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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서 괴한이 도끼로 경찰들 습격 충격

    미국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했다. 23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에서 한 남성이 4명의 경찰관을 상대로 도끼를 휘둘러 2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사살당했다고 CNN 등 외신이 보도했다. 사살당한 괴한의 이름은 제일 톰슨. 캘리포니아주(州)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었는데 해군 입대를 희망했지만 전과가 있어 인정받지 못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고 경찰 측은 밝혔다. 습격당한 경찰 중 한 명은 오른팔을 다쳤고 곧 퇴원할 예정이지만, 다른 한 명은 머리에 중상을 입어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나머지 두 경찰관이 괴한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옆에 있던 한 여성이 유탄에 허리를 맞아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습격 사건은 당시 한 프리랜서 사진작가의 요청으로 사진을 찍던 경찰관들에게 괴한이 도끼를 휘두르며 발생했다. 사건에 휘말린 네 경관 모두 지난 7월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의 말로는 최근 무장 군인과 경찰에 습격을 받았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이번 사건과의 관련성을 조사하고 있다. 테러와의 관련에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한다. 한편 뉴욕 경찰은 이번 사건에 앞서 22일 캐나다에서 벌어진 국회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경계 태세를 강화한 상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IS에 맞서는 쿠르드 女전사들 포착…10대 소녀도 포함

    IS에 맞서는 쿠르드 女전사들 포착…10대 소녀도 포함

    “우리는 자신의 국가를 지키려는 여성들이 남성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길 바랍니다.” 이 메시지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시리아 코바니에서 전투를 벌이는 시리아 쿠르드민병대인 쿠르드인민수비대(YPG) 내 여성 군인들이 전한 것이다. 이 젊은 여성들은 AK-47s 총을 들고 YPG에 합류해 자신의 고향을 지키려는 쿠르드 민병대에 자진 입대했다. 여성 대원들은 남성 대원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고 전쟁터로 나간다. 여기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펜 대신 총을 든 19세 소녀도 있다. 올해 19살의 날린이라는 소녀는 “학교에 갈 때마다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결국 내 나라와 내 땅, 친구들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면서 “내 조국을 위해 나의 미래를 희생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테러리즘연구분석컨소시엄(TRAC)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시리아 남부에서 활동하는 쿠르드 민병대 병력의 35%에 달하는 인원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쿠르드 민명대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지도자는 40대 여성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난 13일 AFP통신이 보도하기도 했다. 쿠르드 민병대와 IS간 전투는 지난 9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코바니에 거주하던 쿠르드 난민 18만 명과 시리아 난민 160만 명은 이미 터키로 몸을 피한 상황이다. 코바니 사태 초반에는 쿠르드 민병대가 다소 열세를 보였지만, 최근 미국이 쿠르드 민병대에 무기를 공수하고 터키 역시 이라크 쿠르드군의 지원을 돕겠다고 밝히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편 IS를 겨냥한 공격에 가담한 여성은 쿠르드족뿐만이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전투기 조종사인 마리암 알마수리(35)는 UAE 공군 소속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로 IS를 타격해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바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미군 렌탈사업 인기…브라운스톤험프리스·화신노블레스 등 분양 봇물

    미군 렌탈사업 인기…브라운스톤험프리스·화신노블레스 등 분양 봇물

    최근 미군기지 평택 이전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겨냥한 미군렌탈이 부동산 틈새시장으로 주목 받고 있다. 평택지역은 현재 삼성전자가 100조원을 투입하여 수원삼성전자의 2.4배 규모로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으며 고덕신도시 개발 등의 호재가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오는 2016년 완료예정인 미군기지 이전이 맞물리면서 주한 미군 대상 렌탈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대 부동산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군렌탈은 현재 주한 미군기지 주변의 영외 거주 미군과 군속, 군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임대사업이다. 이에 앞서 용산, 동두천, 의정부 등 일부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평택이 동북아 최대 미군기지로 탈바꿈 함에 따라 발 빠른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미군렌탈과 같은 외국인렌탈하우스는 월세 소득공제를 받지 않고, 확정일자 또한 받지 않는 실제적 세금 무풍지대에 속한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주한미군 이전 호재로 인해 현재 평택지역에는 외국인 임대수요를 겨냥한 브라운스톤험프리스, 드림캐슬빌리지, 화신노블레스 등 미군렌탈 부동산 상품이 성황리에 분양되고 있다. 특히 아파트와 달리 1가구 2주택에도 포함되지 않는 오피스텔 상품이 분양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평택 부동산 관계자는 “미군렌탈에 있어서도 옥석 가리기가 중요한데 투자에 앞서 가구?가전 등의 준비상태, 분양가 외에 추가비용이 필요한지 여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며 “입지적으로도 주변기반시설은 물론 시세차익에 가능성 부분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군렌탈은 미군 주택과에서 임대료를 지불해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통상 입대료는 계급 및 거주지역에 따라 140~200만원으로 높게 형성돼 있으며 상황에 따라 월세 또는 1년치 선납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미군 수요자들의 경우 특성상 생활편의시설이 풍부한 지역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이에 평택 내에서도 K-6 미군기지 주변의 기반시설 인프라가 풍부한 송탄이 주목 받고 있다. 일대 분양현장을 살펴보면 1, 2, 3차 걸쳐 단기간 분양 완료한 화신노블레스가 대표적이다. 미군렌탈에 충실한 상품 공급 및 주변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 책정, 송탄지역의 중심인 서정동상권내 입지 등이 경쟁력으로 주목된다. 특히 3차 분양의 경우 7,000~8000만 투자금으로 월 140만원을 보장받아 투자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분양시작 20여 일만에 100%분양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현재 ‘화신노블레스 4차’ 분양은 기존과 동일조건으로 선보여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행사는 미군렌탈 특성에 맟춘 맞춤형 옵션으로 단지 출퇴근 편의성을 위한 버스 제공하며 3룸 구조, 기존 아파트에서 제공하는 옵션과 월풀욕조, 양문형냉장고, 46인치LED TV, 광파오븐렌지 등 최고급 빌트인을 추가했다. 추가비용 없는 미군렌탈사업을 마련한 것이다. 또 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썬텐장, 바비큐파티장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조성했다. 화신노블레스 3?4차가 입지한 서정동은 송탄출장서 등 관공서 및 연계기관 수요와 중대형프랜차이즈 밀집지역으로 상가의 수요도 풍부한 지역으로 꼽힌다. 이에 화신노블레스는 주변상가 대비 최고의 전용율로 실사용면적을 최대화하여 사용할 수 있어 투자수익을 강화시켰다는 평가다. 분양관계자는 “화신노블레스 1, 2차 분양성공으로 미군렌탈상품의 노하우와 특성에 더 충실한 조건으로 나선 이번 분양에서도 성공 분양을 낙관하고 있다”며 “3차 주거상품의 조기마감과 상업시설의 투자자 문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4차 분양을 11월 초 예정이며 모델하우스는 교대역 4번출구와 서현역 1번 출구에 오픈했다”고 전했다.분양문의: 1544-9299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글로벌 100년기업 2곳 오너… 농민 아들 ‘샐러리맨 신화’ 쓰다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글로벌 100년기업 2곳 오너… 농민 아들 ‘샐러리맨 신화’ 쓰다

    ‘High Risk, High Return(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또는 모험)이 클수록 대가가 크다’는 뜻으로 윤윤수(70) 휠라글로벌 및 아쿠쉬네트 회장의 인생을 압축하는 표현이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 어떻게 100년 넘은 글로벌 기업을 두 개나 거느리는 오너(사주)가 됐을까. 질문이 거듭될 때마다 윤 회장도 이 말을 즐겨 사용한다. ‘샐러리맨의 신화’ ‘몸통을 삼킨 꼬리의 주역’ ‘M&A(인수·합병)의 귀재’ ‘국제 스포츠 패션 업계의 아이콘’….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수식어만 봐도 그의 발자취가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성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겸손해한다. 나이 마흔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휠라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가 30년간 쌓은 항공 마일리지가 800만 마일이다. 지난 8월 고희(古稀)를 맞은 윤 회장은 여전히 1년에 5개월은 해외에 머문다. 최근 고혈압, 심장, 갑상선 등으로 수술을 잇따라 받아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게 약”이라고 한다.  ‘해방둥이’ 윤 회장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1945년 9월 9일 경기 화성군 비봉면에서 아버지 윤태흠씨와 어머니 박수하씨 사이에서 2남 5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비봉나들목으로 익숙한 이곳은 해방 직후 어디나 그랬듯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전염병이 한번 돌면 곡소리가 온 동네를 덮었다. 그의 어머니도 윤 회장을 낳은 지 100일 만에 ‘염병’(장티푸스)에 희생됐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젖동냥을 해 그를 키웠다. 윤 회장은 “‘젖어머니’가 한 10명쯤 되는데 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한때 고향에 가면 ‘내가 널 키웠다’고 하시는 분들을 종종 뵈었다”고 회고한다.  한창 예민하던 17살 때(서울고 2학년) 아버지마저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막내아들 장가 갈 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던 아버지를 보며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에 두 번 도전해 모두 실패했다. 2지망으로 서울대 치의예과를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곧 그만둔다. 1966년 한국외국어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수석 입학했으나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건 여전했다. 설상가상, 3학년 때 동기의 요청으로 답안지를 보여주다 적발돼 1년 정학까지 당한다. 홧김에 카투사 의무병으로 지원 입대한 게 전화위복이 됐다. 3년간 군생활에서 익힌 영어는 그가 국제적인 사업가로 대성하는 큰 자산이 됐다.  첫 직장은 1973년에 들어간 해운공사. 수출·무역업을 하고 싶어 1975년 미국 무역업체 JC페니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그는 삼성전자 전자레인지의 첫 미국 수출을 성사시켜 능력을 인정받았고, 1981년 37세에 신발업체인 화승의 수출담당 이사로 스카우트됐다. 사회생활 8년 만이자 30대에 이사가 되면서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다시 실패를 안겨준 것은 영화 ‘ET’다. 1982년 귀국길 비행기에 비치된 잡지에서 ET를 보고 인형을 만들어 팔면 대박 날 것 같다는 예감에 혼자 설렜다. 부랴부랴 6개 컨테이너 분량 18만 달러어치의 ET 인형을 제작해 미국에 보냈지만 저작권 문제에 발목이 잡혀 눈물을 머금고 오클랜드 항구에서 전량을 불태워야 했다. 회사에 40만 달러의 손해를 입힌 자책감에 회장의 만류에도 화승을 3년 만에 뛰쳐나왔다.  그는 이 일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저작권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한 값비싼 공부로 여긴다. “과거의 실패가 큰 득이 됐다. 인생을 살아가고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 실패”라고 말한다. 직장 생활 10년 만에 야인으로 돌아온 그는 마음을 다잡고 사업 구상에 몰두했다. 미국 출장길에 자주 봤던 휠라에 마음이 꽂혔다. 의류로 인기 높던 휠라 브랜드를 이용해 신발을 출시하면 되겠다 싶었다. 1984년 휠라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ET 덕에 저작권에 대해 자각한 윤 회장은 샘플을 만들어 이탈리아 본사를 찾아갔으나 이미 신발 라이선스를 한 미국인 사업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여기서 포기할 그가 아니다. 그를 직접 만나 끈질기게 설득해 협업 형태로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신발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의 경영능력에 감탄한 휠라 본사가 윤 회장에게 제안해 1991년 합작 형태로 휠라코리아가 세워진다. 1992년 내수 판매 첫해 68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7361억원으로, 20년 만에 100배 이상 성장했다. 90년대 중반 휠라코리아의 매출 규모는 유럽,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그룹 전체 매출의 10%를 담당할 정도였다. 이 같은 성과로 1997년 연봉 18억원을 받아 대한민국 최고 월급쟁이에 등극했다. ‘도전과 응전의 일생’으로 자신의 삶을 정의한 윤 회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5년 휠라코리아를 인수해 토종기업으로 변신시키더니 2007년 경영난을 겪던 휠라 본사까지 사들여 ‘은수저’ 없어도 ‘오너’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정리할 나이인 칠순을 코앞에 두고 또 한번 큰일을 냈다. 2011년 7월 미래에셋PEF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세계 1위 골프용품 회사 아쿠쉬네트를 인수했다.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스카티 카메론 퍼터, 보키 웨지 등 쟁쟁한 브랜드를 보유한 매출 13억 달러 회사를 아시아의 작은 나라 기업인이 사들였다는 건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이 휠라의 아쿠쉬네트 인수를 사례연구로 다룰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 던진 충격파는 대단했다.  증권가에서 휠라코리아에 대한 전망은 온통 장밋빛이다. 휠라 USA의 양호한 실적과 더불어 아쿠쉬네트 상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중국 골프시장의 성장세가 호재로 작용하는 가운데 시장은 윤 회장의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능력에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윤 회장은 휠라에 없던 신발을 만든 것처럼 용품으로만 각인된 타이틀리스트에 골프의류를 추가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2년 뒤 목표대로 아쿠쉬네트가 상장하면 시가 총액은 19억 달러(약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주가도 상승세다. 내수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휠라코리아의 주가는 지난 8월 10만원 선을 돌파했다. 16일 주가는 11만 1500원으로, 시가 총액이 1조 1650억원에 달한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그의 개인자산(주식+부동산)은 4780억원(7월 말 기준)으로 추산된다.  겸손을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그는 회사에서 격의 없는 회장님이기도 하다. 약속이 없으면 서울 서초구 사옥 지하 2층에 있는 직원 식당에서 사원들과 함께 점심을 해결한다. 해외 출장이 잦은 그가 자주 찾는 간식거리는 라면과 초코파이다. 골프를 좋아하지만 지난 추석 연휴 때 골프를 몰아서 친 탓에 어깨 근육이 손상돼 당분간 골프 금지령을 받았다. 요즘은 아파트 지하 피트니스에서 퍼스널 트레이너와 함께 주 2회 운동하는 걸로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과학기술로 돈 만든다] 정부 출연硏, 中企 부족한 기술력 살린다

    [과학기술로 돈 만든다] 정부 출연硏, 中企 부족한 기술력 살린다

    독일, 스위스 등 과학기술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생태계가 조성된 국가에서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독일의 경우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강소형 중소기업이 1500여개에 이르고, 이들이 부담하는 법인세가 55%에 육박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 기업수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10%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장악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찾아야 하는데다,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독일과 스위스 등 해외 국가들에서는 이 역할을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가 맡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최근까지도 이 같은 시스템이 잘 구축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의 핵심으로 꼽은 출연연의 중소기업 기술지원이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사이에서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출연연의 우수한 기술력을 중소기업과 연결, 아이디어를 구현하거나 제품을 보완하도록 하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부가 16일 공개한 ‘출연연 중소·중견기업 협력 우수사례집’은 출연연과 중소기업 간의 ‘콜라보’가 어떤 시너지로 이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25개 출연연들은 공동으로 ‘1379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 출연연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의 주치의 역할을 맡아 밀착지원하고 있다. 출연연 내에 중소기업 부설연구소를 유치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우수사례로 꼽힌 21개 사례 중 일부를 지면에 소개한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월드툴 & 생기연] 폐타이어 등 3배 이상 우수한 재생고무로 전환 2007년 설립된 월드툴은 원래 수공구 제작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이 분야에서만 16종의 국내 특허와 4종의 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물색하던 월드툴은 산업 현장에서 버려지고 소각되는 자동차 내장재, 폐타이어, 건설용 고무 등에 주목했다. 월드툴 관계자는 “버려지는 제품을 재생할 수 있으면 비용절감은 물론, 자원순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하지만 폐기되는 고무는 재활용은 가능해도 완전히 재생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은 어려워, 우수한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월드툴은 생산기술연구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재생과정에서 압력을 고르게 배분할 수 있는 금형 제작, 금형에서 제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눌어붙는 현상 해결, 재생 처리 중 발생하는 환경오염 물질 해결 등이었다. 생기연 연구팀은 월드툴과 함께 이런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갔고 기존 재생고무보다 제품특성, 인장강도, 신장률, 경도, 비중, 표면처리 등이 3배 이상 우수한 재생고무 전환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친환경 신공법을 적용해 납, 카드뮴, 수은 등 유해물질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월드툴은 신재생 공법으로 올해에만 8억 6000만원의 추가 매출을 거두게 됐다. 현재 월드툴은 생산라인을 신축하고 해외진출을 준비 중이다. 김억수 생기연 센터장은 “우수한 내구성과 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까지 뛰어나 어린이 놀이터나 선박 안전발판, 작업장 무릎 보호대, 학교 매트 등에 적용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비오투 & 건설연] 남은 음식물 악취 제거 성공… 20억 매출 전망 우리나라의 연간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은 약 8000억원에 이르며, 남은 음식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수조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오투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지원으로 개발한 ‘남은 음식물 자원화 시스템’은 음식물 처리 방법에 전환점이 될 만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라종덕 비오투 대표는 몇 년 전부터 남은 음식물로 사료와 퇴비발효제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애썼지만 악취와 침출수 발생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다. 라 대표는 건설연의 ‘중소기업 현장애로 기술지원사업’에 신청, 장춘만 박사팀과 공동으로 기술개발을 진행하는 기회를 얻었다. 장 박사는 비오투를 찾아 설비의 투입장치, 열공급장치 등의 설계를 최적화하고 악취저감장치를 본체에서 분리해 별도의 모듈로 만들었다. 시제품 평가 역시 건설연 본원과 웅진군 덕적도 등에서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렇게 개발된 음식물 자원화 시스템은 실제 축산현장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돼지 사료의 경우 돼지 폐사가 현저히 줄었고, 돼지의 21일 체중이 평균 5.8㎏에서 6.5㎏으로 늘었다. 돈사 내 악취 감소는 물론, 안전성 평가결과도 우수했다. 비오투는 올해 2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8년까지는 15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모두테크놀로지 & 기초연] 고분해능 열반사현미경, 반도체 검사에 활용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장비는 대부분 값비싼 수입품에 의존해왔다. 국산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어렵게 장비를 개발해도 외산에 비해 성능과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선입견 때문에 외면받기 일쑤였다. 반도체 불량 검사 관련 특허를 4종 보유하고 있는 모두테크놀로지 역시 자체 기술력만으로 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외국 기업의 특허를 회피하면서 상용화되지 않은 새로운 원리를 응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두테크놀로지 기술진은 2012년 초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장기수 박사팀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양측이 머리를 맞댄 결과 기초연에서 자체 개발한 고분해능 열반사현미경 기술이 반도체 불량분석 장비의 핵심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기초연은 반도체 제조 기업에 필요한 장비 기술을 개발, 관련 특허를 획득해 모두테크놀로지에 기술 이전했다. 2014년 모두테크놀로지와 기초연은 오랜 노력 끝에 불량검사 장비의 시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현재 상용화 단계인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 및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장 박사는 “기존의 외산 장비 기술은 고가임에도 현재 널리 사용되는 반도체 소자에서 완벽한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면서 “이번 기술은 해외 선진기업들이 선점한 특허를 회피하면서 장비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박진묵 모두테크놀로지 이사는 “진정한 반도체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부품 소재 제조업뿐 아니라 장비 산업의 육성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광학 & 천문연] 우주관측용 카메라 과학위성3호 탑재 2013년 11월 러시아 야스니 발사장에서 발사된 과학기술위성3호는 우주 관측용 적외선 카메라를 탑재하고, 600㎞ 상공에서 약 97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씩 돌며 우리 은하와 지구를 관측한다. 적외선 카메라 탑재 위성은 국내 최초이기도 하다. 특히 위성에 탑재된 우주관측카메라 부품과 관측카메라의 광학렌즈는 중소기업인 그린광학 제품이다. 그린광학은 위성에 탑재할 광학렌즈를 2009년부터 3년에 걸쳐 개발했는데, 우주공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지상용 광학렌즈보다 더 정밀한 연마가공 및 코팅기술을 적용했다. 그린광학은 한국천문연구원 내에 2011년부터 기업부설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자기유체연마가공(MRF)과 비구면 간섭측정(ASI) 등 광학렌즈 연마에 꼭 필요한 장비를 중소기업이 구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천문연의 장비를 공동활용하는 조건이었다. 천문연은 우주장비 분야에서 국내 기업을 키우기 위해 장비뿐만 아니라 연구실, 전화, 인터넷, 전기시설, 수도 등 기본 시설을 모두 제공하고 있다. 김진호 그린광학 부장은 “과학기술위성 3호 광학렌즈 탑재 경험을 기반으로 현재는 미국천체관측소와 공동으로 차세대 신소재를 이용한 개발과제를 진행 중”이라며 “이 과제가 완료되면 거대 망원경 및 100㎏ 이상급 우주 망원경 개발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프로야구] 류중일 감독 소감 “이승엽 부활 뿌듯”

    10월이 참 길었다. 7.5경기 차까지 앞서다가 8월 말에서 9월 초 2.5경기 차까지 간 것이 큰 고비였다. 오승환이 일본으로 떠나고 배영섭이 입대하면서 우승이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임창용이 초반 불펜이 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바로도 1번 타순에서 맹활약해 팀 타선의 완성도가 생겼다. 이승엽의 부활은 나에게도 뿌듯한 일이다. 지난해처럼 부진했다면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 30홈런, 100타점 등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 줬다. ‘류중일 2기’의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도 획득했고 류중일이란 사람에게 있어 참으로 뜻깊은 시즌이었다. 한국시리즈가 남았다.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한 팀은 아직 없다. 꼭 달성하고 싶다.
  • [프로배구] “주전들 軍 입대” 발톱 감춘 엄살

    [프로배구] “주전들 軍 입대” 발톱 감춘 엄살

    남자 프로배구가 아시안게임 후폭풍 속에 열 번째 시즌의 막을 올린다. 2014~15 시즌 개막을 앞두고 남자부 7개팀 전력이 비슷해졌다는 평가 속에 어느 해보다 치열한 순위 싸움이 예상된다.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감독들은 15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힘겨운 시즌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실, 괜한 엄살은 아니다. 남자배구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도전에 실패한 뒤 각 팀 전력의 축을 이루던 선수들이 줄줄이 군 입대하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 모두의 관심은 남자부 7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한 삼성화재의 정상 수성 여부에 모인다. 하지만 국가대표 라이트 공격수 박철우의 군 입대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신치용 감독은 “김명진으로 보완하려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면서 “우리는 8명 정도 외에는 기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고 또 앓는 소리를 했다. 지난해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삼성화재를 넘지 못한 현대캐피탈의 김호철 감독 역시 “잘 준비한다고 했지만 생각보다는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한 것 같다”고 걱정부터 털어놓았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매 게임 치를 생각”이라면서도 “우승하려면 우승팀을 이겨야 한다”면서 삼성화재와 양보 없는 한판 대결을 예고했다. 신 감독이 현대캐피탈의 ‘주포’ 문성민의 몸 상태가 완전치 않으면 현대캐피탈은 하위권으로 처질 수도 있다고 은근히 신경을 건드리자 김 감독은 “신 감독이 거짓말을 잘하는데 이번 시즌만큼은 그래도 정확하게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고 받아쳤다. 신 감독은 즉각 “그 말은 취소다. 몸 상태가 좋다고 들었다”고 발을 뺐다. 4위로 지난 시즌을 마감했던 우리카드는 지난해 박상하에 이어 이번에는 신영석과 안준찬이 입대해 전력 누수가 크다. 강만수 감독은 외국인 선수에 대해서도 승용차에 비교하면서 “다른 팀 용병은 에쿠스고 우리 용병(까메호)은 티코”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LIG손해보험 문용관 감독 역시 “그 어느 시즌보다도 순위 경쟁이 치열하지 않겠느냐”며 피말리는 승부를 전망했다. 반면 지난해 V리그에 뛰어들어 올 시즌 우승권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우리가 7개팀 중 가장 빠른 플레이를 할 것 같다”면서 “빈집에 소가 들어왔다. 없는 집이라 더욱 커보인다”고 외국인 선수 시몬을 바라봤다. 올해 컵대회에서 우승한 대한항공 김종민 감독은 “하나 된 목표, 하나 된 마음으로 지난 시즌보다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는 새 시즌 바람을 드러냈다. 올 시즌 V리그는 오는 18일 오후 2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질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개막 경기로 6개월 동안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노르웨이 “여자도 군대가”... 19∼44세 병역 의무화

    남성들의 병역 의무가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한국 남자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소식일지도 모르겠다. 노르웨이 의회가 '여성에게도 군 복무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안을 13일(현지시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2016년 중순부터 효력을 발휘하며, 19∼44세 사이 여성을 의무 군복무 대상으로 정했다. 첫 입대 대상자들은 1년간 복무한다. 여성인 에릭센 쇠레이데 국방장관은 개정안 통과를 역사적인 일로 규정하고 "가장 뛰어나고 의욕적인 이들을 군에 데려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의회는 지난해 유럽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정부에 여성 병역 의무화 법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 통과에도 젊은 층 일부 외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무기 체계가 첨단화되는 등 병력을 많이 유지할 필요가 없는 노르웨이 상황에 따라 대학 진학이나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병역을 연기할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즉, 형식상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지원자 위주로 군을 운영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재 노르웨이에서는 매년 약 6만 명의 잠재적 병역 자원 가운데 8천 명만이 입대를 하며 이 가운데 1천 명은 자원한 여성이다. 노르웨이는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징병제를 폐지하고 직업군인제로 옮겨가는 추세와 달리 '성 중립적'(gender neutral)인 군대를 만들어 군의 경쟁력을 높이고 다양화하길 원해왔다. 앞서 노동당 등 좌파 연립정부는 2020년까지 군 병력의 20%를 여성으로 채운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으나 지난해 정권 교체에 성공한 보수당 등 우파 연립정부는 이와 관련해 특별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 쿠바, 북한 등에서 복무 조건의 성별 차이는 있지만 여성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프로야구] 넥센 서건창, 시즌 최다안타 새 역사 ‘연습생 신화’

    [프로야구] 넥센 서건창, 시즌 최다안타 새 역사 ‘연습생 신화’

    ‘연습생’ 출신 서건창(25·넥센)이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썼다. 삼성은 우승을 향한 매직넘버를 1로 줄였다. 서건창은 13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앞선 2회 두 번째 타석에서 2사 2루 때 상대 선발 김병현의 4구째 137㎞짜리 직구를 받아쳐 시즌 197호 안타를 터뜨렸다. 이로써 서건창은 해태 이종범(현 한화 코치)이 1994년 작성한 한 시즌 최다 안타(196개) 기록을 20년 만에 뛰어넘었다. 1안타에 그친 서건창은 남은 3경기에서 3안타만 보태면 사상 초유의 한 시즌 200안타의 주인공이 된다. 넥센은 9회 유한준의 쐐기 3점포로 8-5로 이겼다.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지만, 서건창의 시작은 보잘 것 없었다. 이종범, 이병규(LG·9번) 등 아마추어 시절부터 ‘야구 천재’로 불리며 큰 화제를 뿌리고 다닌 스타 플레이어와는 출발부터 달랐다. 서건창은 2008년 흔히 연습생이라 불리는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했다. 그나마 1년 만에 방출당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군 복무를 마친 2011년, 넥센의 문을 두드렸다. 다시 연습생으로 프로 생활을 이어갔다. 드라마처럼 그는 2012년 신인왕과 2루수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손에 넣었다. 거저 얻은 영광이 아니었다. 당시 서건창을 지켜본 박흥식(롯데 타격 코치) 전 넥센 타격 코치는 “(건창이는)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선수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절박함이 느껴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악재가 빨리 찾아왔다. 지난해 서건창은 부상과 슬럼프에 신음했다. 타석에 바짝 붙어 몸쪽 공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서건창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을 기르고 타격폼을 고쳤다. 그리고 올 시즌 197호 안타로 프로야구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그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우상이었던 이종범 선배님과 이름을 나란히 한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다”라고 겸손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어 “200안타에 대한 욕심은 조금도 없다”며 “남은 3경기도 부담이 전혀 안 된다. 편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삼성은 대전에서 맥이 풀린 한화에 장단 28안타를 퍼부어 22-1로 대승했다. 선두 삼성은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더하면 자력으로 4시즌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일군다. SK는 문학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 끝에 두산에 7-6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4-6이던 9회 말 한동민이 2타점 동점타를 날린 데 이어 김강민이 끝내기 안타를 뿜어냈다. 5위 SK는 4위 LG에 1.5경기 차로 다가서며 포스트시즌 진출의 희망을 부풀렸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지청천 장군 딸’ 故 지복영 여사 회고록 연내 출간

    ‘지청천 장군 딸’ 故 지복영 여사 회고록 연내 출간

    ‘8월 29일은 우리 민족의 가장 부끄러운 날, 나라 잃은 날로 이날은 어느 집을 막론하고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1888~1957) 장군의 딸인 고 지복영(1919~2007) 여사의 회고록이 연내 출간돼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설움, 독립운동의 기개와 애환 등을 엿볼 수 있게 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 여사가 생전에 쓴 A4 용지 160여쪽 분량의 회고록과 별세 1년 전 진행된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회고록 집필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편찬은 두 아들인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저술가 이중연씨가 맡았다. 지 장군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하며 신흥무관학교, 서로군정서, 한국광복군 등에 몸담은 대표적인 독립투사다. 해방 이후에는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지 여사 역시 1924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떠나 지린(吉林)성 일대와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등으로 옮겨 다녔으며 청년기에는 본인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특히 1940년 9월에는 아버지가 이끄는 광복군에 입대해 기관지 ‘광복’을 발간하는 데 힘을 보탰다. 회고록에는 항일 활동을 하며 겪은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다. 지 장군이 만주 벌판을 달리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통에 아버지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도 엿볼 수 있다. 지 여사는 “사진 속 아버지 얼굴만 기억했다. 거리에 지나가는 말 탄 사람을 보고도, 양복을 입고 점잖게 지나가는 분만 봐도 ‘아버지 온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준식 연구위원은 “우리가 누리는 삶은 선조가 겪은 힘든 삶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역사 교육 차원에서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출간 계기를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33년 ‘10월의 가수’ 이용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33년 ‘10월의 가수’ 이용

    10월이 깊어간다. 이 계절에 가장 생각나는 노래는 무엇일까. 아마 그중 하나가 ‘잊혀진 계절’을 꼽을 수 있겠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우리는 헤어졌지요/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그대의 진실인가요/한마디 변명도 못하고/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30여년 전 발표하자마자 크게 히트를 쳤다. 지금도 10월만 되면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이들까지 한번쯤 떠올릴 만큼 추억의 곡으로 여전히 애창된다. 그랬다. 가수 이용(56)은 ‘10월의 가수’로 혜성같이 등장했고 지금도 그렇게 통한다. 매년 10월이면 1년 중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가수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맘때가 되면 라디오 등에서 가장 많이 선곡되면서 전파를 타고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한다. 감수성이 절절한 가사 내용과 특유의 가창력 있는 목소리가 10월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선사한다.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따사로웠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공원 벤치에서 사색에 잠긴 사람들도 더러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아줌마, 젊은 연인들도 그를 알아본다. 벤치에 같이 앉으면서 “10월은 이용의 달이라 많이 바쁘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맞습니다. 1년 중 가장 바쁜 달입니다. 옛날에는 헬기를 임대해 하루에 제주, 부산, 다시 서울에서 공연 일정을 소화한 적도 있어요. 10월은 1년 중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는 달이기도 합니다(웃음). ” 왜 ‘잊혀진 계절’이 인기가 있는 것일까. 비결을 물었다. 이에 대해 “10월은 더웠다가 시원해지는 계절이다. 또한 단풍과 낙엽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 밤이 왠지 쓸쓸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연인끼리 만남도 있지만 헤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혀진 계절’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주한미군이 한국에 올 때 먼저 왔던 고참들이 신참들에게 세 가지를 미리 알려주는데, 첫 번째는 한국의 장마이고, 두 번째는 빨리빨리 문화, 세 번째가 연인끼리 기념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10월은 결국 연인의 계절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 곡의 노랫말은 시인이자 작사가인 고 박건호씨가 자신의 실제 이별 경험담을 풀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낙엽과 함께 ‘그날의 진실했던 표정이 진실인가요~’라고 하면서. 이 노래를 소재로 1984년에 제작된 영화 ‘잊혀진 계절’에 이씨가 직접 출연해 전국적으로 개봉, 6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노래는 원래 조영남씨한테 주려고 했으나 바쁜 일정으로 약속이 틀어지는 바람에 지구레코드사 사장이 고음을 잘 내는 가수한테 주라고 해서 제가 부르게 됐습니다.” 이씨는 이 노래로 1980년대 초반 조용필을 능가할 만큼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린다.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을 시작으로 그해부터 3년 동안 MBC 10대 가수상을 계속 수상했다. 또한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역시 3년 내리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1982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1983년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등을 수상했다. 그동안 평양, 금강산, 개성 등 북한공연을 여섯 차례나 다녀오면서 북한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잊혀진 계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가수 이용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웃는다. ‘잊혀진 계절’ 외에도 그가 부른 ‘바람이려오’ ‘서울’ ‘첫사랑이야’ ‘후회’ 등의 노래도 한동안 많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까지 12집의 앨범을 냈으며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도 80여곡은 된다. 그 중 김지애의 ‘몰래 한 사랑’, 하춘화의 ‘사랑은 길어요’가 대표적이다. 그는 1956년 3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2년 늦게 했다. 13개월 위인 형과 동시에 군대를 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그런 일을 우려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평북 정주 출생으로 월남 후 육사를 나와 고급 장교로 근무했다. 어머니는 수원여고를 졸업했다. 그가 어릴 때에는 외갓집인 수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를 친어머니로 여길 정도로 잘 따랐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외갓집은 당시 제재소를 운영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평소 만약 아들 둘을 낳게 되면 첫째는 명문대에 보내 판검사를 시키고 둘째는 가수를 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격한 성품이어서 연예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린 시절을 수원에서 지낸 후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군 전역 후 인천에서 의료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덕분에 이씨는 신장염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지만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어 시멘트블록 사업에 손을 대면서 사업을 번창시켜 나갔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족들이 서울 한남동 빈촌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가 휘문고 2학년 재학때였다. 학비를 대지 못할 만큼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고 교회에서 쌀을 타다가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 그는 이런 사정을 생각해서 등록금 걱정이 없는 육사에 진학하려고 했다. 당시 그의 가방에는 노래책만 있을 정도로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결국 고 3때 한 학기등록금을 못 냈다.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판이었으나 때마침 지인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내고 고등학교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호텔을 전전하며 청소부 겸 노래 부르는 일을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낸 뒤 1977년 전방 백골사단에 입대를 하게 된다. 그는 운이 좋게도 이곳에서 ‘백골쇼’ 단원으로 발탁되면서 노래를 하게 된다. 특히 입대동기인 한규철씨와 함께 부른 노래, ‘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날 좀 봐요/날 좀 봐주세요~’라는 ‘밀양머슴아리랑’은 단연 인기였다.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세직 장군은 물론 다른 여러 장교한테 많은 칭찬을 받았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사단통신대대에서 대대장 당번병으로 근무했고 백골쇼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노래를 불렀다. ‘백골쇼’로 사실상 노래에 입문하게 됐으며 ‘노래가 내 인생’임을 깨달았다. 33개월 만에 만기제대한 그 해 11월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240점을 받고 연세대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서울예전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국풍81’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정식 데뷔하게 된다. 그는 학교의 명예를 빛낸 공로로 서울예전 재학 내내 ‘동랑 유치진’장학금을 받았다. 졸업 후 ‘바람이려오’와 ‘잊혀진 계절’을 불러 여기저기에서 ‘가수왕, 가수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단박에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절정의 인기를 뒤로하고 1985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예기치 않은 소문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공부나 할 생각으로 템플대 음대에 진학했다. 재학 중 부모 같은 테일러 교수를 만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음악공부에 전념했다. 이때 ‘몰래한 사랑’을 작곡했고 노래가 아주 좋다는 평가와 함께 A플러스 장학금을 받았다. 이 무렵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했다. 그는 1988년 4월 아버지로부터 일생일대의 중요한 유언을 듣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네가 가수생활을 하다가 스캔들이 난 거니까 다시 가요계에 컴백해서 명예를 회복하라’고 하셨어요. 아들이 가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분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가수 컴백’이라는 말씀을 해 주신 겁니다.” 이때부터 그는 하루에 밤 무대를 아홉 군데나 뛰어다니며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그마한 집이라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 있는 한 아파트분양사무실에 가서 ‘3순위라도 없나요’라고 사정을 해 어렵게 분양을 받았다. 밤 무대에서 번 돈으로 착실히 중도금을 마련해 갚아나갔다. 입주 6개월 전 한 지인으로부터 “과천에 단독주택 하나가 경매 나온 것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때마침 부인이 알레르기 천식을 앓아 공기 좋은 데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그렇게 해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중간에 팔고 은행 융자금을 보태 4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 그 무렵 방송출연을 하게 되면서 꼬였던 노래인생도 서서히 풀렸다. 2003년 신곡 ‘후회’가 방송 1위 곡에 올랐고 2004~2005년 MBC라디오 두시만세 ‘꽁노래방’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라디오와 TV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했고 바쁜 가수생활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걷게 됐다. 그는 틈틈이 양로원과 고아원, 재소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벌인다. 선행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으로 그는 무슨 계획을 갖고 있을까. “저는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등 레슨을 한 번도 안 받고 음악을 해왔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베이비부머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젊어지라고 외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이 곧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젊은 생각은 또 다른 제3의 인생을 찾게 하지 않을까요.” 선임기자 km@seoul.co.kr 가수 이용은 수원에서 태어나 1975년 휘문고를 졸업했다. 백골사단에서 만기제대한 뒤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템플대에서 음악공부를 했다. 1981년 ‘바람이려오’로 데뷔했다. 주요 히트곡으로는 ‘잊혀진 계절’ ‘서울’ ‘사랑, 행복 그리고 이별’ ‘태양의 저편’ ‘첫사랑이야’ ‘후회’ 등이 있다. 1981년 대학 가요제 금상 수상을 시작으로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가수왕 상), 1982~1984년 MBC 10대 가수상, 1982~1984년 KBS 가요대상, 1982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1983년 제2회 가톨릭 가요 대상, 1983년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1983년 전국 프러덕션 연합회 주최 가수상, 1984년 선데이서울 주최 ‘올해의 7대 가수상’, 1989년 미국 내쉬빌 초청 가요제 본상 (내쉬빌 시장상), 1992년 서울 선행시민상, 1993년 환경처장관 유공자 표창 등을 받았다. 지금까지 12집 앨범을 냈다.
  • 우리가 꿀보직?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꿀보직? 그렇지 않아요!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 사이에서 ‘꿀보직’(편한 군 생활을 일컫는 은어)으로 통하는 곳이 있다. 1년 11개월 동안 소총 대신 구급상자를 들고, 군용트럭 대신 구급차나 펌프차를 타며, 최전방 일반전초(GOP) 대신 소방서에서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항상 출동 대기한다. 군 입대를 대신해 소방서 근무를 자원한 의무소방원. 그들에게 요즘 말썽 많은 군 폭력은 남의 얘기다. 의무소방원의 세계를 살짝 엿봤다. 지난 1일 경기 포천소방서로 배치받은 제44기 의무소방대(GIFF) 한동수(23) 대원은 지난 3월 시험에서 4단계의 전형과 5.5대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었다. 군인 계급으로 이제 막 이등병(소방계급 이방)을 단 한 대원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말끝마다 “…다, …나, …까”를 반복했다. ●소방학교선 매일 소방PT 1~2시간씩 “소방학교 훈련받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 불평불만을 토로할 수 없습니다. 기상하자마자 10분 만에 옷 갈아입고 운동장에 집합해야 하는 아침점호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한 대원은 얼마 전까지 소방훈련을 받던 충남 천안의 중앙소방학교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쳤다. 꿀보직을 기대했다가 ‘빡센 뺑뺑이’에 혼났다는 것이다. 오전 6시에 기상벨이 울리고 10분에 점호가 시작된다. 그전에 침구를 정리하고 옷까지 입어야 한다. 한 대원은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 들었다”며 살짝 미소 지었다. 소방학교의 아침점호가 엄격하게 이뤄지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출동 상황이 되면 지체 없이 출동 준비를 할 수 있는 투철한 정신 자세와 태도를 의무소방원에게 심어 주기 위해서다. 점호와 식사 후 오전 8~10시 소방학교 운동장에는 비명이 울려 퍼진다. 의무소방원 훈련병들은 구토와 어지럼을 동반한 체력 고갈, 근육 경련을 기본으로 겪게 된다. 환자를 들것에 옮기고, 무거운 장비를 날라야 하는 의무소방원 임무의 특성상 강한 체력은 필수이기 때문에 공포의 체력단련(PT)은 하루 1~2시간씩 빠짐없이 이뤄진다. 소방PT는 육군의 PT보다 강도나 횟수가 두 배 이상 강력하다. 소방학교에서는 체력훈련, 소방예절 등 기초소양훈련과 함께 소방장비 운반 및 활용, 진화훈련, 로프 매듭법 등 구조장비 활용, 심폐소생술(CPR), 환자 운반 등 구급법, 인성교육까지 소방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출동직만 있고 구조 작업 땐 책임감 커 “소방서에 배치받은 지 일주일 됐습니다. 그래서 기초적인 업무를 익히고 교육받고 있어 아직 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주부터 근무조에 편성돼 출동하게 되면 구급차나 P차(펌프차)를 타고 현장에 나가 출입 통제나 장비 조달, 들것을 나르고 환자를 옮기는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방대원을 지원하는 임무가 저희 임무죠.” 중앙소방학교 제44기 의무소방원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한 교육 성적을 거둬 최우수상을 받은 한 대원이지만 아직 소방서 생활이 익숙하지는 않다. 오전 6시 30분 기상벨이 울리고 포천소방서에서 근무하는 4명의 의무소방원이 눈을 뜬다. 군에선 연대전술훈련(RCT), 대대 군전투력측정(ATT), 혹한기 훈련, 유격 등 각종 훈련과 초소 근무, 제초 작업, 진지 공사 등을 한다. 의무소방원의 일과도 군의 일과만큼이나 빡빡하다. 의무소방원은 2교대 혹은 3교대로 돌아가면서 출동당번을 맡는다. 출동직과 행정직으로 구분돼 있던 과거와 달리 2012년부터는 모든 의무소방원이 출동직으로 분류돼 항상 출동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출동벨이 울리면 당번은 곧장 출동해야 하기 때문에 내무반엔 늘 긴장감이 흐른다. ‘혹시라도 잘못된 조치를 취하거나 제대로 구조 작업을 보조하지 못한다면 환자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현장에 출동하기 때문에 소방서로 복귀하면 항상 녹초가 된다. 한 대원은 사고 현장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피부가 찢어져 뼈가 보이는 환자, 피 칠갑이 된 구조자는 물론 시체를 보거나 실내에 가득 찬 피 냄새로 악몽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무생활은 가족 분위기… 폭력 없어 포천소방서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평균 화재출동이 2.12건, 구조출동 3.87건, 구급출동 28.9건, 벌집 제거 등 생활 민원 관련 출동은 3.2건에 달한다. 당번이 아닌 날에는 장비 관리 및 정비, 상황 대비 훈련 등으로 하루 일과가 채워진다. 의무소방원이 행정 업무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빡빡한 일과와는 별개로 의무소방원의 내무생활에선 구타, 폭행 등 가혹 행위를 찾아볼 수 없다. 기수당 150~200명 등 비교적 소수를 선발하는 데다 배치받는 센터나 소방서에 의무소방원이 10명을 넘지 않아 자연스레 가족과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번갈아 출동당번을 맡는 데다 새벽 출동 대기로 인한 고질적인 수면 부족도 서로 돕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구급법 교육받고 소방관 진로 선택 많아 “소방학교에서 들었던 강의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구급법입니다. 구조자의 상태가 육안으로 봐서 사망한 것 같아도 CPR를 실시해야 한다는 강사님의 한마디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망 여부는 의사만이 판단할 수 있고, 구조대원은 ‘살아 있다’ 혹은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CPR를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대원은 “구급법교육 이후 죽음을 대하는 소방관의 자세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는 “의무소방원 가운데 소방관을 진로로 생각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소방교육과 소방서에서의 생활을 거치면서 소방관에 대한 매력과 동경으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실제로 소방서에 와서 생활해 보니 평상시에는 사람 좋은 이웃 아저씨 같다가도 출동벨만 울리면 눈빛이 바뀌면서 다른 사람이 되는 소방관의 모습에 새삼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에둘러 감정을 표현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IS 참수 네 번째 희생자 이어 다섯번째 희생자 예고…미국 특수부대 출신 구호활동가

    ‘IS 참수’ IS 참수 네 번째 희생자가 나온 가운데 다섯번째 희생자가 예고됐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3일(현지시간) 예고한 다음 희생자는 미국 특수부대 출신 구호활동가 피터 캐식(26)이다. 캐식은 시리아 난민을 돕는 ‘특수긴급대응지원’(SERA)이란 비정부 단체를 직접 만들었으며 시리아·레바논 등지에서 구호 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 10월 레바논에서 시리아 동부로 넘어가던 중 IS에 납치됐다. 그는 납치 전인 2013년 1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구호단체들이 현재보다 시리아 난민들과 더 잘 교류하고 협력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 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하는 활동은 난민들에게 그들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전으로) 국가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캐식은 미국 인디애나주 토박이로 2004년 육군에 입대해 특수부대원으로 75연대에서 복무했다. 2007년 4월부터 7월까지는 이라크에 파병됐으나 같은 해 9월 일병 계급으로 의사제대했다. 그는 대학교 시절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찾았던 것을 계기로 시리아 난민 구호활동에 투신할 마음을 먹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2년 베이루트로 돌아와 난민들에게 시리아 국경 인근 병원에서 의료 보조원으로 일했다. 이날 IS가 영국인 인질 앨런 헤닝(47)을 참수한 뒤 캐식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동영상을 공개하자 미국에 있는 캐식의 가족과 친지들은 침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캐식 가족은 성명을 내고 “전 세계 모든 분께 저희 가족과 아들, 그리고 중동 등 전 세계에서 무고하게 잡혀 있는 모든 이의 석방을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캐식은 IS에 붙잡힌 뒤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며 이름도 압둘 라흐만으로 개명했다고 가족은 전했다. 미국이 이라크, 시리아의 IS 공습을 개시한 뒤 IS는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와 스티븐 소트로프, 영국인 구호단체 직원 데이비드 헤인즈, 앨런 헤닝 등 4명을 참수하는 동영상을 잇따라 인터넷에 공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의무소방원이 되려면

    정부는 2001년 부족한 소방인력을 보조하기 위해 의무소방대설치법을 제정했다. 의무소방원은 2002년 처음 500명을 모집한 데 이어 지난해까지 총 7675명을 뽑았다. 소방방재청은 매년 상·하반기로 나눠 의무소방원을 모집한다. 만 18세 이상 제1국민역 또는 보충역이면 지원할 수 있다. 원서 접수 이후에는 50m, 1200m 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등 체력검사를 먼저 통과해야 한다. 이어 국어, 국사, 일반상식(소방상식 50%) 등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직무수행에 필요한 능력, 적격성을 평가하는 면접시험까지 치러야 한다. 최종 합격한 예비 의무소방원은 육군훈련소 군사교육과 중앙소방학교의 소방교육을 각각 4주간 받은 뒤 일선 시도소방서에 배치받아 23개월(교육 기간 포함) 동안 복무한다. 올 상반기 선발된 의무소방원 300명은 지난 7월(44기)과 9월(45기) 각각 150명씩 입대했다. 하반기 의무소방원 원서 접수는 지난달 29일 마감했으며 전형을 통과한 응시자들은 의무소방원으로 최종 선발된다. 소방훈련까지 마치고 교육생들이 희망 지역 12곳을 적어 내면 성적을 감안해 각 시도소방서에 배치된다. 특별시와 광역시는 의무소방원을 배치하지 않기 때문에 지방 소도시, 수도권 인근 지역 배치를 선호한다고 한다. 특별한 경험을 위해 23개월 동안 산속에서 생활하는 강원지역 산악구조대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 “가혹 행위로 우울… 자해 사망 군인 유공자 인정”

    극심한 구타·가혹 행위로 인한 우울 상태에서 일반전초(GOP) 근무 중 자해 사망한 군인에 대해 “불가피한 사유 없이 고충 해결 노력을 게을리한 스스로의 과실이 경합돼 사망했다”며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행심위는 국가보훈처 수원보훈지청이 1990년 4월 GOP 경계근무 중 자해 사망한 홍모씨(당시 23세)의 유족을 유공자 유족에서 제외한 처분은 위법·부당하다고 1일 밝혔다. 홍씨는 1989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이듬해인 1990년 4월 일병으로 GOP 경계근무를 하던 중 자해 사망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홍씨가 사망하기 한 달 전에도 후임병이 선임병들의 개머리판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된 사고가 발생하는 등 부대 내에서 개머리판과 몽둥이 등을 사용한 구타·가혹 행위가 만연했다. 어머니 윤모씨는 2012년 7월 행심위에 “유공자 유족 등록 거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행심위는 보훈처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보훈처가 재심의에서도 유공자 유족 등록을 거부하자 윤씨는 지난해 8월 다시 행심위에 행정심판을 냈다. 행심위는 “선임병들의 구타가 만연한 부대였던 점, 최전방 GOP인 데다 감시 인력이 없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불가피하거나 본인 과실로 인한 사망으로 볼 수 없다”며 “본인 과실에 대한 증명 책임은 보훈처에 있지만 객관적 자료조차 없다”고 판단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6·25 때 전사 美 쇼 대위 흉상 海士서 제막

    6·25 때 전사 美 쇼 대위 흉상 海士서 제막

    6·25전쟁이 나자 “한국은 나의 조국”이라며 미국 해군에 자원입대해 참전했다가 전사한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전사 당시 28세) 대위의 흉상이 29일 해군사관학교에 건립됐다. 해군사관학교는 이날 학교 안 통해관 1층 도서관 로비에서 이기식 해군사관학교장과 리사 프란체티 주한 미국해군 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쇼 대위의 흉상 제막식을 했다. 일제강점기 때 선교사로 한국에 와 있던 윌리엄 얼 쇼 부부의 외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쇼 대위는 1941년 일제가 일가족을 강제추방할 때까지 한국에서 생활했다. 해군 중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했던 그는 전역 뒤 1947년부터 1년간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 전신인 ‘조선 해안경비대 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에게 영어와 함정 운용술을 가르치는 등 해군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과정을 공부하다 6·25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한국은 나의 조국”이라며 자원해서 해군대위로 재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쇼 대위는 1950년 9월 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매복한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참전한 지 몇 달 만에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는 부모에게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 평화 시에 선교사로 한국에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쓰고 6·25전쟁에 참전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집시법 위반 무죄’ 기소휴직 해사교관 “법정서 잃어버린 3년 청구소송 낼 것”

    “밀린 숙제를 끝낸 느낌입니다. 이제 대학원에 복학해 연구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해군 장교로 복무 중 국가보안법과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는 바람에 3년 이상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상태였던 김모(32) 중위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 25일 군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사건을 원심인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무죄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에서 유죄로 봤던 집시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지난 3월 헌법재판소가 자정 이전 야간 시위는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내린 한정 위헌 결정을 따랐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대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다고 인정되므로 군사법원법과 형사소송법에 의해 직접 판결한다”며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2009년 6월 학사장교로 입대해 해군사관학교 국사 교관으로 복무하던 김 중위는 전역이 1년도 남지 않은 2011년 6월 기소되며 ‘기소휴직’ 처리가 됐다. 형이 확정될 때까지 군인 신분은 유지하되 직무에서는 배제되는 조치다. 이 때문에 김 중위는 3년 넘도록 기본급의 절반인 월 49만 8000원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군인 신분이라 취업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직접 만든 강의노트에 해방 후 북한 역사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세력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게 발단이었다. 입대 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 집회’에 참여한 전력도 문제가 됐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은 두 혐의 모두 유죄로 봤으나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집시법 위반만 유죄로 판단해 벌금 20만원을 선고했었다. 전역 시점을 2년이나 넘긴 김 중위는 이제야 ‘자유의 몸’이 된다. 만약 대법원이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더라면 기소휴직 시점부터 남은 복무 일수를 마저 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 중위는 국방부의 복직명령을 거쳐 조만간 전역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그는 ‘잃어버린 3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성매매 조장 휴대전화 앱 182개…여성가족부 실태조사

     성매매가 불법이어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남성의 비율이 2013년 93.1%로 3년 전에 비해 23.3%포인트 증가했고, 성매수자 재범방지교육인 존스쿨 수강자 중 78%가 성매매를 자제하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휴대전화 무료 애플리케이션 182개가 ‘조건 만남’ 등 성매매를 실제 조장하고, 이 중 65%는 성인 인증을 요구하지 않은 채 곧바로 메인 화면을 노출하거나 로그인 화면을 표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가족부는 30일 오후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성매매방지 정책 10년, 성과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13년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매매 피해자 15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 대부분이 가족 해체와 가난, 가정 내 학대로 10대에 성매매 업소로 유입됐고, 이 때문에 상당수가 학업 중단으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남성 응답자 1200명 중 56.7%(680명)가 평생 한 번 이상 성 구매 경험이 있고, 27.2%(326명)는 최근 1년간 성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평균 24세에 처음 성수매를 경험하며, 성구매 동기는 호기심, 군입대 등 특별한 일을 앞두고, 술자리후 순이다. 성구매10회 이상 상습 성구매자 중 미혼(180명)과 기혼(120명)의 차이가 크지 않아, 성적 파트너가 없는 남성의 성적 요구 해소를 위해 성매매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무색하게 했다. 성매매 구매 사범의 주된 성매매 경로는 안마시술소 26.3%, 집결지 26.1%, 유흥주점 23.4% 순이다.  전국의 전업형 성매매 집결지(10개 업소 이상 밀집 지역)는 44곳으로 3년 전에 비해 1곳 줄었으나 집결지 내 성매매 업소 수는 1858개로 52개(2.9%) 늘었고, 종사 여성 숫자도 5103명으로 186명(3.8%) 늘어났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전인 2002년 조사에 비해서는 집결지, 업소, 종사 여성 숫자가 모두 36~44% 감소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10년의 주요 성과로는 성매매 불법성 인식 확산, 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확대, 성매매 예방교육의 확대, 성매매 방지 홍보, 온·오프라인 성매매 경고문구 게재, 성매매방지대책 추진점검단을 통한 부처 행정 집행력 강화 등이 꼽힌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성매매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면서 “성매매 관련 단속 처벌과 홍보를 강화하고 ‘사람은 어떤 이유로도 거래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모든 국민에게 확고히 전달될 수 있도록 예방교육, 인식개선 캠페인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성매매 실태조사는 신뢰성과 정확성 등에 한계가 있어 통계법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한 국가 미승인 통계라고 여가부는 설명했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성매매 방지정책 10년, 불법성 인식 높아져…성매매 조장 앱 182개

     성매매가 불법이어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남성의 비율이 2013년 93.1%로 3년 전에 비해 23.3%포인트 증가했고, 성매수자 재범방지교육인 존스쿨 수강자 중 78%가 성매매를 자제하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휴대전화 무료 애플리케이션 182개가 ‘조건 만남’ 등 성매매를 실제 조장하고, 이 중 65%는 성인 인증을 요구하지 않은 채 곧바로 메인 화면을 노출하거나 로그인 화면을 표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가족부는 30일 오후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성매매방지 정책 10년, 성과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13년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매매 피해자 15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 대부분이 가족 해체와 가난, 가정 내 학대로 10대에 성매매 업소로 유입됐고, 이 때문에 상당수가 학업 중단으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남성 응답자 1200명 중 56.7%(680명)가 평생 한 번 이상 성 구매 경험이 있고, 27.2%(326명)는 최근 1년간 성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평균 24세에 처음 성수매를 경험하며, 성구매 동기는 호기심, 군입대 등 특별한 일을 앞두고, 술자리후 순이다. 성구매10회 이상 상습 성구매자 중 미혼(180명)과 기혼(120명)의 차이가 크지 않아, 성적 파트너가 없는 남성의 성적 요구 해소를 위해 성매매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무색하게 했다. 성매매 구매 사범의 주된 성매매 경로는 안마시술소 26.3%, 집결지 26.1%, 유흥주점 23.4% 순이다.  전국의 전업형 성매매 집결지(10개 업소 이상 밀집 지역)는 44곳으로 3년 전에 비해 1곳 줄었으나 집결지 내 성매매 업소 수는 1858개로 52개(2.9%) 늘었고, 종사 여성 숫자도 5103명으로 186명(3.8%) 늘어났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전인 2002년 조사에 비해서는 집결지, 업소, 종사 여성 숫자가 모두 36~44% 감소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10년의 주요 성과로는 성매매 불법성 인식 확산, 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확대, 성매매 예방교육의 확대, 성매매 방지 홍보, 온·오프라인 성매매 경고문구 게재, 성매매방지대책 추진점검단을 통한 부처 행정 집행력 강화 등이 꼽힌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성매매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면서 “성매매 관련 단속 처벌과 홍보를 강화하고 ‘사람은 어떤 이유로도 거래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모든 국민에게 확고히 전달될 수 있도록 예방교육, 인식개선 캠페인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성매매 실태조사는 신뢰성과 정확성 등에 한계가 있어 통계법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한 국가 미승인 통계라고 여가부는 설명했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김정은, 북한군 복무 연장 지시 정황”

    북한이 지난 25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회의에서 그동안 소문으로 돌던 군 복무기간 연장에 대해 발표하지 않았지만 정부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이를 지시한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 확인 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26일 “북한 최고사령관 김정은이 올해 남성 복무 기간을 10년에서 11년으로 1년 연장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다”면서 “실제 북한군은 올해 10년 만기 제대 예정자들의 전역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이 중환자나 결격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의무복무를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110여만명의 병력을 유지해 온 북한은 2003년 3월 최고인민회의 10기 6차 회의에서 남성은 13년에서 10년, 여성은 10년에서 7년으로 복무 기간을 단축한 바 있다. 여성은 지원자에 한해 복무하도록 했다. 다만 특수부대 등 일부 부대에서는 남성의 복무 기간을 13년으로 고정해 놓았다. 하지만 식량난이 극심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1996~2000년)를 거치면서 유아 사망이 급증했고 이때 태어난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게 된 최근에는 병역자원이 한 해 2만~5만명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의 입대 연령은 17세부터이며 영양 부족으로 청년들의 평균 키가 줄어들자 1990년대 150㎝이던 입영 기준 신장 하한선을 2012년 142㎝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김 제1위원장이 전날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한 이유와 관련, ‘통풍’과 같은 건강 이상설 등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어디가 어느 정도로 아픈지에 대해서는 파악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장기간의 건강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요도가 낮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김정은 체제가 정상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려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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