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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의 엔지니어’ 박성계·정종석씨

    과학기술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14일 ‘이달의 엔지니어상’ 2월 수상자로 하이닉스반도체 박성계(사진 왼쪽·39) 수석연구원과 서울화학 정종석(오른쪽·54) 대표이사를 선정했다. 박 수석연구원은 D램 제품의 성능을 결정하는 주요 인자인 저전력 및 고속 동작의 특성을 향상시키는데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D램 제품의 수율은 높이고, 불량률은 낮추는데 공헌했다. 정 대표는 가공목재(MDF)용 전사지를 개발해 수출하는 등 그동안 불모지였던 국내 전사지 산업발전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정 대표가 개발한 가공목재(MDF)용 전사필름은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며 국내시장 점유율이 70%를 넘고 있다.
  • 양심적 병역거부자 보석허가

    대체복무 입법안이 논의 중인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구속 재판은 불합리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졌다. 서울 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13일 종교적인 이유로 입대를 거부해 지난달 14일 구속기소된 황모(21)씨의 보석을 허가, 석방했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지난해 5월 종교적 이유로 입대를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해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논란의 불을 지핀 주인공이다. 이 판사는 황씨측 법정대리인이 “정부와 여당이 대체복무를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시점에서 법이 개정되면 무죄가 될 수 있는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제기한 보석신청을 “타당하다.”고 허가했다. 대체복무제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에 따르면 2004년 8월 현재 수감된 병역거부자는 모두 444명이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육군 현역병 복무기간의 1.5배(36개월)를 사회복지요원으로 근무하는 안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50대女 드라마 같은 운명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어 가족과 헤어진 채 새 삶을 살던 50대 여성이 20여년만에 극적으로 가족과 상봉했지만 부부의 엇갈린 삶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1남2녀를 둔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던 A(58·여)씨는 지난 81년 부산에 왔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은 A씨는 사고 당시 자신을 구조하고 간호해준 B(53)씨와 결혼해 B씨의 고향인 영월에서 새 삶을 살게 됐다. 그러던 중 B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군입대 때문에 호적정리가 필요해졌고 무적상태였던 A씨는 경찰의 도움으로 신원파악에 나섰다.3개월 남짓 추적 끝에 경찰은 제주도 서귀포시에 사는 A씨의 가족들을 찾아냈고,A씨는 24년간 재혼도 하지 않은 남편과 세 자녀가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설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A씨는 제주도에서 찾아온 딸(35)과 마침내 극적인 상봉을 했지만 24년만에 만난 어머니를 보고 통곡하는 딸과 달리,A씨는 끝내 기억을 되찾지 못한 채 멋쩍은 만남을 접어야 했다. A씨의 신원을 파악해 가족과의 만남을 주선한 영월경찰서 박은혁 경장은 “A씨에게는 20여년만에 가족을 만난 기쁨보다 이후 두 가족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기억 속의 가족은 찾았지만 지금의 가족을 외면할 수 없는 A씨와 24년간 기다려온 아내가 새 가정을 꾸린 사실을 알게 된 남편,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또다른 가족이 있음을 알게 된 B씨, 그리고 A씨의 자녀들은 모두 큰 고민에 빠졌다. 영월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사설] 강이병 사망진상 철저히 규명해야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인 가혹행위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또다시 육군에서 강 모 이병이 구타당한 뒤 목을 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육군측은 부검 결과 자살로 잠정결론을 내렸지만 유족들은 타살의혹을 제기했다. 진상을 철저히 밝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가혹행위 관련자 및 지휘책임자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가혹행위가 재발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군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훈련을 끝내고 전방부대에 배치된 지 2주만에 사망한 강이병의 유품에서는 군의 폭행과 욕설행위를 폭로한 유서가 나왔다. 조사결과 선임 상병이 경계근무를 서던 강이병에게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욕설과 함께 머리를 때리고 군홧발로 정강이를 걷어찬 사실도 밝혀졌다. 육군은 ‘인분사건’발생 이후 인권개선위원회를 설치하고 소원수리 신고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등 가혹행위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이번에 사망에까지 이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인분사건’때 솜방망이 징계로 일벌백계 의지가 전달되지 않은 때문인가, 아니면 가혹행위 근절대책이 신병훈련소 안에만 국한된 때문인가. 사망한 강이병이 현역면제 자격을 거부하고 자원입대를 한 젊은이였다는 사실은 듣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군은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도록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가혹행위 근절대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또한 이번에만은 분명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실추된 군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 ‘목맨 이등병’ 유서 필적감정

    강원도의 한 전방부대에 배치된 지 2주일을 갓 넘긴 육군 이병이 선임병의 폭행과 가혹행위 등을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10일 육군에 따르면 강원도 화천군 육군 모부대 강모(21) 이병이 지난 5일 오후 7시쯤 부대 내 보일러실에서 전투화 끈으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강 이병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이튿날인 6일 오후 7시쯤 숨졌다. 숨진 강 이병의 군복에서는 ‘군대 내 폭행이 존재하고 욕설이 여전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가 발견됐다. 유가족들은 그러나 강 이병이 자원해서 입대했을 뿐 아니라 유서가 강 이병의 필체와 다른 것 같다며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육군은 사고 직후 이뤄진 부검에서 “강 이병의 사인을 ‘질식사에 의한 사망’이라고 잠정 결론 내렸지만, 정확한 사인은 보름 정도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군 수사당국은 유서에 대한 필적 감정을 실시하기로 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국노래자랑’ MC 송해

    한도 많고 팔자도 어지간히 드세다.‘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처럼 모질게도 살아왔다. 풍각쟁이면 어떻고 딴따라면 어떤가. 늘 구수하고 마음씨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 다들 ‘젊은 오빠’라고 부른다. 맞다. 이게 행복이요, 큰 부자가 아닌가.‘국민과 함께 딩동댕 25년’, 최고령 현역 방송 MC, 그뿐이랴. 지역갈등, 고부갈등, 남북갈등을 해결하는 전도사로 전국을 쉼없이 누비고 있다. ●현역 최고령 방송 MC ‘국민 MC’ 송해(78). 본명은 송복희(宋福熙)다. 그러나 6·25때 피란 도중 바닷물로 밥을 지어먹어 이름을 ‘바다 해(海)’로 바꿨다. 그는 25년째 KBS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이끌어오면서 전국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방송 스케줄 때문에 일주일에 사흘 이상은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한다. 녹화 일정이 없을 땐 한국원로연예인 상록회(서울 종로3가)에서 동료들과 못다한 얘기를 나눈다. 상록회는 원로연예인의 사랑방격으로 12년 전 송씨가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늙어가는 처지끼리 따뜻한 동료애를 나누자는 취지에서다. 지난주 상록회 인근의 한 카페에서 송씨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러니까 말예요,25년이 후딱 넘어갔어요. 아마 공개방송 사상 처음일 거요.”라는 특유의 구수한 말투로 ‘전국노래자랑 MC 25년’의 소감을 피력했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일이 아니고 유람이지. 녹화 전날 현지에 내려가 명소도 찾아보고, 주지스님도 만나 얘기도 나누고, 그게 다 보약이지 뭐.”라며 웃는다. 이어 “전국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어. 세월이 지나면서 기존의 작은 시(市)가 광역시에 편입되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행정구역이 자꾸 생겨나요.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은 무진장 다녔지.”라고 하면서 “춘향제가 열리는 남원에도 가장 많이 갔어요. 이래저래 전국 군단위까지 아마 열두바퀴 정도는 돌았을 거요.”라고 부연했다. 송씨는 방송녹화 하루 전에는 반드시 주변 취재를 꼼꼼히 하는 버릇이 있다. 대상은 주로 시장바닥과 대중목욕탕. 그는 “시장에 가면, 많은 재산이 있거든. 그 고장의 분위기, 유행, 또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풍물 얘기를 귀담아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또 목욕탕에 가면 별의별 얘기가 다 나와. 발가벗고 뒤지는데 아무려면 재미없을라고.”라며 또한번 웃는다. ●예심에 2000여명 몰려 15명만 본선에 뿐만 아니다. 전국노래자랑 예심에는 대개 1500∼2000명이 몰린다. 이중 15명 가량 본선에 오른다. 사법시험 경쟁률과 엇비슷하다. 송씨는 예심부터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또 본선에 오른 사람들과는 일대일로 만나 무대 위에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을지 미리 상의한다. 송씨는 요즘들어 더욱 젊어진 기분이다. 호칭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 처음에는 ‘송해 선생님’ ‘송해 아저씨’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결같이 ‘젊은 오빠’나 ‘송해 오빠’로 통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렇게 부른다. 소위 ‘만년먹기 오빠’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에피소드도 다양하다.20대 아가씨에서부터 60∼70대 할머니한테 기습 뽀뽀를 당하는 것은 예사. 얼굴에 스타킹을 씌워 뱅뱅 돌리는 사람, 행진시키는 사람 등등. 하지만 송씨는 아무리 짓궂은 상황도 부드럽고 재치있게 받아넘겨야 한다. 눈물겨운 사연도 많다.3대째 대장장이가 출연해 직업에 대한 경시풍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경우,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경상도 출신 며느리가 전라도 시어미니와 함께 출연해 많은 박수를 받은 일, 앞을 못보는 장애인이 ‘노래가 곧 눈’이라며 관객들을 울린 일 등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지는 것 하나. 김인영 악단장과의 관계였다. 송씨는 이에 대해 김 단장과는 TBC라디오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친숙한 사이로 녹화가 끝나면 소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한다.”고 귀띔했다. 이때 출연자에게 선물받은 특산물이 안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송씨는 지금도 소주 2병 정도는 거뜬히 마신다.) 송씨는 또 노래자랑에 출연했던 사람끼리 만나 결혼하는 커플도 많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동호회를 만들어 불우이웃을 위한 공연활동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연자 최연소 3세·최고령 103세 “25년 전 화면을 보면 트로트풍 등 추억의 노래였지만 요새는 매우 다양해졌어요. 최연소 출연자가 세살, 최고령 출연자가 103세, 연령폭이 무려 한 세기에 달해요.” 송씨는 연백평야가 있는 황해도 재령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은 상업에 종사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1·4후퇴 때 혈혈단신 월남했다. 송씨는 이 대목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는 자신을 위해 만든 노래라며 잠시 회상에 빠진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해주항에서 그는 해군 상륙정(LST)을 탔다. 포성을 뚫고 피란길에 나섰다. 바닷물로 밥을 지어먹으며 가까스로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때 나이 스물넷. 인천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군에 입대한다. 전쟁을 피해 월남했지만 결국 전쟁 깊숙이 뛰어들게 된 것. 그는 야전부대가 아닌 통신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뒤 통신부대에 배치됐다. 근무지는 대구 육군본부. 여기에서 3년8개월 동안 근무하게 된다. 군 얘기가 나오자 “내가 말예요, 전쟁종식을 가장 먼저 타전한 사람이오. 또스똔똔 하는 모스부호로 말예요.”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휴전협정 당시 육본 암호실에서 근무했다. 때문에 휴전협정 사실을 암호화한 뒤 전 육군에 타전했고, 곧 이어 전언통신문을 통해 역사적인 ‘전쟁종식’을 알린 것. 그는 군복무 시절에 1급비밀을 취급하는 통신사(하사)여서 영외거주가 가능했다. 대구 민박집에서 출퇴근할 때 선배의 여동생을 우연히 알게 됐고, 결혼에 이른다. ●55년 창공악극단서 가수로 데뷔 55년 제대를 하자마자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 4시에 부산역에 도착하면 석달 동안은 집을 비우는 등 유랑극단처럼 떠도는 생활이 계속됐다. “40대초반이었지요. 몸이 몹시 안 좋았어요. 일가친척도 없지, 기둥뿌리 하나 없지, 술이라는 힘으로 달랬던 시절이었어요.3개월 동안 병원에 버려지다시피 지냈지.” 그는 “차마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라며 잠시 창 밖을 응시한다. 이어 “젊은 마누라도 있고 내가 왜 장애인처럼 지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자 병원을 뛰쳐나왔지.”라고 회상했다. 당시 송씨는 장충동에 살고 있었다. 집에서 남산 팔각정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팔각정까지 산책을 하며 마음을 다져먹고자 했다. 하지만 밀려오는 고독, 절망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던 하루는 산책로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내던지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소나무 가지숲에 걸려 목숨을 구했다. 이후 그는 새삶의 길로 들어선다. 송씨는 요즘들어 생사를 알 수 없는 부모형제의 얼굴을 떠올리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또 대학 2학년때 사고사를 당한 아들의 얼굴도 눈앞에 자주 아른거린단다.(원래 송씨 슬하에는 두딸과 외동아들이 있었다.) 건강비결은 음식을 안 가리고, 아무와도 격의없이 만나 웃는 것이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송씨는 지나는 행인들과 악수를 나눴다. 사람들은 “아이고, 우리 송해 오빠.”하면서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이 세상에 송해만큼 부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사람 많이 아는 것이 최고의 부자 아니겠습니까.”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7년 황해도 재령 출생 ▲6·25 직전까지 북한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공부 ▲51년 1월 월남 ▲55년 육군통신부대 만기제대 ▲55년 ‘창공악극단’가수 데뷔 ▲74년 KBS라디오 DJ ▲76년 MBC라디오 코미디쇼DJ ▲80년 전국노래자랑 MC ▲99년 제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2001년 제8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문화훈장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2003년 제15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보관문화훈장 ■ 작품 송해 옛노래집,KBS고전유머 극장,KBS코미디 하이웨이
  • [낮은소리] 국가 기록 없어… 유공자 인정 ‘별따기’

    [낮은소리] 국가 기록 없어… 유공자 인정 ‘별따기’

    6·25 당시 참전 인원은 1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70여만명이 부상을 입었다.40여만명은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나머지 30여만명은 입증자료 부족 등으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 유공자 신청이 연간 2만여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중 65%가량만 인정된다고 한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수년, 수십년간 매달려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가로부터 치료와 함께 보상금을 받고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 이외에 추가로 인정받기가 무척 힘들다. 정부도 이들을 최대한 배려한다는 입장이나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하는 만큼 한계가 있다. “6·25때 경찰에서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하다 질병으로 제대한 뒤 숨진 부친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길이 없나요.” 충남 천안시에 사는 신모씨는 참전 중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등을 벌이다 폐결핵에 걸려 제대를 한 뒤 2년 만에 사망한 부친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며 지난해 말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신씨는 “해당 기관에서는 경력 증명서와 재적(在籍)등본, 사망원인을 알 수 있는 의학적인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지만 50년 전의 일이어서 아무런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이처럼 젊었을 때 국가의 부름을 받고 조국을 지키다 숨졌거나 부상을 입은 노병(老兵)과 그들의 후손 가운데 관련 서류가 없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입증자료를 대지 못하는 데다 정부에서도 보관 중인 서류가 없어 ‘비해당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군인 및 경찰로 복무할 때의 기록은 모두 보관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관련 서류가 보관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6·25때의 자료 가운데 상당수가 없으며, 이 때문에 인정을 해주고 싶어도 못 해주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본인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인정해 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답답해했다. 강원도 평창에 사는 박모(75) 할아버지.50년 전 군대에 있을 때 차량 전복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도 관련 자료가 없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며 하소연했다. 박 할아버지는 “사고로 군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에 입원한 기록은 있지만 어디를 치료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보관돼 있지 않다.”면서 “국가가 기록 관리를 하지 않은 채 서류가 없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고 흥분했다. 그는 “사고 때 등뼈 2개가 손상됐고, 복수가 차오르는 등 중상을 입었는데 당시 국가사정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의병제대를 한 뒤 평생을 약에 의존해 생활하다 치료라도 무료로 받고 싶어 신청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전북 고창군에 사는 이모(73) 할아버지의 사정도 마찬가지.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학도병으로 입대한 뒤 2차례나 부상을 입었으나 부상원인을 규명할 관련 서류가 없어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면서 “당시에는 의료시설이 제대로 없었고, 매일 수백명의 환자가 몰렸기 때문에 행정착오가 많은 때였다.”고 상황을 회고했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 역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같은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방도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번 신청을 했다가 인정을 못 받으면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또 민원인의 상당수는 노령자다. 그렇지만 일부는 수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기하고 행정소송까지 제기하기도 한다.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소송에서 진 뒤 관련 서류를 찾아내 끝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긴 하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2년만에 인정받은 김상국씨 “기록관리의 책임은 국가에 있는데, 민원인에게 관련 자료를 찾아오라고 하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2년여의 노력 끝에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은 김상국(60·인천시 남구 도화2동)씨는 국가유공자 인정 절차에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2002년 7월 유공자 인정신청을 낸 이후 두 차례나 기각결정과 행정심판 패소라는 역경을 겪어야 했다.‘3전4기’ 끝에 지난해에야 비로소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았다. 김씨는 민원인이 직접 유공자임을 입증할 만한 서류를 찾아다녀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돼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서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뿐더러 ‘돈 타 먹으려고 사기친다.’는 ‘모욕’도 수없이 당했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지난 1968년 11월 군에서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돼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다 만기제대했다.2000년 ‘상이등급 7급’이 신설되면서 국가유공자 인정 신청을 냈지만 관련 서류가 없어 인정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후송돼 간 병원에는 자료가 남아 있는데, 언제 자대로 복귀했는지,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등의 자료가 전혀 없었다. 부인 김옥수(60)씨가 나서서 세 차례에 걸쳐 육군본부를 방문하고 이런저런 자료를 직접 찾아 제출했으나 역시 돌아온 것은 ‘인정불가’ 판정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찾았다. 고충위가 나서서 보충서류를 찾고, 함께 근무하다 사고를 목격했던 선임하사의 진술을 바탕으로 ‘인정권고’를 해준 바람에 결국 2년 만에야 인정을 받았다. 김씨는 “민원이 접수되면 정부가 적극 나서서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정말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관련 서류가 없는 분들은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혀를 찼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정하태 보훈처 사무관 “자료가 없어 국가유공자 인정을 못 받는 억울함도 막아야 하지만,‘가짜’ 유공자 양산을 막는 것도 중요합니다.” 국가보훈처 정하태(심사정책과) 사무관은 국가유공자 인정 실태의 ‘한계’를 인정한다. 민원인이 제기한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 보관되지 않은 것이 꽤 많기 때문이다. 접수된 민원 가운데 30% 정도는 관련 서류가 없다. 정 사무관은 그래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도 관련 서류가 없어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류보관에 문제가 있는 만큼 개인이 보관하고 있는 당시 사진이나 엑스선 필름, 의사소견서, 사고를 목격한 동료의 인우보증 등 증거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제출할 것을 당부한다. 국방부에도 필요한 자료를 찾아달라고 계속 주문한다. 이같은 노력으로 2001년 39.8%,2002년 39.5%에 이르던 행정소송 패소율이 2003년 33%,2004년에는 28.1%까지 떨어졌다. 소송 전에 직접적인 자료가 없더라도 보충적인 자료를 적극 활용해 인정을 해주다 보니 패소율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사무관은 억울한 민원을 줄이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이 서류를 찾아주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간 제출되는 민원은 2만건에 달하지만 관련 서류를 찾는 담당인력은 8명에 불과하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열심히 찾아도 누락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유공자를 위해 쓰는 예산이 연간 2조원에 달한다.”면서 “엄청난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억울한 사람도 없어야 하지만, 가짜 유공자가 진짜로 둔갑해 세금을 축내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3대째 해병

    ‘대(代)를 잇는 해병’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해병에 자원 입대한 젊은이 두 명이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어 화제다. 우리나라 서해 최북단인 백령도에서 근무 중인 해병대 2사단 소속 박정훈(사진 왼쪽·21·968기) 일병과 김성래(사진 오른쪽·21·982기) 이병이 화제의 주인공. 동국대 1학년을 마치고 지난해 2월 입대한 박 일병의 할아버지 박노현(75·해병 1기)씨는 1949년 해병대 창설 멤버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거쳐 74년 상사로 전역한 해병대 역사의 산 증인이다. 아버지 박용이(49·345기)씨 역시 해병대 1사단 유격대원으로 전역한 선배다. 외아들인 박 일병은 “해병대 1기였던 할아버지는 포항 해병대박물관에서 창설 당시 본인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랑스러워했다.”며 “국방의 의무는 물론 가족의 전통을 잇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대 1학년 재학 중이던 지난해 9월 입대한 김 이병은 장손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고모부와 삼촌까지 해병대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해병 가족 출신. 할아버지인 김갑영(74·29기)씨는 23세에 입대, 한국전에 참전해 부상한 국가유공자며, 아버지 김남근(47·464기)씨는 해병대 2사단에 배속, 김포 애기봉에서 근무했다. 김 이병은 “튼튼한 체력은 군 생활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일 뿐”이라며 “체력이 약한 내게는 해병대 생활이 더욱 강한 몸을 만들기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병대 관계자는 박 일병과 김 이병이 컴퓨터 추첨을 통해 공교롭게 같은 부대에 배속됐다고 소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예산집행 자율성 대폭 확대

    앞으로 각 부처는 특정항목의 예산을 다른 항목으로 바꿔쓸 때 기획예산처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분기별로 배정된 예산도 자율적으로 앞당겨 집행할 수 있다. 기획예산처는 각 부처의 예산집행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한 ‘2005년 세출예산 집행지침’을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이에 따르면 종전까지는 예산으로 정해진 항목의 금액을 다른 항목으로 전용할 경우 원칙적으로 예산처 장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했으나 앞으로는 동일품목(인건비 물건비 등 8개) 내에서는 원칙적으로 전용할 수 있다. 또 분기별 예산배정계획이 확정된 이후 예산을 앞당겨서 배정하려면 예산처 장관과 협의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자율적으로 해도 된다. 이와 함께 국가가 서비스나 시설을 제공하고 비용을 받는 수입대체경비 항목에서 초과수입금이 발생했을 때도 일부 용도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기관장 판단하에 지출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6개 책임운영기관만이 계획을 초과하는 수입이 생겼을 때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23개 책임운영기관 모두가 자율사용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새로 도입된 균형발전특별회계는 원칙적으로 세항별 세출예산 총액의 20% 범위 내에서 타 세항 또는 타 비목으로의 자체전용이 허용돼 융통성있게 운용할 수 있게 된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강서구 100여명, ‘골목환경 수호’ 자부심

    강서구 100여명, ‘골목환경 수호’ 자부심

    주부 이은주(38)씨는 화곡동의 청결상태를 책임지는 ‘청소도우미’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어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그는 지난 1일부터 서울 강서구에서 운영하는 공공근로사업 청소도우미 분야에 합류했다. ●진짜 부끄러운 건 대가 없는 도움 받는 것 이씨는 “거리 청소가 자존심 상하는 일은 아니며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남의 도움을 대가 없이 받는 것”이라면서 “아이들에게도 내가 하는 일을 거리낌없이 알려준다.”고 밝혔다. 강서구가 처음 도입한 청소도우미는 지역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고질적인 청소 취약지역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 지난해말 130명을 뽑는 데 370여명이 지원, 불황에 시달리는 밑바닥 정서를 반영했다. 일부 지역은 경쟁률이 무려 10대 1을 넘었다. 강서구 관계자는 “임시직이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참여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제설작업이나 수해 등 재해발생 복구에도 청소도우미를 참여시켜 활동영역을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월 80여만원… 경쟁률 최고 10대1 이들의 연령층은 일자리가 부족한 40∼60대가 주류이며 60%가 여성. 근무기간은 최대 9개월이며 월 80만∼90만원의 보수를 받는다. 구는 올해 예산 가운데 16억원을 청소도우미사업에 배정했다. 김순례(65·여)씨는 “쓰레기 분리배출에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쓴다.”면서 “청소도우미제는 어려운 주민을 돕고 환경을 지키는 ‘일석이조’의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환경미화원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청소업무를 담당한다면 청소도우미의 임무는 동네 곳곳을 누비며 세세하게 청소하는 것. 환경모니터의 역할도 함께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 운영방식도 자치구에서 관여하지 않고 동사무소의 재량에 맡겼다.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많은 지역은 동사무소의 판단에 따라 청소도우미를 더 뽑을 수도 있다. 이에 앞서 강서구는 지난 2003년부터 도시 청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인력을 채용하거나 퇴역 미화원을 다시 고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6월 2개 동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한 청소도우미제가 경제성과 효율성 면에서 주민과 시민단체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내자 올해부터 22개 동 전역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청소도우미에 나선 성병호(20)씨는 “아르바이트마저 구하기 힘들어 학비문제로 제대후 복학여부가 불투명했다.”면서 “학비 문제를 해결한 청소도우미 자리는 나에게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결혼이야기]박춘수(28·KAIST 석사과정)·황지영(28·한국MSD 대리)

    [결혼이야기]박춘수(28·KAIST 석사과정)·황지영(28·한국MSD 대리)

    지영아.30일 우리 결혼식을 사흘 앞둔 지금 새천년을 지나 어느덧 3000일을 훌쩍 넘어버린 우리 사랑의 알콩달콩한 추억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대학생이 되고 첫가을을 맞던 1996년 9월, 새내기 회원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는 네가 동아리방 문을 열던 그때 그 눈빛이 문득 생각난다. 한학기 먼저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내가 마치 선배인 양 동아리에 대해 설명을 해줄 때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던 네 모습. 아직도 난 네 눈빛만 보면 네손을 잡던 그 가을 어느날처럼 가슴이 설렌다. 만8년 오랜 연애기간 동안 참 크고작은 일도 많았지. 생각해보면 8년을 넘게 만나면서도 우리 둘이 함께 얼굴을 맞대며 살았던 시간은 채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아. 철없던 시절 사소한 이유로 한번의 이별과 재회를 겪고난 뒤 이어졌던 나의 군입대. 네가 1년간 훌쩍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홀아비 독수공방’으로 지내야 했던 외로웠던 나날들, 그리고 대전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는 바람에 결혼전까지 겪어야했던 ‘주말커플’ 신세까지….‘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옛말을 보란 듯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누군가 우리를 이 세상 이전부터 ‘보이지 않는 손’으로 꽁꽁 이어둔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단다. 생각나니? 흰색에다 히터까지 고장나 ‘냉장고’라고 부르던 작은 경차를 타고서도 따뜻하기만 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들, 도서관에서 두손 꼭잡고 공부해 솔로 친구들로부터 ‘닭살커플’이라고 놀림받던 일도 있었지. 매서운 바닷바람 부는 추운 겨울에도 학교 앞을, 그리고 바닷가를 반복해서 걸으면서도 시간가는 줄 몰랐던 모습들. 3일후 결혼식을 앞두고도 나는 아직 네게 미안한 게 많단다. 정말 사소한 선물만으로 조촐하게 준비했던 나의 프러포즈에도 영화 속 연인처럼 기뻐해주며 미소짓던 네 모습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는 담보없는 내 미래에도 선뜻 ‘올인’해주는 너의 사랑에도 미안해. 하지만, 지영아. 언제나 내 입장에서,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신부 지영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모든게 모자라지만 네 덕분에 나는 보다 완전해질 수 있는 것 같아. 나도 항상 너를 더욱 완전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게. 지영아.“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
  • [눈도 귀도 즐거워]송승헌 ‘기쁜연가’

    [눈도 귀도 즐거워]송승헌 ‘기쁜연가’

    조은의 2집앨범 타이틀곡 ‘슬픈연가’가 컬러링 인기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송승헌의 ‘10년이 지나도’가 음반이 나오기도 전에 컬러링 인기차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10년이 지나도’는 송승헌이 입대 직전 지난해 11월 녹음한 곡으로,MBC 수목드라마 ‘슬픈연가’ 2회 방송부터 흘러나오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당초 송승헌은 ‘슬픈연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OST 녹음에 참여하였으나 병역비리 문제에 휘말리며 1절만 부른 채 녹음 중단 상태에 들어갔던 것. 송승헌의 ‘10년이 지나도’를 컬러링으로 다운받으려면 ‘##90’과 코드 번호 5자리 ‘00348’과 send(통화) 버튼을 누르면 된다.
  • [좋은도시 만들기] (11)토지공개념제도

    [좋은도시 만들기] (11)토지공개념제도

    중앙정부가 행정수도를 이전한다고 발표했을 때 충청도 땅값이 다락같이 올랐다. 토지보유자들이 얻게 될 엄청난 불로소득은 그외 지역 주민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줬다. 정부가 기업도시 건설을 추진하자 기업이 얻을 막대한 토지개발이익의 환수 장치가 미흡하다며 시민단체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자산이 지목되어 왔다. 따라서 토지 문제 해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토지공개념 제도가 재도입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인/터/뷰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과거 정부의 국공유지 불하는 잘못된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국공유지 매각을 중단하고 국가가 땅을 사들여 공장이나 주택부지 등으로 싸게 임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도입된 종합부동산세는 토지공개념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며 “앞으로 토지가격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것이 바람직하며 참여정부는 분명히 부동산투기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토지공개념의 재도입을 어떻게 보시는지. -1990년대 택지소유상한 등 토지공개념 법의 입법 과정에서 다소 문제가 있어 위헌 판정을 받았지만 올바른 정책이었다. 종부세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에 해당한다. 이 위원장은 경북대 교수 시절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의 책을 다른 학자들과 집필했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한국에도 적용가능한가. -헨리 조지는 토지란 자연의 선물이며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토지공유제를, 또 지대(地代)차익을 세금으로 전액 환수해야 한다며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를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공유제는 어렵다. 이미 토지의 사유화가 너무 진전되어 있는 데다 땅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땅값이 오르는 데 따른 지대는 불로소득으로 노동과 투자활동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우리도 지대조세제로 가는 정신은 옳다. 종부세는 충분치는 않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는 조치 중의 하나다. 종부세가 충분치 않은 이유는. -당초 과세대상자가 10만명이었으나 5만∼6만명 선으로 줄었다. 앞으로 너무 낮은 수준인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는 반면 거래세는 낮춰가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기업도시 조성의 경우 땅값 상승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공공 용도로 사용할 만한 국공유지가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공유지 비중이 전국토의 20%미만이다. 이는 면적 기준이며 토지가치를 기준으로 하면 더 낮을 것이다. 미국은 50%, 스웨덴은 60∼70%선이며 싱가포르는 거의 대부분이다. 해방이후 정부가 줄기차게 국공유지를 불하한 것은 잘못됐다.▶앞으로 국공유지를 늘려야 하나. -국공유지 매각은 이제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늦었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지금부터라도 땅 매입을 늘려야 한다. 정부의 토지 매입 재원이 부족하지 않겠나.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사들여서 땅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공장이나 임대주택 부지용으로 싸게 빌려주고 토지임대료를 받아 다시 땅을 매입하면 된다. 시군구 자치단체들도 공유지를 늘리게 되면 기업유치 등에 유리할 것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억제정책으로 부동산값이 하락하는데. -부동산값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도 위험하지만 올라서는 안 된다. 공유지를 늘려가면서 보유세를 강화해서 토지 가격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게 바람직하다. 서서히 떨어지면 정부가 땅을 사기도 쉬워질 것이다. 부동산 값을 반드시 잡아야 할 이유는. -부동산차익은 최대의 불로소득이다.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이 굴러다니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자신의 머리를 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체제이다.1988년 서울올림픽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근로정신이 해이해진 망국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땅값이 오르면 경제효율이 떨어지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며 시장경제를 좀먹는다. 부동산 신화는 깨져야 한다. 종부세나 토지공개념 도입을 놓고 좌파적이란 비난도 있었는데. -정반대다. 부동산 투기를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를 망치는 것이다.1990년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30명이 당시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서한은 헨리조지의 사상을 담고 있다. 민영화와 자본의 사유화 추진은 옳지만 토지까지 사유화해서는 안 되며 지대는 정부가 흡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들 경제학자들 가운데는 토빈, 솔로, 모딜리아니와 윌리엄 비크리 등 4명의 저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도 있었다. 서구 자유경제에서는 토지공개념이 이미 제도로 구체화되어 있다. 이상일 논설위원 ■ 토지문제해결 다양한 시각들 서울시 양윤재 부시장은 “아파트 거주자들은 자기 땅 지분이 얼마인지 잘 알지 못하며 거의 관심이 없다.”고 지적하고 “토지에 대한 인식이 소유보다 사용위주로 바뀌는 한 사례”라고 말했다. 양부시장은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의 토지 보유를 늘려야 한다.”고 전제하고 “국가의 매입대상 토지 가운데 아파트 등 공동 주택 부지, 기업보유 토지 등을 제외하면 실제 매입 토지는 얼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년 정도만 꾸준히 사들이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땅은 모두 매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임종철 전 서울대 교수는 토지문제 해결을 위한 토지세 강화에 반대했다. 강화된 조세부담은 결국 수요자에 전가되며 토지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대토지수요자란 이유에서다. 임 교수는 토지 국유제에는 반대하며 토지공유제를 주장한다. 그는 “공유제에서 국민들은 토지 이용권만 갖지 매매와 형질변경은 불가능하다.”면서 “공유제에서는 토지사용이 공공목적에 위배될 경우 이용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토지공유화의 시행 방법으로 그는 토지보유세와 토지 임대료를 전부 사유지 매입에 투입하거나 아니면 일본 메이지 유신때처럼 지가증권(地價證券)발행을 통한 일시 매수를 들었다. ■ [기고]“토지개발권양도制 체계적 시행을” 토지는 인간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자연이 베풀어 준 것이란 점에서 인공물처럼 특정 주체가 독점적·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일반재화와는 달리 토지의 배타적 사용이 허용되는 경우라도 사용방식에 있어서는 공적인 제한이 따르고 있다. 토지소유 제도는 사유제와 공유제로 대별할 수 있다. 사유제는 사적 주체가 사용권, 처분권, 수익권, 개발권 등을 모두 갖는 형태이며 토지공유제는 정부가 이를 독점하는 경우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양 극단의 사유제 혹은 공유제만을 채택하기보다 두 제도를 혼합한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사유제의 보완으로 토지의 사용과 처분은 사적 주체에게 맡기되 토지가치만은 정부가 징수하는 방안, 그리고 공유제의 보완으로 토지의 처분권과 수익권은 정부가 가지되 토지사용은 사적 주체에게 맡기는 방안 등이 있다. 영국은 1940년대 후반 토지개발권을 공유화하여 지주는 토지사용권만 가질 뿐 개발권은 국가가 갖게 하는 ‘개발허가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개인의 토지소유권으로부터 개발권을 분리하여 공공에 귀속시키면, 개발로 인한 이익을 정부가 흡수할 뿐 아니라 지가 안정 및 투기를 예방·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은 개발권을 분리하여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다른 장소로 이전하여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권양도제도(TDR)’를 이미 1960년대부터 실시했다.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환경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보호, 난개발 방지, 저소득층 주거지역의 확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의 토지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첫째 사유제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하에서는 국공유지비율이 낮은 경우 토지문제해결에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공유지비율이 전 국토의 20%에 불과하다. 일본만 해도 30%에 이른다. 국공유지 비율을 높이는 거시적 접근이 요망된다. 둘째, 우리나라는 토지 거래세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반면 토지 보유세는 상대적으로 낮아 토지공급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거래세는 가볍고 보유세는 무거운 것이 옳은 방향이다. 셋째,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개발허가제도나 개발권양도제도 등을 보다 체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든 토지의 데이터 베이스화한 토지종합정보망이 하루빨리 구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도 없이는 토지이용의 효율성과 형평성중 어느 한 가지도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 [장일의 바스켓 굿] 오빠부대 파이팅

    문경은(34·전자랜드), 이상민(33), 조성원(34·이상 KCC), 우지원(32·모비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농구계의 스타들이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지금의 프로농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며 한국 농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법.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선 이들은 부상과 체력저하로 올 시즌 동반부진을 겪고 있다. 이들을 모두 데리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현재의 부진에 마음이 저려온다. 필자는 1996년 상무(국군체육부대)에서 처음 농구 코치의 길에 들어섰다. 이때 문경은 이상민 조성원 김승기 양경민 등이 차례로 입대해 한국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초보 코치’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스타들이 많이 힘들기도 했다. 상무에는 ‘선수 도태’라는 제도가 있었다. 기량이 부족하거나 사생활에 문제가 생길 때에는 일반부대나 전방부대로 전출시키는 제도였다. 어느날 문경은과 이상민 등 일부선수들이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전방부대로 전출시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전출 요구 외에도 수많은 일들이 초보 코치의 의욕과 맞물려 벌어졌다. 그러나 선수들은 결국 묵묵히 따라줬으며 만족할 만한 성적과 추억을 쌓았다. 제대 후 프로리그가 생겨 이들은 모두 농구코트를 호령하며 기량을 뽐냈고, 팀의 우승을 견인하는 기둥으로 커갔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필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젠 이 선수들의 고통과 영광도 과거가 되는 느낌이다. 이들의 개인기록은 물론 출장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으며,TV화면에서도 화려한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영광의 시절을 마무리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이들의 영광에 대해서는 필자는 물론 여전히 변치 않은 사랑을 보내는 팬들이 알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을 대체할 만한 ‘정통슈터’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슈터는 수많은 개인연습을 통해서 나온다. 문경은과 조성원은 “후배들이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진정한 슈터가 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개인연습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후배들이 꼭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이다. 중앙대 감독·SBS해설위원 jangcoach2000@yahoo.co.kr
  •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당시 수사 맡은 김기춘의원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당시 수사 맡은 김기춘의원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혐의로 1974년 8월15일 낮 중앙정보부에 체포된 문세광은 다음날 오후까지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중정 요원들은 여권에 적힌 일본인 이름 말고는 문세광의 인적사항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이때 중정부장의 법률보좌관으로 파견 중이던 서른 다섯살 ‘김기춘 검사’가 투입됐다. 신직수 중정부장의 명이었다. 김 검사는 링거를 꽂은 채 누워 있던 문세광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자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을 읽어 봤는가.” 하루 종일 묵비권만 행사하던 문세광이 그제서야 눈을 번쩍 뜨더니 “네. 혹시 센세(선생님)도 읽어 보셨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김 검사는 빙그레 웃으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고 답한 뒤 “혁명을 하기 위해 왔다면서 이렇게 비겁하게 입을 다물면 되겠는가. 당당하게 밝힐 것은 밝히라.”고 추궁했다. 그러자 문세광은 입을 열어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다. 검찰총장·법무부장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기춘 의원이 20일 기자들과 만나 설명한 문세광 수사 뒷얘기다. 그는 “‘자칼의 날’은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을 담은 추리소설로 사건 보름 전쯤 대천 해수욕장에 휴가차 내려가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 수사에 응용해 봤다.”고 전했다. 또 “문세광은 38구경 권총을 분해한 뒤 라디오에 넣어서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는데, 소설 주인공도 장총의 총구를 라디오에 숨겨 들여왔다. 암살자에겐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문세광은 나중에 육 여사가 숨졌다는 말을 듣고 ‘정말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참회했다.”면서 “젊은 나이에 포섭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것은 살인 사건일 뿐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는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당시 서울지검 공판부장으로 수사 실무책임자이던 정치근 변호사는 “문은 처음에는 ‘빨리 죽여 달라.’는 말만 하다가 나중에 ‘한국군에 입대하겠으니 살려만 달라.’며 삶의 집착 같은 것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결혼이야기]조용신(28·동국대 연구처)·주효숙(28·하얀손)

    [결혼이야기]조용신(28·동국대 연구처)·주효숙(28·하얀손)

    만난 지 10년, 사귄 지 8년 만에 결혼합니다. 으레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면 곧 결혼이라는 고갯마루에 다다르는 듯합니다만, 저는 꽤나 늑장을 부렸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와 연인으로 지내는 시간들이 즐거웠던 까닭입니다. 1996년 대학에 갓 입학하자마자 그녀를 만났습니다. 동아리 동기였는데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그녀는 주로 선배 ‘오빠’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눈치였고, 저는 저 나름대로 미팅이다, 소개팅이다 바빴습니다. 때문에 만난 지 한 학기가 지나도록 별다른 이야기조차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녀와 친해지게 된 건 동아리 여름 엠티 때였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그녀는 친절했고, 대화를 잘 끌어나갈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 점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전화를 걸고 서로의 호출기에 음성녹음을 해가면서 급속도로 친해져 갔습니다. 그녀와 공식적인 연인사이로 발전한 것은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나고 나서부터입니다. 입대를 앞두고 우리 사이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귀는 것으로 못을 박고 싶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받아주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녀와의 관계에서 특별히 위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2년 2개월 동안 군생활을 할 때도, 그녀는 꾸준히 편지를 보내고 면회도 왔습니다. 복학하고 같이 학교를 다닌 기간 동안에도 전과 다름없이 지냈고요. 같이 먹는 점심이 좋았고 대화도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 결혼은 그냥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하는 것이란 사실 말이죠. 사실 저같이 무덤덤한 사람이 결혼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쉬운 만큼 얼렁뚱땅 결혼하자고 조르는 것 아닐까 걱정도 했습니다. 결국 마냥 떼만 썼지 분위기있는 말 한마디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결혼의 길에 접어들게 됐습니다.1월 22일 저희는 부부가 됩니다. 저처럼 멋없는 남자, 허락해 준 그녀가 너무도 고맙습니다.
  • ‘일편단심’ 연극학과…7년동안 14번 도전끝 중앙대 합격 구도균씨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중앙대 연극학과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한 젊은이가 14차례 도전 끝에 꿈을 이뤘다. 화제의 주인공은 구도균(25)씨.1999년 부산 동천고를 졸업한 구씨는 고3 시절 처음 접한 연극의 매력에 빠져 중앙대 연극학과에 지원했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극단 ‘동아’에 들어가 연극을 배우며, 공연이 없을 때면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음식점 종업원, 공사판 일용직, 주차관리원 등의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군 입대도 미루고 7수를 하는 동안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애초에 시작조차 안했다.”고 되뇌며 각오를 다졌다. 결국 수시와 정시를 합쳐 모두 14차례에 걸친 도전 끝에 올해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구씨는 “중앙대 연극학과가 공연을 하면 빠짐없이 서울로 올라와서 봤다.”면서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만큼 전통있는 학과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씨는 18일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제대로 연극을 공부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연합
  • ‘同軍同樂’ 동반입대 파트너 찾기 사이트 인기

    ‘同軍同樂’ 동반입대 파트너 찾기 사이트 인기

    ‘함께 군대 가실 분 찾습니다.’ 올해 입대를 계획 중인 대학생 신모(24)씨. 또래보다 뒤늦은 군생활이 막막했지만 동반입대를 결심한 후 달라졌다. 형제는 물론 함께 갈 친구도 없지만 걱정을 덜었다. 인터넷을 통해 군생활 동반자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인터넷으로 만나 짧은 기간이라도 알고 지낸 사람과 함께 지내면 그것만으로도 힘든 군 생활에 위로가 되지 않겠냐.”면서 “빨리 좋은 친구를 만나 입대신청을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김모(21)씨 역시 인터넷을 통해 동반입대할 친구를 찾고 있다. 김씨는 “여러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2년 동안 동고동락할 사람인 만큼 신중하게 선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동반입대 파트너’를 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주로 군입대 관련 카페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나이·입대시기·지역·연락처를 남기는 방식이다. 다음 카페 ‘이채영의 병역 상담소(cafe.daum.net/leeche)’의 경우 아예 동반입대 전용 게시판을 만들었다. 매일 10건 안팎의 글이 올라오며 신청 날짜가 임박하면 하루에도 수십명이 이곳에서 동반입대자를 찾는다. 카페 운영자 최주원(26)씨는 “형제가 없거나 친구들과 입대시기를 맞추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게시판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매우 좋다.”면서 “게시판으로 동반입대자를 찾게 돼 ‘고맙다.’는 메일을 자주 받는다.”고 전했다. 최씨는 “동반입대시 다소 힘든 부대로 배치되지만 아는 사람과 서로 의지할 수 있어 인기”라며 “어떻게 해서든 입대를 피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는 세태 속에 ‘정’의 힘으로 떳떳이 군복무를 마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병무청이 2003년 1월부터 시행한 동반입대는 신체검사 1,2급을 받은 경우에 한해 친구, 형제 등과 함께 군입대를 허용하는 제도다. 신청 첫달부터 단 하루 만에 마감되는 등 인기가 높다. 매년 1월부터 연중 지원이 가능한데 현재 올해 5월 입대모집까지 인원이 꽉 찼다.2003년 2만 1370명,2004년 2만 3604명이 동반입대로 군생활을 시작했고 올해 병무청은 이보다 더 늘어난 2만 5666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걱정거리는 있다. 병무청이 이런 방법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동반입대를 금지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4월1일부터 입영부대에서 ‘동반입대자 상호관계 진술서’를 작성케 하고 개별면담·심사를 통해 친구나 형제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귀가조치하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박모씨는 “형제가 많은 것도 아니고 친구끼리 군대갈 시기를 맞추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면서 “군생활의 불안을 덜어준다는 게 동반입대제의 취지라면 평소 알던 친구나 인터넷을 통해 만나 알게 된 친구나 뭐가 다를 게 있느냐.”면서 융통성 있는 제도 운용을 당부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일병도 부사관 지원 가능

    앞으로는 일병도 군생활 도중 본인이 원하면 부사관에 지원할 수 있다. 국방부는 18일 “우수한 현역병들의 부사관 진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현재 입대 후 7개월 이상된 상병과 병장으로 제한돼 있는 현역병의 부사관 지원 관련 규정을 개정해 입대 후 5개월 이상인 일병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올 상반기에 군 인사법 시행규칙 등 관련 규정을 바꿔, 늦어도 하반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병사 출신, 군 장학생 출신, 민간인 지원 등 현행 세 가지 형태의 부사관 모집방식 중 병사 출신 부사관이 부대 적응과 업무 능력 면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각군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03년 21대8대71의 비율로 선발된 병사·군 장학생·민간인 출신 부사관 비율은 금년에는 26대7대67로 바뀌게 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허준영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

    허준영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

    14일 국회 행정자치위에서 열린 허준영 경찰청장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부인의 국민연금 미납을 비롯해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의혹 등 도덕성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그러나 기존에 제기됐던 의혹을 재탕, 삼탕으로 질문하면서 청문회는 다소 맥이 빠졌다. 이에 따라 이번 청문회 결과가 노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에 어 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허 후보자는 이날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관련,“경찰이 범죄의 92.6%를 수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편의를 고려해서라도 경찰이 수사권을 갖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행자위는 청문회 결과를 바탕으로 17일 전체회의에서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보고한 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한다. 경찰청장은 국회의 동의를 요하거나 국회가 선출하는 공직자가 아니어서 국회 본회의 표결없이 청문의결서 채택만으로 검증 절차가 끝난다. ●병역 및 임용 의혹 1973년 첫 입영 신체검사에서 좌우 나안시력 0.08과 0.06(2차검사 좌 0.06, 우 0.07)에 색맹 판정을 받아 보충역(방위) 판정을 받았으나,84년 경찰 경정 특채 채용 신체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의원들은 “당시 경찰공무원임용령 시행규칙에 따르면 시력기준은 나안 0.3이상, 교정시력 0.8이상이어야 하고 색맹이어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허 후보자는 “평소 신체검사에서 평균 0.2 정도의 시력이 나왔는데 징병검사에서 왜 그렇게 나쁜 시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해명했다. 군 복무 중 대학을 다닌 것과 관련해서도 “당시 용산 국군영화제작소에서 초소 경계병으로 격일제 근무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답했다. 병역법에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해야 군 입대가 가능하도록 규정한 데 대해선 “그런 규정을 몰랐다.”고 강변했다. ●국민연금 미납 및 부동산투기 의혹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허 후보자의 부인 강모(49)씨가 지난 99년 6월부터 상가임대사업을 시작해 국민연금 납부대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미신고 등으로 200만여원을 미납했다고 주장했다. 허 후보자는 “국민연금 납부대상인지 모르고 있다가 국민연금공단측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후부터는 바로 납부해왔다.”고 답했다. 또 2002년 비상장 장외주인 시그마텔레콤 주식 1만4000주를 구입한 것과 관련, 주식투기의혹도 제기됐다. 이어 경북 울진군 평해읍 학곡리 일대 임야를 1800만원에 구입한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었다. 또 부친이 2003년 대전시내 한 아파트를 구입한 뒤 1년도 지나지 않아 되판 것도 도마위에 올랐다. ●수사권 독립 허 후보자는 경찰의 수사권독립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수사권은 분권과 자율, 견제와 균형 원리에 따라야 하기에 경찰이 주체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높은 관심을 나타내면서도 경찰과 검찰의 대립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경찰출신 열린우리당 우제항,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수사권 독립을 지지한 반면 검찰출신 의원은 이의를 제기했다. 우제항 의원은 “우리나라처럼 검찰이 독점적 수사지휘를 하는 곳은 없다.”면서 “왜 국민들은 검찰에서 수사를 받으면 인권이 보장되다고 생각하고 경찰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종수 박준석 박록삼기자 pj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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