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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PPY KOREA]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 꽃길

    [HAPPY KOREA]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 꽃길

    매년 3월이면 봄바람을 타고 온 노란빛 구름이 한 달 동안 머물렀다 떠나간다. 가을에는 탐스러운 붉은빛 열매가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곳,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 2·3리 ‘산수유 마을’이다. 아직 도회지의 때가 묻지 않은 듯 옛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할매·할배바위에 새끼줄로 엮은 고추와 숯이 그러했다. 산수유로 유명한 또 다른 지역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비하면 의성 산수유 마을에서는 가꿔지지 않은 야생의 멋마저 느껴졌다. 산수유 마을은 숲실마을(화전2리)과 전풍마을(화전3리) 둘로 나뉜다. ‘숲실’은 숲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라는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이다. 조선 임진왜란 때부터 마을에 다래와 머루 넝쿨이 어우러져 넓은 숲을 이뤄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전풍’은 마을에 중풍에 효과가 있는 산수유 나무가 많고 산 좋고 물이 좋아 끊임없이 풍년이 든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산수유 마을 입구로부터 10리(4㎞)가 넘는 산수유 길이 조성돼 있다. 봄철 산수유 꽃이 피면 마을은 노란 눈이 내린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산수유 나무는 무려 3만여 그루에 달했다. 그 나이도 짧게는 30년부터 길게는 300년이 넘는다고 했다. 산수유 나무가 화전리를 온통 뒤덮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의 가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전리 마을 주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시절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한약재로 쓰이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길러 내다팔기로 마음먹고 마을에 산수유 나무를 하나 둘 씩 심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염원이 현재 화전리를 전국 최고의 산수유 마을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산수유 열매는 가을인 8~10월에 붉게 익는다. 맛은 단맛, 떫은맛, 신맛이 동시에 난다. 열매에는 동맥경화 예방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인 리놀산과 체내의 불필요한 수분 배출을 촉진하는 사포닌 등이 다량 함유돼 있다. 산수유 열매는 보통 한약재료로 쓰인다. 몸의 장기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 내과질환에 좋으며, 원기 회복에 효능이 있다. 또한 눈을 밝게 하고, 특히 머리카락이 희어지지 않게 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무릎이 시큰거릴 때, 어지럽거나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식은땀이 날 때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산수유의 화려한 꽃망울로 매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산수유 마을이지만 지방도에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할 만큼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게다가 마을까지의 진입로가 꼬불꼬불해 관광객들이 쉽게 찾기 힘들며 주차여건도 좋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행정안전부와 의성군청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화전 2·3리에 걸친 산수유 마을에 넓은 주차공간과 부대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산수유 꽃길 20리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도 한창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산수유 꽃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탐방로가 올해 안으로 들어설 계획이다. 그 길이만도 약 20리(8㎞)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친환경적인 꽃길 조성을 위해 도로 포장은 하지 않으며, 농사철에는 경운기 통행도 겸하게 해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의 생업과도 연계된 꽃길로 탄생할 전망이다. 지난 3월 산수유 마을에서는 ‘노란 꿈망울 향연’이라는 이름으로 산수유 꽃 축제가 열렸다. 23일부터 4월10일까지 19일간 열린 행사 기간 동안 3만여명의 관광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축제기간에는 산수유 꽃길걷기 체험, 산수유 차·와인 시음, 산수유 찰떡 만들기, 알쏭달쏭 산수유 퀴즈 등 산수유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KBS 전국 노래자랑, 벨리댄스, 시화전, 시골장터 등의 다채로운 행사도 열렸다. 행사기간 동안 열린 토속음식장터에서는 산수유 국수, 산수유 동동주, 산수유 두부 등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김학수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계장은 “산수유 꽃길 20리 조성 사업으로 의성 산수유 마을이 환경 친화적인 휴양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의성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부산의 가을은 축제물결

    부산의 가을은 축제물결

    “축제가 있어 더욱 풍성한 가을!” 10월 한 달간 부산은 크고 작은 다양한 축제가 열려 온통 축제의 물결로 뒤덮인다. 서막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장식한다. 7일 중구 남포동 피프광장에서는 전야제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어 8일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 상영장에서 개막식을 열고 16일까지 9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이번 영화제에는 역대 최다인 70개국에서 355편의 영화가 초청돼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열려 영화팬들을 ‘영화의 바다’로 안내한다. 영화팬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선보인다. 9~11일에는 동래읍성 북문광장에서 조선시대 생활상과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의 전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동래읍성 역사축제’가, 동래구 온천장 일대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온천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2009 대한민국 온천축제’가 각각 열린다. 동래읍성 역사축제는 동래성 전투 장면 재현이 가장 큰 볼거리로 10~11일 이틀간 열린다. 이어 15일부터 18일까지 전국적으로 명물축제가 된 제18회 부산자갈치축제가 열린다. 이번에는 자갈치시장에서만 열리지 않고 용두산공원과 광복로, 피프광장 등지로 확대됐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였던 슬로건도 ‘오이소! 보이소! 노이소!’로 바꿨다. 관람객이 활어경매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수산물 깜짝 경매’와 손으로 활어 잡기, 장어 이어달리기, 외국인 요리솜씨 경연대회 등 30여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영화제 폐막 다음날인 17일에는 광안리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제5회 부산 불꽃축제가 열려 8만 5000여발의 불꽃과 레이저 조명이 밤하늘을 수놓게 된다. 이번 불꽃축제에서는 광안대교를 따라 무려 1㎞에 달하는 나이아가라 폭포 모양의 불꽃과 하늘을 나는 대형 불새 모양의 불꽃을 선보이는 등 장관을 연출한다. . 이 밖에 부산고등어축제(23~25일)와 낙동민속축제(24~25일), 달맞이언덕축제(31일~11월1일) 등이 예정돼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도시와 산] 군포 수리산

    [도시와 산] 군포 수리산

    경기 군포시 산본신도시를 누가 수리산 자락에 조성했을까. 매우 공평한 결정이라고 여길 만하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5곳 가운데 하나인 산본은 분당, 평촌 등 다른 신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떨어져 주민들의 실망감이 적지 않다. 대신 이곳 주민들은 울창한 숲과 신선한 공기를 뿜어주는 진산을 선물 받았다. 산본신도시를 병풍처럼 감싸 안고 안양과 안산에 걸쳐 있는 수리산은 3개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도심 속 ‘녹색섬’이다. 인근 도시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연평균 140만명이 찾는다. 관악산, 청계산과 더불어 한강 남쪽에서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수리산은 한남정맥의 한줄기로,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 듯한 산세를 지녔다. 사시사철 숲이 울창하고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무수한 굴곡을 이루면서 뻗어 있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산림욕장이 조성돼 있으며 약수터와 명상의 숲, 개나리 숲, 한마음 놀이터 등 다양한 휴식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수리산이란 이름은 우선 산본이나 군포시에서 보면 독수리를 닮아서 지어졌다고 한다. 1864년에 편찬된 대동지지를 보면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수암봉)이 있는데 독수리 취자를 일컬어 수리(修理)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신라 시대의 거찰인 수리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도 한다. ●연평균 140만명 찾는 수도권 남부 진산 수리산에는 군포시와 안양시가 선정한 아름다운 8경 가운데 4곳이 있을 정도로 두 지역주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최고봉인 태을봉(489m)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산신제가 행해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오고 있다. 태을봉을 중심으로 슬기봉(451.5m), 관모봉(426.2m), 수암봉(395m)이 연결돼 있다. 맑은 날 산 정상에 오르면 서해 인천 송도신도시와 수원시가지까지 볼 수 있다. 일출시 산 그림자가 태을(太乙) 형상을 연출해 군포의 제1경으로 꼽힌다. ‘태을’은 도교의 천제(天帝)를 지칭하지만 십간의 하나로 부귀의 근원으로 보기도 했다. 군포시의 제2경인 수리사는 수리산 거룡봉 해발 225m 지점인 속달동에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했으며 전성기에는 대웅전 외에도 36동의 건물과 12개의 부속암자가 있는 거찰이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전소됐다. 남아있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다. 군포시 속달동 ‘구렁터 당숲’은 음력 10월1일이면 이틀간 동제(洞祭)가 치러지는 전형적인 마을 숲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정래륜이 조성했으며 100~300년가량 된 고목들이 우거져 2003년 산림청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리산 안양 9동 ‘담배촌’에 조성된 최경환 성지(안양 제5경)는 2000년 순례지로 지정됐다. 최경환(1805~1839년)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1821~1861년)의 아버지로 담배촌에 정착해 천주 신앙을 전파하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했다. 전국 각지에서 연간 3만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찾는다. 병목안 석탑(안양 제7경)은 병목처럼 마을 초입이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병목안 삼거리 부근 채석장 자리에 대규모 절개지 사면을 이용해 길이 65m, 넓이 95m의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폭포가 만들어졌다. 수리산은 편리한 교통망 때문에 군포·안양·안산뿐 아니라 인근 수원·과천·의왕 등 수도권 주민들로부터 각광 받고 있다. 전철 산본역, 수리산역, 대야미역, 안양역, 금정역, 명학역 등에서 내려 도보로 20여분 정도면 등산로에 닿는다. 3개 시에 걸쳐 있는 만큼 코스도 다양하다. ▲안양소방서~충혼탑~팔각정~능선삼거리~관모봉~태을봉~슬기봉~용진사~한양8단지 ▲안양 병목안삼거리~능선삼거리~관모동~태을봉 ▲성결대정류장~상록수약수~관모봉~태을봉 ▲안산 수암파출소~수암봉약수~수암봉~335봉~창박골재~병목안삼거리 등으로 크게 나뉜다. 코스별로 1시간30분에서 2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전철 산본·금정역에서 걸어서 20분 수원 세류초등학교 32회 산악회장 이필현(49·회사원)씨는 “산악회원들과 수리산을 자주 찾는데, 늘어선 봉우리들의 자태가 빼어나고 곳곳에 바위길을 가진 능선이 변화 있게 이어져 도심에 있는 산 가운데 몇 안 되는 명산으로 손색이 없다. ”고 소개했다. 특히 울창한 수림으로 조망이 좋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의 산세가 험하지 않아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나 여성들에게 큰 부담이 없다. 산행 초입부터 송림이 울창해 상쾌한 느낌을 준다. 자외선 노출이 우려돼 야외활동을 꺼리는 여성들에게 수리산은 건강도 챙기고 취미생활도 살려주는 건강코스이다. 얼마전 수리산을 처음 다녀온 주부 최경민(48·수원시 영통동)씨는 “모처럼의 산행이어서 힘들지 않을까 겁부터 났으나 관모봉까지 30여분간을 빼곤 별 어려움 없이 산을 탈 수 있었다.”며 “명상의 숲 등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아 여성들에겐 안성맞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수리산 셀프카메라 군포 수리산이 지난 7월16일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1971년 지정된 경기 성남시 남한산성 일대, 2005년 가평군 연인산 일대에 이어 3번째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리산 면적 6.97㎢ 가운데 군포시가 4.3㎢(속달동)로 가장 넓고 안양시 안양동 관내 2.55㎢,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관내 0.12㎢ 등이다. 수리산은 전체 면적 가운데 75%가 도유지, 4%가 국유지, 16%가 사유지로 이뤄져 있다. 경기도는 2006년 10월부터 제3도립공원 대상지를 물색했다. 공모를 통해 신청된 도내 각 지역의 산을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여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수리산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소요산, 청계산, 명성산, 철마산 등 쟁쟁한 경쟁지를 물리친 것은 수리산이 도심에서 접근성이 좋고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립공원으로 만들자는 지역 주민들의 열기도 한몫했다. 수리산은 자연 생태계 측면에서도 한국 특산종인 변산바람꽃, 맹꽁이, 왕은점표범나비, 고려집게벌레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다. 박쥐능선(태을봉~슬기봉)과 수리사, 속달동 바람고개 주변은 자연 경관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도는 이달부터 도립공원 조성을 위한 설계에 들어간 뒤 내년 상반기부터 2011년 말까지 116억원을 들여 이곳에 주차장과 화장실, 방문자 센터, 등산로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노재영 군포시장은“수리산은 수도권 남부주민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도심 녹색공간”이라며 “도비를 지원받아 ‘자연을 지키며 숲을 배우는 공원’이라는 컨셉트에 맞는 도립공원으로 꾸며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기고] 파발제를 다시 생각한다/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기고] 파발제를 다시 생각한다/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공자는 ‘미래를 알려거든 지나간 일을 먼저 살펴보라.’고 했다. 역사란 기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미래와 더불어 이 순간에도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다. 과거는 오늘의 현실이며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올해 은평구는 1979년 10월1일 서대문구에서 분구되어 독립청사를 꾸린 지 30돌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6일부터 11일까지 47만 구민과 함께 미래 비전의 전략을 다지는 ‘은평파발축제’를 연다. 경제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어 은평구 전 상가가 참여하는 ‘은평 셀(SELL) 행사’를 비롯한 파발제, 노래자랑, 옛 사진전, 타임캡슐 묻기, 마을축제 등을 준비하여 구민이 다같이 참여하고 즐기도록 했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은 IT강국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IT강국으로 떠오른 주요인이 초고속 인터넷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정보전달 시스템이 인터넷이라면 조선시대는 파발(擺撥)이었다. 즉 파발은 조선시대의 인터넷이었다. 과거 파발은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이 끼는 등 일기가 나쁠 경우 봉수만으로는 상황전달이 어려워 이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파발은 임진왜란 발발 후인 1597년 한준겸의 건의로 제도화되었으며 서발·북발·남발의 3대로가 근간을 이루었다. 또 파발은 연락수단에 따라 기발(騎撥)과 보발(步撥)로 나누었는데, 기발은 말로 달리는 것으로 25리마다 역(驛)을 두고 보발은 사람이 달려가서 연락문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30리마다 참(站)을 두었다. 서발 길목에 해당하는 은평지역에도 역참이 한 곳 있었는데 그 역참이 현재의 구파발이다. 구파발은 한성에서 의주를 잇는 길의 한 참 거리인데, 한 참은 대략 25리 정도다. 우리가 흔히 상당한 시간 경과를 두고 ‘한참 지났다.’고 하는데 이 ‘한참’이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다. 조금 더 부연하면 고대 로마에서도 조선의 역참제도와 같이 일정한 거리마다 말을 갈아타는 시설이 있었는데 이를 라틴어로 스타티오네스(영어로는 station·스테이션)라 했으며 60㎞ 구간의 스타티오네스에는 숙박시설을 추가 설치했는데 이를 만시오네스(영어로는 mansion·맨션)라 불렀다 한다. 오늘날 서발 역참지역인 구파발에 지하철 구파발역, 그 주변 일대에는 은평뉴타운의 맨션지구가 들어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과 참, 그러니까 앞서 말한 스테이션과 맨션의 부활이 바로 구파발역과 은평뉴타운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거울이 아니겠는가. 파발제도는 봉수제도와 함께 조선시대 군사 통신체제의 골격을 이루었으나 한말 전화전신의 발달로 쇠퇴기를 맞아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았다. 옛 파발역참지역도 상전벽해를 거듭하면서 ‘구파발’이란 지명이 상징성을 가진 것 말고 당시를 회고할 물리적 시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은평구는 과거를 재현하고 미래의 통일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구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파발이’를 선정한 것은 물론 1996년부터 해마다 ‘통일로 파발제’를 10월1일 구민의 날 전후에 개최하고 있다. 은평구 개청3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도 조선의 통신망을 재현하는 파발제를 7일 구파발인공폭포를 기점으로 시작한다. 이날은 구민과 국내외 자매도시의 축하사절단이 함께 모여 파발재현 퍼레이드를 지켜보면서 은평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고 미래를 염원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메신저 파발이가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은평’을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 최홍만, 日 호위무사 논란 영화 韓개봉 확정

    최홍만, 日 호위무사 논란 영화 韓개봉 확정

    격투기 선수 최홍만이 일본인 무사 역을 맡아 논란을 일으켰던 일본 영화 ‘고에몬’이 10월 중 한국에서 개봉된다. 최홍만은 ‘고에몬’에서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호위무사 역을 맡아 많은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았던 바 있다. 당시 영화 속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악역으로 그려지고 단순히 일본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으로 논란은 일단락 됐다. 하지만 ‘고에몬’이 국내에서 개봉된다면 이 같은 논란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일본의 역사적 인물인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시 히데요시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영화 ‘고에몬’은 에구치 요스케, 히료스에 료코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사진 = 영화 ‘고에몬’ 일본 공식홈페이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도시와 산]부산 황령산

    [도시와 산]부산 황령산

    “옛 아낙네들은 황령산에 올라와 친정 있는 쪽을 보며 그리움을 달랬지. 그래서 반보기산이라고도 불렸지.” 부산 북쪽에 금정산이 있다면 남쪽에는 황령산이 있다. 해발 427m로 그리 높지 않다. 산꾼들은 “이게 무슨 산이냐.”고 힐난하겠지만 정상에 올라 탁 트인 동해와 동서남북으로 한눈에 펼쳐지는 부산시의 전경을 보노라면 왜 사람들이 황령산에 매료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바다가 가까워 실제로는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봉수대가 설치돼 이곳이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봉화를 올려 왜적의 침략을 서울 조정에 알렸다. 빠르면 12시간가량 걸렸다고 한다. 또 시집간 아낙네들이 산에 올라와 저너머 친정집 동네를 보며 소맷귀를 적시며 그리움을 달랜 곳이기도 하다. 금정산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꼽히는 황령산은 도심에서 가까운 데다 빼어난 경치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도심 속의 산답게 정상까지 도로와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어 365일 찾는 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산 중턱에는 청소년야영장과 체육시설 등이 있어 시민휴식공간으로 톡톡히 한몫 하고 있다. 산 정상에서 보는, 해운대와 광안리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의 야경은 한폭의 그림처럼 길손의 가슴에 다가온다. 우리나라 야경 가운데 최고로 꼽힐 정도다. ●황령산의 ‘황’은 荒일까 黃일까 황령산은 부산 남·수영·연제·부산진구 등 4개 구에 걸쳐 있다. 동편은 남구에, 서편은 부산진구에 접하고 있으며 남구가 가장 많은 지역을 차지한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돼 있고 북동쪽으로 황령산의 가장 큰 봉우리인 금련산과 연결돼 있다. 산의 암석은 남미대륙 안데스산맥의 화산에서 많이 발견되는 안산암으로 이뤄져 있다. 황령산이란 이름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황령산을 누를 ‘황(黃)’자를 써서 황령산(黃領山)으로 표기해 놓고 있다, 그러나 동래부읍지(1832년)에는 현재처럼 거칠 ‘황(荒)’으로 기록해 놨다. 황령산은 동래가 신라에 정복되기 전 동래지역에 있었던 부족국가인 거칠산국(居漆山國)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거칠산국에 있는 산으로 ‘기츨뫼’라 했던 게 한자화하면서 거칠 황(荒) 고개 령(嶺)의 황령산이 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거칠고 보잘 것 없는 산이라는 뜻으로 ‘황강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상호 황령산 늘샘 쉼터 회장은 “황령산 한자명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현재는 거칠 황자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아마 거칠산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령산의 또 다른 이름인 ‘반보기산’에는 시집간 여인네들의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옛날 아낙네들은 출가외인이라 시집을 가면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당시 남구 대연동 사람들은 인근의 용호동이나 기장 사람들과 주로 혼인을 했는데, 친정에 가지 못하는 그리움을 황령산에 올라 멀리 친정 쪽을 바라보며 달랬다고 한다. 가끔 친정식구들과 중간지점인 황령산에서 만나 반나절 정도 정을 나누다가 아쉬움을 안고 헤어졌는데 그런 연유로 반보기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일제 강점기 때에 이곳에는 탄광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수영구 광안4동 옛 공무원교육원 자리에 있던 광산이 규모가 가장 컸는데 구리와 금을 캤다. ●사통팔달 등산로 황령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다. 남구 쪽에서는 대연동 경성대를 들머리로 해서 오르는 임도 코스가 있다. 비교적 코스가 단조롭지만 안전한 데다 길이 넓고 부드러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 산행시간은 2시간30분쯤 걸린다. 경성대 인문관에 닿기 전 언덕길 왼쪽 산자락으로 따라 난 길을 타고 쭉 올라가면 된다. 황령산 정상으로 오르는 넓고 편한 길은 몇 개가 더 있다. 문현동 현대2차아파트를 들머리로 오르는 임도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산길은 남구와 부산진구를 가르는 구 경계선인 돌산고개에서 남구방향으로 20m쯤 내려오면 왼쪽으로 만난다.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는 지정광고대 옆(산쪽) 시멘트 길이 초입이다. 산행 초입에서 바람재까지 넉넉잡아 20분이면 충분하다. 부산시는 지난해 10월 ‘황령산 봉수대 전망시설 및 주변정비사업’을 벌여 산 정상에 6604㎡ 규모의 공원을 꾸며 누구나 황령산 정상에 올라 편안하고 안전하게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부산서 가장 오래된 봉수대 정상 안 가보면 정말 후회합니데이! 부산 황령산 봉수대는 임진왜란 때 불을 피워 전쟁을 알린 중요한 사적지로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와 함께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봉수대 중 하나이다. 경상도 지리지에 따르면 조선시대인 1425년(세종 7년)에 황령산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됐다. 조선시대 동래부에서 관리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황령산 봉수대에서 봉수가 올라 북으로 이어졌다. 황령산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면 부산의 앞바다가 확 트여 보이고 내륙지역을 바라보는 시계도 넓어 적의 침입을 쉽게 확인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이 봉수대는 동쪽으로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 서쪽으로는 구봉 봉수대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범어사·계명산 봉수대 등과 연결돼 있다. 부산지역 봉수망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봉수대에는 5개의 봉화구가 있으며 1898년에 기능을 상실했다가 1976년 복원됐다. 이후 1992년과 1995년, 1996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보수 작업이 이뤄졌다. 봉수대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통신시설로 약 30리마다 산꼭대기에 봉화대를 두고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렸다. 평시에는 한 번, 적이 나타나면 두 번, 적이 접근하면 세 번, 적과 싸우면 네 번을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서울 목멱산(현재 남산)의 경(京)봉수대까지 연결됐다고 한다. 해마다 산신제와 함께 봉화 재현 행사가 열린다. 각 봉수대에는 도별장 1명을 두고 이 밑으로 별장 10명, 감고(監考) 1명, 봉군(烽軍) 100명씩 배치했다. 김무조 부산시문화재위원은 “봉수대는 조선시대 군사적 목적의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으며 황령산 봉수대는 부산에서는 가장 오래된 봉수대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부산의 남쪽을 대표하는 황령산의 정상은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기자기해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부산시는 정상 전망대에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목재 데크를 만들었다. 부산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불암공원서 김시습·천상병 만난다

    매월당 김시습, 천재 시인 천상병, 가수 황금심·고복수 등 서울 노원구를 대표하는 역사의 인물들이 조형물로 부활한다. 노원구는 역사적 전통을 되살리고 청소년들의 역사 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원과 연고가 있는 ‘역사의 인물 10인’을 선정,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당현천 불암공원 일대에 조형물을 건립키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총 4억 20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조형물은 다음달 당현천 통수식에 맞춰 제막식과 함께 일반에 공개된다. 구는 역사의 인물 10인에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한 생육신으로 수락산 중턱 수락정사에 은거했던 김시습, 훈민정음 창제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비석으로 일컬어지는 하계동 소재 ‘이윤탁 한글영비’를 만든 이문건 등을 선정했다. 또 월계동 이명 신도비의 주인공이며 청백리였던 이명, 임진왜란 때 노원평 전투를 승리로 이끈 양주목사 고언백, 병자호란 당시 자결로서 충절을 드높인 이상길, 조선후기 개혁가로 수락산 중턱에 묘가 있는 서계 박세당, 일제시대 사재를 털어 교육 사업을 한 상계동 우우당의 주인 이병직, 고종의 동서이며 항일 의병대장으로 활약한 유세열 등도 포함됐다. 이 밖에도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한 가수 황금심과 고복수, 천재 시인이자 기인이었던 천상병 등 문화계 인사도 노원을 대표하는 역사의 인물로 꼽혔다. 이노근 구청장은 “조형물은 단순한 동상이 아닌 환조나 부조 형식이며, 사료를 통해 개별 인물의 성향을 이미지화하고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묘사할 것”이라며 “구민들에겐 역사 교육과 문화 쉼터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허균·이수광 등 조선지식인 어떤 책들을 즐겨 읽었을까

    허균·이수광 등 조선지식인 어떤 책들을 즐겨 읽었을까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569~1618년)은 손꼽히는 조선의 책벌레였다. 책 수집벽이 유별나 상당량의 장서를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역모죄에 연루돼 집안이 풍비박산나면서 방대한 장서들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실마리는 유재 이현석(1647~1703년)이 쓴 ‘수성장기’에서 풀린다. 지봉 이수광의 증손자로 형조판서까지 지낸 이현석은 문과에 급제하기 전 ‘수성장’이라 불리던 이수광의 수원 옛 집에서 독서에 몰두했고, 그 기록을 ‘수성장기’에 남겼다. 책에는 수성장 인근에 있던 허균의 외손 이필진의 집에서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를 비롯해 허균의 장서들을 접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수광과 허균은 동서 관계로 책을 매개로 한 교유 관계가 있었는데 이들의 후손 또한 장서를 통해 인연이 닿은 것이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푸르메)의 저자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책의 유통과 전승 과정을 살펴보면 자연히 사유의 형성과 새로운 생각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조선 지식인들이 어떤 책을 즐겨 읽었고, 그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태어나고 유통됐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단순히 책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저자는 총 5부로 나눠 27권의 책을 소개한다. 책의 탄생과 전승 과정, 현재 전하는 판본의 종류, 중국에서 편찬된 책이 조선에 유입된 시기와 경로, 조선내에서의 전승 과정 그리고 조선 지식인들에게 끼친 영향 등을 풀어낸다. 일 테면 구우의 ‘전등신화’는 연산군이 중국에 가는 사신에게 사오도록 명령할 만큼 재밌는 소설책이지만 임진왜란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20세기 들어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조선 서당의 교과서격인 ‘천자문’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학동들의 한문 공부 첫 단계인 ‘천자문’은 웬만한 공부로는 해독하기 어려운 만만치 않은 책이다. 다산 정약용도 자신의 ‘천자평’이라는 글에서 ‘천자문’이 초학 교재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을 정도다. 반면 조선 말기 서당에서 사용한 ‘계몽편언해’는 어려운 한자가 별로 없어 널리 읽혔다. 이 밖에 방대한 양과 오랜 편찬 과정에도 불구하고 100년을 못 넘겨 대부분이 소실된 ‘사고전서’, 권력자들이 반역의 책으로 낙인 찍었던 ‘정감록’ 등의 책 이야기는 사람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책 또한 그 나름의 운명을 타고 났음을 엿보게 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시전 행랑/노주석 논설위원

    종로 일대에 시전행랑(市廛行廊)을 조성하는 공사가 대략 마무리된 것은 조선 태종 14년인 1414년이었다. 태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호조가 아뢰었다. 철거해야 할 기와집은 1칸에 저화(楮貨·당시 지폐) 20장, 초가집은 1칸에 10장을 주어야 합니다. 총 보상비는 저화 1만 3600장이 소요됩니다.” 종로 일대에 자리잡고 있던 민가 1486채와 기와집 126채를 헐고 1360칸의 행랑을 새로 짓는 대대적 도심재개발공사의 보상비 내역을 왕에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시전은 조선시대의 관영시장이고 행랑은 상점이다. 나라에서 쓰이는 주요 물품을 조달하던 시장의 가게이다. 종묘에서 흥인지문까지, 종로에서 숭례문까지 두 갈래로 이어 지었다. 갈수록 사전(私廛)이 늘어나면서 난전(廛)화하자 금난전권(禁廛權) 같은 독점적 특권을 주는 육의전(六矣廛)이 중심이었다. 행랑 뒤편에는 말을 피하는 길 즉 ‘피맛길’이라는 골목을 만들었다. 장 보러온 백성이 고관대작이나 양반들과 마주치는 불편함을 없애준 고도의 행정서비스였다. 시전행랑의 유구(遺構), 즉 토목 구조와 건축 양식의 자취가 살아 남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2003년 12월 청진동 피맛골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던 도심재개발 현장을 살펴보던 문화재전문가 황평우씨가 공사장에서 오래된 건물의 기초석을 발견, 문화재청에 신고한 것이 발굴과 보존의 시작이었다. 기록에만 남아 있던 시전행랑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발굴된 시전행랑의 유구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어제 공개됐다. 이전·복원된 유구는 시전행랑이 ‘방-마루-방-창고’의 구조이며, 40평 크기로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조선 600년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기록의 나라’ 조선의 섬세한 기록문화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고고학적 흔적이다. 조선 건국 초부터 현재까지 켜켜이 쌓여 있는 6개의 문화층이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임진왜란 시기인 제5문화층에는 30㎝짜리 불에 탄 층이 선연하다. 당시 종로 일대가 화재로 말미암아 완전히 소실됐음을 보여준다. 시전행랑은 조선의 부활이자 재발견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20일 日 후쿠오카서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17세기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 간 문화교류의 첨병 역할을 했던 조선통신사 행렬이 245년 만에 일본 후쿠오카에서 재현된다.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는 ‘후쿠오카 아시안먼스 2009’ 행사 기간인 오는 20일 조선통신사 일행이 후쿠오카 하카타항에서 일본 측 환영단과 함께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를 한다고 14일 밝혔다. 또 이날 ‘부산-후쿠오카 우정의 해’ 기념식도 열려 허남식 부산시장과 요시다 히로시 후쿠오카 시장이 한·일 간 우호와 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친서를 교환한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에 467명 규모로 처음 일본에 파견되고 1811년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파견됐으나 최종 목적지인 도쿄까지 가려고 후쿠오카를 거쳐 간 것은 245년 전인 1764년이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도쿄와 쓰시마와 오사카, 우시도마, 오우미하치만, 시모노세키 등 일본 각지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됐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통영, 이순신 장군 발자취 책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3도 수군 통제영이 있었던 경남 통영시가 이순신 장군과 관련 있는 시의 역사자료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펴냈다.통영시는 8일 7000만원의 예산으로 ‘통영 그리고 이순신의 발자취’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고 밝혔다.모두 416쪽으로 된 이 책은 통영 역사와 문화 가운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관련이 있는 내용을 수집·정리해 실었다. 경남대 인문학부의 이지우·김봉렬·김정대 교수와 송성안 마산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송수환 울산대 인문학부 강사 등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박형균 통영 충렬사 이사장과 김일룡 통영시 향토역사관장이 감수했다.‘통영의 어제와 오늘’, ‘통제영과 이순신’, ‘한산대첩과 이순신’, ‘통제영의 문화유적과 이순신’, ‘통제영의 12공방’, ‘통영지방의 설화’, ‘통영지역 행정구역명 변천사’ 등으로 나누어 엮었다. 통영시는 우선 3000권을 발간해 통영시내 읍·면·동, 통영시내 초·중·고, 전국 대학교 등에 배포한다. 통영시를 방문하는 인사들에게도 나눠 줄 계획이다.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명량대첩은 민초들의 승리였죠”

    “명량대첩은 민초들의 승리였죠”

    소설 ‘칼의 노래’ 저자 김훈(60)씨가 1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지인 전남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 울돌목에서 명량대첩 역사교실을 열고 충무공과 민초들의 구국혼을 알렸다. 행사에서 지역 청소년과 주민 등 78명으로 구성된 홍보단 발대식과 전라우수영 수문장 입성식도 진행됐다. 행사는 해남과 진도지역 주민이 먼저 알고, 이를 알려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주민들이 먼저 명량대첩 의미 알아야 김씨는 현장답사에서 “명량대첩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7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조선의 역사적 승리였다.”며 “충무공의 23전 23승 가운데 22승이 조선 수군의 승리였다면 명량대첩은 충무공과 해남·진도 지역주민의 연합으로 이뤄진 민초들의 승리였다.”고 의미를 뒀다. 그는 “명량대첩 축제(10월8~11일)는 축제로 끝날 게 아니고 지역발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당시 해전이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것처럼 ‘수세에서 공세로, 약자에서 강자로’ 전환된 것처럼 지역주민들도 자긍심을 갖고 자신의 운명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도가 개최하는 명량대첩축제의 고문인 김씨는 “당시 명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의 판옥선이 12척이었는지 아니면 13척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며 “기존 12척에 대장선 1척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고 전했다. 전남도는 13척 판옥선과 왜선 133척의 대결에서 조선수군이 승리한 점을 강조해 ‘13’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고 명량대첩축제 홍보단 이름도 ‘승리 13 홍보단’으로 지었다. 홍보단은 해남과 진도군 어린이 13명씩 26명으로 꿈나무 홍보단, 중·고생 26명으로 틴틴놀이홍보단, 두 지역 주부 26명으로 파워레이디홍보단 등 모두 78명으로 구성됐다. ●7년전쟁 종지부 찍은 역사적 사건 명량대첩은 1597년 9월16일 울돌목에서 충무공이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의 정신으로 무장, 판옥선 13척으로 왜선 133척 가운데 31척을 수장시켜 7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를 마련한 해전이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생각나눔 NEWS] 서울시 역점사업마다 명칭 공모 득실은… 홍보 효과 vs 검증 부실

    [생각나눔 NEWS] 서울시 역점사업마다 명칭 공모 득실은… 홍보 효과 vs 검증 부실

    서울시의 역점사업 명칭 공모가 늘면서 미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인터넷 세대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널리 구하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유사 명칭을 선정하거나 괜한 오해를 부르는 일도 생겼다. 공무원들이 새 사업을 추진할 때 외부기관에 연구용역부터 맡기듯, 사업 시행전 공모부터 진행하는 관행이 폐단을 낳고 있는 것이다. ●오세훈시장 재임 후 2배로 늘어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현 오세훈 시장 재임 후 진행된 명칭 공모는 이명박 전 시장 때보다 2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시장이 2002년부터 4년 재임기간에 공모한 명칭은 노들섬의 ‘한강예술섬’, 시청 앞의 ‘서울광장’, 수돗물 ‘아리수’ 등 총 18개다. 1년에 4.5개 꼴이다. 이에 비해 오 시장은 3년 동안 세운상가의 ‘세운 초록띠 공원’, 반포대교의 ‘무지개 분수’, 여성이 행복한 도시인 ‘여행 프로젝트’ 등 21개로 연평균 7개꼴이다. 사업명칭 공모가 늘어난 이유는 우선 ‘홍보 효과’ 때문. 시민을 상대로 한 공모 자체가 곧 그 사업을 알리는 홍보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시민이 직접 명칭을 짓는 ‘브랜드 네이밍’ 마케팅 기법이 사용되면 홍보 효과가 더 커지기 때문에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공모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아이디어 확보 차원의 효과도 있다. 각계각층의 신선한 의견을 검토하면서 이에 착안해 구상을 얻기도 한다. 2007년에 선정된 ‘여행(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는 ‘여성이 살기좋은~’ ‘여성이 즐거운~’ ‘여성이 편안한~’ 등 다른 공모작을 참고한 결과다. 또 공모가 절차와 과정에서 공정성을 띠는 장점도 있다. ●신중하지 못한 브랜드가 문제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 5월 마곡 도시개발사업의 브랜드를 공모한 결과에서는 당선작이 기존 사업명과 유사해 명칭 사용이 보류되는 해프닝도 생겼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마곡 R&D 파크’는 기존의 마곡 연구개발(R&D) 단지인 ‘M.R.C(마곡 R&D 시티)’와 흡사하고 뚜렷한 특징이 없어 폐기될 운명에 놓였다. 결국 서울시는 당선작을 대신할 새 이름을 ‘브랜드네이밍’ 업체에 주문했다.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12·23 분수’도 인터넷에서 느닷없는 역사논쟁을 불렀다. 이순신 동상 앞 분수의 이름에서 ‘12’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판옥선 12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침시켰다는 의미이고, ‘23’은 임진왜란 7년 전쟁에서 23전23승을 거둔 전적을 뜻한다. 그러나 충남 아산 현충사 관계자는 “원균이 경남 거제의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에 대패한 뒤 이순신 장군이 수습한 것은 12척이 맞지만, 나중에 녹도만호 송여종이 1척을 더 끌고와 결국 명량대첩에서는 13척으로 싸웠다.”고 설명했다. 12월23일이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누리꾼들은 “이순신 장군이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분수를 지키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비꼬았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10) 관광특구 이태원

    [테마 스토리 서울] (10) 관광특구 이태원

    서울 최초의 국제적 관광특구이자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찾고 싶어하는 곳. 행인의 70%가 외국인인 데다 한국인이 들어갈 수 없는 외국인 전용 바도 30여곳이나 되는 곳. 우리가 되레 이방인이 되는 이태원(梨泰院)은 슬프고도 다양한 역사를 지녔다. 이태원은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외국군의 주둔지 역할을 했다. 한양의 중심인 사대문 밖에 위치하고 있어 외국 군대가 조선의 왕과 종묘사직을 압박하는데 좋은 ‘길목’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임오군란때 청나라 부대 주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하며 한양 전역에 대한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았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귀화한 왜인들과 조선인 부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자 ‘태(배)가 다른 곳’이라는 이름의 ‘異胎院’으로 부르기도 했다. 1882년 조선의 구식 군대가 처우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킨 임오군란 때도 이를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부대가 주둔한 곳이 바로 여기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의 식민 지배를 시작하자 이곳에 일본군 조선사령부를 세웠고, 1945년 해방 후에는 미8군이 사령부를 설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미군 주둔지라는 배경 덕분에 오히려 반세기 넘게 우리에게 문화적 개방성을 불어 넣어 준 ‘개항지’ 역할을 해 왔다. 6·25전쟁 직후부터 2000여개가 넘는 외국인 관련 시설이 자리잡으면서 외국인에게 서울에 오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명소로 자리잡았다. 조용필, 신중현 등 한국 대중가요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이들 대부분이 이곳의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일한 덕분에 서양의 대중음악을 접목시킨 독창적 음악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 특유의 배타적 정서 속에서도 국내 유일의 이슬람 사원이 이곳에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곳만의 독특한 개방성을 잘 말해 준다. 지금 이태원은 반포 서래마을, 동부이촌동 등과 함께 ‘서울 속 외국인 거리’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연간 170만명의 외국인이 찾는 한국의 대표 관광코스이자, 최근에는 내국인들도 즐겨 찾는 맛집거리로 재탄생하고 있다. ●500여곳 맛집거리 성업 특히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각국 레스토랑의 경연장’으로도 불리는 해밀턴호텔 뒷골목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500여개로 추정되는 이런 맛집들은 육군 중앙경리단 골목과 해방촌 쪽으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100여개의 고가구 판매점이 즐비한 이태원 가구거리도 유럽식 가구를 사려는 이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가을마다 ‘지구촌축제’가 열리는 등 이태원은 서울 속 ‘코스모폴리탄’ 문화지대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조선의 해군본부 충청수영성 사적 지정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조선시대 충청지역 해안의 해군본부로 사용됐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931번지 일대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을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24일 밝혔다. 문화재구역 면적은 46필지 1만 378㎡이고, 외곽 보호구역은 271필지 11만 4948㎡이다.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됐다가 고종 33년(1896) 기능을 정지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충청수영과 예하의 군대에 배속된 병력 규모는 군선(軍船)이 142척에 수군(水軍)은 총 8414명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에는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아 작전을 수행하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1일 일본군에 패해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한 일도 있다.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바닷속 ‘거북선’ 찾읍시다”

    인터넷 누리꾼들이 포털 사이트에서 거북선 찾기 국민성금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23일 경남도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토론방인 아고라 모금청원 코너에서 최근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거북선을 깨웁시다!’라는 제안이 올라오면서 모금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모금은 지난 18일 시작돼 다음달 6일까지 다음의 ‘희망모금’ 사이트에서 계속되며 목표액은 1000만원이다. 성금은 ‘21세기 이순신연구회’에 전달돼 오는 11월까지 이어질 ‘거북선을 찾아라’ 2단계 사업 자금으로 사용된다. 이에 따라 경남도는 도교육청과 관계 기관·단체, 언론사 등을 통해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하고 있다. 경남도는 지난 6월부터 본격적으로 거북선 탐사를 시작해 임진왜란 당시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10여점의 깨진 밥그릇 등 모두 60여점의 유물을 인양했다. 그러나 거북선이나 다른 군선의 잔해는 아직 찾지 못했다. 경남도는 이번 탐사를 계기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 STX팬오션, 동부화재 등 민간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국내 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한 이후에는 곳곳에서 참여의사를 타진해 오고 있다고 한다. 경남도는 거북선 탐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거제 칠천도 일원에 전망대 3곳을 설치하는 등 거북선 침몰지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책꽂이]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홍경모 지음, 이종묵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18세기 이후 문인들은 귀거래사를 부르는 대신, 도성 가까이 전원주택을 짓고 꾸미며 그 안에서 한가로운 삶을 꿈꿨다. 사의당지는 홍경모(1774~1851)가 6대를 이어 살아온 자신의 집 사의당에 대한 종합보고서. 19세기 이름난 집의 보편성이 제시된다. 1만 4000원. ●저주받은 아이들(장 폴 피카페르·루트비히 노르츠 지음, 강주헌·배영란 옮김, 중앙북스 펴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 여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20만명의 아이들은 모멸과 멸시어린 취급을 받으며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삶을 살았다. 금기로 여겨졌던 역사의 한편이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밝혀진다. 2만원. ●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논쟁(알렉스 캘리니코스·마이클 앨버트 지음, 이수현 옮김, 책갈피 펴냄) 반자본주의 운동의 비전과 전략에 대해 주고받은 인터넷 논쟁을 책으로 펴냈다. 이 밖에 ‘좌파의 재구성과 변혁 전략’, ‘한국 NGO의 사상과 실천’, ‘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 등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를 논하는 시리즈가 한꺼번에 나왔다. 5000~9000원. ●어느 언론인의 고백(톰 플레이트 지음, 김혜영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흔히 언론을 ‘갑’이라고 하지만, 주요 취재원에게 마이너 매체의 기자는 ‘을’이다. 위싱턴포스트 인턴 기자로 언론계에 뛰어든 저자가 ‘뉴욕’ ‘타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의 논설위원과 편집장을 거치는 동안 유명인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기울인 약 30년간의 설움과 영광을 털어놓았다. 2만원. ●조일전쟁(백지원 지음, 진명출판사 펴냄) 우리 역사 진실 추적 시리즈 2탄으로 저자는 임진왜란이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이자 동아시아의 전쟁이라며 왜란으로 축소하는 것을 반박한다. 이순신 신화 등 전쟁의 모든 정황에 대해 재분석했다. 1만 3900원. ●지구촌의 마지노선 2015(최영경· 전운성 공저, 강원대 출판부 펴냄) 날로 증가하는 인구, 고갈되는 자원,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과 고산지대의 물부족 사태, 그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저하와 개도국의 기아상황에 대해 서술하고 2015년까지 지구의 복원력을 회복하자는 미래서. 2만원.
  • 전투땐 콩가루 주먹밥… 승전뒤엔 쇠고기 꼬치

    전투땐 콩가루 주먹밥… 승전뒤엔 쇠고기 꼬치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즐겨 먹었던 음식들이 400여년 만에 재현돼 일반인에게 선보인다. 경남도는 한산대첩 417돌을 기념해 열리는 제48회 통영 한산대첩축제 기간인 13일 낮 12시 통제영에서 충무공과 조선 수군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 77종을 차린 ‘이순신 장군 밥상’을 공개한다. ●고추 전혀 쓰지 않고 수산물 위주로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이 용역을 맡아 6개월동안 난중일기와 징비록, 덕수 이씨 종가댁 음식, 임진왜란 이전 옛 조리문헌 등의 자료를 기초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든 것들이다. 이순신 장군의 건강상태 기록, 전남 여수와 경남 통영의 당시 특산물과 향토음식 등도 조사·분석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것들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평상시 또는 전투·훈련 때, 아플 때, 중앙관리 접대 때 먹었던 음식과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 전투에 이겼을 때, 삼도수군통제사 및 전라좌수사 시절 먹었던 음식 77종이다. 충무공 밥상의 특징은 모든 음식에 임진왜란 이후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 고추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다와 접해 있었던 만큼 신선한 제철 수산물 중심으로 식단이 짜여졌다. 난중일기에는 당시 병사들이 미역·전복을 따고 대구·청어·숭어 등 각종 해산물을 잡아 임금께 진상하고 쇠고기를 비롯해 노루·꿩고기 등도 먹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투 중 음식으로는 조리와 배식이 간편한 주먹밥과 콩가루 주먹밥, 굴밥, 미역밥, 통영비빔밥, 산나물밥 등이 선보인다. 승전 뒤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제공한 음식으로는 설하멱(쇠고기 꼬치), 생치편포(다진 꿩고기 육포), 칠향계(닭찜) 등이 나온다. ●평소 장국 즐기고 아플 땐 좁쌀죽 들어 충무공이 평소 즐겨 먹던 음식으로는 장국과 어육각색간랍(쇠고기내장·생선 전), 장김치, 멸치젓 등이 있다. 백의종군하면서 먹었던 연포탕(두부·쇠고기탕), 재첩국, 고사리나물, 취나물, 과동침채(동치미) 등도 선보인다. 고증 결과 이순신 장군은 격렬한 전투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 등이 겹쳐 병이 생기면 멥쌀과 좁쌀 등으로 죽을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충무공으로 하나된 영호남

    임진왜란(1592년)과 정유재란(1597년) 해전에서 23전 전승을 거둔 ‘불멸의 영웅’인 이 충무공이 반목과 갈등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영호남을 한꺼번에 껴안았다. 전남도는 11일 “경남 통영시가 개최하는 충무공의 한산대첩 축제(12~16일)에 전남도가 참가해 중요무형문화재인 강강술래를 공연한다.”고 밝혔다. 공연팀 규모는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 울돌목에서 열리는 명량대첩 축제(10월8~11일) 관계자와 주민 등 60여명이다. 이들은 축제장에서 강강술래로 흥을 돋우고 공동으로 축제 홍보마당을 마련해 축제를 알린다. 앞서 지난 4월30일 통영시청에서는 충무공 축제를 여는 전남도와 해남군, 진도군, 여수시와 경남 통영시, 남해군이 영호남 축제 교류협력에 서명했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통영 앞바다에 충무공 학익진 펼쳐진다

    통영 앞바다에 충무공 학익진 펼쳐진다

    충무공 이순신의 임진왜란 승전을 기념하는 제48회 한산대첩 축제(포스터)가 12일 경남 통영시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417년 전에 한산대첩의 무대가 됐던 통영 앞바다 등에서는 16일까지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가 열린다. 축제는 12일 대한민국 해군 함정의 통영항 입항과 더불어 이순신 장군의 신위를 모신 충렬사에서 행사의 무사안녕을 바라는 고유제(告由祭)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13일에는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의 본영이었던 세병관(국보 305호)에서 서막식과 조선수군 사열행사인 군점(軍點) 의식이 진행되고 의식을 끝낸 삼도수군통제사 행렬이 시내를 행진한다. 축제의 백미인 한산대첩 재현행사는 15일 오후 7시 한산도 앞바다에서 실제 선박들이 학익진을 형성하고 불꽃과 레이저를 쏘면서 시작된다. 통영해경 함정과 어선, 관공서 행정선 등 선박 130여척이 동원돼 417년 전인 1592년 음력 7월 조선수군 함대가 왜군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뒤 학익진으로 에워싸 섬멸했던 한산대첩의 장관이 펼쳐진다. 한산도 앞바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망일봉 이순신공원에서 이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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