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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남극전문가 장순근 해양硏 극지연구소 명예연구원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남극전문가 장순근 해양硏 극지연구소 명예연구원

    지천에 꽃이 노래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겨울이 시작되는 곳이 있다. 지구 아래쪽에 있는 남극이다. 4월부터 8월까지 최저 온도가 영하 89.5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가 계속된다. 눈보라로 앞을 분간하기도 힘들다. ‘남극전문가’로 알려진 장순근(63) 박사. 현재 직함은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명예연구원이다. 1985년 남극에 첫발을 내디딘 후 지금까지 남극 세종기지에서만 7년을 지냈고 이곳에서 네번의 겨울을 보냈다. 기술자가 아닌 연구원으로는 유일하다. ●‘남극탐험의 꿈’ 등 20여권 펴내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야! 가자,남극으로’ ‘남극의 영웅들’ ‘남극탐험의 꿈’ 등 관련 서적만 20여권을 펴냈다. 자연과학자가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써 친근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2월 남극에서 귀국한 요즘에도 저술활동에 여념이 없다. 이번에 집필 중인 내용은 ‘남극 세종기지 주변의 자연환경’으로 남극의 얼음, 후퇴하는 빙벽, 남극의 바다와 생물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아울러 기후변화와 남극대륙에서 제2의 기지를 세우기 위한 제언도 담겨져 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장 박사를 만났다. “남극에서는 입춘, 입동처럼 특정한 날에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날씨와 추위에 따라 계절을 나누지요. 세종기지에서는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의 월평균 기온이 영상이고 비가 오고 물이 흐릅니다. 3월 하순 들어 낮이 밤보다 짧아지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서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지요. 방수복에 튄 바닷물이 얼어붙어 겨울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또 4월이 되면 기지 둘레에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이며 핀타도 페트렐이나 남극제비갈매기처럼 검은 깃의 새들이 사라지고 대신 눈 페트렐이나 남극비둘기 같은 하얀 깃의 새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5월 중순들어 세종호는 얼음이 덮이고 또 해안의 얼음덩어리들도 점점 두꺼워지고 커져 성벽처럼 보인다는 것. 6월 초순에는 썰물에 드러난 평탄한 조간대의 바닥은 얼어붙으며 물이 들어온 뒤에도 녹지 않는 앵커 아이스(anchor ice)가 생긴다. 남반구 동짓날인 6월21일 무렵에는 오전 10시쯤 밝아졌다가 오후 2시쯤 어두워진다. 이때 남극에 월동기지를 둔 20개국 나라의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월동대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격려한다는 것. “남극은 중국의 1.4배 크기인 거대한 대륙입니다. 세종기지는 바닷가에 있어 덜 추운 편이지만 거센 바람으로 상당히 춥게 느껴지고 특히 6월에는 계속된 눈보라로 아무리 방한복을 잘 여며도 눈이 모래알처럼 파고들어 살을 아프게 때리지요. 또 10~20m 앞을 분간하지 못해 조난당하기 십상입니다. 눈보라가 사라지는 다음날에는 찬란한 태양이 떠올라 옥색빙벽, 얼어붙은 바다, 기지의 텃새인 자이언트 페트렐의 비행모습 등으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남극박물관 세우는 일 앞장” 그가 남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5년 11월 한국해양소년단연맹에서 남극 관측탐험을 할 때 지질학자로 참가하면서였다. 이어 1986년 11월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다음해 4~5월 기지후보지를 답사했다. 1988년 2월 기지를 준공한 후 첫 월동을 하면서 1년간 살았다. 이후 1990~1992년, 1994~1995년, 2000~2001년 등을 기지에서 지내며 남극에 푹 빠졌다. 그는 “21세기 우주시대를 맞아 연구 가능성과 자원이 무궁무진한 남극이기에 언젠가는 이를 개발할 터이므로 우리나라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남극을 소재로 저술활동을 할 것이며 남극박물관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대한상의 소외계층 초청 음악회 이대통령 등 2000여명 참석

    경제계가 희망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소외 계층 초청 음악회를 열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의전당과 공동으로 23일 오후 예술의전당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희망과 나눔의 새봄 음악회’를 개최했다. 이번 음악회는 경기침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과 국민에게 새봄을 맞아 위기극복의 희망을 주고, 소외계층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취지에서 열렸다. 이 대통령은 음악회를 특별히 방문해 공연을 관람하고 사회 소외계층과 어려운 중소상공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행사에는 불우아동 350여명, 기초수급자 150여명, 다문화가정 70여명, 장애인 30여명, 중소상공인 800여명이 참석했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유례없는 경기침체로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지지만 입춘, 우수를 지나 봄의 길목에 들어서면서 우리 경제도 힘찬 기지개를 켜기를 기대한다.”며 “오케스트라가 서로 다른 소리와 음색의 악기들을 모아 아름다운 앙상블을 빚어 내듯 모든 경제주체들이 서로 고통을 분담하고 협력해 나가면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성금을 대한적십자사 유종하 총재에게 전달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Let’s Go] 동해안 품은 양양 암자 3곳

    [Let’s Go] 동해안 품은 양양 암자 3곳

    ‘조고각하(照顧脚下). 이 길을 걷는 자는 네 발밑을 살피라’.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 절집 홍련암 들어가는 절벽길 팻말에 써 있는 글귀다. 단순히 산길이 험하니 조심해서 건너오라는 충고에 그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순간순간 스스로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뒤돌아보라는 가르침으로 쓴다. 그래서 법당이나 승방의 댓돌 위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7번국도를 따라 강원도 양양 땅을 주유하다 보면 이처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암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나같이 관음신앙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불경에서 관음보살이 흰꽃이 만발한 바닷가의 산에 상주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바로 그렇게 돌아서면 바다, 돌아서면 절집이다. 귀와 눈 그리고 폐부를 씻기에 맞춤한 곳. 입춘도 지났고 봄은 이미 멀잖은 곳에 와 있다. 바닷바람이 차긴 하나 한겨울의 매서운 맛은 사라졌다. 새봄을 준비하는 당신, 이 바람에 겨우내 묵은 기운을 훌훌 털어내시라. 대가람 낙산사의 산내 암자인 홍련암(紅蓮庵)은 의상대에서도 북쪽으로 300m 정도 더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암자 옆자락으로 철책선이 필요할 정도로 바다와 맞닿아 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더불어 3대 관음도량이라 일컬어진다. 여기에 여수 향일암을 더하는 이도 있는데, 숫자야 어찌 됐건 바닷가 절벽을 주춧돌 삼아 선 홍련암의 자태가 더없이 신비하다. 홍련암은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낙산사 창건에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려 했던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하자, 바다 위에서 관음보살이 탄 붉은 연꽃이 솟아났다고 해서 홍련암이라 이름 지어졌다. 바다에 접해 있던 덕에 2005년 낙산사 화재 당시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앞이 아닌 옆에 달려 있는 것이 독특하다. 절벽 위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언뜻 봐서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것 같지만, 실은 파도가 들이쳤다가 나오는 바닷가의 자연동굴 위에 서 있다. 법당 마루에는 8㎝ 크기의 사각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바다와 절벽 그리고 해조음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창건 이래 수많은 보수공사를 벌이면서도 이 구멍만은 손대지 않았다고 절집 관계자는 전했다. 양양8경의 하나인 의상대를 거쳐 홍련암에 이르는 구간은 내 나라 안에서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상쾌한 바닷가 풍경을 펼쳐 보인다. 특히 의상대는 일출 감상 명소로 새해 첫날이면 5000명의 해맞이 인파가 몰려들곤 한다. 겨울철만 되면 임연수어 낚시터로 유명세를 떨치는 동산항과 인구항 사이에 죽도라는 섬이 있다. 둘레 1㎞, 높이 54m로 섬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크기다. 예전에는 뭍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잇닿아 있다. 이름대로 장죽(대지팡이)으로 쓰이는 대나무가 사시사철 울창하다. 죽도암(竹島庵)은 섬 뒤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면 절집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려운 곳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주지 도경 스님과 비구니 우성 스님 그리고 젖먹이 때부터 키웠다는 동자 셋이 가족처럼 어울려 산다. 죽도암 옆으로는 죽도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세찬 바람이 불 때면 파도가 멍석처럼 둘둘 말린 채 밀려오는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죽도암에 건물이라고는 관음전과 요사채뿐이다. 해수욕장에서 섬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요사채가 먼저 눈에 띈다. 관음전은 오른쪽 커다란 바위 위에 터를 잡았다. 요사채 앞마당은 곧바로 검푸른 바다. 간혹 큰바람 불 때면 요사채까지 파도가 들이친다. 건물 자체로야 대단할 것 없지만 앞마당만큼은 세상 어느 부호의 저택과 견줘도 부럽지 않을 크기와 경관을 가졌다. 관음전의 문을 열면 동해 만경창파가 법당 안을 가득 채운다.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와 어우러진 청아한 독경소리는 외지인의 가슴을 청량하게 씻어낸다. 암자 주변 바닷가에 늘어선 다양한 형태의 갯바위들은 풍취를 보태기에 모자람이 없다. 7번국도를 따라 주문진 방향으로 가다 남애 못미처 인구해수욕장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죽도암이 나온다. 표지판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주의해서 찾아가야 한다. 죽도암 주변 갯바위에 올라 남쪽을 향해 서면 거대한 불입상이 눈에 띈다. 휴휴암(休休庵)에서 조성 중인 관음보살상으로, 낙산사 해수관음상에 견줄 만한 크기다. 휴휴암은 죽도암에서 7번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쯤 내려가다 만날 수 있다. 온갖 번민일랑 바다에 떨궈 버리고, 쉬고 또 쉬어 가라는 뜻에서 절집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97년 묘적전이라는 법당 하나로 창건된 휴휴암은 바닷가에 누워 있는 듯한 와불 형상의 바위가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후 불사가 크게 일어 비룡관음전과 요사채 등의 건물이 들어섰고, 이젠 제법 번듯한 가람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더불어 고즈넉했던 풍경도 요족하고 번다한 풍경으로 바뀌었으니, 여행자들이 예전처럼 편히 숨 한자락 내려놓고 쉬어 가기란 쉽지 않게 됐다. 절벽 위에 세워진 ‘비룡관음전’을 내려서면 커다란 너럭바위에 닿는다. 연화법당이라 불리는 곳으로 휴휴암의 가장 큰 볼거리다. 너럭바위 20m 앞 오른쪽 해변에 있는 긴 바위가 해수관음보살이 감로수병을 들고 연꽃 위에 누워 있는 형상이란 게 이 절집 사람들의 설명이다. 너럭바위 주변의 와불, 발가락 바위 등도 이채롭다. 저마다 사연을 감추고 있는 바위들이어서 흥미를 더한다. 묘적전 옆의 동굴 법당에서는 대다라니경에 등장하는 85보살상과 만날 수 있다. 범종각 오른쪽에 세워지고 있는 16m짜리 관음보살상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 경기도 양평에서 44번국도를 타고 강원도 홍천, 인제 등을 지나 미시령과 한계령 갈림길에서 한계령 방향을 따른다. 한계령을 내려서면 양양이다. 양양 시내에서 속초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낙산사, 우회전하면 죽도암, 휴휴암으로 향한다. 영동고속도로→현남 나들목→속초방향 7번국도→양양 등 역순으로 갈 수도 있다. ▲맛집 : 양양군 손양면 수산리 수산항 수산횟집(671-1580)은 사골국물로 육수를 낸 물회(1만원)가 일품이다. 휴휴암 인근 갑산메밀국수(671-1833)는 쫄깃한 막국수가 별미. 6000원. 서면 송천리 떡마을(673-7020)에선 장작불로 떡쌀을 삶고 떡메로 쳐 만드는 전통 떡을 맛볼 수 있다. ▲잘 곳 : 쏠비치 호텔&리조트(1588-4888)는 비수기에도 투숙객들이 몰리는 곳. 오산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아쿠아월드’에서 동해의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인근 관광지 : 일출 명소로 유명한 하조대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기암괴석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아름다운 항구로 손꼽히는 남애항도 찾을 만하다. 글ㆍ사진 양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지방시대] 시인이 서정시 못 쓰게 만드는 용산참사/김준태 시인

    [지방시대] 시인이 서정시 못 쓰게 만드는 용산참사/김준태 시인

    계절은 어김이 없다.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벌써 내일이다. 창문을 열어젖히니 멀리 담양 병풍산과 추월산 높은 봉우리들이 겨울 하늘을 밀어내고 두 눈에 가까이 들어온다. 아파트 자투리땅에도 어느새 풀잎들이 쫑긋쫑긋 얼굴을 내민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올해 또한 봄은 새로운 얼굴로 우리들 앞에 다가설 듯싶다. 이런 때 우리나라 시인 이수복(1924~1986)의 ‘봄비’라도 읊조리면 입술이 절로 촉촉해질 것 같다. 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 맑은 하늘에 /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 향연(香煙)과 같이 /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한국인들 정한의 세계를 맛깔스러운 판소리 가락으로 숨 고르게 노래한 이수복의 시 ‘봄비’. 그런데 오늘 따라 웬일일까. 이 시를 읽어도 신명이 나지 않는다. 우리들 마음의 강나루 언덕에도 향긋한 풀빛이 짙어 와야 할 것인데…. 봄비에 한껏 젖어서라도 임 앞에 풋풋한 사랑으로 타올라야 할 것인데…. 일부러 부드러운 느낌을 가지고 읽어도 가슴에 와닿지를 않는다. 서정시가 서정시로 읽혀지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까. 히틀러의 파시즘에 쫓겨 한동안 미국으로 망명했던 독일의 위대한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오늘의 우리들이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고 예언하고 노래한 바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정치적인 억압이 일상화되는 세상에서는 아름답게 노래되어야 할 서정시가 도저히 써질 수 없노라고 말한다. 설령 수많은 서정시가 쓰여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가짜일 것’이라고 경고한다. 1960년대 한국을 대표한 시인 김수영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 그렇다. 요즘 아니 오늘, 내가 이수복 시인의 시 ‘봄비’를 읽어도 마음이 촉촉해지지 않고 오히려 가슴이 막힌 듯 아파 오는 이유는 바로 다음 사건 때문일 것이다. ‘용산참사’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숨진 장면을 보면서, 나뿐만 아니었으리라. 인터넷 동영상이나 TV로 용산현장을 보면서 국민들은 모두 전율했을 것이다. 대화와 인내보다는 급거에 치고 들어가는 성급한 강경진압, 치솟는 불길과 매트리스도 없는 곳에 추락하는 철거민들…. 그렇듯 끔찍하고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아, 대한민국은 살 만한 나라다!”라고 말할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독자와 함께 이수복의 ‘봄비’보다는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순수함에의 조짐’ 앞 대목을 다시 불러들인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 주인집 문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 한 나라의 커다란 슬픔을 예고한다. / 쫓기는 토끼의 울음소리는 / 우리들의 머리를 아프게 찢는다.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 쫓기는 토끼들이 사실은 용산 철거민과 우리들 자신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지도자의 두 손에 더 이상 국민들의 피가 묻어서는 아니된다고 부탁드린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을 하늘처럼 섬길 때 그 지도자는 깨끗한 손으로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될 것 아닌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돼 가는 나라라야 경제 또한 발전하고 바로선다는 경구를 덧붙여 전하고 싶은 오늘이다. 김준태 시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입춘/박라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입춘/박라연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영역까지가 정신이라면 입을 봉하고 싶어도 몽둥이로 두들겨 패주고 싶어도 불가한 것 정신 속에도 사람의 형상이 있다면 눈곱도 떼어내고 칫솔질도 시켜줘야 할 텐데 땀 흘리는 일밖에 떠오르는 게 없어 겨울 내내 미륵산을 오르다가 무슨 선물처럼 전투기를 두 대나 만났다 온몸이 정신인 허공을 가르는 전투기 소리, 미륵산이 쫙쫙 갈라질 때 내 오래된 욕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 [문화행사 알림방] 새달 6일 탐라국 입춘굿놀이

    ●2009 탐라국입춘굿놀이가 다음달 6, 7일 제주 목관아 등에서 열린다. 6일 농경문화의 상징인 낭쉐(나무소)를 모시고 고사를 지내는 의례를 지내고, 7일에는 입춘굿을 비롯, 세경놀이와 전통줄타기, 가야금놀이 등 축하무대와 제주유일 탈놀이인 입춘탈굿 등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부대 행사로 새해 운수 보기 그리기·가훈 쓰기·각종 전래놀이 등이 열린다.(064)728-2711.
  • 2009 봄·여름 미리 보는 패션

    2009 봄·여름 미리 보는 패션

    패션은 언제나 경기순환 곡선을 앞질러 갔다. 불황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움직였으나 이번엔 달랐다. 지난해 9월 중순 리먼브러더스가 꼬꾸라질 때 런던 패션 위크가 한창이었지만, 밀라노컬렉션과 파리컬렉션은 열리기 전이었다. 우울한 경제 뉴스에 디자이너들이 다시 생각을 고쳐 먹을 시간은 충분했다는 의미다. 2009봄·여름 컬렉션은 불황의 그늘 속에서 빛이 바랬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디자이너들이 빡빡한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스타일을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주면 어느덧 봄의 문턱에 들어서는 입춘(立春). 먹고사는 문제만큼 뭘 걸치느냐도 중요한 이들을 위해 올 봄·여름에 유행할 스타일 몇 가지를 채널동아 컬렉션북 CAT의 최은선 편집장과 짚어 봤다. ① 올해의 색은 노랑 ‘블랙 재클린 케네디’로 불리는 미국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남편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 그녀가 금빛이 도는 연노랑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을 때 패션계 사람들은 “역시” 하며 무릎을 쳤을 것이다. 한 해 동안 유행할 색상을 전망하는 컬러 전문기업 팬톤(Pantone)은 일찌감치 올해의 컬러로 개나리색인 ‘미모사’를 선정했고,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도 컬렉션에서 옐로 계열의 의상들로 런웨이를 채웠다. 노란색은 따뜻함과 희망, 안정감을 주는 색. 노란색의 부상은 경기 불황과 정치적 혼돈이 예상되지만 어떤 순간에도 낙천적이고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다. 한 외신에 따르면 이번 봄·여름 컬렉션은 온통 ‘기분 좋은 요소(feel-good factor)’로 가득했다. 네온 핑크, 잉크 블루 등 눈 시리도록 밝은 색상과 선명한 프린트, 반짝이는 옷감들이 제 세상을 맞았다. 디자이너들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불황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 여전히 꿈꾸게 하라! 이것이 패션의 임무다!’ ② 80년대의 향수 패션계는 최근 80년대를 추억해 왔다. 지나간 세월은 다 아름답지만 80년대의 향수는 좀더 의미심장하다. 의류 산업뿐 아니라 경기 전반이 호황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아이템들은 심심찮게 등장해 왔는데 올해는 재킷에 눈이 쏠린다. 흔히 ‘뽕’이라고 부르는 어깨 패드가 들어간 품이 넉넉한 재킷은 이번 시즌 핫아이템 가운데 하나.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더니 미련 때문에 치우지 못했던 옷장 속의 재킷이 빛을 볼 때가 왔다. 중년층들에겐 희소식일 터. 가뜩이나 경제도 안 좋은데 새 옷 사느라 돈 들일 필요 없이 가지고 있던 의류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불황 코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해외 컬렉션들이 제안하는 알뜰 스타일링인 셈이다. ③ 기하학적인 실루엣 80년대 재킷들은 어찌 보면 심심하다. 밋밋함을 덜기 위한 방편은 안에 받쳐 입는 옷에 포인트를 주는 것이다. 강렬한 패턴을 지녔거나 색상이 대담한 원피스, 프린트 티셔츠 등을 겹쳐 입어 스타일에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 좋다.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인 실루엣의 원피스나 상의가 많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각지고 딱딱한 절개를 통해 독특한 멋을 뽐내는 이러한 의류들은 옷차림에 방점을 찍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④ 개성 만점 플레이 슈트 옷 입기에서 재미를 주려는 디자이너들이 심심찮게 선보인 의상 중 눈에 띄는 것은 ‘뽀빠이 바지’라고 부르는 플레이 슈트 또는 점프 슈트다. 위아래가 한 벌로 붙어 보통 일할 때 입는 작업복 같은 스타일에서 실크 등 소재의 고급화로 외출복으로 손색이 없는 스타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 열린 ‘구호’ 컬렉션에서도 이같은 의상이 대거 등장했다. 톱숍이나 자라 등 해외 중저가 브랜드들도 앞다퉈 플레이슈트를 쏟아낼 태세다. ⑤ 넉넉해진 바지 딱 달라붙는 스키니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온 배기 팬츠. 올해는 전성기를 좀 누리겠다. 심한 경우 가랑이가 무릎까지 내려 와 ‘똥싼바지’라는 오명을 듣고 살았으나 ‘세상은 빡빡하지만 옷만은 헐렁하고 편안하게 입고 살자.’는 다수의 바람을 타고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제공 채널동아 컬렉션북 CAT
  • 디지털로 풀어낸 구비서사시

    구비서사시를 ‘디지털’로 풀어낸다.26∼27일 국립극장 KB청소년 하늘극장에서 펼쳐지는 ‘프로젝트 合-디지털 본풀이’. 본풀이, 즉 서사무가는 무속의식에서 구연되는 무속신의 이야기다.‘프로젝트 合’은 제주도의 다양한 신화에 전자 장구와 인터랙티브 영상 등 첨단기술을 접목해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윤혜정 부리푸리 무용단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극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늘과 땅의 탄생을 다룬 천지왕 본풀이, 제주도 고유 성씨인 양씨·고씨·부씨 등 인간의 탄생을 그린 삼성혈 본풀이, 신을 만들어낸 이공본풀이와 삼공본풀이가 한바탕 흐드러진다. 마지막에는 하늘과 땅, 사람과 신이 모두 입춘굿 탈놀이를 하며 신과 인간이 함께하는 세상이 열렸음을 알린다. 윤혜정 부리푸리 무용단 대표가 총연출을 맡았다.1만∼2만원.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응애~’ 소리 다시 줄었다

    ‘응애~’ 소리 다시 줄었다

    2006년 쌍춘년(입춘이 두번 드는 해)과 2007년 황금돼지해 등에 힘입어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보였던 국내 출산율이 올들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으로 집계됐다. 4일 보건복지가족부가 전재희 복지부 장관 후보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오던 신생아 수가 올해 3월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5월까지 3개월 연속으로 줄었다. 지난 1,2월에는 신생아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00여명 증가했지만 3월에는 2100여명 감소했다. 이어 4월에는 1300여명,5월에는 2100여명 줄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내 총 출생아 수는 20만 5400여명으로 지난해와 같은 기간에 견줘 1900여명 줄어들었다. 올해 3월처럼 월별 신생아 숫자가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보인 것은 2006년 1월 이후 26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출산율은 2005년 역대 최저인 1.08명을 기록한 뒤 2006년 1.13명,2007년 1.26명으로 소폭 상승해왔다. 복지부측은 가임여성의 감소 등의 영향으로 올해 전체 신생아 수는 지난해보다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복지부에 따르면 15∼49세 가임여성은 지난해 1358만명에서 올해 1314만명으로, 주된 출산층인 20∼39세 여성은 지난해 788만명에서 749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전 장관 후보자는 “가임여성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출산율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초등생 두 딸·부부가 함께한 국토 야영 순례기

    한 달에 한 번 자연 속에 집을 지은 사람들. 숲 속, 강가에 텐트를 치고 오고가는 24절기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한 해를 보낸 가족.‘바람과 별의 집’(김선미 지음, 마고북스 펴냄)은 세상 어떤 기억보다 특별한 그들만의 기록을 묶은 책이다. 초등학교 6학년,4학년인 딸 둘을 둔 평범한 엄마인 지은이는 텐트 하나 달랑 챙겨 가족 야영여행을 시작했다. 입춘을 앞두고 봄꽃들이 하나둘 눈뜨던 지난해 3월이었다. 두 딸과 남편이 함께 한 ‘국토 야영 순례’는 변산반도 격포에서 출발했다.“가족 모두가 살을 맞대고 눕는 정겨움”을 통해 정신적 허기를 채우고 싶었던 지은이다. 텐트는 말 그대로 바람과 별로 짓는 집이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절기는 오갔고, 소리없이 옷을 바꿔 입는 자연의 너른 품 속에서 아이들은 절로 삶의 이치도 배워 갔다. 회계담당, 식사담당을 맡은 아이들은 밥 한 그릇에 담긴 의미를 스스로 건져 올렸다. 경칩에는 섬진강 매화마을, 청명에는 청보리가 파도를 넘는 만경평야, 입하에는 청송 주왕산, 망종에는 충주 월악산, 상강에는 찬서리 뽀얗게 내린 포천 산정호수…. 대한이 끼어 있던 지난 1월, 유채밭이 봄 채비에 분주한 제주에서 이들의 여행은 끝이 났다. 지은이에게는 “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는 믿음이 굳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 데도 아이들은 번번이 일상에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엄마, 나는 (집에 있는)내 침대를 너무 사랑해.” 푹신한 침대,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창문,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 물 콸콸 쏟아지는 화장실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음이다. 행간에 바람소리, 물소리가 스며 있다 싶게 글맛이 좋은 에세이다. 일상의 짐을 내려 놓고 당장에라도 짐을 싸서 떠나고 싶게 등떼미는, 캠핑 가이드북으로도 손색없다.1만 2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보리밭’/이재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보리밭’/이재무

    입춘 하루 앞둔 남쪽 마을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고개 숙였다 일어서는 보리 종다리 대신 불쑥불쑥 솟는 얼굴들 밥집에서 더러 만나던 고향 시집에서 더러 읽던 연애 오뉴월 부릴 땡깡 파랗게 키우고 있는 보리 아, 사는 동안 마음의 곳간 분가해 나간 것들 너무 많구나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이제 ‘그분’과 만날 시간이 왔다. 아침 찬물로 세수하고 맞이하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한다. 천지사방이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퍼붓는 정열의 햇살로 온통 찬란해진다.98세에 작고한 피천득 시인은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라고 찬미했다. 어디 이뿐이랴. 어버이, 스승,‘나를 닮은’ 아이들이 새삼 생각나게 한다. 그럴 것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석가탄신일, 성년의 날 등 기념적인 날들이 이어진다. ‘마음을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禪),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奉祝)하는 일이 더욱 많아진다. 5월과 무관치 않은 한 스님을 만나보자. 곧 칠순임에도 여전히 ‘개구쟁이 어린이’처럼 지낸다. 무장무애(無障無), 아무 거리낌 없이 ‘하하하’ 크게 웃어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진한 부처 같다. 그는 어머니와 어린이들을 ‘말할 수 없도록’ 그리워해 그림(禪畵·선화)을 그리고 시를 쓴다. 내공이 워낙 깊은지라, 주위에서는 ‘선화의 대가’라고 칭송한다. 10년 전쯤이다. 스님이 양저우(揚州)박물관장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하루는 양저우시장이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때마침 선화의 대가가 양저우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 글씨와 그림에 관한 한 ‘무림의 고수’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어릴 적 은사도 참석했다. 술잔이 몇순배 돌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중국의 한 원로화가가 붓을 잡더니 즉석에서 물소그림을 그렸다. 이어 그 화가는 붓을 한국의 스님에게 건넸다.‘화답’을 청했던 것. 뒤질세라 스님은 주먹쥐듯 네 손가락으로 붓을 잡았다. 원래 악필(握筆)인 스님은 창호지에 원을 그리고 점을 몇군데 쓱쓱 찍었다. 불과 몇분 후 붓을 내려놓자 약속이나 한 듯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그레한 볼에, 미소짓는 복덩이 동자상이었다. 양저우시장이 즉석에서 “공부 잘하도록 우리 아들 방에 걸어놓으면 너무 좋겠다.”고 하자 스님은 기꺼이 선물했다. 그러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줄을 섰다. 스님은 이날 밤 새도록 붓을 잡았다. 스님과 관계된 일화는 많다. 프랑스 상원의장 초청으로 뤽상부르궁전 의장공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프랑스와 우리나라 화가들을 놀라게 했다. 이밖에도 베를린, 카사블랑카, 남미 등 세계 각지의 유서 깊은 도시를 돌며 전람회를 열어 많은 화제를 뿌렸다. 얼마 전에는 유니세프(UNICEF)에서 발행하는 엽서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스님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해외팬들도 적지 않다. 법문 스타일도 독특하다. 야단법석(野壇法席)에서 마무리할 때 ‘우리의 소원은 성불’을 불러 신도들을 울리기도 한다. 국내 불교계에서는 중생을 연민하고 구제하는 일에 남달라 ‘관세음보살’이라고 표현한다. 스님이 머물고 있다는 통도사(通度寺)의 축서암(鷲棲庵)을 찾았다. 조선 숙종 때 창건된 암자로 영축산(靈鷲山·혹은 영취산)의 옛 이름 축서산에서 비롯된다. 400여년이라는 축서암의 세월 가운데 근래 30년을 문제(?)의 스님이 살아서인지 축서암은 거대한 화실처럼 느껴졌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붉게 핀 자목련이 원숙한 여인처럼 금방이라도 유혹할 듯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암자 뒤로는 온갖 푸른나무들이 병풍처럼 쭉 늘어서 넋을 놓게 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자양반인가? 읍내(서울)에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촌구석까지는 뭐할라고 왔노.”라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온다. 선화의 대가 수안(殊眼) 스님이었다. “차나 마시고 가게.” 합장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쥐 두마리가 ‘입춘대길’이라는 글을 떠받치는 그림이 창문에 붙여져 있었다. “왜 ‘수안’이라고 했습니까?” “내 속가의 성이 ‘문(文)’이야. 그리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수(殊)에다 ‘문수의 안목을 키워라’해서 안(眼)을 넣었지.” “만화방창, 이 봄에 유혹을 느끼지 않나요?” “허허허, 봄이 되면 관광버스 타고 놀러가는 사람들 많지.” 연근차 몇잔을 마셨다. 스님은 평소 길을 떠날 때 차보따리를 끼고 다닌다. 스님이 마실 차, 그리고 스님과 만날 사람을 위한 차를 준비한다. 그게 바로 풍류의 시작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수무향(眞水無香)의 ‘풍류차’를 권하면서 ‘어차피 인생살이가 다반사(茶飯事)이지요.’라고 한다. 차를 마시던 스님이 갑자기 기자의 얼굴을 보더니 “어라, 머리만 안깎았군.”이라고 했다. 전생이 스님인가? “호 하나 지어주랴? 고을 제(濟)에서 삼수는 빼버리자, 그리고 산에 기대 살아야 하니 산(山)을 넣어 제산(齊山)으로 해삐리라.‘재산’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기분이 좋다. 하하하.” 얼핏 ‘개구쟁이 스님’의 장난기로 들려올 법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토굴생활 등 혹독한 수행으로 ‘대긍정(大肯定)’의 경지까지 오른 ‘큰스님’의 말씀 아닌가. “대긍정은 어떤 것인가요?” “별거 아니야, 긍정과 부정도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야. 부정이 많다 보면 그림자가 많아져. 캄캄한 방에 전깃불 켜는 것도 수행이지. 스위치 하나로 어둠과 밝음, 즉 긍정과 부정이 생기거든. 흐르는 물이 굴곡을 탓하는 거 어디 봤는가?” “요즘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너무 바빠, 그렇게 살 필요 없어. 별로 들 것도 없으면서 왜 무겁게 짊어지고 쫓기면서 살아? 아나 다 놓아삐리라. 집착은 곧 노예인 것이야.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해봐. 요즘은 어머니도 고향도 다 잊고 살아가. 지혜는 없고 지식과 정보의 노예로 다들 전락했어. 그러니까 고급인력들이 빈둥빈둥 놀고 자빠졌지.” 스님의 시 중에 ‘사모곡’이 있다.‘누가 지었을까 어머니 이름 석자/기쁠 때 불러도 어머니 슬플 때 불러도 어머니/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아기가 됩니다.’ 스님은 ‘진리는 곧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자비원’을 통해 무의탁 노인을 돕는다. 또 부산 지역 지체장애아동들에게 매년 휠체어 100대씩 사서 선물하는 등 수십년째 선행을 베풀고 있다. 길을 가다가 거지를 만나면 주머니를 뒤져 몇푼의 돈을 꺼내 건네주는 일도 다반사이다. 스스로 ‘수행화가’라고 표현하는 그는 17세 때 출가 직후부터 석정 스님을 스승으로 전각과 선화를 익혔다. 그의 그림은 어린이, 어머니, 초가집 등 토속적 냄새가 짙게 담겨 있다. “출가한 지 50년 됐습니다. 그동안 후회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나요?” “비바람이 부는데 파도가 안 일어날 물이 어디 있겠어. 성불하려면 비워야 해. 가득차 있으면 뭘 담겠나?” 인터뷰를 마치면서 석가탄신일을 맞아 법문 하나를 정중히 부탁했다.“춘래초자청(春來草自靑), 봄이 오면 풀이 절로 푸르기 마련인데 괜히 욕심 보탤 거 없어. 심청사달(心淸事達)이야.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려. 부정과 긍정도 다 흑백논리야. 최선을 다해도 나중에 부끄러운데 눈속임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영혼이 부끄럽겠나. 내 자식이 귀하면 이웃 자식도 귀하고, 사회와 국가도 귀하지 않겠나?”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수안 스님은 1940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57년 석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64년 월하 스님에게 비구계 수지하고 이후 통도사 송광사 백련사 묘관음사 등에서 수선안거에 정진했다. 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때 이재민돕기 선화전을 열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85년 파리 초대전,86년 중앙승가대건립기금마련 전시회,89년 두달간 유럽순회전 등 유럽과 러시아, 남미 등에서 전시를 가져 독특한 수행력을 과시했다. 특히 불우어린이와 장애인, 무의탁노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는다. 그림전시도 ‘중생돕기’ 차원이다. 이달 초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세상을 담는 그릇-발우전’에 공동전시를 가졌다.
  • [지방시대] 새정부,지역 특수성과 소수 배려해야/박찬식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지방시대] 새정부,지역 특수성과 소수 배려해야/박찬식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입춘(立春)을 맞이한 제주섬은 제주시내 옛 도심의 중심인 관덕정 일원에서 ‘탐라국 입춘 굿놀이’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따뜻한 봄기운을 맞이하는 절기이기에 추위와 액운이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들 제주목관아 마당으로 나와 굿도 보고 국수도 먹으며 서로 어우러진다. 올해는 무자년,60년 전 제주를 휩쓸고 간 4·3사건이 일어난 지 한 주기가 흘러간 해라서 입춘을 맞은 제주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절절하다. 올해는 또한 새 정부가 들어서는 해이다. 경제 우선주의를 내걸어 성장 동력을 키우고 서민·중산층의 주름살을 펴겠다던 대통령 당선인의 희망찬 약속들이 바로 눈 앞에서 실현될 듯 많은 새로운 정책들이 국민 앞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새 정부의 시책에 따라 각계 각층이 갖는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이전 정책의 연속보다는 단절과 변화에 초점을 두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럼에도 국민의 공감을 전제한 위에 지역과 사회계층간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은 민주 국가의 기본 방침일 것이다. 제주도가 소수와 약자, 특수성을 대표하는 지역임을 고려할 때 국가 형평성을 가늠하는 시범적인 지역이 될 수 있다. 그 사례로 최근 인수위와 한나라당의 제주도 관련 정책 및 조직 개편 내용을 들여다 보자. 제주4·3사건위원회의 폐지, 농촌진흥청 폐지, 영어교육도시 특구의 확산 등이 현재까지 제주지역에서 거론되는 사안들이다. 모두 제주도민들의 의구심과 반감을 사고 있는 정책 변화이다. 제주4·3사건위는 반세기에 걸친 유가족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1999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어렵게 만들어진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정부 기구이다. 국가의 법에 의해 원만하게 과거청산 작업이 진행 중인 이 시점에서, 새 정부가 위원회를 폐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제출한 데 대해 제주도민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중앙의 지역에 대한 인식이 천박함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주민의 청원, 국회의 입법, 정부의 집행, 민원 해소로 나아가는 민주 국가의 운영질서를 정부가 나서서 뒤집어 엎는 행위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농촌진흥청 폐지에 대해서 제주지역의 농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제주의 국립 난지농업연구소는 감귤시험장 운영, 흑우 개량, 말 육종 등 제주형 특수 농업·축산업의 육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관이다. 이러한 기관을 하루 아침에 폐지한다는 것은 결국 지역에 대한 형평성 인식이 부족함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은 ‘교육 국제화 특구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민들은 이 법이 추진되면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의거한 제주영어교육도시 조성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제주의 특수성을 전제로 한 특별자치도의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인 교육산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특수 지역에 대한 배려로서 제공된 형평성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와 ‘실용’을 내세운 새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근 부동산 완화정책, 영어몰입교육 정책, 농업·해양 관련 부처 통폐합 등에서 보듯이 자칫 사회 계층, 지역간 형평성을 잃어 버릴 정책 테스트를 하는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낮은 곳의 서민 대중, 지역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제주가 다시 변방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제주섬 사람들의 마음도 살필 수 있었으면 한다. 박찬식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연구교수
  • 물집 터져도 걷는다…나는 해병이다

    물집 터져도 걷는다…나는 해병이다

    입춘(立春)에도 아침 바람은 차다. 강원도 산골짜기에는 해가 늦게 올라온다. 영하 8도. 안개와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귀와 턱이 시려서 인터뷰는커녕 말도 꺼내기 어렵다. ●강원 평창~ 경북 포항 430㎞ 오직 걸어서 이동 4일 설 연휴를 앞두고 기자가 행군을 함께한 해병대 수색대대는 겨울 혹한기 훈련이 한창이었다. 이날은 강원도 평창에서 경북 포항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걷는 천리행군의 사흘째. 하루에 40㎞씩 13일간 총 430㎞를 걸어서 이동한다. 추위는 아침 행군에서 싸워야 할 또 하나의 적이다. 병사들의 걸음도 어제보다 빨라진다. 한참을 걷다 보면 앞의 병사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절대 뛰어선 안 된다. 내가 살짝 뛰면 저 뒤에선 100m 달리기를 해야 한다. 앞의 병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을 걷는다. 출발 전에 한 병사가 가슴팍에서 “이제 막 뜯은 거라 따뜻합니다.”라며 꺼내주었던 ‘핫팩’을 거절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따뜻한 마음은 고마웠지만 동생뻘 되는 병사에겐 심장과도 같은 손난로를 빼앗을 순 없었다. 출발한 지 1시간. 슬슬 무릎 뒤 정강이 근육이 당겨 온다. 행군은 ‘물집, 관절피로와의 싸움’이다. 행군 사나흘째에 접어들면 발 여기저기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다. 지난해에는 열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한 병사가 결국 행군을 포기하기도 했다. ●말할 힘도 없지만 ‘나´와 만나는 시간 군장의 무게 탓에 허리를 숙이고 걷고 있던 허의량(22)상병의 얼굴에선 장난기가 묻어난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해병대 수색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해병대 수색대대 동기들이 집으로 자주 놀러오는 것을 보고 군대는 당연히 수색대대밖에 없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지난번 휴가 때 아버지가 수색대대 동우회에 끼워주셨을 때는 정말 뿌듯했어요. 아버지도 자랑스러워하셨죠. 혼자 소 키우시느라 고생이실 텐데…설인데 전화도 못 드리네요. 아버지, 휴가나갈 때까지 몸 건강히 계세요.” 행군의 기본은 50분 행군,10분 휴식이다. 어깨에 40㎏이나 되는 군장을 메고 시속 7㎞의 속도로 걷는다. 군장을 메어보니 뒤로 자빠질 듯하다. 그래서 병사들은 “덩치 큰 조카 한명을 업고 다닌다.”고 표현한다. 아무리 조카라지만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단다. 행군 도중에는 대화가 없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다. 대신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손보배(22)병장은 걷다 보면 10년간 하다가 그만둔 ‘야구’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투수였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때 어깨 부상을 입고서도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욕망에 치료보다는 연습에 매진했다. 덕분에 학교는 그해 전국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지만 그는 야구를 빼앗겼다. “작년 행군 때보다 몸이 덜 힘든 걸 보면 이곳에서 저도 많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요즘엔 제대 후에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식사는 전투식량으로… 잠은 산골짜기서 점심은 전투식량. 끓는 물을 붓고 5분 정도 기다리니 제법 먹을 만한 잡채밥이 되어 나온다. 병사들은 질릴 대로 질렸는지 군장 속에서 케찹, 고추장을 꺼내 슥슥 비벼 먹는다. 국 대신 라면 하나를 끓여 5명이 나눠 먹는다. 그래도 이 시간이 천국이다. 다시 걷는다. 눈밭이다.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뽀도독 소리가 나기가 무섭게 발등으로 설탕 같은 눈이 쏟아진다. 신발이 젖지 않으려면 다음 발을 재빨리 옮겨야 한다. 눈에 눈이 부시다. 이미 눈밭에서 3주간 굴렀던 병사들은 눈빛에 탄 얼굴이 거무튀튀하다.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어디로 가는지보다 언제 쉬는지가 알고 싶다. 저 멀리 선발대가 걷고 있는 걸 보니 아직 휴식시간은 먼 것 같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땀조차 나지 않는다. 왼쪽 발이 나가면 자연히 오른쪽 발이 따라와 의지와 상관없이 걷고 있다. 걷고 있어도 내가 걷고 있는 게 아니다. 뒤꿈치 까진 곳이 따끔거린다. 행군을 모두 마치고 군장을 푼 시각은 오후 4시. 병사들은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7시반부터 이른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산골짜기의 해는 짧기도 하다.30분도 안 되어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도 들려온다. 다들 꿈속에서 집에 계신 부모님께 설인사를 드리고 있는 듯하다. snow0@seoul.co.kr
  • [Local] 새달 3일 ‘탐라국입춘굿놀이’

    ‘2008 탐라국 입춘굿놀이’가 다음달 3∼4일 제주시청과 관덕정 등 제주시내 일원에서 펼쳐진다. 제주시는 탐라국 입춘굿놀이가 다음달 3일 오후 시청 광장에서 거행되는 ‘낭쉐(나무로 만든 소)고사’로 시작된다고 9일 밝혔다. 낭쉐고사는 농경의 상징인 나무로 만든 소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이어서 한 해 농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농사풀이’와 ‘낭쉐’를 제주목관아 관덕정까지 몰고 가는 낭쉐몰이, 액(厄)막이 놀이인 방액놀이 등이 펼쳐진다. 또 4일에는 관덕정 마당과 목관아 내부에서 9개 읍·면·동 풍물패의 공연에 이어 칠머리당굿보존회의 초감제, 석살림굿 등 축하공연도 마련된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장혼이 한평생 설계했던 행복한 집 이이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장혼이 한평생 설계했던 행복한 집 이이엄

    중인들이 인왕산 언저리에 모여 살자, 아들들도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같이 글공부를 하며 친구가 되었고, 장성해서 전문직을 얻은 뒤에도 함께 모여 시를 짓거나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 가운데 많은 친구들은 집도 이웃에 지어 한평생을 같이 살았다. 인왕산에서 중인 자제들을 가르쳤던 장혼은 오랫동안 집터를 물색하다가, 마음에 드는 위치에 헌집이 나오자 일단 구입해 놓았다. 그리고나서 다시 오랫동안 비용을 마련해 집을 지었다.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집, 마음맞는 친구들이 함께 있으면 초가 삼간도 넓은 집이었다. 면앙정 송순도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라고 시조를 읊었는데, 집터를 장만해 놓고 아침 저녁 마음 속으로 설계하는 동안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헌 집을 사다 인왕산에는 골짜기가 많아 무계동에는 안평대군이 무계정사를 지어 왕자와 사대부들이 모여 시와 그림을 즐겼고, 청풍계에는 김상용이 태고정을 지어 그의 후손인 노론 학자와 문인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했으며, 옥류동에는 중인 천수경이 송석원을 지어 위항시인들이 모여들었다. 천수경의 친구 장혼도 친구 따라 인왕산 자락에 집을 지으려고 대지를 물색하다가, 옥류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버려진 헌집을 찾아냈다. 그는 인왕산 옥류동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등 뒤로는 푸른 절벽의 늙은 소나무가 멀리 바라보이고, 앞쪽으로는 도성의 즐비한 집들이 빼곡하게 내려다보인다. 그 가운데로 맑은 시내물이 흘러가는데, 꼬리는 큰 시내에 서려 있고, 머리는 산골짜기에 닿아 있다. 졸졸졸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옥구슬이 울리고 거문고와 축(?)을 울리는 듯하다가, 비라도 올라치면 백 갈래로 물길이 나뉘어 내달려서 제법 볼 만하다. 물줄기가 모인 곳을 젖히고 들어가면 좌우의 숲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그 위에 개와 닭이 숨어 살며, 그 사이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옥류동은 넓지만 수레가 지나다닐 정도는 아니고, 깊숙하지만 낮거나 습하지 않았다. 고요하면서 상쾌하였다. 그런데 그 땅이 성곽 사이에 끼여 있고 시장바닥에 섞여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아끼지는 않았다.” 그가 말한 옥류동은 명승지이면서도 시장바닥에 가까워,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동네이다. 경복궁 옆에 있어 장안을 굽어보면서도 숲으로 가리워진 동네, 옥류동(玉流洞)이라는 이름 그대로 물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 구르는 소리같이 들리는 골짜기지만 개와 닭 소리가 들리는 동네이다. 낮거나 습하지 않아 사람이 집 짓고 살기에 알맞았지만, 일부러 대지를 구입해 집을 지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지는 않았던 동네이다. 지금은 옥류천이 복개되어 옛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옥인동 자락의 형세는 그대로이다. “옥류동의 길이 끝나가는 산발치에 오래 전부터 버려진 아무개의 집이 있었다. 집은 비좁고 누추했지만, 옥류동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막힌 곳을 없애자, 집터가 10무(畝·300여평) 남짓 되었다. 집 앞에는 지름이 한 자 반 되는 우물이 있는데, 깊이도 한 자 반이고, 둘레는 그의 세 갑절쯤 되었다. 바위를 갈라 샘을 뚫자, 갈라진 틈으로 샘물이 솟아났다. 물맛은 달고도 차가웠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 우물에서 너댓 걸음 떨어진 곳에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어, 여러 사람이 앉을 만했다.” 중인들은 전문직을 지녔기에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없었다. 도심에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바위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는 옥류동은 시인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영의정 김수항이 지은 청휘각을 비롯한 여러 누각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한쪽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헌 집도 있었다. 집터는 10무 밖에 안되었지만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곳인데다, 열댓 명이 앉을 만한 너럭바위까지 있어 시 짓는 친구들이 모여 놀기에도 좋았다. ●여러 해 동안 마음 속으로 설계하고 꽃과 나무를 심다 “집값을 물으니 겨우 50관(貫)이라 그 땅부터 사 놓고는, 지형을 따라 몇 개의 담을 두른 집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기와와 백토 장식을 하지 않고, 기둥과 용마루를 크게 하지 않는다. 푸른 홰나무 한 그루를 문 앞에 심어 그늘을 드리우게 하고, 벽오동 한 그루를 사랑채에 심어 서쪽으로 달빛을 받아들이며, 포도넝쿨이 사랑채의 옆을 덮어 햇볕을 가리게 한다.(줄임) 앵두나무는 안채의 서남쪽 모퉁이를 빙 둘러 심으며, 그 너머에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사과나무와 능금나무, 잣나무, 밤나무를 차례로 심고, 옥수수는 마른 땅에 심는다. 오이 한 뙈기, 동과 한 뙈기, 파 한 고랑을 동쪽 담장의 동편에 섞어 가꾸고, 아욱과 갓, 차조기는 집 남쪽에 구획을 지어 가로 세로로 심는다. 무와 배추는 집의 서쪽에 심되, 두둑을 만들어 양쪽을 갈라 놓는다. 가지는 채마밭 곁에 모종을 내어 심는데 자줏빛이다. 참외와 호박은 사방 울타리에 뻗어, 여러 나무들을 타고 오르게 한다.” 그가 그린 집은 호화주택이 아니라 작은 집이다. 기와도 얹지 않고, 백토도 바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자기가 좋아하는 꽃과 채소를 심었으며, 햇볕과 달빛, 비와 바람이 차례로 그의 집을 찾아들게 하였다. 그가 짓는 집은 남에게 팔려고 짓는 집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살려고 짓는 집이다. 그는 집을 짓기 전부터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집에 들어가 살았다.“꽃이 피면 그 꽃을 보고, 나무가 무성해지면 그 아래서 쉬었으며, 열매가 달리면 따 먹고, 채소가 익으면 삶아 먹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집을 다 짓고 나자, 그 집에서 즐길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웠다. ●책 읽고 노래 부르며 천명을 따르면 그만인 것을 “손님이 오면 술상을 차리게 하고 시를 읊으면 그만이다. 흥이 도도해지면 휘파람 불고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으면 그만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추위와 더위에 따라 내 옷을 입으면 그만이고, 해가 지면 내 집에서 쉬면 그만이다. 비오는 아침과 눈 내리는 낮, 저녁의 석양과 새벽의 달빛, 이같이 그윽한 삶의 신선 같은 정취를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어렵고, 말해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는 계속 “그만(而已)”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더니,“나의 천명을 따르면 그만이다. 그래서 내 집 편액을 이이엄(而已)이라 했다(聽吾天而已,故扁吾以而已)”고 설명했다. 그의 집 이름이 ‘이이엄’이 된 것은 당나라 시인 한퇴지의 시에서 “허물어진 집 세 칸이면 그만(破屋三間而已)”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그는 꿈속의 집을 짓는 비용으로 300관을 계산했는데,“자나깨나 고심한 지 십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평생지(平生志)´라는 제목의 이 글을 쓸 때까지 그는 이 집을 짓지 못했지만, 그 집에서 살 계획은 여러 차례 밝혔다. 오래 된 거문고에서 옥도장과 인주에 이르기까지 “맑은 소용품 80종(淸供八十種)”을 선정해 놓았고, 사서삼경, 역사서, 이야기책, 시집, 의서, 연애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맑은 책 100부(淸寶一百部)”를 선정해 놓았다. ●인왕산을 백배로 즐기다 인왕산은 하나이고, 그가 사들인 땅은 10무 밖에 안되었지만, 그는 인왕산을 백배로 즐겼다. 그가 꼽은 “맑은 경치 열가지(淸景十段)”는 지난주에 소개한 옥계십경(玉溪十景)과 대부분 겹치니, 자신이 인왕산에서 찾아낸 열 가지 아름다움을 옥계사 동인들과 공유한 셈이다.“작은 언덕의 닭과 개” “골짜기 안의 채마밭”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찾아냈고,“밤낮 쉬지 않고 흐르는 샘물” “흐렸다 맑았다 하는 산기운”에서 자연의 움직임을 찾아냈다.“벼랑에 어린 가벼운 이내”에서 아침의 아름다움을,“푸른 봉우리에 비치는 저녁노을”에서 저녁의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에서나 눈에 띄는 모습이지만, 그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며 즐겁게 살았다. 30세 이전에 ‘평생지´를 써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설계했던 그는 자기 뜻대로 삼간 집에 만족하며 살았다.“그의 집이 비바람을 가리지 못했으므로 남들은 그가 가진 것 없음을 비웃었지만” 그 자신은 69세 되던 해 입춘절에 “굶주림과 배부름, 추위와 더위, 죽음과 삶, 재앙과 복은 운명을 따르면 그만이다(聽之命而已)”라고 자부한 뒤,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오양생(悟養生)´이라는 글 마지막 줄에 “이이엄주인이 스스로 짓다.”고 끝맺었으니, 서른이 되기 전에 인생계획을 세운 그대로, 인왕산 자락에서 늘 만족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중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주말탐방] 제주도의 별난 벌초문화

    [주말탐방] 제주도의 별난 벌초문화

    제주에서 조상묘의 벌초를 안하는 것은 ‘불효 중에 불효’로 친다.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명절 제사에는 못 오더라도 벌초는 반드시 참가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전해진다. 제주에서는 외아들을 육지로 잘 보내지 않으려 하는 것도, 혈육이 끊긴 선친이 임종을 앞두고 ‘화장’을 해달라고 유언하는 것도 다 벌초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음력 8월 초하루가 되면 형제, 사촌 할 것없이 문중이 모여 조상의 묘를 찾아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은 제주의 오랜 전통이다. 여기에 8촌 형제들까지 모여 증조와 고조부 등 4대조 묘까지 깨끗하게 손질한다. 이를 ‘모듬 벌초’라고 한다. 벌초하는 날이면 한라산 중산간 지역의 들녘 묘역에 벌초객들로 넘쳐난다. 평소에는 한가한 한라산 산간 도로가 밀려드는 벌초 차량으로 제주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교통 체증이라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이때 조상 묘에서 벌초하는 자손들의 숫자로 가문의 세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추석때까지 벌초를 안한 묘소가 있으면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조상의 대가 끈긴 묘라 해서 손가락질을 받는다.‘식께 안 헌건 놈이 모르곡 소분 안 한 건 놈이 안다.’는 제주 속담도 그렇게 생겨났다.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는 안하면 금방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이 속담은 제주 사람들이 벌초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 준다. 지난해 제주에서는 조상묘 벌초와 제사 등을 조건으로 큰아들(63)에게 재산을 물려준 80대 어머니가 아들이 이를 게을리한다며 재산을 되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재판부는 “묘소 벌초와 조상 제사 봉행 등을 하지 않은 아들은 물려받은 재산을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 주라.”고 판결했다. 제주에서 조상 묘의 벌초가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었다. 최주락 제주관광대 교수는 “제주의 특별한 벌초 풍습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친·인척 중심의 혈족사회가 낳은 산물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제주의 대부분 학교가 하루 ‘벌초 방학’을 한다. 이 날은 코흘리개 어린이들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벌초 행렬에 따라 나선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어릴 때부터 조상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주지시키고 장성해 객지에 나가 살더라도 반드시 조상 묘의 벌초는 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시킨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아무리 바빠도 벌초휴가만큼은 내준다. 공무원도 예외가 아니다. 수백명의 공무원이 한꺼번에 벌초휴가를 내기도 한다. 다른 지역 같으면 공무원이 개인 벌초 행사로 무더기로 자리를 비운다고 난리가 나겠지만 제주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친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올해도 9월11일을 전후해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벌초방학을 실시할 예정”이라면서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벌초방학은 생생한 ‘효(孝)’의 현장 교육이라는 면에서 아주 의미있는 행사”라고 강조했다. 조상묘 벌초를 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불효’로 여기는 탓에 벌초 때면 객지에 나가 살고 있는 제주 사람들이 벌초를 하기 위해 대거 고향을 찾는다. 일본에서도 제주 출신 교포들이 줄지어 제주를 찾는다. 벌초 귀향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제주행 항공권 구하기가 힘들어지면 항공사들은 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벌초특별기를 긴급 투입하기도 한다. 올해도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제주행 항공기는 관광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거의 다된 상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해마다 벌초 때가 되면 항공권을 구할 수 없느냐는 민원이 쏟아진다.”면서 “올해도 벌초 귀향객들의 추이를 봐가며 특별기 투입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19와 경찰도 ‘벌초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대대적인 벌초 지원에 나선다. 벌초객들에게 독버섯 식별법 등을 사전에 알리고 예초기 안전사고, 벌초후 음주운전 사전 예방활동을 벌인다. 한라산 산간 도로에는 교통 경찰을 배치, 벌초 차량의 소통을 돕기도 한다. 제주기상청도 벌초가 시작되는 음력 8월 초하루 전후의 날씨 예보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제주시는 최근 클릭만 하면 공설묘지 조상 묘의 위치, 사진 등을 한 눈에 검색할 수 있는 묘지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제주의 명당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장흥 마(馬)씨 강진파 입도조의 묘는 한라산 정상(1950m)에 가까운 해발 1600m에 있다. 장흥 마씨 후손들은 해마다 벌초때가 되면 어김없이 한라산 꼭대기까지 멀고도 먼 벌초길에 나선다. 묘지가 높다 보니 예초기는 엄두도 못내고 등산복 차림으로 낫을 한자루씩 들고 벌초에 나선다. 마희문(장흥 마씨 입도조)의 직계 4대손인 마원국(68·제주시)씨는 50여년 전부터 친척들과 함께 벌초를 다녔다고 한다. 묘소까지는 한라산 윗세오름 등산로를 따라 걸어서 무려 3∼4시간 걸린다. 벌초길 왕복 산행 7∼8시간에 벌초는 20분 정도면 끝난다. 마씨는 “자손들의 번창을 바라며 조부께서 이장을 하실 때 장정 7명을 동원, 비석과 돌하르방을 짊어 메고 이곳까지 올라 왔다.”고 전했다. 그는 “조상묘가 한라산 꼭대기에 있어 불편하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면서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1년에 한번씩 친척들이 모여 벌초 산행길에 오른다.”고 말했다. 조상묘 별초에 유별난 제주사람들에게도 작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후손들이 벌초을 해야 하는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제주도가 올해 들어 만 20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4.2%가 본인 사망시 장례 방법으로 ‘화장’을 선택했다.‘매장’은 17.8%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화장 선호 이유로는 ‘시대적 추세’(49.8%),‘장례절차 용이’(30.3%)에 이어 ‘벌초문제 때문’(16.3%)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향후 기존 묘소 관리에 대해서는 ‘자식이 계속해 관리’(48%)와 ‘화장 후 납골당 안치’(47.6%)의 응답비율이 비슷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전국적인 장례문화 변화 탓도 있지만 핵가족화로 벌초등 산소 관리의 어려움이 늘어나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벌초 했수과(했습니까).”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곧 조상의 묘를 돌보는 벌초 행렬이 전국적에서 본격 시작된다. 독특한 ‘섬 문화’를 갖고 있는 제주지역에서는 어떤 성묘 문화를 이어오고 있을까. 제주에는 크게 보아 두가지 풍습이 있다. 하나는 ‘제사는 안 지내도 벌초는 꼭 한다.’는 유별난 벌초 문화다.‘벌초 방학’ ‘벌초 휴가’가 있을 정도다. 다른 하나는 신구간(신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이때 이사를 하면 집안에 액운이 없다며 절기상으로 대한 5일후부터 입춘 3일전까지 기간)에 이사를 하는 풍습이다. 따라서 추석을 앞둔 이맘 때부터는 제주사람들의 인사는 “벌초 했수과.”가 기본일 정도로 섬 전체가 벌초 열기로 들썩인다. 육지와는 사뭇 다른 제주의 특별한 벌초 풍습을 엿보았다.
  • [서울 4色 탐험-예술의 향기] (11) 한국문화의 집 ‘흥겨운 우리 무대’

    [서울 4色 탐험-예술의 향기] (11) 한국문화의 집 ‘흥겨운 우리 무대’

    지난 19일은 우리나라 4대 명절 중 하나인 단옷날. 이날 낮 1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 국악공연이 펼쳐졌다.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든 넥타이차림의 직장인들이 꽹과리·장구·북에 발장단을 맞췄다. 분홍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은 소리꾼이 구성지게 민요를 부르자 박수가 터졌다. 흰털이 복슬복슬한 사자가 사물놀이 장단에 따라 춤을 추며 흥을 더했다. 무대 옆에서는 창포비누와 쑥떡, 제호탕을 받으려는 직장인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섰다. 주최측이 준비한 400명분은 50분 만에 동이 났다. 한국문화의 집이 개최한 세시절 행사인 단오 ‘수릿날 이야기’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저녁 7시30분마다 해석 곁들인 무대 지하철 2호선 삼성역 4번 출구로 나와 5분쯤 걸어가면 섬유센터빌딩 뒤쪽 골목에 4층 단독 건물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종합적으로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 ‘한국문화의 집’이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이 집에는 전통차·공예품 전시(1층), 전통예술공연(2층), 문화체험·전통공예교육(3∼4층)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설·입춘·단오·칠석·추석·동지 등 주요 세시절에는 민속 행사도 진행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7시30분에 열리는 ‘해설이 있는 흥겨운 우리 무대’가 최고 인기 프로그램. 전문가들이 공연에 앞서 악기나 공연의 특징을 설명해 국악 초보자라도 재미있게 전통음악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퓨전국악·국악가요·전통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젊은 소리꾼이 선보인다. 모든 공연은 무료이다. 지난달과 이번달에는 서울창극단·단국대 창극단·전남대 창극단이 창극 흥부가·춘향가·심청가를 무대에 올렸다. 창극은 판소리가 개화기 이후 서양극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양식. 연극처럼 여러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음악과 노래, 연기가 어우러져 ‘한국식 오페라’라고도 불린다. 신진라 공연운영팀장은 “국악 초보자를 위해 젊은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창극으로 재해석하는 무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다음달∼11월에는 타악 공연 ‘쇠소리 북통소리’가 이어진다.12개 젊은 국악팀이 타악을 매개로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다. 타악그룹 광명 ‘삼족오의 기상’(7월4일)에서는 비보이가 등장하고, 타악퍼포먼스 인디라 ‘춤과 가락의 어울림’(8월8일)에서는 전통 춤과 창작 춤이 어우러진다. ●공연장 자체가 볼거리 또 다른 볼거리는 공연장 그 자체다.243석의 아담한 공연장은 앞으로 나온 돌출형으로 무대와 객석이 유난히 가깝다. 천장은 단청 무늬로 수놓았고, 객석은 왕의 의자인 ‘어좌’를 본 떠서 만들었다. 그래서 아늑하면서도 기풍이 넘친다. 좌석간 거리가 충분하고, 칸막이가 없어 아빠,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앉기에도 편리하다. 신 팀장은 “공연장을 구경하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공연 예약은 인터넷으로만 받는다. 단체만 전화로 가능하다. 한국문화의 집(www.kous.or.kr) 회원으로 등록하면 4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좌석은 공연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배분한다. 공연장에 일찍 가야 좋은 좌석에 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공연 시작 15분 전부터 현장 신청자에게 남은 표를 나눠준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가구당 年경조비 작년 50만원 첫 초과

    가구당 年경조비 작년 50만원 첫 초과

    지난해 전국 가구당(가구원 2인 이상) 경조사비가 연간 50만원을 넘었다. 한달에 4만원 이상 쓴 셈이다.2005년보다 12%나 늘었다.1인 이상 가구로 보면 연간 46만원선이다. 입춘이 두번 있는 ‘쌍춘년 효과’로 지난해 결혼이 급증한 결과로 풀이된다. 가구 전체로는 7조 2762억원을 썼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847조원의 0.9%에 이른다.7일 통계청의 가계수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경조비 지출은 월평균 4만 2367원, 연간으로는 50만 8000원이다.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경조비는 ▲2003년 3만 6403원에서 ▲2004년 3만 5843원으로 줄었다가 ▲2005년 3만 7875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가구당 경조비는 2005년보다 11.9% 증가, 가구당 소득 증가율 5.1%의 2배가 넘는다. 지난해 처음 발표한 1인 이상 전국가구의 경조비는 월평균 3만 8188원, 연간으로는 45만 8000원이다.2인 이상 가구의 경조비는 2003년부터 작성됐다. 통계청은 쌍춘년의 효과로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결혼 건수는 33만 2800건으로 2005년보다 5.2%(1만 6400건) 늘었다. 이같은 증가율은 동성동본의 혼인신고를 받았던 1996년(9.1%)을 제외하면 1980년 13.9% 이후 가장 높다. 경조비 규모도 커졌다. 공무원의 경우 3만원이던 경조비 한도가 지난해부터 현실화,5만원으로 높아졌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최혜열의 퀼트가 있는 풍경]세상에 단 하나뿐인 퀼트 다이어리 커버

    [최혜열의 퀼트가 있는 풍경]세상에 단 하나뿐인 퀼트 다이어리 커버

    영어에서 2월(February)의 어원은 정화(精化)를 뜻하는 라틴어인 ‘FEBUARIUS’에서 왔다고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결실의 신인 루프르쿠스를 모시는 제사가 있었는데, 그 제사에 신에게 바친 산양의 피를 묻힌 가죽 끈을 februa, 즉 부정을 막는 부적이라 부르는 데서 2월의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2월은 아직도 부정 방지의 달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농사를 지어 온 우리 민족에게 2월은 봄이 들어서는 달이다. 2월 4일이 입춘(立春)인데 입춘으로 새로운 한 해의 24절기가 시작된다. 서양의 2월은 부정을 막는 엄격한 달이지만 우리의 2월은 한 해를 시작하는 희망의 달이다. 그런 희망을 마음에 새기는 달에는 가족이나 소중한 친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퀼트 다이어리 커버’를 만들어 선물하면 어떨까?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 다이어리(수첩)를 준비하는데 공장에서 찍혀 나온 다이어리들이 다. 비슷비슷한 색깔과 모습의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희망의 색깔이나 꿈의 크기도 기계가 찍어낸 듯 천편일률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런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희망이나 새해 각오도 왠지 ‘작심삼일’로 끝날 것 같기도 하다. 꼼꼼하게 기록을 즐기는 주부나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이어리는 1년을 함께 하는 좋은 친구여야 한다. 늘 손에 들고 다니며 다이어리에 약속을 적고 하루하루의 비망록을 남기고, 사소한 기록에서부터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하는 마음의 흔적까지 다이어리에 남기는데 당연히 좋은 친구여야 한다. 다이어리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손에서 떠나지 않는 친구라면 퀼트로 만든 커버를 새 옷처럼 입혀주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만약 퀼트 커버를 선물한다면 선물을 받는 사람의 365일에 따뜻한 옷을 입혀주는 일과 같다. 그냥 단순하게 다이어리에 커버를 입혀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사용할 새해 365일에, 소중한 시간 시간과 그 시간에 남는 기록 그 자체에 퀼트 커버를 입혀 선물하는 것과 같다. 특히 퀼트 커버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이어서 더욱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그건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퀼트 커버의 매력은 소재가 천이어서 변하는 것에 있다. 가죽 커버나 플라스틱 커버처럼 변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소중하게 기록하는 일도 이내 식상해질 것이다. 내 손에서 익숙해지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낡아지는 다이어리에 기록되는 시간만이 진정한 자신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퀼트 다이어리 커버는 다이어리의 크기에 따라 3~7일의 바느질 시간이 필요하다. 백화점에 무엇인가를 사서 선물하는 것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기에 퀼트 선물은 마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래서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그 선물 앞에 경건해지는 것이다. 퀼트 커버는 1년을 사용하면 낡고 손때가 묻고 천의 색도 바래질 것이다. 사실 그것이 최고의 멋이다. 한 해가 마침표를 찍는 12월에 그런 퀼트 다이어리 커버를 가진, 열심히 한 해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당신을 만나보고 싶다.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다. 초콜릿보다 더욱 달콤한 퀼트 커버를 입힌 다이어리를 선물하면 어떨까. 아니면 몰래 선물할 상대의 다이어리 크기를 자로 재어 퀼트 커버를 만들어 씌어주면 어떨까. 준비물 다이어리. 각색의 조각 천과 수실. 얇은 퀼팅 솜. 만드는 법   먼저 커버링하고 싶은 다이어리의 치수를 잰 다음 치수보다 가로 세로 5mm 정도 크게 본을 만든다.   본 위에 조각 천을 마름모로 재단 후 대각선으로 배색해 본 후 바느질을 한다.   다림질하여 모서리를 정리한 후 필요한 치수만큼 배색한다.(커버 안쪽 치수는 6cm로 한다.)   전체 TOP이 완성되면 안감과 TOP를 마주 포개놓고 퀼팅 솜을 뒤에 댄 후 뒤집을 자리를 남기고 바느질한 다음 뒤집어서 마무리한다.   중온으로 다림질해서 모양을 잡아주고 바느질 선 따라 수실로 예쁘게 스티치 한다.   커버 안쪽 분량을 접은 후 위아래를 바느질로 고정시킨다.   수첩 갈피도 모양 내어 동그랗게 두 겹 바느질하고 뒤집어 끈을 묶어 안쪽으로 끼우고 바느질로 고정시킨다. 완성선은 수실로 깜찍하게 마무리한다.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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