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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듣는다] “도심 옛 모습 남겨야… ‘2030플랜’ 시민과 함께 고칠 것”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듣는다] “도심 옛 모습 남겨야… ‘2030플랜’ 시민과 함께 고칠 것”

    “서울의 도시기본계획인 ‘2030플랜’은 새롭게 수정돼야 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신문과의 2012년 신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시민이 함께하는 도시계획’ 의지를 밝혔다. 박 시장은 또 “시청 신청사 지하 2층에 2500평 규모로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니어처 전시실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인사와 관련해 “공무원이 은퇴하고서 인생 후반기를 준비할 수 있는 세밀한 계획을 이르면 1월 중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야권 통합의 한 축인 박 시장은 정당 개혁과 관련, “전문가 집단을 향한 개방성, 20~30대를 포괄하는 인터넷 정당, 10대와 20대 국회의원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담: 송한수 사회2부 차장 →지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내다보는 사자성어를 들면. -‘시민시장’(市民市長), 이 말 자체가 지난 한 해를 상징하는 특별한 단어이고, 모든 서울시 행정의 철학이 되고 기본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또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의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와도 연결된다. 우리는 시민이라는 배를 타고 있다. 선거 중에도 나는 쪽배이고, 한나라당은 큰 항공모함이라는 비유를 했다. 그쪽은 물을 거슬러 가 폭풍을 만났고, 우리는 물 흐름을 잘 타서 무사히 항해할 수 있었다. 시민이 물이고 정치인·행정가는 배다. 그 배를 시민이 바라고 소망하는 대로 잘 이끌어야 항해에 성공할 수 있다. →취임 두 달이 넘어섰다. 시민단체 시절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이 나쁜 점은 내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말도, 행동도, 실천도 자유롭지 않다. 동시에 관료주의라 비난받는 공무원 시스템이(내가) 꿈꾸었던 많은 것을 실천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과거 시민단체에서는 ‘이것 한번 해봐.’ 그러면 말을 안 들었다. 서울시에서는 어디선가 말하면 바로 챙겨 추진정책으로 올라오는 피드백이 확실하다. →그 사이 제일 잘한 정책은 뭔가.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외에 여론의 주목을 못 받은 것 중 하나는 ‘시민소통활성화센터’다. 과거에는 어떤 과에서 정책을 펴내면 다른 부서는 일일이 따로 찾아봐야 했는데 이것을 공유하는 내부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외부에도 공개하겠다. 미국에서 데이터(www.data.gov)라는 공개 사이트가 어마어마한 경제가치를 창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던 택시 부분의 교통 혁신도 들 수 있다. 새해에는 이런 방향의 정책이 더 쏟아져 나올 것이라 본다. ●“시민소통 활성화센터 잘한 듯” →야당 대통합의 한 멤버로 참여한다. 새해 총선과 대선 전망은. -시민들의 변화 욕구가 강하다. 시민들은 가슴에 와닿고 감동 있는 정치를 강력히 바라고 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부터 앞으로 총선, 대선 모두 다 그럴 것이다. 스스로 혁신과 변화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승패가 날 것이다. →민주통합당 입당 시기는 언제로 보고 있는가. -혁신·통합이 이뤄지면 입당하겠다고 처음부터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시기까지는 모르겠다. 제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쉽지 않을 것이라 본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통합하면 좋겠지만, 안 되면 연대라도 합의하기를 바란다. ●“2030 포괄 인터넷 정당 필요” →정치적으로 ‘이상적인 형태’는 어떤 모습인가. -우선 정치에는 ‘정치꾼’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안철수 교수와 같은 전문직종, 또 나 같은 시민사회 사람들도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개방성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인터넷 기반의 20~30대가 ‘꼰대 같다’고 느끼지 않는 ‘인터넷 정당’이 돼야 한다. 세 번째는 현장에서 쏟아지는 재미난 정책을 통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19세 최고위원 하나 만들고 26세 국회의원 하나 만들어라.’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한나라당이 먼저 받아들인 것 같다. →공천지분 문제가 입당 조건이 될 수 있나. -나를 지원하고 있는 분들은 시민이라는 바다인데 그런 지분 얻어서 뭐하겠는가. →안철수 교수가 ‘대권수업’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정치는 아무리 외부에서 하라고 해도 본인의 실존적 결단과 운명적 인식이 없으면 못 한다. 나도 그랬다. 안 교수에게도 어느 순간 그런 계기가 있을 것으로 본다. 정치는 영원히 안 하면 행복한 것이지만 운명처럼 다가온다. 우리 사회에 안 교수 같은 분은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 않아도 수많은 발언·참여 기회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학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것을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닌가. →남북 교류 차원에서 ‘경평축구’를 제안할 것이라는데 어떤 계획인가. -지금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어 푸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푸는 것보다 스포츠나 문화예술로 푸는 게 낫다. 경평축구는 역사적 전통이 있는 것이라 중앙정부가 허락만 하면 된다. 서울시에는 남북교류기금이 180억원이 있다. 얼마 전에는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연주회 때문에 북한에 다녀왔다. 경평축구가 좋은 실마리를 만들 수 있지 않겠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는 여전히 시끄럽다. 좋은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회 결의가 이뤄져 재결의는 쉽지 않다고 본다. 국회가 풀어야 할 문제다. 서울시는 법령, 특히 조례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태스크포스팀을 만든 것이다. 전체 조례를 확인해서 FTA와 관련한 대안을 챙겨야 할 게 없는지, 어떻게 지원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계획은. -지하철·버스 요금은 왜 안 올리느냐고 비판받는 상황이다. 올리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번 인상을 버스·지하철의 혁신 기회로 삼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시의회에 150원 인상안이 올라가 있는데 그렇게 올려도 여전히 적자다. 버스·지하철만으로 서울시는 한 해 9100억원가량 적자를 본다. 이 중 2000억원 넘는 돈은 중앙정부 정책에 따라 노인 무료 운임으로 부담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예산 국회에 1000억원을 부담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하철의 특허 보유 현황 및 외국 진출 가능성을 분석했다. →페트병 수돗물 아리수를 유료화할 생각이 있나. -어느 정도 인식이 달라진 후에 유료화를 해야 한다. 한 자치구에 100명씩, 2500명 규모의 주부 모니터링단을 구성할 생각이다. 이분들이 마셔 보고 ‘왜 생수를 돈 주고 사 먹느냐’라는 여론이 확산될 수도 있다고 본다. 처음에는 1조원이 들어가는 고도정수시설을 동시에 하고 있기에 비판을 했는데, 갈수기가 되니 고도정수처리장이 없는 수돗물은 냄새가 나더라. 지금은 이른 시일에 예산을 투입해 고도정수시설을 완성하려고 한다. →지난 서울시 인사를 어떻게 자평하나. -세대교체가 어느 정도 됐다. 기술직·여성도 파격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여성은 워낙 자원이 없었다. 자치구 교류도 예전에는 한번 나가면 본청으로 들어오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나간 분들에게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하급직 인사는 2월까지 할 예정이다. 여러 경로로 인사 제안을 받고 있다. 1월 중순쯤 세밀한 계획까지 발표할 것이다. ‘감동 인사’와 ‘성장 인사’를 하겠다. 서울시에 계시다 은퇴한 분들까지 배려할 계획도 있다. 은퇴 공무원들은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2500평 규모 市미니어처 전시” →가락시영아파트 종상향 문제 등으로 뉴타운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가락시영은 특별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경실련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결정이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종상향은 됐지만 실제로 용적률을 따지면 큰 변동이 없다. 비판의 팩트가 틀린 것도 있다. ‘2030플랜’ 같은 도시계획이 새롭게 수정돼야 한다. 도시 미래에 대한 철학과 이론 등이 반영돼야 한다. 또 좋은 건축주가 좋은 건물을 만드는 것처럼 좋은 시민이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미래 도시를 이해하는 시민의 참여와 교양이 함께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신청사 지하 2층에 ‘서울 도시 미래관’을 만들고 싶다. →서울의 모습, 비전은. -근원적으로는 지역공동체를 말씀드렸다. 서울시 도시 정책은 잘못됐다. 요즘 사대문 안쪽을 복원하고 있는데, 구도심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야 했다. 피맛골이라든지 한옥 등이 다 없어졌다. 큰 틀에서 전체를 조망하고 서울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에 바란다’ 포스트잇 중 제일 눈길을 끈 것은 뭔가. -‘야근 없는 세상!!’ 정리 문소영·강병철기자 symun@seoul.co.kr ▲박원순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경기고 졸업·서울대 사회계열 1년 제적·1979년 단국대 사학과 졸업·1992년 영국 런던 LES 디플로마 취득, 1980년 사법시험 합격(22회), 대구지검 검사, 1983년 변호사 개업,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1993년 미국 하버드대 법대 객원연구원, 1995~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1~2010년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2006~2010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35) 그녀와 만난 남자는 모두 죽는다 마약에 눈먼 20대 명품녀의 엽기적 살인행각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뼛속부터 非한나라… 쇄신? 내홍? ‘양날의 칼’ 비대위

    뼛속부터 非한나라… 쇄신? 내홍? ‘양날의 칼’ 비대위

    “비대위원 구성은 당 쇄신과 변화의 중대한 첫걸음이다. 국민의 기대와 당원 여러분의 열망을 잘 알기에 그동안 좋은 분들을 모시는 데 최선을 다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27일 당을 ‘뼛속까지’ 바꾸는 작업에 함께할 비대위원들을 인선했다. 비대위원들은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경력을 지닌 인사들로 구성됐다. 기성 정치권에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파격’은 이날 오후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부터 시작됐다. 당내 인사들로만 구성된 지도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비뚤어진 동료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후문이다. 외부 인사들은 한나라당을 위기 상황으로 몰고간 중앙선관위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에 대한 한나라당의 강도 높은 대응을 요구했다. 외부 인사들의 요구를 받아 김세연 비대위원이 검찰의 수사 내용과 결과를 검증하는 국민검증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하자 박 위원장이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인사들은 최구식 의원에 대한 자진 탈당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혐의가 있든 없든 국민적 의혹을 사고 있는 이상 책임을 져야 하고, 무혐의가 밝혀지면 재입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 이상 당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당내 인사들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외부 인사들이 파격적인 요구들을 쏟아내자 당내 인사들도 쇄신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나온 것이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주광덕 비대위원이 법과 관계없이 한나라당 차원에서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자고 제안하자 박 위원장은 어느 때보다 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즉각적으로 수용했다는 게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비대위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당내에선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비대위원 인선에 대한 당 안팎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박 위원장에게 비판적이었던 정두언 의원도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기존 한나라당 색깔과는 전혀 다른 인사들로 구성돼 박 위원장의 쇄신 의지가 읽힌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119조 2항을 입안했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명박 정권과 각을 세웠던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비대위의 중추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당 핵심 관계자는 “탈(脫) MB(이명박 대통령)는 기본이고, 낡은 보수 이미지를 깨고 당을 중도로 끌고 가려는 게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비대위원들은 박 위원장에게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첫 회의에서 보여준 것처럼 당 쇄신의 확실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공천과 당선이 모든 의사 결정에서 최우선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기존 최고위원들과 달리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박 위원장과 대립해 자신을 정치적으로 부각시킬 이유도 없다. 반면 비대위원들이 박 위원장을 겨누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집권 여당의 핵심 지도부다. 이들의 역할이 미진하면 당은 사실상 ‘박근혜 총재 체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역으로 이들이 정치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야당처럼 청와대와 정부를 압박하며 수많은 요구 사항을 내놓을 경우 박 위원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 정책위 관계자는 “비대위는 박 위원장의 대선 공약을 만드는 싱크탱크가 아니라 정부 정책을 이끌고 집행 여부를 결정하는 집권당의 수뇌부”라면서 “정부의 현실적 고민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광삼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김두관지사 내년초 민주통합당 입당

    김두관지사 내년초 민주통합당 입당

    무소속인 김두관 경남지사가 내년 초 민주통합당에 입당한다. 김 지사는 지난 21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구성되고 나면 적절한 시기에 입당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 내년 1월 15일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 후 입당할 것임을 밝혔다. 김 지사는 “도정을 맡고 있어서 당장 입당은 못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제가 제안했던 것이 통합의 정치였고 ‘혁신과 통합’의 상임 대표로 대통합을 주장해 왔는데 애초 그림대로는 안 됐지만 민주당과 한국노총, 시민통합당이 민주통합당으로 합당됐기 때문에 입당하기로 했다.”고 입당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도지사 선거 과정과 도지사에 당선된 뒤에도 도민들에게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던 김 지사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죄송하고 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있으며 도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관계와 관련, “큰 흐름에 박 시장과 같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으며 박 시장과 입당 문제를 긴밀하게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의 무소속 후보로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 지사가 입당할 민주통합당에는 김 지사의 동생 김두수(48)씨가 최근 제2사무총장에 임명돼 대외협력과 시민참여, 청년 비례대표 선출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내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고양시 일산서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17일 사망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권을 세운 아버지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뒤 17년간 봉건시대를 능가하는 절대 군주로 군림했다.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것은 1998년으로 그가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뒤부터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한 것은 그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이후부터다. 불우했던 유년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 16일 양강도 백두산의 항일빨치산 밀영(密營)의 귀틀집에서 김일성과 그의 전처인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러나 출생연도와 출생지는 북한의 발표와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출생연도는 1941년으로 알려진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부터 주민들에게 그의 출생연도를 1941년으로 홍보하다가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2년 뒤인 1982년 김일성의 70회 생일 때부터 1942년으로 선전했다. 출생지에 대해서도 북한은 1980년부터 백두산이라고 선전하면서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에 나섰다. 그 이전에는 김일성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했다는 경력 때문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아명도 러시아식으로 ‘유라’로 불렸다.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은 불행했다. 그는 김일성이 평양으로 입성한 지 2개월여 지난 1945년 11월 생모인 김정숙과 그의 빨치산 동료와 함께 소련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웅기항을 통해 북한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러나 남동생 슈라가 익사한 데 이어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6·25 전쟁으로 중국으로 피란살이를 가야만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계모 김성애의 손에서 성장한 유년시절은 김 위원장의 모성애 결핍을 낳았고 계모와 이복형제에 대한 반감은 후에 후계자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냉혹함을 보이게 했다. 휴전 이후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와 삼석인민학교와 제4인민학교 등을 거쳐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이듬해 7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1964년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지도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후계자 발돋움 김 위원장은 1967년부터 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1973년 중앙당 문화예술부장을 거쳐 당 조직 및 선동선전담당비서라는 막강한 지위에 올랐다. 그는 김일성의 장남이라는 유리한 신분을 이용해 김일성 정권에 불만을 느끼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들을 적발해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김일성의 신뢰를 얻은 김 위원장은 생모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원로 간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권력 2인자인 삼촌 김영주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 정치적 힘을 과시하던 계모 김성애, 김일성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물리치고 1973년 후계자 자리인 당 조직 및 선전비서에 올랐다. 이어 다음해 2월 제5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이 때부터 ‘지도자 동지’ ‘당 중앙’이라고 호칭됐으며 1975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후계자 내정을 앞둔 1972년 12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회의에서 주석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과 국가기구 개편을 단행했다. 또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동상, 혁명사적지 등 북한 각지에 두 부자와 그 가계를 선전하는 시설물 건설과 외국에서의 주체사상 홍보 등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었다. 김 위원장은 당과 군부 등 국정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도록 체제를 정비한 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후계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호칭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변경됐다. 이후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에 추대된 데 이어 1993년 김일성으로부터 국방위원장직을 공식 승계함으로써 권력 승계에 따른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17년 1인 독재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3년상을 빌미로 ‘유훈통치’에 전념했다. 당시 북한의 상황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한 이 시기에 국가경제와 식량배급제가 붕괴해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통제기능은 마비된 무정부 상태와 같았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3주기를 마친 뒤 1997년 9월 추대형식으로 당 총비서에 올랐고 이듬해 10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재추대되면서 김정일 시대가 공식 출범했다. 김정일 시대의 군부통치는 ‘선군정치’로 명명됐고 이는 강력한 통치구호로 자리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는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경제난 속에서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했으며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기술관료를 내각에 등용했다.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강성대국론·신(新)사고론·실리주의 등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외교적 행보는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다. 1994년 미국과 담판을 통해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김 위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교류를 추진했다. 2000년 6월 13일에는 반세기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6·15 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했다. 동시에 미국과도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추진했다. 2002년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고백외교’를 통해 북·일수교에 이어지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겨냥하기도 했다.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방문외교를 재개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이들 국가의 노하우를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이어갔다. 그러나 북한의 대서방 관계개선 노력은 ‘자위적 억제력을 보유해야만 체제를 보위할 수 있다.’는 선군정치 논리에 묻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을 통해 군사적 위력을 과시했지만 국제적으로는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국정운영에 초조감을 드러냈다. 2009년 1월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2010년 9월에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속도를 냈다. 경제적으로는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라는 무리수를 강행해 경제적 어려움을 격화시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과 8월, 지난 5월 등 1년여 동안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황금평과 나진 특구 건설에 뜻을 모았으며 지난 8월에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남·북·러 3국을 관통하는 가스관 연결사업 등에 합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김부겸 “대구서 출마” ‘박근혜 아성’ 허물까

    김부겸 “대구서 출마” ‘박근혜 아성’ 허물까

    경북 상주 태생의 민주당 김부겸(경기 군포·3선) 의원은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91년 ‘꼬마’ 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를 시작했지만,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그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기까지 김 의원은 한나라당 탈당파와 함께 ‘독수리 5형제’로 불렸다. 이때 설움을 호소하듯 전국 정당화를 내걸며 ‘지역주의 철폐’를 외쳤다. 지난 9월 펴낸 자서전의 제목을 ‘나는 민주당이다’로 붙였다. 민주당 ‘배지’ 7년의 세월이 간단치 않았음을 고백한 표현이다. 이때도 김 의원은 “지역주의와의 투쟁사는 내 개인사이자 민주당의 역사”라고 돌아봤다. 이런 김 의원이 15일 내년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첫 일성 역시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1983년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에 연루, 이듬해 첫딸을 안고 서울 부암동으로 쫓겨온 지 근 20여년 만의 ‘대구행’이다. 김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민주당의 마지막 과제,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아성을 총선·대선의 최대 격전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역정을 보면 김 의원의 ‘대구행’은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이 주변의 반응이다. 그와 가까운 이강철 전 수석은 “지역주의를 깨지 않고는 우리 정치가 한 걸음도 못 나간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전날 대구에 있는데 출마하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3선의 중진 의원이 민주당의 ‘불모지’를 선택한 것은 정치 철학만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야권 통합의 아쉬움과 정장선·장세환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김 의원의 결심을 당겼다고 한다. 김 의원은 회견에서 “두 의원의 불출마 소식을 듣고 너무도 부끄러웠다. 대구 출마는 두 의원의 희생에 대한 화답이자 기득권을 내려놓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쇄신 없는’ 야권 통합을 시종일관 비판했던 점을 거론하며 “과거 식구와 합치는 통합을 넘어 정당 정치를 혁신해야 한다.”면서 “대구에서 민주당의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덧붙였다. 당내에서는 김 의원의 결단을 ‘불출마보다 더한 사지(死地)행’이라고 바라본다. 당 핵심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뼈를 깎는 쇄신을 하는 와중에 야권은 통합과 반통합의 구도에만 갇혀 있다. 김 의원의 결단이 당의 혁신은 물론 통합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물꼬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김 의원은 16일 대구로 내려가 현지 관계자들과 함께 지역구 선정을 비롯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벌일 예정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MB맨들 총선 무소속 출마 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난 13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예비후보 등록 현황을 보면 이 대통령 측근 가운데 박형준 전 청와대 사회특보는 부산 수영구에, 김희정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산 연제구에 각각 한나라당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거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대구 중·남구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 전 차관은 이날 SLS그룹으로부터 일본 출장 중 접대를 받은 의혹 때문에 검찰에 출석했다. 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맡았던 이종찬 전 수석도 경남 사천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논란에 따른 촛불 시위 때 물러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전주 완산구을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 정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린 이들이 당의 인기가 떨어지자 무소속으로 나오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차피 대통령과 차별화를 해야 하는 만큼 다른 측근들도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라.”는 주장도 있다. 당사자들은 “착오가 있었다.”거나 “나중에 입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등록할 때 사무적으로 착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곧바로 한나라당으로 소속을 바꾸었다. 하지만 당 관계자는 “정 전 장관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도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면서 “착오라는 설명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은 “내각에 들어갈 때 탈당했기 때문에 현재는 당원이 아니다.”면서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장·차관 출신들과 나중에 함께 입당해 한나라당 소속으로 변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방호 전 사무총장 등과 경쟁하게 될 이 전 수석의 한 측근은 “한나라당 공천이 확실해지지 않으면 무소속으로 계속 선거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18대 첫 입성… ‘7인회’ 구성 개혁 목소리

    13일 탈당 의사를 밝힌 한나라당 정태근(서울 성북을) 의원은 당내 대표적인 개혁성향 쇄신파로 분류된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민주화 운동에 나섰고 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의 배후 주모자로 지목돼 징역을 살기도 했다. 정계에는 2000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386 세대에 맞서 젊은 피 수혈 차원으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전 최고위원, 고진화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후 서울 성북을 당협위원장을 맡아 국회 입성을 시도했으나 잇따라 고배를 마셨고 이번 18대 국회에서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정무부시장을 맡았고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 대통령의 수행단장을 맡은 ‘친이 직계’였지만 정권 초인 2008년 3월부터 이재오계와 함께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 및 부실 각료인사를 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며 비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남경필·권영세·정병국·정두언·권택기 의원 등과 ‘7인회’를 구성하는 등 당 위기 때마다 청와대와 지도부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데 앞장섰다. 이상득 의원과는 지난해 남경필·정두언 의원과 함께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으로 권력투쟁 양상까지 보이며 각을 세웠다. 소장파로서의 정 의원의 역할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 이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기조 변화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리는 데까지 임기 내내 이어졌다. 지난달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야당과의 원만한 합의처리를 촉구하는 단식투쟁을 열흘 동안 진행한 바 있다. 지역구가 전통적으로 서울에서도 야당 성향이 강한 지역인데다 여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겹친 탓에 내년 총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그동안 탈당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MB와 선긋기” vs “정권 흔들기”… 여야 모두 ‘MB 정조준’

    집권 3년 8개월째를 맞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터져 나오는 친인척 비리에 휘청대면서 여야가 드물게 한목소리로 이 대통령을 정면 조준하고 나섰다.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 보좌관의 거액 뇌물 사건에 이어 김윤옥 여사 사촌오빠까지 제일저축은행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며 정권 후반기 친인척 비리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임기말 정권 흔들기 차원에서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고, 여당은 흔들리는 대통령과의 차별화, 나아가 대통령 탈당을 통한 선긋기에 나선 모습이다. 민주당은 13일 전방위로 확산되는 이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겨냥해 당내 ‘권력형 비리 진상조사위원회’를 ‘대통령 측근비리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신건)로 전환, 파상공세에 나섰다. 위원회에는 내곡동 사저·형님·사촌오빠·저축은행·이국철 게이트 등 사안별로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측근 비리에 휘말린 ‘형님’ 이 의원을 넘어 최종적으로 이 대통령을 겨누겠다는 속내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네티즌 사이에서 이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인 MB가 ‘멀티 비리’로 통한 지 이미 오래”라면서 “이 대통령이 ‘현 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임기 말 봇물처럼 터지는 친인척 비리를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총체적 비리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도 결은 다르지만 야당과 궤를 같이했다. 표현 수위는 서로 다르지만 대통령 탈당론이 핵심이다. 재창당을 주장하는 쇄신파는 물론 친이계 내부에서도 현 정권과의 명확한 선긋기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속속 나오는 상황이다. 이들 사이에선 특히 수도권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 탈당, 당명 교체로 ‘MB 색채’를 빼지 않는 한 정권 재창출은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쇄신파이자 친이계인 권영진 의원은 전날 “재창당 과정에서 대통령이 입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탈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친이상득계로 분류되는 원희룡 의원은 이날 “(이 대통령과의) 단절과 정리가 필요하지만 당적 문제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수위를 낮췄지만 역시 현 정권과의 단절론을 주장했다. 이재연·강주리기자 oscal@seoul.co.kr
  • 총·대선 앞두고 ‘탈정치’ 의지 표명

    총·대선 앞두고 ‘탈정치’ 의지 표명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인이 아닌 기자 출신을 끌어안은 이유는?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단행된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서 임태희 대통령 실장 후임으로 하금열 SBS 상임고문을 기용했다. 이로써 청와대 수석비서관(기획관 포함) 이상 참모에 언론인 출신이 하금열 대통령실장(SBS), 김효재 정무수석(조선일보), 최금락 홍보수석(SBS), 이동우 기획관리실장(한국경제),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SBS) 등 모두 5명이나 포진하게 됐다. 반면 임태희 실장을 비롯해 특보단에서도 박형준 사회특보, 김덕룡 국민통합특보 등 정치인 출신이 청와대를 나가게 되면서 현재 이 대통령의 수석 이상 참모진에 정치인 출신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이 같은 참모진 구성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이 대통령이 ‘탈(脫)정치’ 의지를 분명히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 등 양대 중요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치인 출신을 청와대 요직에 기용할 경우, 청와대가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야당 쪽에 주면서 비난 여론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기 5년차를 맞아 대통령이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비정치인 출신의 참모진을 기용함으로써 정치와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대통령의 탈당 요구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은 12일 당의 재창당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새로운 당에 입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탈당하는 것에 대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을 비롯한 쇄신파 의원들이 주장하는 ‘한나라당 해산 후 신당 창당론’으로, 결국 이 대통령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같은 주장에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언론인 출신을 참모진으로 중용하는 또 다른 이유로 임기 말에 국민 여론을 비교적 균형감 있게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핵심관계자는 “정치인 출신과 달리 기자 출신은 사실의 왜곡이나 편견 없이 바닥 민심을 있는 그대로 직언할 수 있고, 당이나 국회와의 ‘소통’도 무난하게 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무적 감각이 뛰어난 민정 1비서관 출신의 장다사로 기획관리실장을 총무기획관에 기용한 것은 이 대통령의 임기 1년 2개월을 남겨두고 본격적인 퇴임 준비에 돌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장 기획관은 청와대 안에서, 물러난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은 청와대 밖에서 논현동 사저 준비를 비롯해 이 대통령이 물러난 뒤 ‘연착륙’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김근태 고문 뇌정맥혈전증… 딸 결혼식 참석 못해

    김근태 고문 뇌정맥혈전증… 딸 결혼식 참석 못해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64) 민주당 상임고문이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김 상임고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반도재단은 8일 “김 이사장이 지난달 29일 서울대병원에서 뇌정맥혈전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 중”이라면서 “빠르게 회복 중이며 예후가 좋은 편”이라고 밝혔다. 안정을 취하기 위해 면회는 사절하고 있다. 김 상임고문은 한 달 전 심하게 감기 몸살이 난 뒤 차도가 없어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뇌정맥혈전증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몸 움직임이 다소 불편하지만 인지 능력은 정상”이라면서 “한 달 정도 입원 치료가 끝나면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10일 딸 병민씨의 결혼을 앞두고 불필요한 소문이 도는 것을 막기 위해 투병 사실을 알렸다고 한반도재단 측은 전했다. 한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병민씨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하림각에서 박선숙 민주당 의원실의 비서로 일하는 김동규씨와 결혼식을 올린다. 두 사람은 경희대 동문이다. 주변에선 그의 투병이 민주화운동 당시 겪었던 고문의 후유증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년학생 운동조직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초대 의장을 맡았던 그는 민청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뒤 1985년 9월 검거돼 23일 동안 하루 5~6시간씩 전기고문·물고문 등 살인적인 고문을 10차례 이상 받았다. 이후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이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떨리고 한여름에도 콧물 때문에 고생하는 등 심각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 2007년 대선 직전엔 파킨슨병 진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 측근은 “지역(서울 도봉갑) 조기축구회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19대 총선 출마를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최근엔 야권 통합에 주력하며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올 초에는 당내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인과 486 인사들이 결합한 ‘진보개혁 모임’을 발족하며 대표로 활동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여의도 블로그] 이용희의 ‘세습정치’ 테크닉

    올해로 팔순을 맞은 자유선진당 이용희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은 현역 의원 중 최고령이다. 29세 때 정계에 입문해 9·10·12·17·18대 총선에서 당선된 5선 의원이다. 줄곧 민주당 소속이었으나 18대 총선을 앞두고 ‘비리 전력자 배제’ 기준에 걸려 공천을 받지 못하자 선진당으로 옮겨 당선됐다. 이 의원의 장수 비결은 ‘지역구 관리’에서 나온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항상 지역구 민원 현황이 적힌 쪽지가 들어 있다고 한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선진당이 충북에서 당선시킨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22명이 모두 이 의원의 지역구 소속일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 의원이 요즘 ‘세습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이 의원의 아들인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이 지난 8월 말 민주당에 입당한 뒤 이 의원 지역구의 민주당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자신은 선진당 지역위원장직을 유지하며 당내 경쟁자들이 이 지역에 발을 들일 틈을 주지 않으면서 당적이 다른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진당 내부에서는 탈당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 의원도 “자꾸 나가라고 하니 비켜줄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갈등은 이 의원이 선진당에 입당할 때부터 예고됐었다. 선진당은 18대 총선에서 기호 3번을 부여받기 위해 민주당 및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들을 마구 받아들였다. 선진당 관계자는 “더 큰 문제는 지금도 선진당 의원들 상당수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으로 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습 정치’와 ‘지역당’을 만들어주는 것도, 끝내는 것도 결국 유권자들의 몫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선거철 쏟아지는 신당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당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다.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5일 현재 중앙선관위에 정식 등록된 정당은 모두 21곳이다. 이 중 한국기독당 등 3곳은 올 들어 결성된 신생 정당이다. 중앙선관위에 제출된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도 국민행복당과 녹색사회민주당, 영남신당 등 12곳에 이른다. 국민행복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이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당원 5000여명이 모여 중앙당 창당대회를 갖고 활동에 나섰다. 창당준비위원장인 허평환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개혁적 보수를 표방한다.”고 말했다. 창당 준비모임 성격의 정치 결사체도 등장했다. 한나라당 전·현직 보좌진 등이 중심이 된 ‘리셋(Reset) 대한민국 4.0’이 여기에 속한다. 2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발기인 모임을 겸한 토론회를 연다. 이들은 향후 방향성에 대해 “기존 정당을 보수하는 방법, 새 집을 짓는 방법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총선을 앞두고 수많은 신당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기성 정치권의 높은 벽만 실감한 채 사라졌다.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등장한 진보정당인 한겨레민주당은 전남 신안군에 출마한 박형오 의원을 배출했지만, 박 의원이 평민당에 입당하면서 원외정당 신세가 됐다. 1992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이 창당돼 14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31명을 당선시키는 파란을 몰고왔다. 그러나 같은 해 정 회장의 대통령선거 패배와 소속 의원들의 탈당으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3김 타파’를 내세운 유명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들이 통합민주당 간판 아래 출마했으나 대부분 낙선했다. 1997년 당시 신한국당을 탈당한 이인제 의원이 주도한 국민신당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1석도 얻지 못해 10개월 만에 해체됐다. 2000년 조순·김윤환 의원 등을 중심으로 영남권 기반 신당을 모색했던 민주국민당도 같은 해 16대 총선에서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정몽준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통합21’은 정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낙선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이끈 자유신당(현 자유선진당)이 18석을, ‘박근혜 정당’을 표방한 친박연대(현 미래희망연대)는 14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친박연대는 비례대표 1·2·3번이 당선무효형을 받으며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3석을 확보했던 창조한국당은 문국현 전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박원순 서울시장 한달] “인기영합 행보 멈춰달라”

    박원순 시장은 24일 서울시의회 시정질의에 나서면서 만만치 않은 신고식을 치렀다. 김명수 시의회 민주당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 시장의 인기영합주의 행보를 잠깐 멈춰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첫 질문자로 나선 민주당 이강무 시의원은 “후보 시절 당선되더라도 딴 살림을 차리지 않겠다고 했는데, 최근 정치 행보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야권) 통합과 혁신에 참여할 것인가.”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야권 단일후보로 선거를 치른 만큼 야권 통합 과정에도 함께할 것”이라면서 “그 과정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에 입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서울시장으로서, 행정가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신언근 시의원이 “박 시장이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는 것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말하자 박 시장은 “이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면서도 “주민들과 접촉하고 현장에 나가 민의를 파악하는 것도 업무를 파악하는 일이다. 우려는 가슴에 새겨 반영해 걱정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친노 4인방 ‘통합 소용돌이’ 한가운데

    범야권의 통합 행로 위엔 유독 낯익은 얼굴들이 있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이른바 친노(親) 진영을 대표하는 4인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정치적 운명을 함께했던 이들이 이제 통합 소용돌이의 맨앞에 서 있다. 유 대표를 제외하면 모두 대통합 물살에 몸을 실었다. 복수의 친노 관계자는 21일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키워드는 반한나라당이다. 그러려면 김대중·노무현 세력이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기획통으로 불린다. 1997년·2002년 대선에서 승리를 견인했다. 지금도 ‘혁신과 통합’의 상임대표를 맡으며 범야권 통합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전 총리의 통합 구상은 1988년 평민당의 재야(평민련) 입당파 1세대로서 내걸었던 ‘국민정당’과 일맥상통한다.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각 계층과 결합하는 정책 정당이다. 한 측근은 “안 해본 건 오직 국회의장이다. (이 전 총리는) 적어도 2012년 대선까진 ‘플래너’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 전 총리는 통합정당의 당 대표로 출마하기로 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거리를 좁히는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실제 1979년 4월 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시국사건인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된 뒤 여성운동을 하다 정치권에 입문했다. 친노 관계자는 “한 전 총리는 검찰 수사를 이겨낸 ‘진보개혁’ 대표 선수이자 정당과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등 범야권 재편기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귀띔했다. 문 이사장은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를 맡으며 통합에 뛰어들었다. 동급의 다른 친노 인사들과 달리 정치적 이력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부산·경남(PK) 지역을 정권교체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각오가 강하다. 2012년 총선 이후 정치적 위상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부산 출마설이 힘을 받고 있다. 유 대표는 세 사람과 다른 길을 택했다. 진보 소통합에 힘을 보탰다. 민주당과의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총리와는 정치적 사제지간이다. 문 이사장은 유 대표에겐 정치적 후견인이다. 노 전 대통령이 유 대표를 후계자로 인정한 것을 지켜봤다. 지금은 외딴길을 걷는 유 대표가 언젠가는 대통합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박세일·문재인, 정계개편 제3의 진앙 직격 인터뷰

    박세일·문재인, 정계개편 제3의 진앙 직격 인터뷰

    ■보수 ‘브레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신당, 연말 가시화할 수도 총선전 결정땐 후보낼 것”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한국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10·26 재·보선 이후 여권에선 한나라당의 쇄신 논란과 맞물려 신보수 정당의 출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야권은 민주당과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재결합을 핵심 고리로 한 통합 논의에 분주하다. 정치권 개편 논의의 중심에 서 있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8일과 9일 잇따라 만나 정치 지형의 변화 가능성을 짚어 봤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보수 진영 브레인이자 여권의 잠재적 대권 주자로 꼽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한나라당을 향해 그는 ‘발전적 해체’를 요구했다. 그리고 개혁적인 보수 세력과 합리적인 진보 세력이 대동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통폐합한 거대 국민 정당을 구축하는 것, 그게 21세기 선진 한국을 향한 그의 정치 디자인이었다. 지난 9월 안철수 바람이 막 피어오른 때부터 두 달 가까이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고민은 끝났고 행동만 남았다는 뜻이다. 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공동체자유주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이라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다. 연말까지 가시화할 수도 있다. 내년 총선 전까지 창당 여부가 결정되면 후보도 낼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했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당 정치가 국민들에게 거부당한 것이다. 시대가 변화를 원한다. →한나라당의 쇄신이나 야권 통합이 본질적 변화를 가져올까. -야권 통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가치가 다른 정당들이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야합이다. 선거를 위한 야합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가치가 다른데도 모인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것인가. 나눠 먹기 식으로 하겠다는 것 아닌가. 국회가 나눠 먹기 하는 곳인가. 한나라당의 쇄신도 자기들 내부의 권력투쟁이 쇄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안철수 원장이 최대 관심 인물이다.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을 많이 한 분이다. 정당이 국민과 소통하고 자기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의 어려움도 수렴해야 하는데 한국 정당은 그게 없다. 안 원장이 그것을 했다. 답은 못 내더라도 국민들의 문제에 공감하고 대화를 해 줬다. 정당의 실패가 안철수 현상의 성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 전략을 가진 분인지, 정치에 참여할 경우 어떻게 국가를 끌고 갈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실질적인 오너는 박근혜 전 대표다. 실력자다. 그분이 나서서 당을 개혁해야 효과적이다. 박 전 대표가 나서서 당을 바꾸고 국민에게 ‘우리를 다시 지지해 달라.’고 말할 때가 왔다고 본다. 현 지도부가 당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고, 개혁이나 쇄신도 잘할 것 같지 않다. →박 전 대표와 화해할 생각은. - 난 박 전 대표와 싸운 적이 없다. 사적인 감정도 없다. 정책에 대한 견해가 달랐을 뿐이다. 견해가 다른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한나라당 탈당) 당시에 나는 수도 이전이 국익에 해롭다고 봤다. 화해란 말은 적절치 않다. 기본적으로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박 전 대표가 대권을 쥘 것으로 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는 본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통일, 복지 등 정책 이슈는 준비하는 게 보인다. 이제 국가 비전과 목표, 그리고 국가 가치에 대해 본인이 정리된 시각과 철학을 제시해야 한다. 두 가지를 보완해야 한다. 먼저 ‘왜 박근혜이어야 하는가’, ‘왜 대한민국 미래를 박근혜가 맡아야 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둘째, 외연을 확대하는 게 좋겠다. →박 이사장은 새 보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지 않나. -(한나라당의 쇄신과 별개로) 새로운 보수 정당을 만드는 것은 발전이다. 신보수가 등장해 보수의 새 가치를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바람직한 것은 신보수와 신진보, 즉 개혁적인 보수와 합리적인 진보가 대동단결, 협력해서 한국을 선진화와 통일로 이끄는 거다. 이념·지역·세대·계층에 의한 분열을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과 국민의 행복은 어렵다. 거대한 국민통합 정당이 나라를 운영하면 선진화와 통일이 가능하다. 당이 다르면 타협이 안 되지만, 당이 같으면 (이념적) 차이가 커도 타협이 된다. →너무 이상론 아닌가. -하루아침엔 안 되겠지만 그런 움직임이 있어야 대한민국에 희망이 생긴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가까운 장래에 성공할 수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둘 다 해체하고 국민 정당으로 통합하는 게 좋다고 본다. →일당 독재가 연상되는데. -대한민국엔 1.5당이 필요하다. 국민의 75% 지지를 받는 정당이 필요하다. 양당 체제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경향이 있다. 양당제에서 동양은 서양과 달리 정당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기보다 국민을 분열시킨다. 아시아에서 국가가 발전할 때는 주로 1.5당이 존재할 때였다. 우리는 공화당 때, 일본도 자민당 때 발전했다. 1.5당이 시대의 과제를 푸는 데 바람직하다고 본다. 진보와 보수가 빨리 합쳐지는 게 좋다고 본다. →내년 총선과 대선 전망은. -한나라당이 이대로는 총선도 어렵고, 대선 전망도 밝지 않다. 정권 교체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야당도 국정운영 능력과 비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치권 전체에 대해 걱정하는 바가 많다. →직접 한나라당에 들어가 개혁해 볼 생각은. -(웃으며) 그럴 생각은 없다. →내년 대선의 시대 정신은 뭔가. -통일과 선진화다. 선진화의 과제는 두 가지다. 우선 어떻게 하면 부민(富民)을 만들 것이냐, 둘째는 신복지 전략, 즉 안민(安民)이다. 그 다음은 통일이다. 통일이 내년에는 굉장히 중요한 화두로 등장할 것이다. →박 이사장을 여권의 잠재적 대권 주자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들어본 적도, 관심도 없다. 지금부터 5~10년은 한국 명운이 갈라지는 때다. 어떻게 하면 한 단계 더 발전할지를 정치가 고민해야 한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통일연합 등을 이끄는데 서울대 교수직이 제약이 되진 않나.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만들어 정책 운동을 하고 있고, 국민운동 형태로 선진통일연합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앞으로 일이 많아지면 가까운 장래에 학교 일을 정리해야 한다. 이춘규선임기자·주현진기자 taein@seoul.co.kr ■범야권 유력 대선후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野통합, 마냥 기다릴수야… 무산땐 제자리 돌아갈 것”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이어 현재 범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다. 지난 6월 자전 에세이 ‘운명’을 출판하면서 정치권으로 걸음을 옮긴 지 5개월. 그는 어느 새 정치 격랑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 그동안 언론사 인터뷰 장소로 한사코 부산 변호사 사무실을 고집했던 그가 처음으로 9일 서울 서교동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무실에서 서울신문 인터뷰에 응한 것도 작지만 정치인 문재인을 웅변하는 함의를 지닌다. 연일 야권 통합을 외치는 그에게 물었다. “문 이사장 머리엔 통합밖에 없나 봅니다. 통합 안 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통합이 안 되면 제자리(인권 변호사)로 돌아가야죠.” 답변은 간결했고 강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고,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지켜본 3명 중 1명인 그다. “참여정부 때 과오가 있다면 노 대통령 다음은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부채를 자신이 짊어지겠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자산’까지 승계할 것인지는 공란으로 뒀다. →야권 대통합에 대한 기본 입장은. -야권 통합의 필요성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야권 정당과 시민사회 세력까지 모두 합쳐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수권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야권통합에 임하는) 기본 입장이다. →연합 정당이라는 개념으로 성공할 수 있나. -헤쳐 모여식 통합이나 화학적 결합까지 도모하는 통합보다 그게 오히려 현실적이고 쉬운 길이다. 진보대통합은 정체성까지 함께하자는 통합이니 쉽지 않다. 기존의 야권 정당들, 시민사회 세력이 독자성이나 정체성을 그대로 지켜 가면서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것 같은 통합을 하자는 것이 연합 정당이다. →야권 대통합에 대해 민주당 내 반발이 심하다. -대통합의 취지를 제대로 잘 몰라서 생긴 오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됐던 아픔을 겪은 경험도 갖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전혀 그런 통합이 아니다. →복당이나 입당, 영입하면 되는데 왜 복잡한 과정을 거치냐고도 하는데. -그런 정도로 정권교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충족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민주당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지역적으로 치우치고 젊은 세대를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통합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도로 열린당 아닌가. -통합의 폭, 통합에 참여하는 세력의 범위 문제다. 가급적 폭넓은 정당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지금 현재 통합에 대해 포용하고 있는 세력들만 해도 기존 민주당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다고 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중통합을 하고 이른바 개문 발차하자는 얘기도 있는데. -모든 세력이 한꺼번에 통합하는 형태와 방식이 이상적인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그래서 일정한 시기까지 다 함께 가려는 노력들을 해 보고 그게 끝내 되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 시기까지 통합에 동의하는 세력들끼리 우선 통합 추진기구를 구성해 출발하고, 나머지 세력들을 설득해 다시 통합의 대열에 합류하게끔 하는, 그런 길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원장을 통합에 합류시킬 수 있는 방안은. -우선 합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결국은 안철수 원장과 안 원장이 대표하는 제3세력들까지도 함께함으로써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안 원장의 지지가 높고, 제3세력의 범위가 크다고 하더라도 역시 현실적인 정치 세력이 함께 기반이 돼야 현실에서 뜻을 펼칠 수 있다. 통합 세력과 함께하는 것이 그분에게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뜻을 전하기도 하고,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그런 것에 대한 논의나 설득을 해볼 생각이다. →안 원장이 제3의 신당을 만들 가능성은. -현실적이지 않다. 지금 지지도를 보이는 것처럼 지지받는 정당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야권을 분열시켜 약화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문 이사장의 권력의지가 종종 회자된다. 권력의지가 있나, 없나. -제가 꼭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꼭 맡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의지가 있다면 제가 뭘 이렇게 해서 권력을 손에 쥐겠다, 그런 의지가 아니고 ‘어쨌든 이번에 정권교체는 꼭 돼야 한다. 안 되면 나라 결딴이다.’라는 의지가 더 강하다. 그래서 거기에 제가 할 수 있는 힘을 보태겠다고 생각, 통합 운동도 하고 선거 지원도 했다. →내년 4월 11일 총선에 출마할 생각은 있나. -내년 대선·총선이 중요한데 거기에 통합 정당의 후보들이 나서서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 어떤 식으로 하는 게 도움이 될지는 그때 가서 판단할 것이다. →대선 출마에 대해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처해 있는 입장 이런 것이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가게 될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내년 총선·대선에서 정권 교체까지 되게끔 할 수 있는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 될지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도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우선 통합 운동에 매진해야 하고 통합이 반드시 성사돼야 그 이후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정치적 책임론이 있다. -참여정부 때 과오가 있다면 노 대통령 다음에는 내 책임이다. →박근혜 대세론을 어찌 보나. -대세론은 무너졌다. 대세는 요지부동 지속돼야 대세인데 한번이라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거나 흔들리면 더 이상 대세는 아니다. 우세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거다. 넘어서는 방법은 우리끼리 힘을 모으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거다. 이춘규선임기자·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범야권 통합’ 박원순 캐스팅보트

    범야권 통합 주도권을 놓고 물밑 힘겨루기에 들어선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혁통) 사이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있다. 다시 말해 박 시장이 어느 쪽으로 다가서느냐에 따라 팽팽한 양측의 무게중심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박 시장은 10·26 재·보선을 통해 시민사회 세력의 힘을 정당 중심의 정치권에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면서 진보 세력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대시켰다. 무엇보다 야권 단일 후보로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박 시장이 혁통의 일원으로 참여할 경우, 친노(친노무현) 진영과 범시민사회 진영의 결합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차기 잠재적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보유한 영남권 및 20~40대 진보·중도 표심이 결집될 공간을 마련한다는 얘기가 되고, 이는 범야권 통합의 주도권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반대로 제1야당인 민주당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당 해체 수순에 버금가는 통합 폭풍이 덮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꾸로 민주당 입당 등 박 시장이 당과 손잡는 경우다. 이럴 경우 민주당은 야당 맏형으로서 위상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민주당 중심 통합론’에 무게가 실리면서 전국 정당화, 중도층 결집을 위한 ‘호남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혁통 측은 친노 세력과 일부 시민단체가 결합한 세력의 하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손 대표는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야권 통합은 선거만을 위한 공학적 결합이 돼선 안 된다. 민주당이 대통합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박 시장은 두 곳 다 선택하지 않아도 손해볼 것은 없는 상태다. 여전히 대안 세력으로 존재하는 데다 안 원장을 중심으로 한 제3정당이 출현할 경우 박 시장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아직까지는 ‘등거리’ 외교를 하는 모양새다. 6일 있을 정치 세력화를 위한 ‘혁신과 통합’ 콘퍼런스에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박 시장의 한 핵심 측근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박 시장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며 힘을 싣느니 마느니 하는 건 그들의 생각일 뿐”이라면서 “야권 통합 과정에 추임새는 넣겠지만 시장 일 이외에 어떤 정치적 행보도 하지 않겠다는 게 박 시장의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시민 박원순’ 택했다] “서울시민의 승리… 민주당에 큰 빚 졌다”

    [‘시민 박원순’ 택했다] “서울시민의 승리… 민주당에 큰 빚 졌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27일 0시 10분 안국동 희망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 통합 시민후보 박원순은 오늘 이 자리에서 서울시민의 승리를 엄숙히 선언한다.”며 당선 소감을 밝혔다. 박 당선자는 “1995년 시민의 손으로 서울시장을 직접 뽑은 이래 26년 만에 드디어 이번 선거에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민주주의의 정신을 완성했다.”면서 “시민의 분노, 지혜, 행동, 대안이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이뤄내 승리한 것”이라고 ‘무소속 당선’의 의미를 부여했다. 박 당선자는 당선 소감에 앞서 “저와 함께 경쟁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나 후보를 지지한 시민들의 뜻도 함께 존중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박 당선자와의 일문일답.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이번 선거에 많은 도움을 줬는데. -안 교수님은 저와 오랜 신뢰 관계에 기초해 이번 선거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런 신뢰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시켜 나가겠다. 고맙다. →민주당에도 큰 빚을 졌는데, 민주당에 입당할 생각이 있나. -민주당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손학규 대표부터 바닥 현장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열심히 뛰어줬다. 제가 큰 빚을 졌다. 민주당이 앞으로 우리 민주주의 맏형으로서, 야권의 맏형으로서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는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보고 저는 그 과정에서 함께하겠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너무 많은 분들이 생각난다. 우선 가족들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셨듯이 참 어려운 것들이 있었다. 이른바 네거티브로 선거가 치닫는 과정에서 제가 당한 것이야 참을 수 있었지만 가족들이 당한 것은 너무 미안하고 슬펐다. 가족들에게 저로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선거 과정에서 여기 계시는 야권의 정치 지도자들, 또 그 정당의 당원들이 하나가 돼서 열심히 뛰는 모습에 참 감동받았다. 서로 정당이 다르고 갔던 길이 달랐지만 이렇게 하나의 목표로, 새로운 시대를 위해 하나로 뭉칠 수 있고, 함께 뛸 수 있는 생각에, 그리고 제가 후보가 된 서울시장 선거에서 하나가 됐다는 데 큰 감동을 느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시민 박원순’ 택했다] 박원순 민주입당 ‘NO’… 마이웨이로

    [‘시민 박원순’ 택했다] 박원순 민주입당 ‘NO’… 마이웨이로

    ‘포스트 10·26’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박원순(얼굴) 서울시장 당선자와 범야권 정치세력 간의 관계 설정이다. 범야권은 일찌감치 지형 변동을 예고했다. 박 당선자는 범야권 단일후보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통합 과정에서 박 당선자의 선택이 주목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 당선자는 민주당에 입당하는 형식으로 통합에 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자 측과 민주당 등 복수의 관계자들은 26일 “어느 한 세력에 힘을 싣기보다는 등거리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나.”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 당선자는 후보 시절부터 “범야권이 하나로 힘을 모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고 2013년 체제도 준비해야 한다.”며 다소 원칙적인 입장을 강조해 왔다. 현재 야권 통합의 현실적 동력을 확보한 곳은 민주당과 범야권 통합세력인 ‘혁신과 통합’ 측이다. 박 당선자는 ‘혁신과 통합’에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일각에선 박 당선자가 ‘혁신과 통합’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혁신과 통합’의 통합 주도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범야권 관계자는 “스스로가 범야권 통합후보였기 때문에 민주당이 신경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입당하는 것은 더더욱 비현실적인 선택이다. 새로운 정치를 상징하는 후보였다. 새로운 정치는 기존 정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짙다. 이 때문에 민주당 입당은 자칫 자기 모순이 된다. 더군다나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큰 표차로 이겼다. 자기 주도권이 강해진 셈이다. 범야권은 현재로선 전격적인 통합보다 단계적 통합 쪽이 현실적인 상황이다. 여전히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진보 소통합 경로가 살아 있다. 박 당선자가 어느 한 쪽에 서기가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황들이다. 우선 시정에 전념하면서 야권 통합의 흐름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한 측근은 “박 당선자 스스로 결정하는 것보다 야권 통합을 지켜보면서 요청에 응하거나 혹은 야권 세력들에게 제언하는 형식의 행보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민주당엔 기득권을 버린 더 큰 민주당을 요구할 수 있다. 진보 정당과 참여당엔 대통합에 동참할 것을 주문하는 방식이다. 시민사회도 정당과의 거리 좁히기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정 로드맵을 구현하는 과정 자체가 박 당선자가 갖고 있는 통합의 단상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동정부 구성과도 연관된다. 한 핵심 측근은 “세력별로 자리 나누기 형태보다 범야권이 합의한 10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신경쓸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분 협상보다는 박 당선자가 전적으로 재량권을 갖고 공동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공동정부는 기본적으로 자리 나누기가 아니냐.”고 말해 향후 서울시 인선 과정에서 민주당과 진보진영 정당, 시민사회세력 등 야권 각 세력이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일 가능성을 예고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서울시장 선거보도를 보면서/임종섭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서울시장 선거보도를 보면서/임종섭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서울신문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서울시장 선거운동에 관한 기사를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후보자 중 누가 앞서는가를 파헤치는 경마식 보도였다. 경마식 보도는 언론학계와 언론계에 이미 잘 알려진 용어이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를 다룬 서울신문 기사 중에 경마식 보도가 많았다. 지난 4일과 5일에 서울신문은 외부 여론조사업체와 손잡고 두 후보자를 주제로 한 여론조사를 시행해 결과물을 관련 기사로 다루었다. 이들 기사를 보면, ‘박원순 후보의 민주당 입당 여부’ ‘두 후보의 공약 여론’ ‘두 후보의 구별 지지율’을 도표와 수치로 자세하게 제시했다. 기사는 주제와 작성한 기자들이 다르지만, 여론조사 자체를 설명하는 정보는 기사에 빠져 있다. 가령, 여론조사 대상자는 몇 명이며, 이 중 몇 명이 응답했는지, 기사와 직접 관련된 질문문항과 측정 척도는 무엇인지는 기사에서 찾을 수 없었다. 한국언론학회는 여론조사 보도에 관한 지침을 마련해 놓았지만, 언론현장에서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100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10%라면 100명가량이 설문에 답한 것이다. 이 경우, 조사결과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100명의 응답자가 전체 서울시민을 대표한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사 끝부분이나 별도로 여론조사 과정과 응답률, 관련 질문문항을 제시하면 기사 신뢰감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회·정치 철학자인 칼 포퍼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이성에 근거한 비판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지적했다. 이유는 지나친 감정의 뿌리에는 폭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적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결정하려면 정확하고 신뢰할 정보가 필요하다. 서울신문의 선거보도는 당연히 이 필요성을 충족시켜야 한다. 미국 언론학자인 윌리엄 베노이트는 선거 후보자의 목표는 당선이며 이를 위해 상대 후보를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거나 장점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정치선거에 이성보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게도 서울신문은 이 양상을 주요 기삿거리로 다루고 있다. ‘돌아서면 네거티브’(10월 11일 자) ‘여, 박원순 학력 병역 이념 총공세-야 MB 사저 나경원 재산 집중타’(10월 13일 자) ‘희비 가를 투표율 45%’(10월 14일 자)가 예이다. 또한, 외래어를 기사 제목에 그대로 쓰고 있어 눈에 거슬린다.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 서울시장 두 후보의 컨셉트’(10월 14일 자) ‘나경원 박원순 첫 토론. 서로 아킬레스건을 찌르다’(10월 11일 자) ‘친이 친박 손잡은 매머드 선대위’(10월 7일 자)가 그 예이다. 말만 통하면 되지 문제 될 것 있느냐고 하겠지만, 이는 기사에 요구되는 엄밀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소리이다. 우리의 언어시장은 그만큼 혼탁해질 것이다. 서울시장에 거는 유권자들의 이해는 생각보다 다양하며 자세하다. 신문은 후보자들의 유세 행보나 비난행위를 지면에 중계하지 말고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들 정보는 유권자가 이성에 근거한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전문가들이 분석한 ‘나경원 박원순 정책 검증’(서울신문 10월 10일 자) 기사는 주목할 만하다. 정책분석 기사들이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와 관련, 서울신문은 유권자의 목소리를 선거보도에 많이 실어야 한다. 기사 취재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용되는 만큼, 유권자들이 원하는 내용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모아서 지면에 충분히 보도할 수 있다. 칼 포퍼는 역사는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것으로, 권력층과 가진 자들을 다룬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언론이 현재 일어나는 역사의 한 면을 보여준다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는 기사가 많이 나와야 한다.
  • ‘미스터 노멀’이냐 ‘佛의 메르켈’이냐

    “‘미스터 노멀’(Mr.Normal·평범한 사람)이냐, ‘프랑스의 메르켈’이냐.” 내년 4월 프랑스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격돌할 제1야당 후보 선출이 2파전으로 압축됐다. 사회당의 전·현직 수장인 프랑수아 올랑드(57) 전 대표와 마르틴 오브리(여·61) 대표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 중 누가 나와도 사르코지 대통령을 누를 수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경선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캐스팅 보트’를 쥔 나머지 경선 후보도 양 후보와 여러 인연으로 얽혀 있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사회당은 9일(현지시간) 미국식 국민참여경선(오픈프라이머리)으로 실시된 대선 후보 경선 1차 투표 결과 6명의 후보 중 올랑드 후보가 39%의 득표율로 1위, 오브리 후보가 31%로 2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반을 획득한 후보가 없어 오는 16일 결선 투표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중도 성향인 올랑드 후보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성추문으로 낙마한 뒤 경선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렸다. 스스로 ‘보통 사람’이라고 칭하는 그는 1954년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엘리트 코스만 밟았다. 여성이나 돈과 관련된 추문에서 자유롭고 1979년 사회당 입당 뒤 4선을 한 거물이지만 ‘모범생일 뿐 재미는 없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최근 지적인 이미지를 더하려 10㎏을 감량했다. 선명성 경쟁보다는 중도층 표심 잡기에 주력했다. 반면, 오브리 후보는 좌파 후보로서 ‘선명성’ 경쟁에 불붙이려 애쓴다. 프랑스 사회당 역사상 첫 여성 대표인 그는 1997~2001년 리오넬 조스팽 총리 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내며 노동 시간을 주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시켰다. 외모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흡사해 ‘프랑스 좌파의 메르켈’로 불리는 그는 매사 진지하며 조직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모습도 메르켈 총리와 닮았다. 두 후보의 운명은 1차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다른 후보들의 선택에 의해 갈릴 전망이다. 특히 두 후보와 얄궂은 인연을 가진 세골렌 루아얄(여) 후보의 입에 눈길이 쏠린다. 그는 이번 경선에서 7%의 득표율을 올렸다.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사르코지와 대결하기도 했던 루아얄은 올랑드와 20여년간 동거했던, 사실상 부부였으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치적 견해차를 드러내다 끝내 결별했다. 오브리 후보 역시 루아얄에게 지지를 호소하기 난처한 입장이다. 2008년 사회당 대표 선거에서 오브리에게 패한 루아얄 후보 진영이 재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등 진통이 있었던 탓이다. 예상 밖의 3위를 차지한 아르노 몽트부르(48) 후보(17% 득표)와 ‘선수’에서 ‘관중’으로 전락한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도 관심사다. 처음으로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로 실시돼 사회당원뿐 아니라 일반인도 1유로(약 1600원)만 내면 투표할 수 있었던 이번 선거에는 예상의 2배인 200만명이 참가해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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