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입대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상당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동시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해법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일당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615
  • “창당일, 행정도시 합헌 낭보”

    심대평 충남지사가 추진하는 중부권 신당인 국민중심당(가칭)이 24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충청발(發)’ 정계개편 논의가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심 지사는 이날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창당 발기인과 국민대표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발기인대회에서 “이념 갈등과 지역주의, 대결정치를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구현하겠다.”고 창립 취지를 밝혔다. 그는 특히 “서울은 규제에 발목 잡혀 있고, 지방은 빈껍데기에 불과한 현실을 탈피해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 지방정치를 살리는 분권형 정당제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내년 5월 말 지방선거에 대해서도 “신선한 바람으로 선거 기적을 이뤄낼 것”이라면서 “수권 정당의 참모습을 보이며 우리 정치사에 성공신화를 기록하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이날 발기인대회 도중 헌법재판소가 행정도시특별법 위헌소송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참석자들이 서로 얼싸안고 ‘만세’를 외치는 등 분위기가 한껏 고무됐다. 참석자들은 “창당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라며 기뻐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중심당이 본격 창당돼 앞으로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첫 분수령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5월 말 지자체 선거가 될 전망이다. 국회 의석 11석으로 원내 제3당인 민주당과는 지자체 선거에서 공동 공천 등을 통해 호남·충청권 표심을 공략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또 본인은 “정치인이 아니며, 그런 당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여전히 영입대상 0순위인 고건 전 국무총리에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충청권 표심을 쥐락펴락했던 김종필(JP) 전 총재가 최근 “무언의 성원을 보태겠다.”고 힘을 실어준 것도 주목된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입대 앞두고 리메이크앨범 출시 조성모

    입대 앞두고 리메이크앨범 출시 조성모

    가수 조성모에게 ‘새로운 흐름’이란 말은 꽤나 잘 어울린다. 그는 가요계의 대세를 거스르며 우리곁으로 다가왔다.90년대 후반 댄스 뮤직이 판 치던 시절 쇠락해가는 발라드를 들고 나왔고,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영화같은 뮤직비디오, 얼굴없는 가수 등 새로운 시도로 가요계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그런 조성모가 데뷔 8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새로운 흐름의 중심에 서있다. 그는 단순 ‘다시부르기’ 수준이 아닌 원곡 가수와의 ‘공동 작업’이란 차별적 시도를 통해 만든 리메이크 앨범 ‘조성모 클래식 1+1 그랜드 피처링’을 내놓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리메이크 앨범이 출시되는 요즘 가요계에 처음 선보이는 실험이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내년 초 군입대,2년 2개월의 공백기를 갖는 조성모를 만났다. #군입대, 제2의 도약 “남들에겐 ‘조성모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비쳐진 시간들이 제게는 많은 부담으로 다가왔고, 이후 슬럼프 등 지친 상태로 저를 옥죄었죠. 일 자체가 제가 가진 것을 모두 소진시켰어요. 쉼 없이 왔지만, 공부도 준비도 없었죠. 이젠 군 입대로 제2의 도약기를 찾고 싶어요.” “군입대를 앞두고 아쉬움은 없냐?”고 묻자, 손에 든 새 앨범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손놀림이 갑자기 멈췄다. 목소리 톤도 낮아진다. 하지만 “2년 2개월(공익근무)의 공백기가 평생에 다시 없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아쉬움보다는 설렘과 여유가 느껴진다. 그는 “제 자신을 음악적으로 보다 성숙하고 깊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오히려 잘 됐다.”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제대후 정규 앨범을 선보일 때 팬들이 많은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착실히 밑거름을 쌓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래식 1+1 그는 이번 앨범을 “가장 쉽게 만든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선배들과의 호흡이 물 흐르듯 잘 맞아 “작업 내내 흥이 났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래서일까 주옥 같은 명곡에 그의 목소리가 덧입혀진 이 앨범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명품’이란 평도 듣는다. 이번 앨범에는 조덕배, 배철수, 김종진, 전태관, 이치현, 장기호 등 쟁쟁한 선배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원곡을 부른 가수와 조성모가 편곡, 연주, 노래까지 함께 하며 호흡을 맞췄다. 조덕배와 함께 부른 타이틀곡 ‘그대 내 마음에 들어오면은’을 비롯해, 김광진과 함께 화음을 맞춘 ‘편지’, 하덕규와 호흡을 맞춘 ‘사랑 일기’, 이치현과 함께 부른 ‘사랑의 슬픔’, 봄여름가을겨울의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 김현철의 ‘왜 그래’, 배철수의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 등 70∼80년대 인기곡 11곡이 담겼다. 노래마다 빛 바랜 추억의 포근함에 세련된 느낌이 적절히 녹아들어 감미로움을 더한다. 조성모는 “어릴 적 누나 몰래 듣던 LP판의 곡들을 직접 선곡했다.”고 말했다. #이젠 ‘가수’ 아닌 ‘뮤지션’ 그는 군 입대보다는 그 이후를 고민하고 있었다. 팬들에게 잊혀지는 것과 정규 앨범 준비보다 더 걱정 되는 것은 ‘과연 조성모표 음악은 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란다. “저만의 색깔을 찾으려고요.‘이 노래·장르는 조성모만의 것이다.’라는 소리를 듣도록 많이 공부하고 연구할 겁니다.”예전의 색깔에서 탈피, 전혀 새로운 느낌의 음악으로 돌아올 거라며 미소 짓는다. 하지만 “록이건, 재즈이건 간에 ‘감동’과 ‘따뜻함’이라는 두 가지 화두는 죽을 때까지 품고 갈 조성모 음악의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일본 진출 욕심은 없냐?”고 묻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제 뮤직 비디오에 한류 스타가 많이 출연해서인지, 일본측에서 수많은 ‘콜’이 오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음악은 드라마 쪽 한류 분위기와는 다르죠. 단순 더빙과는 다른 문제이거든요. 음악은 밑에서 전해지는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문화적 차이 때문에 쉽지 않을 거예요.” 그는 군 복무 기간을 포함해 향후 5년까지는 “‘가수 조성모’를 다시 찾는 시간으로 삼겠다.”면서 “사랑과 결혼 등 ‘인간 조성모’를 찾을 틈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년동안 ‘가수’는 됐을지 모르죠. 하지만 이젠 ‘뮤지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때입니다. 지금이 출발선이죠.”얼굴에 인생이 나타나듯 노래에도 가수의 삶이 묻어난다면, 몇년 뒤 돌아올 그의 노래엔 분명 깊은 향이 배어있지 않을까?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길섶에서] 초겨울의 기억/우득정 논설위원

    약 30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늦가을의 문턱을 넘어 겨울 초엽으로 접어드는 11월 말, 교문을 나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려는 순간 한 군인이 다가와 ‘불이 있느냐.’고 물었다. 야전점퍼도 걸치지 않은 그 군인은 짧게 깎은 머리카락 밑으로 소름이 송송 돋은 모습으로 입에 담배를 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추위에 푸르딩딩하게 변한 얼굴빛과는 달리 눈망울만은 몹시 맑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람을 등지고 담배불을 붙인 그는 고개를 꾸벅하더니 교문쪽으로 내달았다. 그리곤 손을 연신 겨드랑이 밑으로 넣어 비비면서 교문 안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 군인의 계급이 일병이었고, 아마도 첫 휴가를 나와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기다리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군 입대 후에야 떠올랐다. 그럼에도 매년 11월 말 갑자기 수은주가 뚝 떨어지는 날이면 한순간 담뱃불밖에 건넨 적이 없는 그 군인부터 생각난다. 기억 속에 정지된 정물화가 아닌 군모(軍帽) 밑에 빼곡히 돋아난 소름까지도 선명한 동영상이 되어. 그동안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인물들이 그 군인의 얼굴에 대입되곤 했다. 하지만 곧 눈이 쏟아질 것만 같은 초겨울의 배경과 어울리는 그 얼굴은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제2 노충국’ 김웅민씨 숨져

    만기 전역 6주 만에 위암4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김웅민(23)씨가 21일 입원 중이던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졌다. 김씨는 입대 이후 소화불량 증세를 호소해 군병원은 물론 민간병원에서도 두 차례나 내시경 검사를 받았으나 양성 위궤양 등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진단받았으나 전역 직후 종합병원에서 위암 말기로 통보받아 3개월 가량 투병생활을 해왔다. 국방부는 고(故) 노충국씨 사망사건 이후 김씨 사건을 비롯한 유사사례 3건을 적발해 감사한 결과 군 의료체계 미흡 등의 문제점을 시인한 바 있다.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한 김 씨는 현재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적용대상 여부 심의를 위해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으며, 향후 서면을 통한 상이등급구분 신체검사를 거쳐 유공자 여부가 확정된다. 한편 전역 2개월 만에 췌장암으로 진단받고 투병하고 있는 오주현 씨의 경우 상이군경 2급 등록을 마친 상태이며, 역시 전역 뒤 위암으로 투병중인 박상연 씨는 육군본부에서 아직 국가유공자 요건을 통보하지 않은 상태라고 보훈처는 밝혔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자이툰 전역 4개월만에 ‘뇌종양말기’

    이라크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한 뒤 전역한 예비역 병장이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고 병마와 싸우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구에 사는 양태황(23) 예비역 병장은 가톨릭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2003년 2월 군에 입대, 지난해 11월 자이툰부대에 지원해 이라크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성실히 마치고 지난 4월23일 전역했다. 신체등위 2급을 받고 입대했지만 자꾸 머리가 아파 두통약을 복용해 온 양씨는 전역한 지 4개월여 만인 지난 9월21일 대구의 한 병원에서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았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운 ‘대한 건아’가 되어 돌아오겠다며 이라크로 떠났던 꿈 많은 한 청년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양씨는 가정환경도 그리 넉넉지 않아 이라크 파병 대가로 받은 월급을 병원비로 다 써버렸다. 양씨 가족들은 청와대와 국방부,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지만 속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양씨의 병이 군에 있을 때 발병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싸늘한 답변만 들어야 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이별의 길목에서…원 모어 타임

    이별의 길목에서…원 모어 타임

    ‘원타임(1TYM)’을 브랜드로 만들면 이런 이미지가 아닐까?대중적이면서 고급스럽고, 유행에도 뒤지지 않는…. 이런 느낌들을 한데 버무리면 원타임이란 힙합 그룹의 음악이 귀에 쏙 들어올 것 같다. 원타임은 ‘힙합 음악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해 온 그룹. 래퍼 테디(27)와 송백경(26), 보컬 대니(25), 랩과 안무를 담당하는 오진환(27) 등 4명의 멤버가 똘똘 뭉쳐 만들어내는 수준 높은 음악은 마니아와 대중 모두를 움직이며 정상의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원타임이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멤버 오진환이 내년 초 군입대를 하는 관계로 당분간 팀 활동을 접게 된 것.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들의 손에 들린 5집 ‘원웨이’(One Way)는 이별의 아쉬움을 접고 새로운 도약을 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이다.“해체가 아닌 무기한 휴식”이라며 훗날을 기약하는 원타임을 만났다. #‘One Way’ “마지막 앨범일지도 모르는데 결과물에 만족하느냐?”며 첫 질문을 던지자 4명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핀다.“전작도 그랬지만, 만족할때까지는 절대 대중 앞에 앨범을 내놓지 않는 게 저희들 철칙이죠. 지금까지 모든 앨범이 최소 90점 이상은 됐다고 자부해요.” 송백경이 한마디 거든다.“7번째 트랙 제목 ‘Summer Night’을 보세요. 원래 여름에 나왔어야 하는데, 마음에 들때까지 계속 수정하는 동안 계절이 두번이나 바뀌었네요.(웃음)” 모두 15트랙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은 군더더기 없이 꽉찬 느낌. 타이틀곡은 힙합 발라드곡 ‘몇 번이나’와 ‘니가 날 알어?’ 등 두 곡. 이례적이다.“스타일이 다른 두 곡을 통해 보다 다양해진 원타임의 음악적 깊이와 폭을 보여주고 싶었어요.”(테디) 이들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며, 마치고 나니 처음으로 ‘프로페셔널’수준에 다가선 느낌을 받았다.”고 앨범 작업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전까지가 힙합의 대중화에 만족했다면,5집은 자신들의 음악적 개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전 멤버가 6개월 동안 미국 LA근처 시골집에서 합숙하는 등 고생 끝에 내 놓은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변화는 가사. 멤버 들의 각자 경험들이 각 노래에 그대로 녹아 있다.“나이를 먹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노래 가사에 개인적 가치관이 많이 묻어나더라고요.”(대니) #경계인 원타임은 “음악적 퀄리티와 상업성이라는 경계에 서서 두마리 토끼를 쫓는 딜레마에 빠진 그룹”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실제로 이들은 ‘쾌지나칭칭’이나 ‘HOT뜨거’에서 보듯 힙합과 국악의 접목도 시도하며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해 왔다.“힙합 음악도 상업적 논리로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무대위 패션·퍼포먼스 등도 마찬가지로요.”(테디) 이들이 평가하는 ‘원타임표 힙합’의 대표곡은 어떤 곡일까. 예상외로 4인4색이다. 오진환은 데뷔 앨범에 수록된 ‘원타임’을, 테디는 “당시 죽어 있던 힙합을 부활시키는데 일조”한 ‘HOT 뜨거’를 꼽았다. 송백경은 ‘쾌지나 칭칭’을 꼽으며 “이 곡으로 원타임이 무대에서도 잘 놀 수 있는 그룹으로 각인됐다.”고 돌이켰다. “단 한번의 실패 없이 7년 동안 꿋꿋이 한 자리를 지켜낸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모두 한 목소리를 낸다.“‘외곬’이죠. 모두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쪽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기질이 있어요. 저희 4명이 같이 모여 있을 때 각자가 ‘내가 제일 잘났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웃음)” #따로 또 같이 오진환이 빠진 원타임은 각자의 길을 갈 계획이다. 지난해 태빈이라는 본명으로 솔로 1집을 낸 대니는 내년 초 2집을 계획하고 있다. 송백경은 그룹 스위티 출신의 이은주와 또 다른 멤버와 함께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추구하는 그룹을 결성한다. 테디 역시 솔로 힙합 아티스트로 나선다. 원타임은 12월 30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갖는 단독 콘서트와 YG패밀리와 함께 하는 원콘서트를 마지막으로 5집 활동을 마무리한다.4집때 많은 인사를 못 드렸던 지방 팬들을 위해 1월부터는 부산·대구 등을 도는 순회 공연을 준비중이다.“앨범 낼 때마다 항상 갓 데뷔하는 신인의 입장으로 돌아갔죠. 이번엔 기약 없는 휴식기에 들어가겠지만, 조만간 또 다른 매력의 새로운 원타임으로 돌아올 거예요. 물론 예외 없는 힙합이지요.(웃음)”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생애 첫주택자금 대출’ 1주새 3000억원 신청

    ‘생애 첫 주택구입자금 대출’이 재개된 지 1주일 만에 3000억원에 이르는 대출금이 신청됐다. 낮은 금리에 중도상환 수수료가 없는 등 장점이 많다고 해도 이같은 반응은 놀라올 정도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가다. 13일 국민은행, 우리은행, 농협 등 3개 취급 금융기관에 따르면 7일부터 11일까지 접수된 신청 건수는 6030건, 금액은 3063억원이나 됐다. 국민은행에는 지난 1주일간 모두 2167억원(4567건), 우리은행에는 593억원(941건), 농협에는 307억원(522건)의 주택자금 신청이 들어왔다. 생애 첫 주택구입대출은 2년 만에 재도입된 제도로 1년간 한시 운영된다. 가구원 전원이 한 번도 주택을 구입하지 못한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지원대상은 연소득 5000만원 이하, 대출지원규모는 최대 1억 5000만원이며 지원대상 주택규모는 전용면적 25.7평(85㎡) 이하다. 금리는 서민주택구입자금과 같은 연 5.2%이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고감도 나노 센서 칩’ 개발

    극장이나 터널 등 어두운 장소에서도 플래시 없이 선명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고감도 나노 이미지센서 상용화 칩’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전자부품연구원은 10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개발성과 발표회를 갖고 “사람의 눈으로 겨우 식별할 수 있는 1럭스(lux) 이하의 어두운 곳에서도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나노 이미지센서 상용화 칩(Single carrier Modulation Photo Detector,SMPD)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고감도 나노 이미지센서란 사람 눈의 망막세포와 동일한 기능을 하는 전자감지 부품을 말한다. 촛불 1개를 켜놓았을 때 1m 떨어진 곳의 조명도인 1럭스 이하의 어둠에서도 선명한 영상 촬영을 가능케 하는 차세대 신기술이다. 칩 개발의 주역인 전자부품연구원 나노광전소자 연구센터장 김훈(40) 박사는 “양자 역학을 응용해 빛 알갱이(광자) 하나로 수천 개 이상의 전자를 만들어 선명한 영상신호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이용, 사람의 망막세포와 동일한 기능을 하는 나노 이미지센서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 칩은 디지털카메라와 폐쇄회로(CC)TV 등에 사용되는 CCD 이미지센서 칩과 휴대전화 카메라 등에 쓰이는 CMOS 이미지센서 칩의 2분의1 크기다. 기존 제품보다 500배 이상의 감도를 실현, 영상신호 증폭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해 개당 생산 단가도 기존 제품의 100분의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연구원은 말했다. 이 칩은 모바일기기, 캠코더,PDA, 카메라 등 디지털 전자기기뿐 아니라 국방, 의료, 자동차, 산업용 기기 및 환경산업 등 감지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분야에 적용이 가능해 관련 분야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연구원측은 이번 개발로 수입대체 및 수출증대 효과는 연간 2조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나노 이미지센서 개발에는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유망전자부품 기술개발사업 등을 통해 4년간 총 110억원이 투입됐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요리talk 조리talk 홍경민 입니다

    요리talk 조리talk 홍경민 입니다

    “불혹, 지천명에도 무대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음악인이 되고 싶습니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건너편 주유소 옆 상가 2층에 자그마한 삼계탕집이 있다.‘장호삼계탕’.30∼40석 정도의 작은 규모에, 약간은 허름한 듯한 이곳을 지난 4일 찾았다. 겨울을 바라보는 시기에 웬 삼계탕이냐고 궁금해 하는 분들도 있겠다. 최근 리메이크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는 홍경민(29)과 만남이 약속됐기 때문. 그가 추천한 맛집이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홍경민을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에게 살짝 물었다.“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사장님은 “특별히 자랑할 것이 없어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이어지는 집요한 질문에 “문을 연 지 21년 됐지만, 맛도 그렇고 식탁이나 의자가 그 때 그 시절 그대로인 것이 장점”이라며 허허 웃음을 흘린다. 자주 찾아오는 명사가 궁금했다. 일일이 꼽아보기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때마침 방송 녹화 리허설을 마친 홍경민이 들어선다. 그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찾는다는 삼계탕을 일단 후다닥 주문했다. 홍경민은 “이쪽 생활이 한 끼 챙겨먹기 힘들 정도로 바빠요. 먹을 때 제대로 찾아 먹기에는 삼계탕이 제격이죠.”라면서 “특히 이곳은 담백하고 걸쭉한 국물이 그만이구요. 언제나 변함없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먼저 향긋한 인삼주 한 잔 건배. 그는 “좋죠? 인삼주도 그렇고, 여기서 매일 담그는 겉절이 김치도 별미죠.”라며 입맛을 다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삼계탕을 먹으랴 이야기하랴 바쁘다. 그의 추천대로 평소에 접하기 힘들 정도로 맛있다! 장에 찍어 먹은 고추의 알싸한 맛도 마음에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동안 이야기는 자연스레 삼계탕처럼 솔직담백한 그의 음악세계로 옮겨졌다. 내년이면 벌써 데뷔 10년째. 또 나이도 서른을 훌쩍 지나간다. 느낌이 어떨까.“특별하게 의식하지는 않아요. 이제는 젊은 혈기보다는 원숙미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음악보다는 오락·연예 쪽에서 많이 눈에 띈다고 말을 던졌다. 그는 “엔터테이너적인 느낌이 강했다는 건 알아요. 현실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척 아쉬운 부분이죠. 겉으로 보여지는 엔터테이너보다는, 소리로 들려주는 뮤지션이 되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제대 이후 록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어쩌다 보니 ‘한국의 리키 마틴’이 됐지만, 데뷔 전에도 그렇고 가장 하고 싶은 장르가 록이라고 설명한다. 록이 우리의 사물놀이와 음악적 정서가 맞아 더욱 마음에 든다고. “우리에게는 장르에 대한 선입견이 많은 것 같아요.‘걔가 록을 해?’하는 분도 있구요. 지금 록이 우리시장에서 먹히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하고 싶었어요. 좋은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아직도 남아있는 ‘홍 병장’ 이미지에 부담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입대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너무 미화됐다는 생각 때문.“다른 연예인들과 비교해서 물어보고 해서 정말 민망했죠.” 한류 바람을 타고, 해외 진출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예전에는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는데, 이제 우리 음악이 해외에서 각광을 받는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 국내에서도 못한 일이 너무 많아서 엄두를 못네요.” 언젠가 ‘딥 퍼플’의 공연에 감명을 받았다는 홍경민은 “우리로 따지자면, 은퇴할 나이잖아요. 그런 데도 열정을 내뿜는 게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12·13일 리메이크앨범 ‘이모션 인 메모리’ 기념콘서트 ‘의외의 홍경민을 보여주겠다!’ 8번째 앨범 ‘이모션 인 메모리’를 내놓은 홍경민이 오는 12일(오후 7시30분),13일(오후 5시) 이틀 동안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이번 컨셉트는 ‘추억으로 떠나는 늦가을 여행’이다. 교복을 입은 청춘의 사랑 이야기가 연극 형식으로 들어가며 80년대 학창시절을 연상케 한다. 또 갈대밭이나, 벤치와 가로등 등 무대 소품으로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무대가 꾸며진다. 그 때 그 시절 유행했던 댄스곡도 부르며 직접 춤도 춘다. 홍경민은 어릴 적 우상이었던 신해철을 초대하려 했지만, 건강 문제로 불발된 게 가장 아쉽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홍경민에 대한 편견 깨기’. 방송에선 엔터테이너적인 면이 부각됐지만, 공연에서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에 방점이 찍힌다는 것. 그는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안다.2000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마지막 잼콘서트에 베이스 주자로 참여했을 정도. 지난 6집 ‘네가 그리운 날에’는 원맨밴드 형식으로 녹음했던 곡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드럼 두 대를 세팅, 세션맨과 동시에 연주하는 퍼포먼스도 펼칠 예정이다. 그는 “솔직히 연습이 부족해 수준급은 아니에요.”라면서 “하지만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밴드에서 즐겨 카피했던 ‘본 조비’의 노래도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 홍경민은 “한 때는 제가 본 조비 노래를 국내에서 최고로 잘 한다는 착각도 했었어요.”라며 웃음 지었다. 그는 “앞으로도 사정이 허락한다면 팬들과 신나게 어우러지는 공연 위주 활동을 하고 싶어요.”라고 다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흔히 고음(高音)을 잘 내는 사람을 ‘신이 내린 목소리’에 비유한다. 테너에게 고음은 생명 그 자체다. 또 고음을 위해 생명을 걸기도 한다. 세계적 태너도 고음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도 많고, 고음에 도전하다 죽는 경우도 더러 있다. 테너 임웅균(51)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악가로 정상에 오를 때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대학시절 찬송가의 높은 ‘라’음을 내다가 숨이 콱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심청전’ 연습 도중 ‘농부가’에서 또한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임 교수는 요즘에도 여전히 고음을 낸다. 공연장에서는 물론 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렇다. 특히 학생들에게 야단칠 때면 음악원 전체가 쩌렁쩌렁 울린다. 주위에서 “성악가는 목소리를 아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목소리를 강철처럼 단련시키고 싶어 그런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인다. 지난 주 음악원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소문대로 쩌렁쩌렁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펄쩍펄쩍 신나서 뛰기도 했다. 임 교수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정신건강 지킴이’로 위촉돼 정신건강 전령사로 또다른 역할에 나섰다.“나의 건강은 가족의 건강이며 나아가 한민족의 건강이 아니냐.”면서 노래로 정신건강을 지키고 알리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며 크게 웃는다. 이어 대뜸 “내가 (국회)출마하면 어떻겠소, 할 일이 꼭 있거든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국 60개도시에 사랑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청소년과 미혼모를 위한 재활프로그램, 즉 세계 최고의 휴먼센터를 설립하는 거지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일보 직전에 휴먼센터에서 보름 동안 재활프로그램을 거쳐 퇴학여부를 결정하자는 것. 이를 위해 매년 18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끝냈다고 했다. 자기 적성과 자아를 파악한 사람은 결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휴먼센터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리나라는 교과목이 너무 많아요. 학생들 가방이 그렇게 무거운데도 어디 노벨상 하나 제대로 나오나요.6,7개 과목으로 팍 줄여야 해요. 그리고 책가방을 왜 들고 다닙니까. 책은 학교에 보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CD로 공부하면 돼요. 왜 그 흔한 CD 제작을 안하는 것인지 답답해요.” 임 교수는 정계나 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피가 끓는 다혈질의 사나이기에 정 안되면 국회진출이라도 해서 그런 일을 꼭 이루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연장 밖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3년전부터 학교폭력대책 국민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사랑의 공책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캐리커처와 메시지를 담은 공책 5만부를 소년 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들에게 보내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다. 또 2년 전에는 어린이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68개 어린이단체 공동대표의 자격으로 국무총리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담판을 지어 원점으로 되돌리게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오른손 문화에서 양손문화로 바뀌어집니다.30대 이상은 대부분 오른손을 쓰지만 지금의 청소년과 20대는 양손을 쓰거든요. 컴퓨터 자판도 그렇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다 양손으로 휙휙 날리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청소년은 어느 때보다 정말 중요합니다.” 임 교수는 또 유학시절 유상근 전 명지대 이사장의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회고한 뒤, 한 사람의 투자로 이렇게 성악가와 교수로 성장해 수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 않으냐고 자신했다. 따라서 재벌들은 우리 사회의 불우이웃과 청소년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벌들은 따지고 보면 농민과 서민들이 물건을 사 주니까 재벌이 된 거 아니냐면서 우리 농산물이 무너지면 암 발생 등 만병의 근원이 생기기 때문에 농촌 지원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참만에야 음악얘기가 나왔다. 인간은 음악과 스포츠 두가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면서 “발가벗은 목욕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아세요? 작곡 시 노래 무용 등 네가지뿐입니다.”고 했다. 시나 무용도 음악이 있어야 하고 무용 역시 결국은 체육이 아니냐는 것. 예로부터 음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사람은 음악을 들어야 과격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밀양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부를 때 하얀손수건을 꺼내는 이유를 물었다.“다윗창법을 쓰지요. 다윗은 노래로 신과 대화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목소리가 어린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어린이들은 고음에서도 또박또박 소리를 내면서 목이 잘 쉬지 않지요. 그래서 아 이게 바로 벨칸토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요.”라고 했다. 임 교수의 성악적 자질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숙대 성악과에 입학 등록을 한 어머니는 임신을 하는 바람에 수학을 포기했고, 이때 낳은 아이가 바로 임 교수. 아버지는 일본 규슈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고교 교사로 있었으나 여섯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곧 실패했다. 임 교수는 가난한 살림에 피아노를 배울 수도 없었고 음악성적도 별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시간때 너무 크게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 음악점수는 ‘양’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중2때 음악선생님한테 “성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기가 막히게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후 ‘고성방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 뚝섬 동네 밖에서 노래를 부르면 마을 사람들이 ‘웅균이가 온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실력은 별로였다. 경기중학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고교 역시 1,2차에 거푸 떨어져 대구로 내려갔다가 우여곡절끝에 명지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랐다. 고3때 육사를 지원, 군인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와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하게 됐다. 7개월 동안 집중적인 레슨끝에 연세대 성악과에 수석 합격했다. 대학때에는 문화촌 달동네에 살면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머니의 치료비를 충당했다. 물로 배를 채우고 무대에 오르기 일쑤였다. 결국 달동네 생활 3개월 만에 장티푸스에 걸린 것. 병원비가 없어 작은형의 대영백과사전을 가져다 팔아 겨우 해결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3년 동안 화곡고 음악선생으로 있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고음의 벽을 뚫고 음악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어 궁리 끝에 유관순 기념관에서 독창회를 열었다.370만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부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한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했다. 기라성 같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음반을 구해다 틀어놓고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최대한 흉내를 내면서 발성을 연구했다. 또 마리아 칼라스의 뮤직코치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토니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루치아노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심사위원인 파바로티로부터 “목소리가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85년 11월 귀국,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3월 연세대 강사로 채용됐고,1년 뒤 ‘KBS콘서트홀’이라는 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임 교수를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열린 음악회’.93년 10월 첫 출연하면서 ‘두만강’‘타향살이’‘밀양아리랑’ 등 클래식과 대중가요, 민요를 오가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지식인이 침묵을 지키는 경우는 두가지, 즉 완전한 낙원이거나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사회일 때 그렇지요. 하지만 둘 다 아니라면 웅변이 곧 금입니다.” 요즘에는 실학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공부한다. 이유에 대해 역사는 말 잘하는 사람을 예의 주시해 왔으며 실사구시 차원에서 하고 있다고 껄껄 웃는다.“임진왜란때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 6만,7만명을 끌고 갔는데 돌아온 것은 6000여명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외국의 노예로 다 팔아 넘겼어요.”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서울 출생 ▲75년 명지고 졸업 ▲75년 연세대 성악과 수석 입학 ▲79년 연세대 성악과 학사졸업 ▲79∼81년 군입대 ▲81년 화곡고 음악교사 ▲83년 이탈리아 유학,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과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수학(석사) ▲85년 귀국 ▲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부교수, 성악과 과장 역임 ▲2002년 5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공동대표 ▲2005년 10월 서울시 정신건강 지킴이 위촉 ▲그외 로마 밀라노 등 이탈리아 17개 도시, 뉴욕 워싱턴 애틀랜타 등 미국 19개 도시 순회연주. 오페라 ‘사랑의 묘악’ 등 국내 30여회 공연 ■ 주요 상훈 만토바 국제콩쿠르 2위, 비오티 국제콩쿠르 메리토상,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성악가상(95년),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2000년) ■ 음반 선경 한국가곡 4,5집(CD), 독집음반 사랑하는 마음(99년), 태너 임웅균의 클래식 가요(2001년) km@seoul.co.kr
  • “어머니” “일남아” 눈물의 포옹

    정일남(49)씨는 8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1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어머니 김종심(72)씨를 만나 “어머니”라는 말과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정씨는 1987년 1월15일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하다 북한에 납치된 동진27호의 선원으로, 이날 납북 18년 만에 어머니를 만났다.●나머지 8명 생사는 확인안돼 모자는 서로 부둥켜 안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정씨는 3남1녀 중 장남으로 이날 북한에서 결혼한 이금옥(44)씨와 딸 은혜(17)양, 아들 은혁(15)군과 함께 상봉장을 찾았다. 정씨는 “다 잘 살고 있다.”며 어머니를 다독였으나 어머니 김씨는 “네 아버지가 5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실 때 대문을 바라보며 ‘일남아, 일남아’ 부르다 돌아가셨다.”고 말해 또 한 번 눈물바다가 됐다. 손재주가 좋았던 정씨는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에서 20년 가까이 이발사를 했다.그러나 시골에서 수입이 적었던 정씨는 1986년 여름 집에는 알리지 않고 처음 고기잡이배를 탔다. 납북된 동진호 선원 12명 가운데 상봉한 사람은 정씨가 네번째이고, 나머지 8명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동진호 어로장 최종석(60)씨의 딸 우영(35·여·납북자가족협의회장)씨는 “상봉 소식에 부럽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며 “왜 납북자 가족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서 만나야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그는 최근 일간지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으로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아버지 최씨의 송환을 촉구했고, 노란손수건 400장을 임진각 입구 소나무에 달기도 했다.●김일성대 총장 사돈가족도 상봉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국군포로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북쪽에서 가정을 꾸린 작은 아버지 차삼조씨의 아들 형건(48)·영건(45)씨 형제를 만난 남측의 차종진(54)씨는 두 사촌동생의 얼굴을 보고 서먹함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종진씨는 아버지 양호씨와 작은 아버지 삼조씨가 국군에 입대한 뒤 전사하고 경상남도 김해에서 할머니와 외롭게 살아왔다. 종진씨는 조심스럽게 작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을 확인했으며 사촌동생 영건씨가 “경남 김해라고 들었습니다.”라고 이어가자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지나간 시간의 퍼즐을 맞춰갔다. 남측 민우순(90) 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딸 성명숙씨 대신 외손주 이광천(41)씨와 시누이 성창수(71)씨를 만났다.민씨의 쌍둥이 자매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사회부 부부장을 지내다 1950년 남측에서 검거, 사형된 성시백의 사촌 성시우의 며느리다. 민씨 일가는 성시백의 아들인 성자립 김일성종합대학 총장과 사돈 간인 셈이다. 인민군 포로 출신인 이창식(74)씨는 넷째 동생 이세식씨의 부인 오란옥씨와 조카 이광씨와 상봉했지만 이미 북에 있는 5형제가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2차 이산가족 상봉에는 이씨를 포함해 인민군 포로 출신 세 명이 포함됐다. 거제수용소에 수용됐던 인민군 포로 김민주(81)씨가 부인 이만조(70)씨와 큰아들 김선호(55)씨를, 역시 거제수용소에 수용됐던 인민군 출신 현윤택(80)씨가 북의 아들과 딸을 만났다.금강산 공동취재단·전광삼기자hisam@seoul.co.kr
  • 6급이하 공무원 내년부터 노조 가입 허용

    내년부터 6급 이하 공무원의 노동조합 가입이 허용되지만 시·군·구의 ‘담당’이나 ‘팀장’, 출장소장 등 다른 공무원의 업무를 지휘·감독하거나 총괄하는 공무원은 노조 가입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정책결정에 관한 사항이나 채용ㆍ승진ㆍ전보 등 임용권의 행사, 기관의 조직·정원, 예산의 편성 및 집행에 관한 사항 등은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 노동부는 8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ㆍ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12월 중 정부안을 확정, 입법 완료할 예정이라고 7일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법외노조였던 공무원노조는 내년 1월28일부터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받게 된다. 김효순 노동부 공공노사관계팀장은 “내년 1월 발효되는 공무원노조법에 따른 노조 가입대상 범위와 단체교섭 범위 등을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정했다.”면서 “공무원노조법에 따라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공무원은 30여만명”이라고 말했다. 제정안에 따르면 법령 등에 의해 지휘ㆍ감독의 직책을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훈령과 사무·업무분장 등에 의해 기관장 또는 부서장을 보조하는 6급 ‘담당’ 또는 ‘팀장’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 또 6급 이하 공무원 중 법령·조례ㆍ규칙에 근거해 소속 직원에 대한 근무평정, 소관업무 전결권한 등의 직책을 부여받은 사업소장, 출장소장 등도 노조 가입대상에서 제외된다. 공무원의 임용과 복무, 징계, 예산 편성 및 집행, 감사에 관한 업무 등을 주 업무로 하는 6급 이하 공무원도 노조 가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경찰과 소방 등 특정직 공무원과 유사하게 국민의 안전 및 국가기능 유지업무에 종사하는 교정, 검찰사무, 마약수사, 출입국관리, 철도공안 직군도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 노사간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위원회 심사관, 근로감독관 등도 마찬가지다. 제정안은 이와 함께 정책의 기획 또는 계획의 입안 등 정책결정에 관한 사항이나 공무원의 채용ㆍ승진ㆍ전보 등 임용권의 행사에 관한 사항, 행정기관이 당사자인 불복신청 및 소송사항 등은 단체교섭 대상에서 제외했다. 공무원노조는 10인 이내에서 교섭위원을 선임하거나 조합원 수에 비례해 교섭위원을 선임한 뒤 교섭에 나서야 하며 교섭창구는 단일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정부안대로 하면 6급이하 공무원 10만명이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며 “노조등록을 하지 않고 차라리 법외노조로 남겠다.”고 밝혔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예선] 제대 후 날개 단 옥득진 3단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예선] 제대 후 날개 단 옥득진 3단

    제3보(17∼30) 바둑 공부의 적령기는 대체로 25세까지라는 게 정설이다. 그 후에도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하겠지만 사실상 그 이전에 닦아 놓은 실력을 유지하는 것일 뿐 실제 공부는 모두 그 이전에 끝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기사들에게도 군입대는 난제이다. 실제로 많은 젊은 유망주들이 군에 다녀온 뒤에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그런데 옥득진 3단은 거꾸로 군 제대 후부터 성적이 더 좋아졌다. 당연히 군에서 바둑공부는 못했다. 본인은 ‘정신력 강화’가 승부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설명한다. 옥 3단의 기풍은 뚜렷하지 않다.‘평범’도 기풍이라면 그렇게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평범하게 두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일본의 다카가와(高川格) 9단은 평범류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본인방 타이틀을 9년간 제패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 평범류가 고전하고 있다. 흑을 잡고 너무 평범하게 두다 보니 장기전이 되어 6집반이라는 큰 덤이 부담이 된 것이다. 종국 후 복기 때 흑 19로 (참고도1) 1에 붙이는 게 좋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에 이 4단은 백 2로 둘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흑 3이면 백 4. 흑의 모양이 영 이상하다. 흑 23으로는 (참고도2) 1의 젖힘이 일감이지만 그러면 백 2로 치받고 6까지 안정하는 것이 싫었다는 것이 옥 3단의 국후 소감. 결국 29까지는 이런 정도라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반상 최대인 30의 곳을 백이 차지하게 됐다. 여전히 백이 편한 포석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수사발표 임박… 그룹부담 줄이기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4일 전격 사퇴를 발표하면서 그룹 경영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박 회장 개인으로서는 60개가 넘는 대외직함 가운데 국제직함 20여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약력’으로 남게 됐다. ●해묵은 비리에 쓰러진 ‘미스터 쓴소리’ 두산측은 박 회장의 사퇴에 대해 “두산사태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검찰수사까지 받게 된 데 대한 그룹회장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다한 것”이라면서 “그룹회장이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고 보고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의 진정서 파문이 일어난 직후인 7월말만 해도 사퇴 의향을 묻는 질문에 “책임질 일이 있어야 책임질 것 아니냐. 검찰조사에 떳떳이 응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두산산업개발이 2797억원 분식회계를 고백하고 오너일가의 주식매입대금 이자(138억원)를 회사가 대납한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박 회장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사태가 추잡한 형제간의 분란을 넘어 두산그룹 ‘비리’ 사건으로 확전되자 박 회장이 책임을 통감한 것이다. 다음주 중 있을 검찰 수사 발표를 앞두고 그룹의 부담을 줄여 보자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들이 통상 검찰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지를 감안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고 말했다. ●‘뉴 두산’으로 거듭나나 오너일가가 연루된 각종 비리로 ‘109년 형제 기업’으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두산은 계열사 사장단으로 구성된 ‘비상경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단행할 계획이다. 손길승 전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사법처리 이후 ‘뉴SK’를 선포했던 SK의 전례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두산산업개발-㈜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산업개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의 개선은 장기 과제로 남았다. 두산은 초대회장인 박두병 회장 사후 삼성 출신인 정수창씨를 영입(77∼81년), 국내최초의 전문경영인 회장체제를 도입했었다. 정수창 회장은 낙동강 페놀사태로 두산이 위기에 몰린 91∼93년에도 회장직을 맡았다. 한편 그룹 회장직은 물론 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회장직도 내놓은 박용성 회장과 달리 동생인 박용만 부회장은 그룹 부회장직만 물러나고 ㈜두산 부회장 등은 유지키로 했다. 오너 3세인 박용곤·용오·용성에 이어 박 부회장마저 경영에서 손을 뗄 경우 ‘경영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장손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 4세들의 지위에도 변동이 없다. 이들 4세가 경영전면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 단행될 두산그룹의 개혁 성과에 달려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두산그룹 사태 일지 ▲2005.7.18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체제 개편 발표 ▲7.21 박용오 회장측, 박용성 회장 비리 검찰에 진정 및 박용성 회장 그룹회장 승계 원천무효 성명서 발표 ▲7.22 박용곤 명예회장,“박용오 전 회장, 그룹과 가족에서 제명”. 박용성 회장,“비자금 조성의혹 사실 무근” ▲7.26 검찰, 두산그룹 비리 수사 착수 ▲8.8 두산산업개발,2797억원 규모 분식회계 고백 ▲8.10 두산산업개발, 오너일가 대출이자 138억원 대납 확인 ▲8.20 검찰, 두산그룹 관계자 계좌추적 착수 ▲8.30 참여연대, 박용성 회장 등 고발 ▲9.2 검찰, 두산산업개발 압수수색 ▲9.6 박용성 회장,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3선 성공 ▲10.7 검찰, 박용성 회장 등 출국금지 ▲10.20 박용성 회장 소환 ▲11.4 박용성 회장, 그룹 및 대한상의 회장 사임
  • [시사 키워드] 저출산 고령화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아이는 낳지 않고 노인인구는 계속 늘어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형으로 바뀌고 있다. 인구가 적정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경제가 활력이 떨어지고 정체된다. 일할 사람은 없고 부양해야 할 사람만 많다면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두고 재앙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 포인트 아이를 낳지 않으면 국가발전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고, 원인 분석을 통해 어떤 대책이 있는지 알아본다. ●저출산 고령화, 얼마나 심각한가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바람에 우리의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임여성 1명당 평균자녀수는 2004년 1.16명으로 1.6명 수준인 선진국보다 크게 낮다.1970년 4.53명에서 줄곧 감소해 오다 세계 최저 수준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2.08명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도 출산 장려정책을 꾸준하게 펴서 이 수준까지 올렸다. 출산율이 떨어져 가장 왕성하게 일할 연령인 25∼49세 인구가 2007년 2082만명으로 정점에 이른 뒤 줄어든다고 한다. 또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현재 3467만명으로 총인구의 71.8%지만 2050년에는 2275만명(53.7%)으로 감소하게 된다. 반면 노령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2018년이면 우리나라의 65세 인구가 총인구의 14%를 넘어 고령 사회에 들어선다.2026년이면 노년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왜 아이를 낳지 않나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먼저 출산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이 변화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1991년 기혼여성 가운데 91%가 ‘자녀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난해에는 54.5%로 급격히 줄었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이혼이 늘어나는 것도 출산율 하락의 원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교육비와 양육비에 대한 부담을 꼽을 수 있다.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교육비 비중은 너무 높다. 지난해 월평균 자녀 양육비가 가구당 132만원이 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월평균 소득의 56.6%에 해당한다. 양육에도 어려움이 많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겨놓고 일할 탁아·육아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미혼 남녀 네 명중 한 명이 ‘자녀가 없어도 된다.’고 응답했는데 양육비 부담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들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인구는 국력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인구가 많은 중국은 1인당 소득은 낮아도 전체 국력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본다. 인구가 줄면 성장 동력이 약해져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 이대로 가다간 100년 뒤 우리 인구는 1620여만명으로 감소한다. 인구가 줄면 내수가 축소돼 기업들의 판매 기반이 없어진다. 노동력의 양적 감소와 함께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노동력의 질적인 저하를 불러 경제성장률이 2030년 이후에는 1∼2%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입대할 젊은이들도 줄어 징집대상 인원이 현재의 32만여명에서 2050년에는 절반인 16만여명으로 줄 것으로 보인다. 노령화가 가속화되면 부양부담이 커진다.2020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고 2040년으로 가면 2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공적연금과 건강보험 재정, 사회보장 예산이 증가해 세금이 늘어나고 나라재정이 악화된다. 이에 따른 세대간의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출산율을 높이려면 우선 여성들이 마음놓고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탁아소를 늘리고 자녀를 많이 낳으면 세금은 줄여주되 수당과 연금을 많이 줘야 한다. 공무원 채용 때 자녀를 가진 여성을 우대하는 방법도 있다. 아기를 낳으면 출산보조금을 주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해 줘야 한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런 내용과 비슷한 중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5년간 28조 5000억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보육료 지원,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 아동ㆍ청소년의 방과후 활동 지원, 산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 확대 등이 내용이다. 고령화와 관련해서는 국민연금의 부담은 늘리되 급여는 줄이고 정년은 보장하되 임금은 서서히 줄이는 임금피크제 시행을 지원하며 건강보험료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김래원 “惡추억도 추억이다”

    김래원 “惡추억도 추억이다”

    배우 김래원이 연예 활동 중 ‘가출(?) 경험’을 처음 공개했다. 김래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97년 연예계 데뷔 이후 작품에 주인공으로 발탁됐다가 촬영을 코앞에 두고 부당하게 ‘퇴짜’를 받은 경험이 여러번 있었다.”면서 “당시 충격과 좌절감으로 연락을 끊고 다른 직업을 찾으려고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마음 고생이 심했던 기억은 데뷔 초기인 19살때. 당시 그는 모 작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됐고, 한달 반 동안이나 배역을 연구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 시작 전날 감독으로부터 ‘배역이 바뀌었다.’는 황당한 연락을 듣고 분을 삭여야 했다는 것. 그는 “전 배역을 통틀어 내가 오디션 점수 1등이었는데, 말 할 수 없는 다른 요인(?)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내 존재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모든 연락을 끊고 무작정 고속터미널로 향했단다.“바다로 가서 원양어선 타고 돈 벌어 올 생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철없던 시절이었어요. 다행히도 터미널로 저를 잡으러 온 매니저에게 출발 직전 붙잡혔는데,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없었을지도 몰라요.(웃음)”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김래원 [미스터 소크라테스] 김래원은 표정이나 몸짓보다 말투로 더 잘 이해되는 배우다. 그는 느릿느릿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낯가림도 심하고, 말하기에 앞서 뭔가 생각하며 뜸을 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뜬금없는 대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적은 말수이지만, 신중하고 조리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성은 듣는 이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의 말투에 변화가 느껴졌다. 인터뷰 중간중간 목소리 톤을 높이기도 하고, 가끔은 질문하기도 전에 자신의 얘기부터 쏟아낸다. 무엇이 그의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걸까.10일 개봉하는 ‘미스터 소크라테스’(감독 최진원, 제작 커리지필름·오존필름)에서 180도 이미지 변신을 통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는 그를 만났다. #순수남에서 양아치로 김래원은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늘 따라다니던 순진무구한 미소의 꽃미남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구동혁. 지하철 노약자석에 떡하니 누워있다가 훈계하는 할아버지 보란듯이 담배를 피우고,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 용돈도 뜯어낸다. 친구를 배신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쯤되면 패륜을 넘어 인간말종이라고 해야 할까. “의도한 변신이냐?”고 묻자 그가 씩 웃는다.“저도 이제는 다른 모습을 찾고 싶었어요. 귀엽고 장난기 있는 기존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변화 하면 즐거울 것 같았어요.” #나를 버린 첫 작품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나를 버릴 줄 아는 방법을 배웠다.”며 미소지었다. 이전까지는 촬영 전날 머릿속으로 연기 패턴을 다 그러놓고 현장에서는 감독의 요구와 충돌하며 고집을 앞세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연기에 임했고, 그랬더니 더 큰 것을 얻었단다. “감독과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어요. 이번엔 감독이 요구하는 연기 틀을 절대 벗어나지 않았죠. 제 머릿속으만 연기하면 ‘못해도 50점, 잘하면 70점’ 수준이지만, 감독님 믿고 하니 ‘잘하면 100점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나를 버리는 연기 방식을 택할 거예요.”감독이 요구하는 ‘날것’ 그 이상 충분히 만족스런 연기를 했다며 미소 짓는다. #늘 성에 안 차는 연기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김래원의, 김래원에 의한, 김래원을 위한’ 영화다. 단독 주연이다 보니 부담감은 있겠지만, 만족감이 더 클 법하다.“본인의 연기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는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예전보다 더 눈에 띄더라.”라고 말하며 특유의 입꼬리를 올린다. 구동혁이 조직의 필요에 의해 강력반 형사로 키워지는 조금 ‘밋밋한’초반부 장면이 보다 강하게 그려졌으면 한다는 것. 시사회가 끝난 뒤 감독과 여러차례 통화도 했고, 과도한 편집보다는 ‘음악’을 통해 보강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제 연기에 아쉬움이 많죠.”라면서 “완전히 감을 잡지 못한 초반부에 연기적인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상대역인 강신일씨의 연기 속도보다 더 빠르게 템포를 조절해 속도감을 느끼게 했어야 했죠.”라며 자신의 연기를 돌이켰다. #신(新)한류 스타 김래원은 현재 일본과 대만에서 한류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며칠전에는 일본 주니치 신문, 나고야 방송이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신(新)한류 스타’로 평가,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단독 인터뷰해가기도 했다. 김래원 소속사인 블루 드래곤은 “주니치 신문을 후원하는 국내 모 항공사의 한·일 노선 취항에 맞춰 주니치 신문 등이 기획한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스타 1명 인터뷰’에 김래원이 뽑혔다.”면서 “배용준·이병헌·권상우·장동건 등 한류 4대 천황의 뒤를 이을 ‘신(新)한류 4대천황’으로 김래원을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12월에는 김래원의 출연작 ‘…ing’가 일본 현지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이르면 내년 말 현역 입대할 예정이라는 그는 내년엔 영화·드라마 합쳐서 3개이상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무리한 욕심 아니냐고요?원없이 팬들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난 뒤 군대에 가려고요.(웃음)”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12월 재결합 콘서트 준비하는 어니언스 임창제

    [어떻게 지내세요] 12월 재결합 콘서트 준비하는 어니언스 임창제

    “오는 12월 그동안 헤어져 지냈던 짝꿍 이수영과 함께 오랜만에 무대에서 팬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통기타 가수 임창제(55)씨. 지난 1970년대 이수영씨와 포크 듀오 ‘어니언스’를 결성, 당대를 풍미했다. 특히 ‘편지’‘작은새’‘저별과 달을’ 등의 히트곡으로 당시 사춘기 소녀들 사이에 우상처럼 인기몰이를 했다. 이들은 군 입대와 이씨의 솔로 선언 등으로 지난 81년 완전 결별했다. 이후 이씨는 중견 건설업을 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임씨는 통기타 전도사로 나서 ‘있는 듯 없는 듯’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왔다. 아울러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카페 ‘어니언스’를 운영하면서 지금은 아줌마가 된 당시 소녀팬들과 틈틈이 만나고 있다. 지난 주 이 카페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추억의 노래 ‘편지’가 잔잔히 흘러나온다.‘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젖은 편지/하얀 종이위에 곱게 써내려간/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잠시후 주방에서 부인을 도와주던 임씨와 마주 앉았다. 먼저 근황을 물었더니 “매주 월·화요일에는 부산에서, 수·목요일에는 대구에서 통기타 콘서트를 1년째 해오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매년 두세차례 서울과 지방 등에서 단독 디너쇼를 열어 팬들과 만난다고 했다. 짝꿍이었던 이씨의 소식을 묻자 “처음 공개하는 것인데…”하면서 “오는 12월 23·24일 이틀 동안 여의도 63빌딩에서 함께 디너쇼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비록 디너쇼 형식이긴 하지만 결별한 지 25년 만에 함께 무대에 선다는 의미에서 추억의 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편지’‘작은새’ 등 70년대에 히트한 열여섯 곡을 선사할 예정이란다. 함께 음반도 낼 예정이냐고 하자 “아직 그럴 계획은 없다. 그동안 서로가 각자의 길을 걸어왔기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이어 “가수는 공인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통기타 음악은 영원하다는 신념으로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약간 모자란 듯하게 활동해 오면서도 통기타에 대한 열정과 정성은 한번도 변함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임씨는 여전히 두주불사이다. 거의 매일밤 카페 문을 닫은 뒤 자택인 잠원동 인근의 포장마차에서 부인과 소주잔을 기울인다. 체력유지에 대해 “5년전 ‘강병철과 삼태기’의 멤버였던 최인호 등 동료가수와 음악 애호가가 주축이 돼 조기축구회를 결성했다.”면서 매주 일요이면 어김없이 축구시합을 한다고 했다. 요즘에는 원정경기까지 나갈 만큼 실력이 향상됐다. “최근 7080 음악이 부활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연주인들이 대우받을 때 음악은 더욱 발전하지요.” 임씨는 또 “어느새 동요가 우리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내년에는 ‘등대’‘오빠생각’‘따오기’ 등 10여곡을 편곡해 본격적인 대중화 작업에 나서겠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 조상들이 읊었던 주옥같은 한시를 노래로 보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한시 2000수를 모아 엄선 중이라고 귀띔했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으로 3살되던 6·25전쟁때 월남했으며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곧 90회를 맞는 전국체육대회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잔치였다. 줄임말로 ‘체전’이라 부르게 된 언저리에는 ‘체력은 국력’이라던 시절의 개인보다도 국가 명예를 최고로 치던 잔영이 남아 있다. 군화발이 득세할 무렵인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전후로 체육이 도색영화, 성(性)산업과 더불어 3S(Screen·Sports·Sex) 정책으로 국민들을 도취시키기도 했다. 스포츠에 매력이 숨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다 프로스포츠가 인기를 누리는 등 격변기를 맞아 체전은 물론 아마추어 대회는 시들해져만 갔다. 어떤 이들은 전국체전을 두고 ‘그들만의 잔치’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체전은 누구에게든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고향의 마을 어귀엔 아무개 아들이나 딸이 체전 대표로 뽑혔다느니, 무슨 메달을 땄다느니, 몇등을 했다느니 하는 빨간 글씨가 적힌 큼직한 현수막이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른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거대도시 서울에서 전국체전이라고 해봐야 귓전으로 흘려 들을 정도로 더 싸늘해졌다. 하지만 역시 골목 골목에서는 ‘우리 동네 아무개, 우리 학교 아무개가 몇등을 먹었다.’는 식의 입소문이 환영 플래카드와 함께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신화의 도시’로 불리는 울산에서 제86회 전국체전이 펼쳐졌다.1792명이 뛴 서울시 선수단은 총점수로 순위를 가름하는 대회 방식에 따라 경기도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2위로 돌아왔지만 금메달 숫자는 114개로 가장 많이 따왔다. 서울 체육을 보면 한국 스포츠가 보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스타들도 많이 몰린 곳이 바로 서울이다. 인구 1000만이 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스포츠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짝 들여다본다. ■ 장대높이뛰기 1인자 김유석 “내 아버지가 백만장자라 해도 내 삶은 장대 높이뛰기에 걸었다.” 세살 때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 태평양을 건너갔던 한 꼬마가 어엿한 청년으로 되돌아와 체육계를 들뜨게 만들고 있다. 그 보물단지는 다름아닌 서울시 체육회 소속, 그것도 한국 스포츠에서 황무지라 할 육상 종목에 있다. 지난 8월초 시청에 입단했다. 더욱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이민을 가거나 원정 출산까지 감행하는 게 한국의 요즈음 세태다. ●“날아가는 멋에 살죠.” 김유석(23). 서울시 육상단 선수로 뛰고 있는 그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자연을 이용해 가장 멀리 날아가는 사람으로 불린다. 현재 장대 높이뛰기 최고기록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흔히 버거운 살림살이에 쫓겨 아들 딸에게 책을 쥐어주기는 고사하고 운동으로 ‘계층 상승’을 겨냥하기 쉬운 우리 현실과는 다르다. 최소한 학업과 경제사정을 따지면 아쉬울 게 도무지 없는 편이라 그를 바라보는 체육계의 눈은 ‘기대 반, 부러움 반’이라고 할 만하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등학교도 미국의 5대 명문 사립재단인 디어필드 아카데미(Deerfield Academy)를 나왔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역시 명문 중에서도 명문인 UPEN(University of Pensylvania)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장대높이뛰기 종목을 육성하는 UCLA를 선택하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고집까지 보였다. 한국 육상을 말하자면 몇몇 굵직굵직한 스타들을 낳은 마라톤 정도가 전부라 하겠기에 더욱 그렇다. 김씨는 전국체전을 다녀온 뒤 약간은 실망스러운 가운데 다음 기회를 벼르며 다시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 올 4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MPSF(Mountain Pacific Sports Federation) 육상대회에서 5m61㎝로 한국 최고기록을 일궈낸 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대회 신기록에 머물고 말았다. 그가 한국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세번째였다.2003년 5월 미국 PAC-10 선수권대회에서 세운 5m55㎝, 지난해 6월 전미 대학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한국기록 5m60㎝를 1㎝,5㎝씩 끌어올렸다. 지난 15일 남자 일반부에 출전,5m36㎝를 뛰어올랐다. 웬만한 이들 같으면 대회신만 해도 기쁘기 이를 데 없는 성적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이 웨이 UCLA 2학년 때인 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돼 줄곧 육상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실력에 못잖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지금까지 20여년을 이국에서 지내오면서도 단 한번도 국적을 바꿔보지 않은 그의 가족들이다. 세 글자가 뚜렷한 이름도 마찬가지다.3년 전 아버지가 한국을 위해 뛰어야 한다며 대한육상경기연맹에 아들 실력을 봐달라고 연락해온 데서도 알아볼 만하다. 이같은 사실을 보란 듯 증명해주는 사례는 또 있다. 육상연맹 홍순모(46)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 칠레에서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이 때 유석이를 처음 만났지요. 시드니올림픽을 치러낸 나라라는 거드름에 들뜬 오스트레일리아 육상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미개인’ 운운하며 놀려댔지 뭡니까.” 오징어에 고추장, 된장 등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시비를 걸어온 것이란다. 그런데 김씨가 한발짝도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면 못쓴다며 무례하게 군 점에 대해 사과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으라고 해 항복(?)을 받아냈다고 홍 이사는 덧붙였다. 고교 때 동급생들 사이에 최고의 실력을 뽐내던 김씨는 한국 국가대표로 나선 2002 대구 유니버시아드와 지난해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선 뜻밖의 부진을 보였다. 대회참가 직전에 훈련하다가 봉이 부러지는 바람에 손목 부상을 입고도 끈질긴 투혼을 보였다는 대목은 그가 장대 높이뛰기라는 운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디어필드 아카데미 2학년에 올라가면서 뉴잉글랜드 사립고등학교대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내리 3년간 챔피언이 되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수 아래였던 친구들이 요즈음 들어 (5m)70∼90㎝대까지 기록하는 데 대해 자존심이 상한 상태라고 한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장래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라고 육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머잖아 해내고 만다.” “장대 높이뛰기에서만 경험하는 하늘을 나는 그 기분, 그 환희. 그보다 좋은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요. 저는 장대 높이뛰기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김씨는 고교 동창생이기도 한 형이 의무학점인 스포츠 종목으로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뒤따라 배우다 푹 빠지게 됐다. 형은 하버드를 나와 미국에서 사업가로 주목받고 있는 반면, 성적이 더 뛰어나다던 동생은 아예 직업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운동이냐, 전공을 살리느냐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을 때 “네 길을 걸어가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이들도 그의 가족이다. 선수이면서 학생회 임원, 학년 대표를 지낼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선수라 해서 수업이나 과제, 시험에서 예외일 수 없는 환경에서 한치도 모라람이 없는 재목이었다.191㎝ 84㎏의 건장한 한국청년은 외모도 빼어나 영화에 출연하고 모델 제의도 받은 적 있다. “더 좋은 대학교를 마다하고 운동을 한다고 덤볐을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은 삶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운동 선수에게는 UCLA보다 더 좋은 대학은 없다, 좌우명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행복 이상은 없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27일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육상 대회에 차례로 나가며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장대높이뛰기 사절’인 셈이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크라이나의 부브카를 지도한 얼 벨 코치와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마이클 톨리 코치가 그를 주목해 단련시키고 있다는 점은 미래를 밝혀주는 사실이다. 독일인 매니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한국 출신의 월드스타 탄생을 예감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핏줄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언젠가 큰 일을 벌일 것이라고 육상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만 되면 모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운 정신과 스포츠맨으로 제1 덕목인 반듯하고 절제할 줄 아는 태도 때문입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땀으로 일군 ‘스포츠 서울’ ‘아우 먼저, 형 먼저’ 하는 쌍둥이 메달리스트에서부터 방망이 든 프로배구 감독의 아들, 야구 감독의 핏줄을 이어받은 다이아몬드 유망주까지…. 수도 서울의 명예를 걸고 땀을 흘린 전국체전 선수단에는 여러가지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도 서울시 여자축구단이었으니 “막판에 웃는 자가 진짜 승자”라는 자부심에 들뜰 만하다. 이들 가운데 레슬링에 출전, 메달을 따낸 쌍둥이 형제가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쌍둥이 아니랄까봐 군에도 나란히 입대한 국군체육부대 김종대·종태(25)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로 10분 먼저 태어난 김종대가 형이다. 형제는 중랑중 1학년 때 나란히 레슬링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형은 이듬해 손을 뗐다. 두명 모두 운동을 시킬 수는 없다는 부모님 반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슬링을 잊지 못하던 차에 3학년 때 다시 매트에 올랐다. 이 때 생긴 공백 탓일까. 동생이 그레코로만 1위를 한 반면 형은 자유형 3위로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몸무게가 55㎏으로 같지만 서로 매트에서 다투는 일만은 피할 수밖에 없어 세부종목만 나눴다. ‘상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국군체육부대에 뽑힌 것만으로도 실력을 알아줄 만한데 당당하게 메달까지 따냈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차세대 황영조로 불리는 육상 꿈나무 전은회(17·배문고)는 남고부 5000m와 10㎞에서 우승해 장거리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전은회는 지난 5월 전국 고교대회 10㎞에서 29분 27초로 황영조(35·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가 강원도 명륜고 시절인 89년 세운 기록 29분 31초를 4초나 앞당겼다. 이어 지난 6월엔 5000m 레이스에서도 허장규(22·삼성전자)가 갖고 있던 고교 최고기록 14분 17초 93을 12초나 앞당긴 14분 05초 44를 기록해 제2의 황영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교부 야구에서 우승한 신일고엔 왕년의 배구스타 아들이 눈길을 끌었다.2학년 강성호(16)군은 아버지 강만수(50) 전 현대캐피탈 감독의 뒤를 이어 중3 때까지 배구를 하다가 야구로 전향(?)한 사례다. 프로야구 LG트윈스 2군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인식(52) 감독의 아들 김준(20·고려대 2년)군도 서울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이밖에 대학부 검도에서는 허동찬(21·성균관대 3년), 동진(19·성균관대 1년) 형제가 5명씩 겨룬 단체전에서 금메달 못지않은 은메달을 따내 ‘칼 솜씨’를 뽐냈다. 서울 대표팀은 신기록도 쏟아냈다. 한국신기록 42개 가운데 5개, 대회신기록 165개 가운데 28개를 낚았으니 체면을 구기지 않은 셈이다. 특히 4관왕에 오른 6명 가운데 수영의 박태환(16·경기고 1년)은 대회 마지막날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아 서울을 빛냈다. 여자축구 결승전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올해의 선수 후보에 뽑힌 ‘여자 박주영’ 박은선(19)을 앞세워 경남대교를 2대0으로 물리쳐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동작구청 씨름단 주현섭(27), 강남구청 체조단 박경아(19)와 최미선(25), 성북구청 펜싱팀 남현희(24) 등 서울시 기초자치단체 선수들이 따낸 메달 28개도 색깔을 떠나 어려운 여건에서 건져낸 것들이어서 박수를 받을 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D램·휴대전화·LCD·인터넷게임등 10년동안 우리나라 먹여살렸다

    지난 10년간 한국을 먹여 살렸던 10대 공학기술이 공개됐다. 한국공학한림원은 27일 ‘과거 10년, 한국의 10대 공학기술’을 선정해 발표하고, 이 기술의 개요와 경제적 의의를 소개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등 첨단 디지털 기기 산업의 원동 기술력으로 세계 1위다.D램과 낸드플래시는 각각 세계시장 점유율이 60%와 70%로 모두 합쳐 지난해 180억달러의 수출실적을 냈다.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통신 시스템과 휴대전화 핵심 기술은 미국 퀄컴사의 특허로 묶였지만 기지국 설계 등 상당수 핵심 기술의 국산화는 국내 IT 산업의 기반을 닦았다. ●LCD(액정표시장치) 휴대전화, 노트북,PC, 모니터, 디지털 TV 등 첨단 기기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는 LCD는 여전히 미래 성장 동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200억달러를 수출했다. ●인터넷 게임 ‘PC방’이란 한국만의 진풍경을 만든 장본인인 국산 인터넷게임은 세계 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할 정도로 발전했다. 아직 산업 기반이 다른 10대 기술보다 미약하지만 반대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수출실적은 13억달러. ●자동차 설계 제조 기술 지난해 해외 판매액이 330억달러로 국가 총 수출액의 12.9%를 차지했다. 현재 하이브리드 및 연료전지 차 등 미래형 차량 개발이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LNG 선박·초고층 건축기술 설계 생산분야에서 세계 1위로 이 분야 선박 발주량의 80%가 국산이다. 지난해 수출량은 100억달러가량. 초고층 건축기술은 현재 핵심 기술의 90%가 국산화됐으며, 중동 두바이의 160층 초고층 빌딩 수주로 국내 업체의 세계적 위상도 급성장했다. ●리튬 2차전지 휴대전화나 각종 소형 디지털기기에 들어가는 2차전지는 생산량 기준으로 중국과 함께 세계 2위 수준이다. 향후 첨단 기기 제조업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 확실시되는 분야로 세계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15%에 이른다. ●한국형 표준원전 국산화를 통해 연간 7조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낳고 있다. 국내 원전 기술이 성장하면 발전용 원유 수입 부담도 줄어 국가 경제에 혜택이 크다. ●철강 제조기술 ‘소리 없이’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철강은 국내 조선 및 자동차 산업의 국제 경쟁력도 함께 끌어올렸다. 해외시장 점유율은 현재 5위지만 기술혁신을 통한 원가 경쟁력은 세계 정상급이다. ●미래10년 한국 먹여살릴 10대기술 한편 공학한림원은 ‘미래 10년, 한국의 10대 공학기술’로 ▲유비쿼터스 시스템 ▲지능 로봇 ▲생명공학 ▲나노기술 ▲미래 자동차 ▲위그선 ▲재생 에너지 ▲보안기술 ▲항공우주기술 ▲원자력 기술을 선정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전쟁 아니면 밥맛도 잃는 사나이

    전쟁 아니면 밥맛도 잃는 사나이

      한국에 온 30년 고참병, 겪은 전투만도 5백 회 「스포츠·커트」형 머리에 다부지게 다져진 미육군중령「맥윈니」의「유니폼」을 보면 그가 전형적인 GI장교가 아님을 쉽게 알게 해준다. 그의 겉저고리엔 흔한 훈장 하나 붙어있지 않다. 훈장 대신 그가 즐겨 붙인 것들은 -「레인저」(유격)훈련수료「마크」, 공수단「마크」, 영국군 공수훈련수료「마크」,「그린·베레·마크」, 특수폭탄취급「마크」, 한국군 태권도「마크」등 좀 엉뚱하다. 사나이「맥윈니」의 과거는 한 마디로 파란만장이다. 그는 16세 때 2차대전의 명「킬러」인 영국군특공대「블랙·워치」에 입대, 전투를 배운 이래 북「아메리카」특공대,「이탈리아」의「가리발디」유격대, 영국공군 폭탄투하수 등으로 2차대전을 치른 뒤 다시 미군「그린·베레」에 입대, 월남,「라오스」, 태국 등지를 돌아다녔고 6·25 땐 소대장으로 철원, 금화 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그가 30년 동안 겪은 5백여 전투의 대부분은 특공전 또는 유격전. 특공전, 유격전 등이 새삼 중시되고 있는 요즘의 한국전선에 노병「맥윈니」가 일선 대대장으로 찾아온 것이 퍽 귀하게 여겨져 그의「논·픽션」파란만장한 30년을 들어본다. 나이 어려서 안된다는 걸 16세 소년 때 떼써서 입대 「맥윈니」의 군대생활은 퍽 단순하게 시작했다. 1940년, 그가 16세 되던 때 고향인「글라스고」(영국「스코틀란드」지방)에서「스코틀란드」민속「유니폼」을 입고「파이프」나팔을 불며 시가행진하는「스코티시」의장대를 보고 그 길로 뛰어가 입대를 자원했다. 문을 두드린 곳은「스코티시·레지먼트」로 불리는 호전적인 직업군인부대. 처음엔 나이가 어리다고 다른 정규부대로 가보라는 거절을 받았으나 한사코 졸라 입대에 성공했다. 위험한 특수부대, 최전방만 골라 지원 기본훈련을 끝내고 처음으로 배치된 곳은「글라스고」비행장 경비대. 당시 영국 곳곳은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던 독일군의 공습으로 쑥밭이 되다시피 했고 특히 비행장은 독일공군의 밥이었다. 「맥윈니」는 열심히 했으나 땅에 서서 비행기를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또 개인전투능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한 채 번번히 당하기만 했다. 비행장 근무에 불만인「맥윈니」는 입대조건이 까다롭고「베테랑」급 직업군인들만이 지원하는 공정부대「블랙·워치」에 부모 몰래 지원했다. 그곳에서는 훈련만 1년이 걸렸다. 훈련을 끝낸「맥윈니」는 가장 적합한 공수대원이라는 칭찬을 받고 42년 11월 처음으로 전투요원으로 북「아프리카」근무를 명령 받았다. 「스코티시」의장대를 본 순간부터 부풀었던 공수대원의 꿈이 2년 만에 결실된 것이다. 그는 북「아프리카」의「블랙·워치」대원의 자격이 취소될까봐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명령을 받자마자 비행기에 올라「아프리카」로 떠났다. 이때 그의 계급은 1등병, 나이는 18세. 「맥윈니」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1등병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1등병 계급장을 달고 다닌 일은 거의 없었다. 북「아프리카」에 날아 온「맥윈니」는「알제이」에서 3주일 동안 대기했다가「튜니스」로 갔다. 북「아프리카」는 당시「사막의 여우」「로멜」장군의 독일전차부대가 석권하고 있었다. 「튜니스」에 설치한「베이스·캠프」를 거점으로「맥윈니」부대는 북「아프리카」의 사막을 누비며 끊임없이「히트·앤드·런」전을 폈다. 약관 18세의「맥윈니」는 본부요원 근무를 굳이 마다하고 꾸준히 전투대를 따라다니며 싸움을 익혔다. 「맥윈니」의 강점은 대담한 성격.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폭발물 장치임무를 맡아 독일군이 장악하고 있던 철도를 곳곳에서 폭파시켰다. 북「아프리카」근무 4개월만에 그는 중요한 임무 하나를 명령 받았다. 2차 대전 때 아프리카에선 독일군 비행장에 특공대로 「리비아」의「퐁·두·파」에 있는 독일군 비행장을 공격, 다시는 비행장으로 쓸 수 없도록 쑥밭을 만들라는 것.「맥윈니」는 기쁨으로 떨렸다. 그는 곧 특공대를 편성했다. 총원 45명. 15명씩 3개조로 편성,「퐁·두·파」로 출발했다.「리비아」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차를 버리고 걸었다.「퐁·두·파」비행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하루는 이글거리는「아프리카」의 태양에 시달리며 온종일 모래바다를 걷는 강행군이었다. 드디어 닿은 비행장엔 한 대의 비행기도 없었다. 모두 출동했었다. 3개조로 나뉜 특공대「블랙·워치」는 공격 10분 전에 이제까지 참아 온 물을 마음껏 마시고 마지막 총기점검을 끝낸 뒤 서로 분산, 대장의 총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공격했다. 그들의 목표는 활주로와 관제탑이었다. 역전의「블랙·워치」에겐 그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관제탑을 폭파하고「택싱·웨이」를 무차별 사격으로 망쳐 활주로를 폐쇄시키고 철수했다. 임무를 성공리에 끝낸 것이다. 목표물 공격보다 더 힘든 것은 뜨거운 사막을 걸어 철수하는 일. 그건 대단한 인내가 강요되는 고된 행군이다. 더욱이 목표물을 폭파하고 되돌아가는 특공대의 뒤는 독일군이 자랑하는 사막전차가 무섭게 쫓는다. 돌아온「맥윈니」특공대에겐 숨돌릴 여유도 없이 또 하나의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퐁·두·파」로부터 그리 멀지 떨어져 있지 않은 한 독일군 정거장을 폭파하라는 것. 명령복종은 영국군「블랙·워치」가 자랑하는 가장 영광스런 전통이다.「맥윈니」「팀」은 곧 목표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우연히 독일군 대전차부대와 맞부딪쳤다. 다시 특공에 나갔을 땐 전차 만나 포로 되기도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특공대와 사막전차대가 정면으로 맞부딪쳐 싸움을 벌인 일은 2차 대전을 모두 통틀어도 그리 흔치 않다는 이야기다.「맥윈니」의 특공대는 후퇴를 모르고 필사적으로 대항했다.「맥윈니」는 뜨거운 사막에 엎드려 마구 수류탄을 던지면서「탱크」에 뛰어오를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자「쾅」하는 소리가 났다. 「맥윈니」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 그는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어떻게 이곳「튜니스」의 병원에 옮겨졌는지는 그는 기억할 도리가 없었다. 그의 특공대 중 6명이 이곳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러나 입원생활 1주일 만에 병원이 독일군에 점령됐다.「맥윈니」는 병원에 누워있다가 그대로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독일군은 입원 중이던 영국군 포로들을「이탈리아」로 옮겼다. 옮겨 수용된 곳은「악질적 연합군 포로」들만 수용하는 북부「이탈리아」의「토르·사리세」포로수용소. 포로생활은 특히「맥윈니」에겐 죽음보다 못한 것이었다. 수용소에 수용되자마자 그는 탈출을 노렸다. 독일군과「무소리니」「파쇼」정권의「이탈리아」군대가 공동 관리하는「토르·사리세」수용소는「탈출은 바로 죽음」이라는「슬로건」을 내건 요새. 아무도 이곳을 탈출, 살아 도망간 사람은 없다는 것이 이 수용소의 자랑(?)이다. 살아서 도망간 자 없다는 포로수용소 탈출에 성공 「맥윈니」는『죽어도 죽어도 탈출한다』는 집념을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동지를 규합했다. 그의 불 같은 집념에「스코틀란드」인 1명과「아일란드」인 1명이 감동, 같이 행동하기를 자청했다.「맥윈니」는 처음엔 망설였으나 그들이「앵글로·색슨」인이라는 점에서 의심을 거두고 받아들였다. 수용소생활 3개월 때에「맥윈니」와 탈출동지 2명은 D「데이」를 잡았다. 망루의「서치·라이트」를 피해 철조망을 1명씩 차례로 넘는다는 퍽 평범하고 무모한 계획이다. 모두들 말렸으나 무슨 기발한 계략을 짤 수가 없었고 더 수용되어 있기엔 북「아프리카」를 발랄하게 누빈 천부의「전투업자」「맥윈니」의 성격이 용납하지 않았다. 계획은 바로 실천해 버리는「맥윈니」였다. 그는 제일 먼저 철조망으로 뛰었다. 약 30초 간격으로 나머지 두 명도 잇따라 뛰어 철조망을 기어올랐다. 그건 기적이었다.「맥윈니」의 작전은 그것이 비록 평범하고 위험스러워도 늘 성공했다는 전례가 여기에서도 깨어지지 않았다.「맥윈니」중령은『그때의 탈출성공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회고했다. 「토르·사리세」포로수용소를 탈출한「맥윈니」는 그 길로 북부「이탈리아」의 중심「밀라노」로 뛰었다. 닿아보니「밀라노」는 독일군의 엄격한 점령에 들어가 있었다.「맥윈니」는「밀라노」에서 기다렸다가 연합군에 귀환할 생각을 할 수 없이 버리고 우연히 만나 사귄 어느「이탈리아」아가씨의 도움으로「버스」표를 입수,「코모」호수근처의 산으로 들어가「이탈리아」인 유격대「가리발디」부대에 입대했다. 「밀라노」에서 만난「이탈리아」아가씨는「맥윈니」의「가리발디」입대를 한사코 말리면서 곁에 머물러 있기를 간청했다.「맥윈니」는 뛰쳐나가다가 몇 번이고 발걸음을 돌려 정열적인「이탈리아」아가씨의 사랑을 받곤 했으나 끝내 뿌리치는데 성공했다. 유격대「가리발디」에서「맥윈니」의 역할은 유격대원들에 대한 식량조달이었다. 성격에 맞지 않았으나「이탈리아」인 유격대장은 영국인인 그에게 그 이상의 중책을 맡기지 않았다.「맥윈니」는 식량을 민가에서 기증받아 오라는 대장의 명령을 외면, 반드시 독일군 보급부대 및 보급열차를 습격, 보급물자를 빼앗아 조달했다. 이탈리아 유격대에 끼어 독일군 보급열차 등을 습격 대표적인 보급열차 습격으로「맥윈니」는「바시리」역 습격을 들었다. 하루는 식량조달을 하러 산을 내려가다 독일군 보급열차가「바시리」역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바시리」역은 산에서 3시간 길. 그는「유고」인 1명을 조수로 데리고「바시리」역에 잠입했다. 수가 적기 때문에 교전을 피하고 몰래 화차를 털기로 했다. 그러나 보급열차는 무혈습격을 용납하지 않는 엄중한 경계에 있었다. 「맥윈니」와 그의 1명의 조수는 경비병 2명을 대검으로 해치우고 화차의 문을 깨고 물자를 들어냈다. 뛰려는 순간 경비병과 맞부딪쳐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는 그때 몇 명을 사살한 지 모른 채 쏘고 뛰며, 뛰고 쏘면서 산으로 돌아왔다. 그가 메고 온 독일군의 식빵은 1개 분대원의 3일분이었다. 「맥윈니」는「가리발디」부대에서 10개월을 보내다가 부상당한 동료대원을 메고「밀라노」의 어느 병원에 치료하러 갔다가 그 길로「알프스」를 넘어「스위스」로 갔다.「알프스」산을「맥윈니」는「유고」인 안내자 1명과 함께 열흘을 걸려 넘었다.「맥윈니」는「제네바」에 도착하자마자 그 곳 영국대사관에 달려가 그 동안의 경위를 전하고 영국행 비행기를 주선해주기를 부탁했다. 한 달 후에 그는「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런던」에 도착하자「맥윈니」는 바로「글라스고」로 달려가 귀환신고를 했다. 그러나「글라스고」의「블랙·워치」는 그가 포로가 되었고「이탈리아」유격대에 가담했다는 것을 들어 냉담, 군복을 벗게 했다. 2차 대전 끝나자 미국 이민, 다시 세계의 전쟁터 찾아 「맥윈니」는 당시 매우 어렵던 예편조치를 당했지만 기쁘긴커녕 실의에 빠졌다. 생각다 못해 그는 다시 공군에 입대, 폭탄투하수로 폭격기를 타고 독일상공을 날다가 종전을 맞았다. 종전이 되자 영국사회는 매우 혼란했다.「맥윈니」는 영국군이 더 이상 흥미가 없어 군복을 벗고 미국에 이민했다.「클리블란드」의 식품상으로 그는 16세 이후 처음으로 가정생활을 했다. 부인은 종전 후 사귄 영국여인. 그러나 민간인으로서의「맥윈니」는 생활의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내가 갈 곳은 군대다』라는 결의를 씹고「맥윈니」는 미군에 입대, 다시 1등병이 됐다. 미군으로서 그는 독일에서 근무했다.「맥윈니」는 독일근무가 끝나면서 보병에 싫증을 느껴 미육군공수특전단인「그린·베레」에 들어갔다. 「그린·베레」대원으로「맥윈니」는 10년 동안「라오스」, 태국,「오키나와」, 6·25 때의 한국을 거쳐 월남전선에서는「베트콩」수색타격대로 월남인 민병대원들과 함께 2년 동안「정글」을 쏘다녔다. 「맥윈니」는 팽팽히 긴장된 임진강 북쪽 최전방에 다시 부임, 북괴를 노리면서『지난 30년 동안의 나의 보람찬 군대생활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장식하겠다』면서 허리에 찬 권총을 꽉 쥐었다. <강형석(姜亨錫)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3/16 제2권 11호 통권 제25호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