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미국인 ‘뿌리찾기’ 열풍
미국인들이 조상의 ‘뿌리’를 찾는데 열중하고 있다.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마틴 루터 킹 기념 도서관의 2층 역사 서적 열람실을 방문하면 특별전시 중인 계보학(Genealogy) 관련 각종 서적을 만나게 된다.
이 도서관은 10월을 ‘가족 역사의 달’로 지정했다. 도서관의 주된 고객인 흑인들에게 그들의 혈통과 조상이 어디서부터 기원되는가를 찾아볼 수 있도록 관련 서적을 제공하거나 방법도 가르쳐 주고 있다. 또 가족의 계보를 찾을 수 있는 각종 자료공급처를 모아 책자도 만들었다.
■ 73%가 “조상이 궁금”…관련서적만 1만6564종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미국인들이 조상을 찾는데 가장 유용한 자료는 각종 정부 기록보관소다. 이곳에 보관된 연금, 토지거래 등 정부의 각종 공식 문서에서 조상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이민국의 기록과 정부의 공식 인구 통계인 센서스, 군 복무 자료도 중요한 정보원이다.
최근에 등장한 인터넷은 미국인들의 조상 찾기 확산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인터넷 조상 찾기 사이트인 앤세스트리닷컴 등은 양적·물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가계를 찾아 입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해마다 새로 선보이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가족 계보와 관련한 서적은 무려 1만 6564종이나 된다. 마케팅 전문회사 마켓 스트레티지와 계보찾기 사이트 마이패밀리닷컴이 지난달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73%가 가족의 역사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고 답변했다.
마틴 루터 킹 도서관 관계자는 “도서관 내에 흑인들의 조상 찾기와 관련한 강좌가 개설됐었으나 현재는 도서관 밖에서도 이같은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면서 “아프리카에서 온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조상찾기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서도 조상 찾기에 관심이 더욱 큰 민족은 아일랜드인과 유대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등이라고 한다. 이들은 미국의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자기 민족의 조상 찾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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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안 오코너 미국계보연구회 사무국장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상의 뿌리를 찾는 것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모든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자리잡은 미국계보연구회(National Genealogy Society)의 다이안 오코너 사무국장은 “어느 가족에게나 전설은 있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 인간 본능”이라고 말했다.
연구회는 미국인 계보와 관련된 데이터베이스들을 정리하고 조상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자료를 찾고 이용하는 방법도 정기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미국인들이 왜 조상 찾기에 열중하나.
-미국은 이민 사회다. 여러 민족이 모여 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또 입양된 미국인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한다. 뿌리를 찾는 것은 이 사회에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조상의 뿌리를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자신의 조상이 ‘왕’과 ‘왕비’였을 것으로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찾고 보면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손이다(웃음). 그런데 일단 뿌리 찾기를 시작하면 갈수록 그 일에 심취하게 된다. 왜냐면 한 사람의 새로운 조상을 찾아내게 될 때마다 그만큼 알아내야 할 일이 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양파를 벗기는 것과 같은, 끝나지 않는 작업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같은 조상을 찾게될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 그들은 서로 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조상이 같아도 현재의 후손들은 비슷한 것은 아니다. 중간에 다른 인종이 들어오기도 하고 해서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계보학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서유럽에서는 이미 수백년전부터 시작됐다. 가족들의 기록을 남기려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계보를 찾는데 출신 지역이나 인종별로 다른 점은.
-유럽의 경우는 나처럼 다양한 조상을 갖고 있다. 반면 아시아쪽은 상대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곳도 있다. 인도의 경우는 매우 단순하더라. 대부분이 몇개의 큰 패밀리에 속해 있다.
▶인터넷이 계보를 찾는 데 큰 영향을 미치나.
-물론이다. 예전에는 조상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조상이 살던 지역을 방문하지 않으면 안됐다. 또 관청이나 도서관, 신문사에 가서 가족과 관련한 자료를 일일이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워싱턴에 앉아서 스코틀랜드의 자료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은 계보학을 학자들만의 연구 대상에서 모든 이의 관심사로 바꿔 놓았다.
▶계보 찾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아일랜드의 경우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정복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기록이 많이 사라졌다. 아마 한국과 베트남 같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기록이 잘 보관되어 있는 편이기 때문에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미국 내에서 한국인 등 아시아인의 계보는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은데.
-그렇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옆에 ‘에인절 아일랜드’가 있다. 그곳이 미국 건국 초기에 이민오는 아시아인들의 집합소였다. 마치 뉴욕의 ‘앨리스 아일랜드’가 유럽 이민자의 창구였던 것처럼. 그곳에 가면 한국인 초기 이민자들의 기록이 많아 남아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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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들 姓의 유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조상의 계보와 밀접하게 연계된 것이 이름이다. 미국인의 성(姓)만 알아도 어느 정도 그의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출신 국가가 달라도 대체로 작명법은 비슷해 아버지의 이름이나 직업 등에서 유래된 이름이 많다.
오닐(O’Neil)처럼 이름 앞에 O’가 들어간 경우는 아일랜드 사람이 대부분이다.O’는 ∼출신이라는 의미를 갖는 접두사로 오닐은 닐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맥그리거(MacGregor)는 그리거의 아들이라는 스코틀랜드인의 이름이다.
윌리엄슨(Williamson)은 쉽게 짐작이 가는 대로 윌리엄의 아들이라는 영국 이름이다. 피터센(Petersen)은 같은 이치로 피터의 아들이라는 덴마크식 이름이며, 자노위츠(Janowicz)도 자노의 아들이라는 폴란드식 이름이다. 멘델손(Mendelssohn)이란 독일 이름과 안토네스쿠(Antonescu)라는 루마니아 이름도 모두 멘델과 안톤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작명들이다.
조상의 직업을 따라 만든 이름도 출신 지역을 짐작하게 만든다. 베이커(Baker)와 베커(Becker), 블랑저(Boulanger), 포르나리(Fornari), 피카르츠(Piekarz)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들이 각각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출신이며 그들의 조상을 빵을 굽던 사람들이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만일 이름이 지명과 관계된 것이면 잉글랜드 출신일 가능성이 크다. 잉글랜드에서는 처음 성을 붙일 때 살던 지역의 특성을 갖다붙였기 때문이다. 힐(Hill)이나 밀(Mill), 우드(Wood), 리버스(Rivers), 애트워터(Atwater), 그린(Green)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미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에는 현재 150만개의 성이 있다. 가장 많은 성이 스미스로 1990년대말 당시 미국에는 무려 220만명의 스미스가 살고 있다.
여기에는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대장장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인 슈미트와 이탈리아인 페라로, 러시아인 쿠즈네트조프의 이름이 녹아들어가 있다.
특히 독일에서 건너온 미국인들의 경우 1·2차 세계대전 당시 주위의 편견 때문에 독일식 이름을 버리고 영국식 이름으로 바꾼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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