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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나이 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하여/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나이 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하여/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새파랗게 젊은 것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못해 먹겠다.” 얼마 전 국정감사를 받던 70대 한 기관장의 말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 대한 멸시와 비하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질문한 사람들은 50대 중반의 국회의원이었음에도 오직 나이라는 잣대 하나로 그들의 지위와 역할, 지식이나 능력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정작 나이를 이유로 수모당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오히려 그 ‘젊은 것들’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태도와 언행은 노인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연령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일상이다. 10여년 전 40대 초반에 취임한 행정자치부 장관이 국회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당시 60대 중반의 국회의원으로부터 “젊은 나이에 장관 됐는데 기분 좋지요?”, “아직 장관이 젊어서 잘 모를지 모르지만”, “내가 나이도 장관보다 많고” 등 무수한 조롱을 받았다. 그는 결국 6개월 만에 물러나고 만다. 나이를 들먹이며 행해지는 부당한 차별은 직장에서 더 심각하다. 20·30대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하게 되면 직장에는 모두 ‘어른들’뿐이다. 10년 이상 자신을 낮추고 온갖 잡일 다 해가며 나이 든 선배와 상사를 모시다가 40대가 돼야 겨우 한숨을 돌린다. 오죽하면 김용 세계은행 총재도 “입사 후 마흔이 되기 전까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서 “나이 차별이 있는 한 한국은 성공할 수 없다”고 했겠는가. 그래서인지 50대를 넘기면 이제부터 ‘내 맘대로 살아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나이 차별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사회적 편견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고 성인의 권리를 훼손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 관계를 수직적으로 서열화함으로써 정상적인 대화와 토론을 가로막는다. 나아가 젊은 세대에게는 부당함에 대한 침묵을 강요하고 약자로서의 비굴함을 키운다. 최근 5년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행위 상담 건수를 보면 나이와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 장애인과 성희롱 다음으로 많았다. 두 유형의 진정 접수 건수를 합하면 매년 200~300건으로 성희롱 진정 접수 건수를 능가한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잘못된 편견은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새파랗게 젊은’ 세대를 위한 ‘나이차별금지법’을 만들자. 고령자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노인차별주의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청년차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용상의 연령차별금지’만이 아니라 업무와 생활상의 차별 행위도 금지해야 한다. 양성평등법의 성희롱 규정과 같이 젊은 세대들이 연령에 의한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도록 하자. 또한 나이 ‘차별’만이 아니라 나이 ‘괴롭힘’도 금지하자. 영국의 연령차별 규칙도 나이를 이유로 적절치 못한 언행, 모욕적인 농담, 사회적 모임으로부터의 배제 등의 괴롭힘을 모두 차별금지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연장자 중심의 제도와 관행도 바꾸어야 한다. 직장에서 보수 지급 기준은 여전히 직무나 직급보다 나이와 근속연수가 먼저다. 20대 후반에 입사해 30대, 40대까지 어렵고 힘들게 살다가 근속 호봉이 빵빵한 50대에 도달하면 악착같이 기득권을 지키는 세대 간의 차별적 악순환을 끊을 수는 없을까. 지난해 논란 끝에 확정된 공무원연금제도의 개혁 역시 젊은 재직 공무원이나 신입 공무원들의 희생과 부담만을 더욱 키웠다는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모두 인정하고 선관위까지 나서 제안한 선거 연령 18세 인하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저자 한윤형은 “20대는 386 부모 세대의 훼방만 이겨 낸다면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정상회담’ 프로그램 미국 대표였던 타일러는 나이가 어리고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도 참아 내는 우리들의 비정상을 “참지 말고 항의하라”고 일침을 놓는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나이 중심의 위계질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계급과 권위가 아니라 존경과 감사의 상징이 될 수는 없을까.
  • 취준생 10명 중 4명, 자소서 대필받고싶다

    취준생 10명 중 4명, 자소서 대필받고싶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은 자기소개서 대필유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9일 밝힌 취준생 881명을 대상으로 한 자소서 대필 관련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는 지난 3월 15일부터 16일까지 인크루트 가입회원 1235명을 상대로 전자메일을 통해 이뤄졌으며 취준생 881명이 참여했다. 먼저 취준생 881명에게 자소서 대필을 희망한 적 있는지 물은 결과, 취준생 43%는 대필을 희망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취준생 10명 중 4명은 자소서 대필의 유혹을 받고 있는 셈이다. 취준생들은 실제로 대필받은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12%의 응답자가 비용을 들여 대필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취준생 10명 중 1명꼴로 자소서 대필을 실제로 받는 것으로 적지 않는 비율이다. 자소서의 어떤 부분을 대필받고 싶은지 묻자, 응답자 18%는 ‘자기소개서 쓰는 요령 컨설팅 혹은 합격요건에 딱 맞는 자소서’라고 응답했다. 이어 ▲지원동기, 입사 후 포부 등 회사나 직무에 관련된 작성법 컨설팅 혹은 대필(17%), ▲전반적인 자기소개서 작성법 혹은 전체적인 대필(15%) 등으로 집계되었다. 요즘 취준생들은 자소서 대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취준생들은 ‘기회와 비용이 있다면 해도 무방하며, 자소서 작성 능력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대필해도 좋다’는 의견 등 긍정적인 응답이 무려 41%를 차지했다. 이와는 달리 ‘다른 경쟁자와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21%, ‘대필해도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어 안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15%로 모두36%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조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취준생들의 자소서 대필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비슷하게 갈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개 숙인 당신을 슈퍼맨으로 만들어 줄 운동 다섯 가지

    고개 숙인 당신을 슈퍼맨으로 만들어 줄 운동 다섯 가지

    운동은커녕 지하철 계단 오를 힘도 없다면, 지금이 바로 운동을 해야 할 때다. 당신을 슈퍼맨, 원더우먼으로 만들어 줄 운동 다섯 가지를 엄선했다. 이 운동은 선명한 식스팩, 터질 것 같은 애플힙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대신 강한 힘과 덜 지치는 체력, 넘치는 활력을 보장한다.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버스엔 자리가 없다 출근길 만원 버스에 자리가 없다. 회사까지는 40분... 서서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다리에 힘이 빠진 건지 요즘에는 오래 서 있기가 힘들다. 배는 자꾸만 나오는데 허벅지는 가늘어져만 간다. 거울 속에는 웬 ET가 있다. 인간은 두 발로 걷고 선다. 당당하게 걷고 서려면 다리에 힘이 있어야 한다. 하체 힘을 키우는 데에는 스쿼트만한 운동이 없다. 역기를 어깨에 이고 앉았다 일어나는 스쿼트의 별명은 ‘바벨(역기) 운동의 왕’이다. 앉았다 일어나는 과정에서 허벅지 앞쪽(대퇴사두근)과 뒤쪽(대퇴이두근)은 물론 엉덩이(둔근)가 두루 강해진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스쿼트를 하려면 먼저 역기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탱해야 한다. 몸의 중심인 ‘코어’가 자연스럽게 단련된다. 역기를 진 어깨와, 역기를 붙든 팔도 자극된다. 초급자는 먼저 역기 없이 앉았다 일어나는 맨몸 스쿼트로 정확한 자세를 익히는 게 좋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역기를 들고 스쿼트를 해야 한다. 그래야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보통 1년 이상 훈련하면 본인의 체중 정도의 역기로 스쿼트를 할 수 있다 자세한 운동법은 보디빌더 이진호의 강좌를 참고하자. ●회사에서 생수통을 갈다 허리를 삐끗했다 왕년에는 쌀 한 가마니도 번쩍 들었다. 회사 생수통 교체쯤이야. 셔츠 소매를 걷고 생수통을 가는 남자가 섹시하다고 했던가. 신입사원들 앞에서 호기롭게 생수통을 간다. 빈 통을 빼고 물이 가득 든 통을 들어 올렸다.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물통을 떨어뜨렸다. 자존심도 땅에 떨어졌다. 택배 박스부터 장바구니까지 바닥에 놓인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동작이다. 별 문제 없이 들었던 물건을 드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이 온다. 허리 근력이 약해져서 그렇다. 데드리프트가 고민을 해결해 줄 것이다. 데드리프트는 땅에 놓인 역기를 양손으로 잡고 전신을 쭉 펴면서 뽑아 올리는 운동이다. 허리를 지탱하는 척추기립근은 물론이고 허벅지 뒤쪽, 엉덩이, 등판 등 전신의 후면부 근육이 두루 강해진다. 게다가 악력과 코어까지 단련된다. 때문에 일부 운동 애호가들은 ‘바벨 운동의 왕’은 스쿼트가 아니라 데드리프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운동에 개입하는 근육은 데드리프트가 더 다양하다. 데드리프트라는 명칭의 유래는 죽은(dead) 역기를 들어올리기(lift)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또는 ‘죽을 정도로 힘든 들기’라 해서 데드리프트라는 이야기도 있다. 무엇이 사실이든 간에 굉장한 운동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보통 1년 이상 훈련하면 본인 체중의 1.5배를 들 수 있다. 아래는 이진호의 데드리프트 강좌다. ●온 힘을 다해 달렸는데 코앞에서 지하철을 놓쳤다. 오늘도 지각이다. 아침에 15분을 더 잔 게 화근이었다. 빨리 준비한다고 했는데 집에서 나온 시간은 평소보다 정확히 15분 늦다. 오늘따라 버스는 더 안 오는 것 같다. 버스에 타서 스마트폰으로 지하철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 버스가 전철에 도착할 즈음 지하철도 승강장에 진입할 것 같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지하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승강장에 도착할 무렵 스크린 도어가 닫혔다. 전철은 유유히 출발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인류의 조상은 사냥감을 쫓아 달렸다. 현대인도 일용할 양식을 위해, 회사를 향해 달린다. 달리기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운동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나 달릴 수 있다. 달리기를 하면 심폐 기능이 강화되고 심장과 혈관이 튼튼해진다. 혈액 속에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수도 늘어난다. 동맥경화, 고혈압 등 고질적인 성인병을 예방하거나 완화하는 데도 도움을 주며 비만과 당뇨에도 좋다. 한 번에 20분 이상, 주 3회 이상 달려야 심폐 기능 강화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6주 이상 달리면 체중 감량 등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난다. 하지만 잘못된 자세로 달렸다가는 되레 병을 얻을 수 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탈리스트 지영준에게 올바른 달리기 자세를 배워보자. ●갑갑한 매일... 가끔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다 어제도 회사, 집, 오늘도 회사, 집, 내일도 회사, 집... 반복되는 매일이 숨막힌다. 소리를 지르면서 운동장이라도 달리면 가슴이 좀 뚫릴 것 같다. 하지만 학교 운동장에는 들어갈 수 없다. 소리를 지르면서 달릴 곳도 마땅치 않다. 동네 골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가는 경찰에 붙잡혀갈 수도 있다. 운동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자신의 신체 능력의 한계치까지 몰아부칠 때 일종의 쾌감마저 느낄 수 있다. 짧은 시간에 한계에 다다르는 데에는 버피만한 운동이 없다. 버피의 별명은 ‘악마의 운동’이다. 짦은 시간에 굉장한 열량을 소모한다. 당연히, 상상을 초월하게 힘들다. 올바로 선 자세에서 시작한다. 다리를 가볍게 구부리면서 양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동시에 두 발을 뒤로 빼 엎드려뻗쳐 자세를 만든다. 그리고 팔굽혀펴기 1회를 한다. 양팔을 그대로 둔 채 두 발을 팔이 있는 곳까지 끌어올리고 다시 점프하면서 박수를 친다. 이게 버피 1회다. 10회만 해도 버피의 고됨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생각하는 운동’을 표방하는 피트니스 단체 피톨로지가 제작한 버피 교육 영상이다. ●운동하면 좋은 건 알겠는데, 스쿼트며 버피며 너무 복잡하다 운동이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스쿼트, 데드리프트, 달리기, 버피까지 다 챙겨서 할 엄두가 안 난다. 인생도 복잡한데, 운동까지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다. 힘도 키우고 체력도 기를 방법은 없을까. 있다. 케틀벨 스윙이다. 케틀벨은 큰 손잡이가 달린 쇠구슬이다. 일반적으로 8㎏, 16㎏, 24㎏, 32㎏ 사이에서 수준에 따라 선택해서 하면 된다. 당연히 더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있다. 스윙은 케틀벨 운동 가운데 가장 기본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양손으로 케틀벨을 들고 앞뒤로 흔드는 운동이다. 가벼운 무게로 스윙하면 유산소 운동의 효과를, 무게를 올리면 근력 운동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근력 강화 효과만 놓고 보면 앞서 설명한 바벨 스쿼트, 바벨 데드리프트보다는 못하다. 하지만 하나의 동작으로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바벨보다 낫다. 국내 최초로 케틀벨 교육 시스템을 도입한 스쿨오브무브먼트의 스윙 강좌를 첨부한다. ●헬스장에 갈 시간이 없으면 집에서 하자 퇴근이 늦다. 집에 도착하면 거의 9시. 헬스장에 갈 시간이 없다. .괜찮다. 역기를 갖고 운동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덜 하지만, 집에서도 충분히 기초 체력을 닦을 수 있다. 버피와 달리기는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운동이다. 거기에 팔굽혀펴기와 맨몸 스쿼트를 추가하면 훌륭한 운동 프로그램이 된다. 맨몸 스쿼트에 익숙해지면 한 다리 스쿼트로 더 강한 하체를 가질 수 있다. 본격적으로 집에서 운동할 생각이라면 케틀벨을 구입하는 것도 좋다.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부담이 없다. 또 앞서 소개한 스윙 외에 스내치, 겟업, 스쿼트, 데드리프트까지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밖에 안 해봤다. 스쿼트니 데드리프트니 해보고는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퍼스널 트레이너(PT)를 고용하기에는 비용이 부담된다. 책, 인터넷 동영상을 참고할 만하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비교적 오랜 시간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 온 일종의 ‘고전’ 몇 편이 번역돼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다. 세계적인 스트렝스 코치인 마크 리피토의 ‘스타팅 스트렝스’, 러시아 특수부대 체력 교관 출신인 파벨 차졸린의 ‘엔터 더 케틀벨’, ‘맨몸의 전사’ 등에는 저자의 자세한 설명과 사진과 삽화가 곁들여져 있어 초심자가 운동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의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하면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구직자, 취업준비 기간길수록 취업가능성 낮게 인식

    구직자들은 취업준비 기간이 길수록 취업될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으로 파악됐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19일 밝힌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올 하반기 ‘본인의 취업가능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다.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30일까지 인크루트 회원 1176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로 이뤄졌다. 이에 따르면 취업준비생들이 자가진단한 본인의 취업가능성 점수는 100점 만점에 54.8점에 그쳤다. 평가 이유에 관해 물었더니, 가장 많은 응답률을 나타낸 항목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본인의) 스펙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성공가능성을 낮게 잡았다’(23%)였다. 그 다음으로는 ‘특별히 부족하진 않지만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보통의 성공가능성을 갖고 있다’라는 응답이 19%로 높았다. 이어 ‘원하는 직무 및 회사에 가기 위해 준비한 일이 별로 없다’(15%), ‘계속되는 낙방 때문에 자신감이 높지 않다’(11%)며 냉정한 자가평가 점수를 매겼다. 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스펙에 부족함이 없다’, ‘원하는 직무 및 회사 입사를 위해 한 가지 길만 파며 노력했다’는 답변은 7%, ‘입사지원 후 낙방했던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2%에 불과했다. 이렇듯 구직자들은 취업에 성공하기 위한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본인이하고 있는 취업 준비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73%의 구직자가 ‘아니다’라고 답한 것. 만약 취업 준비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취업 성공률이 높아질까? 이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구직자들(83%)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긴 취업 준비 기간이 직무능력 향상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31%로 가장 높았고, ‘나이도 취업에 중요한 요소’라는 입장(30%)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실제로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구직자들은 자신의 취업가능성을 낮게 진단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6개월~1년’ 동안 취업을 준비했다는 응답자의 평균 점수는 58.14점이었고, ‘1년~1년 6개월’은 56.81점, ‘2년~2년 6개월’은 54점, ‘2년 6개월~3년’은 45점, ‘3년 이상’은 34.25점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노력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 취업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은 무엇이 있을지’ 물어 본 결과, 응답자의 25%는 ‘취업 경쟁 과열’을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기업의 높은 선발 기준’(22%) 역시 문제시되었으며, ‘양질의 일자리 부족’(21%) 및 ‘경제난’(19%), ‘정부 정책상의 문제’(11%)의 답변이 이어졌다. 인크루트 이광석 대표는 “대기업 입사만을 바라보는 구직자들의 편향된 지원성향은 중견/중소기업의 구인난을 심화시키는 일자리 미스매칭 현상을 낳고 있다”며, “치열한 경쟁률로 합격이 쉽지 않은 대기업만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자신감을 하락시키는 것보다는, 본인의 역량을 인정해줄 수 있는 중견/중소기업으로 입사해 경력을 쌓아 앞으로의 커리어 개발을 도모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수당 없이 추석 당일만 쉰다” vs “연차 붙여 9일 쉰다”

    “수당 없이 추석 당일만 쉰다” vs “연차 붙여 9일 쉰다”

    5일 휴무 52%… 2일 이하 14% “추석 연휴요? 그런 거 없어요. 회사에서 추석 당일에만 하루 쉬라고 하던데요.” 12일 인천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최모(31)씨는 “기계 부품을 만드는 곳인데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기 때문에 추석 당일만 쉬고 나머지 연휴 기간엔 근무를 해야 한다”며 “휴일근로수당이나 줬으면 좋겠는데 회사는 아마 이번에도 안 줄 것”이라고 말했다. 휴일근무수당은 통상임금의 1.5배다. “취업규칙에 명절이 쉬는 날로는 돼 있는데 그간 휴일근로수당은 하루 3만원만 받았거든요.” 대기업 직원 김모(31)씨는 지난 11일 고향인 대구에 도착해 연휴를 즐기고 있다. 회사에서 12~13일 연차를 사용하도록 장려해 9일의 황금연휴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귀성길 교통 체증도 없으니 충분히 쉬고 돌아가면 그만큼 업무 능률이 오르지 않을까요.” 14일(수)부터 16일(금)까지 이어지는 추석 연휴가 주말과 겹치면서 12~13일 이틀 연차를 내고 최대 9일 동안 쉬는 경우가 있는 반면, 추석 당일 단 하루만 쉬거나 휴일근무에도 수당마저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006명을 대상으로 추석 휴무일수를 조사한 결과 대기업 재직자는 평균 5일을, 중소기업은 평균 4일을 쉬었다. 전체로 보면 5일 휴무가 52.6%로 가장 많았고 3일(17.3%), 4일(7.1%), 쉬지 못한다(6.2%), 2일(5.6%), 6일(3.5%), 1일(2.9%) 등 순이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기업이 쉬어야 하는 날은 노동절(5월 1일)과 주휴일(일요일)뿐이다. 나머지 휴일은 노사협약이나 취업규칙에 명시하도록 돼 있다. 그나마 어느 정도 규모가 큰 기업은 노조와 회사 간 합의를 통해 휴일을 정하지만 작은 곳은 기업주 마음대로 휴일을 정하는 게 다반사다. 추석 연휴가 0일부터 9일까지 천차만별인 이유다. 만일 명절 연휴를 쉬는 날로 지정하지 않았다면 명절에 근무를 해도 추가수당을 받을 수 없다. 실제 일부 회사는 추석 연휴가 의무휴일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해 직원들에게 연차 사용을 강제한다. 회사원 장모(27·여)씨는 “회사에서 14일부터 17일까지 4일을 쉬라더니 ‘14일과 16일은 연차 사용으로 대체합니다’라는 황당한 문자를 보냈다”며 “신입사원은 연차도 없어서 월차를 이틀이나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휴무일을 그저 쉬는 날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인식하는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며 “이런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 일정 규모의 사업장에는 명절에 최소 3일의 휴일을 보장하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옥수수 한 알로 세상을 구한, 옥수수에 미친 남자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옥수수 한 알로 세상을 구한, 옥수수에 미친 남자

    옥수수 한 알이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일굴 수 있다고 믿는 세계적인 육종학자다. 1970년대 후반 개발도상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슈퍼 옥수수’를 개발해 한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 퍼뜨렸다. 아프리카에서도 17년에 걸친 노력 끝에 현지 풍토와 기후에 맞는 슈퍼 옥수수를 탄생시켰다. 1998년부터 북한을 59차례 드나들며 굶주린 주민을 먹여 살릴 옥수수 생산 증대에 힘썼다. 지구촌 기아 해결에 헌신한 공로로 노벨상 후보에 5회나 추천됐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한국을 빛낸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45년 울산 출생 ▲신명초등학교, 경주 양남중, 울산농업고, 경북대 농학과, 고려대 농학 석사, 하와이대 농학 석·박사 ▲1977년 녹조근정 훈장, 1986년 국제농업연구대상, 1996년 일가상, 국회 과학기술연구회 1회 과학기술인상, 1998년 만해평화상, 2003년 미국 국제작물육종가상, 2011년 대한적십자사 적십자인도장 수상 등 ▲노벨 평화상·생리학·의학상 5회 추천, 브리태니커 ‘2000년 화제의 인물’, 2001년 일본 NHK ‘아시아의 인물’.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12일 포항역에 내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아이구, 이 더운 날에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땀에 젖은 헐렁한 셔츠, 흙투성이 등산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박사’의 차림새는 아니었다. 그는 금방 딴 것이라며 껍질을 벗겨 소매에 쓱쓱 닦더니 내 앞에 내밀었다. 날옥수수는 처음이었다. 망설이다 한입 베어 무니 웬걸,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맛있죠? 이게 과일보다 단 꿀옥수수라는 겁니다. 미국서 공부할 때 내 점심은 이 옥수수였어요. 날것 두세 자루로 배 채우고 밭에서 18시간씩 일했죠.” 옥수수에 미친 사내, 김순권(71)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학교는 뭐 할라 가노? 내 따라 댕기면서 농사랑 괴기잡이나 배아라. 어차피 장남이 집을 책임져야 안 되겠나.” 아버지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 낙심한 나를 혹독하게 부리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소똥을 퍼서 퇴비를 만들고 밭을 갈았다. 밤에는 배를 타고 나가 멸치를 잡았다. 일이 없으면 산에 올라 나무를 했다. 하루 세 짐은 채워야 끝났다. 똥통을 지고 보리밭을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생똥을 온몸에 뒤집어쓰기도 했다. 아버지와 함께 반듯하게 밭을 갈던 소는 내가 쟁기질을 이어받자마자 구불구불 갈지자로 걸었다. 아버지는 소 한 마리도 못 다루는 놈이 뭐가 되겠느냐며 지게 작대기로 사정없이 내리치셨다. -나는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4월 5일 경남 울주군 강동면 신명리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딸 여섯을 낳고서 얻은 아들이었다. 읍내에 가려면 서너 시간은 걸어야 했던 오지였다. 아버지는 여덟 마지기 땅에 논농사를 지으셨다. 멸치잡이 배 한 척도 있었다. 못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식구가 많아 늘 배를 곯았다. -인생의 고비에서 나는 세 번의 시험에 낙방했다. 머리가 좋지 않았지만 노력형이어서 반에서 3~4등은 했다. 은행원을 최고의 직업이라 여기고 명문인 부산상고에 도전했지만 입학시험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1년 동안 아버지 밑에서 농사를 배웠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선행학습’이었다. 이듬해 울산농고에 들어갔다. 삽질, 김매기는 내가 일등이었다. 졸업할 때 실습상을 받았는데 부상이 삽이었다. 평생 옥수수밭에서 일할 운명은 그때 결정된 게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태풍이 고향 집을 덮쳤다. 아버지가 피해 복구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병원비를 대려고 논을 팔았다. 셋째 누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더 기울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은 무리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다. 농협 입사 시험을 쳤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낙방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데, 경북대 농과대학에 가면 장학금을 주고 졸업 후 독일 유학도 보내준다는 말을 듣게 됐다. -10대1의 경쟁을 뚫고 경북대 농대에 합격한 나는 공부벌레로 살았다. 강의를 듣거나 아르바이트하는 시간 외에 도서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가장 늦게 도서관 불을 끄고 나왔다. 한번은 도서관에서 한 여학생이 차를 마시자고 해 따라나갔다. “네? 법대생이 아니고 농대생이라고요?” 내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걸로 알았던 그녀의 표정이 확 굳었다. 예비 판검사와 연애 한 번 해보려 했는데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던 것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처럼 육종학자가 될 것인가.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농업경제학 교수가 될 것인가. 흙에서 뒹굴며 평생을 보내야 하는 육종학자와 세련된 매무새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중에서 후자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에서 두 달 하숙하며 대학원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잘 본 것 같았는데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화가 나서 담당 교수에게 따지러 갔다. 교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자네는 생김새가 촌사람이어서 경제학은 안 맞는 것 같아. 충고하는데 그대로 육종학을 하시게나.” 세 번째 낙방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농촌진흥청에 들어갔다.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 통행금지 예비 사이렌이 울리는 밤 11시 30분에 연구실을 나섰다. ‘제2의 우장춘’이 되겠다는 각오로 하루 18시간을 일하고 공부했다. 하지만, 배움의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미국 유학이 가고 싶었다. 가난한 공무원에겐 자비 유학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국비 장학생이 되어야 했다. 서울대 문턱보다 높다는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WC)의 미국 유학 장학생 17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하와이대에서 옥수수 육종학을 시작했다. 미국산 옥수수는 탐날 정도로 크고 질이 좋았다. 지속적인 품종 개량의 결과다. 옥수수 연구가 한국보다 50년은 족히 앞서 있었다. 감탄과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옥수수를 잘만 개량하면 막대한 수확량을 올려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본인 유학생들과 연구실에서 공부하다 밤이 되면 함께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잠들면 나는 혼자 연구실에 돌아가 2시간을 더 공부했다. 다른 학생들이 밥 먹고 하와이 날씨를 즐길 때 나는 뙤약볕 아래 실습장에서 생옥수수로 끼니를 때우며 연구를 거듭했다. 다들 ‘옥수수에 미친 남자’(crazy corn man)라고 수군거렸다. -미국 교수들은 “옥수수 교배 올림픽이 있다면 김순권이 단연 금메달감”이라고 나를 치켜세웠다. 옥수수 교잡종을 만들려면 암수를 접붙여야 한다. 옥수숫대 위에 달린 수술에선 100만~200만개의 미세한 꽃가루가 떨어진다. 눈병이 생기기 쉬우니 자주 씻어내야 한다. 눈이 큰 미국인들은 이걸 불편해했는데, 나는 눈이 작아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3년 3개월 만에 석·박사 학위를 손에 쥐었다. 박사 과정 동안 20차례 옥수수를 재배하며 쓴 논문들을 세계농업학회지 등에 7차례 실었다. 단숨에 전 세계 옥수수 학계의 스타가 됐다. 미국의 파이어니어라는 종자회사가 농촌진흥청 월급의 20배였던 3000달러를 제의해 왔다. 하지만 나는 솔깃한 제의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옥수수를 우리 땅에 하루라도 빨리 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979년 강원 홍천, 평창, 영월의 시험 재배장에 ‘수원 19호’, ‘수원 20호’, ‘수원 21호’의 종자가 뿌려졌다. 얼마 후 미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씨알 굵은 옥수수가 주렁주렁 달렸다.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암초가 등장했다. “미국과 국제기구가 자네가 개발한 ‘수원’ 시리즈는 한국 땅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네. 수고했지만 종자는 창고에 쌓아 두고 연구나 좀더 해 보게.” 농진청 선배의 말이었다. 옥수수 종자를 팔기 위한 미국의 로비가 뻔했다. “이 종자가 실패하면 10년 동안 감옥에 가 있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 농가에 당초 계획의 절반인 8만t을 나눠 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농민들이 옥수수를 땅에 심으려 하지 않았다. “농사 망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격한 삿대질이 돌아왔다.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그해 강원도에는 바람이 심해 곳곳에서 흉작이 났는데 이게 좋은 기회가 됐다. 수원 19호는 전혀 넘어지지 않았고 전체 포기의 95%에 잘생긴 옥수수가 달렸다. 수원 품종을 심은 농민들은 수입이 전년보다 3배 이상 올랐다. 누가 이 종자를 못 심게 했느냐며 관련자가 처벌까지 받았다. ‘미국이 55년에 걸쳐 만든 옥수수 교잡종을 5년 만에 이뤄냈다.’, ‘한국 옥수수 농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찬사가 이어졌다. 그때부터였다. 내 이름 앞에 ‘옥수수 박사’가 붙은 것은. -그즈음부터 국제열대농업연구소(IITA)에서 줄기차게 나에게 팩스를 보내왔다. 비영리 농업연구센터인 IITA는 나이지리아 이바단에 1000㏊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며 아프리카 기아 해결을 연구하고 있었다. 한국형 교잡형 옥수수를 개발한 나더러 5억명 아프리카 인구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게 그들의 요청이었다. 1979년 8월 이바단에 도착했다. 2년 만에 옥수수 암이라고 부르는 위축 바이러스에 강한 신품종을 개발하자 나이지리아 정부가 후원자로 나섰다. “5년간 250만 달러를 줄 테니 나이지리아에 맞는 옥수수를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500개의 종자를 만들어 7개 지역 옥수수밭에서 시험 재배했다. 최종 배양된 종자는 기존 옥수수보다 수확량이 배가 많았다. 해마다 100t에 가까운 옥수수를 미국에서 수입했던 나이지리아는 생산량이 300만t 이상 늘어 옥수수 완전 자급을 이뤘다. 대통령이 내 손을 잡고 고마워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17년 동안 나는 아홉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렸다. 위험한 고열에 시달린 게 여섯 번, 죽기 직전 위급한 상황이 세 번이었다. 고열에 혼수상태를 지속하다 3일 만에 정신을 차린 적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현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나는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명예추장에 두 번이나 추대됐다. 외국인 중에 명예추장이 된 사람은 통틀어 50명 정도밖에 없는데, 외국인으로 두 번이나 명예추장이 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사람이란 뜻의 ‘마이에군’, 아내는 황금의 어머니라는 뜻의 ‘예예니우라’로 불렸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50코보(약 50원)짜리 동전에 오동통한 옥수수 이삭을 새겨 넣었다. 내가 개발한 ‘오바슈퍼 1호’였다. -IITA의 책임연구원으로 귀한 인재 대접을 받았다. 높은 연봉과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자리였다. 우리 연구팀이 1986년 농업부문 노벨상으로 불리는 벨기에 국제농업연구대상을 받은 뒤 몸값이 더 올라갔다. 그런데 마음 한쪽이 편치 않았다. 1994년 북한에 엄청난 수해가 닥쳤다. 어릴 적 배고픔을 겪어 본 나는 마음의 동요가 심했다. 북에 언니와 오빠를 둔 아내는 더욱 가슴 아파했다. -1995년 경북대에서 ‘외국 박사 모셔오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에게 교수직을 제안했다. 귀국과 동시에 북한 식량 문제를 도울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경북대 농대 소유의 1.7㏊(약 5000평) 규모 옥수수 농장에서 북한 토양에 적합한 슈퍼 옥수수 종자를 시험 재배하며 때를 기다렸다. 북한 당국은 공식 초청장을 5차례나 보내 나에게 방북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1998년 1월 방북 승인이 떨어졌다. -북한 현지 사정은 심각했다. 비료가 부족하고 과학 영농이 안 돼 농작물이 병충해에 약했다. 북한 농업위원회 간부들은 슈퍼 강냉이를 개발해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과학적 주체농업’을 제안했다. 협동농장 간 경쟁을 붙여 평균보다 많이 수확한 농민에게 식량 배급을 더 주자고 했다. 농사 잘 지은 협동농장에는 트랙터를 상으로 줬다. 망가진 옥수수밭을 살리기 위해 콩과 돌려짓기를 하고 대홍단(옛 개마고원) 등 고산지에는 저온작물인 감자를 심도록 했다. 이렇게 하니 평균 30% 이상 식량 증산이 이뤄졌다. 내가 개발한 수원 19호를 북한 농민은 ‘강냉이 19호’ 또는 ‘강 19호’로 불렀다. 첫 방북 이후 지금까지 59회를 북에 다녀왔다. 옥수수사업은 북의 기아 해결과 남북 화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2003년 이후에는 나의 방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중국, 몽골, 베트남, 라오스, 동티모르에 슈퍼 옥수수를 보급했다. -옥수수가 신기한 것은 종자 1개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옥수수 한 알을 심으면 1200개 알갱이가 붙은 옥수수가 나온다. 내가 직접 만진 옥수수는 하루 수천개, 46년이 지났으니 줄잡아 수십억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옥수수가 내 손을 거치게 될까. 앞으로도 계속 옥수수밭에서 땀 흘려 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포항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고졸신화´ 양향자, 원외 핸디캡 딛고 여성최고위원 당선

    ´고졸신화´ 양향자, 원외 핸디캡 딛고 여성최고위원 당선

    더불어민주당의 8·27 전당대회에서 당권 레이스보다 뜨거웠던 건 최고위원을 겸임하는 여성위원장 경쟁이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복심으로 불리는 최재성 전 의원이 지난 4·13총선 당시 본인이 영입했던 양향자(49) 광주 서을 지역위원장의 출마를 설득하고 지원하자, 친문(친문재인) 손혜원 의원이 재선 유은혜 의원을 돕고 나서면서 과열양상마저 띠었다. 결국, 27일 전당대회에서 활짝 웃은 쪽은 삼성전자 첫 고졸여성 임원 출신으로 정치권에 뛰어든지 채 1년도 안 된 양 위원장이었다. 양 신임 최고위원은 친문 성향 권리당원 투표에서 66.54%를 얻어 33.46%에 그친 유 의원을 압도한 덕에 원외 핸디캡을 딛고 승리를 거뒀다. 전남 화순군 쌍봉리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양 신임 최고위원은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했다. 바닥부터 노력한 끝에 유리천장을 깨고 2014년 상무로 승진, 삼성의 첫 여성 고졸임원이 됐다. 삼성전자 시절 여자는 안 뽑는다는 불문율이 있는 사내대학에 입학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디지털정보학과를 3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반도체공학 학사를 받았다. 4·13총선을 앞두고 입당하면서 “학벌의 유리천장, 여성의 유리천장, 출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했지만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 “오늘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스펙은 결론이 아닌 자부심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공천으로 광주 서을에 출마했으나 국민의당 천정배 전 공동대표에게 패했다. 이후 그는 ‘양향자를 사용하십시오’라며 여성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했다. 그는 “독하지 않아도 아이 키울 수 있는 정치가 여성의 정치”라면서 “아이 밥 먹이는 게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임을 아는 엄마들의 마음을 모아 여성정치의 승리를 통해 집권의 경로를 찾아내겠다”고 강조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어제 그만둔 버스기사 왜 오늘 재입사했을까

    어제 그만둔 버스기사 왜 오늘 재입사했을까

    재입사하면 1호봉 월급 지급 “인건비 줄여 市인센티브 챙겨” 10여곳 운전기사들 소송 준비 서울의 시내버스업체 B사에 2003년 11월 입사해 운전기사로 일하던 김모(48)씨는 2008년 5월 31일자로 돌연 ‘퇴사자’ 신분이 됐다. 회사 측이 퇴직금 중간정산을 요구하며 사직서 작성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기사들을 전부 불러 놓고 장기근속자가 많아 회사 재정이 어렵다고 말하더라고요. 사직서를 쓰지 않으면 개별 면담을 한다는데 압박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회사는 일부 기사에게는 정년이 끝나면 1년씩 계약을 갱신하는 촉탁직을 보장해 주겠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김씨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물론 퇴직금 정산을 위한 형식적인 과정이었다. 퇴사자가 된 지 하루 만에 입사원서가 받아들여지고 똑같은 노선, 하루 전에 몰던 버스로 운행을 재개한 것도 김씨가 사실상 계속 근로를 한 증거였다. 그러나 2008년 6월 월급표를 받아 든 김씨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신규 입사자로 처리돼 1호봉 월급이 찍혀 있었습니다. 연차나 상여금도 모두 삭감이 됐고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결국 김씨는 올해 5월 고용노동부에 임금 체불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B사 관계자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권유한 것은 맞지만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이뤄졌다”면서 “재입사 후 임금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작성됐다”고 밝혔다. B사는 430여명의 기사를 거느리고 총 13개 노선을 운영 중인 중견업체다. 김씨의 사례처럼 퇴직금 중간정산 제도를 악용해 버스기사들의 임금을 축소 지급하는 부당 노동 행위가 버스업계의 공공연한 관행이 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고를 저지른 기사에게 징계 대신 퇴직 후 재입사를 권하는 경우와 같은 논리”라며 “재입사를 빌미로 호봉을 깎는 것은 버스회사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쓰는 꼼수”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2004년 준공영제를 도입한 뒤로 버스기사의 임금은 서울시에서 지급된다. 그런데도 이러한 ‘퇴직 후 재입사’라는 부당 노동 행위는 끊이질 않고 있다. 회사 측이 부담해야 하는 퇴직 적립금마저 줄이기 위해 이 같은 꼼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도 “급여와 달리 퇴직금은 회사가 적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근속 연수를 줄이면 그만큼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임금 지급을 줄여 서울시의 ‘시내버스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뒤 인센티브를 챙기려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상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인건비를 줄였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서울시는 시내버스 재정 지원 중 인건비가 50~60%를 차지하는 까닭에 인건비 부문을 업체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같은 문제로 소송을 벌인 또 다른 버스업체 ‘한성운수’가 지난 3월 대법원으로부터 “퇴직금 정산자에 대해 계속 근로를 인정하고 호봉의 차액분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을 받으면서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회사 측 상고를 모두 기각한 가운데 1, 2심 재판부는 “비록 사직서가 제출되긴 했으나 그것은 실제 사직 의사가 아니라 중간정산을 받겠다는 의사로 회사 측과 합의된 형식적인 제출에 불과하다”면서 “사직서 제출은 비진의표시로 무효”라고 설명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강호민 변호사는 “회사 쪽 인사 담당자가 서울시 평가를 위해 중간정산 절차를 빌린 퇴직을 실시했다고 실토한 것이 결정적 진술이었다”며 “사직 자체가 무효인 만큼 호봉과 연차를 재조정하라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서울시내 10여개 버스업체 운전기사들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新전원일기] 대기업 이사, 年매출 1억대 멜론박사 되다

    [新전원일기] 대기업 이사, 年매출 1억대 멜론박사 되다

    “센비키야의 멜론이 먹고 싶소.” 천재 시인 이상(李箱·1910~1937)이 병상에 누워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이라고 한다. 1930년대에 멜론이라니…. 선구적 모더니스트인 이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센비키야는 1834년 설립된 일본의 고급 과일 전문점으로, 일반 과일 가게보다 3~10배까지 가격이 비싼 대신 최고의 맛과 모양을 자랑하는 과일만을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충남 청양군 청남면 중산리에 위치한 ‘예란 농원’에서 멜론 농사를 짓고 있는 전영태(60)·구미경(54)씨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 시인 이상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농원 앞 둑길까지 마중 나온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당대 최고의 천재 시인을 매료시켰던 이국(異國)의 향이 달콤하게 풍겨 오는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사우나에 들어섰을 때처럼 훅 하고 얼굴을 덮으면서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바깥의 온도는 32도에 육박했고, 온실 내부의 온도는 그보다 10도 더 높았다. 멜론 농원을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에 등줄기와 겨드랑이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열대 과일을 조우하고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여름에는 온실 내부의 온도가 50도 이상까지 올라갑니다. 체력 소모가 크죠. 그래도 햇빛을 받아 멜론 알이 굵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작지만 단단한 몸집, 새까맣게 탄 피부가 인상적인 전 대표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튼실하게 여문 멜론 앞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란 농원에서 주로 생산하는 품종은 ‘머스크멜론’으로, 과일에서 사향(麝香)이 난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껍질 표면이 그물로 둘러진 모양이라 해서 시중에서 ‘네트멜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11년 이곳 청남면으로 귀농한 전 대표는 ‘고급스러운 이국의 과일’이라는 멜론의 이미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멜론은 일상적으로 먹는 과일이라기보다는 특별한 날에 먹거나 선물하기 좋은 과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중적이지 않은 고급 과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대신에 농사를 잘 지으면 그만큼 비싸게 팔 수 있는 고소득 작물이기도 합니다. 품종이 같은 머스크멜론이라 하더라도 크기, 모양, 맛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동네 과일 가게에서 1개에 5000원에 팔기도 하고, 백화점에서는 1개 1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죠.” # 깐깐… 고객 냉장고서 떨어질 당도까지 관리 상품성이 높은 멜론은 대체 어떤 멜론일까. 전 대표는 우선 식감을 자극할 정도로 예뻐야 하고 동그란 모양도 중요하다고 답한다. 멜론은 선물용으로 많이 찾는 과일이라 모양에 특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단다. 머스크멜론은 초록색 껍질 표면에 나타난 네트의 모양도 중요하다. 밝은 회색의 네트가 올록볼록 선명하고 두껍게 올라온 멜론을 상품(上品)으로 쳐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과일의 맛이다. 전국에서 가장 단 멜론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하는 전 대표에게 근거가 있는 자랑이냐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달콤함이란 손으로 만져지거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미감이 아니던가. “보통 14브릭스(Brix·당의 농도를 측정하는 단위) 정도의 멜론이면 시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데, 저는 과일 안쪽 기준으로 16브릭스가 되어야 출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껍질과 가까운 바깥쪽 과육도 12브릭스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기준도 세워 놓았고요.” 깐깐한 품질 관리를 위해 출하가 가까워지면 매일매일 당도를 측정한다. 열매마다 철저하게 당도 표시를 하면서 관리하기 때문에 남다른 맛의 멜론을 출하할 수 있단다. 너무 달아서 거부감을 느끼는 고객은 없느냐는 질문에 “우리 멜론을 한 번 맛본 손님들은 다른 집 멜론은 싱거워서 못 먹겠다고 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멜론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원하게 먹는 경우가 많잖아요. 온도가 내려가면 그만큼 단맛이 줄어들거든요. 냉장고 안에서 단맛이 감소되는 것까지 감안해서 당도를 관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멜론은 아무리 달아도 기분 나쁜 단맛이 아니라 기분 좋은 달콤함을 선사해 주잖아요.” 멜론에 대해 ‘후숙 과일 채소이기 때문에 덜 익은 것을 수확해 익혀 먹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전 대표에 따르면 완전히 익은 상태에서 수확한 과일을 구입 후 2~3일 정도 상온에 두었다가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출하되는 시점에 16브릭스에 달하는 예란 농원의 멜론이니, 후숙시킨 다음에는 당도가 더 올라간 상태로 고객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 열대과일은 냉장고에 오래 두면 신맛이 나기 때문에 먹기 직전에 1~2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가장 맛있게 멜론을 먹는 방법이라고 귀띔까지 해준다. 아직 출하 시기가 아니라 당도가 떨어질 거라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전 대표가 따 온 멜론 하나를 아내 구씨가 예쁘게 깎아 내놓았다. 맛이 별로 없을 거라는 그의 말과 달리, 특유의 향이 코끝을 휘감으면서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특히 입안에서 살살 녹는 과육의 부드러움이 일품이었다. “충분히 맛있다”는 나의 칭찬에 머리를 갸웃거리며 전 대표는 당도계를 꺼내 과일의 당도를 측정해 보여주었다. 측정 결과는 14브릭스. 시중에서는 괜찮은 상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본인 기준에는 못 미친다며 맛있는 멜론을 맛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전 대표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단맛과 함께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드는 멜론의 육질도 범상치 않았는데, 출하 직전까지 멜론에 물을 주는 것이 그만의 과육 관리 비법이란다. “다른 멜론 농가에서는 출하 보름 전부터 멜론밭에 물 공급을 끊어요. 가물어야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멜론은 9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진 과일이잖아요. 저는 수분 공급이 충분해야만 과육이 부드럽고 영양분을 더 잘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을 끊지 않는 대신 과일이 터지지 않도록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죠. 물 때문에 과일이 싱거워지지 않도록 당도 조절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하고요.” 당도가 높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농부의 손에서 풍부한 물을 머금고 자란 예란 농원의 멜론은 도매시장 대신 전국의 미식가들에게 직거래로 판매된다. 실제로 전 대표의 멜론은 일반 농가의 멜론보다 박스당 1만~2만원 더 비싸게 팔린다. 200평짜리 비닐하우스 7동 규모로 따로 직원을 두지 않고 부부 위주로 농사를 지으면서도 1억원 이상의 연매출, 5000만원 수준의 연소득을 자랑하게 된 것은 까다로운 농법을 고수하면서 고급화 전략을 추구한 덕이다. # 행복… 윗선 결재 안 받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 충북 영동에서 나고 자란 전 대표는 광운대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LG그룹에 입사해 이곳에서만 30여년을 일했다. 서울로 올라가 성공하고 싶었던 시골 소년의 꿈은 현실에서 이뤄졌다. LG오티스에서 이사까지 지냈고, 2010년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직했다. 회사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올라가 본 셈이었다. 문제는 대기업 임원 자리를 내려놓았을 때 그의 나이가 55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백세 시대에, 겨우 인생의 절반에 도달한 시점인데 회사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협력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몇 년 더 일한다고 한들 그 이후의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귀농을 결심한 계기도 여기에 있었다. 고향 땅과 가까운 곳에서 멜론 농사를 지으면서 인생 이모작을 꿈꿔보기로 했다. “퇴직 5년 전부터 귀농을 결심하고 꾸준히 정보들을 수집했어요.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 땅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저한테 맞는 작물이 무엇일지 알아보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타고난 이과 체질’이라 농사에서도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것을 즐긴다는 전 대표는 윗선의 결재가 필요했던 회사 생활과는 달리, 직접 농원을 운영하면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이 벌이는 적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느라 큰 수익이 나지 않았어요. 머스크멜론뿐 아니라 양구멜론, 백자멜론 등 다양한 멜론을 수확하느라 효율성도 떨어졌고요. 하지만 손해가 나더라도 제가 책임지면 될 문제이니 마음이 편해요.” 손해가 생기면 부인에게 혼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아내 구씨가 옆에서 싱긋이 웃으며 말한다. “귀농을 결심했을 때에도, 농사짓는 방식에 대해서도 저는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해본 적이 없어요. 워낙에 남편이 성실하고 반듯하기 때문이죠. 같이 농사를 짓지만 남편이 저보다 몇 배는 더 고생하는 걸요.” 대기업 임원 사모님에서 농사꾼이 되어 햇볕에 그을리는 일상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사 사모님에서 대표이사 사모님으로 승진한 셈”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전씨 가족은 청양군에서도 성공적인 귀농귀촌 사례로 꼽힌다. 큰딸 예슬씨(29)는 지방공무원직에 합격해 올 봄부터 청양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딸이 수년간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다가 지원 지역을 바꾸면서 한 번에 합격한 것만 보아도 청양과 전 대표 가족 간의 기운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단다. 두 딸의 아버지인 전 대표는 예전부터 동네에서 소문난 ‘딸 바보’였다고. 예란 농원이라는 농원 이름은 둘째 딸 예란씨(28)의 이름에서 따왔다. ‘예쁘고 맛있게 자란 멜론’이라는 뜻은 딸 이름을 따서 작명부터 하고 나중에 붙인 거라고 한다. 모든 일에 딸들이 우선이라는 딸 바보 아버지는 이제 딸을 돌보는 마음으로, 자식과 손주에게 가장 맛있는 과일을 먹이겠다는 마음으로 멜론을 키운다. # 신뢰… 겉으론 알 수 없는 멜론, 농부가 답 서양 속담에 ‘사람과 멜론을 알기는 매우 어렵다’(Man and melons are hard to know)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으로 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와 같은 말인데, 그만큼 겉으로 봐서는 멜론의 맛이나 품질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꺼운 껍질에 싸여 눈으로는 좀처럼 그 속을 가늠하기 어려운 멜론, 어쩌면 그래서 그 멜론을 키우는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멜론을 알기는 처음 본 사람을 아는 것처럼 어렵지만, 신뢰할 만한 멜론 농부 하나를 알고 지내는 것은 씁쓸한 인생의 달콤함을 배가시키는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장년 근로자들에게 환영받는 ‘전환형 시간선택제’

    전라남도 나주에 거주하고 있는 장년근로자 박씨는 20년 넘게 한 회사에 근무를 하고 주말에는 농사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농작물에 피해가 많아 근무하는 내에도 머릿속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욱이 농촌에는 일손 구하기도 어려워 농사일이 많을 때에는 조퇴를 하거나 휴가를 내야 했으나, 최근 회사측의 전환형시간선택제 도입으로 “기존 8시간 근무 중 6시간 근무로 전환하여 회사 업무와 농사일을 병행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주로 육아기 여성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지만, 최근 중장년층의 퇴직준비나 건강 그리고 퇴직 후 재취업 등 개인적인 사유로 활용하는 근로자들이 많아졌다 또한 전환형시간선택제 이용 후 사업주 및 대상근로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졌을 뿐 더러,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가족처럼 지내던 숙련된 근로자들의 이직을 방지하고, 직원들의 업무능력 향상 및 제도의 활용으로 빈 일자리에 신규 직원 채용이 이루어짐으로써 일자리 창출에도 효과적이다. 이같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란 근로자의 필요에 따라 전일제 근로자보다 짧게 일하면서 4대 사회보험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보장되고 차별이 없는 일자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볼 수 있고, 이는 크게 신규채용형과 전환형으로 구분된다. 신규채용형으로는 처음 입사 할 시 전일제(통상) 근로자보다 근로시간이 짧은 경우를 말하며, 전환형으로는 육아, 학업‧자기계발, 건강, 가족 돌봄, 퇴직준비 등의 개인적인 사유로 전일제 근로자가 일정기간 동안 시간선택제로 전환하여(근로시간 단축) 근무하는 제도로 전환기간이 만료되면 사업주와 다시 협의하여 전일제로 정상 복귀하여 근무하는 것을 일컫는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제도의 적극 도입으로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고, 개인적인 사유에 따라 효과적‧탄력적으로 근무하여 중장년층의 퇴직준비나 건강 그리고 퇴직 후 재취업 일자리 등 장년 인구의 고용을 유도하고자 한다 한편 정부는 모든 근로자들이 자신의 생애주기에 따라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문화를 확산 시키기 위해 휴직제도와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연계 활용하는 패키지 활용 모델 개발 확산, 일‧가정 양립 대국민 인식 캠페인을 전개 추진 중에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일반 직원까지 성과제… 실적 나쁘면 기본급도 동결

    일반 직원까지 성과제… 실적 나쁘면 기본급도 동결

    대졸 신입은 노사 합의 거쳐야 성과급 비중은 최대 30% 늘어 평가 공개 등 권한 남용 제어판도 금융노조 “저성과자 퇴출 의도” 14개 시중은행(외국계 포함) 중 10곳은 이미 부지점장급(관리자급) 이상에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책임자급(차장·과장) 이하 일반 직원에게 연봉제를 적용하는 곳은 단 한 곳뿐이다. 서울신문이 17일 단독 입수한 ‘은행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 초안은 관리자급 이상은 동일 직급 내 연봉 격차를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리고 책임자급(차장·과장) 이하 일반 직원에게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근속 연수만 채우면 호봉이 자동으로 오르던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적이 나쁘면 기본급도 오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금융노조가 아예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시행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인 연봉 격차는 최대 40%이지만 초기에는 20(일반직원)~30%(부지점장급)로 책정했다. 성과연봉제에 대한 거부감이 큰 점 등도 감안해 해외 사례를 참고해 직무에 따른 연봉 차이는 유연하게 적용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투자은행(IB)·자산운용은 50%, 소매영업 43%, 리스크 관리 32%, 여신심사 30%, 영업지원 15%, 사무지원 5% 등이다. 대졸 신입사원(최하위직급)에게 성과연봉제를 적용할지 여부는 노사 합의를 거쳐 정하도록 했다. 기존처럼 호봉제를 유지할 경우에는 개인평가 결과에 따라 호봉을 차등해서 올려주거나 특정 연차가 될 때까지 승진하지 못하면 호봉 상승이 제한된다. 전체 연봉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난다. 부지점장급은 기존 평균 17%에서 30%로, 책임자급은 약 13%에서 20%로 각각 커진다. 기본급 인상률 역시 근속 연수가 아닌 개인별 평가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이 경우 기본급 인상률은 부지점장급의 경우 3% 포인트 이상 차이 난다.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으면 기본 인상률에 최대 1.5% 포인트가 얹어진다. 반대로 평균 이하 점수를 받으면 1.5% 포인트 깎인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기본급이 깎이지는 않게 했다. 최소 동결은 보장해 준 셈이다. 같은 방식으로 일반 직원의 기본급 인상률 차이는 최소 1% 포인트(±0.5% 포인트) 이상 뒀다. 개인평가는 5단계(S~D등급)로 산출한다. S등급(10%), A등급(15%), B등급(50%), C등급(15%), D등급(10%) 등이다. 등급별 인원이 최소 5% 이상 돼야 한다. 개인평가 방식은 성과평가와 역량평가로 이뤄진다. 성과평가는 업무실적 평가를 말한다. 평가자와 평가 대상인 직원이 합의 아래 목표(MBO·Management By Objectives)를 설정하고 목표 대비 실적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역량평가는 직무능력이나 업무 태도 평가를 의미한다. 금융노조는 역량평가가 사실상 정성평가여서 ‘평가자의 권한 남용’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고 반발해 왔다. 평가자에게 밉보이면 실제 역량보다 짠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제어장치로 가이드라인은 성과평가뿐 아니라 역량평가 결과도 공개하도록 했다. 평가자와 평가 대상자는 1대1 면담을 통해 평가 결과를 공유하고 중간점검도 할 수 있다. 이의제기 절차도 공식화할 방침이다. 각 직원의 평가 점수는 기존처럼 영업점 단위의 집단평가와 개인평가 결과를 합산해 산출한다. 이때 집단평가는 총 평가비중의 최대 80%를 넘지 못한다. 특히 기본급 인상률은 집단평가가 아닌 개인평가 결과에 좌우된다. 은행연합회 측은 “은행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만들고 있지만 초안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금융노조의 산별중앙교섭이 지난달 최종 결렬돼 은행들은 개별 노조와 협상을 시도할 방침이다. 금융노조 측은 “개인평가 비중이 얼마가 됐든 성과연봉제에 개인평가를 반영하겠다는 것은 결국 저성과자를 퇴출하겠다는 의도”라며 “쉬운 해고를 전제로 한 성과연봉제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씨줄날줄] 변호사 9급 공무원/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변호사 9급 공무원/임창용 논설위원

    요즘 뉴스나 영화에 비치는 변호사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약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같은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악덕 변호사도 적지 않다. 1년에 수십억원씩 긁어모으는 이도 있고, 사무실 월세도 제때 못 내는 변호사도 있다. 변호사만 되면 명예와 고수입이 보장되던 시대가 저문 지도 오래됐다. 한때 사법시험에만 합격하면 꼭 판검사가 못 되어도 공무원 특채로 5급 사무관 되기가 어렵지 않았다. 경찰을 희망하면 경찰서 과장급인 경정에 특채됐다. 1970~80년대 대기업에서는 젊은 변호사를 임원급으로 모셔 갔다. 모두 사법시험 합격자가 한 해 300명 안쪽이었을 때의 일이다. 7년 전쯤인가 로펌 변호사 친구와 식사를 하던 중 변호사 위상이 화제에 올랐다. 변호사들 사정이 참 어렵다기에 “그래도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선 부장급으로 모셔 가지 않느냐”가 했다가 눈앞 현실도 못 보는 청맹과니 소리를 들었다. 무경험 변호사는 대리급으로 뽑는다고 했다. 그나마도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했다. 로스쿨 졸업생이 쏟아진 이후에는 대기업에 평사원으로 취업하는 변호사들도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공무원 취업에서도 변호사 위상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5급 사무관으로 뽑는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지방자치단체에선 6급이나 7급으로 뽑고, 그나마 경쟁률이 10대1을 넘는다. 3년 전 부산시가 7급 공무원으로 뽑는 공고를 냈다가 한바탕 소동이 났다. 로스쿨생들의 인터넷 카페에 ‘법조계 전체를 욕 먹이는 사람’, ‘시청에서 커피나 타며 인생을 보내고 싶다면 안 말린다’는 등 지원자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앞서 인천시와 조달청의 6급 채용 공고가 났을 때도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다. 그래도 지원자들은 넘쳐났다. 엊그제 한 변호사가 광주광역시의 공무원 일반행정 9급 공채시험에 응시한 사실이 알려졌다. 9급은 최하위 공무원 직급이다. 뉴스를 접한 변호사나 로스쿨생들의 마음이 착잡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 2만명 시대에 변호사들의 몸값 하락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앞으로 매년 2000명 가까운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비단 변호사들뿐만이 아니다. 이미 회계사나 세무사도 대기업에 대부분 평사원으로 입사하고 있고, 9급 공무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변호사든, 회계사든 지나치게 평균 위상이 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현상은 아니다. 자격을 따려고 들이는 노력과 돈, 시간을 고려하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이기 때문이다. 전문성 키우기 등 개인적 노력과 함께 법률시장의 저변 확대를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직급과 보수를 떠나 변호사가 최소한 법조인 역할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취업 보장’ 사회맞춤형 학과 5년간 3배 늘린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 공학과는 삼성전자와 협약을 맺고 반도체 설계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학생들은 삼성전자 소속 전문연구원의 전공 수업을 의무적으로 듣고 삼성전자에서 현장실습도 받는다. 졸업 후에는 삼성전자 입사가 보장된다. 현재 이 학과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상위 1% 학생이 입학하고 있다. 전문대학인 두원공과대의 자동차과는 벤츠, BMW, 아우디·폭스바겐, 포드 등 국내 수입차 정비업체들과 함께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따른 ‘취업약정형 주문식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수입차 정비 전문가를 키운다. 수업 개발에 참여하는 수입차 업체가 졸업생을 100% 채용하기로 해 인기가 많다. 두 대학이 운영하는 학과와 같은 ‘사회맞춤형 학과’가 앞으로 5년 동안 3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4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사회맞춤형 학과 활성화 방안을 의결했다. 사회맞춤형 학과는 산업체 요구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취업과 연계하는 학과를 일컫는다. 운영 방식에 따라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와 주문식 교육과정으로 나뉜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 공학과와 같은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는 대학이 특정 기업에 맞는 교육과정을 따로 개설해 운영한다. 2003년 도입돼 지난해 기준 34개 대학 73개 학과에서 1813명의 학생이 배우고 있다. 2015년 기준 취업률은 91.4%로 높은 편이지만, 참여 기업이 341개로 많지 않다. 두원공과대 자동차과와 같은 주문식 교육과정은 기존 학과에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별도 교육과정을 두고 이를 대학이 운영한다. 64개 대학 173개 학과에서 5600여명이 배우고 있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내년에는 사회맞춤형 학과와 관련한 대학 재정지원사업을 신설하겠다”면서 “올해 8000명 수준인 사회맞춤형 학과 정원이 2020년에는 2만 5000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살인적 근무·이중계약·박봉에 우는 저는 힘없는 ‘고3 직장인’입니다”

    “살인적 근무·이중계약·박봉에 우는 저는 힘없는 ‘고3 직장인’입니다”

    “매일 12시간을 일하고 박봉을 받는 환경을 고3이 견딜 수 있겠어요? 파견업체, 야간에도 일하는 교대제 회사에는 고3이 현장실습을 갈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오로지 취업률에만 목매는 학교는 자꾸 (그런 회사에) 나가라고 다그쳐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돌아오면 후배들의 기회를 뺏는다고 혼나기 일쑤고요.” 22일 지난해 8월 경기 안산의 한 제조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최모(19)양은 “12시간 2교대제로 일하고 한 달에 120만원을 받는데 너무 힘들어 석 달 다니다 그만뒀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연장근로수당을 일부 빼먹기도 하고, 교육도 못 받은 채 직원들 앞에서 혼나기만 했다”고도 했다. 힘든 심신을 끌고 학교로 돌아간 최양은 그러나 교사들로부터 꾸지람만 들어야 했다. ‘(네가 중도포기하는 바람에) 후배들 면접 기회만 박탈됐다’, ‘그것도 못 버티면 어떻게 먹고살 거냐.’ 특성화고 졸업반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산업현장에 적용하고 다양한 직업 체험으로 현장 적응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된 ‘현장실습’이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제도로 변질되고 있다.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의 노동시장을 둘러본 기자의 눈에 ‘고3 직장인’들은 이중계약서와 박봉,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면서도 고통을 호소할 곳도 마땅치 않아 허덕이고 있었다. 취업률 올리기에 급급한 교육 당국과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빚어진 그늘이었다. 경기도에 사는 최모(19)군도 지난해 9월 용접할 때 쓰는 안경 등을 만드는 곳으로 취업을 나갔다가 부당한 대우를 못 견디고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그는 “전공과 관련 있는 직장에 취업을 나간 애는 15명 중 1명꼴”이라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른들에게 항의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평가를 잘 받고 예산을 받으려면 취업률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는 중간에 그만두고 돌아오면 처벌을 내렸는데 나는 ‘근신 처분’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전남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던 박모(19)양은 지난해 1학기 전자제품을 만드는 공장에 들어갔다가 야간근로가 힘들어 1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그는 “실습 나가기 전에 겨우 이틀 교육을 받았는데 일을 해 보니 노동 착취라는 것을 알았다”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근무조건도 모른 채 학교를 믿고 가는 셈인데 학교는 현장실습 규정 위반을 알고도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모(19)군도 지난해 10월 현장실습생으로 은성PSD에 입사했다. 2인1조 작업 안전수칙은 적용되지 않았고, 밥을 먹다가도 전화를 받고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식사시간이 보장되지 않았던 김군의 가방에는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취재 중에 만난 특성화고 학생들은 무엇보다 취업률에 목맨 학교가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2009년 16.9%였던 특성화고 학생 취업률은 지난해 47.6%까지 치솟았지만 정작 ‘고3 직장인’의 근무 여건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던 셈이다. 실제 감사원은 2014년 전국 실업계 졸업생 11만 9000명 중에 44.9%인 5만 3000명이 취업을 한 것으로 교육부에 보고됐지만, 이들 중 1만 7000명은 취업 여부를 확인할 객관적 자료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현장실습생 사용사업장 117곳을 근로감독한 결과, 임금 및 수당 미지급 등 금품 위반이 62.4%(73곳), 초과·야간근무 등 근로시간 위반은 28.2%(33곳)나 됐다. 전남의 한 특성화고에 근무하는 교사는 “하루 7~8시간 근무한다고 하면 학생들을 받아 주는 업체가 없다”며 “취업률에 따라 예산 배정이 달라지고 학교 평가가 달라지다 보니 직업교육훈련은 뒷전이고 취업률에 목매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최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은 근로기준법 등에 담긴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조차 알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노동자의 권리도, 학생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위험한 일을 시키거나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킬 수 있는 존재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기고] 성과연봉제 확대와 국민의 눈높이/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기고] 성과연봉제 확대와 국민의 눈높이/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국민들이 공기업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철밥통’ 내지 ‘신의 직장’이다. 억울한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국민들이 공기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부 경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조직 문화에 있다고 본다. 공기업의 경쟁 대상은 공기업이 아니다. 독과점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울타리는 법과 정부 정책이다. 그렇다 보니 경쟁의식이 없다. 당연히 경쟁력도 떨어진다. 개방화된 세계경제 체제에서 공기업의 경쟁 대상은 유사 업종의 글로벌 기업 또는 선도적인 민간 기업이어야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민간 기업보다 공기업은 정책사업 수행이라는 특성상 안정적이다. 비교적 정년이 보장될 뿐 아니라 임금과 복지 수준도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업무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당연히 많은 청년 구직자들이 공기업 취업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그러나 투입되는 정부 예산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업도 일하는 방식과 문화, 성과보상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성과연봉제가 확대되면 구성원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성과가 낮은 직원에 대한 퇴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어촌공사도 성과연봉제 확대에 따른 노사 합의를 이끌어 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노조 집행부는 연좌농성과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도입 반대 의지를 드러냈다. 사측은 노조 집행부와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이어 갔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시스템을 구축해 노조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성과연봉제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임금 체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그전에는 해가 지날수록 월급이 올라가는 호봉제였다. 그러다 연봉제로 전환됐다. 이어 실적과 성과에 따라 연봉에 차등을 두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게 됐다. 물론 그 대상을 간부 직원으로 제한했지만 도입 이후 공기업의 내부 분위기가 달라진 것만은 확실하다. 간부들의 의식과 일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공기업 혁신에 효과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가 시스템도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정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연봉제를 신입사원을 뺀 공기업 구성원의 대다수에게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공기업 내부의 일하는 분위기를 쇄신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국민에게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으로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4대 개혁 과제의 하나인 노동개혁의 과제이기도 하다. 호봉제에서 연봉제 그리고 성과연봉제로 전환될 때마다 노사 간 또는 노정 간의 갈등과 대립은 항상 있었다. 그럼에도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도 있다. 지금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갈등 요인이 되고 있지만 이 또한 공기업의 미래지향적 혁신을 위한 불가피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성과연봉제의 확대 도입과 지속가능성 여부는 공공 및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에 달려 있다. 성과가 높은 직원이나 성과가 낮은 직원이나 모두 획일적으로 똑같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국민들은 얼마나 공감할까. 성과연봉제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평가하자.
  • 서울시의회 우형찬의원 “은성PSD 고졸입사자 전원 고용승계를”

    서울시의회 우형찬의원 “은성PSD 고졸입사자 전원 고용승계를”

    서울시의회 우형찬 의원(더불어민주당, 양천3)은 “지난 5월 28일 19살 젊은 청춘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유명을 달리했다”고 말하면서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분노가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형찬 의원에 따르면 김군은 월 9만원의 식대와 보장되지 않은 식사시간으로 인해 허기와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2인 1조 근무’라는 최소한의 안전도 담보 받지 못한 채 대학진학의 꿈과 내일의 비전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다. 우 의원은 “김군을 사망으로 몰고 간 것은 서울메트로 전적자를 중심으로 운영한 용역회사와 이들의 노동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서울시 그리고 서울메트로에 있음이 밝혀졌다”고 지적하면서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고인에 대한 억울함을 풀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한편 우 의원은 “아직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간에 쫓겨 지하철 스크린도어 고장 수리에 매달리고 있는 만 19세 꽃다운 청춘 16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고,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이제 계약해지에 따른 해고라는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우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성PSD는 서울메트로에 신규인력 증원을 요청하여 25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으나 이들 전부가 만 18살, 고3 학생이었고, 이들이 생명을 담보로 한 유지보수에 나섰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와 은성PSD와의 계약기간이 2016년 6월 30일까지이기 때문에 은성PSD는 이들 25명의 고3 학생과 지난 연말 한시적인 근로계약을 맺었으며, 서울메트로는 2016년 8월 1일부터 자회사를 운영할 계획이지만 계획 당시 이들에 대한 고용 승계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는 실정이었다. 더군다나 은성PSD는 서울메트로 자회사 설립까지 한 달간 더 운영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서울메트로의 제안을 거부했고, 이에 서울메트로는 사내 직원들과 은성PDS 직원 일부를 통해 계약 해지되는 7월 한 달간 유지보수를 담당할 예정이었다. 아울러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늘(7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의 안전․생명과 직결된 외주화에 대한 전면 직영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외주 직원에 대한 정규직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지만, 이들 청춘에 대한 언급과 대책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박원순 시장의 대책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 의원은 “지난 해 10월 은성PSD 채용 당시 18세 청춘 25명 중 1명은 세상을 달리하고 일부는 사퇴를 하여 현재 16명이 남아 지금 이 순간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는 현재로써는 7월 1일부터 이들도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게 될 것이고, 공기업 직원이 될 것이란 부푼 꿈도 대학진학을 꿈꾸었던 희망도 사라지게 되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우형찬 의원은 “만약 이들이 해고(계약해지) 된다면 이는 젊은 청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신과 함께 부조리에 대한 굴복”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메트로에 있다”면서 “반드시 16명의 푸른 청춘의 꿈과 희망을 지킬 것”임을 천명하는 한편 언론과 시민이 함께 해줄 것을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경근의 남북통신]행표가 뭐길래…북한에도 ‘현금깡’이 있다

    [문경근의 남북통신]행표가 뭐길래…북한에도 ‘현금깡’이 있다

    서울신문은 7일부터 북한 전문기자인 문경근 기자가 매일 쓰는 ‘문경근의 남북통신’을 게재합니다. 독자들에게 1인칭 논픽션 소설처럼 데일리한 북한 뉴스를 북한생활을 직접 겪었던 문 기자의 경험과 현재 남북관계의 흐름을 살려 스토리 있는 기사를 전합니다.최근 북한에서 중앙은행들이 송금과 대출 업무를 부분적으로 개시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현금거래가 늘었다는 게 핵심인데요. 그러면서 등장하는 게 ‘행표’입니다. 행표란 무엇일까요. 행표는 남한의 수표나 비슷한 용도인데 북한 은행에서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도록 보장하는 유가 증권입니다. 북한에서 은행 거래는 남한과 기타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은행과 개인간에 현금거래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이는 잦은 화폐개혁으로 당국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것도 있습니다. 과거에도 공장과 기업소들 간 현금거래가 활발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은행을 통한 자금 거래보다는 물물거래가 더 익숙하죠. 이는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계획경제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계획을 세워 각 공장, 기업소, 농장 등 모든 부분에서 소비품의 생산량을 정해줍니다. 그러면서 기업소들 간에 필요한 물품 구입 또는 교환이 필요할 때 현금 거래 보다는 행표 거래를 장려했습니다. 편리성 측면에서도 돈을 들고 다니는 것 보다, 우리의 수표처럼 필요 액수를 은행 또는 자기 기업에서 발급받아 해당 상점이나 다른 기업소에서 대금 결제로 사용합니다. 또 은행에서 돈으로 바꿔 장마당 같은 곳에서 사용하기도 합니다.그런데 1990년대 중반 들어서며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게 됩니다. 당연히 현금이 고갈되고 발급된 행표 보다 내어줄 현금이 모자라게 됩니다. 국가 형편이 어렵게 되자 기업소들간의 경쟁도 치열해집니다. 그러자 이 틈을 이용해 브로커들이 암약하게 되죠. 예로 1000만원짜리 행표라면, 은행의 모 관계자와 거래를 해서 7:3 비율로 할인을 받습니다. 5:5도 있고요. 일종의 ‘깡’을 하는 거죠.  기업소 실무자입장에서는 휴지조각이 되느니 절반만 건져도 ‘횡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브로커로 지칭해서 그렇지만, 이들 대부분은 모두 국가 요직에 있는 간부들입니다. 예로 당 기관 또는 보안 기관 등 한마디로 ‘끗발’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영’(令)이 서는 거죠. 북한도 ‘사람사는 나라’라 부패가 만연합니다. 체제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 안에 이음새는 생겨나기 마련이죠.북한이 최근 현금거래를 장려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내부 자원을 동원해 어떻게든 이 난관을 타개하려는 ‘궁여지책’들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잦은 화폐개혁에 실망한 북한 주민들이 장롱 속에 감춰둔 돈을 순순히 국가은행에 맡길지는 미지수로 보여집니다.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하청업체의 비극] 하청업체 15년 경력 비정규직 급여 고작 172만원…메트로 낙하산은 일하는 둥 마는 둥 해도 449만원

    [하청업체의 비극] 하청업체 15년 경력 비정규직 급여 고작 172만원…메트로 낙하산은 일하는 둥 마는 둥 해도 449만원

    ‘메트로 직원 30% 이상 고용’ 용역입찰 조건에 슈퍼 甲질 은성PSD 143명 중 58명이나 “2012년에 서울메트로에서 30년 일한 사람이 들어왔길래 1주일이나 전동차 점검 작업을 교육해 줬는데 결국 못하더라고요. 그냥 일하는 둥 노는 둥 3년을 보내고 지난해 말 퇴직하더니 올해부터 촉탁직으로 다시 근무를 시작했어요. 당황스럽죠.” 서울메트로의 한 하청업체에서 15년간 전동차 점검 업무를 해 온 A(36)씨는 “기술과 관련된 경력도 없는 사람들이 (서울메트로에서) 내려와서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월급만 거의 3배를 받는다”며 “우리는 힘들게 일해도 200만원을 쥐기가 힘든데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고 2일 말했다. 이곳 근로자들은 서울메트로에서 전직하는 소위 ‘낙하산 사원’과 비교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며 답답해했다. 또 지난달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변을 당한 김모(19)씨와 같은 젊은 직원들은 기술을 숙련해 공기업에 입사하는 게 꿈이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하청업체엔 낙하산은 있어도 사다리는 보이질 않았다. 이 회사는 김씨가 다니던 은성PSD와 마찬가지로 서울메트로 출신 인사들의 안식처로 알려져 있다. 전 직원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이지만 처우에 있어서는 자체 고용 직원과 서울메트로 전직 직원 간에 큰 차이가 난다. 일례로 이 회사에서 자체 고용한 B(36·경력 15년차)씨의 월 급여는 172만 4990원이다. 서울메트로에서 전직한 C(59·경력 30년차)씨의 월 급여는 449만 4383원이다. 두 명 모두 직급은 ‘사원’이지만 C씨의 월급은 B씨보다 2.6배가 많다. C씨의 급여는 연차수당, 성과급 등을 합하면 더 늘어나는데, B씨는 성과급조차 없다. 이곳의 한 직원은 “우리는 매년 계약 갱신을 하려고 아등바등 일한다면 낙하산 직원들은 3~6년 고용을 보장받고 내려온다”며 “업무도 상대적으로 쉽고 편한 ‘일상 점검’(하루 전동차 한 편 점검)을 시킨다”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 유모(39)씨는 “10년 전 월급이 165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93만원으로 겨우 30만원이 올랐다”며 “이것도 야간 근무를 추가로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라고 했다. 하청업체에 낙하산 사원이 많은 이유는 서울메트로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2008년 용역업체 입찰을 하면서 업무수행 조건으로 ‘설계인원의 30% 이상을 서울메트로 전직 인력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다. 이 하청업체는 이후 3년간 서울메트로 직원 77명을 고용했다. 김씨가 다니던 은성PSD도 직원 143명 중에 58명이 서울메트로 출신이었다. 이 업체의 한 직원은 “그럼에도 젊은 직원들이 열악한 하청업체에 들어오는 건 기술을 익혀 공기업 직원이 되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곳에서 서울메트로 직원이 되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하청업체 근로자가 3년 안에 원청업체로 이동하는 비율은 단 1.0%에 불과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식당있는 역 수리 가는 날, 밥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해”

    “식당있는 역 수리 가는 날, 밥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해”

    “입사 석 달째예요. 아들이 ‘혼자서 스크린도어를 고칠 수 있게 됐다’고 신이 나서 자랑했어요. 5개월 됐을 때는 비정규직이기는 하지만 수습직원 딱지를 떼고 정식직원이 됐다고 들떠서 좋아했어요. 앞으로 자기 회사가 메트로의 자회사가 될 건데 그럼 준공무원이라서 돈도 많이 받고 정년도 보장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모(19)씨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건국대병원에서 만난 어머니 이모(43)씨는 아들의 노력과 성실함이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힘없이 말했다. 김씨는 평소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목표가 공기업 직원이라고 했다. 월급도 꽤 많고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지난해 10월 같은 학교 친구 6명과 은성PSD에 취직했다. 김씨의 담임교사는 “정보기술자격증, 전자기기자격증 등을 따면서 착실히 취업을 준비하던 착한 학생”이라며 “가끔 취업에 조바심이 나는지 ‘급식충’(밥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자책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밝은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입사 5개월 때, 하청업체의 ‘정식직원’이지만 그래도 수습직원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부모에게 자랑했다. 군대를 다녀오면 회사를 관둬야 하는 불안한 신분이었다. 그는 “회사가 메트로 자회사로 편입되면 노후가 보장되는 ‘준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고 가족에게 말하곤 했다. 근무가 비번이었던 지난달 23일에는 동료와 함께 덕수궁 인근에서 열린 관련 집회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신분’이 정식직원으로 바뀌자 김씨의 업무는 상상도 못하게 늘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녔고 식당이 있는 지하철역으로 출장수리를 가면 ‘운이 좋은 날’이라고 표현했다. 밥을 먹다가도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면 급한 마음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1시간 안에 도착해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회사 규정 때문이다. 규정을 어기면 벌점을 받아야 했다. 피로가 쌓인 김씨는 쉽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직장 생활이 다 그렇다’며 달랬다고 했다. 매월 손에 쥔 144만 6000원의 월급 중에 100만원을 저금하고 동생에게 용돈도 주었다. 하지만 적금 통장 잔액은 500만원에서 멈췄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직도 24명의 군미필자가 은성PSD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들 같은 24명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은성PSD 직원은 143명으로 기술직은 41명, 서울메트로 출신은 58명이다. 이날 김씨의 어머니는 건국대병원에 김씨의 빈소를 차렸다. 김씨는 “메트로가 아이의 책임이 없다면서 사과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누명을 벗었다고 판단해 빈소를 차렸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단독]“식당 있는 역에 수리 가는 날, 밥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해”

    [단독]“식당 있는 역에 수리 가는 날, 밥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해”

    “입사 3개월이 된 아들이 혼자서 스크린도어를 고칠 수 있게 됐다고 신이 나서 자랑했죠. 5개월 때는 비정규직이기는 하지만 수습직원 딱지를 떼고 정식직원이 됐다고 들떠서 좋아했어요. 앞으로 자기 회사가 메트로의 자회사가 될 건데 그럼 준공무원이라서 돈도 많이 주고 정년도 보장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모(19)씨의 시신이 안치된 건국대병원에서 만난 어머니 이모(43)씨는 아들의 노력과 성실함이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줄 몰랐다고 힘없이 말했다. 김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목표가 공기업 직원이라고 말했다. 월급도 꽤 많지만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지난해 10월 같은 학교 친구 6명과 은성PSD에 취직했다. 김씨를 담당했던 교사는 “정보기술자격증(ITQ), 전자기기자격증 등을 따면서 착실히 취업을 준비하던 착한 학생”이라며 “가끔 취업에 조바심이 나는지 스스로를 ‘급식충’(밥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자책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밝은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입사 5개월 때,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하청업체의 ‘정식직원’이지만 그래도 수습직원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부모에게 자랑했다. 군대를 다녀오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불안한 신분이었지만 김씨는 또 다른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회사가 메트로 자회사로 편입되면 노후가 보장되는 ‘준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고 가족에게 말하곤 했다. 근무가 비번이었던 지난달 23일에는 동료들과 함께 덕수궁 인근에서 열린 관련 집회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신분’이 정식직원으로 바뀌자 김씨의 업무는 상상도 못하게 늘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가방에 컵라면을 담아서 다녔고 식당이 있는 지하철역으로 출장수리를 가면 ‘운이 좋은 날’이라고 표현했다. 밥을 먹다가도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면 급한 마음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1시간 안에 도착해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회사 규정 때문이다. 규정을 어기면 벌점을 받아야 했다. 상사들은 “그렇게 일하면 자르겠다”고 말하기 일쑤였다.  피로가 쌓인 김씨는 쉽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직장 생활이 다 그렇다’며 달랬다고 했다. 매달 손에 쥔 144만 6000원의 월급 중에 100만원을 저금하고 동생에게 용돈도 주었다. 하지만 적금 통장의 잔액은 500만원에서 멈췄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직도 24명의 군미필자가 은성PSD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들 같은 24명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은성PSD 직원은 모두 143명이고 기술직은 41명에 불과하다. 상급기관인 서울메트로의 직원은 58명이다.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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