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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아저씨들 커밍아웃하다 “장난감은 내 인생 동반자”

    [커버스토리] 아저씨들 커밍아웃하다 “장난감은 내 인생 동반자”

    키덜트로 유명하다고 해서 만난 두 명의 아저씨는 정작 자신은 키덜트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둘 다 키덜트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어른이면서 아직도 애들 장난감이나 만지작거리느냐는 불편한 시선이 담긴 단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골프나 주식 대신 로봇과 인형을 취미로 좋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남보다 꿈을 잊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김혁(51) 테마파크파라다이스 대표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것은 1991년이었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하던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영국 런던을 찾았다. 자유 시간을 내어 영화 ‘노팅힐’의 배경이 된 포토벨로 로드에 간 김 대표는 작은 골동품 가게에서 운명과 마주했다. “반지하 상가 한 모퉁이에서 발길을 뗄 수 없었어요. 족히 100년은 돼 보이는 테디베어와 녹슨 양철 로봇,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목제 퍼즐을 발견하고야 말았죠. 엄청난 충격과 감동이었어요. 세월의 냄새가, 낡은 장난감이 사람의 혼을 이렇게 온전히 뺏을 수도 있구나….” 2시간 동안 먼지 뒤집어쓴 장난감을 만져 보고 히죽거리는 동양인을 눈여겨본 주인 노인장이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노인은 전쟁고아들이 장난감을 통해 잠깐이나마 영혼을 달래는 모습을 보고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다. “노인장이 그러더군요. 한 사람의 인생을 100년으로 봤을 때 그의 인성이 형성되는 초기 10년, 15년간 가장 많이 만나는 사물이 무엇이겠느냐고요. 장난감이라는 거죠. 깨달음의 순간이었어요. 아, 내 길이 이거구나. 나는 인생의 한 단면을 채집하는 장난감 수집가였구나.” 김 대표는 어릴 적 동네 문방구에서 산 조립로봇, 딱지 등 장난감을 버리지 않고 모았다. 까까머리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에 살던 그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장난감 수집은 계속됐다. 1985년 갑자기 입대하면서 수집이 중단됐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장난감 늘어놓는 걸 늘 못마땅해하셨어요. 군대 간 사이 다 버린 줄 알았는데 휴가 나와 보니 고향집 마루 밑에 처박아 둔 장난감과 서울 하숙집 방에 있던 장난감까지 가지런히 라면박스에 정리돼 있더라고요. 아들이 애지중지 모은 걸 차마 버리실 수 없었던 거죠.” 그게 출발이었다. 김 대표가 모은 장난감은 4만점에 이른다. 그중 절반은 부산 동물원 삼정더파크의 월드토이뮤지엄에 전시되고 있다. 나머지 2만점은 경기 안양시 평촌의 집 근처 창고를 빌려 보관 중이다. 100㎡(30평) 크기 창고 2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김포 처갓집에 일부를 보냈다. 김 대표는 수집한 장난감의 현재 가치를 30억원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팔 생각이 없어 환금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오래된 골동 장난감(앤티크 토이)에 관심이 많았던 김 대표가 비교적 최근 ‘꽂힌’ 장난감은 베어브릭이다. 7㎝ 크기의 플라스틱 곰인형으로 볼록 나온 배가 특징인 베어브릭은 스타워즈, 샤넬, 마블코믹스 등과 협업해 다양한 버전으로 생산되고 있다. “베어브릭은 태생부터 성인을 위한 장난감이었어요. 상자 겉에 ‘낫 포 칠드런’이라고 쓰여 있어요. 애들 장난감이 아니라는 거죠. 베어브릭은 아트토이, 즉 예술품입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처럼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미술품을 지향하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처음부터 30판까지 빠짐없이 모았어요. 하나에 600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애들도 있죠.” 소장품으로 장난감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문화적 커밍아웃을 언급했다. “동성애자가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성인이라고 장난감 좋아하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지금 그렇게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그런 세상이 오겠죠. 음지의 장난감이 빛을 보는 그런 날요.”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사진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조선인 전우’ 위해 법정에 선 日 노병

    ‘조선인 전우’ 위해 법정에 선 日 노병

    일본 양심의 탄생/오구마 에이지 지음/김범수 옮김/동아시아/358쪽/1만 6000원 일본 게이오대 교수이자 역사사회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의 일생을 조명해 일본의 지난 20세기를 그려낸 책이다. 책의 주인공은 오구마 겐지다. 올해 90세인 겐지에겐 특이한 이력이 있다. 조선인으로 전 ‘일본군’이었던 전우 오웅근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는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1945년 겐지는 스무 살의 나이로 일본군에 입대하자마자 소련군의 포로가 됐고, 3년간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수용소엔 그와 같은 ‘일본군’ 조선인도 있었다. 재중동포 오웅근이다. 만주 출신의 조선인이었던 그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기를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에 참가했다가 붙잡혀 겐지가 있던 수용소로 오게 된다. 이후 중국으로 귀환한 오웅근은 의사가 되었지만, 중국 문화혁명의 혼란 속에서 ‘일본군 출신’이란 이유로 박해를 받는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 일본 정부는 ‘일본인 국적자’들에게 ‘위로금’ 형식으로 전쟁피해를 ‘위로’하는 애매한 보상 사업을 벌였다. 당연히 중국 국적자였던 오웅근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강제 징집 당시 오웅근은 ‘일본 국적자’였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1910년 경술국치일 이후 일방적으로 일본 국적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패전 이후 1952년 연합군 점령이 끝나자 일본은 일방적으로 조선, 대만 등 일본 호적 이외의 사람에 대한 일본 국적을 박탈했다. 국적선택권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인으로 징집됐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 국적을 상실해 연금이나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오웅근과 겐지는 1996년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당연히’ 패소했다. 손해는 “국민이 다 같이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피해”이기 때문에 보상할 수 없고, 공식 사죄는 “입법부의 재량”이라는 것이었다. 예상된 결말에 오웅근은 격분했지만 겐지는 시도 자체가 법원에 근거로 남으니 나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이들의 변호사도 국가(일본)에는 양심이 없어도 국가를 대신해 양심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고 평했다. 저자는 이처럼 아버지에게서 전쟁 전의 기억과 전쟁 중 시베리아 수용소에서의 기억, 그리고 전후의 기억을 끄집어내 샅샅이 추적했다. 그리고 사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아버지의 인생사를 각 시대의 사회적 맥락에 대입시켰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현역 아닌 공익 가는 이유 알고보니..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현역 아닌 공익 가는 이유 알고보니..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앞둔 JYJ 박유천이 오는 8월 27일 비공개 입소하는 가운데 그의 공익판정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유천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11일 “오는 27일 박유천의 입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라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조용히 입소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는 물론 훈련소 측에서도 미디어 라인 취재가 어렵다는 의견을 종합하여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됐다”라며 “여러모로 취재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점을 고려해 비공개로 결정하게 된 점 양해 말씀 드린다”며 양해를 구했다. 박유천은 입소 이틀 전인 25일, ‘2015 JYJ 멤버십 위크(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군입대 전 팬들과 마지막으로 만날 계획이다. 한편 박유천은 지난 3월 말 현역 입소한 김재중에 이어 JYJ 멤버 중 두 번째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됐다. 박유천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복무할 예정이다. 박유천은 지난 2011년첫 신체검사에서 7급 재검 대상에 올랐다. 6개월 뒤인 8월 재검에서도 7급 판정을 받았다. 지난 2012년 신체검사에서는 ‘천식’을 이유로 4급으로 판정 받았다.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사진 = 서울신문DB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해당 사진은 드라마 스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개최하나?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개최하나?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개최하나? 그룹 JYJ 멤버이자 배우 박유천이 오는 27일 비공개로 군에 입대한다. 박유천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11일 “오는 27일 박유천의 입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그러면서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박유천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복무할 예정이다. 다음은 소속사의 공식입장 전문. ●오는 27일 입소를 앞두고 있는 박유천의 입소 취재 관련하여 많은 문의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박유천의 입소 취재는 비공개로 진행하게 되어 기자님들께 양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조용히 입소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는 물론 훈련소 측에서도 미디어 라인 취재가 어렵다는 의견을 종합하여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취재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점을 고려해 비공개로 결정하게 된 점, 다시 한 번 양해 말씀 드립니다. 당사에서는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합니다. 다시 한 번 박유천의 입소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 가져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연예 포스토리] (9) ‘엄친아’의 원조 차인표

    [연예 포스토리] (9) ‘엄친아’의 원조 차인표

    요즘에는 얼굴이 예쁘고 잘생겼으면서 학벌까지 좋은, 또는 집안까지 좋은 ‘엄친딸’, ‘엄친아’ 연예인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포스토리 9회에서 다루는 차인표가 어쩌면 ‘엄친아’ 배우의 원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의 과거를 들여다봅니다. ●180cm의 큰 키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엄친아’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차인표는 뉴욕의 한 해운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1993년 MBC 공채 탤런트 22기로 데뷔합니다. 180cm의 큰 키에 보디빌딩으로 다져진 남성적인 체격은 많은 여성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스트레스성 장염, 원인이 과도한 인기? 차인표는 데뷔 직후 단숨에 스타덤에 오릅니다. MBC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주연을 꿰찬 차인표는 팬들로부터 하루에 1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부 중·고교생은 차인표의 얼굴을 보겠다고 밤늦게까지 그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고 하네요. 이로 인해 차인표는 스트레스성 대장염에 걸려 하루 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차인표에게 강인한 이미지를 안겨준 극한(?) 알바 차인표는 90년대에 흔치 않은 미국 유학파 탤런트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르바이트 경력은 지금 봐도 흔치 않아 보입니다. 그는 유학시절 초기 영어 실력이 부족해 잔디 깎기나 페인트칠 같은 단순한 일을 했다고 하는데요. 나중에는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경력이 차인표를 강인하게 만든 걸까요. 당시 방송 관계자들은 차인표와 라이벌이었던 장동건, 최수종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생겼지만 유약한 이미지인 장동건, 최수종과 달리 차인표는 강인한 이미지를 가져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차인표와 연정훈의 공통점 2005년 배우 연정훈이 한가인과 결혼을 할 때 많은 남성분들이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몇몇은 ‘입대 전에 결혼이라니!’하고 분개도 했을 거고요. 이로부터 10여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994년 차인표는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호흡을 맞췄던 신애라와 열애 중임을 인정했습니다. 이듬해 입대한 그는 군 복무 중 신애라와 결혼식을 올려 화제의 중심에 선 바 있습니다.   ●“솔직히 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차인표는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인 MBC ‘아들의 여자’에서 검사 역을 맡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차인표는 자신의 연기력을 냉철하게 비판했는데요. “솔직히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군 입대를 앞두고 출연하는 마지막 드라마라는 점에서 제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보다는 작품 속 비중에만 몰두하는 몇몇 젊은 연예인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발언인 것 같습니다.   ●음반 발매 경험 있는 차인표 “제 노래방 점수는요….” ‘소간지’ 소지섭이 힙합 앨범을 냈을 때 ‘아… 이것만은’이라며 탄식을 내뱉은 분이 있으실 겁니다. 차인표 역시 부족한 노래 실력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발매했는데요. 군 입대 직전 그는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한번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며 음반 발매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가 덧붙인 말에 눈길이 갑니다. “제 노래방 점수는 85점 정도에요. ‘가요 톱 10’에 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인기는 있었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 했다” 별 탈 없이 24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친 차인표는 1996년 12월 제대했습니다. 그는 제대하며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 군 복무를 마쳐 시원하면서도 섭섭하다”면서 “다른 동료들과 똑같이 고생했는데 주변의 이목이 쏠려 부담스럽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인기는 있었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 했다. 2년이나 기다려준 팬들에게 좋은 연기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앞머리 잘라 노란색으로 염색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제대 후 드라마 복귀작에서 차인표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좋은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변신을 서슴지 않는데요. 1997년 MBC ‘영웅 반란’에서 건달 역을 맡은 차인표는 앞머리를 자른 뒤 그 끝을 노란색으로 염색했습니다. 주로 깔끔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맡아왔던 차인표는 “촌스러우면서도 터프하고, 그러면서도 귀엽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머리 모양은 미용실 주인, 연출자, 주위 사람들과 상의해 결정했다. 어깨에 힘 빼고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하니 신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없어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 돌입, 이유는? 차인표의 연기 변신이 성공적이었던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차인표의 대표작으로 ‘왕초’를 떠올리실 겁니다. 이 작품에서 차인표는 휘하의 거지떼를 먹여 살리는 상남자 ‘거지왕 김춘삼’ 역을 맡았습니다. 이 역할에 대해 그는 ‘천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차인표는 ‘없어 보이기 위해’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고 한달만에 5kg을 감량했다고 합니다. ●아들에게 인정받는 아버지의 삶 차인표의 삶을 쭉 보고 있으면 ‘성공했으면서도 참 겸손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부모를 꼭 빼닮아서 일까요.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아들 차정민 군은 과거 오디션 프로로그램 ‘슈퍼스타K’에 출연해 탈락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밝은 미소를 보여 시청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정민 군은 “아버지 어머니의 성품이 좋아서 내가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아들에게 인정받는 아버지의 삶, 많은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꿈꾸는 삶이 아닐까요.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그룹 JYJ 멤버이자 배우 박유천이 오는 27일 비공개로 군에 입대한다. 박유천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11일 “오는 27일 박유천의 입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그러면서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박유천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복무할 예정이다. 다음은 소속사의 공식입장 전문. ●오는 27일 입소를 앞두고 있는 박유천의 입소 취재 관련하여 많은 문의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박유천의 입소 취재는 비공개로 진행하게 되어 기자님들께 양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조용히 입소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는 물론 훈련소 측에서도 미디어 라인 취재가 어렵다는 의견을 종합하여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취재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점을 고려해 비공개로 결정하게 된 점, 다시 한 번 양해 말씀 드립니다. 당사에서는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합니다. 다시 한 번 박유천의 입소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 가져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소속사 공식입장 “조용한 입소 원해…본인 의사 존중”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소속사 공식입장 “조용한 입소 원해…본인 의사 존중”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소속사 공식입장 “조용한 입소 원해…본인 의사 존중”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그룹 JYJ 멤버이자 배우 박유천이 오는 27일 비공개로 군에 입대한다. 박유천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11일 “오는 27일 박유천의 입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그러면서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박유천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복무할 예정이다. 다음은 소속사의 공식입장 전문. ●오는 27일 입소를 앞두고 있는 박유천의 입소 취재 관련하여 많은 문의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박유천의 입소 취재는 비공개로 진행하게 되어 기자님들께 양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조용히 입소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는 물론 훈련소 측에서도 미디어 라인 취재가 어렵다는 의견을 종합하여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취재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점을 고려해 비공개로 결정하게 된 점, 다시 한 번 양해 말씀 드립니다. 당사에서는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합니다. 다시 한 번 박유천의 입소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 가져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개최?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개최?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마지막 팬미팅 김준수와 함께…언제 개최? 그룹 JYJ 멤버이자 배우 박유천이 오는 27일 비공개로 군에 입대한다. 박유천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11일 “오는 27일 박유천의 입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그러면서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박유천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복무할 예정이다. 다음은 소속사의 공식입장 전문. ●오는 27일 입소를 앞두고 있는 박유천의 입소 취재 관련하여 많은 문의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박유천의 입소 취재는 비공개로 진행하게 되어 기자님들께 양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조용히 입소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는 물론 훈련소 측에서도 미디어 라인 취재가 어렵다는 의견을 종합하여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취재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점을 고려해 비공개로 결정하게 된 점, 다시 한 번 양해 말씀 드립니다. 당사에서는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합니다. 다시 한 번 박유천의 입소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 가져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소속사 공식입장 “조용히 입소하길 원해”

    [전문]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소속사 공식입장 “조용히 입소하길 원해”

    [전문]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소속사 공식입장 “조용히 입소하길 원해” 박유천 27일 비공개 입소 그룹 JYJ 멤버이자 배우 박유천이 오는 27일 비공개로 군에 입대한다. 박유천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11일 “오는 27일 박유천의 입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그러면서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박유천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복무할 예정이다. 다음은 소속사의 공식입장 전문. ●오는 27일 입소를 앞두고 있는 박유천의 입소 취재 관련하여 많은 문의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박유천의 입소 취재는 비공개로 진행하게 되어 기자님들께 양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조용히 입소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는 물론 훈련소 측에서도 미디어 라인 취재가 어렵다는 의견을 종합하여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취재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점을 고려해 비공개로 결정하게 된 점, 다시 한 번 양해 말씀 드립니다. 당사에서는 오는 25일, ‘2015 JYJ MEMBERSHIP WEEK’ 팬미팅을 통해 박유천과 김준수가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소속사 측도 입소 전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조용히 입소하고자 하는 박유천의 의견을 존중하려 합니다. 다시 한 번 박유천의 입소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 가져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취업 ‘블루오션’ 특성화 학과를 가다] 초당대 항공계열

    [취업 ‘블루오션’ 특성화 학과를 가다] 초당대 항공계열

    “엔진출력 2000, 고도 4000피트, 비행 조건 양호, 무안공항에 바람이 16노트로 불고 있지만 엔진, 시스템 등 이착륙에는 문제없습니다.” 6일 전남 무안 초당대 미래관 2층 모의비행 시뮬레이터실. 항공운항학과 2학년 박세훈(23·12학번)씨가 3차원(3D) 모의 비행훈련장치 ‘DA40 FSTD’의 조종스틱을 잡으면서 비행 상황을 보고했다. 교관이 비행을 승인하자 박씨의 생애 첫 비행이 시작됐다. 외부 상황과 동일한 조건으로 만들어진 ‘FSTD’는 실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과 똑같이 박씨의 조작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륙은 매끄러웠다. 이론교육 때 배운 대로 복잡한 기기를 조작했고, 뒤에서 박씨를 지켜보고 있던 교관은 계속해서 비행 절차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조작할 것이 많아 복잡하고 어렵게 여겨졌던 착륙까지 1시간 동안의 첫 비행을 무난하게 마쳤다. 이번 여름방학 학교 비행교육원에 들어온 박씨가 국토교통부가 발행하는 ‘사업용조종사 면장(면허증)’ 획득을 위해 필요한 200시간 비행(모의 10시간, 실제 190시간)의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박씨는 “이론교육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막연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라며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감이 생겼고 실제 비행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앞으로 10년 동안 국제항공 여객시장이 매년 5%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항공업계는 향후 2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53만 3000명에 이르는 조종사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국내 항공기 조종사 수는 총 5300명으로 5년 전보다 40% 이상 증가했다. 항공사들은 올해도 조종사 채용 규모를 전년 대비 최고 50% 이상 늘려 잡고 있다. 이처럼 항공업계의 밝은 취업 전망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대학에 항공운항과가 줄줄이 생겨났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지원 경쟁률도 다른 과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비행실습이 가능한 자체 비행장을 갖춘 곳은 항공운항과가 있는 10개 대학 중 한서대와 한국항공대, 그리고 초당대가 전부다. 다른 대학들은 비행실습을 대부분 관련 기관들과 업무 제휴로 해결한다. 이런 측면에서 초당대의 항공계열에 대한 투자는 주목할 만하다. 2012년 초당대는 4년제 일반대 전환과 동시에 항공계열 3개 학과(항공운항, 항공정비, 항공운항서비스)를 신설하고 ‘우주항공특성화대학’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학교 새 출발의 선두에 항공계열을 내걸었던 것이다. 지난해에는 무안국제공항 내에 별도의 이착륙 전용 활주로를 갖춘 ‘콘도르 비행교육원’을 열었다. 또 한 대당 5억원이 넘는 오스트리아 다이아몬드사의 최신예 비행기 8대(단발기 7대, 다발기 1대)를 장만했고 10억여원을 들여 3D 모의 비행훈련장치도 구축했다. 여기에 비행 조종에서 가장 중요한 이착륙 교육을 위해 전남 해남군 산이면에 위치한 농어촌 활주로까지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적 인프라뿐 아니라 28년간 공군사관학교에서 파일럿을 키워 온 윤용현 교수를 영입해 맨파워도 강화했다. 학과장인 윤 교수는 “실제 공항과 최첨단 항공기를 통한 살아 있는 현장실습은 직업 조종사로서 기량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최고의 실습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운항학과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이론 155시간, 비행 20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는다. 졸업과 동시에 직업 조종사의 최소 요구 조건인 사업용조종사 면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의 선택이나 노력에 따라 계기비행증명, 다발한정, 조종교육 증명, 경력추가 과정 등도 밟을 수 있다. 조종교육 증명 과정을 밟을 경우 비행교관 자격을 취득하고, 별도의 평가를 통과하면 비행교관으로 근무할 수도 있다. 항공운항학과 4학년 최승환(22·12학번)씨는 1학년 때 역대 최연소 공군 조종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4년 동안 군으로부터 등록금을 지원받았고 교육비도 절반만 냈다. 내년 3월 공군에 장교로 입대하는 그는 이미 비행 156.9시간을 채웠다. 40여 시간만 더 비행하면 사업용조종사 면장을 쥐고 소위 계급장을 달게 된다. 또 이후 13년 동안 군 장교 생활을 하면서 전투기 비행 경력을 쌓게 된다. 내년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항공운항서비스학과는 이미 아시아나항공 스튜어디스 공채 합격자 3명을 배출했다. 초당대가 국내 4년제 일반대 가운데 최초로 개설한 항공정비학과 역시 정비기체실습장, 엔진실습장, 항공장비실습장 등을 구축하고 실무실습 중심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무안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열린세상] 경제도 아픈 만큼 성장한다/이용걸 세명대 총장·전 기획재정부 차관

    [열린세상] 경제도 아픈 만큼 성장한다/이용걸 세명대 총장·전 기획재정부 차관

    최근 세계 경제 전망이 하향 조정되는 등 세계 각국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든 국가들이 단기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는 선진국 진입을 추구하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등 경제성장이 예상보다 저조할 것으로 추정되고, 미국은 과감하게 추진해 온 양적완화 정책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이다. 유럽은 그리스 위기의 급한 불은 잡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성장동력도 미약하다. 장기적인 측면을 보더라도 20세기 이후 선진국에 새로 진입한 나라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지난 몇 세기를 되돌아보면 한때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던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경쟁력이 낮아진 경험이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비슷하다.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은 풍부한 지하자원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신생 국가들은 제각각 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 당시만 해도 어떤 정책이 더 효율적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경제정책만 보더라도 수출 중심 또는 수입대체산업 중심, 경공업 또는 중화학공업 중심,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 또는 시장중심의 경제정책 등을 놓고 다양한 조합으로 추진됐다. 각국이 활용 가능한 정책, 효율성에 대한 정보는 어떤 의미에서 제한적이었다. 요즘은 상황이 상당히 바뀌었다. 어떤 국가가 국가 발전을 위한 정책 컨설팅을 세계 굴지의 컨설팅 회사에 의뢰하면 아마 수천, 수만 쪽의 보고서가 제출될 것이다. 그 속에는 교육, 산업, 통화, 재정정책 등 그 나라 여건에 맞는 수많은 정책이 제시될 것이다. 컨설팅 결과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면 국가 발전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 국가가 이러한 컨설팅 결과에 따른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먼저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둘째, 국민이 장기적인 성과보다는 단기적인 고충을 참기 어렵고 이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이런 일화를 들었다. 어느 대학에서 4개 학과의 기본 실험장비 구입비로 각각 연 500만원씩, 4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각 학과장은 연 500만원으로는 제대로 된 장비 구입이 어려우므로 1개 학과에 순차적으로 집중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오랜 논의 끝에 애초대로 학과당 연 500만원을 집행하기로 했다. 전체를 모으면 어느 학과부터 먼저 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하기 어려웠고 학과장들은 자신의 양보를 학과 교수 및 학생에게 설득할 자신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누구도 비판받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잘된 결정과 그렇지 않은 결정의 성과는 상당 기간이 지나야 나타나고 실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칙과 같이 연금, 교육, 의료정책 등 많은 개혁은 불가피하게 모든 또는 일부 국민에게 양보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이를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래서 현실 정치에서는 어려움을 돌파하기보다는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함으로써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980년대 후반 우드로 윌슨 연구소가 주최한 국가 흥망 관련 세미나에서 한 발표자는 미국의 국가경쟁력 약화 원인은 “미국 정부가 국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규율과 희생을 국민에게 요구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위대함은 쉽게 사라지고 신은 항상 미국인의 편이 아니며, 번영이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라는 말을 미국민이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 왔고 많은 국가, 학자들이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혹시 우리는 무엇을 하든, 또 잠시 멈춰 서더라도 이러한 성공 신화가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성공은 쉽게 사라지고 번영은 자연법칙이 아니다’라는 말이 지금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교훈이다. 국민의 희생, 아픔이 불가피한 개혁만이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물려받은 번영을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아픈 만큼 우리 경제도 성장할 것이다.
  • 임시공휴일 지정, 14일부터 3일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우리회사도 쉬나 봤더니?

    임시공휴일 지정, 14일부터 3일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우리회사도 쉬나 봤더니?

    임시공휴일 지정, 14일부터 3일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우리회사도 쉴까? ‘14일 임시공휴일 지정,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8월 14일 임시공휴일 지정이 확정됐다. 광복절 전날인 오는 14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된다. 이날 민자도로를 포함한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통행료가 면제된다. 오는 14~16일에는 주요 고궁, 국립자연휴양림, 국립현대미술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4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14일 임시공휴일 지정 등의 내용을 담은 ‘광복 70주년 계기 국민사기진작방안’을 마련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광복절 전날인 오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이 의결됐다. 정부는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민원 서비스 공백을 최소화 하는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또 14일 임시공휴일 지정과 함께 국내여행 활성화를 위해 14일 하루 동안 민자 도로를 포함한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하이패스차로는 요금징수시스템을 정비해 통행료를 면제하고, 일반차로의 경우 수납원에게 통행권만 제시하고 무료 통과하면 된다. 한국도로공사의 하루 평균 통행료는 124억원이며 민자법인은 35억원 수준이다. 민자도로 통행료는 정부가 보전해줄 예정이다. 철도공사의 만 28세 이하 대상 무제한 철도이용 상품인 ‘내일로’를 오는 8일부터 31일까지 24일간 50% 할인하고, 기초생활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만 28세 이하) 경우에는 이를 무료로 제공한다. ‘내일로’는 패스형 철도여행 상품(7일권 6만2700원, 5일권 5만6500원)으로 만 28세 이하가 구입대상이며 해당 기간 동안 ITX-청춘·새마을·무궁화·누리로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14일 임시공휴일부터 시작해 16일까지 연휴 기간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 고궁과 종묘, 주요 조선왕릉, 41개 국립자연휴양림, 국립현대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운동장·강당·회의실 등 공공시설도 같은 기간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또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오는 21일부터 열기로 했던 ‘코리아 그랜드 세일(KOREA GRAND SALE)’을 오는 14일부터 앞당겨 실시하고, 경제계의 협조를 얻어 참여업체와 품목 등을 확대하기로 했다. 코리아 그랜드 세일은 외국인 대상의 쇼핑축제로 국내 주요 백화점과 할인점, 호텔, 식당 등 150개 업체의 3만개 업소가 참여해 다양한 할인혜택을 준다. 한편 14일 임시공휴일 지정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부기관 등은 14일 임시공휴일을 법적 공휴일로 쉴 수 있고, 민간의 동참 여부는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돼 있다. 사진=서울신문DB(14일 임시공휴일 지정,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성소수자 지키기 나선 오바마 정부

    케이틀린 제너의 성전환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을 더 받게 된 것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정책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 성소수자인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의 인권 문제를 언급하면서 정부 정책이 이들의 인권을 위해 나아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6월 3일 성명을 통해 해마다 6월을 ‘성소수자의 달’로 선포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 성소수자 발언은 실질적 조치로 이어졌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 2월 23일 LGBT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막는 임무를 수행하는 ‘성소수자 인권 특사’에 랜디 베리 전 네덜란드 총영사를 임명했다. 미국 정부가 전 세계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인권 문제를 위해 활동하는 특사를 임명한 것은 처음이다. 케리 장관은 “많은 정부가 성소수자의 자유를 막는 법안을 발의하고 75개국 이상이 여전히 동성애를 범죄시하고 있다”며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의 동등함과 존엄성을 주장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오바마 정부가 지지하는 동성결혼도 연방대법원이 6월 26일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50개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대법원의 결정은 모든 미국인의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소수자의 군 입대·복무 정책도 진일보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사람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ADT) 정책을 폐기했으나 성전환자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가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지난 2월 취임 후 성전환자 입대 문제에 대해 “열려 있는 입장”이라며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책이 급물살을 타면서 카터 장관은 지난달 13일 성명을 내고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현행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라며 사실상 허용 방침을 밝힌 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6개월 동안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14일 임시공휴일 확정,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미술관 고궁 무료 입장

    14일 임시공휴일 확정,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미술관 고궁 무료 입장

    14일 임시공휴일 확정,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미술관 고궁 무료 입장 ‘14일 임시공휴일’ 8월 14일 임시공휴일 지정이 확정됐다. 광복절 전날인 오는 14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된다. 이날 민자도로를 포함한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통행료가 면제된다. 오는 14~16일에는 주요 고궁, 국립자연휴양림, 국립현대미술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4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광복 70주년 계기 국민사기진작방안’을 마련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광복절 전날인 오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이 의결됐다. 정부는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민원 서비스 공백을 최소화 하는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또 14일 임시공휴일 지정과 함께 국내여행 활성화를 위해 14일 하루 동안 민자 도로를 포함한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하이패스차로는 요금징수시스템을 정비해 통행료를 면제하고, 일반차로의 경우 수납원에게 통행권만 제시하고 무료 통과하면 된다. 한국도로공사의 하루 평균 통행료는 124억원이며 민자법인은 35억원 수준이다. 민자도로 통행료는 정부가 보전해줄 예정이다. 철도공사의 만 28세 이하 대상 무제한 철도이용 상품인 ‘내일로’를 오는 8일부터 31일까지 24일간 50% 할인하고, 기초생활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만 28세 이하) 경우에는 이를 무료로 제공한다. ‘내일로’는 패스형 철도여행 상품(7일권 6만2700원, 5일권 5만6500원)으로 만 28세 이하가 구입대상이며 해당 기간 동안 ITX-청춘·새마을·무궁화·누리로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14일 임시공휴일부터 시작해 16일까지 연휴 기간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 고궁과 종묘, 주요 조선왕릉, 41개 국립자연휴양림, 국립현대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운동장·강당·회의실 등 공공시설도 같은 기간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또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오는 21일부터 열기로 했던 ‘코리아 그랜드 세일(KOREA GRAND SALE)’을 오는 14일부터 앞당겨 실시하고, 경제계의 협조를 얻어 참여업체와 품목 등을 확대하기로 했다. 코리아 그랜드 세일은 외국인 대상의 쇼핑축제로 국내 주요 백화점과 할인점, 호텔, 식당 등 150개 업체의 3만개 업소가 참여해 다양한 할인혜택을 준다. 정부는 광복70년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4일 서울광장에서 한류 스타들이 참여하는 ‘K-POP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광복절을 전후로 전국 7개 권역에서 전야 또는 당일 공연과 불꽃놀이, 콘서트 등 문화행사를 열 계획이다. 한편 14일 임시공휴일 지정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부기관 등은 14일 임시공휴일을 법적 공휴일로 쉴 수 있고, 민간의 동참 여부는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돼 있다. 사진=서울신문DB(14일 임시공휴일)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위안부 없는 곳 없었다… 싱가포르·인니 섬 어딜 가도”

    “위안부 없는 곳 없었다… 싱가포르·인니 섬 어딜 가도”

    “어딜 가도 (조선인) 위안부가 없는 데가 없었습니다. 싱가포르에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도 다 있었어요. 수마트라 팔렘방 지역에는 제1명월관, 제2명월관 두 곳에 나뉘어 있었는데 그곳을 한국인 형제가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1993년 8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공식 인정한 ‘고노 담화’ 발표 22주년을 하루 앞둔 3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군무원으로 전범 재판을 받았던 한국인의 육성 증언 영상이 처음 공개됐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싱가포르에서 B·C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던 일본군 군무원 출신 송복섭(작고)씨가 1990년대 초 증언한 인터뷰 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송씨는 생전에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의 조선인 위안부 61명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송씨는 영상에서 “수마트라섬 팔렘방 지역에는 한국인 위안부들이 ‘제1명월관’, ‘제2명월관’이라는 두 곳에 나뉘어 있었다. 군인들이 치른 요금은 50전이었고, 문 앞에도 ‘한 발(一發)에 50전’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명월관 운영자는 송씨 성을 가진 한국인 형제로, 이들이 일본군의 ‘끄나풀’이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 형제는 일본 패망 후 조선인회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가서 매를 맞았다고 말했다. 위안부들이 종전 후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가 자신이 돌봐 줬던 영국군 포로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송씨는 “담배와 커피를 몰래 가져다 주면서 친분을 쌓았던 영국군 포로인 리즈 중령이 아프리카에서 날아와 나를 위해 증언해 줬다”며 “이후 무죄로 풀려났는데 싱가포르에서 재판받은 한국인 중 무죄로 풀려난 사람은 두 명뿐이라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무죄 판결 이후에도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법정에 다시 섰던 송씨는 계속해서 감금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는 1947년 5월 일본 사세보로 갔다가 부산을 거쳐 고향인 전남으로 귀환했다고 진술했다. 유족회에 따르면 송씨는 1940년대 초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 일본군 군무원으로 입대, 인도네시아에서 포로 감시원과 보급병 등으로 일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팔렘방 지역의 자치조직인 ‘조선인회’에서 감찰 역할을 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군사법원에 첫 그림 전시

    군사법원에 첫 그림 전시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이 지난 22일부터 대법정과 소법정에 장창익 화백의 그림 12점을 전시 중이라고 30일 밝혔다. 군사법원에 그림이 전시되기는 처음이다. 이날 법원을 방문한 청중들이 소법정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장 화백은 입대 4개월 만에 지뢰를 밟아 왼발과 왼쪽 눈을 잃고 전역한 후 그림을 통해 아픔을 극복한 화가로 꽃과 나무, 풀을 즐겨 그려 왔다. 2013년 ‘갤러리 평창동’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고 같은 해 충남 계룡대의 육·해·공군본부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국방부 제공
  • 1000만원짜리 사망보험 군에서 내준다

    사망 시 1000만원, 장애 시 500만원 이내 보장. .전북 완주군은 재해나 교통사고로 군민이 다치거나 죽으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군민안전보험’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31일 밝혔다. 군민안전보험의 보장범위는 폭발·화재·붕괴·산사태 사고와 대중교통이용 중 사고로 크게 2가지 유형이다. 가입대상은 완주군에 주민등록을 두고 사는 모든 군민으로 가입비는 없으며 납입금은 대신 군에서 모두 부담한다. 또 별도 보험 가입절차 없이 자동으로 보험수익자가 되며 완주지역 외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보험금은 사고발생 때 피보험자 또는 법정 상속인이 보험기관에 청구서를 제출하면 피해조사 후 지급받을 수 있다. 군은 보험금 지급을 위한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 안전보험에 가입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PGA, 배상문 전역 후 출전 1년 보장

    PGA, 배상문 전역 후 출전 1년 보장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가 군 복무를 앞둔 배상문(29)에게 전역 후 1년간 출전권을 보장해 주기로 했다. 미국 골프 전문매체 골프채널은 30일 “PGA 투어가 지난 28일 PGA 투어 퀴큰 론스 내셔널이 열리고 있는 버지니아주 게인즈빌에서 정책위원회를 열고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선수들에 대한 시드권 보장 규정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배상문과 같이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선수들에 대해 부상 등에 따른 ‘병가’와 같은 개념으로 시드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2016~2017시즌 출전권을 갖고 있는 배상문이 올해 입대할 경우 2017년 중에 전역하게 된다. 2016~17시즌 정규 대회는 2017년 8월에 끝나기 때문에 배상문은 입대와 함께 사실상 PGA 투어 출전권도 소멸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 정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배상문은 2017년 전역하더라도 이후 1년간 출전권이 보장되면서 2017~2018시즌에 곧바로 출전할 수 있게 됐다. 배상문은 골프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까지는 마치려고 한다”며 “2014~2015시즌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가 군 복무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시즌 정규대회는 오는 8월 23일 막을 내리는 윈덤챔피언십으로 끝나고 이후 9월 말까지 플레이오프 대회가 이어진다.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은 9월 27일 끝나게 되는데, 배상문은 전체 일정 종료 직후 귀국해 입대 절차를 밟을 경우 10∼11월에 입대할 것으로 보인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유아인, 달라졌다… 이 눈빛

    유아인, 달라졌다… 이 눈빛

    “저도 나름대로 상업적인 애예요(웃음). 그동안 진짜 저라면 열두 번도 더 뛰쳐나갔을 선한 역할을 맡았을 뿐이지….” 유아인(29)은 기자를 긴장시키는 배우다. 달달 외운 듯한 모범 답안을 토해내는 여느 20대 스타들과 달리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답변을 내놓는다. 그의 이런 성향은 필모그래피에서도 드러난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밀회’, 영화 ‘완득이’, ‘깡철이’ 등에서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20대의 끝자락에서 전혀 예상 못했던 변신을 시도했다. 영화 ‘베테랑’(8월 3일 개봉)에서 동물적으로 죄를 짓는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맡아 ‘절대 악’을 빈틈없이 소화했다. “그동안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지닌 꿋꿋하고 건강한 청년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에 이번엔 그 이질감을 어떻게 좁힐지 걱정이 많았어요. 류승완 감독님도 처음엔 그 부분을 조심스러워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한두 번 튕겼죠(웃음). 악역은 역할을 안정적으로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20대 배우에게 기회 자체가 잘 안 가잖아요. 그래서 더 끌렸어요.” 소년처럼 천진하지만 ‘가난미’(불쌍해 보인다는 의미)가 흐른다는 얘기까지 종종 들었다는 유아인. 그러다 보니 아웃사이더, 비주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는 “나도 남들이 흔히 말하는 주류 영화를 하고 싶었고 유명 감독의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고 털어놨다. 이런 그에게 호쾌한 액션이 주를 이루는 범죄 오락 영화 ‘베테랑’은 ‘신의 한 수’처럼 보인다. “연기에는 베테랑이 없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베테랑인 줄 착각하게 되죠. 특히 악역은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는 패턴이 있기 마련인데 최대한 힘을 빼고 연기했어요. 아마 제 또래 중에 저처럼 연기에 힘주는 걸 경계하는 배우도 없을 거예요.” 어릴 적부터 평범함을 거부하는 그의 행보는 남달랐다. 연예인을 꿈꿨던 10대 소년 유아인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뒤 처음엔 솔로 가수를 준비했다. 2003년 KBS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에 캐스팅된 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연기에 매달렸다. “가수를 그만둔 이유요? 노래를 오죽 못하면 그랬겠어요(웃음).” ‘반올림’ 때는 아이돌 가수 같고 진짜 스타가 된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 작품 이후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혼란스러워서 고향으로 돌아가 한동안 배우를 계속 해야 되는지 고민에 빠졌어요.” 하지만 그는 독립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2010년 ‘성균관 스캔들’ 이후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그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런 사춘기 열병같은 시기를 잘 겪어냈기 때문이다. 이제는 치기 어린 ‘연예인 병’을 경계할 줄도 아는 성숙함도 생겼다. “‘베테랑’에서 태오가 환경이 만든 괴물이 된 것처럼 스타가 되면 주변의 친절과 배려 속에 충분히 ‘연예인 병’에 걸릴 수도 있죠. 하지만 제 주변에는 다행스럽게도 냉정한 독설과 직언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올 하반기 그의 행보는 단연 주목할 만하다. 9월 대선배 송강호와 호흡을 맞춘 영화 ‘사도’가 개봉하고 하반기에는 ‘대장금’ ‘뿌리깊은 나무’를 쓴 김영현 작가의 ‘육룡이 나르샤’로 안방극장에 컴백한다. 일각에서는 군 입대를 앞둔 포석이나 ‘완득이’ 이후 뚜렷한 흥행작을 내지 못하는 데 따른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도 않았어요. 제가 그리는 그림 안에서 동년배 배우들과 차별되는 경쟁력을 만들려고 계속 노력했으니까요. 하지만 서른을 목전에 두고 정체된 느낌을 벗고 다음 스텝을 밟고 싶었어요.” 그는 아직 20대지만 스타라는 말보다 배우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물론 대중으로부터 얻는 평가이기에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됐다. “제가 대단하게 잘생긴 꽃미남도 아니고 우직하게 연기를 하자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한류를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저도 배우로서 천만이라는 도장을 ‘쾅’ 찍고 싶은 마음이 물론 있죠. 지금 영화계는 30~40대 배우들의 전유물이고 20대 배우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젊은 배우가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6·25 전쟁. 우리에겐 너무나 아픈 역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시작으로 낙동강 방어, 서울 수복, 평양 탈환, 다시 1.4후퇴와 서울 수복으로 이어진 공방전은 한반도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장병 전사자만 16만명. 여전히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가 13만명에 달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전사자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군 8477명, UN군 13명,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 1189명 등 9500여명에 불과합니다. 정전협정일(7월 27일)을 맞아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그들의 사연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을 가면 특이한 묘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이름없는 묘’라고 불리는 묘비인데요. 묘비에는 ‘육군소위 김○○의 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부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예 새긴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 소위’의 묘라니, 무명용사의 묘비를 직접 보면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는데요. 현충원에서 유일한 이름없는 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14년 만에 찾은 전우 故 김수영 소위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지역인 안강지구의 도음산(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기세가 오른 북한군 12사단은 이 지역을 돌파해 포항을 손에 넣으려 했고, 수도사단이 주축이 된 우리 군은 병력을 정비해 맹렬하게 반격했습니다. 당시 한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황규만 소위는 이 치열한 전투의 중심에 있었죠. 전투로 녹초가 되다시피한 어느 날, 다른 부대의 소대장 김모 소위가 지원 병력으로 도착했습니다.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습니다. 두 사람과 소대 장병들은 힘을 합쳐 싸웠지만, 27일 안타깝게도 김 소위는 적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식으로 매장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황 소위는 김 소위의 주검을 능선 아래쪽 소나무 밑에 가매장한 뒤 돌로 표시하고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 황 소위는 진급을 거듭해 어느새 대령이 돼있었습니다. 1군 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전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직접 도음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산속을 헤맨 끝에 다행히 유해는 찾았지만 전우의 이름을 알 길이 없었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한 끝에 1964년 5월 29일 국립묘지 제54묘역 1659호에 이름없는 전우의 유해를 안장하게 됩니다. 황규만씨는 준장까지 오른 뒤 1976년 예편했지만, 단 한시도 이름없는 전우의 묘비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년 11월 드디어 가족과 이름을 찾았습니다. 고(故) 김수영 소위. 비극적인 역사와 전우애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그의 묘비는 지금도 여전히 ‘육군소위 김○○의 묘’로 남아있습니다. 6·25 전쟁에 형제가 나란히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례도 있습니다. 전사한 지 60년 만에 만나 현충원에 묻힌 고 이만우 하사와 이천우 이등중사, 65년 만인 올해 나란히 묻힌 고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가 그들입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우, 이천우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과 9월 차례로 자원입대했습니다. 형과 동생의 나이는 각각 21세와 18세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창 공부에 매진하거나 한껏 젊음을 누릴 나이지만, 형이 먼저 입대한 뒤 홀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남매의 막내인 동생도 기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뒤를 따랐습니다. ●홀어머니 만류도 뿌리치고 형과 함께 군으로 형은 1사단, 동생은 7사단 소속으로 두 사람 모두 서울 수복에 이어 북진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1년 5월 경기 고양지구 봉일천 전투에서 형이 먼저 전사한 데 이어 9월에는 동생도 강원 양구군의 백석산 탈환을 앞두고 무명 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들이 1년 남짓 참전기간 동안 군화를 신고 걸었던 거리는 3400km. 서울과 부산을 4번 가까이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두 형제는 싸우고, 또 싸우며 걸었습니다. 형은 1960년 5월 서울현충원에 몸을 누일 수 있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강산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쓸쓸히 차디찬 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현충원에서 안식처를 찾은 형조차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음해 두 사람은 현충원에 나란히 묻혔고, 가족들도 소중한 유품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호국형제의 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강영만 하사와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의 합동안장식이 열렸습니다. 두 번째 형제의 묘입니다. 강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횡성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8월 북한군 1만여명과 일주일 동안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죠. 동생인 강영안 2등 상사는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1월에 입대해 2사단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김화읍 부근에서 벌어진 저격능선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고지를 빼앗으려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한 저격능선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 전쟁 2대 격전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동생 강 이등상사의 유해는 전투 직후 수습돼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었지만 형의 유해는 찾지 못해 위패만 있었죠. 형제는 65년 만인 올해 현충원에서 유골로나마 서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박격포탄 들고 육탄으로 백마고지 탈환에 나서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면 1952년 10월 강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육탄 3용사상’이 있습니다.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인 고 강승우 소위와 부하였던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395고지(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적의 기관총 진지로 접근했습니다. 오규봉 일병이 먼저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돌격했고, 안 일병과 강 소위가 엄호사격을 했습니다. 강 소위는 직접 박격포탄과 TNT를 들고 기관총 진지 7m 지점까지 접근했고, 폭발물을 던지는 순간 총상을 입었지만 안 일병이 다시 주워 진지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후 오 일병도 진지 안에 수류탄을 던졌고, 세 사람은 현장에서 산화했습니다. 9사단은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고지를 탈환했죠. 이후 강 소위는 중위로, 오 일병과 안 일병은 각각 하사로 추서됐습니다. 강 중위와 안 하사는 고향과 모교에서 추모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직계 자손이 없었던 오 하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국가 유공자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변변한 추모비조차 없었죠.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동생으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9사단 관계자와 전우회 등이 2013년 1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이고 고향인 천안시에서 부지를 제공해 그 해 오 하사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정규군조차 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학도병의 슬픈 사연도 많습니다. 특히 1950년 8월 포항여중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사단 김석원 준장의 명성을 듣고 온 학도병 수백명 가운데 71명은 김 준장이 3사단으로 옮기자 함께 싸우겠다며 8월 8일 포항으로 왔습니다. 이들은 변변한 무장도 하지 못한 빈몸이었습니다. 3사단은 학도병 1명당 미 해병대에서 받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지급했죠. 이들은 9일부터 사단 후방지휘소가 있는 포항여중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연락장교와 소규모 지원인력만 있었을 뿐 전투병은 모두 전방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장 지휘소로 적군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용은 일부 각색돼 영화 ‘포화속으로’의 소재가 되기도 했죠. 일부 학도병은 소년원에 가기 싫어 끌려온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군번은 없었지만 모두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었죠.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학도병들의 비극 비극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11일 새벽 4시 30분부터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진격해오는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적이 학교 앞 50m 지점까지 다가오자 학도병들의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20여명을 잃은 북한군은 해가 뜨자 전열을 정비해 공격했고, 학도병들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실탄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무기 창고를 부순 뒤 수류탄 약간과 실탄을 다시 확보해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북한군은 장갑차 5대를 동원해 전진했고, 그 중 2대가 학교 정문으로 돌입하며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실탄이 떨어진 학도병들은 적이 눈 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려 수류탄을 던지며 분전했지만 결국 48명이 전사했습니다. 6명은 부상당했고 4명이 실종, 13명은 포로가 됐습니다. 포로가 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탈출했지만 2명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3사단 지휘부와 포항 시민들은 학도병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무사히 남쪽으로 대피했고, 14일 전열을 재정비한 1군단이 다시 포항을 탈환하게 됩니다. 전사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대원의 옷속 수첩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절절한 내용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래는 편지 내용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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