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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20 ~ 22일 ‘파주장단콩축제’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20 ~ 22일 ‘파주장단콩축제’

    비무장지대(DMZ) 청정 지역에서 재배한 장단콩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제19회 파주장단콩축제’가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경기 파주시 임진각 광장에서 열린다. 파주 명품으로 전래되는 장단콩과 쌀 등 지역 농산물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고 소비 촉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축제다. ‘웰빙명품, 파주 장단콩 세상’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에서는 가뭄으로 지난해보다 40%가량 줄어든 장단콩 5000여 가마(1가마 70㎏)가 판매될 예정이다. 판매가격은 시중보다 10~15% 싸지만 예년에 비해 소폭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판매되는 콩은 올서리태, 늦서리태, 백태, 쥐눈이콩 등이다. 된장, 간장, 청국장 등 콩 가공식품도 함께 판매된다. 이재홍 파주시장은 “종자 선택, 파종, 수확, 선별, 판매까지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 입회하는 생산이력제를 도입해 철저히 품질을 관리했다. 자신 있게 추천한다”고 말했다. 파주시는 1996년부터 ‘파주 장단콩 특산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장단콩을 100년 전통의 국산콩 대표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를 위해 시작된 장단콩 축제는 1997년부터 매년 11월 개최하고 있으며 연평균 75만여명이 찾는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잡았다. 올해로 벌써 19회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농식품 파워브랜드’에 2년 연속 선정되기도 한 축제다. 이제 성인의 나이가 된 올해 콩축제는 체험마당, 이벤트마당, 판매장 및 먹거리마당, 상설전시장 등 6개 마당 56개 이색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구성된다. 체험마당에서는 꼬마메주 만들기, 도리깨 콩 타작, 가마솥 순두부, 감자·고구마 구워 먹기, 전통장·전통주 담그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벤트마당에서는 장단콩 길놀이, 마당극, 힘자랑대회, 한우고기 경매, 마술쇼, 버블쇼 등이 펼쳐져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장단콩 주부가요대전, 장단콩 요리 전국 경연대회, 평화누리길 걷기대회 등 연계행사도 열린다. 상설행사 가운데 판매장터에는 장단콩 전문 판매장, 파주에서 생산한 농특산물과 축산물 판매장, 콩 가공식품 판매장, 파주전통재래장터가 있다. 먹거리장터에는 콩 전문 음식점이 있고 두부시식회, 콩개발요리, 한우구이 등을 즐길 수 있다. 어린이들은 체험행사장에서 꼬마메주 만들기, 맷돌 체험, 도리깨 콩타작, 한국전래놀이, 사랑의 콩비빔밥 나누기, 장작불 콩 삶기, 감자·고구마 구워 먹기 등을 무료로 경험해 볼 수 있다. 전년도 행사와 달라진 점도 많다. 우선 각 마을 부녀회에서 자체 개발한 전문 음식을 청결한 매장에서 판매한다. 마당극, 거리공연, 힘자랑대회, 주부가요대전 등 주민 화합을 도모하고 방문객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도 더 늘렸다. 넓은 평화누리를 활용해 체험 활동, 마당극, 거리공연도 유치했다. 방문객들이 축제장 구석구석을 두루 구경할 수 있도록 특정 구간에서 기념품을 제공하는 ‘스탬프 투어’ 방식도 도입했다. 일정 금액 이상 콩을 구매한 고객에 한해 경품권 증정도 한다. 이번 축제를 파주시민들의 화합 한마당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 역시 배어 있다. 읍·면·동별 특색 있는 길놀이 행사, 주민자치연합회 페스티벌, 힘자랑대회, 주부가요대전 등이 그렇다. 파주 장단콩은 쌀, 인삼과 함께 예부터 임금에게 진상하던 ‘장단삼백’의 하나다. 이에 따라 장단콩뿐 아니라 파주쌀 등 파주산 다른 농산물 판매를 위한 전시관을 운영하며 관련 홍보도 한다. 1913년 대한민국 최초의 콩 장려품종으로 선발된 ‘장단백목’은 바로 이 지역 토종콩에서 순계분리(자가수정이나 도태를 계속해 순수한 계통을 가려내는 개량법)됐다. 국내 최초 교배 육성종인 ‘광교’ 역시 장단 토종콩을 모태로 했다. 장단 지역이 국내 콩의 ‘본고장’인 셈이다. 임진강변의 큰 일교차 속에 마사토(참흙)에서 맑은 물과 공기를 머금고 자란 장단콩은 다른 지역 콩보다 유기질은 2배, 항암성분인 이소플라본은 50%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주시는 관람객들이 파주 장단콩을 믿고 구매할 수 있도록 생산이력제를 시행하고 있다. 17개 단지를 통합해 종자 선택부터 파종, 생육 관리 등 생산부터 수확 선별 및 판매까지 공무원이 현장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 이 시장은 “이번 축제 행사장에 출품하는 파주 장단콩은 농민들이 심한 가뭄을 이겨 내고 부단한 노력을 한 끝에 얻은 결실”이라며 “파주장단콩축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씨줄날줄] 획기적 발굴과 안타까운 이면/서동철 논설위원

    지난주 경기 안성시 도기동에서 장수왕 시대 고구려의 남진(南進) 경로를 밝힐 수 있는 삼국시대 목책성(木柵城)이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 고구려 산성이 알려 준 것은 묻혀 있던 삼국시대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매장 문화재 보호 정책이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는지 보여 준 것도 못지않은 성과였다. 목책성이란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나무 기둥을 촘촘하게 박아 만든 방어 시설이다. 도기동 산성은 백제가 쌓은 뒤 고구려가 점령해 방어 시설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북쪽으로 안성천이 스치듯 흘러나가는 도기동 산성에 오르면 서남쪽으로는 평택과 천안 일대까지 안성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동북으로는 병풍처럼 가로막은 차령산맥이 멀리 지나는 가운데 안성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군사 지식이 없어도 요충으로 느껴진다. 남한 지역에서 확인된 고구려 군사 유적은 50개 남짓하다. 삼국시대 한반도 남북을 잇는 대표적 교통로였던 임진강 및 한탄강 주변과 양주, 한강 북안 아차산 일대와 금강 유역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금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은 진천 대모산성과 세종 남성골산성, 대전 월평동산성이 있다. 고구려 장수왕이 475년 백제 수도 한성을 공략한 뒤 남쪽으로 여세를 몰아 지금의 충청권 일대를 한동안 점령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당시 신라의 영토이던 충주를 점령해 이른바 중원 고구려비를 남기기도 했다. 도기동 목책성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군데군데 끊긴 4개 구간에 걸쳐 130m 정도가 드러났다. 산줄기 지형으로 추정하면 전체 산성은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도 역사적 가치는 물론 사료로만 전하던 삼국시대 책(柵)의 구조를 명확하게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추가 조사에 이은 사적 지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발굴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이 적지 않다. 그동안 일대의 소규모 발굴 조사에서는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 결과 산성 뒤편은 이미 개발이 이루어졌다. 목책성이 드러난 산성의 앞부분도 이미 보기 흉할 만큼 파괴됐다.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전 국토 정밀 문화재 지표조사가 진작에 이루어졌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발굴된 것은 경사스럽지만 그 가치가 크면 클수록 해당 토지의 개발 당사자가 더 많은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도 모순이다. 도기동 목책성 자리에 대형 창고를 지으려 했던 땅 주인도 마찬가지다.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수십억원의 은행 이자를 어떻게 감당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손발을 묶은 발굴 비용도 부담해야 했다. 내 땅에서 문화재가 나오는 것이 재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7] 해자(垓子)로 기능한 중학천과 백운동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7] 해자(垓子)로 기능한 중학천과 백운동천

     조선은 왕조를 열면서 지금의 충남 계룡시 3군사령부 터를 도읍으로 점찍고 궁궐공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곧 한양의 북악산 아래로 수도의 위치를 바꾸게 된다. 풍수지리를 공부했다는 사람 가운데 몇몇은 이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계룡산을 버리고 한양을 택한 것이 잘못이고, 인왕산을 버리고 북악산을 택한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선의 서울이 계룡산 어귀였다면 지금쯤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은 임진강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수도의 위치 문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양을 설계한 사람들이 궁궐 자리를 북악산 아래로 점찍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흔히 경복궁은 해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해자란 외적의 방어를 위해 성의 둘레를 파놓은 시설이다. 중국 베이징의 쯔진청(紫禁城)과 일본 도쿄의 왕궁에는 모두 해자가 있다. 반면 경복궁 주변은 아무리 둘러봐도 해자는 찾을 수 없다. 경복궁 금천을 일종의 해자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담장 안에 있는 것을 해자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경복궁에는 자연의 조화를 거스르지 않고 실용성이 뛰어난 자연 해자가 있었다. 궁궐 동쪽의 중학천과 서쪽의 백운동천이 그것이다. 중학천은 삼청동에서 발원해 경복궁 담장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뒷길을 따라 흐르다 청계천과 합류한다. 백운동천은 자하문터널 쪽에서 시작해 자하문로와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지나 역시 청계천과 합쳐진다. 이것을 20세기 후반 우리 손으로 복개했다. 삼청동길과 자하문로 아래로는 지금도 중학천과 백운동천이 흐른다.  도성을 설계한 사람들은 궁궐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그 결과 북쪽은 북악산이 가로막고, 동쪽과 서쪽의 하천은 남쪽에서 합류하며 세 방향에서 자연 해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경복궁을 앉힌 것이다. 궁궐 아래로는 정부기관을 한데 모은 육조 거리도 조성했다. 자연 해자의 보호를 받는 곳에 국가의 중추기관을 집중시킨 것이다. 복개가 이루어지기 전 중학천 사진을 보면 바닥은 깊고, 호안은 적이 오르기 어렵도록 돌로 쌓은 수직 벽이다. 궁궐을 감싸는 해자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중학천과 백운동천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의 연장선 상에서 두 하천을 되살리고자 했지만, 길이 사라진다는 현실적 어려움에 부닥쳐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의 중학천 일부만 상징적으로 복원했다. 물론 앞으로도 복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복궁 복원 작업은 해자까지 살아나야 완성일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제5회 지방행정의 달인-환경산림 분야

    제5회 지방행정의 달인-환경산림 분야

    오염총량제 전국 최초 시행 조준식 경기도 수자원본부 수질총량과 (환경 5급) 모든 오염원과 개발사업을 관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인 오염총량관리제를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했다. 수질오염총량제에 관한 논문으로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질개선 유공으로 대통령 표창도 수상했다. 최근 환경영향평가사 자격증을 따는 등 열성을 보였다. 임진강 배출시설 설치제한 고시 개정 등을 통해 수질보전과 개발사업을 조화롭게 추진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IT·GIS를 산림행정과 접목 안효용 충북 청주시 산림과 (녹지 6급) 종이 도면과 대장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는 등 정보기술(IT)과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산림행정에 접목해 선진 산림행정 실현을 목표로 늘 노력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지켰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과학적이고 효율적이며 신뢰받을 수 있는 종합 산림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산불 등 산림재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체계 확립과 고객만족 서비스에 헌신하고 있다.
  • “南 전력-北 수자원 맞바꾸면 윈윈”

    ‘남한의 전기와 북한의 물을 맞바꾸자.’ 국회 국방위원장인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14일 역대 최악으로 불리는 가뭄 해소를 위해 이 같은 이색 제안을 내놨다.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선 정 의원은 “북한의 임남댐(금강산댐·저수용량 26억㎥) 건설로 그러지 않아도 부족한 한강수계의 수자원이 12% 감소했다”면서 “북한이 가뭄 시기에 임남댐 방류로 수자원을 공급하면 우리가 전력을 공급하고 상·하수도 시설을 건설해 주는 수자원 공동 개발사업을 통해 남북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북한강과 임진강은 남북 공유하천이나 북한이 상류 지역에 각각 임남댐과 황강댐을 쌓아 하류 지역인 남한으로 흘러들어 오는 유량이 감소한 데다 사전통보 없이 물을 방류할 경우 수해의 원인도 되고 있다. 임남댐과 황강댐 건설 이후 줄어든 남한 유입량은 각각 연간 17억㎥, 10억 5000만㎥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인 소양강댐의 최대 저수용량(29억㎥)과 맞먹는 수준이다. 정 의원은 또 ▲1억t 미만 친환경댐 및 지하댐 건설 ▲해수 담수화 등 수자원 다변화 기술 개발 ▲한강~낙동강~금강 수계 연결 등도 제안했다. 정 의원은 “가뭄은 큰 위기지만 물 관리 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물 관련 산업을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종합적인 물 부족 대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가뭄대책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황교안 국무총리는 “심도 있게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9] 용미리석불입상이 상징하는 고려시대 사회안전망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9] 용미리석불입상이 상징하는 고려시대 사회안전망

     혜음령은 경기 고양시 고양동과 파주시 광탄면을 잇는 고개다. 지금은 자유로와 통일로가 서울과 개성을 간선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혜음령을 지나는 의주대로가 한양에서 개성은 물론 평양, 의주를 잇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삼국시대 한강과 임진강 일대는 치열한 격전장이었다.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려 각축을 벌이던 당시 임진강을 넘나드는 통로는 오늘날의 적성·연천 일대였다. 임진강에서 갈수기에는 걸어서도 건널 수 있는 최남단 지역이다. 옛 장단 땅인 연쳔 장남면에 고구려의 호로고루, 적성에 신라의 칠중성 등 국방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시대가 되면 남북 통행로는 당연히 수도인 개경, 즉 개성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고려는 장단대로에 위치해 갈수록 규모가 켜져가던 양주를 문종 21년(1067)에 남경(南京)으로 승격시킨다. 이후 남경의 중심이 한양 일대에 자리잡으면서 상당한 거리를 돌아야 하는 장단길보다 개성에서 임진나루를 거쳐 곧바로 남하하는 ‘의주대로’를 자연스럽게 선호하게 된다.  혜음령은 고양향교가 있는 고양동에서 흔히 용미리공동묘지로 불리는 서울시립용미리공원묘지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의주대로는 지금 고양시와 파주시의 협력으로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정비되어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경계를 이루는 고양시 삼송동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임진나루까지는 걸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혜음령과 광탄면 사무소 사이에는 혜음원(惠陰院)터와 용미리석불입상이 있어 의주대로의 역사를 알려준다. 혜음원은 고려시대 개경과 남경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예종 17년(1122) 세운 국립 숙박 시설이다. 왕의 행차를 위한 별원(別院)과 사찰도 있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한자로 ‘혜음원’이라고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출토됐고, 동서 104m, 남북 106m에 걸친 9개 석단의 27개 건물터와 연못터를 비롯한 놀라운 규모의 유구가 확인됐다.  혜음원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나타나는 장지산 기슭에 높이 17.4m의 우람한 석불입상이 세워진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2구로 이루어진 용미리석불입상은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불상으로 알려지고 있었지만, 불상에 남아있는 명문을 토대로 성화 7년(1471) 조성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화(成化)는 명나라 헌종의 연호다. 명문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도 줄줄이 면면도 적혀있으니 석불입상의 조성과 연관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석불입상에 얽힌 구전설화와 혜음사 창건 배경을 담은 김부식의 글을 찬찬이 읽다보면 석불입상의 고려시대 조성설(說)에 다시 마음이 기운다. 설화에 따르면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를 맞이했는데, 여전히 태기가 없었다.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궁주의 말을 들은 왕이 그들이 있다는 곳을 찾아가게 했더니 과연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왕이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불공을 드렸더니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김부식은 ‘혜음사 신창기’(惠陰寺 新創記)에서 이 길을 두고 ‘산이 깊고 초목이 우거져 범과 이리가 떼 지어 모이고, 도둑의 무리도 숨기 쉬워 통행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모으고 병기를 휴대해 (혜음령을) 지나가는데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자가 한해 수백 명’이라고 탄식했다. 이런 실상을 파악한 신하가 ‘허물어진 절을 새로 지어 중을 모으고, 그 옆에 집을 지어 노는 백성들을 정착시킨다면 짐승과 도둑의 해는 절로 멀어져 통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질 것’이라고 진언하고, 왕이 그대로 따르자 ‘무서운 길이 평탄한 길이 되었다’는 것이다.  용미리석불입상 창건 설화와 혜음사 신창기는 의주대로 주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한다. 단순히 산도적을 토벌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빈민의 배고픔을 막아 도둑의 길에 빠져들지 않게 한다는 적극적 사고는 오늘날에도 배울 만하다.  석불입상의 창건 설화는 상징성의 강한 설화의 특성상 구구절절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신창기 방식의 사고를 함축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용미리석불입상은 의주대로의 안전을 위해 비슷한 시기 혜음원과 일종의 세트로 조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조와 정희왕후가 일시에 깨달을 것을 미륵에 기원했다’는 명문에서 비롯된 조선시대 창건설(說)은 아무런 감동이 없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리즈 전체보기
  • [이경형 칼럼] 캠프 그리브스의 ‘선무’

    [이경형 칼럼] 캠프 그리브스의 ‘선무’

    캠프 그리브스의 실내 체육관은 숙연했다. ‘DMZ국제다큐영화제’(9월 17~24일)의 개막식은 DMZ 남방 민간통제선 안에 있는 미군 철수 기지에서 열렸다. 지난 17일 저녁 개봉된 개막작은 ‘나는 선무다’였다. ‘선무’(線無)는 얼굴 모습 없이 실루엣으로만 등장하는 주인공 탈북 화가의 예명으로 ‘경계선이 없다’는 뜻이다. 선무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패러디하기도 하고, 남북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그리는 등 팝아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에서 미술을 전공한 선무는 인민군 복무 중 북한 체제 선전물을 주로 그렸다. 1998년 북한을 탈출한 그는 중국을 거쳐 2002년 한국에 와서 다시 그림을 배웠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나, 개관 당일 북측의 항의를 받은 중국 공안에 의해 봉쇄됐다. 이번 개막작은 바로 베이징 전시회를 열기까지 4주간에 걸쳐 그가 부딪쳤던 현실을 미국 영화감독 애덤 쇼버그가 담아낸 것이다. 남북 이념 대결의 엄혹한 현실을 절감한 그는 북한 세습체제의 풍자화를 그릴 때는 지금도 누군가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환상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 남한에 살고 있는 2만 8000여명의 새터민들도 북에 두고 온 혈육으로 인해 선무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한·미 동맹의 최전방 부대였던 미 2사단 9연대 2대대는 임진강 북안 언덕 위의 캠프 그리브스에 주둔했다. 휴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부터 2004년 8월 이라크의 미군강습사단으로 흡수, 이동되기 전까지 51년간 주둔했다. 북한이 남침할 경우 미군이 자동 개입하는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부대였다. 1976년 북한의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캠프 그리브스는 미군 피살자 후송 및 후속 작전 수행의 전방 기지로 임무를 수행했다. 2년 뒤인 1978년 8월 당시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단계적인 철수 방침을 밝혔을 때, 가장 먼저 철수할 부대로 철책선에 인접한 이곳의 대대병력 800여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광복·분단 70년을 맞은 올해 개막작이 던지는 탈북 화가의 고뇌에 찬 메시지는 700여 관객을 뛰어넘어 DMZ를 끼고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다큐멘터리 ‘선무’가 주는 감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주둔했던 미군 철수 기지라는 상영 장소와 맞물려 여운이 길었다. 영내 농구시합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미군 병사들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한 낡은 체육관은 결코 전쟁의 상흔을 반추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DMZ와 함께 일상을 살고 있는 대성동, 통일촌, 해마루촌 사람들의 평화와 남북 소통을 간구하는 염원이 장내를 메웠다. 남북 간에 새로운 희망의 신호를 기다리는 ‘DMZ 사람들’에게는 DMZ가 더이상 남과 북을 갈라 놓는 경계선이 아니다. DMZ의 생태는 이미 남북의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정치군사적 분단은 어느덧 70년을 넘어가고 있지만, 숲의 생태는 이미 통일을 이룬 탓이다. 다음달 하순에는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예정돼 있다.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도 코앞에 다가왔다.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이산상봉 이전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지만, 남북 관계를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게 다뤄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통일로 가려면 먼저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캠프 그리브스는 주한미군이 2007년 이후 한국 측에 반환한 40여개의 기지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미군 철수 기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DMZ 평화공원’의 후방 지원시설로 활용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기지의 절반은 이미 국군 보병사단 예하 대대가 사용하고 있지만, 절반만이라도 원형을 잘 보존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한국 현대사의 안보문화유산으로 가꿔 가야 한다. 주필
  • 임진강 물 부족으로 민물고기 급감

    댐 건설과 강수량 부족으로 임진강에 서해 바닷물이 흘러들어 어민과 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의원은 21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현재 임진강은 북한에 건설된 5개 댐과 40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 탓에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2004년 중단된 남북임진강수해방지실무협의회가 재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1996~2013년 북한의 황강댐 담수 전후 임진강 수위를 비교한 결과 갈수량(1년 중 강물이 가장 적을 때 잰 물의 양)이 44% 감소했고, 올 8월 기준 경기도 누적 강수량은 548㎜로 지난 10년 동안 평균 누적 강수량 대비 51.4%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도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댐을 만들고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극심한 가뭄으로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까지 바닷물이 밀려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민물고기 어획량이 줄고 농업용수와 상수도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파주 문산읍 임진나루 부근 어민들은 “민물고기인 쏘가리·모래무지 등의 어획량이 60%가량 급감하고, 임진강 특산물인 장어와 참게는 30% 감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민들은 “남북한이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상류지역 댐 담수량을 점진적으로 늘리는데다 강수량도 줄어 나타난 현상”이라면서 “하류지역 어민들의 입장도 헤아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물 염도가 높아지면서 농업용수 공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어촌공사 파주지사는 올 들어 파평면 율곡리에 설치된 임진양수장 일대 염분이 높아져 고양·파주 일대 농업용수 공급을 여러 차례 중단하기도 했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산맥에서 발원해 황해북도 판문군과 경기 파주시 사이에서 한강과 합류돼 서해로 흘러든다. 총연장 273㎞ 중 67%가 북한 관할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기도 파주시

    [新국토기행] 경기도 파주시

    경기 파주는 서울과 개성 사이에 있다. 서울시청까지는 35㎞, 개성시청까지는 25㎞다. 서쪽으론 한강하류가, 북으론 임진강이 흐르며 두 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지역이 교하(交河)다. 최북단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북한의 개풍군·개성특급시·장풍군과 접하고, 동쪽은 양주시·연천군과, 서쪽은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 남쪽은 고양시와 접한다. 면적은 서울시와 경기 안양시를 합친 크기다. 한강 둑을 따라 북으로 자유로가 뻗어 있고, 국도 1호선 통일로가 정중앙을 가로질러 판문점으로 통한다. 2003년부터 시작된 운정신도시 개발로 18만 인구가 42만명으로 불어나, 보수적인 주민들의 정치 성향이 다소 완화됐다. 예부터 한양에서 개성을 거쳐 대륙을 오갈 때 거쳐야 하는 주요 통행로였다. 임진나루는 사신들의 주요 길목이었고, 봉일천 공릉장터는 전국 3대 장터에 들어갔다.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휴암 백인걸, 청송 성수침(우계 성혼의 부친), 용재 성현(악학궤범 편찬) 등 당대를 주름잡던 대학자들이 살았던 고장이라 ‘문향’(文鄕)으로도 불린다. 황희 선생, 윤관 장군, 허준 선생, 신사임당 등이 파주에 잠들어 있다. 광해군 때 새 도읍지로 꼽히던 파주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에서 하나가 되듯 남북이 하나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볼거리 ●휴전선에서 불과 7㎞… 통일 기다리는 ‘안보 관광지’ 임진각 연간 500만명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안보관광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국전쟁과 그로 인한 민족 분단의 아픔이 새겨진 곳이다. 휴전선에서 불과 7㎞ 떨어진 민간인 출입 북쪽 한계선이자 남북 철도의 중단점이다. 한국전쟁 때 각종 유물과 전적기념물들이 전시돼 있다. 망배단, 북한기념관, 통일공원, 자유의 다리, 평화의 종, 임진강 철교, 전망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그중 남북 분단의 대표 상징물은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의 화통이다. 전쟁의 참상을 화통 곳곳에 파인 포탄 및 총탄 자국에서 느낄 수 있다. 임진각 오른쪽 주차장 쪽에는 ‘평화누리’가 있다. 인간의 존엄을 기본 정신으로 한 화해와 공존, 나눔이 있으며 분단의 아픔보다 통일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잔디 언덕에서 다양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카페 안녕’에서는 1000여개의 바람개비를 감상할 수 있다. ●3만 병력 이동 가능한 제3 땅굴, 살벌한 분단현실 보여줘 북한이 판 제3 땅굴, 도라전망대, 도라산역, 통일촌 등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을 관광하는 프로그램이다. 1978년 발견된 제3 땅굴은 문산까지 12㎞, 서울까지 52㎞ 지점에 있다. 한 시간에 3만명의 병력 이동이 가능하다. 최북단 접경지역에서 분단 현실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현장이다. 2002년 이후 셔틀 엘리베이터와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민통선 영상관 등이 갖춰져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도라전망대는 민통선 안에 위치하며 북한의 생생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남측 최북단 전망대다. 망원경 수십대를 설치, 개성공단과 개성시 변두리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송학산, 선전마을, 김일성 동상 등도 볼 수 있다. 도라산역은 민통선 남방한계선에서 700m 떨어진 경의선 남쪽 최북단 역이다. 향후 경의선 철도 연결이 완료돼 남북 왕래가 가능해지면 도라산역은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를 오가는 사람 및 화물 등의 통관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인접한 곳에 도라산 평화공원이 조성됐다. 통일촌은 파주 특산물인 장단콩을 테마로 한 슬로푸드 체험마을이다. 골프장 2개 면적 경작지에서 거둬들인 콩으로 가공한 된장, 청국장을 판매한다. 매년 장단콩 축제가 열린다. 우리의 손맛이 담긴 장단콩 정식도 맛보고, 두부 만들기, 장 담그기, 전통문화 배우기 등 정겨운 체험을 할 수 있다. ●문화예술마을 ‘헤이리’ 파주 전래 농요서 명칭 유래 다양한 장르가 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문화예술마을이다. 파주에 전해 내려오는 전래 농요 ‘헤이리 소리’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 1998년부터 50만여㎡의 부지에 미술인·음악가·작가·건축가 등 380여명의 문화예술인이 주택·작업실·미술관·박물관·갤러리·공연장 등 각종 문화예술공간을 자유롭게 조성했다. 산과 산 사이에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 자연지형의 갈대 늪지와 다섯개의 작은 다리가 있다. 숲·시냇물이 건축물들과 어우러져 걷는 맛이 그만이다. 건물들은 페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3층 높이 이상 짓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자연과 어울리는 건물을 설계했다.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건물, 지형을 그대로 살려 비스듬히 세워진 건물, 사각형의 건물이 아닌 비정형의 건물 등 각양각색의 건축물들이 개성을 뽐내고 있다. ●8m 높이 장대한 서가 품은 ‘책의 나라’ 파주출판도시 자유로와 심학산 중간에 있다. 출판기획, 편집에서부터 인쇄, 물류, 유통에 이르기까지 출판과 관련된 전 과정을 하나로 묶어 한국의 출판문화를 이뤄낸 국가산업단지다. ‘좋은 공간 속에서 좋은 시각, 좋은 글, 좋은 디자인이 나오고 그것이 곧 바른 책을 펴내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출판사 아웃렛과 서점, 도서관, 북카페가 즐비하고, 어린이 책잔치, 국내외 도서전, 공연, 세미나, 전시회, 체험활동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만나 볼 수 있다. 이 중 지혜의 숲은 파주출판도시에 자리한 도서관으로 높이 8m 서가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빼곡하다. 어린이책 코너도 있다. 푹신한 카펫과 소파에서 편안하게 독서를 할 수 있고, 카페에서 식사와 음료도 즐길 수 있다. ●이탈리아 전통 레스토랑·공방·카페… 낭만의 프로방스 1996년 이탈리아 정통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리빙, 도자기 공방, 베이커리, 카페 등 동화 같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낭만을 선사한다. 형형색색의 꽃과 각종 허브, 향긋한 풀 냄새와 내추럴한 프랑스 프로방스 스타일이 마치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한다. 도자기 핸드페인팅, 천연허브비누 만들기 등 체험행사가 열리고 저녁이면 반짝이는 빛으로 화려함을 더한다. ●율곡 이이·허준 선생 등 대학자들의 고장 자운서원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경세가인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의 유적지다.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광해군 7년에 창건됐다. 이이 선생의 묘와 신도비, 어머니 신사임당 등 가족묘도 있다.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 등도 있다. 매년 10월 초 파주 최대 축제인 율곡문화제가 열리는 장소다. 율곡기념관은 다양한 영상물과 볼거리를 제공해 자녀 교육에 좋다. 파주시는 올해 서울 사직단에 세워진 이이 선생과 신사임당 동생을 이전해 올 계획이다. ●황희 선생 은퇴 생활을 함께한 정자 ‘반구정’ 자유로 당동나들목 근처에 위치한 반구정은 방촌 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낸 곳이다. 임진강 하류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세운 정자다. 1452년 황희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방촌영당과 방촌기념관, 제사를 지내는 경모제가 있다. 임진강을 바라보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개발의 위협 속에서도 굳건한 ‘용미리석불입상’ 보물 제93호로 지정돼 있다. 이 불상과 같이 자연 암벽을 이용해 몸체를 만드는 수법은 고려시대에 들어와 몇 예가 보인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115호)이 이와 거의 같은 기법을 보여 준다.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도 비록 머리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으나 천연의 암벽을 그대로 이용해 몸체를 표현했다. 주변 나뭇가지에 아름다운 모습이 일부 가려지고, 근처까지 파고든 석산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찰인 용암사와 신도회, 율곡고등학교 문화재지킴이 소속 학생들이 보호하고 있다. >>먹거리 ●임진강 장어 임진강변에 유명 장어집이 많다. 장어는 고려 말 왕실에서도 즐기던 여름 보양식으로 역사가 600년이 넘는다. 양식장어가 아닌 직접 잡거나 어민들로부터 직매입한 자연산을 파는 곳도 있다. 자연산은 양식 장어보다 4배가량 비싸다. 일부 음식점들은 100% 토종장어인 자포니카 실뱀장어를 무항생제, 무소독 방법으로 키워 판다. 처음에 소금을 뿌려 노릇노릇하게 구워 주고 익기 시작하면 볼록하게 올라오는데 그때 뒤집어 소스를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파주 장단콩 요리 파주 장단콩은 쌀, 인삼과 함께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던 장단삼백의 하나다. 파주 장단지역은 1913년 국내 최초의 콩 장려품종으로 선정된 ‘장단백목’을 탄생시킨 콩의 본고장이다.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의 청정 자연환경과 큰 일교차, 마사토에서 자란 장단콩은 타 지역 콩에 비해 유기질은 2배, 항암 성분인 이소플라본은 50%쯤 함량이 높다, 파주시 곳곳에는 장단콩을 이용한 전문 음식점이 성업한다. 월롱면 영태리 통일로변과 통일촌에 유명 음식점들이 있다. ●임진강 참게장 문산, 적성, 임진강 주변에 참게장으로 유명한 맛집들이 많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졌던 임진강 참게는 집게 아래쪽이 덥수룩하게 털이 나 있다. 특유의 은은한 향으로 한번 맛을 보면 바다에서 잡히는 꽃게와는 비교가 안 된다. 참게는 9~11월 사이 주로 통발로 잡는다. 첫 벼 베기 때가 알이 꽉 차 가장 실하다. 게딱지 크기는 10㎝ 내외이고 암놈보다 수놈이 조금 크다. 가을바람에 살찐 딱지가 두꺼운 참게로 담근 장은 여러 번 간장을 달이고 오랜 시간 삭이기 때문에 발효 음식의 참맛을 볼 수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광복 70주년] 임진강변 북한군 초소에는...

    [광복 70주년] 임진강변 북한군 초소에는...

    북한군의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로 남북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14일 경기도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 임진강변에 북한군 초소가 보이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北 목함지뢰 도발,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北 목함지뢰 도발,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이 사실상 북한의 의도적인 도발로 밝혀지면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과거 군 복무 당시 이번 사건이 벌어진 지역 인근에서 수색, 매복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저절로 주먹이 쥐어질 정도로 큰 아픔과 분노를 느꼈는데요. 의도적인 도발이라면 과연 북한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또 우리가 이번 사건을 통해 분명히 짚어봐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우선 2010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겠습니다. 2010년 7월 31일. 인천 강화군 주문도에서 낚시를 하던 주민이 나무로 만든 ‘목함지뢰’ 1발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목함지뢰는 무게 420g, 길이 22cm, 높이 4.5cm, 폭 9cm로 상자 안에는 TNT 220g의 폭약과 기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금속탐지기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찰과 군이 인근 지역을 수색해보니 볼음도, 아차도 해안에서도 목함지뢰가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무려 11발이었는데요. 6개는 실제로 폭발물이 들어있어 인위적으로 폭발시켜 해체했습니다. 목함지뢰는 북한이 주로 사용하는 지뢰였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진 것은 당시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실제 폭발 사고까지 일어났습니다. ●100발이 넘는 목함지뢰가 떠내려온 까닭은 이날 오후 11시 20분 경기 연천군 백학면 전동리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서 목함지뢰 1발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주민 한모(48)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김모(24)씨는 얼굴에 화상을 입고 팔에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민통선 안 임진강으로 가서 낚시를 즐기다 갈대밭에서 목함지뢰를 발견했습니다. 한씨가 폭발물을 들고 나왔고, 김씨는 5~6m 뒤따라 갔는데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지뢰가 폭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가 여름철 호우 때문에 남쪽으로 떠밀려 내려온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북한의 의도적인 공격이라는 분석은 없었습니다. 군경은 좀 더 세밀하게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8월 1일 강화도 인근에서 2발, 경기 연천군 민통선 안 임진강 유역에서 17발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1일까지 36발, 2일에는 66발로 지뢰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은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통해 재발방지를 촉구했습니다. 1~2개가 발견된 사례는 있었지만 수십개의 지뢰가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지뢰를 방출했을 가능성은 낮다”며 국민들을 거듭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지뢰는 안전장치가 없었고, 굴러다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국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했습니다. 한편에선 피서 절정기에 서해에서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북한의 고의냐, 수해 때문이냐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일부 탈북자들이 먼저 북한이 의도적으로 목함지뢰를 흘려보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그 해 3월 26일 천안함 피격사건, 5월 24일 남북교역을 전면 금지한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로 남북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탈북자들은 특히 5~7년이면 외관이 썩어 부식되는 목함지뢰 가운데 상당수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 안전장치가 없는 지뢰가 많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북한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1990년대 이후 북한이 목함지뢰를 대량으로 매설한 사례가 드물다고 주장했죠. ●목함지뢰 발견 뒤 3개월 만에 연평도 포격 사건 뿐만 아니라 탄약고 붕괴로 인한 유실로 본다고 하더라도 다른 탄약이나 장비는 발견되지 않고 엄청난 양의 목함지뢰만 목격돼 의문이 증폭됐습니다.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10일 동안 발견된 지뢰는 110발을 넘어섰습니다. 그 와중에 북한은 해안포 110여발을 서해상에 발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대응 태세를 떠보려는 의도가 분명했지만 우리 군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11일이 돼서야 정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의도적 유출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언론에 “북한의 수해가 한두 번 일어난 것도 아닌데 유독 올해만 목함지뢰가 떠내려온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군과 정보당국은 목함지뢰가 북한의 도발 징후라는 명확한 물증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갔고, 목함지뢰는 8월 말까지 176발이 발견됐습니다. 10월에는 강원도에서도 목함지뢰가 나왔습니다. 발견되지 않은 지뢰까지 합하면 300발 이상이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군은 북한의 의도나 도발 여부를 끝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해병대원 2명과 주민 2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26명이나 됐습니다. 포격에 많은 가옥이 불타고 파괴됐으며, 주민 대부분이 섬을 떠나 육지로 대피했습니다. 저도 사건 직후 연평도에서 현장 취재를 했고, 수많은 정보를 접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목함지뢰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뚜렷한 도발 징후로 봐야했지만 목함지뢰는 곧 잊혀진 사건이 됐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드러난 이상한 점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전방지역에서는 꾸준히 목함지뢰가 발견됐습니다. 그렇지만 해마다 발견된 양은 20여발에 불과했죠. 2010년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매년 물난리를 겪었지만, 더 이상 목함지뢰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사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 아니라고, 우연이라고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누구도 사건의 상관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하지 못했고, 의도적 도발 여부를 규명하기도 전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져 묻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도적 도발이라는 점이 거의 분명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강한 송진 냄새를 풍기는 새 지뢰가 우리 측 DMZ 전방 철책 출입구 바로 아래에 묻혀있었다는 겁니다. 2010년과 마찬가지로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포착하진 못했습니다. 묘하게 시점도 닮아있습니다. ●도발 강도 높이는 北…대비태세 점검이 시급하다 북한은 강도를 조절했을 뿐 매번 의도적으로 도발해왔습니다. 정치적인 계산이 분명했고, 대북제재 등의 경제적 타격을 무릅쓰고 거듭 도발을 강행했습니다. 2010년 이미 노쇠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들 김정은에게 정권을 물려주기 위해 치밀한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서른도 되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 세습 기반을 닦아줘야 하는데, 그는 민가와 우리 군 진지 포격이라는 극악의 수를 썼습니다. 그리곤 아들이 내부적으로 군부에 휘둘리지 않도록 ‘포격술의 대가’라는 명성을 덧씌웠죠. 그 대가로 생길 민간인 희생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김정은은 그런 방식의 세습교육을 받은 이입니다. 이는 이번 목함지뢰 사건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이희호 여사의 면담은 불발됐습니다. 아니, 북한은 애초에 면담을 진행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의 대북 메시지도 무시했습니다. 대신 우리 병사가 드나드는 철책문 바로 아래에 목함지뢰를 놓아두는 도발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도발 징후는 2010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뚜렷했습니다. DMZ에서 지뢰를 추가로 매설하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군은 그다지 주의깊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북한군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합참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지뢰나 부비트랩, 매복조 등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를 더 했어야 했다. 현장 지휘관의 전술조치에 과오가 있었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군은 11년 만에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를 결정했습니다. 지뢰 매설 모습을 실제로 포착한 것은 아니어서 도발 원점이 명확하지 않고, 마땅히 응징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을 보고 “대북방송이 무슨 타격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강력한 응징이냐, 아니냐로 논쟁하는 것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2010년의 사건들을 교훈삼아 서둘러 보완해야 할 부분은 우리 군의 대북 감시태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군의 특이동향을 미리 포착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여겨야 합니다. 2010년에도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은 이미 8월에 감청을 통해 서해 5도에 대한 공격계획을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공격이 아닌 평상적인 훈련이나 위협 정도로만 판단했습니다. 북한은 10월 노동당 창건일을 앞두고 군사적 긴장감을 크게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목함지뢰 매설로 이달 실시하는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앞두고 분명한 도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김정은은 경제 위기와 외교적 고립을 해소할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는 한계가 있겠죠. 지난달 극심한 가뭄으로 쌀 배급량이 40%나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북한의 올해 쌀 생산량은 230만t으로 지난해보다 12%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일본과 접촉하는 동시에 우리와는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과거에도 그랬듯이 북한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긴장 수위를 높이는 전형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도발 강도를 높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군은 DMZ 등 전방지역의 대비태세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을 기회로 삼아 반드시 개선해야 할 허점은 없는 지 세심하게 되짚어보길 바랍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북한 목함지뢰, ‘폭약+기폭장치..열거나 밟으면 폭발’ 무시무시해

    북한 목함지뢰, ‘폭약+기폭장치..열거나 밟으면 폭발’ 무시무시해

    ‘북한 목함지뢰’ 지난 4일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폭발물이 터져 부사관 2명이 크게 다친 사고 원인은 북한이 살상 의도로 매설한 ‘목함지뢰‘ 때문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전협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호전적인 도발 행위에 대한 안팎의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 매설한 목함지뢰는 소나무로 만든 상자에 폭약과 기폭장치를 넣어 만든 일종의 대인지뢰다. 북한군이 ‘목함 반보병지뢰’(PMD-57)로 부르는 목함지뢰는 옛 소련에서 2차 세계대전 때 개발한 간단한 나무상자 형태이다. 전체 무게는 420g으로 길이 22cm, 높이 4.5cm, 폭 9cm이다. 상자 안에는 TNT 220g의 폭약과 기폭장치인 MUV 퓨즈, 안전핀이 들어 있다. 살상반경은 최대 2m에 이른다. 1m 이내에서 터지면 사람의 폐가 손상되고 3.5m 이내이면 고막이 파열된다고 한다. 폭발지점으로부터 13~15m에 이르는 창문을 파손할 정도로 위력이 세다. 목함지뢰는 상단에 1~10㎏의 압력이 가해지면 덮개가 퓨즈를 누르고 안전핀이 빠지면서 공이 발사되어 터지도록 고안되어 있다. 사람이 상자 덮개를 열고자 압력을 가하거나 밟으면 터지게 되어 있다. 나무 상자로 만들어져 금속 지뢰탐지기에 잘 탐지되지 않는다. 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것도 있다. 물에 잘 뜨기 때문에 임진강·한탄강 수계와 강화군 일대 등 섬지역에서 다수가 발견된 적이 있다. 민간인들이 호기심으로 만져 죽거나 다치는 사례도 있었다. 군은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260여발의 목함지뢰를 탐색 및 수거한 바 있다. 북한은 해·강안지역과 DMZ 인근 하천 주변 등에 목함지뢰를 대거 살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4일 터져 우리 군 부사관 2명을 다치게 한 목함지뢰는 목함에서 강한 송진 냄새가 아고 상자 안의 철재 잔해물이 녹슬거나 부식되지 않아 최근에 매설된 것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군은 지난 6~7일 현장 조사에서 터진 잔해물 5종 43개를 수거해 지난 2010년 DMZ를 관통하는 한 지천에서 발견한 목함지뢰 부품과 비교한 결과 동일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당시에 수거된 목함지뢰에서는 아직도 송진 냄새가 난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북한이 DMZ 지역에 매설한 대인지뢰는 목함지뢰와 수지재(PMN)지뢰, 강구(BBM-82)지뢰 등 세종류다. 대전차 지뢰는 ATM-72, ALM-82 등 다섯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목함지뢰, 북한 목함지뢰, 북한 목함지뢰, 북한 목함지뢰, 북한 목함지뢰 사진 = 방송 캡처 (북한 목함지뢰)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분단 70년… 예술로 조명한 북한 사회상

    분단 70년… 예술로 조명한 북한 사회상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북한 프로젝트’는 미완의 광복으로 남은 북한을 예술적 화두로 조명하는 전시다. 우리에게 너무나 가깝고도 먼 존재인 북한을 바라보는 세 개의 다른 시선으로 전시는 구성된다. 우선 북한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의 유화, 선전 포스터와 우표 그림을 통해 북한 미술을 보여준다. 유화는 네덜란드의 로날트 더 흐로언 컬렉션, 포스터는 네덜란드 빔 판 데르 베일 컬렉션, 우표는 한국의 신동현 컬렉션으로 모두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이념과 사상의 변화, 선전화 등을 볼 수 있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지금의 북한’에서는 북한의 최근 모습을 담은 외국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영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닉 댄지거는 2013년 3주간 북한에서 워크숍을 가지면서 평양, 남포, 원산, 사리원을 방문해 그곳 주민들의 일상을 담아냈다. 어부, 무용가, 교사, 돌고래 트레이너와 같은 각양각색의 인물들과 평양의 지하철 거리, 미장원과 산부인과 등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사진작가 에도 하르트만은 지난해 4월 평양에 머물면서 전쟁 후 세워진 건축물과 기념비 조각 등을 중심으로 ‘평양, 무대를 만들다’ 시리즈를 제작했다. 사회주의 건축물을 촬영해 대형 사진에 담아내는 왕궈펑은 2011년 이래 네 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는 7m 55㎝에 달하는 스케일로 2012년 아리랑 축전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우리가 상상하는 북한’ 섹션에서는 강익중, 이용백, 박찬경, 노순택, 선무, 전소정, 권하윤 등 국내외의 신구 세대를 아우르는 작가 7명이 북한을 화두로 예술적 상상력을 펼친다. 강익중의 작품 ‘금수강산’은 분단과 무관하게 쉼 없이 이어지는 남북의 모든 산들을 생각하며 만든 먹과 나무로 된 3인치의 작품들로 지름 7m의 반원을 병풍처럼 만들고 그 앞에 임진강을 형상화한 물에 70개의 작은 달항아리들을 띄웠다. 영상, 드로잉, 오브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연극, 영화, 문학을 미술에 접목하는 전소정은 탈북 피아니스트와 남한의 피아니스트가 음악적 대화를 통해 함께 연주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 제목은 ‘먼저 온 미래’다. 전시는 9월 29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최악 가뭄 대책] 수자원의 42% 버려져… 댐 건설·물 관리 ‘컨트롤타워’ 절실

    [최악 가뭄 대책] 수자원의 42% 버려져… 댐 건설·물 관리 ‘컨트롤타워’ 절실

    남부 지방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예년 같으면 큰 비가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4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올해는 장마가 유난히 반갑다. 이번 장마는 큰 비를 몰고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과 강원 지역 해갈은 장맛비가 본격적으로 내리는 다음달 중순이나 돼야 풀릴 것 같다는 예보가 나오면서 농민들은 깊은 시름에 빠졌고 수자원 관리자들도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기후 특성상 가뭄·홍수 같은 재앙 빈도가 잦아질 수 있다며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물그릇을 키우는 동시에 과학적인 통합 물관리 시스템 정착을 주문한다.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전국에 내린 비는 평년의 55%인 164㎜에 불과하다. 1986년 이래 30년 동안 역대 두 번째로 적은 강수량이다. 특히 강원 지역의 강수량은 최근 30년 중 가장 적은 강수량을 나타내면서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가뭄은 올해에 그치지 않고 현재와 같은 수자원 관리 시스템으로는 연례행사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근본대책이 요구된다. ●연간 수자원 총량은 1297억㎥로 충분 한반도의 상습적인 가뭄 원인은 강수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간 수자원 총량은 1297억㎥로 절대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강수량이 계절별로 편중돼 이용 가능한 수량은 753억㎥로 전체의 58%에 불과하다. 나머지 544억㎥는 자연 손실되고 만다. 가용 수량의 43%에 해당하는 560억㎥도 홍수 때(6~9월) 흘려보내야 하고 그대로 바다로 유실되는 수량이 420억㎥(32%)나 된다. 따라서 하천수 이용(108억㎥), 댐용수 공급(188억㎥), 지하수 이용(37억㎥) 등 333억㎥만 실제 활용할 수 있다. 수자원 총량 대비 26%만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다로 흘려보내는 물을 담아 둘 수 있는 물그릇(댐)을 추가로 확보하면 가뭄이나 홍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댐건설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통합 물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가뭄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통합 물관리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수량과 수질관리, 재해관리 등이 기능별로 관리주체가 다르다. 국토부·환경부·농림부 ·산업부·안행부와 지방자치단체 농어촌공사·한국전력·K-water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고 종합적으로 국가 물관리를 조정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 댐에 가둔 물을 놓고도 수량·수질 관리가 국토부와 환경부로 이원화됐다. 댐 관리도 다목적댐은 K-water, 농업용댐은 농어촌공사, 발전댐은 한전이 각각 운영한다. 통합 물관리 시스템은 갖추고 있지만 실제 부처·기관 간 협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4대강 사업(국토부)으로 엄청난 물을 확보하고도 논밭으로 물을 대는 관로(농림부) 등의 시설을 갖추지 못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목적댐·발전댐간 연계운영만으로도 효과 연례행사처럼 치르고 있는 가뭄과 홍수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댐은 수·홍수조절·발전 등의 기능을 갖고 있는 다목적댐과 용수전용·발전전용댐으로 나뉜다. 하지만 운영 주체가 달라 통합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실시간 수문상황 모니터링, 발전댐 연계, 댐 비상용량 활용 등이 어렵다.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가뭄에 대비, 다목적댐과 발전댐 간의 연계운영 체계만 갖춰도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수력발전댐 10개소를 통합관리하면 연간 6억㎥의 용수 공급량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 이번 가뭄으로 다목적댐의 용수부족 상황 해소를 위해 한시적으로 발전댐과 연계 용수 공급을 시행한 결과 물 공급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윤병만 명지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물도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수자원 관리 조직체계를 정비하고 자원확보를 위한 물그릇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관리 체계를 전반적으로 재정립하고 물관리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 물관리기본법을 만들어 물관리조정위원회를 두려고 했으나 국회에서 관철되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지역 특성에 따른 맞춤형 물그릇 확보도 필요하다. 신규 대규모 다목적댐 건설은 지역주민의 반대 등에 부딪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때문에 지역공감과 합의를 기반으로 소규모 댐 건설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역 특성에 맞춰 용수공급·홍수조절·발전·수질개선·친수환경·생태보전 등의 물기능을 동시에 추구하는 맞춤형 수자원 정책과 시설 투자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홍수 피해의 99%는 지류하천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자체 주민의 공감과 합의를 기반으로 한 소규모 댐 건설이 필요하다.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도 요구된다. 영월댐의 경우 1990년 영월지역 대홍수를 계기로 추진됐지만 동강 유역의 생태·환경보존을 이유로 종교·환경단체의 반대, 전 국민 서명운동, 언론의 집중 조명, 국회 반대 등으로 10년 만에 백지화됐다. ●효율적인 지역 간 물배분 조정도 필요 지역 내 갈등도 있다. 영양댐의 경우 지역발전·보상 등 혜택에 관심이 있는 원주민(찬성)과 도시 지역에서 이주해온 귀농인(반대) 사이의 갈등이 지속돼 답보 상태다. 수혜 지역과 수몰 지역이 달라 지역 간 갈등으로 당초 목적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댐도 있다. 한탄강댐이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임진강 유역은 북한에서 물길을 쥐고 있어 고질적인 가뭄·홍수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한탄강댐의 수위를 높여 물을 가두거나 다목적댐 전환이 요구된다. 지하수댐 개발 등 다각적인 수자원 확보 방안도 본격 논의해야 한다. 효율적인 지역 간 물배분 조정도 요구된다. 물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별 물수요 변화로 지역 간 물수급의 불균형이 발생함에 따라 남는 지역의 물은 부족한 지역에 나누어 이용해야 하지만 지역 이기주의로 효율적 배분·활용이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불필요한 신규 개발을 조장하고 있지만 역시 지역·주민 반대로 대부분의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산강·섬진강 유역의 경우 영산강 수계는 수량이 여유가 있으나 섬진강 수계는 유지용수 및 여수광양 공업용수가 부족한 상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산강 유역에 설치된 댐의 물을 섬진강 수계로 흘려보내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있다. 한편 정부는 최대 가뭄 시 전국적으로 3억 800만㎥의 물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명교 국토부 수자원정책국장은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 가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스마트 물관리체계 구축과 대체 수자원 개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탈바꿈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탈바꿈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돼 온 경기 김포 애기봉이 평화생태공원으로 탈바꿈된다. 애기봉은 북한 황해도 일대를 비추는 등탑 문제로 진보·보수 진영 간에 여러 차례 충돌이 빚어지고, 이곳에서의 국내 민간단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북한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남북 관계의 변수가 됐던 곳이다. 26일 김포시에 따르면 월곶면 조강리 1-9(4만 5000㎡) 애기봉을 접경지역 인프라를 활용한 평화생태공원으로 조성,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395억원(국비 50%, 도비 15%, 시비 35%)의 사업비를 들여 올 후반기 공사에 들어가 2017년 12월 준공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54m 높이의 전망타워를 비롯해 평화·생태전시관, 평화광장 등의 시설물이 들어선다. 시는 2009년 8월 도시계획시설상 문화공원으로 지정한 뒤 2012년 3월 국방부로부터 군사시설 이전 승인을 받았다. 지난해 7월에는 건축허가를 완료한 뒤 11월 국방부로부터 기본설계 심의 결과를 통보받았다. 시는 지난 3월 조달청 원가심사가 완료됨에 따라 사업자를 선정하는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당초 오는 7월 공사를 발주할 예정이었으나 조금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시는 설명했다. 시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조성사업 추진 과정에서 재향군인회 소유의 기존 시설물을 철거하기 위해 다음달부터 직접 관리에 들어가며, 평화·생태전시관과 주차장 공사 기간(9개월 예정)에는 애기봉 개방을 중단할 방침이다. 애기봉 정상(155m)에서는 임진강 너머로 북한의 송악산과 선전마을 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1993년에는 실향민들을 위해 망배단이 세워졌다. 주변에 문수산성(사적 139호), 덕포진(사적 292호), 고정리지석묘(경기기념물 91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시 관계자는 “애기봉의 변신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접경지역 관광자원화를 추진해 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조성사업과 연계해 다음달부터 2018년까지 국비 54억원과 시비 36억원 등 90억원을 들여 2.74㎞의 애기봉 진입도로 폭을 차도 8m, 자전거도로 3m, 인도·측도 등을 포함해 15m로 확장할 계획이다. 김시용(김포3) 경기도의원은 “통일한국을 향한 디딤돌이 될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벨트사업은 애기봉 평화생태공원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新국토기행] (27) 경기 연천군

    [新국토기행] (27) 경기 연천군

    경기 연천군은 최전방 접경지역 정도로만 알려졌다. 30만년 전 전곡리 유적지, 주먹도끼, 매서운 추위, 군부대…. 연천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이미지다. 그러나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과 평화, 생명이 공존하는 ‘한반도의 허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연천은 서울 광화문에서 60㎞ 남짓한 거리에 있다. 전쟁 통에 잃어버린 ‘고향’처럼 기억에서 잠시 사라졌을 뿐 한국전쟁 전만 해도 원산~서울을 잇는 주요 길목 도시였다. 전후에도 한탄강과 임진강 두 강줄기가 흐르는 곡창지대였다. 한반도 첫 인류가 살았고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뱃길로, 일제강점기에는 기찻길로 번화했던 고장이다. 지형상으론 남북을 나누는 추가령지구대가 지나는 곳이다. 추가령지구대는 서울~원산을 연결하는 좁고 길며 낮은 골짜기로, 원산 쪽에서 한강 하류로 연결되는 교통로를 제공한다. 과거 임진강 뱃길이나 경원선 철도 역시 이 추가령지구대를 따라 났다. 하지만 뱃길이 쇠퇴하고 경원선이 단절되면서 쇠락했다. 해방 이후 38선이 그어지고 일부 지역은 북측에 속했다가 한국전쟁으로 다시 남측에 속하는 파란을 겪으며 고향과 가족을 잃은 사람도 생겨났다. 전쟁 후에는 갈 곳 잃은 피란민 등이 정착하기도 했다. 이 오랜 시간 속에서 연천은 묵묵히 자신만의 얘기를 만들어 왔다. [볼거리] ●고려에 귀부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릉’ 경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나 있다. 고랑포 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에 홀로 위치했다. 경순왕은 신라 56대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 휘는 부(傅)이다. 신라 문성왕의 6대손으로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나라가 후백제·고려·통일신라로 분열돼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결국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스스로 와서 복종했다. 경순왕은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나라에서 공신에게 내려 조세를 개인이 받아 쓰게 하던 고을)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됐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해 여러 자녀를 뒀으며 고려 경종 3년(978년)에 세상을 떠났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이곳에서 벌어지는 제사 때는 2000여명의 자손이 찾는다. ●고려 4왕·고려조 16공신 모신 고려 종묘 숭의전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고려 4왕과 고려조 16공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고려의 실질적인 종묘다. 역성혁명을 통해 왕조를 찬탈한 조선왕조는 연천의 마전에 고려의 종묘를 건립했다. 이어 국조오례의의 구분상 중사에 해당하는 역대시조제로서 숭의전 전례를 치렀는데, 숭의전 전례는 왕이 직접 축문을 내리고 관리를 파견하는 국가의 중요 행사였다. 왕조 전환 후 전조의 흔적을 지워 없애는 전례에 비춰 상생과 화합의 정신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임진강·한탄강 절경 한눈에… 고구려 3대 성 남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을 감상하고 절벽 위에서 임진강과 한탄강 조망이 가능한 코스다. 성에 오르면 이 지역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원하고 탁 트인 전망을 원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이 가운데 당포성은 임진강 중류의 절벽 위에 조성된 고구려 성이다. 임진강과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 대지에 축조됐다. 임진강과 소하천에 면한 남쪽과 북쪽은 15m 이상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성벽 역할을 한다. 적의 침입이 가능한 동쪽 방면에는 인공적인 성벽을 쌓아 올리기도 했다. 당포성의 동벽은 고구려 축성기술이 집약된 과학적인 구조로서 중국 집안과 평양 등지에서 확인되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성곽 구조와 같다. 당포성이 위치한 당개나루의 임진강은 서울에서 양주를 거쳐 연천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해당하는 요충지다. 이곳을 통과하면 개성이 지척이기 때문에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다. 은대리성은 한탄강과 차탄천이 합류하는 곳에 만들어진 성이다. 연천 고구려 3대 성 중 가장 크지만 성곽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성 내부의 면적은 23만여㎡로, 일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이 숲의 끝에는 전망대가 있어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 지점과 삼형제 바위를 볼 수 있다. 신비한 느낌을 주는 빼어난 관광코스 중 한 곳이다. 호로고루성은 개성의 유명한 경치 8곳을 일컫는 송도팔경 중 하나로 장단석벽 위에 조성된 성터다. 성 아래 강은 썰물의 영향을 받아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임진강 최초의 여울목이 있다. 대규모로 병력 이동이 가능한 이 길목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치열한 전투지였다.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 ●한국전쟁 아픔 고스란히 담긴 유엔군 화장장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이 처음 만들었다. 감악산 전투가 벌어진 연천의 마전과 파주 적성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그만큼 전사자들이 속출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수많은 유엔군 참전 용사가 이곳에서 한 줌의 재로 화해 고국으로 돌아간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용암이 빚은 절벽… 동이리 주상절리 임진강(동이리) 주상절리는 미산면 동이리 67-1 일대에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임진강 쪽으로 길게 직벽 주상절리가 형성돼 있다. 주상절리는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지표면에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기둥 같은 절벽을 말한다. 서서히 식는 과정에서 규칙적인 균열이 생겨 마치 기둥처럼 갈라진 절벽이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이 지역 직벽 주상절리는 고원생대부터 신생대 4기까지 오랜 지질학적 시간 동안 형성된 지층이다. 임진강과 직벽 주상절리에 형성된 폭포, 담쟁이와 단풍나무가 절경을 연출한다. 예부터 장단석벽이라 해 송도팔경에 속한다. 이 밖에 한탄강 강변에 조성된 캠핑장과 인접한 전곡선사유적지,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에 만들어진 평화누리길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50만년 전 분출된 용암과 시간이 만든 재인폭포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높이 18m의 폭포다. 높은 절벽에서 물이 쏟아지는 비경은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50만여년 전 분출된 용암이 한탄강과 임진강의 물길을 형성해 그 용암이 식으면서 지금의 그림 같은 풍광을 만들어 냈다. 재인폭포에는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인근 마을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광대인 재인과 아름다운 부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재인의 부인을 탐낸 마을 원님이 재인을 없애기 위해 폭포 위에서 줄을 타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줄을 타던 재인은 원님이 줄을 끊어 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만다.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재인의 부인은 원님의 코를 물어 버리고 자결하게 되는데 이후 사람들이 이 마을을 ‘코를 문 마을’이라 했다고 한다. 이후 ‘코문리’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의 ‘고문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재인폭포 전망시설에는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현무암 협곡에 수줍은 듯 숨은 재인폭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스카이 워크 형태의 전망대(높이 27m)가 있다. [먹거리] ●야생 산야초로 입맛 돋우는 ‘고대산 금수강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초입에 있는 음식점이다. 각종 산야초는 연천 여행에서 필수 ‘섭취 코스’다. 금수강산에서는 주인이 직접 채취한 야생 산야초로 담은 반찬이 입맛을 자극한다. 능이버섯과 더덕 등 약재를 넣은 백숙은 단골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졌다. 국물이 일품인 ‘산야초한방능이버섯백숙’도 대표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백숙에 넣어 주는 능이버섯의 크기와 양이 놀랍기만 하다. 동충하초를 넣은 보양 백숙도 유명하다. 애주가들은 식당 한쪽에 진열된 밀랍주와 산삼주 등 각종 약초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031)834-1399 ●얼큰한 맛에 빠져드는 ‘아우라지 매운탕’ 아우라지는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곳을 이르는 전곡읍의 한 지명이다. 30년 전통을 자랑한다. 국물은 맹물이나 쌀뜨물을 이용하고, 주로 냇물에 사는 물고기를 이용하는데 메기·쏘가리를 으뜸으로 친다.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위해 조개류·굴류, 각종 계절 향채 등을 넣는다. 주인이 한탄강에서 직접 잡은 참게, 메기, 빠가사리, 쏘가리 등 제철에 맞는 신선한 재료를 쓴다. 음식점 앞에는 주상절리가 있어 그 경치 또한 일품이다. (031)832-1513 ●붉은빛의 오묘한 즐거움 ‘청산막국수 초계탕’ 연천 3번 국도 초성리역에서 열두개울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간판이 보인다. 반찬으로 나오는 새콤한 물김치가 식욕을 돋게 한다. 이곳 초계탕은 다른 곳과 달리 약간 불그스름한 색을 띤다. 퓨전 형태지만 동치미 국물과 닭육수에 닭고기살과 각종 샐러드용 채소, 새싹채소, 밤, 도토리묵 등이 어우러지면서 오묘한 맛을 낸다. 건더기를 다 먹고 난 뒤 말아 먹는 막국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찬 음식을 싫어하면 닭곰탕을 추천한다. 누룽지가 들어 있어 흡사 인절미를 먹는 것 같다. (031)835-6447 ●매콤 달콤 ‘한탄강오두막골 가물치구이’ 연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으로 가물치구이가 있다. 탕이나 즙을 내 보양식으로 먹는 가물치를 주인의 재치 있는 손맛으로 구워 먹도록 개발한 음식이다. 주인은 가물치가 한탄강에서 많이 잡히지만 마땅한 조리법이 없어 궁리하다 고추장 양념에 재운 뒤 굽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채 썬 듯한 고기를 양파와 섞어 구우면 상당히 많은 양의 기름이 흘러나온다. 키조개 관자 비슷한 식감에 고추장불고기처럼 달고 매콤한 맛이 난다. 비린 맛이 없어 쌀밥과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031)832-4177 ●계속 찾게되는 매운맛 ‘망향비빔국수 본점’ 전국에 국수 열풍을 불게 한 음식점이다.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5사단 신병교육대 정문 앞에 있다. 상당히 맵지만 며칠 지나면 또 군침이 돈다. 매운 걸 못 먹는 어린이들을 위한 아기국수도 있다. 비벼 나오는 정갈한 국수 위에 배 고물 등이 올라가 있다. (031)835-3575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TV 하이라이트]

    ■한국인의 밥상(KBS1 밤 7시 30분) 복(福) 중의 복으로 손꼽히는 물고기 황복은 연분홍빛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임진강으로 돌아온다는 귀한 손님이다. 임진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갔던 황복이 산란을 위해 다시 고향을 찾아오는 이때. 1년 중 단 50여일간 황복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때다. 황복회부터 육수를 낸 황복 맑은탕과 황복찜까지 임진강 어민들이 차린 귀한 황복 한 상을 맛본다. ■웨이워드 파인즈(FOX 밤 11시) 연방 요원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비밀 요원의 이야기. 실종된 동료 요원 두 명을 찾아 아이다호주로 떠난 에단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웨이워드 파인즈라는 낯선 도시의 병원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다른 어떤 환자나 의사도 보이지 않고, 담당 간호사 팸 역시 수상한 말을 되풀이한다. 이에 이선은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오는데…. ■퓨처 카드 버디파이트(애니맥스 오후 3시) 망가진 경기장을 수리하는 동안 ABC 대회가 중단된다. 힘찬이와 친구들은 힘찬이네 집에 모여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 모습을 본 힘찬이의 엄마는 죽은 큰아들 하늘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한편 경기장 보수공사가 끝나고 다시 경기가 계속된다. ABC 대회 최강 파이터 결정전 마지막 경기에는 금광훈과 왕힘찬이 출전한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우리 선조들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대장간이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읍·면마다 한곳 이상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기계화 영농이 보편화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한강·임진강·한탄강 등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산재한 한수 이북(경기 북부)에도 풀무질을 해가며 직접 손으로 두드려 낫·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이 고을마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근수(70)씨의 ‘파주대장간’이 유일하다. 파주 광탄시장 부근에 있다. 대장간 안은 매우 좁다. 겨우 38㎡(약 12평) 한쪽에 화덕이 있고 그 옆으로 모루와 각종 집게 등 작업도구들이 걸려 있다. 호미·낫·쇠스랑 등도 시렁에 쭉 걸려 있다. 마치 옛 농기구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한씨는 평생 해온 대장장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대장장이 길로 들어서게 한 ‘곽산대장간’ 시절을 잊지 못한다. 요즘 만드는 물건에도 곽산대장간을 의미하는 ‘山’(산)자를 새겨 그 정신과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옛날 대장간의 모습과 지금 대장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낫 한 자루를 만들려면 철근을 잘라 화덕에 수십 번 담금질하고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기계가 두들김질을 대신하죠.” 이로 인해 낫 한 자루를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화덕에 담금질을 12번 정도 하고 마지막에 물에 담가 강도를 높이면 완성된다. 한수 이북 마지막 대장간의 문을 차마 닫지 못하고 야장(冶匠)의 맥을 지키는 한씨는 1945년 파주 장단의 진동면 초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1·4 후퇴 때 누이, 남동생, 여동생 등 4남매와 정든 고향을 떠나 금촌 수용소 마을(현 금촌초등학교 근처)에 정착했다. 그러나 젖먹이였던 남동생이 죽고 뒤를 이어 여동생마저 굶주림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금촌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서울 문래동에 사는 큰 아버지 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큰아버지의 소개로 인근 영일동 곽산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게 됐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평생을 ‘업’으로 여기며 살게 된 대장장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곽산대장간은 주로 건축에 필요한 꺾쇠 등을 만들었다. 20여명의 직원들 속에서 가장 어렸던 한씨에게 주어진 일은 풍구질. 화덕에 불을 지피며 눈치껏 다른 일들을 배워 나갔다. “한 10년 하니까, 대장장이가 갖춰야 할 웬만한 기술은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 곽산대장간 주인 김지명씨는 고향인 평안도 곽산을 대장간 이름으로 썼다. 곽산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에는 모두 ‘山’을 새겼는데 당시 서울에서는 꽤 소문나 있었다. 한씨의 대장장이 기술은 김지명씨로부터 전수받았다. 이 때문에 한씨는 지금도 ‘山’이란 로고를 쓰고 있다. 한씨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가 혼인해 파주 용주골에 정착하자 197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파주 법원리에 있는 ‘법원리대장간’으로 일터를 옮겼다. 당시 25살 청년의 눈에 비친 법원리대장간은 서울의 곽산대장간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시골이라 농기구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일들이었으나 눈치껏 일을 배워 나갔다. 첫 월급은 22㎏짜리 밀가루 4포를 살 수 있는 3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씨의 눈에 동료들이 낫자루 끝을 마무리하는 낫 당개미(나무로 된 낫 손잡이가 쪼개지지 않도록 자루 끝에 끼우는 고리 모양의 쇠붙이)를 몹시 어렵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가며 만드는 것을 보게 됐다. 한씨는 당개미의 재료인 두꺼운 쇠판을 오릴 수 있는 가위를 만들면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낫 당개미 전용 가위를 만들자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고 낫을 생산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빨라졌다. 대장간 주인은 월급을 1만 5000원으로 5배 올려줬다. 그로부터 5년 후 한씨는 인접 마을인 광탄면 신산리 ‘파주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3년이 지나자 이곳의 주인이 됐다. 1970년대 중반 당시 파주에도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셌다.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 수요 역시 급증했다. 닷새마다 열리는 광탄 장날은 대목 중 대목이었다. 장날 하루에만 호미를 2만개나 팔았다.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직원 5명을 두고 일을 했지만 물량을 맞출 수 없어 다른 곳에서 구입하다 팔기까지 했다. 낫도 연간 1만개가량 팔려나갔으며 당시 인근 군부대에 도끼를 비롯한 여러 도구를 납품하기도 했다. “그때가 가장 호황을 누렸지요. 자녀 다섯을 대장간에서 번 돈으로 공부시켰으니까.” 그러나 호황도 잠시.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제초제)이 보급되면서 호미·낫을 비롯한 농기구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큰 기업들이 기계로 찍어 내더니 5년여 전부터는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어 오면서 8000원짜리 호미는 연간 20개, 1만 5000원 하는 낫은 200개 정도만이 팔리고 있다. “중국산 호미가 3000원, 낫이 5000~7000원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호미와 낫을 5배, 2배씩 더 주고 사겠어요? 그렇다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죠.” 요즘도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30~40년 전과 달리 한가롭기만 하다. 워낙 수입이 없어 기계로 만든 다른 철물들도 구색을 갖춰놓고 팔고는 있으나 한 달 수입이 고작 100만원도 안된다. 현실은 이래도 한씨는 한 번도 대장간 문을 닫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불을 지폈던 화덕은 이제 주문이 있거나 광탄 장날에만 가끔 불을 지피곤 한다. “나까지 돈 안된다고 문을 닫으면 한수 이북에 대장간은 아예 씨가 마르게 되는 거예요.”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로봇트레인 타고 DMZ 여행 가요”

    “로봇트레인 타고 DMZ 여행 가요”

    코레일과 CJ E&M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선보인 ‘로봇트레인과 함께하는 DMZ 기차여행’에 참가한 가족이 28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열차 탑승에 앞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번 기차여행은 서울역~임진강역 코스를 기준으로 5월 5일부터 한 달간 모두 7차례 진행된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남은 소망은 임진강 유역에서 영원히 잠드는 것”

    “남은 소망은 임진강 유역에서 영원히 잠드는 것”

    “한국은 전쟁의 참화에서 일어난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한국 젊은이들이 저희의 발자취를 따라 이 아름다운 나라를 지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영국인 6·25 참전용사 윌리엄 스피크먼(88)은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소회를 밝혔다. 귀가 어두워 동료의 도움 없이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스피크먼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1월 임진강 유역 마량산(317고지)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전쟁영웅 출신이다. 스피크먼은 당시 전투를 계기로 받은 영연방 최고 무공훈장 ‘빅토리아십자훈장’ 등 메달 10점을 이날 우리 정부에 기증했다. 스피크먼은 냉전이 한창이던 1951년 영국군 병사로 당시 동·서독으로 분단됐던 독일 베를린에서 복무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 근무를 자원했다. 그는 “베를린에서 동독의 현실을 보면서 공산주의의 위협을 체감했고 한국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느꼈다”면서 “남북한도 다시 하나의 국가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 당시 수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이 불과 20m 거리에서 포화를 퍼붓는 가운데 용감하게 수류탄을 던져 진격을 저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피크먼에게 남은 소망은 죽은 뒤 자신이 피 흘리며 싸운 임진강 유역에 묻히는 것이다. 그는 “군인은 언제나 자기가 싸웠던 장소를 생각하기 마련”이라며 “죽으면 (화장으로) 재가 돼 한국에서 영면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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