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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성, 사무치게 그리웠다…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개성, 사무치게 그리웠다…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유년기를 보낸 시골마을, 기억나십니까. 포장도로라고는 달랑 신작로뿐, 대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길은 이내 흙먼지 폴폴 나는 흙길로 바뀌지요. 때에 전 옷차림의 개구쟁이들이 겨울이면 비료포대로 눈썰매타던 마을 고샅길이며, 아버지 읍내 나가시던 둑방길이 그랬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 본 고려 500년 도읍지 개성의 풍경이 딱 그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공동우물에서 남바위 비슷한 털모자를 쓴 아낙네가 물을 길어 등지게에 지고 나릅니다. 선죽교 부근의 냇가에서는 시린 손 호호 불어가며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는 여인네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버스가 마을을 지날 때 제법 용감한 개구쟁이는 언덕 위에서 늠름하게 폼을 잡고 손을 흔드는 반면, 수줍음 많은 녀석은 담장 뒤에 숨어 보일 듯 말 듯 손짓합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세계가 교차하는 듯한 풍경이었지만, 참 정겨웠습니다. 버스를 함께 탔던 관광객 누구에게서도 잘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상대적 우월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금강산 일대가 처음 개방됐을 때와 비교하면 주민들의 표정도 놀라울 만큼 변했습니다. 버스가 지나는 길목마다 군인들이 지켜서고 있었지만, 주민들이 예전처럼 외면하거나 심지어 등을 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웃고 손을 흔들며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전혀 인위적인 모습이 아니었지요. 박연폭포, 선죽교 등 고도(古都) 개성의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좋았지만, 주민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더욱 좋았습니다. 개성에서의 체류 8시간을 기록했습니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남짓한 거리지만, 그 사이엔 이념과 체제의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요.60년 세월을 에둘러 돌아왔기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훔쳐보는 묘한 즐거움도 각별했고요. 시간대별로 개성관광의 묘미를 소개해봅니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흔히 출입국사무소로 알고 있지만, 서로 두 개의 국가로 인정하지 말자는 뜻에서 ‘국’자를 뺐다)에서 개성관광증을 받는 등 수속을 마친 다음 버스에 올라탔다. 5분 정도 달린 버스가 개성표시판을 지날 즈음 전신주 가운데 테두리 색깔이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다. 북한 지역으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버스 행렬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북한군 지프차가 등장하는 것도 이때쯤이다. 경계근무를 서는 앳된 얼굴의 북한군 병사 몇 명을 지나면 곧바로 북측 출입사무소. 간단하게 입국심사를 마치고, 버스에 동승한 북한 안내원 2명과 함께 개성으로 향했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낯익은 남측의 풍경이 이어진다. 공장 건물 사이로 24시간 편의점도 있고, 서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란색 버스가 출근길의 북한 근로자들을 실어 나른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 15분쯤 경의선 철길과 나란히 달리면 개성의 초입 송남동에 닿는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 거란에서 보낸 낙타 50마리를 굶겨 죽였다는 약대다리가 있는 곳이다. 개성 주민들에게는 ‘야다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개성에서 경의선 열차가 매일 한차례 와닿는 봉동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야다리를 건너야 한다. 송남동을 지날 무렵, 느닷없이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나타났다. 안내원은 장차 서울과 평양을 연결할 고속도로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개성과 평양을 오가는 데 이용된다. 고기남새, 세거리 사진관, 리발관 등 개성시내 건물에 내걸린 간판들이 마치 1960∼70년대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하다. 슬그머니 사진을 찍고도 싶었지만, 안내원의 경고대로 ‘피곤한 여행’이 될 듯해 꾹 참고 말았다. 시내는 거의 무채색이 지배하고 있다. 주민들의 옷이며, 건물들이 검고 어두운 색깔 일색이다. 거기에 낮게 깔린 안개까지 더해지며 무채색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간밤에 무척이나 추웠던 듯, 주민들 대부분이 두툼한 옷차림이다.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동여맨 여인네의 얼굴이 시선을 붙잡았다. 차가운 날씨 탓에 볼에서 귀밑머리에 이르도록 빠알갛게 얼어 있다. 개성에서 박연폭포까지는 40분 남짓 소요된다. 개성시 외곽의 고갯길에 서면 개성을 둘러싸고 있는 송악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만삭이 된 여인이 두 팔 벌려 개성을 보듬고 있는 형상이란다. 그래서 개성 시민들은 송악산을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멸망을 재촉하기 위해 고려 왕조에 정기를 불어넣어 주던 송악산의 여신을 임신시켰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개성시내를 벗어나자 처녀의 젖가슴처럼 봉긋한 산자락이 겹겹이 다가섰다. 나긋나긋한 느낌, 박연폭포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산세가 우람해지기 시작했다. 고봉준령은 아니지만 바위산답게 흰 눈을 이고 선 모습이 당당하다. 길도 제법 험하다. 좌우로 휘어지는 모양새가 설악산 한계령에는 못 미쳐도, 속리산 말티재에는 버금갈 듯하다. 마침내 박연폭포 앞에 섰다. 서경덕,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히는 곳. 북측에선 천연기념물 제388호로 지정해 놓았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 38m 높이 암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겨울이라 가늘어지긴 했지만, 금강의 구룡폭포와 설악의 대승폭포 등과 더불어 국내 3대폭포를 이룰 만한 자태다. 이쯤에서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오래전 박연폭포를 찾은 기생 황진이는 폭포 아래 고모담에 훌쩍 뛰어들어 목욕을 즐깁니다. 목욕을 마친 황진이는 폭포 바로 옆 룡바위에 올라 젖은 머리에 먹물을 묻혀 초서체로 시 한 수를 적습니다.‘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의시은하 락구천(疑是銀河落九天)’이란 내용이지요.1957년 이곳을 처음 방문한 김일성 주석께서 그 문장을 ‘날아흘러 곧추 아래로 떨어진 물이 삼천척이나 되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떨어지는지 의심스럽구나’라고 해석해주셨습니다.” 안내원은 또 “황진이가 적은 글씨를 곧바로 도공들이 새겨 오늘까지 전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연폭포의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고모담 오른쪽의 범사정이 으뜸이다.‘박연폭포가 안개 위에 떠있는 듯하다’는 뜻의 정자. 범사정에 앉아 쉼을 청한 이옥임(81·하남시)할머니의 눈가에도 옅은 물방울이 괸다.“70년 전 개성에서 소학교 다닐 때 걸어서 소풍왔던 곳이야. 아침나절 개성을 출발하면 저녁 무렵 도착하지.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구경한 다음 다시 개성으로 돌아갔지.” 범사정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대흥산성 북문이 나온다. 고려때 개성 방위를 위해 천마산과 성거산 등의 봉우리를 따라 쌓은 석성이다. 황진이의 연인 서경덕도 산성 동쪽 성거산에 터를 잡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산성 왼쪽의 박연(朴淵)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박연폭포란 이름의 유래가 된 못이다. 폭포 위쪽에 있다. 박씨 성 가진 사람이 폭포 앞에서 피리를 불었는데 그 소리에 반한 용녀가 그를 유혹해 결국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고모담(姑母潭)은 아들이 용녀를 따라 죽자 그의 어머니가 몸을 던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흥산성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관음사에 닿는다.970년 조성된 사찰. 작고 화려한 대웅전의 뒷문 장식에 슬픈 전설이 숨어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관음사 조성공사에 동원된 조각 신동 운나(당시 11세)는 뒷문 장식물 조각에 열중하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전갈을 받는다. 곧바로 하산하려 했으나, 공사 진행이 늦어질 것을 우려한 공사 관리자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왼손잡이였던 운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도끼로 자신의 왼팔을 자른다. 결국 뒷문 왼쪽은 완성됐지만, 오른쪽은 미완으로 남게된 것. 그는 왼쪽문에 왼팔이 잘린 자신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박연폭포를 출발한 버스는 50분쯤 걸려 개성시내 중심부의 통일관에 도착했다. 앞으로는 개성 시내와 개성 남대문, 뒤로는 자남산과 김일성 동상이 펼쳐져 있다. 낡은 벤츠 승용차 뒷좌석의 흰 드레스 입은 신부, 파란색 복장의 교통보안원, 삼삼오오 걸어가는 주민 등 모두가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관광객들을 관찰하고 있다. 시간이 느린 화면처럼 더디게 흐르는 느낌이다. 그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겨우 수m 쯤. 하지만 말을 걸 수도, 더더욱 손을 잡을 수도 없다. 통일관의 자랑은 닭곰탕과 장지단(계란조림), 이면수 조림 등으로 구성된 ‘개성 13첩 반상기’. 쌀밥에 13가지 반찬이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개성지역 토속요리다. 여기에 입에 불이 날 만큼 독한 송학소주가 곁들여진다. 개성시 문화회관 뒤편의 숭양서원은 정몽주와 서경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73년 정몽주의 생가터에 지어졌다. 입구 알림판에 따르면 ‘특별한 장식없이 간소하게 지었으나 이 곳 지형조건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크고 작은 집들을 합리적으로 배치하고 조화시킨 우수한 건축물’이다. 정몽주의 영정과 저잣거리에 버려진 정몽주의 시신을 수습한 친구 우현보, 서경덕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선죽교앞에 섰다.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피살당한 곳으로 너비 2.54m, 길이 6.67m의 자그마한 돌다리다. 일제 강점기에 만든 인공수로가 물길을 대신하기 이전엔 송악산에서 발원한 로계천이 선죽교 아래를 흐르고 있었다. 선죽교를 지난 로계천은 사천강, 예성강 등과 차례로 만나 서해로 흘러 들어갔다. 원래 선지교(善地橋)라 불리던 것을 정몽주가 흘린 핏자국이 없어지지 않고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가 돋았다고 해서 선죽교(善竹橋)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 자세히 보면 다리가 두 개인데, 난간이 있는 멋진 다리가 진짜다. 1780년 이곳에 부임한 정몽주의 후손 정호인이 선조할아버지의 피가 묻은 곳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다니자 원래 다리에 난간을 만들고 그 옆에 새 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진다.‘문제의’ 핏자국은 화강암의 철분이 산화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개성 출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는 비석 맞은 편에 두 채의 비각이 서있다. 하나는 변을 당하기 직전 마지막 만난 친구 성여완의 것이고, 또 하나는 피습을 눈치챈 정몽주가 도망치라고 했음에도 끝까지 그와 함께한 하인 김경조의 것이다. 선죽교 건너편에는 표충비가 있다. 거북이 두 마리가 정몽주 충정을 찬양하는 비석을 이고 섰는데, 각 각 조선의 21대,26대 임금이 만들었다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마지막 일정은 고려박물관. 성균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균관은 992년 고려시대 국자감으로 창설됐다가, 이후 성균관으로 개칭한 국내 최초의 대학이다. 서울의 성균관보다 500년을 앞선다. 원래 건물은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17세기 초에 개축했다. 노거수(老巨樹)들의 집합소라고 할 만큼 넓은 뜰에 심어진 1000년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등이 인상적이다. 국보로 지정된 곳인데도 건물 내부를 들고 남이 자유롭다. 성균관 내 4개의 전시관에 고려청자, 금속활자 등 1000여점의 고려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야외 전시장에는 헌화사 7층탑 등 북측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개성을 빠져 나오는 길에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오전에 비해 몇 배는 많은 숫자다. 때는 이미 땅거미지는 시간. 전력이 부족한 마당에 어두컴컴해 진 건물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을 게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보일 듯 말 듯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개성 시내 한 쪽을 가로지르는 경의선 철길 위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기차가 자주 지나지 않으니 무서워할 것도 없을 터. 어른들도 무시로 지나다닌다. 은행나무도 마주 봐야 열매를 맺는다던가. 등돌리고 있었던 겨레가 금강산과 개성 등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서서히 간극을 좁히려 하고 있다. 그것은 곧 열매를 거둘 날도 머지 않았다는 뜻일 게다. 글·사진 개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가는 길 :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오전 6시 전후 서울 계동, 광화문 등에서 출발한다.5000원. 자가용의 경우 임진각까지 간 다음, 임진각에서 셔틀버스(6시40분∼7시20분 운행)로 출입사무소까지 가면 된다. 예약은 현대아산의 개성관광 홈페이지(www.ikaesong.com)에 링크된 전국의 개성관광대리점에서 할 수 있다. 현대아산 02)3669-3000, 도라산사무소 031)954-3940,950-5195.1일관광 요금은 18만원이다. ▲신분증 : 현지에서의 신분증은 개성관광증이 대신한다. 관광증 발급에는 여권 사진 2장이 필요하다. 관광증을 훼손하면 벌금을 물 수도 있다. 국내 출국 수속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중 하나는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화폐 : 개성에서는 미국 달러 외 원화나 카드 등을 사용할 수 없다. 출발 전 환전해 가는 것이 좋다. 개성 북측 출입사무소 출구에서도 환전할 수는 있다. ▲휴대 금지 물품 : 필름 카메라는 반입 금지. 디지털 카메라는 허용되지만 초점거리 160㎜ 미만 렌즈, 광학 기준 24배줌 미만일 경우만 가능하다. 남측의 신문·잡지, 휴대전화(배터리 등 관련 용품 포함),MP3와 GPS, 내비게이션, 소형 라디오, 녹음기 역시 반입금지. 해당 물품은 현대 아산측이 보관, 관광 후 돌려준다. ▲국내 반입금지 물품 : 북측에서 구입한 뱀술, 령정술 등 동물을 재료로 만든 주류와 비아그라·우표·불온 서적 등은 들여올 수 없다. ▲남측출입사무소 1층에 설렁탕 등 간단한 아침 식사를 파는 매점이 마련돼 있다.
  • 농성장서 새해맞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2인

    농성장서 새해맞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2인

    ■KTX 승무원 박지예씨 천막 틈 사이로 칼바람이 들어왔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앉기조차 힘겨웠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오가는 서울역 한복판에는 ‘KTX 승무원 정리해고 철회’라는 깃발이 쓸쓸히 흩날렸다. 결국 박지예(28·여)씨의 2008년 1월1일은 생애 가장 추운 겨울날이 되고 말았다. 박씨는 2006년 해고된 KTX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다. 희망을 갖고 승무원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 끝은 아쉽게도 ‘천막 농성’이 됐다.“4번째 농성입니다.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살기 위해 다시 천막을 쳤습니다.” 지난달 26일. 철도공사는 해고된 승무원들을 역무계약직으로 고용하기로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승무원들은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실낱 같은 희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4년 전 입사 당시 박씨는 이런 상황을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새로 태어난 회사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입사 3개월 만에 박씨의 ‘꿈’은 정말 ‘꿈’이 돼 버렸다.“행패를 부리는 손님에게 동료가 맞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철도공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그 때 알았어요. 내가 철도공사가 아닌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철도유통(구 홍익회) 소속이라는 걸요.” 철도공사는 그간 승무원들의 고용주가 철도유통이라고 주장하며 협상을 피해 왔다. 그래도 박씨는 아직 절망하지 않는다. 박씨를 응원해 주는 부모님과 든든한 후원자인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농성을 시작하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는 남자친구지만 군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항상 열심히 하라며 다독여준다. “새해 첫 날인데도 농성 때문에 화장을 못했어요. 사진 안 찍으면 안 돼요?”박씨의 농담에 천막 안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아무리 힘들어도 새해 첫 날은 박씨에게도 여전히 특별한 날이었다. 글 사진 이경원 장형우기자 leekw@seoul.co.kr ■코스콤 홍일점 정인열씨 새해 아침 서울 여의도 빌딩숲은 추웠다. 증권선물거래소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 본사 앞마당. 가족들이 따뜻한 떡국을 즐길 시간, 코스콤 비정규직노조 ‘홍일점’으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정인열(30)씨는 차가운 천막 바닥에서 대책 회의에 열을 내고 있었다. 전날 동료들의 고공시위로 사측이 협상테이블에는 나왔지만 성의없는 태도로 일관해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 92명은 증권거래소의 전산업무를 담당하던 직원들이다. 지난해 7월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코스콤은 이들과 상의도 없이 도급업체 26개를 5개로 통폐합하고 소속을 강제로 옮기는 위장도급으로 정규직 전환을 무마시켰다. 사측의 태도도 급변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들 사이에 이메일 송수신을 막았고, 서로 말조차 나누지 못하게 했으며 자리 배치까지 따로 했다. 노조에 가입하면 도급업체를 없애겠다고도 했다.“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8년차가 연봉 7000만원을 받지만 저는 2000만원이고, 시간 외 수당이나 연차휴가도 없어요. 이런 대우보다 동료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강제로 끊기는 게 더 가슴 아팠습니다.” 이들은 5월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에 들어가 9월20일부터 비닐천막을 쳐놓고 104일째 농성하고 있다. 콧방귀도 뀌지 않던 사측이 전날 서울 시내 일대에서 벌어진 노조원들의 고공시위를 보더니 급히 협상에 임했다.“경복궁 쪽 25m 탑 위에 올라간 노조원이 지난해 3월 입사해 제가 일을 가르친 후배였어요. 무서웠지만 따라올라가 내려오라고 설득하는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지 않으냐.’고 하더군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새롭게 떠오른 태양은 정씨에게 그래도 힘을 준다.“저도 안정적으로 당당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돌아가 예쁘게 차려 입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싶어요. 그러려면 빨리 이 싸움에서 이겨야죠.” 글 사진이재훈 신혜원기자 nomad@seoul.co.kr
  • [개성공단 기업인 새해 소망] 3通·특혜관세 해결… 개성상품 미·유럽 갔으면

    무자(戊子)년의 새해가 환하게 밝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남북관계가 갈수록 개선되기를 바라지만 특히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인들의 소망은 간절하다. 이들은 한반도에 긴장이 흐를 때 더 속을 태운다.3통(통행, 통관, 통신)이 하루빨리 해결되고 남북이 상생했으면 좋겠다는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인들의 소박한 소망을 싣는다. ■투자금 본사서만 조달 규정 없애야 2008 무자년 새 아침이 밝았다.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조성된 지도 어느덧 만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업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놓이는 어려운 상황도 있었지만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대통령의 공단 방문,3통(통행, 통관, 통신)문제 해결 합의 등 전반적인 북한내 경영환경에는 커다란 개선이 있었다.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기업은 60여개다.180여개 기업이 추가로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공단 전체 경영실적은 초기의 월 40만달러어치 수준을 넘어 올해 총 2억 3400만달러(2208억원) 규모로 커졌다. 북측 근로자의 수도 2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여전히 남북관계, 북·미관계, 원산지 인정문제 등 기업경영 외적인 요인으로 애로를 겪고 있다. 가장 시급한 개선과제였던 3통 문제가 입주 초기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개성공단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공단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역외 가공지역 지정이 선결돼야 한다. 새해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유럽연합 FTA에서 역외 가공지역으로 지정돼 한국산과 같은 특혜 관세가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면 북한상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미국과 유럽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투자자금을 국내 본사로부터만 조달받을 수 있게 돼 있는 현 규정을 고쳐 입주기업이 직접 외부에서 빌릴 수 있도록 개선된다면 국내법인의 신용하락 등의 문제도 줄어들 것이다. 지난해 말 사무국을 개설한 개성공단기업협의회는 정부 및 금융기관과 협의해 3통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도출되고 1단계에 본격 입주할 180여개사의 불편사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계획이다. 개성공단은 남북경협과 중소기업 미래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다. 남북경협의 역사에 개성공단은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지(豫知)와 다산(多産), 근면을 상징하는 쥐띠 새해, 입주기업 모두가 뜻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한다. 개성공단 기업협의회장·로만손 김기문 회장 ■한마음으로 최대실적 올렸으면 지난해에는 7년만에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긴장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만은 분명하다. 2004년 6월 불모지 개성공단에서 시범업체로 선정됐다. 처음에는 기반시설 하나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공장을 돌리나 막막했다.1년이 지난 이듬해 6월 처음으로 북측 직원 405명의 입사면접을 봤다. 생활필수품이 부족했던 탓인지 그들은 수더분한 옷차림에 잘 씻지 못한 듯 보였다. 공장을 지으면서 샤워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화장실에 비데도 설치했다. 다른 업체에 다니는 북한 직원들이 방문할 만큼 인기가 좋았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직원과의 교감은 무엇보다 중요했다.1주일에 세차례씩 부서별로 품질개선 교육을 시켰다. 질 나쁜 중국 제품을 써왔던 북한 근로자들은 우리 기준에 맞지 않은 제품이 생산돼 이를 폐기처분하려 하면 ‘왜 멀쩡한 물건을 버리냐.’고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 세월이 어느덧 4년째가 됐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북한 직원들은 720여명으로 진출 첫 해보다 80%가 늘었다. 지난해 생산한 화장품 용기 완제품이 1억개가 넘는다. 공장 설립 첫 해에는 3만개에 불과했다. 이제 한국 본사와 비교해 생산성은 85%, 품질 수준은 90%에 이를 만큼 좋아졌다. 숙련도도 매우 높아졌고 화장품 관련기업의 직원답게 화장을 하는 여직원들도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변화 속에도 여전히 출입 24시간 전 신고의무나 휴대전화 이용 금지 등 ‘3통(통행, 통관, 통신)’의 제한은 사업에 많은 불편을 준다. 말로만 그치지 말고 새해에는 3통 문제가 속시원히 해결됐으면 한다. 또한 북한 근로자들이 그들의 적성에 맞는 부서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인사제도에 융통성이 생겼으면 한다. 남북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해 최대의 판매실적을 올리는 것을 꼭 보고 싶다. 태성산업 대표이사 배해동 ■미래 불안없이 윈-윈하는 한해로 서울에서 개성공단까지 1시간40분.2005년 첫 해에는 3∼4시간이 걸렸는데 3년간 많은 게 변했다.5년 전 처음 개성을 방문해 물도 없고 전기도 없는 허허벌판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여기가 과연 국가미래의 신개척지가 될 수 있을까 강한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점차 기반시설 문제가 해결돼 갔고 북한 근로자들과 관계도 친숙해졌다. 특히 북한 근로자들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품질개선팀을 자체적으로 구성해 매주·매월 정기모임을 갖고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생산 효율성을 30% 이상 올려놓았다. 개성공단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새 화물 철도(문산∼봉동역)가 개통됐다. 아파트형 공장이 세워졌고 가동률도 상승세에 있다. 품질도 한국 본사나 개성공장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나는 북한을 중소 부품 제조업의 ‘블루오션’이자 국가미래의 신 개척지라 부르고 싶다. 최근에 많은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이유로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나가고 있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성실하면서 말이 통하고 근로자들의 기술 습득 능력이 빠른 북한은 대단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스피드 정보화’ 시대인 만큼 새해에는 ‘3통(통행·통관·통신)’ 문제 해결과 더불어 개성공단 투자기업도 국내 투자기업과 같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법이 개선되길 기대한다. 원산지 표기문제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지난해 핵 실험 여파로 개성공단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적이 있었다. 가동 중단이나 북한 출입통제를 걱정하지 않도록 정부가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개성공단 진출기업으로서는 남북 상생의 첫 모험이다. 개성공단의 미래에 대한 불안없이 남북이 높은 시너지효과로 서로 윈-윈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재영솔루텍 회장 김학권 ■100만개 일자리 창출 기반닦길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기업으로 선정된 2004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도전했다. 돌이켜보면 만만치 않은 4년이었다. 당시 ‘연내에 입주하겠다.’는 기업가로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숨가쁘게 뛰어다녔고 결국 개성공단 1호 공장의 준공식을 가졌다.2005년은 북측 인력을 받아 우리쪽 사람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2006년 북한 미사일 발사·핵 실험 등 어려운 시기를 맞았지만 그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고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갔다. 지난해는 개성공단이 큰 선물을 받은 해였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걸어서 휴전선을 넘었고 대통령이 직접 남북 정상회담 일정동안 개성에 들러 남과 북의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대통령 내외가 개성공단에 왔을 때 나는 기업 책임자로, 총리 회담에는 입주기업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자문역으로 활동했다. 그때의 가장 큰 주제는 ‘3통(통행, 통관, 통신)’의 문제였다. 이제 3가지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입주기업의 입장에서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무자(戊子)년 새해를 맞이하며 준공식장에서 소중한 분들을 모시고 한 약속을 되새겨 본다. “100년이 지나도 거목으로 남아 있는 회사로 가꾸겠습니다. 희망과 비전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 남과 북,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민족,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 100만명이 주주로 참여하여 후원하는 세계의 기업으로 키워보겠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 준 이 약속을 마음에 품고, 여러 여건이 좋아진 새해는 우리 회사와 개성공단의 모든 입주기업들이 높이높이 날아오르는 시간들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SJ테크 대표이사 유창근 ■남북합작 양말 세계인이 신었으면 예로부터 쥐는 곤경에 처했을 때 지혜롭게 위기를 극복하는 영리한 동물로 묘사돼 왔다. 고유가와 글로벌 악재 등 여건이 좋지 않다. 쥐띠 해를 맞은 기업들과 국민들은 어려움을 영리하게 헤쳐나가는 쥐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또한 나라살림을 꾸려가는 지혜를 잘 발휘해 나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줬으면 좋겠다. 성화물산은 개성공단이라는 새로운 디딤돌에 2005년 11월 부지를 분양받아 지난해 1월 공장을 완공, 가동에 들어갔다. 첫 기계음이 울렸을 때 남측 공장설비와 북측 노동자들의 손이 만들어낸 세계 최초의 양말이 과연 탄생할까 하는 기대감과 우려감에 가슴 떨렸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달 두달 시간이 지날수록 북측 근로자들 또한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아직 생산성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통행·통관·통신 등 ‘3통’의 문제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첫 순간의 불안감은 이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오는 2월에는 본공장 증설이 끝날 예정이다. 제2공장 부지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 개성공단에서는 일반양말, 스포츠양말, 타이즈, 덧버선을 생산해 국내외 유명 브랜드에 주문자생산(OEM) 및 제조자 개발생산(ODM) 방식으로 공급해 국내 시장에 보급하고 있다. 올해는 3통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유럽연합 FTA 등 성공적인 협상 타결의 희소식이 전해지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그래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평화의 상징인 남북 합작 양말을 신고 무자(戊子)년 새해를 활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인화단결, 책임완수, 창의개발의 사훈 아래 성화물산의 남북한 한가족은 한마음 한뜻으로 올해를 세계 최고 수준의 양말 전문업체가 될 수 있는 도약의 해로 만들기 위해 힘차게 돛을 올릴 것이다. 성화물산 사장 김철영
  • [베이징올림픽의 해 밝았다] 개최국 中 준비상황 태릉선수촌의 숨은 일꾼들

    [베이징올림픽의 해 밝았다] 개최국 中 준비상황 태릉선수촌의 숨은 일꾼들

    태릉선수촌에 입촌하는 국가대표선수들은 국내외 대회나 전지훈련 참가 등으로 들쭉날쭉하지만 하루 평균 350∼400명선. 이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150명을 넘나드는 직원들이 선수들과 함께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나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이들이 많은데….”라고 손사래를 치는 선수촌의 대표 일꾼들을 만나봤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혀끝으로 金메달 식단 완성 “식사예절 바른 선수들이 금메달도 따요.” 1984년 2월 태릉선수촌에 조리원으로 입사해 23년을 한결같이 대표선수들의 먹거리를 챙기는 데 헌신하면서 터득한 일종의 금메달 감식법이란다.98년부터 검식관이란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직함으로 일하고 있는 신승철(47)씨. 청와대와 함께 공식 직함으로는 선수촌밖에 없다고 소개한 신씨는 대표선수들에게 배식하기 전 맛을 보는 것은 물론, 선수식당의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총감독 역할이다. “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형주·김진호 선수가 조리원 아주머니들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며 당시에는 귀했던 14인치 컬러TV를 갖고 왔던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반면 이런 선수도 있다. 배식시간에 아랑곳 않고 새벽운동했다며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치거나 배식 집게를 조리원 보는 앞에서 툭툭 던지는 선수도 있다. “그런 선수들 보면 대개 성적도 좋지 않아요. 반면 조리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 잘하고 예절 지키는 선수들일수록 성적도 좋지요.” 현재 대표선수들의 식단은 아침 5000원, 점심 1만 1000원, 저녁 8500원, 간식 1500원. 감독이나 코치들은 “집에서도 못 먹는 호사를 누린다.”고 감격하지만 일부 젊은 선수들은 “물린다. 성의가 없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해외 나갔다 돌아오면 어김없이 “선수촌 음식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신 검식관은 1명의 영양사와 7명의 조리사,18명의 조리원과 함께 많을 때는 400명이나 되는 입촌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진다. 신씨에게 안타까운 것은 종목별로나 세대별로나 선수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한달에 한번 급식평가를 하는데 젊은 선수들은 피자, 스파게티 등 퓨전음식을 바라고 영양탕 등 이른바 보신식품을 해달라고 매달리는 경우도 있어요.” 신승철 검식관 ●태극낭자 생활돕는 ‘선수촌 엄마’ “아이고,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요.” 지난달 21일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가 태릉선수촌 여자숙소의 리모델링 계획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여자숙소장 서문옥(48)씨는 탄성부터 질러댔다.“남자숙소 4층에 더부살이하는 선수가 있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편하게(?) 돌아다니는 남자선수와 마주쳐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여자숙소 목욕탕은 반지하 형식으로 창문이 외부에 노출돼 이만저만 신경 쓰였던 게 아니었다. 서씨가 선수촌에 몸 담은 것은 15년 전. 식당 등 여러 부서에서 일하다 여자숙소를 책임진 지 4년 반이 됐다.‘금남의 집’ 침구 정리하고 전구 갈아끼우고 화장실과 실내외를 청소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많을 때는 200명이 넘는 여자선수들이 일상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없도록 거드는 ‘엄마’ 같은 존재인 셈. 선수들이 간식거리를 찾기에 식당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줬다가 나중에 체중이 갑자기 불어 코칭스태프가 이유를 찾겠다며 나섰을 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여자종목 중 가장 우악스러워 보이는 역도 선수들이 가장 섬세하고 여성적이며 정이 많다고 소개했다. 선수촌 사상 첫 여성촌장인 이에리사 촌장 얘기도 빠질 수 없다. 이 촌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강단이 어우러져 새 기풍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전에는 약간 흥청대고 느슨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숙소와 식당 등을 카드로만 출입하게 하고 폐쇄회로 카메라도 곳곳에 있어 술, 담배는 꿈도 못 꾸지요.”한창 배고플 나이의 선수들이 ‘철가방’들을 호출하거나 ‘개구멍’으로 음식을 반입하는 것도 철저히 통제해 대표선수들이 검증된 음식으로 체력을 관리하도록 했다. 또 간식을 안 먹고 모아뒀다 외출 때 들고 가던 풍경도 사라졌다. 여자숙소 문제만 해도 그렇다.“그렇게 조신하던 양반(이 촌장)이 투사처럼 강단있게 나설 줄 누가 알았겠어요. 호호홋.” 서문옥 여자숙소장 ●상담으로 불굴의 정신력에 일조 퀴즈 하나.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 210명, 중국 100명, 일본 80명, 한국 5명이었던 선수단 직책은? 답은 심리상담사. 이 숫자는 그대로 메달 숫자로 직결됐다고 대표선수들의 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장덕선(50·한체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단정했다. 젊은 시절 사격 선수로 활약하던 장 교수는 군산대와 한체대(석사)를 거쳐 90년대 초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이 분야에 눈을 떴다.2002년 1월 체육과학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수촌과 인연을 맺어 일주일에 하루 대표선수들의 어깨에 걸쳐진 정신적 짐의 무게를 덜어주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소속 5명의 심리상담사가 종목별로 할당된 반면,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이성교제 같은 민감한 상담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 태극마크를 다는 과정에서 걸러진 것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대표선수들의 고민은 자신의 목표에 집중된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이쪽에 관한 인식이 부족해 찾아오는 데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며 자발적으로 찾는 경우는 하루에 적을 때는 한두 명, 많아야 서너 명이라고 했다. 대신 코칭스태프가 앞장서 선수들의 집단상담을 의뢰, 이미지트레이닝 등 정신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짜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 물론 종목에 따라, 선수가 얼마나 진지하게 따르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엇비슷한 전력이나 실력이라면 분명 정신력은 무시못할 변수라고 장 교수는 못박았다. 4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스포츠 심리상담사 자격증 제도 때문에 현재 장 교수와 이에리사 촌장 등 30∼40명의 1급,80∼90명선의 2급,200명 안팎의 3급들이 배출돼 있다. “한 명도 상근직이 없는 태릉선수촌에 적어도 20명 정도의 상근직이 근무하는 날이 오면 진정한 스포츠 강국 대열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 교수는 강조했다. 장덕선 심리상담사
  • ‘88만원 세대’ 멍에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88만원 세대’ 멍에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대학 졸업과 함께 IMF 한파에 부딪쳤던 72년생과 청년실업 대란 속에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84년생 쥐띠 네 명이 2008년 무자년(戊子年)을 맞이해 만났다. 안진걸(36·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 라광수(36·도시철도공사 직원)씨와 김우광(24·한양대 졸), 김소림(24·여·한국외대 4)씨는 12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소박한 연대를 통해 2008년의 희망을 모색했다. ●군사정권 맞선 마지막 세대 VS 88만원 세대 안진걸(이하 안) 90년대 초반 학번들에게는 ‘386세대’니 ‘유신세대’니 하는 세대를 구별하는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공유했던 역사적 사실은 있다.1991년 대학 새내기 때 91학번 동기인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1983년생은 잘 모르겠지만 백골단은 청바지와 청재킷을 입고 하얀 헬멧을 쓴 진압 전문 경찰부대였다. 강경대 열사 사망 이후 같은 또래의 대학생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분신정국’의 열병도 경험했다. 마지막 군사정권인 노태우 정권에 항거하는 것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독재에 맞선 마지막 세대, 이것이 91학번이다. 라광수(이하 라) 우리 세대의 특징은 경쟁이다.91학번들은 역대 최고의 대학 입학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려고 준비하던 1997년에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터졌다. 대학원으로, 고시촌으로 흩어지거나 자포자기했다. 안 72년생들은 시민단체로도 많이 들어갔다. 선배들처럼 변혁이나 혁명은 아니어도 사회에 소박하게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김우광(이하 우광) 요즘 낮에는 취업준비를 하고 밤에는 카페에서 5시간씩 일한다. 월급은 80만원이다. 이런 우리를 일컬어 ‘88만원 세대’라고 한다. 중학교 때는 부모님들이 IMF 사태로 명예퇴직하는 것을 목격했고, 고등학교 때는 ‘열린교육 1세대’ 또는 ‘이해찬 1세대’라고 불렸다. 김소림(이하 소림) 우리 또래는 대학입학 전에 이미 4년간의 공부 커리큘럼을 짜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낭만은 바라지도 않는다. 학점, 토익, 봉사활동, 어학연수, 자격증 등 ‘취업 5종세트’를 갖추는 게 목표다. 물론 다 갖춰도 정규직으로 입사하기 힘들다.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닌데 면접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청년실업의 해법은? 소림 아직 어떤 분야에 취업할지 정하지도 못했다.‘열심히 하면 붙을까.’란 의심과 절망 뿐이다. 친구가 특정 직종을 준비하면 무조건 따라하는 경향도 있다. 라 우리도 겪었지만 요즘 청년실업은 정말 심각하다.80년대 선배들처럼 데모도 열심히 하고 취업도 잘 하는 그런 세대는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회에 뭔가를 기여하겠다는 신념 같은 것도 버리지 않았다. 요즘 후배들은 삶의 목표가 곧 취업이 됐다. 안 전체 채용의 5%도 담당하지 못하는 대기업에 들어가야 취업에 성공했다고 여기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대학입학 성적이 평생을 좌우하는 학벌사회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세대간 연대가 필요하다 안 희망의 2008년을 맞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386세대 등 사회를 고민했던 선배들이 이젠 후배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88만원 세대’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세대가 함께 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올해 사회적 연대의 일환으로 대학등록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것이다. 소림 선배들은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대항했으나 우리 세대는 장학금 등 개인적으로 풀려고 한다. 우광 우리 세대는 선배들처럼 거대한 담론에 대해 똑 부러지게 얘기하지 못한다. 자기 생각도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았다. 라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많은 일을 하다가 지난해 겨우 정규직으로 취직했다. 함께 입사한 후배들을 보면 자기 주장을 우리보다 훨씬 잘 표현한다. 안 고용시장의 55%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 비정규직이 돼야 하는 게 현실이다. 소림 자발적인 비정규직은 아무도 없다. 우광 커리어를 쌓기 위해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도 결국 정규직으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한다. 안 비정규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나. ●2008년 우리의 꿈 우광 최선을 다하면 꿈과 목표가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소림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안 우리 사회가 힘들다고 하지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빠른 시간 내에 이룬 저력이 있다. 세대간 소통을 통해 연대를 이루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지난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하며 자조했다면 올해는 ‘참 소중한 인생’이라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정리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인사]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실무위원 파견△행정실 주낙영(행자부 균형발전기획관)△기획조정분과 윤한홍(서울시청 인사과장) 김종문(국무조정실 평가심의관실 평가시스템과장) 이충면(외교통상부 평화체제과장) 김완섭(기획예산처 민자사업관리팀장)△정무 홍순범(감사원 과장) 정영주(국무총리 민정비서실 과장) 구만섭(인사위 인사심사과장) 국정원 간부 2명△외교통일안보 정소운(통일부 이산가족팀장) 강은호(방위사업청 전략기획팀장) 양세봉(육군본부 정책홍보실) 강수연(외교통상부 북서아프리카과)△법무행정 서승우(행자부 지방세제팀장) 이동권(경찰청 경정) 송민헌(중앙경찰학교 총무과장) 강수상(국정홍보처 협력총괄팀장)△경제1 김윤창(금융감독원 부국장) 최상목(재경부 금융정책과장) 정형곤(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송광조(국세청 조사기획과장) 황명석(공정위 특수거래팀장)△경제2 조승환(해수부 물류제도팀장) 이상진(정통부 기획총괄과장) 용홍택(과기부 우주개발정책과장) 도경환(산자부 에너지자원정책팀장) 이주명(농림부 농촌정책과장)△사회교육문화 배상훈(교육부 대외협력팀장) 김홍기(서울시 서기관)△국가경쟁력강화특위 김용진(예산처 공공혁신본부 정책총괄팀장) 조상명(서울시 시민고객담당관) 김창모(외교부 환경협력과장) 성기만(전북도 관광산업전문위원) 김형열 건교부(하천관리팀장) 김필홍(환경부 환경영향평가과장) 양성광(과기부 기초연구정책과장)△국민성공정책제안센터 김의환(청렴위 심사기획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부이사관 승진 △재정기획팀장 尹晟用■ 교육인적자원부 △극동대(고용휴직) 류재덕■ 통일부 ◇팀장급 전보 △남북출입사무소 동해선운영팀장 尹在薰■ 행정자치부 ◇서기관 승진 △조사팀 許南萬△의정팀 金潤培△안전기획팀 崔長寬△법무행정팀 金秉勳△연금복지팀 高載萬△윤리정책팀 許海九△윤리심사팀 金明東△컨설팅기획팀 金相廣△전략기획팀 金燁△자치행정팀 金禹鍊△지방혁신전략팀 林栽斗△주민제도팀 朴炳俊△재정정책팀 趙景衍△지방세정팀 趙啓閏△지방세정팀 朴均朝△생활여건개선팀 朴玲侖◇기술서기관 승진△부동산정보관리센터 高永鎭△정부청사관리소 기획과 李龜學◇서기관 전보△재정기획관실 鄭永晙■ 보건복지부 ◇팀장급 전보 △저출산고령사회정책본부 기획총괄팀장 송재찬■ 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李秀遠■ 관세청 ◇과장급 승진 △관세자유무역협정고객지원센터장 邊東郁△제주세관장 金龍炫◇과장급 전보△조사감시국 외환조사과장 金光鎬△조사감시국 전략조사정보〃 申泰郁△인천세관 통관국장 朴炳晋■ 병무청 ◇본부장급 임명 △동원소집본부장 梁基鈺△충북지방병무청장 全洪範■ 방위사업청 ◇승진 △계약관리본부 원가관리부장 김용남◇전보△정책홍보관리관 송학◇부이사관 전보△총무과장 민장근△획득기획국 획득정책〃 강은호△계약관리본부 조달기획팀장 홍은수◇서기관 전보△획득기획국 전력계획과장 신양재△정책홍보관리실 혁신인사기획관 최병휘△〃 정책홍보담당관 김종출△사업관리본부 GOP사업팀장 이상훈△〃 다련장사업〃 손현영△계약관리본부 회계〃 윤기중△〃 원가총괄〃 정갑진△〃 항공기원가〃 한경수△〃 일반장비계약〃 성우영△〃 급식유류계약〃 강용규△〃 국제계약관리〃 김병근△〃 목록식별〃 김창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정책홍보관리본부장 朴麒豊△기반시설〃 柳瑩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개발사업본부장 문춘호△투자사업〃 고성규△면세사업단장 유상진△서울사무소장 윤영식■ 코트라 ◇1직급 처장 승진△시카고무역관장 정종태△전북〃 신환섭△부다페스트〃 윤희로△기획팀장 김성수◇2직급 부장 승진△전자무역팀장 원종성△코트라 아카데미 정은주△프랑크푸르트무역관 김용찬△신산업유치팀 최조환△중소기업수출지원단 사무국장 박종근△인사팀 김승욱△총무팀 정봉기△기획조정실 나창엽△주력산업팀 김태호△감사실 정외영△통상전략팀 최현필■ 고등과학원 △부원장 박형규■ 한국특허정보원 ◇부장 승진 △조사분석2팀장 梁大淳△조사분석4〃 曺大薰■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파정책연구그룹장 朴敏秀■ 인천국제공항공사 △안전보안실장 직무대리 김용욱△인재개발원장 〃 이희정△홍보비서실장 최경찬△비서팀장 백정선△전략기획〃 지희수△기획관리〃 이명현△인사관리〃 박학순△총무〃 이재훈△고객지원〃 남중순△교통운영〃 김범호△물류〃 한옥순■ 대한지적공사 △본사 감사팀장 신철화△서울 성동·광진구지사장 한기홍△〃 구로·금천구〃 송경수△인천 중구·옹진군〃 이도석△경기 성남시〃 윤길수△〃 연천군〃 배상우△대전·충남 서천군〃 김종배△〃 보령시〃 박정수△전북 무주군〃 정충원△전북 순창군〃 김정득△대구·경북 울릉군〃 김종석△〃 영덕군〃 김석근■ 한국지역난방공사 △건설본부장 李鍾甲■ 스포츠서울21 △편집국 부국장 최희주■ 동아일보 ◇국장 및 단위부서장 승진 및 전보 △재경국장 이희준△경영지원〃 송영언△미디어연구소장 박명식△독자서비스센터장 황유성△교육사업본부장 하준우◇승진 및 승격 (출판국)△부국장 계수미(편집국)△문화부장 허엽(광고국)△광고영업팀 교육파트장 송하승(고객지원국)△마케팅전략팀장 겸 전략파트장 이병현◇승진 (편집국)△어문연구팀장 손진호(출판국)△주간동아팀장 김진수△여성동아〃 이한경△출판사진〃 김성남(재경국)△경영관리팀장 하효성(미디어연구소)△종합심의팀장 박선홍△미디어혁신〃 장종희(고객지원국)△지원팀 지원파트장 강창율◇승격 (경영전략실)△경영총괄팀장 김승환(편집국)△전문기자 조성하△편집지원팀 조판파트장 안상만(광고국)△광고지원팀 광고관리파트장 김진영(경영지원국)△총무팀장 박정열△총무팀 미디어센터사옥관리파트장 윤진섭(고객지원국)△지방서부팀장 겸 마케팅개발팀장 전종현(교육사업본부)△교육기획팀장 홍성철◇전보△논설위원 박원재(편집국)△전문기자 오명철 김화성 고미석△산업부장 권순활△경제〃 허승호(출판국)△전문기자 고승철 황의봉 김일동 송문홍 이정훈△편집위원 윤기은△문화기획팀장 지재원(고객지원국)△서울팀장 배영삼△경인〃 최혜식△마케팅전략〃 조병준△서울팀 강북본부장 류병생△경인팀 경인〃 신동진△지방동부팀 부산경남〃 최익성△지방서부팀 호남〃 성재모△마케팅전략팀 기획파트장 채승훈△지원팀 관리〃 유영운(경영지원국)△기획위원 박동원(미디어연구소)△연구개발팀장 여규병■ 경향신문 (편집국) △사회에디터 조호연△종합편집장 강기성△정치부장 양권모△국제〃 김봉선△사회〃 박래용△전국〃 김종훈△특집기획〃 이중근△사진〃 이상훈△문화1〃 문학수△문화2〃 유인화△정치부 안보전문기자 박성진△특집기획부 선임기자 유인경△사진부 〃 김세구△섹션편집팀장 손현주△특집기획부 선임기자 설원태(미디어전략연구소)△연구위원 김윤순(광고마케팅국)△광고마케팅국장 이동현(판매국)△판매관리팀장 권오선(출판본부)△출판관리팀장 오경식■ 코리아타임스 ◇전보 △편집국 사회부장 조재현△〃 금융〃 이갑수■ 국민은행 ◇부행장 신임 △전략그룹 최인규△마케팅〃 심형구△여신〃 오병건△업무지원〃 홍세윤△전산정보〃 김흥운△HR〃 손광춘 ◇본부장 신임△해외사업 서기열△재무관리 김옥찬△전략 임영식△IT개발 유석흥△업무지원 허세녕△강남영업지원 임영신△서초〃 이광림△서부〃 유창수△중부〃 김진억△성동〃 허수장△경인〃 김태호△안양〃 박영생△충청서〃 송인천 ◇본부장 이동△PB사업 김순현△투자금융 손영환△영동영업지원 이영모△영등포〃 백승주△남부〃 민병덕△경서〃 김재곤△성남〃 전영희△경기동〃 유명흔■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소장 李揆亨△건강증진센터 운영팀장 金南洙△원무〃 丁炳憲△경리〃 許俊寧△의공학〃 金宗舜△영양〃 姜慇姬(정읍아산병원)△관리부장 黃燮 ■ 한화손해보험 ◇임원 △법인영업총괄 黃仁錫△개인영업총괄 金俊植△신채널사업부장 朴承勳△보상담당 姜成德△법인마케팅담당 李桂淵◇단장△서울 金賢九△경인 李石巖△충청 任義淳△호남 吳政默△영남 金南玉◇지점장△강북 노정수△제주 權赫俊△경북 孫東煥△경남 庾炳培◇보상센터장△강북 金珉基△강남 孫鐘昇△강서 金巖于△호남 尹弘植◇팀장·부장△개인영업기획팀장 李在國△법인영업기획〃 鄭鎭先△제휴영업1부장 高吉文△제휴영업3〃 李綱柱■ 한솔교육 △그룹회장 변재용△사장 배재학■ 신동아건설 ◇전무 △관리본부장 윤석병◇이사△기술연구소 정상현△건축본부 김상중■ 빙그레 ◇승진 △인재개발센터 전무 이성우△사업2부장 상무 임창범△인재개발센터 상무보 김광수△해외사업본부 〃 윤병욱
  • 체육기자연맹 회장에 송전헌씨

    한국체육기자연맹(회장 박광재)은 28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의원 총회를 열어 제11대 회장에 송전헌 KBS 스포츠취재제작팀장을 선출했다. 임기는 내년 1월1일부터 2년. 송 회장은 1986년 KBS에 입사,22년 동안 스포츠기자로 활동해 왔다.
  • [희망을 본 사람들] (7·끝) ‘개인회생’ 통해 재기 다지는 김철수씨

    [희망을 본 사람들] (7·끝) ‘개인회생’ 통해 재기 다지는 김철수씨

    “월급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되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억원의 빚을 개인회생 제도를 통해 부분 탕감받고 재기 의욕을 다지고 있는 김철수(37·가명)씨. 그는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과 카드회사, 제3금융권, 지자체 등 14개 채권자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렸다. ●영국 유학생에서 2억원대 채무자로 “찜질방과 친구, 직장동료의 집을 전전긍긍했습니다. 최악이었죠.” 지금은 웃고 있지만 채권추심업자들에게 시달리던 2년 전을 생각하면 철수씨는 아직도 끔찍하다. 철수씨의 악몽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수씨는 2000년 7년간의 영국 유학생활을 접고 유럽에 많은 투자를 하던 국내 중소기업에 스카우트됐다. 그러나 회사의 무리한 투자로 철수씨가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부도가 났다. 그나마 적금으로 모은 2000만원과 부모님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3000만원으로 대학가의 호프집을 인수했다. 그러나 사업이라곤 전혀 경험이 없던 철수씨는 호프집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현금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카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급기야 연체를 막기 위해 사채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금융회사들의 빚독촉과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리며 차라리 죽을까 하는 생각도 수십 번씩 했습니다. 돈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면서 노숙자로 지내겠다는 결심까지 했었죠.” ●살인적 빚 독촉에 가정도 파탄 호프집도 경매로 넘어간 철수씨는 2002년 한 자동차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회사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매일 걸려 오는 빚독촉 전화와 회사로 찾아온 사채업자들은 빚을 갚기 위한 자동차영업마저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살인적인 빚독촉에 가정도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아내, 아이와 따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부모님은 아들 빚으로 인한 불화로 이혼에 이르렀다. 불과 5년 만에 철수씨 개인이 속한 가정이란 작은 사회는 ‘빚’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젠 적금 넣으며 미래를 설계해요” 하루하루 절박감 속에 생활하던 철수씨가 ‘희망’이란 끈을 잡게 된 것은 김관기 변호사의 상담 카페를 통해 알게 된 법원의 개인회생제도였다. 2005년 12월 2억원이 넘는 빚을 안고 살던 철수씨는 법원으로부터 매달 55만원씩 5년간 3300여만원만 갚으면 모든 빚이 사라진다는 결정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을 보는 순간이었다. 빚독촉도 끊기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둘째 아이도 그 무렵 생겼다. 철수씨는 둘째를 복덩이라 불렀다.“그 녀석이 생기면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아요. 첫째는 아빠 엄마와 함께 고생해서 정이 가고 둘째는 좋은 일 생기면서 나와 좋고요.” 수입의 일정한 돈만 내면 나머지 돈은 생활비로 가져갈 수 있게 된 철수씨는 “열심히 일하면 많은 돈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됐어요. 이제 작은 집을 마련해 보려고 적금도 넣고 있습니다.”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체험, 삶의 현장(KBS1 오전 9시) 2007년 한 해 동안 명사 및 유명 연예인 150팀,294명이 모은 정직한 땀의 결실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홍렬·박주아 MC가 주축이 된 체험봉사대가 쪽방촌과 장애영아원을 찾아 작지만 큰사랑을 더불어 나누고 돌아온다. 한국전력사회봉사단,CJ푸드시스템 봉사단, 파주시 봉사단 등이 함께 참여해 온정의 열기를 더한다.●두뇌왕 아인슈타인(KBS2 오전 10시40분) 방송가의 베테랑 재치 입담꾼 이지연, 거침없이 톡톡 튀는 소탈한 이정민, 상상플러스의 똑 부러지는 안방 마님 최송현, 아나운서계의 반듯하고 듬직한 훈남 조우종.KBS 간판 아나운서들이 총출동해서 다채로운 개인기를 펼쳐보인다. 두뇌왕 아인슈타인에 도전할 최고의 아나운서는 누가 될까.●늘푸른 인생(MBC 오전 6시10분) 2007년 한해 동안 뽀빠이가 찾아간 곳은 충북 옥천군 옥천읍 소정마을부터 충남 공주시 의당면 월곡마을까지 모두 51곳. 전국 방방곡곡의 노인들을 만나뵙고 재미와 감동, 삶의 지혜까지 배울 수 있었다. 안방을 훈훈하게 덥혀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하며 이 해를 마무리해 본다.●퀴즈 육감대결(SBS 오전 10시50분) 적극적인 스킨십을 선보인 신정환 강수정. 오누이 커플, 조형기와 메이비. 환상의 커플, 김나운 조원석. 웃음으로 모두를 교란시키라는 특명을 받은 전원주, 한 영. 청춘스타 변진섭, 김혜림, 신지.12명의 스타들이 왁자지껄 퀴즈대결을 펼친다. 올해 최후의 육감왕은 어느 커플이 될 것인지?●사랑의 공부방-네발 자전거(EBS 낮 12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밴드부를 꾸려온 경기도 안성시 행복나눔 지역아동센터. 연주 도중 줄이 풀리는 낡은 악기에도 만족하며 꿈을 키우던 아이들에게 전하는 네발자전거의 따뜻한 선물은 최신형 악기다. 힘을 얻은 아이들이 한스밴드와 함께 노인 요양시설을 찾아가 환상의 공연을 펼친다.●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산업과 교통 수단이 지구 온난화의 주된 원인으로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다른 측면도 크다. 대기로 배출되는 온실 가스의 약 4분의1이 삼림 벌채 등 무분별한 토지이용 변경으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지구 온난화에 삼림 벌채가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벌채 방지를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해본다.●싱싱일요일(KBS2 오전 8시) 강원 양양 최종대·박소연 부부. 최씨는 대본만화를 그리던 만화가였다. 그러나 2000년 갑작스레 강원도 양양으로 내려갔다. 장모의 전통 장(醬)사업이 잘 되지 않자 급하게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졸지에 장모로부터 장담그기를 배우게 된 그는 이제 만화보다 장맛에 더 이끌리게 되었다는데….●너나들이(MBC 오후 1시10분) 정년퇴직을 앞 둔 이현우 아나운서(1977년 입사)와 1977년에 태어난 최윤영 아나운서, 새내기인 문지애, 손정은, 허일후 아나운서의 토크가 이어진다. 김정근 아나운서가 공개하는 생방송 중 NG 뒷이야기들이 재미있다.2008년 방송 신고식을 할 새내기 아나운서 4명도 첫선을 보인다.
  • [新 인디아 리포트] (3) 존경받는 재벌, 타타그룹

    [新 인디아 리포트] (3) 존경받는 재벌, 타타그룹

    |뭄바이(인도)최종찬특파원|인도에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채색돼 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재벌이 있다. 바로 타타 그룹이다.‘인도의 제너럴 모터스’로 불리는 인도 최대 기업인 타타는 그룹 이익의 66%를 사회에 환원한다.300원을 벌면 200원을 기부한다는 창업주 잠세트지 나사르완지 타타(1839∼1904)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8개의 재단을 통해 학술, 예술, 의학 등 전방위 분야를 지원한다. 특히 교육과 빈민구제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왔다. ●1868년 섬유무역회사로 출발 타타가 사회사업에 올인하는 것은 종교와 관련이 깊다. 잠세트지는 조로아스터교 성직자 집안 출신이다. 배화교 또는 파시교로 불리는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6세기경 이란에서 조로아스터가 창시했다. 신자들 일부는 8세기경에 이슬람교도들의 박해를 피해 인도 구자라트주로 들어왔다. 당시 그들은 인도 정부에 자기들은 우유에 녹는 설탕처럼 달콤하게 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약속대로 사회공헌을 많이 해왔다. 잠세트지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종자돈 2만 1000루피(약 49만원)로 1868년 섬유무역회사를 차려 그룹의 기초를 세웠다. 인도 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생전에 “지역사회는 기업의 존재이유 바로 그 자체”라며 지역사회 공헌을 강조했다. 말년인 1898년 영국을 이겨보겠다며 인도과학원 설립을 위해 재산의 절반을 기부했다. 인도과학원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했다. ●의학·학술 등 8개재단 통해 나눔 실천 창업주의 종손자로 1991년부터 4대 그룹회장을 맡고 있는 라탄 나발 타타(70)도 창업주의 유지를 받들어 사회사업에 열심이다. 미국 코넬대서 구조건축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2년에 타타스틸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그룹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올해 영향력이 큰 재계지도자 25인 가운데 23위에 올랐다. 독신으로 조로아스터교도인 그는 다른 그룹 회장들과는 달리 소박한 생활을 한다. 뭄바이의 방 3개짜리 아파트에 살며 비서 없이 운전사만 데리고 다니며 타는 차량도 소형이다. 후계자로 전문경영인을 지정할 것이라는 그는 “타타 그룹은 경제적 이익에서 나아가 인도 경제 부흥을 견인하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며 국민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직원들 중에는 조로아스터교도가 많다. 복지수준도 세계 최고다.1912년부터 8시간 근무제를 도입했고 1915년부터 무료 의료지원을 실시했다.1917년엔 직원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설립했고 1920년부터 유급휴가를 실시했을 정도다. ●모터스 등 계열사 96개 ‘재계 선두권´ 직원들의 만족도도 상한가다. 뭄바이 월리지역 그룹종합전시관에서 근무하는 타타 인터내셔널 IT주임 스르우쿠마르(26)는 “월급이 1만 5000루피”라며 “최고 기업에서 일할 수 있어 나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같은 회사의 셰르나바즈 J 콜라(51) 사장실 비서실장은 “타타의 매출과 이윤을 보면 인도 경제의 성장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내수 중심에서 벗어나 국제화시대에 걸맞게 국제시장 공략에 총력을 펴고 있다.”며 그룹의 중역답게 말했다. 길을 가는 인도인을 잡고 물어 보면 열에 아홉은 타타에 호감을 표시했다. 연방중앙은행 홍보관 라디카는 “타타는 인도의 아이콘이다. 그룹의 역사가 깊고 전문 경영으로 국민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준다.”고 말했다. 직장인 수욕(28)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도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금 타타와 그룹 서열 1위를 다투고 있는 정유·전력그룹인 릴라이언스는 그룹의 발전만 챙기고 사회사업을 소홀히 해 비난을 산다. 특히 무케시 암바니(50) 회장이 뭄바이 알타몬트 거리에 여섯 식구가 살 집으로 27층(높이 173m로 실제론 60층 크기)짜리 초호화 저택을 내년까지 짓기로 해 구설수에 올랐다. 대학생인 하르딕 요기(20)는 “빠르게 성장하나 위험한 기업”이라고 말했다. 정희요기박(43)은 “신용 없고 고객을 속이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그룹도 결국 타타처럼 사회사업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타타가 만들어 놓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siinjc@seoul.co.kr ●타타 그룹 그룹 전체 종업원은 28만 9500명이다. 매출은 2006∼2007 회계연도에 288억달러로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3.3%를 차지했다. 타타모터스, 타타스틸 등 9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중 27개사는 뭄바이 증시에 상장돼 있다. 최근 5년간 39개 국내외 대기업을 인수했다. ■라이 타타모터스 홍보부장 “내년 200만원대 승용차 나온다” |뭄바이 최종찬특파원|“서부 벵골주에 세계에서 가장 싼 자동차 전용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타타그룹 종합전시관에서 만난 인도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인 타타 모터스의 홍보부장 데바시스 라이(42)는 야무지게 생긴 인상처럼 공격 마케팅의 전략을 소개했다. 10만루피(약 236만원)면 살 수 있고 4∼5명이 타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차량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라이 부장은 “신차의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연간 25만대를 생산할 예정이며 2008∼2009년에 첫 차를 출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타 모터스는 최근 급성장을 지속하며 세계 자동차업계의 기린아로 떠오르고 있다. 승용차 부문에서 스즈키마루티, 현대에 이어 3위,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포함하면 스즈키마루티에 이어 2위, 트럭과 버스를 포함하면 1위다. 상용차 부문에서는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타타 모터스는 한국에도 낯익은 기업이다. 지난 2004년 3월 대우상용차(옛 대우차 군산공장)를 인수했다. 당시 인도 언론은 “인도 경제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군산에서 한국과 합작으로 상용차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2004년 6월부터 대형트럭 노부스에 이어 2005년 12월부터 중형 트럭인 노부스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노부스는 반응이 좋아 5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 일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 역사가 140년이나 되는데 비자금이 없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룹 윤리규정에 의해 검은 돈은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며 “사업이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받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siinjc@seoul.co.kr ■100년 전통 재래시장 크라포드를 가다 |뭄바이 최종찬특파원|뭄바이 남부 경찰본청 인근의 크라포드마켓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영국이 식민통치하던 시절에 생겼으니 역사가 100년을 넘는다. 시장 입구에서 남루한 차림의 행상들이 액세서리류를 어깨에 두르고 연신 “사요! 사!”를 외쳤다. 시장은 인도 최대의 명절인 디왈리를 맞이해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어깨를 부닥치지 않고는 걸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손님을 태운 택시와 물건을 잔뜩 실은 인력거가 사람의 장막을 천천히 뚫고 지나갔다. 시장이 폭발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인도 최고 명절 ‘디왈리 특수´ 북적 인도 경제의 호황 덕에 지갑이 두툼해진 시민들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디왈리 때 사용될 알록달록한 촛불과 폭죽이 가장 인기 있었다. 시장 건물에서는 형형색색의 사리 옷감을 파는 매장이 눈길을 끌었다. 물건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1루피로 살 수 있는 사탕에서부터 1500루피를 호가하는 이탈리아산 신발까지 다양했다.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려면 세 가지 각오를 해야 한다. 소매치기를 피하려면 지갑을 조심해야 하고 삐끼에게 괴롭힘을 안 당하려면 인상을 써야 한다. 험상궂고 단호한 표정으로 “노”라고 말해야 한다. 또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소매치기·삐끼·바가지 등 3가지惡 조심을 호텔에서 신을 슬리퍼를 하나 살 요량으로 신발가게에 들어갔다. 제법 규모가 번듯한 가게엔 다양한 가격대와 품질의 신발이 전시돼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삐끼 경력 35년차인 회교도 아슬림(53)은 “매일 10만여명이 시장을 찾는다.”며 “하루에 손님 2명을 데려다 줘 100루피를 받는다.”고 털어놨다. I자형의 시장을 순례하며 가격 비교를 한 끝에 슬리퍼를 산 최용익(53)씨는 “재래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왔는데 실상은 다르다.”면서 “직원이 정찰제라고 우기는 바람에 한 푼도 깎지 못했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siinjc@seoul.co.kr
  • 재계 총수들 ‘새해 도약’ 드라이브

    재계 총수들 ‘새해 도약’ 드라이브

    무자년(戊子年) 새해를 앞두고 그룹 총수들의 보폭이 커졌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모처럼 공개석상(경제인 간담회)에 나온다. 지난 9월19일 청와대 대·중소기업 상생회의 이후 석달여만의 ‘외출’이다. 내년 투자규모나 경영환경 등에 대해 언급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 공개석상 등장 이 회장은 삼성사태가 불거진 뒤 선친의 20주기 추모제에도 불참하는 등 칩거해 왔다. 신년하례식(2일)과 생일잔치(9일)도 줄줄이 취소했다. 간담회를 계기로 분위기 반전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새해 벽두부터 ‘판매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연내에 임원인사를 단행한 뒤 새 진용으로 글로벌 판매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2일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주요 계열사 경영진 300여명과 시무식을 겸하는 새해 인사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경제인 간담회 참석과 관련,LG측은 “대통령 당선자의 행사여서 참석하는 것”이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대한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내비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같은 날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신년 교례회를 갖는다. 일본에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조만간 귀국, 다음달까지 국내에 머무르며 새해 경영계획을 점검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내년 화두로 ‘500년 지속 경영’을 내걸었다. 새해가 밝기 무섭게 그룹 신입사원(5일) 및 아시아나항공 직원들과(6일) 잇따라 등산을 한다. ‘보복폭행’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김승연 한화 회장도 그룹 경영을 본격적으로 챙기고 나섰다. 신년 하례식(2일)에도 직접 참석한다. 내년 2∼3월로 거론되던 그룹 인사도 다음달로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현정은 회장,‘MB간담회’ 초대 못받은 이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연휴 기간에 서울 성북동 자택에 머물며 대북사업 등을 점검한다. 내년 4월 백두산 관광이 시작되는 등 현안이 수북하다.28일 경제인간담회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초대받지 못해서다. 전경련측은 “회장단 위주로 초청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전경련 회장단이 아닌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초대받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재계 서열이 한참 뒤인 동국제강(25위) 장세주 회장이 초대받았다는 점에서 그룹 규모 순도 아니다. 현대는 재계 서열 17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소극적인 대북정책 의지로 해석하는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이를 의식, 현대는 비공식적으로 전경련측에 ‘초대 기준’을 문의했지만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현 회장이 계열사 대표이사 직함이 없는 것도 초대받지 못한 이유로 해석된다. 어찌됐든 현대로서는 당선자의 대북정책 의중을 직접 탐색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 아쉬워하는 눈치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KBS드라마 美서 구매 제의

    안방극장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KBS 2TV 수목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극본 정유경, 연출 표민수)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될 가능성이 있다고 26일 제작사 김종학프로덕션 측이 밝혔다. 김종학프로덕션 측은 “미국의 에이전트인 SM엔터테인먼트가 리메이크 판권 구매를 제의해 왔다.”면서 “현재 판매가 등 세부사항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미국의 수입사는 살인 전과자의 사랑 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에 관심을 보이며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관훈클럽 총무에 김형민 SBS앵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총무 이재호)은 2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총회를 열고 2008년도(제55대) 총무에 김형민(51) SBS 앵커를 선출했다.김 신임 총무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MBC에 입사한 후 1991년 SBS로 옮겨 파리특파원,‘SBS 8 뉴스’ 앵커,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보도제작1부장과 ‘SBS 토론 시시비비’ 앵커를 맡고 있다.
  • ‘우수 가업승계 기업인’ 강상훈·김희웅 사장

    한 우물을 판 뚝심있는 경영인 2명이 ‘우수 가업승계 기업인’으로 뽑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5일 강상훈(44) 동양종합식품 대표이사와 김희웅(38) 혁신전공사 사장을 가업승계 모범 기업인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2005년 식품업체인 동양식품산업을 물려받은 강 대표는 신제품 개발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취임 당시 174억원이던 매출액이 지난해엔 191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노사문화우수기업으로 뽑히기도 했다. 김 대표는 철도신호제어시스템 생산업체인 혁신전공사의 창업주 2세대다.2005년 취임했다. 부설 연구소를 세우는 등 기술 및 최첨단 제품개발에 공을 들였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전기공사 현장을 누비는 등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NHK 신임회장에 후쿠치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공영방송인 NHK 경영위원회는 25일 임기가 만료되는 하시모토 겐이치 회장의 후임에 후쿠치 시게오(73) 아사히맥주 전 회장을 선출했다.NHK 회장에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는 지난 1989년 미쓰이물산 회장 출신인 이케다 요시조 회장 이래 19년 만이다. 내년 1월25일 취임하는 후쿠치 회장의 임기는 3년이다. 후쿠치 회장은 57년 아사히맥주에 입사,99년 사장,2002년 회장, 지난해 3월 고문격인 상담역을 맡고 있다.hkpark@seoul.co.kr
  • 박종수 우리투자證 사장 연임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우리투자증권은 24일 이사회를 열고 내년 1월20일 임기가 끝나는 박 사장을 차기 사장 후보로 결의하고 다음달 15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확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1970년 외환은행 행원으로 입사한 뒤 헝가리 대우뱅크 행장, 대우증권 사장,LG투자증권 사장 등을 역임했다.2005년 4월에 LG투자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합병하면서 우리투자증권 사장으로 선임됐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곽영완 전 ‘서울신문’ 체육부장 골프에세이집 ‘108㎜’ 출간

    골프 전문기자 출신이 현장 취재의 경험을 녹여낸 골프 에세이집 ‘108㎜ 홀컵을 정복하다’가 출간됐다. ‘LPGA & PGA 코리아군단 성공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현재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은 물론 세계 골프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수많은 골프 스타들을 골프팬들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재미있고 깊이 있게 분석했다. 한국 골프와 골프 일반에 대한 정확하고 풍성한 내용들도 덤으로 곁들여져 있다. 저자 곽영완씨는 지난 1988년 스포츠서울에 입사, 서울신문에서 체육부장을 지낸 뒤 골프 전문기자로 일하다 현재는 홍보마케팅 전문회사인 나스커뮤니케이션 이사로 재직 중. 곽씨는 “박세리가 LPGA 투어에 진출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골퍼들의 성과와 의미를 담은 책 한 권쯤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저술 동기를 밝혔다. 그린 홀컵의 지름 108㎜를 불교의 ‘백팔번뇌’에 비유해 제목으로 살려낸 이 책은 미국 투어 무대 현장 취재 경험을 기자 특유의 글 솜씨로 생생하게 전달한 것이 특징.308쪽으로 이뤄진 전체 3부 가운데 1부에서는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을 주로 다뤘고,2부에서는 세계적인 유명 골퍼들의 ‘그린 인생’을 조명했다.3부에서는 평소 언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골프계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향후 변화의 물결까지 조망하고 있다. 다할미디어.1만 2000원.
  • [20&30] 2007년 당신을 뒤흔든 신드롬

    [20&30] 2007년 당신을 뒤흔든 신드롬

    젊은이들은 올해도 숱한 분야에서 신드롬을 생산하고 또 즐겼다. 체감 경기는 어려웠지만 주식·펀드 열풍이 불어 재테크 신드롬이 일었고, 사회적으로는 신정아씨에게서 촉발된 거짓학력 신드롬이 불었다. 또한 대선 정국에서는 주요 후보보다 오히려 황당한 공약을 내세운 허경영 후보에게 관심을 더 가졌다. 여성들은 레깅스와 미니스커트로 대표되는 패션트렌드를 2007년의 신드롬으로 꼽았다. 주몽,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사극과 좌충우돌 ‘무한도전’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2007년 7개의 신드롬을 짚어 본다. 류지영 이경주 신혜원 장형우기자 superryu@seoul.co.kr 1 미니스커트·윤은혜 머리… 패션 신드롬 그동안 다리가 통통해 치마를 입지 못했던 대학생 박모(22·여)씨는 올해 불어닥친 미니스커트 열풍과 함께 과감하게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일주일에 2∼3번씩이나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는 박씨는 레깅스의 ‘맛’을 알면서 미니스커트와 레깅스가 한국 패션 사상 최고의 ‘궁합’이라고 격찬한다. “스타킹은 조금만 날카로운 것에 긁혀도 바로 줄이 나가거든요. 그런데 레깅스는 두꺼우니까 못에 긁혀도 끄떡없어요. 또 미니스커트만 입으면 ‘너무 야해서 다른 남자들이 쳐다본다.’며 남친의 구박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레깅스와 함께 입기 시작한 뒤로는 아무 말이 없어요. 따뜻하기까기 하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어요. 미니스커트와 레깅스 조합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긴 머리만 고집하던 쇼핑몰 운영자 이모(26·여)씨도 올 패션 아이콘인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에게 ‘꽂혔다.’여태껏 긴 머리로만 지내 짧은 머리는 상상도 못했던 이씨지만 드라마에 등장한 윤은혜의 모습에 강한 매력을 느껴 결단을 내렸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은 물론 머리 감기도 훨씬 편하고 강한 인상도 줄 수 있어 앞으로도 이 스타일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란다. “이제 대세는 전지현식 긴 머리가 아니라 윤은혜식 숏커트 머리예요. 긴 머리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게 되는데 머리를 짧게 자르니까 옷도 자연스레 중성적으로 바뀌더군요.” 2 “내 친구도 ‘신정아’류?”… 학력위조 신드롬 대학생 김모(22·여)씨는 자신도 학력위조의 피해자(?)가 된 사실에 아직도 슬픔에 잠겨 있다.1년여 전 소개팅으로 만난 남친은 김씨에게 자신이 서울의 한 명문대 경영학과에 다닌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잘 생기고 매너 있는 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남친이 김씨는 자랑스러웠지만 남친은 늘 석연찮은 이유를 대며 김씨가 학교에 놀러 오는 것을 극구 막았다. 최근 우연히 한 모임에 나갔던 김씨는 남친과 같은 과에 다닌다는 친구를 만나 남친이 그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남친에게 캐물어 확인한 결과 그가 1년 넘게 학력을 속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돼 최근 헤어지게 됐다. “TV에서 학력을 속인 연예인들이 나올 때만 해도 그저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 저를 속였다고 생각하니 앞으로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학원생 최모(32·무직)씨는 최근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려던 계획을 접고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다. 올 한 해 한국 사회를 강타한 학력위조 파문을 보며 누가 뭐래도 한국에서는 미국 박사가 ‘킹왕짱’(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소 비꼬는 의미를 담아 ‘최고’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라는 씁쓸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도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교수임용이 잘 안되더라고요. 저야 그나마 형편이 나아 외국 유학을 준비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국내에서 공부해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3 “웃기지만 씁쓸하기도”… 허경영 신드롬 투표권을 갖게 된 스무살 때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선거에 참여했다며 ‘대한민국 유권자의 표본’이라 자부하는 대학원생 이모(29)씨. 그는 이번 대선에서 허경영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씨의 선택을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이씨는 “다들 네거티브 선거에 빠져 대선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을 때 허 후보만이 유일하게 정책선거로 승부했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물론 IQ가 430이라든가, 당선되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결혼하겠다든가 하는 주장은 어처구니 없지요. 하지만 사상 최악의 대선으로 기록될 이번 선거에서 허 후보는 유일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 즐거움을 주었어요. 물론 다음에 또 나온다면 식상해서 안 찍겠지만요.” 대학생 최모(26)씨는 ‘허경영 신드롬’이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너무 씁쓸하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신혼부부에게 1억원을 주겠다는 현실성 없는 공약이 서민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한국에서 결혼해 집 장만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제대로 된 서민정책을 구현한 적이 있기나 했나요? 재벌과 권력층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서민들은 늘 등골만 휘었죠. 그나마 이번 선거에서는 “국민들을 섬기겠다.”고 호소하는 대선주자들의 최소한의 예의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허 후보의 비정상적 인기는 우리 국민들이 정치를 얼마나 불신하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요.” 4 “집 사려면 대학 때부터 시작해야”… 재테크 신드롬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김모(24)씨는 올해 전 세계에 불어닥친 ‘중국펀드’ 열풍에 편승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대학 졸업 뒤 마트에서 일하면서 모은 종자돈 400만원을 지난달 한 증권사의 ‘차이나 펀드’에 쏟아 부었다가 증시가 폭락하면서 한때 120만원 정도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중국 펀드로 자산을 몇 배로 늘렸다는 말에 앞뒤 재보지도 않고 뛰어든 것이 결정적인 화근이었다는 게 김씨의 후회다. “당시에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어떻게 단 며칠 사이에 그렇게 폭락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 돈인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뭉칫돈을 ‘묻지마 투자’한 것이 잘못이었죠.”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최모(27)씨는 올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250만원을 ‘잘 굴려’ 만족스런 성과를 거뒀다. 증권사와 종금사의 자료를 주도면밀하게 살펴 수익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한 금융사에 주식계좌를 개설했다. 결과는 예상 밖 ‘대박’이었다. “투자금이 크지 않아 번 돈의 절대금액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좀 더 활발한 재테크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직장 다니는 친구들도 학생인 제게 ‘어떻게 투자했냐.’고 물어요. 이제는 근로소득만으로 집 장만하는 게 힘들잖아요. 최근 대학생들에게까지 재테크가 번진 것은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 아니겠어요.” 5 대조영에게 사로잡혔어요… 사극 신드롬 사극 마니아 김모(32)씨는 사극이 2007년 자신의 삶을 거의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요즘 월·화요일은 ‘이산’을 보고, 수·목요일에는 ‘태왕사신기’를 본 뒤, 토요일에는 ‘왕과 나’ 재방송을 보고, 토·일요일 밤에는 ‘대조영’을 봤다.”고 소개했다. 사극에 꽂혀(?) 살다 보니 말투도 변했다. 한 번은 “부인∼ 물 좀 떠오시오.”라고 했더니 아내가 “내시 주제에….”라고 맞불을 놓더라는 것. 그뿐이 아니다.“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발해를 세운 사람이 누구냐는 시험문제에 답을 ‘최수종’ 이라고 썼대요. 그런데 조카 친구는 더 웃겨요. 그 녀석은 ‘동명천제단’이라고 썼대요. 사극의 위력이 참 대단해요.”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김모(30)씨는 “고시생시절 사극이 공부에 최고의 적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사극이 가장 큰 위로가 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남들은 미드(미국드라마)·일드(일본드라마)가 재미있다고 하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역시 ‘사드(사극 드라마)’가 최고라는 게 김씨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김씨가 요즘 가장 재미있게 보는 사극은 ‘이산’이다. 정조가 영조의 대를 이어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산’은 대선정국과 맞물리면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김씨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했다. 6 복고 음악과 복고 댄스의 귀환… 텔미 신드롬 지난 8월에 입사한 새내기 직장인 양모(25·여)씨는 소녀 그룹 원더걸스가 부른 텔미가 신드롬을 넘어 광풍 수준이었다고 믿는다. 최근 송년회에서 양씨를 포함한 5명의 여성 신입사원은 텔미 춤으로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전문적인 춤선생님까지 대동하고 매일 자정까지 안무실을 드나든 결과 송년회에서 남녀노소를 대동단결(?)시켰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장기자랑 경연대회였지만 흥이 난 직원들이 무대로 난입해 ‘테테테테텔∼미!’에 열광했고, 나이가 지긋한 사장도 어색한 입을 연신 벙긋거렸다. “모두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뮤지컬’을 준비한 팀에 이어 아쉽게 2등을 했지만 사내에서 원더걸스만큼의 인기를 누렸어요. 뭇 남성들에게 데이트 신청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한 친구의 회사는 10개팀 중 7개팀이 텔미 공연을 해서 지겨웠다고 하네요. 신년회에는 새롭운 아이템을 구상해야겠어요.” 입사 2년차 민윤철(30·회사원)씨는 회사에서 ‘텔미 춤 강사’로 통한다. 대학시절 몸담았던 동아리에서 텔미춤을 배운 민씨는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동영상을 따라하는 등 끝없는 연습 끝에 송년회 때 노래방에서 성과를 얻었다. 민씨는 “광란의 노래방 공연 다음날 평소 지엄한 과장이 조용히 불러 강습을 요청했다.”면서 “최근에는 점심시간에 회사 옥상에서 남자 직원들을 대상으로 텔미 강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7 무모한 도전에 주말이 즐거워… 무한도전 신드롬 대학생인 배모(25·여)씨는 모 방송국의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만든 신드롬의 결정체는 단순한 웃음보다 ‘노력과 결실의 감동’에 있다고 믿는다. 배씨가 꼽은 무한도전의 명도전은 ‘셸위댄스’였다.“무한도전 출연 멤버들이 공식 경연대회에서 춤을 춘 뒤 어린아이처럼 우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유명 연예인들이 어렵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저들도 보통사람과 똑같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씨는 몸치인 유재석도 자이브를 거의 완벽하게 추는 것을 보고 그 다음날 스포츠 댄스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 선생님에 따르면 무한도전 셸위댄스편이 방송된 이후 수강생이 10% 정도 늘었단다. 배씨는 “2008년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또 끈기있게 해내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27)씨의 무한도전 사랑도 끝이 없다. 그가 올해 초 3개월 동안 캄보디아에 있을 때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애인이 아니라 무한도전이었다. 그는 귀국한 날부터 3개월 동안 밀린 무한도전 프로그램을 하루 종일 시청했다. “내년에도 6개월을 캄보디아에서 보내야 하는데 무한도전을 못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네요. 여자친구에게 CD로 만들어서 보내 달라고 해야겠어요.” 김씨는 토요일 밤에는 약속을 잡지 않고 일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무한도전을 보면서 푼다.“지난달 말 맥주에 안주까지 장만해 놓고 무한도전 시작을 기다리는데 재미가 전혀 없는 축구 중계를 하더라고요. 제발 토요일 저녁에는 스포츠 중계를 삼가 주세요. 무한도전은 재방송으로 보면 맛이 떨어져요.”
  • 김지연 아나 ‘1월의 신부’

    SBS 김지연(29) 아나운서가 내년 1월25일 서울 W호텔에서 화촉을 밝힌다. 상대는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동갑내기 회사원 정정구(29)씨.2001년 SBS에 입사한 김 아나운서는 ‘모닝와이드’‘한밤의 TV연예’를 거쳐 현재는 ‘뉴스퍼레이드’‘스포츠 중계석’‘접속 무비월드’와 라디오 ‘김지연의 뮤직하이’의 진행을 맡고 있다.
  •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 정치 입문~청와대 입성 ‘정치인 이명박’이 걸어온 길은 ‘기업인 이명박’과 달랐다. 현대그룹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하며 달려온 출세가도가 아니었다. 좌절을 맛보기도 했고,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도 했다. 정치무대를 떠나 전공인 건설이 아닌 금융분야에서 제2의 신화를 꿈꾸다 여의치 않아 접고는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도약기를 거쳐 최고 권좌에 오르게 됐다. ●현대와의 결별… 정치 입문 그는 ‘왕 회장’으로 불리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을 만류하면서 현대그룹과 결별하게 된다. 이후 왕 회장의 상대 진영인 김영삼(YS) 진영으로 합류, 지난 1992년 14대 총선 때 전국구(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1995년 지방선거 때 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YS가 밀던 정원식 전 국무총리에게 패하고 만다. 첫번째 정치적 시련이었다. 그 이듬해 15대 총선을 준비하며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다. 여당의 중진 이종찬 국민회의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98년 이 당선자는 다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총선 때 적발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아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했다. 당시 비용 초과 지출을 폭로했던 김유찬 당시 비서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되면서 “이명박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서울시장으로 화려한 재기 이후 2년간 미국에서 ‘정치 방학’을 보내며 와신상담하다가 2000년 귀국해 정치 재개에 나섰다.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한나라당에서 5선의 중진 홍사덕 의원과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쟁해 후보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본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를 꺾으면서 세번째 서울시장 도전만에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때 내건 청계천 복원과 시내 5개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중앙차로제 도입을 내걸었다. 막상 당선되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주변에선 적잖이 만류했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4년 만에 해결했다.‘제2의 신화’는 ‘청계천 신화’로 이어지면서 대선 주자로서 주목받게 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지독한 경선 2006년 6월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 당선자는 다시 여의도 정치로 들어온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는 그가 살아온 세상과 달랐다. 한나라당의 벽은 높고 높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당내에서 철옹성을 세우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보다 높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는 높기만 하던 당심을 허물기 위해 민심을 공략했다.‘한반도 대운하’ 등의 공약과 성공한 경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며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그 해 추석 전후로 북한의 핵 실험 후 지지율 40%를 돌파,‘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경선룰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측과 사사건건 갈등하며 극한의 대치에 이르기도 했다. 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로 돌파해 나갔다. 이상득 부의장의 동생 평이다.“내가 명박이보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나도 대기업(코오롱) 최고경영자(CEO)까지 해봤다. 하지만 명박이에게는 나에게 없는 게 하나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 담대하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명박이는 그걸 가지고 있다.” 그는 땅 투기 의혹과 ‘도곡동 땅’ 차명 의혹,‘BBK 주가조작 의혹’ 등 ‘지독한 경선’을 거쳐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다. 박 전 대표와 불과 2452표차(1.5%)밖에 나지 않는 신승이었다. 그나마 현장 투표에서 500여표 뒤진 것을 여론조사에서 뒤집었다. ●더 지독한 본선…‘BBK 공세’와 김경준의 귀국 경선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주요 당직을 놓고 친박(친 박근혜)과 친이(친 이명박)의 갈등은 계속됐다. 박 전 대표가 ‘오만의 극치’라고 직격탄을 쏜 최측근 이재오 최고위원은 물러나야 했다. 여권의 ‘BBK 주가조작’ 공세도 거셌다. 자녀들의 ‘위장 전입’과 위장취업으로 한때 이 당선자는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와의 틈새를 파고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회창 후보는 “불안한 후보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며 박 전 대표에게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당선자도 박 전 대표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며 “도와달라.”고 SOS를 보냈고 박 전 대표는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이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BBK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당선자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나가 수사를 받았고 본인도 서면조사를 받았다. 급기야 대선을 한달 앞두고 ‘BBK 의혹’의 당사자인 김경준씨가 범죄인 인도 송환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대선판은 요동쳤다. 검찰수사 결과 ‘BBK 주가조작’에 이 당선자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여론은 냉정했다. 검찰의 무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BBK와 이 당선자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여론이 출렁거렸다. 이 당선자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운다. 부부가 살 집 한채 빼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오랜 기업인 생활을 끝내고 공인으로 나섰던 10여년 전부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작정했다.”며 “재산 환원은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면서도 아들을 바르게 키워 주신 어머니와의 약속이자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당은 소위 ‘이명박 특검’을 내세워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높였다. 여야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며 극한 대치를 이뤘다.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밤 11시30분에 대선후보 TV합동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격적으로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고비와 시련마다 과감한 승부수로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9일은 공교롭게도 이 당선자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대통령 당선으로 세번째 축하 케이크를 받게 됐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유년기~현대건설 회장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상 처음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당선자는 만 35세인 1977년 현대건설 사장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월급쟁이’들의 우상으로 통했다. 기업인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그는 92년 정계입문 후 시련을 딛고 마침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기업생활 27년, 정계입문 15년 만의 일이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등으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했지만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가난과 싸웠던 소년 시절 소년 이명박을 키운 건 가난과 어머니였다. 목장 목부로 일하던 이충우씨의 4남 3녀 중 다섯째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상(相)자 돌림이지만 본인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시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다.”고 설명했다. 족보에는 ‘상정’(相定)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소년 이명박은 가족들과 함께 1945년 11월 귀국선에 오른다. 하지만 배는 쓰시마섬 앞바다에서 가라앉고 말았다. 가족들은 구조됐지만 살림살이와 짐은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맨몸뚱이만 귀국했다. 고향에 대한 첫 기억은 포항 시장통의 가난이었다.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가난이 굴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 들러 붙었다.”고 말했다.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학교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 때 영양실조로 쓰러져 넉 달간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등록금을 가져오라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린 이명박은 철들기도 전에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좌판을 벌였다. 김밥, 풀빵, 엿, 아이스크림, 뻥튀기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생활비를 벌었다. 어머니는 엄격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가난했지만 자식들을 당당히 키웠다. 자식들에게 “정직하다면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새벽 4시면 가족들은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심부름으로 이웃집 일을 하러 가더라도 어머니는 어린 이명박에게 “물 한모금이라도 얻어 먹으면 안 된다. 음식을 준다고 받아 와도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다. 가난은 그의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군의관은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준다.”고 병역 면제 처분을 내렸다.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집에 돌아온 막내아들을 부둥켜 안으며 “내 자식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팽개치고 있었구나.”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엄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이명박은 그 때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 시절 6·3사태로 옥고 그에게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집에서는 막내아들의 고교 진학도 말렸다. 집안의 기둥 작은형(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학비를 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학비는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동지상고 야간부에 수석 합격했다.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가족들은 상득이형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 이태원으로 이사갔다. 이 당선자는 이태원 재래시장 환경미화원으로 돈을 벌며 살림에 보탰다. 하지만 학업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돈이 없어 중퇴하더라도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낫지 않겠나.”하고 생각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수험서를 사서 입시를 준비, 고려대 상대에 붙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이태원 시장 상인들이 새벽에 쓰레기 넝마주이 일을 맡겨준 덕에 학비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64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며 6·3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죄목은 내란선동죄였다. 어머니는 그가 구속됐을 때도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라.”고 가르쳤다. 출소 후 한달 여 만에 인생의 스승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는다. 그는 “돈 벌면 어머니에게 새옷 한벌 사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말하곤 한다. ●현대그룹 입사… 초고속 승진 거듭 청년 이명박은 여느 운동권 출신과 달리 정치권이 아닌 기업을 택한다. 운동권 출신의 취직은 쉽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발목을 잡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나라가 열심히 사는 젊은이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편지를 썼다. 결국 박 대통령의 배려로 그는 당시 중소기업이던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왕 회장’으로 불리는 오너 정주영 회장의 눈에 띄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9세에 이사,35세에 사장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써내려 간다. 그는 종업원 96명의 현대건설을 16만명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현대그룹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오너가 정해 주는 목표치를 항상 초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오너와 경쟁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기업인 시절 ‘왕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에피소드도 많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 각목과 칼을 든 폭도들에 맞서 금고를 지킨 ‘태국 금고 사건’은 그 중 하나다. 현대건설 과장 시절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불도저가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기술자들이 텃새를 부려 공사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명박 과장은 밤새도록 불도저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구조를 익혀 나중에는 불도저를 직접 몰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웃들은 현대건설 사장과 살고 있는 부인 김윤옥씨를 가리켜 “세컨드(둘째부인)아니냐.”고 뒷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사업상 건설부 장관실을 방문했을 때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이 당선자를 장관실로 안내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이 당선자가 따지자, 장관 비서는 “사장 비서를 어떻게 장관실로 모시냐. 빨리 사장 데려 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에 27년 동안 몸담으면서 주요 계열사 10개사의 사장 및 회장을 역임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초·중·고 학적부 열어보니 궁핍했던 시절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초·중·고교 성적은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행동발달사항에 “그림을 좋아한다.”라는 평이 인상적이다.2학년 때는 담임교사로부터 “경솔하다.”는 평도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결석이 없었지만 4학년에서 6학년까지는 몸이 아파 결석하는 일이 잦았다.4학년 때 16일,5학년 때 5일,6학년 때 32일을 병으로 결석했다. 이 당선자측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실조 탓으로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도 질병으로 인한 결석이 많았다.1학년 때는 결석이 74일에 이른다. 담임 교사로부터 “명랑하고 온순하다.”는 평을 받았다. 동지상고 시절에는 지금처럼 석차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당선자는 성적이 가장 안 좋았을 때가 3등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장래 희망으로 ‘관리’(官吏)를 썼고, 이 당선자의 부모도 ‘본인과 동일’이라고 기재했다.‘취미 또는 특기’란은 영어로 적었다.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특기는 ‘체육(탁구)’이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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