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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화제] 명품길 ‘스토리텔링 로드’ 열풍

    [주말화제] 명품길 ‘스토리텔링 로드’ 열풍

    ‘길에서 길을 묻다.’ 전국 곳곳에 친환경 생태, 인간과 녹색, 문화와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텔링 로드 조성에 열풍이 불고 있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 등이 인기를 끌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산과 강, 바다와 늪 등 특색 있는 자연환경을 살려 걷기 좋고 테마가 있는 휴먼·녹색길을 조성하는 데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경남 창녕군은 1억 4000만년 전 원시시대의 신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 자연늪인 우포늪에 탐방객들이 구석구석을 걸으며 생태환경을 관찰할 수 있도록 녹색탐방로를 내년 3월까지 조성한다. 경남도는 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하며 걸었던 백의종군 길 가운데 합천군~산청군~진주시~사천시~하동군 등 경남 구간 161.5㎞를 복원·정비하는 사업이 추진돼 내년 말 완공된다. 당시 상황과 난중일기에 나오는 내요를 적은 안내판도 곳곳에 설치한다. 경북은 낙동정맥 400㎞를 트레킹 로드로 조성하는 사업을 2013년까지 2000억원을 들여 추진한다. 경북 김천시에는 직지사를 중심으로 한 직지문화모티길과 수도산을 탐방하는 수도녹색숲 모티길 등 2개 코스의 모티(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길이 최근 조성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적을 감상 할 수 있다. 퇴계가 “그림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찬탄하며 걸었던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퇴계 오솔길(3㎞)도 명품길로 꼽힌다. 전국 최고의 청정 산림자원을 갖고 있는 강원도는 울창한 산림을 활용한 ‘산소길’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해안·비무장지대(DMZ)·백두대간·북한강·남한강 등 5개의 축을 기준으로 산소가 풍부한 산속에 475㎞에 이르는 명품 산소길을 2018년까지 조성한다. 충북도에서는 경북 문경새재와 충북 충주 수안보 온천을 잇는 옛 선비 과거길과 경기도 안성 칠장산과 충북 속리산 천왕봉을 잇는 한남금북정맥길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전북도는 녹색길 이름을 ‘예향천리 마실길’로 통일하고 변산마실길, 완주 위봉산성길, 백제의 숨결 익산 둘레길을 비롯한 11개 길 417㎞를 연차적으로 조성한다. 경기도 시흥시청 주변의 산자락을 연결해 조성한 13㎞에 이르는 ‘늠내 숲길’도 최근 조성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국 지자체의 스토리텔링 로드 바람은 친환경 웰빙 분위기를 타고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종합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전국플러스] 5·6일 충무공 노량해전 승첩제

    경남 남해군은 2일 왜군의 총탄에 맞아 죽음을 앞두고도 나라를 걱정했던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제9회 이충무공 노량해전 승첩제가 오는 5·6일 이틀동안 설천면 노량광장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승첩제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노량해전의 전투현장 재현을 비롯해 조·명·일 수군 만인 위령제, 총통발사 시연, 강강술래 등 모두 22개의 행사가 진행된다. 5일 오후 5시 노량해협 일대에서 거북선과 조선 수군의 함정, 왜선 등으로 꾸민 선박 100여척이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갖가지 전술을 펼치며 전투장면을 실감나게 연출하는 노량해전 재현행사는 승첩제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이날 오후 6시에는 남해대교에 설치된 야간경관 조명 ‘불멸의 빛’이 점등식을 갖고 불을 밝힌다. 6일에는 보물섬 예술단 공연과 강강술래, 해군의장대 시범 및 군악대 연주 등의 행사가 열린다 행사기간에 해군함정과 거북선 관람, 거북선 조립 체험, 이순신 어록 전시, 전통공예 전시 및 판매, 만들기 체험, 도시민 귀촌·귀농 홍보전시관 등도 마련된다.
  • 전주 경기전 창건 600년 맞는다

    전주 경기전 창건 600년 맞는다

    태조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전북 전주시의 경기전(慶基殿·사적 제339호)이 내년에 창건 600년을 맞는다. 2일 전주시에 따르면 경기전은 조선 태종 10년인 1410년에 평양과 계림 등 3곳에 창건된 어용전(임금의 초상화를 모신 전각) 가운데 하나로 태조의 어진이 봉안된 곳이다. 경기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442년(세종 24년)이다. 현재의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광해군 6년인 1614년에 중건됐고 사적 제339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에는 최근까지 태조 어진의 진본이 모셔졌다. 내년에는 유물전시관이 완공돼 국립전주박물관에 임시 보관한 진본을 다시 봉안하게 된다. 전주시는 경기전 창건 600돌은 역사·문화적으로 의미가 깊은 만큼 이를 축하하는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계획이다. 우선 경기전과 태조 어진의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는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학술보고서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기전이 세워진 음력 9월28일(양력 11월4일)에 맞춰 어진이 영구 보관될 유물전시관의 개관식을 열고 어진의 봉안식도 할 계획이다. 특히 태조 어진이 다시 모셔지는 것을 계기로 현재 보물 제931호인 이 어진을 국보로 격상시키는 운동을 문화계와 함께 추진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1872년에 모사된 진본으로, 조선조 27명의 임금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어진이어서 국보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전주시와 문화계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전면적으로 단청을 하고, 시민을 상대로 한 특별전시회와 ‘태조 닮은 사람 찾기’ 등의 이벤트도 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600주년 행사를 전주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젖히는 자리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테마스토리 서울] (22) 남산 소나무 숲

    [테마스토리 서울] (22) 남산 소나무 숲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서울 남산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소나무. 애국가 가사때문에 더욱 강한 인상을 심었다. 그러나 오늘날 남산에서 철갑을 두른 듯 울창한 소나무 숲을 찾아보긴 힘들다. 매연과 미세먼지에 밀려 생육환경이 악화된데다 일제 강점기 이후 대대적으로 행해진 벌목과 개발 탓이다. ●조선 태종 11년에 20일간 식재 혹자는 어느 고장을 가나 ‘앞산’격인 남산은 있다며, 애국가 가사와 서울 남산을 굳이 짝짓는 것을 거부한다. 모진 풍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꿋꿋한 기상을 자랑했던 소나무는 과연 남산의 상징일까. 역사서들은 서울 남산과 소나무의 남다른 인연을 전하고 있다. 해발 262m에 불과한 남산은 고려 문종 21년(1067년) 이후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남경’으로 승격한 서울의 공간설정에 중요한 지표가 됐다. 조선시대에는 수백년간 남산 소나무를 관리해온 기록이 곳곳에 남아있다. 왕들은 풍수지리상 남산에 소나무가 무성해야 왕조의 정기가 비축된다고 믿었다. 태종 11년(1411년)에는 장정 3000여명을 동원해 20일간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조 때는 남산 소나무 보호를 위해 따로 관료와 산지기를 뒀다고 한다. 남산 소나무 숲은 외세 침략과 개발정책으로 크게 훼손됐다. 임진왜란 당시 예장동 일대에 왜군이 주둔하며 남산의 소나무 벌목은 시작됐다. 구한말에는 이곳 ‘왜장터’에서 소나무를 베어낸 뒤 신궁과 신사를 지었다. 소나무 대신 벚나무가 심어졌다. 인근에는 통감관저가 들어섰다. 해방 직후 남산은 좌우 정치세력의 집회장소로 돌변했고, 다시 유흥가로 퇴락했다. 소나무 숲도 훼손됐다. ‘해방촌’으로 알려진 남산 남서쪽 구릉지도 원래는 소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다. 옛 중앙정보부 건물들도 소나무 숲을 훼손하고 들어섰다. 남산은 사실 ‘성지’라기보다 서민 애환이 서린 장소였고, 남산 위 소나무들은 빗물에 젖은 무거운 어깨로 이 모든 것을 지켜봐온 셈이다. ●현재 3만1000여그루 자생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남산의 자생 소나무는 3만 1000여그루로 추정된다. 수령 100년 이상의 고목들도 6그루 정도가 지정 보호수로 관리받는다. 여기에 1990년대 남산제모습찾기 사업으로 다른 곳에서 옮겨와 심어진 소나무도 1만 8000여그루에 달한다. 중부푸른도시사업소 관계자는 “남산의 자생 소나무는 겉이 붉고 모습이 약간 굽고 수려한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서울시는 자생 소나무 보호를 위해 아카시아 등 소나무 생장에 지장을 주는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토양 산성화를 늦추는 석회비료를 주고 있다. 안개 낀 달밤을 그린 ‘겸재’ 정선의 ‘장안연월(長安烟月)’에도 어렴풋이 드러난 남산 소나무들. 우연인진 몰라도 “소나무는 힘과 용기의 상징인 동시에 한국의 모습”이라는 사진작가 배병우씨의 소나무사진들도 최근 남산자락의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에서 전시되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영남 3루’ 울산 태화루 복원

    ‘영남 3루’ 울산 태화루 복원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울산 태화루가 정면 7칸, 측면 4칸의 주심포식 누각으로 복원된다. 태화루(조감도)는 조선시대 영남루,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로 꼽혔다. 울산시는 26일 시청 상황실에서 ‘태화루 실시설계 최종 보고회 및 자문위원회’를 열고 중구 태화동 옛 로얄예식장 일대 1만 403㎡에 정면 7칸, 측면 4칸, 넓이 233㎡의 누각을 복원하기로 했다. 누각의 구조는 외관이 웅장하고 내부가 아름다운 주심포식과 팔작지붕이다. 누각 앞쪽에는 면적 139㎡에 정면 9칸, 측면 2칸의 대문채를 건립한다. 누각은 창건 시기가 확실하지 않고 조선 초 중건됐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점을 고려해 조선 전기의 양식에 따라 건립하되 지리적으로 가깝고 입지가 유사한 밀양 영남루 등을 참고했다. 또 누각 앞쪽으로 태화강 생태공원과 중구 우정동 둔치를 연결하는 산책로를 조성해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야간에는 누각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도록 경관 조명을 설치할 계획이다. 홍보실과 휴게실,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설치한다. 시 관계자는 “태화루를 복합역사공원으로 복원해 울산의 역사를 되살리고, 시민의 문화적 긍지와 정체성을 높이겠다.”면서 “야간에는 조명을 활용해 최고의 볼거리로 만들고 산책로를 조성해 태화강 생태하천의 중심축이 되면서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7) 소백산 연화봉~국망봉 능선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7) 소백산 연화봉~국망봉 능선

    “당연히 소백산이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 하나 꼽아달라는 질문에 곧바로 튀어나온 대답이다. 소백산(1439.5m)은 이름에 소(小)자가 들어가는 바람에 왠지 작고 만만한 산으로 느껴지지만, 품이 넓고 큰 산이다. 특히 1300~1400m 높이의 연화봉~비로봉~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아고산(亞高山) 지대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여인의 몸처럼 부드러운 초원에는 봄·여름·가을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쌓여 환상적인 설경을 연출한다. ●신령스러운 산에 백(白)자를 넣어 소백산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소(小)가 아니라 백(白)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밝음(白)’을 숭상했기에 신령스러운 산에 백(白)자를 넣었다. 백두대간의 시원 백두산을 비롯해 함백산·태백산·소백산 등이 그렇다. 여기서 백(白)은 밝음의 뜻만이 아니라 ‘높음’ ‘거룩함’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백산의 산세는 부드럽고 온화해 사람들이 살기 좋았다. 조선후기 유행했던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풍기·춘양·영월·태백 등 많은 십승지가 유독 소백과 태백의 양백지간에 걸쳐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백산의 핵심은 천상의 화원을 이루는 연화봉~비로봉~국망봉 능선이다. 이곳을 계절과 산행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해 산행 코스를 잡는 것이 현명하다. 늦가을에 적당한 코스는 풍기의 희방사를 들머리로 연화봉과 비로봉을 거쳐 비로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거리는 약 11㎞, 5시간쯤 걸린다. 희방사 들머리는 소백산 등산로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시작해야만 연화봉에서 시작하는 초원 능선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죽령에서 시작해도 연화봉에 닿지만, 포장도로가 깔려 걷는 맛이 좋지 않다. 주차장에서 희방사까지는 호젓한 길이 이어진다. 절 입구에는 수직암벽을 타고 내려오는 희방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그 모습을 서거정(1420~1488)은 ‘하늘이 내려준 꿈에서 노니는 듯한 풍경’이라 평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멋있었나 보다. ●여인의 몸처럼 부드러운 천상의 길 폭포를 지나면 아담한 희방사가 나온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두운대사가 호랑이가 물어온 경주 호장의 딸을 살려주고, 그에 대한 보은으로 시주받아 창건한 사찰이라 한다. 그래서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에 두운조사의 참선방이란 것을 상징하는 방(方)을 붙여 희방사가 되었다. 희방사를 나오면 본격적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피나무가 유독 많은 가파른 비탈을 30분쯤 오르면 희방 깔딱재에 올라선다.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활엽수들은 낙엽을 떨어뜨리고 눈부신 알몸으로 빛난다. 멀리 소백산 천문대를 바라보며 1시간 가량 오르면 연화봉에 닿는다. 나무 데크로 말끔하게 꾸민 연화봉 전망대에 서면 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으로 이어진 초원 능선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어느 능선이 이곳처럼 부드러울까. 반대편으로는 소백산 천문대 너머로 월악산 영봉이 엄지손가락처럼 튀어나왔다. 전망대 앞에는 빨간 우체통이 서 있다. 다음번에는 편지와 우표를 준비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리라. 부드러운 초원 능선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면 멋진 문장이 술술 나올 것 같다. ●남사고가 말에서 내려 절을 한 까닭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는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여러 봉우리를 넘는데, 나무들이 드물어 조망이 좋다. 능선의 초지는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바뀌었다가 이제 황금빛으로 넘실거린다. 곧 포근한 눈송이들에 덮여 겨울을 날 것이다. 제1연화봉에서 봉우리 두 개를 더 넘으면 천동계곡이 갈리는 삼거리다. 여기서 비로봉을 바라보면 드넓은 품 안에 주목들이 가득하다. 주목 군락지를 지나면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눈부시게 맑은 빛이 쏟아져 내린다. 소백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도인 남사고(1509~1571)다. 남사고는 십승지지를 체계화한 인물로 종6품 벼슬인 천문교수를 지내며 역학·풍수·천문에 능통했고, 조정의 동서분당(東西分黨)과 임진왜란 등을 예언했다고 한다. 십승지란 난세에 몸을 보전할 땅, 복을 듬뿍 주는 길지(吉地)를 말한다. 남사고는 십승지 중에서 가장 먼저 풍기 금계동을 꼽았다. 풍기가 십승지의 첫머리를 장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소백산 때문이다. 말을 타고 풍기 언저리를 지나던 남사고가 갑자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고 “저것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남사고가 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백산의 맑고 부드러운 초원 능선은 아니었을까. 하산은 비로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른다. 초반 가파른 비탈을 내려서면 전체적으로 완만한 길이다. 비로사까지 1시간 10분쯤 걸리고, 다시 30분 더 가면 삼가리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산행을 마치니, 내 안의 각지고 까칠한 생채기들이 소백산의 부드러움에 둥그렇게 구부러진 느낌이다. 글 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주 혹은 풍기행 버스를 탄다. 영주행은 06:15~20:45 30분 간격. 풍기행은 07:30, 08:50, 11:10, 13:30, 15:40, 17:00에 있다. 영주에서 풍기 경유 희방사 입구행 버스는 06:15, 06:55, 07:50, 08:20, 09:20, 10:30, 11:50, 13:30, 14:30, 15:00, 16:30, 17:00, 18:30에 있다. 삼가리에서 풍기 경유 영주행 막차는 18:00다. 풍기는 인삼과 한우가 유명한 고장이다. 풍기인삼한우(054-635-9285)식당은 식육점을 같이 운영하면서 신선한 한우 생고기를 공급한다. 국물이 일품인 인삼갈비탕도 별미다.
  • 대구 숯가마찜질방 日관광상품으로 개발

    대구지역의 숯가마 찜질방과 한방 미용서비스가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상품으로 개발된다.19일 대구시에 따르면 달성군 가창면 일원에 있는 숯가마 찜질방과 한방미용, 한방갈비, 약령시 등을 연계한 3박4일 체험 관광상품을 만들어 다음달부터 일본지역에서 시범 판매할 계획이다.지역의 숯가마 찜질방은 차별화된 고온 시설을 갖추고 있다. 숯가마 찜질방은 원적외선과 마이너스 이온 효과를 이용해 인체의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관광업계는 앞서 일부 일본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숯가마 시범 체험을 실시한 결과 상당한 호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이같은 숯가마 체험을 끝낸 관광객들은 대학과 산학연계로 개발한 한방미용체험에 참가해 컴퓨터로 피부상태를 점검한 뒤 한방소재를 이용해 등과 허리, 목, 얼굴 등에 1시간에 걸친 마사지를 받게 된다. 또 대구시내 식당에서 10종의 약재를 넣은 한방갈비와 한방삼계탕을 먹으며 몸보신을 할 수 있다. 이 관광상품에는 동화사와 방짜유기박물관, 청도와인터널,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일본명 사야가) 장군의 녹동서원, 서문시장 등을 둘러보는 코스도 포함된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문화마당] 매운맛의 유혹/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문화마당] 매운맛의 유혹/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요즘 외식업의 열쇠말은 ‘가격 싸고(Go), 푸짐하고(Go), 재미 있고(Go)’를 가리키는 이른바 ‘3Go’라고 한다. 경기 침체 속에서 이 ‘3Go’ 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업종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곳이 짬뽕 전문점들이다. 최근 2, 3개월 사이에 개업해서 빠르게 점포수를 늘려가고 있는 이 전문점들은 음식과 관련한 여러 TV프로그램과 잡지, 신문 등에서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짬뽕의 인기야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지 모른다.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의 어느 중국식당에서 탄생한 짬뽕은 일제 때 이미 한반도에 상륙하였고, 자장면과 함께 한국식 중화요리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은 지도 반세기를 넘겼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몇 해 전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슈퍼볼 스타 하인스 워드가 가장 먹고 싶은 한국 음식으로 짬뽕을 꼽았을까. 그러나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짬뽕은 전통적인 짬뽕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특히 한층 강도가 더해진 매운 맛이 두드러진다. 각종 야채와 해산물을 볶은 뒤 돼지뼈와 닭뼈를 곤 맑은 육수를 끼얹어 끓여낸 짬뽕은 원래 매운 음식이 아니었다. 나가사키의 중국식당 시카이로(四海樓)의 원조 짬뽕이 그러하고, 한국 짬뽕도 해방 전까지는 맵지 않았다. 우동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짬뽕은 해방 전후로 고추기름을 넣은 매운 음식으로 진화하면서 비로소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청양 고추와 태국 고추를 듬뿍 넣고 메뉴 옆자리에 매운 정도에 따라 고추를 세 개까지 그려 넣은 전문점들의 짬뽕은 매운맛을 향한 또 한 차례의 변신인 셈이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는 유럽을 거쳐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반도에 유입되었다. 처음에 독초로 여겨져 외면 받던 고추는 18세기 이후 선조들의 식탁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야채를 소금에 절였다 먹는 백김치 ‘디히’에 고추를 섞어, 비슷한 야채 저장 식품인 중국의 ‘파오차이’(泡菜)나 일본의 ‘즈게모노’(漬物)와는 전혀 다른 음식으로 발전시켰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들은 더욱 매운맛에 열광하였다. 간장에 졸인 음식이던 떡볶이가 한국전쟁 이후 고추장과 뒤범벅인 음식으로 변모한 것을 시작으로 낙지볶음, 곱창, 불고기, 닭볶음도 고추와 결합한 퓨전 음식으로 거듭났다. 라면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는 매운맛을 이름으로 내세운 라면의 차지다. 현재 매운맛의 선호는 전세계적이고 초문화적인 외식업의 트렌드이다. 얼마 전까지 ‘불닭’이라는 이름으로 위세를 떨치던 매운 닭볶음의 유행도 멕시코의 칠리페퍼에 새롭게 눈을 뜬 미국의 유행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이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풍문도 초문화적인 매운맛 유행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인만큼 매운맛을 즐기는 이들도 없다. 현재 한국인의 1인당 연간 고추 소비량은 약 4㎏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인 김치, 비빔밥, 떡볶이, 불고기의 공통점은 맵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왜 이토록 매운맛에 열광하는가. 혀의 통각 세포에서 매운맛을 지각하면 이를 중화시키기 위한 반작용으로 엔돌핀을 분비한다고 한다. 엔돌핀은 스트레스와 우울한 기분을 해소시켜주는 중독성이 강한 호르몬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매운 음식을 찾는 것은 반복된 학습 효과인 셈이다. 불황에는 매운 음식이 잘 팔린다는 속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한국인들의 매운맛에 대한 눈뜸은 근대화의 징후였고, 매운맛에 대한 열광은 ‘압축 성장’으로 상징되는 급속한 산업화의 산물일 터이다. 근래 거듭되는 불황의 스트레스를 더 자극적인 매운맛으로 해소하고 싶은 유혹에 우리는 번번이 무너지고 만다. 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 [도시와 산] (32) 강원도 화천 용화산

    [도시와 산] (32) 강원도 화천 용화산

    강원 화천 용화산(龍華山)은 북으로는 파로호, 서로는 춘천호, 남으로는 소양호를 끼고 우뚝하다. 해발 853m의 중봉이지만 바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강원도 첩첩산중에 꼭꼭 숨은 산이지만 전국 100대 명산에 포함될 만큼 자태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북한강 상류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화천읍내를 남으로 감싸안고 있는 화천의 진산이다. 산을 오르는 곳곳마다 상고(上古)시대 이전 고대 맥국(貊國) 성터와 절터 흔적이 남아 있고, 깎아지른 기암절벽마다 재미있는 구전 설화가 바람처럼 전해온다. ●춘천과 화천의 경계 갈라 용화산 정상은 춘천과 화천의 경계를 가른다. 남쪽 춘천방면을 바라보면 발 아래로 수십m의 아찔한 바위 절벽을 이루며 천혜의 요새를 이룬다. 멀리 춘천시내가 아스라이 보이고 맑은 날에는 춘천의 중심에 자리한 봉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을 돌려 북쪽을 바라보면 화악산 등 준봉을 뒤로한 화천읍이 햇살을 받으며 오붓하게 형성돼 있다. 산세가 이렇다 보니 정상의 서쪽 사면에서 동쪽 팔부능선까지 북사면을 따라 돌을 이용한 용화산성의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북사면 중간쯤에는 성문터로 짐작될 만한 돌들도 남아 있다. 삼국시대와 상고시대 이전 강원도의 전신으로 알려진 맥국 임금이 지금의 소양강댐 하류 춘천지역을 도읍으로 정하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성을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성터 주변에는 주춧돌과 석불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한때 융성했던 성불사, 용화암자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한다. 이후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첫 승리를 이끌어낸 비사성전투 격전지가 이곳 용화산성이었다는 주장도 역사가들 사이에 제기되고 있다. 화천문화원 정종성(48) 사무국장은 “용화산 인근의 간척리 볏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통일신라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고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화랑들의 무리가 용화낭도였다는 점 등을 들어 사학자 일부는 용화산의 유래를 조심스레 이같이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강 상류지점 끝자락에 있어 청동기, 철기시대때는 160여가구가 모여 살 만큼 융성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해에서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오르다 육지가 맞닿는 지점에 있는 용화산은 신라, 고구려, 백제의 격전지였고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최근에는 화천댐의 전력 확보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치른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춘천에서 407호선 지방도로를 따라 달리다 화천읍을 지척에 두고 9번 군도로 접어 들어 도로 끝 지점까지 오르면 용화산 산행 초입에 이른다. 이곳에서 산 정상까지 40분 정도면 족하지만 초입부터 깔딱하다. 오르면서 10분쯤 간격으로 쉴 수 있는 바위들이 나타나 숨고르기를 도와 준다. 쉬면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바위 사이에 자리잡은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산들이 절경을 연출한다. 바위를 밟으며 오르는 산행 동안 발 아래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벽이 발끝을 간지럽히고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심바위·칼바위·아들바위… 바위마다 전설 가득 효자가 산삼을 캤다고 알려진 심바위, 바위가 자리를 깐 듯이 생긴 너럭석바위, 행상 뚜껑처럼 생긴 행상바위, 앉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 칼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칼바위, 주전자 모양의 주전자바위, 어린이들이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장수발자국바위, 물 흐른 흔적이 남아 있는 마귀할범 오줌 싼 자리, 말등바위, 곰바위, 집바위, 논바위, 독바위 등 모양 따라 해학이 넘쳐나게 붙여 놓은 바위들에 얽힌 이야기가 끝도 없다. 특히 주전자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롭다. 바위 모양이 마치 주전자부리처럼 생긴 바위는 예부터 가뭄이 들면 개를 잡아 ‘개적심’이라고 이름 붙여진 기우제를 지내오던 곳이다. 개를 잡아 주전자 부리 모양의 바위밑에 기우제를 지내고 피를 주전자 부리에 바르면 산신령이 피를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린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가뭄이 크게 들었던 어느 해 마을주민들이 전해오는 얘기 대로 기우제를 지냈고 이튿날 비가 내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까지 전해온다. 용화산 정상에 있는 꼭지바위에 전해오는 얘기도 재미있다. 바위의 끝(꼭지)이 춘천 쪽으로 향해 있어 이 지역의 재물이 바깥 마을로 흐른다고 여겨 마을에 살던 한 힘센 장사가 바위 꼭지를 떼어냈다는 전설이다. 함께 산행에 나섰던 춘천국유림관리소 정필원(48) 화천경영팀 직원은 “용화산 정상쯤에 펼쳐진 바위마다 전설같이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많아 금강산 만물상처럼 스토리텔링의 자원으로 활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박진서(45) 화천민속박물관장은 “북한강 상류의 물길 끝자락에서 수천년 전부터 사람들을 품고 지낸 산이다 보니 농경문화와 어우러져 구전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관광자원 보고 용화산 20년전 유황온천 발견 겨울 산천어 축제 백미 용화산은 온천관광단지로 지정됐다. 아직 개발되지 않아 미래의 관광자원을 간직한 곳이다. 산 아래 등산로 입구인 삼화리 마을에서 온천이 발견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7월 이 마을에서 유황 온천이 솟아나면서 일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온천을 중심으로 휴가 등 여가활동을 위한 전원형 온천관광지로 조성해 화천지역의 관광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온천지역을 중심으로 땅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오히려 사업진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00년 온천개발계획 승인 이후 민간투자자들의 발길은 여전히 이어지지만 사업진척은 지지부진하다. 주민들 사이에는 차라리 관광특구를 해제해 달라는 주장까지 일고 있다. 하지만 화천군이 용화산을 중심으로 온천개발까지 묶어 제대로 된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취지의 청사진은 아직 유효하다. 최근 겨울의 산천어축제와 여름의 쪽배축제, 토마토축제 등 각종 축제로 산촌마을 화천지역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을 호재로 삼고 있다. 100만명 안팎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축제가 펼쳐지면서 용화산 온천관광지구도 더불어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구나 수도권에서 춘천을 거쳐 화천에 이르는 교통여건이 좋아지면서 개발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년 말 경춘선복선전철까지 개통되면 수도권 배후 관광도시로 각광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온천개발 인근인 간동면 간척리에 스키장까지 추진되고 있어 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북한강 상류의 물길을 따라 자전거, 트레킹 코스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파로호 주변인 간동면 방천리 일대에도 관광단지가 만들어지면 용화산을 중심으로 한 온천관광 개발에도 민간인들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용화산 일대가 지금은 등산객만 찾는 산이지만 수년내 온천지를 포함해 화천권의 관광개발 중심지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정읍 내장산 단풍길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정읍 내장산 단풍길

    내장산은 몰려든 인파에 휩쓸려 허둥지둥 단풍 구경하고 돌아서기에 아까운 산이다. 내장(內藏)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안으로 간직한다.’는 뜻이고, 내장사의 옛 이름이 ‘신령을 숨기고 있다.’는 영은사(靈隱寺)이니 예나 지금이나 ‘숨기고 감추어 간직하는’ 뜻만은 변함없다. 산세는 내장 9봉이라 일컫는 아홉 개의 봉우리가 말발굽형으로 안을 둘러싸고 있다. 이처럼 안으로 감춘 산세는 임진왜란 때에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을 지켜낸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정읍의 안의와 손홍록 두 선비가 ‘조선왕조실록 825권 830책과 고려사 등의 기타 전적 538책’을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낸 것이다. 당시 다른 사고에 보관하던 실록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원적계곡~벽련암길 백미 내장산 산행은 추령에서 시작해 내장 9봉을 종주하는 산길을 으뜸으로 꼽지만, 단풍구경을 하기에는 내장사에서 원적계곡을 거쳐 벽련암까지 작은 원을 그리는 코스가 아주 좋다. 거리는 3.6㎞로 넉넉히 잡아 2시간쯤 걸린다. 산길은 그 유명한 108그루 단풍터널 입구인 내장사 일주문에서 시작한다. 하늘도 땅도 사람들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드는 길에 서면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연두색, 초록색, 붉은색, 흰색으로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이 길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했을까. 어쩌면 사람들의 웃음과 행복을 구경한 단풍나무들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이곳 단풍나무는 100여년 전 내장사 스님들이 깊은 골에 자라는 단풍나무를 캐다가 백팔번뇌를 모두 벗어나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108그루를 심은 것이라고 한다. 느리게 걸어 다다른 내장사. 절 마당에 서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방을 둘러보니 내장 9봉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다. 이 자리에 내장산 아홉 봉우리의 정기가 모인다고 한다. 정혜루 앞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원적계곡으로 들어서면 호젓한 숲길이 이어진다. 북적거리던 내장사와 달리 사람들이 뜸해서 좋다. 원적암 입구에서 돌계단을 오르면서 왼쪽에 자리한 모과나무를 유심히 봐야 한다. 300살이 넘은 우락부락한 풍치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나무줄기에 손가락만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자랐고, 기특하게도 붉은 단풍잎을 매달았다. 원적암을 지나면 600년 묵은 우람한 비자나무가 앞을 막는다. 내장산은 단풍 말고도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들이 어우러지기에 생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는 더 이상 북쪽으로 뻗어가지 못하고 이곳에 떼 지어 모여 사는 북방한계 군락지를 형성한다. 이제 길은 평지처럼 순한 산비탈을 타고 돌다가 너덜지대를 만나는데, 이곳을 ‘사랑의 다리’라고 부른다. 연인을 업고 소리 내지 않고 지나면 아들을 얻는다는 속설이 얽힌 곳이다. ●벽년수 약수에 목을 축이고 너덜겅을 가만히 밟아보지만 덜컥! 돌 사이에 틈이 있어 소리가 안 날 수 없다. 이곳을 지나면 옛 내장사 자리였다는 벽련암. 암자 뒤로 힘차게 솟은 서래봉 암봉의 기상이 웅혼해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내장산의 최고봉은 신선봉(763m)이지만, 그 형세나 기상으로 보아 서래봉(624m)이 주봉 역할을 한다. 암자 마당에서 스님이 건네주는 녹차를 ‘벽련선원’ 현판이 적힌 누각에 올라 조망을 즐기며 마신다. 건너편으로 장군봉에서 연자봉으로 이어진 주릉과 연자봉에서 내려와 전망대가 세워진 문필봉으로 흘러내리는 지릉이 눈에 들어온다. 저 산세를 풍수지리에서는 제비가 모이를 먹이는 형국이라 한다. 문필봉이 제비 머리, 양 날개가 장군봉과 신선봉에 해당한다. 연소(燕巢), 즉 제비둥지에서 새끼가 모이를 받아 먹는 자리가 바로 벽련암이다. 벽련암을 나와 백년수 약수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내려오면 내장사 일주문이다. 여기서 다시 단풍터널을 한동안 서성거린다. 내장산을 한 바퀴 돌아보니 화두처럼 질문 하나가 자라나고 있다. 내장산처럼 내 안에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호남고속도로 정읍 나들목으로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15분쯤 간다. 대중교통은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정읍행 버스가 오전 6시30분∼오후 11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정읍에서 내장산행 시내버스 171번은 정읍역과 터미널 앞에서 30분 간격. 내장산은 30가지 반찬이 나오는 산채정식이 유명한데, 30년 전통의 한일관(063-538-8981)의 맛이 정평이 나 있다. 정읍 시내의 한정식집 ‘정촌’(063-537-7900)은 1만원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남도 밥상을 만끽할 수 있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은 내장산에서 절정을 맞는다. 우리 땅의 단풍 기상도는 늘 그렇다. 단풍의 남하 속도는 하루 25㎞, 시속 1㎞의 거북이걸음으로 울긋불긋 떼 지어 내려간다. 날이 쌀쌀해지면 단풍의 발걸음은 토끼걸음으로 바뀐다. 그래서 가을은 문득 왔다가 쏜살같이 사라진다. 내장산 단풍 소식이 들릴 무렵 사람들은 불현듯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서둘러 단풍 구경에 나서면서 내장산은 몰려든 사람들로 홍역을 치른다. 내장산이 없었다면 단풍 구경 제대로 못하고 겨울을 맞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 [씨줄날줄] 돈의문 悲史 /김성호 논설위원

    조선 건국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한 지 5년째 되는 해인 1396년 도성(서울 성곽)을 축조, 4개의 출입문을 냈다. 남쪽의 숭례, 북쪽의 숙정, 동쪽의 흥인, 서쪽의 돈의이니 동서남북 대문 구실을 한 4대문이다. 이 문들에는 독특한 이야기가 담겼는데, 숭례문은 관악의 불기운을 막았다 하며 흥인문은 왜구의 침입방지를 염두에 뒀단다. 숙정문은 문을 통해 음기가 침범, 부녀자의 풍기가 문란해질 것을 우려해 별도의 홍지문을 내 출입문을 삼았음이 전한다. 풍수지리를 따라 역할을 각각 매기고 액을 경계한 발상이 흥미롭다. 유교의 기본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의(義)의 뜻을 담은 돈의문은 문밖의 경사가 유난히 가팔라서 문을 새로 냈다고 한다. 지금의 ‘새문안’ ‘신문로’ 지명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이름값 때문인지 유난히 많은 변란 사연이 얽힌 것도 특이하다. ‘이괄의난’ 당시 무악재 싸움에서 패퇴하던 이괄이 도피통로로 삼았고, 을미사변 때엔 일제 부랑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전 경복궁 침입에 앞서 회동, 만행의 싹을 틔운 현장이다. 거듭된 역사의 돌출 말고도 돈의문은 차별되는 사연 탓에 아쉬움을 더한다.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비롯해 다른 문들은 모두 개축, 보수를 거쳐 모습을 남기고 있지만 유독 돈의문만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초토화된 서울 성곽과 함께 불타 숙종대에 중건됐지만 1915년 조선총독부가 전차 노선을 설치하면서 철거해 버린 것이다. 임진왜란-을미사변-일제에 얽힌 과거사의 아픔이, 악명 높은 서대문형무소에 덧칠되는 운명이 예사롭지 않다. 서울시가 2013년까지 돈의문을 복원한다니 이름만으로 전하던 대문을 보게 될 전망이다. 새문안길 강북삼성병원 앞 정동사거리에 옛 모습 그대로란다. 서울 성곽 복원사업의 마침표 격으로 삼아 조선 지도며 일제 지적도까지 모두 뒤져 철저하게 고증한다니 일단 기대가 크다. 계획대로라면 93년 만에 모습을 되찾게 될 돈의문. 세계문화유산 등재니 근대역사코스 개발이니, 벌써부터 이런저런 프로그램이 무성하게 쏟아진다. 문화재의 복원은 정신의 복원이다. 성급한 입방아보다 복원의 가치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광화문 복원 어떻게 돼가나

    광화문 복원 어떻게 돼가나

    “아니, 좀더 돌려서, 왼쪽으로 조금만 더, 에헤, 너무 갔어. 다시 끌어올려봐.”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에서 목공사를 총감독하는 신응두 대목장의 당찬 목소리가 들린다. 가을 햇볕이 따가운 20일 오후 철제 가림막 안쪽에서는 광화문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일반 건물 3~4층 높이로 설치된 비계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목수 4~5명이 크레인에 걸쳐서 기둥을 조심스럽게 조립하고 있다. 크레인에 묶은 기둥을 가로 걸쳐진 나무에 끼우는 것이 여의치 않자 신 대목장이 소리를 높인 것이다. ●내년 3월 목공사 마무리 2006년 12월 시작했으니 광화문 복원공사는 꼬박 3년을 채워가고 있다. 철조망 앞에 놓인 해태상 외에는 안을 엿볼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궁금증과 기대감은 더욱 커져간다. 올해 공사는 다음달 12일이면 일단락짓게 된다. 14명의 정예 목수들을 지휘하고 있는 신 대목장은 “예정대로 일정이 착착 진행되고 있어서 내년 3월 정도면 목공사와 관련된 일은 다 마무리될 것 같다.”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끝나고 기와 얹고, 단청 하는 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광화문 복원 현장에는 중심이 되는 기둥 2개가 1층부터 2층까지 축을 이뤘고, 나머지 둘레에 세워질 기둥 10개 중 마지막 한 개가 세워지고 있었다. 1층의 목공사는 벌써 완료됐고 2층 목공사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기둥조립 공사를 마치면 서까래 세우고 지붕 올리는 공사가 남는다. 광화문의 형체가 완벽하게 나오게 되는 셈. 이밖에도 대문 짜는 일, 용성문, 협생문 등 목공사와 어도(御道) 등의 복원은 내년에 본격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높이 2m 성벽 좌우로 늘어서기 시작 외곽도 마찬가지다. 성벽은 약 2m 높이로 서쪽 성벽은 모두 160m의 길이 중 60m가, 동쪽은 100m 중 20m 정도 좌우로 늘어서기 시작했다. 해태상은 광화문 복원이 완료되면 일반에 공개되는 시기인 내년 하반기쯤 광화문 바로 앞으로 옮겨진다. 복원 작업은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2006년 12월 광화문 복원 공사를 시작하던 당시에는 올해 말 공사가 완료될 것으로 계획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엄청난 양의 청기와와 분청사기, 청화백자 그리고 지붕 위를 장식하던 잡상(雜象)이 출토되는 등 예상하지 못했던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복원 기간이 늦춰졌다. 이밖에 궁궐 어구, 수로, 동서로 이어지는 회랑 등이 발견돼 임진왜란 이전 경복궁의 흔적들을 추정할 수 있게 되는 등 경복궁의 유구한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 궁릉문화재과 관계자는 “주변 궁궐을 참고하는 등 고증 작업을 거쳐 단청을 입히고 궁궐을 단장하는 작업 등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면서 “일반 공개의 정확한 날짜를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복원이 순조롭게 이뤄져 내년 하반기에는 광화문의 웅장한 위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머리가 반쯤 잘린 채… 내 딸이 이 지경에”

    “머리가 반쯤 잘린 채… 내 딸이 이 지경에”

    “위로는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는 처음 벼슬을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술에 빠져 있는 것으로 일을 삼고 경리(經理)에는 뜻이 없으니 중흥을 어찌하며, 백성을 어찌할까?”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함양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벌인 선비 고대(孤臺) 정경운(1556~?)이 1594년 1월17일 일기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위정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며 쓴 글이다. 정경운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년) 4월23일부터 1609년(광해군 원년) 10월7일까지 약 18년간 임진왜란, 정유재란 전후의 참상과 현실비판을 기록한 ‘고대일록(孤臺日錄)’을 남겼다. 이 기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황윤석의 ‘이재난고’, 오희문의 ‘쇄미록’ 등과 함께 임진왜란 무렵의 상황과 생활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하지만 1986년 처음 학계에 소개된 이후 지금까지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반인은 물론 전공자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남명학연구원(원장 이성무)이 최근 이 책을 완역했다. 박병련(한국학중앙연구원), 정우락(경북대), 오용원(경북대), 한명기(명지대), 신병주(건국대) 교수 등이 번역에 참여했다. 정경운은 ‘고대일록’에서 전쟁의 경과와 자신의 전쟁 체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국맥이 실과 같아서 도적들이 바닷가에 진을 치고, 명나라 병사는 이제 막 도착했다. 그러나 나라의 비용은 텅 비어 고갈되었다.’(1595년 7월8일) ‘조카가 산에 이르러 정아의 시신을 찾았다. 머리가 반쯤 잘린 채 돌 사이에 엎어져 있었는데, 차고 있던 칼로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아아! 내 딸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1597년 8월21일) 이와 함께 사적인 일기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선조의 실정과 악행을 일삼는 관리들에 대한 현실비판의 글을 상세하게 실었다. 또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기아로 무너져가는 사대부의 삶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남명학연구원은 23일 오후 1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고대일록 완역을 기념하는 ‘고대일록과 임진왜란’ 학술대회도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돈의문 98년만에 복원된다

    돈의문 98년만에 복원된다

    서울성곽 4대문 가운데 하나로 서울의 상징이던 돈의문(敦義門)이 일제에 의해 철거된 지 98년 만에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원형대로 복원된다. 이와 함께 돈의문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 역시 돈의문 복원에 맞춰 제 모습을 찾는다. 서울시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서울성곽 중장기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21일 발표했다. 돈의문은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숙정문(북문)과 함께 서울 4대문의 하나로, 우리에게는 서대문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돈의문은 이름 그대로 유교의 4가지 덕목인 ‘인(仁)·의(義)·예(禮)·지(智)’ 가운데 ‘의’를 상징한다. 돈의문은 조선의 도읍이 정해져 서울성곽이 지어지던 태조 5년(1396년)에 건립됐다 임진왜란 당시 한차례 소실됐다. 이후 숙종 37년(1711년)에 재건됐지만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가 전차 궤도를 복선화한다는 이유로 또다시 철거해 그동안 서울 성곽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미복원 상태로 남아 있었다. 서울시는 2013년까지 1477억원을 들여 돈의문을 옛터인 강북삼성병원 앞 정동사거리 일대에 복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는 현재 서대문사거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가차도를 2011년까지 철거하기로 했다. 시는 문화재위원회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돈의문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 경교장, 홍난파 가옥 등 주변 역사 문화 시설과 연계한 ‘돈의문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시는 돈의문 복원을 계기로 주변 일대 83.6m의 서울 성곽을 복원하고, 현재 복원이 진행 중인 인왕산 구간(835m), 남산 구간(753m), 동대문운동장 구간(263m) 등 총 7개 구간 2175m의 성곽 복원작업을 돈의문 복원이 완료되는 2013년까지 모두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이다. 도로로 단절된 구간인 흥인지문∼이화여대 병원 구간과 혜화문∼가톨릭대 구간 등 6곳 182m에는 성곽 형태의 구름다리를 만들어 연결하기로 했다. 사유지 등은 재개발 및 도시계획사업 수립 때 성곽 복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다. 이충세 서울시 문화재과장은 “돈의문과 서울 성곽 복원이 모두 완료되면 서울은 4대문을 중심으로 지역성과 역사성을 살린 특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이순신 밥상’ 1호점 내년 통영에 문연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조선수군이 먹었던 음식을 현대인 입맛에 맞게 재현한 ‘이순신 밥상’ 1호점이 내년 초 경남 통영시 용남면에 문을 연다. 통영시는 20일 이순신밥상 1호점 외식사업자 선정평가위원회를 열어 우선협상 대상자(전현택·45)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전현택씨는 통영·거제에서 20년 넘게 전통 도자기와 천연염색, 다도예절 체험학습장을 운영했으며 한식집 경험이 있는 조리사와 관리자 등을 확보하고 있어 적임자로 판단됐다.”고 선정배경을 밝혔다. 1호점 위치는 통영지원·지청 맞은편으로 대전~통영 고속도로 통영 톨게이트와 2분 거리다. 우선협상 대상자는 이순신 밥상 음식기술과 마케팅 기법을 전수·지원 받아 내년 1~2월쯤 프랜차이즈 1호점 문을 연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도시와 산] (29) 전주 고덕산

    [도시와 산] (29) 전주 고덕산

    고덕산(高德山·603.2m)은 ‘천년고도’ 전북 전주시를 지켜온 산이다.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과 대성동,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 등에 걸쳐 있다. 전주시가지의 높은 건물이나 막힘이 없는 곳에서 보면 남쪽으로 우뚝 솟아오른 정상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시내에서 가깝지만 교통이 약간 불편해 가까우면서 먼 산처럼 느껴진다. 사람 발길이 뜸한 만큼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고 남고산성, 관성묘, 남고사 등 문화유적과 명승지가 많아 전주시민들의 애틋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가을이면 활엽수들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단풍이 빼어나고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산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고덕산은 덕이 높은 산이란 뜻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고대산(孤大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으로 기록돼 시대마다 달랐다. 고달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높다리기’라고도 불렸다. 산의 모습이 우뚝 솟아 있으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기품이 있어 “덕이 높다.”라는 고덕이 어울리지만 유래는 알 수 없다. 높다라기산에서 차음됐다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비롯해 전란이 닥칠 때마다 고덕산과 그 줄기에 있는 남고산성은 전주를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치열한 전쟁터였다. 고덕산 줄기에는 둘러볼 만한 유적들이 많다. 관성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장군을 무신으로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관성묘는 고종 32년(1865) 전라도 관찰사 김성근과 남고산성을 책임지던 무관 이신문이 제안해 각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했다. 사당 안에는 관우의 상이 있고 양쪽 벽에 ‘삼국지연의’ 내용을 그린 벽화가 있다. 남고진 사적비에는 남고산성의 내력이 담겨 있다.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각 봉우리에서는 한옥마을을 비롯한 전주시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만경대에는 고려 말기 충신이자 유학자 정몽주(1337~1392년)가 당시 서울인 개경을 바라보며 지은 시가 지금도 돌벽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정몽주는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년)가 전승 기념으로 전주 오목대에서 큰 잔치를 베풀면서 고려를 엎고 조선을 개국할 뜻을 피력하자 말을 달려 남고산 만경대 올라 기울어가는 고려를 걱정해 이 시를 지은 것으로 전해내려온다. ●문화유적의 보고 남고산성 고덕산에 오르다 보면 남고산성(사적 제294호)을 거치게 된다. 고덕산의 서북쪽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형 산성이다. 고덕산 줄기인 남고산(220m) 정상을 중심으로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았다. 남고산성은 문화유적의 보고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따르면 남고산성은 901년 후백제의 견훤(867~935년)이 쌓았다. 이 때문에 견훤산성 또는 고덕산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견훤은 전주의 동서남북을 제압하기 위해 산성을 쌓고 동서남북에 각각 사찰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남고산성은 폭 3.4m 높이 1.2m, 길이 5.3㎞로 축성됐으나 현재 3㎞ 구간만 밝혀졌다. 전주에서 남원, 순창으로 통하는 교통상 요지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으나 이곳에서 끝까지 대항했다. 현존하는 성벽은 임진왜란 당시 전주 부윤 이정란이 왜군을 막을 때 쌓았다. 1811년(순조 11년) 관찰사 이상황이 증축, 이듬해 박윤수가 관찰사로 부임해 완공했다. 전주시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108억원을 들여 성곽길이 2950m 가운데 1546m를 복원했다. 이 산성은 조선 순조 때 수축해 남고진을 두었고 효종 때 설치한 중진영, 숙종 때 쌓은 위봉산성과 함께 전주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산성 안의 남고사 앞쪽에 남장대, 뒤편에 북장대를 두었다. 남장대 아래 계곡에 군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고 산성별장 1명이 22명의 지휘관과 1400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주둔했다. ●사방 탁 트인 조망권 장관 고덕산은 전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등산코스로 유명하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3~4시간이면 정상을 밟는다. 남고산성 성벽 위를 걷기도 하지만 정상에 이르는 길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코스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동서학동 좁은목 약수터 방향, 평화동 흑석골 방향, 전주교육대학 뒤쪽 등이다. 예전에는 약수터를 경유하는 코스를 많이 선택했지만 평화동에 아파트 밀집지역이 형성되면서 학산 쪽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아졌다. 문화유적탐방을 나서는 등산객들은 아직도 전주교대 뒤쪽길을 선택한다. 어느 코스든 비교적 길이 평탄하고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다. 초입부터 중턱까지 구간은 소나무숲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여성 등산객들이 선호한다. 비교적 경사가 급하지 않던 산행길은 남고산성 북동쪽 성곽 뒤로 올라서면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 성곽길을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는 전주시가지가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고덕산 정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지막 정상부근 오름은 만만치 않다. 아마추어 등산가들은 10여분 정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짝 힘을 써야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압권이다. 북서쪽으로는 발 아래 전주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지고 익산시까지 내려다보인다. 동쪽으로는 기린봉, 치명자산 너머 진안 마이산이 가물거린다. 남동쪽으로는 아득히 지리산 연봉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고 서쪽으로는 모악산의 자태를 살펴볼 수 있다. 고덕산은 최근 들어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등산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적한 산행을 즐기려는 등산객과 문화유적을 탐방하는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많아졌다. 남쪽 기슭에는 전원생활을 추구하는 동호인들의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남고사도 가보세요 남고사(南固寺)는 전주시민들에게 친근한 사찰이다. 역사적 의미가 큰 남고산성 안에 있는 절로 전주 사람들은 초·중·고 시절 한두 번쯤은 소풍을 간 경험이 있다. 예로부터 해질녘에 들리는 남고사의 종소리를 ‘전주팔경’의 하나로 꼽을 만큼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전주시내 남쪽에 위치한 작은 사찰로 접근성이 좋아 주민들이 산행할 때 자주 찾는다. 산 아래 주차를 하고 2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도달한다 남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의 제자 명덕화상이 668년 창건했다. 보덕이 고덕산 남쪽에 경복사를 창건해 열반종의 근본 도량으로 정했는데, 명덕화상이 남고사를 창건해 그 말사의 자격으로 열반종의 전통을 이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때는 남고연국사(南固燕國寺)라고 불렸다. 남고연국사가 남고사로 표기된 것은 견훤이 산성을 쌓고 사고(四固) 사찰을 지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까지는 교종 계통의 사찰이었으나 조선 세종 때 선·교 양종을 통합하면서 정한 48개 사찰에 들어가지 못해 사세가 크게 위축됐다. 임진왜란 이후 선종이 크게 신장되면서 선종계 사찰이 됐다. 1680년(숙종 6년)에 관음전이 들어서고 1881년(고종 18년)에 중건했다. 1981년 대웅전, 1984년 삼성각, 1985년 관음전을 중건했다. 1992년 관음전과 요사가 불에 탔고 1995년 관음전을 인법당으로 복원하고 1996년 목조관음보살상을 모셨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삼성각, 사천왕문 등이 있다. 관음전은 1680년 창건돼 1992년 10월7일 불에 탄 것을 1995년 복원했다. 사천왕문에는 다른 절에서처럼 사천왕상을 모시지 않고 사천왕을 그린 탱화만 둔 점이 특이하다. 옛 절터 남고사지는 현재 대웅전 오른쪽 앞 건물자리다. 도 기념물 제72호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1) 경남 창녕 화왕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1) 경남 창녕 화왕산

    가을은 인정 많은 나그네다. 인간 세상에 잠시 머물던 가을은 농부에게 풍요로운 곡식을 안기고, 산꾼에게는 단풍과 억새를 선물하고 떠난다. 단풍은 지역에 따라 절정인 시기가 다르지만, 억새는 대개 비슷하다. 흔히 억새는 늦가을이 제철이라 생각하지만, 10월 중순이면 절정을 맞는다. 단풍은 그 화려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때론 들뜨게 하지만 억새는 차분하게 가라앉혀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국내에 내노라는 억새 명산 중에서 산행이 쉽고, 풍광이 빼어난 곳이 창녕 화왕산이다. 올 2월 억새태우기 행사 도중 사고가 일어나 산이 흉흉해졌지만, 가을이 오자 화왕산은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화왕산에 큰불 나야 이듬해 풍년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친다.’는 우포늪의 고장 창녕은 낙동강을 서쪽에 끼고 있어 예로부터 홍수 피해가 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낙동강의 기운을 누르고자 고을을 감싸는 진산의 이름을 화왕산, 즉 ‘불뫼’라고 불렀다. 창녕에서는 화왕산에 큰 불이 나야 이듬해 풍년이 들고 모든 군민이 평안하며 재앙이 물러간다고 한다. 화왕산 억새밭 태우기는 이러한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화왕산의 산세는 참으로 독특하다. 창녕 시내에서 보면 산 전체가 철갑옷을 두른 듯 험상궂다. 바위와 소나무들이 바늘처럼 돋아있어 다가서기가 꺼려질 정도다. 하지만 정상부는 마치 먼 옛날 운석 충돌이 일어난 듯 사발 모양으로 움푹 파였고, 5만 6000여 평의 광활한 면적이 온통 억새로 뒤덮여 있다. 이러한 천혜의 산세 덕분에 가야 시대부터 화왕산성이 세워졌고, 임진왜란 때에 홍의장군 곽재우는 산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화왕산 산행은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인 자하골을 타고 산성 서문으로 오른 후에 느긋하게 산성을 한 바퀴 도는 길이 좋다. ‘불뫼’의 꼭대기에서 ‘흰 불꽃’처럼 출렁거리는 억새의 물결에 잠겨본다면 곧 떠나갈 가을을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겠다. 산행 거리는 약 5㎞, 3시간쯤 걸린다. 자하곡 주차장에서 화왕산장을 지나 삼림욕장에 이르면 길이 세 갈래다. 길이 험한 전망대길(제1등산로)을 제외하고 계단길(제2등산로)로 올라 도성암길(제3등산로)로 내려오면 된다. 삼림욕장을 지나면 계단의 연속, 급경사 길을 바라보면 한숨만 나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앞쪽 멀리 산비탈에 튀어나온 바위들을 구경하고, 뒤를 돌아봐 창녕 시내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번갈아 밟으며 1시간쯤 지나면 드디어 산성 서문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길 마지막 근처를 ‘환장고개’라 부르는데, 환장할 정도로 힘든 것은 아니다. 서문 이정표 앞에 올라서면 휙~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와~ 탄성이 터져 나온다. 너른 억새밭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 기분 좋게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오른쪽 배바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앞선 사람들이 출렁거리는 억새 물결 따라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더니 불쑥 옹골찬 바윗덩어리들이 머리를 내민다. 천지개벽 때 배를 묶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배바우다. 올해 2월 사고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곳이다. 바위에 올라 잠시 묵념으로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산성 조망을 마음껏 즐긴다. ●창녕조씨 득성 설화 간직한 ‘삼지’ 배바우 아래에는 나무 한 그루가 우뚝한 남문이 있다. 이곳에 창녕조씨 득성(昌寧曺氏 得姓) 설화를 간직한 삼지(三池)가 있는데, 신라 진평왕 때 태사공 조계룡(창녕조씨 시조)이 연못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남문에서 동문은 지척이고, 동문 밖으로 이어진 길은 드라마 허준 세트장을 거쳐 관룡산으로 이어진다. 동문에서 제법 가파른 산성길을 따르면 화왕산과 관룡산이 이어진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여기부터 정상까지가 진달래 능선이다. 봄철이면 화왕산의 가장 화려한 진달래 군락을 볼 수 있다. 서걱거리는 억새에 묻혀 15분쯤 나아가면 정상 직전의 작은 봉우리. 뒤돌아서면 배바우 못지않은 전망이 펼쳐진다. 쏟아지는 날카로운 햇빛에 억새들은 몸이 타들어 가는 듯 아우성을 지르고, 그 흔들림 너머로 관룡산(740m)과 멀리 밀양의 영남알프스 스카이라인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정상에서는 창녕 시내와 저무는 빛을 튕겨내는 우포늪을 감상하면서 산성 한 바퀴를 마무리한다. 하산은 서문으로 내려서지 말고, 정상에서 곧장 능선을 탄다. 솔숲을 10분쯤 내려가면 길이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어지면서 도성암을 거쳐 자하곡 삼림욕장에 닿는다. 글 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창녕 나들목으로 나온다. 10분 거리에 화왕산 자하곡 입구가 있다. 서울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녕행 버스가 09:45 11:20 14:45 16 17:05분에 있다. 수도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서울역에서 06:00 동대구행 KTX를 이용하고, 서대구시외터미널에서 창녕행 버스를 타면 된다. 창녕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30분쯤 걷거나 택시를 이용한다. 부곡온천 가는 길의 전통음식점 도리원(055-521-6116)은 대나무통밥과 제철 장아찌가 일품이다.
  • 명량대첩 재현 국경·지역 뛰어넘어 400년 갈등 깨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한·중·일’ 장군들의 후손이 명량해전 전투 현장에 모였다.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 울돌목 바다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판옥선 12척(공식기록)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한 대승을 기념해 전남도와 해남군, 진도군이 명량해전축제(9~11일)를 공동으로 마련했다. 한산대첩축제를 개최하는 경남 통영시도 삼국의 평화를 위해 축제에 우정 참가했다. ●한·중·일 장수 후손들 한자리에 10일 오전 진도대교 위에서는 명량해전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패들이 상여 3기에 안치됐다. 이날 이 충무공 후손은 물론 명나라 진린 장군의 후손, 일본 구루시마 미치후사 장군 후손, 난중일기에 기록된 ‘민초 전사’ 오극신·양응지의 후손, 관광객 등이 참여해 국화꽃 1000송이를 다리 아래 울돌목으로 일제히 던졌다. 이어 이번 축제의 백미인 명량해전을 재현하는 행사가 한 편의 영화처럼 연출됐다. 축제라고 해도 영화 ‘신기전’과 ‘해운대’의 특수효과팀, 스턴트팀이 참여해 화약과 폭죽 등을 터뜨려 사실감을 더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과 일본군의 아타케부네(안택선) 등을 대신해 작은 어선 100여척을 동원하고 수군으로 분장한 300여명이 직접 물로 뛰어들기도 해 관람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울돌목에서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면서 거센 물살 흐름이 일시 정지되자 판옥선과 왜선이 전투대형으로 갈라서더니 이내 뒤엉켜 연막탄을 쏘아올렸다. 배에는 형형색색의 깃발 500여개가 내걸리고 곳곳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명량해전은 모함 끝에 다시 해전에 나선 이 충무공이 막강한 왜군을 유인해 좁은 벽파진(폭 280~320m)을 통과하는 왜선을 일자진 공격으로 격파한 대첩이다. 총공격에 나선 왜군은 6명의 장군 중 구루시마 장군이 현장에서 전사하는 수모를 겪었다. ●국화 1000송이 띄워 희생자 넋 기려 구루시마 장군의 후손인 무라세 마키오(69·구루시마현창보존회 사무국장)는 “울돌목은 선조의 안타까운 혼이 서려 있는 곳”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축제의 주제처럼 한국과 일본 모두가 평화와 상생을 잊지 말고 서로 도우며 잘살아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린 장군의 후손이자 귀화인 진방식(70·전 교육자)씨는 “할아버지는 명나라의 조선구원군 수군도독으로 500여척을 이끌고 강진, 완도 해전에 참여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고 전했다. 진린 장군의 후손은 그의 유언대로 명나라가 멸망하자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 황조마을에 정착했다. ●133척 해전 재현 다큐멘터리 보는 듯 난중일기에 나오는 오극신의 후손 오상민씨는 “울돌목 전투에서 충무공을 도와 왜선을 무찌르는 데 큰 공을 세운 할아버지를 기억해 축제 현장에서 헌화와 제례를 할 수 있어 의미 있고 고맙다.”고 강조했다. 이번 축제에 통영시는 초등학생 50여명을 보내 군점무(군대 점호를 춤으로 엮음)를 무대에 올렸다. 축제 마지막 날인 11일 진도대교에서는 상여 5기에 수백여장의 만장 행렬이 뒤를 따랐다. 망자의 혼을 달래는 진도 씻김굿은 보는 이들을 숙연케 했다. 진도군 전체 786개 마을에서는 마을별 역사와 전설 등을 적은 깃발 786개를 진도대교에 내걸어 주민참여형 축제다운 모습을 보여 줬다. 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약탈한 고대유물로 장사하는 박물관들 그리고 끊이지 않는 반환요구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선 전기 화가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이야기를 듣고 그렸다는 몽유도원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임진왜란 때로 추측할 뿐, 언제 일본으로 유출됐는지 확실하지 않은 몽유도원도가 13년 만에 잠깐 고향 나들이를 한다는 소식에, 이 걸작을 소장하고 있는 일본 덴리대의 으름장에 밀려 국내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3~4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1분 정도 구경했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는 몽유도원도 외에도 우리 것이지만, 해외에서 빌려와야 했던 문화재들이 수두룩했다. 빌려준 곳도 각양각색이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LA카운티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컬럼비아대학 도서관, 일본 오쿠라 문화재단 등등. 최근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은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규모가 7만 6000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한 수치가 이렇다. 그런데 1955년 일본으로부터 처음 환수가 시작된 뒤 국내에 돌아온 문화재는 10개국 8154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시킨 말이 떠오른다. “이거 왠지 씁쓸하구만.” 이집트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 천장에는 천궁도의 석고 복제품이 있다. 진본은 세계적인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가지고 있다. 골동품 수집가 세바스티앙 루이 솔니의 대리인들이 1821년 폭약을 터뜨리며 진품을 뜯어내 프랑스로 가져갔다. 솔니는 이를 프랑스 국왕 루이 18세에게 팔았다. 루브르는 관람객들에게 이집트 천문학에서 사용된 난해한 형상과 상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이 장엄한 미술 작품의 약탈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역사와 유물, 문화재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박물관에게 부끄러운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입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에 한해서다. 루브르의 3대 유물 가운데 하나인 승리의 여신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부영사 샤를 샹푸아소는 1863년 사모트라케 섬을 탐사하다가 산산조각난 이 조각상을 발견했다. 루브르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이를 복원해 냈다. 루브르가 승리의 여신 입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를 발견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고 유익한 역할을 했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에 다름 아닌 셈이다. 뉴욕타임스의 문화부 기자 및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샤론 왁스먼은 ‘약탈 그 역사와 진실’(오성환 옮김, 까치 펴냄)을 통해 약탈당한 고대 유물과 현재 그 유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반환 전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8개국 10여개 도시를 찾아가 수십 명을 인터뷰하고 취재했다. 상당수 고대 유물에 대한 입수 경위에 의문이 제기됐고, 반환을 요구받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J 폴 게티 박물관 등 서양의 4대 박물관을 찾아가 관계자들을 만났다. 또 적극적으로 고대 유물 반환을 요구하고 추진하고 있는 이집트,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를 찾았다. 언론을 통해 압력을 가하는 이집트 고유물 최고위원장인 자히 하와스, 법적인 기소도 불사하는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피오릴리 검사, 특종 보도로 유물 반환에 기여한 터키의 언론인 오르겐 아자르 등의 입장에서는 서양의 대형 박물관은 고대 유물의 약탈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장과 마찬가지다. 서양 박물관 쪽 입장은 다르다. “그리스 조각상이 그리스에 있었을 경우 누가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이런 유물들이 위대한 것은 루브르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루브르의 수석공보관 아지 르롤의 말이 이를 웅변한다. 박물관들은 고대 유물들이 원래 자리를 떠나 제대로 보관됨으로써 고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이 탄생했고, 유물들이 파괴로부터 구제받았다고 항변한다. 반환 문제에 있어서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국가들에 무조건 유물을 반환하는 것은 유물의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때 이집트 정부가 피라미드의 돌을 이용해 공장을 지으려고 했다는 사실 등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에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문명 발전에 공헌한다는 신념보다는 유물 소유에 대한 탐욕이 출발점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약탈된 유물의 반환을 요구하는 일부 국가들의 보존 역량을 믿을 수 없어 반환은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서양 박물관들이 유물 취득 경위를 선별적으로 왜곡해 유물을 빼앗긴 나라들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것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유네스코에 약탈 문화재 반환 규정이 있지만 1970년대 이후에 거래된 약탈 문화재에만 적용되며 여전히 도굴, 밀수입 등을 통한 약탈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서양 박물관들은 유물 약탈 역사를 밝히고,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출처 국가들과 대여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서양 박물관들은 출처가 의심스러운 유물의 구입을 근절하고 출처 국가들과 공조해 유물을 공동관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한다. 2만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HAPPY KOREA]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 꽃길

    [HAPPY KOREA]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 꽃길

    매년 3월이면 봄바람을 타고 온 노란빛 구름이 한 달 동안 머물렀다 떠나간다. 가을에는 탐스러운 붉은빛 열매가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곳,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 2·3리 ‘산수유 마을’이다. 아직 도회지의 때가 묻지 않은 듯 옛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할매·할배바위에 새끼줄로 엮은 고추와 숯이 그러했다. 산수유로 유명한 또 다른 지역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비하면 의성 산수유 마을에서는 가꿔지지 않은 야생의 멋마저 느껴졌다. 산수유 마을은 숲실마을(화전2리)과 전풍마을(화전3리) 둘로 나뉜다. ‘숲실’은 숲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라는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이다. 조선 임진왜란 때부터 마을에 다래와 머루 넝쿨이 어우러져 넓은 숲을 이뤄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전풍’은 마을에 중풍에 효과가 있는 산수유 나무가 많고 산 좋고 물이 좋아 끊임없이 풍년이 든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산수유 마을 입구로부터 10리(4㎞)가 넘는 산수유 길이 조성돼 있다. 봄철 산수유 꽃이 피면 마을은 노란 눈이 내린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산수유 나무는 무려 3만여 그루에 달했다. 그 나이도 짧게는 30년부터 길게는 300년이 넘는다고 했다. 산수유 나무가 화전리를 온통 뒤덮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의 가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전리 마을 주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시절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한약재로 쓰이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길러 내다팔기로 마음먹고 마을에 산수유 나무를 하나 둘 씩 심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염원이 현재 화전리를 전국 최고의 산수유 마을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산수유 열매는 가을인 8~10월에 붉게 익는다. 맛은 단맛, 떫은맛, 신맛이 동시에 난다. 열매에는 동맥경화 예방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인 리놀산과 체내의 불필요한 수분 배출을 촉진하는 사포닌 등이 다량 함유돼 있다. 산수유 열매는 보통 한약재료로 쓰인다. 몸의 장기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 내과질환에 좋으며, 원기 회복에 효능이 있다. 또한 눈을 밝게 하고, 특히 머리카락이 희어지지 않게 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무릎이 시큰거릴 때, 어지럽거나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식은땀이 날 때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산수유의 화려한 꽃망울로 매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산수유 마을이지만 지방도에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할 만큼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게다가 마을까지의 진입로가 꼬불꼬불해 관광객들이 쉽게 찾기 힘들며 주차여건도 좋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행정안전부와 의성군청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화전 2·3리에 걸친 산수유 마을에 넓은 주차공간과 부대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산수유 꽃길 20리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도 한창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산수유 꽃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탐방로가 올해 안으로 들어설 계획이다. 그 길이만도 약 20리(8㎞)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친환경적인 꽃길 조성을 위해 도로 포장은 하지 않으며, 농사철에는 경운기 통행도 겸하게 해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의 생업과도 연계된 꽃길로 탄생할 전망이다. 지난 3월 산수유 마을에서는 ‘노란 꿈망울 향연’이라는 이름으로 산수유 꽃 축제가 열렸다. 23일부터 4월10일까지 19일간 열린 행사 기간 동안 3만여명의 관광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축제기간에는 산수유 꽃길걷기 체험, 산수유 차·와인 시음, 산수유 찰떡 만들기, 알쏭달쏭 산수유 퀴즈 등 산수유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KBS 전국 노래자랑, 벨리댄스, 시화전, 시골장터 등의 다채로운 행사도 열렸다. 행사기간 동안 열린 토속음식장터에서는 산수유 국수, 산수유 동동주, 산수유 두부 등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김학수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계장은 “산수유 꽃길 20리 조성 사업으로 의성 산수유 마을이 환경 친화적인 휴양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의성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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