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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살이지만 건강 받쳐주는 한…” 반기문, 사실상 대선출마 선언

    “73살이지만 건강 받쳐주는 한…” 반기문, 사실상 대선출마 선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일(현지시간) “제가 10년 동안 유엔 총장을 역임하면서 배우고, 보고, 느낀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며 전례 없이 강한 수위의 발언으로 사실상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반 총장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가진 한국 특파원단과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달 말로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서 퇴임한다. 반 총장은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무엇에 기여할지에 대해 깊이 고뇌하면서 생각하고 있다”고 대선 출마 여부에 확답하지 않았으나, 전례 없이 강한 수위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의 대선출마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또 “정치라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성 정치인들과의 연대할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당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국민이 없고 나라가 없는데 무슨 파(派)가 중요한가. 노론-소론, 동교동-상도동, 비박-친박 이런 것이 무엇 소용인지 저는 알 수가 없다”는 말로 기성 정치권을 질타했다. 반 총장은 귀국후 대선출마 여부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귀국 후 각계 국민을 만나 말씀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면서 “국민 여러분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미력한 힘이지만 국가발전을 위하고 국민 복리·민생 증진을 위해 제 경험이 필요하면 몸 사라지 않고 할 용의가 있다”며 “73살이지만 건강이 받쳐주는 한 국가를 위해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치라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수단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가 깊이 생각을 안 해봤다”는 말로 답변을 비켜갔다. 반 총장은 이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박 대통령 탄핵 상황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그는 “국민이 선정(善政·good governance)의 결핍에 대해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있다. 시스템의 잘못, 지도력의 잘못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최근에도 한 강연에서 했던 이런 자신의 언급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특정 정치 지도자에 대해 언급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뜻밖에 국민들이 촛불을 드는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니 제가 상당히 민망하다”며 “귀국을 하지만 상당히 참담한 심정이며 가슴이 무겁다”고 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난 반 총장은 새누리당 친박 진영의 물밑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후 친노 인사들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데 대해 ‘정치적 공격’이라고 되받았다. 그는 “저는 평생 살면서 배신이라는 얘기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인격을 모독해도 너무 모독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을 2011년 참배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언론보도가 많이 안됐지만 저는 서울에 가는 계기나 매년 1월초에 늘 권양숙 여사에게 전화를 한다”며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강조하기도 했다. 국제무대 기여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내 일을 하면서 국제적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며 얼마든 겸할 수 있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게 더 시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 반 총장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1월 중순 귀국하겠다고 밝힌 그는 “우선 황교안 권한대행을 예방해 귀국신고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장 등 다른 3부 요인에게 귀국신고를 하고 국립묘지 참배, 선친 묘소 참배, 고향인 충북 충주에 사는 모친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견제하고 연대하는 野잠룡들

    견제하고 연대하는 野잠룡들

    손학규 “기득권 세력에 맞서 개혁” 안철수 “개헌 논의 시작 가능해” 문재인 “개헌 지금 말할 때 아니다” ‘연대 논란’ 이재명·안희정 신경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조기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야권의 합종연횡이 구체화될 조짐이다. ‘헤쳐 모여식’ 논의가 활발한 쪽은 개헌 추진 그룹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13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자신의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87년 체제 속에 대선을 치르자는 측은 한마디로 기득권 세력으로, ‘제2의 박근혜가 나와도 좋다, 나만 대통령이 되면 된다’는 얘기이다. 호헌세력의 진면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7공화국을 위한 ‘국민주권 개혁회의’(가칭)를 만들어 기득권 세력에 맞서 끝까지 개혁을 추구하겠다는 한가지 정체성만 붙들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손 전 대표의 발언은 그동안 개헌논의를 반대해 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정조준한 것으로 해석된다. 행사에는 민주당 김종인·박영선 의원,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정진석 전 원내대표와 이주영 의원(국회 개헌특위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김 의원과 정 전 의장 등은 친박(친박근혜)과 친문(친문재인)을 제외한 제3지대론과 맞물려 언급되는 대표적 개헌론자들이다. 또 안철수 전 대표와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 박지원 원내대표 등 국민의당 지도부가 총집결해 흡사 손 전 대표의 입당식을 방불케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손 전 대표는 이제 연설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도 “손 전 대표의 말씀을 들으니 국민의당, 또 저 박지원과 굉장히 같다고 느꼈다”면서 “같은 사람은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개헌 논의와 거리를 뒀던 안 전 대표의 변화도 눈에 띈다. 그는 “우선 개헌은 필요하다. 논의는 시작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다만 “개헌에 앞서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밝혔다. 손 전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희는 항상 문호가 개방돼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비(非)문재인 연대’ 논란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전날 이재명 성남시장의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의 우산으로 제가 들어가야 한다”는 발언이 발단이 됐다. 안 지사는 “대의명분 없는 구태 정치”라고 발끈했고, 이 시장도 “이재명은 그렇게 정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만간 서로 얼굴을 보며 밥 한 끼 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가운데 문 전 대표는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포럼에서 “개헌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적폐에 대한 대청소와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대한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황교안 권한대행은 국민에게 속죄하는 자세로 국회와 협의하며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해외 인사들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해외 인사들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 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많은 해외명사들이 숨을 거둔 해이기도 하다. 정치, 문학, 예술, 학술, 스포츠계에 길이 남을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생애를 돌아봤다. 1. 데이비드 보위(1947.1.8 ~ 2016.1.10)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1947년 영국 남부 브릭스톤에서 태어나 1963년부터 가수, 작곡가 겸 배우로 활동했다. 50년 넘게 혁신적 예술가로 추앙됐으며 70년대의 작품들로 특히 인정받았다. 특유의 독창적 음악세계와 무대연출은 세계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전에 1억 4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말년에 세간에 알리지 않은 채 간암으로 투병했으며 1월 10일 마지막 앨범인 ‘블랙스타’가 출시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2. 알란 릭먼(1946.2.21 ~ 2016.1.14) 영국의 배우. 활동 초기엔 왕립연극학교를 나와 로열셰익스피어극단에서 고전극과 현대극을 연기했다. 영화 활동으로는 ‘다이 하드’(1988)의 악역 ‘한스 그루버’로 유명세에 올랐고, 노년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역으로 세계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6년 영화 ‘라스푸틴’에서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을 연기해 골든글로브 상을 받았다. 2015년 4월, 19세 때부터 50년간 교제해왔던 영국 노동당 당원인 리마 호튼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으나 이듬해 1월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3. 위르켄 힌츠페터(1937.7.6 ~ 2016.1.25)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1963년 처음 공영방송 영상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1967년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을 걸고 당시 계엄 사태의 심각성을 취재, 광주의 비극을 외부 세계에 알리면서‘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게 된다. 같은 해 9월엔 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판결에 항의하며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1986년에는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폭력으로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일시적으로 생명이 위독해지면서 “국립 5·18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1월 25일 독일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둔 이후 생전 밝힌 뜻에 따라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 4. 움베르토 에코 (1932.1.5 ~ 2016.2.19)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이자 미학자이다. 1956년 논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문학비평계와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래 현대미학과 문학비평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학계 총아로 떠올랐다. 1968년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와 ‘기호학 이론’등 저서로 세계적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기호학·철학·미학·역사학 등 여러 학술 분야에 더불어 9개 국어에 능통한 천재로 알려져 있으며 제임스 조이스 학회 명예 이사, 예일대 방문교수, 볼로냐 대학 교수, 이탈리아 인문학 연구소 소장 등 여러 직위를 역임했다. 또 케임브리지 하버드 등 세계 명문에서도 강의했다. 출판계에서 일하던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해 1980년 최초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한 이래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 작품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오랜 암 투병 끝에 올해 2월 19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5. 앨빈 토플러 (1928.10.3 ~ 2016.6.27)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의미하는 ‘제3의 물결’을 예견한 미국의 미래학자겸 작가. 젊은 시절 생산직 노동자, 백악관 출입기자, 포춘지 노동관계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경영·첨단기술에 대한 지식과 관심사를 넓혀 관련 저술을 시작했다. 뉴욕대학교·마이애미대학교 등 5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IBM등 대형 기업들의 의뢰로 첨단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했으며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 정부 및 비영리민간단체,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 프로젝트와 강연을 진행했다. 본인과 같이 작가 겸 미래학자인 하이디 토플러와 결혼해 연구와 저술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6월 27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 6. 무하마드 알리 (1942.1.17.~2016.6.3.)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명언을 남긴 복싱계의 전설. 12세였던 1954년에 아마추어 복서 활동을 시작해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약 20년 간 활약하며 총 19회에 걸쳐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통산전적 55승 5패를 기록했다. 베트남 전쟁 징병을 거부했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기소됐으나 오랜 법정싸움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때문에 3년 5개월의 경력 공백이 발생했지만 곧 재기에 성공, 1981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권투뿐만 아니라 흑인민권운동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노년에는 파킨슨병을 앓았으며 6월 3일 합병증인 호흡기 질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7. 피델 카스트로 (1926.8.13 ~ 2016.11.25) 쿠바 해방을 이끈 혁명가인 동시에 쿠바를 장기간 지배한 독재자. 스페인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입당하며 사회주의자가 됐다. 195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부에 저항,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수감되면서 혁명가로서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렸다. 2년 뒤 사면돼 멕시코로 망명해 체 게바라 등 중남미 해방운동가를 흡수한 뒤 1956년부터 쿠바에서 전쟁을 재개한 끝에 1959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 내각 책임제의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으로 군부정권을 타도했으나 정작 본인도 쿠바를 장기간 독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1965년에는 쿠바를 일당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고 스스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에 올랐으며 1976년에는 각료 회의 의장 및 국가평의회 의장, 쿠바군 최고 사령관 등을 겸직하며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2006년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 권력을 이양하고 2011년 정계에서 공식 은퇴했으며 지난달 25일에 사망이 공식 발표됐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복지정책을 실시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소련 해체 이후 중남미의 사회주의 노선을 이끌면서 사회주의의 대부로 높이 평가 받은 바 있으나 강력한 언론탄압과 반대파 숙청을 자행한 독재자라는 비난 역시 면할 수 없었다. 카스트로 사망 소식을 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카스트로라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주변의 세상과 인물들에 남긴 거대한 족적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 몫일 것”이라는 말로 고인을 기렸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주진형, 이완영과 입씨름 “꼭 두 번 물으시는데 입.당.안.했.습.니.다”

    주진형, 이완영과 입씨름 “꼭 두 번 물으시는데 입.당.안.했.습.니.다”

    6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작심‧소심 발언으로 화제다. 주 전 대표는 이날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과 입씨름을 벌였다. 이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적이 있나”라고 묻자 주 전 대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이 의원이 ‘입당 안했냐, 제가 알기로는’ 이라고 재차 질문하자 “안·했·습·니·다”라고 딱딱 끊어서 답한 뒤 “꼭 두 번 물으시는데”라고 되받아쳤다. 이 의원은 “4ㆍ13 총선 당시 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으로 활동하지 않았느냐”고 확인했다. 주 전 대표는 “맞는데 입당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부단장으로 활동한 배경이 무엇이냐”고 묻자 “당시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김종인 박사(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께서 비상대책위원장을 하면서 도와달라고 하셔서 도와드렸다”고 설명했다. 한편 주 전 대표는 이날 삼성과 한화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달라는 압력을 받았다며 “우리나라 재벌들이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조직 폭력배들이 운영하는 방식과 같아서 누가 한마디 말을 거역하면 확실하게 응징해야 다른 이들도 따른다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용태 “반드시 탄핵 찬성…어떤 경우에도 새누리당 복당 않을 것”

    김용태 “반드시 탄핵 찬성…어떤 경우에도 새누리당 복당 않을 것”

    김용태 무소속 의원은 2일 “지금은 탄핵 가결에 집중할 때이다. 반드시 탄핵에 찬성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MBN ‘김은혜의 정가이슈’에 출연해 “탄핵 국면이 마무리되고 대선 국면 열리면 재창당하는 새누리당과 반기문, 국민의 당은 민주당 후보에 맞서 대권후보연합을 구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것은 정치권 공공연한 비밀이다”라고 말했다. 또 자신이 몸 담았던 새누리당의 행보와 관련해 소신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새누리당이) 처음 촛불 때는 두려워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나름대로 내성이 생긴 것 같다. 내년 대선에서 기사회생할 수도 있겠느냐 이런 계산이 서 있는 것 같다”면서 “국민들께서 새누리당 행동에 대해 심판할 것이고, 어영부영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거 믿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기 때문에 헌법에 따라 소추하는 것”이라면서 “부결될 수도 있고 가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거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고, 만약에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가서 탄핵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을 탈당 후 심경에 대해 김 의원은 “국민들 편에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오히려 영광”이라면서 “이게 헌법 질서에 맞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혀 춥거나 외롭거나 그런 생각 없다”고 전했다. 향후 행보와 관련해서도 “어떤 경우에도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민주당, 국민의당에도 입당하지 않는다. 정치개혁 안 되면 기꺼이 정치무대에서 퇴장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김무성 전 대표를 향해서도 “박근혜 대통령 사후 문제에 대해서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것. 국민과 역사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경고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새누리당 장석춘 의원 벌금 80만원, 당선무효형 면해

    새누리당 장석춘 의원 벌금 80만원, 당선무효형 면해

    대구지법 김천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김태균 부장판사)는 29일 4·13 총선을 앞두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새누리당 장석춘 의원(경북 구미을)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해 직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방송사와 전화 인터뷰 때 보도를 예상했고 보도 이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에서 죄가 무겁지만 이후 다른 방송사 인터뷰에서 정정했고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지난 3월 한 방송사와 전화 인터뷰에서 당선을 목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없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뒤늦게 다른 방송사 인터뷰에서 “지난 2006년 5월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검찰은 장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김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정치 뒷담화] 번번이 물먹는 청와대行… 이러려고 경기지사 했나

    [정치 뒷담화] 번번이 물먹는 청와대行… 이러려고 경기지사 했나

    민선 1기 이인제 前 지사부터 5명 20년째 낙선… ‘변방’ 취급 탓 서울시장보다 ‘프리미엄’ 떨어져 남경필 경기지사가 지난 21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망가진 새누리당에는 더이상 미래가 없다는 결단으로, 앞으로 ‘제4지대’를 꾸리거나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뤄 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 지사의 탈당은 또 다른 차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역대 경기지사들의 잇단 ‘탈당사(史)’에 또 하나의 사례를 보탠 것이다.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5년 이래 5명의 민선 경기지사 가운데 김문수 전 지사 한 명만 빼고 모두가 당을 떠났다. 현직인 남 지사를 제외하고 4명 중 3명이 대선 관문에서도 번번이 쓴잔을 마셨다. ‘경기도의 저주’, ‘경기지사 필패 징크스’ 등으로 일컬어지는 흑역사가 이어졌다. 20년간 계속된 경기지사들의 고난의 정치사가 과연 이번에도 반복될 것인지 어느 때보다 관심이 모인다. ●유력 정치인 대열 올랐지만 탈당 후 ‘흙길’로 1995년부터 경기지사를 지낸 5명은 정치사에 쟁쟁했던 인물들로 기록돼 있다. 특히 경기지사 당선은 이들을 유력 정치인 대열에 우뚝 서게 하는 발판이 됐다. 민선 1기 이인제(1995~1997년) 전 지사는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신한국당 경선에 참여해 이회창 후보와 결선투표까지 맞붙었다. 압도적이었던 이 후보의 지지세가 중반에 하락하면서 이 전 지사는 급속하게 부상했다. 그러나 최종 낙선하자 이에 불복해 탈당했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독자적인 대선 후보로 나섰다. ‘이회창-김대중-이인제’의 3자 구도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선거 과정 내내 보수를 분열시키며 여론조사 2위까지 치고 올라가기도 했다. 민선 3기 손학규(2002~2006년) 전 지사는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이명박-박근혜’에 이은 ‘빅3’로 꼽혔지만 끝내 탈당했다.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한 손 전 지사는 대선 경선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1위 후보로도 등극했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에게 패해 본선까지 미치진 못했고, 2012년 대선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당내에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에 비하면 안타까운 결과가 계속됐다. 2014년 7월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손 전 지사는 정계 은퇴를 외치고 전남 강진에서 칩거 생활을 해 오다 지난달 20일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결국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5명 중 당선될 때의 당적을 유지한 것은 김문수(2006~2014년) 전 지사뿐이다. 김 전 지사는 유일하게 재선에도 성공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지방 권력을 휩쓴 가운데 김 전 지사가 재선에 성공했을 때 ‘박근혜 대항마’, ‘차기 기대주’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2012년 대선 경선에서 한 자릿수 득표에 그치며 83.97%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의 벽을 깰 수 없었다. 김 전 지사는 내년 대선에도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기 임창열 전 지사는 조금 다른 경우로 당을 떠났다. 임 전 지사는 2001년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되면서 재선에 도전할 기회가 불투명해지자 민주당을 탈당했다. 물론 같은 기간 서울시장 출신들이라고 해서 모두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초대 민선 서울시장인 조순(1995~1997년) 전 시장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마했다. 하지만 서울시장에게는 ‘필패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5명 중 한 명인 이명박 시장은 2007년 12월 대선에서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서울시장에 대한 정치적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패배도 같은 패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경기지사는 안 되고 서울시장은 될까. ●지역 정체성 낮아… 언론으로부터 찬밥 신세 김 전 지사는 25일 “남태령 고개 하나만 넘어갈 뿐인데 완전히 지방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장 큰 차이점이자 설움은 언론의 주목도라고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다. 여의도에서 목소리깨나 높이던 정치인들이 광역단체장으로 당선되면 잊혀진다는 게 단체장들의 토로다. 국회의원일 때는 혼자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에 서서 마이크를 잡아도 기사가 됐지만, 경기도에서는 도지사가 1000여명과 집단행동을 해도 중앙 언론에 나오기 쉽지 않다. 다른 광역시·도에는 지상파 방송사의 지국도 여럿 있지만 경기도는 그렇지 않아 더욱 소외된다는 게 김 전 지사의 얘기다. 지역 언론매체도 많지만 “분당 사는 사람들이 분당 뉴스는 안 보고 강남 뉴스를 찾아본다”고 한다.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는 도민이 많다 보니 자기 지역에 대한 정체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도 “경기지사들에게는 ‘세컨드 시티’(second city) 어젠다가 많다”고 진단했다. 광역버스 확충 등 서울로 오가는 교통체계 구축, 서울과 인접한 생활권 구축 등의 정책은 경기도가 아닌 서울이 중심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인해 서울시장에 대한 ‘프리미엄’은 더욱 높아졌다. 서울시장은 늘 중앙 언론에 노출되고, 여의도 정치권과도 항상 가깝다. 경기도에 경기지사와 서울시장이 동행하면 도민들이 서울시장을 쫓아가 사진을 찍고 악수를 청한다는 일화도 있다. ●경기도, 차기 지도자 경험 쌓을 최적의 입지 물론 경기도에도 희망은 있다. 징크스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인구 1300만명에 달하는 경기도는 16개 광역단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경제, 복지, 교육은 물론 접경 지역이 있어 국방까지 다룬다. 차기 지도자로서의 가능성과 경험을 채우기에 매우 좋은 지역으로 꼽히는 이유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시·도지사들이 차기 정치 지도자로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단체장들이 행정가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주목받은 것은 이명박 시장의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10년부터다. 여권의 남경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야권의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그리고 기초단체장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등 단체장들이 대거 ‘잠룡’으로 분류되는 것은 과거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아칸소), 조지 W 부시 (텍사스), 로널드 레이건(캘리포니아), 지미 카터(조지아) 등 주지사를 지낸 대통령이 많다. 지방 권력을 쥐었던 경험은 분명 국가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엄격한 중립의무 등 선거법 빗장부터 풀어야 이 사무총장은 “미국과 우리의 정치 환경이 다르다”면서 “단체장들의 정치적 움직임에는 아직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 9조에 의해 공무원에게는 엄격한 중립의무가 요구된다. 선출직인 단체장들이 당적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선거법 60조에 따라 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어 입과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 시·도지사들의 정치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년 역사의 새로운 기회이자 변곡점을 어떻게 풀어 갈지 주목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정청래 “진짜 기름장어 국민외면당 대표”…박지원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정청래 “진짜 기름장어 국민외면당 대표”…박지원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24일 트위터를 통해 “박지원은 노태우다”라면서 “제3지대로 다모이자는 것은 제2의 3당야합을 하자는 거다. 문재인 세력만 빼고 온갖 잡탕 다 끌어들여 친일부패연합당 만들자는 것. 김대중 빼고 다 모이자던 노태우 역할을 박지원이 하자는 거다. 진짜 기름장어는 국민외면당 박지원 대표”라고 비난했다. 그는 “박지원 대표와 전화로 언쟁을 좀 했습니다”라면서 “NLL대화록 대선부정, 건국절, 국정교과서를 앞장서 주장한 박근혜정권 부역자 김무성과 합치는 것은 제2의 3당야합이라는 제입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대화내용은 한때 동료선배임을 감안해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박지원과 김무성의 시랑, 물불 안가리는 두사람의 불장난. 촛불로 막읍시다”라고 촉구했다. 전병헌 전 의원도 블로그를 통해 “정치권 일부에서 탄핵을 (비박+야3당)으로 추진하자는 일부 정치권 주장은 민심을 벗어난 것”이라며 “탄핵은 야3당 공조로 추진하고 새누리에게는 ‘요구’할 문제이지 부탁하거나 설득할 문제가 아닙니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새누리에 면죄부를 발급할 권한은 정치권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오직 국민의 권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위원장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험난한 고개를 넘으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합니다. 반공주의자 처칠 수상은 스탈린과 손을 잡고 히틀러와 싸워 이겼습니다”라면서 “무소속 포함 야당 의석은 172석,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해서는 최소 28석, 안전하게 가려면 40석 정도의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가 필요합니다. 탄핵안은 가결시켜야지 부결되면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만 줍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한 “누가 새누리 비박과 통합한다고 했나요”라면서 “저는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우리당에 입당한다면 함께 할 수도 있지만 총선 민의로 확인된 국민의당 외의 제3지대론은 반대한다 했습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저는 또 선 총리 후 탄핵도 보류하고 3야 공조 및 비박과 탄핵을 추진하자 했습니다. 우상호 대표도 새누리당 의원들을 접촉 설득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도 찬성합니다”라면서 “개헌도, 선 총리 선출도 반대하고 탄핵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를 얻는 것을 구걸하는 것으로 필요없다고 하는 일부 과격한 주장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벌떼처럼 저를 공격하지만 겨울의 벌떼는 맥이 없습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의 버티기가 계속되며 우리 모두 큰 스트레스 속에 힘든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자꾸 까칠해지고 화를 못참는 일이 많아집니다”라면서 “친박을 제외하곤 서로 조금만 더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너그럽게 관용하며 차이를 잠시 뒤로 미뤄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화합을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동산 왕 되겠다”고 3~4시간 자며 버틴 ‘아웃사이더’

    “부동산 왕 되겠다”고 3~4시간 자며 버틴 ‘아웃사이더’

    독일 이민자 집안 5남매 중 넷째… 백인 거주지서 성장 선생님에게 주먹질하던 다혈질… 부모가 군사학교 보내 수금으로 시작해 부동산 재벌… 네 차례 도산 경험도 신문 읽기로 하루 시작… “넌 해고야” 리얼리티쇼 스타덤 막말·성추문 파문 딛고 ‘역대 최고령 70세’ 취임 기록 성공한 사업가에서 방송사 인기 리얼리티쇼 진행자를 거쳐 백악관 주인이 된 도널드 트럼프(70)는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건 아웃사이더 돌풍의 주역이다. 1946년 6월 14일 뉴욕시 퀸스에서 태어난 트럼프는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와 어머니 메리 애니 사이의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매리엔 트럼프 배리(78) 미 연방 제3항소법원 판사가 큰누나이며, 작은누나 엘리자베스 트럼프 그라우와 남동생 로버트 트럼프가 있다. 그의 형이었던 프레드 주니어는 1981년 43세의 나이에 알코올 중독으로 숨을 거뒀다. 트럼프 집안은 독일 서남부 카를슈타트 출신인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드룸프가 16세 때인 1885년 미국에 이민 오면서 트럼프 일가를 이뤘다. 1892년 미국 시민이 된 드룸프는 미국식 이름인 트럼프로 이름을 바꾸고 숙박과 식당 사업을 해 큰돈을 모았다. 트럼프가 자란 뉴욕 퀸스는 백인 이외에는 거의 살지 않는 동네였다. 트럼프는 나중에 이곳에서 자란 것을 “오아시스”라고 회상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배타적 이민정책의 뿌리가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는 어린 시절 방이 23개, 화장실이 9개나 되는 대저택에서 보냈다. 엄격한 가정교육에도 트럼프는 사고뭉치였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때려 눈 주위를 멍들게 할 정도였다. 아버지의 영향력 덕분에 퇴학 대신 가벼운 근신 처벌만을 받았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그의 이런 성격을 걱정해 13세가 되던 1959년 트럼프를 뉴욕군사학교에 보냈다. 이곳에서 야구팀 주장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일부에서는 당시 가혹한 신고식과 폭력이 난무하는 군사학교 문화에 잘 적응했다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과 승리’ 욕망을 내면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군사학교시절 야구에 뛰어난 기량을 보인 그는 지역신문에 ‘트럼프가 뉴욕군사학교의 승리를 이끌다’라는 제목의 기사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공사현장에 다니던 그는 13세 때 이미 불도저를 직접 운전하며 일을 도왔다. 1964년 뉴욕군사학교를 졸업한 트럼프는 배우나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영화학과에 진학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뒤를 따라 부동산사업에 뛰어들었다. 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가톨릭계 대학 포덤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 편입했다. 그는 와튼스쿨에 편입하자마자 수강한 부동산개발 과목 첫 시간에 교수의 “왜 이 과목을 수강하는가?”라는 질문에 “저는 뉴욕 부동산업계의 왕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연방주택관리국의 저당권 상실 명단에서 정부 융자를 받았다가 저당권을 잃은 건물의 목록을 살피는 게 취미였다. 사업적 수완을 드러내자 아버지는 트럼프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1968년 대학을 졸업한 뒤 트럼프는 임대료를 수금하러 다니는 일부터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1971년 ‘엘리자베스 트럼프 & 선’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사명을 지금의 트럼프 그룹(The Trump Organization)으로 바꿨다. 하루에 3~4시간밖에 자지 않을 정도로 일 중독인 그는 특히 새벽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신문 읽기였다. 트럼프는 “나는 다른 많은 사업가가 그러는 것처럼 경제면만 읽는 게 아니라 시간이 되는 한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읽으려고 노력한다”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작 이번 대선에서 미국의 주요 언론 매체 100곳 중 트럼프를 지지한 언론사는 라스베이거스 리뷰저널과 플로리다 타임스유니언 등 2곳에 불과했다. 현재 포브스 추산 37억 달러(약 4조 2000억원)의 재산을 가진 트럼프지만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카지노를 세웠다가 도산하는 등 1991년부터 2009년까지 4차례의 도산을 겪기도 했다. 기업가로 성공한 트럼프가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NBC의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Apprentice) 덕분이었다. 견습생 참가자가 트럼프의 회사를 연봉 25만 달러에 1년 계약으로 경영하는 조건으로 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이었다. 매회 트럼프가 1명씩 해고해 마지막에 살아남은 1인이 승자가 되며 계약을 따낸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넌 해고야!”라는 말을 유행어로 남겼다. 기업인과 방송인으로 성공을 거둔 트럼프는 정치에도 눈을 돌렸다. 2000년 대선에서 개혁당 소속으로 출마해 대권을 노렸으나 경선에서 탈락했다. 그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보다 편의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꿨다. 공화당(1987∼99년) 당적을 가졌다가 개혁당(1999∼2001년), 민주당(2001∼09년)을 거쳐 2009년 공화당으로 돌아왔다가 탈당했다. 2012년에 다시 공화당에 입당했다. 트럼프는 2015년 6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표어를 내걸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트럼프의 출마는 기업인의 외도로 여겨지며 비웃음을 샀다. 경선 과정에서의 히스패닉과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발언은 오히려 기성 정치권에 불신을 드러내던 계층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무려 16명의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는 데 성공했다.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가 대선주자로 선출됐지만 마지막까지 그와 경선을 벌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트럼프 지지 선언 대신 “양심에 따라 투표하세요”라며 갈등을 겪었다. 공화당 지도부의 도움 없이 필마단기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맞대결을 벌인 그는 세 차례 진행된 TV토론에서도 클린턴을 향해 ‘추잡한 여자’(nasty woman)와 같은 막말을 내뱉은 데다 토론을 앞두고 불거진 음담패설 파문 등으로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3차 TV토론에서 선거결과 불복을 시사해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 11일을 앞두고 터진 연방수사국(FBI)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와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던 백인 노동자 계층이 대거 투표장을 찾으면서 판세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 최고령 취임 기록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 보유자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만 69세 349일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엔터테이너 기질이 강하고 여성편력이 있는 그는 첫째 부인 이반나 트럼프, 둘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와 각각 이혼한 뒤 2005년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 멜라니아 트럼프와 세 번째 결혼했다. 5명의 자녀 중 출중한 미모와 뛰어난 능력, 언변을 자랑하는 이방카를 총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방카와 2009년 결혼해 트럼프의 사위가 된 재러드 쿠슈너(35)는 현재 정권인수위 팀을 꾸린 실세 중 실세다. 그는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각각 1987년과 1990년 출간된 본인의 자서전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과 ‘정상에서 살아남기’(Surviving at the Top)를 꼽았다. 그는 1941년 영화 ‘시민 케인’과 1950년 영화 ‘선셋 대로’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았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길용우 아들, 현대차 그룹 정성이 딸과 결혼..알고보니 정치 경력까지

    길용우 아들, 현대차 그룹 정성이 딸과 결혼..알고보니 정치 경력까지

    배우 길용우가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사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1976년 MBC 9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길용우는 ‘제 3공화국’ ‘궁합이 맞습니다’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남자는 외로워’ ‘두아빠’ ‘강가에 앉아 울다’ ‘재동이’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최근까지도 ‘금 나와라 뚝딱’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오자룡이 간다’ ‘내 사위의 여자’ ‘딱 너 같은 딸’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1980년 MBC 방송연기상 남자신인상과 우수연기상을 수상했고 이후 1987년 백상예술대상 이기상, 2011년 MBC 드라마대상 연속극부문 남자 황금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길용우는 지난 1997년 국민신당에 입당해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편 길용우의 아들 길성진(32)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 고문의 딸 선아영(30)은 오는 11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길용우의 아들 길성진 씨는 현재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평범한 학생 신분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진석 “이런 당에 반기문이 오겠나”… 제3지대行 ‘솔솔’

    정진석 “이런 당에 반기문이 오겠나”… 제3지대行 ‘솔솔’

    그동안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주류로부터 잇단 ‘러브콜’을 받아 온 반기문(얼굴) 유엔 사무총장이 새누리당이 아닌 ‘제3지대행’을 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치면서 ‘박근혜’, ‘집권 여당’ 프리미엄이 사실상 없어진 까닭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의원총회에서 “당이 완전히 버림받게 생겼는데 이런 당에 반 총장이 오겠느냐”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여권이 쑥대밭이 된 상황에 당 의원들이 지도부 사퇴 문제를 놓고 내전만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한 원망 섞인 말투였다. 그러나 충청 출신으로서 ‘충청대망론’에 불을 지폈던 그의 언급이다 보니 반 총장의 ‘제3지대론’에 불을 댕기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반 총장의 측근이나 친반(친반기문) 인사들도 “박 대통령이 정치적 부도 사태를 맞았기 때문에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박 대통령과는 결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충청권 의원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반 총장은 새누리당을 디딤돌로 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류가 이렇게 바뀐 데에는 최근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반 총장이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게 1위 자리를 내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반 총장이 ‘제3지대’로 간다면 필연적으로 ‘개헌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야권의 유력 주자인 문 전 대표가 개헌에 부정적인 만큼 그와의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이재오 전 의원과 정의화 전 국회의장,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등 각 진영에서 이탈해 새로 ‘둥지 틀기’를 시도하는 인사들도 모두 ‘개헌’을 주무기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연대를 위해선 개헌이 필수 카드로 여겨진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와의 ‘제3지대 연대설’도 거론된다. 그러나 과거 대선에서 드러난 ‘제3지대 필패론’도 만만찮아 반 총장이 결국엔 현 새누리당으로 입당할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성일종 의원은 6일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지금 정해진 것 역시 아무것도 없다”며 반 총장의 제3지대행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DJ맨→朴정부로… 17년만에 다시 靑비서실장

    DJ맨→朴정부로… 17년만에 다시 靑비서실장

    DJ정권 ‘옷로비’ 이어 위기때 등판… 동교동계 “새누리 간 후 인연 끝나”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한광옥(74) 국민대통합위원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위기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구원투수가 돼 17년 만에 다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게 됐다. 그는 헌정사에서 다른 두 명의 대통령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보좌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전북 전주 출신인 한 신임 실장은 중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영문과를 중퇴했다. 그는 민한당 공천으로 11대 국회에 입성했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5·17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DJ 석방과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처음으로 주장한 게 인연이 돼 동교동계에 들어왔다. 그는 1997년 대선 당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이끌며 ‘국민의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 특히 한 실장은 1999년 2월 ‘옷 로비 사건’ 파문으로 청와대가 위기를 겪자 타개책의 일환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았다. DJ의 절대적 신뢰를 받으며 1년 10개월 동안 조용히 대통령을 보좌했다. DJ의 사람이자 동교동계 핵심인물이었던 그는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국민대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며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았고 호남 선거를 도와 박 대통령을 호남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로 올리는 데 기여했다. 한 신임 실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아 왔다. 그는 입이 무거워 ‘이중 지퍼’라는 별명이 있는 화합형 인물. 그러나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새누리당에 갔을 때부터 이미 동교동계와 호남과는 인연이 끝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한광옥, 17년 만에 청와대 비서실장 컴백…DJ 이어 박근혜 대통령 보좌

    한광옥, 17년 만에 청와대 비서실장 컴백…DJ 이어 박근혜 대통령 보좌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17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입성한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보필했던 한 위원장이 최순실 파문으로 인한 국정 위기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게 됐다. 한 위원장은 전두환 5공화국 시절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을 맡는 등 줄곧 야당의 길을 걸어왔던 동교동계 핵심 인사다. 헌정사에서 다른 두 명의 대통령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보좌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게 됐다. 11대 때 서울 관악구에서 민한당 공천으로 당선됐으나 국회에서 5.17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김대중 전 대통령 석방과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강도높게 요구한게 인연이 돼 동교동계 캠프에 합류했다.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DJP 후보 단일화’ 협상의 주역으로 김대중 정부 탄생의 기틀을 마련했고,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데다 신중하고 입이 무거워 여의도 정치인 시절 중요한 고비 때마다 당내외 밀사역을 도맡았다는 평가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인 1998년 초대 노사정위원장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 신임 실장은 지난 1999년 2월 ‘옷 로비 사건’ 스캔들로 청와대가 흔들릴 때 구원투수로 청와대 비서실장을 전격 투입된데 이어 최순실 파문의 와중에 ‘구원투수’로 다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4선 의원 출신인 그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으면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는 호남 선거를 도와 박 당선인이 호남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실장은 당시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면서 “지역과 계층간 갈등, 세대 간의 갈등 해소를 근간으로 대탕평책을 실현해 국민 대통합의 바탕 위에서 남북통일을 이루는 과업에 한 몸 헌신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며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내걸고 입당의 변을 밝혔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아 일해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6 공직열전] 중앙·243개 지방정부 소통·융합하는 중추 부처

    [2016 공직열전] 중앙·243개 지방정부 소통·융합하는 중추 부처

    행정자치부는 지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처다. 지방자치를 조화롭게, 국가 발전방향에 맞춰 꾀해야 한다.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226개 기초지자체와 관련된 업무는 물론 이북5도청도 관할한다. 중앙정부 혁신과 맞물려 지자체를 최대한 아우르는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어려운 입장이라 243개 지자체 중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곳과 맞서기 일쑤다. 때문에 권한을 휘두른다는 비난도 더러 받는다. 선거·국민투표의 지원 업무도 다루기 때문에 정파적 개입이라는 구설에 휘말릴 수 있다. 실제로 20대 국회의원인 정종섭(새누리당·대구 동구갑) 전 행자부 장관은 재임 말기 여당 행사에서 ‘총선 필승’ 발언으로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행자부 직업공무원들은 인사상 지자체와 숱한 교류를 거치는 터라 선출직 진출에 도움을 얻기도 한다. 지방과 애증이 얽히고설킨 부처란 얘기다. 조직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단행된 정부 개편과 함께 규모가 다소 줄었다. 본부 기준 3270여명으로 부처 2위를 뽐내다가 이젠 경찰청(1650여명), 국민안전처(1040여명), 국토교통부(970여명), 기획재정부(950여명), 국세청(810여명)에 이어 6위(810여명)다. 행자부의 한 간부는 “자존심을 되찾자는 정서적 흐름에 힘입어 고위직들을 분발하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차관 중심으로 내부를 다독이며 현장을 중시해 발로 뛰려는 분위기를 가리킨다. 33년간 행자부를 지킨 ‘터줏대감’ 김성렬(58) 차관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내 거주지 대성동 마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통계에도 밝아 ‘행정 닥터’라는 별명을 달았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 즐겁게 일하는 마음, 보람에 찬 공직생활’을 강조하는 ‘자·즐·보’를 평소 신조로 내걸었다. 올 4월 공무원시험 준비생에 의해 정부서울청사가 침입당했을 때는 점심식사 때 ‘낮 12시 이후 나와서 오후 1시까지 입실’ 원칙을 엄수하라는 지시를 직원들에게 내리기도 했다. 심보균(55) 기획조정실장은 안팎에서 두루 인정받는 ‘기획통’으로 알려졌다. 정책 발상, 창의력, 통합능력이라는 3박자를 갖췄다는 평이다. 아울러 온화한 인상처럼 웃음을 잃지 않아 주변을 편하게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가 좌우명이다. 직제상 장관 직속인 남궁영(54) 대변인은 중앙부처와 지자체에서 두루 공직 경험을 쌓았다. 조직 내부의 소통·화합을 이끌어내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도록 힘을 모으는 데 탁월한 리더십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솔직한 경험담을 앞세워 교훈을 일깨우는 ‘로맨티스트’로 불린다. 차관실 직할인 한창섭(49) 의정관은 사무관 시절부터 조직관리과, 성과조직팀장 등 조직분야에서만 7년간 근무해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다. 지식행정팀장 땐 지식관리 시스템의 틀을 구축했고 윤리과장으로 일할 때는 재산형성 과정 심사기준을 강화하는 등 공직자 윤리심사 기준을 엄격하게 다졌다. 행자부 축구동호회장을 맡아 국무총리배 3위, 전국 시·도 친선대회 3위 등 성적을 거뒀다. 박재민(51) 인사기획관은 지방재정 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장 경험까지 두루 갖춘 지방재정 전문가다. 깔끔한 업무처리와 명확한 보고 능력으로 상사의 신임이 두텁고, 젠틀한 매너로 직원들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간부’에 늘 손꼽힌다. 김종영(56) 감사관은 2000년 개방형직위제 시행 이후 중앙부처 감사관으로는 제1호 기업체 출신이다. 한화에서 30년 남짓 근무하면서 한화유통 감사팀장과 그룹 구조조정본부 상무를 지낸 뒤 지난 2월 1일 임용됐다. 특히 지난 9월 28일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전 부서원과 함께 본부, 소속기관, 지자체 등 교육 실시·지원 및 매뉴얼 제작, 홍보 등을 맡아 혼란을 줄이는 데 애썼다. 기조실 소속인 박준하(55) 정책기획관은 행정관료로는 보기 드물게 축산대학(현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학)을 나왔다. 사회적인 관심 속에 새롭게 국가 ‘십년대계’로 떠오른 ‘지자체 저출산 대책’과 같은 현안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 2017년 예산안 국회 심의 대응 등으로 행자부에서 가장 바쁜 인물로 손꼽힌다. 유쾌하고 소탈해 직원들과 소통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는다. 정인균(57) 국제행정협력관은 외교부 재직 당시 쌓은 풍부한 경험을 인정받아 개방형 직위에 임용된 사례다. 범정부 공공행정협력단을 운영하는 등 행정한류 확산에 성과를 내고 있다. 김용순(58) 비상안전기획관은 예비역 육군대령 출신으로 실질적인 비상대비계획을 수립하고 현장 위주로 위기관리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추진력이 강하고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해 업무를 챙기는 ‘얼리버드’로 잘 알려졌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더 케이투 송윤아, 거침없는 지창욱에 묘한 마음 “시청률 최고의 1분”

    더 케이투 송윤아, 거침없는 지창욱에 묘한 마음 “시청률 최고의 1분”

    tvN 금토드라마 ‘THE K2(더 케이투)’ 지창욱(김제하 역)을 향한 송윤아(최유진 역), 임윤아(고안나 역)의 마음이 커져가며,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높이고 있다. 28 방송된 ‘더 케이투’ 11화에서는 송윤아의 명을 받고 김갑수(박관수 역)를 사살하려는 지창욱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창욱은 치열한 총격전 끝에 김갑수를 손에 넣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고, 이를 눈치 챈 송윤아는 무소속인 조성하(장세준 역)를 여당에 입당시키는 조건으로 김갑수를 살려줬다. 검찰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조성하는 송윤아가 임윤아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듣고 분노했다. 이에 송윤아의 따귀를 때리며 “안나가 잘못되면 우리 계약도 끝이야”라고 울분을 토했다. 송윤아는 얼굴을 감싸 쥔 채 “넌 젊었을 때도 늙고, 교활하고, 더러웠어, 지금처럼. 그래서 널 그토록 사랑했던 엄혜린을 죽게 할 수 있었어. 난생 처음 맞아 본 내 따귀를 때린 손모가지는 잘라 버리려다가 선거 때문에 남겨두는 거야”라며 이를 악물었다. 송윤아와 조성하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이 몰입을 극대화한 순간이었다. 지창욱를 둘러 싼 송윤아와 임윤아의 관계도 절정에 달했다. 송윤아는 신동미(김실장 역)가 자신 몰래 지창욱을 죽이려 한 사실을 눈치 채고 “제하 건드리면 내가 널 죽일지도 몰라”라고 경고했고, 임윤아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지창욱을 멀리서 물끄러미 지켜보며 가슴 속에 묘한 일렁임을 느끼기도 했다. 한편 지창욱과 임윤아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다. 지창욱은 임윤아를 향해 “안나야,예전에 나는 지키고 싶은 게 없었어. 근데 이젠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그래서 나 행복해질 수 있을 거 같다”고 고백해 안방극장을 설렘으로 물들였다. 한편 어제 방송된 ‘더 케이투’ 11화는 케이블, 위성, IPTV 통합 기준 가구 평균 시청률 5.5%, 최고 시청률 7.0%를 기록, 케이블과 종편을 통틀어 11회 연속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이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1분은 김갑수 제거 작전 이후 클라우드 나인에서 지창욱과 송윤아가 독대하는 장면이 차지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물인 송윤아를 편견 없이, 거침 없이 대하는 지창욱과, 그런 그에게 묘한 감정을 갖게 된 송윤아 사이의 위험한 케미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 tvN ‘더 케이투’는 전쟁 용병 출신의 보디가드 ‘K2’와 그를 고용한 대선 후보의 아내, 그리고 세상과 떨어져 사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보디가드 액션 드라마다. 지난9월 23일(금)첫 방송을 시작,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액션 신과 배우들의 열연이 선사하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호평 받고 있다. 매주 금,토요일 저녁 8시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찬열 민주당 탈당…손학규 “탈당하지 마시라” 만류 왜?(종합)

    이찬열 민주당 탈당…손학규 “탈당하지 마시라” 만류 왜?(종합)

    이찬열 의원이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했다. 이 의원은 손학규계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다. 전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정계복귀와 탈당을 선언한 이후 첫 동반 탈당이다. 이 의원의 탈당이 손학규계 야권 인사들의 도미노 탈당으로 이어질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기도의원 출신의 이 의원은 손 전 대표가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동반 탈당한 데 이어 2009년 10월 재보궐선거 당시 손 전 대표가 수원 장안에서의 구원등판을 사양하고 선거지원에 나서면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손 전 대표의 도움과 은혜를 가장 많이 받았다. ‘능력있는 병사를 장수로 키워야 한다’는 손 전 대표의 결단은 뇌리에 깊숙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적을 떠나 손 전 대표의 새판짜기에서 제가 할 일을 찾아서 하겠다”며 “이렇게 하는 것이 제 삶의 도리”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런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손 전 대표도 국민의당으로 가지 않으리라고 본다”며 “손 전 대표를 중심으로 제3지대에서 모여야 정권창출이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또 손 전 대표가 조만간 개헌을 주제로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를 만날 예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회견에 앞서 이날 오전 비공개 최고위를 찾아가 탈당 결심을 전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추미애 대표는 이 의원에게 “손 전 대표가 복귀할 수 있도록 당의 지형을 더 두텁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얘기하며 만류했지만, 이 의원은 “미안하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 역시 이 의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나를 진심으로 도우려면 당에 남아야 한다. 제7공화국을 만들고 나라의 새판을 짜는데 당내에서 나를 도울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탈당하지 마시길 진심으로 원한다”고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의원을 시작으로 손학규계 의원들의 ‘도미노식’ 탈당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김병욱 의원이나 박찬대 의원이 연쇄탈당 행렬에 동참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탈당 문제는 당사자들이 직접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학규 민주당 탈당…이찬열 의원 오늘 탈당 선언, 도미노 탈당 이어질까?

    손학규 민주당 탈당…이찬열 의원 오늘 탈당 선언, 도미노 탈당 이어질까?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20일 정계복귀와 함께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하면서 손학규계 핵심 인사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뤄질지 주목되고 있다. 손학규계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이찬열 의원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탈당하기로 했다. 손 전 대표의 탈당 선언 이후 첫 동반 탈당이다. 이 의원은 손 전 대표가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동반탈당한데 이어 2009년 10월 재보궐선거 당시 손 전 대표가 수원 장안에서의 구원등판을 사양하고 선거지원에 나서면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 의원은 이날 연합뉴스를 통해 “일단 당 밖에 나가서 손 전 대표가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때 도와드리는 역할을 하겠다”며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결국 손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다 모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당으로 입당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바로 다른 당으로 가는 것은 민주당 당원들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다”면서 일단 무소속에 머물러 있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추미애 대표를 찾아 탈당 결심을 전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추 대표는 이 의원에게 “손 전 대표가 복귀할 수 있도록 당의 지형을 더 두텁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얘기하며 만류했지만, 이 의원은 “미안하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의원을 시작으로 손학규계 의원들의 ‘도미노식’ 탈당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김병욱 의원이나 박찬대 의원이 연쇄탈당 행렬에 동참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탈당 문제는 당사자들이 직접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쉰 바라보는 마이티 모에 패배한 최홍만…“여유 있는듯 웃엇지만”

    쉰 바라보는 마이티 모에 패배한 최홍만…“여유 있는듯 웃엇지만”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36)이 불혹을 훌쩍 넘긴 파이터 마이티 모(46·미국)를 상대로 1라운드 KO패했다. 최홍만은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샤오미 로드FC 033 무제한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마이티 모에 패배했다. 마이티 모는 최홍만의 주위를 돌면서 빈틈을 찾았고, 접근전에 약한 최홍만은 계속 거리를 두기 위해 견제만 했다. 서로 탐색전만 벌이던 두 선수의 침묵을 깬 건 마이티 모였다. 마이티 모가 먼저 최홍만의 품에 파고들어 오른손 훅을 날렸다. 코너에 몰린 최홍만은 마이티 모의 강력한 펀치를 제대로 피하지조차 못했고 좀처럼 펀치를 뻗지 못했다. 반면 마이티 모는 여유 있게 빈틈을 찾아가며 공격했다. 한동안 얻어맞던 최홍만은 여유를 보여주려는 듯 슬쩍 미소 지었지만, 1라운드 54초를 남기고 마이티 모의 오른손 훅이 최홍만의 왼쪽 턱 아래를 강타했다. 최홍만은 그대로 무너져내렸고,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키며 마이티 모의 승리를 선언했다. 앞서 4월 16일 중국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열린 무제한급 4강전에서 최홍만은 아오르꺼러를, 모는 한국의 명현만을 각각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로써 최홍만은 종합격투기 전적 4승 5패가 됐고, 마이티 모를 상대로는 통산 1승 2패를 기록하게 됐다. 최홍만과 마이티 모는 앞서 두 차례 맞대결했고, 1승씩을 나눠 가졌다. 2007년 3월 K-1 요코하마 스페셜 매치에서 마이티 모가 2라운드 KO 승리를 거뒀고, 6개월 뒤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는 최홍만이 판정승했다. 당시 최홍만은 미르코 크로캅,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등 정상급 선수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뽐냈던 최홍만은 기량 저하로 급격한 내리막을 탄다. 최홍만의 기량이 떨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2008년 받은 뇌종양 수술이었다. 격투기 선수로 경쟁력을 잃은 최홍만은 일본에서 연예 활동에 나섰다. 일본 드라마에서 프랑켄슈타인과 괴물 등 우스꽝스러운 역을 맡았고, ‘격투기 선수’ 최홍만의 복귀를 기다리던 팬들은 하나둘 떠났다. 2011년에는 주점에서 시비가 붙어 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하며 새누리당에 입당해 꾸준히 뉴스에 등장했다. 작년에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피소됐고, 올 초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홍만은 지난해 로드FC를 통해 격투기에 복귀해 재기를 선언했지만, 경기력은 수준 이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거제 찾은 문재인 ‘나·가·자’ 건배

    거제 찾은 문재인 ‘나·가·자’ 건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9일 조선업 불황에 콜레라 발생까지 겹쳐 몸살을 앓고 있는 경남 거제와 통영을 방문했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이 태어난 거제시 명진리 남정마을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만나 “지난 대선 때 많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주민들에게 일일이 막걸리를 따르며 ‘나·가·자’로 건배제의를 했다. 문 전 대표는 “나·가·자는 ‘나도 좋고 갸도 좋고 쟈도 좋고’의 경상도 사투리로 너 나 없이 모두 좋다는 뜻”이라며 “요즘 사회가 편가르기가 심한데 네 편 내 편 나누지 말고 함께 통하는 세상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는 이어 거제 연초면 조선 사외협력업체인 삼녹을 방문해 조선업 불황에 따른 어려움을 들었다. 그는 “(추석을 앞두고)정부에서 체불 임금에 대해 비상한 각오로 임해줬으면 한다. 내년 대선은 우리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유능한 정부를 선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이날 원외정당 ‘민주당’의 김민석 대표를 만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계획을 세웠다가 당내 호남·86그룹은 물론, 최고위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취소했던 추 대표가 외연 확장 행보를 재개한 셈이다. 추 대표는 김 대표를 만나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뵙고 입당할 무렵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활동한 김민석 동지”라고 친밀감을 드러냈다. 86그룹의 원조인 김 대표는 야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등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지만, 2002년 대선 국면에서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를 지지하는 등 ‘철새 행보’로 추락했다. 2010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정계를 떠났던 그는 지난해 9월 민주당을 창당했다. 추 대표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하는 가을 전어의 역할을 하겠다”며 “좌절하고 실망하고 분노해 당을 떠난 분들을 정성껏 모시겠다”고 했다. 이에 김 대표는 “저희는 뿌리가 같다. 김 전 대통령의 같은 문하생”이라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안철수, 정운찬에 ‘공개 러브콜’…정운찬의 대답은?

    안철수, 정운찬에 ‘공개 러브콜’…정운찬의 대답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7일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 “동반성장과 공정성장이 함께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며 ‘공개 러브콜’을 보냈다. 같은 당 조배숙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위기의 한국경제와 동반성장 토론회’에서다. ‘공정성장’을 경제체질 변화의 해법으로 주장해온 안 전 대표가 ‘동반성장’을 외쳐온 정 전 총리에게 노골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강연자로 초청된 정 전 총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안 전 대표는 최근 독일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IFA) 2016’에 다녀온 것과 관련해 “패러다임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고, 이에 정 전 총리는 “공부 많이 하고 오셨나 보다”고 답했다. 안 전 대표는 축사에서 “위기를 돌파할 신의 한 수는 없고 우공이산(愚公移山·끊임없이 노력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의 진정성을 갖고 하나하나 가야 한다”면서 “교육과 분배구조, 국가재원, 투자구조, 산업생태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이들을 바꿀 주체인 정치를 바꿔야 하는데, 단순한 정권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를 혁신하고 미래를 준비할 새로운 정권이어야 한다”면서 “지도와 나침판도 있어야 하는데, 정 전 총리 같은 분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정 전 총리에 대한 영입계획 질문에 “양극단을 제외한 합리적 사람들이 많이 힘을 합쳐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안 전 대표의 정 전 총리에 대한 구애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는 “앞으로 동반성장과 공정성장의 접점에 대해 (정 전 총리와) 따로 말씀을 나눌 것”이라며 “여러분들과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는 노력을 계속 더 열심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의 이런 ‘러브콜’에 정 전 총리는 일단 선을 그었다. 정 전 총리는 “국민의당과 함께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의당과 정의당, 더불어민주당이 강연 요청을 할 때 다 갔다”면서 “어떤 강연에 갔다고 해서 어느 당에 입당하는 것을 기대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말에는 “지금 나라가 너무 혼란스럽고 경제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나라 걱정은 과거보다 훨씬 많이 하고 있다”면서 “제 생의 궁극적 목적이 동반성장 사회 건설로 그걸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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