첨예하게 미학적이’고 싶다는 진은영의 고백에는, 전자에 의한 ‘실천’의 획득과 후자에 의한 ‘새로움’의 향유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가 진은영이 랑시에르를 소개한 배경에 ‘근대문학의 종언’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말한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시적인 ‘새로움’에 대한 요란한 환영, 심지어는 강박적인 것으로마저 여겨지는 저 ‘새로움’에 대한 추수는 단순한 예술사조의 변천이나 시대적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로 얻어낸 것이 아니었던 ‘정치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강한 채무감에서 기인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논의들은 ‘채무의식’의 극복이 ‘새로움’의 원동력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셈이지요. 아마도 신형철은 이러한 진실에 일정 부분 닿아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황지우의 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는 미학과 정치의 논의는, 앞선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한몸이었던 사례가 우리 시사(詩史)에 있는가? 물론 있었다. 예컨대 황지우의 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의 시가 대표적으로 보여준, ‘회의하면서 긴장하는’ 그 언어의 배후에는 권력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억압이라는 외적 상황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야만 하는 말의 분열 속에서, 언어의 회의 혹은 언어의 긴장은 (시인 자신의 의지나 역량에 힘입은 바 못지않게) 상당부분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덕분에 그의 시는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었다.(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창작과 비평’ 2010년 봄호, 375쪽) 과연 최근 우리 시는 80년대의 채무의식을 ‘극복’하였을까요? 신형철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시가 정치를 떠맡을 수 있었던 원인이 현실정치의 불가능함에 있었다는 가라타니의 견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날 ‘시’와 ‘정치’가 확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인이 가진 분노의 감정이 미학의 이름을 통해 고스란히 정치적 정념의 형태로 분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형철 또한 이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새로운 시와 비평에 대한 요구가 ‘아무도, 적어도 시에서는, 그 어떤 발화도 억압하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방향이란 ‘첨예하게 미학적인 시들에서 우선 그 미학적인 것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 이후에 거기에서 정치학적인 것까지를 읽어내는 일’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신형철의 화법에서, ‘실천’의 강박과 ‘새로움’의 강박을 서로 다른 것으로 떼어놓으려는 시도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들이 지니는 동일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또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시와 정치’는 영원한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를 ‘고유한 주체의 합리성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행위 양식’으로, 시를 ‘주체가 스스로의 자유 안에서 건네는 내밀한 고백’이라고 정의할 때, 시와 정치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을 거부했던 이유는, 시가 가지는 본연의 속성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훌륭하게 완성된 공동체에게 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가 가지는 힘이란 공동체의, 세계의 질서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과정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논의하던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며, ‘정치는 그 자체로, 즉 고유한 주체 때문에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상징체계 속에 ‘없음’으로 규정된 ‘자리-없음’(placelessness)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실재의 공간이라고 말했던 라캉의 언명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란 처음부터 통치 과정(치안)의 바깥,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만이 가능한 행위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깥의 존재양식이야말로 시와 정치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버린 권위’라고 생각했던 과거 문학의 정치성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방금 이야기한 ‘정치’와는 사뭇 다른 층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시’라고 불러온 것들은,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실체가 있는 폭력들에 맞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도래할 혁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형철도 이미 지적했듯이, 과거 우리 시들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맥락에 기댄 결과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시가 추구해야 할 정치성이란 랑시에르의 진단과 같이 본래적인 의미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단순히 이전과 다른 ‘정치’의 정의에만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경계할 것을 주장했던 전위적 언어에 대한 맹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벌충하려 하였으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텅 빈 해체’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시 비평의 영역에서 그동안 관성적으로 제기되어온 ‘소통’에 대한 요구가 지닌 본질적 문제점은, 개인과 사물 세계를 ‘자명한 것’들로 번역하려는 ‘투명성’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시적 공간에서 보존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물의 불투명성이며, 빛의 언저리에 드리워진 기이한 그림자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닐까? (…) 그러므로 낯선 현전의 형식들에 직면해 여전히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비평이 우선 대결해야 하는 것은,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사소통 공동체의 지평에 나타난 저 낯선 얼룩을 깨끗이 지우고자 하는 순백을 향한 비평 자신의 욕망이 아닐까? (함돈균, ‘균열, 불면, 기화, 그리고 여백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가’,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9, 133쪽) 함돈균이 내놓은 ‘불투명성’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오류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명한 것’과 ‘투명성’을 추구하는 질서란 개인과 사물을 명확하게 재단함으로써 그것들을 교정하고 규정지으려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랑시에르가 ‘세계의 감성분할행위’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한 행위를 뜻하지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에 대한 저항이란 혁명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규정들을 무화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려한 수사와 문장들을 걷어내고 함돈균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가 비평이 나아가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비평 자신의 욕망’과의 대결이란, ‘낯선 얼룩’을 보존하고 ‘불투명성’을 획득하는 작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돈균이 이것을 결국 우리들이 직면한 ‘낯선 현전의 형식’에 대한 옹호를 위해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논리는 세계에 대한 전위의 저항을 제시한 이후에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낯선 형식’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롭게 출현한 시들을 ‘낯선 현전’과 ‘낯선 형식’으로 명명한 뒤, 이들에게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의 반동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함돈균만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전반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의 논리적 모순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 문학담론 전체의 병폐를 폭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디로 해체나 전위를 통한 저항의 대부분은, 다분히 사후적인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정치성이었던 셈입니다. 백낙청은 자신의 글에서, 시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들이 가지는 이러한 환원론적 오류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통상적인 의미의 윤리 내지 도덕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문학의 진정한 윤리임을 강조하는 데 머물 경우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현실과 무관한 또하나의 정언명령을 발하는 것밖에 안 된다.’(백낙청,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20쪽)고 강조합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논의들이 가지는 정치성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한 껍데기라는 것과 함께, 이제는 그러한 논의방식들이 하나의 새로운 정형이 되어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낙청은 그 너머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 즉 도(道)와 ‘도의 힘’으로서의 덕(德)에 대한 사유가 실종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며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의 글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도(道)는 노자의 ‘道’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규정적 명명을 거절하는 상태로서의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덕(德)을 일종의 공동체적 당위성, ‘세계-내-존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점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우리는 백낙청의 이 진술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의 한계를 재차 강조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을 이야기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허무주의가 앞뒤 없이 계속된 막무가내식 해체의 결과임을 꼬집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백낙청의 지적은 매우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지적을 어디까지나 ‘모더니즘 논의’의 문제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낙청은 (모순을 드러낸)이들과 달리 ‘다른 흐름’들이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의 구체적 성과로 자신이 전개해 온 리얼리즘 논의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리얼리즘 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랑시에르의 감성론보다 훨씬 우리의 현실에 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역시, 마구 가거나 너무 가서는 잘 갈 수가 없다’는 경구적 발언을 인용하는 백낙청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자신이 발전시켜온 리얼리즘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그의 함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문학이 직면한 문제가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전에 없던 시적 변화들은 문학이 직면한 고민을 그대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더니즘 논의’로 한정짓는 태도는 여전히 ‘시’와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강동호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정치성의 논의를 상당 부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재현행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오롯이 인정하고, 그 실패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우회로를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시의 잠재적 정치성을 긍정적 어법인 잠재성의 정치로 바꾸는 일은 오롯이 독자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아울러 저 시적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찾아주는 것, 즉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사하고 그것을 현실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을 감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비평가의 몫이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의 미학과 사회적 현실 간의 상관도를 상세히 규명하는 사회학적 분석에 해당하며, 이를 근거로 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던지는 복화술사의 정치에 속할 것이다. (강동호,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312쪽) 시의 언어는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처한 시공간을 써냄으로써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존의 ‘텅 빈 해체’와 결별할 수 있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과감하게 다가서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강동호가 ‘비평의 의무’라고 여기고 있는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란, 어디까지나 시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예외성 너머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가 세계에 대한 어떠한 물리적 강제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양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전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이미 시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시인에게 ‘예술가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일이란 기만에 다름 아닌 셈입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시는 정치적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가 가진 예외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강동호가 지적했듯 오로지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초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의 예외적 속성에 대한 고의적인 망각이란, 시가 ‘정치적인 것’에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현실정치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를 가지고 통치행위에 연관된 영향력을 고민하려다 보니, 우리 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형철이 말한 ‘역사적 맥락’이 소멸한 지금, 더 이상 망각의 방법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학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신을 첨예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조건’들을 낳았던 본래의 ‘정치’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상상적 대리자’에서 ‘상상의 대리자’로 앞서 저는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문학의 의무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두 넘어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모더니즘-리얼리즘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자는 맥락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리된 담론으로 여겨져왔던 각각의 한계들을 한번에 조망하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극복할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라타니는 자유로워진 ‘정치’의 시작이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기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직면한 위기는 달리 보면 ‘정치’의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격렬한 투쟁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음에도, 우리에게 ‘80년대적 실천’은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여전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두 가지 과제를 오늘의 정치에 요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이미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승리의 착각을 극복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투쟁의 과정을 경험하며 우리에게 각인된 ‘실천’의 기표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과제는, 흥미롭게도 문학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유입 이후, 이제까지 문학은 더 이상 대문자로 적어야 할 정치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를 내달려왔습니다. 지금에야 그 유행이 거의 수그러들었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구호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러나 80년대의 투쟁이 맞서왔던 억압의 구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깊은 이면에 내재된 채 현존하며, 오히려 더욱 교묘한 전술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허용된 자유의 형태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자유는 문학이 겨냥할 만한 명확한 적대를 제공하지 않았지요. 이후 문학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해체주의의 대안적 담론을 추수하자니, 그것은 이미 ‘거대담론의 붕괴’라는 잘못된 필요조건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고, 과거의 실천적 구호를 답습하자니 오히려 그 적대행위 자체가 초자아적 정언명법이 되어 주체를 구속할 뿐이었습니다. 확고한 결단이 불가능했던 문학은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표류하였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기형적인 ‘미래파’의 규정과, 그들의 부족한 정치성을 벌충할 ‘시와 정치’의 논의였던 셈입니다. 흑백논리의 모순을 회색이 되어 피해보고자 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문학의 생명력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가라타니의 진단대로 문학은 독자들에게 더 이상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미적 모더니티의 운명’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이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방향성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문학이 철저하게 현실정치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역할을 재인식할 것을 주장합니다. 과거의 문학이 불가능했던 정치의 ‘상상적 대리자’ 역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면, 이제부터 문학은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정치의 불가능한 감성을 떠맡는 ‘상상의 대리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벤야민은 이미 1929년에 이러한 개념의 기초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 ‘공산주의자 선언’이 오늘날에 내리는 지령을 파악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의 얼굴 표정을, 매분 60초 동안 째깍거리는 자명종의 숫자판과 맞바꾸며 짓고 있다. (발터 벤야민, ‘초현실주의’, ‘발터 벤야민 선집 5’, 길, 2008, 167쪽) 오늘날의 문학은 현실정치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역할을 짊어짐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획득해내야 합니다. 우선 첫째는 ‘정치적인 것’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정치를 대신하여 ‘정치’만의 고유한 미래적 지향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수많은 조건들의 제약을 받는 ‘실천’을 대신하여, 문학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아나키스트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억압의 구조가 주관적 폭력에서 객관적 합리성으로 이행된 이상, 현실정치의 조직적인 치밀함만으로는 저 합리성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이들에게 객관을 넘어설 상상력을 부여함으로써, 저 ‘정치’에 부재하는 ‘미래에의 의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벤야민에게 ‘초현실주의자’로 상징된 예술가의 의무가 다음 시대로부터의 지령을 파악하는 것이었듯이, 시인이 세계를 조망하는 소실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란 처음부터 저 상상력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에 부여된 두 번째 역할은, 우리 주변의 ‘얼굴 표정’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라보는 일입니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한 번도 진보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부살해를 통해 권력구조를 뒤집은 형제는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권좌에 앉음으로써 권력을 더욱 강하게 재생산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혁명’을 자처했던 지난 역사의 모든 변화들은, 대개 그 결과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낳는 반복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됩니다. 이제까지의 혁명이 다시 권력이 된 까닭은, 그 전개과정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정치의 과정이 미처 목격하지 못하는 그늘에까지도 자신의 시선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이야말로 모두를 끌어안을 영구한 혁명, 벤야민이 희구했던 단 한 번의 진보를 완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식을 붙인다 하더라도, 문학이 감행하는 정치란 처음부터 예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라캉적 ‘없음’이 된 자리들, 상징체계에서 추방된 이들과 초대받지 않은 미래를 세계 속에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감성분할을 재분할하는, 상징계를 넘어설 ‘미학적 예술 체제’의 실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 “15세기 조선 엘리트들은 국가실익 따져 파병 결정”

    “15세기 조선 엘리트들은 국가실익 따져 파병 결정”

    최근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결정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1960년대 베트남 파병을 필두로 한국 현대사에서 해외파병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해외파병이 현실적으로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볼 때 파병을 둘러싼 찬반 논리는 대한민국 지도층이 한·미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냐에 따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해외파병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계승범(49)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명·청의 파병 압력에 대한 조정의 대응을 통해 조선 지배층의 중국관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선은 정식으로 명의 조공국이 된 1401년부터 개항(1879년) 직전까지 약 470년간 명 혹은 청의 파병 압력을 놓고 모두 열다섯 차례 논의를 벌였다. 계 교수는 최근 펴낸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푸른역사)에서 해외파병을 키워드 삼아 조선 엘리트들이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분석했다. 계 교수에 따르면 15세기 성종 대까지만 해도 조선 조정은 명이 파병을 요청하면 국가의 실익을 세심히 저울질했다. 세종 대에 몽골 원정을 이유로 명이 청병(請兵)했을 때는 만장일치로 거절했고, 성종 대에는 찬반논쟁을 벌여 뒤늦게 최소의 병력을 보내 생색만 내는 전략을 취했다. 사대(事大)와 국익이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나 16세기 중종 대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양반지배층이 명을 부모의 나라로 인식하고, 소중화 의식이 확산되면서 사대와 국익을 동일선상에서 이해하는 절대적인 사대관이 자리잡았다. 광해군 대는 명이 네 차례나 파병을 요구하면서 조정의 논쟁이 가장 첨예했다. 광해군은 현실적 정세를 이유로 파병을 반대했지만 신하들의 파병 당위론에 결국 뜻을 꺾어야 했다. 계 교수는 “파병논쟁이 국익을 고려한 정책대결에서 국가의 정체성 논쟁으로 넘어가면 논란이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는 현재의 한·미관계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계 교수는 “한·미관계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대미관계를 정책대결로 보지 않고, 정체성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선 엘리트들의 이 같은 태도는 당시로선 세계의 중심인 중국을 따라가고자 하는 그 나름의 글로벌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한 채 자기합리화를 위해 내면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한 대응방식은 현명하지 못했다. 명의 붕괴를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문명의 붕괴이자 천자의 종말로 받아들인 결과는 300년 뒤 근대화의 물결에서 한반도를 고립시키는 원인(遠因)이 됐다고 계 교수는 판단한다. 그는 “명·청 교체 이후에 조선의 양반지배층이 택한 존명의리 이데올로기 정책은 단기적으로, 또 지배양반층 차원에서는 성공적이었으나 거기에는 큰 대가가 따랐다.”고 말했다. 조선 지식인의 대중국관이 오늘날 대한민국 지식인의 대미관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계 교수는 “상대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영향으로 볼 때 공통점이 많다.”면서 “냉전 이후 다원화 사회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Healthy Life] (28) 다이어트

    [Healthy Life] (28) 다이어트

    주로 여성의 고민이었던 다이어트가 어느새 남녀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날씬하고 건강한 체형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끝모르게 커지고, 여기에다 비만의 유해성이 부각될수록 다이어트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오죽했으면 ‘살과의 전쟁’이라고 할까. 이런 다이어트 문제에 대해 서울대병원 교수를 역임한 유태우(신건강인센터 원장) 박사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인에게 체중은 삶 그 자체입니다.” ●정상 체중이란 무엇인가? 사실 체중에 대한 시각은 남녀가 다르다. 남자는 보기 좋고 풍채가 있어보이면 대부분 비만이고, 비만으로 보이면 대부분 고도비만이다. 반면, 여자는 통통해 보이면 정상이고, 늘씬해 보이면 저체중이다. 이는 남녀간 지방 분포의 차이다. 남자는 주로 배와 내장에 지방이 축적되는 반면, 여자는 피하지방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정상체중은 키에 따라 다른데, 표준은 20대 때의 체중이 정상체중이라고 보면 된다. 체중은 저체중·적정 체중·정상 체중·과체중으로 구분(표)하는데, 건강과 외모를 동시에 얻고 싶다면 여성은 적정 체중을, 남성은 정상 체중을 목표로 하면 된다. ●나잇살이라는 것도 있지 않는가?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살이 찐다고 믿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 아니라 많이 먹고 덜 움직여서 찐 살이다. 더러는 젊을 때와 똑같이 먹고 활동하는데도 살이 찐다고 말한다. 남성의 경우 30대 들어서면 가정과 직업을 가지면서 활동·운동량은 크게 줄고 회식은 늘어난다. 먹는 것은 2배인데 활동·운동량은 반 토막이 나는 것이다. 여자도 다르지 않다. 출산과 가사 노동에 지쳐 웬만한 곳은 차를 타려 하고 틈만 나면 눕는다. 이렇게 해서 찌는 살이 나잇살이다. ●비만도 유형이 따로 있는가? 전문의 초기에 여성들에게 많이 속았다. 얼굴도 갸름하고, 팔다리도 날씬한데 체지방이 35%를 훌쩍 넘더라. 도대체 몸 어디에 살이 숨어 있을까 궁금했다. 태생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체지방이 많다. 남성은 체지방이 25%를 넘으면 비만이지만, 여성은 30%를 기준으로 삼는다. 남성은 지방이 내장지방으로 쌓이지만 여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피하지방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각 유형에 따라 살 빼는 방법이 다른가? 살 빼는 방법은 같다. 단, 하체비만은 얼굴과 팔다리가 먼저 가늘어지는 과정을 거쳐 하체가 빠지고, 그 후에 얼굴과 팔다리가 다시 제 모습을 찾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평생 다이어트 압박감을 느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것으로 안다. 기를 써서 체중을 빼봐도 며칠 새 원래 체중으로 되돌아 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남만큼 먹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남과 같이 있을 때는 덜 먹다가도 혼자 있으면 보상심리 때문에 더 많은 음식을 먹어치운다. 그러고도 그런 사실을 잊어버린다. 셋째는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빠져 나올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자기합리화다.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여기에서 생긴 것이다. ●이런 문제를 모두 고려한 다이어트가 가능한가? 현실적으로 감량 가능한 한계는 3개월에 30㎏을 빼는 것이다. 따라서 체중이 130㎏이면 6개월, 160㎏이면 9개월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이런 감량은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단식이나 한 음식만 먹기, 이뇨제 등 약물 다이어트, 장 청소, 구토 등의 방법은 탈수나 전해질 이상이 따르며, 심하면 허약감과 쇼크가 오기도 한다. ●‘내몸훈련’은 생소한 방법인데…. 한마디로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먼저, 자신의 몸의 작동원리를 파악하고, 자신의 현재 모습과 능력을 인정하며, 이를 토대로 스스로 시도하면 된다. 물론, 처음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약물 등을 이용할 수 있지만 긍극적으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시도하고 끌어가야 한다. 이 점이 핵심이다. ●더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제시해 달라. 다이어트나 체중 감량으로 목표를 이룬 사람은 10명 중 1∼2명에 불과하고, 그 체중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고작 1명 정도다. 이유는 ‘체중은 내 삶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잊고 일시적인 방법에 매달리거나, 의사 등 남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체중은 섭취 열량이 많으면 당연히 는다. 우리의 생활환경을 보면 소모 열량을 늘리기는 매우 어려운 반면 섭취 열량은 쉽게 늘어난다. 기를 쓰고 살을 빼도 다시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것은 원래대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소모 열량이 다른데 밥그릇은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걸 고치지 않으면 평생 체중과 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반식훈련이다. 어려울 것 없다. 먹는 것을 반으로 줄이면 된다. 서양식 다이어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반식훈련의 기본은 ‘먹던 것을 먹되, 평소보다 줄여 먹는다.’는 것이다. 반식훈련을 시작하면 위의 용적이 줄어 2주 후부터는 이전의 반만 먹어도 포만감을 느낀다. 반식훈련이 끝나면 체내의 지방을 끌어다 쓰는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일반인은 여기에 보통 5∼6시간이 걸려 제 때 식사를 거르면 배고픔과 어지럼증, 무기력감으로 고통을 받지만 반식훈련이 된 사람은 이 시간이 30분∼1시간 정도로 줄어 한, 두끼 안 먹어도 별 불편이나 이상을 못 느낀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맘 먹고 위를 늘리지 않는 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반식훈련을 ‘한번에 끝내는 감량법’이라고 말한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중국산 투시안경 사기 주의보 비뚤어진 자세, 질병 부른다 “김정운 16세때 사진 입수…가명 박운” 박지성 “2010년 나의 마지막 월드컵” 하반기 부동산시장 점검 5대 포인트
  • [사설] 민주노총 도덕성 회복에 명운 걸라

    민주노총이 1995년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제 열린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정윤광 노동전선 정책위원은 이를 “암덩이가 온몸으로 급속히 퍼져 곧 사망할 수준”이라고 비유했다. 이대로 가다간 발전은커녕 생존자체가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다. 민노총은 내부 파벌싸움과 강경투쟁 노선 고수로 산별 조직원들의 반발을 샀다. 지도부는 리더십을 확립하지 못했고 방향도 제시하지 못했다.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상생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인데도 강성 노선만을 고집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노총의 도덕성의 상실이다. 민노총은 올 들어 핵심 간부의 성폭력 파문으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더구나 민노총 지도부는 가해자를 징계하기보다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 자체 조사 결과 드러났다. 민노총 초대 사무총장 출신인 고 권용목 뉴라이트신노동연합 상임대표가 쓴 ‘민주노총 충격보고서’는 민노총의 부패상과 도덕성 상실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도부가 공금 5억 2000만원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하고, 취업을 미끼로 뒷돈을 받고, 임단협을 미끼로 회사측으로부터 뒷돈을 받는 등 그야말로 부패·비리 백화점이다. 비민주적이고 권력화된 지도부, 현실을 외면한 강경투쟁과 자기합리화에 여념이 없는 민노총을 노조원들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노총 조합원수는 2006년 75만명에서 지난해 65만명으로 줄었다. 최근에도 주력 노조들의 노선이탈이 줄을 이었다. ‘죽을 위기’에 처한 민노총이 회생할 수 있는 처방은 단 한가지다. 도덕성 회복뿐이다. 국민과 노조원들의 신뢰를 잃은 민노총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불황의 덫’ 몰락하는 서민들

    ‘불황의 덫’ 몰락하는 서민들

    경기불황으로 각종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면서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도 생계형 절도를 저지르고, 좁아진 취업 문턱에 비관한 구직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가계빚에 허덕이던 서민들의 개인파산도 늘고 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14일 훔친 철제수로덮개(차도와 인도 사이의 빗물통로에 설치) 60여개를 넘겨받아 처분해 165만여원을 챙긴(장물) 혐의로 몽골인 J(35)씨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합법적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들은 3D업종의 일자리마저 구하지 못해 또 다른 몽골인이 훔친 덮개를 넘겨받아 처분해 생활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대문서는 13일에도 다른 사람의 자전거 위 공구함에서 수도연결부속(너트) 91개를 훔쳐 1만 3000원에 고물상에 팔아 넘긴 김모(46)씨를 붙잡았다. 지난해 9월까지 15만 6752건이던 절도 범죄 건수는 올해 같은 기간 1600건 가까이 증가했고, 지난 8월 잠시 감소세를 보이는 듯하다 경제위기가 시작된 9월부터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또 방화 및 방화의심 화재도 10월 각각 55건, 221건으로 지난해에 비해 37.5%, 24.9% 증가했다. 구직자들의 자살도 늘고 있다.13일 오후 2년간 경찰 및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송모(30)씨가 서울 망우동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고, 같은 날 오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최모(29·여)씨도 서울 보라매동 아파트 23층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취업연령대(25~34세) 자살자 수는 2006년 1254명에서 지난해 1905명으로 급증했다. 자살예방협회, 경찰 등에 따르면 올해 취업연령대 자살자가 2000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 간 소액의 채권·채무를 두고 수사기관에 고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울 S경찰서 경제팀의 한 조사관은 14일 “100만원도 아닌 10만원 이하의 채무관계 때문에 고소하러 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면서 “외상값 3만원을 안 갚는다며 찾아 온 식당주인의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소·고발의 남발로 인한 검찰의 무고죄 처분도 급증했다. 검찰의 무고죄 처분 건수는 지난 10월까지 9277건으로 지난해 전체 건수(6039건)보다 크게 증가했다. 벌금을 내지 못해 노동으로 대신하는 노역장 수용자도 하루 평균 208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가량 늘었다. 지난 10월까지 법원의 개인파산선고는 11만 553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200여건이 늘었다. 또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채무불이행 등재자는 10월까지 3056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1960명)에 비해 56%나 늘었다.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표창원 교수는 “불황으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면 범죄를 이용해 생활을 이어가려는 심리가 발생하고, 이로인해 이른바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다.”면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사회가 자신에게 해준 만큼 했다.’는 자기합리화가 뒤따르기 때문에 법질서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사설] 이회창씨 출마의 변 자가당착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어제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이 전 총재가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결정을 한 것은 유감스럽다. 특히 그가 밝힌 출마의 변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합리화로 가득차 있다. 그의 출마로 앞으로 대선구도는 더욱 혼돈에 빠져 들었다. 국민들만이 이를 정리할 수 있다. 냉철한 심판으로 이 전 총재가 잘못된 결정을 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 전 총재는 출마선언에서 정계은퇴 약속을 번복한 점을 사과했다. 스스로 만든 한나라당을 떠나는 비통한 심정과 두번의 대선 출마와 패배의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많은 빚을 졌음을 고백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다면 탈당과 독자출마라는 후진적인 정치행태를 선택하지 않아야 마땅했다. 이 전 총재는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로는 정권교체가 어려울 것 같아 출마했다고 하지만 그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명박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50%를 넘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는 이명박 후보를 법과 원칙에서 불안한 지도자라고 비판했다. 자신이 집권하면 법치혁명을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실상의 경선 불복으로 정당민주주의를 훼손한 이 전 총재가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 모습은 설득력이 없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당원로로서 적극 의견을 개진해 당론을 만들어나가는 게 순리였다. 소속당 후보의 정체성을 트집잡아 대선일이 임박한 시점에 출마 이유로 삼는 것은 원로답지 못했다. 이제 40여일 남은 대선판은 민주절차와 거리가 멀어질 게 틀림없다. 낮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범여권 후보들은 후보단일화에 전력투구할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도 이명박·이회창 후보단일화 목소리가 나오리라고 본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뽑은 정당후보의 위상과 정책선거는 실종되고 이합집산이 횡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던 박근혜 전 대표가 명분에 맞는 행동을 한다면 그래도 대선판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 동물에 반대한다 에리카 퍼지 지음

    1961년 네 살짜리 침팬지 ‘햄’은 머큐리-레드스톤 2호를 타고 우주로 날아가 7분 동안의 무중력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잘하면 ‘침팬지용 우주식’인 바나나 과립을 상으로 받고, 못하면 발에 전기충격을 당했다. 바다에 내린 캡슐에서 구조된 햄은 사과를 받으며 웃고 있었다. 햄의 미소는 기쁨의 증거일까, 혹은 그렇게 해석하고 싶은 인간의 비열한 자기합리화일까. 동물 산업이 호황인 시대다. 가정과 공원과 TV에 동물이 넘쳐난다. 이들에 대한 사랑은 도가 넘치지만 버림받거나 학대당하는 사례도 만만치 않다. 동물과 대화를 나누고 눈빛으로 교감하는 돌리틀 박사가 아닌 이상, 우리는 사실 동물에 무지하다. 혹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철저히 이용한다. 과연 인간은 동물과 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동물에 반대한다(에리카 퍼지 지음, 노태복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동물과의 야만적인 관계를 부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그들을 정복해야만 한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은 지은이의 비판적 시각의 출발점이다. 같지만 다르고 가깝지만 먼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문제는 인간’이라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지은이는 창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동물이 맺어온 관계를 ‘지배하는 것인가, 돌보는 것인가.’라는 화두로 살펴본다. 인간이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는 지배하겠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지만 인간이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돌봄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에 갇힌 동물을 구경하며 웃고, 가죽 신발을 신고,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해 왔다. 지은이는 이러한 ‘자연스럽게 만들기’가 인간의 자기합리화일 뿐이라고 비꼰다.1만 5000원.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강신옥 변호사 “출세욕에 눈멀어… 사표라도 냈어야”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다면 사표를 내더라도 저항했어야지.”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사건을 유죄 선고한 판사들 명단이 공개돼 여론의 찬반이 뜨거운 가운데 자신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갔던 강신옥(71) 변호사가 사법부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강 변호사는 74년 민청학련 사건에서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이철, 유인태, 김지하 등을 변호하다 “긴급조치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자신도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젊은 기자양반은 상상을 못합니다.”라면서 말문을 뗀 강 변호사는 유신헌법에 따라 계엄령이 전국에 내려졌던 70년대를 한마디로 ‘중세시대’로 규정했다. 긴급조치는 법이 아니라 폭력이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계엄령 당시 법정인 보통군법회의에선 장교가 재판장이 되어 판결을 좌지우지했고, 반대심문도 받아주지 않은 채 재판을 종결하기도 했다. 강 변호사는 사법부 내의 반대 여론에 대해 묻자 “법률가가 불법적인 폭력에 따라야 하느냐.”며 반문했다.“출세하려는 욕심 때문에 가만히 있었던 것이지 양심에 따라 했다면 유신시대는 금방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정법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자기합리화이자 강변일 뿐이라고 말했다. 출세욕에 눈이 멀어 형량을 더 세게 때리던 판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강 변호사는 “사법부의 권위가 어디서 나오냐.”면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권위”라고 말했다. 현재의 사법부가 공동 죄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과거사 정리에 망설이고 있다면서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하루 빨리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신시대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던 강 변호사는 58,59년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에 잇달아 합격하고 62년 서울지법 판사로 있을 때 영장기각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경주지법으로 발령나자 임명 2년도 안된 상태에서 법복을 벗었다.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사설] 현대차노조, 파업 무조건 철회하라

    현대차노조가 끝내 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명백한 불법파업이다. 노조가 파업 명분으로 내건 연말 성과급 차등지급 문제는 파업대상인 ‘이익분쟁’이 아니라 고소나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할 ‘권리분쟁’이다. 게다가 조합원 찬반투표와 노동위원회 조정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절차적으로도 법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노동운동의 생명인 대중성과 도덕성, 투명성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임금협상의 연장선상이라는 이유로 보충교섭을 요구하다 거부되자 파업에 돌입한 것은 파업을 위한 노조 지도부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현대차노조는 지난 20년 동안 파업을 교섭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고수해왔다. 다른 사업장에 비해 유난히 파업이 잦은 이유다. 물론 여기에는 법과 원칙보다 우선 노조를 다독거리고 보자는 사측의 대응자세에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노사관계로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벌써 소비자들이 고개를 돌리고 있다. 당장 정부와 소비자단체, 고객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질타가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여론으로부터 ‘왕따’ 당한 파업이 성공을 거둔 예는 없다. 노조지도부는 ‘경력’에 보탬이 될지 모르지만 파업에 따른 피해는 국민경제와 지역사회, 소비자, 주주, 일반조합원들이 떠안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현대차노조가 파업을 철회할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사측이 간담회 형식으로 대화를 갖겠다고 한 이상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리라 본다. 올해 생산목표 및 성과급 조정 등을 통해 삭감된 성과급 이상의 이익배분을 얻어낼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에도 맞다. 사측도 이번 기회에 잘못된 노사관행의 악순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그것이 경쟁력 강화의 첫걸음이다. 사측과 정부의 원칙있는 대응을 지켜보겠다.
  • [데스크시각] ‘커리어우먼’이 사라질 날 올까/김균미 경제부 차장

    서울신문 매주 토요일자 경제면에는 ‘커리어 우먼’이라는 고정란이 실린다. 올초부터 새로 시작된 코너로 경제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직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딱히 ‘잘 나가는 여자’들의 성공 이야기라기보다 주위에서 점점 일반화돼가고 있는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일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자기관리,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묻어난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팀장급 이상 커리어 우먼 30여명이 소개됐다.30∼50대까지 연령층과 업종도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 직접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이른바 ‘커리어 우먼 2세대’에 속한다.1980년대 대기업 등의 취업문이 여성들에게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극소수라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주목을 한 몸에 받았고, 여자 후배들에게 전례가 될까봐 이를 악물고 남자 동료들과 경쟁해온 세대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재 임원 승진을 앞두고 유리천장 깨기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들의 취업 자체가 드물었던 1970년대,‘여성’임을 ‘부인’하며 선구자의 입장에서 높은 남녀차별의 벽을 넘어 성공을 일궈낸 50줄에 들어선 ‘커리어 우먼 1세대’와 IMF 이후 사회 각계에 봇물처럼 쏟아져나온, 남녀평등교육을 받고 자란 ‘커리어 우먼 3세대’ 사이에 ‘끼인 세대’이다. 커리어 우먼 2세대들을 만나면서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기회가 주어주길 기다리기보다 준비된 자세로 기회를 만든다. 나만을 내세우기보다 조직과 개인을 융화시킬 줄 안다. 남자들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화를 꾀한다. 낙천적이다.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해 장점을 극대화한다. 가정적으로는 어떨까.“친정 어머니한테 미안해서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어요.”‘그녀들’의 솔직한 속내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또 자녀에 대한 미안함을 농축된 사랑의 질(質)로, 믿음으로 대체하며 ‘자기합리화’한다.‘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라며 자녀들의 홀로서기를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주위(사회)에서 조금만 도움을 받았더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속상해한다. 때문에 이런 걱정들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뒤늦은 ‘저출산대책’을 환영하면서도 실효성에는 고개를 갸웃한다. 더욱이 장밋빛 전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그녀들’의 딸·아들이 살게 될 ‘비전 2030’ 청사진에도 그 누구보다 관심이 높다. 정부가 제시한 비전에 따르면 2030년에는 여성과 맞벌이부부가 출산·육아 걱정없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여성들이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사회가 된다. 육아비용 부담은 줄고 육아서비스 수혜율은 현재 47%에서 74%로 높아진다. 지난해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은 2030년 65%로 높아진다. 남녀간 소득도 현재 여성이 남성의 48%밖에 받지 못하는데 비해 25년 뒤에는 70%까지 끌어올려 격차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는 ‘꿈같은’ 얘기다. 이렇게만 된다면 일하는 여성을 굳이 남자와 구분해 부르는 ‘커리어 우먼’이라는 단어가 더이상 필요없는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부는 며칠전 내년도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일하는(돈 버는) 아빠, 집안 살림하는 엄마’식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노력이 얼마나 빨리 구성원들의 생각을 바꿀지 장담할 순 없다.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변화를 향한 작은 노력의 시작일 뿐이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결실 맺길 바라는 ‘커리어 우먼 2세대’들은 이것이 그녀들만의 ‘꿈’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늘도 힘차게 집을 나선다. 김균미 경제부 차장 kmkim@seoul.co.kr
  • 론스타 공격하며 ‘결백’ 인터뷰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로 떠오른 있는 외환은행 전용준 전 상무(구속)는 검찰에 불려가기 훨씬 전부터 외롭게 처절한(?) 구명 활동을 펼쳤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씨의 행태로 볼 때 검찰이 그의 약점을 잘 보호해주면 엄청난 진술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그 진술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11일 일부 신문에는 검찰에 소환되기 훨씬 전에 전씨와 했던 인터뷰 기사들이 실렸다. 또 일부 신문은 전씨와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는데 검찰에 구속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전씨는 감사원과 검찰의 ‘칼’이 점차 다가오자 자신의 ‘결백’을 언론에 적극 알릴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의 접촉에서 전씨는 자기합리화에 큰 공을 들였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 외환은행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축소 의혹에 대해 전씨는 일관되게 “축소한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낮게 나온 수치를 약간 높인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돈을 받고 자기자본비율을 축소했다는 의혹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팩트’에 목마른 언론을 상대로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진실은 이렇다.”고 말한 셈이다. 전씨는 또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론스타를 공격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론스타의 과세 문제에 대해 수사 당국에 도울 게 있다면 적극 돕겠다.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 정부 승인에 대해 우려하자 론스타가 ‘당신들은 신경쓰지 마라.’고 했다.” 등이 전씨가 구속되기 전 언론에 흘린 말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론스타를 끌어들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전씨이고, 론스타 때문에 외환은행의 상무가 돼 사실상 전권을 휘두른 이도 전씨”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돌변할 수 있느냐.”며 의아해한다. 전씨는 1년 전에도 여러 언론을 상대로 ‘자가 구명’ 활동을 벌였다. 당시 행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가 직위해제되자 “론스타가 나를 치기 위해 CC(폐쇄회로)TV를 몰카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행장실 책상 바로 위 천장에 설치된 작은 렌즈는 누가 보더라도 몰래 카메라였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데스크시각] ‘황당한’ 광역학군 발상/곽태헌 국제부장

    기자가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1975년. 당시 ‘진학(進學)’이라는 대학입시 잡지에 75년 서울대에 입학한 고등학교별 합격자 수가 실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울대의 공식 자료라기보다는 각 고교의 주장이거나 ‘진학’에서 분석한 ‘성적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잡지에 실렸던 고교별 합격자 수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또 기자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31년 전의 ‘진학’ 자료로 돌아가보자. 당시 최고의 고교였던 경기고의 서울대 합격자는 480명쯤 됐다. 서울고는 350명 정도, 경복고는 250명 정도를 각각 합격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기여고와 경남·부산고의 합격생은 각각 160∼170명선이었던 같다. 지방의 명문인 경북·광주일·대전고, 서울의 명문인 중앙·용산고는 100명 정도씩 합격시켰다. 정원이 많지 않던 남녀공학의 서울사대부고도 100명에 가까운 합격생을 배출했다. 이화여고는 84명, 경동고는 70여명을 합격시켰던 것 같다. 제물포고와 전주고는 65∼70명의 합격자를 냈던 것 같다. 명문고에서 서울대 합격생을 많이 낸 것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쳤다기보다는 우수한 학생들이 명문고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고교시험이 있던 시절 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한 재수(再修)는 적지 않았다. 심심하면 나오는 부동산대책 중 하나로 서울지역 학군 광역화가 최근 또 불거졌다. 일부 정치인과 관료들이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대책으로 광역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내년 초에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번지수는 잘못 짚은 것 같다. 먼저 원거리통학에 따른 문제다. 고교 추첨제(평준화정책)를 한 취지와 맞지 않는다. 광역학군이라는 ‘편법’이나 ‘꼼수’보다는 고교시험을 부활시키는 ‘정도(正道)’를 걷는 게 낫지 않을까. 서울은 74년부터(대학 학번 기준으로는 77학번) 고교시험이 없어지고 추첨제로 바뀌었다. 광역학군 발상이 말이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치 강남의 고교에 들어가면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를 당연히 진학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을 오도(誤導)한다는 점이다. 일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알면서 오도해도 문제고, 모르고 해도 역시 문제다. 고교 평준화 이후 강남지역의 고교들은 보통 매년 학교당 10∼30명을 서울대에 합격시키고 있다.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특목고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 수준은 아니지만, 다른 인문계고에 비교하면 물론 많은 편이다. 강남지역 고교의 실적이 좋은 것은 강남에 있다는 ‘단순한’ 이유보다는 여러가지로 자녀의 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부모가 그곳에 많이 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보다는 학원에서 실력을 쌓고있는 게 현실이다. 강남지역 고교에 들어간다고 명문대 합격이라는 ‘보증수표’를 받는 게 아니다. 민족사관고를 포함한 특목고 출신들이 국내·외 명문대에 많이 진학하는 것은 고교시험이 있던 시절의 명문고처럼 실력이 좋은 학생들이 특목고에 몰리기 때문이다. 광역학군 아이디어는 정책실패와 판단잘못으로 강남의 부동산값이 폭등한 데 대한 책임을 강남학군 탓으로 돌리려는 정치권과 관료들의 얄팍한 ‘잔꾀’로 보인다. 부동산 값이 뛰는 것은 분양가 자율화, 왔다갔다 한 판교분양, 평형규제 등 정책실패 탓은 아닐까. 규제할 것은 풀고, 풀어야 할 것은 규제하는 청개구리식 정책 때문은 아닐까. 교육문제로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면, 광역학군이라는 황당한 발상 대신 강북지역에 자립형사립고나 특목고 신설을 적극 지원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관료들한테 제대로 된 처방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부동산 정책이든 외환은행 매각이든 책임회피와 자기합리화에만 주력하는 듯 보이는 게 관료들이다. 정책실패와 판단잘못에 따른 관료들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은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곽태헌 국제부장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염색과 내복/이목희 논설위원

    나이를 먹어가면서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두가지 있다. 첫째는 머리 염색이고, 둘째는 내복을 입는 것이다. 남들은 동안이라고 하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는지 아침에 머리를 감은 뒤엔 흰머리가 얼마나 늘었나 훑어보게 된다. 어느 아침,5∼6년은 염색하지 않고 버티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복을 언제부터 입지 않았는지 기억이 감감하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분명히 입었다. 그때는 왜 남자아이에게도 빨간 내복을 입혔는지….“빨강은 따뜻한 색이고, 잡귀를 쫓아준단다.” 어떤 어른이 그렇게 설명했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자주 빨아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본다. 중학교 2,3학년 시절부터는 “그깟 추위쯤이야.”하면서 내복을 멀리했던 듯싶다. 몇년 전부터 겨울이면 무릎이 시렸다. 추위가 매서웠던 올겨울은 더 그랬다. 내복의 유혹이 강렬했다. 마침 정부와 시민단체가 내복입기 운동을 벌였다.“차제에 에너지 절약운동에나 동참할까.” 나이가 아니고, 애국심 때문에 내복을 입는다는 자기합리화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오늘내일 미루다 보니 입춘이 저앞에 다가오고 있다. 일단 올해는 젊게 보내고 내복 고민은 다음 겨울에 해야 할 것 같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여성&남성] 가을남녀 ‘이별공식’ 남자는 연락끊고 여자는 전화통보

    [여성&남성] 가을남녀 ‘이별공식’ 남자는 연락끊고 여자는 전화통보

    “우리 헤어져.”(여자)“사랑이…어떻게 변하니.”(남자)-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은 ‘영원’이라는 단어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영원할 것이고 그 사랑이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반짝이던 그, 혹은 그녀의 사랑의 빛이 바래 헤어지게 되면 변명을 한다. 변하니까,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이별이 더 슬픈 계절, 가을이다. 가을에 헤어지는 연인들은 겨울 내내 가슴앓이를 하고, 봄이 돼서야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여성포털 ‘젝시인러브’(www.xyinlove.co.kr)에서 가을남녀 1999명에게 ‘이별공식’을 물었다. ●많이 차 본 여성, 많이 차인 남성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성인 여성 1597명과 남성 402명에게 상대방에게 차인 적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남성은 82%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은 69%만 ‘그렇다.’고 응답해 ‘자존심’을 세웠다.3차례 이상 차였다는 남성은 19%였지만, 여성은 10%밖에 되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먼저 이별을 선언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남성은 75%만 ‘그렇다.’고 답했지만, 여성은 무려 92%가 ‘그렇다.’고 했다.3차례 이상 먼저 차 봤다는 여성은 48%나 됐지만 남성은 24%밖에 없었다. 이별하는 방법에서도 남녀 차이가 두드러졌다. 남성은 흐지부지 연락을 끊으며 헤어진다는 ‘우유부단형’이 39%로 가장 많았다. 만나서 직접 통보한다는 ‘단도직입형’이 29%였고, 직접 마주 대하지 않고 전화로 이별을 통보한다는 ‘소심형’이 20%로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여성은 ‘우유부단형’은 21% 밖에 되지 않았다. 전화로 헤어지는 ‘소심형’이 37%로 가장 많았고,‘단도직입형’이 28%로 2위를 차지했다. ●男 “내 잘못으로 이별” 女 “그저 인연이 아니었을 뿐” 헤어지게 된 원인에 대한 생각도 남성과 여성이 달랐다. 남성은 ‘나 자신이 문제’라는 응답이 27%로 가장 많았다.‘상대방이 문제’라는 응답은 12%였다. 하지만 여성은 ‘그저 인연이 아니어서’라는 응답이 35%로 1위를 차지했다.‘나 자신이 문제’는 20%,‘상대방이 문제’라는 응답은 15%였다. 이별 뒤 상처가 치유되는 시간은 ‘3개월 이내’가 남녀 각각 36%와 39%로 가장 많았다.‘헤어지자마자 즉시’라는 응답은 남성 9%, 여성 11%로 10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까지 1년 이상이 걸린다는 사람은 남성 21%, 여성 19%로 5명 중 1명꼴이었다. 이별 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1년 이상이라는 응답이 남성의 32%, 여성의 29%를 차지, 가장 많았다. 다만 남성보다 여성이 새로운 만남을 더 쉽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4∼6개월 걸린다는 응답이 26%로 두 번째였지만 여성은 1∼3개월이 22%로 뒤를 이었다.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남성(28%)과 여성(39%) 모두 ‘사람들을 만나며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응답도 남성 24%, 여성 28%로 두 번째를 기록했다. 이별 뒤 깨달은 점은 남녀가 달랐다. 여성은 가장 많은 40%가 ‘아닌 인연은 빨리 끝내는 게 낫구나.’라는 ‘자기합리화형’ 응답을 했다. 반면 남성은 ‘다음 사람에게는 정말 잘 해야겠구나.’는 ‘다짐형’과 ‘그 사람이 내게 정말 소중했구나.’라는 ‘후회형’이 각각 25%와 24%로 절반을 차지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발언대] 정보기관 윤리성 회복 노력 절실/김택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명예논설위원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지 않고 군주에게 속해 있었던 군주국가 시대에는 시민들의 정치·행정 참여가 허용되지 않거나 제한적이었다. 모든 권한이 군주에게 집중되어 있어 권한 남용의 우려가 커지면서 규제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났다. 사후적이지만 사관들에 의한 사초(史草))에 근거한 역사 기술의 사실화 작업이 행해진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신료들은 통치윤리 및 관례 등을 들어 군주의 중요한 정책결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때로는 사실상의 견제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는 국가정보기관이 일반정치 지도자나 언론인 등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국가기밀에 관한 비밀정보를 독점하게 됐다. 때로는 그러한 강제력 수단이나 비밀정보를 정보기관 자신이 자기합리화나 정당성을 위하여 동원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정보부패 내지 정보윤리의 실종이라고 본다. 최근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 일각에서 불법도청 파문을 계기로 국가정보원의 활동 임무 기구 등을 새롭게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냉전종식 이후 신안보 위협으로 등장한 세계적 테러나 마약 국제범죄 등은 매우 심각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뉴올리언스시의 재난이나 영국의 지하철 테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국제범죄 등은 우리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음을 말해준다. 먼저 국가안전과 재난관리체계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역량을 선진적·과학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정책추진이 중요하다고 본다. 미국은 9·11테러사건 이후 15개 부문의 정보기관을 총괄 조정하는 국가정보위(DNI)를 설립하여 가동하고 있다. 영국도 보안부(MI5)와 해외정보부( MI6)의 정보를 총리에게 보고하도록 조정하였다. 일본 또한 총리 직속의 보고체계라든지 자위대의 해외 정보수집 강화를 명문화하였다. 그런데 우리 정보기관들은 과거 기관의 속성상 성과 또는 건수 올리기식 행태로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공조를 기대할 수 없었다. 국내·해외 별도조직에 의한 경쟁적 정보활동 및 정보 미공유로 인한 정보왜곡 현상조차 발생했던 것이 사실이다.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시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은 소련의 의도에 대해 서로 상반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정보 사용자가 선택의 문제에 봉착하였다. 해외와 국내정보로 이원화된 이스라엘 모사드도 중동전 당시 정보독점으로 인하여 이집트의 침공에 대한 조기경보에 실패한 우를 범했다. 따라서 국가의 안보와 국익을 생각하는 정보의 통합과 종합적 판단이 필요한 방향으로 국가정보원이 개편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보기관이 과거의 권위주의적 업무 자세에서 탈피하여 스스로를 낮추고 시민들로부터 자발적인 협조와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윤리성 회복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변화된 정보환경에 맞도록 정보업무 방식이나 정책평가 기능도 혁신할 시점이다. 김택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명예논설위원
  • [여성&남성] 여대생 취업난 ‘멘토링’으로 헤쳐나간다

    [여성&남성] 여대생 취업난 ‘멘토링’으로 헤쳐나간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무슨소리! 이젠 멘토링으로 뭉친다.” 각 분야에서 ‘여풍’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 위주인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려면 인맥, 학연, 편견 등 숱한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 가운데 여성에게 가장 요원했던 것이 인맥. 그동안 주류 남성들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된 채 고군분투하던 여성들이 ‘멘토링’으로 뭉치고 있다. 멘토(mentor)란 ‘지혜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스승, 인생의 안내자, 비밀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아들 텔레마쿠스를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인 멘토에게 맡기고 가르침을 받게 했던 이야기에서 기원했다. 멘토링은 ‘멘토’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후배인 ‘멘티(mentee)’에게 나눠주고 사회적 유대를 넓혀가는 일종의 교육방식. 각 대학이 취업을 앞둔 여대생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멘토링 효과 취업도 척척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이은복(22)씨는 4개월 전부터 친구 5명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 지난가을 여학생처에서 실시한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김효은(38)씨를 멘토로 만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외교통상부 지역협력과에 근무하는 김씨는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외국어 실력과 경력을 쌓으라.”면서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선발에 도전해 보라.”고 조언했다. 국제기구와 우리 외교부의 구체적 업무내용에서부터 내부 서열까지 세심한 설명도 곁들였다. 외국생활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에도 뜻이 통하는 남편과 상의해 나간다면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며 용기를 주었다.“시험이 어렵다는 등의 핑계로 자기합리화를 하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씨는 “막막하기만 했는데 선배와 직접 상담하니 후견인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다.”면서 “틈틈이 이메일로 상담하면서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좋아했다. 같은 학교 3학년 구보배(22)씨도 멘토링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외국계 회사에 취업을 원하는 구씨에게 외국계 은행 HSBC에 다니는 반영미(28) 멘토는 “영어 단편소설을 소리내서 읽으면서 외우고, 종합자산관리사 자격증부터 따라.”고 구체적으로 할 일을 짚어줬다. 구씨는 “선배를 물고 늘어져 정보를 얻으라.”는 반씨의 말에 용기를 얻어 요즘은 자주 메일로 ‘귀찮게’한다. 이화여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백지영(24)씨는 멘토링의 도움을 받아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는 하윤정(32) 멘토는 지난해 여름부터 이메일과 전화로 회사 선택과 면접 요령까지 꼼꼼하게 일러주었다. 백씨는 당시 “전공을 살려 연구원이 되고싶지만 안정성 측면에서 학교 선생님이 나을 것 같다.”고 고민했다. 그러나 하씨는 “교원 시험은 응시 제한 연령까지 여유가 있으니 먼저 기업체에서 일해 보고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용기를 얻은 백씨는 최근 하씨와 같은 회사 무선사업부에 입사했다. ●각 학교 다양한 멘토링 프로그램 멘토링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각 대학이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멘토링을 선도한 여대는 물론 남녀공학 대학에서도 여학생을 위한 멘토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서울대 진로취업센터는 지난해 5월 여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변리사, 기자, 금융전문가 등 다양한 직종의 선배 27명이 참여해 일주일에 한번꼴로 ‘노하우’를 전수했다. 연세대는 1994년부터 ‘선배와의 간담회’방식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단순히 특강에 그치지 않고 이메일로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여학생처에서 운영하던 것을 올해부터 여성인력개발연구원이 맡아 1대 1 멘토링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숙명여대는 2003년부터 국내 대학에서 처음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정식 과목으로 개설했다.10명 안팎의 멘티와 1명의 멘토로 이루어진 팀이 한 학기에 70∼80개씩 구성된다.60명의 교수들도 직접 멘토로 나서 현장 실습을 지도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3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외협력처가 주관하는 ‘이화인닷넷(ewhain.net) 선후배 자매맺기 프로그램’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가지로 구성됐다. 광고·정보통신·법조·언론·결혼·육아 등 16개 분야에 멘토 162명과 멘티 611명이 등록되어 있다. 경력개발센터는 새학기부터 ‘취업멘토링’을 1학점짜리 정식 과목으로 개설했다. 수강생 150명을 소그룹으로 나눠 실무경험이 풍부한 멘토 20명이 지도하고 있다. 이화여대에 본부를 둔 한국과학재단의 WISE거점센터는 이공계 진출을 꿈꾸는 여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여성 과학자들이 멘토로 나서 대학은 물론 초·중·고 여학생에게 전문 지식을 전하고 과학 분야 진출을 돕는다. ●“멘토링 여성에게 더 필요” 여성 멘토링이 활발한 것은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규범과 문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고립 돼있던 여성들이 남성들의 네트워크방식을 발전적으로 벤치마킹한 것”이라면서 “친구·가족 등 사적인 관계에 머물렀던 여성들의 네트워크가 공적인 영역으로 활발하게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그동안 소수자로서의 여성이 고군분투해 왔지만 지위가 높아질수록 지지세력의 필요를 느끼는 것도 한 요인”이라면서 “남성 네트워크의 폐쇄적·차별적 요소를 개방적·통합적으로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인경 연세대 심리학과 강사는 “남성은 군대와 동문회 등에서 멘토링의 기회가 많지만 여성은 상대적으로 적다.”면서 “하지만 여성 사이에는 감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한번 멘토링을 하게 되면 더 깊은 유대관계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 원장은 “그동안 여성이 사회에서 얻는 ‘파이’가 워낙 작았기 때문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편견도 있었다.”면서 “멘토링으로 유대를 강화하면서 파이 자체도 키워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효용 박지윤기자 utility@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은 이해하기 힘든 나라?/현인택 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사람은 때로는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을 통해 우리의 현재 위치와 모습이 더욱 잘 이해될 수가 있는 것이다. 외국인이 보는 한국에 대한, 그들로서는 상식으로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 어쩌면 흥미로운 몇 가지 모습이 있다. 첫째,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이 이라크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또는 반부시적)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은 물론, 미국과 동맹관계가 없는 국가들보다 50여년간 혈맹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이 미국에 대해 더 비판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외국인, 특히 미국인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한국 국민이 그동안 서구 선진국가 국민들보다 더 자유주의적이거나 반전적(反戰的)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한국안보에 대해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가치가 여전히 중요한데 정작 그 파트너인 미국의 전쟁에 대한 한국인들의 냉혹한 평가에 외국인들은 자못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것을 단지 ‘동맹의 노후화’의 결과로만 보기 어려운 점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둘째,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한국인들이 비교적 태평하다는 사실 또한 외국인들에게는 놀라움거리다. 서울을 다녀가는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태도와 인식에 위기감이나 절박감이 전혀 없다는 데서 일단 놀란다.10년 위기의 일상화라기보다 어쩌면 북한 핵은 애초부터 위기가 아닌 듯하다는 인상을 그들은 우리에게서 받는다. 이러한 위협인식 부재의 심리를 설명할 마땅한 이론도 없다. 특히 외국 전문가들은 북한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제3자적 태도를 비판한다. 또한 미국이 북한보다 더 한국안보에 위협적이라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에는 거의 ‘경이’에 가까운 관심을 표명한다. 셋째,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한국 내의 반응에 관한 것이다. 미국 의회가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일부 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보다 북의 정권안보를 통한 한반도 안정화를 더욱 중요시하는 그들의 논리와 태도에 그들이 과거에 소위 민주화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면 외국인들은 더욱 놀란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의 근본은 인권이라는 매우 기본적 이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이다. 연간 수출액이 2000억달러를 넘는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여전히 세계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커다란 수수께끼다. 경제세계화는 뉴욕타임스 기자 프리드먼이 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언급한 금융, 자본, 기술의 혁명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이 지금과 같은 규모의 수출을 이룩한 국가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정치권에서 다반사로 뱉어지는 반시장적 언급과 경직될 대로 경직되어버린 노사문화, 경제자유화와는 거리가 먼 각종 규제들을 보면서 외국인들이 느끼는 수수께끼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다섯째, 우리도 깜짝깜짝 놀라지만 한국의 국내정치 소용돌이는 외국인들로서는 거의 이해의 수준을 벗어난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 전문가들도 며칠만 한국 뉴스를 놓치면 앞뒤가 이해되질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탄핵과 헌법의 판단을 구하는 정치권의 극단적 곡예가 어떻게 스스럼없이 일어나는지,50∼60년이 지난 과거사가 어째서 지금 와서 한국정치의 첨예한 갈등의 씨앗이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은 이해하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이 깊어질수록 한국과 세계와의 괴리는 커져간다. 우리가 자신의 논리로만 무장하여 세계를 편의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자기합리화에 몰두할 때 한국은 점점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으로 전락한다. 외국의 친한파 지인(知人)들은 이제 한국을 심각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기우라고만 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징후(徵候)이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 [씨줄날줄] ARS여론조사/김경홍 논설위원

    각종 정보나 질문 사항을 음성으로 녹음하여 저장해 둔다.사용자가 전화를 이용하여 이 시스템에 접속하면 음성으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의견을 나타낼 수 있다.이것이 바로 자동응답(Automatic Response) 또는 음성응답(Acoustic Response) 시스템이라 한다.이른바 ARS다. ARS는 이제 쌍방향 의사소통 수단으로 등장했다.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에 우리는 ARS 모금을 통해 성금을 전달한다.최근에는 미국에서 석방된 로버트 김 돕기 ARS 모금에서는 불과 사흘만에 약 3만명이 접속해 6000만원이 넘는 성금이 모아졌다.ARS를 통한 여론조사도 대중화됐다.한나라당 등 정당에서도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는 것과는 별도로 ARS를 통해 여론을 수렴해 왔다.열린우리당도 ARS 여론조사기를 구입키로 했다고 한다.열린우리당측은 “여론조사에 드는 비용을 절감키 위해 여론조사기를 구입해 당에서 직접 여론의 동향을 파악키로 했다.”고 밝혔다.여론동향을 수시로 파악하고 비용도 절감한다는 차원에서 진전된 조치다. 그러나 국가운영에 있어 도깨비 방망이는 없고,정치에 있어서 왕도(王道)는 없다.여론은 여론일 뿐이다.더욱이 정치지도자들이 하기에 따라 여론은 춤을 추기까지 한다.미국의 예를 들자면 흑인해방은 여론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과단성과 목표 때문에 성사됐다.이런 사실은 여론을 참고는 하되 여론자체만으로 국정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아울러 보여주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전문가는 ARS 여론조사 기법에 대해서 이런 충고를 한다.ARS 여론조사는 특정그룹들이 참여하는 네티즌 여론보다는 진일보한 조사기법이라고 평가한다.하지만 ARS 여론조사를 특정사안에 대한 국민의식이나 여론을 수렴하는 도구로 사용하기에는 위험성이 크다고 진단한다.아직 학계나 교과서에도 여론조사 기법으로 ARS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다만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시시각각 여론의 추이를 알 수 있다는 점은 ARS의 장점이다.여론을 빨리 많이 알고 싶어하는 정치행태의 변화는 옳다.하지만 특정사안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여론정치나 편가르기의 편법으로 ARS를 이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자기반성의 도구이지,자기합리화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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