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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 하반기 4000명 채용

    LG 하반기 4000명 채용

    LG는 올 하반기에 대졸신입 900명, 경력 400명, 기능직 2700명 등 총 4000명을 채용한다고 24일 밝혔다. 기능직 채용인력 가운데 1600명은 고졸인력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LG의 올해 채용규모는 입사 기준으로 상반기 1만 3000명을 포함해 연초 계획대로 모두 1만 7000명에 달한다. 이는 연간 채용인원이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선 지난해 1만 5000명보다 2000명 늘어난 규모로, 부문별로는 ▲전자 1만 3600명 ▲화학 2100명 ▲통신·서비스 1300명 등이다. 특히 하반기 연구·개발(R&D) 분야 채용 규모는 1000명으로, 올해만 모두 5000명의 R&D 인력을 확충하게 된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스마트 TV, 태양전지, 3차원(3D) 입체영상 등 주력사업과 신성장동력 기술개발에 투입된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고졸채용 열풍에 웃고…울고] “맞춤형 인재” 마이스터고 상한가

    [고졸채용 열풍에 웃고…울고] “맞춤형 인재” 마이스터고 상한가

    전문직업교육을 통한 기술 명장(名匠)의 양성을 목표로 삼은 마이스터고 학생들에게 기업체들이 손길을 내밀고 있다. 기업체들은 원하는 실력을 갖춘 인재를 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학생 입장에서도 학비 무료에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이스터고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2일 STS반도체통신과 보광그룹 본사에서 반도체 조립·테스트 전문인력 육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TS는 오는 10월 전자·기계 분야의 13개 마이스터고 2학년 재학생 가운데 40명을 선발하기로 했다. 채용된 학생들은 방학 때 맞춤형 기술교육과 인턴 과정을 거쳐 3학년 말에 입사할 예정이다. 이른바 입도선매식이다. 학업보조금 200만원도 지급한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12월 교과부와 산학협력 양해각서를 맺고 16개 마이스터고 1학년생 100명을 장학생으로 우선 뽑기로 했다. LG전자도 마이스터고인 구미전자공업고 2학년 50명을 선발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는 앞으로 10년간 마이스터고 졸업생 1000여명을 채용할 방침이다. 기업들이 마이스터고 학생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기업에 맞는 기술을 갖춘 인재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초 전국의 제조업체 33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1.2%의 기업이 졸업생 우선채용 등의 방식으로 마이스터고 학생을 우대하겠다고 답했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기능인력 부족현상이 계속되고 있어 마이스터고에 거는 산업계의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혜택도 적지 않다. 마이스터고는 학비 전액 면제에 기숙사비 지원까지 받고 졸업한 뒤에는 협력 기업체에 쉽게 취업할 수 있다. 성적 우수학생에게는 해외 직업전문학교 연수 기회가 주어지는 데다 남자 졸업생은 최대 4년간 군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올해 초 서울 마이스터고에 합격한 중 3학생의 평균 내신성적이 상위 25%로 지난해보다 6% 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정부도 마이스터고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최근 간담회에서도 “전국 23개 마이스터고는 졸업생 100% 취업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2015년까지 마이스터고를 50개로 늘릴 계획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500여년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도료나 아교 등으로 덧칠을 해 놓아 원래의 ‘모나리자 미소’를 잃은 지 오래다. 만약 무덤에서 다빈치가 일어나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장탄식을 하겠다. 좀 더 오래가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을 놓고 후회막급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고민하는 다빈치에게 우리 전통의 옻칠을 얘기해 주자. 1500년 전의 고구려 벽화나 700여년 전의 팔만대장경 글씨가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 조상의 옻칠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그저 산에 나는 옻을 사용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참에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 그만큼 옻칠은 나무의 결이나 그림을 고스란히 살려 주는 동시에 장구한 세월을 견디는 생명력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옻이란 무엇인가. 옻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옻오리탕’ ‘옻닭도리탕’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또 ‘옻이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알기 위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옻칠 예술가 전용복(58)씨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에 앞서 유명한 일화를 떠올렸다. 지난해 7월이었다. 문화재청이 주최한 ‘전통공예의 산업화·세계화 심포지엄’에서 전씨는 직접 옻칠한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옻을 입힌 제기와 상, 장롱 등은 수없이 보았으나 손목시계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확 주목을 끌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손목시계는 8억원과 3억원짜리 1개씩, 그리고 5000만원짜리 30여개. 4년 전 세이코 시계 회사의 주문을 받아서 시계 금박에 옻칠을 해 영원 불멸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 또 있다. 1991년 11월 13일. 도쿄 시내의 국보급 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1920년대 일본의 고급 문화를 담은 호텔, 연회장, 예식장으로 쓰인 복합 건물)이 오픈되는 날이다. 거기엔 이례적으로 태극기가 휘날렸다. 전씨가 3000여명에 달하는 일본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낸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60년 전 조선의 장인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며, 피와 땀을 흘렸던 과거의 한을 떠올리며 대역사를 재현해 내 일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미술관 엘리베이터나 사계절 산수화 등의 창작품에는 전씨의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은 물론이었다. 서울 화양리 네거리에 위치한 ‘전용복 옻칠예 아카데미’. 자리에 앉으면서 “옻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거봐요, 기자라는 사람이 저러니 참으로….”라고 야단부터 맞았다. “옻은 만년의 신비를 갖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지요. 첫째, 옻칠은 지구상에서 그 어떤 물질보다 오래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둘째, 옻칠은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이므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생성합니다. 셋째, 옻칠은 아름다움을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 줍니다. 옻칠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움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수액을 제공하는 옻나무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 4월 중국 문화부 중외문화교류중심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전용복 칠화전’을 가졌다. 이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축사를 통해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는 중국 땅에서 서양인들이 선망해 오던 칠공예를 아시아 문화 발신의 기점을 만든 전용복 선생에게 큰 기대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걸어간 거대한 발자국이 드디어 대륙 땅에 찍히는 순간 옻칠은 다채롭고 찬란한 아침 햇살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에서 24년을 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가 당당히 중국 문화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진 무대였으니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렸다. 중국 문화부 관계자 뤼진은 “이번 전시는 만년의 빛이라는 테마로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전시를 얘기하는 전씨에게 요즘 무슨 일로 바쁜지 물었다. “서양 가구에 옻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옻칠을 갖고 우리의 생활공간에 어떻게 아름답게 접목할까 하는 것입니다. 4년 전부터 연구해온 것을 구체화하고 있지요. 한국의 전통 옻이 친환경적 소재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전씨는 또 “옻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옻을 이용한 작품 개발 등 순수 예술도 있지만 이제는 일반 서민들도 옻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중화해야 한다.”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화에도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얘기를 하나 꺼낸다. 다름 아닌 오는 11월 세계 유네스코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방한할 때 세계 문화재 보존을 위한 전 세계 투어 전시회 협약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일대와 미국 남미 등에서 옻예술 전시회를 갖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 옻예술이 서양 세계를 향해 떠나는 최초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본에서 귀국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소식을 듣고 한 수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들 중 몇몇이 선발돼 ‘옻칠예 아카데미’에서 작품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수제자로 할 만한 사람은 15명. 전씨는 현재 세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다. 첫 번째는 창작 전시 작품, 두 번째는 주거공간에 쓰이는 생활작품, 그 다음에는 후진 양성을 위한 일이다. 그는 얼마 전 부산 영산대 석좌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올가을 학기부터는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최근에는 가구 회사인 바로크C&F와 협약을 맺어 서양 가구에 우리의 전통 옻을 입히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완성된 물건이 1만년 가는 것은 옻밖에 없습니다. 살균력이 좋고 전자파도 잘 흡수합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산업 부문에도 적용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예술적 접목도 다양할 때가 됐지요. 젊은 작가와 젊은 디자이너, 그리고 우리 공예를 지켜온 사람과 결합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실험작품을 내놓았다. 앞서 얘기한 옻칠한 금속시계뿐만 아니라 비올라·첼로 등 악기에도 옻칠을 했던 것. 특히 피아노의 경우 음향판에 옻칠을 했더니 소리가 무척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완성된 물건에 옻은 어떻게 칠할까. 오묘한 색깔은 어떻게 빚어낼까. “옻나무 수액을 처음 채취했을 때에는 막걸리 색깔과 비슷합니다. 이에 열을 가하면 맥주병 색깔로 변하지요. 이런 정제 과정에서 돌가루를 적당히 섞어 가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옻을 음용하다 보니 옻나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중국에서 수입해야 할 형편입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신 많은 1년에 70t 정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 부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길거리에서 과일과 국화빵 장사를 했다. 연탄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관심을 두었던 것은 동네 어귀마다 자리한 나전칠기 가구나 장롱을 만드는 곳이었다. 화가가 되는 꿈도 꾸었다. 소나무 판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또 손재주가 좋아 목재소에서 헌 나무토막을 주워 와 토끼집이며 개집을 직접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견디며 청년이 돼 해병대에 입대했고 전역한 뒤 목재 회사에 입사했다. 1978년 당시 월급은 57만원. 솜씨가 워낙 좋아 회사로부터 특별 배려를 받았다. 열정과 패기까지 있어 젊은 나이에 기획실장과 디자인 회사 재정까지 맡았다. 잘나가던 그에게 어느 날 ‘전용복식 가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기 마석에 예린공예사를 차렸다.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공예품을 만들어 내려는 뜻에서 예린(藝鱗)이라고 했던 것. 이후 그의 작품은 서울에 있는 고급 가구상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인 부산으로 옮기면서 가구공방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활로를 모색하던 중 도자기 위에 옻칠을 한 ‘와태칠 기법’을 생각해 냈다. 독학으로 1200년 전의 기술을 익히면서 옻칠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가구와는 점점 멀어졌고 순수한 옻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탈바꿈했다. 1986년 한국현대공예미술전에 와태칠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거머쥐는 등 타고난 실력을 발휘했다. 얼마 후였다. 일본인 무역상이 오래된 ‘오젠’ 밥상 하나를 들고 와 수리를 부탁했다. 그 일본인은 도쿄예술대학에서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밥상 윗부분에는 고운 빛깔의 나전으로 두 마리의 학이 아름다운 자태로 입혀져 있었다. 전씨는 새것처럼 깔끔하게 수리를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메구로가조엔 복원 작업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실렸으며 한때 귀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옻칠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혼의 정수(精髓)이자 영원불멸의 유산입니다. 일본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조선의 옻칠장이’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 땅의 옻칠 문화를 되살리는 데 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전용복씨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1년 일본 메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을 3년에 걸쳐 복원해 내 세계적인 옻칠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23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가 1년 전 귀국했다. 지난 4월 중국 정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져 그의 진가를 새삼 입증했다. 그의 이력은 이렇다. 1980년 예린 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3년 일본 한국문화원 초대 전시회, 1986년 한국 현대미술전 대상 수상, 일본 이와테 현 미술공방전 특상(1988),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 표창장 수상(2000), 이와테 현 가와이무라 약사도칠예관 명예관장(2000), 대통령 표창 수상 기념 개인전(2001), 이와테 칠예미술관&동관대표 취임(2004), APEC기념작품전시회(2005), 세계 최고급 옻칠 시계 발표(2008), 온스타일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공동 기획 아트도네이션 작품 기증(2009) 등이다. 현재는 서울 화양리에서 제자들과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활공간에 어떻게 옻을 적용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 “1주일 상영 보장”… 스크린 독과점 사라질까

    “1주일 상영 보장”… 스크린 독과점 사라질까

    2009년 11월 한국영화 ‘집행자’의 교차 상영(한 스크린에서 두 개의 영화를 번갈아 상영)은 영화계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관객 반응이 좋았음에도 교차 상영으로 인해 미국 할리우드 대작 인기에 밀려났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한국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도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다. 개봉 당시 109개 스크린을 확보했지만 1주일 뒤 ‘트랜스포머 3’가 개봉하면서 14개로 급감한 것. 영화진흥위원회가 20일 영화 시장의 과점구조 등을 개선하기 위한 ‘표준상영계약서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어떤 영화든 개봉일부터 최소 1주 동안 상영이 보장된다. 교차 상영은 계속 인정하되, 교차 상영 날짜의 2배를 연장 상영하거나 수익 배분 몫을 더 올려주도록(10%) 했다. 선택은 배급자 몫이다. 조조와 마지막회처럼 관람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영화가 배치되는 불이익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제작·투자·배급사와 극장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수익분배율(부율)은 한국영화(5:5)와 외국영화(서울 6:4, 지방 5:5)에 각기 다르게 적용하던 것을 ▲5.5(제작·투자·배급사):4.5(극장)로 일괄 적용하는 안과 ▲초기에는 배급자가 수익 배분을 많이 받다가 점점 줄이는 슬라이딩 방식을 동시에 제안했다. 영진위는 개봉 첫주에 배급자에게 60~80%의 이익을 주고 상영기간이 길어질수록 부율을 20~40%까지 줄이는 슬라이딩 방식이 블록버스터 대작의 ‘스크린 독과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김보연 영진위 영화정책센터장은 “슬라이딩 방식을 도입하면 배급자들은 개봉 첫주에 최대한 많은 극장에서 동시 개봉해 단기간에 수익을 뽑으려 하겠지만, 상영관 측에서는 스크린을 줄이고 장기상영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에 스크린 독과점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기 종영 시정명령으로 1주일 만에 간판을 내리는 영화는 사라진 데다, 교차 상영도 이미 상영관 측에서 인센티브를 주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것. 슬라이딩 방식 역시 한달 넘게 상영하는 영화가 많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복합상영관의 관계자는 “계약 주체는 극장과 배급사인데 이해당사자와 사전협의 한번 없이 영진위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건 문제 있다.”면서 “영진위 방안대로라면 당초 취지와 달리 시장 왜곡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외화 수입사 배만 불릴 것”이라고 반발했다. 지방 영세극장들은 당장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바짝 든 군기, 직장생활에 큰 도움 될 것”

    “바짝 든 군기, 직장생활에 큰 도움 될 것”

    사진 촬영을 위해서 군복으로 갈아입어 달라는 말에 그녀들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롯데그룹 신입사원 교육 중에 급하게 챙기느라 군화도 가져 오지 않았고 한 명은 전투복, 한 명은 정복으로, 복장도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병도 아니고 장교라 아무렇게 입으면 안 되는데…다 알아보거든요.” ●세상 더 배우고 싶어 군복 벗어 각각 지난해 7월과 올 3월에 대위로 전역한 박지은(29)씨와 류종례(29)씨는 롯데그룹이 대기업 처음으로 실시한 여군 장교 특별 채용을 통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군기’는 아직 빠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만난 이들은 급할 때면 ‘다, 나, 까’로 끝나는 군대식 말투가 튀어나온다고 말했다. 남자 동기생들과 군대 생활은 물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까지 나눌 수 있어 ‘특별 취급’을 받기도 한다. 각각 정보장교로 4년, 정훈장교로 5년을 복무하며 한때 “별 한번 달아보자.”는 꿈도 품었지만 후회 없이 군복을 벗었다. 세상을 더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류씨는 “용산에서 카투사 리더십 교육을 2년 동안 하면서 가르치는 제가 오히려 경험도 부족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좁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취업난에 군인만큼 확실한 직업이 어디 있느냐며 말리는 아버지와 2개월간 싸운 끝에 민간인 신분을 획득한 류씨는 “요즘 동생으로부터 너무 쉽게 취직이 돼 사회와 현실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타박을 듣고 산다.”며 웃었다. 그녀들은 모두 군생활이 삶의 밑거름이 됐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최전방 사단에서 대북첩보 활동을 했던 박씨는 “모든 작전과 훈련은 관련 부대, 부처들의 협조와 조율을 통해 나오는 것”이라며 “군대나 회사나 업무 방식은 똑같지 않겠느냐.”고 자신 있게 말했다. ●브랜드 이름 모르는게 가장 큰 걱정거리 이번에 특채된 여군 장교는 모두 12명. 각자 원하는 바에 따라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홈쇼핑으로 분산 배치되는데 박씨와 류씨는 롯데백화점으로 발령이 나 조만간 점포에서 매장 관리를 담당하게 된다. 류씨는 “10년 동안 남자들과 일하다 보니 여성들과 대화하는 법이나 느낌을 이해하는 데 둔감하다.”면서 “여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대가 크다.”고 설렌 표정을 지었다. 박씨는 “동기들이 넌 군기만 빼면 되겠다고 농담하지만 직장생활에도 군기가 필요하다.”며 “군대에서 배운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오로지 “브랜드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확 달라진 주5일 생활상] 가족과 함께 주말농장·봉사활동 어때요?

    서울 상도동에 사는 강순철(45)씨 가족은 지난해부터 ‘놀토’ 때마다 봉사활동을 다닌다. 강씨는 ‘놀토’가 다가올 때마다 봉사활동 일정을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관련 일정을 찾아본다. 유기견보호소에서 유기동물 돌보기,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하기, 판자촌에 연탄 배달하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봤다. 강씨는 “주말이라고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거창하게 놀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주말에 하는 봉사활동은 여가를 즐길 뿐 아니라 사회에 보탬도 되고, 자녀 교육에도 유익하다.”고 강조했다. 주5일제 근무가 전면 시행되면서 주말을 유익하게 보내려는 직장인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봉사활동, 여행, 운동 등의 활동을 부지런히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말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주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가 인프라를 보다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 여가인프라 확충 선행돼야 주말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족들이 함께 북한산 둘레길 같은 산책코스로 나들이를 갈 수도 있다. 또 자녀들은 지역아동센터에서 마련한 주말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가족들이 주말농장을 찾아 텃밭을 가꾸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도 대표적인 주5일제 활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가 문화가 남의 이야기만 같은 사람들도 있다. 입사 2년차 회사원 정모(26·여)씨는 “5일 내내 술자리에 시달리기 때문에 토요일은 집에서 편히 쉬는게 낫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함께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 효제동에 사는 최모(50·여)씨는 “토요일에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들여 산책이나 나들이를 다녀오고 싶지만, 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는 이상 마땅한 곳을 찾기 힘들다.”고 전했다. ●마을 공터 운동장·산책코스로 김문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점점 핵가족화되는 사회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고 자기계발을 하려는 욕구가 점점 증대되고 있는 만큼, 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여가 인프라가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는 굵직한 문화 및 체육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에 치중해 왔다.”면서 “마을에 있는 공터에 운동장을 만든다거나, 마을 뒷산에 산책 코스를 만드는 등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 안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가 인프라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정부 “통일재원 기금·세금 충당”

    정부가 통일준비에 필요한 재원을 남북협력기금과 세금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라고 정부 고위당국자가 밝혔다. 이 당국자는 지난 15일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가지 안을 넣으려고 한다.”면서 “남북협력기금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와, 통일자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충당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현재 1조원대의 남북협력기금 미사용액을 기금에 적립하고, 다음 연도 기금은 전년도 미사용액과 상관없이 별도로 편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혀진다. 기금은 해마다 약 3000억원이 신규출연되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교류가 단절되다시피 하면서 기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 방안이 추진된다면 현재 당해년도에 사용하지 않은 미사용액은 환수처리 되지만, 앞으로는 별도의 계정을 만들어 미사용액을 적립해 통일재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남북협력·통일 계정을 설치하는 내용의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다만 “정부는 세금은 일부 포함되더라도 서민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쪽으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라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소득에 관계없이 부과되는 간접세보다는 소득세나 법인세 등과 같은 직접세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관측된다. 통일부는 민간 전문기관들이 진행 중인 ‘남북공동체 기반조성사업’ 연구용역 중간결과를 중심으로 통일재원안에 대한 정부안을 최종 손질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경제부처 등 관계부처 등과 협의를 마치는 대로 최종 정부안을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중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58개띠, 세상을 바꾼다] 개띠 4인방 “우린 베이비 부머 세대의 허리”

    [58개띠, 세상을 바꾼다] 개띠 4인방 “우린 베이비 부머 세대의 허리”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듯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받은 전례가 없다. 전쟁이 끝난 뒤 매년 60만~70만을 헤아리던 신생아 울음이 갑자기 80만의 합창으로 증폭됐다. 이렇게 1958년에 태어난 이 땅의 ‘개띠’들은 초등학교 내내 콩나물 교실과 2부제 수업에 시달려야 했고 중학교와 고교 입시제도가 바뀌는 행운(?)을 누렸다. 권력자의 아들 덕을 봤다는 얘기가 평생 따라붙었다. 1977년을 전후해 최고의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간 이들은 유신과 휴교령에 맞서야 했고, 산업화 진군에 부응해 울산과 포항·마산 등으로 몰려간 이들은 막강한 숫자와 특유의 응집력으로 다른 연령집단의 부러움과 시샘을 받았다. 몇몇의 비아냥에서 시작된 별칭은 스스로 몸을 굴려 영향력을 키웠고 이제 그것이 ‘집단 운명’을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군대에선 운동권으로 ‘찍혀 박박 기어야’ 했고, 1987년 6·10 항쟁에 넥타이 매고 머리띠 두르고 나서 민주화와 민주노조 운동에 함께 나섰던 이들. 이제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나 싶을 즈음, IMF 구제금융 사태로 엄청난 희생을 강요당했다. 어느새 53년, 이제 어쩔 수 없이 제2 또는 제3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기준 712만명으로 추산된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허리’인 이들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감히 질문을 던져 본다. 4인의 속내도 들어봤다. 앞선 베이비 부머와도 차별되는 ‘신노년’의 도래가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정부나 사회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도 짚어본다. ■ ‘우리가 맏형’ 임영빈 바른몸 상무 서울 청량리에서 버스를 운전하던 이북 출신 아버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미군이 나눠준 빵을 뜯어먹고 자란 우리에겐 가난과 인내가 ‘DNA’처럼 새겨져 있다. 중학교 진학할 실력이 안 됐는데 박지만 덕분에 추첨제(서울지역 첫 시행은 1969년)로 바뀌어 어렵지 않게 진학했다. 집안이 어려운 데다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할 것 같아 고교 때부터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지.’ 생각하고 컸다. 고교 졸업 뒤 대전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에 취직, 당시 삼성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았다. 술 사 먹고, 동생들 학비 보태라고 집에 돈을 보내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곳에서 병역을 해결하면서 지방 대학에 다녔다. 전두환 정권 들어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라는 압력이 거세지자 그만두고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컴퓨터 설계 장비 등을 주로 취급했는데, 남들은 전에 일하던 회사 제품과 경쟁하는 제품을 거래해 재미를 보곤 했다.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 세대의 특징이기도 한데 남한테 폐 끼치지 않겠다는 의식이 유달랐다. 그렇게 여러 무역업체를 운영해봤다. 후배를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현재는 의료 관련 비즈니스를 새로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구축한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큰 수익은 못 내도 힘들지 않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하기 때문에 난 괜찮은 편이다. 항상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와 도전을 하면서 살아왔다. 남은 24년 정도를 ‘작게 꾸준히’ 수익을 내면서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 직장에서 한 우물만을 파온 동년배들이 걱정된다. 이들을 위해서 정부와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임금피크제 등 정부 정책이 피부에 와 닿는 뭔가를 전해주지 못하더라. 고교 동창들 모두 부모 봉양과 동생들 뒷바라지에 아이들 부양까지 책임져야 하는 ‘낀 세대’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는 자녀가 노후를 돌보지 않겠느냐는 미련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런 태도에 대해 구박하는 분위기가 대세다. 유난 떤다고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변화를 선도했다. 우리가 뭉쳐 일자리와 제2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낸다면 그 열매는 우리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베이비부머 세대의 동생들, 나아가 우리 아이들까지 혜택을 본다. ■ ‘개띠 공돌이’ 김형만 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경남 마산 바닷가 마을에서 5남3녀의 일곱째로 태어나 열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강냉이죽, 이듬해 빵을 학교에서 나눠줬다. 우리만 이런 추억이 유달리 강렬한 건 이전 세대는 아예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골인데도 한 반에 65~70명이나 됐는데 절반만 빵을 먹을 수 있었다. 겨울엔 난로에 들어갈 솔방울 주우러 다녔으니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었나. 1974년에 고입 시험이 추첨제로 바뀌었지만 마산은 시험을 치렀는데 떨어졌다. 2차로 공고에 진학했는데 학생들이 가방에 끌, 대패, 망치 등을 넣어다녔다. 흉악했는데도 의리가 있었다. 공부 잘하던 애들은 시험 보면 정답을 알려주곤 했다. 전국의 공고 학생들이 졸업하면 취업할 데는 널려 있었다. 울산, 포항에 전국의 ‘공돌이’들이 모여들었다. 58년 개띠는 그때 나온 얘기 아닌가 한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엔 여성 근로자가 엄청 몰리면서 연애 문화도 급변했다. 공고를 졸업한 뒤 포철에 입사해 쇳물 만드는 일을 8년 정도 했다. 장학금 준다고 해 창원대학에 진학한 뒤 1989년부터 서강대 대학원에서 또래 교수들 밑에서 공부하며 박사학위까지 땄다. 1994년에야 사회로 나와 올해로 사회생활 17년째다. 그러니 뭔들 준비가 돼 있겠나. 첫아이가 이제 고2다. 역사와 세월에 맡기고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직장에도 또래가 4명 있는데 잘 뭉친다. (1957년생) 닭띠들도 꼼짝 못한다. 베이비 부머 중에서도 늘 변화의 중심이었다. 숫자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제도가 바뀌지 않았나 싶은데 이런 때 우연히 첫 주자(중학 추첨제가 전국으로 확대된 건 1971년)였을 뿐이다. 우리 뒷세대만 해도 자기 생각에 빠지곤 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었던 것 같다. 내일 어떻게 될지라도 오늘 끝장을 본다, 뭐 이런 거. 조국이나 집단에 대한 애착에서도 그렇다. 사회 구조가 몇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바뀌지 않을 때 방향성을 찾아가는 힘이 뭔지 궁금하다. 그때 개띠란 게 한몫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미래가 확실해서 간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좌절하지도 않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냥 생각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그런 게 있다. 분명히 다른 띠에 견줘 또래끼리 얘기가 잘 통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고 58년 개띠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할 것도 없다. 과거의 표상일 뿐이지, 하지만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띠를 제쳐두고 개띠만 중심에 놓고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구석이 있다. ■ ‘해외에서 본 개띠’ 한주호 GE 헬스케어 전무 일본과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초등학교 마친 뒤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일본에 갔다. 미군이 배급하던 빵의 추억은 공유하고 있다. 박지만 때문에 중학 입시가 바뀌었다는 소식에 ‘그 친구가 뭔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일본에서 고교 2년까지 다녔는데 어느 날, 세살 위 형을 제치고 소집 영장이 나와 귀국했다. 병무청은 사무 착오라 했다. 학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해 고교를 다시 들어가 두 살 아래 동생들과 다녔다. 1979년 입대해 전북 정읍에서 근무하면서 광주항쟁을 지켜 봤다. 이런 비극은 우리 세대에 끝내고 50~100년 뒤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면 제대로 민주주의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버드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인터넷이 없어 대학 주소 알아내는 데만 석달 걸려 5년 동안 도전해 입학 허가를 얻었다. 들것에 실려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우등생 졸업했다. 환경미화원 일도 했고 미국 명문가 자제들이 얼마나 겸손하고 겉멋 부리지 않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지 보고 감명받았다. 코넬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94년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강단에 서겠다는 꿈은 집안 사정 탓에 포기했다. 한국에 돌아와 법무법인 광장에 들어가 일하다 2005년 10월에 지금의 직장으로 옮겼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힘든 시절을 견뎌내며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뤘다. 그리고 이전 세대보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컴퓨터와 영어를 할 수 있어 정치와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 앞으로 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양극화, 부패, ‘SKY’란 표현으로 상징되는 1등주의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특정한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 정부나 사회에 요구해 기회를 갖자는 주장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로 인해 과도한 ‘파워’를 갖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직장 그만두는 게 은퇴가 될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미국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의 면접을 본 뒤 따로 시간을 내 그 친구들에게 나의 경험을 들려 주고 있다. 일종의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한다. 정년 연장이나 임금피크제, 재취업 등이 목적이 될 수도 없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그런 고민과 기대를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가정을 꾸리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 이 사회, 자녀, 후손에게 뭘 넘겨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탤런트를 사회에 환원하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여자 58개띠’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초등학교 3학년까지 수원에서 다니다 서울로 와 부모와 따로 떨어져 학교를 다녔다.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던 구로동에 인구가 엄청 유입되면서 학교가 둘로 나뉘기도 했다. 고교 진학할 때 재단이 새로 생기면서 담임 교사들이 몇 등부터 몇 등까지는 어느 학교로, 그 아래 점수는 다른 학교로 이런 식으로 배정했고 장학금 몇푼으로 유혹했다. 좋은 학교 간 아이들은 좋은 대학 가는데, 다른 쪽에선 돌멩이 주워 학교 건물 지었다. 그게 싫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않았다.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고 우연히 시작한 영화 칼럼과 책 쓰는 일이 평생 일이 됐다. 하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애국하는 길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내가 단순하다.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으니 누가 결혼하겠는가. 지금 아이들 취업도 못해 낑낑대는데 정부 등에선 많이 낳아야 한단다.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 때는 성실하게만 일하면 직장 구해 먹고살 수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은가. 중학교가 남녀 공학이라 동창들이 많이 모였는데 IMF 외환위기로 인해 고꾸라진 친구들이 많았다. 동창회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들 신경 쓰지 말고 부부가 시골 가서 살자.’고 다짐했는데 요즘은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 IMF 이후 요식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모두 힘들어하고 미래를 불안해한다. 여자친구들에게 이제 한숨 돌렸으니 시민단체라도 가입해 활동하자고 권하면 젊은 시절, 젖먹이 떼놓고 직장 다녔던 죄의식으로 “손자들이라도 봐야지.” 하더라. 그런 친구들 은근히 많다. 사회에 봉사할 때가 됐는데 손자 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소모되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장학금 주는 성공회대 NGO 여성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중년의 우울을 건강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일하는 것과 공부밖에 없다고 하더라. 폴란드에서 공공기관 근무자들이 대부분 머리 희끗한 분들이어서 놀랐다. 왜 우리는 어르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젊은이가 하는 등 거꾸로 돼 있는가 많이 생각했다. 거리 청소 같은 건 젊은이들이 하고 체력이 덜 소모되는 일은 어르신들이 하는 게 맞지 않나. 또 경제가 이만큼 됐으니 정부나 사회도 문화를 가꾸는 쪽으로 우리 ‘58년 개띠’들을 유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정리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女商, 부활하다

    女商, 부활하다

    여자상업고등학교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한때 은행을 주름잡았다가 어느새 창구에서 사라지는 듯했던 여상 출신 텔러들이 다시 창구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반값 등록금 이슈도 그들에게는 남의 얘기일 뿐, 10대 후반부터 뱅커의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 성암국제무역학교 3학년 김혜인(19)양은 지난달 뽑힌 기업은행 신입 행원이다. 지난 6일부터 삼양동 지점에 배치받았고, 직함은 ‘계장’이다. 김 계장도 처음에는 “대학에 가기 쉬울 것 같아서” 특성화고에 입학했다. 3학년이 되자 “대학에 가면 그냥 놀 것 같아서” 취업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고객 응대에 자신이 있어서 은행에 지원했지만, 고교 3년 동안 은행 취업을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김 계장은 “은행에서 학력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주로 대졸자를 뽑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학교에서도 회계나 수출입 거래 같은 무역 업무를 가르치고, 취업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증권사나 무역회사로 진로를 정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성북구 돈암동 기업은행 지점의 김소정(19) 계장은 대일관광디자인고 3학년이다. 역시 진학을 준비하던 중 “비싼 대학등록금을 내느니 사회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취업으로 마음을 돌렸다. 은행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었다. 김 계장은 “관광에 특화된 학교를 나왔지만, 일반 사무직으로 취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부모님들이 은행만큼 좋은 일자리가 없다고 적극 추천했다.”고 지원동기를 설명했다. 국제무역학교, 관광디자인고는 특성화고등학교다. 과거의 상업고등학교와 공업고등학교를 통칭해 2003년부터 특성화고등학교로 부른다. 특성화고 졸업생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은행에서 뽑지 않았다. 대학생이 많아지자 은행들은 신입사원 지원 자격에 ‘전문대졸 이상’이라는 학력제한을 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출신이 셈을 하지 못해 상고 출신 상사에게 주판으로 머리를 맞으며 배운다는 말이 있었지만, 컴퓨터가 등장하고 주판이 사라지면서 상고 출신의 파워도 자연히 약해졌다. 그런 탓에 시중 한 은행의 경우 지점장 이상 직급을 가진 1150여명 가운데 590여명이 상고 출신으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과장·차장급 직원 중에는 고졸 출신이 단 한명도 없다. 그런 은행들이 올 들어 경쟁적으로 상고 출신을 뽑기 시작했다. 고졸 출신 취업률을 높이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게 고졸 공채를 부활시킨 결정적인 요인이다. 서울여상도 작년 말 2명의 졸업생을 기업은행에 취업시킨 데 이어 올해도 추가로 취업시켰다. 기업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도 10년이 넘게 뽑지 않던 고졸 사원을 뽑는 것은 솔직히 부담이었다.”면서 “앞서 지난해 2명을 시범적으로 뽑은 뒤 업무 수행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고 고졸 선발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선발된 고졸 출신 행원들이 오랫동안 은행에 다녀야 이번 선발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은행은 올해 상반기 상고 출신 20명을 채용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4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농협중앙도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상고 출신 30여명을 채용하기로 했고, 지역 농축협에서도 매년 100명 이상씩 고졸 출신을 뽑기로 했다.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도 고졸 출신 채용을 검토하고 있다. 상고 졸업자의 연봉은 2500만원 안팎으로 알려진다. 대졸자와 거의 차별이 없다. 상고 졸업생들은 계약직과 무기계약직이라는 꼬리표가 당분간 따라붙는다. 2년 동안 계약직 신분을 유지해야 하고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해야 한다. 무기계약직은 창구에서만 근무해야 하고 승진과 보직을 갖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시험을 치르면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 직원으로 신분이 전환될 수 있다. 그동안 무기계약직에서 자격 시험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기업은행 직원은 506명이다. 신한은행에도 2007년 이후 480명이 정규직 전환에 성공했지만, 2000년 이후 한 명의 전환 사례가 없는 은행도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에도 과장급 이상 관리직 입성에 성공한 사례가 이번에 기업은행에서 처음 나왔다. 무기계약직은 창구 근무 등으로 보직이 제한되지만, 정규직은 외환 거래와 기업 구조조정 업무 등 전반적인 업무를 모두 담당할 수 있다. 이번에 입사한 고졸 출신 대부분은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삼고 있다. 김혜인 계장은 “10년 뒤 서른 살이 되면 정규직으로 업무를 보고 있을 것이고, 20년 뒤에는 지점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김소정 계장 역시 “지금은 당장 선배들처럼 은행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우선”이라면서도 “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다시 좋은 직장에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은행 측 역시 정규직 전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동시에 이들이 학사 학위 공부를 이어갈 경우 학자금 지원 등을 구상하고 있다. 글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나승연“나는 훌륭한 팀의 일원일 뿐… 앞으로가 더 중요”

    나승연“나는 훌륭한 팀의 일원일 뿐… 앞으로가 더 중요”

    하룻밤 새 갑자기 유명해진 이가 있다. 바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의 나승연(38) 대변인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프레젠테이션(PT)에서 처음과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평창 유치에 한몫한 주인공이다. 신뢰감 있고 안정된 음색으로 평창 지지를 호소해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게다가 원어민과 다름없는 영어·불어 실력과 빼어난 외모까지 보태져 한국에서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요즘 ‘더반의 여왕’ ‘더반의 여신’ 등으로 불린다. ●“PT서 모두가 나름의 매력 잘 살려” 1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평창유치위원회에서 만난 나씨는 회색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심플한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는다는 그는 대변인답게 단아한 모습에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평창 유치 다음 날 친구들의 문자와 인터넷을 통해 내가 ‘떴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밝게 웃었다. 서울에 도착해 동네 슈퍼마켓과 엘리베이터 등에서 만난 이웃들이 얼굴을 알아봐 부담스러웠지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넬 때 기뻤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종 PT 현장에서 행복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평창에 앞선 안시와 뮌헨의 PT를 보고 확신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어 “평창 PT는 모두가 나름의 매력과 포인트를 잘 살렸고 나는 다만 훌륭한 팀의 일원일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또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돼 기쁘고 영광스럽다.”면서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7년 동안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음 달 대구 육상세계선수권대회에 IOC 위원들도 온다. 그들은 스탠드를 가득 채운 관중들을 기대한다. 2018년 평창에서도 약속이 지켜질지 의구심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에서 위원들을 만날 계획이다. 감동의 평창 PT 비결로는 실패의 경험과 ‘새로운 지평’이라는 메시지를 꼽았다. PT를 통해 5~10표의 부동표를 끌어모았을 것이라는 IOC 위원의 얘기도 전했다. 나 대변인의 역할은 PT가 최우선이다. 하지만 해외 미디어를 챙기고 위원들을 상대로 유치 활동도 펼치는 등 ‘멀티플레이어’였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조양호 유치위원장, 이건희 IOC 위원 등 한국의 대표 인사를 접촉하면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잘 모르면 즉석에서 거리낌 없이 묻고 고치고 너무 부지런했다며 감탄했다. 유치 과정에서 감동했던 순간은 지난 2월 평창 현지 실사 때 컬링장에서 강원도민이 부른 합창이었고 힘든 순간은 로잔 ‘테크니컬 브리핑’으로 무려 500개 예상 질문을 놓고 무수히 연습했던 일로 기억했다. ●“행복한 가정 꾸리는 게 삶의 목표” 그는 “내 삶의 목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굳이 직업을 꼽으라면 스포츠 등 영어 커뮤니케이션 관련 직업이며 우리나라를 위한 일이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여행을 꿈꾸는 나 대변인은 요즘 5세 아들과 서울 곳곳을 다니며 서울을 재발견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은행에 입사한 나씨는 이듬해 아리랑TV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겼고 2001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조직위 미디어팀에서, 2003년 여수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4월 평창유치위에 합류했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영국, 덴마크, 말레이시아에서 12년 동안 생활했고 현재 영어 번역·통역·리포트 등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글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나는 고졸이다] ‘ 학벌의 벽’ 기술로 깼다… 고졸 20명 글로벌기업서 ‘名匠의 꿈’

    4년제 일반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일류 기업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평생에 걸쳐 ‘기술 명장(名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전문 기술인을 중시하는 글로벌 기업의 채용 의지와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력을 양성해 제공하는 교육계의 노력이 함께 빚은 결실이다. 다만 그 관문을 뚫으려면 새내기 본인도 뼈를 깎는 단련을 각오해야 한다. 구직인들 사이에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최근 금형과 보전 부문의 기술직 인턴사원(고졸·전문대졸) 70명을 선발하고 합격을 통보했다고 15일 밝혔다. 기술직 인턴 공채에는 고졸 및 전문대졸 응시자 7000여명이 몰려 100대1이 넘는 ‘바늘구멍 통과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대차가 기술직 인턴사원을 뽑은 것은 2004년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공채는 금형 제작(가공, 조립), 금형 보수, 정밀측정 등 금형 부문과 설비·장비 유지보수·장비 개선 등 보전 부문의 2개 전문기술 분야로 한정돼 실시됐다. 현대차의 일반직(사무직) 경쟁률이 무려 300대1을 넘긴 적도 있지만, 2개 전문 부문으로 한정된 공채라는 점을 감안하면, 100대1의 경쟁률은 일반직보다 훨씬 치열했던 ‘입사 전쟁’으로까지 평가된다. 선발된 70명은 전문대졸 50명과 고졸 출신 20명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이미 기능사 자격증 2~3개를 취득한 기능 인력이다. 일부는 기능사 자격보다 한 단계 높은 산업기사 자격증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특성화고교 중에도 마이스터고 출신, 특히 산학이 연계된 맞춤형 전문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거 합격의 영광을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서류전형에 이어 인성검사와 기초 영어시험, 전문기술시험(지원분야별), 건강검진, 실무 및 임원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지난 4일부터 전문기술 집체교육 및 현장실습, 전문기술 교육 등에 들어가 앞으로 6개월간의 인턴교육 과정을 통과하면 정규직으로 최종 합격된다. 좁은 문을 통과한 인재들인 만큼 이들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우를 받는다. 인턴 과정을 마치면 수당(연장근무비 등 제외) 포함해 45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게 된다. 여기에다 자녀 학자금, 사택 또는 주거 지원금, 결혼자금 지원, 장기근속사원 포상 및 휴가, 명절 선물비, 어린이집 운영, 사계절 휴양소 운영 등 복지 체계도 ‘꿈의 직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최종 합격자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현재 43세이고, 근속 연수는 18년이다. 현대차는 1998년 구제금융 이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시행한 적이 없다. 근무는 주야간 2교대로 각각 하루 10시간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기술직 공채는 지난 1월 노사가 신규인원 충원에 합의함에 따라 이뤄졌다.”면서 “지원자 대부분이 해당 부문에서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실력파들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회사의 대내외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직원들의 임금·복지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면서 “학교에서 이미 많은 전문교육을 받은 인재들이라 현업 투입에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자동차플러스] 푸조 성수동 센터에 옥외 고객 라운지 오픈

    푸조 공식 수입사 한불모터스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메인 서비스센터 8층 옥상공원에 옥외 고객 라운지 ‘자르뎅 뒤 시엘’(Jardin du Ciel)을 오픈했다. 프랑스어로 ‘하늘 정원’을 의미하는 자르뎅 뒤 시엘은 2000㎡ 규모에 50여종의 다양한 식물과 나무, 야생화 그리고 각종 조각품으로 꾸며졌다.
  • [나는 고졸이다] 울산마이스터高 손윤희양 삼성전자 취업 성공기

    [나는 고졸이다] 울산마이스터高 손윤희양 삼성전자 취업 성공기

    15일 울산 북구 효문동에 있는 울산마이스터 고등학교 실습실. 손윤희(18·자동화시스템과 3학년)양이 여름방학 중인데도 컴퓨터 앞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손양은 이미 삼성전자 천안공장의 액정표시장치(LCD)사업부 생산직 공채에 합격해 8월 1일부터 출근한다. 그녀는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LCD 액정의 품질 관리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12월 기말고사에 대비해 중간고사 때의 ‘오답 노트’도 정리했다. 마지막 학교 시험이지만 마음의 부담이 없다.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꿈만 같았어요. 입사 원서를 냈지만, 글로벌 대기업이라 합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손양은 지난 5월 1차 서류전형과 2차 필기 및 면접시험을 잇따라 통과했다. 비공개 방침이라 입사 경쟁률은 모르지만 함께 응시했던 친구 10여명이 모두 실패한 것으로 봐서 엄청 좁은 관문을 뚫은 것이라 짐작만 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고등학교(일반계고·특성화고) 졸업생 가운데 79%가 전문대 및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나머지 21%는 취업이나 재수, 군복무, 아르바이트 등에 종사한다. 손양은 특성화고 졸업생 10명 중 7명이 대학을 선호하는 현실에서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마이스터고의 취업 맞춤형 교육의 성과로 평가된다. 지난해 전문대 이상 졸업자 53만 9996명 중 55%인 26만 7003명이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대학 재학생 30.4%(4년제 31.4%)가량이 휴학했다. 그녀는 “지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2개월 동안 학교와 집에서 매일 면접 연습을 했다. 학교에서 외부 전문가들을 초빙해 세 차례 모의 면접을 한 것이 큰 힘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손양은 정보기기 기능사 3급 등 취업용 자격증을 3개나 보유한 기능인이다. 특성화고교를 선택한 만큼 자격증이 취업의 지름길이라는 소신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 대부분이 고교 3년 동안 2개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한다.”면서 “어떤 친구는 전공 분야 외에도 미용 등 다양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기술직 인턴으로 선발된 70명도 기능사 자격증 2~3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한 단계 높은 산업기사 자격증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손양은 취업을 앞둔 친구와 후배들에게 ‘눈높이에 맞춘 취업준비’를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좋은 회사만 고집하다 보면 어려울 수 있다.”면서 “능력과 적성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으면 취업의 벽도 그리 높지 않다.”고 말했다. “면접은 자신의 장점을 회사에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며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모의 면접이 실제 면접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울산마이스터고는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산학 연계 교과과정 운영, 산업체 협약, 취업 인턴제 도입, 산업 명장과의 멘토 결성, 산업현장 실습·체험교육 등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기업체가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에 꼭 맞도록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고 특성화고의 변화다. 손양은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산업현장을 지키는 기능인이 되겠다는 포부을 밝혔다. 그녀는 “많은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산업현장에서 기술의 맥을 이어 가야 한다.”면서 “어렵고 힘들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1등 기능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고졸 초임 평균 연봉은 1648만원이지만, 대기업의 경우 2300만~4000만원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높아진 취업률과 연봉에 힘입어 최근 특성화고에 대한 우수 학생들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인크루트가 지난해 자사 홈페이지에 등록된 이력서 1만 7000건을 분석한 결과 전문대졸 구직자의 희망 연봉은 1941만원으로 고졸 이하 2021만원보다 80만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은 2263만원, 석·박사 이상은 2628만원이었다. 글 사진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7개 공공기관 경영 ‘우수’ 비결 보니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0년 공공기관평가’에서 우수(A)등급을 받은 공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 인력이 부족한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인턴직원 153명을 산업재해예방 실무업무에 투입해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펄프 비용이 부담인 조폐공사는 우즈베키스탄에 면펄프 생산기지를 구축해 25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공공기관마다 약점을 기회로 삼아 이를 강점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재정부는 15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공공기관 113개의 경영평가 결과를 알리는 설명회를 연다. 공공기관을 점검한 경영평가단은 공공기관의 평가 준비 담당자들에게 올해 평가의 특징과 결과를 설명하고, A등급을 받은 7개 공공기관은 우수 경영사례를 발표한다. 전력거래소는 2002년 노조가 최고경영자(CEO)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할 정도로 노사 관계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노조부장이 매일 노조위원장실을 방문해 월 1회 노사간부 미팅을 가졌고, 임금제도 및 복지제도 개선에 노조간부가 참석하도록 했다. 반면 CEO가 처장을, 처장은 팀장을, 팀장은 팀원을 선발하는 ‘보직경쟁제도’를 도입했으며 선발되지 못한 직원은 직급에 상관없이 무보직 교육을 받게 했다. 결과적으로 기관 평가는 C에서 A로 상승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콘텐츠진흥원, 조폐공사는 비용절감, 인력의 효율적 활용 등 경영효율화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부족한 현장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사무직 166명을 전문직으로 전환하고 인턴직원 153명을 산재예방 실무업무에 투입했다. 인턴직원을 정직원과 같은 조건으로 선발해 지난해 15명 신입사원을 모두 인턴직원 중에서 선발했다. 콘텐츠진흥원은 2009년 5월 문화콘텐츠진흥원, 게임산업진흥원,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통합기관으로 출범한 후 지원사업에 대해 ‘5페이지 제안서’, ‘지원사업 선금 지급률 확대’ 등의 제도를 실시해 호평을 받았다. 도로공사와 수자원공사는 대국민 서비스 개선 사례가 눈에 띈다. 도로공사는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 교통정보를 제공해 명절 고속도로 정체를 부분적으로 개선했고, 수자원공사는 세계적인 수준의 정수장을 5개에서 10개로 확대해 고품질 수돗물을 공급한 점이 호평을 받았다. 이외 광물자원공사는 남미의 리튬, 북미·남미에 걸친 구리벨트 구축 등 적극적인 해외 진출로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삼성 “반도체 공장 발암과 무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근무환경이 암 발병과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성전자는 14일 경기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미국 안전보건 전문 컨설팅업체인 ‘인바이론’사에 의뢰해 진행한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에 대한 연구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를 총괄한 폴 하퍼 인바이론 소장은 “조사 대상 라인인 기흥 5라인, 화성 12라인, 온양 1라인을 직접 정밀 조사한 결과 모든 측정 항목에서 위험물질 노출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 사업장의 근무환경이 근로자에게 위험을 주지 않으며 회사 측이 모든 노출 위험을 높은 수준으로 관리·제어하고 있다고 인바이론은 평가했다. 인바이론은 화학물질 50종에 대한 벤젠, 트라이클로로에틸렌(TCE), 포름알데히드 정량 분석 결과 모든 시료에서 ‘불검출’ 결론이 나왔고 방사선 안전성 평가에서도 작업자에게 방사선 노출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총괄 사장은 “객관성과 투명성을 가진 제3의 기관을 통해 재조사했다.”면서 “최종 보고서가 나오면 납품업체나 회사의 기밀사항을 제외하고 공개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와 별도로 퇴직 이후 암으로 투병하는 임직원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근속기간, 발병시점, 수행 업무와의 상관관계 등을 따져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반도체 공장 내 미확인 위험 요소를 찾아내기 위해 산학 협력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국내외 전문기관으로부터 정기 컨설팅을 받는 한편, 입사부터 퇴사 때까지 임직원의 건강을 개별 관리해 주는 ‘토털 케어 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조사결과는 최근 법원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환자 2명에 대해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과 배치된다. 반도체 사업장 환자와 근로자를 대변하는 ‘반올림’ 등 시민단체들이 인바이론의 조사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종란 노무사는 “인바이론은 과거에도 기업에 유리한 조사 결과를 여러 차례 내놓았던 곳”이라면서 “이들의 조사결과를 믿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홍콩 여경 머리에 총 겨누고 치마까지…

    홍콩 여경 머리에 총 겨누고 치마까지…

    홍콩 여경들의 지나친 장난을 담은 사진들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경찰 기강 및 경찰의 인터넷 사용제한 등이 도마에 올랐다. 홍콩 명보(明報) 등 현지 언론의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사진은 짧은 정복을 입은 홍콩 여경 여럿이 치마를 들어 다리를 높이 올리고 있거나 짧은 상의만 입은 채 찍은 장면 등을 담고 있다. 가장 논란이 분분한 것은 총기 및 탄약이 다수 배치된 방 안에서 여경들이 서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이다. 현지 언론은 그들이 손에 쥐고 있거나 그들 앞에 배치된 총기들이 모형이 아닌 실제이며,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장난도 모자라 이를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홍콩 경찰의 이미지를 실추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진을 올린 사람은 2007년 입사한 여경으로 알려졌다. 이 여경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훈련과정 등이 담긴 사진 백 여 장을 올려왔는데, 이중 몇몇 사진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논란이 된 것. 문제의 사진들이 찍힌 정확한 날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버젓이 제복까지 입고 이 같은 행동을 벌인 것에 경찰 측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홍콩 경찰 측은 지난 13일 이 사건을 정식 조사하겠다고 밝혔으며, ‘경찰의 인터넷 사용 지침’방안 및 경찰 자질 감독관리를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귀화 여경 ‘중국댁’ 김영옥 순경, 검거실적 뛰어나 특별승진

    귀화 여경 ‘중국댁’ 김영옥 순경, 검거실적 뛰어나 특별승진

    중국에서 귀화해 해양경찰에 입사한 여경이 특별 승진했다. 2009년 7월 해양경찰 중국어 특채 순경으로 임용돼 현재 목포해경 대형 함정 3009함에 승선하고 있는 ‘중국댁’ 김영옥(34) 순경. 12일 중국어선 검거 실적 등 현장 업무에 공적이 뛰어나 경장으로 특진했다. 김 경장은 지난 한 해 동안 불법조업 중국어선 검문검색 통역요원으로 중국어선 30척, 350명을 검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특히 지난해 12월 신안군 흑산도 만재도 해상에서 기상악화로 전복된 화물선에서 15명 선원을 구조하는 데도 큰 몫을 했다. 김 경장은 “사명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억척 중국댁’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에서 전남 해남으로 시집온 지 9년 만에 해남군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했는가 하면, 대불대 중국어과에 편입,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1남 1녀의 엄마다. 해양경찰이 되기 위해 바다 관련 서적을 틈나는 대로 읽고, 체력시험을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기도 했다. 목포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SKY大’ 졸업자 취업 지방대보다 1년 늦다

    ‘SKY大’ 졸업자 취업 지방대보다 1년 늦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SKY’ 대학 졸업자들이 지방대 졸업생들보다 평균적으로 1년 가까이 늦게 취업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위권 대학을 나온 구직자일수록 눈높이를 낮추기가 쉽지 않아 구직에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됐다. ●평균 입사연령 27.8세로 최고 취업·인사 포털 인크루트가 2010년부터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한 경력 1~2년차 직장인 1만 1000명의 첫 입사 평균연령을 조사한 결과, 출신 학교에 따라 최대 11개월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직장인의 취업 평균연령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3개 대학 출신 구직자가 27.8세로 조사 대상 중 가장 높았다. 이에 비해 이들 대학 이외의 서울권 대학 졸업자와 해외 대학 졸업자는 27.1세로 SKY 출신보다 7개월가량 낮았고, 지방대학 졸업자의 평균 취업 연령은 26.9세로 이보다 더 낮았다.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들의 취업 연령이 상대적으로 높은 셈이다. ●취업 눈높이 높아… 구직기간 길어 대학 전공별로는 계열 특성상 여학생 비율이 높은 가정학 졸업자의 취업 연령이 25.8세로 가장 낮았다. 이어 ▲어문학(26.4세) ▲예체능(26.5세) ▲사범(26.6세) ▲인문과학(26.7세) 순이었고 ▲의약(27.2세) ▲공학(27.5세) ▲법학(27.7세) ▲신학(30.5세) 등은 상대적으로 취업 연령이 높았다.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상위권 대학 출신 구직자일수록 취업의 눈높이를 낮추기가 쉽지 않아 자신이 만족하는 직장을 얻기 위해 구직기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서울신문 107주년-TED2011을 만나다] ‘18분의 소통’ 지식이 진화한다

    [서울신문 107주년-TED2011을 만나다] ‘18분의 소통’ 지식이 진화한다

    서울신문은 창간 107주년(7월 18일)을 맞아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TED 글로벌 콘퍼런스 2011’ 대회를 생생한 현지 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합니다. 11일(현지시간)부터 닷새 동안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삶의 재료’(The Stuff of Life)입니다. 50여 명의 연사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생명’의 패러다임을 조명하게 됩니다. 셋째 날에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행위예술가 이재림씨가 단상에 오릅니다. 세기의 석학과 최고경영자(CEO), 예술가 등이 18분(1080초) 동안 숨 가쁘게 펼쳐 내는 지식의 향연을 서울신문 지면에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21세기 최고의 ‘지식 페스티벌’로 부상한 ‘테드’(TED)의 글로벌 콘퍼런스 2011 여름대회가 오는 11일(현지시간)부터 15일까지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다. 역사, 철학에서부터 음악,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사 50여 명이 나와 ‘삶의 재료’(The Stuff of Life)란 이번 대회 주제에 맞춰 자기 지식과 경험을 풀어놓을 예정이다.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 미 PBS 방송 최고경영자 팻 미첼, 소설가 알랭 드 보통, 대영박물관장 닐 맥그리거,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 ‘중국의 오프라 윈프리’ 양란 등이 전 세계 수억 명의 온라인 시청자 앞에 선다. TED는 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1984년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리처드 솔워먼과 방송 디자이너 해리 마크스가 “캘리포니아에 유명한 사람들을 불러 강연을 듣는 행사를 만들자.”고 뜻을 모은 데서 출발했다. 엘리트들이 갖고 있는 경험적 지식과 아이디어를 함께 나눠보자는 취지였다. 이질적인 요소들의 융합으로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 당시로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기술·엔터테인먼트·디자인을 3대 요소로 묶었다. 특이한 강연회 정도로 여겨지던 테드는 2001년 매거진 ‘비즈니스 2.0’ 등에 몸 담았던 언론인 출신 크리스 앤더슨을 만나면서 180도 탈바꿈했다. 앤더슨은 테드의 모토를 ‘퍼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으로 정의한 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테드는 기존 콘퍼런스의 형식을 거부한다. ‘소통’과 ‘개방’을 위해 ‘권위’나 ‘이익’은 배제된다. 미국 대통령이나 영국 총리도 12세 어린이와 같은 시간 동안만 말할 수 있다. 기조연설 같은 것도 없다. 모든 강연자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도 다들 못 나와서 안달이다. 시간 제한은 18분. 이 때문에 ‘18분의 감동’으로 불린다. 테드는 두 얼굴이다. 우선 엘리트의 모임이다. 매년 봄, 여름 두 차례 열리는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 이전에 참가 신청을 해야 한다. 내년 봄 ‘테드 콘퍼런스 2012’는 이미 참가 신청이 마감됐다. 참가 비용은 무려 6000달러(약 700만원)에 이른다. 참가 신청서 작성조차 귀찮은 일의 연속이다. “왜 이 콘퍼런스에 참석하고 싶은지,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시오.”라는 글은 마치 입사 지원서를 연상케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1000여명만이 간신히 행사장에 들어설 수 있다. 테드의 진정한 힘은 콘퍼런스 이후에 시작된다. 5일간의 콘퍼런스에서 공개된 50여명의 강연은 편집 없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누구에게나 공개된다. ‘테드 에어(air)’로 불리는 이 동영상 클립은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공짜로 볼 수 있다. 각국에 퍼져 있는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전 세계 70개국의 언어로 동영상을 완벽하게 번역해 전파한다. 테드는 한국 사회가 목말라하는 ‘소통’의 아이콘에 가깝다. 최웅식 테드x 한국 대사는 “테드는 만남과 소통이라는 콘퍼런스의 지향점을 독특한 방식으로 디지털 시대에 담아내는 지식의 향연”이라면서 “특히 한국에서는 소통 부재와 정보기술 강국이라는 2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엿듣기’ 들통… 168년 된 황색저널 결국 폐간

    168년간 국민적 인기를 누려온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대중지)이 ‘황색저널리즘’(선정적 보도)의 유혹에 끌려다니다 끝내 문을 닫게 됐다. 일요 신문 ‘뉴스오브더월드’는 취재 과정에서 불법 전화 해킹을 벌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자 소유주인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이 신문의 전격 폐간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비도덕성을 향한 성난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루퍼트 머독의 아들이자 뉴스오브더월드의 발행인인 제임스 머독은 7일(현지시간) 직원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최근 제기된 (전화 해킹)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이 신문이 더 이상 설 곳은 없다.”며 폐간 배경을 밝혔다. 2007년 4월 뉴스오브더월드의 불법 취재 관행이 처음 드러난 뒤 4년여 만의 일이다. 신문사 측은 오는 10일 마지막 판을 찍을 예정이며 종간 일 광고면은 상업 광고 대신 자선단체 등에 내주겠다고 밝혔다. 1843년 창간된 뉴스오브더월드는 주로 왕실, 정치인, 배우 등의 사생활을 파헤치며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대중지로 자리 잡았다. 일요일마다 260만부가량을 발행해 하루 동안 벌어들이는 광고 수익만 66만 파운드(약 11억 1200만원)에 이른다. 뉴스오브더월드는 2007년 자사 소속 기자가 왕실 인사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를 해킹한 사실이 드러나 실형을 선고받은 뒤 줄곧 불법 취재 의혹에 휩싸여 왔다. 올 들어 유명 여배우 시에나 밀러 등 유명인사들이 신문사에 해킹당한 것으로 드러났고 전직 총리인 고든 브라운, 토니 블레어와 최근 결혼한 윌리엄 왕자의 아내 캐서린 등의 휴대전화도 해킹당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특히, 이 신문이 2002년 실종된 13세 소녀 밀리 다울러 등 범죄 피해자와 아프가니스탄전 전사자 유족의 전화까지 해킹했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 등 놀란 광고주들마저 잇따라 광고 게재 중단을 선언하면서 신문사는 위기에 몰렸었다. 영국 언론들은 루퍼트 머독이 위기 때 담대한 승부수를 걸기로 유명하지만 이번 폐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머독이 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느끼는 애정은 대단했다. 그가 1969년 영국 신문 가운데 처음으로 사들여 ‘언론 제국’을 일구는 기틀을 마련해준 매체가 이 신문이었다. 전문가들은 머독이 정치·경제적 후폭풍을 최소화하려고 잔혹한 ‘꼬리 자르기’를 감행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머독은 최근 영국 위성방송 스카이(BSkyB) 인수를 추진 중인 터라 모험을 통해 틀어진 민심을 다시 잡아보려는 조치인 듯하다. 하지만 영국의 정치권과 여론은 머독에게 여전히 싸늘해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법 취재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리베카 브룩스(43·여)에게 해킹 사건 조사를 맡겨 비판이 커졌다. 머독의 언론그룹 뉴스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인 그는 다울러의 전화 해킹 사건이 벌어진 2002년 뉴스오브더월드의 편집장이었다. 머독은 이 회사의 비서로 입사해 11년 만에 편집장이 된 그를 딸처럼 아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거세지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국정 조사에 착수하고 언론 윤리 등을 살펴볼 별도 조사도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캐머런 총리의 공보 책임자였던 뉴스오브더월드의 전 편집장 앤디 쿨슨(43)이 체포되는 등 이번 사건이 현 정권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커졌다. 한편, 다울러 가족의 변호인인 마크 루이스는 머독이 위기 상황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이 목격되자 “로마제국이 멸망 전 불탈 때 현악기를 켜던 네로를 보는 듯하다.”며 비꼬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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