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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지는 여당에 기회포착 야권 잠룡…보폭 넓히고 볼륨 올리고

    무너지는 여당에 기회포착 야권 잠룡…보폭 넓히고 볼륨 올리고

    명불허전 보수다 원희룡 지사 홍준표 이슈파이팅에 집중부동산 대책 실패에 이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대응 논란까지 정부 여당이 연이어 실책을 범하자 야권 대선 잠룡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여권의 위기를 기회 삼아 대안세력을 자처하고 있는 이들은 이번 국면에서 얼마나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건 원희룡 제주지사다. 원 지사는 15일 미래통합당 초선 모임 ‘명불허전 보수다’ 특강 연사로 나서 2022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찐 친문’(진짜 친문재인) 빼고는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광폭의 전략이 필요하다”며 “국민은 5연속 실패한 당을 원치 않는다. 지지율이 20%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이 당은 해산하라는 국민적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 지사는 최근 통합당 의원들이 주최하는 특강과 포럼 등에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다. 당 소속 의원들과 교류도 잦다고 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 실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날도 “무능과 오만의 국토교통부 장관을 바꿔야 한다”며 김현미 장관 경질을 주장했다. 오 전 시장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연일 비슷한 의견을 내며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전날에는 김 위원장이 부동산 해법으로 후분양제 전환을 언급하자 “당론으로 채택하자”고 반기기도 했다. 그는 당내 원외 인사들을 주로 만나며 지역조직 챙기기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대중이 관심 두는 현안에 재빠르게 목소리를 내놓는 ‘이슈 파이팅’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최근엔 막말 논란이 다시 불거지며 통합당 의원들과 다소 삐걱하는 모양새다. 특히 박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해 “(성추행)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소문도 무성하고 심지어 채홍사 역할을 한 사람도 있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이에 통합당 중진 4선의 권영세 의원은 “이러니 이분의 입당에 거부감이 많다”고 비판했다. 2022년 대선을 ‘마지막 정치적 도전’이라고 공언하며 승부수를 던진 유승민 전 의원은 침착하게 시기를 보며 칼을 갈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사회 현안에 대해 공부하며 각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야별로 내놓을 상품을 제대로 갖춘 후 공식 행보를 통해 메시지를 내놓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르면 다음달 말부터 잠행을 깨고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서울광장] 박지원 후보자가 갖는 몇 가지 함의/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지원 후보자가 갖는 몇 가지 함의/이종락 논설위원

    1990년쯤 평민당(평화민주당) 시절 3년 전 평민당에 입당했던 박지원이 당시 김대중(DJ) 총재에게 말했다. “총재님, 만약 예수가 부활한다면 제일성으로 뭐라 할지 아십니까?” 그러자 김 총재가 “뭐여~”라고 답변을 구하자 박지원은 “기자 왔니?”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부활하더라도 기자가 오기 전에 부활 소식을 알려선 안 되죠.” 이 일화는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의 언론관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박 후보자는 당대변인 시절 새벽 4시쯤 일어나 12개 조간신문을 모두 읽은 뒤 6시 30분에 동교동에 가서 DJ에게 보고했다. 이후 현안에 대해 DJ의 견해와 지시를 들은 뒤 기자들에게 DJ의 생각은 물론 숨소리까지 그대로 전달했다. 대표적인 ‘언론 프렌들리’ 정치인 박지원이 국정원장에 내정된 며칠 뒤 전화를 걸었다. DJ의 가신으로, 동교동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문재인 정부하에 국정원장을 지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박 후보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박 후보자는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는 기간에는 일체의 언론과의 전화 소통과 SNS 활동을 안 하겠다는 말씀 들으셨죠. 내가 국정원장이 된 의미는 이 위원이 절 잘 아시니 그대로 써 주세요. 저도 궁금하네요”라며 답변을 피했다. 문재인 정부와 거리를 두고 국민의당과 민주평화당, 민생당에서 활동한 박 후보자로선 소원이 하나 있었다. “남북사업을 다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이뤄질 당시 막후에서 대북 밀사·특사로 활약해 김정일 시대부터 북한 고위층들과 막연한 사이다. 북한 인사들과 회담 테이블에 앉아 반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어쩌면 남한 내 유일한 사람일 듯싶다. 그런 소망을 이뤘으니 박 후보자가 국정원장 임명 발표 직후 “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겠다”며 흥분할 만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에서 노무현 정부보다 김대중 정부를 더 쳐주는 북한 고위층들의 평가를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DJ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남북 관계를 돌파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하에 DJ를 다시 호출한 셈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박지원 후보자는 임명 발표 2주 전에 이미 국정원장으로 내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답보 상태에 있는 남북 관계에 대한 해결사로만 박 후보자를 선택했을까. DJ-친노-친문 간 외교·안보 연정과 더불어 좀처럼 허물 수 없는 정치적 연대를 이뤘다는 데 이번 인사의 의미를 찾는 게 옳을 듯싶다. 박 후보자는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수사로 구속됐다. ‘대북송금 특검’을 국민의 정부 관계자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벤트로 받아들였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와의 정치적 단절이 필요했고, DJ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던 문 대통령으로서도 박 후보자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을 테고 이번 임명으로 ‘구원’(舊怨)을 완전히 털어 버린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박 후보자는 석방된 뒤 서울대와 전남대 강연 등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불려가 “김대중 세력과 노무현 세력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 이게 내 뜻이다”라는 얘기를 듣곤 일절 비난을 삼갔다. 이후 노 전 대통령 임기 말기에 청와대에서 화해의 식사 자리도 가졌지만 남아 있던 마음의 앙금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해소한 셈이다. 실제로 박 후보자는 야당 시절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해서 진보개혁 세력이 재집권해야 DJ가 말한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 관계가 살고 또 호남이 살 수 있다. 진보개혁 세력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갈 겁니다”라고. 올해 78세인 박 후보자가 지난 21대 총선에서 패하자 기자는 그가 소망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가 힘들 것으로 봤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정치 인생 막바지에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고 사라지고 싶다”는 희망을 못 이룬 것처럼. 특히 총선에서 자신을 이긴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 시 행정관으로, 민주당 원내대표로 활동할 때 참모였던 부하라 “박지원 시대도 이젠 저무는구나”라고 판단한 것도 사실이다. ‘불사조’ 박지원은 국정원장 임명 발표 당시 “앞으로 제 입에서는 정치라는 정(政) 자도 올리지도 않겠다”고 했지만, 그의 비중을 감안할 때 진보세력의 가교 역할을 맡을 듯하다. 박지원의 향후 동선이 후반기 문재인 정부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jrlee@seoul.co.kr
  • 권영세, 홍준표 ‘채홍사’ 주장에 “이러니 거부감”

    권영세, 홍준표 ‘채홍사’ 주장에 “이러니 거부감”

    미래통합당 권영세 의원은 14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관련한 ‘채홍사’ 의혹 등을 제기한 무소속 홍준표 의원을 향해 “이러니 이분의 (통합당) 입당에 거부감이 많다”고 했다. 권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한때 보수정당의 대선주자까지 했던 사람이 단지 떠도는 소문을, 입에 담는 것을 넘어 글로 남기기까지 하다니. 이분의 내심은 오히려 진상규명에 반대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성추행)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소문도 무성하고 심지어 채홍사 역할을 한 사람도 있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박원순 채홍사 있다던데” 홍준표에 권영세 “이러니 거부감”

    “박원순 채홍사 있다던데” 홍준표에 권영세 “이러니 거부감”

    정치권 안팎에서 비판 여론자유한국당 대표(미래통합당의 전신) 출신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14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상대로 제기된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면서 ‘채홍사’가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채홍사는 조선 전기 연산군 때 연산군이 궁중에서 음탕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미녀를 발굴하고 좋은 말을 구하기 위해 지방에 파견한 관리를 의미한다. 홍 의원은 전날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성추행의 주범은 자진(自盡·스스로 목숨을 끊음)했고 유산이 없다고 해도 방조범들은 엄연히 살아 있다”면서 “사용자인 서울시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는 이상 사자(死者)에 대해서만 공소권이 없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한 명만이 아니라는 소문도 무성하고 심지어 채홍사 역할을 한 사람도 있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면서 “이런 말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검·경은 더욱더 수사를 철저히 하고 야당은 TF(태스크포스)라도 구성해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진상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 의원이 제기한 ‘채홍사 설’에 보수진영을 포함한 정치권 안팎에서 비난이 이어졌다.권영세 “이분 내심 진상규명 반대 아냐” 권 “대선주자였던 사람이 떠도는 소문을” 홍 의원과 같은 검사 출신의 권영세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홍 의원의 발언 관련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러니 이분의 입당에 거부감이 많다”고 적었다. 권 의원은 “한때 보수정당의 대선주자까지 했던 사람이 단지 떠도는 소문을, 입에 담는 것을 넘어 글로 남기기까지 하다니”라면서 “이분의 내심은 오히려 진상규명에 반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페이스북에서 “이분은 학창 시절에 ‘선데이서울’(1992년 폐간)을 너무 많이 보셨다. 그 후유증이다. 수준 좀 보라”며 비난에 가세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정의당 류호정·장혜영 조문 거부… 당원들 “탈당” 진통

    정의당 류호정·장혜영 조문 거부… 당원들 “탈당” 진통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을 둘러싸고 정의당이 진통을 겪고 있다. 일부 의원이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박 전 시장의 조문을 거부한다고 밝히자 친(親)더불어민주당 성향 당원들은 여기 반발하며 탈당을 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국면에서 조 전 장관을 두둔하다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았던 정의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보 야성’을 회복할지 주목된다. 정의당 소속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각각 10일과 11일 페이스북에 조문 거부 의사를 밝혔다. 류 의원은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피해 호소자를 향해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위로했다. 장 의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며 “고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이 아무리 크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해도,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두 의원의 페이스북 및 정의당 당원게시판에는 ‘조문 거부’에 동의할 수 없다며 탈당하겠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인신공격적 비난 댓글도 쏟아졌다. 노회찬 전 의원 사망 후 대거 입당한 친민주당 성향 당원들의 단체 행동으로 보인다. 최근 정의당 혁신위원회는 ‘민주당과 관계 설정’을 주요 의제로 논의 중이다. 혁신위는 오는 17일 밝힐 혁신안 가안에 ‘정의당만의 길을 간다’는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혜연 전 부대표나, 정의당 창당 당시 유시민 작가를 앞세웠던 국민참여당계 등은 ‘독자 노선’에 반대하고 있다. 정 전 부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탈당하겠다는 분들의 글을 보면서 우리 당이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참담함을 느낀다”며 “당의 스피커가 되는 청년 국회의원이 지금 상황의 원인이라는 것에 더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지난해 조 전 장관 사태 때 정의당을 탈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탈당, 말릴 필요 없다. 원래 민주당에 갈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정의당에 와 있었던 것뿐”이라며 “이참에 진보정당으로서 제 색깔을 뚜렷하게 하고, 진보 성향 당원을 새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새벽 강남 아파트서 쾅쾅쾅” 이관수, 주차 중 차량 4대 파손

    “새벽 강남 아파트서 쾅쾅쾅” 이관수, 주차 중 차량 4대 파손

    차 4대 들이받아…음주측정 거부 현직 강남구의회 의장이 주차된 자동차 4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강남구의회 이관수 의장은 11일 오전 2시 40분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운전하다 주차된 차량 4대를 들이받았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 의장은 주차하려다 사고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지구대는 이 의장을 서울 수서경찰서로 인계했다. 경찰은 이 의장이 만취 상태였는지 등 사고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현행법상 아파트 단지 내에서의 음주운전 역시 처벌 대상이다. 한편 이관수 강남구의회 의장은 1983년생으로,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14년엔 새정치민주연합, 2018년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강남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돼 현재 강남구의회 3선으로 활동 중이다. 민주당 내에선 중소기업특위 위원장 권한대행으로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또’ 탈당사태 정의당...‘민주당 2중대’ 이번엔 벗을까

    ‘또’ 탈당사태 정의당...‘민주당 2중대’ 이번엔 벗을까

    친민주 성향 당원 반발 이어졌던 정의박원순 조문 관련 다시 한 번 탈당러시이번에는 민주당2중대 벗어날지 관심정의당이 성추행 혐의가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문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일부 의원이 내 당내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친민주당 성향 당원들이 정의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박 시장 조문과 관련한 의견을 내놓자 일제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 청문회 국면 당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정의당이,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정의당 소속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각각 10일과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시장 조문과 관련한 의견을 냈다. 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을 향해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위로했다. 장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고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이 아무리 크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해도,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류 의원과 장 의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비난하는 댓글로 가득찬 상황이다. SNS의 댓글에는 인신공격적인 내용으로 도배됐다. 이 같은 현상은 고 노회찬 전 의원 사망 후 대거 입당한 친민주당 성향 의원들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들은 고 노 전 의원의 후원회장이었던 조 전 장관에 대한 애정으로 정의당에 입당했다. 이런 이유로 정의당이 민주당에 반대되는 입장을 이야기하면 ‘탈당하겠다’, ‘대표 사퇴하라’ 등의 언급을 이어왔다. 정의당 혁신위에서도 이 같은 사태에서 벗어나고자 ‘정치노선 혁신’을 주요 의제로 논의하고 있다. 12일 정의당 혁신위 관계자에 따르면 17일 밝힐 혁신안 가안을 통해 ‘정의다은 정의당의 길을 가겠다’고 밝힐 예정이다. 물론 이 같은 노선에 반대하는 당내 세력도 존재한다. 정혜연 전 부대표나 정의당 창당 당시 유시민 작가를 앞세웠던 참여계 등이 대표적이다. 정 전 부대표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부끄럽기에, 탈당하는 당원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래서 더 탈당하시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언급했다. 정의당이 반대 목소리를 뚫고 정의당만의 혁신안을 만들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박원순 서울시장…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3선 시장에서 극단적 선택까지

    박원순 서울시장…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3선 시장에서 극단적 선택까지

    지난 9일 삶을 마감한 박원순(64) 서울시장은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를 거쳐 서울시 최초로 3선 시장이 된 인물이다. 인권변호사와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인 박 시장이 서울의 수장이 되면서 효율성과 도시개발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서울시 행정도 시민참여와 소통 등 새로운 가치를 입게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 자신의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박 시장은 1975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제적된 뒤 단국대에 입학했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가 6개월 만에 변호사로 개업해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1988년에는 진보 성향 법조인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인권변호사 시절 권인숙 성고문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 성범죄 관련 사건도 변호하며 명성을 쌓았다. 특히 우 조교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을 재정의한 사건으로 관련 판례를 바꿨다. 또 미국문화원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등 민주화 운동 관련 변론도 많이 맡았다. 인권변호사로서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활동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박 시장은 1994년 참여연대를 설립하고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을 진행했다. 또 부적격 정치인 낙선 운동과 결식 제로 운동 등을 추진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96년에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고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가게도 함께 설립한 뒤 상임이사를 맡아 사회공헌 활동에 전념했다. 2006년에는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만들었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보선이 예정되자 출마를 선언했다. 9월 21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박 시장은 지지율 5%로 시작했지만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양보로 단일화를 이뤄 내 야권 단일후보를 거머쥐었다. 무소속으로 야권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53.4% 대 46.2%로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어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도 당시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을 56.1% 대 43.1%로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는 52.8%를 득표해 상대방인 자유한국당 김문수(23.3%) 후보, 바른미래당 안철수(19.6%) 후보를 가뿐하게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박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행정, 인사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2011년 10월 취임한 박 시장은 오 전 시장이 반대하던 초등생 무상급식 지원 예산 200억원에 대한 집행을 시작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용으로 경찰이 무상으로 사용하던 시유지를 회수했다. 또 반값등록금 운동에 적극 호응해 2012년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전년의 50% 수준으로 낮추고 서울시 주요 보직을 개방형으로 바꿔 시민단체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서울시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는 평가다. 도시계획과 개발에서는 기존 개발 지상주의를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시장은 2012년 2월 개포지구 재건축 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주택의 50%를 소형 평형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했던 뉴타운 사업의 경우에도 주민들의 반대가 있을 경우 지구 지정을 해제하며 ‘도시재생사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게 했다. 또 한강변 아파트의 경우 최대 35층 이상으로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기존 한강르네상스 개발과 같은 대규모 토목 사업은 줄이고 서울역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해 ‘서울로 7017’을 만드는 등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서울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2018년 정부가 서울시에 그린벨트를 풀 것을 요구하자 미래세대를 위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은 그의 도시에 대한 철학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미래세대를 위한 그린벨트 지킴이를 자처했던 박 시장이 생을 마감하면서, 앞으로 그린벨트가 계속해서 지켜질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편 지난해에는 여의도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 청사진을 발표하는 등 이전과 다른 도시개발에 대한 모습을 보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도시개발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서울시장으로 살아 온 박 시장은 2020년 7월 9일 생을 마감했다. 사망 전날 박 시장은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 당했다. 경찰은 현재 사망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인권 변호사·시민운동가… “직업이 서울시장”이라 했던 원순씨

    인권 변호사·시민운동가… “직업이 서울시장”이라 했던 원순씨

    사상 첫 3선의 최장수(3180일) 서울시장이었던 ‘원순씨’. 진보 경제학자인 우석훈은 박원순(64) 시장을 가리켜 “참여연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한국 시민단체의 상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고 했다. 삶의 궤적을 관통했던 인권변호사와 시민사회운동가, 그리고 2011년 10·26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그는 자신의 꿈을 좇는 일 중독 시장이었다. 박 시장은 지난 6일 자청했던 세 번째 임기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잡자 마자 “임기가 9년이 되다보니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서울시장이 박원순이어서 ‘저 분이 직업이 서울시장인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보냈던 ‘시장의 시간’을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많은 시민들의 삶과 꿈을 회복시키는 시간이었다”며 답했다. 누구도 그의 임기가 극단적 비극으로 끝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1994년 참여연대의 산파역을 했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시민사회 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95년 사법개혁운동, 1998년 소액주주운동, 2000년 낙천·낙선운동 등 민주주의의 양분이 됐던 시민운동마다 그가 함께 했다.박 시장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고(故) 조영래(1947∼1990) 인권변호사와 활동하며 뒤를 이었다. 1988년 진보 성향 법조인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 회원이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에 이어 1990년대 중반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을 재정의하며 판례를 바꾸기도 했다. 1988년 진보 성향 법조인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 회원이었다. 199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수상, 2002년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가게를 함께 설립한 뒤 상임이사를 맡아 사회공헌 활동에 전념했다. 2006년에는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만들었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보선이 예정되자 출마를 선언했다. 9월 21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지율 5%로 시작했지만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양보로 단일화를 이뤄 내 야권 단일후보를 거머쥐었다. 무소속으로 야권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이후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53.4% 대 46.2%로 눌렀다. 2011년 10월 27일, 당시 만 55세의 시민운동가 출신의 원순씨는 ‘서울특별시장’으로 2014년 6·4 지방선거, 2018년 6·13 지방선거까지 집권했다.박 시장 취임 후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행정, 인사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박 시장은 1기 첫 해 오 전 시장이 반대하던 초등생 무상급식 지원 예산 200억원에 대한 집행을 시작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용으로 경찰이 무상으로 사용하던 시유지를 회수했다. 또 반값등록금 운동에 적극 호응해 2012년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전년의 50% 수준으로 낮췄다. 도시계획과 개발에서는 기존 개발 지상주의를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시장은 2012년 2월 개포지구 재건축 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주택의 50%를 소형 평형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한강변 아파트의 경우 최대 35층 이상으로 짓지 못하도록 규제했다.기존 한강르네상스 개발과 같은 대규모 토목 사업은 줄이고 서울역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해 ‘서울로 7017’을 만드는 등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서울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2018년 정부가 서울시에 그린벨트를 풀 것을 요구하자 미래세대를 위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은 그의 도시에 대한 철학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임자인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오세훈 시장의 광화문광장 등과 같은 ‘한 방’이 없다는 지적에 박 시장은 항상 “그게 정치적으로 맞는지는 몰라도 나는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내 삶을 바꾸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맞서 왔다. 박 시장이 마지막으로 직접 발표한 정책은 지난 8일 ‘서울판 그린뉴딜’이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글로벌 In&Out] 북한의 민족탐구, 스탈린에서 김정은까지/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북한의 민족탐구, 스탈린에서 김정은까지/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민족(Nation)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는 예전부터 수많은 학자와 정치가 그리고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민족이란 개념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학설도 수없이 나왔으며, 특히 이 글로벌화 시대에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같은 학설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북한도 국가건설의 길에 들어서면서 소련으로부터 받아들인 민족이란 개념에 대한 인식과 재인식을 거쳐 민족지상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에 일부의 연구자들이 이를 나치 독일과 같은 극우민족주의라고 비판까지 했다. 그러면 북한의 민족관은 어떻게 형성됐는가. 마르크스주의에는 원래 민족보다 노동계급과 계급투쟁을 더욱 중요시했고 민족문제를 깊이 논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20세기 초 혁명운동이 고조되면서 1913년 러시아혁명가 스탈린이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민족이란 공통의 언어, 지역, 경제적 생활 그리고 공통의 문화에 나타나는 심리적 성격을 기초로 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안정적 공동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정의를 내리고 부르주아정권이 무너지면 민족운동도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917년 10월혁명 승리와 1922년 소련 건국 후,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가 없는 사회주의국가에는 민족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소련에서 민족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이 재발하자 스탈린은 1929년 ‘민족문제와 레닌주의’라는 논문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부르주아지와 함께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을 없앴지만 민족 자체를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화정책을 거부함으로써 그 민족들에게 ‘부르주아적 민족’에 대립되는 ‘사회주의적 민족’으로서 민족적 부흥의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1년 중국 펑톈성 안투현에서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젊은 김일성이 배우게 된 민족관은 바로 이것이다. 1945년 해방 직후 귀국한 김일성은 민족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의를 보급하는 데 노력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후 반대파를 숙청한 김일성은 북한 경제 성장 속도가 침체 상태에 빠져들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민족주의로 넘어가면서 주체사상을 위주로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할 것을 결정했다. 결국 정치사전에는 남았지만 철학사전에서 ‘사회주의적 민족’이라는 개념이 삭제되고 1973년판 정치사전에는 민족의 특징으로 혈통의 공통성이 추가됐다. 또한 북한 경제의 침체와 사회주의 진영의 위기가 더욱 심해지자, 1980년대 북한에서 전면적인 사상 전환이 이루어졌다. 사상작업에 나선 김정일은 민족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의의 핵심부분인 ‘경제생활’을 삭제하고 혈통이라는 용어를 핏줄이라는 말로 바꿨으며 민족을 ‘핏줄, 언어, 문화, 지역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력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생활단위이며 사람들의 공고한 운명공동체’로 규정했다. 핏줄을 민족의 가장 중요한 징표로 규정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지침으로 선포한 국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북한을 ‘나치 같은 사악한 국가’로 비난하는 근거가 됐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내린 ‘민족’의 정의가 유지됐으나 ‘민족을 특징 짓는 가장 중요한 징표’로 간주된 핏줄에 대한 재해석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핏줄의 공통성을 사람들이 장기간 끊임없이 접촉하면서 형성되는 징표로 간주하다가 내외부적 조건에 따라 이를 말 그대로 같은 혈통으로 해석했다. 이론잡지인 ‘근로자’에서 미국을 민족도 아닌 “혼혈집단”으로 비난하고 한국의 다문화 정책을 비판한 것도 있었다. 서양식 교육을 받았다는 김정은이 북한의 지도자가 되면서 김정일의 사상적 유산을 총화하는 사업이 진행됐으며 핏줄의 공통성은 혈연적인 관계와 구별되고 민족에 대한 인식이 탈국수주의화 추세를 보였지만, 북한의 사상적 근대화는 김정은에게 달려 있다.
  • 고이케 도쿄도지사 연임… 우클릭 세진다

    고이케 도쿄도지사 연임… 우클릭 세진다

    고이케 유리코(68) 일본 도쿄도지사가 인구 1400만명의 거대 도시를 앞으로 4년간 더 이끌어 가게 됐다. 일본 수도 행정의 보수우경화 색채가 한층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 지사는 5일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4년간의 도쿄 대개혁이 높이 평가받았다. 앞으로 코로나19의 2차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 선거에는 역대 가장 많은 22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나 고이케 지사의 적수는 없었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은 직접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고이케 지사를 지원했다. 고이케 지사에게 맞설 만한 후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력(이집트 카이로대 졸업) 위조 의혹의 구체적인 내용과 사람 됨됨이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여러 사례가 폭로됐으나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방송 앵커 등을 거쳐 1992년 일본신당 소속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그는 여러 번의 당적 변경을 거쳐 자민당에 입당, 2007년 첫 여성 방위상을 지냈다. 2016년 아베 신조 총리와의 불화 끝에 자민당을 탈당해 치른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처음 당선됐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은 고이케 지사에게 순풍이 됐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던 중앙정부의 아베 총리보다 더 능숙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평가를 유권자들로부터 받았다. 재선 성공에 따라 과거사 부정 등 그의 우경화 행보는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 소속인 그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도 참배하는 인물이다. 그는 역대 모든 지사가 해 왔던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대한 추도문 전달을 2017년부터 중단했다. 이에 더해 올해에는 9월 1일 추도식 행사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7년 중의원 선거 때에는 ‘희망의 당’이라는 이름의 신당을 창당하면서 입당 희망자에게 ‘외국인 참정권 부여에 반대한다’는 협정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검찰, 정종제 전 광주시 행정부시장 등 6명 불구속 기소

    정종제 전 광주시 행정부시장이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불법적으로 권리당원을 모집한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지검은 25일 공무원 신분으로 권리당원을 모집한 정종제 전 광주시 행정부시장을 공직선거법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권리당원을 모집해 준 광주시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등 5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광주시 행정부시장으로 재직중이던 정씨는 2019년 5월부터 7월까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동남갑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을 앞두고, 함께 기소된 공공기관 임원·공무원 등과 공모해 권리당원 5127명을 모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정씨가 국회의원 출마를 염두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 대비하기 위해 과거 지방선거에서 선거캠프 간부 활동 경력이 있는 인물과 모 고등학교 총동창회장 출신 인사, 체육계 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조직적으로 권리당원을 모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권리당원 모집 경위·방법·건수·대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공무원 1명은 공직선거법 위반·지방공무원법 위반으로, 공기업 임원 1명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또다른 관련 공무원 4명과 지방공기업 임원 1명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광주시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수사하던 검찰은 지난해 9월 광주도시공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 입당원서를 발견, 관련 수사를 이어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아름다워져” 외모 발언했다가 지적받은 이용호 의원

    “아름다워져” 외모 발언했다가 지적받은 이용호 의원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외모를 칭찬했다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용호 의원은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에도 여야가 함께하지 못하고 첫 상임위를 일부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로 시작하게 된 것을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인사말을 시작했다. 이후 “한정애 위원장님, 평소 존경하고 날이 갈수록 더 관록이 쌓이고 아름다워져서 잘 모시겠다”고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이후 모든 위원들의 인사말이 끝난 뒤 한정애 위원장은 “위원님들이 남다른 각오들을 가진 것 같아서 힘이 되기도 한다”면서도 “잠깐 인사 말씀을 들으면서 누구를 지칭하거나 하면 실례가 되는데요. 우리 상임위에서는 외모와 관련된 것은 안 하는 것으로 조금씩만 배려하고 조심해 달라”고 지적했다. ‘아름다워졌다’며 뜬금없이 외모 칭찬을 한 이용호 의원의 발언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용호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소속으로 전북 남원·임실·순창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합당할 때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기존 지역구에서 재선에 도전했고 당선됐다. 이용호 의원은 민주당 입당을 신청했지만 입당하지 못했다. 한정애 위원장은 한국노총 출신으로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됐고, 20대 총선에서 서울 강서병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21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돼 3선 의원이 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공황장애 호소’ 이탄희 의원, 규정 없어 병가 못 내

    ‘공황장애 호소’ 이탄희 의원, 규정 없어 병가 못 내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병가를 신청하려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용인정)이 국회법상 규정이 없어 병가를 내지 못했다. 대신 국회의장에 청가서를 제출해 휴식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이 의원실 측은 9일 “당 지도부와 상의해 국가공무원법을 근거로 60일의 병가 신청서를 의장실에 제출했지만, 병가를 처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려됐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국가공무원에 해당하는 연가 및 병가 개념이 적용되지 않고, 사고 등으로 본회의에 불출석하는 경우 청가서 또는 결석신고서를 의장에게 제출하도록 돼 있다. 결석한 회의 일수에 대해서는 그만큼 특별활동비를 삭감하지만, 사유를 밝히고 청가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괜찮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신보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출산을 위해 본회의 불출석 청가서를 제출한 적 있다. 이 의원 역시 전날 열린 본회의에는 청가서를 제출하고 불참했다. 국회 관계자는 “국가공무원법이 적용되지 않을 뿐 국회의원은 사유에 따라 청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며 “병가가 반려된 것이 아니라 청가로 정정해 신청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으로 지난 4·15 총선에서 당선된 이 의원은 지난 6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하며, 잠시 국회를 떠나 건강을 회복하고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판사 뒷조사 파일 관리 업무를 지시받은 후 이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증상이 시작됐다”며 “치료 등과 주변의 도움으로 극복했지만 입당과 공천 과정에서도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며 재발했다”고 설명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與탈당 뒤 출마 후 ‘시민당 고리 우회 복당’하려다 대거 덜미

    與탈당 뒤 출마 후 ‘시민당 고리 우회 복당’하려다 대거 덜미

    자치단체장 등 1050명 적발… 입당 거부 “본인 편의 위해 탈당한 당원 복당 제동”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인사들이 최근 더불어시민당을 통해 ‘우회 복당’을 시도하다 적발돼 입당 거부를 당했다. 8일 민주당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달 13일 비례위성정당이었던 시민당과의 합당 절차를 마무리한 후 지난달 말까지 시민당의 당원 승계 심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민주당 소속이었으나 공천 규정에 반발해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한 광주 지역 A씨를 비롯해 1050명가량이 시민당을 통해 복당하려다 덜미가 잡혔다. 민주당은 탈당한 날로부터 1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복당 신청을 할 수 없는 데다, 입당과 달리 복당은 반드시 복당 심사를 거치게 돼 있어 시민당을 통해 우회 입당하려 한 것이다. 과거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민주당으로 복당을 시도한 사례가 종종 있었으나 이번에는 비례정당(시민당)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대규모 복당 심사가 진행됐다. 이 가운데는 20대 총선이나 2018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후보자와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 총선을 함께하지 않은 단체장에 대해서는 입당을 거부하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탈당한 당원에 대해서도 복당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 당규상 당원자격심사위원회는 입당·복당·전적 신청자에 대해 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적합한지의 여부, 당헌·당규 또는 당명·당론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의 전력 유무 등을 판단해 당원 자격을 결정할 수 있다. 이에 민주당은 통합된 시민당 당원들을 민주당의 각 시도당 당원 명부와 비교해 탈당 이력 등을 전부 조사했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입당을 불허했다. 민주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 관계자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시민당으로 들어온 경우는 모두 심사하기로 시민당과 합의를 했다”면서 “시민당 출범을 위해 탈당한 사람들은 문제가 없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갔다가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걸러냈다”고 설명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민주당 탈당 인사들, 시민당으로 ‘우회 복당’ 하려다 ‘덜미’

    민주당 탈당 인사들, 시민당으로 ‘우회 복당’ 하려다 ‘덜미’

    당원자격심사서 1000여명 ‘무더기 적발’ 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인사들이 최근 더불어시민당을 통해 ‘우회 복당’을 시도하다 걸려 입당 거부를 당했다.8일 민주당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달 13일 시민당과 합당 절차를 마무리한 후 지난달 말까지 시민당의 당원 승계 심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민주당 소속이었으나 공천 규정에 반발해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한 광주 지역 A씨를 비롯해 1050명 가량이 시민당을 통해 복당하려다 덜미가 잡혔다. 민주당은 탈당한 날로부터 1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복당 신청을 할 수 없는 데다, 입당과 달리 복당은 반드시 복당 심사를 거치게 돼 있어 민주당의 비례정당으로 출범했던 시민당을 통해 우회 입당하려 한 것이다. 과거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민주당으로 복당을 시도한 사례가 종종 있었으나 이번에는 비례정당(시민당)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대규모 복당 심사가 진행됐다. 이 가운데는 20대 총선이나 2018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후보자와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 총선을 함께하지 않은 단체장에 대해서는 입당을 거부하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탈당한 당원에 대해서도 복당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 당규상 당원자격심사위원회는 입당·복당·전적 신청자에 대해 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적합한지의 여부, 당헌·당규 또는 당명·당론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의 전력 유무 등을 판단해 당원 자격을 결정할 수 있다. 이에 민주당은 통합된 시민당 당원들을 민주당의 각 시·도당 당원 명부와 비교해 탈당 이력 등을 전부 조사했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입당을 불허했다. 민주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 관계자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시민당으로 들어온 경우는 모두 심사를 하기로 시민당과 합의를 했다”면서 “시민당 출범을 위해 탈당한 사람들은 문제가 없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갔다가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걸러 냈다”고 설명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34년 미궁 팔메 스웨덴 총리 암살 규명될까 1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34년 미궁 팔메 스웨덴 총리 암살 규명될까 1

    스웨덴의 오늘을 만든 올로프 팔메 총리가 스톡홀름의 번화가에서 흉탄에 스러진 지 34년이 훌쩍 흘렀다. 자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숱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막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던 차였다. 경찰은 신변 보호를 하겠다고 했으나 그는 보통의 삶을 누리겠다며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다. 1986년 2월 28일(이하 현지시간) 밤 9시쯤 시작하는 영화를 보러 외출해 21분 뒤 부인 리스벳과 함께 걷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등을 맞고 즉사했다. 리스벳도 한 방을 맞았다. 이 나라에서 가장 번화한 스베아바겐 거리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암살범은 검거되지 않았다. 수십명의 목격자들이 키 큰 남자가 총을 발사하고 현장에서 달아났다고 증언했지만 소용 없었다. 스웨덴 검찰청이 10일 아침 기자회견을 열어 30년 넘게 밝혀지지 않은 암살 사건 수사의 결론을 내릴 예정이어서 주목된다고 영국 BBC가 7일 전했다. 지난 2월 크리스터 페테르손 검찰총장은 공영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 “살해 과정에 일어났던 모든 일과 누가 책임있는지에 대해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고 예고했다. 지금까지는 기소된 사람도 없었고 새로운 용의자 이름이 알려진 것도 없다. 하지만 경찰이 어쩌면 수십년 동안 국민들 사이에 온갖 억측을 낳고 끊임없는 음모론 소재를 제공했던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근접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터져나온다. 책 ‘블러드 온 더 스노-올로프 팔메 살해’를 쓴 얀 본데손 박사는 BBC 인터뷰를 통해 “(영국으로 치면) 마거릿 대처가 피가딜리 광장에서 총 맞고 쓰러진 것과 같으며 이 살해범은 남의 눈에 띄지도 않고 지하철 역 안에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고인의 아들이며 생전 마지막 모습을 봤던 목격자 중 한 명인 마르텐 팔메는 연초에 경찰이 “아직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코 발견되지 않았던 범행 무기와 관련된 것이 새로운 증거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간 아프턴블라뎃과의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 중요한 것을 알고 앞으로 나서주지 않으면 분명 시간이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1927년 귀족 집안과 연결된 상류층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1969년 정신적 스승이었던 타게 에를랑더의 뒤를 이어 총리 직에 올랐다. 안나 순드스트롬 올로프 팔뫼 국제센터 사무총장은 “스웨덴 복지 체계의 아버지로 통하는 에를랑더에 의해 정치인으로 훈육됐는데, 난 그가 에를랑더의 정책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재임 기간 그는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건강보험과 복지체계를 확장했다. 왕가의 정치적 기능을 제거하고 교육에 많은 투자를 집중했다. 교육 개혁에 힘써 간호사 학교와 유치원 들을 지어 여성이 직업을 갖게 해 성 평등을 이룩하게 만들었다. 국제 문제에도 당당히 목소리를 냈다. 미국과 옛 소련 어느 쪽도 그의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때, 미군이 4년 뒤 베트남 전쟁 때 북폭 작전으로 많은 인명을 희생시켰을 때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수용소 캠프에 비견해 미국과 사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1973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이 세상에서는 누군가 들으라고 공평하게 떠들 자유가 있기 때문에 난 후회하지 않는다. 난 이런 이슈들이 생길 때마다 침묵할 수가 없고 침묵에 눌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명령이야 말로 “완전 소름끼치는 시스템”이라고 비판하면서 아프리카민족회의(AFC)에 기금을 냈다. 프랑코 스페인 총통을 “우라질 살인범”이라고 격하한 것도 유명했다. 핵 비확산 조약을 체결하자고 앞장섰으며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의 중재자로 나선 것도 대단했다. 그러나 이렇게 거침 없는 행동 때문에 지지자도 많았지만 적도 많았다. 스웨덴 기업인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잠식한다고 경계했고 해외 지도자들도 마뜩찮아 했다. <2편에 이어진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다음만 가겠다” 이탄희, 아물지 않은 3년 전의 상처(종합)

    “다음만 가겠다” 이탄희, 아물지 않은 3년 전의 상처(종합)

    “사법농단 이후 공황장애…회복할 것”“3년 동안 직업 4차례 바뀌었다”“한번 선택할 때마다 안 돌아본다” 사법농단을 세상에 알린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공황장애를 고백하며 건강 회복을 위해 잠시 국회를 떠나있겠다고 선언했다. 이 의원은 6일 페이스북을 통해 “총선이 끝나고 국회 개원을 맞이한 오늘까지 말 못 할 고통과 싸워 왔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국민들에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선출직 공직자로서 도리이자 책무인 것 같아 용기 내어 말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2017년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판사 뒷조사 파일 관리 업무를 지시받은 후 이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증상이 시작됐다”며 “치료 등과 주변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갑작스럽게 정치참여 결정을 하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3월 말, 공황증상이 다시 시작됐다. 입당 및 공천 과정에서 사법농단 당시를 둘러싼 논란과 터무니없는 곡해가 난무하면서 채 아물지 않은 3년 전의 상처가 다시 떠올라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이어 이 의원은 “당선 이후에도 약 두 달 간 알 수 없는 극도의 불안이 지속됐고, 하루 2∼3시간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몸과 마음은 2017년 2월 당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국민들이 양해해준다면 온전히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게 하겠다. 초심을 간직한 이탄희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 알린 이탄희 전 판사 이탄희 의원은 판사 시절인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났다.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국제인권법연구대회 학술대회를 저지하라는 지시를 듣고 항의하며 사직서를 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 판사를 원래 근무하던 법원으로 다시 보냈고, 이 같은 이례적인 인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일어났다. 이탄희 의원은 당시 페이스북에 “사법 농단의 본질은 헌법 위반이고 법관의 직업윤리 위반”이라면서 “형사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농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외교부, 특정 로펌 등이 분업하며 재판에 개입한 사건으로, 우리 헌정 체제를 위협하고 재판받는 당사자들을 농락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이 엄격한 법관 징계 등 직업윤리 수호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법관 탄핵 등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들이 모두 취하는 방식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렇게 어려운 것이냐”고 토로한 바 있다.의원이 된 이탄희, “판사복 벗은 것 후회한 적 없다” 이탄희 의원은 지난 4월 총선 승리 직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판사를 그만두고 정치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방송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그냥 눈 감아도 되는 걸 터트려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그래서 판사복 벗게 되고 또 정치판에 끼어들게 된 것에 대해서 ‘판사 계속할걸’ 후회해본 적 없냐”는 진행자 질문에 “진짜 없다.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사실은 못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또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이게 처음이 아닌 게, 2017년에 사표를 한 번 내봤고 또 2019년에 한 번 법원에서 나왔고 그 다음에 로펌 안 가고 변호사 했고 그 다음에 다시 그만두고 입당했는데 3년 동안 직업이 네 번째 바뀌는 것”이라며 “제가 느낀 것은 후회를 할 것 같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어차피 못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 번, 한 번 선택할 때마다 팔 하나 자르고 눈 하나 파주고 가는 것”이라며 “그리고 안 돌아보고 다음만 가는 것”이라며 “다만 이런 생각은 했는데, 내가 정치가 뭔지 선거가 뭔지 진짜 하나도 몰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의원실 측은 국회와 지역 사무실은 모두 정상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실 측은 “구체적인 현안과 공약들은 담당자를 지정해 대응하고, 시민들과의 소통채널도 유지하겠다”고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공황장애 고백한 이탄희 “새벽 2시 식은땀으로 깨어나”

    공황장애 고백한 이탄희 “새벽 2시 식은땀으로 깨어나”

    “2017년 2월 사법농단 이후 증상 시작입당·공천 과정에서 증상 다시 나타나”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사법농단 사태로 공황장애를 겪게 됐다고 고백하며 건강 회복을 위해 잠시 국회를 떠나있겠다고 선언했다. 이 의원은 6일 페이스북을 통해 “총선이 끝나고 국회 개원을 맞이한 오늘까지 말 못 할 고통과 싸워 왔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국민들에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선출직 공직자로서 도리이자 책무인 것 같아 용기 내어 말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2017년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판사 뒷조사 파일 관리 업무를 지시받은 후 이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증상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치료 등과 주변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했지만, 입당과 공천 과정에서도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의원은 “당선 이후에도 약 두 달 간 알 수 없는 극도의 불안이 지속했고, 하루 2~3시간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몸과 마음은 2017년 2월 당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한숨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 2시에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깨어나는 날의 반복”이라면서 “점점 몸이 말을 안 듣고, 일시적으로 정신이 마비되는 듯한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절대 안정을 취하고 우선은 일을 멈춰야 한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국민들이 양해해준다면 온전히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게 하겠다. 초심을 간직한 이탄희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글을 맺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정의당, 커다란 귀 가진 상냥한 정당 돼야”

    “정의당, 커다란 귀 가진 상냥한 정당 돼야”

    똑똑한데… 시민들이 말 걸기 꺼려 귀 열고 당원·지지자들 얘기 들어야 당 혁신하면 스타 정치인도 나올 것 우린 야당… 與와 인권 등 각 세워야 “지금 정의당은 조금 무서운 느낌인데, 시민들이 말을 걸 수 있는 상냥한 정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의당은 4·15 총선에서 6석 확보에 그친 후 ‘혁신’이라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주제를 꺼내 들었다. 오히려 눈길을 끈 건 진보정당 경험 대신 다큐멘터리 감독, 유튜버, 싱어송라이터, 연세대 자퇴생 등의 이력을 지닌 젊은 여성정치인이 혁신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9월 정의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장혜영(33) 혁신위원장은 2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정의당의 가치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원인 중에는 똑똑한데 말을 걸기는 꺼려지는 이미지 탓도 있다. 저도 그랬다”고 말했다. “회사 건물 같은 여의도 당사도 당원을 환영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대문에서부터 환영하지 않으면 바쁜 시민들은 우리를 쳐다볼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커다란 귀’로 당원과 지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의당의 혁신을 넘어 지금 시대의 정의로움을 규정하겠다는 게 장 위원장이 밝힌 포부다. 장 위원장은 위원장직 수락 이유에 대해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했다”면서 “당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됐고, 다음 세대 정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필연적으로 답해야 했다”고 말했다. 정의당 혁신위는 지도체계 개편을 포함해 리더십 교체 등을 논의해 8월 ‘혁신 당대회’에 혁신안을 올려야 한다. 장 위원장은 “어떤 리더십이 적절한 것이냐는 매우 중요한 토론 과제”라면서도 “일단 혁신위는 지금 커다란 귀를 만드는 단계”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진보정당의 스타 정치인은 스스로 시대의 변화를 만들며 탄생하는 것이지 아이돌처럼 육성되는 게 아니다”라면서 “당의 혁신과 함께 실제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더불어민주당 2중대’로 표현되며 정의당에 상처가 된 두 당의 관계는 21대 국회에서 변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을 거치면서 정당 정치의 축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장 위원장은 “누가 뭐래도 여당은 민주당이고 저희(정의당)는 야당이다. 민주당과 함께하는 민주연합의 시대가 지났다는 건 이번 선거에서도 증명됐다”고 잘라 말했다. 오는 5일 임시회 소집처럼 민주당에 협력할 것은 하겠지만, 존엄과 인권, 평등과 관련된 일을 민주당이 질질 끄는 문제에 대해서는 매섭게 각을 세우겠다는 설명이다. “전화통에 불날 각오를 하며 여러 의제를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정의당이 추구해야 할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자 장 위원장은 “이것이 정의니까 모두 따라와야 한다고 강요하기보다는 어떤 부정의와 맞서 싸울 것인지부터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정의의 첫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정의로운 게 무엇인지 규정하는 혁신안을 만드는 게 지금 가장 큰 숙제”라고 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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