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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녀의 벽’ 또 깨졌다… 사우디, 24일부터 여성운전 허용

    ‘금녀의 벽’ 또 깨졌다… 사우디, 24일부터 여성운전 허용

    군입대 이어 또 하나의 새 역사 여성 인권운동가 구금에 비난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운전 행위를 금지해 온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국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처음으로 여성 운전면허증을 발급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지난해 9월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칙령을 내린 지 8개월 만이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 등은 4일(현지시간) 사우디 교통총국의 발표를 인용해 “여성들에게 사우디 운전면허증이 발급됐다”고 보도했다. 알아라비야는 “사우디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졌다”고 평가했다. 운전면허를 손에 쥔 이들은 미국, 영국, 캐나다, 레바논 등지에서 국제면허증을 취득한 10명으로 사우디 각 지역의 교통총국에서 시험과 검사 등을 거쳤다. 사우디 문화정보부의 국제커뮤니케이션센터(CIC)는 “다음주에 약 2000명의 여성에게 운전면허를 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제면허증으로 레바논, 스위스 등에서 운전을 했던 레마 자우다트는 사우디 당국의 운전면허증을 받고 “나에게 운전이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선택권을 뜻한다”며 감격했다. 그러나 아직 여성의 운전이 허용된 것은 아니다. 사우디는 면허 발급 절차를 일단락하는 오는 24일부터 여성이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할 방침이다. 현재 면허 취득을 희망하는 여성들은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차량공유서비스 우버 등 취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왕국이 여성 운전을 허용한 결정에는 개혁 군주를 자처하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여성 인권을 신장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놨다. 지난 1월에는 여성의 축구경기장 입장을 허용했고 2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군 입대를 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그럼에도 사우디 사법당국은 여성의 운전할 권리를 위해 싸운 여성 운동가 등 17명을 사회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사우디 검찰은 지난 2일 이들 중 8명을 임시로 석방했지만 9명에 대해서는 “위협의 증거가 충분하다”는 이유를 들어 여전히 구금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엔 인권사무소는 “여성 인권 문제를 위한 활동 때문에 운동가들을 구금했다면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사우디의 인권 운동가들과 시민들이 체포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논평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양현석 “빅뱅 승리 단독 콘서트” 개츠비 안 부러운 ‘더 그뤠잇 승리’

    양현석 “빅뱅 승리 단독 콘서트” 개츠비 안 부러운 ‘더 그뤠잇 승리’

    YG엔터테인먼트 수장 양현석이 빅뱅 승리의 단독 콘서트를 알렸다.양현석은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BIGBANG #빅뱅 #SEUNGRI #승리 #THE_GREAT_SEUNGRI_CONCERT #YG”라는 글과 함께 승리의 단독 콘서트 포스터를 게재했다. 포스터 속 승리는 정장에 나비 넥타이까지 한 모습으로 카리스마 눈빛을 내뿜고 있다. 앞서 승리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처럼 셀럽의 삶을 표방해왔다. 이번 단독 콘서트의 ‘THE GREAT SEUNGRI’라는 제목 또한 ‘THE GREAT GATSBY’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승리의 첫 단독 콘서트 ‘SEUNGRI 2018 1st SOLO TOUR [THE GREAT SEUNGRI] IN SEOUL’은 오는 8월 4일~5일 오후 6시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다. 팬클럽 선예매는 오늘(5일) 오후 8시에 진행되며, 일반 예매의 경우 6월 21일 오후 8시 옥션티켓을 통해 예매 가능하다. 입대 전까지 활발한 활동을 예고한 승리는 7월 초 정규 1집 앨범을 통해 가요계에 컴백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빅뱅 승리, 8월 장충체육관서 첫 단독콘서트 개최 ‘승승장구’

    빅뱅 승리, 8월 장충체육관서 첫 단독콘서트 개최 ‘승승장구’

    그룹 빅뱅(BIGBANG) 승리가 첫 단독콘서트를 연다. 4일 한 매체는 그룹 빅뱅 멤버 승리(29·이승현)가 단독콘서트를 개최한다고 전했다. 이는 데뷔 12년 만에 첫 솔로 콘서트로, 오는 8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진행된다. 한편 승리는 같은 그룹 멤버인 탑, 지드래곤, 태양, 대성이 연이어 입대를 하면서 혼자 활동하고 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연달아 출연하는가 하면 오는 7월 솔로 컴백을 앞두고 준비 작업에 매진 중이다. 또 오는 8~9월에는 일본 3개 도시를 돌며 투어 공연을 한다. 사진=승리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중국서 뺨맞은 기자, 트럼프 보좌관으로 일한다

    중국서 뺨맞은 기자, 트럼프 보좌관으로 일한다

    전직 베이징 특파원들이 중국에 가장 적대적인 정책을 펴는 미국과 호주에서 관료로 일하며 중요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인 매트 포팅어(45)다. 포팅어는 미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로이터통신에서 3년 기자 생활을 한 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합류해 2001년부터 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약했다. 그가 WSJ에서 미 해병대로 전직하기 직전에 쓴 ‘펜보다 강하다’란 칼럼을 보면 베이징 특파원들이 얼마나 중국 정부로부터 혹독한 대접을 받는지 잘 드러난다.  7년간 중국에서 지낸 포팅어는 중국 정부가 핵연료를 다른 나라에 판다는 내용을 취재하다가 스타벅스에서 정부 관련자로부터 얼굴을 맞았다. 지방을 돌며 관리들의 부패상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취재수첩을 일일이 찢어 변기에 흘려보내야만 했다. 포팅어는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던 중 31살의 나이에 미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심하고 5년간 근무했다.  해병대 근무를 시작하기 전 포팅어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 서방의 시각은 이방인일 뿐이다”라며 “언론 자유와 투표권이 없는 중국에서 근무하며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미국을 보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다”고 전했다. 현재 포팅어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에 동행하고, 대북 정책에 대한 백 브리핑을 하는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외교 정책을 세우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호주는 중국을 겨냥한 내정간섭 금지법을 추진하는 등 지구 상에서 가장 중국과 불화하는 국가다. 외국 스파이의 정치 로비 활동 등을 금지한 내정간섭 금지법의 토대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전직 베이징 특파원으로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페어팩스 미디어에서 일했던 존 가노다. 호주 국가안보 정보기구(ASIO)에서 말콤 턴불 호주 총리의 자문관으로 2년간 일했던 가노는 지금은 공무원 신분을 벗어나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지난해 베이징 외신기자협회(FCCC)는 ‘접근 금지’란 연례 취재 환경 보고서를 펴냈다. 모두 218명의 회원 가운데 117명이 설문에 응답했으며 이 가운데 40%가 취재환경이 전년보다 악화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6년 보고서의 29%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중국 정부의 취재 활동 제한은 비자 발급 거부, 감시, 구금 등으로 이뤄지며 특히 신장 자치구와 북한 접경지대에서 취재 거부를 당한 사례가 많았다.  두 명의 전직 베이징 특파원을 모두 잘 아는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 정부는 전직 베이징 특파원들이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만약 중국이 특파원들에게 좀 더 나은 대접을 했다면 이들의 중국에 대한 강경한 시각이 바뀔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1953년 가을, 부친은 큰아들 유골함을 받고 대성통곡하셨다”

    “1953년 가을, 부친은 큰아들 유골함을 받고 대성통곡하셨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김우종 ▲인천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해병 6기로 참전·전사 (군번 9210662) 김우종(17세 참전·18세 전사)1933년 4월 10일 : 인천 영종도 중산리 출생1947년 : 인천영종국민학교 졸업(제24회)1950년 12월 18일 : 인천중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인천을 출발하여 마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감.1951년 1월 24일 : 마산에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해 참전.1951년 8월 31일 : 강원도 월산령 김일성고지에서 전사.아랫글은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유골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월간 서해문화 2002년 1월호에 ‘불멸의 꽃!’으로 기고한 글이다. 고(故) 김우종은 전사하였기 때문에 아래의 글로 ‘김우종 참전기’를 대신한다. ‘불멸의 꽃!’ (6·25 전사 인천 학생 사연) 인천학생·스승 6·25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에서는 1996년 7월 15일 창립 이래로 그동안 제보를 받거나 혹은 기록을 찾아 많은 6·25 전사 인천 학생들을 찾았으나 아직도 미확인 6·25 참전 전사 인천 학생들이 많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확인된 전사자의 묘지를 기록에 담기 위해 본 편찬위원회에서는 그 기록의 정확성을 기하고자 여러 차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은 바 있으며 전사자 위패 또한 일일이 확인하였다. 인천 각지에 흩어져 잠들고 있는 6·25 참전 전사 학생들에 대하여 월간 서해문화에 ‘불멸의 꽃! 6·25 전사 인천학생’으로 연재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6·25 전사 인천 학생 묘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점차 잊혀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우리들이 한 번쯤 함께 그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억하는 것이 뜻 있는 길이라 기록한다.고향에 돌아온 6·25 전사 인천 학생들 유골 1950년 6·25 사변 발발 후 전쟁이 한창일 때 전사한 전사자들은 그 당시 전투가 워낙 치열했기에 정부에서는 일정한 묘지를 정하지 못하고 유골을 직접 유가족에게 전하였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부모님 품에 안기게 된 군대 갔던 아들들의 부모님들께서는 가슴이 베이는 마음으로 대성통곡하시고는 집 근처 아들이 놀던 양지바른 동산에 곱게 묻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부모님들은 거의 모두 돌아가시고 그 전사자의 형제들마저 노년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전사자들의 형제들은 5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6·25 사변 때 전사한 동생이나 형의 무덤을 더 이상 관리하기가 어려워 자신들의 마음이 무겁다면서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길을 본 편찬위원회에 문의해 오는 것이었다. 육군본부 민원실에 알아보았던 바 이장(移葬) 양식(월간 서해문화 1998년 9월호 게재)을 참고하여 대전 현충원까지 모시고 오면 대전 현충원 묘지에 안장할 수 있다는 대답을 받았다. 첫 번째 6·25 전사 인천 학생 유골 이장 국방부 이장 양식에 따라 대전 현충원 문 앞까지 가기까지의 일은 유가족 입장에서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어느 유가족이 국립묘지에 이장할 수 없는가 하는 물음이 있었다. 이에 본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원장은 국방부에 타진하여 이장 방법을 서해문화 1998년 9월호에 자세히 게재한 바 있다.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에 있는 해병 6기 전사자 김우종의 묘를 2001년 5월 27일에 국립묘지로의 이장하는 첫 번째 이장 계획을 수립하였다.故 김우종의 동생 김문종의 증언 고 김우종의 동생 김문종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 12월 18일 새벽에 김우종이 인천 영종도 집을 떠날 때 김우종 아버지는 “그 무거운 책은 왜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때 김우종은 “아버지 염려 마세요. 우리들은 남하하더라도 공부는 계속할 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김우종은 영종 나루터까지 걸어가서, 인천학도의용대 영종지대 대원들과 같이 나룻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가 인천축현국민학교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마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가서, 해병대 신병 모집에 응하여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였다.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묘 이장1953년 가을 아들의 전사통지서와 유골함을 받고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부친은 대성통곡을 하셨다. 그리고 마을 뒷산(인천 영종도 중산리 월촌) 양지바른 곳에 묻으시고 해마다 아들을 기리는 제를 지내주셨다. 1998년 3월 29일부터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에서는 김우종 유가족의 협조하에 국방부와 대전 현충원 등에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유골을 이장하는 것에 대하여 승인을 받는 노력을 하였다. 2001년 5월 27일 인천광역시 영종도에 묻혀 있는 김우종 전사자의 무덤을 열어 유골을 수습한 후 대전 국립 현충원 제1 묘역 제27구역 16129에 안치하였다. 6·25 전사 인천 학생 묘의 이장 사업 계획 인천 학생·스승의 6·25 참전 역사를 발굴하기 위하여 창립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김우종 전사자와 같이 아직도 고향 땅에 묻혀 있는 6·25 전사 인천 학생들의 유해를 국립묘지로 옮기는 이장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글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11회를 마치며 한때 인천에 6년제 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중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징병 모집에 대하여 한참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이었습니다. 인천중학교 4학년 김우종은 마산까지 저의 아버지와 같이 내려가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여 전사하였습니다.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이 학창시절을 보낸 옛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의 넓은 운동장은 아직도 김우종을 기억합니다. 김우종과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입대하셨던 저의 아버지께서는 언젠가 김우종이 공부했던 제물포 고교 운동장 한편에 김우종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큰아들인 이규원 치과 원장(6·25 참전사편찬위원장)이 사비 4억원을 들여서 6·25 전사 인천학생스승 추모관을 건립하여 인천 중구청에 기부채납하려는 제안을 인천 중구청은 거절하였다. 추모관 기부채납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6·25 참전 인천학생 이경종(현 85세)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때 자원입대·참전 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초대 관장
  • [씨줄날줄] 경영권 승계/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경영권 승계/이순녀 논설위원

    김정주(50) 넥슨 창업자가 그제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혀 화제다.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회사 NXC 대표인 그는 1000억원 재산의 사회 환원도 약속했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역사가 길지 않고, 대다수 창업자 나이도 50대 전후로 젊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아직 경영권을 대물림한 선례는 없다. 기업 오너가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이 당연시되는 국내 풍토에서 김 대표의 공개 선언이 IT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지 주목되는 이유다.김 대표는 2년 전 대학 동창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의 비상장 주식 매입대금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당시 1심 법정에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가와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되갚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등 외국 IT 기업은 전문 경영인 승계가 보통이다. 가족 경영이나 가업 승계가 흔치 않은 서구의 전통적인 기업 문화에 따른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세 자녀 대신 친구이자 동료인 스티브 발머에게 최고경영자 자리를 넘겼다. 그는 자녀들에게 재산도 조금만 물려주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뒤 팀 쿡을 CEO로 맞았다. 팀 쿡은 지난 2월 주주총회에서 “바통을 잘 넘겨주는 것은 (나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며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경영권 승계를 언급했다. 한진그룹 오너 3세의 갑질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무차별적인 경영권 대물림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재벌 부모를 뒀다는 이유 하나로 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 없이 경영 수업은 고사하고, 인격 수양조차 덜 된 철부지 3세, 4세들이 경영권을 제멋대로 휘두른 폐해는 애먼 회사 직원과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를 위해 상속세를 한 푼이라도 덜 내려는 재벌의 경영권 편법 승계 행태도 목불인견이다. 일감 몰아주기와 기업 자금의 불법 유출, 차명재산 운용, 변칙 자본거래 등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국세청은 어제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역외 탈세 행위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등 경영권 편법 승계 검증의 끈을 바짝 조이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나 가족 경영을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다만 가족 승계를 결정하기 이전에 자녀의 능력과 자질을 꼼꼼히 따지고, 상속세 등도 법대로 내야 한다. 그땐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coral@seoul.co.kr
  • ‘군면제 논란’ 서인국, 2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다

    ‘군면제 논란’ 서인국, 2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다

    ‘슈퍼스타K’ 출신 가수 겸 배우 서인국이 2년 만에 새 작품으로 돌아온다.30일 군면제 논란 이후 활동이 주춤했던 서인국(32)이 tvN 새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로 복귀한다. 이날 서인국 소속사 비에스컴퍼니 측은 “서인국이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 출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은 tvN에서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인 드라마로,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2002년 일본 후지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소라호시’를 원작으로 한다. 상대 배우로는 배우 정소민이 물망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서인국은 이번 작품으로 지난 2016년 MBC 드라마 ‘쇼핑왕 루이’ 이후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그는 서인국은 지난해 3월 군에 입대했다가 4일 만에 좌측 발목 거골의 골연골병변(박리성 골연골염) 사유로 귀가 명령을 받았다. 이후 재신체검사를 받고 5급(전시근로역) 병역 처분을 받아 군면제됐다. 이 과정에 ‘군면제 논란’에 휩싸이자, 서인국은 당시 팬 카페를 통해 “입대 연기를 했지만 군대에 가고 하는 마음으로, 재검 신청도 하지 않고 입대 시 어떤 자료도 들고 가지 않았다”라며 “그동안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모든 것이 변명 같고 구차해 보일까 겁이 났다. 그러나 제 입장과 다른 이야기들이 퍼져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아파할까봐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이후 앨범, 드라마 등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서인국은 ‘슈퍼스타K’ 출신 가수 박보람과 공개 열애를 이어오다, 최근 열애 2년 만에 결별 소식을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진=서인국 인스타그램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아역배우 출신 박지빈, 5년 만에 드라마로...20대 첫 작품 ‘두부의 의인화’

    아역배우 출신 박지빈, 5년 만에 드라마로...20대 첫 작품 ‘두부의 의인화’

    아역 배우 출신 박지빈이 5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다.30일 배우 박지빈(24)이 웹 드라마 ‘두부의 의인화’로 약 5년 만에 드라마 복귀 소식을 전했다. 이날 박지빈 소속사 럭키컴퍼니 측은 “박지빈이 웹 드라마 ‘두부의 의인화’에 출연한다”고 밝혔다. ‘두부의 의인화’는 사람으로 변한 개와 기막힌 동거를 그리는 판타지 로맨틱 웹 드라마다. 박지빈은 이번 작품에서 개가 사람으로 변한 백두부 역에 낙점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박지빈은 이번 작품을 통해 약 5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하게 된다. 아역 배우 출신인 그는 2001년 뮤지컬 ‘토미’로 데뷔, 드라마 ‘이산’, ‘선덕여왕’, ‘메이퀸’, ‘돈의 화신’, 영화 ‘안녕, 형아’ 등에서 활약했다. 지난 2013년 11월 종영한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를 마지막으로 2015년 5월 입대했다. 지난해 2월 전역한 뒤,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사진=박지빈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넥슨’ 김정주의 반성문… “1000억 사회환원, 경영권 승계 없다”

    ‘넥슨’ 김정주의 반성문… “1000억 사회환원, 경영권 승계 없다”

    “사회에 진 빚 되갚는 삶 살 것” 어린이재활병원 추가 설립 등 사회 공헌 확대로 이미지 쇄신 ‘넥슨 공짜 주식’ 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된 김정주 NXC 대표가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했다. 또 1000억원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경영권을 대물림하지 않는 것은 정보기술(IT) 업계에선 처음으로, 주요 상장사 중에서도 사실상 처음이다. 넥슨이 게임업계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데 이어, 김 대표가 무죄 확정을 계기로 사회 공헌 보폭을 넓히며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NXC는 국내 1위 게임사인 넥슨의 지주회사다.●대물림 없는 경영… 주요 상장사 중 처음 김 대표는 29일 언론에 보낸 입장문에서 “2년여간 넥슨 주식사건과 관련해 수사, 재판을 받았고 지난 19일 판결이 확정됐다”면서 “1심 법정에서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앞으로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되갚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한 약속을 실천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저와 제 가족이 가진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새로운 미래에 기여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의 두 가지 약속 중 하나는 서울에만 있는 어린이재활병원 확대다. 넥슨은 2016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지원한 데 이어 올해 2월 ‘제2 어린이재활병원’을 위해 계열사들과 함께 넥슨 재단을 설립했다. 김 대표는 “이런 활동을 위해 1000억원 이상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다른 약속은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미성년인 딸 두 명이 있다. 그는 “회사를 세웠을 때부터 한번도 흔들림 없었던 생각”이라며 “공개적으로 밝혀 성실한 실행을 다짐하고, 앞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NXC는 일본 상장법인 넥슨의 최대주주로, 넥슨은 넥슨코리아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넥슨은 지난해 9월 총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서 게임업계 최초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다. 김 대표는 부인인 유정현 NXC 감사와 NXC 지분의 70%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기부 방식·활동 계획 밝힐 듯 김 대표는 대학 동창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의 비상장 주식 매입대금 등의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는 “국내외 구성원 5000여명과 함께하는 기업 대표로서 더욱 큰 사회적 책무를 느낀다”며 “투명하고 수평적인 문화가 유지돼야 회사가 계속 혁신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전문가와 함께 준비 과정을 거친 뒤 기부 규모와 방식, 운영 주체와 활동 계획을 조만간 밝힐 예정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군인의 공상 여부 결정하려면 근무환경·훈련특성 고려해야”

    군 복무 당시의 근무 환경과 훈련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무 중 부상’(공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특전사 부사관으로 복무 중 낙하산 강하 훈련을 하다가 어깨 탈골 수술을 받아 전역했음에도 공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고충 민원에 대해 재심의 의견을 국가보훈처에 전달했다고 24일 밝혔다. 1991년 특전사 부사관으로 입대한 A씨는 2005년 4월 정기 낙하산 강하 훈련 중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후 두 차례 더 탈골돼 같은 해 9월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고, 탈골이 계속되자 국민연금 수급 대상 기간인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18년 만에 전역했다. A씨는 보훈대상자 등록 신청을 했지만, 보훈처는 “A씨의 질병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퇴행성으로 보인다”며 ‘보훈대상자 비해당’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는 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특전사 복무 환경상 입대 전 지병이 있으면 입대 자체가 쉽지 않은 점 ▲퇴행성 어깨 탈골이라면 무거운 군장을 메고 극한 훈련을 하는 등 15년 이상 근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란 점 등을 들어 보훈처에 재심의 의견을 전달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서인국-박보람 결별, 2년 만에 헤어진 이유 들어보니...

    서인국-박보람 결별, 2년 만에 헤어진 이유 들어보니...

    ‘슈퍼스타K’ 출신 서인국-박보람 결별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팬들의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24일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출신 가수 박보람(25)과 서인국(32)이 열애 2년 만에 결별하면서 그 이유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열애설이 불거지면서 공개 열애를 시작했다. 당시 두 사람 측은 “1년 6개월째 열애 중이다”, “서로 힘든 시기에 의지하면서 가까워졌고,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열애 사실이 공개된지 6개월 만에 결별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서인국 소속사 비에스컴퍼니 측은 “그동안 좋은 만남을 이어왔던 서인국과 박보람이 각자 활동과 일정으로 인해 한 달 전 결별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어 “개인적인 일인만큼 자세한 사정을 알려드릴 순 없다”며 “앞으로 각자 위치에서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는 좋은 모습의 선후배로 남기로 했다. 격려와 응원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을 접한 팬들은 “잘 어울렸는데 안타깝다”, “잘 만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결별이라니”, “맘 고생 심하겠다. 박보람 파이팅”, “힘내세요...”라는 반응을 보이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편 박보람은 지난 4월 새 싱글 ‘말려줘’에 이어 길구봉구와 협업한 곡 ‘#결별’을 발표했다. 서인국은 지난해 3월 군에 입대했다가 4일 만에 좌측 발목 거골의 골연골병변(박리성 골연골염) 사유로 귀가 명령을 받았다. 이후 재신체검사를 받고 5급(전시근로역) 병역 처분을 받아 군면제됐다.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신서유기5’ 9월 방송 확정 ‘전역한 이승기 컴백?’ 출연진 관심↑

    ‘신서유기5’ 9월 방송 확정 ‘전역한 이승기 컴백?’ 출연진 관심↑

    ‘신서유기5’ 방영 소식이 전해지며 라인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23일 CJ E&M이 발표한 하반기 라인업에 따르면 tvN 예능프로그램 ‘신서유기5’는 오는 9월 방송을 확정했다. 출연진과 여행지 등은 미정이다. 나영석·신효정 PD가 연출하는 ‘신서유기’는 중국 고전 ‘서유기’의 주인공을 바탕으로 한 리얼 버라이어티다. 2015년 웹예능에서 출발해 B급 코드로 두터운 마니아층 보유하고 있다. 원년 멤버는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였으나 이승기가 2016년 2월 입대하면서 ‘신서유기2’부터 안재현이 이승기의 자리를 채웠다. 시즌3부터는 슈퍼주니어 규현, 위너 송민호가 합세하며 여섯 멤버 체제로 큰 웃음을 안겼다. 그러나 현재 규현이 입대한 상태며 이승기는 전역했다. 이에 이승기가 다시 돌아올지 ‘신서유기5’의 멤버 구성에 큰 관심이 모이고 있다. CJ E&M은 “‘꽃할배’, ‘신서유기’ 시리즈 등 검증된 콘텐츠의 시즌제 도입을 공고히 해 CJ E&M만의 우수한 경쟁력 및 미래 가치를 극대화 할 것”이라며 “앞으로 글로벌 톱 미디어 기업 및 디지털 플랫폼사를 활용한 수익을 다변화하고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류덕환, 고경표 입대에 현실 조언 “다치지 말고. 참아라 뭐든”

    류덕환, 고경표 입대에 현실 조언 “다치지 말고. 참아라 뭐든”

    배우 류덕환이 오늘(21일) 입대한 고경표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21일 배우 류덕환(32)이 SNS를 통해 고경표(29)를 응원했다. 류덕환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다음 타자 고경표. 잘 다녀와라 다치지 말고. 참아라 뭐든”이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공개된 사진에는 입대 전 짧게 머리를 자른 고경표와 비슷한 헤어스타일의 류덕환이 나란히 담겨있다. 특히 흑백 사진에 삭발한 것까지 똑같아 흡사 ‘쌍둥이’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한편 고경표는 이날 강원도 삼척 23사단 신병교육대대를 통해 입소했다. 그는 입대 전 SNS를 통해 “잘 다녀오겠다. 20대를 함께 해준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더 나은 30대로 다시 찾아뵙겠다”고 인사했다. 고경표는 약 5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친 뒤 자대 배치를 받고 현역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전역은 2020년 2월 20일 예정이다. 사진=류덕환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입대’ 고경표, 삭발 머리 깜짝 공개 “잘 다녀오겠습니다!”

    ‘입대’ 고경표, 삭발 머리 깜짝 공개 “잘 다녀오겠습니다!”

    입대를 앞둔 배우 고경표가 삭발한 모습을 깜짝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21일 오후 배우 고경표(29)가 SNS를 통해 입대인사와 함께 삭발 사진을 공개했다. 고경표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며 “20대를 함께 해준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입대 전 인사를 했다. 이어 “사랑합니다! 더 나은 30대로 다시 찾아뵐게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입대를 앞두고 짧게 깎은 머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고경표는 짧게 자른 머리가 어색한 듯 미소를 짓고 있다. 한편 고경표는 이날 현역으로 입대한다. 구체적인 입대 장소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약 5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친 뒤 자대 배치를 받고 현역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전역은 2020년 2월 20일 예정이다. 사진=고경표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고경표 오늘(21일) 현역 입대 “씩씩하게 국방의 의무 다할 것”

    고경표 오늘(21일) 현역 입대 “씩씩하게 국방의 의무 다할 것”

    배우 고경표가 오늘(21일) 현역 입대한다.21일 배우 고경표(29)가 육군 현역으로 입대한다. 소속사 측에 따르면 이날 고경표는 공식적인 행사 없이 조용히 입소할 예정으로, 훈련소 등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약 5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친 뒤 자대 배치를 받고 현역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전역은 2020년 2월 20일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고경표는 소속사 씨엘엔컴퍼니 측을 통해 “대한민국 남자로서 성실하고 씩씩하게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오겠다”며 입대 소식을 전했다. 그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배우 고경표로서, 인간 고경표로서 더욱 성장해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고경표는 지난 2010년 KBS 드라마 ‘정글피쉬2’로 데뷔, 크고 작은 역할로 다수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스탠바이’, ‘감자별’, ‘응답하라 1988’, ‘질투의 화신’, ‘시카고 타자기’, ‘최강배달꾼’, ‘크로스’ 등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또 올해 개봉한 영화 ‘7년의 밤’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해 지키는 해병부부 17쌍

    서해 최전방에서 남편과 아내가 함께 ‘군인의 길’을 걸으며 영토와 영해를 수호하는 해병대 부부가 모두 17쌍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부애와 전우애로 똘똘 뭉쳐 서북도서와 가정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20일 해병대사령부에 따르면 백령도에는 모두 10쌍의 해병대 부부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병 6여단 한대흠(27) 중위와 정승현(26) 중위 부부도 백령도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남편 한 중위는 2012년 백령도 전차중대 전차조종수(해병 1124기)로 군 복무를 마치고 2015년 해병대 장교로 다시 입대해 현재 백령도에서 두 번째 근무 중이다. 결혼 준비 중 아내인 정 중위의 백령도 전출이 먼저 결정되자 결혼식을 미뤘으나 전우들의 노력으로 한 중위가 백령도에 배치돼 지난 2월 화촉을 밝혔다. 해병 연평부대에도 부부 7쌍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공병 부사관 부부인 김곤(37) 상사와 이혜정(29) 하사는 연평도에 구축되는 작전·병영시설물에 대한 점검과 인사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김 상사가 연평부대에 배치되자 이 하사는 연평도 근무를 지원했다.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어 연평부대의 ‘쌍둥이 가족’으로 통한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구본무 회장이다.’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1] 글로벌 창업주… 매출 5배 껑충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2] 선구자… 2003년 지주사 전환 일찌감치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3] 정도…“편법 1등은 싫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 드문 ‘현역병’ 출신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제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 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19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입사 10년 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다시 10년 뒤에야 회장직에 오르며 3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구 회장은 이후 “1등을 해야한다”고 줄곧 강조하면서도 “편법은 싫다”고 단호히 주문했다. [4] 끈기…LCD·2차전지 1위 우뚝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액정화면(LCD) 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5] 눈물…외환위기 때 반도체 내줘 시련과 굴곡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 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로 반도체 빅딜을 사실상 막후에서 조정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쪽은 눈길도, 발길도 주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거렸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급한 자금을 일부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을 매각하는 등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6] 몰입…조류도감 펴낸 새 전문가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냈을 정도로 새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지만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도 있었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모든 사업장에 비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7] 마곡…4조 투자 융복합단지 꿈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였다.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다. 투자비만 4조원이다. “마곡에서 수만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뚝심과 끈기의 CEO’ 구본무 회장 눈감다

    ‘뚝심과 끈기의 CEO’ 구본무 회장 눈감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20일 타계한 구본무 회장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 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현재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LG그룹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드문 현역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재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구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다. 입사 10년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는 데 이후 10년뒤 회정에 3세 경영을 시작한다.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LCD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현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라 의견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됐다. 만만찮은 시련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게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 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할 정도였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일부 유동성을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 등을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서운 집중을 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구 회장은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낼 정도로 새에 관한 전문가다. 실제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무려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 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 거의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있었다고 한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전 사업장에 사전 준비에 비상이었다고 한다.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다. 4조원을 투자해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마곡에서 수만 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들과 산업간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노년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권력의 ‘장식품’ 거부… 백성을 공동체의 한 축으로 여긴 절사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권력의 ‘장식품’ 거부… 백성을 공동체의 한 축으로 여긴 절사

    남명 조식은 조선 중기 때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사림 정치가 시작되는 명종 후대와 선조 전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평생 재야에 머물며 일생을 마쳤다. 하지만 그가 끼친 영향은 조정에 있는 여느 정치인 못잖았다. 또 정치가 반드시 지위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1553년 현실 정치에 나오라는 이황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했고, 1555년 단성현감에 제수됐으나 역시 거절했다.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1566년 비로소 서울로 와서 명종을 만난다. 세상에 유주처럼 숨어 있는 현인을 등용하겠다는 요청에 부응한 것이다. 이때 조식·이항·성운 등이 천거돼 명종과 면대했다.#군신 간은 마음에 틈이 없어야 -명종: 불민한 내가 백성의 주인이 되어 정성은 부족하나 어진 이를 구하고 싶은 뜻이 어찌 없겠는가. 고금의 치란과 선정에 대해 듣고 싶다. 숨김없이 말하라. -조식: 고금의 치란은 책 속에 모두 있으니 신의 말이 아니라도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신이 아뢰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임금의 답이 있을 때까지 한참 기다렸다). -명종: 말하여 보라. -조식: 임금과 신하는 마음에 틈이 없이 서로 믿어야 합니다. 임금이 대문을 열어젖히듯 마음을 드러낸다면 신하도 진심을 다하여 능력을 펼 것입니다. 임금은 신하의 모든 것을 알아야 제대로 부릴 것이며, 신하도 임금의 의도를 알아 선한 쪽으로 넓혀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근본입니다. -명종: 옛날 삼고초려한 신하가 있었는데 세상이 어떠했기에 세 번 부른 다음에야 나왔는가? -조식: 제갈량은 영웅입니다. 세상을 범연히 보지 않았기에 그랬지만, 유비와 함께한 것이 30년 가까운데도 천하를 회복하지 못했으니 세상에 나온 것이 맞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신은 헛된 이름 훔쳐 임금을 속여서는 안 되었기에 빨리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조선왕조실록) 고금의 치란에 대해 말하라는 명종의 요구에 그것은 책에 다 나와 있다고 하며, 임금과 신하의 마음이 치도의 근본이라고 주장한다. 임금은 신하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봐야 신하를 부릴 수 있고, 신하는 임금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아야 임금을 성군으로 인도한다는 말이다. 그러자 명종은 제갈량을 물어본다. 그동안 불러도 나오지 않은 조식을 빗대 일부러 물은 것이다. 그러자 조식은 제갈량의 출처가 맞지 않다고 답한다. 그 후 상황은 아래 사관의 기록이 대변한다.# 너는 큰 도적 나는 작은 도적 “성운은 병이 심하여 다시 상소를 올린 후 바로 고향에 돌아갔다. 조식은 입대 며칠 뒤 훌쩍 산으로 돌아갔는데, 많은 선비가 고명을 흠모하여 강가까지 나가 전송하였다. 조식과 이항은 평소 서로 몰랐는데, 서울에서 만나자 이내 서로 ‘너’, ‘나’를 하였다. 조식은 언제나 이항을 조롱하여 ‘너는 큰 도적이고 나는 작은 도적이니 남의 집 담장이나 뚫는 좀도둑과 같다’ 하였다.”(조선왕조실록) 자신을 도적이라고 조롱한 대목이 흥미롭다. 너니 나니 하며 서로를 허여한 게 특별하였기에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도적이라고 조롱한 대목을 보이기 위한 전채에 불과하다. 왜 도적일까. 스스로 헛된 이름을 훔쳤다고 하였으니 명성을 훔쳤다는 뜻이다. 남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들고 나아감을 뜻하는 ‘출처’다. 출처는 현실 정치의 참여 문제를 가리킨다. 그는 제자들에게 입버릇처럼 출처에 대해 말했다. 함부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단순히 기묘와 을사사화를 겪은 경험에서 말한 것으로 보기에는 정도가 깊다. 품은 뜻이 높고 재주도 대단하지만, 그것이 곧 정치 참여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군주라는 권력이 한 축으로 있는 한 그에 관한 확신이 없다면 나가서는 안 된다. 남명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을묘사직소에서 명종과 문정왕후를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의 인재를 거두어 쓸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명은 말한다. # 용 잡는 재주는 희생 잡는 푸줏간에 들지 않는다 선비 중에 위로는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 아래로는 제후의 신하가 되지 않으며, 나라를 떼어 준다고 해도 하찮게 여겨 달가워하지 않은 자가 있으니 포부가 크고 능력이 대단하여 쉽사리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용 잡는 재주는 희생 잡는 푸줏간에 들지 않고 왕도를 보좌할 사람은 패자의 도읍을 밟지 않는다. (…) 광무제가 현명한 군주 이상 될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현명한 군주 정도라면 굳이 엄광이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도 나와 벼슬하며 왕도를 훼손하고 패자의 신하가 되어 부질없이 높은 지위와 무거운 녹봉만 받겠는가.(남명집 중 ‘엄광론’) 남명 조식은 같이 과거를 했던 사람이다. 애초에 과거를 버리고 세상을 떠나 수행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나가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만하면 나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혀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건이 조성되지도 않았는데 나가는 것은 오히려 권력의 장식품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쓰지도 않으면서 곁에 두고 그 명성만을 취해 장식품인 ‘브로치’로 사용하려는 권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것이다. 이는 헛된 명성으로 부귀와 영화를 훔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남명이 현실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다. 그의 을묘사직소를 보면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 절절하다. 그만큼 현실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 가죽이 벗겨지면 털도 붙어 있을 곳이 없다 전하의 국사는 이미 글렀고, 나라의 근본도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벌써 가 버렸고,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마치 큰 나무를 벌레가 백 년 동안 갉아먹어 고액이 이미 말라 버린 채 멍하니 질풍 폭우에 쓰러질 날만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급 관료는 희희낙락하며 주색잡기에 여념 없고 고관대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오직 뇌물 챙겨 재산만 불리니, 뱃속이 썩는데도 약을 쓰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서울의 신하는 궁궐에 사람을 심어 놓고 마치 깊은 못 속의 용처럼 서려 있고, 지방의 신하는 백성을 가렴주구하여 그 자취가 온 들판에 낭자하니, 가죽이 벗겨지면 털도 붙을 곳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남명집 중 ‘을묘사직소’) 행정의 주체인 관료의 부패상을 말한다. 하급 관리는 주색에 빠져 있고, 고급 관료는 뇌물에 골몰한다. 병은 깊은데 고칠 생각은 없다. 더구나 중앙의 고관은 궁궐과 결탁하고 지방의 수령은 백성을 가렴주구한다. 가죽이 다 벗겨지면 털은 어디에서 나며, 백성이 피폐해지면 국가는 무엇에 의지하고, 양반은 또 어떻게 살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남명은 재야의 절사로 알려졌다. 왕인 명종과 실권을 쥔 모후 문정왕후를 향해 과부와 고아라고 한 직설은 정치 문제로 비화했지만, 결국은 기개 있는 선비가 모후를 향해 불경한 말을 거침없이 한 정도로 양해됐다. 그보다는 백성을 가렴주구하는 양반에 대한 경고가 더욱 주목받는다. 무왕이 제후로서 천자인 주를 정벌한 것을 맹자는 천명을 잃은 왕은 일개의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천명을 매개해 말했지만, 백성 없이는 왕도 없다는 남명의 말은 훨씬 직선적이고 간명하다. 왕과 백성은 공생 관계라는 뜻이다. 남명은 두 가지 점에서 기억해야 한다. 첫째는 ‘절의’다. 단순한 절의가 아니라 이상을 구현하려는 분명한 절의다. 공자가 관중을 칭송하여 구덩이에 뒹구는 필부필부의 의리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듯 남명의 절의 역시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며 강직하게 항거하는 그런 절의와 다르다. 남명의 절의는 선비로서 결코 권력의 장식품은 되지 않겠다는 굳건한 절의이며, 허명을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지는 않겠다는 분명한 다짐이다. 둘째는 ‘백성에 대한 인식’이다. 갓난아이 돌보듯 어린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는 유교의 근본 인식에서 벗어나 백성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한 축으로 이해한 것이다. 생산의 주체로서 국가를 지탱하는 기층민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은 남명을 새롭게 보여 준다. 이런 남명을 그의 제자 정구는 ‘고풍’(高風)이라 표현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현실 정치의 도덕적 긴장을 유지해 주는 소금과도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정인홍은 ‘군자’(君子)라고 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그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 단순히 세상을 피하여 숨는 은자가 아니요, 그렇다고 독선기신해 자신의 절의만을 지키는 처사도 아니라는 뜻이다. 어쨌든 남명의 뚜렷한 삶은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영남 향촌에 깊은 인상으로 각인돼 있다. 서정문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연구소장 ■‘남명집’은 “성인 책 가득하니 실천하면 돼” 평소 ‘저술 필요하지 않다’ 지론 제자가 수집한 이본 17종 존재 성인의 책이 가득하니 그대로 실천하면 되며, 저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남명의 지론이었다. 따라서 남은 저술이 많지 않다. 그나마도 평소에 보관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에 의해서 수집된 것이다. 남명의 수제자 정인홍에 의해 수집된 남명집은 광해군 연간에 몇 차례 간행된다. 이 책에는 퇴계의 제자 이정과 절교와 관련한 당시여서 불편한 문자들이 다수 수록됐다. 그 속에는 퇴계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인조반정으로 정인홍이 실각한 이후 이런 문자들은 삭제됐다. 또 그와 함께 남명의 분방한 학풍을 부인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그 과정에 향촌의 갈등도 있었다. 그 결과 현재 17종의 남명집 이본이 존재한다.
  • 지드래곤 발목 수술, YG 측 “수술 받고 부대로 복귀 예정”

    지드래곤 발목 수술, YG 측 “수술 받고 부대로 복귀 예정”

    그룹 빅뱅 지드래곤이 발목 수술을 받고 군대에 복귀한다.17일 군 생활 중인 빅뱅 멤버 지드래곤(31·권지용)이 발목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빅뱅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측은 “지드래곤이 수술을 받고 며칠 후 복귀 예정”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앞서 한 매체는 지드래곤이 지난 4월 군 병원을 거쳐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지드래곤은 입대 전부터 발목 통증을 호소, 현재 수술을 위해 입원한 상태다. 한편 지드래곤은 지난 2월 강원도 철원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신병교육대에 입소,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친 뒤 자대 배치를 받고 복무 중이다. 전역은 오는 2019년 11월 26일 예정돼 있다. 사진=뉴스1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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