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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문인 거닐던 ‘이백리 양반길’ 생긴다

    옛 문인 거닐던 ‘이백리 양반길’ 생긴다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 송강 정철 등 옛 문인들의 발자취를 느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명품길이 조성된다. 충북 괴산군은 내년까지 국비 10억여원을 지원받아 군자산 일원에 위치한 갈은·화양·선유·쌍곡 등 4개 계곡과 산막이옛길을 연결하는 총 80㎞의 친환경 명품 녹색길인 ‘이백리 양반길’을 조성, 트레킹 관광코스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현재 실시설계 중이며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양반길은 총 7개 코스로 나뉜다. 1코스는 이미 조성돼 있는 산막이옛길(8㎞)로, 괴산댐~산막이옛길~갈론마을, 2코스는 갈은구곡길(13㎞)로 갈론마을~갈은구곡~사기막마을, 3코스는 용추폭포길(7㎞)로 사기막마을~용추골~후영리이다. 4코스 화양구곡길(14㎞)은 후영리~화양구곡~송면, 5코스 선유구곡길(11㎞)은 송면~선유동~중관평, 6코스 절말길(12㎞)은 중관평~제수리재~절말, 7코스 쌍곡구곡길(15㎞)은 절말~쌍곡구곡~호롱소~다파리재~괴산댐 구간이다. 소요시간은 3코스가 3시간으로 가장 짧고, 나머지 6개 코스는 7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계곡마다 펜션들이 즐비하고 민박도 가능해 하루 이상을 묵으며 걸을 수도 있다. 양반길의 자랑거리는 선현들의 삶이 묻어나는 옛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양반길을 걸으며 마주치게 되는 계곡들은 퇴계, 우암, 송강 등 많은 유학자와 문인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사색에 잠기기 위해 즐겨찾던 곳이다. 선유계곡과 화양계곡은 절경에 반한 퇴계와 우암이 직접 명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양계곡 인근에는 우암의 뜻을 받들어 제자가 지은 만동묘라는 사당도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을 제사지내기 위해 1704년에 지어졌다. 군은 녹색농촌체험마을과 아토피문화생태마을 등 각종 체험시설과 연계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인근에 조선시대 재현마을도 조성하는 등 이곳을 관광명소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양반길 곳곳에 농산물판매장 설치도 계획하고 있다. 괴산군 현민호 관광담당은 “현대적인 시설물은 코스 안내판 정도만 설치할 방침.”이라면서 “양반길과 괴산의 명산인 군자산과 칠보산 등산길을 연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괴산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이순신은 지독, 거북선은 표절 소지”

    “이순신은 지독, 거북선은 표절 소지”

     “인간은 지금까지 손꼽은 다양한 식단에 진미의 으뜸으로 꼽히는 메뉴를 추가한다. 바로 동료인 ‘인간’이다. 브라질의 한 현인(賢人) 추장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적을 죽였으면 그냥 버리는 것보다 먹는 것이 백 번 낫다. 죽는 게 끔찍하지, 먹히는 게 끔찍한 건 아니다. 나는 인육보다 맛있는 사냥감은 알지 못한다. 당신네 백인들은 정말 음식을 너무도 가린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 문명사학자 윌 듀런트(1885~1981)의 ‘문명 이야기’(6권, 안인희·왕수민 등 옮김, 민음사 펴냄)는 전체 시리즈가 11권이나 되는 데다 각 권의 부피가 500쪽이나 된다. 하지만 방대한 양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동양 문명부터 시작해 나폴레옹 시대까지 듀런트는 마치 할아버지가 신기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위와 같은 생생한 실례로 독자들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듀런트는 컬럼비아대와 뉴욕의 한 장로교회에서 역사와 철학 등을 강의한 것을 제외하면 평생을 ‘문명 이야기’ 집필에 바쳤다. 뉴욕의 교육 실험학교인 페레르에서 교사와 제자로 처음 만난 아내와 함께 매일 8~14시간 50여년에 걸쳐 대작을 완결했다.  1935년 듀런트는 ‘문명 이야기’ 1권을 발표하면서 “요즘 같은 청각적인 시대에는 세계 시민이나 관심을 둘 법한 골치 아픈 내용에 값까지 비싼 책이 인기를 누릴 리 만무하다.”며 머리말을 통해 책의 성공을 걱정했다.  기우와 달리 이집트, 인도, 중국, 일본,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지를 직접 돌며 완성한 시리즈는 미국 퓰리처상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보통 사람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로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의 찬란하고 거대한 파노라마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듀런트는 힘차고 간결하면서도 재치가 넘치는 문장으로 인류 지식 축적의 결과물인 문명을 설명한다. 특히 동양 문명 편에는 조선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나오는데 이순신 장군을 ‘지독한 한 조선 장수’라고 한 표현이 재미있다. 거북선에 대해서는 “미국 남북전쟁 때의 남북군 철갑선인 모니터호와 메리맥호를 미리 표절하기라도 한 듯한 철갑선”이라고 설명한다.  일본 문화에 관해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대한 원숭이 얼굴’이라고 부르는 등 자세히 설명한다. 반면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어 아쉽다. 시리즈 가운데 동양 문명과 그리스 문명, 르네상스 편만 각 2권으로 번역됐으며 나머지도 준비되는 대로 출간된다. 각 권 2만 5000~3만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달구벌 달굴 문화행사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간 중 대구는 축제열기로 가득 찬다. 대구시와 삼성전자가 함께하는 ‘프로젝션 매핑’이 펼쳐진다. 첨단 기술을 활용해 3D 입체 영상을 고해상 프로젝터로 건축물 등에 투영하는 영상 퍼포먼스다. 대구 중구 동인동 대구시청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다. 건물 전체 10층 가운데 4층부터 9층까지를 덮으며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쏜 영상이 수를 놓는다. 아날로그 시대를 대변하는 톱니바퀴를 시작으로 디지털시대의 컴퓨터, 그리고 트랙을 뛰는 육상선수들, 스마트시대를 보여주는 다채로운 그림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시청광장 특설무대에서는 참가 선수단과 관광객을 위한 뮤직페스티벌 행사가 펼쳐진다. 국내외 정상급 가수들이 총출동한다. 한류스타 비를 비롯해 2PM, 씨엔블루, 세븐, 포미닛 등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경기장 주변과 선수촌, 도심에서는 전통문화 체험과 전시 등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마라톤 경기 때 대구의 이미지와 시민들의 응원열기를 중계카메라로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마라톤 코스 주변에서 축제를 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컬러풀 대구 페스티벌’ ‘동성로 축제’ ‘국제보디페인팅 축제’ ‘수성호반생활예술큰잔치’ 등이 대회 기간 중 열린다. 축제에는 대구시의 해외 자매도시들도 참여한다. 지역 예술동호인 220개 팀이 참가하는 이 행사에는 국악, 소리, 춤의 향연이 펼쳐진다. 경상감영공원 공연장에서는 대구무형문화재 인사들이 펼치는 명품 국악공연을 만날 수 있다. 산중 전통장터 ‘승시’가 팔공산 동화사에서 재현된다. 곳곳의 관광명소도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도심 한가운데에 조성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조선시대 대구읍성의 4개 정문 중 하나인 영남제일관(효목동 망우공원) 등이 대표적. 달서구 두류동의 유럽식공원 이월드(옛 우방타워랜드)도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순한 왜장 김충선을 기려 건립한 달성군 가창면의 녹동서원,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팔공산 갓바위 등도 새 단장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KT 특허 1000건 협력사 무상 양도

    KT 특허 1000건 협력사 무상 양도

    “한국의 중소기업 기술이나 상품을 평가해 보세요. 정말 놀라울 것입니다.”(이석채 KT 회장이 지난해 가을 글로벌 통신기업인 에릭슨 측과의 면담에서 한 요청) “좋은 제안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의 제안 이후 한국 중소기업들을 평가했더니 우리와 공동으로 비즈니스를 할 여지가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한국 중소기업을 선정하는 작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에릭슨 대표단이 지난 4월 KT에 보내온 답변) ●에릭슨도 2개사 해외진출 도와 KT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제11회 정보기술(IT) 최고경영자(CEO) 포럼 조찬 세미나에서 파격적인 동반성장 방안을 발표했다. 1000여건에 이르는 KT 보유 특허를 협력사에 무상으로 양도하는 방안이다. KT는 협력사에 제공하는 특허의 80%가 특허평가 B급 이상인 주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협력사에 특허를 무상 양도하는 건 드문 사례이다. KT의 국내외 등록 특허는 모두 1만 1000여건에 달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션 고란 에릭슨 중국·동북아 부사장도 특별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KT의 협력사 중 2개사를 선발해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한국 중소기업을 위한 윈윈(Win-Win) 프로젝트’이다. 에릭슨이 보유한 전 세계 182개 국가의 260개 기업 고객에게 우리 중소기업 솔루션과 제품을 판매하는 방안이다. KT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인 에릭슨이 한국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나선 데는 지난해 가을부터 KT의 거듭된 제안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션 부사장은 “KT가 강력하게 제안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1896년 구한말 때 한국 최초의 자석식 전자교환기를 판매한 회사가 바로 에릭슨이었다.”고 소개하면서 “오는 9월 안에 중소기업 2개사를 선정해 해외 진출을 위한 최종 계약을 완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석채 회장은 “앞으로 KT의 주요 특허들이 협력사에 대가 없이 양도된다.”고 강조했다. KT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는 협력사에 대해 동반성장 가점을 부여하고 구매 확대의 우대를 제공하기로 했다. 협력 중소기업의 자금운영 애로 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중도금 지급 제도도 신설해 다음 달부터 시행한다. ●자금난 지원 중도금 지급제 도입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 간 하도급 계약 시 정당한 이유 없이 원도급 계약 금액의 80% 미만으로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는 관행을 차단하고 ‘KT와 협력파트너의 공동 기획’이라는 동반성장 모델도 추진한다. 기획 단계부터 KT의 기획·마케팅·연구개발 전문인력이 참여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 회장은 포럼에서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기업만큼 열심히 하고 문제가 생기면 밤잠을 안 자고 일을 하는 데가 없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침략하지 않는다고 도취해 있다가 참혹한 역사를 맛보았다.”며 “대한민국 기업은 어떤 도전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게 이제는 중소기업과 함께 준비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돗토리시-거대한 모래조형물 돗토리 사구,바람이 나르고 시간이 빚다

    돗토리시-거대한 모래조형물 돗토리 사구,바람이 나르고 시간이 빚다

    돗토리 사구 등성이에 오르니, 시간의 알갱이가 파도에 밀려 육지에 오른다. 해풍에 날리는 그 가루는 허공을 낮게 흐르다 뭍을 감싼다. 그렇게 시간의 입자는 차곡차곡 쌓였다. 무려 10만년이다. 거대한 모래조형물 돗토리 사구 바람이 나르고 시간이 빚다 돗토리 사구 등성이에 오르니, 시간의 알갱이가 파도에 밀려 육지에 오른다. 해풍에 날리는 그 가루는 허공을 낮게 흐르다 뭍을 감싼다. 그렇게 시간의 입자는 차곡차곡 쌓였다. 무려 10만년이다. 속절없이 쓸리고 밀린 뒤에야, 날리고 나부낀 끝에야, 시간은 겨우 퇴적될 수 있었나 보다. 10만년이라는 시간은 가늠되지 않는 아득함으로 이미 소멸했지만, 그 아득함이 남긴 사구는 현존의 실체로서 불멸했다. 잿빛 하늘이었던 그날 역시 소멸하는 시간과 불멸하는 시간이 사구에서 만나는 듯 보였다. 수백만년 동안 진화해 온 인간의 발자국이 모래 위 여기저기서 재잘댔고, 그보다 더 이전부터 사막에 적응해 온 쌍봉낙타는 거기가 원래 저 살던 곳인 듯 심드렁히 제 등을 인간에게 내주었다. 그렇게 돗토리 사구에는 여러 겹의 시간이 교차했고 또 쌓였다.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돗토리시 www.city.tottori.lg.jp, 아시아나항공 www.flyasiana.com 1 돗토리 사구의 최고 높이 등성이인‘말의 등’과그밑에생성된‘오아시스’2 작은 모래기둥인‘사츄(사주)’3 돗토리 사구 샌드보드 4 모래 위에 새겨진 바람의 살결인‘후몬(풍문)’. 풍속 5~6m일 때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다고 한다 5 낙타를 타고 사구를 탐방할 수도 있다 6 각종 모래조형물들도 만날 수 있다 7 돗토리 사구 지하도 이 단층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0만년 세월이 켜켜이 쌓여 사구는 결집이다. 바람을 탄 모래가 모이고 모여 사구가 된다. 결집의 시간만큼 자라고 바람의 결대로 표정을 짓는다. 사구를 버무리는 시간과 바람은 끈질기고 신중해, 바위가 모래가 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리고, 바람에 실릴 수 있는 입자만을 골라서 나른다. 그래서 사구의 모래는 가볍고 또 고르다. 돗토리 사구는 멀고 또 높은 곳에서부터 왔다. 산맥에서 발원한 센다이가와강이 돗토리 사구의 젖줄이다. 부대끼고 부서진 바위는 자갈이 되고, 으깨지고 갈라진 자갈은 사구 앞 바다에 이르러 모래가 된다. 겨울철 바다의 거친 파도와 북서풍은 그 모래를 나르고 날랐다. 10만년의 시간과 바람은 그렇게 돗토리 사구를 빚어냈다. 해변을 따라서 16km, 육지를 향해서 2.4km 펼쳐진 거대한 모래조형물이다. 10만년 전부터 모래(고사구)가 쌓이기 시작했는데 이후 화산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가 그 위를 차지했다. ‘돗토리의 후지산’인 다이센산의 화산재는 물론, 멀리 규슈의 가고시마 화산재까지 쌓여 있다고 한다. 현재의 사구는 약 1만년 전부터 화산재 위에 다시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 아래부터 기반암-퇴적층-고사구-화산재-신사구가 켜켜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구 미술관’ 뒷산 절개지에는 그 단층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신비롭다. 일본의 다른 곳에도 사구가 있지만 돗토리 사구만큼 제대로 보존된 곳은 없다고 한다. 돗토리 사구를 포함한 이곳 ‘산인해안(Sanin Kaigan Geopark)’이 일본 최초의 ‘지오파크(Geopark)’로 지정된 데 이어 2010년에는 세계지질공원으로 공식 인증된 이유다. 그만큼 지질, 지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돗토리 사구는 살아 있다 사구 동쪽 입구 언덕에 오르면 육지 깊숙이 파고든 사구가 저 멀리 동해 바다와 함께 한눈에 들어온다. 그 원경 속에는 아련한 무엇인가가 함께 묻혀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일정한 패턴으로 지속된 바람의 고집은 사구에 다양한 표정을 선사했다. 솟구쳤다가 가라앉고 드넓게 펼쳐지기를 반복한다. 그 굽이마다 모래산과 모래호수, 모래평야가 터를 잡았다. ‘말의 등’으로 불리는 언덕은 47m로 우뚝하고, 그 밑으로는 ‘오아시스’가 잔잔한 호수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 너른 평야에는 사구에서만 볼 수 있는 사구식물들이 자라며 독특한 풍광을 만들고 있다. 사구 속으로 들어가면 바람과 모래의 협연이 펼쳐진다. 풍속과 풍향에 맞춰 사구 표면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후몬(풍문)’을 그려내고, 이물질을 이고 있어 바람에 휩쓸리지 않은 모래는 작은 기둥처럼 ‘사츄(사주)’로 남는다. 비탈에 아슬아슬 쌓였던 모래덩이가 일시에 무너져 내리면 모래 사면을 따라 파도 같은 ‘사렌(사렴)’이 흘러내린다. 살아있는 사구의 생동감이다. 돗토리 사구는 그렇게 사구로서 온전했다. 돗토리 사람들의 애정이 큰 버팀목이었다. 돗토리 사구는 한때 생명력을 잃었었다. 과거처럼 충분한 모래가 공급되지 않는데다가 각종 외래 식물들까지 침투해 모래의 자연스런 이동과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대로 방치했다면 돗토리 사구는 소멸됐을 것이다. 돗토리 사람들은 지금도 매년 정기적으로 외래식물종 제초 활동을 벌이는 등 돗토리 사구에 갖은 애정을 쏟고 있다. 그 애정은 돗토리 사구의 불멸에 대한 희구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 Travie info. 돗토리 사구를 색다르게 즐기는 법┃돗토리 사구는 마차나 낙타를 타고도 탐방할 수 있다. 마차 유람 프로그램은 약 15분 정도 소요되며 어른 1,000엔, 어린이 600엔이다. 낙타에 올라 사막 한가운데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낙타를 타고 사구를 거니는 ‘낙타유람’은 1인 1,800엔, 2인 3,000엔이다. 기념촬영용 낙타 타기는 1인당 500엔. www.rakudaya.info 여름에는 사구 레저를 만끽할 수 있다. 샌드보드 2시간 코스는 지도비 및 장비렌탈비용 등을 포함해 2,500엔. 4월부터 11월 사이에는 행글라이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하루 코스 비용은 1만1,000엔부터다. 3~12월 사이에는 패러글라이딩도 운영된다. 반일 코스 요금은 6,500엔부터다. 돗토리 사구 지오파크 센터┃돗토리 사구 동쪽 입구에 있으며 안내센터 역할을 한다. 사구의 지층 구조를 표본과 영상을 이용해 소개하고 있어 탐방 전에 들르면 사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입장료 무료. www.bes.or.jp 인근의 돗토리 사구 미술관에 들르면 각종 모래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내년에는 별도의 모래 조형물 전시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1 돗토리 성에 오르면 시내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1907년에 건축된 서양식 건물‘진푸카쿠’도 내려다보인다 2, 3 남녀 주인공이 산책했던 하쿠토 해안과 하쿠토 신사 참배객들이 걸어 놓은 각종 소망들 4 드라마 <아테나>의 남녀 주인공이 정겹게 식사를 했던‘카페 소스’ 드라마 <아테나>의 자취를 찾아서 종영된 지 꽤 됐지만 일본 돗토리현에는 아직도 드라마 <아테나>의 여운이 짙다. 남녀 주인공(정우성, 수애)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등이 돗토리현 곳곳에서 촬영됐는데 돗토리시도 그중 하나다. 정우성과 보아의 데이트 장면이 촬영된 돗토리 사구 이외에도 돗토리시의 촬영지는 산재해 있다. 하쿠토(Hakuto) 해안과 하쿠토 신사는 남녀 주인공이 산책하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아름답게 비쳐졌다. 하쿠토 신사는 옛 이야기 속의 토끼를 모시는 신사인데 올해 토끼해를 맞아서 참배객이 부쩍 늘었다고. 신사 입구에서 파는 ‘토끼빵’도 먹어 보길 권한다. 1개 150엔. JR돗토리역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소요되며 하쿠토 신사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카페 소스(Cafe Source)’는 남녀 주인공이 정겹게 식사를 했던 장소다. <아테나> 촬영지임을 알리는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는 등 적극 홍보하고 있다. 남녀 주인공이 마주 보고 앉았던 계단 옆 테이블에서 그들이 먹었던 카레를 맛보길 추천한다. JR돗토리역에서 직선 도로를 8분 정도 걸으면 찾을 수 있다. 진푸카쿠(Jinpukaku)는 돗토리 성터 입구 부근 돗토리현립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서양식 건물이다. 1907년 건설됐는데 돗토리현에서 처음으로 전등을 사용한 건물로도 유명하다. 인근의 돗토리 성터에 오르면 돗토리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돗토리 현청, 와라베관, 돗토리워싱턴호텔 등 <아테나> 촬영지들은 돗토리 시내투어의 재미를 키운다. 돗토리에서만 생산되는 ‘두부 어묵(치무라)’ 등 군것질 거리도 숱하니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돗토리시 시내투어를 즐겨볼 일이다. 아늑한 시골 온천마을, 시카노 돗토리 시내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거리에 자리한 시카노 마을은 아늑하고 조용한 시골 온천마을인데, 역사적으로도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과 학익진의 전법으로 왜군을 초토화한 당포해전을 기억하는지. 그 당포해전의 희생양이 된 왜군의 수장이 바로 이곳 시카노 마을의 성주 ‘가메이 코레노리’였다. 그는 1557년 시마네현 동부에서 태어났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돗토리성 공격에 참가해 그 공을 인정받아 시카노의 성주가 됐다. 1592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공, 즉 임진왜란에도 참가했는데 당포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게 대패했다. 모든 전함이 파괴된 것은 물론 왜군 대부분 전사했다. 가메이 코레노리 역시 전사했다. 재미있는 것은 시카노 성터 입구에 이런 사실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와 함께 설명돼 있다는 점. 그들에게는 아픈 역사였던지라 패배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최대한 수위조절을 했지만 적장의 본거지에서 승리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분명 뿌듯한 경험이다. 시카노 마을에서의 점심은 메밀국수여야 적당하다. 메밀가루 반죽에서부터 삶기까지 직접 체험하는 것은 물론 자신만의 메밀국수로 식사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1 메밀국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만든 메밀국수를 맛볼 수 있다 2 시카노 마을의 아담한 카페 3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한 시카노 성주의 이야기를 담은 안내판. 시카노 성터를 오르는 길 입구에 설치돼있다 4 코제니야 온천호텔은 돗토리 시내에 있어 편리하다 5 온천호텔에서 맛볼 수 있는 가이세키 요리 6 시카노 여행시 실속 숙박지로 적합한 온천호텔‘산시엔’ ▶ Travie info. 돗토리시 가는 법┃아시아나항공(www.flyasiana.com)이 인천-요나고 노선을 매주 화·금·일요일 주 3회 단독 운항하고 있다. 화요일 및 일요일 출발편은 인천에서 오후 12시30분에 출발하고, 금요일편은 오전 9시30분 출발한다. 비행시간은 1시간30분. 요나고공항(기타로공항)에서 돗토리시 시내까지는 고속도로나 JR을 이용해 닿을 수 있다. 실속 있는 온천호텔┃‘코제니야’와 ‘산시엔’은 저렴하면서도 알차게 일본 온천호텔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이다. 돗토리시 시내에 있는 ‘코제니야(Kansuitei KOZENIYA Hotel)’는 푼돈이나 잔돈 정도로 부담 없이 묵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서비스나 시설까지 푼돈인 것은 아니다. 노천탕과 대욕장은 물론 가족탕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www.kozeniya.com 산시엔(Shikano Onsen Sanshien)은 시카노 마을을 여행할 때 이용할 만한 온천호텔이다. 일본식 전통 다다미방보다는 서양식 객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본관과 신관으로 구분돼 있어 비교적 규모가 크다. 1층 대욕장 및 노천탕과 함께 3층에 전망 목욕탕도 갖추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방사능 공포는 없다” 일본인의 성지 시즈오카

    “방사능 공포는 없다” 일본인의 성지 시즈오카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한·일 축구 국가대항전은 한국인의 눈길과 숨결을 사로잡는 ‘피 말리는’ 승부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져도, 일본만큼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자존심 때문이지요. 그래서 국내 한 방송인은 1997년 9월 ‘도쿄 대첩’에서 한국의 승리 소식을 전하며 “후지산이 무너집니다.”라는 표현을 남겼을 겁니다. 후지(富士)산이 곧 일본이며, 일본 국민에게는 성지(聖地)와도 같기 때문이죠. 이러한 후지산의 고향이자 일본 최대의 녹차 산지가 바로 시즈오카(靜岡)현입니다. 시즈오카는 고요했습니다. 일본을 둘러싼 ‘방사능 공포’는 남의 나라 일인 듯했고, 지천으로 널린 녹차 밭과 편백나무 숲은 싱그러운 녹음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맞닿은 日 최대 녹차산지 시즈오카를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다소 긴장하거나 겁을 먹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공항이 해안가와 같은 평지에 있는 것과 달리 시즈오카 국제공항은 해발 132m의 산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덕에 끊어질 듯 끝없이 펼쳐진 녹차 밭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있다. 시즈오카는 일본 녹차 생산량의 45%를 차지하는 일본 최대 녹차 산지다. 다도(茶道)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최고의 맛과 향을 자랑한다. 차 재배에 적합한 따뜻한 햇볕과 남태평양이 시작되는 스루가만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후지산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맑고 깨끗한 물이 깊고 그윽한 맛을 빚어낸다. 특히 일본 3대 명차로 손꼽히는 교쿠로(玉露)차는 봄에 찻잎을 따기 전 차밭을 나무덮개로 덮어 둔다.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 덕에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은 줄고, 녹차 본연의 맛과 향이 찻잎에 밴다. 일본의 차 문화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오카베의 ‘교쿠로노사토’(옥로차의 마을)를 방문하는 게 좋다. 일본식 전통 정원을 바라보며 다도를 배울 수 있고, 쌉싸래하면서도 향긋한 녹차를 음미할 수 있다. 마키노하라시에 있는 ‘그린피아 마키노하라’도 차 애호가라면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찻잎 따기와 덖기 등 차에 관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증기기관차, 시간을 거슬러 달리다 일본인의 철도 사랑은 유별나다. 전국적으로 철도 관련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고, 영화 ‘철도원’ 등 문화·예술 작품도 다양하다. ‘철도 왕국’ 일본에서도 철도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 바로 시즈오카다. 무연탄을 때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는 증기기관(Steam Locomotive)의 머리글자를 따서 SL이라고 부른다. 가나야역에서 출발해 종점인 센즈역까지 40㎞ 구간을 약 90분 동안 달린다. 육중한 검은색 기관차가 “뿌우~뿌우~”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철이를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노년의 여성 승무원이 하모니카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더욱 향수에 젖게 한다. 그 90분 동안 창밖으로는 비췻빛 오이가와 강물과 수천년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우거진 산림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1000m를 나아가는 동안 90m의 높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오이가와철도 아카와선’(일명 삼림철도)도 빼놓을 수 없는 흥밋거리다. 오이가와 강 상류의 오쿠오이 계곡을 천천히 거슬러 오르는 철도로, 센즈에서 이카와까지 25.5㎞를 운행한다. 철도와 열차 한가운데 부분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방식으로 산비탈을 오르는 색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흔적 니혼다이라(日本平)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시즈오카의 대표 관광지다. 일본 3대 미항(美港)인 시미즈항을 끼고 있는 해발 308m의 구릉지로, 맑은 날이면 시미즈항 너머 후지산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의 일출과 일몰은 감탄을 넘어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니혼다이라 정상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약 5분 정도 이동하면 일본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3~1616)의 유골이 묻힌 구노잔도쇼쿠(久能山東照宮)에 발이 닿는다. 에도 막부 시대 초대 쇼군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그의 지지 세력을 제거하고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해 천하통일을 이뤘다. 또 임진왜란으로 악화된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회복하고 조선통신사를 통해 ‘평화의 시대’를 연 인물로 일본인의 추앙을 받고 있다. 이곳의 신전(곤겐즈쿠리·일본 전통 건축양식)과 옻칠, 극채색의 사전(신사의 신체를 모신 건물) 등은 에도시대 초기의 대표적 건물이다. 50년 주기로 옻칠 등을 새로 하는데, 칠하는 기간만 3년이 걸린다. 지난해 국보로 지정됐다. ●그날의 피로는 노천탕에서 일본이 한국과 이웃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국외 여행이다. 시즈오카 곳곳을 눈에 담고 다니다 보면 이내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 온천을 찾으면 정말 귀신같은 회복력을 체험하게 된다. 시즈오카의 온천지구는 20곳이 넘는데 대부분 한적한 산속이나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중 스마타쿄 온천은 대자연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천연 온천으로 유명하다. 단순 유황천으로,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로 만들어 준다고 해 ‘미인을 만들어 주는 탕’으로 불린다. 일반 온천수와 달리 걸쭉한 느낌이 들며 피부는 물론, 신경통과 관절염 등에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의 자존심인 후지산과 세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녹차. 태평양의 시원한 바람과 상쾌한 온천. 그리고 유서 깊은 역사. 시즈오카는 여행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지난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시즈오카현 관계자는 “시즈오카의 평소 방사능 검출량이 서울 등 한국 주요 도시보다 상당히 낮은 편”이라며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현과 400㎞가량 떨어진 데다 한국보다 방사능 수치가 낮으니 안심하고 방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시즈오카(일본)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여행수첩 ▲ 항공편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이 매일 인천~시즈오카 직항편을 운항한다. 단, 대한항공은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잠정적으로 운항을 중단하고 있다. 2시간 10분 소요. ▲날씨 6월 말부터 후지산 만년설이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한다. 후지산 등반은 7월 1일부터 2개월간 가능하다. ▲맛집 후지산 만년설이 녹은 물에 산 채로 풀어 놓았다가 요리하는 미시마 장어덮밥이 유명하다. 2000엔(약 2만 7000원)선. 아마기의 고추냉이 아이스크림도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맛으로 유명하다. ▲숙박 스마타쿄 온천 지구에 있는 스이코엔 료칸(旅館)이 깔끔하고 아늑하다. 일본 전통식 다다미 방으로, 노천 온천도 즐길 수 있다. ▲주변 관광지 이즈 반도의 도가시마 섬은 일본 최고의 일몰 명소로 꼽힌다. 시미즈항에서 쾌속선으로 65분, 육로로 2시간 40분가량 걸린다. 가케가와시의 가케가와성과 시다초의 고야마성도 우아하면서 고풍스럽다.
  •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100大 사건을 추적하다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100大 사건을 추적하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로 시작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유명한 동요가 있다. 동요가 인물로 한국사를 정리했다면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이근호·박찬구 엮음, 청아출판사 펴냄)은 고조선과 한나라(중국) 전쟁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사건으로 한국사의 흐름을 관통한다. ●고조선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 ‘또 하나의 교과서’ 역사적인 사건의 인과관계를 하나하나 추적해 나가다 보면 한국사는 딱딱한 책이 아니라 풍성한 이야기가 담긴 나무로 꽉 찬 거대한 숲처럼 여겨진다. 각각의 사건에 지도, 관련 사진, 더 알아보기 등 관련 자료를 추가 구성해 교과서처럼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엮은이 이근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은 “사건으로 역사에 접근한 책들도 있었지만 한국사 전체를 추적한 경우는 많지 않다.”며 “역사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출해 한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100가지 사건은 연대순으로 선정됐다. 이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음에도 편년이 확정되지 않은 사건은 불가피하게 빠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책에서는 이를 보완하고자 해당 사건이 벌어진 시대의 주요 인물 및 얽힌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첨부하고, 시각적으로 이해를 돕는 도판까지 곁들였다. 관련 자료가 풍부해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한국사를 전공한 현직 기자가 쓴 글이기에 교과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금 벌어지는 사건을 글로 중계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사육신 사건은 “나리(세조)가 나라를 도둑질했다.”, “어떻게 공신으로서 배신을 할 수 있는가.”, “단종의 복귀를 위해 후일을 기약했을 뿐이다.”, “내가 내린 녹을 먹지 않았느냐.”, “나리의 녹을 먹은 적이 없다.”는 세조와 성삼문(사육신 가운데 한 명)의 피 튀기는 대화로 요약된다. ●학자·기자의 눈으로 중계하듯… 풍부한 자료·도판 100대 사건으로 꼽힌 고구려·신라·백제 삼국의 권력 다툼, 살수대첩, 귀주대첩, 임진왜란 등을 통해 외세의 침입에 대항한 우리 선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또 이름도 생소한 고려 시대 만부교 사건과 강조의 정변, 나선 정벌, 암태도 소작 쟁의 등에서는 미처 몰랐거나 자세히 알지 못했던 사건의 이면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고대, 고려, 조선에 그치지 않고, 8·15 광복 이후 다양한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진다. 엮은이 박찬구 서울신문 기자는 “결국 역사는 사람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인과관계를 갖기 마련”이라며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지 알기 쉽게 서술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사는 삼별초 봉기나 아관파천처럼 생경한 단어를 외워야 하는 까다로운 과목이거나 각색된 TV 드라마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을 통해 역사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생명체로 여겨질 것이다. 2만 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경북 ‘문화재 찾기 운동본부’ 뜬다

    경북도가 해외에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나섰다. 도는 임진왜란과 열강의 침탈, 일제 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불법·강압적으로 약탈된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우리 문화재 찾기 운동본부’ 를 이달 중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운동본부는 문화 주권 회복 차원의 범도민 환수 운동을 펼치게 될 순수 민간법인이다. 운동본부는 지난 1일 발기인 총회를 갖고 경북외국어대 이영상 총장과 노진환 영남유교문화진흥원장을 각각 회장과 고문으로 추대하는 등 21명의 이사회를 구성했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20개국 14만 560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일본에 있는 문화재가 6만 5331점으로 가장 많고, 미국 3만 7972점, 독일 1만 770점, 중국 7930점, 영국 3628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도는 이 가운데 경북 지역 문화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약탈 문화재 중에서는 도쿄박물관 내 한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오구라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가장 많이 약탈해 간 오구라 타케노스케가 수집한 문화재 1110점을 말한다. 대가야 ‘금관’을 비롯해 신라 ‘금동 관모’와 통일신라 시대 ‘금동 비로자나 불입상’ ‘은평탈육갑합’ 등을 비롯한 일본 내 한국 문화재 39점이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운동본부는 출범과 함께 해외 반출 문화재 실태 조사 및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도록 발간, 홍보대사 위촉 등의 활동을 하고, 국제학술포럼 및 문화재 약탈 피해국 국제회의 유치와 결의대회, 서명운동 등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또 외교적 마찰 등 문화재 환수가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각국 거주 교민 등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의 기증을 유도하고, 전문 업체를 통한 경매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경북도와 민간 법인이 함께 펼칠 우리 문화재 찾기 운동은 일회성·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중·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해 내실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박명재 세상 추임새] 다시 최명길을 생각한다

    [박명재 세상 추임새] 다시 최명길을 생각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사건은 조선 인조 때의 병자호란이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참화가 있었지만 비교의 차원을 초월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임금이 직접 세자와 문무백관을 이끌고 적장인 청 태종에게 나아가 무릎을 꿇고 수차례 절을 올리고, 청을 종주국으로 섬길 것을 맹약하고, 왕의 장남·차남·비빈·대신과 그 부인 등 200여명이 인질로 잡혀 갔다. 또한 청군이 철군하면서 약탈과 폭행은 물론 부녀자를 비롯한 무려 5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하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참상이요, 민족적 대굴욕이었다. 이 참혹한 국난의 와중에 최명길(崔鳴吉)이라는 주역이 등장한다. 그는 당시 이조판서로서 나라의 절망적 상황을 직시하고 위기에 빠진 왕과 백성을 구하고 역사의 단절을 막기 위하여 구국과 치국의 방편으로 화친이라는 실리를 택해 비록 굴욕적이지만 수차례 적진을 오가며 끝내 화의를 이끌어낸다. 당시 최명길이 항복문서를 작성할 때 예조판서 김상헌(尙憲)이 세 차례나 문서를 찢으며, 종묘사직을 욕되게 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하고 군주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불충한 역적이라고 맹비난하며 최명길의 목을 베라고 외쳐댔다. 성리학이 주조를 이루었던 사대부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명분과 논리였다. 최명길은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 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 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끝내 청과 화친을 이끌어낸다. 뒷날 두 사람은 청나라에서 다 같은 포로 신세로 조우하여 나라를 위한 마음은 같았으나 방법이 서로 달랐을 뿐이라고 화해한다. 요즈음 우리사회에 과거에 보지 못했던 국가적 과제와 정책 현안에 대한 갖가지 갈등과 혼란이 증폭되고 표출되어 어지럽기 짝이 없다. 세종시와 4대강 문제는 이미 정부정책으로 확정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갈등, 신공항 건설 및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 반값 등록금·무상 급식·부자 감세 철회 등 친서민 정책에 대한 여야·당내 갈등,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으로 고착된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보수와 진보진영의 갈등, 이동통신 요금 및 기름값 인하 등과 관련한 정부와 기업 간의 갈등 등 무엇이 정부정책의 목표와 방향인지, 어떤 정책방향이 옳고 바람직한지 쉽게 가늠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어떤 정부정책이 만고불변의 진리이거나 영원히 추구해야 할 국가적 이념과 가치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정부정책은 국가를 어떤 목적하에 어느 방향으로 조타해 나가야 한다는 분명한 역사의식과 함께 이 시대 인류가 추구하고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편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정책의 당위성과 방법론에 대한 정책논쟁과 대결이 이뤄져야 한다. 당은 당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자기 입맛, 자기 생각, 자기 이익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 무조건 이념 색깔 덧씌우기, 무조건 변절로 몰아치고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이다. 최명길을 이 시 점에서 떠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분과 실리라는 이분적 잣대가 아니라 그의 행동과 주장에는 구국과 역사의 지속이라는 절대적 명제와 치열한 결단이 있었다.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정부정책의 주장과 논의 뒤에 절대적 기준과 판단이 되어야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 대한민국 역사 발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작금의 정책 발상과 추진·논쟁이 국민의 눈에는 오로지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표심 잡기를 위한 포퓰리즘 정책의 극치로 비쳐지고 있다. 도무지 정책의 진성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도, 지금 정부도, 미래 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정자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시대를 생각한다고 한다. 진정한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 준엄한 역사의식과 치열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선거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으로 역사 발전과 국가선진화를 이룩하기를 갈망한다. CHA의과학대 총장
  • 의병장 김면 유적 성역화…고령군, 도암서원 복원 등 준공

    의병장 김면 유적 성역화…고령군, 도암서원 복원 등 준공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송암(松菴) 김면 장군을 위한 성역화 사업 준공식이 5일 경북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도암서원에서 열렸다. 준공식에는 이인기(고령·칠곡·성주) 국회의원과 곽용환 고령군수, 김면 장군 후손인 고령 김씨 문중 인사 및 전국 유림 관계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고령군이 최근까지 고곡리 일대 부지 6769㎡에 총 23억원을 들여 도암서원을 복원하고 동·서재, 누각 등을 신축했다. 송암은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영남 3대 의병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 곽 군수는 “의병 활동 중심지로 고령의 위상을 높이는 건 물론 관광 자원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거북선·판옥선 3층 구조 원형 복원

    거북선·판옥선 3층 구조 원형 복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건조해 전투에 사용했던 거북선과 당시 주력 전함이었던 ‘판옥선’이 고증을 거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경남도는 1일 거북선과 판옥선 각각 1척을 지난해 3월 입찰을 통해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 있는 금강중공업에 건조를 맡겨 완공했다고 밝혔다. 건조된 거북선과 판옥선은 모두 3층 구조이며 이 가운데 거북선은 길이 25.6m, 폭 8.67m, 높이 6.06m 크기다. 판옥선은 길이 41.80m, 폭 12.03m, 높이 9.51m로 거북선보다 다소 크다. 경남도는 역사고증자문위와 건조자문위 등의 회의와 토론을 거친 결과 임진왜란 때 건조된 거북선이 2층 구조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3층 구조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거북선과 판옥선 건조에는 국비 5억원 등 모두 40억원이 들었다. 경남도는 특히 판옥선이 원형에 가깝게 복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역사고증자문위원장인 나종우 원광대 교수는 “이미 건조됐던 거북선은 있지만 정확한 고증을 거쳐 가장 원형에 가까운 3층 구조로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경남도는 3일 오후 충남 서천 금강중공업에서 임채호 경남도 행정부지사와 역사고증·건조 자문위원, 이순신연구회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북선과 판옥선 진수식을 할 예정이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왜장 인형’ 안고 투신한 논개 체험 논란

    ‘왜장 인형’ 안고 투신한 논개 체험 논란

     경남 진주시가 논개제를 개최하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재현, 찬반 논란 중이다. 이 행사는 진주시가 제10회 ‘논개 순국 체험행사’의 하나로, 28~29일 오전 10시~오후 6시 촉석루 앞 순국 체험 행사때 열었다.  어린이들은 2m 높이의 인공 의암(義岩)에서 인형으로 된 왜장을 끌어안고 푸른색 에어매트에 뛰어내렸다. 논개제 집행위원회는 이 체험행사에 600여명의 어린이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1593년 6월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때 기생 논개가 촉석루 아래 의암에서 일본 왜장을 끌어 안고 남강에 투신, 왜장과 함께 순국한 것을 재현한 것이다.  사진을 본 일부 네티즌이 논개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좋지만 어린이들의 자살 체험은 좋지 않다며 문제 제기를 했다. 최태문(54) 논개제 집행위원장은 “논개의 순국 정신을 가르치고 진주가 충절의 도시임을 알리기 위해 6년 전부터 해온 행사”라면서 “투신 체험이 아닌 순국 체험”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체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고 덧붙였다.  한편 논개제에서는 조선시대 진주목 관아 체험, 논개 순국 체험, 논개 상상화 그리기, 임진대첩도 탁본 체험, 인력거 체험 등의 행사가 열렸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조선백자 7대째 굽는 장인을 만나다

    조선백자 7대째 굽는 장인을 만나다

    16~17일 이틀에 걸쳐 오후 10시 40분에 방영되는 EBS ‘직업의 세계’는 조선백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김정옥(70)씨 얘기를 다룬다. 김씨는 전통을 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독일 동아시아국립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에도 작품이 소장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장인 중의 장인이다. 김씨의 이런 활동은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 집안 자체가 전통 도예가라서 230년 전통을 7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18살에 도예의 길로 접어든 김씨는 전통작업 방식을 고스란히 지킨다. 흙을 구할 때 직접 다니고 물에 걸러낸 흙을 발로 밟아 반죽하는 데도 당연히 직접 나선다. 전기물레는 쳐다보지도 않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발 물레를 고수한다. 유약 역시 제조에서 배합까지 모두 전통방식을 따른다. 도자기를 구울 때도 전통가마인 ‘망댕이 가마’를 사용한다. 땔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직접 고른 소나무를 5년간 정성껏 말린 뒤에 땔감으로 쓴다. 그래야만 제 맛이 난다고 철썩같이 믿기 때문이다. 이런 김씨의 작업은 이웃 일본에서 최고로 평가받는다. 일본 다도인들은 김정옥의 작품을 얻지 못해 안달이다. 이유는 정호다완(井戶茶碗) 때문이다. 정호다완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쓰던 생활도구인데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보로 지정된 찻잔이다. 일본인들은 왜 정호다완에 미쳐 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투박하면서도 새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살구색이어서 눈에 피로를 주지 않고, 입에 닿으면 찻잔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등 차 그 자체에 안성맞춤인 찻잔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정호다완을 전통기법 그대로 재현해 내는 장인으로 평가받는다. 김씨는 전통이라 해서 감춰두고 그러지 않는다. 1년에 한번씩 작업장을 공개한다. 도예에 관심있는 전공자나 전문가들뿐 아니라 국내외 일반인들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작업 과정 전체를 지켜볼 수 있게 해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군자 400년 역사 총정리

    사군자 400년 역사 총정리

    봄가을 딱 두 차례 전시를 여는 간송미술관이 올해 봄 전시 주제를 ‘사군자대전’으로 잡았다. 사군자는 유학자들이 앞다퉈 그렸지만 잦은 전쟁 등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드물다. 특히 임진왜란 이전 작품은 없다. 15일부터 29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는 임진왜란 직후 탄은 이정(1554~1626)이 남긴 작품에서부터 옥봉(1913~2010) 스님의 작품까지, 60여 명 작가들이 남긴 100여 개 작품이 내걸린다. 최완수(68)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1976년과 2005년 비슷한 주제로 전시했지만 그때는 소규모 전시에 불과했다.”면서 “이번에는 대전이라는 말에 어울릴 정도로 사군자 400여년 역사를 총정리했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전시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작품으로 이정, 유덕장(1675~1756), 김정희(1786~1856)의 작품을 꼽았다. “사군자는 단순히 잘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선비의 정신세계가 드러나야 하는데 그 선비정신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이들 세 작가가 최고”라고 설명했다. 가령 김홍도(1745~?)와 비교하자면 김홍도도 난을 잘 그리기는 했으나 기교 면에서 능숙했을 뿐, 아무래도 선비정신 자체는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어몽룡(1566~1617)이 남긴 묵매, 겸재 정선의 제자 심사정(1707~1769)이 남긴 국화 그림 등도 추천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추는 한반도 자생식물” 한국식품연구원 연구서 출간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수천년 전부터 있었던 자생식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9일 한국식품연구원에 따르면 권대영 박사 연구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경란 연구팀은 우리나라의 고추 유래를 밝히기 위해 200여개 고서를 연구한 결과를 ‘고추이야기’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권 박사는 “고추의 일본 전래설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수천년 전부터 한반도에 있었던 자생식물”이라면서 “일본의 고문서 ‘대화본토’, ‘물류칭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고려호초’라고 불리는 고추를 일본으로 들여왔다는 내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역사스페셜(KBS1 밤 10시) 1592년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 학의 날개가 펼쳐졌다. 학·익·진. 조선 수군이 펼친 학익진에 왜선 59척이 침몰하고 9000여명의 왜군이 전사했다. 임진왜란 개전 초기, 수세에 몰렸던 전세를 단번에 뒤집어 버린 결정적인 전투 한산대첩이었다. 최정예 일본 수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이룬 한산대첩. 그 승리의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체험! 삶의 현장(KBS2 밤 8시 50분) 특별한 체험 일꾼들이 떴다. 그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한 시청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온 것이다. 구수한 이미지의 탤런트 윤순홍도 체험대장으로 함께 나섰다. 갑작스러운 사고, 그리고 질병으로 팔다리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팔과 다리를 만들어 주며 희망과 사랑을 함께한다. ●남자를 믿었네(MBC 밤 8시 15분) 카렌은 인희의 딸 경미가 현수의 카페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카렌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고 인희와 영화를 보러 간 진헌은 극장에서 카렌과 진헌의 어머니를 만나 당황하는데…. 한편, 신제품 백년초록을 삼키려는 화경(우희진)의 전략을 꿰뚫고 있는 강우는 친분이 있는 기자에게 특종을 주겠다며 접근한다. ●미소코리아(SBS 오후 6시 30분) 보물섬 남해에 미소코리아가 떴다. 러시아에서 온 정열의 여인 율리아와 요리연구가인 빅마마 이혜정이 한국의 보물섬인 남해군이 품고 있는 다양한 보물을 찾으러 떠났다. 그들이 찾은 보물은 무엇일까. 첫 번째 보물로는 대한민국 명승지로 지정된 다랭이 마을의 다랭이 논이 소개된다. 다랭이들의 아름다운 곡선 연주를 감상해 보자.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인도네시아 4대 섬 중 하나인 칼리만탄은 다른 여느 섬과 달리 역사적으로 외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섬 토착민들의 전통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소수민족 숫자만 2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민족은 토착민인 다야크족이다. 이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에 살고 있는데…. ●생명(OBS 밤 11시) 어릴 때부터 약한 청력 때문에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성아의 보물 1호는 두 귀를 대신하는 보청기다. 그런 성아에게 큰 고민이 하나 생겼다. 3살 때부터 껴왔던 보청기가 고장나 버린 것이다. 새 보청기를 맞추기 위해 성아는 검사를 받으러 갔지만 비싼 보청기를 마련할 수 없어서 엄마와 함께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 “이순신 장군 전사후 84일만에 장례…16년 후 이장했다”

    “이순신 장군 전사후 84일만에 장례…16년 후 이장했다”

    교육공무원이 이순신 장군의 장례 과정과 묘역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전사후 84일만에 장례를 치렀고 16년 후 이장했다.”고 주장했다. 홍순승 충남도교육청 장학관은 16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가 펴낸 이순신연구논총에서 “이 충무공은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뒤 남해 고금도에 안치됐다가 고향인 충남 아산으로 운구돼 다음 해 2월11일 금성산에 안장됐다.”고 밝혔다. 장례가 늦게 치러진 것은 사후 선조로부터 우의정 벼슬을 받아 당상관에 오르면서 당시 법도(三月而葬)에 따라 3개월 후에 장례를 치렀기 때문이다. 첫 묘자리는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의 참모로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귀화한 두사충(杜師忠)이 잡았다. 두사충은 박상의와 함께 조선시대 풍수지리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홍 장학관은 “이 충무공이 이후 재평가를 받아 1604년 좌의정에 오르며 선무공신 칭호를 받자 후손들이 조정에 첫 장례가 전란 직후 예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졌다며 이장을 상소했다.”면서 “첫 장례가 이뤄진지 16년 후인 1614년 일등공신에 걸맞은 크기와 이장절차를 거쳐 지금의 묘역인 어라산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조(1793년)대에 이르러서는 영의정으로 또다시 오르면서 묘역에는 상석 및 향로석, 장명등을 비롯한 다양한 석물이 설치되고 정조가 친히 지은 글로 어제 신도비가 세워지면서 격이 한껏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근대에 이르러서는 이 충무공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더욱 활발해져 1908년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해 ‘성웅(聖雄)’ 칭호가 붙여진데 이어 제3공화국 시절 역사상 최고조의 평가에 오르며 묘역에는 나지막한 담(곡장)이 처지고 홍살문이 세워지는 등 왕가의 무덤(園) 수준에 이르게 된다.”고 밝혔다. 홍 장학관은 이 연구에 대해 “자료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초장과 이장의 정확한 내용을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이장과 확장 등 모두가 당 시대의 이 충무공에 대한 평가 실상이 그대로 반영돼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日 교과서 역사왜곡, 독도만이 아니다

    日 교과서 역사왜곡, 독도만이 아니다

    대담하게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워낙 자주 분기탱천하다 보니 ‘실효적 지배’ 같은 어려운 단어가 별스럽지 않게 쓰여질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독도만이 아니란 것이다. 때문에 역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독도에 다른 문제가 파묻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초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출판사는 이쿠호샤와 지유샤. 이 두 출판사는 1997년 출범한 우익단체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 교과서가 애초부터 주목받은 이유려니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교과서 가운데 하나’쯤으로 치부하기 곤란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고대사 깎아내리기 여전 기본적으로 한국 고대사 깎아내리기는 여전하다. 가령 한사군 이후 2세기에나 들어서야 한국에 고대국가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처럼 묘사한다. 고조선은 신화에 불과하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겨우겨우 국가를 세우기 시작한다는, 국내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는 식민사관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도래인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했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도 눈에 띈다. 다른 출판사들은 도래인이 존재했고 이들이 일본으로 넘어와 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식으로 서술돼 있는 반면 이쿠호샤는 도래인 대신 ‘귀화인’이란 용어를 앞세웠다. 이는 지유샤의 서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보다 일본이 알아서 이들을 잘 포용했다는 점을 강조한 서술이다. ●임나일본부 기정사실화 여기에다 임나일본부 서술도 강화됐다. 다른 교과서들은 ‘임나 지역에 일본이 진출했다는 주장이 있다.’는 수준에 그친 반면 이쿠호샤와 지유샤는 임나일본부를 기정사실화했을 뿐 아니라 지유샤의 경우 ‘5세기 동아시아’ 지도를 통해 임나가 한반도 남부 전역이라 표시까지 해 뒀다. 왜구의 구성도 논란거리다. 지유샤는 왜구에 대해 “일본인 외에 조선인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서술했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왜구는 일본의 잔학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 학계에 통용된다.”면서 “그런 비판적 인식을 피하기 위해 왜구의 활동 책임을 한국으로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조선의 건국을 서술하면서 조선이란 국호 대신 굳이 ‘이씨 왕조’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것도 이들 두 교과서다. 임진왜란 서술도 마찬가지다. 다른 교과서들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조선인들이 많은 피해를 봤다는 식의 건조한 서술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쿠호샤와 지유샤는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의기충천을 강조한다. 특히 지유샤는 도요토미가 중국을 넘어 인도까지 공략하는 장대한 스케일의 구상을 품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정한론에 대한 서술도 두 교과서는 유독 편파적이다. 다른 교과서들에는 조선이 일본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조선을 정벌하자는 의견이 대두됐고, 이 의견은 일본 내에서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정한론을 주장했던 이들이 실각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유독 이들 두 교과서만큼은 조선의 폐쇄적인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한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만 서술해 뒀다. 1910년 강제병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이들 두 교과서는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데 강조점을 찍는다. 다른 교과서들은 일본이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권을 틀어쥐어 이 과정에서 많은 저항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반면 이쿠호샤는 “일본도 인접한 조선이 러시아 등 구미열강의 세력에 놓이게 되면 자국의 안전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강해졌다.”고 서술했다. 일본으로서는 선택할 카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지유샤는 아예 한술 더 떠서 “러일전쟁 뒤 일본은 한국통감부를 두고 근대화를 추진했다.”고 썼다. ●3·1운동 폄하… 종군위안부 서술 없애 이는 자연스레 3·1운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진다. 다른 교과서들은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로부터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쿠호샤는 시위 사진 1장으로 대체해 버렸고 지유샤는 ‘초기엔 비폭력, 나중엔 충돌로 사상자 발생’ 정도로만 간략히 언급하고 만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대해서도 다른 교과서에는 창씨개명, 황국신민화 같은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이쿠호샤와 지유샤는 교묘하게 이를 비튼다. 가령 종군위안부에 대한 서술은 사라졌고 창씨개명의 강제성과 저항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 여기에다 지유샤는 “미혼 여성은 여자정신대로서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고까지 해 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어느 미남 승려와 폐결핵 환자 아가씨와의 청순한 러브 스토리. 원효(元曉) 대선사가 요석공주와 동침하여 파계한 끝에 설총(薛聰)을 낳았다는 천년 전의 로맨스처럼 지현(知玄)스님의 로맨스는 물씬한 감동마저 준다. 지금은 환속하여 부산(釜山)에서 알뜰하게 살고 있다는 그들의 파계 장소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돌산도(突山島) 향일암(向日庵)에 얽힌 얘기-.  전남(全南) 여수(麗水)시에서 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돌산(突山)섬이 나온다. 여천(麗川)군 돌산(突山)면 율촌(栗村)리에서 1km쯤 북쪽에 금오산(金鰲山)이 있고 산에는 흔들바위란 게 있다. 집채만큼 큰 바윗덩이가 사람이 밀면 흔들거린다는 기묘한 바위다. 이 흔들바위 밑에 까치집처럼 앙증맞은 향일암(向日庵)이란 암자가 있다. 하지만 이 암자의 유래는 거창하다. 신라 선덕(善德)여왕 13년(사기 639년)에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고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이 곳을 본거지로 승군(僧軍)이 활약했다는 곳. 그 건 그렇고 이 일대 경치가 장관이다. 울창한 낙락장송의 솔바람 소리, 온갖 기묘한 모양의 바위, 그리고 남해바다의 장쾌한 파도가 기막힌 절경이다.  1957년이면 17년전. 키가 헌칠하고 미목수려한 스님 한분이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로부터 향일암(向日庵)으로 왔다. 당시 나이 27살, 법명은 지현(知玄), 속명은 박영식(가명), 호는 호월(湖月).  경남 남해(南海)가 고향인 지현(知玄)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살에 출가, 전국 유명 사찰을 돌아다니며 10년을 목표로 수도하다가 마지막 3년을 채우기 위해 향일암(向日庵)을 찾은 것이다. 지현(知玄)스님은 절 주변을 알뜰하게 손질한 뒤 백팔염주에 사바세계 번뇌를 실어 깊은 사념의 경지를 거닐었다.  그동안 폐사처럼 버려져 있던 향일암(向日庵)에는 이로부터 여신도들이 몰려들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곡식 위의 제비같은 탈속(脫俗)의 지현(知玄)스님, 게다가 인물 좋고 경치마저 절경이어서 그는 인기스님이 된 것이다.  세월은 흘러 59년 봄이 되었다. 향일암(向日庵)에서 1km 떨어진 해변가 율촌(栗村)마을에 양장 차림의 미인 아가씨가 찾아들었다. 광주(光州)에 산다는 박애희(朴愛姬)양(23·가명). 폐결핵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요양차 이모가 사는 율촌(栗村)에 왔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의 홍보가 요정처럼 기막히게 예쁜 미인.  아열대성 식물인 동백·산죽(山竹)·비화(飛花)가 온 섬을 뒤덮고 바위 틈에 도사린 석란(石蘭)의 향기는 십리 안팎을 뒤덮어 6순 환갑이라 해도 마음 설렐 판이었다.  박(朴)양의 병은 이런 절묘한 풍경의 탓(때문)이었는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차츰 힘이 생겨 산책 코스를 넓혀갔다.  그때 그녀의 눈에 띈 남성이 바로 지현(知玄)스님. 부처님 앞에 정좌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근엄한 모습을 취한듯 응시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2개월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일암(向日庵)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고 지현(知玄)스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잠이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장승. 눈길 한번 주는 법이 없었다.  가을이 되었다. 사무친 가슴 속의 사연이 맺히고 맺혀 이번엔 폐결핵이 아닌 상사병에 몸부림하다가 농약을 마셔 버렸다. 위급한 그녀를 두고 이모 되는 여인은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현(知玄)스님에게 달려가『그 애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그 요청을 거부하고『나의 손길보다는 당장 해독시키게 녹두물이나 먹이시오』했다. 이모는 되돌아와 녹두를 갈아 먹였다. 의사 없는 갯마을에서 꼼짝없이 죽어야 했던 그녀는 신통하게도 살아났다.  59년이 저물고 새해 음력 1월14일 새벽 4시. 지현(知玄)스님은 화엄경(華嚴經)을 독경하며 새벽의 경내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뒷산으로 달려갔다. 박(朴)양이 흔들바위에 맨발로 서서 바다를 향해 투신하려는 찰나였다.  혼비백산한 지현(知玄)스님. 자기로 인해 원한을 품고 죽을 여자를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아가씨 소원은 뭐요? 다 들어 주겠으니 제발 뛰어내리지만 말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소원이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스님과 함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망설이고 더듬거릴 나위가 없었다.『알겠으니 제발 그곳에서 내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 박(朴)양은 바위 위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스님은 그녀를 구출해 냈다. 암자에 누이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스님의 품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싱싱한 여인의 체취와 풍만한 마찰감에 스님도 얼이 빠져 버렸다.  29년동안 막혀 있던 정열이 용솟음 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10년 수도를 1년도 못남기고 거센 폭포수 속의 물거품이 되었다. 이날 새벽부터 지현(知玄)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지난 65년 여름. 대구(大邱) D사에서 참회의 수도에 전념하던 지현(知玄)스님은 어떤 모녀의 방문을 받았다.  『이 애가 스님의 딸입니다』면서 모녀는 6살 귀여운 아기를 내보였다. 스님은 가가대소,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면서 즉시 승복을 벗고 딸을 한가슴 가득 안았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뒤로 스님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얻어 1남2녀를 두었다.  지난 71년 5월. 향일암(向日庵)을 중창할때 속인 지현(知玄)부부는 찬조금 5만원을 보냈다.  그들은 현재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으나 찾아간 기자에게 사진찍기를 거부-.  그러나 한 여인의 억센 사랑의 집념으로 10년 수도승의 마음을 움직인「흔들바위」는 오늘도 의연하다. <麗水=金德鉉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7월15일 제6권 28호 통권 제248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4월 독립운동가 조완구 선생 
4월의 호국인물 송상현 장군

    4월 독립운동가 조완구 선생 4월의 호국인물 송상현 장군

    국가보훈처는 3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내무부장과 재무부장 등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던 조완구(왼쪽)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대종교 간부로 활동하던 선생은 1914년 북간도로 망명, 독립운동 활동을 하다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이 발표되자 이동녕·조성환·김동삼·조소앙 등과 함께 상하이로 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와 함께 전쟁기념관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결사항전 끝에 순국한 송상현(오른쪽) 장군을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송 장군은 1576년(선조 9년)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지평,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동래부사로 부임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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