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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걸어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포토] ‘걸어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11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역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평화 걷기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 손들고 항복하는 北 소년들…한국전쟁 흑백사진, 컬러로 부활

    손들고 항복하는 北 소년들…한국전쟁 흑백사진, 컬러로 부활

    한국전쟁(1950~1953)의 참상이 담긴 흑백사진이 색을 머금고 컬러로 재탄생됐다. 사진은 영국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는 로이스턴 레너드(55)가 한 장당 4~5시간가량 작업한 끝에 완성됐다. 남동생을 등에 업은 어린 소녀와 탱크, 적군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미군의 모습 등 전쟁의 잔혹함이 컬러로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권총을 든 미군 앞에서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북한 소년들의 사진. 1950년 9월 20일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에는 매복 중이던 미군에게 붙잡힌 북한 소년들이 담겨 있다. 권총을 겨눈 미군 뒤로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던 탱크가 보인다. 1951년 6월 고양시 행주산성 부근에서 남동생을 등에 업은 남한 소녀가 무심한 표정으로 M-26 탱크 앞에 서 있는 모습 역시 인상 깊다.1950년 8월 부산 방어선 전투에서 다친 군인을 들것에 실어 나르는 미군 사진도 컬러로 복원됐다. 부산 교두보 전투로도 불리는 이 싸움은 유엔군 사령부가 부산을 지키기 위해 낙동강 동안으로 모든 병력을 후퇴시켜 방어선을 재편한 작전이다. 이를 통해 부산항으로 병력과 물자를 안정적으로 보급받은 유엔군은 9월 18일 반격 전환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1950년 9월 미 해병대가 널브러져 있는 적군의 시체를 지나치는 모습도 보인다. 반자동 소총을 메고 가슴까지 흠뻑 젖은 미군이 논두렁을 달려가고 있다. 죽음이 일상인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1950년 11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2주간의 혈투 끝에 중국군에게 패해 퇴각하던 미 해병대 제5연대와 제7연대의 사진도 볼 수 있다.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의 사진도 제 색깔을 찾았다. 총을 들고 탱크에 올라 있는 사진 속 8명의 영국 군인은 중국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이날 전투에서 임진강을 건넌 600명의 영국군은 중국군 1만 명을 사살하고 59명의 사상자를 냈다.이번 복원작업을 이끈 레너드는 “이번 작업은 그저 오래된 흑백사진이 아닌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이 그대로 담긴 사진이라 의미가 남달랐다”면서 “역사를 잊지 말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음 세대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쟁터로 보내야만 했던 가족들의 아픔을 상기시키는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눈길 닿는 곳마다 진분홍 자태…고려산에 진달래 꽃물 들었네

    눈길 닿는 곳마다 진분홍 자태…고려산에 진달래 꽃물 들었네

    매년 4월 중순쯤이면 인천 강화도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줄을 잇는다. 강화 고려산 전체를 진분홍빛 꽃 물결로 휘감아 봄 내음을 한껏 뿜어내는 진달래를 보기 위한 설렘이 담겨 있다. 봄꽃 중에서 유달리 사랑을 받는 진달래는 고려산 정상과 능선, 눈길이 닿는 곳마다 화사한 자태를 선보여 마치 분홍 물감으로 물들인 듯하다. 강화군은 오는 13일부터 21일까지 9일간 제12회 진달래축제가 고려산 정상 등에 있는 진달래 군락지와 고인돌광장(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서 열린다고 8일 밝혔다.이 축제는 봄꽃 축제의 백미로 꼽혀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아 우리나라 대표적인 꽃 축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우리나라 북단에 있는 고려산은 지리적 특성상 진달래가 가장 늦게 피어 매년 봄꽃 축제의 대미를 장식해 왔다. 축제를 찾았던 사람들은 온통 진분홍빛으로 물든 고려산의 경이로운 자태에 흠뻑 취해 다음해 봄이면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화재의 고장인 강화군은 축제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진달래축제만큼 관심을 끄는 것은 없다. 매년 이맘때면 무르익어 가는 봄의 정취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해에는 40만명이 다녀갔다. 2008년 처음 진달래축제가 선보였을 때 방문객이 수만 명에 그쳤던 것을 상기하면 비약적인 숫자다. 해가 갈수록 방문객이 급증하고 봄꽃 축제 중 으뜸으로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려산 중턱이 조금 지난 지점부터 펼쳐진 진달래가 산 정상 군락지까지 이어져 진달래 향연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진달래가 대개 평지나 얕은 산에서 피는 것과는 달리 고려산 진달래는 해발 436m 정상 및 7부 능선 이상에서 군락을 이루는 특징이 있다. 고려산 정상과 앞 비탈에 잡목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진달래가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1㎞가량 이어진다. 고려산은 다소 높은 편이지만 진달래꽃을 보기 위해 등산을 겸해 산을 오르는 이들이 많다. 고려산 진달래는 고도에서 꽃이 피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진한 빛을 뿜어낸다. 특히 축제 기간에는 꽃의 색도나 크기가 절정을 이룬다. 강화군 관계자는 “올해 진달래가 만개하는 시점은 4월 19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진달래 군락지가 있는 고려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1코스는 고인돌광장∼백련사∼진달래 군락지(3.7㎞)로 1시간 20분이 걸리며 2코스는 국화리 마을회관∼청련사∼진달래 군락지(2.9㎞)로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 또 3코스는 지방도로~고비고개∼진달래 군락지(2.4㎞, 1시간), 4코스는 고천리 마을회관∼적석사∼낙조봉∼고인돌군(群)∼진달래 군락지(5.2㎞, 1시간 50분), 5코스는 미꾸지고개∼낙조봉∼고인돌군∼진달래 군락지(5.8㎞, 2시간) 등이다. 빠르고 편하게 오르려면 1코스를 택해야 한다. 48번 국도변에서 출발해 백련사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로, 축제 기간에 찾는 관광객들은 대개 이 길을 택한다. 대신 사람이 많아 혼잡하고 포장도로를 통해 산을 오르는 밋밋함을 감수해야 한다. 2코스는 예전에는 한가했으나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덩달아 번잡해졌다. 3코스는 가장 빠르게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지만 경사가 급한 점을 유의해야 한다. 4코스와 5코스는 경관이 뛰어난 고려산 능선을 두루 거쳐 정상에 있는 진달래 군락지로 가기에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지만 길이가 다른 코스보다 2배가량 길다. 고려산 정상에는 나무로 멋들어지게 만든 탐방로가 있어 이 길을 걸으며 편하게 진달래 군락을 감상할 수 있다. 꽃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려면 탐방로 중간 지점에서 산비탈 방향으로 조성된 샛길을 이용하면 된다. 길이는 50여m에 불과하지만 끝부분에 전망대가 있고 사진 찍기에 좋은 포토존이 곳곳에 있어 가장 인기를 끄는 구간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 가운데 별로 알려지지 않은 코스도 있다. 고촌4리 입구에서 100여m 지점에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네 길을 걷다가 ‘고인돌군’이라는 안내판이 보이면 좌측으로 돌아 인가가 드문 지점부터 시작되는 산길을 통해 정상에 오르면 된다. 공개된 코스들과는 달리 인적이 드물어 한적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정상에서 진달래 군락을 감상한 뒤 서쪽 낙조봉으로 이어지는 3㎞가량의 능선을 타면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오솔길로 된 이 등산로는 주변 경관이 아기자기한 데다 정상 군락지만은 못하지만 길 좌우에 진달래가 풍성하게 피어 있다. 능선을 오르내리는 경사 또한 적어 마치 둘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간쯤에서는 21기로 된 고인돌군을 만날 수 있다. 능선이 끝나는 지점이 있는 낙조봉에 오르면 교동도, 석모도, 영종도, 신도 등 서해의 화려한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이어지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도 한눈에 들어온다. 또 북쪽을 응시하면 황해도 송악산 등 북녘 땅이 가까이 보여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낙조봉에서 적석사 쪽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3대 낙조 조망대인 낙조대가 나온다. 동해안 정동진의 반대쪽에 있다고 해서 ‘정서진’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바라보는 서해 석양은 ‘강화 8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진달래축제를 찾으면 진달래는 물론 강화의 유구한 역사문화와 청정 강화의 자연환경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어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새로운 활력과 기운을 북돋우는 웰빙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고려산에는 적석사·백련사와 같이 오래된 사찰, 연개소문 유적지, 고인돌군, 오련지, 홍릉 등의 문화재가 분포돼 있어 역사탐방 위주의 산행을 하기에도 좋다.축제 기간에는 부대행사장인 고인돌광장에서 진달래를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진달래 체험전, 진달래 사진전·엽서전, 진달래 화전·떡 만들기, 소창 손수건 만들기, 고인돌 선사체험 등이 진행된다. 또 등산객들의 피곤을 풀어 줄 흥겨운 음악과 축제 참여자의 사연이 진달래 온 에어(ON AIR) 방송을 통해 행사장에 전달된다. 아울러 강화군 읍면별 향토음식 먹거리장터가 운영되며 농특산물 홍보와 판매도 이뤄진다. 강화 특산물인 강화섬쌀, 속노랑고구마, 토종순무, 사자발약쑥, 갯벌장어, 새우젓, 인삼 등을 접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고인돌광장과 함께 청련사 입구에도 공연시설을 마련하고 다채로운 버스킹(거리공연)을 축제 기간 중 주말(13, 14, 20일)에 펼치는 등 축제의 폭을 넓힌다. 그동안 부대행사는 고인돌광장에 집중됐으나 콘텐츠를 확대해 청련사 경유 코스 등산로를 이용하는 방문객들에게도 풍성한 즐길거리를 안겨 주게 된다. 진달래축제와 함께 강화읍에서는 ‘북문 벚꽃길 야행’이 펼쳐진다. 북문길은 매년 4월이면 울창한 벚꽃터널로 변신하는데 강화군은 고려궁지 정문에서 강화산성 북문에 이르는 구간에 야간조명을 설치하고 음악을 활용해 환상적인 밤거리를 조성한다. 유천호 강화군수는 “고려산 진달래축제는 수도권에서 개최되는 우리나라 최북단 마지막 봄꽃 축제”라며 “축제장을 방문해 일상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가족, 연인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지역경제 희소식 될 것” 손님맞이 분주한 고성

    사람들의 왕래가 끊겼던 비무장지대(DMZ) 일부를 둘레길로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개방한다는 3일 정부 발표에 평화(접경)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반겼다. 당장 오는 27일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강원 고성군은 특히 기대에 부풀었다. 주민들은 “금강산 관광 폐쇄로 지역 상권을 무너트린 데다 대도시로 떠나가는 주민 증가로 사회문제까지 겪고 있는데 DMZ 개방을 지역경제를 되살릴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모았다. 고성군은 현재 개방 구간의 철제 계단과 철조망 등을 정비하고 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뤄진 상징성을 담은 이달 27일 개방하기로 예정돼 있어 정비에 행정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김창래 고성군 관광문화과장은 “정부 발표에 따라 DMZ 둘레길을 만들어 개방하고, 추후 금강산 관광길까지 재개되면 지역경제 회복에 큰 힘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반겼다. 철원군은 체류형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며 벌써부터 손님맞이 채비에 나섰다. 김영규 철원군 관광문화체육과장은 “군사지역 제한에 군부대 이전 등으로 위축된 지역경제에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다”며 “대형 숙박업소가 부족한 현실 속에 고석정과 한탄강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장시간 체류 시스템을 정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탐탁잖은 반응이다. 실향민들이 명절 때 북을 향해 합동제사를 지내는 망배단을 낀 경기 파주 임진각 인근 주민들은 DMZ 개방 소식에 시큰둥하다. A(76·파주 문산읍 마정리)씨는 “관광을 이야기하자면 이미 임진강을 넘어 판문점, 땅굴, 도라전망대 등 볼만한 덴 다 들어갈 수 있고, 영농을 위해서라면 입구에서 신분증만 맡기면 지금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데 달라지는 게 있느냐”고 되물었다. B(89·여·파주 파평면 장파리)씨도 “전쟁 때 폭격을 맞아 볼만한 게 뭐 남아 있어야지”라면서 “잘못 들어갔다가는 지뢰를 밟기 딱 알맞다”며 손사래를 쳤다. 임진각과 임진강 옆 상인들도 “지금도 봄, 여름, 가을 둘레길 걷기 행사나 관광상품을 많이 만날 수 있다”며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 전까진 크게 달라질 게 있겠냐”고 고개를 저었다. 고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파주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한강하구 첫 ‘민간평화의 배’ 두둥실… 유도 중립수역 못가 아쉬웠다

    한강하구 첫 ‘민간평화의 배’ 두둥실… 유도 중립수역 못가 아쉬웠다

    경기 김포시가 시 승격 21주년을 맞아 한강하구 전류리 포구부터 시암리까지 한강하구 물길 열기 사전답사 행사를 가졌다. 당초 목표한 유도 중립수역까지 물길을 열지 못해 아쉬운 민간선박 첫 물길 항행이었다. 김포시는 배 10척을 띄워 정하영 시장과 환경·학술 분야 전문가들이 한강하구 중립수역 앞 시암리 습지까지 물길을 헤치고 돌아왔다고 1일 밝혔다. 시는 당초 전류리 포구부터 유도까지 왕복 45km 구간을 운행할 예정이었으나 아쉽게도 최근의 남북 관계를 고려해 국방부가 허락지 않아 중립수역 입구까지만 다녀왔다. 이날 항행은 민간선박들이 어로한계선을 넘어 한강하구 중립수역 인근까지 물길을 연 데 큰 의미가 있다. 시는 이번 사전답사를 시작으로 오는 27일 다시 한강하구 물길열기 행사를 열 예정이다.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고 한강하구의 자유항행을 축하하기 위해 평화의 물길열기 행사의 사전 답사였다. 한강하구는 1953년 정전협정에 남북의 민간선박이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민감수역’으로 분류돼 사실상 어로한계선 이북으로는 민간선박 출입이 제한돼 왔다. 남과 북은 지난해 11월 5일부터 한 달 간 강화도 말도에서 파주시 만우리 구역에서 수로측량·조석관측 등 공동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달 1일부터 민간선박의 자유항행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정하영 시장은 “한강 최북단 전류리 포구를 출발해 어로한계선을 넘어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강하구 중립수역 입구까지 다녀왔다”며, “비록 한강과 임진강·조강이 만나는 세물머리 중립수역을 넘어가지는 못했지만 오늘 우리의 간절한 항행은 새로운 시작이며 한반도 평화물결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명령이자 우리 민족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부고] 이성호 前해군총장 별세

    △ 이성호 전 해군참모총장이 27일 오전 00시 40분경 별세했다. 향년 94세. 경기도 시흥 출신인 고인은 1944년 진해고등해원양성소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46년 2월 해방병단(대한민국 해군의 전신)에 입대했다.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 인수 요원으로 참여했고, 6·25 전쟁 발발 직후 삼각산함(PC-703) 함장에 임명돼 서해안 봉쇄작전,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등에 참전했다. 이후 미군이 원조한 영흥만정(LSSL-107·대형상륙정)을 인수했고, 임진강함(PF-66·호위함) 함장으로 피난민 호송 등의 작전을 수행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성을지무공훈장, 금성충무무공훈장, 은성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1960년 소장 진급과 함께 제5대 해군총장에 임명됐고, 참모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0년 11월 중장으로 진급했다. 전역 후 초대 한국석유공사 사장과 초대 해군협회장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선우 여사(90)와 1남 2녀가 있다. 장례식은 해군장으로 치른다. 영결식은 오는 29일 오전 7시 30분에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안장식은 같은 날 오전 11시에 대전현충원에서 개최된다.
  • ‘금강산관광 갈망’ 현대그룹은 지금…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 경협사업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현대그룹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금강산관광 재개 등 구체적인 내용은 없더라도 대북제재 완화 등에 대한 원론적 수준의 문구는 포함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합의문 서명 자체가 무산되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현대그룹 내부에서는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말자는 분위기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금강산관광 재개 등은 기본적으로 당국 간 합의가 이뤄진 이후에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분위기에 따라 들뜨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이날 정상 합의문에 대북제재 완화 혹은 예외 인정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경우 현정은 회장이나 그룹 명의로 환영 입장을 밝힐 계획이었으나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남북 정상이 관광 재개에 대해 일찌감치 공감대를 형성한 터여서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이르면 올 상반기 시범 관광도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으나 당분간은 진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위기도 읽힌다. 나아가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외에 현대아산이 지난 2000년 북측으로부터 확보한 7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권(전력사업, 통신사업, 철도사업, 통천 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 수자원, 명승지 관광사업)에 대한 논의도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게 재계 안팎의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강산관광 주사업자이지만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없고 남북, 북미 당국간 협상을 지켜봐야 하는 답답한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벚꽃/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벚꽃/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서해 바다를 지척에 두고 한강과 임진강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 파주 영어마을 근처로 이사한 게 5년 전이다. 큰아이는 파주역 뒤편 부대에서 포병으로 군 생활을 하던 동생을 보러 가자고 했다. 멀어서 싫다고 파주땅 이사에 어깃장을 놓던 엄마를 큰아이는 그렇게 꼬드겼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다 모른 척하고 들른 마을에는 사월의 벚꽃이 정신이 아득해지도록 눈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온갖 꽃나무가 흐드러진 앞산 옆 귀퉁이, 조각배처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살림을 옮긴 건 그로부터 딱 2개월 뒤다. 유난히 싱거운 겨울을 청산하고 고개를 내민 ‘벚꽃 캘린더’가 반갑다. 지난 20일 한 기상관측 업체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벚꽃은 3월 22일 제주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하루 뒤인 23일 부산으로, 열흘 남짓 뒤인 4월 4일에는 서울로 밀고 올라온다는 소식이다. 약 한 달 뒤면 목멱산방 주위 서울 남산 구석구석은 물론 문산으로 이어지는 자유로 변까지 눈부신 벚꽃이 뒤덮을 것이다. 국화(國花)나 다름없이 벚꽃을 사랑하는 일본에서는 이미 지난 1월 중순 개화 시기를 점쳤다. 꽃망울을 터뜨릴 때부터 만개에 이어질 때까지를 지역별, 날짜별로 꼼꼼하게 예측했다. 4월이면 열도는 ‘하나미’(花見)로 들썩인다. 일본 사람들은 전국 수천 군데의 벚꽃 명소로 쏟아져 나와 가족, 연인 등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봄이 데리고 온 손님을 맞는다. 벚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필 때보다 질 때 더 확연하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라는 유명 가수의 노래도 있지 않은가. 매 소절 말미마다 고음으로 휙휙 치닫는 선율이 마치 바람에 몸을 맡겨 하늘로 떠오르는 벚꽃잎을 연상케 하는 노래다. 그런데 해마다 이맘때면 불거지던 벚꽃의 ‘원산지 논쟁’이 올해는 잠잠할까 궁금해진다. 1908년 프랑스인 신부 타케가 제주도에서 자생 왕벚나무를 발견한 이후 100년 넘게 한국과 일본이 다퉈 온 논쟁이다. 한국은 제주의 그것과 비슷한 형태의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일본이 아니라 한라산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를 근거로 ‘제주 원산지론’을 펼쳤다. 물론 일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국내 두 대학 연구진이 국립수목원과 함께 제주 왕벚나무의 인접 종과 일본 도쿄대 부속 식물원에 있는 자국 최초의 왕벚나무의 표본을 확보해 유전체(게놈)를 해독한 결과 ‘두 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제주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왕벚나무가 됐다거나 그 반대라는 주장은 유전적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 셈이다. 벚꽃의 꽃말은 ‘순결·절세미인’이지만 우리에게는 한동안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였다. 줏대없는 정치인을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벚꽃잎에 비유해 ‘사쿠라’라고 불렀다. 일본의 상징임을 염두에 두고 벚꽃을 대놓고 노래하지 못하던 것도 불과 십 년 전 안팎이다. 하지만 “제주 왕벚나무는 제주 것이고 일본의 왕벚나무는 일본 것이다. 나무에 국적이 어디 있겠느냐”는 연구진 발표처럼 올봄에는 벚꽃과 관련된 모든 논쟁을 끝낼 일이다. ‘벚꽃 엔딩’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말이다. cbk91065@seoul.co.kr
  •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 파주 교과서 수록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 파주 교과서 수록

    경기 파주시가 복원을 추진 중인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지역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됐다. 25일 파주시교육지원청에 따르면 교과서에는 ‘태종 13년 2월 태종과 세자가 임진도(현 임진나루)를 지나다 거북선과 왜선이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는 내용이 삽화로 설명됐다. 이 내용은 태종실록에 실린 것으로, ‘태종이 탕목(湯木·목욕) 행차를 세자인 양녕대군과 함께 가는데 임진도를 지나다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는 것이다. 파주시 관계자는 “탕목 행차 당시 세자인 양녕대군이 따라 가기를 청하자 임금이 예에 맞지 않는다며 돌아가게 하고자 했으나, 세자가 앙앙대고 밥을 먹지 않아 호가하는 대신들과 의논해 세자를 따르게 하니 세자가 안색이 기쁜 빛을 띄었고 임진도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고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행한 ‘우리 고장 파주’ 교과서는 사회과 교육과정의 별책으로, 우리 고장을 이해하고 자긍심을 기르기 위해 발행됐다. 다음 달 새 학기부터 관내 57개 초등학교 5000여명에게 배포된다. 파주시는 2015년 임진진의 진서문터와 잔존 성벽을 살펴 문헌과 고지도를 통해 전해져오던 임진나루와 임진진터의 실제를 확인했다. 임진진은 조선 선조 때보다 180년이나 앞선 태종 때 조선 최초의 거북선을 훈련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된 ‘임진강 거북선’ 훈련장이다. 임진나루와 임진진터는 현재 문산읍 임진리 2의 3번지 일대다.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한강 물류의 중심… 포구의 낭만 품고 ‘뱃놀이 김포’ 뜬다

    한강 물류의 중심… 포구의 낭만 품고 ‘뱃놀이 김포’ 뜬다

    “마근포구는 한강하구에서 가장 깊은 물속과 넓은 수변을 끼고 있어 수심이 깊은 곳에서 배들이 정박했다가 밀물 때 서울 마포나루로 다녔죠.” 경기 김포시 하성면 마근포 주민 김석태(80) 어르신은 12일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어 “6·25전쟁 이전 우리 마을엔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고 어선을 많게는 두세 척이나 보유한 집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면사무소 소재지인 마을엔 소방서가 있었고, 도정공장 1개와 하성면 전 지역 쌀을 수매하던 공출창고 2개가 있어 쌀을 싣고 서울과 인천 등지로 실어 날랐다”고 덧붙였다. 김포문화재단으로부터 협조를 얻어 주민들과 동행해 포구를 둘러봤다.김포시 지명은 고어 ‘ᄀᆞᆷ포’에서 유래했다. 같은 계열인 감(甘), 검(檢, 儉, 劒, 黔)은 ‘거룩하다’는 뜻을 담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옛 땅 ‘검포’(黔浦)로 기록돼 있다. ’검’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과 같은 의미의 고대어로 신성한 마을을 가리킨다.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최초로 김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재단이 옛 포구에 대한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대 이후 김포엔 30여개 포구와 나루가 존재했다. 섶골나루를 비롯해 감암나루와 운영나루, 갑곶나루, 원머루나루, 신덕포나루, 대명나루, 전류리포구, 조강포, 강령포 등 크고 작은 나루와 포구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 ‘경기’ 편에는 ‘한강이 서쪽으로 흘러 서해에 이르는 물길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에서 조강(祖江)이 시작된다. 강화를 만나는 지점에서 황해도로 흐르는 서쪽 유로와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남쪽 유로인 염하 두 갈래로 나뉜다. 조강 서쪽 유로는 해서·관서지방 선박들이 주로 이용했고, 염하는 삼남 지방을 오가던 선박들이 이용했다. 포구별 인구와 어업인구, 배 수량까지 기록된 ‘한국수산지’(1908~1911)엔 당시 김포에서 가장 큰 포구 마을은 80가구를 웃돌았던 조강포와 강령포·마근포였다. 김석태 어르신은 “농사보다는 고기잡이로 제법 돈을 벌었다. 고기잡이 배가 한 번 나갔다 오면 뱃사람들이 곧장 주막으로 가다 보니 기생집이 4개나 될 만큼 당시 마근포 마을 경제가 컸다”고 말했다. 봄철이면 어선이 출항할 때마다 포구 앞 당산에서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노제를 지냈다. 현재 그 자리에는 군부대 초소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포구 앞에선 뱀장어와 장어가 엄청 많이 잡혔다. 특히 비바람이 거세질 가을 무렵엔 만선을 이뤄 냄새가 마을에 진동할 정도였다. 아울러 마을엔 화재나 재난 때 긴급히 대피하라고 울리는 큰 비상 종이 있었다. 전종한(사회과학교육) 경인교대 교수에 따르면 20세기 초 포구별 토지소유 양상을 조사한 결과 염하 연안의 거점 포구들에 비해 조강 연안 거점 포구들에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부재지주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재지주 거주지를 보면 조강포·마근포엔 서울, 강령포엔 개성 소유주 비율이 높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서로 네트워크를 이뤘다. 김석태 어르신은 “당시 전태종씨라는 사람이 포구 쪽 토지를 5~6필지나 사들여 주택을 지었고, 서울 밤섬에 산다는 성산만씨는 전답 등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부재지주들은 주로 대지 필지를 갖고 있어 포구 주변 대지를 중심으로 포구 관련 시설들을 지배했다. 김포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3대 포구 중 마근포는 우리말 ‘막은 개’(개펄)라는 뜻으로 ‘막은’의 음을 따 ‘마근포’(麻斤浦)라고 불렀다. 원래 마근포 주변 마을에 물길을 따라 자리한 여러 포구들이 1919년 지도에는 금포리, 마조리로 표기되고 농경지로 간척됐다. 마근포는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가거나 강 건너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정곶리 사이를 왕래하던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김석태 어르신은 “김해 김씨 집성촌인 마근포구 일대엔 20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젠 농지로 변해 주택지 뒤 야산에 있던 대나무숲만 일부 흔적을 보일 뿐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당시 목선으로 직접 고기잡이를 다녔던 이 마을 김선구(81) 어르신은 “포구 마을에는 생선공판장이 있어 웅어나 숭어, 조기, 황복, 새우 등을 잡아 팔았다”며 “특히 여름철엔 별미인 깨나리 생선을 뼈째 발라 회로 즐겨 먹었다”고 전했다. ‘깨나리’는 세어라고도 불리며 가늘고 작은 물고기로 웅어와 매우 닮았다. 당시 김포 일대에 포구 관련 정박시설이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변 갯벌 등에 배를 댔다. 강령포에는 토담집 형태의 당집이 있어서 제사 도구를 보관했고 정월 초순 당제를 지냈다. 강령포 앞에 ‘노구여’라는 여(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제사와 관련된 지명이다. 이 여로 인해 배가 자주 좌초돼 뱃사람들은 구리나 놋쇠로 만든 솥에 새로 밥을 지어 산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솥을 ‘노구솥’, 밥을 ‘노구메’라고 불렀다. 포구 근처에는 어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토빙고와 새우젓 창고도 마련됐다. 고촌 섶골나루 근처에는 새우젓독을 만드는 가마도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배들은 물때를 맞추는 데 실패하거나 기상이 악화되면 며칠씩 옴짝달싹하지도 못했다. 여행객들은 숙식을 해결할 곳이 필요했는데 조선 중기까지는 원(院)이라고 일컬어지는 관영 숙박시설이 그 기능을 도맡았다. 대표적인 게 조강포에 자리했던 조강원이다. 그러나 관에서 설치한 원 기능이 점차 빛을 상실하고 시장유통에 따른 상인과 보부상들의 대거 활동으로 주막이 번창했다. 조선지지 자료에는 1919년 김포 포구와 관련된 주막 이름이 등장한다. 당시 통진군에는 원모루주막, 산성주막, 강령포주막, 조강가리주막, 조강리주막, 후평주막, 마근포주막, 전류리주막, 봉성리주막, 바삭바위주막, 조강거리주막 등이 있었다. 광복을 앞뒤로 한 시기까지 주막은 성업을 이뤘다.김포시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포구의 장점과 역사를 재조명하고 과거 정취를 살린 체험·관광자원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하성면 전류리 54-4와 봉성리 640-4 부지 1만 2500㎡에 포구공원과 물길 산책로를 조성한다. 국비 100억원을 투입해 2020년 착공, 2025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왕룡 전 김포시의원은 “한반도 물류·관광·문화 중심지라는 인문학적 고찰이 필요하고, 한강하구의 물류 기능과 역사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포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행안부 지원방안은 근시안적 관광 볼거리 이벤트 성격으로 예산 나눠 먹기 개발로 이어질까 염려된다”며 “한강하구 일대에서 강화 따로, 파주 파로, 김포 따로가 아니라 조강권 남북 공동체 복원이라는 종합적 관점에서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대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김포는 30여개 포구와 나루터 있던 신성한 포구마을… “한반도 물길 물류 중심지였다”

    김포는 30여개 포구와 나루터 있던 신성한 포구마을… “한반도 물길 물류 중심지였다”

    “마근포구는 한강하구에서 가장 깊은 물속과 넓은 수변을 끼고 있어 수심이 깊은 곳에서 배들이 정박했다가 밀물 때 서울 마포나루로 다녔죠.” 경기 김포시 하성면 마근포 주민 김석태(80) 어르신은 12일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어 “6·25전쟁 이전 우리 마을엔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고 어선을 많게는 두세 척이나 보유한 집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면사무소 소재지인 마을엔 소방서가 있었고, 도정공장 1개와 하성면 전 지역 쌀을 수매하던 공출창고 2개가 있어 쌀을 싣고 서울과 인천 등지로 실어 날랐다”고 덧붙였다. 김포문화재단으로부터 협조를 얻어 주민들과 동행해 포구를 둘러봤다. 김포시 지명은 고어 ‘ᄀᆞᆷ’ 포에서 유래했다. 지명이 생긴 지 1262년 됐다. 같은 계열인 감(甘), 검(檢, 儉, 劒, 黔)은 ‘거룩하다’는 뜻을 담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옛 땅 ‘검포’(黔浦)로 기록돼 있다. ’검’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과 같은 의미의 고대어로 신성한 마을을 가리킨다.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최초로 김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재단이 옛 포구에 대한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대 이후 김포엔 30여개 포구와 나루가 존재했다. 섶골나루를 비롯해 감암나루와 운영나루, 갑곶나루, 원머루나루, 신덕포나루, 대명나루, 전류리포구, 조강포, 강령포 등 크고 작은 나루와 포구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 ‘경기’ 편에는 ‘한강이 서쪽으로 흘러 서해에 이르는 물길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에서 조강(祖江)이 시작된다. 강화를 만나는 지점에서 황해도로 흐르는 서쪽 유로와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남쪽 유로인 염하 두 갈래로 나뉜다. 조강 서쪽 유로는 해서·관서지방 선박들이 주로 이용했고, 염하는 삼남 지방을 오가던 선박들이 이용했다. 포구별 인구와 어업인구, 배 수량까지 기록된 ‘한국수산지’(1908~1911)엔 당시 김포에서 가장 큰 포구 마을은 80가구를 웃돌았던 조강포와 강령포·마근포였다. 김석태 어르신은 “농사보다는 고기잡이로 제법 돈을 벌었다. 고기잡이 배가 한 번 나갔다 오면 뱃사람들이 곧장 주막으로 가다 보니 기생집이 4개나 될 만큼 당시 마근포 마을 경제가 컸다”고 말했다. 봄철이면 어선이 출항할 때마다 포구 앞 당산에서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노제를 지냈다. 현재 그 자리에는 군부대 초소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포구 앞에선 뱀장어와 장어가 엄청 많이 잡혔다. 특히 비바람이 거세질 가을 무렵엔 만선을 이뤄 냄새가 마을에 진동할 정도였다. 아울러 마을엔 화재나 재난 때 긴급히 대피하라고 울리는 큰 비상 종이 있었다. 전종한(사회과학교육) 경인교대 교수에 따르면 20세기 초 포구별 토지소유 양상을 조사한 결과 염하 연안의 거점 포구들에 비해 조강 연안 거점 포구들에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부재지주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재지주 거주지를 보면 조강포·마근포엔 서울, 강령포엔 개성 소유주 비율이 높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서로 네트워크를 이뤘다. 김석태 어르신은 “당시 전태종씨라는 사람이 포구 쪽 토지를 5~6필지나 사들여 주택을 지었고, 서울 밤섬에 산다는 성산만씨는 전답 등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부재지주들은 주로 대지 필지를 갖고 있어 포구 주변 대지를 중심으로 포구 관련 시설들을 지배했다. 김포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3대 포구 중 마근포는 우리말 ‘막은 개’(개펄)라는 뜻으로 ‘막은’의 음을 따 ‘마근포’(麻斤浦)라고 불렀다. 원래 마근포 주변 마을에 물길을 따라 자리한 여러 포구들이 1919년 지도에는 금포리, 마조리로 표기되고 농경지로 간척됐다. 마근포는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가거나 강 건너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정곶리 사이를 왕래하던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김석태 어르신은 “김해 김씨 집성촌인 마근포구 일대엔 20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젠 농지로 변해 주택지 뒤 야산에 있던 대나무숲만 일부 흔적을 보일 뿐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당시 목선으로 직접 고기잡이를 다녔던 이 마을 김선구(81) 어르신은 “포구 마을에는 생선공판장이 있어 웅어나 숭어, 조기, 황복, 새우 등을 잡아 팔았다”며 “특히 여름철엔 별미인 깨나리 생선을 뼈째 발라 회로 즐겨 먹었다”고 전했다. ‘깨나리’는 세어라고도 불리며 가늘고 작은 물고기로 웅어와 매우 닮았다. 당시 김포 일대에 포구 관련 정박시설이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변 갯벌 등에 배를 댔다. 강령포에는 토담집 형태의 당집이 있어서 제사 도구를 보관했고 정월 초순 당제를 지냈다. 강령포 앞에 ‘노구여’라는 여(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제사와 관련된 지명이다. 이 여로 인해 배가 자주 좌초돼 뱃사람들은 구리나 놋쇠로 만든 솥에 새로 밥을 지어 산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솥을 ‘노구솥’, 밥을 ‘노구메’라고 불렀다. 포구 근처에는 어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토빙고와 새우젓 창고도 마련됐다. 고촌 섶골나루 근처에는 새우젓독을 만드는 가마도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배들은 물때를 맞추는 데 실패하거나 기상이 악화되면 며칠씩 옴짝달싹하지도 못했다. 여행객들은 숙식을 해결할 곳이 필요했는데 조선 중기까지는 원(院)이라고 일컬어지는 관영 숙박시설이 그 기능을 도맡았다. 대표적인 게 조강포에 자리했던 조강원이다. 그러나 관에서 설치한 원 기능이 점차 빛을 상실하고 시장유통에 따른 상인과 보부상들의 대거 활동으로 주막이 번창했다. 조선지지 자료에는 1919년 김포 포구와 관련된 주막 이름이 등장한다. 당시 통진군에는 원모루주막, 산성주막, 강령포주막, 조강가리주막, 조강리주막, 후평주막, 마근포주막, 전류리주막, 봉성리주막, 바삭바위주막, 조강거리주막 등이 있었다. 광복을 앞뒤로 한 시기까지 주막은 성업을 이뤘다. 김포시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포구의 장점과 역사를 재조명하고 과거 정취를 살린 체험·관광자원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하성면 전류리 54-4와 봉성리 640-4 부지 1만 2500㎡에 포구공원과 물길 산책로를 조성한다. 국비 100억원을 투입해 2020년 착공, 2025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왕룡 전 김포시의원은 “한반도 물류·관광·문화 중심지라는 인문학적 고찰이 필요하고, 한강하구의 물류 기능과 역사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포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행안부 지원방안은 근시안적 관광 볼거리 이벤트 성격으로 예산 나눠 먹기 개발로 이어질까 염려된다”며 “한강하구 일대에서 강화 따로, 파주 파로, 김포 따로가 아니라 조강권 남북 공동체 복원이라는 종합적 관점에서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대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유시민의 고칠레오, 홍준표 대북 퍼주기 주장 정면 반박

    유시민의 고칠레오, 홍준표 대북 퍼주기 주장 정면 반박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팟캐스트 채널 ‘고칠레오’가 DJ·노무현 정부의 ‘대북 퍼주기’가 북한 핵무기 개발의 자금으로 쓰였다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유 이사장은 지난 연말 북한에 보낸 귤 박스에 “귤만 들었겠느냐”며 대북 불법송금 의혹을 제기한 홍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했다. 최근 여론이 유 이사장과 유튜브 채널 ‘홍카콜라TV’로 보수 진영 ‘스피커’로 나선 홍 전 대표의 경쟁 구도에 주목하는 가운데 두 사람의 정면 대결이 본격화한 모양새다. 노무현재단은 14일 ‘유시민의 고칠레오 2회’에서 ‘북한 핵개발 자금 출처가 DJ·노무현 정부’라는 가짜 뉴스를 팩트체크를 통해 반박했다.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는 지난 2017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당시 홍준표 한국당 후보가 이런 주장을 편 것에 대해 “대북 퍼주기설은 대북 지원이 시작된 2001년부터 등장한 지긋지긋한 이야기”라며 “70억 달러(약 7조 8400억원)를 현금으로 북한에 줬고, 이것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했기 때문에 북핵 개발 책임이 DJ·노무현 정부에 있다는 주장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주장했다.고칠레오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DJ·노무현 정부 당시 현금 39억 달러와 현물 29억 달러 등 총 68억 달러가 북한에 건너갔다. 현금 39억 달러의 99.99%는 남북 민간 교역에 쓰인 것으로 남측의 이익을 위한 거래였다. 개성공단 사용료, 노동자 임금 등 대가가 명확한 자금 거래였다는 게 천호선 이사의 설명이다. 나머지 현금 0.01%인 40만 달러(약 4억 5000만원)는 북한 5개 지역에 이산가족 화상상봉센터를 설치하는 사업에 쓰였다. 그 덕에 2005년부터 2년간 센터를 통해 3700명이 화산상봉을 할 수 있었다고 천 이사는 설명했다. 현물 29억 달러는 옥수수, 밀가루,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과 쌀, 철도 및 도로 자재, 경공업 원자재 등의 정부 차관으로 전달됐다. 이런 현물이 핵개발에 사용되려면 북한 밖에서 되팔아 달러로 만들어야 하는데 국제사회에 들키지 않고 대규모 거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유 이사장의 논리다.약 10억 달러 규모의 차관 상환에 대해 천 이사는 “보통 10년 거치, 20년 상환이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관행이라는 점에서 2012년부터 차관 상환이 시작됐어야하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돼 그럴 수 없었다”며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북한 광물자원으로 돌려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가, 북한의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로 제주산 감귤 200t을 보낸 것에 대해 홍 전 대표는 “귤 상자에 귤만 들었겠느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유 이사장은 “과일상자에 딴거(돈다발) 담는 것은 그분들(보수당)이 많이 하신 것 아니냐”며 “역시 해본 사람이 잘 안다.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그러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DJ 정부 시절 불법 대북송금 사건의 팩트는 현대그룹 측이 북한의 7대 사업(전력, 통신, 철도, 통천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 명승지)에 대한 30년 독점사업권을 확보한 것에 대한 선투자 개념으로 4억 5000만 달러를 송금한 것이며 국민 세금이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천 이사는 설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 DJ 정부가 산업은행 대출 및 송금 과정에서 편의를 봐 준 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특검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고 유 이사장은 짚었다. 천 이사는 “당시 민정수석으로 대북특검을 지켜본 문 대통령이 북한에 가는 귤 상자에 현금을 보낼 리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보수진영이 북한에 들어간 현금은 무조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인다고 전제하는 것 같다”며 “그런 의심을 해소하려고 북한과 어떤 거래도 하지 말고 대결하면서 항구적인 분단상태로 살아가자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연설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설사 밑지는 장사이면 북한을 그대로 두어야 합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이웃에 아주 가난한 나라, 가난한 국민이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안보의 위협요인입니다. 그래서 설사 수지가 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우리 안전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6·25영웅 英스피크먼 부산 유엔공원에 영면한다

    6·25영웅 英스피크먼 부산 유엔공원에 영면한다

    6·25전쟁 때 중국군(중공군) 진지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육박전을 벌여 전쟁영웅으로 불렸던 영국군 참전용사 고(故) 윌리엄 스피크먼이 부산 유엔공원에서 영면한다. 3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작년 6월 별세한 스피크먼의 유해가 고인의 유언에 따라 다음달 중 인천공항으로 봉환되어 부산 유엔묘지에 안장된다.스피크먼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1월 임진강 유역 마량산 고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수비대 1연대 소속이던 스피크먼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이용해 남하하던 중공군을 동료들과 수류탄 공격과 육탄전으로 저지했다. 스피크먼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사기가 오른 부대는 진지를 4시간 넘게 사수하면서 적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영국 정부도 그의 공적을 인정해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2015년 이 훈장을 한국에 기증했다. 영국에는 그의 이름을 본떠 맨체스터의 건물과 다리의 이름이 지어지기도 했다. 2010년과 2015년 한국을 방문한 그는 “영국 사람들에게 늘 한국의 발전상을 이야기하며 ‘내가 그곳에서 싸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며 “죽으면 재가 돼 마량산 고지(임진강 유역)에 묻혀 영면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이에 대한 소식을 접한 뒤 국가보훈처에 “안장식 준비와 유가족 체류 일정에 소홀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써 달라”고 주문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열차 타고 38선 넘다니…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 허허”

    “열차 타고 38선 넘다니…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 허허”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의 새 장을 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7년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의 노력을 이어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평가할까. 남북 정상이 1년 내 3차례나 만나고 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그림을 그들은 생전에 과연 상상했을까. 두 전직 대통령의 생전 발언과 옛 참모들의 전언을 토대로 가상 대담을 엮었다.# 북한 개성 판문역행 열차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싣고 달린다. 김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게 삶은 달걀 하나를 건넸다. 1시간 뒤 기차는 밭은 숨을 내쉬며 판문역에 다다를 것이다. 서울역을 출발할 때만 해도 바삐 밀린 안부를 묻던 두 정상은 임진강역을 지나면서부터 상념에 젖은 듯 말이 없다. 창 밖에는 싸락눈 사이로 새들이 북녘을 향해 날고 있었다. “얼마 만이지요?” “11년 만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대답에 김 전 대통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대중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이 지켜져서 다행입니다. 약속대로 지난 26일 이곳에서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이 열렸지요. 노무현 예. 북·미 관계가 주춤하고 있는데도 남북이 나름대로 앞으로 꿋꿋하게 나아가고 있는 게 대견합니다. 김대중 18년 전 제가 하늘길로 평양에 다녀왔고, 노 대통령은 육로로 평양에 가셨지요. 당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하셨던 말이 생생합니다.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지워질 것입니다”였지요? 노무현 역시 기억력은 여전하시네요. 오랜 세월 나이테가 촘촘히 쌓여 단단해진 그 장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김 대통령께서 첫걸음을 뗐고, 제가 오솔길을 냈습니다. 제가 홀로 넘은 군사분계선을 올봄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넘었지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사무실 ‘T2-T3’ 샛길을 가로지르는 높이 10㎝의 콘크리트 경계석을 두 정상이 가볍게 넘어 군사분계선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지를 만천하에 보여줬어요. 김대중 애초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인위적으로 그은 금단의 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을 삼켰던가요. 무력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냉전의 시대가 종식되고 평화로 평화를 지키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 낡은 패러다임이 무너지는 것이죠. 노무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4·27, 5·26 남북 정상회담, 6·12 북·미 정상회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평화와 화해의 선순환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줬습니다. 김대중 저는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이 평양 시민 15만명을 상대로 7분간 연설한 ‘능라도 연설’이 인상적이었어요. 남측의 대통령이 평양 시민 속으로 성큼 들어간 대사건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연설은 체제 결속을 위한 핵심적 선전도구인데, 그걸 남측의 대통령에게 넘긴 거예요. 그때 북한 가이드가 남한 대표단에게 “남측 대통령 목소리 듣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지요. 노무현 연설 내용도 인상깊었죠.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고 제안했어요. 남북이 공유할 시대정신을 제시한 거죠. 우린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산 한 민족임을 상기시키면서요. 김대중 노 대통령도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 평양 5·1 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봤었지요? 노무현 그때는 공연 후 기립박수를 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문제마저 적잖은 고심거리였어요. 참모들이 ‘일어서기는 하되, 박수는 치지 않는다’는 절충안을 만들어왔는데 제가 “무슨 소리요? 가서 전부 박수치는 걸로 해요!”라고 질책했죠. 여기 온 걸음이 얼마나 어려운 걸음인데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본전을 찾고 가자면 북쪽의 호감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 싶었습니다. # 기차는 경의선 최북단 도라산역에 이르러 작게 몸을 떨며 속도를 낮췄다. ‘평양 205㎞, 서울 56㎞’ 도라산역 표지판의 두 글자가 선명했다. 이 역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2002년에 들어섰다. 김대중 판문역까지 7㎞ 남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차를 타고 평양에 다녀온 대통령은 없었네요. 노무현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기차로 평양에 가고 싶었습니다. 철도가 개성까지 연결돼 화물도 남북을 오가는데 아직 사람은 오가지 못하던 때였어요. 대통령이 열차로 다녀오면 남과 북의 끊어진 철도길이 명실상부하게 열리는 것인데, 개성에서 평양까지의 철로가 시원찮아 아쉽게도 도로를 택해야 했습니다. 김대중 대북제재 해제로 남북 철도 연결이 이뤄져 제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밝힌 ‘철의 실크로드’ 구상이 현실화됐으면 합니다. 부산,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서울, 평양, 신의주, 만주, 몽골, 러시아를 지나 런던, 파리까지 가게 되겠지요. 노무현 비단 그 꿈은 김 대통령과 저만의 것이 아니겠지요.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겠다던 김구 선생의 꿈이고 민족의 꿈이지요. 한국교통연구원은 경의선 철도 연결로 30년간 약 148조원의 경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하더군요. 김대중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도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대한 대북제재 면제를 승인해줬지 않습니까. 머잖아 남북 경제협력과 개성공단 정상화의 길이 열렸으면 합니다. 노무현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도 속히 실현됐으면 합니다. 남북한 경제공동체를 넘어 동북아 경제공동체 시대가 열리는 것이지요. 북한이라는 잠재력 큰 시장을 선점하려면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에 기댄 낡은 협력방식에서 벗어나 남북의 특수성을 충분히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경제협력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김대중 100년 후에는 동북아 경제·평화 번영의 중심이 된 한반도를 기대해볼 수도 있겠네요.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예요. 하지만 남한도 성장하고 북한도 제재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성장한다면 통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노무현 예. 그러나 당장의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에 승부를 봐야 합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이렇게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고 나선 대통령은 없었죠. 미국 외교 정책의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기에 북·미 관계의 일대 도약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북한 최대의 핵 단지인 영변 핵시설 폐기를 약속했고요. 지난 30일에는 문 대통령에게 ‘깜짝 친서’를 보내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인했더군요. 비록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지만 이미 한반도 평화시계는 되돌릴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김대중 북·미 지도자 사이에서 인내심을 갖고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설득한 문 대통령의 협상 전략이 적중했다고 봅니다. # 어느새 판문역에 곧 들어선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창밖을 바라보던 김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 대통령과 저는 전생에 형제가 아니었을까요. 둘 다 농민의 아들, 북한도 차례로 다녀왔고요.” 노 전 대통령의 코끝이 발개졌다. 판문역에 눈이 내린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데스크 시각] 한강 하구에 황복을 선물하라/손원천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한강 하구에 황복을 선물하라/손원천 문화부장

    지난 10일자 몇몇 중앙 일간지에 북녘으로 향하는 배 한 척의 사진이 실렸다. 전날 한강 하구에 대한 남북공동수로조사를 마친 뒤 복귀하는 북한 측 조사선이었다. 이번 조사는 남과 북에 걸쳐 있는 한강 하구의 공동이용을 위한 것으로,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남과 북의 조사단은 35일 동안 무려 660㎞에 걸친 수로를 점검했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 적지 않은 성과도 냈다. 수중 암초 20여개를 발견하고 위치와 크기를 확인하는 등 머지않아 이뤄질 양측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확보했다. 한데 답보상태의 남북 관계 탓인지, 뜻밖에 그리 큰 조명을 받지는 못한 듯하다. 의아한 구석은 또 있었다. 한강 하구의 쓰임새에 대한 인식이다. 이날 대부분의 언론들은 한강 하구에 대해 “어업과 항행, 토사 준설 등 남북의 공동이용이 이뤄질 경우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역”이라고 썼다. 정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초다. 그중 몇몇은 모래와 자갈 등의 골재 채취를 언급하기도 했다. 수십년 만에 되찾은 평화와 생명의 땅에 개발의 논리라니. 환경의 파수꾼을 자임하는 이 정부에서 그럴 리는 없을 것이고, 필경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쓰임새를 고민하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일 것이라 이해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게 뭘까. 생명의 강에 되돌려 줘야 할 가장 적합한 선물이. 개인적으로 그 이벤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개체는 황복이라 생각한다. 황복은 대표적인 회귀성 어종 중 하나다. 여느 복어와 달리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3~4년 정도 살다 알을 낳을 때면 강을 거슬러 오른다. 복사꽃 봉오리가 툭툭 터지는 4월부터 6월까지가 바로 그때다. 회 맛은 또 어떤가. 차지고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황복회는 씹는 것이 아니라 혀로 녹여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복숭아꽃 봉오리 터지고 갈대가 싹틀 때 하돈(河豚)이 하류에서 올라온다네.” 중국 시인 소동파가 시로 찬미했던 하돈, ‘강의 돼지’가 바로 황복이다. ‘강 돼지’가 소상할 때면 소동파가 공무를 내팽개치고, 살 속에 스민 독의 맛을 탐닉했다니 얼추 그 맛을 가늠할 수 있겠다. 황복의 산란 습성도 독특하다. 자갈이 깔린 강 여울에서만 알을 낳는다. 그 탓에 하구에 댐이 조성된 금강, 섬진강, 낙동강 등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고, 임진강과 한강 하구에서만 조금씩 잡힌다. 그마저도 해마다 양이 줄어 지금은 씨가 마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할 만큼 ‘귀한 몸’이 됐다. 원인이야 자명하다. 상류 쪽 강수량이 줄고 오염된 데다, 산란처 노릇을 해야 할 강바닥의 자갈과 모래가 소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한강 하구는 세계적인 저어새 번식지다. 알려졌듯 저어새는 전 세계에 3000여 개체 정도만 남은 희귀종이다. 생멸의 기로에 선 저어새는 이 지역을 잃으면 갈 곳이 없다. 한강 하구는 평화와 생명의 수역이어야 한다. 그만큼 그 쓰임새에 대해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예컨대 설악산이나 한라산, 홍도 등처럼 일정 지역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어떨까. 혹은 몇 해 전 환경부가 추진하다 중단됐던 습지보호지역 지정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정부가 어떤 방식을 택하든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다만 쓰임새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토사 준설’ ‘모래 채취’ 등이 운위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잖아도 여태껏 남과 북의 대치 속에서 상처만 남은 곳이다. 이제 그 땅에 황복을, 저어새의 집을 선물해야 하지 않겠나. angler@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의 소원은 통일 - 파주 임진각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의 소원은 통일 - 파주 임진각

    “야,야,야.... 구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 2000)에 나오는 장면이다. 북측을 바라보는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에게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가 농반진반으로 내뱉는다. 이처럼 그림자도 남북을 넘지 못하던 불신의 시절을 넘어 새로이 평화와 공존의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민족 분단의 상징과 더불어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주던 파주 임진각으로 가보자.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임진각(臨津閣). 길이 244Km에 달하는 한강의 제 1지류인 임진강변에 1972년 ‘임진강에 세운 누각’이라는 뜻을 담아 정부 주도로 세워진 편의시설이다. 지상 3층과 지하 1층 대지 6,000평, 총 연건평 2,442㎡ 규모로 조성된 임진각에는 6·25전쟁 이후 사람의 내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 판문점이나 도라산역,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같은 행정적인 지명과는 달리 이곳 임진각에는 북녘에 가족을 남겨둔 실향민들의 아픔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측 군사분계선으로부터 7Km 떨어진 임진각에는 북한 실향민들이 북녘 고향을 향해 제사나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1985년 9월 26일에 ‘망배단’이 설치되었다. 이 곳에서 매년 연초에는 연시제, 추석에는 망향제를 합동재배하여 북녘 땅에 대한 그리움을 실향민들 가족들은 지금도 매만지고 있다. 주로 임진각을 찾는 실향민들은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 들이 많다. 또한 임진각 3층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개성까지도 볼 수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풍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임진각에서는 아직도 6·25전쟁의 상흔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자유의 다리’다. 1953년에 폭 4.5~7m, 높이 8m 내외의 목조 다리로 건설된 이 다리를 통해 북한에 잡혀 있던 포로 12,773 명의 한국군과 유엔군이 남한으로 넘어왔다. 지금도 판문점에 위치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더불어 전쟁의 상처를 상징하는 교량으로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유의 다리 너머에는 북한 땅이 아니라 남측의 민간인 통제 구역으로 지금도 출입은 통제되고 있다. 현재 이 다리는 경기도 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다.또한 임진각 자유의 다리 오른편에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도 볼 수 있다. 6·25전쟁 시기에 연합군의 군수 물자를 수송하던 이 기관차는 연합군이 후퇴하는 도중 열차가 북한군에 넘어갈 것을 우려, 인위적으로 파괴되었다. 반세기 가량 장단역 터 50M 지점에 방치되어 있다가 2007년 11월에 화학처리를 거쳐 현재 임진각에서 등록문화재 제78호로 전시 중이다.이 외에도 임진각 주변에는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 통일공원, 망향의 노래비 등이 주변에 있다. 특히 2005년 세계평화축전을 위해 조성한 99만㎡의 넓은 잔디언덕으로 조성한 평화누리공원이 자리 잡고 있어 공연·전시·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과 행사가 연중 운영되고 있다. <파주 임진각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반드시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도라산역과 제 3땅굴을 함께 보는 DMZ안보 관광을 적극 추천.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특히 전쟁을 기억하는 나이드신 부모님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494-1 - 경의선 전철로는 문산역에서 하차, 문산-도라산 열차로 갈아탄 후 임진강역에서 하차 - 서울에서 9710, 909번 버스 탑승후 문산 버스터미널에서 058번 버스. 임진각하차. 4. 감탄하는 점은? - 실향민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규모가 크고 역사가 만들어진 장소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중, 주말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것은? - 평화누리 공원, 자유의 다리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메기매운탕 ‘반구정 나루터집’, 부대찌개 ‘삼거리부대찌게’, ‘석이네 부대찌개’, 한우 ‘조재벌생고기’,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imjingak.co.kr/xe/imjingak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도라산역, 제 3땅굴, 파주 헤이리 마을, 파주 출판단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임진각의 정체성은 바로 실향민들의 한에 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의미있는 방문지임에는 틀림없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접경지역 균형발전 정책포럼] “이젠 평화가 밥 먹여주는 시대… 남북 지방교류 전담창구 절실”

    [접경지역 균형발전 정책포럼] “이젠 평화가 밥 먹여주는 시대… 남북 지방교류 전담창구 절실”

    “남북한 신뢰·협력관계가 더욱 발전할 2019년엔 한반도 중심으로서 접경지역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것입니다. 동시에 남북교류 물꼬를 틀 수 있게 북측과 우리 지방정부를 연결하는 전담교류창구 설치가 필요합니다.”1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서울신문·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 주최, 행정안전부·통일부·문화체육관광부·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후원으로 열린 접경(평화) 지역 포럼 첫 기조발표자로 나선 정하영(경기 김포시장) 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장은 “예전에 김포 주민들이 ‘평화가 밥 먹여 주냐’며 냉소적이었으나 앞으로는 (평화가) 밥 먹여 줄 것 같다”며 평화를 화두로 꺼냈다. 정 회장은 “남북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체계적 절차가 정립되면 지방정부 차원의 대북사업이 활기를 띠게 된다”며 “향후 접경지역이 법적·경제적·군사적으로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한반도 평화의 완충지대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접경지역 현안을 공동으로 논의하고 발굴·제시해 접경지역에 대한 대내외 관심을 이끌어 내겠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생태다양성 보고(寶庫)인 한강 하구와 비무장지대(DMZ)로의 접근은 민통선으로 차단되고 철책선을 비롯한 군사시설과 규제로 접경지역 주민 피해는 여전하다”며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에 이어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난개발을 방지하는 체계적, 종합적 계획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립수역을 활용해 뱃길 복원과 유람선 운항 등 해상교통망을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자연환경을 고려한 기반시설과 인프라를 확충하고 대단위 물류단지와 교통 연계시스템을 구축해 통일을 준비하는 경제통합 배후도시로 육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북을 아우르는 평화 공감대 형성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한강 사이로 남북에 걸쳐 자리한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와 황해북도 개풍군 상조강리, 하조강리를 연결해 교류하는 사업과 파주시의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강화도의 개천절 행사 등 민족 공동 역사를 주제로 남북행사를 주최하자”며 “태권도 한마당이나 유소년 축구대회, 인삼축제 등 스포츠와 문화 분야에서 다양한 교류활동을 추진하자”고 역설했다. 강원·경기·인천지대인 고성~파주~김포~옹진까지 자연생태지역을 연계해 관광상품화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안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지방정부의 남북교류 법적·제도적 위상이 미비해 법적 제도 정비가 시급하고, 남북 간 공동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가 북한을 방문해 관광사업 등 지속 가능한 공영발전 교류협력사업을 협의해 발굴하도록 애쓰겠다”고 거듭 밝혔다.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은 ‘경기북부 졉경지역의 역할과 기대’ 주제 발표에서 인천-경기-강원을 연계하는 접경지역 문화유산과 활용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DMZ 내 자연생태·문화·역사를 스토리텔링해 세계적인 도보길을 조성하고, 서해안의 해양레저와 DMZ 접경지역의 평화생태, 경기동부권의 산악·수변레저산업을 연계 조성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고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유네스코 지역발전 프로그램을 활용해야 하며, 한탄강·임진강 세계지질공원 인증 신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경기·인천·강원과 DMZ 전역의 생태·환경·역사유적·문화자원을 남북이 공동 조사하고 자연환경 보전과 역사문화자원을 발굴·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강 하구를 남북이 공동 활용하고, 인천·경기·황해남북도가 한강 하구의 평화적 활용과 공동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며 “‘평화의 뱃길’ 포구를 복원, 연결하고 해상평화공원 조성과 해상자원 개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한반도 통합철도망 계획에 따른 단절구간 보완책으로 단절된 철도구간을 복원해 한반도를 하나로 이을 철도로, 부산에서 출발하는 남북한연결철도(TKR) 노선을 구축하기 위해 남북 간 철도 단절구간을 복원하는 선행작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동한 강원연구원장은 ‘강원 접경지역의 발전방안’ 기조발표에서 “강원지역이 남북 분단상징에서 이젠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었다”며 “철원을 산업물류거점으로, 고성을 관광교류거점으로 육성해 낙후지역에서 남북교류협력의 거점으로 삼고, 특히 고성군을 남북교류 시범촉진지구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로 경기·강원 경계지역인 파주·연천·철원·고성 등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내놨다. 또 이곳에 푸드테크와 스마트팜, 산림자원 고부가가치화 등 휴양과 치유의 웰니스시티를 조성하는 등 청정생태에 적합한 4차 산업지대로 육성하자고 말했다. 대신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도록 접경지역에 대해 체계적 보전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화의 상징지대로 강원평화특별자치도를 설치해 남북강원도로 갈린 특성을 살려 제주·세종특별자치도의 분권확산 모델을 정립하자”고 역설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화장실이 장원굴?… 말문 막히는 파주 율곡 마케팅

    화장실이 장원굴?… 말문 막히는 파주 율곡 마케팅

    9번 장원급제한 이이 선생 기리며 ‘수능 대박길’ 스토리텔링 걷기대회 실제론 미군들 훈련때 용변보던 곳 주민 “장원길은 정반대… 전설도 날조” 시측 “수목원 홍보용… 고증은 못했다”‘율곡 이이 선생’을 활용한 경기 파주시의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도를 넘고 있다. 고증을 거치지 않다 보니 주한미군이 훈련 중 대소변을 보던 야외 화장실을 율곡 선생과 연관지어 ‘대학입시’에 효험이 있는 ‘장원굴(壯元窟)’로 수년 전부터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2015년 수목원 개장하며 탐방로 조성 18일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주민들에 따르면 파주시는 2015년까지 8년 공사 끝에 율곡리 95의 7 일대 율곡산 34㏊에 율곡수목원을 개장했다. 국비를 포함해 100억원을 들여 2층 규모의 생태학습장, 유아숲체험원, 전망대, 탐방로 등을 조성했다. 이후 매년 6월 ‘율곡 이이 구도장원길 걷기’ 행사를 열고 있다. 파주시와 경기관광공사는 지난 6월 걷기 행사를 준비하면서 “율곡수목원에서 열리는 구도장원길 걷기 행사는 학생 및 가족,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둘레길 코스로 구성되며 ‘굴을 통과하면 과거시험에 합격한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 ‘구도장원굴’이 있어 시험 합격 기원을 빌어보는 재미도 더해진다. ‘건강과 시험 합격이 한 번에 내 품으로 들어오는 구도장원길’ 신청은 6월 8일까지 파주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홈페이지(pajuecoroad.com)에서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구도장원은 근처 마을이 고향인 율곡 이이가 1548년 12세 때 진사과 초시 장원으로 합격한 후 20~28세 사이 모두 9번 장원해 ‘구도장원공’이라 불린 데 따른 것이다. 파주시는 어머니 신사임당이 3~4개의 바위 틈새로 난 굴에서 아들의 과거급제를 위해 치성을 드렸다며 둘레길 걷기 행사를 준비하면서 구도장원굴을 만들어 냈다. ●파주시 “장원굴 통과하면 시험 합격”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은 율곡산과 장원굴은 율곡 선생과 전혀 관계없다고 주장한다. 파주 임진강 일대 역사적 사실 등을 학술지 등에 꾸준히 게재해온 김현국(55·IT개발기획)씨는 “굴을 통과하면 시험에 붙게 해준다는 전설이 있다는 율곡의 장원굴은 실제나 전설상으로도 율곡과 관련 없다”고 강조했다. 율곡리는 1리부터 4리까지 있다. 율곡의 덕수 이씨 본가가 있던 곳은 지금의 화석정 정자가 있는 율곡3리이다. 율곡수목원과 장원굴이 있는 마을은 율곡1리이다. 결국 화석정이 있는 율곡3리가 과거 ‘율곡동’ 혹은 ‘화석동’으로 불리던 율곡 선생의 덕수 이씨 본가 마을이며, 구도장원길이 있는 마을은 율곡의 화석정 마을 옆 동네일 뿐 율곡 선생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기록이 없다. 더욱이 장원굴로 부르는 곳은 한국전쟁 후 1970년대까지 미군들이 야외 화장실로 쓰던 곳이라는 증언도 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뒷산은 30여년 전만 해도 미군들이 탱크 등을 동원해 훈련하던 곳”이라면서 “장원굴이라 불리는 구멍을 통과하면 작고 평평한 공간이 있는데 미군들이 용변 보던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실제 바위 뒤는 잘 보이지 않는다. 파주 지역 역사에 밝은 한 인사는 “옛 문헌 등을 찾아본 결과 율곡은 과거 율곡3리 화석정 마을의 본가와 한양을 오갈 때 1번 국도인 의주대로길을 걸어다니거나 한양에서 배를 타고 내려오다 임진나루 또는 화석정 아래에서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임진강 습지에서 파평산 방향의 구도장원 둘레길은 한양을 오가는 길과는 정반대 방향이 된다.● 파주 향토문화연구소 “재조사 방안 추진” 이에 대해 파주시 관계자는 “구도장원길은 고증을 토대로 만든 게 아니라 율곡수목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고증을 통한 수정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주문화원 산하 차문성 파주향토문화연구소 소장은 “파주에서 활동하는 문화유산 해설사들도 구도장원길 등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어 차 소장은 “율곡 이이 선생의 구도장원길은 그쪽(율곡수목원) 방향이 아니라 의주대로 쪽이 맞을 것”이라면서 “재조사하는 방안을 추진해보겠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수능 대박’ 난다는 파주 장원굴, 알고보니 주한미군 화장실

    ‘수능 대박’ 난다는 파주 장원굴, 알고보니 주한미군 화장실

    ‘율곡 이이 선생’을 활용한 경기 파주시의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도를 넘고 있다. 고증을 거치지 않다 보니 주한미군이 훈련 중 대소변을 보던 야외 화장실을 율곡 선생과 연관지어 ‘대학입시’에 효험이 있는 ‘장원굴(壯元窟)’로 수년 전부터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주시 “율곡산 굴 통과하면 시험 합격” 18일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주민들에 따르면 파주시는 2015년까지 8년 공사 끝에 율곡리 95의 7 일대 율곡산 34㏊에 율곡수목원을 개장했다. 국비를 포함해 100억원을 들여 2층 규모의 생태학습장, 유아숲체험원, 전망대, 탐방로 등을 조성했다. 이후 매년 6월 ‘율곡 이이 구도장원길 걷기’ 행사를 열고 있다. 파주시와 경기관광공사는 지난 6월 걷기 행사를 준비하면서 “율곡수목원에서 열리는 구도장원길 걷기 행사는 학생 및 가족,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둘레길 코스로 구성되며 ‘굴을 통과하면 과거시험에 합격한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 ‘구도장원굴’이 있어 시험 합격 기원을 빌어보는 재미도 더해진다. ‘건강과 시험 합격이 한 번에 내 품으로 들어오는 구도장원길’ 신청은 6월 8일까지 파주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홈페이지(pajuecoroad.com)에서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구도장원은 근처 마을이 고향인 율곡 이이가 1548년 12세 때 진사과 초시 장원으로 합격한 후 20~28세 사이 모두 9번 장원해 ‘구도장원공’이라 불린 데 따른 것이다. 파주시는 어머니 신사임당이 3~4개의 바위 틈새로 난 굴에서 아들의 과거급제를 위해 치성을 드렸다며 둘레길 걷기 행사를 준비하면서 구도장원굴을 만들어 냈다.●“구도장원길 이야기는 엉터리 날조”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은 율곡산과 장원굴은 율곡 선생과 전혀 관계없다고 주장한다. 파주 임진강 일대 역사적 사실 등을 학술지 등에 꾸준히 게재해온 김현국(55·IT개발기획)씨는 “굴을 통과하면 시험에 붙게 해준다는 전설이 있다는 율곡의 장원굴은 실제나 전설상으로도 율곡과 관련 없다”고 강조했다. 율곡리는 1리부터 4리까지 있다. 율곡의 덕수 이씨 본가가 있던 곳은 지금의 화석정 정자가 있는 율곡3리이다. 율곡수목원과 장원굴이 있는 마을은 율곡1리이다. 결국 화석정이 있는 율곡3리가 과거 ‘율곡동’ 혹은 ‘화석동’으로 불리던 율곡 선생의 덕수 이씨 본가 마을이며, 구도장원길이 있는 마을은 율곡의 화석정 마을 옆 동네일 뿐 율곡 선생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기록이 없다. 더욱이 장원굴로 부르는 곳은 한국전쟁 후 1970년대까지 미군들이 야외 화장실로 쓰던 곳이라는 증언도 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뒷산은 30여년 전만 해도 미군들이 탱크 등을 동원해 훈련하던 곳”이라면서 “장원굴이라 불리는 구멍을 통과하면 작고 평평한 공간이 있는데 미군들이 용변 보던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실제 바위 뒤는 잘 보이지 않는다.●“과거시험 보러 가던 길은 반대 길”  파주 지역 역사에 밝은 한 인사는 “옛 문헌 등을 찾아본 결과 율곡은 과거 율곡3리 화석정 마을의 본가와 한양을 오갈 때 1번 국도인 의주대로길을 걸어다니거나 한양에서 배를 타고 내려오다 임진나루 또는 화석정 아래에서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임진강 습지에서 파평산 방향의 구도장원 둘레길은 한양을 오가는 길과는 정반대 방향이 된다. ●파주시 “정확한 고증 못해” 이에 대해 파주시 관계자는 “구도장원길은 고증을 토대로 만든 게 아니라 율곡수목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고증을 통한 수정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주문화원 산하 차문성 파주향토문화연구소 소장은 “파주에서 활동하는 문화유산 해설사들도 구도장원길 등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어 차 소장은 “율곡 이이 선생의 구도장원길은 그쪽(율곡수목원) 방향이 아니라 의주대로 쪽이 맞을 것”이라면서 “재조사하는 방안을 추진해보겠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경기도-북측 교류협력사업 탄력...이재명지사 방북 가시화

    경기도-북측 교류협력사업 탄력...이재명지사 방북 가시화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를 방문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 등 북한 대표단 5명이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17일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북한 대표단은 14일 밤 입국해 고양 엠블호텔에 여장을 푼 뒤 15일 판교테크노밸리와 경기도농업기술원을 참관하고 16일에는 엠블호텔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사흘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방문은 남측 지자체와 북측 간 상호교류협력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이재명 지사는 15일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지원허브서 진행된 첫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께서 큰길을 만들었는데 그 길을 단단히 다져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건 우리의 몫”이라며 “중앙정부에서는 큰 방향을 잡지만 잔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리 부위원장은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고 화답했다. 이에 따라 도와 북측이 그동안 추진해 온 옥류관 경기도 유치, 농림복합형 농장(스마트팜) 시범 공동 운영, 문화·스포츠 교류 활성화, 축산·양묘 등 공동사업, 임진강 유역 남북 공동관리, 남북 전통음식 교류대전 개최 등 교류협력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판교테크노밸리 방문은 2007년 기아자동차공장 이후 11년 만에 북측 인사들이 남측 산업시설을 찾은 것인데 북한 대표단은 공동 신도시 건설, 남북 공동산업단지 조성 등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동두천, 파주, 김포 등 접경지역에 경기도와 북측이 협력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판교테크노밸리 같은 것들을 그 안에 녹이면 좋을 것 같다”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북한 대표단이 이 지사에게 초청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 지사의 방북도 가시화되고 있다. 15일 대면식에서 북한 대표단의 송명철 아태위 부실장은 ‘옥류관 냉면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는 이 지사의 말에 “(리종혁) 선생님께서 기회를 한번 만들어달라”고 제안했고, 리 부위원장은 “옥류관 분점이 경기도에 개관하기 전에 한번 (북측에) 왔다 갔으면 좋겠다”며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이 지사의 방북이 이뤄질 경우 남측 지자체와 북측 간 본격적인 교류협력시대의 서막을 여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으로 도는 전망했다. 이 지사는 “준비가 되어 있다. 이왕이면 좀 더 구체적으로 할 일을 준비해서 가는 것이 좋겠다”라며 교류협력사업의 적극 추진 의사를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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