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입학식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69
  • [서울포토] ‘우리도 학교 가요’

    [서울포토] ‘우리도 학교 가요’

    2일 서울 종로구 혜화초등학교에서 열린 입학식에서 1학년 신입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16. 3. 2.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포토] ‘우리도 학교 가요’

    [서울포토] ‘우리도 학교 가요’

    2일 서울 종로구 혜화초등학교에서 열린 입학식에서 1학년 신입생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2016. 3. 2.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오빠랑 멋진 경찰 꿈 이룰래요”

    “오빠랑 멋진 경찰 꿈 이룰래요”

    김철중씨 따라 진학… 245대1 경쟁 뚫어 “외사계 근무해 경찰 위상 높이고 싶어” 부자 경대 동문·부녀 경찰관 등도 눈길 “바라고 바라던 경찰대에 입학할 수 있어 매우 기뻐요. 친오빠와 함께 꼭 멋진 경찰관이 되고 싶습니다.” 올해 경찰대에 입학한 김지원(18·대전외고 졸업)양이 29일 밝힌 포부다. 김양은 경찰대 2학년인 김철중(20)씨의 여동생으로 ‘남매 경찰대생’이 됐다. 10명을 뽑은 일반 여학생 전형에서 2455명(경쟁률 245.5대1)을 제치고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양은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 사회복지사가 되길 바랐지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오빠가 경찰대에 진학하는 모습을 보고 멋져 보여 경찰대를 지원했다”며 “외사계에 근무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경찰의 위상을 높이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경찰대는 이날 충남 아산 경찰대 대강당에서 2016학년도 36기 신입생 100명의 입학식을 열었다. 이번 입학식은 경찰대가 이달 24일 경기 용인에서 아산으로 이전을 완료하고 처음 개최한 행사다. 입학식에는 신입생과 학부모, 재학생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신입생 전체 수석은 임정근(20·김해외고 졸업)군이, 여학생 수석은 송채은(19·김해외고 졸업)양이 각각 차지했다. 경찰 가족도 눈길을 끌었다. 박형후(19·민족사관고 졸업)군의 아버지는 경찰대 5기 졸업생인 경찰청 수사국 박성주(총경) 범죄분석센터장이어서 ‘부자 동문’이 됐다. 부산경찰청 112상황실 하태영 경위의 딸 하정민(19·부산국제고 졸업)양도 36기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이번 신입생은 97대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 경찰대 관계자는 “신입생 100명 중 다양한 계층에 기회를 부여하고자 10명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입학·졸업식 ‘꽃 특수’ 옛말

    입학·졸업식 ‘꽃 특수’ 옛말

    꽃다발이 입학식과 졸업식의 필수품이던 시절은 끝났다. 불황에 위축된 하객들은 꽃을 사는 데 좀체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입학·졸업생들도 꽃다발보다는 실용적인 선물을 원한다. ‘대박’을 기대했던 화훼 농가와 상인들은 쪼그라든 매출에 울상이다. 입학·졸업식에다 밸런타인데이까지 들어 있는 2월은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날이 있는 5월과 함께 화훼업계의 대표적인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 3년간 꽃 판매량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화훼 공판장에서 거래된 장미꽃은 2014년 2월 320만 송이, 2015년 2월 280만 송이로 감소했다. 올해에도 거래량이 지난해 수준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가격이 폭락했다. 장미꽃 10송이 기준으로 지난해 7306원에서 올해 6621원으로 떨어졌다. 홍영수(43) 한국절화협회 사무국장은 29일 “꽃 수요는 경기를 많이 타는데, 올해는 불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서 “전체적으로 매출이 3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올해 대학교를 졸업한 이모(23·여)씨는 “사진 한 번 찍자고 2만원짜리 꽃다발을 사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이라면서 “부모님께 꽃다발 대신 향초를 사달라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최근 졸업식에서 후배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대학원생 김모(29·여)씨는 “2년 전만 해도 졸업생 대부분이 꽃다발을 들고 있었는데, 올해 꽃다발을 든 졸업생은 10명 중 5명도 안 돼 보였다”고 말했다. 꽃이 잘 안 팔리다 보니 학교 앞 상인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지난 25일 졸업식이 열린 숙명여대 정문 앞에서는 꽃 파는 상인 50여명이 거의 전쟁 수준의 경쟁을 벌였다. ‘명당’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루 전부터 자리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 상인은 “가뜩이나 꽃이 잘 안 팔리는데, 상인들이 늘어나서 더 힘들어졌다”면서 “2만원짜리 꽃다발을 1만 5000원으로 깎아 준 뒤에야 간신히 몇 다발을 팔았다”고 말했다. 6년 넘게 경기도 일대 학교의 입학·졸업식을 찾아다니며 꽃다발을 팔아 온 정영식(33)씨는“취업이 잘 안 돼서 그러는지 젊은 사람들까지 장사에 나서면서 꽃 하나 팔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김일수 樂山樂水] 우울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김일수 樂山樂水] 우울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어느새 봄이 왔다. 눈 속을 뚫고 돋아난 노란 복수초, 꽃샘바람 속에서도 꽃망울을 익혀 가는 매화, 실개천의 버들강아지가 새봄의 전령사들이다. 며칠 전까지 우울한 졸업식 광경을 담았던 언론 매체들이 입학식 풍경을 전한다. 희망이 있어야 할 그곳에 찌푸린 미래 전망 때문에 생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로 점점 증가하는 청년 실업률과 좁아진 취업의 문으로 인해 졸업이 두려워지기까지 하는 무거운 분위기를 이 땅의 젊은이들은 한껏 기뻐해야 할 그 자리에서도 벌써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다. 단순히 출산율 저하로 학생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던 지식의 경제는 고비용의 대학이 아니더라도 범람하는 각종 정보의 바다에서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임을 알려 준 지 오래다. 앞으로 팽창 일로에 있는 대학의 빈자리는 한류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외국의 젊은이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된 현실을 어느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문제를 풀어 가는 현명한 방도가 아닐 것이다. 짧은 우리나라 대학 역사에서 교육의 백년대계를 미리 내다보고 정책을 세운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도 가볍게, 함부로 뜯어고치는 교육제도 탓에 고통은 증가했고 시행착오는 누적됐다. 한때 대학인들 사이에선 교육부가 없어져야 대학이 산다는 자조 섞인 말이 회자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금은 이 땅의 젊은이들의 미래와 꿈마저도 앗아갈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녔던 지난 세기 1960년대 후반은 지금보다 더 어둡고 무거웠다. 지식이 쌓여 갈수록 우리의 현실은 딴판이었다. 법은 있었지만 법의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기도 했다. 헌법에 있는 그런 법치국가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인간다운 삶의 기본적인 조건도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도 취업은 어려웠다. 고등고시는 바늘구멍 같았다. 힘을 내라고 말해 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개인의 목숨을 건 노력으로 운명을 헤치고 나가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시대나 삶의 조건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성인은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먼저 배운 자로서 연약한 이웃의 짐을 나누어 지고 가기 위해 자기 자리를 찾아, 자기 몫을 다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소명 의식을 마음에 새겨 둔다. 설령 타인이 자신의 역할을 일시 망각한 채 자기 위치를 벗어났을 때라도 지성인은 자기 자신의 역할을 이행함으로써 그의 위치를 바로잡아 주고 그가 다시 그 자신의 역할로 돌아가게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소명 의식을 품은 젊은이라면 미래의 불투명한 전망 때문에 미리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래를 꿈꾸며 한 번 주어진 대학 생활에서 젊음을 의미 있게 가꾸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난 20세기 100년간 인류 문명의 진보는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1만년간 성취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것이라고 한다. 물론 비관적인 평가도 있다. 인류가 상상도 못 했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세계대전, 대기오존층의 파괴, 생태계 위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과 가정의 붕괴, 신 없는 세계에서 신 노릇하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 문명 간 극단적인 충돌 위험 따위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이다. 인류 위기의 시계가 마지막 12시까지 채 3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경고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현재 우리의 의식을 무겁게 짓누르는 각종 사회적, 경제적, 생태계적 문제들을 완화하거나 최종적으로 해결할 지식과 명철을 갖고 있다는 낙관론도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입증할 만한 논거를 가지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생태학자들이 염려하는바 위협이 되는 인간이 오히려 희망을 약속하는 인간의 자리에 서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물론 인류의 희망이 되는 인간이란 다름 아니라 시대의 아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위기에 처한 지구촌의 문제, 국가의 문제,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풀어 가기 위해 창조적인 노력과 열정을 쏟는 그런 지성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 16학번 새 출발

    16학번 새 출발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26일 열린 2016학년도 입학식에 참석한 새내기 입학생이 꽃다발을 들고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연세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 주요대학이 입학식을 갖고 16학번들의 새 출발을 알렸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 입학식에 이삿짐 챙겨 온 새내기 대학생

    [서울포토] 입학식에 이삿짐 챙겨 온 새내기 대학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입학식에 참석한 한 신입생 앞에 기숙사에 가져갈 짐가방이 놓여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입학식이 끝난 후 축하 꽃다발을 든 신입생이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입학식이 끝난 후 축하 꽃다발을 든 신입생이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신입생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입학식이 열리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신입생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입학식이 열리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입학식에 참석한 한 신입생이 부모님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으며 입학식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신입생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입학식이 열리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입학식에 참석한 한 신입생이 부모님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으며 입학식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세월호 희생 단원고 학생 7명 제주국제대 명예입학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가운데 7명이 제주국제대에 명예입학한다. 제주국제대는 올해 신설해 첫 입학생을 받는 실용예술학부 대중음악전공 과정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박수현·오경미·이재욱·홍순영·강승묵·김시연·안주현 등 단원고 학생 7명이 명예입학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들 학생은 단원고 학교밴드 ‘ADHD’를 결성하는 등 함께 음악 활동을 했으며 평소 대중음악 계열로 진학하기를 꿈꿔 왔다. 이 가운데 박수현군은 지난해 10회에 걸쳐 열린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공연의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이 공연은 박군이 작성한 버킷리스트 가운데 ‘ADHD 공연 20회 하기’를 모티브로 유명 인디밴드 등이 모여 박군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 기획했다. 유가족들은 학생들의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애석해하던 중 이 공연을 추진한 인디밴드들과 인연이 있는 제주국제대 실용예술학부의 대중음악전공 신설 소식을 전해 들었고, 학생들이 끝내 찾아오지 못한 제주에서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학에 협력을 요청했다. 제주국제대는 희생 학생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학부모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등 사회 통합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명예입학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명예입학증은 다음달 2일 입학식장에서 학부모 등에게 수여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입학에 웃고 입학금엔 울고

    입학에 웃고 입학금엔 울고

    법적 근거없어 산정근거도 안 밝혀 “등록금보다 가파른 인상” 한숨 사립대 “입학 경비로만 쓰진 않아” “등록금만 300만원이 넘는데, 입학금이라고 91만원이 더 나왔더라구요. 입학식을 하고 학생증 만드는 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됐죠.” 지난해 경희대에 입학한 이모(25)씨는 22일 “서울대에 들어간 친구는 입학금이 17만원도 안 되는데, 사립대와 국립대 간 등록금 차이를 감안해도 5배나 비싼 입학금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전국 대학 중 입학금이 가장 비싼 학교는 고려대로, 올해 103만 1000원이었다. 이어 동국대 102만 4000원, 한국외대 99만 8000원, 연세대 98만 5000원, 중앙대 98만원, 한양대 97만 7000원, 성균관대 94만 4000원 등 순이었다. 반면 서울대 16만 9000원을 비롯해 서울시립대 9만 2000원 등 국공립 대학은 크게 낮았다.시민단체인 청년참여연대는 이날 ‘입학금 정보공개청구 보고서’를 통해 대학들이 입학금의 산정 근거와 집행 내역을 밝히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청년참여연대는 “조사 대상 34개 대학 중 산정 근거가 있다고 밝힌 곳은 한 군데도 없었고 세부 지출 내역을 밝힌 6곳 중 사립대는 한신대뿐이었다”고 했다. 청년참여연대 관계자는 “대학은 입학 실비에 근거해 입학금이 집행되도록 기준을 세우고, 교육부는 입학금 산정과 관련해 세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칙적으로 대학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별도로 입학금 산정 근거나 지출 내역을 밝힐 의무는 없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3년 교육부에 입학금 징수 근거 및 집행 세부 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대학들은 ‘입학금’이라는 이름 때문에 공연한 오해가 생겼다는 입장이다. 많은 대학 관계자들이 “입학금은 동호회의 가입비와 같은 성격으로, 총수입금으로 편입해 일반 대학재정으로 쓰는 돈”이라고 했다. 고려대 측은 “입학금은 입학에 관한 경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며 교직원 인건비, 시설비 등 전반적인 학교 운영에 사용되는 재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사립대 교직원은 “과거에는 입학금을 입학과 관련한 행정비용으로만 썼지만 물가 상승에 따라 금액을 올리면서 등록금의 일부가 됐다”며 “입학금 인상은 등록금에 비해 학생 반발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많이 오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정운찬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 1기 수료식, 박갑주 원장 외 150명 참석 성황리 개최

    정운찬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 1기 수료식, 박갑주 원장 외 150명 참석 성황리 개최

    정운찬 이사장, 박갑주 원장, 1기 원우와 가족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운찬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 제1기 수료식이 라마다서울 호텔 2층 그랜드볼룸 신의정원에서 2016년 2월 3일(수) 성황리에 개최됐다. 수료식 후 축하 행사로 배일호, 허수경, 이해리 등 초대 가수들의 공연과 1기 원우로 함께 수료한 코미디언 엄용수의 재치 있는 입담과 노래가 이어지면서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행사에 참석했던 원우들과 가족들은 수료식이 대형 행사로 진행된 것에 대하여 매우 즐거워하며 만족해 했다. 정운찬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은 전 국무총리를 역임한 동반성장연구소 정운찬 이사장과 CEO교육 전문가 박갑주 미래창조연구원 원장이 협력하여 개설한 것이다. 대기업 임원과 중소기업체 CEO들이 새로운 10년을 대비하고 기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차별화된 새로운 CEO 교육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정운찬 전 총리는 40대 대한민국 국무총리와 23대 서울대 총장,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이고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저명인사이자 만나기를 희망하는 명사이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하여 국민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25년간 1만 여명의 CEO를 교육시킨 최고경영자과정 교육의 명인 박갑주 교수가 함께 진행하는 최고경영자과정이어서 교육과정이 개설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았다. 이 최고경영자과정은 2015년 10월 7일 제1기 입학식 때 교육생 모집 두 달 만에 모집인원 50명이 성황리에 마감되었고, 모집 정원 50명을 훌쩍 넘긴 60명이 입학하여 처음부터 서울, 경기지역 CEO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저명한 인사와 군 장성, 법조인, 대기업체 임원, 중견 및 중소기업체 CEO 등 사회 각 분야의 저명인사와 성공한 중소기업체 CEO들이 대거 입학 한 것이다. 정운찬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은 ‘CEO의 미래를 바꾼다’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미래(Future)를 대비하는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함께 정운찬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한 박갑주 교수는 25년간 1만 명 이상의 대기업체 임원과 중소기업체 CEO를 교육시킨 CEO 교육 전문가다. 박갑주 원장은 “미래를 대비하고 경영혁신과 블루오션을 창출하여 기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수 있는 길을 찾게 하겠다”며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 이라고 말하며 CEO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의 교수진은 기업체 CEO들이 변화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통한 비즈니스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차별된 내용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저명한 명사들의 강연으로 진행된다. 정운찬(前 국무총리), 문국현(前 창조한국당 대표), 김창준(前 미국 하원의원), 오 명(前 부총리, KAIST 이사장), 이희범(前 한국무역협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갑주(미래창조연구원 원장), 송 자(명지학원 이사장), 김홍신(건국대학교 석좌교수), 윤종록(前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이민화(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KAIST 교수), 박현주(미래에셋 회장), 김명곤(前 문화관광부 장관), 이상용(뽀빠이, 방송인), 고승덕(변호사), 김병조(방송인), 이금룡(코글로닷컴 회장), 박영숙(UN미래포럼 대표) 등이다. 이번 수료식 때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 1기 여러분 수료를 축하드리며, 수료식 행사에 자리를 빛내주신 가족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면서 “지금까지 뜨거운 열정과 리더십으로 본 최고경영자과정의 교육을 진행하느라 많은 수고를 해주신 박갑주 원장님과 교육운영진께 감사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1기에 사회 지도층 인사와 성공한 기업체 CEO분들이 대거 입학하셔서 짧은 6개월 기간 이지만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면서 “그런데 벌써 수료식을 개최하게 되어 감개무량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육과정은 동반성장연구소와 미래창조연구원이 합심해 시작한 CEO교육 프로그램이다. 본 교육과정의 개설 목적은 21세기 글로벌 환경에서 CEO가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미래의 환경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지식과 전략을 습득하여 글로벌 리더로서 성공하도록 돕기 위하여 개설됐다. 수료식장에서 본 최고경영자과정 1기를 수료한 한 CEO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사분들의 강연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고 재미있는 커리큘럼과 각종 행사로 6개월 동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을 정도이다”며 “지금까지 최고경영자과정을 10곳 이상 다녀봤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교육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정운찬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에서는 제2기 수강생을 모집 중에 있다. 제2기는 2016년 3월 16일(수)부터 7월 13일(수)까지 진행되며 교육 문의는 전화(02-577-4440)로 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시각장애’ 마흔셋 김태연씨 새달 중학교 영어교사 첫 출근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시각장애’ 마흔셋 김태연씨 새달 중학교 영어교사 첫 출근

    5살 이후 시력 악화… 장애 1급 판정 어렵게 간 수의학과 1년 만에 중퇴 장애 대학생과 영어 공부하며 새 도전 음성으로 듣고 외워 이대·임용시험 합격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되자는 생각뿐”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저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태연(43)씨는 오는 26일 자신보다 스무 살 정도 어린 동기들과 나란히 학사모를 쓴다. 2012년 이화여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해 남들보다 고된 공부를 이어 온 끝에 얻은 귀한 결실이다. 시각장애 1급인 김씨는 지난 2일 서울시교육청 공립중등교사 임용시험 합격 통지를 받았다. 다음달 2일부터 서울 구로구 경인중학교에 영어교사로 출근한다. “마흔 살에 대학에 입학했어요. 학과 공부를 할 때는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되자’는 생각뿐이네요.” 김씨는 어려서부터 시력이 극도로 나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맨 앞줄에 앉았는데도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도 성적은 꽤 좋았다. 1992년 건국대 수의학과에 합격했는데, 입학식 직전에 오른쪽 눈에 ‘황반변성’이 생겼다. 황반변성은 물체의 상이 맺히는 망막 중심부의 황반(시세포가 모여 있는 조직)에 이상이 생겨 시력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1년 후엔 왼쪽 눈에도 황반변성이 나타났다. 결국 1년 만에 학교를 중퇴했다. 한동안 학습지 영어 교사로 일했다. 2006년에는 백내장이 찾아왔다. 눈은 갈수록 더 나빠져 2000년 3급이던 시각장애 등급이 2009년에는 1급으로 바뀌었다. “집에서 형광등 불빛이 물이나 수저에 비치면 눈이 부셔서 뜰 수가 없어요. 창문마다 선팅 처리를 하고 커튼을 달았죠. 지금도 외출할 때면 언제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닙니다.” 김씨는 2009년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와 컴퓨터를 배우면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복지관 직원이 소개해 준 시각장애인 대학생 2명과 영어 공부를 하면서 영어 교사의 꿈도 생겼다. “건국대를 그만두고 ‘굿모닝 팝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재미를 붙였는데, 나중에는 미국 영화를 자막 없이 보게 됐죠. 즐겁게 공부하고 다른 사람도 가르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는 쉽지 않았다. 점자를 늦게 배운 터라 실력이 모자라 라디오 등 음성으로만 공부했다. 2010년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2011년 치른 수능을 통해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신입생이 됐다. 김씨는 “대학 때 모든 강의를 녹음한 후 주말마다 녹취 내용을 타이핑해서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요약해 두었다”며 “이후 컴퓨터 한글 파일을 음성으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도 없이 반복해 들으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시험 때는 3시간만 잤고 학창시절 4년간 대학 밖의 친구들은 다섯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건 목발을 짚고 축구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일반인보다 2~3배는 더 노력해야죠. 하지만 주변의 지원이 있다면 거기에 자신의 노력을 얹어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공군사관학교 신입생도 175명 입학식

    공군사관학교 신입생도 175명 입학식

    19일 충북 청주시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8기 입학식에서 한 신입생도의 볼에 어머니가 입을 맞추며 축하하고 있다. 이날 남생도 161명과 여생도 14명이 입학했다. 청주 연합뉴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법의학의 대명사 강신몽 교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법의학의 대명사 강신몽 교수

    명함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가 ‘011’로 시작한다. “이거 아니에요. 얼마 전에 스마트폰으로 바꿔서 010 됐는데 아직 명함을 못 고쳤어요. 제자들이 하도 바꾸라고 성화를 하는 통에….” 강신몽 교수는 ‘세상을 한 박자 늦게 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업무에 관련된 것 아니면 관심도 없고 시간을 내지도 않는다. 골프나 술자리와도 거리가 멀다. 저녁 8~9시면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차를 몰고 경기 일산 집을 나서 서울 반포의 연구실에 도착하면 아직 세상은 깜깜하다. 이런 자세가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던 법의학의 길을 30년 넘게 걸어올 수 있었던 원천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한 의학 분야 중에 왜 하필 이쪽을 택했느냐”고 묻는다. 사실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외과 의사였다. 그 목표가 갑자기 법의학으로 바뀐 것은 1980년 강원도 철원의 그 뜨겁던 여름을 보내고서였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이듬해 8월 군부대에 ‘삼청교육대’를 설치했다. 당시 나는 철원 육군 6사단에서 군의관 3년차를 보내고 있었다. 정보가 극도로 통제됐던 그때, 우리 부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삼청교육대가 우리 부대에도 있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삼청교육대 희생자들은 우리 의무대로 보내졌다. 의학적 사인은 분명했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뭘 하다가 어떤 상황에서 죽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분위기도 아니었고 누군가 먼저 나서 말해 줄 상황도 아니었다. 전국에 내려진 삼엄한 비상계엄령 속에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사망했다는 사실만 통보됐다. ‘저들 한명 한명이 다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고 형이고 아버지 아닌가.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가족들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학교에서 배웠던 ‘신원’(伸冤)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억울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능력을 그쪽에서 발휘해 볼 방도는 없을까. -1981년 제대와 동시에 법의학교실 문국진(90) 교수님의 제자로 들어갔다. ‘법의학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리는 문 교수님은 197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을 마치고 고려대로 옮겨 법의학을 가르치고 계셨다. 법의학을 하겠다고 하니까 사방에서 말렸다. 지금도 법의학을 배우거나 연구하는 사람이 전국에 통틀어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이고 보면 당시 세간의 싸늘한 시선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가족이 밀어줬다. 아버님께서 허락하셨고, 갓 결혼한 아내(순천향대 의과대학 이혜경 교수)가 적극적으로 응원해 줬다. 법의학 석·박사 학위를 따낸 8년의 세월은 법의학의 바다에서 맘껏 헤엄칠 수 있었던 ‘내 청춘의 황금기’였다. -1989년 국과수에 의무기좌(5급 기술직) 신분으로 들어가 1999년 가톨릭대학으로 옮기기까지 10여년을 근무했다. 국과수 근무의 전반부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격변기였다. 집회와 시위 등 시국 관련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숨 막힐 정도로 무거운 주목을 사방에서 받았다. 밖에서는 우리가 정권에 유리한 결론을 낼 거란 의혹의 시선을 보냈고, 안에서는 이런저런(능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압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평생 순수한 법의학적 소견 외에는 어떠한 것도 결론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팎의 불신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1991년 5월 시위 도중 사망한 성균관대 김귀정씨 사건 때는 부검을 하러 가다가 중간에 되돌아오기도 했다. “정부 측인 국과수는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 거세지면서 대학병원에서 부검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 측에서 냉랭한 시선을 보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1993년 6월 발생한 ‘김춘도 순경 사망 사건’ 때였다. 서울 연신내에서 한총련 대학생 시위를 진압하던 중 사망한 김 순경의 부검을 국과수 법의학과장으로서 내가 담당했다. ‘학생들이 발로 차고 각목으로 때렸다’는 동료 경찰들의 진술과 ‘김 순경에 대한 폭력은 없었다’는 학생 측 진술이 엇갈리면서 부검 결과가 정국의 판도를 가를 만큼 중대한 변수가 됐다. 부검을 마친 뒤 나는 직접 기자들 앞에 섰다. “돌이나 각목에 맞은 흔적은 없었습니다.” 그에 따른 후폭풍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요즘은 법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만큼 법의학에 대한 오해도 늘었다. 범죄에 얽힌 미스터리를 모두 밝혀 줄 것이란 생각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TV시리즈 ‘CSI’나 우리나라 드라마 ‘싸인’처럼 과학수사와 법의학을 주제로 한 방송물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법의학자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몇 번 관심 갖고 보다가 금세 포기했다. 이해가 어렵기도 했고, 극적 재미 때문에 현실과 거리가 먼 스토리들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술술 풀리고 결론이 명확한 경우는 법의학 현장에서는 좀체 찾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부검과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을 통해 ‘가능성이 높다’ 또는 ‘가능성이 낮다’ 정도만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지은 책(‘타살의 흔적’ ‘죽음의 해석’ 등)을 읽은 친구들은 한결같이 “왜 네 책에는 결론이 없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만 해서야 무슨 재미로 책을 읽겠냐”고 말한다. -나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위로 형 셋이랑 누나 둘을 둔 6남매 중 막내였는데 내가 세 살 때 아버지께서 서울농업대(현 서울시립대) 축산학과 교수로 부임하시면서 서울 사람이 됐다. 내가 중1 때 아버지께서 고려대 농대 축산학과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런데 얼마 후 집안에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생겨 안암동 그 큰 집을 떠나 제기동, 수유리, 삼양동 등으로 수도 없이 전·월세를 전전했다. 학창 시절 자신감 없고 의기소침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학교 성적은 그저 그랬다. 초등학교 때는 꽤 똑똑하다는 말도 들었는데 중학교 때는 중하위권, 고등학교 때는 중상위권 정도였다. 성격과 환경이 안 맞아서 그런 측면이 강했다. 휘경초등학교 졸업 동기 중에 시험 봐서 경기중학교에 간 사람이 나 혼자였다. 아는 애들이 아무도 없다 보니 초기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게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중3 초에 담임 선생님께서 “네 성적으로 경기고는 안 되고 경복고 정도면 다행이겠다”고 하셨다. 그 얘기는 참 충격적이었다. 경기고는 무난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기로 공부를 했다. 결과는 괜찮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나는 또다시 마음의 활력을 잃었다. 목표를 이룬 후의 허탈감 같은 것이었다. 고2 때까지도 나중에 커서 뭐가 돼야지 하는 꿈이 없었다. 친구들은 의사, 과학자, 공무원 등 꿈을 말하는데 나는 모든 게 다 시들했다. 한 친구가 한심해 보였는지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아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또래한테 그런 얘기를 들으니 자존심이 상했다. 밤새 고민을 해서 ‘꿈’이란 걸 억지로 짜냈다. 군인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나 같은 고도근시는 육사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얼마 후 알게 됐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께서 심장병을 얻으셨다. 그 일은 나에게 인생의 목표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의사가 돼서 어머니를 치료해 드려야겠다.’ 목표가 생기자 공부에 신바람이 붙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서울대 의대에 낙방을 하고 말았다. -재수를 하던 1971년 10월 고려대가 우석대와 합병하면서 의과대학이 생겼다. 고려대 교수셨던 아버지께서 “우리 학교 의대로 오면 1회 입학생이라는 의미도 있고, 교직원 자식이니까 너는 등록금을 하나도 내지 않아도 된다. 서울대 의대 말고 고대 의대를 지원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어 오셨다. 재수를 하면서도 목표는 여전히 서울대 의대였지만 확실히 붙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사실 없었다.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을 때 전해진 아버지의 제안은 나에게 단비와 같았다. 당시만 해도 경기고 나와서 서울대 못 가면 바보란 소리를 들을 때였지만 난 그런 데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6년을 공짜로 배울 수 있다니. -고대 의대에 진학해서 얻은 최고의 선물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일이다. 아내를 처음 본 순간은 지금도 정지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멎어 있다. 1972년 입학식을 하는데 1학년 100명 중 나는 63번, 아내는 48번이었다. 아내 바로 앞에 서 있던 47번이 덩치가 엄청 큰 친구였는데 그 친구 뒤에 서 있는 아내를 보는 순간 ‘필’이 느껴졌다. 50명씩 A반, B반으로 나뉘었는데 아내와 반이 갈렸을 때의 안타까움은 잊을 수 없다. 결국 ‘스터디 클럽’을 만든다고 법석을 떨고 과감하게 고백도 해서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어머님을 고치겠다고 의대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한낱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놀러 다니는 데만 열중했다. 그러는 중에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심해졌다. 마음 한편에서는 ‘대학을 계속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본과 2학년 때까지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심장내과 전공의가 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나마 있던 목표까지 사라졌다. 어영부영 살다가는 돌아가신 어머님께도 부끄러울 것 같아 본과 3~4학년 때는 미친 듯이 공부했다. 특히 외과에 큰 재미를 느꼈다. 지금이야 외과가 의대 내에서도 기피 분야가 돼 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외과는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었다. 외과를 전공하면 ‘최고의 의사’라는 사람들의 선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큰 이유였다. -은퇴한 뒤에는 ‘이태원 살인 사건’이나 ‘치과 의사 모녀 살인 사건’ 등 법의학적으로 크게 논란이 됐던 사건들에 대해 책을 집필할 생각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법의학자나 법과학자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법의학자들 간에 진지한 논의를 끌어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법의학을 나름대로 꽤 한다고 했지만 우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보조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신문 스크랩을 가리키며) 그래서 저렇게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강신몽(63) 교수는 우리나라 법의학의 대명사로 통한다. 30년 넘는 부검의로서의 경력과 그동안 입증해 온 실력이 어우러져 나온 평가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거나 결론을 내기 어려운 사건이 나면 사람들은 항상 그를 불렀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변사체 발견, 가수 신해철씨 사망 때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강 교수의 입을 바라봤다. 198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입사해 연구소장을 거쳐 1999년 가톨릭대로 옮긴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시신은 얼추 4000구에 이른다. 지금도 1년에 200건가량을 직접 집도한다. 자신을 좀체 부각시키지 않는 은자(隱者)의 풍모로 유명한 그는 매일 새벽 5시면 서울 반포의 가톨릭대 의과학연구원 별관 2층 연구실에 도착한다. ▲고려대 의과대학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과장·부장·소장(1989~1999) ▲가톨릭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1999~) ▲경찰청 과학수사 대상 수상(200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