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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임창용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안팎에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군사정권만큼이나 민주주의가 질식하고 있다”(지난해 12월 14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군부독재에 이어 검찰독재의 얼굴이 나타났다”(1월 24일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 “검찰독재를 막기 위한 비상시국회의를 제안한다”(1월 19일 이부영 등 민주화운동 원로들) 등등. 이들의 목소리만 듣고 있자면 우리 사회가 정말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대로 회귀한 건가 싶을 정도다. 한데 이들이 열거하는 근거를 들여다보면 헛웃음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퇴행’ 사례들이 하나같이 이재명 대표의 비리 혐의나 문재인 정부 시절의 각종 조작 혐의,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를 겨냥하고 있어서다. 이 대표는 ‘성남FC 불법 후원’ 혐의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데 이어 28일 ‘대장동 사건’의 피의자로 소환을 앞두고 있다. 성남 백현동 불법 특혜 의혹과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이 대표가 불법 혐의를 받는 사건이 7가지를 넘는다. 대부분 성남시장이나 경기지사 시절에 이뤄진 뇌물이나 배임, 직권남용 등 개인 비리 의혹들이다. 검찰 수사가 정말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야당 파괴이고 정치보복 행위일까. 하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이를 민주주의 퇴행과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모두 문재인 정부 시절 시작됐다. 전 정부 검찰이 시작만 해 놓고 뭉갠 수사를 이번 정부 들어 재개한 것일 뿐이다. 이 대표는 대선 출마부터 엄청난 모험이었다. 선거법 위반 혐의가 대선 전 석연치 않은 과정에 의해 대법원에서 뒤집혀 가까스로 출마 자격을 얻었다. 또한 그때 이미 대장동 의혹 등 지금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이 대표가 연결돼 있었다. 대선에 진 그가 곧바로 정치를 재개한 건 기름을 지고 불속에 뛰어든 격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강성 지지층과 ‘처럼회’ 같은 민주당 내 호위무사들을 믿고 총선에 출마했고 당권까지 거머쥐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민주당은 “헌정 사상 초유의 제1야당 대표 소환”이라고 야단법석을 떤다. 그런 논리라면 사상범이 아니면서 전과 4범이자 각종 중대 혐의 피의자를 국회의원과 제1야당 대표로 내세운 건 헌정 사상 처음이 아니던가? 이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자 민주당은 아예 검찰과 국민을 겁박까지 하고 있다. 우상호 의원은 지난 6일 한 방송에 출연해 성남FC 불법 후원 의혹 수사와 관련해 “(이 대표를 구속한다면) 나라가 뒤집어진다”고 했다. 하긴 우 의원은 나라를 뒤집은 경험이 있다. 그는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영정을 들었다. 6월 항쟁을 이끌었고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직선제 개헌’이란 항복을 받아 냈다. 그때 받은 ‘민주화운동 훈장’이 4선 국회의원으로 가는 출세의 뒷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경험이라도 살려 이 대표가 구속된다면 나라를 뒤집겠다는 것인가. 그것도 민주열사가 아닌 각종 비리 혐의자를 위해서? 그래서 이치에 맞지도 않게 민주주의를 꺼내 들었다는 말인가.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는 정치세력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다. 집권 여당 시절 스스로 약속을 깨고 위성정당을 만들고, 당헌을 바꿔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냈다. 절차적 위법성을 무시하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사퇴를 압박했다. 우상호 의원 등 586 정치세력이 주도한 반민주적 행태였다. 이는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 각종 꼼수와 편법을 동원한 거대 야당의 입법독주가 계속되면서 현 정부가 국민의힘 정부인지 민주당 정부인지 헷갈릴 정도다. 더이상 개인 비리 방어를 위해 민주주의를 거론하지 말길 바란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길섶에서] 저출산 시대의 세뱃돈/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저출산 시대의 세뱃돈/임창용 논설위원

    어릴 적 설이 기다려진 건 뭐니 뭐니 해도 세뱃돈 때문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 떡국상을 물리면 자연스럽게 세배 순서로 이어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등까지. 십수 명의 아이들이 한자리에서만 열 번 넘게 세배를 했고 그때마다 어르신들은 아낌없이 지폐를 건네주며 덕담을 해 주셨다. 이런 모습은 외가로도 이어졌다. 주머니가 두둑해져 장난감 살 생각에 잠을 설쳤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한 세대 후 세뱃돈을 주는 위치가 되자 풍경이 달라졌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한두 명만 낳으면서 세배하는 아이들이 확 준 것이다. 조카들이 다 모여야 대여섯 명인 데다 그마저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서너 명이 세배를 하면 ‘세배타임’은 끝이다. 그마저도 조카들이 장성해 취업하면서 올해는 세뱃돈을 줄 아이가 더 줄어 싱겁기 그지없다. 세뱃돈을 받을 때의 설레임과 세뱃돈을 줄 때의 뿌듯함이 사라져서인지 설이 영 섭섭하다.
  • [씨줄날줄] 사의재 논란/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의재 논란/임창용 논설위원

    전남 강진은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한 곳이다. 다산 선생은 이곳에서 18년간 머물면서 실학사상을 싹틔웠는데,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연중 방문객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 남도 답사여행의 1번지로 꼽힌다. 천주교 신자였던 다산 선생은 1801년 천주교 박해 당시 겨우 목숨을 건져 강진으로 유배된다. 그때 귀양을 가 처음으로 머문 곳이 현재 강진읍 동성리에 있는 ‘사의재’(四宜齋)다. 당시 숙박을 겸한 주막집이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내준 골방을 선생이 사의재라 이름 붙여 거처로 삼았다고 한다.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시지 않겠느냐”는 집주인 할머니의 사려 깊은 요청에 다산은 자신이 지은 ‘아학편’을 교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현재 강진군이 다산실학 성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옛터를 복원했다. 주막채·바깥채·초정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사의재는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곳’이란 의미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엄숙하게, 말씨는 과묵하게, 행동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배 생활의 갖가지 고초 속에서도 선생이 얼마나 절제하며 학문에 매진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는 사의재에서 4년간 후학을 양성하면서 ‘경세유표’ ‘애절양’ 등을 집필하는 등 연구에 매진했고, 그 후 도덕면 만덕리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가 다산초당에 머물면서 경전과 실학연구에 매달려 ‘목민심서’ 등 방대한 저술을 남긴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다산 선생의 연구혼이 깃든 ‘사의재’가 뜬금없이 논란이다. 문재인 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정책포럼을 출범시켰는데 거기에 ‘사의재’란 이름을 붙였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상임대표를 맡았고,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등이 고문에 위촉됐다. 문 정부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취지를 내세우지만 당장 ‘친문 세력화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문 전 대통령이 양산 사저 근처에 북카페를 내기로 한 것과 맞물려 더 그렇다. 퇴임 후 잊히고 싶다던 문 전 대통령의 소망이나, 삼가고 신중해야 한다는 사의재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길섶에서] 자동차보험 교체/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자동차보험 교체/임창용 논설위원

    3개월 전쯤 자동차보험을 주행거리에 비례해 보험료가 부과되는 상품으로 바꾸었다. 평소 운전시간이 짧아서 보험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차의 시거잭에 보험사가 지급한 플러그를 꽂고 주행하면 실시간으로 주행거리가 체크돼 보험료가 계산되는 시스템이다. 아들의 자동차도 나와 공동명의로 같은 보험에 들었는데 확실히 기존 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절감된 듯하다. 30년 운전 경력에 처음으로 보험사를 바꾼 뒤 꽤 만족스러워하던 차에 예상치 못한 고민이 생겼다. 독립해 사는 아들이 주말에 집에 와서 함께 밥을 먹던 중 “너 어제 어디 먼 데 갔었니?”라고 물은 게 사달이 났다. 우연히 보험사 앱을 보다가 그날 아들 차의 주행거리가 수백㎞ 찍힌 게 기억나 무심결에 물은 것이었다. 아들이 “아빠는 내 동선을 일일이 보세요”라고 되묻는 순간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돈 몇 푼 아끼려다 부자간 불신이 싹틀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보험을 다시 바꿔야 하나.
  • [씨줄날줄] ‘굿바이전’ 소동/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굿바이전’ 소동/임창용 논설위원

    혐오나 인신모욕은 그 대상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수치심을 안긴다. 또한 갈등을 유발해 사회통합을 저해하기 쉽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부닥칠 경우 명확한 판단이 쉽지 않아 예술이나 풍자로 포장된 혐오 행태가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국회에서 열린 ‘곧 바이전’이다. ‘더러운 잠’이란 제목의 작품으로 파문이 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를 배경으로 나체로 침대에서 자는 모습과 최서원씨가 ‘주사기 꽃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전시를 주관한 민주당 표창원 전 의원은 당에서 당원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는 대학강사 박모씨가 노상에 설치된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이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쥐’를 그려 넣어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법원은 “예술 또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났다”며 박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혐오 대상은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엔 인종·종교·성별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행위가 만연해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한 헌법적 기본권이다. 특히 권력자에 대한 문제 제기나 풍자는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헌법(제37조 2항)은 질서유지나 공공복리를 위해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혐오나 모욕, 명예훼손에 대해 그렇다. 국회사무처가 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3 굿바이 인서울’전을 지난 9일 밤 기습 철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최강욱·황운하 등 민주당 처럼회 의원 등이 공동주관한 전시에선 알몸의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함께 큰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담은 작품 등 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사무처는 ‘타인의 권리와 사회윤리 침해’를 이유로 자진 철거를 요구했지만 주최측이 거부하자 강제 철거했다. 행사 주관 의원들은 “표현의 자유가 짓밟혔다”고 반발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옷을 풀어 헤치고 알몸으로 선 모습, 술병 옆에 누운 윤 대통령 위에 김 여사가 올라앉은 그림 등이 과연 표현의 자유로 용인돼야 할까. 외려 예술을 빙자한 혐오와 저급한 인신모욕에 더 가까운 듯싶다.
  • [길섶에서] 60세 계묘년생/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60세 계묘년생/임창용 논설위원

    단톡방에 ‘토끼’들이 그득하다. 새해 전날부터 첫날까지 이런저런 단톡방마다 새해 인사에 마스코트처럼 붙여진 토끼들. 각기 다른 사진과 이모티콘을 들여다보며 ‘토끼 이미지가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 저마다 품는 기대가 다른 만큼 선택하는 토끼 이미지도 다른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재미 삼아 인터넷에서 운세를 찾아보니 토끼띠 운세가 상서롭다는 내용이 많다. 귀인이 등장하고, 재물운이 늘고, 사람을 얻고 등등. 1963년 계묘생인 내게 계묘년 소회는 남다른 듯싶다. 한 해 100만여명이 태어나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던 산아제한 표어가 나온 해. 지난해 출생 아기가 25만명대인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눈부신 경제 발전과 함께 계묘생들은 ‘거지꼴’이 아닌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해냈다. 올해 수십만명의 계묘생들이 법정 정년을 채우고 직장을 나선다. 지난 30년과는 다른 제2의 출발을 하는 이들에게 토끼해의 상서로움이 가득하기를.
  • [서울광장] 86%를 위한 노동개혁이 되려면/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86%를 위한 노동개혁이 되려면/임창용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강한 노동개혁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지난 15일 첫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노동개혁을 못 하면 정치도, 경제도 망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26일엔 “국내 노조가 약자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노노 간 착취구조 타파가 시급하다”고 했다. 향후 노동개혁 추진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깨기와 노동 약자 보호에 집중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그로 인한 양극화 현상은 심각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노동자 2058만여명 가운데 노조 조합원은 14.2%(293만여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86%인 1750만여명이 노조의 보호 없이 각자도생하는 셈이다. 현재 노조는 대부분 대기업과 정규직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노조 조직률이 300인 이상 회사는 46.3%에 달하는 반면 99인 이하 사업장은 2%에도 못 미친다. 우리나라에서 노조가 노동 약자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기업 규모와 정규직·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성별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는 호봉제와 강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이중구조의 하층인 중소기업·비정규직과의 격차를 벌려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86% 노동 약자 소외현상은 갈수록 깊어진다. 이런 구조에선 정부가 아무리 노동 취약층에 대한 금전적 지원과 복지를 강화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노동개혁 핵심이 이중적 노동구조 깨기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역대 정부들도 여러 차례 노동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국내 양대 노총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한 14%의 ‘이권 카르텔’을 뚫지 못해 좌절을 거듭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조선·자동차업 등 기간산업 노조와 교직원노조, 공무원노조 등 초대형 강성 노조들을 이끌면서 정부와 맞서고 있다. 기득권 수호를 위해 사업장 점거와 운송 방해 등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일단 윤 대통령의 노동개혁 의지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한 듯하다. 그래도 기성 노조의 이권 카르텔을 깨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하나씩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우선 개혁에 대한 국민 공감을 얻어야 한다. 얼마 전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집단운송 거부 사태에서 정부가 파업 철회를 이끌어 낸 것도 ‘불법은 안 된다’는 원칙에 국민이 공감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법치와 원칙이 중요해도 국민 공감이 없으면 개혁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야 협치도 필수 요소다. 노동시간이나 임금, 노조와 관련한 개혁은 대부분 관련 법을 손질해야 가능하다. 야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개혁을 향해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렵다. 붕괴 직전인 야당과의 정치 복원을 위해 윤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해야 하는 이유다. 노사정 간 신뢰를 쌓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현 임금체계의 근간인 호봉제 등을 손보려면 노정, 노사 간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하다. 급하다고 우격다짐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미 혜택을 보고 있는 입장에선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계를 상대로 호봉제 등이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고,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며, 노노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점을 차근차근 이해시켜야 한다. 얼마 전 이채필 전 고용부 장관이 친윤 의원 모임에서 “정부 주도로 노동개혁을 일방 추진했다가 실패한 사례들을 잘 알고 있다”며 너무 성급하면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늦더라도 각계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란 의미다. 윤석열 정부가 정말 86%의 노동 약자를 위한 노동개혁에 성공하고 싶다면 깊이 새겨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 [씨줄날줄] 지하철 무임수송 딜레마/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지하철 무임수송 딜레마/임창용 논설위원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도시철도 무임수송에 대한 손실 지원이 빠지면서 어르신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하철 운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무임승차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는 적자 해소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9644억원에 이른다. 2020년에는 1조 1137억원에 달했다. 적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게 공사의 공익서비스 손실액(4848억원)이고, 그중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액이 2784억원이다. 전체 적자의 30%가 어르신 무임승차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이런 추세는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내년은 1차 베이비붐세대를 상징하는 ‘58년 개띠’가 65세가 되는 해다. 이들을 필두로 연 100만명 가까이 태어났던 세대가 본격적으로 법정 ‘어르신’ 반열에 오른다. 지하철 무임승차 손실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계청 추산으론 2024년 노인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게 된다. 정부나 정치권도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65세가 갖는 의미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이른바 ‘65+ 클럽’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지하철 무임승차는 물론 월 32만원의 기초연금, 독감 무료 접종, 임플란트 지원, 비과세 저축 혜택까지 크고 작은 복지서비스 대상이 된다. 인터넷에 ‘65세 이상 어르신 혜택 50가지’란 정리글까지 돌 정도다. 그러니 정부든 정치권이든 65세 기준에 손을 대기 위해선 어르신들의 엄청난 반발 등 역풍을 각오해야 한다. 진보나 보수 정권 관계없이 섣불리 손대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지하철 적자 구조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이대로 가면 2040년 누적 적자가 17조원에 이를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로 치닫는 건 막아야 한다. 평균수명이 경로우대법 제정 당시(1981년) 66.1세에서 지난해 83.6세로 길어진 만큼 법정 어르신 연령 조정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출퇴근 시간 무료탑승 제외(영국), 일정 소득 이하만 무료 탑승(프랑스) 등 외국 사례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 [길섶에서] 꽃기린/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꽃기린/임창용 논설위원

    몇 해 전 지인으로부터 화분을 두 개 선물받았다. 하나는 접시 모양의 토기에 담긴 호접란, 다른 하나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꽃기린이었다. 호접란은 꽃이 탐스럽고 잎이 도톰한 데다 줄기가 매끈하다. 반면에 꽃기린은 꽃이 작은 데다 줄기는 날카롭고 잎이 작다. 귀해 보이는 호접란에 눈길이 더 갔고, 물이나 영양제를 줄 때도 꽃기린보다는 호접란에 더 정성을 들였다. 몹시 추웠던 겨울 어느 날 베란다에 있던 호접란이 죽고 말았다. 따뜻한 실내에 들여놓아야 했는데 깜빡했다. 꽃기린은 살아남았다. 주인의 ‘천대’와 추위를 이겨 낸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지 않은 호접란엔 배신감이, 꽃기린엔 일체감이 들었다. 관심을 갖게 되니 꽃기린의 진면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사철 꽃을 피우는 고마운 식물. 꽃말이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란다. 세상이 수많은 호접란과 꽃기린으로 채워져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해를 보내며 나와 주변을 되돌아본다.
  • [길섶에서] 눈에 대한 기억/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눈에 대한 기억/임창용 논설위원

    오후 들어 구름이 짙어진다 싶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산책하던 어른들은 집으로 발길을 서두르는데 아이들은 하나둘 밖으로 나온다. 네댓 살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어서 눈이 쌓여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타고 싶은 눈치다. 눈이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아이들은 참 눈을 좋아한다. 나도 어릴 적 눈만 오면 밖으로 뛰어나갔다. 친구들과 온종일 눈밭에서 놀다가 해 질 녘 밥 먹으라는 어머니 부름에 집에 들어가곤 했다. 눈이 즐거웠던 기억만 소환하는 건 아니다. 군 복무 시절 눈은 전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산기슭에 위치한 탄약부대에서 근무했는데 한번 눈이 내리면 사나흘은 제설 작업을 했다. 다 치웠다 싶으면 또 내리던 눈이 참 야속했다. 창밖의 눈발이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이젠 눈을 치울 일도 없는데 반가움보단 걱정이 앞선다. 차를 몰고 나간 가족, 내일 아침 출근길이 걱정이다. 어릴 적 날 부르던 어머니의 마음도 이랬을 것이다.
  • 꿈쩍 않는 부동산 빙하기… “금융·세금·정비사업 과감한 규제 완화를”[임창용의 부동산 에세이]

    꿈쩍 않는 부동산 빙하기… “금융·세금·정비사업 과감한 규제 완화를”[임창용의 부동산 에세이]

    올 들어 본격화한 집값 급락세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 5년간 도입됐던 부동산 규제들이 속속 풀리고 있다. 풀기 기능이 고장난 시계 태엽처럼 감고 조이기만 하던 부동산 정책기조가 마침내 규제 완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규제지역을 대거 해제하고 일부 대출 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이달엔 부동산 규제의 핵심인 재건축 안전진단 비중을 크게 낮췄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이후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선 온기가 돌 기미조차 없다. 불과 1년 만에 최고가 대비 반토막 난 아파트 거래 사례가 속출하고, 올 들어 누적 하락률이 10%를 넘긴 지역도 확산하고 있다. 시장에선 고금리의 위력이 워낙 강력해 지금 정도의 규제 완화로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금리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한 웬만한 규제 완화로는 현재의 집값 하락세를 진정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하락 자체보다 거래가 얼어붙어 부동산 시장은 물론 건설업계 전반이 침체되면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다. 금리 인하 전이라도 선제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거래에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5년간 꽁꽁 묶인 규제 실태와 규제 완화 상황, 향후 풀어야 할 규제 등을 짚어 본다.●文정부 5년은 부동산 규제 백화점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값 폭등의 원인을 투기에만 두다 보니 5년간 내놓은 대책은 온통 규제 강화에 맞춰져 있었다.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30여 차례 내놨고, 이 가운데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대책만 10개가 넘는다. 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6·19대책과 8·2대책을 내놨고 2018년 9·13대책, 2019년 12·16대책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외려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2020년엔 2·20대책을 시작으로 12·17대책까지 7차례나 무더기로 합동대책을 쏟아냈다. 대책의 핵심은 규제지역 확대와 세금 중과에 맞춰졌다. 대책이 나올 때마다 조정대상·투기·투기과열지역이 확대되면서 수도권 대부분과 전국 주요 도시가 규제지역으로 묶였다. 양도세와 취득세, 종부세도 여러 차례에 걸쳐 부과 대상을 확대하고 세율을 높이는 등의 강화 조치를 취했다. 그래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2020년 이후엔 아예 돈줄을 끊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대폭 강화했다. 또한 서울 강남·송파 지역 등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 버렸다. 부동산 실거주 의무 강화,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3법 도입 등을 통해 다주택자와 실수요자를 막론하고 이동 자체를 매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돈줄이 막히고 이동마저 어려워진 데다, 전 세계적인 고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부동산 시장은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급속히 식었다. ●尹정부, 규제 완화 미동도 안 해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윤석열 정부는 지난 6개월간 적지 않은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다. 특히 지난달 10일 서울과 서울 인접지역(과천, 광명, 성남 분당·수정구, 하남)을 제외한 지역의 규제를 전부 해제했다. 이전 정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100곳 넘게 지정했던 걸 한꺼번에 풀었다. 해제 지역에선 주택 구입 대출한도 상향, 실거주 및 주택 처분 의무(다주택자)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졌다. 규제지역 완화에도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정부는 지난 8일 재건축 규제의 핵심인 안전진단 규제 완화 카드를 뽑았다. 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에서 평가항목 중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현행 50%에서 30%로 낮추고, 삶의 질과 직결된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가중치를 각각 30%로 높였다.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없어도 단지가 노후화돼 살기가 불편하면 재건축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가 안전성 비중을 50%로 강화한 이후 안전진단 통과 건수가 급감하면서 사실상 재건축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2015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전국의 안전진단 통과 건수는 139건에 달했으나, 그 이후부터 지난달까지 통과 건수는 21건으로 줄었다. 이번 규제 완화로 서울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일원, 1기 신도시 등 대규모 노후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재건축 사업에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 “지금 수준 완화로는 미흡” 하지만 부동산업계에선 이 정도 수준의 규제 완화로는 거래에 온기를 불어넣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얼마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과 한국주택협회가 개최한 ‘위기의 주택시장-진단과 대응’ 세미나에서 허윤경 건산연 연구위원은 “금리 상승 속도를 고려하면 일부 대출 규제 등을 풀어 주는 것만으론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LTV와 DSR 등 금융규제의 대폭 완화, 각종 세금 중과 완화, 정비사업 관련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건축 등 상당수 정비사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경직된 규제만 풀어도 신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안전진단만 해도 30%로 낮춘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인 20%까지 낮춰야 효과가 날 것으로 본다. 또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를 대폭 완화하지 않으면 현재의 고금리 환경에서 재건축 활성화가 어렵다고 본다. 서울 강남과 송파 지역에 적용 중인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 지역에선 토지거래허가제가 아파트 거래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토지거래허가제로 인해 주택 매수자는 반드시 실거주해야 해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 자금 사정상 집값이 싼 다른 구에 전세를 살면서 강남구에 집을 마련하는 게 불가능해서다. 이는 타 지역 사람의 강남 지역에 대한 강력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강남구에서 지난 10월 한 달간 공인중개사 1곳이 중개한 아파트 매매 건수는 평균 0.01건에 불과했다. 사실상 개점 휴업인 셈이다.●부동산 시장 마비, 복합위기 막아야 지금 부동산 시장 상황은 단지 집값 문제를 넘어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허 연구위원은 “주택시장이 복합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의 지속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복합 위기는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 리스크에 대비할 여유 없이 실물경제 전반이 타격받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건산연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위기로 40개의 건설업체 사업장 233곳 가운데 31곳(13.3%)의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지난 9월 충남 지역 종합건설업체 우석건설과 경남 지역 중견업체인 동원건설산업이 도산해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엔 지금과 같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내년 상반기 건설업체들이 연쇄 도산할 것이란 공포감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 6일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9개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내년 한국 경제 상장률을 1%대로 낮춰 잡으면서 그 이유를 주택가격 하락, 소비 감소, 반도체 부진을 꼽았다. 하지만 정부의 상황 인식은 다소 안이한 감이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금리 앞에 장사는 없다. 규제를 해제한다고 거래가 활성화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규제를 풀고 있는데도 집값 급락세가 진정되지 않는 점을 들어 기자들이 추가적인 규제 완화 의사를 묻자 이처럼 답변했다. 부동산 시장이 몇 개월째 사실상 마비 상태에 있는데 주무장관이 위기의식 없이 금리 탓만 하는 것으로 비친다. 부동산 시장 위기가 우리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밀어넣지 않도록 정부는 보다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규제 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 [길섶에서] 3년 만의 송년회/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3년 만의 송년회/임창용 논설위원

    주말에 모처럼 고향 친구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3년 만이다. 30여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송년회를 코로나 팬데믹으로 두 번이나 쉬었다. 여전히 확진자가 매일 수만 명씩 나오고 있지만 이번엔 송년 모임을 갖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미 감염에 대한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진 듯 모임이 끝날 때까지 코로나 얘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자녀 혼사나 부모상을 치르고 큰 병을 앓는 등 친구들 일상에 변화가 많았다. 위력을 잃은 코로나가 모임에 목말랐던 친구들의 말잔치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각종 송년 모임 약속이 빼곡하다. 대부분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갖는 송년회다. 팬데믹 전보다 모임이 더 많아진 듯하다. 팬데믹 이후 ‘보복소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데 송년회도 그런 영향을 받은 걸까.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 사회적 동물이란 걸 생각해 보면 대화에 목마른 이들이 ‘보복모임’을 가진들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 [서울광장] 업무개시명령을 보는 뒤바뀐 시선/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업무개시명령을 보는 뒤바뀐 시선/임창용 논설위원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정유와 철강 업종에 대해서도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시멘트업에 이어 초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운송거부를 사실상 지휘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이에 맞서 6일부터 연대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 대형 악재들로 복합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산업·노동 현장마저 시계제로 상태로 치닫고 있어 불안감을 더한다. 업무개시명령은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다. 화물운수자동차사업법 14조는 운송사업자나 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거부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노동계는 업무개시명령이 헌법과 법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조항들을 보면 애매한 측면이 있긴 하다. 먼저 헌법 12조는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한데 이 경우 운수사업법에 근거 조항을 갖추고 있어 헌법 위반이라고 보긴 힘들다. 다만 ‘정신상 또는 신체상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자유 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명시한 근로기준법 제7조와의 충돌 소지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이 경우도 화물차 운전사들이 법률상 자영업자여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 논란이 크다. 파업 참가 제재 수단으로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조약인 ILO 협약 제105호 위반 소지는 있어 보인다. 조약은 법률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다만 한국은 해당 조약 미비준 국가다. 국내법상 따를 의무는 없는 셈이다. 한국이 비준한 협약 29조도 강제노동 금지 원칙을 담고 있긴 하다. 한데 ‘인구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등 비상 상황에선 예외로 하고 있어 위반이라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ILO는 최근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정부 의견을 요청했다. 노동계에선 ILO가 ‘개입’했다며 정부를 압박하지만, 정부는 “단순 의견 조회”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무개시명령은 그동안 경제 상황이나 정치 논리에 따라 정부나 정치권이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이 제도는 2004년 노무현 정부와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주도로 화물운수법 개정을 통해 도입했다. 바로 전해 화물연대의 파업에 사실상 백기투항한 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태도를 바꿔 “위헌성이 높다”, “악용 소지가 농후하다”고 비판한다. 국민의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20년 의사 파업 때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되자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전념해야 할 의사들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ㆍ약사의 집단업무거부를 제한하는 업무개시명령은 앞서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화물연대 사태에 대해 국민의힘은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서라도 불법 폭력파업을 끊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근로자든 자영업자든 일을 하고 안 하고는 원칙적으로 본인의 자유다. 다만 집단적 업무 거부로 인해 누군가 손해를 보거나 공공의 이익이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이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헌법도 용인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법률 조항에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아 노동계와 업계, 정부, 정치권이 상황에 따라 아전인수식 논리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정당한 사유’, ‘심각한 위기’ 등 기준이 막연한 조항들은 시행령을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와 노동계의 싸움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다.
  • [씨줄날줄] 부자의 기준/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부자의 기준/임창용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의 자산을 보유해야 부자로 인정받을까. 일반인의 경우 막연하게 서울 강남의 비싼 아파트나 고급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상위 1% 정도의 고소득자 정도로 추측할 듯하다. 그런데 사실 딱 잘라 부자의 기준을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부자 관련 조사를 하는 주체들조차 자기들의 목적에 맞춰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올 상반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펴낸 ‘2022 대한민국 상위 1%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상위 1% 가구의 순자산 커트라인은 29억원 정도다. 이들의 평균 총순자산은 51억원이었고, 10명 중 9명은 본인 명의 아파트에 살았다. 평균 연소득은 2억 1500만원에 달했다. 평균 생활비 500만원 정도와 세금 등을 빼고도 연 9000만원 정도가 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에 사용했다. 하지만 ‘상위 1%’는 편의적 구분일 뿐이고, 부자의 기준은 조사마다 제각각이다. 특히 설문조사 대상에 따라 기준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지난해 한 언론사가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득을 구분하지 않은 일반 국민들은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을 포함한 총자산 10억원 이상을 부자의 기준으로 꼽았다. 100세시대연구소가 제시한 상위 1% 기준(29억원)의 3분의1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상위 1% ‘부자’는 자신을 부자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지난 4일 KB금융그룹이 발간한 ‘2022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가진 조사 대상자의 과반수는 총자산이 100억원 이상은 돼야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위 1% 자산가들보다 3배는 넘게 가져야 진정한 부자라고 인정하는 셈이다. KEB하나은행이 수년 전 이 은행 PB 고객 10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자산가들끼리도 부자 기준에 대한 인식 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고객들은 부자의 최소 자산이 100억원 이상이라고 한 반면 30억~50억원 고객은 129억원, 50억~100억원 고객은 153억원, 100억원 이상 고객은 215억원을 가져야 부자라고 인정했다. 꼭 철학적 가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진정한 부자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 [길섶에서] 초겨울 개나리/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초겨울 개나리/임창용 논설위원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지났건만 눈은커녕 오뉴월 날씨처럼 푸근하다. 집앞 산책로의 ‘철없는’ 개나리가 여기저기 꽃을 피우고 있다. 날이 따뜻하면 11월에도 간혹 개나리꽃을 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꽃을 피운 모습은 처음인 듯싶다. 주변을 둘러보니 양지 바른 돌 틈에 철쭉 꽃망울들이 무더기로 올라오고 있다. 당분간 추위만 없다면 꽃을 피울 기세다. 이상기후로 개화 시기가 갈수록 빨라진다고는 하나 소설 밑 개나리와 철쭉 개화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 17년간 147개 수종을 분석했더니 평균 개화 시기가 8일이나 당겨졌다고 한다. 고온현상이 지속되면 식물들이 호르몬적으로 착각을 일으켜 시도 때도 없이 꽃을 피운다고 한다. 현 수준으로 탄소 배출이 계속되면 금세기 후반엔 개화기가 한 달 가까이 당겨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사계절 구분 자체가 희미해질 것이다. 초겨울 개나리꽃이 그 전조인 듯해 마음이 무겁다.
  • [씨줄날줄] 김정은의 딸/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김정은의 딸/임창용 논설위원

    북한 조선중앙TV가 2020년 김정은(국무위원장)의 청소년 시절 사진을 여러 장 공개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조선인민군 원수를 지낸 현철해 국방성 총고문이 사망하자 그의 생애를 다룬 기록영화 ‘빛나는 삶의 품: 태양의 가장 가까이에서’를 방영하며 어린 김정은이 현철해와 함께했던 장면들을 소개한 것이다. 사진들은 10대 중후반의 김정은이 현철해 등 고위 간부들과 함께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10대 모습을 공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사진 공개 전까지만 해도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으로 처음 쓰러진 이듬해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정은이 이미 10대 때부터 아버지의 현지지도에 동행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문가들은 이미 2000년 이전 후계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하게 됐다. 이때부터 김정은은 이미 다른 간부들보다 김정일 가까이 서 있었고, 기록영화에서 보듯 현철해가 후계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 있기 전까지 남한 등 외부 세계에선 장남 김정남과 차남 김정철의 후계자설이 분분했지만 어린 김정은이 이미 낙점돼 있었던 것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한 가운데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그의 딸이 동행한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19일 전했다. 북한 공식 매체가 김정은의 딸 모습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흰색 외투를 입은 소녀가 군 간부들에게 손짓하며 지시하는 김정은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 등을 담았다. 2009년 결혼한 김정은·리설주는 2010년과 2013년, 2017년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의 키가 150㎝ 안팎으로 보이는 걸 감안하면 첫째 아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3년 북한을 방문한 미국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은 “딸 주애를 안았으며 리설주와도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한 바 있다. 로드먼이 안아 줬던 김주애가 이번에 동행한 아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쨌든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처음으로 자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 ‘김씨 세습왕조’의 후계 작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게 됐다.
  • [길섶에서] 낙엽이 쌓일 새/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낙엽이 쌓일 새/임창용 논설위원

    늦가을 낙엽이 쌓인 길 걷기를 좋아한다. 한 해를 정리하듯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산책하는 즐거움은 오래전부터 가을을 기다리는 주된 이유였다. 초록 일색의 나뭇잎들이 때깔 곱게 색색이 물든 모습이 천차만별 인생 말년을 보는 듯해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래선지 늦가을 아파트 단지나 도로변 낙엽을 말끔히 쓸어 낸 모습이 가끔 못마땅했다. 그런 이가 나뿐이 아니었는지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며칠 뜸을 들였다가 낙엽을 제거하기도 했다. 엊그제 때아닌 늦가을 폭우로 일부 지역에서 침수 피해가 났다. 한데 쌓인 낙엽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배수구를 꽉 막아 물이 빠지지 못한 것이다. 이상기후 때문에 갈수록 태풍이나 폭우가 잦아지고 강도가 세지고 있긴 하다. 그래도 이번처럼 늦가을에 폭우가 내려 수해가 나는 경우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젠 언제 폭우가 올지 모르니 지자체에선 낙엽이 쌓일 새도 없이 쓸어 낼 것이다. 이상기후가 늦가을 정취를 하나 빼앗아 가게 생겼다.
  • [서울광장] 긱워커, 노동시장의 그늘 안 되려면/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긱워커, 노동시장의 그늘 안 되려면/임창용 논설위원

    지인 중에 40대 번역가가 있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 다니다가 조직생활이 안 맞는다며 그만두고 5년째 번역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벌이가 충분치 않은 탓에 틈틈이 오토바이로 물건이나 음식을 배달해 생활비에 보탠다. 그는 “처음엔 어쩔 수 없이 배달에 나섰지만 이젠 원하는 만큼 일하고 쉴 수 있어 회사 다닐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지인처럼 직장에 매이지 않고 짧게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초단시간 임시노동자, 이른바 ‘긱워커’(gig worker)가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알바연대가 통계청 고용동향 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는 179만 6000명에 달했다. 10년 전인 2013년 9월(81만 2000명)보다 100만명 가까이 늘었다. 긱워커는 1920년대 초 미국의 재즈 공연장에서 연주자가 펑크를 낼 경우 관객 중에서 연주자를 섭외해 공연을 맡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이런 연주자를 ‘긱’(gig)이라고 불렀는데 이후 단기 계약 뮤지션을 뜻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됐다. 우리나라에서 시간제 노동은 대개 취업이 어려운 사람이 선택했다. 반면에 요즘 늘어나는 긱워커는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가 주력이고, 자발적인 선택도 적지 않다. 지난 6월 취업 포털 ‘사람인’이 성인남녀 2848명에게 긱워커로 일할 의향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58%가 ‘그렇다’고 답했을 정도다. 긱워커 급증은 MZ세대가 경직된 조직문화를 싫어하는 데다 디지털플랫폼산업 발달로 단기 일거리가 크게 늘어난 게 주원인이다. 배달·청소·돌봄 등 단순노동뿐만 아니라 번역이나 조사, 인테리어 등 전문 노동까지 노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구해 일한 사람’은 220만여명에 달했다. 긱워커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중개하는 플랫폼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업계에선 지난해 1조원에 육박했던 긱워커 플랫폼 중개시장 규모가 매년 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초단시간 노동자를 둘러싼 환경은 척박하다. 이들이 노동자로서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 보호 시스템은 철저히 정규직 중심으로 짜여 있다. 일정한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만큼의 노동을 제공해야 퇴직금과 각종 수당, 유급휴일, 연차휴가, 4대 보험 등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노동량이 많아도 이런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이런 점을 노려 사업주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이른바 ‘쪼개기 알바’를 쓰는 사례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난 수년간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편의점이나 주유소, 식당 등 단순 노동이 필요한 사업장에서 주 15시간 미만의 알바생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영업자로선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을 시킬 경우 최저 시급에 더해 별도로 줘야 하는 주휴수당을 아낄 수 있어서다. 최근 초단시간 근로자가 급증한 데는 사업주가 디지털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이들을 고용할 수 있었던 데 힘입은 바 크다. 긱워커는 단순한 노동현상을 넘어 우리 노동시장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과거엔 단시간 노동이 특수노동 형태였지만 이젠 통상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는 MZ세대뿐만 아니라 은퇴자들의 긱워커 대열 진입도 늘어날 것이다. 노후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떻게든 이들을 법적 보호망 안으로 진입시켜야 한다. 긱워커의 특성상 처한 환경이 천차만별이어서 정부도 쉽게 방안을 짜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하나씩 찾아내야 한다. 이를테면 긱워커가 여러 곳에서 일할 경우 일한 시간을 합쳐 사업주들이 주휴수당이나 보험료 등을 분담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렵다고 방치한다면 긱워커가 현대 노동시장을 드리우는 그늘이 될 게 뻔하다.
  • [길섶에서] 지적질 습관/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지적질 습관/임창용 논설위원

    친구와 얘기하다가 “웬 지적질?”이란 대꾸에 당황한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라고 말하자 그 친구가 받아친 것이다. 농담투의 대꾸였지만 아차 싶었다. 그저 ‘난 이렇게 생각해’라고 하면 될 걸 굳이 그 친구의 생각을 평가해 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대화하다 보면 나도 은근히 혼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의 기준이 너무 뚜렷해선지 거기서 벗어나는 의견에 대해 일일이 ‘지적’을 하는 상대가 그렇다. 어떤 의견을 말했을 때 좋다고 하면서도 꼭 뭔가를 보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은퇴 후엔 지적질을 하지 말자는 각오다. 얼마 전 지인에게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비판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 지적질 습관이 있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30년 기자 생활을 했으니 그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은퇴 후 지적질하는 ‘꼰대’를 누가 받아 줄까. 각오를 다시 한번 다져 본다.
  • [씨줄날줄] 文, 풍산개 반납/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文, 풍산개 반납/임창용 논설위원

    제3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9월 30일 청와대는 “18~20일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시 북측으로부터 풍산개 한 쌍을 선물받았다”고 밝혔다. 풍산개 선물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방북 첫날 평양 목란관에서 개최된 환영만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하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었다. 선물받은 풍산개는 수컷 ‘송강’과 암컷 ‘곰이’로 국민들에겐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자 합의 사항에 대한 남북 두 정상의 이행 의지로 여겨졌다. 그때만 해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1·2차 판문점 회담에 이어 평양에서 세 번째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평양공동선언’을 남기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민 열망을 한껏 고조시켰다. 선언문은 ‘전쟁 없는 한반도 시작’,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구축 노력’, ‘김정은 위원장의 가까운 시일내 서울 방문’ 등 6개 항을 담았다. 두 정상은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실질적 진전을 이뤄 나가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고 밝히면서 정상회담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김 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는 한반도 평화의 마스코트로 통했다. ‘곰이’가 낳은 새끼들은 평화의 염원을 담아 서해 북단 연평도 등에 분양됐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청와대를 떠나면서 ‘곰이’와 ‘송강’이, 이들이 낳은 새끼 ‘다운이’ 등 세 마리를 양산 사저로 데려가 키워 왔다. 문 전 대통령 측이 최근 곰이와 송강이를 나라에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국유재산인 개를 위탁관리해 온 상황에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재임 중 받은 선물은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돼 국가가 소유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월 250만원에 달하는 관리비 부담 문제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 측은 퇴임 직전 대통령기록관과 관리비 부담을 위한 협약서를 작성했는데, 새 정부 출범 후 행정안전부 등 정부 내 이견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관리비 250만원의 적정성 문제, 가족처럼 지낸 반려동물 반납의 몰인정성 등에 대한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버림받을 위기를 맞은 곰이와 송강이 신세가 벼랑 끝 남북 관계를 보여 주는 듯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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