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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팔중동백」 돌아왔다/임란때 반출된 나무의 “3세”

    ◎일 사찰측과 3년교섭 결실/높이 50㎝짜리 묘목… 어제 울산에 심어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반출됐던 희귀목 동백나무 3그루가 4백년만에 귀환,이중 1그루가 27일 하오 원생지인 울산시 청사 앞 화단에 임시로 심어졌다. 이 나무는 곧 충렬사가 들어설 학성공원으로 옮겨 심게되며 나머지 2그루는 오는 6월1일 충남독립기념관 앞뜰과 경남 사천의 「조·명합동묘소」인 귀무덤 옆에 심어진다. 다섯색깔의 여덟겹 꽃이 핀다해서 오색팔중이라 불리는 이 동백나무는 임란당시 울산성을 점령한 가등청정이 이 일대 학성에서 자생하던 것을 약탈해 일본으로 가져가 군주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게 바쳐진 것이다. 당시 원목은 지난 83년 고사하고 1백여년쯤 전에 삽목해 심은 2∼3세 나무 10여그루가 현재 교토시 지장원 춘사에 자라고 있으며 이번에 옮겨진 나무는 3세인 높이 50㎝가량의 묘목이다. 이같은 결실이 맺어진 것은 지난 89년 1월 교토의 춘사를 찾았던 예총 울산지부장 최종두씨(53)가 사찰 안내 팸플릿에서 이곳에 심어진 동백나무가 조선의울산학성에서 이식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데서 비롯됐다. 이 동백나무의 사연을 알게된 최씨는 오코치(대하내존무)주지에게 한 그루쯤 되돌려 받으려 했으나 거절 당해 귀국즉시 서울 자비사 주지 박삼중스님,재일동포였던 울산 의성시장 대표 박재헌씨등과 의논,오코치 주지에게 최근 한국에 이장한 경남 사천의 귀무덤에 옮겨 심기로 하고 응락을 받았다는 것. 당시 가등청정으로부터 이 동백나무를 헌상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유서깊은 지장원 춘사에 심고 다도회를 열때마다 동백꽃의 화려한 자태를 즐겼다고 한다. 한편 울산시는 이 동백나무를 알루미늄 철책망을 만들어 보호키로 했다.
  • 임란때 일본간 희귀동백 “환국”

    ◎왜장이 울산서 발견,도요토미에 헌상/어제 교토 지장원서 “귀환식” 거행 【도쿄 연합】 임진왜란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약탈해갔던 희귀 동백나무의 후예 3그루가 4백여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희귀수 「5색8중산춘」의 환국 축하식이 26일하오 1시쯤 한국측에서 박삼중스님·최종두 한국예총 울산지부장·정남이 부산여자전문대학장등 30여명이,일본측에서 오코우치(대하내존무) 사찰주지,가키누마(폐소선심)한·일불교복지협회회장등이 각각 참석한 가운데 일 교토(경도)의 지장원(춘사)에서 조촐하게 거행됐다. 5색8중산춘이란 한그루의 나무에서 5가지 색깔에 여덟겹 꽂이 피어난후 질때도 꽂잎이 한꺼번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때 가토 기요마사가 자생지인 울산 학성에서 우연히 발견,아름다운 꽃의 자태에 반해 일본으로 가져갔다.그후 그는 이 희귀수를 군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게 바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이 다도회를 위해 자주 찾던 지장원에 기증했다.
  • 조선의 고대의서 대부분 약탈/위가 빼앗아간 우리문화재들

    ◎엄청난 규모… 서적·활자 가져가 일문화 발전 7년간의 왜란으로 입은 문화재 손실은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막대한 것이었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과 서적·미술품등이 소실되고 약탈됐으며 역대실록 가운데 귀중한 사서를 보관하던 사고는 전주사고만 남고 이 기간중에 모두 불타 없어졌다. 특히 조선으로부터 활자를 가져가 일본활자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았으며 「퇴계집」과 같은 중요한 전적들은 일본에 건너가 집집마다 읽혔을 정도로 일본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임진왜란 당시 위군 무장들은 안국사 중이었던 혜경등 학승들을 앞세워 조선의 문적을 일본으로 실어날랐는데 위군에 의한 서적약탈은 「임란이전에 출판된 조선의학서적 거의가 일본에 가 있다」는 일본학자의 지적처럼 엄청난 것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임란때 약탈해간 조선문적 8백여부를 중심으로 16 02년 덕천가강에 의해 순하문고가 세워져 문고발달의 기틀이 마련되며 조선에서 가져간 인쇄활자로 「공자가례」등 「순하판」을 찍어내 문서보급에도 박차를 가하게 된다.또 가강이 덕천의직에게 물려준 어량본 3백77부 2천8백39책 가운데 거의 절반인 1백62부 1천4백92책이 조선본이었다는 사실에서처럼 약탈된 조선서적의 규모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가강사후 세 아들에게 분양된 어량본 가운데 「기이문고」는 명치시대에 들어와 「남규문고」로 공개돼 현재는 동경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돼있다. 임란에 참가했던 위군 장수들의 조선문적 약탈로 인한 갑작스런 도서의 격증과 덕천막부의 문치정책으로 일본에서는 새로운 문고의 발달계기가 만들어졌고 서적의 활발한 이동은 공사문고로 이어져 학교도서관의 발달을 가져왔다. 의학수준이 뒤떨어져 있던 일본의 입장에서 의서에 대한 욕심은 당연한 것.그 결과 일본은 임란 당시 조선의 고대 의학서 대부분을 일본으로 가져가 우리나라에는 의서가 거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조선의학사 및 조선질병사」를 쓴 일본학자 삼목영씨는 적고 있다.의학서 장서의 대명사인 양안원은 가강과 수충의 관의가 만든 문고로 「자금단방」「산서해록」등 조선고유의서와 「양생론」「침구집방」등 중국의서의 조선판등 상당수의 의서가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현대판 왜란」 재발 경계를”/문화등 간접침략 경각심 높여야

    조선시대 우리 민족이 겪은 최대의 외침전쟁인 왜란은 지금으로부터 4백년전에 벌어져 6년8개월에 걸쳐 우리 겨레에 크나큰 희생을 강요하였다.그 아픔의 희생은 인명의 손상이나 물질적인 것에 끝난 것이 아니라 정신직,문화적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까지 파고든 아픔이었다. 우리 겨레가 잊을 수 없는 이 부질없는 침략전쟁인 왜란을 오늘날 어떻게 우리 마음에 삭여 오늘에 사는 교훈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며,또한 지연관계로 밀접하게 상종할 수 밖에 없는 한일 두 민족의 장래 역사에 생산적으로 살려갈 것인가? 4백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감정적인 분노와 새삼스러운 적개심을 일깨우는 식의 회고는 역사적 성찰이라고 할 수는 없다.외세에 의한 침략전쟁은 어떤 때에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며,어째서 그것을 자초하게 되어 심한 고난을 겪어야 했는가,전쟁에 휘말려 들었을 때 겪게 되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가 등 오늘에 사는 역사적 교훈을 얻어내야만 한다.왜란 그 자체는 없었어야 할 불행한 일이었으나,있었던 그 자체에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사적 자세를 가다듬을 줄 아는 역사적 자세를 확립하여야 하는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볼때 침략전쟁은 국내의 자국 모순을 밖으로,전쟁이라는 수단으로 호도하려 할 때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왜란도 무력으로 강제통일을 이룩한 히데요시 정권이 당면하게 된 대내모순을 밖의 한반도로 유도하려는 고도의 계산에서 도발된 전쟁이었다.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이웃나라가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 모순에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또한 그것은 해결방법의 진로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한편 침략세력의 틈을 탈 수 있는 약점을 밖에 드러내게 되었을때 외세는 서슴없이 침략전을 도발하게 됨을 보았다.이점에서 국력의 굳건함을 이루어 과시하여야 하는 것이다.부질없는 지배층의 분열과 비리에 의한 계층 모순이 결국 침략을 자초하게 됨을 명심하여야 한다. 임진왜란 당사자인 일본에 대하여는,임진·정유왜란을 명백한 「침략전쟁」으로 인식하고 겸허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 역행적 역사의식과 「조선정벌」로 자만하는 착오된 역사태도를 청산하지 않는 현대 일본인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일본을 믿을 수 없으며 현대판적인 왜란(그것은 반드시 전쟁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여러가지 모습의 간접침략으로 감행될 수도 있다)의 재발에 한층 경각심을 높일 수밖에 없음을 깨우쳐 주어야만 할 것이다.
  • 오늘이 임진왜란반발 4백주년 되는 날

    ◎“이긴 전쟁”“근대화 전기” 재조명 활발/학계·의병·피해사 위주서 탈피 노력/전쟁사체계화·동북아사 연구 시도 23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만 4백주년이 되는 날이다.15 92년 4월13일(음력) 풍신수길의 명령에 따라 부산포에 진주한 위군이 이튿날 (음력 4월14일) 부산성을 공격한 이후 7년 동안 계속됐던 이 전쟁은 전국토를 황폐화시킨 우리민족 수난사의 최대 사건이었다. ○학술논문 350여편 조선전기사회의 사회·경제질서를 전면 개편해 근대사회로 이동하는 전기가 되고 일본·중국 양국의 정권을 교체시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바꿔놓은 임진위란 발발 4백주년을 맞아 임란에 대한 재조명작업이 학계에서 활발하게 일고 있다. 역사상의 중요성에 걸맞게 임란에 대한 연구는 88년을 기준으로 3백50여편에 달하는 학술논문이 발표될 만큼 그동안 활발히 전개돼 왔다.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임란을 우리민족이 일방적으로 패한 전쟁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하려는 노력이 일고있기도 하다. 아울러 전쟁자체에 대한연구와 의병활동에 집중돼 있는 지금까지의 임란연구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아시아질서가 모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동북아전체의 차원에서 임란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보다 다각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사회변화요인 규명을 이장희성균관대교수는 특히 임란중의 조선국내상황과 일본 내부사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조선사회의 변화요인을 규명해내야 하며 『승전·패전에 대한 논쟁보다는 이를 거울삼아 유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기회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한다.이교수는 또 전쟁중 위군에 의해 약탈당한 조선의 문화유산이 일본문화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이 최근 한창 부각되고 있는데 대해 우리문화가 일본문화에 비해 뛰어나다는 과거지향적인 단순비교보다는 결과에 대한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른 학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초보단계에서 머물지 말고 이제는 연구결과를 축적,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리작업으로 발전되야 한다는 것이다. 이태진 서울대교수는 『전황에 대한 종합평가등을 통해 전쟁사를 체계화시키고 군사전문가와의 공동연구로 전문적인 연구영역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면서 『연구의 다양한 접근과 관점을 확보키 위해 고고학·경제학·사회학등 관련분야와의 공동작업이 많아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이교수는 또 국난극복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야를 넓혀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일본과 중국학계등의 당시 국제관계 연구동향에도 눈을 돌려 연구주제와 활동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덧붙인다. ○전후문제도 짚어야 그리고 일제식민지잔재처리가 아직도 문제로 남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중 일본·필리핀으로 끌려갔던 포로나 노예로 팔려갔던 조선사람들의 처리문제등 비교적 소홀하게 다뤄졌던 전후문제등도 짚고가야할 부분으로 제기했다. 4백년전 발발했던 임진왜란을 오늘날 되새겨보는 것은 기술·산업수준이 앞서 있으면서도 일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침략을 당한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며 이는 경제·과학기술면에서 앞서가고 있는 현대 일본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침략성의 실체를 살펴보고 일본의 본 모습을 제대로 파악해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것임을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강조한다.
  • 임란 4백년 세미나 참석/일 마키 히로시박사(인터뷰)

    ◎“한국인의 반일감정 임란의 상처때문” 『일본의 지식인들 중에는 「임진왜란이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한 전쟁이었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습니다.전쟁의 참화에 비해 전쟁의 목적과 과정,수단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지한파 학자로 잘 알려진 일본 동양대 동양학연구소 마키 히로시(전호사·72)박사가 지난주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주최로 열린 「임진왜란 4백주년 학술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그는 『7년동안의 전란으로 조선과 일본,명 등 3개국 국민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서도 결국 전쟁의 목적인 명나라 땅은 밟아보지도 못한 채 철군해야 했다』며 『선전포고도 없이 왔다가 항복선언도 없이 슬그머니 떠나가 버려 전쟁의 기본개념에도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키씨는 최근 김성한씨의 소설인 「임진왜란」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다.일본인 독자들을 위해 소설 원문 이외에 당시 일본과 중국의 국내사정도 포함시켰다. 마키씨가 「임진왜란」을 번역하게 된 것은 한국인들이 가진 반일감정의 뿌리를 일본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그는 한국인들이 임진왜란에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 그때부터 일본과 일본인을 적대시 하게된 것으로 보고있다. 마키씨는 그러나 자신이 「지한파」이긴 해도 주요 관심사는 한국의 의·식·주와 풍속이라고 말한다.그는 특히 한국의 음식에 보통한국인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일본 사회에 한국 음식을 소개해왔다.10년 걸려 「한국음식 이야기」란 책을 일본에서 펴내기도 했다. 마키씨는 다음달 23일 일본 도쿄 한국대사관 문화원에서 열리는 세미나 「임진왜란의 재조명」에서 주제발표를 한다.
  • 활개치는 변칙금융/이용성 중소기업은행장(굄돌)

    금년이 임진왜란 발발 4백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임진왜란 하면 흔히 바다의 이순신장군과 지상의 의병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의병은 글자 그대로 정규군이 아니라 일종의 의용군이므로 우리나라 역사상 미증유의 대전쟁을 정규군이 아닌 의용군이 담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착잡한 감회에 젖게 된다. 당시 정규군의 양성에 소홀했던 조선사회에는 전쟁이 일어나자 책을 읽던 선비들이라도 분연히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다행히 4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국방을 우리 국군이 책임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임진왜란을 생각하며 새삼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특히 사회전반이 고도로 분화하고 전문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각 개인과 조직의 부문이 그 몫을 얼마나 성실히 담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선진화의 척도로 여겨지고 있는 지금,과연 우리 사회는 역사가 흐르고 발전한 만큼 각자 자신의 본분과 부문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데에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자면 교육자와 정규 교육기관이 담당하여야 할 교육의 영역에 마치 의용군처럼 일어서고 있는 과외열풍이라든가 특히 제도금융권을 벗어나 활개치고 있는 사채시장 같은 소위 변칙금융의 실체들을 보며 은행에 재직하고 있는 금융인으로서 남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제몫을 다하고 있다면 건전한 경제욕구를 지니고 있는 분들이 사채시장의 주변을 서성거릴 필요가 있을 것인가 하는 자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든 교육이든 건전한 동기와 욕구의 수용과 해결을 위해 사회 공공부문이 얼마나 자기 몫을 해주느냐 하는 것이 소위 개방사회의 합리성 획득의 관건이 될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합리성이 다하지 못할 때 언제든 변칙과외나 변칙금융과 같은 비정규·비정상적인 수단들이 의병의 가면을 쓰고 여기저기서 창궐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4백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문화의 임진왜란은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임진왜란」펴낸 일인작가/오다 마코토씨(인터뷰)

    ◎“정신대등 일 침략역사 작품화할터”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사실을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한일간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은 일본이 침략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청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임진왜란」소설과 수필집 「오모니」의 국내출간에 맞춰 28일 15박16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진보적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오다 마코토씨(소전 실·60)는 기자회견에서 『한일간의 과거청산으로 양국이 서로 돕게됨으로써 세계에의 공헌도를 높일 수 있으며 그 실질적 방편으로 양국민들간의 개별적 교류가 증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다씨는 또 작가로서 『조선인 강제연행과 정신대문제등 일본의 침략역사를 작품화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의 작가들과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89년 소설 「히로시마」로 제3세계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로터스문학상을 수상할만큼 저명작가인 오다씨는 일본 TV방송에 나가 『침략적인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할정도로 일본의 깨어있는 양심적 지식인.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은 『사회주의와 제3세계가 붕괴되고 오직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만이 남은 시점에서 부자나라인 일본의 오만불손한 태도』라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또한 75년 한국의 반체제 시인 김지하씨 석방을 위한 집회를 주관하기도 했던 오다씨는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한국인이 등장할 정도로 한국에 호감을 가진 친한작가로 꼽힌다.이번에 국내에 번역소개되는 수필집 「오마니」는 그의 한국인 장모를 따뜻한 사랑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본 글모음이며 「임진왜란」소설은 일본 소년 소녀의 눈을 통한 객관적 시각으로 조선민중의 아픔까지도 포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일본,중국 등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끌어들이는 대하소설을 구상중이라는 오다씨는 한국문학및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며 자신이 참여한 「중심21」이란 단체 주관으로 오는 9월중 한국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일교포인 부인 현순혜씨와 딸 나라양과 함께 내한한 오다씨는 출판기념회·강연회 등에 참석하고 5월13일 출국할 예정이다.
  • 해군 충무공 해전유물 탐색 급피치/임란 4백년… 거북선찾기 본격화

    ◎연말까지 남해안 12해역 탐사/94년 1월부터 인양작업 돌입 임진왜란 발발 4백주년과 이순신장군 탄생 4백47주년을 맞아 충무공해전유물 발굴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89년 노태우대통령의 지시로 그해 8월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이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창설된 이후 해군은 심해잠수요원 8백16명과 탐사정·소해함·시추장비 등을 투입해 탐사작업을 벌인 결과 거북선이 매몰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 1백87㎦의 해역 가운데 30%인 44.5㎦에 대한 정밀탐사를 완료했다.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 황동환단장(해군대령)은 27일 이번 탐사에서 거북선일 가능성이 있는 이상물체 6개가 확인되고 화살촉·선체목편·도자기 등 51점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황대령은 『올해말까지 충무공의 활동해역이던 진해만에서 한산도·노량·사천·광양·여수·목포·보령까지 12개해역을 중심으로 정밀탐사작업을 마친뒤 94년 1월부터 발굴및 인양에 들어가게 된다』고 밝혔다. 해군은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거북선이 모두 3척이며 임진왜란이 끝난뒤에도 10여척을 건조한 기록이 있어 수군이 활동하던 남해와 서해에 분명히 매몰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탐사작업을 확대해가고 있다.그러나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이미 4백년이나 지났으며 침몰에 대한 기록이 없고 당시의 해안선도 항구의 축조와 매립등으로 크게 바뀌어 남해바다에서 거북선을 건져내기는 한강밑에서 바늘을 찾아내는일 만큼이나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발굴단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유일하게 대패한 칠천량해역(현 거제군 북쪽)에 대한 앞으로의 탐사작업에 큰 기대를 걸고있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충무공이 모함에 의해 투옥되고 원균이 후임으로 임명된후 조선수군은 칠천량에서 왜군의 기습을 받아 1백50척의 배가 침몰하는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외국의 예를 보면 지난 60년대에 덴마크와 네덜란드 해역에서 1천2백년전의 바이킹배 3척을 인양한바 있고 70년대에는 영국근해에서 6백년전의 목제 군함을 원형 그대로 발굴,인양한 적이 있다. 해군관계자들은 앞으로 본격적인 인양작업이 이루어지면 거북선을 찾아낼 수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 23일 이중형국방부 제1차관보를 위원장으로하는 거북선발굴추진위원회를 구성,정부차원에서의 적극 지원을 결정함으로써 앞으로 발굴작업은 보다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 일에 대규모 문화사절단 파견/1백30명… 도쿄등서 한국행사

    ◎6월29일부터/일사절단도 방한계획/임란 4백년 맞아 임진왜란 발발 4백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에 1백30여명규모의 문화사절단이 파견된다. 이수정문화부장관은 27일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6월29일부터 도쿄와 오사카,교토등 일본의 주요도시에서 「92한국문화통신사」행사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장관은 『이번 행사는 양국이 근대정부 수립이후 최초의 정부간 공식 문화교류』라고 밝히고 『한국문화사절단의 일본방문에 이어 일본문화사절단이 방한하는등 양국의 정부간 문화교류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화통신사」행사는 「가야문화재 전시회」와 「한국의 색과 형전시회」「창극 심청가공연」「한일문화 대토론회」「한국의 밤」등 5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7월4일까지 집중적으로 열린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선조40년(1607년)에 시작되어 순조11년(1811년)까지 2백4년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에 문물을 전해준 사절단의 명칭이다.
  • 임란 「귀무덤영혼」 안식처 찾아

    ◎12만6천여 원혼 일 경도대로변에 방치/4백돌 맞아 22일 사천서 대재열고 합장 임진왜란이 남긴 최대 비극의 하나였던 귀무덤(이총)영혼이 임란발발 4백년만에 고국에서 안식처를 찾게 됐다. 「임란이총호국영령의분합장대재봉행위원회」(위원장 박삼중)는 22일 하오2시 경남 사천군 용현면 선진리 조명군총(지방문화재 80호)에서 대재를 갖고 12만 6천 원혼을 이곳 「머리무덤」에 합장한다. 이로써 일본 교토 방광사 앞 대로변에 4백년 가까이 방치돼 있던 귀무덤 영혼은 임란 발발 4백년,환국 2년만에 긴 방황을 마감하고 고국에서 영면할 수 있게 됐다. 삼중스님이 80년대 후반 일본 교도소 교화사업중 우연히 발견한 이 귀무덤 영혼은 각고의 노력끝에 지난 90년 4월22일 환국했으나 그동안 이렇다 할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부산 동래 자비사에서 임시 머물러왔다. 봉행위는 21일 자비사에서 전도재를 지낸 후 22일 상오8시 부산 사직 실내체육관에서 이운식을 가지며 이날 하오 2시부터는 조멍군총 현지에서 윤길중 전국회의장,이강훈광복회회장,안춘생독립기념관 관장,서돈각학술원 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재를 봉행한다. 특히 이날 대제에는 한일 불교복지협의회 일본측 회장인 가키누마 센싱(폐소선심)등 일본승려 10여명도 참석해 의미를 더욱 깊게 할 것으로 보이며 인간문화재 박송암 스님 등이 범패 등으로 영가천도예술대제를 치러 행사를 한층 빛낼 예정이다. 봉행위는 『지난 2년동안 적지를 찾아오다 거북선의 첫 전승지이자 조명연합군의 최대 피해지 중 하나인 사천 현지에 귀무덤 영혼을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이번 대재 후 합장무덤 일대 20만평을 성역화하고 임진란 종합전시관 등을 건립해 후세들에게 역사교육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귀무덤 영혼이 안장되는 조명군총은 정유재란 때인 15 98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희생자 3만8천명이 묻힌 무덤으로,귀와 코를 전리품으로 뺏긴 이들의 머리가 합장된 이 무덤은 현지에서 「당벙무덤」「댕강무데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 서울신문 주최 「충무공승전행차」 재현되던날

    ◎승전고 울리며 벚꽃거리 장엄한 행렬/충무공의 장졸 독려장면등 실감 높여/관광객등 10만 인파 축제분위기 만끽/벚꽃미인도 참여… “장군의 조국애 새삼 절감” 서울신문·스포츠서울 그리고 금성이 공동주최하고 이충무공 호국정신선양회가 주관한 「이충무공승전행차행렬」행사가 8일 하오2시 제30회 진해군항제가 열리고 있는 「벚꽃의 도시」진해시일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날 행사는 서울신문사가 각 지역의 고유문화를 다양하고 균형있게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90년부터 지역의 특색과 전통이 살아있는 대표적 축제들을 선정,그 문화를 재현하는 「전국향토문화 축제행사계획」에 따라 올해에 개최하는 8개축제행사중 첫번째로 열린 것이다. ○6백여명 행렬 참가 ○…충무공 승전행차 행렬이 펼쳐진 이날 벚꽃의 도시 진해는 온통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승전행차 행렬은 진해 중앙종고생등 6백36명이 출연한 가운데 하오2시부터 2시간동안 진해공설운동장∼필승로∼충무공시비∼중앙로∼진해역∼북원로터리∼중원로터리간 2·5㎞에서 펼쳐졌다. 벚꽃을 구경나온 관광객들과 진해시민들 10만여명은 행차행렬이 지날때마다 한마당 축제판을 함께 했다고. 특히 이날 대형북을 앞세우고 힘찬 행진음악을 연주하는 취타대를 따라 거북선이 등장하고 판옥선에 올라탄 갑옷차림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행차행렬이 북원로터리 충무공동상앞을 지날때는 연도를 메운 시민과 관광객들 환호와 함께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소요물품 1천5백점 ○…이번 행사에 모인 대·소도구와 각종 장신구·의상등 1천5백여점은 모두 전문가들의 고증에 따라 완벽하게 재현됐다.특히 선두에서 행렬의 완급을 조절한 대형 북은 직경이 1·5m에 이르고 가죽두께가 4㎝나 돼 한번 칠때마다 북소리가 진해시내를 진동시키는듯 했다. 북에는 팔괘와 봉황이 구름을 헤치고 하늘로 오르는 문양을 아로 새겼다. 이번에 북에 새긴 문양을 태극대신 팔괘로 한 것은 하늘과 땅,그리고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국토와 백성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 북은 인간문화재인 윤덕진씨가 전국향토문화축제 행사를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진해 중앙종고는 올해로 세번째 참가한 이 행사의 단골.이 학교학생들은 대고행렬에 44명을 비롯,거북선에 42명,판옥선에 60명등 모두 2백8명이 참가했다. ○…행렬 선두의 남원농고 취타대는 올해 처음 참가했으나 옛 군제에 따라 소라·대각징·북 등을 갖춘 43인조로 편성,행사의 흥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이날 행렬에는 지난 5일 선발된 벚꽃미인 5명이 판옥선에 승선,연도에 늘어선 관광객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 벚꽃미인 진 권도영양(22·부산출신)은 『이번 행사에 참가해 충무공의 애국애족정신을 새삼 느끼게 되어 기쁘며 자긍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진해공설운동장을 출발한 행차행렬이 중원로터리에 도달하면서 행사는 절정을 이루었다.특히 행렬이 지나면서 판옥선에 올라선 이순신장군이 긴 칼을 빼들고 장졸들을 독려하는 장면을 연출해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했다.이순신장군으로 분장한 여운장씨(36·기수)가 판옥선에서 『거북선은 적진을 돌파하라』고호령하자 오색연기를 내뿜는 거북선이 적진으로 내닫는 모습이 재현되기도 했다. 이어 사물놀이패들이 승리를 축하하는 사물놀이를 펼치자 연도의 구경꾼들은 신명에 겨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다. ○…행사를 주관한 최유경 충무공선양회장은 『진해는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의 요람이자 임진왜란당시 충무공이 안골포해전과 웅포해전에서 왜적을 무찌른 유서깊은 곳』이라며 『서울신문사가 이곳에서 충무공 승전행차 행사를 갖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순신장군으로 분장한 여씨는 『갑옷을 입고 거북선에 오르니 평소 잊고 있었던 장군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문화예술행사 승화 ○…행차행렬 행사에 앞서 시민 3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설운동장에서 거행된 경축식에서 이남기 진해시장은 『앞으로 진해군항제는 충무공의 호국충정을 추모하고 화합과 인정이 어우러진 향토문화예술의 잔치로 승화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했으며 행사가 끝난뒤 서울신문사는 하오6시부터 시내 청기와식당에서 지역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만찬을 베풀었다. 이날 만찬회에는 이시장과 박이율시의회의장,김무웅제7전단장등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했으며 이자리에서 서울신문사 번영환이사는 『서울신문사는 앞으로도 지역문화창달을 위해 군항제 뿐만 아니라 전국의 향토문화를 발굴,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외언내언

    고작 서른 아홉해를 살다간 신동엽시인.「4월은 갈아엎는 달」을 노래했던 사람이다.공교롭게도 그는 4월(7일)에 눈을 감는다.그 「갈아엎는 달」에.◆요맘때의 농촌에서는 쟁기질을 하여 땅을 갈아엎는다.흙들이(객토)를 하기도 하고.신시인은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과 『광화문서 목터진 4월의 승리』를 거기 빗댄다.그러면서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을 갈아엎었으면』한다.『갈아엎은 한강연안에다/보리를 뿌리면/비단처럼 물결칠,아 보리밭』.그는 『산천은 껍질을 벗고 속잎 돋아나는』4월을 예찬한다.그 4월이 오늘부터 열린다.◆하루가 다르게 봄옷을 입어가는 산야.싱그러운 섭이의 질서를 보여준다.그것은 계절을 갈아엎는 모습이기도.하지만 어찌 산천만 껍질을 벗어야 한다 하랴.우리들 마음속의 응어리진 껍질도 벗어야 하는 달 4월.속잎 또한 초목에서만 솟아나야 하는 건 아니다.우리들의 심성에서도 솟아올라야 할 아름답고 진취적인 기상.4월은 그렇게 마음을 갈아엎으라고 이르는 양하다.◆올해의 4월은 역사를 숙연히 되돌아보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임진왜란이 일어난지 4백년이 되는 해의 달이기 때문.1592년 4월13일 가덕도 응봉 봉수대에서 왜군 병선이 쳐들어온다는 보고가 들어온다.그 다음날인 14일에는 부산성이 함락되면서 무풍지대를 가듯 북상해 갔던 왜군.4백년 전의 조선의 4월은 잔인했다.조총소리 속에 짓밟히며 숨져 갔던 우리의 조상들.그런데 오늘에 또다른 조총소리를 듣는 것 같다.환청일까.◆멀리 이국땅에 나가 있는 가족·친지에게 편지를 띄우자.거기 4월의 향기를 담자.껍질을 벗고 속잎 돋아난 4월의 마음을 실어 보내자.모두가 보람찬 4월을 엮어 나갔으면 한다.
  • 내고장 향토문화제 꽃피운다/「충무공」등 8개행사에 3천여명 출연

    ◎제3회 전통축제행렬 8일 “첫 행차”/지역특색 살려 창극·남사당놀이등 첫선/의상등 소도구 5만여점… 예산도 대폭늘려/KBS가 후원… 비행선 띄워 축제분위기 “한껏” 전국 각지역 향토문화축제의 대표적 행사로 자리잡은 전통축제행렬의 올해 첫번째 행차가 오는 8일 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진해에서 펼쳐진다.서울신문사와 금성이 전통축제를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고 지방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 90년부터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지역문화예술인및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협의와 연구가 이루어져 회가 거듭될수록 생명력있는 축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KBS가 후원할 올해는 특히 호응도가 높고 참여폭이 넓은 새로운 향토축제의 전형을 개발한다는 방침아래 행렬 일변도에서 벗어나 창극과 무속연희,남사당놀이 등을 포함시켜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는 8일 진해 군항제의 「충무공 승전행차행렬」에 이어 5월9일 남원 춘향제의 「남사당놀이」와 창극 「춘향전」,6월5일 강릉 단오제의 「강릉부사영신행렬」,7월1·2일 진도영등제의 민속축제극과 연날리기가 잇따른다. 또 10월에는 부여 백제문화제의 「사비천도행렬」,충주 우륵문화제의 「임경업장군출진행렬」,경주 신라문화제의 「태종무열왕 행차행렬」,제주 한나문화제의 창극 「배비장전」과 무속연희 「찰머리당굿」이 집중적으로 열린다. ○「축제예술」서 기획 올해는 행사기획과 연출,진행을 축제예술(대표 허규)이 맡았으며 8개 행사에 출연할 총인원은 3천명에 이르며 의상과 소도구,장비등 소요물품도 5만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8번의 행사비용도 지난해 경비에 비해 크게 늘어난 4억원정도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어서 어느때보다 충실한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있다. 전통축제행렬을 해당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특성과 고유성을 살린 축제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그 지역의 민속놀이및 민요와의 연관성을 배려해 내용을 재구성한 것도 올해의 특징이다.또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향토문화제의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지역유지등 현지주민및 관계저명인사 등을 중심인물로 출연케 할 예정이다. 이밖에 행사가 열리는 곳마다 비행선을 띄워 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우게 된다. 전국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게 될 이번 행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진해 군항제◁ 충무공의 기개가 어린 충절의 고장에서 벚꽃이 활짝 핀 가운데 열리는 군항제가 올해도 4월1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올해로 30회를 맞는 군항제는 이충무공 호국정신 선양회가 주최하는 종합향토예술제이다. 「충무공승전행차」는 군항제의 축제분위기가 절정에 이를 4월8일 진해 공설운동장에서 필승로∼충무공시비∼진해역을 거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2·5㎞구간에서 열린다. 올해는 특히 행진이 끝난 뒤 공설운동장에서 뒷풀이인 승전축하놀이를 대대적으로 가져 행렬참가자와 주민·관광객이 하나가 되는 축제 분위기의 절정을 연출하게 된다. ▷남원 춘향제◁ 춘향으로 대표되는 정절의 고장이자 판소리의 고향인 남원고을에서 열리는 춘향제는 5월9일부터 14일까지 6일동안 계속된다. ○춘향선발대회도 열려 춘향문화선양회가 주최해 올해로 62회의 연륜을 자랑하는 춘향제는 춘향사당에서의 제사로 막을 올려 춘향선발대회와 명창대회등이 이어진다. 서울신문사는 지난해 변학도의 부임행차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신관사또행차」에 이어 올해는 남사당놀이와 창극 「춘향전」을 마련했다. 창극 「춘향전」은 춘향의 정절과 남원이 판소리의 고장임을 한 무대에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오는 5월10일 공연된다. ▷강릉단오제◁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단오제는 음력 5월5일을 전후해 20여일동안 치러지는 유서깊은 산신성황제이다. 올해 단오제는 6월3일부터 5일동안 열린다. 서울신문사는 단오제가 영동지방의 문화중심지인 강릉에서 열린다는 점을 감안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강릉부사영신행렬」을 마련했다. 강릉부사가 대관령 산신당으로 신을 모시러가는 행차를 축제화한 이 행사는 6월5일 열린다. ▷진도영등제◁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바다는 한해에 한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완만한 원호를 그리며 드러나는 개펄은 기적과 같은 장엄한 광경을연출하며 이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해마다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들며 이때를 전후해 열리는 축제가 바로 영등제이다. 현지에는 폭풍우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뽕할머니」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용왕에 축원을 드린 결과 바다가 갈라졌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뽕할머니」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을 「영등살」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올해 영등제는 오는 7월1일과 2일 이틀동안 열리며 서울신문사는 「영등축제극」을 마련한다. ▷부여 백제문화제◁ 백제문화제는 올해 38회째로 백제의 고도 공주와 부여에서 번갈아 열린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백제문화제는 계백장군의 수련장이었던 천등산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것으로 막이 올라 축제기간 동안 한시백일장,시조경창대회,백제왕비 및 공주선발대회를 비롯,씨름·궁도대회,농악경연,국악제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성왕의 천도행렬 재현 서울신문사는 「성왕의 사비천도행렬」을 준비하고 있다. 성왕은 백제 제26대 왕으로 538년 태진(공주)에서 사자성(부여)으로 천도했다. 「사비천도행렬」은 바로 이 천도행렬을 축제화한 것으로 성왕의 천도행렬을 장엄하게 재현하게 된다. ▷충주 우륵문화제◁ 우륵문화제는 올해 22회로 오는 10월 열린다.이 문화제는 신라의 낙사 우륵을 기리는 축제이다. 충주에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탄금대가 있다.이곳은 임진왜란당시 신입장군이 배수의 진을 치고 장렬히 싸우다 패퇴해 그의 여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같은 배경에서 올해는 임경업장군이 금나라와 싸우기 위해 출진하는 행렬을 재현한 「임경업장군 출진행렬」을 마련한다. ▷경주 신라문화제◁ 오는 10월 열리는 신라문화제는 신라문화선양회가 찬란했던 신라의 문화를 보전·계승하기 위해 주관하는 향토축제로 국악대제전 미술대전 궁도대회 등의 갖가지 행사가 열린다. 신라문화제에서는 「태종무열왕 행차행렬」을 재현하게 된다. ▷제주 한라문화제◁ 제주의 향토축제인 한나문화제는 올해 31회로 매년 10월에 열린다. 제주는 육지와 전혀 다른 풍광과 생활방식으로 인해 이 축제에서 펼쳐지는 생업과 자연환경이 밀접히 연관된 독창적인 민속놀이로 눈길을 끌어왔다.특히 한라산 신제,해녀노래 등 향토색 짙은 민속은 큰 각광을 받고 있다.
  • 외언내언

    호박꽃도 꽃이냐고 이죽거린다.하지만 그게 아니다.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예쁜 노랑색 꽃.『…두메에서 왔다는 순직한 순이의 얼굴이 그 속에 있어 좋구나』고 노래하는 시인도 있지 아니한가.(박병순 「호박꽃」).◆원산지가 어딘가에 대해서는 설도 많은 호박.여기에는 아시아의 남부지방이라 씌어 있는가 하면 저기에는 중부 아메리카 혹은 남부 멕시코,페루의 안데스산맥이라고도 씌어 있어 종잡기 어려워진다.우리나라에서의 전래도 그렇다.임진왜란후라고도 하고 18세기께라고도 하고.어쨌거나 19세기 후반에 나온 「규합총서」에는 호박나물 조리법이 소개되고 있다.◆동지에 호박을 먹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산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온다.이 속설의 참뜻은 호박이 중·노년기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데 있을 듯.동물 실험 결과 신체 각 장기의 세포가 더 악화하지 않게끔 호박이 제동을 거는 구실을 하는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지난날에는 겨울에 부족되기 쉬운 비타민 공급원으로 되어 주었던 호박.A뿐 아니라 B₁·B₂에 유난히 칼슘도 많이 함유하는 식품이다.◆근년 들어 가을에 농촌을 가면 눈에 띄는 것이 늙은 호박.마루 아래 몇십통씩 쌓여 있다.봄에 아무데나 구덩이 넉넉히 파서 씨를 심어놓기만 하면 별 탈 없이 자라주는 것이 호박.이것이 곧바로 돈이 된다.체액을 약 알칼리성으로 되돌림으로해서 성인병 예방에 좋다면서 도시 사람들이 너도나도 찾기 때문.어느날 트럭이 와서 모조리 사가준다.그래서 해가 갈수록 재배면적은 는다.◆이 늙은 호박값이 오르고 있다.4∼5㎏짜리가 1만∼1만2천원선.호박음료 만드는 곳이 불어난데 따른 변동이다.『호박이 굴렀다』­큰 수가 났을 때를 이르는 우리 속담.정말 호박재배로 호박이 구르는가 보다.
  • 조선시대 사기가마 일서발견/국내에없는 완형/분청자기 편·용구도함께

    ◎서울신문사 학술조사단 확인 【야마구치(일본)=최해국특파원】 국내에도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16세기 조선시대 전통형식의 사기 가마(요)가 일본에서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전통을 고스란히 지닌 이 가마는 서울신문사가 임진왜란 4백주년을 맞아 「일본속의 한국도자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현지에 파견한 학술조사단이 8일 야마구치겐 나가토시 신센(산구현 장문시 심천)에서 찾아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98년) 당시 왜군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일본땅에서 처음으로 도자기를 굽기위해 만든 이 가마는 높이 2m,넓이 2.5∼3m의 계단식 등요로 현재 30m가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구울 그릇을 넣어 벽돌과 흙으로 봉했다가 소성된 도자기를 꺼낼때 허물어 버리고 출입하는 가마문과 불을 지피던 아궁이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었다. 학술조사단은 이 가마근처에서 임란 직전에 해당하는 시기의 조선시대 분청사기 양식의 무수한 도자기편과 함께 갑발,도지미등 많은 분량의 가마용구를 수습했다. 이들 분청사기의 표면분장 안쪽 본바탕은 갈색을 띠어 철분을 다분히 함량한 이 지역의 흙을 태토로 썼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가마 이웃에는 임란당시 일본에 잡혀간 조선 도공 이작광의 후손 15대 이작광씨(43)가 살고 있다. 일본이 선진 도자기문화를 수용하고 조선도공들을 회유하기 위해 선대들에게 준 관위 「한쇼쿠신헤이에몬」(판식신병위문)을 가지고 아직도 도자기 명문가로 행세하고 있는 그는 서울신문사 학술조사단이 확인한 조선전통의 옛 가마를 『명치유신 시기까지는 대대로 수리해 사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학술조사에 참여한 원광대 윤용이 교수(도자미술사)는 『분청사기가 끝나는 시기인 4백여년전 가마라는 점에서 우리 도자문화의 이행과정을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말로 이 도요 확인조사성과를 높이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 “민중불교운동 정치색 벗어야”

    ◎전 부회장 목우스님,민족불교지에 기고/신자제외 소장파 승려들이 주도/과격한 행동으로 대중 외면받아/“삶의 현장 자비구현이 사회발전기여의 길” 불교 민중운동이 종교적인 범주를 벗어나 다수 불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수의 유명인물 중심으로 펼쳐져 지나치게 정치적인 색깔을 띠어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같은 비판은 최근까지 민중불교운동을 이끌어온 목우스님(전민중불교운동연합 부회장·정토사)에 의해 제기된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목우스님은 최근 발간된 불교계 무크지 「민족불교」제2호(청년사간)에 기고한 글 「민중불교운동의 반성」을 통해 『민중불교운동이 그동안 극단적인 세력에 이용당한 결과 현재 이 운동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민중불교운동이 급진적인 이념을 탈피,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불타의 자비를 구현할 때 역사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목우스님은 또 『불교운동은 일반운동과는 달리 종교와 운동을 조화하여 일치시키는작업이라야 한다』고 전제하고 『일반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에 집착하여 빠지게 되는 함정이나 오류를 불교운동은 보다 근원적인 시각에서 지적하고 비판하여 그에 대한 불교적 입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중불교운동은 80년대 중반 불교사회문화연구원(원장 여익구)을 중심으로 목우,현기스님등 소장승려들과 재가불자들이 연합하여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을 창립하면서 본격화됐다.이어 민불련에 참여한 소장승려 14명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민주헌법쟁취 범국민 개헌서명운동」에 참여하고 1백52명이 그 뒤를 따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승려중심의 「정토구현 전국승가회」가 발족돼 불교운동은 신자중심에서 승려중심으로 옮겨졌다.이들은 곧 해인사에 모여 「불교자주화선언」을 하고 「10·27법난규탄 및 불교자주화쟁취대회」등을 잇따라 열었다. 목우스님은 『민중불교운동은 본래의 근본불교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불교가 역사속에서 어떻게 제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젊은 승려들에 의해 제기된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이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시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즉 불교의 상대적연기론에 입각,시대적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올바른 대응을 해야한다는 것이 민중불교운동의 기본취지로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승려들이 왜군에 맞서 싸웠던 것을 일컫는 호국불교와 일맥상통한다는 것. 그러나 그동안의 민중불교운동이 종교적인 범주를 벗어나 정치적인 색깔을 띠게된것은 문제라고 진단한 목우스님은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정토구현전국승가회」를 중심으로 한 민중불교운동이 「불교의 자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란 두가지 목표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 두륜산/천년고목·운무 어우러진 선경

    ◎해남서 12㎞… 정상까진 4시간/대흥사 둘러싼 동백군락 “장관”/전통다도 명맥잇는 일기암도 가볼만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엔 올망졸망한 섬들이 표주박처럼 떠있고 아스라이 이어지는 수평선 너머로 제주 한나산이 희미하게 보여 한 폭의 명화를 감상하는 듯하다.구름이 끼어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계곡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구름이 산세와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해 낸다.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와 임진왜란 때 승병대장으로 호국에 앞장섰던 서산대사의 발자취가 서린 전남 해남 두륜산 정상(7백3m)­.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천년을 넘는 고목과 5m도 넘어보이는 해묵은 동백나무 군락이 산행을 반긴다.그중에서도 금방이라도 화사함을 드러내 보일 듯이 꽃망울을 한껏 부풀리고 있는 동백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남 해남읍에서 12㎞ 떨어진 곳에 자리한 전남도립공원 두륜산은 대흥사를 품에 안고 있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해남읍에서 남동쪽으로 자동차로 20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사입구인 장춘리에 닿고 이어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제일장춘교에서 대흥사앞에 이르는 2·5㎞는 대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온통 거목의 긴 터널을 이루어 그야말로 장관이다.고목으로 우거진 사잇길을 따라 해탈문을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이 천년풍상을 견디어 온 고찰의 풍모를 대변한다. 두륜산 정상까지는 두 길이 나 있다.하나는 진불암을 거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북암을 먼저 거치는 코스다.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4시간 가량이면 정상까지 갔다올 수 있다.오르막길에는 천연바위로 이뤄진 구름다리가 가로질러 하늘에 오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하산은 노승봉,가련봉을 거쳐 북암쪽을 택할 수도 있으나 길이 험해 만일암터길로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만일암터에는 천년 묵은 거목이 빈 터를 지키며 그날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하산길에 천연기념물 173호인 왕벌나무와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대흥사를 관람하는 것은 두륜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신라 진흥왕 5년(서기 544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흥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보전·보련각·천신암·일주문 등 34개 건물과 보물 4점 등이 보는 이를 압도하며 가람의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또 이웃 표충사에는 서산대사가 생전에 입었던 금란가사를 비롯,밥그릇으로 사용했던 옥발 3점,칠보염주 1점,신발 2켤레,서산대사 친필인 정선사가록,임금이 내린 교지,도끼,창,승군단표지물,신호용 나팔 등이 전시되어 대사의 큰 뜻을 일러준다. 이와 함께 조선조말 초의스님이 기거하며 전통다도의 명맥을 이어온 일기암도 꼭 가볼 만한 곳이다.귀로에는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 공재 윤두서 자화상과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등 유물 2천5백여점을 보관 전시중인 고산유적지도 돌아볼 수 있다.특히 이 유물관 뒷산은 천연기념물 241호인 비자나무숲으로 덮여있다.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우리 나라 육지 땅끝인 토말과 명량대첩지 우수영을 돌아보고 해남읍 천일식당(전화 0634­536­4001)에서 한식을 맛보는 것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서울에서 대흥사를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비아 인터체인지에서 송정∼나주∼영암∼성전∼옥천∼해남∼장춘등을 잇는 코스가 지름길이다.
  • 「김정일 이론」 따라 이념선전 충실(북한문화실상:5)

    ◎영화/「2·8촬영소」등 4곳서 한해에 1백여편 제작/작가 개인의 자유로운 영상표현·작품성 미흡/개방따라 소재 확대… 첩보물·코미디 등장 북한영화 북한의 영화는 문화예술분야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당사상사업」선전의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당사상사업」은 당의 정책과 김일성의 교시를 전달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당적원칙이라는 이름아래 철저히 지키도록 강요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영화는 대체로 선과 악,노동계급과 착취계급,긍정적인 인물과 부정적인 인물 등 단순논리에 따라 구성되며 주제가 명료하게 드러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같은 특성을 지닌 북한영화는 7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의거,만들어져 왔다.이른바 「공산주의적이며 긍정적인 주인공을 주도적 입장에 세워 형성」한다는 것인데 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김정일이 저술한 「영화예술론」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의 영화는 크게 분류하면 예술영화(극영화)·기록영화·과학영화·아동영화로 나눌 수 있다. 극영화의 주제는 대체로 김일성­김정일찬양,체제선전,주민노역선동,사상교양 등으로 돼 있다. 기록영화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역사문헌영화·정론영화·사건기록영화·시사보도영화·행사기록영화·기행영화 등으로 세분돼 있다. 과학영화는 각 산업별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나 각 분야의 선진적 경험,의학기술상식 등의 보급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으며 아동영화는 말그대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화로 아동극영화와 만화영화 및 인형극 영화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아동영화의 주제는 대체로 지식교양을 위주로 하는 동화나 우화·계급교양·사회주의 교양·공산주의 도덕교양을 내용으로하는 동화및 우화 과학·환상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북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제작편수는 연평균 1백여편.예술영화 30∼40여편,기록영화 30∼50편,과학영화 30여편,아동영화 10여편등이다. 예술영화는 주로 조선예술영화촬영소와 2·8예술영화촬영소,기록영화는 조선기록영화촬영소,과학·아동영화는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에서 각각 제작된다. 이가운데 조선예술영화촬영소는 북한최대의 규모로 총1백만㎡의 넓이에 촬영소 구내 25만㎡로 구성돼있다. 「꽃파는 처녀」「피바다」등의 영화제작으로 유명한 이촬영소에는 2백여명의 전속배우,27명의 연출가,1천5백명의 종사원이 소속돼있다.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영화만 연평균 30여편에 가깝다.이를테면 북한극영화제작의 대본산인 셈이다.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촬영소와 많은 영화인력을 자랑하는 북한 영화계이지만 영화의 내용이나 기법등 전반적인 영화의 수준은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영화가 그동안 모스크바영화제나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등 동구의 유력영화제에서 이렇다할 수상작을 내지 못한데서도 잘 입증된다. 영화 작가로서 개인의 자유로운 영상표현이나 작품성 또는 극적 완성도 보다는 체제선전적 내지는 교양위주의 북한영화계 실정으로는 당연한 귀결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북한영화계에도 변화의 주목할 만한 양상이 일고 있다. 향토애·조국애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이 그것이다. 지난 87년 제1차 평양비동맹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도라지꽃」을 필두로 90년의 「고향땅」「우리는 청춘」,그리고 91년의 「하얀꽃」「내고향 처녀들」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북한은 이 일련의 작품들을 가리켜 「향토애를 인생관의 문제로 제기,이를 통해 진정한 조국애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현실에 반영한 작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6·25전쟁을 배경으로한 첩보물과 임진왜란 배경의 액션물,「가정의 혁명화」를 시리즈 주제로한 코미디물까지 선보이고 있다. 물론 이 작품들이 사회주의 체제의 선전성을 완전히 탈색한것은 아니다.우회적 기법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이나 아름다운면을 강조하는 영화들이다. 당국과 김정일당비서의 지도아래 제작되는 북한영화에 김부자선전내용보다 이같은 내용의 영화들이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은 북한사회의 개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약8년간(78∼86년)납북돼 「소금」「돌아오지않는 밀사」등을 통해 대중적 흥미를 맛보게한 신상옥·최은희부부의 활동도 이같은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튼 선전·선동을 주목적으로 삼아온 북한영화가 향후 사회개방속도에 발맞춰 흥미와 예술성을 점차 가미해 나갈 것으로 보여 가까운 장래에 질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변모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 예지본능/안태혁 보험감독원장(굄돌)

    인간은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이것을 우리는 예지본능이라 한다.이와 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날짐승이나 미물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까치가 집을 지을 때 남쪽으로 문을 내면 겨울에 북풍이 강하게 불고,개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장마가 온다는 이치도 일종의 예지본능적인 행위라고 할수 있다.그래서 인간의 감성은 그것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잘 아는 세계적인 석학 토인비 교수나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2000년대를 예언하고 있는 「유러퀘이크」의 저자 대니얼 버스타인 등은 앞으로 우리 앞에 닥쳐올 일들을 논리적으로 예시하는데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미래를 정확하게 감지했던 선지자들중에 이조시대 성리학의 대가였던 율곡 이이 같은 분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여 임진왜란을 예언하지 않았던가.특히 근세에 들어 신화엄경을 완역하고 열반에 드신 탄허스님은 유·불·선 삼교를 통달하여 생전에 놀라운 예지력을 보여주신분으로 유명하다. 그분은 6·25동란과 울진·삼척지역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월남전의 패망을 미국이 철수하기 15년 전에 예언한 바 있다.또한 우리나라의 통일과 국가번영,일본의 몰락,지축의 변경,지구영토의 확장 등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세계의 변화를 오래전에 예고해 주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한 마디로 불확실성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이 급변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속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미래를 예측하고 사전에 대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에게 부여된 예지본능을 일깨워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과 지혜를 갖도록 해야겠다.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려면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도 소중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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