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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플러스] 농협, 올 신입사원 2000여명 채용

    농협이 올해 총 2000여명의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5일 밝혔다. NH농협은행이 6~10일 지원서를 받아 상반기에 6급 직원을 지역 고교 및 대학 출신자로 244명, 특성화고 졸업예정자로 50명을 채용한다. 연말까지 농협중앙회 및 경제지주 계열사 100명, 농축협 800여명, 경력단절 여성 위주의 산전후대체직 500여명도 선발한다.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상그룹] 불도저 명형섭 “글로벌·차별화”… 3년째 1000억대 영업익 주도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상그룹] 불도저 명형섭 “글로벌·차별화”… 3년째 1000억대 영업익 주도

    명형섭(58) 대상 사장은 1982년 미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34년간 대상에만 몸담은 정통 대상맨이다. 사원에서 사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충남 당진 출신인 명 사장은 경희고등학교를 나와 고려대학교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11월 사장직에 올랐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그가 직원들에게 특히 설파(?)하는 이 문구는 1973년 세 평짜리 시골 창고에서 단 네 명이 시작해 현재 계열사 140개, 직원 13만명 규모로 성장한 일본전산의 모토다. 일본전산의 창업주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경영인이기도하다. 그는 일본전산의 사훈에는 자신감과 함께 포기하지 않는 실행 정신이 있다며 모든 직원에게 특히 주인 의식을 강조한다. 청정원을 비롯해 대상 전체 식품사업총괄 중역과 전분당 사업부문 등을 두루 거친 그는 취임 후 ‘글로벌화’와 ‘차별화’를 경영 열쇳말로 삼고 특히 해외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최초 필리핀 전분당 사업 진출, 인도네시아 식품 공장 준공 등을 진두지휘한 그는 최근 중국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대상은 현지화 전략으로 2017년까지 중국 식품 시장에서 500억원 매출 규모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 시장 또한 차별화된 상품으로 장기 불황을 헤쳐 나가고 있다. 컵국밥, 고구마츄 등 즉석간편식 시장 공략에 힘을 실어 준 것도 그다. 명 사장은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장류, 조미료 시장 등 전통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 과감하게 편의식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이 같은 경영에 힘입어 대상은 안정적인 매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 1조 3930억원이었던 대상의 매출액은 2012년 1조 5525억원, 2013년 1조 5703억원, 2014년 1조 60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고, 영업이익 역시 2012년 1038억원, 2013년 1181억원, 2014년 1210억원을 기록하는 등 3년 연속 1000억원을 초과 달성했다. 한편 명 사장은 직원들과의 스킨십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명 사장은 1년에 2~3차례 출근하는 직원들을 안아 주고 격려하는 ‘프리허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등 직원들과의 거리 좁히기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마케팅 콘퍼런스에서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메시지를 스케치북에 직접 적어 마치 영화 ‘러브액츄얼리’의 프러포즈 장면을 연상케 하는 발표로 직원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금연을 권하는 사장으로도 유명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상그룹] 3세 오너 경영 등장 최대 관심… 임세령·상민 두 딸 경영수업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상그룹] 3세 오너 경영 등장 최대 관심… 임세령·상민 두 딸 경영수업

    이리농림학교 졸업 후 고창군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딘 임대홍(95) 대상 창업주는 해방 이후 피혁공장을 운영했다. 6·25 전쟁 직후에는 복구사업이 시작되면서 무역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임 창업주는 일본을 오가면서 경쟁 상대 없이 우리 식탁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에 묘한 반감을 가지게 됐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국산 조미료를 수출하고 싶다는 열망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55년 서른다섯 청년 임대홍은 잘나가던 무역 사업을 접고 제조 공법을 익히기 위해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1년여의 연구 끝에 그가 돌아와 부산에 지은 150평 규모의 작은 조미료 공장이 바로 대상그룹의 전신인 우리나라 최초의 조미료 공장,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다. 미원의 신화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임 창업주는 회장 재직 당시 조용히 자신의 공간에서 실험과 연구에만 몰두했다. 지방 출장 시에도 5만원이 넘는 숙소에는 묵지 않았고, 승용차보다는 전철을 더 많이 애용했다. ‘평생 통틀어 한 번에 양복 세 벌, 구두 두 켤레 이상을 소유했던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기업가의 이미지와는 달리 대외 활동과 사교 활동도 즐기지 않았다. 이 같은 창업주의 스타일은 경영권을 물려받았던 장남 임창욱(66) 명예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임 명예회장은 취임 후 부친과 달리 진취성과 능력을 중시하고 인간성을 강조하는 경영을 펼치며 보수성에서 탈피하고자 했지만 본인의 성과를 과시하거나 홍보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임 명예회장은 1997년 퇴임했고 대상은 오랜 시간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대상에 쏠린 업계의 최대 관심은 3세 오너 경영인의 등장이 이뤄질까다. 임 명예회장 밑으로는 아들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두 딸인 임세령(38) 대상 사업전략담당중역 상무와, 임상민(35) 대상 기획관리본부 상무가 나란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대상그룹의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지분 비율을 보면 임상민 상무가 35.8%로 언니 임세령 상무를 앞선다. 임세령 상무의 대상홀딩스 지분은 19.9%다. 하지만 임세령 상무도 지난해 대상 지분을 15만 9000주(0.44%)를 장내 매수하고, 초록마을 지분을 30.17%까지 늘리는 등 본격적으로 승계 보폭을 넓히는 모양새다. 임세령 상무는 2012년 대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입사,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식품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식품사업총괄 내 사업전략담당중역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뉴욕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임세령 상무는 2009년 11월 당시 대상그룹 외식법인이던 와이즈앤피가 선보인 ‘터치 오브 스파이스’ 외식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임세령 상무는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을 레드오션으로 판단, 기존의 브랜드 확장전략을 전면 수정해 치열한 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청정원의 대규모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리뉴얼 작업을 진두지휘한 숨은 리더도 바로 임세령 상무였다. 임세령 상무는 특유의 글로벌 감각을 발휘해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기존 심벌을 타원 형태의 모던하고 심플한 심벌로 리뉴얼했다. 대상 관계자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그를 표현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어울려 줄을 서거나, 회사 앞 커피전문점에서 여직원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커피를 사간다고 한다. 임상민 상무는 동생이지만 입사로는 선배다. 임상민 상무는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유티씨인베스트먼트를 거쳐 2009년 8월, 대상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PI)본부에 입사해 그룹 경영혁신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한 임상민 상무는 2012년 10월, 대상 기획관리본부 부본부장으로 다시 그룹경영에 복귀했다. 현재는 그룹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프로젝트 참여에 주력하고 있다. 임직원들 사이에서 임상민 상무는 ‘경청의 리더’로 불린다. 임상민 상무는 임원과 실무자 간의 대화라기보다는 동등한 실무자로서 의견을 나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데도 직원들과의 벽을 허무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을 할 땐 엄격하고 꼼꼼하다는 평을 듣는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회의에 참석하는 실무자들이 상당히 긴장한다는 후문이다. 대상 관계자는 “임세령 상무와 임상민 상무 모두 기획과 마케팅 분야에서 본인들의 역할을 수행하며 경영 전반을 익히고 있는 과정”이라면서 “임창욱 명예회장이 건재하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점에서 두 분 간 후계구도를 예측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상그룹] 임정배 재무·기획통… 대상 주가 667% 상승 견인

    대상은 1997년 8월 임창욱 명예회장의 돌연 사퇴 이후 약 18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다. 임정배(54) 대상홀딩스 사장은 경성고와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미원통상으로 입사한 그는 해외영업과 재무, 기획에 두루 정통한 인물로 꼽힌다. 유럽 판매법인(네덜란드) 주재원, 대표이사, 대상 무역팀장, 조달팀장, 재무팀장, 기획관리본부장,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거치며 관리능력을 검증받았다. 특히 2009년 대상 CFO로 재직하면서 회사의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 6000원대 회사 주가를 4만원대로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임창욱 명예회장과 함께 그룹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그는 임원, 팀장뿐만 아니라 신입사원에게까지 존칭을 사용하는 대표로 유명하다. 임대홍 창업주가 강조한 ‘인간 존엄과 자존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는 게 대상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상철(58) 대상FNF 사장은 건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미원 총무과로 입사해 감사과, 판매기획부, 총무과장을 거쳐 1997년 대상 총무팀장을 지냈다. 2011년 취임한 그는 신선식품 다각화를 통한 매출 안정화로 대상FNF의 선순환구조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치에 대한 사랑도 각별해 김치에 이슬람 국가 수출이 가능한 할랄과 유대교 율법에 따른 코셔 인증을 더해 김치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이 사장 역시 자신은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자비존인’의 자세를 강조해 오고 있다. 취임식 당시 연단에서 내려와 임직원 모두와 눈을 맞추며 취임사를 진행한 일은 유명하다. 아버지, 선배, 친구같이 다가가는 그의 리더십은 경직돼 있던 조직에 훈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대상FNF의 매출은 2268억원, 영업이익은 120억원이었다. 박용주(52) 초록마을 사장은 동아대 전기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 미원 회장단 비서실로 입사했다. 대상그룹 구조조정본부와 인사팀장, 대상사료 경영지원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박 사장은 2006년 만 43세의 나이로 대상홀딩스 대표에 선임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상홀딩스 대표 시절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을 인수해 팜오일 사업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초록마을 대표에 선임됐다. 여기에는 초록마을을 대상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고자 하는 임창욱 명예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초록마을은 친환경 유기농 상품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업체다. 초록마을은 박 사장 취임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매출액 1800억원, 영업이익 50억원을 돌파했다. 2015년 4월 기준 매장 수는 372개다. 그는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있다’는 ‘우문현답’ 경영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주홍(60) 상암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보성고와 서강대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했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과의 깊은 인연으로 김 위원장을 보좌하다 1994년 대상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그룹 비서실과 홍보실장, 웰라이프 사업본부장, 고객지원본부장을 두루 거친 그는 정·관계, 언론과의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대상그룹 홍보를 총괄해 왔다. 2015년 1월부터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맡았다. 그는 대상 근무 시절 ‘차(茶) 권하는 임원’으로 유명했다. 선물로 받은 고급 녹차를 직원들과 나눠 마시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주 사장의 ‘차 권하기’는 상암커뮤니케이션즈로 옮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홍보인 특유의 기질에 걸맞게 평소 온화한 성품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감각으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텁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장진호 전 진로회장 누구?… “진로 흥망성쇠 함께한 장본인”

    장진호 전 진로회장 누구?… “진로 흥망성쇠 함께한 장본인”

    장진호 전 진로회장 누구?… “진로 흥망성쇠 함께한 장본인” 장진호 전 진로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지난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장진호(63) 전 진로그룹 회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 전 회장은 진로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인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진로에 입사했다. 선친인 장학엽 회장에 이어 1988년 제2대 회장에 취임했다. 진로그룹은 한때 계열사를 20개 이상 거느리며 재계 19위까지 올랐지만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자금난에 빠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진로의 모태는 1924년 장진호 회장의 선친 고 장학엽 회장이 평남 용강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다. 이후 장씨 일가는 1951년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동화양조’로 상호를 바꾸고 ‘금련’이라는 소주를 생산하면서 남한에 터를 잡았다. 이어 1954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서광주조’를 발족해 전국적인 영업에 들어갔으며, 진로 소주의 상징인 두꺼비도 이때 탄생했다. 진로라는 상호는 197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진로는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후 줄곧 시장을 석권해왔다.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소주를 주력사업으로 해온 덕에 인지도도 높았다. 소주사업에 전념해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던 진로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사업 영역을 급속히 확장하면서부터다. 장 전 회장은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고서 이듬해인 1988년 서울 서초동 본사 인근에 아크리스 백화점을 열면서 종합유통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선, 제약, 종합식품, 건설, 금융, 유선방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종합그룹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다 결국 1997년 9월 부도를 맞았다. 1999년 자회사 진로쿠어스맥주가 오비맥주에 매각되고, 2000년 위스키사업이 진로발렌타인스에 양도됐다. 결국 진로그룹은 2003년 법정관리와 계열사 분할 매각으로 공중 분해됐다. 이어 하이트맥주가 2005년 진로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분식회계, 비자금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돼 2004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은 그가 1994∼1997년 자본이 완전히 잠식된 진로건설 등 4개 계열사에 이사회 승인없이 6300억원을 부당지원하고,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에서 5500억원을 사기대출받은 혐의 등을 적용했다. 장 전 회장은 진로의 대주주였으나 2004년 4월 법원의 정리계획안 인가에 따라 진로 지분 전량이 소각됐다. 또 그의 재산도 대부분 법원에 의해 가압류됐다. 외환위기 와중에 진로그룹이 부도나면서 모든 것을 잃은 장 전 회장은 진로를 되찾으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외자를 유치하거나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기업을 앞세워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으로 거액의 공적자금을 낭비한 책임이 있는 범죄자인데다가 정서적으로도 다시 경영활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경영인으로 복귀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진로를 되찾기도 어려워졌다. 결국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고서 2000년대 중반부터 기약 없는 해외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장 전 회장은 10여년간 캄보디아, 중국 등을 떠돌며 생활했다. 외국에서 은행, 부동산 개발회사, 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3년에는 기업 회생을 위해 마련했던 거액의 자금을 횡령했다며 옛 진로그룹 임원을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장기 도피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장 전 회장은 평소 지인들에게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점이 많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스토리] 새내기 행원에게 듣는 입사 TIP

    [커버스토리] 새내기 행원에게 듣는 입사 TIP

    →취업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하진 신한은행 주임) 매일 신문을 꼼꼼히 읽었다. 상식이나 집단토론, 개인PT(프레젠테이션)나 논술에 도움이 된다. 경제 관련 이슈뿐 아니라 문화, 산업, 국제 등 전 부문의 흐름을 알아두는 게 좋다. 틈이 나면 신한은행 홈페이지나 관련 기사를 검색하며 은행 정보를 스크랩해 뒀다. 면접에서 은행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준비를 잘해 왔는지 보여줄 수 있는 배경 지식이 된다. 인문학 서적이나 고전을 짬짬이 읽어 두고 인상 깊었던 대목도 면접 답변에 활용했다. →탈스펙이라고 하지만 정말 스펙을 보지 않나. -(김현석 국민은행 계장) 입행 동기들의 출신학교나 전공, 스펙은 천차만별이다. 은행도 결국 고객을 상담하는 서비스직군이니 똑똑한 사람보다 고객에게 신뢰를 주고 바른 인성을 가진 지원자를 선호한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이 과정에서 실패나 좌절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또 그런 경험이 입행 후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면접관에게 어필하는 게 스펙보다 더 중요하다. →아무리 탈스펙이어도 실무자들 입장에선 관련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한창민 하나은행 행원) 자격증이 많을수록 합격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격증은 지원자가 얼마나 금융업에 관심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수단은 될 수 있다. 자격증 대신 시중은행에서 인턴을 하며 실무 경험을 쌓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자기소개서(자소서)는 어떻게 써야 하나. -(박지영 기업은행 계장) 누누이 강조되는 대로 솔직하게 쓰는 것이 관건이다. 합숙 면접 등 여러 차례 면접을 거치면서 일관성과 진실성을 끊임없이 검증받기 때문이다. 온라인 취업 카페의 모범답안이나 취업에 성공한 선배나 친구의 자소서를 각색하면 결국 들통난다. 문장은 가급적 단문으로 쓰는 게 좋다.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쓸 때는 몰라도 말을 하다 보면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있기 마련이다. →면접 잘 보는 비법이 있나. -(박범석 우리은행 행원) 목표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막연하게 꼭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보다 입행 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두고 발전 가능성을 면접관들에게 충분히 어필해야 한다. 떨리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너무 긴장해 말을 더듬게 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면접관을 ‘고객’이라 생각한 뒤 스스로를 세일즈한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것도 좋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오픈프레스,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문화 조성

    오픈프레스,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문화 조성

    기업문화는 직원들의 사기진작과 더불어 기업성장의 주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탄탄한 기업문화를 배경으로 한 기업은 심화되는 시장경쟁 속에서도 하나로 단결하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직원의 성장이 기업성장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고리 형성까지 가능하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종합광고홍보대행사 ‘오픈프레스(대표이사 김도영)’는 직원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문화 형성에 성공한 대표 기업사례이다. 우선, 오픈프레스는 직원과 함께 발전해나가자는 취지에서 소통과 교육 측면을 강화했다. ‘아이디어 제안’을 통해 직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극 수렴하여 업무에 반영하는 한편, ‘교육 및 전파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직무 및 마인드 교육까지 전사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또한 신규 입사자들의 빠른 회사 적응을 위한 OJT 프로그램과 멘토링 제도도 운영 중이다. 직원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로는 사이버연수원을 비롯해 케이스 스터디, 한국어능력시험 자격소유 포상제도 등을 실시하고 있다. 사이버연수원은 직원들의 업무 관련 지식뿐 아니라 여러 방면의 폭넓은 지식확장을 도모해 지속적인 자기계발이 가능하도록 하며, 각 팀별로 일주일마다 진행하는 케이스 스터디는 북쉐어링과 사례발표 시간을 통해 사원들의 업무 역량을 증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밖에 나눔과 단합을 위한 시간에도 전 직원이 동참하는 등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나눔 바자회’에서는 안 쓰는 물건을 모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 사원들의 경조사나 뜻깊은 일에 사용하고 있다. 또, 사원들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한 ‘친해지길 바라’ 프로그램을 포함해 ‘칭찬 릴레이’, ‘정기 워크샵’ 등의 활동들이 진행 중이다. 한편, 오픈프레스는 직원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미래설계 지원을 위해 다각도의 복리후생 제도까지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4대보험 가입, 건강검진제도, 퇴직연금제도부터 본인 및 자녀 학자금 대출제도,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대출, 장기 근속자 포상, 법인차량 지원, 육아탄력근무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픈프레스 김도영 대표는 “오픈프레스는 직원들이 오랫동안 함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제도와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지난 10년간 노력해왔다”며 “앞으로 유능한 인재들과 함께 더욱 발전하는 모범기업이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겠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승객 성희롱에 우울증”… KTX 여승무원 산재 첫 인정

    “승객 성희롱에 우울증”… KTX 여승무원 산재 첫 인정

    승객으로부터 성희롱과 욕설에 시달리다 우울증까지 앓게 된 KTX 여승무원이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감정 노동자인 KTX 승무원이 앓고 있는 우울증이 산재로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다. 근로복지공단은 KTX 승무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퇴사한 A씨(31)의 우울증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 통지했다고 2일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A씨는 2006년 5월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에 입사해 2012년까지 서울·용산지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2012년 ITX 청춘열차 개통 업무로 파견됐다가 2013년 1월 용산지사로 복귀했지만 근무 7년 만인 2013년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정신적인 고통을 견디지 못한 A씨는 지난해 9월까지 휴직하고 치료를 받았지만 같은 해 10월 더이상 휴직이 연장되지 않아 퇴사했다. A씨는 열차가 출발하기 전 검표·안내 업무 등을 하면서 승객으로부터 반말과 폭언에 시달렸고 술에 취한 승객 등에게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상시 모니터링 제도, 무릎 응대 서비스, 왕복 근무, 불규칙한 근무 스케줄 등 KTX 승무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도 A씨를 힘들게 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승객에 의한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우울증이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개별 심사 결과를 통계화하고 있지 않지만 KTX 여승무원의 우울증이 업무 연관성을 인정받아 산재 보상을 받는 첫 사례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KBS 일베 기자, 정식 발령 “생리휴가 내려면 XXX 인증하라” 저질 글 ’충격’

    KBS 일베 기자, 정식 발령 “생리휴가 내려면 XXX 인증하라” 저질 글 ’충격’

    KBS 일베 기자 채용 “임용취소 어렵다” 일베에서 한 발언 보니 ‘경악’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 채용이 화제다. KBS는 31일 오후 7시경 4월 1일자 발령 공지에서 극우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활동 경력이 있는 수습기자를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발령했다. 일명 ‘일베 기자’ 채용에 대해 KBS는 “수습사원의 임용 취소는 사규나 현행법에 저촉돼 임용결격사유가 발생했거나 수습과정에서의 평가가 부적합으로 판정됐을 경우에 해당된다. 문제의 수습사원의 경우 평가 경과는 사규에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외부 법률자문에서도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와 임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KBS는 “이번 건을 계기로 채용과 수습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두 차례 성명서를 통해 일베 수습기자의 임용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조대현 사장은 일베 기자를 받아들였다. 내일 오전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강력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KBS 기술인협회, 기자협회, 경영협회, PD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11개 직능단체는 일베 수습기자 임용 반대 공동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이들은 “특정지역과 특정이념을 차별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몰상식과 부도덕은 KBS의 정체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며 KBS 일베 기자 채용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일베 수습 기자’는 지난 1월 KBS 공채 42기로 입사했으며 입사 전 ‘일베’에서의 활동 경력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이 수습 기자는 일베에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대를 인증하라”라는 등 각종 음담패설, 여성 혐오, 특정 지역 차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등의 게시물을 다수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은 KBS 기자들의 익명게시판에 공개돼 논란이 됐다. KBS 내부에서는 해당 수습기자의 임용 반대를 요구했으며 이후 수습기자는 경찰서가 아닌 내근 위주로만 3개월간 근무해왔다. KBS 일베 기자 채용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KBS 일베 기자, 어이 없네”, “KBS 일베 기자, 이런 사람이 기자를 한다고?”, “KBS 일베 기자, 일베가 공영방송까지 진출했다”, “KBS 일베 기자, 소름 돋는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KBS 일베 기자, 정식 발령 ‘KBS 입장은?’

    KBS 일베 기자, 정식 발령 ‘KBS 입장은?’

    KBS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활동한 바 있는 수습기자를 1일자로 정식 발령했다. KBS는 지난 31일 4월 인사 발령을 공지하면서 해당 수습기자를 정사원인 일반직 4직급으로 발령냈다. 이 기자는 다만 다른 동기들이 보도본부 사회2부로 발령난 것과 달리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됐다. 이 기자는 지난 1월 공채 42기 기자로 입사하기 전 ‘일베’에서 활발히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KBS 내부의 임용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KBS는 “수습사원의 임용 취소는 사규나 현행법에 저촉돼 임용결격사유가 발생했거나 수습과정에서의 평가가 부적합으로 판정됐을 경우에 해당된다. 문제의 수습사원의 경우 평가 경과는 사규에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외부 법률자문에서도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와 임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KBS 일베 기자, 정식 발령 “임용취소 함부로 못해” 과거 올린 글 보니 ‘경악’

    KBS 일베 기자, 정식 발령 “임용취소 함부로 못해” 과거 올린 글 보니 ‘경악’

    KBS 일베 기자, 정식 발령 “임용취소 함부로 못해” 과거 올린 글 보니 ‘경악’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가 정식 발령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KBS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활동한 바 있는 수습기자를 1일자로 정식 발령했다. KBS는 지난 31일 4월 인사 발령을 공지하면서 해당 수습기자를 정사원인 일반직 4직급으로 발령냈다. 이 기자는 다만 다른 동기들이 보도본부 사회2부로 발령난 것과 달리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됐다. 이 기자는 지난 1월 공채 42기 기자로 입사하기 전 ‘일베’에서 활발히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KBS 내부의 임용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내 KBS는 “수습사원의 임용 취소는 사규나 현행법에 저촉돼 임용결격사유가 발생했거나 수습과정에서의 평가가 부적합으로 판정됐을 경우에 해당된다. 문제의 수습사원의 경우 평가 경과는 사규에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외부 법률자문에서도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와 임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베 기자의 임용에 대해 KBS 안주식 PD협회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다. 공영방송에서의 입사기준, 채용기준이 뭐냐. 높은 경쟁률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을 떨어뜨리는 데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극우 성향의 일베냐 아니냐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이 친구가 ‘일베’에서 고정 ID를 가지고 반공개적인 활동을 했었는데 그 활동을 하면서 썼던 글들의 내용 자체가 차마 입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폄하적인 내용이나 패륜적인 내용이다. KBS 직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저희들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해당 기자가 일베 활동을 하면서 작성한 글은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대를 제출하라’ ‘핫팬츠 입은 여자들은 공연음란죄로 처벌하라’ ‘몸을 까고 다니는 여자들은 모텔에서 한 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내용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안 협회장은 “정식 기자 임용을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 오는 11월말 조대현 사장 연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신임 문제까지 나올 수 있다”고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안병덕, 열정·성실함 상상 초월… 33년간 휴가 ‘0’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안병덕, 열정·성실함 상상 초월… 33년간 휴가 ‘0’

    코오롱그룹의 지주회사인 ㈜코오롱의 안병덕(58) 사장은 1982년 코오롱상사에 입사해 회장비서실과 부속실 근무를 거쳐 코오롱인더스트리 부사장, 코오롱글로벌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코오롱을 이끌고 있다. 비서실과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두루 거친 그의 경험은 ㈜코오롱이 그룹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입사 이후 33년간 단 한 번도 휴가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2월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발인 다음날 바로 업무에 복귀했을 정도다. 친화력이 뛰어나고 딱 한 번 만난 직원도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 먼저 인사할 정도로 관찰력이 남다르다. 박동문(57) 사장은 코오롱의 주력 기업인 코오롱인더스트리㈜를 이끈다. 1983년 코오롱상사에 입사해 ㈜코오롱 인도네시아법인 최고재무책임자(CFO), 코오롱글로텍 대표이사 부사장, 2010년 코오롱글로텍 사장 겸 코오롱아이넷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박 사장은 ‘기본을 바탕으로 생각이 젊은 회사’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회사의 혁신과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도 타이어코드를 비롯한 자동차 소재 제품들의 실적 확대를 이뤄냈다. 특히 패션 부문에서 중국 코오롱스포츠 매장 수를 180여개로 늘리고 럭키슈에뜨, 쿠론, 슈콤마보니 등의 인기 브랜드를 론칭해 성공적인 결과를 일궜다. 윤창운(61) 코오롱글로벌㈜ 사장은 1981년 코오롱건설 기획실에 입사하고 코오롱그룹 회장 비서실, 코오롱SPB사업부를 거쳐 코오롱과 SKC의 PI FILM 합작 회사 SKC코오롱PI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합작사 설립 후 직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양 사 직원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국내 시장 점유율을 약 90%까지 끌어올리며 2013년 매출 400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코오롱글로벌㈜ 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현장 직원들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불필요한 관행은 철저히 배제하는 스타일이다. 이해운(59) 코오롱패션머티리얼㈜ 대표이사는 1982년 ㈜코오롱에 입사한 후 30여년간 연구·개발(R&D)과 생산기술 업무를 담당한 정통 엔지니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장과 환경안전기술본부장 등을 거쳐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 코오롱의 모태 사업에도 정통하다. 지난해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사업 영역을 기존의 원사, 원단에서 나아가 나노섬유까지로 확대시켰다. 한달 중 12일 이상은 고객과 직접 만나는 현장 경영으로 유명하다. 장희구(56) 코오롱플라스틱㈜ 대표이사는 1986년 ㈜코오롱에 입사해 ㈜코오롱의 구매팀장, 도쿄사무소장, 코오롱플라스틱 사업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코오롱플라스틱 대표이사가 됐다. 별명은 ‘고참 영업사원’이다. 아무리 바빠도 매주 고객사를 직접 방문해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직급에 상관없이 담당자를 만나 불편 사항이나 요구 사항을 듣는다. 평직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유명한 최고경영자(CEO)다. 이우석(58) 코오롱생명과학㈜ 대표이사는 1978년 행정고시 22회 출신으로 산업자원부 국제협력과장, 장관 비서관, 총무과장 등을 지냈다. 2000년 오랜 공직 생활을 접고 코리아이플랫폼을 창업했다. 2006년 당시 코리아이플랫폼이 코오롱 계열로 편입되면서 현재는 코오롱제약과 코오롱생명과학 2개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통찰력과 분석력이 뛰어나 핵심을 짚어낸 뒤 빠르게 결정해 행동으로 옮긴다는 평을 듣는다. 이수영(47)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대표이사는 2003년 코오롱그룹에 입사해 경영전략팀장, 신사업팀장,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2013년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코오롱그룹 최초의 여성 CEO이기도 하다. 트렌드를 읽는 눈이 뚜렷하고 기획력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호선(56) 코오롱베니트 대표이사는 LG전자와 LG IBM에서 직판영업과 전략기획 등을 담당하다 2002년 코오롱정보통신 상무로 입사했다. 코오롱아이넷, 코오롱글로벌 등을 거쳐 2014년 코오롱베니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취임 후 그룹 내 정보기술(IT)서비스와 솔루션 사업을 성공적으로 통합해 사업과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재편하는 성과를 거뒀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KBS 일베 기자, 과거 쓴 글 뭐길래? ‘충격’

    KBS 일베 기자, 과거 쓴 글 뭐길래? ‘충격’

    KBS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활동한 바 있는 수습기자를 1일자로 정식 발령했다. KBS는 지난 31일 4월 인사 발령을 공지하면서 해당 수습기자를 정사원인 일반직 4직급으로 발령냈다. 이 기자는 다만 다른 동기들이 보도본부 사회2부로 발령난 것과 달리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됐다. 이 기자는 지난 1월 공채 42기 기자로 입사하기 전 ‘일베’에서 활발히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KBS 내부의 임용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KBS는 “수습사원의 임용 취소는 사규나 현행법에 저촉돼 임용결격사유가 발생했거나 수습과정에서의 평가가 부적합으로 판정됐을 경우에 해당된다. 문제의 수습사원의 경우 평가 경과는 사규에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외부 법률자문에서도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와 임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지금의 바른 나를 만든 건 12년간 쓴 일기 덕분이죠”

    “지금의 바른 나를 만든 건 12년간 쓴 일기 덕분이죠”

    “일기를 꾸준히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교 3학년까지 12년간 일기를 쓴 소녀는 반듯하게 자라 명문대에 진학했고, 지난 1월 ‘취업 전쟁’을 뚫고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주인공 김민경(24·여)씨는 1일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랑 잠시만 떨어져도 불안해 하듯, 나에게는 일기가 딱 그런 대상이었다. 하루라도 빠뜨리면 불안하고 허전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01년, 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를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의 ‘사랑의 일기’ 공모전에 출품해 구청장상을 받았다.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장관상까지 포함해 ‘사랑의 일기 큰잔치’에서 7차례나 수상했다. 혹시라도 훼손될까 봐 꼼꼼하게 철을 해 놓은 초등학교 시절 일기에는 주로 박물관 등에서 현장 체험을 하고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김씨는 “어머니가 학원 백날 다니는 것보다는 현장 체험학습이 낫다고 하셔서 많이 다니게 했다”고 설명했다. 고교 시절엔 주로 독서일기를 썼다. 매일 쓰진 못했지만, 평소 좋아하는 시집, 소설, 역사 등 인문서를 읽고 내용을 정리했다. 김씨는 “친구들이 책 한 권 제대로 못 읽는 시기에 종잡아 100권은 읽은 것 같다”며 웃었다. 입시 준비로 바쁜 가운데 기왕 읽는 책을 공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골라 읽고 독서일기를 썼다. 김씨는 “읽은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한 번 써 보니 그냥 읽고 마는 것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또한 “사춘기 시절 감정이 복받칠 때, 고민이 있을 때는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 속 시원히 털어 놓은 덕에 나쁜 길에 빠지지 않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일기를 꾸준히 쓰는 습관 덕에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비뚤어지는 일 없이 보냈다. 김씨는 대학 시절에 잠시 뜸했던 일기와 최근 재회했다. 지난 1월 사회에 발을 내디딘 첫날부터 다시 일기를 쓰고 있는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소중히 여기고, 기록하길 권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인추협에 기증한 일기는 공책으로 수백권에 달한다. 일기 원본은 1일 인추협이 종로구 인추협 회의실에서 개최한 ‘사랑의 일기 범국민 운동 선언식’ 행사장에 전시됐다. 이날부터 인추협은 전국의 어린이 100만명이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범국민 운동을 시작했다. 출범식에서는 인추협 이사장인 권성 전 헌법재판관과 전현직 교장 등 15명이 자신의 모교에 일기장을 기증하기로 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배지 경영’ 소통 강화…장자일계 원칙 이어질 듯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배지 경영’ 소통 강화…장자일계 원칙 이어질 듯

    1977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한 이웅열(59) 회장은 1985년 미국 뉴욕지사와 일본 도쿄지사 근무, 아시아지역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미국 유학 생활을 통해 일찌감치 쌓은 글로벌 감각을 토대로 코오롱그룹의 해외 사업 전략을 이끌었다. ㈜코오롱 대표이사 등을 거쳐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시기는 1996년이다. 회장 취임 이후에도 2002년 중국 시장 진출, 2013년 중국 지주회사 설립 등 코오롱그룹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2006년에는 ‘라이프스타일 이노베이터’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나일론 도입과 생산으로 한국 의복 생활에 혁신을 일으켰던 코오롱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혁신시키겠다는 포부다. 이 회장은 화학섬유 제조와 건설, 무역에 주력하던 코오롱그룹의 사업 영역을 하이테크산업 및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확대시켰다. 바이오 신약과 웨어러블 기술이 대표적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이 20년 이상 개발해 온 ‘티슈진-C’는 세계 최초의 퇴행성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로,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치료제는 임상실험 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쯤 출시될 계획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 소재로 주목받는 유기태양전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연료전지용 수분제어장치, 국내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전자섬유 ‘히텍스’ 등은 이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온 코오롱의 미래 먹을거리다. 코오롱은 지주회사인 ㈜코오롱이 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 회장은 ㈜코오롱의 지분 47.38%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의 별명은 ‘행동파’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때 숨거나 피하기보다는 직접 나서 돌파구를 마련해 왔다. 그룹 회장 취임 2년 만인 1998년 외환위기로 경영이 어려움에 빠지자 신속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00년대 중반 노조 파업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현장으로 달려가 근로자들과의 대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의 발품은 ‘신뢰’라는 가치를 챙겼다. 덕분에 2007년 4월 ㈜코오롱(현 코오롱인더스트리)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노조와 손을 맞잡고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며 노사 상생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 수 있었다. 10년간 이어 온 정리해고자 시위대와의 갈등도 직접 해결했다. 이미 대법원은 코오롱이 2005년 진행한 정리해고에 대해 ‘경영 상황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사측은 노사 상생·문화 발전을 위한 기부금을 제3의 기관에 전달하고, 정리해고자들과 시위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생전에 강조했던 ‘노사불이’(使不二)의 뜻이기도 하다.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 당시에도 이 회장은 보고를 받은 직후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고 발생 약 9시간 만인 오전 6시쯤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고 수습을 지휘하는 한편 사재를 출연해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고 후유증을 최소화했다. ‘배지 경영’은 이 회장의 소통 방식이다. 임직원에게 매년 경영 방침을 형상화한 배지를 착용하게 함으로써 그룹의 미래상을 임직원과 공유한다. 지난해에는 ‘마음을 더하고 열정을 곱하며 서로 힘든 것을 나누면 무한대의 성공을 이뤄낸다’는 뜻으로 ‘□ + O x △ ÷ = ∞’라는 공식을 새긴 ‘더하고 곱하고 나누기 배지’를 만들어 나눠 줬다. 올해는 빠르게 돌아가는 목표 달성에 주력하자는 뜻에서 ‘타이머 2015 배지’를 선보였다. 코오롱의 후계 구도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장남 이규호(31) 체계가 조만간 가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구체화되고 있다. 코오롱은 이 명예회장 이후 장남만 참여하는 장자일계(長子一系) 원칙을 이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장남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뒤 2012년 입사해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에서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 부장은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코오롱글로벌㈜ 건설 현장 등을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재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부자가 모두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마쳤다. 이 회장은 전방 근무를 자원해 비무장지대(DMZ) 수색대에서, 규호씨는 경기 동두천시 포병여단에서 각각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특히 일병이었을 당시엔 레바논 유엔 평화유지군에 지원해 동명부대 소속으로 파병을 가기도 했다. 이 부장은 재벌가 3세답지 않게 소탈한 성격이다. 미국 유학 시절엔 자동차 없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고, 구미공장 근무 시에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했다. 이 부장은 여전히 개인 소유의 승용차가 없다. 사적인 약속이 있을 때면 여동생들과 함께 쓰는 기아차 ‘쏘울’을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일한 임직원들은 규호씨가 겸손하지만 업무에는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곽태헌 칼럼]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곽태헌 칼럼]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1990년대 들어 ‘386세대’라는 조어(造語)가 나왔다. 30대, 대학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을 종합한 게 ‘386세대’다. 어원(語源)은 당시 성능이 좋았던 386급 컴퓨터다. 종전의 286급 컴퓨터에 비해 기능이 훨씬 뛰어났던 386급 컴퓨터와 같은 자랑할 만한 좋은 별칭이다. ‘386세대’가 제대로 업그레이드됐는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30대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됐다. ‘486세대’를 거쳐 ‘586세대’가 되면서 요즘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86세대’로도 불린다. 기자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이 세대는 운이 참 좋다. 입시 지옥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쉽게 들어갔다. 1980년 7월30일 전두환 정권은 느닷없이 과외와 본고사를 없애고, 예비고사와 내신성적으로만 대학에 들어가는 내용의 ‘교육개혁안’을 내놓았다. 당시 모든 언론이 찍소리를 할 수 없었던 군사정권이었으니 가능했다. 대학 정원도 늘리고 여기에 덧붙여 졸업정원제라고 해서 30%를 더 뽑게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데모하지 말고, 공부를 하도록 하려는 꼼수가 깔려 있었지만 어쨌든 입학의 문은 활짝 열린 셈이다. 1981학년도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은 18만 7050명으로 전년보다 7만 350명 늘어났다. 졸업정원제 첫해인 그해에는 원서접수에 제한이 없어 허수(虛數) 지원이 많았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치러진 면접에는 한 곳만 선택해야 했으니, 서울대 법대를 비롯해 곳곳이 미달이었다. 1984년에는 30%를 더 뽑을 수 있도록 된 것을 대학 자율로 하도록 바뀌었고, 1988년에는 졸업정원제는 완전 폐지됐다. ‘86세대’는 직장도 골라서 갔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3저(달러·유가·금리) 호황을 타고 이들이 졸업할 1980년대 말에는 취업도 쉬운 편이었다. 요즘 웬만한 기업의 경쟁률은 100대1이 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 말, 상경계 출신들은 투자금융·종합금융·리스·증권·투자신탁 등 당시 잘나가는 금융회사를 골라서 가기 바빴다. 상경계 출신들은 요즘 인기가 있는 시중은행은 안중에도 없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져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을 했지만 입사 경력 10년을 넘지 않았던 ‘86세대’들은 이 위기도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다. 보통 기업에서는 고참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 좋은 ‘86세대’는 국회의원들의 도움까지 받았다. 재작년 국회 본회의에서는 직원이 300명 이상인 기업의 경우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고비마다, 외부의 도움을 받으며 넘어가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보통 55~58세가 정년이던 곳에서는 1958~61년생도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는 ‘86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을 위해 양보할 때가 됐다. 요즘 20대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이다, 과외다 하면서 힘들게 살아왔다. 부모 세대보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더 많이 힘들게 했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훨씬 어려워졌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은 없다. 지난 2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11.1%로 1999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취업하는 게 본인과 가족에 가장 큰 축복인 상황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과는 정반대인 주문을 해왔다. 배당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한 게 최 부총리다. 배당을 늘리고 임금을 올리면 기업의 여윳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배당 압박을 할 게 아니라, 고용 압박을 해야 한다. 임금을 올리라고 할 게 아니라, 임금을 동결해서라도 채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게 맞다.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정치권, 정부, 재벌을 믿을 수 없다면 기성세대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고, 임금동결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을 잃어가는, 꿈을 잃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기성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단군 이래 최고라는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를 우리의 아들, 딸이 더이상 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 [독박(讀博) 육아일기] 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독박(讀博) 육아일기] 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독박 육아’라는 말은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로, 육아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썼다’는 뜻이지요. 아무런 도움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초보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더 넓게 읽게 됐다는 뜻에서 ‘독박(讀博) 육아’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주는 육아맘들의 세계를 저의 경험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는 2008년 8월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2009년 2월부터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취재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온라인뉴스부에서 일하던 중 2013년 12월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5개월을 보내고 3월 11일 복귀했습니다. 춤을 추고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흥에 겨워 몸이 들썩이는데도 너무 슬펐다. 지난해 말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를 보던 내 모습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황당한 경험을 했기에 벌써 세 달이나 지났지만 다시 기억을 꺼내들었다. 방송이 끝난 뒤 어김 없이 ‘절친’ 육아 카페에 접속했다. 이게 웬 일, 울었다는 엄마들의 글로 도배가 돼 있었다. 물론 2000년대 전후반 학창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추억에 젖으며 눈물을 훔쳤겠지만, 나와 엄마들의 눈물은 유독 가슴을 울렸다.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 건 다름아닌 그룹 SES의 멤버 슈였다. 한 때는 요정이었던 그가 벌써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최근 각종 육아 프로그램을 비롯해 광고나 화보 등에서 얼굴을 비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토토가 무대에서의 슈가 가장 신나고 들떠 보였다.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육아휴직이 끝나갈 무렵, 그 때 내 마음은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과연 아기를 남의 손에 하루종일 맡기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1년 내내 달고 살았던 걱정이었지만 막상 발을 떼려고 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혹시나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도 됐지만 무엇보다도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뀔 것 같아 두려움이 컸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이 더는 없을 것 같았고, 언제나 기준이 ‘나’였던 생활이 끝나버린 것 같아 엄청난 좌절감이 밀려왔다. ●”나도 꿈 많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도 없네요” SES 노래를 들으며 가슴 설레던 중학생은 이 세상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꿈이 많았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질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 살 줄 알았을 것이다. ’토토가’가 방송되는 날 ‘I’m your girl’ 전주가 흘러 나오자마자 마치 중학생 그 때처럼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TV 화면에 반사된 내 모습이 보였다. 목이 쭈욱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아기를 안고 있는 꾀죄죄한 아줌마가 있었다.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 다른 엄마들의 눈물도 비슷했다. “육아에 지쳐 있는 엄마들의 눈물이었다”, “찬란했던 10대가 너무나 그리웠다”, “나도 꿈이 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조차도 없어진 것 같다”는 글들이 잇따랐다. 엄연히 직장이 있고, 그것도 중학생 때 꿈꾸던 직종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불과 1년 만에 이토록 상실감을 느꼈는데, 더 많은 꿈을 포기하고 더 오래, 진짜로 단절이 된 엄마들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또 울컥했다. 평범하게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여성의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결혼과 임신·출산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이렇게 많은지 전혀 실감을 못했다. 우리 엄마 세대에나 그런 줄 알았다.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식사를 하면서 다른 엄마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으니,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 뒤로 아기를 키우며 만나는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내가 튀는 존재가 됐다. 임신한 몸으로 회사를 꿋꿋이 다녔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고, 봐줄 사람도 없으면서 돌쟁이를 두고 복직을 결심한 아기 엄마는 흔치 않았다. 많은 엄마들이 육아에 전념하며 오롯이 아이의 일과에 맞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스케줄에 따라 약속을 잡고, 오늘 아이에게 뭘 먹일까가 중요한 고민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 엄마가 직접 키우고 나중에 다시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바람은 기한도 없이 점점 늦춰지고 있었다. 어떤 엄마는 나에게 “도대체 아기를 남한테 맡기면서까지 일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단순히 내 자아실현을 위해서라고 답하려다 보니 너무 허황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혼女 5명 중 1명꼴 ‘경력 단절’이 현실 5명 중 1명꼴로 결혼과 육아 등으로 직장을 포기한다는 게 ‘현실’이었는데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15~54세 기혼여성 956만 1000명 가운데 결혼, 임신·출산, 육아, 자녀교육(초등학생) 등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이 213만 9000명으로 22.4%를 차지했다. 일을 그만둔 사유는 결혼이 (41.6%)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육아(31.7%)와 임신·출산(22.1%) 등의 순이었는데 2013년 대비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9.7%나 늘었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단절도 5.4% 늘었고 자녀교육으로 인한 단절은 무려 27.9%나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절반 이상이 30대(52.2%)였고 이들 역시 육아(35.9%)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 했다. 이러한 통계를 매년 접했으면서도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겠거니 여겼던 건 무슨 오만함에서였을까. 결혼과 육아와 관계 없이 여성도 당연히 자기 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물정도 모르고 책으로만 세상을 읽은, 앞서간 생각일 뿐이었다. 나에겐 직업이라는 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 그냥 나를 나타내는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내 모습을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기애가 엄청나게 강했던 것도 아니지만 이런 순진하고 낭만적인 생각이 현실에 부딪혔을 때 혼란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루하루 아기가 클수록 과연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횟수도 더 늘어갔다. 사실은 회사로 돌아온 지금도 과연 언제까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린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나와서 내 일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죄책감이 짓누른다. 아이만 키우는 전업맘들에 비해 엄청난 사치를 부리고 있는 것만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점점 ‘나’를 잊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들에게는 항상 자신보다 아이가 우선이 돼야 한다. 아기를 낳고부터 내 이름 대신 ‘OO엄마’라는 이름이 더 많이 불리는 것처럼, SNS에 온통 아이 사진만 올리면서 내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육아를 할 수록 나는 사라지고 엄마만 커지는 것 같다. 다시 무대에 올랐던 슈는 그 순간 만큼은 다시 자신을 찾았기에 무척 행복해 보였다. 비록 하루였지만 아이들에게 해방돼서 가장 화려했던 때로 돌아간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얻었다. 슈는 방송을 마친 뒤 자신의 블로그에 “엄마가 된 저에게도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열심히 예쁘게 살겠다”는 글을 남겼다. 매일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에게 이제 ‘꿈’이라는 단어는 낯설기까지 하다. 그래서 잠시나마 꿈을 이뤄 기뻐하는 슈를 보며 눈물이 쏟아졌는지도 모르겠다. 가슴 한 켠에 잊고 있던 나를 떠올리며 그리워했고, 어쩌면 희망도 품었을지 모른다. 언제 이뤄질지 기약은 없지만. 여러 생각과 감정이 겹쳤던 날이라 몇달이 지난 지금도 ‘토토가’를 보던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독박육아맘’으로서 진심으로 부러웠다. 촬영하는 동안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있었다는 것부터.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독박 육아’라는 말은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로, 육아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썼다’는 뜻이지요. 아무런 도움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세상을 더 넓게 읽게 됐다는 뜻에서 ‘독박(讀博) 육아’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고작 1년 남짓의 경험이 몇 년씩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 비하면 매우 민망하지만, 글을 쓸 기회가 있을 때 나누고 싶습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몰랐던 일들, 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몰라주는 육아맘들의 세계를. 저의 강렬했던 지난 1년의 시간, 그리고 ‘독박 워킹맘’에 도전하는 지금의 시간들을 통해 풀어가 보고자 합니다. ※허백윤 기자는 2008년 8월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2009년 2월부터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취재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온라인뉴스부에서 일하던 중 2013년 12월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5개월을 보내고 3월 11일 복귀했습니다.
  • KBS 일베 기자 발언 “핫팬츠 입으면 공연음란죄로 처벌해야” 경악

    KBS 일베 기자 발언 “핫팬츠 입으면 공연음란죄로 처벌해야” 경악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 발언 “핫팬츠 입으면 공연음란죄로 처벌해야” 경악 KBS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전력이 있는 수습기자를 1일자로 정식 발령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기자의 임용에 대해 KBS 안주식 PD협회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라면서 “공영방송에서의 입사기준, 채용기준이 뭐냐. 높은 경쟁률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을 떨어뜨리는 데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협회장은 ‘해당 기자의 정치적 성향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극우 성향의 일베냐 아니냐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이 친구가 ‘일베’에서 고정 ID를 가지고 반공개적인 활동을 했었는데 그 활동을 하면서 썼던 글들의 내용 자체가 차마 입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폄하적인 내용이나 패륜적인 내용이 있어 KBS 직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저희들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해당 기자가 어떤 글을 올렸냐는 질문에 안 협회장은 “차마 방송으로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여성비하적이고 지역차별적이고 쌍욕 등이 포함된 폭력적인 언어였다. 일례로 굉장히 순화시켜서 설명을 드리자면 ’생리휴가를 가고 싶은 여자는 직장 여자 상사에게 사용 당일 착용한 생리대를 제출하거나 사진 자료를 반드시 남겨서 감사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거나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 여자들은 뭐 공연음란죄로 처벌해야 된다’, ‘밖에서 몸을 까고 다니는 여자들은 호텔 가서 한 번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등의 글들이 있다”면서 “이런 여성 비하적인 활동을 할 정도의 그런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어떻게 통과가 되고 또 나머지 수많은 친구들은 떨어지게 되는 일이 벌어졌느냐,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해당기자가 비보도 부문인 남북교류협력단 파견형식으로 발령난데 대해 안협회장은 “파견 형식이지만 자기가 소속된 보도 본부가 아니어서 파견됐을 뿐이지 정식 기자임은 전혀 변함이 없다”며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 “이 문제를 그냥 묵과할 수 없다. KBS 경영진이 여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핵심이다. KBS는 11월 말에 사장의 신임 절차 과정이 남아 있다. 조대현 사장의 연임 반대 운동도 펼쳐야 하지 않나하는 의견들이 협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KBS 일베 기자, 과거 발언 “몸 까고 다니는 여자들, 호텔에서…” 경악

    KBS 일베 기자, 과거 발언 “몸 까고 다니는 여자들, 호텔에서…” 경악

    KBS 일베 기자 KBS 일베 기자, 과거 발언 “몸 까고 다니는 여자들, 호텔에서…” 경악 KBS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전력이 있는 수습기자를 1일자로 정식 발령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기자의 임용에 대해 KBS 안주식 PD협회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라면서 “공영방송에서의 입사기준, 채용기준이 뭐냐. 높은 경쟁률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을 떨어뜨리는 데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협회장은 ‘해당 기자의 정치적 성향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극우 성향의 일베냐 아니냐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이 친구가 ‘일베’에서 고정 ID를 가지고 반공개적인 활동을 했었는데 그 활동을 하면서 썼던 글들의 내용 자체가 차마 입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폄하적인 내용이나 패륜적인 내용이 있어 KBS 직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저희들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해당 기자가 어떤 글을 올렸냐는 질문에 안 협회장은 “차마 방송으로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여성비하적이고 지역차별적이고 쌍욕 등이 포함된 폭력적인 언어였다. 일례로 굉장히 순화시켜서 설명을 드리자면 ’생리휴가를 가고 싶은 여자는 직장 여자 상사에게 사용 당일 착용한 생리대를 제출하거나 사진 자료를 반드시 남겨서 감사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거나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 여자들은 뭐 공연음란죄로 처벌해야 된다‘ ’밖에서 몸을 까고 다니는 여자들은 호텔 가서 한 번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등의 글들이 있다”면서 “이런 여성 비하적인 활동을 할 정도의 그런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어떻게 통과가 되고 또 나머지 수많은 친구들은 떨어지게 되는 일이 벌어졌느냐,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해당기자가 비보도 부문인 남북교류협력단 파견형식으로 발령난데 대해 안협회장은 “파견 형식이지만 자기가 소속된 보도 본부가 아니어서 파견됐을 뿐이지 정식 기자임은 전혀 변함이 없다”며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 “이 문제를 그냥 묵과할 수 없다. KBS 경영진이 여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핵심이다. KBS는 11월 말에 사장의 신임 절차 과정이 남아 있다. 조대현 사장의 연임 반대 운동도 펼쳐야 하지 않나하는 의견들이 협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저먼윙스 유족 보상액 최고 될 듯

    독일 저먼윙스 여객기를 고의로 추락시킨 것으로 지목된 안드레아스 루비츠 부기장이 우울증뿐만 아니라 자살충동 성향 때문에 과거에 치료를 받았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처럼 조종사에 의한 ‘고의 추락’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저먼윙스나 모기업인 루프트한자가 희생자 유가족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이 규정 보상액을 훨씬 뛰어넘는 업계 최고액이 될 것이란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AP는 이날 독일 뒤셀도르프 검찰의 발표를 인용, “루비츠가 수년 전 조종사 자격을 얻기 전에 자살성향을 포함한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검찰은 성명에서 “고의적 추락 행위를 이끈 (직접적) 동기와 최근 정신질환에 관한 증거까지는 찾지 못했다”면서 “최근까지 자살행동이나 공격적 성향의 조짐을 보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독일 언론은 앞서 루비츠가 2008년 루프트한자의 비행학교에 입학해 조종훈련을 받았으나 이듬해인 2009년 우울증으로 인해 약 6개월간 훈련을 중단하고 상담치료를 받았다고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자살충동에 관한 치료까지 받았다는 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루프트한자가 유가족들의 사고 여객기 희생자에 대한 무한 보상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2013년 루비츠의 저먼윙스 입사 때 정신·육체적 검사가 허술했기에 항공사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른 것이다. 1999년 제정된 항공기 사고 보상 규정인 ‘몬트리올 협약’은 단순 사고일 경우 보상액을 탑승객 1명당 17만 달러(약 1억 8800만원)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번 사고처럼 부기장 등 항공사 직원들의 과실이 드러나면 협약이 적용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보상액을 1인당 최대 1000만 달러(약 111억원)로 전망하면서 탑승객의 국적과 거주지, 직계가족 여부가 보상액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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