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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합당 청년 당원들 ‘보수 혁신’ 목소리 통할까

    통합당 청년 당원들 ‘보수 혁신’ 목소리 통할까

    “기존 정치인 ‘키즈’ 아닌 스스로 클 것” 당 비대위 분란에 “지도부 사퇴” 목청 “청년 시각으로 혁신해야 할 것 고민” 4·15 총선 참패로 무너진 미래통합당에 최근 젊은 당직자와 청년 당원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성 정치인의 ‘키즈’가 아닌, 스스로 크는 정치인이 되겠다”며 당내 조직을 꾸려 쓴소리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의 실험적 도전이 낡고 구태한 이미지의 보수정당에 혁신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통합당 청년 당원들은 지난 28일 당내에 ‘청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조직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협위원장 출신, 21대 총선 후보, 보좌진 등 구성원은 다양하다. 김재섭, 조성은, 천하람 비대위원 등이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불러일으키는 새바람은 심상찮다. ‘김종인 비대위’를 두고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에서 분란이 거듭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이들은 지난 29일 “지도부가 즉각 총사퇴하라”며 당에서 가장 강도 높은 메시지를 냈다. 당내 압박에 시달리던 당 지도부는 30일 결국 “결정권을 새 지도부에 넘기겠다”며 물러섰다. 자중지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통합당에서 이들의 움직임은 이목을 끌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2011년 당시 20대였던 이준석 최고위원의 등장으로 한때 ‘젊은 보수’의 바람이 이는 듯했으나 거기까지였다. 그가 등장한 지 9년이 지나도록 대중에게 각인된 다른 보수 청년은 사실상 전무하다. 정계에 입문한 청년들이 있었으나 선거에서는 대부분 기성 정치인들에게 밀렸고 ‘청년 몫’으로 배분된 자리에서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청년비대위는 출범부터 ‘간택받거나 줄을 서 선정되는’ 청년 정치인이 되길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청년조직 상설기구화를 당헌·당규에 명문화하자고 요구했다. 청년 집단의 자강을 통해 당에 청년 목소리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다. 김성용 청년비대위 간사는 통화에서 “총선에서 20~50대에게서 철저히 외면받은 이 정당의 패인에 정확한 분석과 혁신안이 필요하다”며 “청년의 시각으로 우리 당이 혁신해야 할 것들을 절실히 고민해 당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통합당 최고위, 상임전국위 재개최 두고 충돌

    통합당 최고위, 상임전국위 재개최 두고 충돌

    조경태 “재개최 반대” 회의 중 퇴장 심재철 “의원·당선자 의견 더 수렴” 김종인 “관심 없다” 통합당과 거리 지도부가 대책 못 내놓자 내홍 격화 청년비대위, 지도부 즉각 퇴진 요구 홍준표 “당 재건 못 하면 해체해야” 새달 8일 신임 원내대표 선출 결정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출범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29일 미래통합당의 내홍은 더욱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당 최고위원들과 당내외 주요 인사들은 ‘김종인 비대위론’과 ‘자강론’으로 나뉘어 삿대질을 이어 갔다. 통합당 최고위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전날 결정된 ‘4개월짜리 시한부’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폭발한 당내 갈등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최고위원 사이에서도 전날 무산된 비대위 임기 제한을 해제하는 당헌 개정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를 다시 개최하자는 주장과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서로 엇갈렸다.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은 “당선자와 기존 의원들의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는 애매한 답을 내놨다. 최소 권한의 비대위와 조기 원내대표 선출을 주장해 온 조경태 최고위원은 회의 중간에 퇴장했다. 정작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관심이 없다”며 혼돈의 통합당과 거리를 뒀다. 지도부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자 당내외 인사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높였다. 통합당 청년 비상대책위원회는 “제1야당이 한 개인에게 무력하게 읍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당 지도부의 전원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우리를 구원해 줄 구원투수나 영웅을 기다리지 말자”고 썼다. 반면 권영세 당선자는 “김 전 위원장 측이 수락할 명분을 주기 위해 다시 절차를 밟아 임기 제한 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오면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라며 “차라리 자강론으로 가야 한다. 당내 당선자들이 모여 당을 재건 못 할 바에는 당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의 지리멸렬한 행보가 이어지면서 원내대표 경선에 이목이 쏠린다. 경선을 앞당기자는 당내 의견이 있었지만 이날 최고위는 다음달 8일에 신임 원내대표를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원내대표 후보군으로는 권영세, 박진, 유의동, 김태흠, 김도읍, 장제원 의원 등 3선 이상의 중진들이 거론된다. 그러나 당 혼란에 부담을 느끼는 중진들은 쉽게 출사표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에 찬성했던 김세연 의원은 “(현 지도부가) 동력을 상실한 것 같다”며 “당선자 중 초대 원내대표를 선출하고 그 리더십에 극복 방안을 기대해 보는 정도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김종인 비대위, 4년 전 좌초한 ‘새누리당 비대위’ 전철 밟나

    김종인 비대위, 4년 전 좌초한 ‘새누리당 비대위’ 전철 밟나

    당선자총회 先소집파 전국위 ‘비토’ 경고 2016년 친박계 ‘김용태 비대위’ 무산시켜 3선 당선자 15명 오늘 국회에서 입장정리 심재철 “연기는 불가… 말 없는 다수 많다”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의결할 전국위원회를 이틀 앞둔 26일 전국위 강행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이어 갔다. 전국위를 서두르지 말고 21대 당선자 총회를 먼저 열어야 한다는 측과 전국위를 통해 하루빨리 ‘김종인 비대위’를 띄워야 한다는 찬성파가 맞선 모양새다. 당선자 총회 선(先) 소집을 요구하는 반대파는 전국위 ‘비토’까지 경고했다. 28일로 예정된 전국위는 당 지도부와 상임고문, 소속 국회의원, 21대 국회 당선자,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 등 800여명으로 구성된다.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면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다. 4·15 총선에서 3선에 오른 15명은 27일 국회에서 만나 입장을 정리한다. 당선자 총회 이후로 전국위를 미뤄야 한다는 요구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재선 당선자들도 지난 23일 김종인 비대위에 조건부 지지 선언을 하면서도 전국위를 미루고 28일 당선자 총회를 열자고 공식 제안했으나 묵살당했다. 한 3선 당선자는 통화에서 “5월 8일 원내대표 경선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다”며 “당론이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전국위만 열면 의결이 안 되고 또 망신만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3선 당선자는 “재선들이 어영부영 지지 표명을 했는데, 3선들은 좀더 구속력 있는 입장을 낼 것”이라며 “당선자 총회 거부는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반면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은 기자간담회에서 “전국위 연기는 불가하다”며 “당선자 총회는 수요일(29일)쯤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못박았다. 이어 “지금 말 없는 다수보다 소수의 반대 목소리만이 들리는 것처럼 돼 있지만, 말 없는 다수가 훨씬 많다”며 “(부결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지지파도 적극적인 분위기 환기에 나섰다. 낙선한 신상진(4선) 의원은 “우리끼리 끝장 토론을 하면 결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느냐”며 “자강론은 말만 아름다울 뿐 현재 상태를 지속시키는 환각제”라며 전국위에서 비대위 의결을 촉구했다. 최다선(5선)을 앞둔 정진석 의원은 페이스북에 “일부에서 ‘전국위가 열리면 딴지 걸겠다’는 말이 들린다”며 “저는 2016년 일부 정파의 전국위 보이콧을 참담한 마음으로 목도했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우리 당은 궤멸할 것”이라고 했다. 정 의원은 20대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아 ‘김용태 혁신비대위’를 추진했으나 당시 친박(친박근혜)계가 물리력을 동원해 전국위를 무산시킨 바 있다. 한편 김 전 위원장 측은 “김 전 위원장은 정당의 시스템을 잘 알고, 당내 이견의 본질도 잘 아는 분”이라며 “개의치 않고 전국위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원내대표 경선은 의원들의 일이라 정해진 일정을 존중할 방침이고, 무소속 복당은 당헌·당규 절차에 따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D-2 ‘김종인 비대위’ 운명의 날…“先당선자 총회” vs. “전국위 의결”

    D-2 ‘김종인 비대위’ 운명의 날…“先당선자 총회” vs. “전국위 의결”

    28일 전국위 앞두고 “연기” “강행” 팽팽2016년 ‘김용태 비대위’ 좌초 트라우마심재철 “연기 불가…말 없는 다수 많아”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의결할 전국위원회를 이틀 앞둔 26일 전국위 강행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이어 갔다. 전국위를 서두르지 말고 21대 당선자 총회를 먼저 열어야 한다는 측과 전국위를 통해 하루빨리 ‘김종인 비대위’를 띄워야 한다는 찬성파가 맞선 모양새다. 당선자 총회 선(先) 소집을 요구하는 반대파는 전국위 ‘비토’까지 경고했다. 28일로 예정된 전국위는 당 지도부와 상임고문, 소속 국회의원, 21대 국회 당선자,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 등 800여명으로 구성된다.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면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다. 4·15 총선에서 3선에 오른 15명은 27일 국회에서 만나 입장을 정리한다. 당선자 총회 이후로 전국위를 미뤄야 한다는 요구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재선 당선자들도 지난 23일 김종인 비대위에 조건부 지지 선언을 하면서도 전국위를 미루고 28일 당선자 총회를 열자고 공식 제안했으나 묵살당했다.한 3선 당선자는 통화에서 “5월 8일 원내대표 경선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다”며 “당론이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전국위만 열면 의결이 안 되고 또 망신만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3선 당선자는 “재선들이 어영부영 지지 표명을 했는데, 3선들은 좀더 구속력 있는 입장을 낼 것”이라며 “당선자 총회 거부는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은 기자간담회에서 “전국위 연기는 불가하다”며 “당선자 총회는 수요일(29일)쯤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못박았다. 이어 “지금 말 없는 다수보다 소수의 반대 목소리만이 들리는 것처럼 돼 있지만, 말 없는 다수가 훨씬 많다”며 “(부결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지지파도 적극적인 분위기 환기에 나섰다. 낙선한 신상진(4선) 의원은 “우리끼리 끝장 토론을 하면 결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느냐”며 “자강론은 말만 아름다울 뿐 현재 상태를 지속시키는 환각제”라며 전국위에서 비대위 의결을 촉구했다. 최다선(5선)을 앞둔 정진석 의원은 페이스북에 “일부에서 ‘전국위가 열리면 딴지 걸겠다’는 말이 들린다”며 “저는 2016년 일부 정파의 전국위 보이콧을 참담한 마음으로 목도했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우리 당은 궤멸할 것”이라고 했다. 정 의원은 20대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아 ‘김용태 혁신비대위’를 추진했으나 당시 친박(친박근혜)계가 물리력을 동원해 전국위를 무산시킨 바 있다. 한편 김 전 위원장 측은 “김 전 위원장은 정당의 시스템을 잘 알고, 당내 이견의 본질도 잘 아는 분”이라며 “개의치 않고 전국위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원내대표 경선은 의원들의 일이라 정해진 일정을 존중할 방침이고, 무소속 복당은 당헌·당규 절차에 따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팔순, 내 나이가 어때서… 전국구 꿈, 완전 찐이야

    팔순, 내 나이가 어때서… 전국구 꿈, 완전 찐이야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인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북한으로 넘어갔고, 북에서는 중국 태생이라고 차별받아 남한으로 탈출했다. 일제강점과 해방, 분단을 거친 한국 현대사에서 그처럼 곡절을 겪은 이가 한두 명이겠느냐마는, 가수의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북에서는 노동당에서 인정받고 남한에서는 가수협회에 등록해 80세인 지금도 매년 수십 차례 행사를 뛰는 현역 가수가 됐다. 하지만 인기가수로 거듭나 한민족에게 신바람을 주고 싶다는 꿈은 놓지 않고 있다. 탈북민 어르신으로 구성된 평양실버예술단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여전히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다는 김병수(80)씨를 지난 14일 서울 양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김씨는 1941년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구 투먼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애초에 투먼시와 접한 함경남도 온성에서 살았다. 두만강 건너 중국에서 싸리나무를 베어 온성으로 돌아와 장에 팔면서 생계를 꾸렸는데, 여름이 되면 두만강이 녹아 건너가기 어려웠다. 어차피 나무를 해서 살아야 한다면 중국이 낫겠다고 생각해 중국으로 넘어가 결혼하고 김씨를 낳았다고 한다. ●노래 잘하는 학생으로 소문 김씨는 투먼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녔는데, 시(市)급인 현(縣)까지 소문난 노래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변변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고 예술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기에 고등중학교 졸업 후 옌지의 재정간부학교에 입학했다. 1962년 학교를 졸업하고 훈춘시 재정국에 배치됐지만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6개월을 집에서 요양해야 했다. 요양을 마치고 재정국으로 찾아갔지만 ‘집에 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김씨가 실직한 당시 중국에서는 ‘반우파 투쟁’이 한창이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조선족들은 ‘조선’을 조국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우파’로 몰며 탄압했다. 직장에서는 잘리고, 조선족 사회는 불안하고, 게다가 “회계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는 김씨는 결국 더 나은 삶을 찾아 1965년 혈혈단신 북한으로 넘어간다. 자강도 전천의 기계공장에 배치받아 조립공, 선반공으로 일했다. 회계를 전공해 기계는 전혀 몰랐던 김씨는 남들보다 두세 배 일했다. 입북 4년 만에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었다. 김씨는 북한에서도 끼를 감출 수 없었다. “입당 후 작업반장에 임명됐는데 선전선동 업무도 겸해야 했어요. 아침조회 때 직원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신문을 독보했는데 내 시간이 됐죠. 기념일이나 연말에는 김일성·김정일 사상을 공부하고 노래·춤 등으로 표현하는 직장별, 군(郡)별 경연대회가 있어요. 그 대회에서 우리 작업장, 공장이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죠. 공장 간부들이 알림판에 ‘공부하려면 김병수처럼 하라’고 써 놓기도 했답니다.” ●선전선동 업무서 끼 발휘… 예술단 등서 스카웃 제의도 예술단이나 선전단체로 옮길 실력은 됐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꼬리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공장에서 나와 같이 노래 부르던 사람들이 예술단이나 선전단체로 갔고, 나도 갈 수 있었는데 공장 간부가 잡더라고요. 내가 일을 잘해서 잡기도 했겠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점 때문에 선전선동 전문단체로 안 보낸 것 같아요.” 당시 북한에서는 중국 태생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고 한다. “1970년대 공장에 근무하며 대학을 다녔는데 4학년 올라갈 때쯤 중국 연고자들은 높은 지위에서도 해임되고 평양에서도 쫓겨났죠.” 김씨는 공장에서 선전선동 업무를 통해 끼를 펼칠 수 있었으나 전문 가수의 꿈은 그만큼 더 커져 갔다. 1990년 전국 선전선동원대회와 전국 선전선동경연대회에 김씨의 공장이 참가할 수 있게 되자 김씨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김씨는 공장의 전문선동원은 아니었지만, 50세의 나이에도 노래와 춤을 독보적으로 잘해 참가 자격을 얻었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해 선전선동원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전문 가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김씨의 팀은 경연대회 3등에 올랐으나 그만 선전선동원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너무 분해서 공장 당비서에게 찾아갔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당 비서가 그러더라고요. 중국 태생이라 그랬다. 반항도 못 했어요. 해 봐야 욕이나 더 먹겠죠. ‘여기서 더는 살 필요가 없다. 이 치욕을 나는 참을 수 있어도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서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탈북길 가수의 꿈도 좌절되고, 노래를 부를 의욕도 꺾인 김씨에게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은 탈북의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1996년 첫째 딸과 첫째 사위, 손자와 함께 탈북길에 올랐다. 전천에서 함경남도 함흥까지 12일 동안 산길을 걷고 함흥에서 온성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온성에서 두만강을 헤엄쳐 투먼으로 가는 험난한 장정이었다. 중국에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둘째 딸이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겨우 풀려나자 결국 가족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탈북민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거쳐 2001년 남한에 온 김씨는 당시 61세라 마땅한 직업을 가지기 어려웠다. “탈북민 모임에서 주최하는 노래 경연대회를 알게 돼 참가했고, 북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탈북민과 만나게 됐죠. 그와 소규모로 탈북민 예술단을 결성하고 공연을 다녔는데 당시 남북 관계가 좋아서 그랬는지 탈북민 공연도 인기가 높았죠.” 김씨와 그의 예술단은 많을 때는 한 해 300여 차례 공연을 했다. 북한에서 무용을 전공한 첫째 딸과 어려서 풍금에 소질을 보였던 셋째 딸도 같이 예술단 활동을 했다. 김씨의 딸들은 지금도 활발히 공연을 하고 있다. 탈북한 지 2년 만에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남인수가요제에 참가해 특별상을 받고 가수협회에 등록까지 해 정식 가수가 됐다. “탈북 후 탈북민 교육을 위한 하나원에 입소했을 때 ‘직업과 진로’라는 강좌를 들었는데 내가 남한에서 가수가 되겠다고 하니 강사가 ‘60대 늙은이가 어떻게 가수가 되겠나’라고 웃더라고요. 가수협회 등록하고 그 강사에게 전화해서 가수가 됐다고 말했죠.” ●주종목은 전통가요… 트로트 열풍 부니 해 뜰 날 있겠죠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2011년 71세 나이에 슈퍼스타K에 지원했지만, 아쉽게 3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TV에서 슈퍼스타K 지원자를 모집한다는데 1~99세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지원했죠. 1, 2차 예선을 통과하고 코엑스에서 열린 3차 예선에 들어갔는데 심사위원으로 윤종신, 이효리, 길이 앉아 있었어요. 윤종신씨가 ‘아버님이 노래는 잘 부르시는데 이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고 해 속으로 울컥했죠. 1~99세는 모두 가능하다고 했지만 사실 30대 미만의 전도유망한 사람을 찾는 거라 생각했어요. 다만 이효리씨는 ‘저와 방송 같이해 보지 않겠나’라고 했는데 그때 대답을 못 했어요. ‘좋다’고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김씨는 2013년 평양실버예술단을 조직했고 지난해에도 50여 차례 공연을 소화했다. 80세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목소리를 위해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렸을 땐 담배를 피웠는데, 북한 공장에서 선전선동 업무를 맡고 노래를 부를 때부터 술 줘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웠어요. 경연한다고 하면 감기 안 걸리도록 각별히 신경 썼고요. 남한에선 목을 부드럽게 한다며 생달걀을 먹던데 북한에서는 달걀을 기름에 풀어 볶아서 먹어요. 목소리가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게끔요.” 김씨의 주종목은 전통가요다. 9년 전 슈퍼스타K 때는 ‘콘셉트가 맞지 않는다’며 탈락했지만,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는 2020년 그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탈북민 예술단에서 활동하는 딸이 ‘아버지, 지금도 ‘막걸리 한 잔’ 부르면 영탁(트로트 가수)이보다 더 잘 부르고 소리도 더 맑으세요’라고 한답니다. 아직도 높은 음도 다 냅니다. 이 나이에 노래 부르고 춤추면 어르신들도 힘이 날 테고, 어르신들이 힘이 나야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하려면 죄다 온라인으로 해야 해서 딸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떨어지면 창피하다고 안 해 줘서 걱정입니다. 하하하.”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팔순 내 나이가 어때서… 전국구 꿈 완전 찐이야

    팔순 내 나이가 어때서… 전국구 꿈 완전 찐이야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인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북한으로 넘어갔고, 북에서는 중국 태생이라고 차별받아 남한으로 탈출했다. 일제강점과 해방, 분단을 거친 한국 현대사에서 그처럼 곡절을 겪은 이가 한두 명이겠느냐마는, 가수의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북에서는 노동당에서 인정받고 남한에서는 가수협회에 등록해 80세인 지금도 매년 수십 차례 행사를 뛰는 현역 가수가 됐다. 하지만 인기가수로 거듭나 한민족에게 신바람을 주고 싶다는 꿈은 놓지 않고 있다. 탈북민 어르신으로 구성된 평양실버예술단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여전히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다는 김병수(80)씨를 지난 14일 서울 양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씨는 1941년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구 투먼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애초에 투먼시와 접한 함경남도 온성에서 살았다. 두만강 건너 중국에서 싸리나무를 베어 온성으로 돌아와 장에 팔면서 생계를 꾸렸는데, 여름이 되면 두만강이 녹아 건너가기 어려웠다. 어차피 나무를 해서 살아야 한다면 중국이 낫겠다고 생각해 중국으로 넘어가 결혼하고 김씨를 낳았다고 한다.  김씨는 투먼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녔는데, 시(市)급인 현(縣)까지 소문난 노래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변변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고 예술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기에 고등중학교 졸업 후 옌지의 재정간부학교에 입학했다. 1962년 학교를 졸업하고 훈춘시 재정국에 배치됐지만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6개월을 집에서 요양해야 했다. 요양을 마치고 재정국으로 찾아갔지만 ‘집에 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김씨가 실직한 당시 중국에서는 ‘반우파 투쟁’이 한창이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조선족들은 ‘조선’을 조국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우파’로 몰며 탄압했다. 직장에서는 잘리고, 조선족 사회는 불안하고, 게다가 “회계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는 김씨는 결국 더 나은 삶을 찾아 1965년 혈혈단신 북한으로 넘어간다.  자강도 전천의 기계공장에 배치받아 조립공, 선반공으로 일했다. 회계를 전공해 기계는 전혀 몰랐던 김씨는 남들보다 두세 배 일했다. 입북 4년 만에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었다.  김씨는 북한에서도 끼를 감출 수 없었다. “입당 후 작업반장에 임명됐는데 선전선동 업무도 겸해야 했어요. 아침조회 때 직원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신문을 독보했는데 내 시간이 됐죠. 기념일이나 연말에는 김일성·김정일 사상을 공부하고 노래·춤 등으로 표현하는 직장별, 군(郡)별 경연대회가 있어요. 그 대회에서 우리 작업장, 공장이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죠. 공장 간부들이 알림판에 ‘공부하려면 김병수처럼 하라’고 써 놓기도 했답니다.”  예술단이나 선전단체로 옮길 실력은 됐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꼬리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공장에서 나와 같이 노래 부르던 사람들이 예술단이나 선전단체로 갔고, 나도 갈 수 있었는데 공장 간부가 잡더라고요. 내가 일을 잘해서 잡기도 했겠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점 때문에 선전선동 전문단체로 안 보낸 것 같아요.”  당시 북한에서는 중국 태생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고 한다. “1970년대 공장에 근무하며 대학을 다녔는데 4학년 올라갈 때쯤 중국 연고자들은 높은 지위에서도 해임되고 평양에서도 쫓겨났죠.”  김씨는 공장에서 선전선동 업무를 통해 끼를 펼칠 수 있었으나 전문 가수의 꿈은 그만큼 더 커져 갔다. 1990년 전국 선전선동원대회와 전국 선전선동경연대회에 김씨의 공장이 참가할 수 있게 되자 김씨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김씨는 공장의 전문선동원은 아니었지만, 50세의 나이에도 노래와 춤을 독보적으로 잘해 참가 자격을 얻었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해 선전선동원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전문 가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김씨의 팀은 경연대회 3등에 올랐으나 그만 선전선동원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너무 분해서 공장 당비서에게 찾아갔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당 비서가 그러더라고요. 중국 태생이라 그랬다. 반항도 못 했어요. 해 봐야 욕이나 더 먹겠죠. ‘여기서 더는 살 필요가 없다. 이 치욕을 나는 참을 수 있어도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서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죠.”  가수의 꿈도 좌절되고, 노래를 부를 의욕도 꺾인 김씨에게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은 탈북의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1996년 첫째 딸과 첫째 사위, 손자와 함께 탈북길에 올랐다. 전천에서 함경남도 함흥까지 12일 동안 산길을 걷고 함흥에서 온성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온성에서 두만강을 헤엄쳐 투먼으로 가는 험난한 장정이었다. 함흥에서 첫째 딸 가족이 보안대에 붙잡혀 김씨는 홀로 투먼에 있는 여동생 집에 갔다. 다행히 첫째 딸 가족은 보안대로부터 풀려나 김씨를 뒤따랐고, 6개월 후 김씨의 다른 가족들도 탈북에 성공해 중국에서 상봉했다.  중국에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공안들이 탈북민을 색출한다며 불시에 검문하는 통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았죠. 둘째 딸이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겨우 풀려나자 결국 가족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탈북민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거쳐 2001년 남한에 온 김씨는 당시 61세라 마땅한 직업을 가지기 어려웠다. “탈북민 모임에서 주최하는 노래 경연대회를 알게 돼 참가했고, 북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탈북민과 만나게 됐죠. 그와 소규모로 탈북민 예술단을 결성하고 공연을 다녔는데 당시 남북 관계가 좋아서 그랬는지 탈북민 공연도 인기가 높았죠.”  김씨와 그의 예술단은 많을 때는 한 해 300여 차례 공연을 했다. 북한에서 무용을 전공한 첫째 딸과 어려서 풍금에 소질을 보였던 셋째 딸도 같이 예술단 활동을 했다. 김씨의 딸들은 지금도 활발히 공연을 하고 있다.  탈북한 지 2년 만에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남인수가요제에 참가해 특별상을 받고 가수협회에 등록까지 해 정식 가수가 됐다. “탈북 후 탈북민 교육을 위한 하나원에 입소했을 때 ‘직업과 진로’라는 강좌를 들었는데 내가 남한에서 가수가 되겠다고 하니 강사가 ‘60대 늙은이가 어떻게 가수가 되겠나’라고 웃더라고요. 가수협회 등록하고 그 강사에게 전화해서 가수가 됐다고 말했죠.”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2011년 71세 나이에 슈퍼스타K에 지원했지만, 아쉽게 3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TV에서 슈퍼스타K 지원자를 모집한다는데 1~99세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지원했죠. 1, 2차 예선을 통과하고 코엑스에서 열린 3차 예선에 들어갔는데 심사위원으로 윤종신, 이효리, 길이 앉아 있었어요. 윤종신씨가 ‘아버님이 노래는 잘 부르시는데 이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고 해 속으로 울컥했죠. 1~99세는 모두 가능하다고 했지만 사실 30대 미만의 전도유망한 사람을 찾는 거라 생각했어요. 다만 이효리씨는 ‘저와 방송 같이해 보지 않겠나’라고 했는데 그때 대답을 못 했어요. ‘좋다’고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김씨는 2013년 평양실버예술단을 조직했고 지난해에도 50여 차례 공연을 소화했다. 80세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목소리를 위해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렸을 땐 담배를 피웠는데, 북한 공장에서 선전선동 업무를 맡고 노래를 부를 때부터 술 줘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웠어요. 경연한다고 하면 감기 안 걸리도록 각별히 신경 썼고요. 남한에선 목을 부드럽게 한다며 생달걀을 먹던데 북한에서는 달걀을 기름에 풀어 볶아서 먹어요. 목소리가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게끔요.”  김씨의 주종목은 전통가요다. 9년 전 슈퍼스타K 때는 ‘콘셉트가 맞지 않는다’며 탈락했지만,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는 2020년 그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탈북민 예술단에서 활동하는 딸이 ‘아버지, 지금도 ‘막걸리 한 잔’ 부르면 영탁(트로트 가수)이보다 더 잘 부르고 소리도 더 맑으세요’라고 한답니다. 아직도 높은 음도 다 냅니다. 이 나이에 노래 부르고 춤추면 어르신들도 힘이 날 테고, 어르신들이 힘이 나야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하려면 죄다 온라인으로 해야 해서 딸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떨어지면 창피하다고 안 해 줘서 걱정입니다. 하하하.”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법무부, ‘미성년자 의제강간‘ 13→16세 상향... 중대 성범죄 강력 처벌 추진

    법무부, ‘미성년자 의제강간‘ 13→16세 상향... 중대 성범죄 강력 처벌 추진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강력 및 중대 성범죄에 대해 법무부가 미진한 성범죄 관련 법률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17일 밝혔다. 법무부는 이날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성범죄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그간의 대응이 너무 미온적이었음을 반성하면서 성범죄 전체에 대한 형사사법적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먼저 ‘미성년자 의제강간’ 기준연령을 기존의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는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13세 미만이라는 점을 알고 간음하면 성립하는데, 기준이 16세로 상향되면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가 더 강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성범죄를 ‘범행준비’ 단계부터 차단하기 위해 합동강간, 미성년자강간 등 중대 성범죄를 준비하거나 모의만 하더라도 처벌하도록 ‘예비·음모죄’ 신설도 추진한다. 법무부는 “텔레그램을 통해 강간 등을 모의한 경우와 같이 범행 실행 이전 준비행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예비·음모죄를 신설해 관련 범행을 사전에 방지한다”고 했다. 성범죄 이전 단계에서 빈발하는 스토킹행위를 범죄로 명확히 규정해 처벌하는 ‘스토킹처벌법’을 제정하고, 성착취 등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약취·유인·인계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 ‘인신매매법’ 제정도 추진한다. 조직적인 성범죄의 경우 가담자 전원을 전체 범행의 공범으로 기소하고 범죄단체조직죄도 적극 적용한다. 법무부는 “중형을 선고받도록 함으로써 ‘한번 걸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자리잡도록 하겠다”고 했다. 성착취물을 수신한 대화방 회원에 대해서도 제작·배포의 공범 책임을 적극 물을 계획이다. ‘자동 저장’의 경우에도 소지죄를 철저히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또 성착취 범행은 기소나 유죄판결 없이도 독립된 몰수·추징 선고를 통해 선제적으로 범죄수익을 환수할 예정이다. 범행 기간 취득한 재산은 범죄수익으로 추정해 환수하는 규정을 만들어 범행 동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50년, 詩만 보고 달렸다…칠순·팔순, 詩가 터졌다

    50년, 詩만 보고 달렸다…칠순·팔순, 詩가 터졌다

    “‘나 건드리지 마, 또 시(詩) 나온다!’ 친구들을 만날 때 인사말 대신 건넨 농담이 제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이제 시를 그만 써야 할 때도 됐는데. 허허허.” 문학을 천명으로 알고 50여년 외길을 걸어온 한국문인협회 원로시인 이운룡(83·전 중부대 국문과 교수·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박사. 그는 팔십 중반의 나이지만 아직도 시를 써야 삶의 의미를 느끼고 행복한 현재 진행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마음은 문학청년이다. 솟구쳐 오르는 시상을 억누르지 못해 매일 시를 쓴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통 좁은 청바지와 스니커즈 스타일을 좋아하는 ‘멋쟁이 시인’이다. 깨끗한 피부와 살아 있는 눈빛, 힘이 있는 목소리, 밝은 표정에서 건강미가 넘친다. 항상 깔끔한 차림에 활기가 느껴진다. 젊은이도 따라가기 힘든 총기와 지성미가 풍기는 화법은 올곧게 살아온 문인의 향기를 내뿜는다. 이 박사는 ‘삶의 방정식’을 ‘근면’, ‘성실’, ‘정도’, ‘직진’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시인의 길을 한평생 쉼 없이 달려왔다. 집념과 의지로 밤낮없이 시에 매달려 살았다. 두 번의 암 수술도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문학은 나의 인생이고, 나의 인생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을 보낸 농촌의 자연은 꿈을 키웠고, 꿈은 문학을 키웠으며, 문학은 나를 키웠다”면서 “나와 시, 시와 나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한다.그는 1969년 등단한 이후 1355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70~80대에 쓴 것이다. 시인으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많은 시를 쉬지 않고 쓸 수 있는 비법은 시상과 영감, 제재가 떠오를 때마다 잊기 전에 메모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주제의식에 따라 언어를 구조화하면서 첨삭을 거듭한다. 시상을 더 정확하고 표상하기 위해서다. 전심전력 언어의 형상화에 투신하면 무르익은 시를 쓰고 후회하는 일을 덜 수 있다.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에는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했지만 인생을 숙고하고 성찰하면서 우주의 충만한 존재 문제에 천착하려는 시 정신과 시작 태도가 나이 든 시인의 소명임을 늦게 깨달았지요. 이제야 시가 쉽게 나옵니다.” 이 박사는 2018~2019년 2년 동안 무려 555편의 시를 발표했다. 하루에 0.76편, 나흘에 세 편꼴로 시를 쓴 셈이다. 어떤 날은 하룻밤에 80개의 제재가 떠올랐고 사흘 밤낮 16편의 시를 내리 쓰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집 2권을 한꺼번에 펴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시가 터졌다”고 표현한다. 그는 긍정적 사고와 규칙적인 운동, 문인들과 진솔한 교류, 어릴 적부터 계속해 온 문학활동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목욕과 편식 없는 식사는 건강을 유지하고 일상을 즐기는 그만의 방법이다. 치아 관리도 철저해 아직도 상한 이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시를 쓰는 작업이 마음을 늙지 않게 하는 비결이다. 문학계 후배와 자녀들에게는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 정신을 주문한다. 평생 교육자이자 시인으로 살아온 이 박사는 얼핏 ‘금수저’ 같아 보이지만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전북 진안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구름 위로 솟아오른 용이 되라는 뜻으로 운룡(雲龍)이라고 이름을 지어 줬다. 그러나 광복 이후 1946년 진안초등학교에 재입학한 아홉살 소년은 평범한 시골뜨기였다. 그에게 인생의 길라잡이가 돼준 책은 한국전쟁 당시 전주에서 시골로 피란 온 친구의 초등학교 교지였다. 동시 “하늬바람 불어오면/ 전깃줄은 쓰르릉 피리 불고요”라는 구절을 보는 순간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무작정 시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쓴 최초의 동시 ‘달밤’이 학급 문집 ‘글벗’에 수록됐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59년 전북대 국문과에 진학하면서 이 박사는 시인이 되기 위한 본격적인 담금질을 시작했다. 대학 2학년이던 1962년 10월 경북대 주최 제5회 전국대학생문예작품 현상공모에 ‘기도’가 당선됐다. 이어 1964·1965·1969년 ‘현대문학’에 연 3회 추천되면서 등단에 성공했다. “앞만 보고 뛰어가는 외곬으로 뚫린 성격, 철저한 준비성과 꼼꼼한 정리벽,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긍정적 사고,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근성이 저의 유일한 자산이지요.” 그가 시인으로서 문학의 앞길을 열기까지 과정은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시대적 상황에 휩쓸리고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오직 정신력 하나로 이겨냈다. 중학생 때부터 학비 마련을 위해 장작 장사를 했고 공사판에서 등짐을 졌다. 대학 시절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바람에 영양실조에 시달렸지만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쳤다. 가난은 시련과 고통이었으나 성취욕 강한 그는 오히려 성장의 자양분으로 치환했다.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주제넘게 시인이 되기를 꿈꾼 비현실주의자입니다. 시와 함께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었지요.” 이 박사는 오로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했을 뿐 경제적으로는 빵점짜리 가장이었다. 부인이 생활고를 탓하며 바가지를 긁으면 “선비가 돈 버는 것 봤느냐”며 되레 큰소리치고 헛기침을 했다. 이 박사는 전북문인협회장, 초대·2대 전북문학관장을 역임하며 향토문학계에 족적을 남겼다. 그가 22년 동안 이끈 ‘열린시문학회’와 ‘시창작교실’은 전북 지역 문인 배출의 산실 역할을 했다. 그가 닦아 놓은 문학 기반은 전북도 문화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서울신문 향토문화대상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이 증명해 준다. “나는 어린 시절 희망대로 여전히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생활력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요. 저승의 부모님에게는 불효막심이고 형제에겐 자기 이상만 고집해 온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졸장부지요. 어찌 보면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돈도 백(배경)도 없는 촌놈이 문학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불꽃은 가난 속에서 팔순까지 지칠 줄 모르고 문학인으로 담금질하는 에너지원이었다. 또 세 자녀를 낳은 아내가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나, 10년 전 전립선암과 위암 수술로 사경을 헤맬 때도 그를 지탱해 주고 일으켜 준 힘이 됐다. “그동안 옆걸음 치면서 타인의 어깨 너머를 넘보지 못했고 유유자적 느림의 미학도 탐할 수 없었지요. 자녀들도 모두 자리잡아 걱정이 없다 보니 이제야 숨 돌리고 인생과 문학을 정리할 때가 왔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불청객 세월이 가르쳐 준 결과지요.” 이 박사는 한때 이 세상 사람으로 살았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시집 20권, 문학이론서 및 시론서 등 13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제 소망이 있다면 작은 개인 문학관을 건립하고 자신이 제정한 ‘중산문학상’이 계속 후배 문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함을 즐기지 못하는 그의 문학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언제까지 문학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이제 그만 써야겠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2022년에 단행본 시집 7권을 합본한 3번째 ‘이운룡 시 전집’과 시론집 ‘시와 비평의 등가성’을 발간할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글 사진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미성년 의붓딸 성폭행하고 성병 옮긴 계부 2심도 징역 8년 선고

    미성년 의붓딸 성폭행하고 성병 옮긴 계부 2심도 징역 8년 선고

    10대 의붓딸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계부가 2심에서도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구자헌)는 3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46)에게 1심과 같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또 아동·청소년 기관 및 관련 기관에 5년간 취업제한과 5년간의 보호관찰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고, 부양할 배우자가 있고 나이 어린 아들이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면서도 “나이 어린 의붓딸에게 지속해서 성범죄를 가해 피해자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와 전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1심이 선고한 형량이 너무 무겁다거나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A씨는 딸이 10세이던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총 4차례 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처음 경찰 조사를 받으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본인이 앓고 있는 성병과 동일한 병이 딸에게서 확인되자 4건 중 2건의 범행만 인정했다. 한편 남편의 성폭행 사실을 덮기위해 딸에게 고소 취하를 강요하면서 수차례 폴행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친모는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2000자 인터뷰 33]김호홍 “북한, 코로나 위기 상황되면 남한·미국 지원 받아들일 것”

    [2000자 인터뷰 33]김호홍 “북한, 코로나 위기 상황되면 남한·미국 지원 받아들일 것”

    코로나19 감염자 없다는 북한 주장 신뢰 어려워 의료수준 세계 최하위, 한 번 뚫리면 큰 위기 한국, 미국 지원보다 국제기구 제3국 지원에 의존 심각해지면 모양새 갖춰 지원 수용할 가능성 국제기구 NGO의 적극적 대북 지원 시급 북한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전 중국의 감염 상황이 심각해지자 1월 말 북중 국경을 봉쇄하는 등 비교적 발빠르게 코로나에 대처해왔다. 북한 관영매체는 아직까지 코로나 감염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면서 내부의 방역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시각은 다르다. 북한이 내부 결속 등의 이유로 감염 상황을 숨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김호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서울신문 평화연구소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의 감염자 제로 주장을 믿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아직은 버틸만한 상황으로 보이지만 위험한 단계에 오면 남한과 미국의 방역 지원 제안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수석연구위원과의 일문일답 내용. Q. 북한은 코로나19 발생 3개월이 넘도록 감염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A. 정보가 통제돼 있어 북한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측면에서 추정할 수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감염자 발생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민감했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는 발병 사실을 확인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 통보한 바 있으나, 사스와 메르스 사태 때는 우리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국가위생검열원의 원장이 직접 나서 감염자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국제사회는 코로나19 감염자가 한 명도 없다는 북한 주장에 의구심을 가진다. 일부 외신에서는 사망자 숫자까지 보도했다. 북한 내 감염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추정은 어느 정도 현실적이다. 첫째, 북한은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폭증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인 1월 말 국경을 봉쇄했다. 그 직전까지 북중 국경지역에서 중국인 접촉 및 중국 관광객의 방북이 빈번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북한의 낮은 의료 수준으로는 일반 독감과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감염자를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다. 셋째, 북한 당국의 감시와 통제가 심하다고 해도 북중 간 밀무역으로 생존을 이어가는 주민들 입장에서 중국인과의 접촉을 완전 끊기는 어려울 것이다. 넷째,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선언해 놓은 상태에서 감염병 확산 사실이 대내외에 알려지는 것은 전략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3월 중순 김 위원장이 평양 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하고, 4월 10일에는 전국 각지의 대의원들이 평양으로 모이는 최고인민회의 올해 첫 회의를 개최키로 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감염 수준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닐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Q. 북한의 의료·방역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A. 북한의 열악한 의료수준은 최근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가 실토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평양 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해 “자기나라 수도에 마저 온전하게 꾸려진 현대적인 의료보건 시설이 없는 것은 가슴 아픈 일” 이라면서 “다른 건설사업보다 우선 추진하여 당 창건 75주년(10월 10일)까지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그만큼 의료 인프라 수준이 낮고 개선이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북한은 ‘사회주의 무상의료’를 자랑하지만, 실제 의료수준은 세계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핵위협 방지구상’(NTI)과 존스홉킨스 보건안보센터가 공동 조사해 발표한 보건안보지수(Global Health Security Index)는 한 국가의 전반적인 보건 역량을 나타낸다. 2019년 조사에서 북한은 195개국 가운데 193위를 기록했다. 1990년대 경제적 고립과 전력난 등으로 보건의료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회복과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로 크고 작은 병원과 진료소 형태의 시설은 갖추고 있으나 수준 높은 기초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턱없이 부족하다. 방역체계는 비교적 잘 조직돼 있다. 정책은 보건성에서 총괄하고 실질적인 방역활동은 산하 ‘국가위생검열원’(차관급)에서 수행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심각한 전염병이 발생하면 비상설 기구로 ‘국가비상방역위원회’를 조직해 대응하는 체계다. 하지만 방역의 질적 수준은 매우 낮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방역활동은 차단과 진단, 관리, 치료의 각 요소들이 상호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데 북한은 차단에만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엿볼 수 있듯이 국경을 전면 봉쇄하고 대내적으로는 주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단순 방역 활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유증상자를 선별해 내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격리하여 치료하는 후속 과정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번 뚫리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Q. 북한은 WHO나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국제기구에 방역물품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물품이 북중 접경 단둥까지 갔으나 반입이 되지 않았다는 등의 보도도 나오고 있다. 스위스에도 방역지원을 요청했지만, 스위스의 개발협력청 평양사무소 직원이 철수하면서 모니터링이 불가능해져 결국은 지원이 연기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왜 이런 혼선이 나온다고 보는가. A. 사실관계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만일 물품의 반입이 안 됐다면 국경 폐쇄와 외국인 입국 금지 등 비상조치 상황에서 평양 당국과 일선 행정기관 간에 정확하고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 따른 혼선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스위스 지원물품의 모니터링 문제는 인도적 지원 관련 규정상 명시돼 있어 북측과 갈등이 있는 부분이다. 모니터링 요원이 없는 상태에서 모니터링의 주체와 방법 등을 놓고 논란이 야기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즉 이런 혼선은 비상상황에서 미처 예측하지 못한 방법과 절차상의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Q.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북방역 지원 제안에 대해서도 일절 응답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김정은 위원장은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수행하고 있다. 정면돌파전은 미국과의 협상이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세판단 하에 미국의 제재에 맞서 내부결속과 자력자강을 통해 국면 돌파를 추진함으로써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나타났다.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외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드러내놓고 미국과 남한의 도움을 받기에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당장 코로나 방역도 중요하지만 비핵화 협상에서 대미 주도권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국가 이익’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당분간은 미국이나 우리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기보다는 정치적 부담이 적은 국제기구나 제3국의 협조를 통해 상황을 관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3월 22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코로나 방역에 협조의사를 표명했다는 점을 공개한 바 있다. 또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위로 친서를 보낸 점 등을 감안할 때 향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북한 내 상황이 위험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적절한 모양새를 갖추어 지원을 수용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 Q. 국제사회의 대북 방역지원은 절실하고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방역 지원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A. 북한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감염병 문제는 인간의 생명과 관련이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와 별개로 접근하는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열린 자세로 북한이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 국제사회에 알리고 협력을 구할 때 지금보다는 양적·질적으로 개선된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 변화만 기다릴 수 없다. 국제사회도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여 WHO를 중심으로 대북 협의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통해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필요한 목록을 정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등 조용한 가운데 좀 더 체계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현재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이 국내 방역관리에 시급한 상황으로 북한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십자 단체나 국제 비정부기구(NGO) 단체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의류·비누공장도…북한 마스크·소독제 비상에 생산라인 총동원

    의류·비누공장도…북한 마스크·소독제 비상에 생산라인 총동원

    中접경지 원단·의류공장, 마스크 생산체제로평양 비누공장도 소독제품 생산 투입북한 “코로나19 확진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우려 속에 의료 시설이 열악한 북한이 마스크와 소독제 등 주요 방역 물자 생산을 위해 의류 및 비누공장 등을 생산라인에 총동원하고 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격리자는 1만명에 육박한다고 북한 매체들이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이 가운데 격리 해제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11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중국과 접경한 평안북도의 정주시에서는 원단과 의류공장들이 마스크 생산에 총동원됐고, 위생방역소와 의약품관리소에서는 소독약 생산을 늘려 모든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 거주구역에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수도 평양에서는 비누공장들까지 각종 소독제품 생산에 투입됐다. 노동신문이 이날 공개한 룡악산비누공장 내부 생산라인 사진을 보면 분무형, 펌프형 등 다양한 형태의 소독제가 생산되고 있다.황해북도 수안군에서도 “방역사업에 최대의 관심을 돌려 사소한 빈틈도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의료기구와 방역 물자를 충분히 확보하고 즉시 동원 가능하도록 구급차와 화물차 등 각종 이동수단도 상시 대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 인프라가 열악한 북한은 코로나19 발병 직후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고 철저한 국경 차단과 의심환자 격리 등의 선제적 조치로 예방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북한은 1월 말부터 코로나19 유입을 막겠다며 국경을 폐쇄하고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 등을 최대 40일 이상 격리하는 등 전 세계 유례없는 강력한 대책을 실시했다. 전 주민을 상대로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 개인위생을 특히 강조해왔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내수만으로는 충분한 물자 생산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격리된 선박 내 오수 영해 안 버리게 감시 강화”… 장기간 격리에 ‘이탈 행위’ 추정 북한 매체 공식 확인 격리자 수 9550여명… 주재 외국인 포함시 1만명 달해격리 규모와 기간이 늘어나는 데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모습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보도에서 각종 격리시설에 대한 소독·정화사업과 관련, “더욱 높은 요구성이 제기된다”면서 특히 “국경통과 지점에 머물러있거나 우리 영해나 영공, 영토에 들어오는 모든 운수수단에 대한 장악과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중에서도 “선박들의 오수탕크(탱크)가 넘지 않도록 오수처리를 위한 임시저장탕크 제작, 오수처리 배의 만가동 보장 등 실무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선박이 “오수를 대동강과 영해에 절대로 버리지 않도록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해 장기간 선상 격리에 따른 ‘이탈 행위’가 있음을 짐작게 한다.지난 10일 기준 북한 매체들이 공식 확인한 격리자는 평안남도 2420여명, 평안북도 3000여명, 강원도 1500여명, 자강도 2630여명 등 9550여명이다. 여기에 평양 주재 외국인 380여명까지 포함하면 약 1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강원도와 자강도에서 각각 1020여명, 2630여명 등 총 3650명과 외국인 221명이 격리 해제됐다. 공식 확인된 격리자 가운데 약 39%에 해당한다. 다만 북한이 전국적인 격리 및 해제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어 실제 수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북한, 초강력 방역 조치로 경제 손실 급증 김정은, 이 와중에 초대형 방사포 잇단 발사 등 군사 훈련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초강력 방역 조치로 북한 내 경제 손실도 커지고 있다.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0일 코로나19 방역 조처를 하는 데 대해 “인민의 생명안전을 보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업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COVID-19(코로나19)의 전파와 그로 인한 재앙을 막기 위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초특급 방역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결심하고 실천에 옮길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매체가 코로나19 방역 여파로 경제적 손실이 있음을 처음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북한이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자국 특성을 염두에 둔 조처라고는 하지만, 모든 생산 공장들이 생산을 멈추고 코로나19 방역에 총동원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 매체들이 일련의 방역 조처가 ‘인민대중 제일주의’의 일환이라고 연일 강조하는 것도 당장의 경제난 가중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해 내부의 동요를 방지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경제적 손실 가시화 속에서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초대형 방사포 타격 훈련을 재개하며 군 전력을 과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9일 전선 장거리포병부대들의 ‘화격타격훈련’을 또다시 지도했다고 10일 보도했다. 북한의 이번 훈련은 지난 2일 초대형 방사포 2발을 발사한 지 일주일 만이다. 중앙통신은 이번 화격타격훈련에 대해 “전선 장거리포병부대들의 불의적인 군사적 대응타격능력을 점검하기 위한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북한 군인 180명 코로나로 사망’ 보도 나와…4000명 격리해제

    ‘북한 군인 180명 코로나로 사망’ 보도 나와…4000명 격리해제

    북한이 1월 말부터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고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 등을 최대 40일 이상 격리하는 등 전 세계 유례없는 강력한 대책을 실시했으나 군인 수백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엔케이는 지난 6일 내부 군 소식통을 인용해 군의국이 지난 3일 ‘1, 2월 사망자 180명, 격리자 3700여 명’이라는 결과를 최고사령부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사망자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에서 주둔하는 ‘국경경비대’에서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북한 전역에 걸쳐서는 약 1만명이 격리되었고 이가운데 증상이 없는 4000명은 격리가 해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 관영매체는 아직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북한에서는 주로 외교관인 외국인 380여명을 4주 동안 격리 조치했으며, 마스크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전국적으로 방역지휘부 아래 3만 명의 위생 방역 인력이 조직돼 2중 3중의 방역 소독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10여만 명의 당과 행정일꾼, 근로단체, 의료일꾼들이 기관, 기업소와 공장, 협동농장, 인민반들에 나가 바이러스 감염증의 위험성과 예방 치료대책 등을 알려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9일 자택이나 기관에 격리돼 있는 2차 위험대상 가운데 1차 위험대상인 입국자들과 접촉한 때로부터 40일이 지났지만 감염 증세가 없는 대상자들을 먼저 격리해제하고 있다며 강원도에서 1020여명, 자강도에서 2630여 명의 의학적 감시 대상자들이 격리 해제됐다고 보도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코로나19 없다는 북한, 한중 접경지역 3650여명 격리해제

    코로나19 없다는 북한, 한중 접경지역 3650여명 격리해제

    “이상징후 보이지 않는 일부에 대한 조치 해제” 북한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 차원에서 격리했던 주민 중에서 이상징후를 보이지 않는 일부에 대한 조치를 해제했다고 8일 조선중앙방송이 전했다. 중앙방송에 따르면 강원도와 자강도에서 5일 현재 각각 1020여명, 2630여명 등 총 3650여명의 ‘의학적 감시 대상자들’에 대한 격리해제 조치가 집행됐다. 강원도는 한국, 자강도는 중국과 접한 국경지역이다. 이어 평안남도, 함경북도, 개성시에 대해서도 “격리해제된 의학적 감시 대상자들과 주민들 속에서 비루스 전염병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탕개(긴장)를 늦추면서 사업하고 생활하는 편향들이 없도록 하고 있다”는 언급으로 볼 때 다른 지역에서도 격리해제가 일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북한은 앞서 지난 6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엄밀한 의학적 격리·관찰’을 받고 있던 외국인 380여명 중 221명을 격리해제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평양 주재 외교관 등을 대상으로 한 달가량 자택 격리 조처를 내렸다가 지난 2일자로 해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방송은 이번 격리해제 조치와 관련해 구체적인 의학적 기준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의심할만한 증상이 없는 대상들에 한해서 날짜별로 장악하고 개인별로 건당 검토”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격리해제된 성원들에 대해서도 1개월 간 의학적 감시를 강화해서 비정상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직사업을 면밀히 짜고 들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매체 보도들을 통해 확인된 북한 내 자택격리를 비롯한 ‘의학적 감시 대상자’는 7000여명 선이다. 평안남도와 강원도에 각각 2420여명, 1500여명 등 총 3900여명(3월 1일 노동신문), 북중 접경인 평안북도에 약 3000여명(2월 24일 중앙방송) 등으로 추산됐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나서 코로나19가 절대 유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체제의 특성상 실질적으로 그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전문] 문 대통령 “코로나19, 단합으로 위기에 강한 저력 보여주자”

    [전문] 문 대통령 “코로나19, 단합으로 위기에 강한 저력 보여주자”

    101주년 3·1절 기념사“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독립운동가 최고 예우”문재인 대통령은 1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는 잠시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지만 우리의 단합과 희망을 꺾을 수는 없다”면서 “단합으로 위기에 강한 우리의 저력을 발휘하자”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배화여고에서 열린 제101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억압을 뚫고 희망으로 부활한 3·1독립운동 정신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 됐듯 코로나19를 이기고 우리 경제를 활기차게 되살릴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 지역에 이어지고 있는 응원과 온정의 손길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저력”이라면서 “대구·경북은 결코 외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에도 보건 분야의 공동 협력을 강화하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고 접경지역의 재해재난과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할 때 우리 겨레의 삶이 보다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견인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봉환해 안장하게 됐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이 우리에게 국가의 존재가치를 일깨우고 선열의 애국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나갈 것”이라고 거듭 역설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비상한 시국에 3·1절 기념식을 열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이지만 1920년 3월 1일 첫 번째 3·1절을 기념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이곳 배화여고에서 3·1절 101주년 기념식을 열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1919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공화국의 첫 번째 달력 ‘대한민력’을 발간하면서 3월 1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하고 국경절로 표시했습니다. 임시정부는 3월 1일을 대한인이 부활한 성스러운 날(聖日)로 내무부 포고를 공포하며 상해에서 최초의 3·1절 기념식과 축하식을 거행했고, 배화학당을 비롯한 전국·해외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념 만세시위가 열리는 구심 역할을 했습니다. 서대문 감옥에서는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독립만세를 외쳤고, 동경과 블라디보스토크, 미국, 프랑스에서도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를 선언했습니다. 우리 겨레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3·1독립운동 기념식은 일제강점기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일제는 특별경비와 예비검속으로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침묵시키고자 했지만, 학생들은 동맹휴학으로, 상인들은 철시로,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살려냈습니다. 1951년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외환위기가 덮쳐온 1998년에도, 지난 100년간 우리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3·1독립운동을 기념하며 단결의 ‘큰 힘’을 되새겼습니다. 함께 하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금 3·1독립운동으로 되새깁니다. 매년 3월 1일, 만세의 함성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오늘의 위기도 온 국민이 함께 반드시 극복해 낼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1919년 한해에만 무려 1542회에 걸친 만세 시위운동으로 전국에서 7600여명이 사망했고 1만 6000여명이 부상했으며 4만 6000여명이 체포 구금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이 가혹했지만, 우리 겨레의 기상은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학생, 농민, 노동자, 여성이 스스로 독립과 자강, 실력양성의 주인공이 되면서 오히려 더 큰 희망을 키웠습니다. 1920년 1월 13일,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은 대한독립군 홍범도 의용대장의 권고문을 실어 무장투쟁의 정당성과 국토회복을 위한 각오를 다졌습니다. 1월 30일에는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서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될 76명의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민족교육운동으로 실력을 양성했고 여성의 교육과 권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일제의 수탈과 억압에 저항했고 기업가들은 근대적 기업을 일구기 위해 분투했으며 국민들은 민족경제 자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자각한 국민들의 자강 노력이 이어지면서 1920년에만 무장항일 독립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무려 1651회나 펼쳐졌습니다. 그해 6월, 우리 독립군은 일본군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 최초로 전면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바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였습니다. 임시정부는 이를 ‘독립전쟁 1차 대승리’라 불렀습니다. 1920년 3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독립군 북로군정서와 체코군 간에 무기 매수계약이 이뤄졌습니다. 9000명의 ‘인간사슬’로 연결해 운반해온 이 무기들이 10월 ‘청산리 전투’ 승리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된 군대와 식량과 의복을 지원한 우리 겨레 모두가 독립군이었고 승리의 주역이었습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3·1독립운동이 만들어낸 희망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오늘 저는 온 국민이 기뻐할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분의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입니다. 협조해주신 카자흐스탄 정부와 크즐오르다 주 정부 관계자들, 장군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고 묘역을 보살펴오신 고려인 동포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갈 힘을 키우는 일입니다.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나갈 것입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이 우리에게 국가의 존재가치를 일깨우고 선열의 애국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왔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목표로 ‘소재·부품·장비의 독립’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함께 하면 해낼 수 있다는 3·1독립운동의 정신과 국난극복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우리는 단합된 힘으로 역량을 길렀습니다. 무상원조와 차관에 의존했던 경제에서 시작하여 첨단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했고, 드디어 정보통신산업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지금도 온 국민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고, 위축된 경제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우한의 교민을 따뜻하게 맞아주신 아산·진천·음성·이천 시민들과 서로에게 마스크를 건넨 대구와 광주 시민들, 헌혈에 동참하고 계신 국민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전주 한옥마을과 모래내시장에서 시작한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 곳곳의 시장과 상가로 확산되고 있고, 은행과 공공기관들도 자발적으로 상가 임대료를 낮춰 고통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은 성금을 내고 중소 협력업체에 상생의 손을 내밀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채 격리병동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나누고 희망을 키워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 이어지고 있는 응원과 온정의 손길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저력입니다. 전국에서 파견된 250여명의 공중보건의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 많은 의료인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뒤로한 채 대구·경북을 지키고 많은 기업들과 개인들이 성금과 구호품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대구·경북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와 함께 정부는 선별진료소와 진단검사 확대, 병상확보와 치료는 물론, 추가 확산의 차단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국민들께서 힘을 모아주실 것이라 믿으며 반드시 바이러스의 기세를 꺾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부는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려 전방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비상경제 시국’이라는 인식으로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데도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관광·외식업, 항공·해운업 등에 대한 업종별 맞춤형 지원을 시작했고, 보다 강력한 피해극복 지원과 함께 민생경제 안정,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전례 없는 방안을 담은 ‘코로나19 극복 민생·경제 종합대책’도 신속하게 실행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비비를 적극 활용하고 추경 예산을 조속히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겠습니다. 국회에서도 여야를 떠나 대승적으로 협조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방역의 주체’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하면 못해낼 것이 없습니다. 안으로는 당면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밖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뤄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독립이며 새로운 독립의 완성입니다. 정부가 앞장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단합으로, 위기에 강한 우리의 저력을 다시 한번 발휘합시다. 국민 여러분, 지금 세계는 재해와 재난, 기후변화와 감염병 확산, 국제테러와 사이버 범죄같은 비전통적 안보위협 요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통해 초국경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3·1독립선언서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통합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인도주의를 향한 노력은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입니다. 북한은 물론 인접한 중국과 일본,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북한과도 보건 분야의 공동협력을 바랍니다.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고 접경지역의 재해재난과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할 때 우리 겨레의 삶이 보다 안전해질 것입니다. 남북은 2년 전, ‘9·19 군사합의’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그 합의를 준수하며 다양한 분야의 협력으로 넓혀 나갈 때 한반도의 평화도 굳건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침략행위에 무력으로 맞섰지만, 일본에 대한 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동양평화를 이루자는 것이 본뜻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3·1 독립운동의 정신도 같았습니다. 과거를 직시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되,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랍니다. 역사를 거울삼아 함께 손잡는 것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길입니다. 함께 위기를 이겨내고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위해 같이 노력합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우리는 국가적 위기와 재난을 맞이할 때마다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살려냈습니다. 단합된 힘으로 전쟁과 가난을 이겨냈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뤄냈습니다. 코로나19는 잠시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지만 우리의 단합과 희망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억압을 뚫고 희망으로 부활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이 지난 100년,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 되었듯, 우리는 반드시 코로나 19를 이기고 우리 경제를 더욱 활기차게 되살려낼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를 믿고 격려하며 오늘을 이겨냅시다. 새로운 100년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갑시다. 감사합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문 대통령, 삼일절에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로 모셔오게 됐다”

    문 대통령, 삼일절에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로 모셔오게 됐다”

    文 “독립운동가 기억은 긍지 일깨우는 일… 최고 예우로 보답” 北 평양 출신 홍범도, 항일무장투쟁 선봉 서봉오동·청산리 전투서 일본군에 대승 거둬카자흐스탄서 생 마감…文, 유해 봉환 요청문재인 대통령은 삼일절(3·1절)인 1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북한 평양 출신의 홍 장군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와 연해주 등에서 대한독립군을 조직해 항일무장투쟁을 이끌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인물이다. 광복이 되기 전인 1943년 10월 카자흐스탄에서 75세로 사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열린 제101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저는 온 국민이 기뻐할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면서 “지난해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분의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해 안장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 국빈방문 당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을 만나 현지에 묻혀 있는 홍 장군의 유해봉환을 요청했었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일”이라면서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문 대통령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3·1독립운동이 만들어낸 희망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싶다”면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이 우리에게 국가의 존재가치를 일깨우고 선열의 애국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홍 장군의 항일 업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1919년 한 해에만 무려 1542회에 걸친 만세 시위운동으로 전국에서 7600여명이 사망했고, 1만 6000여명이 부상했으며, 4만 6000여명이 체포 구금됐다”면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제 탄압이 가혹했으나 우리 겨레의 기상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학생, 농민, 노동자, 여성이 스스로 독립과 자강, 실력양성의 주인공이 되면서 오히려 더 큰 희망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이어 “자각한 국민의 자강 노력이 이어지면서 1920년 무장항일 독립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무려 1651회나 펼쳐졌다”면서 “그해 6월, 우리 독립군은 일본군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 최초로 전면전을 벌여 대승을 거뒀다. 바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로, 임시정부는 이를 ‘독립전쟁 1차 대승리’라 불렀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1920년 3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독립군 북로군정서와 체코군 간에 무기 매수계약이 이뤄졌다. 9000명의 ‘인간사슬’로 연결해 운반해온 이 무기들이 10월 ‘청산리 전투’ 승리의 동반자가 됐다”고 말했다.文 “일본, 과거 직시해야 상처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 “일본,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이웃”문 대통령은 한때 한국을 침략해 많은 살상을 저지른 일본을 향해서도 “일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침략행위에 무력으로 맞섰지만, 일본에 대한 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동양평화를 이루자는 것이 본뜻임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3·1 독립운동의 정신도 같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를 직시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과거를 잊지 않되,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일본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키되,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도 동시에 구축한다는 기존의 ‘투트랙’ 전략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역사를 거울삼아 함께 손잡는 것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길”이라면서 “함께 위기를 이겨내고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고 말했다. 文 “북한, 보건 분야 공동 협력 바라…한 국가만으로 해결 어려워”문 대통령은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관련해서 “북한과 보건분야 공동협력을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고 접경지역의 재해재난과 한반도의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할 때 우리 겨레의 삶이 보다 안전해질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안으로는 당면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밖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뤄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것”이라면서 “그것이 진정한 독립이며, 새로운 독립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은 2년 전, ‘9·19 군사합의’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일궈냈다”면서 “그 합의를 준수하며 다양한 분야의 협력으로 넓혀 나갈 때 한반도의 평화도 굳건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문 대통령은 “지금 세계는 재해와 재난, 기후변화와 감염병 확산, 국제테러와 사이버 범죄같은 비전통적 안보위협 요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면서 “한 국가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을 통해 초국경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물론 인접한 중국과 일본,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고 전했다. 文 “코로나19 위기, 단합하면 반드시 함께 극복해낼 것” 文, 작년 일본 수출규제 극복 위기 언급“대구경북에 온정의 손길…외롭지 않다”“단합으로 위기에 강한 저력 보여주자”문 대통령은 이날 3·1 독립운동 정신과 여러 차례 국난 극복의 저력을 되새기며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단결’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외환위기가 덮쳐온 1998년에도 지난 100년간 우리는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3·1 독립운동을 기념하며 단결의 ‘큰 힘’을 되새겼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함께 하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3·1 독립운동으로 되새긴다”면서 “오늘의 위기도 온 국민이 함께 반드시 극복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우리가 ‘소재·부품·장비의 독립’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함께하면 해낼 수 있다는 3·1 독립운동의 정신과 국난 극복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지난해 7월 한국의 주력수출품목인 반도체 핵심 소재 3종에 대해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1차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 이후 8월에는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수출 우대 국가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2차 경제 보복을 감행했다.문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고, 위축된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한 대구·경북을 거론, “대구·경북 지역에 이어지고 있는 응원과 온정의 손길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대구·경북은 결코 외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한 교민을 따뜻하게 맞은 지역 주민들, 헌혈에 동참한 국민들, 착한 임대인 운동 확산, 은행·공공기관·대기업의 고통 분담, 의료진의 헌신에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더 많은 국민들께서 힘을 모아주실 것이라 믿는다”면서 “반드시 바이러스의 기세를 꺾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려 전방위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비상경제 시국이라는 인식으로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데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문 대통령은 “우리는 국가적 위기와 재난을 맞이할 때마다 3·1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살려냈다”면서 “코로나19는 잠시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지만, 우리의 단합과 희망을 꺾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반드시 코로나 19를 이기고 우리 경제를 더욱 활기차게 되살려낼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단합으로 위기에 강한 우리의 저력을 다시 한번 발휘하자”고 거듭 호소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주한미군의 대량살상무기 제거 및 호송 부대 ‘501중대’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주한미군의 대량살상무기 제거 및 호송 부대 ‘501중대’

    주한미군의 대량살상무기 제거 부대가 지난해 말 우리 육군과 함께 연합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최근 확인되었다.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을 비공개로 실시했던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훈련 사진을 SNS 즉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공개했다. 이 훈련에 참가한 주한미군의 501중대는 주한미군 제23화학대대 예하부대로 정확한 명칭은 '501 CBRNE 기술호송중대'로 알려져 있다.501 CBRNE 기술호송중대의 'CBRNE'는 Chemical(화학무기), Biological(생물무기), Radiological(방사능), Nuclear(핵무기), and Explosive(폭발물)의 약자가 조합된 영어단어이다. 여기에 더해 기술호송이란 화학, 생물, 방사능, 핵, 폭발물 등의 대량살상무기들을 무력화시키거나 이를 안전하게 이송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501중대 요원들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해체, 견본분석, 해독 및 무기를 식별하는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중대급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화학부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501중대는 유사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무력화시키고 접수하는데 빠져서는 안 될 필수적인 부대다.북한은 지난 1960년대부터 생화학무기의 개발 및 생산에 주력해왔다. 자강도와 함경남도에 화학무기 개발 및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평양, 평안남도, 황해북도 등지에 저장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무기는 17종 2500~5000여t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생물무기는 콜레라, 탄저균, 천연두 등의 자체 배양 능력을 보유하고, 정주와 문천 지역에 생물무기 생산시설을 가동 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할 때도 화학무기인 'VX'를 사용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고도화 되면서 지난 2012년 미 육군의 제23화학대대가 주한미군에 재배치되었으며, 이때 501중대도 같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501중대는 아주 극소량으로도 치명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다루기 때문에 방독면과 특수보호의를 입고 대부분의 훈련을 실시한다. 특수보호의란 화생방전하에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몸에 착용하는 옷이다. 이밖에 대량살상무기를 탐지 및 식별할 수 있는 특수장비들도 보유하고 있다. 공개된 훈련 사진을 보면 한미양국군은 이번 훈련에서 각각 정예 요원을 편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조 시설에 공동으로 침투해 시설을 접수한 뒤 무기를 회수 및 무력화하는 시나리오를 집중 훈련한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의 지하시설과 유사한 곳에서 훈련을 실시했으며, 훈련 내용에는 북한군과 교전 후 적의 핵심 요원을 생포하는 시나리오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 군에도 501 CBRNE 기술호송중대와 유사한 부대가 있다.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에는 화생방특수임무대대가 있으며 주한미군의 501중대와 다양한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포토] 북한, 신종코로나 방역에 총력

    [포토] 북한, 신종코로나 방역에 총력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예방하기 위해 전역에서 소독을 강화하고 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8일 전했다. 자강도인민위원회 소속 의료진이 주민들을 소독하고 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 “경제 체질 강화·산업생태계 구축… ‘전북 대도약의 해’ 만들 것”

    “경제 체질 강화·산업생태계 구축… ‘전북 대도약의 해’ 만들 것”

    “웅비의 2020년, 힘찬 발걸음으로 전북 대도약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송하진 전북지사는 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북은 그동안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발전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지만 이제 도민들에게 성과를 안겨 드릴 차례가 됐다”며 “개인의 삶과 지역의 가치가 인정받는 전북을 만들겠다”고 새해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경제 체질 강화, 산업생태계 구축, 자존의식 고취에 더욱 정진해 전북인으로서의 자긍심과 기상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송 지사는 “농업 중심지 전북은 ‘절망의 산업시대’를 겪었으나 이제 도민들이 체감할 만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도민 일자리의 산실이 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연일 계속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 대책 진두지휘로 지칠 법도 하지만 전북의 희망을 설명하는 그의 얼굴과 표정에는 강한 의지와 자신감이 넘쳤다. 올해 전북도정의 지표가 될 사자성어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굳센 각오로 일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다음은 송 지사와의 일문일답.-민선 7기 1년 반이 지났다. 성과는. “전북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 토대를 확실히 다졌다. 핵심동력인 새만금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이 확정됐고 신항만은 재정사업으로 전환됐다. 새만금항 인입철도는 예비타당성 대상 사업으로 확정돼 공항·항만·철도 등 교통 트라이포트의 토대를 갖추게 됐다. 대기업 이탈로 흔들리던 경제 체질은 튼튼하게 바뀌고 있다. 상용차산업 혁신성장 및 미래형 산업생태계 구축사업 확정, 전북 군산 상생형 일자리 협약 체결, 친환경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자동차산업은 새로운 도약의 단초를 마련했다. 전북의 대표 산업인 탄소소재산업은 소재·부품·장비산업 국산화의 선봉에 서게 됐다.” ●“소비심리 전국 평균 웃돌아 경제회복 기대” -도민들이 체감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공항, 항만, 철도 등 기반시설 조성과 효성, 명신을 비롯한 151개 기업의 투자 이전, 군산형 일자리 협약 체결 등 경기 전망을 밝게 하는 호재가 이어졌다. 경제지표도 청신호가 켜졌다. 2016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고 고용률과 실업률, 취업자 수 등 3대 고용지표가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 소비자 심리지수도 100.8로 전국 평균 98을 웃돌아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50년 숙원인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의 주춧돌을 놨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재정사업 평가위원회 의결로 행정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되고 추진만 남았다. 동북아 경제 허브 새만금의 조기 완성을 위해 공항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새만금 국제공항을 2024년 착공해 2028년 완공할 계획이다. 공사수행 방식에 패스트트랙 적용을 건의해 개항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국가예산 규모가 2년 연속 7조원을 돌파했다. “전북의 독자권역화를 확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올해 국가예산은 지난해보다 8.1% 늘어난 7조 5068억원을 확보했다. 새만금 예산은 역대 최대인 1조 4024억원을, 국가식품클러스터 등 도정 핵심사업 예산은 1조 9951억원을 확보했다. 미래형 글로벌 상용차 전진기지 조성 등 320건의 신규사업 예산은 앞으로 5조 2100억원까지 늘어나 전북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새해 도정 운영 방향은. “그동안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발전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이제 도민들에게 성과를 안겨 드릴 차례다. 특히 일자리 창출과 민생에서 변화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힘쓰겠다. 가시적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사업은 새만금 국제공항, 상용차 혁신성장 사업, 군산 상생형 일자리,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삼락농정, 융복합 미래산업, 여행체험 1번지 조성 등이다. 개인의 삶과 지역의 가치가 인정받는 도를 만들어 가겠다.” -전북경제 체질변화와 새로운 산업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경제 체질이 단기간에 환골탈태할 수 없겠지만 전북만의 해법을 찾고 있다. 친환경자동차 규제자유특구, 상용차혁신성장산업, 군산 상생형 일자리로 전북을 미래 친환경 전기차 산업의 거점으로 키워 내겠다. 탄소융복합소재의 상용화와 고급화를 추진해 경제보복 위협 등에 대비하겠다. 재생에너지의 연구와 평가, 실증기반을 확충하겠다. 전북연구개발특구는 강소연구개발 특구 지정으로 이어 나가고 금융생태계 조성에도 노력하겠다. 군산 상생형 일자리에 이어 식품기업 유치를 통한 익산형 일자리와 수소 연료전지 생산단지 조성을 통한 완주형 일자리 등을 추가로 발굴해 산업생태계가 도민 일자리의 산실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새만금, 사람·돈 모이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새만금 내부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기반시설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국제공항건설이 본격 추진되고 동서도로는 올해 완공된다. 남북도로와 신항만, 인입철도도 차질 없이 조성할 계획이다. 임대용지 활성화, 투자진흥지구 지정,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구축에도 노력하겠다. 새만금 수질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새만금에 교통과 도시, 산업단지 등 3대 발전 인프라를 견고히 구축해 사람과 돈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고 기울어졌던 동서축을 바로 세울 균형추로 만들겠다.” -전북 자존의 시대를 강조했다. “전북은 경제개발 과정에서 소외돼 ‘절망의 산업시대’를 겪었다. 차별과 낙후를 극복하고자 균형발전의 새 이름으로 ‘전북 몫 찾기’를 주창했다. 나아가 역사, 문화, 사회의 중심지로서 전북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전북자존의 시대’를 강조했다. 그 결과 전북 출신 인사들이 다수 현 정부의 고위직에 진출했고 2년 연속 국가예산 7조원 이상 확보, 국가종합발전계획에 전북 독자권역 반영, 13개 공공·특행기관 유치, 전북의 역사 재조명 등 각 분야에서 값지고 알찬 결실을 거두고 있다.” -민선 6기부터 추진한 삼락농정 성과는.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성과를 보여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시행 농산시책평가에서 전국 최우수상을 받았다. 농가소득 증가율이 2017년 전국 9위에서 2018년 1위로 급상승하고 농가소득은 3위를 기록했다. 농촌관광산업이 특화된 제주와 경기도를 제외하면 전국 최고 수준이다. 광역지자체 최초로 도입한 주요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는 중소농가의 실질적 소득 보전의 수단으로 안착했다. 올해부터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 농민공익수당이 지급된다.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도 활기차게 진행 중이다. 고령화와 인구유출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의 활성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혁신성장·포용발전… 총선공약 30건 발굴” -오는 4월 21대 총선이 실시된다. 지역 숙원사업 공약 반영 대책은. “혁신성장과 포용발전을 양대 축으로 하는 총선공약 30여건을 발굴했다. 혁신성장 부문은 사회기반시설 조성과 첨단산업 육성을 골자로 전주~대구 고속도로 건설, 전주~김천 철도 건설, 익산역 유라시아 철도 시발역 선정, 새만금 하이퍼루프 실증단지 구축 등을 선정했다. 포용발전 부문은 사회적경제 특별지구 지정, 전북권역 재활병원 건립, 반려동물산업 클러스터, 곤충산업 육성, 국립스마트 치유농업원 조성, 마이산 치유관광 복합관광단지 등이다. 발굴한 현안 사업들이 각 정당과 입후보자의 총선 공약에 고루 반영되도록 하겠다.” -신종 코로나 발생으로 지역경제에 타격이 우려된다. “지난달 31일 전북에서도 첫 확진환자가 발생했다. 능동적이고 선제적 대응으로 다행히 추가 감염은 없다. 확산 방지를 위해 전북도재난안전대책본부를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지역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수출기업 지원에도 나섰다. 도민의 건강과 지역경제 보호를 위해 평소 매뉴얼보다 한 단계 높은 대응을 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하태경, 한국당에 ‘양당협의체’ 최후통첩

    하태경, 한국당에 ‘양당협의체’ 최후통첩

    “황교안 대표가 직접 얘기 않으면 거부로 간주”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가 20일 “자유한국당이 오늘까지 양당의 통합협의체를 새보수당은 자강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하태경 책임대표는 이날 당 대표단 회의에서 “새보수당은 문재인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보수 혁신·재건을 위해 (양당 협의체를) 제안했다. 한국당은 통합하자면서 양당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당을 향해 ”통합 시늉만 내는 가짜 통합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양당 협의체 거부는 황교안 대표가 동의한 ‘보수재건 3원칙’ 중 3번째 원칙, 즉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자는 것을 위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새 집’은 정당법상 신설 합당이다. 양당의 신설 합당을 위해서는 법적으로 이행할 게 있다. 그 절차를 이행하기 위해 협의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럼에도 이를 거부하며 통합을 주장하는 건 가짜 통합“이라고 비판했다. 하태경 책임대표는 ”가짜 통합을 운운하는 데 들러리 서지 않겠다“면서 ”오늘까지 (협의체 요구를) 거부하면 새보수당은 가짜 통합 협상을 중단하고 자강의 길을 간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발언이 ”최후통첩“이라며 ”오늘 중으로 답이 없다면 내일부턴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밝혔다. 답변의 주체에 대해선 ”황교안 대표가 직접 얘기해야 한다. 황교안 대표가 직접 얘기하지 않으면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양당 통합 협의체를 거부하면 한국당이 먼저 통합열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한국당이 먼저 내렸기 때문에 이 통합열차는 계속 가는 게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전날 귀국한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과 설 연휴 전에 연락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는 ”그럴 계획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안철수 전 의원 측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오면 어떡하겠냐’는 질문에는 ”그걸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北, 당 부위원장 12명 중 5명 ‘물갈이’…리수용도 해임

    北, 당 부위원장 12명 중 5명 ‘물갈이’…리수용도 해임

    북한,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서 인사 단행황순희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서 결과 드러나박광호, 리수용, 김평해, 태종수, 안정수 교체리수용, 러시아 대사 김형준에 자리 넘겨준 듯지난해 말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단행한 당내 주요 보직 인사의 윤곽이 드러났다. 12명의 당 부위원장 중 절반 가까이를 교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지난 1일 당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 당 부위원장과 부장 등 추가 인선 결과를 발표했지만 해임된 인사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아 어떤 인사가 해임됐는지, 후임자가 누구인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사망한 ‘항일빨치산 1세’ 황순희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른다며 당·정·군 간부 70명으로 구성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을 18일 발표했다. 북한이 주요 행사나 명단을 소개할 때 주로 권력 서열 순으로 호명한다는 점에서 황순희 장의명단은 당 전원회의 인사 결과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당 부위원장 중 장의명단에서 빠진 인사는 박광호, 리수용, 김평해, 태종수, 안정수 등 5명으로 당 전원회의에서 현직에서 물러났음을 보여준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당 전원회의 마지막날 새로 구성된 ‘당중앙 지도기관’ 간부들과 찍은 사진에도 이들 5명은 없었다.올해 85세의 리수용은 국제담당 부위원장을 러시아 대사였던 김형준에게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수용이 정치국 위원으로 권력 서열 7∼8위 안팎이었던 것과 달리 신임 김형준은 당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됐고 서열도 18위로 한참 뒤에 머물렀다. 김형준은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당 부위원장 서열 마지막에 놓였던 김영철보다도 뒤에 있다. 리일환은 조직담당 부위원장인 리만건 다음에 호명돼 박광호 대신 선전선동을 담당했고, 리병철 역시 군수담당 부위원장인 태종수의 후임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경제관료 등 행정간부 인사 담당인 김평해와 경공업 담당 안정수의 후임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다. 김평해 후임으로 주목되는 인물은 전원회의에서 당 부위원장과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한 김덕훈이다. 장의명단에서 8번째로 호명되며 서열이 앞서있다. 김덕훈은 대안전기공장 지배인, 자강도 인민위원장, 내각 부총리 등 오랫동안 중공업 분야에서 일해 온 경제 관료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에 자력갱생으로 ‘정면돌파’한다는 노선에 따라 경제부문 간부 발탁을 위해 중용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역대 노동당 간부부(행정부문 인사담당 부서)장 겸 당 부위원장 중 전문 경제 관료가 없었고 당 관료 출신들이었다는 점에서 김덕훈의 담당 업무를 확인하려면 그의 활동 등을 좀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번 장의위원 명단에 모든 노동당 고위직 인사가 포함되지는 않았다”면서 “앞으로도 좀 더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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