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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본 받자” 중국도 「YS공부」

    ◎광명일보 등 언론 문민정부에 지대한 관심/“청와대 국수점심은 검약정신 귀감/철저한 의지 공산당보다 더하더라” 「신한국건설」을 내세우며 추진중인 김영삼대통령의 갖가지 개혁운동은 중국대륙에서도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얼마전까지만해도 한국과 관련한 화제는 『경제발전을 따라 배우자』는 정도에 그쳐왔으나 요즘에는 김대통령의 『개혁정책,검약정신도 본받을 만하다』는등 신한국 건설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사회주의국가들의 신문이 다른 나라,그것도 라이벌인 특정 자본주의 국가를 추켜세운 예는 극히 드물다.중국만해도 당기관지 인민일보등 주요 언론이 김대통령의 개혁운동을 자세히 보도하거나 칭찬해주지는 않는다.그러나 간부들만이 읽는 내부 「참고자료」지는 홍콩신문들을 인용,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성해임,국회의원 구속,재산공개 파문,부정부패 추방운동등 한국의 변화하는 모습을 조심스레 알려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극히 이례적으로 지난4월 광명일보와 북경일보가 김대통령의 개혁을본받자는 내용의 칼럼을 실어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주로 이론문제를 다루는 광명일보에 『국수 한그릇과 1만5천달러』라는 제목으로 실린 한 칼럼은 몇년내로 1인당 국민소득을 1만5천달러로 올리겠다고 선언한 김대통령이 청와대에다 장관들을 초대해놓고는 국수 한사발씩 대접했다는 일전의 보도를 상기시켰다.그러면서 『지금도 국민소득 6천달러가 넘는 한국의 대통령이 이렇듯 검소한데 아직도 몇백달러수준인 우리가 날마다 차려먹고 낭비하는 돈은 얼마인가?』 『우리도 느끼고 따라배워야 할 바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북경일보도 북경시 한 민주당파 책임자가 이와 비슷한 내용을 주장한 글을 소개했다. 「국수 한그릇…」얘기는 지난 3월초 신화통신이 김대통령의 취임초 개혁조치들을 보도하는 가운데 처음 중국독자들에게 소개됐던 것으로,배가 부른 뒤에도 계속해서 상이 넘치도록 요리가 나와야 『오늘 대접 잘 받았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그래선지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웬만한 식자층에서는 마치 유행어처럼 이 이야기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고 한 북경 소식통이 전했다. 특이한 사실은 중국내 개혁개방의 창구격인 심천시가 김대통령의 개혁조치들을 내부 학습자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북경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심수시 당국이 국무원의 비준까지 얻어 한국의 신정부 개혁운동을 종합,그 내용을 교재로 만들어 심천시 기율감찰부문 관계자 학습용 교재로 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이 소식통은 이어 『이는 자본주의식 개혁개방을 계속해온 심천에서 한국과 비슷한 유형의 비리들이 일어나기 때문인것 같다』고 풀이했다. 최근에 와서는 중국 잡지들도 김대통령의 개혁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심층보도를 하고 있다.계간 「국제문제연구」는 최신판에서 『김영삼 한국대통령 취임과 조선반도정세』라는 제목으로 6페이지에 걸쳐 대통령 선거과정부터 취임후 취한 각종개혁 조치,경제부활운동,대외정책,한반도정세에 미칠 영향 등을 자세히 분석했다.이 글은 『한국사회는 지난 수십년간의 군사독재 또는 군인집권의 음영을 벗어나 첫번째로 직접민선의 문관정권을 출현시켰다』면서 『이는 한국의 민주정치가 하나의 새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말해준다』고 논평했다.이밖에도 「국제전망」이란 격주간지가 『김영삼의 백일계획』을 소개했고 월간 「정당과 당대세계」지도 『한국문민대통령의 내외정책』을 제목으로 한 글에서 한국의 외교정책이 미­일등과의 관계를 기초로한 바탕위에서 전방위외교를 추진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이 김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중국 보도매체들이 자주 화제로 삼고 있는데 대해 한 조선족동포는 『과거 중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부시 미대통령이나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에 대해서도 이처럼 자주 긍정적 입장에서 보도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이는 한국의 변화에 그만큼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뿐 아니라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면서 중국의 언론도 많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의 개혁에 대해 중국의 조선족동포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중국에서는 빈틈없이 철두철미하다는 뜻으로 『공산당 같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최근 서울을 다녀온 동포들은 농반진반으로 김대통령의 개혁의지에 대해 『공산당보다 더하더라』는 말을 자주한다.그러면서 이처럼 철저하게 개혁하다보면 불법으로 한국에서 취업중인 동포들에게도 불호령이 내려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김대통령의 개혁의지는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에 의해서도 널리 전파되고 있다.한국인들은 자기가 만나는 중국인들에게 너무 자랑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크게 감명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예를들어 중국에 처음으로 정기고속버스를 운행하기 위해 한중합자회사를 설립중인 경한고속의 임종태부사장은 합작선인 북경일보 관계자들로부터 김대통령의 개혁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내 평생의 한이 풀린듯한 느낌이다.이제 국가에대해 더이상 바랄게 없다』는 말을 해 주위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 석탄일 1천2백45명 가석방/정부/대우조선 분규 근로자 6명 포함

    법무부는 26일 불기 2537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공안사범 38명과 일반형사범 1천53명 및 모범소년원생 1백54명등 모두 1천2백45명을 27일 상오9시를 기해 특별가석방 또는 가퇴원 조치한다고 발표했다. 가석방되는 공안사범은 「임수경양 밀입북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전「전대협」의장 임종석군(27)·전정책실장 박종열군(27)등 각종 시국사건관련 대학생 28명과 남파간첩으로 무기형을 선고받아 복역중인 천광섭씨(70)등 간첩사건 관련자 4명,대우조선 노사분규 주동자 신유식씨(31)등 근로자 6명 등이다. 그러나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씨(29)와 「평양축전」과 관련,복역중인 전「전대협」평축준비위원장 전문환군(26)등은 형기의 3분의2이상 지나지 않아 석방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일반형사범 가운데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15년이상 장기복역한 모범수 4명과 검정고시 합격자 25명,기능대회 입상자 1백77명,외부통근작업에 나갔던 2백47명 등이 포함돼 있다.
  • 작가 하일지/경마장 시리즈 5년만에 마감/다섯번째 「…생긴일」완간

    ◎전작차원의 새 평가 기대/“90년대 문학사적 사건” 평가도 경마장의 작가 하일지는 과연 경마장을 찾았는가.80년대가 저물어가던 89년 12월 「경마장 가는 길」을 내놓으면서 90년대 우리 문단에 뜨거운 경마장논쟁을 일으킨 하일지씨(38·본명 임종주)가 최근 발간한 「경마장에서 생긴 일」을 끝으로 5년에 걸친 자신의 경마장시절을 마감하겠다고 선언했다. 「경마장시절」이란 지금껏 단행본으로 발표된 5권의 「경마장…」시리즈 또는 「경마장…」연작을 한권의 소설로 봐달라는 작가의 주문이다.이 소설을 계속해서 펴내온 민음사에서도 올가을쯤 다섯권의 개별작품을 「경마장시절」이라는 제목에다,소제목으로 현재의 제명을 살린 장편소설로 새로 묶어낼 계획이다.이에따라 90년대초 독서계를 달구었던 「경마장…」에 대한 논란은 각론의 평이 아닌 전체적인 평가로 논쟁의 장을 옮기게 됐다. 작가는 『「경마장…」이 아닌 다른 제목으로 글을 써보려고 해도 경마장이 들어가지 않으면 상상력의 촉발이 되지 않는다』고 고백할만큼 경마장에 대한 비유와 그 정체밝히기에 집착해 왔다.「경마장 가는 길」을 시작으로 「경마장은 네거리에서…」(91년7월),「경마장을 위하여」(91년12월),「경마장의 오리나무」(92년9월)등 일련의 경마장탐구를 통해 주변부를 끊임없이 헤매인 끝에 이번 완결편에서 마침내 경마장에 직접 들어가 그 실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4권의 「경마장…」이 정보화사회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삶의 윤곽으로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경마장을 정처없이 찾아가는 과정을 다뤘다면 「…생긴 일」은 주인공이 직접 경마장에서 겪은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경마장의 실체를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다.그러나 경마장은 각질화한 현대인의 의식속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메울 수 없는 깊은 늪이라는 사실만이 다시한번 확인될 뿐이다. 즉 경마장은 실존하는 현실세계가 아니다.조직화되고 관료화된 사회의 작은 모형으로 작가가 축조한 뜨거운 상징일뿐이다.억압속에서 상상되어지는 그런 비상구이다.카프카의 「성」이기도 하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일 수도 있다.작가자신은 『경마장은 언어이전의 에로스의 세계』라는 문학평론가 김윤식씨의 해석을 달가워 한다. 한국문학의 이단아이거나 또는 한국문학이 걸어 가야할 새로운 소설형식의 개척자중 하나일 수 밖에 없는 그의 소설에 대해 작가 자신은 「하일지식 리얼리즘」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경마장…」은 60년대의 「무진기행」(김승옥),70년대의 「삼포가는 길」(황석영),80년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에 이은 90년대 문학사적 사건이라는 찬란한 평가를 받았다.이와함께 무분별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에 따른 시대의 퇴폐성을 조장할 위험이 있는 생경한 박래품 냄새가 난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그래서 이번 「경마장시절」의 마감에 따른 전작차원의 평가결과가 더욱 궁금해 지고 있다.
  • 석탄일 30여명 가석방/임종철씨 등 시국사범 포함

    법무부는 24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임수경양방북사건」으로 복역중인 전 「전대협」의장 임종석씨(27·전 한양대총학생회장)와 정책실장 박종열씨(27)등 공안시국사범 30여명을 특별가석방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씨(29)와 「평양축전」과 관련,복역중인 「전대협」전 평축준비위원장 전문환씨(26·전서강대총학생회장)등은 석방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관계자는 『형기의 3분의2를 복역하지않은 시국·공안사범이라 하더라도 법정가석방대상인 형기의 3분의1이상을 복역하고 개전의 정이 있는 경우 신한국창조에 동참할 기회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특별가석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면서 『최종대상자는 26일 결정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에센스의 의미/유혜자 수필가(굄돌)

    직장근처에 있는 한식집에서 냉면을 먹다가 절반쯤 남기고 나왔다.동료들이 맛있게 먹는데도 ㄱ면옥의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이 생각나서였다.ㄱ면옥도 지금은,돌아간 주인의 아들이 국물 만드는 방법을 이어받아 시설과 서비스가 현대화된 것에 비해 국물맛은 아버지때 보다 못하지만 다른 집과는 다른 독특한 맛이 있다. 일류요리사들이 후배에게 음식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줄 때,에센스에 해당하는 한가지만은 비밀로 하여 자기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그 옛날에도 빨래를 잘하던 사람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임종 직전에야 「빠드득」이라는 한마디만 가르쳐주고 숨을 거뒀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 흔히 그것을 독점욕과 편협한 처사라고 비판할때 나도 깊은 생각없이 동조했었다.그러나 요즘엔 재고해 보게 된다.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아들이나 후배인데 그 비법의 에센스를 전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적인 예술가에게로 관심을 돌려보면,바이올린연주의 귀재라는 파가니니(17 82 ∼18 40)의 마술같은 기교도 그 비법을 공개하기를 꺼려 단 하나의 제자인 시보리에게도 잘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그래서 기막힌 신기(신기)의 연주가 파가니니 당대에 끝나버렸다는 후세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냉면국물만 해도 ㄱ면옥의 옛주인은 양지머리 고기를 고아서 깊은 맛이 우러나면서도 뒷맛이 담백하게 하기까지 오랜 세월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불의 온도와 시간조절,맛깔나는 국물의 농도를 지키려고 가마솥곁을 밤새 지켜본 아버지의 정성을 그 아들이 완전하게 이어받았을까. 파가니니도 근년에 밝혀진 자료에 의하여 전설적인 인물평가가 수정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엄격하고도 고된 훈련을 받았다는 것.하루 10여시간 정해진 연습량을 잘 지키지 않으면 밥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이는 신기를 하늘에서 받은듯 그는 평소에 연습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설을 뒤엎는 것이다. 음식만드는 데나 예술에나 타고난 재능과 함께 숙련으로 이뤄지는 손맛이 어우러져야 걸작이 된다는 것은 진부한 표현이리라.거기에 천재적인 창의력이 가미되면 모방할 수 없는 것,에센스는 결국 창의력인 셈이다.
  • 친일척결(외언내언)

    「조국광복을 지향하여 거족적으로 발양된 위대한 3·1정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주는 3·1문화상 수상자 가운데는 엉뚱하게도 친일인사들이 포함돼 있다.일제의 대동아전쟁을 찬양하는 글 「동방의 여인들」과 학도병 출전을 격려하는 시「내 어머니 한말씀에」등을 쓴 여류시인 ㅁ씨를 비롯,문학평론가 ㅈ씨 ㅂ씨,소설가 ㅊ씨등 문인들과 동양화가 ㄱ씨,서양화가 ㄱ씨등이 그들이다.이 가운데 ㅂ씨와 ㅁ씨는 이 상의 심사위원까지 역임했고 다른 심사위원들 중에서도 사학자 ㅇ씨,야당 총재를 지낸 ㅇ씨,국립대학총장을 역임한 ㅇ씨,명문사학 총장을 지낸 ㅂ씨등이 친일인사로 분류된다. 우리사회의 친일 청산이 얼마나 이루어지지 않았는가를 보여주는 기막힌 자료는 또 있다.48년 제헌국회에도 친일인사가 10명(4.8%)이나 있었고 50년 2대 국회엔 20명(9.2%),58년 4대 국회엔 26명(10.5%)으로 더욱 늘어났다.그런가 하면 자유당때 장관을 역임한 사람 96명 가운데 34%인 33명이 친일인사였고 허정 과도내각때는 그 비율이 무려 60%에 달했다.경제계는 더욱높아 55∼65%에 이른다.평생을 친일문제 연구에 바친 고 임종국씨가 밝혀낸 자료다. 이러하니 정부가 포상한 독립유공자 명단에 친일인사가 포함되고 독립기념관에 그들에 관련된 자료가 전시돼도 새삼 놀랄 일이 못되는 것이다.보훈처는 이들에 대한 재심사를 실시하여 친일행위가 확인될 경우 서훈을 취소하기로 했으며 독립기념관도 관련전시물의 철거를 검토하고 있다한다.늦었지만 잘한 결정이다. 기회주의 출세주의등 왜곡되고 뒤틀린 우리사회의 부정적 가치관은 친일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크게 기인한다.정통성을 지닌 정부만이 친일청산에 나설수 있다.문민정부의 개혁과제로 친일 청산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반민족연 김봉우소장 「친일파 99인」 3권 완간(인터뷰)

    ◎“친일인사에 대한 종합 심판서죠”/총독부·경찰서 자료 토대… 정확도 자신 『역사상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난뒤 반역자를 처단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이처럼 사회 전반에 기강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친일파에 대한 심판서라고 할수 있습니다』 일제하 분야별 주요 친일인사에 대한 친일이력서라고 할수 있는 「친일파 99인」 전3권(돌베게간)을 최근 완간한 반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46)은 『친일 인사에 대한 최초의 심판서가 이제서야 처음 나온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책은 분명 민족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 결과입니다.그러나 자기 부정성에 대한 연구는 자기 사랑과 자기 긍정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당연한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일파 99인」은 제목 그대로 일제하의 각계 인사 99명에 대한 친일 기록이다.정치와 경제,사회·문화 등 3권으로 묶여진 이 책에는 이완용과 송병준,박영효에서 부터 이능화,김활란,황신덕,모윤숙,현제명에 이르기까지 각계인사들의 친일기록이 담겨있다.이 책은 또 박흥식과 김기창 등 아직 생존하고 있는 인사들의 친일기록까지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연구소의 목표는 사실 「친일 인명사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2만5천명에 달하는 친일인사의 기록을 사전으로 남긴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지요.그래서 사전을 만들기 위한 예비작업을 겸해 사전을 만드는데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한다는 목적에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19 91년2월 발족됐다.「친일 인명사전」역시 임선생이 당초 소규모로 구상했던 것을 연구소가 발족된뒤 의욕적으로 범위를 크게 넓힌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위해 처음에는 친일인사 2천명을 추렸지요.다시 2백명을 고른뒤 다시 종합적인 점검을 거쳐 마지막으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친일인사 99명을 골라냈습니다.99명을 골랐다는데 대해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미완의 작업을 뜻한다고나 할까요.1백명을 골랐다면 친일인사선별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됐다는 느낌을 줄수 있으니까요』 이 책이 발간된뒤 책에 실린사람들의 후손으로 부터 어느 정도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연구소측이 책의 내용의 정확도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생존하고 있는 인사들로 부터는 아무런 반발이 없었다는데 있다고 했다.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내용은 개인적인 진술이나 소문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나 경찰서 등 관청에서 발간한 자료를 기초로 했기 때문이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책의 완간에 이어 이미 「친일 인명사전」과 「친일파 총서」를 펴내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이 작업은 과거에 있었던 친일인사 규명작업에 대한 공포와 가능성에 대한 회의,시간적으로 너무 늦지않았느냐는 역사인식에 대한 무지를 극복해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그래야 민족의 자주성이 회복되고 주체성도 비로소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김소장은 「친일파 99인」이 많이 팔려 앞으로의 작업에 국민적 격려가 되고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웃었다.
  • 중장이상 40명… 시종 굳은 표정/전군지휘관회의 이모저모

    ◎2시간50분간 줄독 자숙의 분위기 역연/권 장관 “여기서 끝내면 상처만… 고통참자” ○…군인사비리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30일 하오 국방부 제1회의실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는 침통한 분위기에서 2시간50여분동안 진행.회의시작전에 도착한 참석자들은 인사비리파장이 커서인지 주위사람들과 간단히 악수만 하고 굳은 표정으로 착석,사태의 심각성을 반영. 전군의 군단장급(중장)이상 주요 지휘관 40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인사비리의 파장을 예의주시하면서 자유의견개진을 통해 나름대로 사후대책을 마련하느라 노력. ○…회의시작전 5분여 동안 사진기자들의 사진촬영을 위해 회의장이 개방됐는데 권령해국방부장관은 딱딱한 분위기를 다소 풀어보려는 듯 몇몇 지휘관들에게 안부를 묻는 모습이었으나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다. 권장관은 함덕선11군단장과 김종배3군단장등에게는 『오랜만이요.아침에 오셨느냐 뭘타고 오셨느냐』고 말을 건넨뒤 지휘관이 작전활동으로 대리참석한 한 부사령관에게는 『회의도 좋지만 작전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되겠죠』라고 인사. ○…권장관은 훈시를 통해 『오늘 우리는 우리 군의 모습과 진로에 역사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이렇게 모였다』면서 『이 자리는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 전우를 비판하거나 자잘못을 따지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고 강조.권장관은 회의 시작에 앞서 『최근의 사태가 군비리 등의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면서 『이 기회에 기탄없는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주문. ○…부하 장성들이 인사비리 연루자로 구속된 김철우해군총장과 이양호공군총장,임종린해병대사령관은 다른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면서도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아 해군과 공군의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 참석자들은 권장관의 의견개진 주문에 따라 앉은 순서대로 한사람씩 발언에 나섰는데 최근의 사태를 겸허히 받아들여 군이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국방부 간부들은 『언론의 지적을 인정해야 하며 지금으로서는 통제할 수도 없다』면서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보여줄 것은 그대로 보여줘 하루빨리 이번 사태를 마무리,심기일전의 자세로 새롭게 시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 이에 덧붙여 권장관은 『최근 「율곡사업」이 하루 아침에 그렇게 까발려져도 되느냐… 장관은 뭘하고 있느냐』는 예비역 군 선배들로부터의 질타성 전화가 많이 걸려 왔었다고 소개하기도. ○…회의시작 5분전쯤 도착한 김재창연합사부사령관은 취재기자들에게 최근 군비리사건과 관련,『잘 다듬어서 보도해달라』며 의미있는 주문을 하기도. 김동진육군참모총장도 『잘 부탁한다』며 이례적으로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도 해 주요 지휘관들이 언론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권장관은 이날 회의 막바지에 훈시를 통해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선배 동료 후배 전우들이 인사비리와 관련,구속이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이 시간에도 접하고 있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고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런 착잡한 심정으로 지낼수는 없으며 무언가 새로운 다짐으로 새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 권장관은 『최근 「군복입기가 부끄럽다」「선배들이 원망스럽다」「왜 극소수 사람들의 문제로 군 전체의 명예와 사기를 짓밟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어온 줄 안다』면서 『그러나 이정도 선에서 그만해야 한다고들 생각할 때는 오히려 상처만 남기게 될 것』이라며 당장의 고통은 인내해줄 것을 호소.
  • 총기난동 8명 문책/경찰청

    경찰청은 21일 임채성일병 총기난동사건과 관련,지휘책임을 물어 여관구 서울경찰청장을 서면경고하는등 모두 8명에 대해 경고·징계조치했다. 경찰청은 서울경찰청 경비2과장 이재운총경과 동대문경찰서 정동식교통계장(당시 상황부실장)등 2명을 직위해제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서울 경찰청 서재성 경감(당시 상황실장)과 동대문경찰서 임종팔 수사과장등 2명은 중징계및 징계위회부,동대문경찰서장 이병곤총경과 철원경찰서장 민승기총경은 경고조치했다.
  • 소장급 후속인사

    ◎교육사참모장 최승우/육본인사 참모부장 임종섭/국방부인사국장 정연우/전력계획관 길형보/3사관학교장 오형근/제병협력동교육본부장 전영진 육군은 17일 최승우 육본 인사참모부장(소장·육사21기)을 교육사참모장으로 전보시키고 후임에 임종섭7사단장(육사22기)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지난 15일 발표된 중장및 소장 진급자들에 대한 군단·사단장 보직인사를 다음주 초에 단행할 방침이다. 이번 육본 인사참모부장 교체는 임기만료에 따른 것이나 최소장이 「하나회」의 핵심멤버이며 국방부 전령진인사국장(소장·육사21기)의 교체등을 포함,「하나회」배제를 보다 구체화한 대목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국방부는 전인사국장을 제병협동교육본부장으로 전보시키고 후임에 정연우소장(갑종 157기),전력계획관에 길형보소장(육사22기),3사관학교장에 오형근소장(육사22기)을 각각 임명했다.
  • 체임문제로 다투다 주방장이 주인살해

    서울용산경찰서는 27일 서광호씨(30·무직·전과2범·종로구 사직동18)를 살인 및 살인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씨는 이날 하오3시40분쯤 자신이 일하던 용산구 보광동 A중국음식점에서 밀린 임금문제로 다투다 이 음식점 종업원 임종호씨(27)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고 주인 정모씨(38·여)에게도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서씨는 지난 17일부터 한달에 1백10만원을 받기로 하고 주방장으로 일해오다 10일만인 26일 그만둔뒤 그동안 일한 임금 30만원을 받으려다 정씨로부터 『영업에 방해가 되니 나가달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 “위기돌파 방법은 조기총선뿐”/고르비/긴장속의 모스크바 표정

    ◎취재 미 TV팀 반옐친 시위군중에 봉변/CIS참모총장,중국방문 갑자기 취소 ○서방언론들 긴장 ○…러시아 사태를 취재하던 미TV팀이 21일(현지 시각) 모스크바에서 반옐친시위를 벌이던 군중에게 카메라를 빼앗기는 등 봉변을 당해 서방 언론이 긴장. 당시 최고회의 건물 발코니에서 취재중이던 로이터 기자는 의사당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3천여 군중중 1백여명이 대열을 이탈해 근처에서 집회를 취재하던 미TV팀을 공격했다고 설명. 이들 시위대는 취재팀의 카메라를 빼앗고 더 이상 시위를 취재치 못하도록 방해한 것. ○…옐친지지시위 지원을 위해 유리 루지코프 모스크바시장이 요청한 확성기 차량이 운전사의 실수로 반옐친 집회장에 전달돼 사용되는 사태가 21일 발생. 러시아 RIA통신은 개혁파 인사인 루지코프 시장이 옐친지지시위에 사용할 목적으로 확성기 차량 2대를 긴급 지원토록 요청했는데 그만 운전사들이 잘못 알고 차를 반옐친지지 집회장으로 몰고간 것. ○…한시적인 비상통치를 선언함으로써 러시아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비장의 승부수를 던진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어미니 클라브디야 옐치나여사가 21일(현지시간)사망했다고 독립국가연합(CIS)중앙TV방송이 보도. 올해 85세의 클라브디야 옐치나 여사는 지난해 6월 심장발작을 일으킨뒤 심장병치료를 받아왔다. 옐친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예가테린부르크를 방문하곤 했는데 지난 20일 비상통치를 선언한 이후에는 한번도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옐친의 한 측근 보좌관은 『대통령이 매우 슬퍼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어머니의 임종당시 옐친은 모스크바 근교 「다차」(별장)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고 전했다. ○…옐친의 비상통치 선언을 「미친 짓」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은 이탈리아 국영라디오 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국민들이 원한다면 러시아를 위해 봉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고 나서 주목을 끌었다. 고르바초프는 이 회견에서 『상황이 더 악화되고,고르바초프가 모든 것을 제쳐놓고 다시한번 러시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국민들이 희망한다면,나는 나에게 맡겨진 의무를 수행할 태세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이탈리아의 ANSA통신이 국영라디오방송을 인용에 보도했다. 그는 현 위기국면을 돌파하는 방법은 「조기총선뿐」이라는 처방을 제시하고 『옐친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경제·재정·외교정책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내정간섭에 불과” ○…러시아 최고회의는 21일 서방 각국이 옐친을 지지하고 나선 대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했다. 최고회의는 이날 서방측의 발언에 대해 경악했으며 유감을 표시한다는 결의안을 찬성 1백37표·반대 9표로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전통적으로 민주주의국가로 간주된 많은 국가들이 옐친의 위헌적 조치를 지지한 것에 경악하고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히고 『이같은 입장은 노골적인 내정간섭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옐친의 조치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반응은 일부에서는 열광적인 지지와 반대로 표출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무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상통치가 선포된 이튿날인 21일 모스크바 시내 거리에서는 정치적인 긴장의 징조는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의 용무를 보거나 따뜻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 거리를 나선 모습이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폐루 대통령은 21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강행 결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촉구. 후지모리 대통령은 한 TV와 가진 회견에서 지난해 4월5일 의회를 해산한 자신과 대통령의 직할통치를 선언하고 오는 4월 국민투표 강행을 결정한 옐친 대통령사이에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옐친 대통령의 비상통치선언으로 러시아정정의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2) 비준문제에 관한 의회 토론이 『현재의 상황때문에』 무기한 연기됐다고 한 의회 관게자가 22일 전언. 의회 외교문제위원회 위원장은 START­2의 정치·군사적인 면에 관한 토론이 연기됐으며 새로운 토론 일정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 ○선진7국에 통보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야 최고회의 의장(대통령)은 21일 『옐친의 직할 통치선언으로 러시아가 혼란에 빠졌으며 내전으로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다』고 경고. 셰바르드나제는 그루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 그루지야가 러시아와 전투중인 것과 관련,그동안 모스크바측을 강력히 비난해온 그는 전날 고어 미부통령과 통화한 자리에서 옐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옐친이 직할 통치를 선언하기전 이를 서방선진 7개국(G­7)에 통보했다고 이탈리아 외무부가 21일 발표. 외무부는 성명에서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옐친의 포고령이 발표되기 전 모스크바 주재 G­7국 대사들을 불러 이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설명. ○…예프게니 샤포슈니코프 독립국가연합(CIS)참모총장은 옐친의 비상통치 선포에 뒤이어 21일로 예정됐던 중국 방문을 갑자기 취소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에 대해 CIS 군사령부는 샤포슈니코프의 방문 취소가 러시아 사태의 발전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논평하기를 거부했다.
  • 41,886명 대사면 단행/건국 최대규모

    ◎문익환·유원호·김철호씨 포함/새달 「전과기록 말소법」 제정/경미사범 5백만명도 혜택 정부는 6일 공안·시국사범과 일반사범등을 포함,모두 4만1천8백86명에 대해 대사면 조치를 단행했다. 이번 사면대상은 공안및 시국사범 5천8백23명과 일반형사범 3만6천63명에 이르러 건국이래 사상 최대규모이다. 정부는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 주재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대사면을 의결했다. 출소자들은 이날 상오10시부터 전국 35개 교도소에서 일제히 출소했다. 정부는 또 이번 대사면조치와 함께 향토예비군법위반등의 혐의로 벌금이하의 형을 받거나 기소유예·무혐의 처리된 5백여만명에 대해서도 오는 4월 관계법규를 고쳐 컴튜터기록을 빠른 시일내에 삭제,전과기록을 말소키로 했다. 신건법무부차관은 이날 『국민 대화합과 획기적인 민주발전의 계기를 마련키 위해 은전 대상폭을 과감히 확대했으나 예외조치는 가급적 축소했다』고 밝히고 『특히 공안및 시국관련사범에 대해서는 갈등시대의 반목청산이라는 차원에서 죄질이 중하더라도 과감히 석방했다』고 설명했다. 사면대상자들을 유형별로 보면 ▲잔형면제 3천21명 ▲형선고 실효 3만1천1백26명 ▲감형 1천76명 ▲복권 2천9백87명 ▲사면및 복권 2천7백3명 ▲형집행정지 6명 ▲가석방·가퇴원 9백67명 등이다. 이에따라 이날 실제 출소한 사람은 일반형사범 1천9백88명과 공안사범 1백44명등 모두 2천1백32명이며,유형별로는 ▲잔형면제 1천1백59명 ▲형집행정지 6명 ▲가석방 7백63명 ▲가퇴원 2백4명이다. 이번 조치로 밀입북사건관련 문익환목사(75)와 유원호씨(63),전 명성그룹회장 김철호씨(55)등이 특별가석방됐고 ▲박문재씨등 70세이상 장기복역 좌익수 6명 ▲부산 동의대 방화사건관련자 10명 ▲정원식총리 폭행관련자 7명 ▲「전교조」관련 이부영·이수호씨 ▲「전민련」공동의장 한상렬씨 ▲한미문제연구소결성사건 관련 김현장씨등 1백38명이 특별가석방됐다. 또 밀입북기도사건 관련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한겨레신문 고문 이영희씨,시인 고은씨,홍근수목사,안동수 전KBS노조위원장등 KBS사태 관련자 11명등 이미 풀려난 공안및 시국사범 5천6백여명에 대해서는 복권조치가 취해졌다. 아울러 성폭행한 의붓아버지 살해혐의로 집행유예와 함께 직권보석으로 풀려난 김보은양은 특별복권됐고 함께 구속돼 5년형을 받은 김진관씨(22)는 특별감형 됐다. 또한 5공비리 청문회때 증언거부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 사회정화위원장 김만기씨(63)는 특별사면및 특별복권됐다. 그러나 임수경양 밀입북조종혐의로 복역중인 임종석·박종렬·전문환씨등 「전대협」간부들과,밀입북사건의 서경원 전평민당의원,「사노맹」관련자,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씨등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됐다. 또 이재근 전평민당의원등 뇌물외유사건및 수서사건관련자,박종철고문치사사건 관련자,김근태고문사건 관련자,대학입시부정사건 관련자등과 조직폭력배등 민생치안사범도 제외됐다. 이밖에 서석재 전민자당의원등 선거사범도 제외됐다.정부는 이와함께 형기3년이하의 징역,금고형의 경우 10년으로 된 형실효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고 벌금형의 경우 형집행종료 또는 형집행면제후 3년으로 된 실효기간을 벌금선고후 무조건3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 「미전향」 6명 등 공안범도 대상/「3·6대사면」 누가 풀려났나

    ◎총리폭행 7명·이수호·이부영씨/잔형면제/이영희­고은·김남주­홍근수씨/사면·복권 6일 단행된 대사면 조치는 해방이후 69번째로 단행된 사면으로 혜택을 입은 4만1천8백86명은 규모면에서도 13대 대통령취임때의 7천2백34명이나 12대 3천2백30명에 비해 6∼12배에 이른다.지금까지 가장 많았던 62년 5·16 1주년기념 당시의 2만1천9백10명보다도 2배 가까운 사상 최대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밀입북사건의 문익환목사와 유원호씨를 포함,13대 대통령취임때 1천7백31명의 3배가 넘는 5천8백23명에 달하는 공안·시국사범에대해 대폭적인 은전을 베품으로써 묵은시대의 갈등과 반목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있다. 법무부는 공안·시국사범의 경우 원칙적으로 관련자 전원을 대상으로 사면해당 여부를 검토,반국가단체구성등 전형적인 반국가사범과 남파·월북간첩·극렬 폭력사범을 제외하고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는 방침아래 잔형집행면제,특별사면및 복권등의 조치를 취해 사회복귀의 기회를 주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문목사와 유씨를 비롯,김현장씨등 5명이 특별가석방됐고 복역중인 부산동의대사건 관련자 16명 가운데 10명이 석방되고 주동자급 6명은 감형혜택을 받았다. 또 정원식국무총리 폭행사건관련자 7명 전원과 「전교조」관련 이수호 이부영씨등도 잔형면제로 석방됐으며 「범민련 사건」의 홍근수·조용술씨,「한겨레신문 방북취재기도사건」의 이영희 한양대교수,「민족문학작가회의」사건의 고은씨,「남민전사건」의 김남주씨등이 사면·복권됐다. 70세이상의 미전향 장기복역수 6명을 형집행정지로 석방하고 재일교포간첩단사건 관련자 3명을 특별감형조치한 것은 일부 공안관계자와 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인도적 차원의 과감한 조처로 볼 수 있다. 이와함께 교통사고등 과실범과 향군법위반 등 경미한 행정법규위반사범으로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3만1천60명에 대해 국민기본권신장차원에서 대대적인 형선고실효 조치를 내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데 장애를 없앤것도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다. 한편 이번 대사면에 자신을 성폭행해 온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보은양(21)과 현재 징역5년형이 확정된 김양의 남자친구 김진관군(22)에게 각각 형선고실효와 나머지 형기를 절반으로 감형한 것은 정상을 참작해달라는 사회 각계의 탄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장영자 이철희사건과 함께 5공시절의 대표적인 대형 경제비리사건으로 징역15년을 받고 복역중인 김철호 전명성그룹회장을 특별가석방한 것은 오는 2000년 12월17일에 형기가 끝나지만 오랫동안 복역했고 이미 은전을 입은 장·이씨와의 형평을 감안한 조치라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전사회정화위원장 김만기씨는 5공비리 청문회에서의 증언거부등 범죄사실이 개인적 비리가 아닌점이 참작돼 특별사면과 특별복권됐다. 정부는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서석재 전민자당의원등 선거사범 전원과 국회 상공위 뇌물외유사건·수서주택조합비리사건 관련자들은 사면대상에서 제외시켜 공명선거 정착의지와 부정부패 척결의 의지를 보다 명백히 했다. 또 서경원 전평민당의원과 임종석 전「전대협의장」등 전대협 핵심간부,「사로맹」의 박기평씨(일명 박노해)등 이적단체 주동자들에 대해서도 국기수호 차원에서 관용의 혜택을 주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와함께 김근태 전「전민련」의장과 윤영규 전「전교조」의장은 각각 대선법위반으로 기소중지상태 및 수배상태에 있어 이번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주요 사면자 명단 ◇석방·감형된 주요 시국공안사범 명단 ◇시국사건 관련 주요 석방자 ▲하상호 이남우 김형수 이준경 이승석 이영재 송이근 조용우 신상만 정승호(부산 동의대사건) ▲박광렬 정원택 최원일 이용규 공승관 김의연 홍용희(국무총리 폭행사건) ▲송소연 김기수 김진혁 이련희 전상현(자민통사건) ▲김종진 김동찬 정갑득(현대자동차 불법파업 관련) ▲이수호 이부영(전교조 관련) ▲한상렬(전민련 공동의장) ◇시국사건 관련 주요 감형자 ▲무기징역↓징역 20년=윤창호(부산동의대사건) ▲잔여형기의 절반 감형=오태봉 박세진 김영권 이종현 이철우(부산동의대 사건)최원극 구해우 김동규 송규봉(자민통 사건) ◇간첩등 공안사범 석방자 ▲가석방=문익환 유원호(밀입북 사건) 김현장(한미문제연구소 결성사건)허동준 하태경(전대협정책위 사건) ▲형집행정지=고성화 권양섭 김명수 이종환 홍문거(이상 남파간첩) 박문재(북한탈출 기도사건) ◇간첩등 공안사범 감형자 ▲무기징역↓징역 20년=강용주(구미유학생 간첩사건)서순택(재일교포 간첩사건) ▲잔여형기의 절반 감형=박종열(전대협 정책위사건)서순은 고창표(재일교포간첩사건) ◇시국 공안사건 ▲이해학 홍근수 조용술(범민련사건) ▲고은태(민족문학작가회의사건) ▲이영희(한겨레신문 방북취재기도 사건) ▲안동수 김철수 고범중 전영일 엄민형 김영달 구릉회 김태준 김만석 이경희 최창훈(KBS 불법파업사건) ▲강기석 서명석 노광선(평화방송 불법파업사건) ▲홍성담(걸개그림사건) ▲신현준 이창휘 송주명(서사연사건) ▲강민조 박정기(강경대군 치사사건 관련 법정난동사건)
  • 오늘 4만여명 대사면/정부/문익환목사 등 포함 사상 최대규모

    ◎뇌물외유·고문치사 관련자 제외 정부는 문민시대출범에 따른 국민대화합차원에서 국가보안법위반죄로 복역중인 문익환목사와 김현장씨(전 전민련국제협력위원장)의 특별가석방을 포함,공안시국사범및 일반형사범등 모두 4만여명에 대한 대사면을 6일 단행한다. 정부는 6일 상오 김영삼대통령주재로 청와대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대사면안을 의결한뒤 이들에 대한 대사면조치를 공식발표한다.정부대변인 오린환공보처장관은 대사면조치를 계기로 국민화합을 강조하는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특별가석방·특별감형·특별복권등을 포함한 이번 대사면조치는 사상최대 규모로 문목사와 김씨를 비롯해 70세 이상의 장기복역 좌익수 6명,재일교포 간첩단사건 관련자,부산동의대 방화사건 관련자 16명,정원식국무총리 폭행사건 관련자 23명등 2백명이상의 공안·시국사범이 특별가석방된다. 정부는 이와함께 국가보안법위반죄로 복역한뒤 출소한 홍근수목사와 안동수전KBS노조위원장등 KBS노사분규관련자 10여명등을 특별복권시키는 등 이미 풀려난 공안및 시국관련 사범 5천8백여명에 대해서도 특별복권 조치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재근전평민당의원등 13대국회 상공위 뇌물외유사건자와 박종철군고문치사사건·김근태씨 고문사건,건국대·성균관대·이화여대 입시부정사건 관련자와 조직폭력배등 민생침해사범은 사면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임종석·전문환군등 임수경양 밀입북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복역중인 「전대협」간부와 이적단체로 규정된 「사로맹」핵심관련자 27명,서경원전평민당의원 등은 이번 사면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밖에 서석재전민자당의원 등 선거사범도 사면대상에서 제외되는 한편 김철호전명성그룹 회장은 특별가석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대상자 가운데 특별가석방등으로 실제 출소하는 인원은 공안시국사범 2백여명을 포함,2천명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면에는 공안사건관련 대학생 90% 이상이 특별감형복권되고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과 화염병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처벌 받은 대학생 전원이 특별감형복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사분규에 연루돼 처벌받은 사람들가운데서 근로조건개선을 위해 활동했던 사람은 대부분 사면대상에 포함됐으나 제3자개입및 사용자감금등 극렬노조활동을 한 사람은 제외됐다.
  • 국악인 양승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8)

    ◎죽파의 가야금산조 득음 “외길 인생”/혹독한 수련 견디며 「명인」 향한 일념 불태워/뉴욕 독주회땐 “동양의 신의 경지” 격찬받아/세계 명대학에 한국학과설치 위한 모금연주 등 활동 활발 가볍게 튕기고 힘차게 엮는 줄은 가락마다 깊은 시름,희비가 엇갈려 가슴속에 묻어둔 사연을 한없이 풀어낸다.길어도 길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옥수 어느 때는 성긴 빗방울에 오동잎 스치듯,일렁이는 파도에 하늘이 소스라치듯 성난 폭우에 수면이 갈라지고 뇌성이 번뜩인다.활짝 핀 꽃송이가 삽시에 저버리는 아픔을 안으로 삭이는 절제미,청정과 청쾌가 선명한 양승희의 가야금 산조를 듣고있노라면 문득 연전에 돌아간 죽파의 운율이 되살아난다. 명인의 길에 오르기엔 젊고 눈부신 나이,화사하고 여린 용모,그러나 무대에서의 능란하고 당당한 연주솜씨는 당대 명인을 계승한 후계자다운 풍모다. 경건함 중에도 정한의 기개가 감돌고 줄을 타는 손끝에서 처절과 애련이 여울져 스승을 잃고 홀로서기까지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절감케 한다. 양승희는 스승인 죽파 가야금산조 하나에 그의 전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산조 일인자를 꿈꾸며 오로지 이 한길을 위해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초를 스스로 감내해왔다.자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새삼 돌이켜볼 여유는 없다.다만 그것이 지금보다 더 험난하고 가파르다해도 미동도 지체도 할 수 없는 위치다.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길 이전에 「죽파 가야금 산조의 가문」을 이어갈 공인이며 예인의 사명감이 있을 뿐이다. 죽파 김란초는 가야금 산조 창시자의 한사람인 김창조(1865∼1920)의 친손녀로 그는 조부의 산조에다 단몰이(세산조시)를 창작해넣어 독자적인 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성립,국내외에 1백여명이 넘는 제자를 두고있었으나 양승희를 후계자로 삼아 바로 이 산조를 계승시키고 있었다. 양승희는 스승으로서의 죽파의 삶을 전적으로 맡아 극진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죽파의 모든것,예술혼과 예술성,인간의 도리와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분신과도 같은 인연이다. ○곡해석·연주력 출중또 「뛰어난 곡해석과 연주력,끈질긴 노력과 집념,죽파가야금산조를 잇는데 최선을 다하는 지속적인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는 비범등이 후계자로 지목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 국립국악원 이승렬원장의 지적이다. 스승댁에 머물면서도 새벽에 눈뜨자 연습,장고에 맞춰 다시 한번,그리고 스승과 맞춰보고 학교에 다녀와서 한바탕 연습,단 한번도 스승을 거스르거나 거역하지 않았다. 「교수」보다는 「연주가」이기를 원하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국악의 세계무대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황병기 나인용 백병동등 국내작곡가들의 창작곡을 받아 초연으로 기량을 확대시켜 나가기도 했다.국악인으로서는 드물게 시립국악관현악단·시향·KBS교향악단과의 대연주회 협연,1년에 수십차례의 해외연주 활동등은 죽파로 하여금 어느 자리에서나 제자를 마음껏 자랑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85년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 홀에서 가진 독주회 평과 사진이 실린 워싱턴 포스트지를 보고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그때 미국의 저명 음악평론가인 마리온 자콥슨은 양승희의 가야금연주를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솔로를 보는 듯한 황홀감」에 비유,「55분동안의 연주는 꼼짝없이 청중을 사로잡아 마치 동양의 선의 경지를 경험케 했다」고 쓰고 있다. 89년 79세의 나이로 스승이 몸져 눕게되자 양승희는 고려병원에 모시고는 꼬박 3개월을 그의 곁을 지키면서 스승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려면 「몸이부어 손가락자국이 깊이 남는다」고 안타까워 했고 이를 지켜본 국악계의 김소희씨며 박귀희씨는 『형님은 훌륭한 제자를 두셔서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겠다』고 부러워 했었다. 같은해 9월17일 임종하기 직전에 죽파는 양승희부부를 불러 유산정리와 함께 자신의 장례를 부탁했다.스승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양승희는 당연히 상주가 되어 장례기간의 상례지휘는 물론 삼우제와 사십구제,소상제와 대상제,91년에는 고인을 위한 추모음악회를 여는등 스승과 가까웠던 국악계의 원로들을 참여시킨 무대를 마련하여 「난죽같은 사제의 정」을 변함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양승희는 본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때 정치를 하는 부친을 따라 집안이 모두 강원도 원주로 이사.피아노와 무용을 배우다가 한 미국선교사의 권유로 원주여고 2학년 되던해 가야금을 시작했다. 서울을 오가며 서울대 김정자교수에게 가야금을 사사,처음부터 가야금의 가락이 마음속에 파고들어 타고난듯 악기에 밀착되는 감이었다. 대학교 2학년인 70년 4월 역시 김정자교수의 소개로 사직동에 있는 죽파문하에 입문,그때부터 만19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승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고2때 가야금 시작 유난히 청각이 예민한 스승은 한올의 음정차이도 족집게로 집어내듯 가혹하게 교육시켰다.하루 6시간에서 7시간,어느때는 10시간을 해내야만 비로소 만족하는 듯 했다.마음에 들지않으면 노안에 광채를 번뜩이며 가차없이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오랫동안 교제해온 부군 노만균씨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3년후인 76년에야 뒤늦게 결혼해야 했다. 「결혼하면 가야금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스승은 이를 못마땅히 여겼으나 「결혼후에도 가야금 계속은 물론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시댁측의 다짐을 받고나서야 안심하는 빛이었다.혈육이 없던 그는 친딸같은 양승희에게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옥가락지를 물려주면서 「부디 가야금 가문의 대를 이어줄 것」을 두번 세번 당부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7년간의 혹독한 피나는 훈련과 수련에도 득음하지 못한 제자를 몹시 나무라는 눈빛에 양승희는 결혼 1년만에,낳은지 백일도 안된 아들을 시어머니(송재임여사)에게 맡기고 다시 스승의 문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그는 그때 가야금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어린 자식을 떼어놔야 하는 마음은 문자 그대로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부군은 고대와 프랑스유학후 국립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시댁은 훌륭한 가문과 가풍으로 양승희는 얼마든지 풍족한 환경에서 아마도 안락을 누릴 수도 있었다.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가 죽파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오히려 「예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박사과정까지 서둘러주었다. ○지난의 수련과정 겪어가야금은 악기를 다루거나 기교를 가르치는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말과 마음으로 전하는 구전심수만이 참다운 예도였다.그해 6개월 다음해 다시 6개월,80년에는 9개월간이나 스승곁에서 성음을 얻기위한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했다. 「학이 살포시 나무가지에 내려앉듯 햇빛 찬란한 해변에 잔물결 반짝이듯 용이 승천하는 힘찬 기운과 동시에 사방이 잠잠하여 침묵하듯 연주하라」는 것이 스승의 연주 지침이었다.차차 국악계의 원로들로부터 「죽파 전성기때의 소리가 난다」는 칭찬과 「매운 손끝에 만만찮은 도전적인 개척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그럴수록 그는 혼신의 힘으로 가야금에 매달렸다.이는 판소리에서의 폭포수같은 성음을 위한 폭포독공백일수련에 못지않은 지란의 과정이었다. 죽파의 총애와 편애로 동료들의 질시와 따돌림이 따랐으나 스승은 그때마다 「높이 나는 새는 눈에 띄는 법,어중간히 날면 백발백중 돌에 맞기 쉽지만 힘찬 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고 감싸주었다.그리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그의 나이가 다했음을 애석하게 여겼다.커다란 회오리가 지나간듯 어쨌든 지난 세월속의 시련은 그에게 인간적인 성숙을 주었다. 그는 세계 각 유명대학에 한국학과 설치를 위한 기금모금 연주등 91년에 10여차례,지난해 20여차례,올해도 연초와 2월까지 유럽지역 순회와 터키연주등 연말까지 해외연주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다.물론 그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죽파기념관을 세우는 일,전수생들을 위한 연주무대 마련,이에 앞서 스승의 이야기를 창극으로만들기 위해 극본과 음악을 작가와 작곡가에게 의뢰해놓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 진행은 시댁과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진양조에서 중몰이 중중몰이에서 자진몰이 휘몰이 단몰이 장단배열을 갖는 죽파산조를 한바탕 타고나면 인생살이 희로애락이 한낱 물거품이라던 스승의 말이 불현듯 새삼스럽다.원형리정,이제 사계의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산조가락의 하나하나가 그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 자신이 바로 가야금이 되어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마음으로 음조를 울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조미의 극치에 이르고 싶은 것이 오직 절실한 그의 기원이다. □연보 ▲1948년 6월 서울출생,양주창씨(92년작고)와 박정옥여사의 2남4녀중 장녀 ▲58년 집안이 원주로 이사 ▲73년 서울대 음대 국락과졸업 ▲75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86년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예술철학박사학위) ▲75년∼93년2월 서울대 국악과강사 ▲76∼80년 동덕여대·목원대·성심여사대강사,이대·중앙대출강,한국가야금연주단단장,중요무형문화재23호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이수자,준인간문화재 죽파 김란초를 비롯,이창규 황병기 이재숙 김정자 사사 ▲71년 서울대 음대 정기연주회 「죽파류 가야금 산조」독주 데뷔 ▲75년 서울국립국악원주최 신인음악회협연(이성천지휘) ▲77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극장소극장) ▲79년 가야금 독주회(세종문화회관)·제1회 유네스코주최 2인음악회(가야금 양승희,거문고 김선한) ▲80년 가야금 독주회(공간사랑)죽파류 55분 가야금 산조 ▲82년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지휘 발터 길레센) ▲83년 무형문화재 예술단 창단 1주년기념 특별연주 ▲85년 대한민국음악제 KBS교향악단 협연(지휘 홍연택) ▲85년 미뉴욕 카네기 리사이틀홀 독주,자유중국·일본 독주회 ▲86년 자유중국 NewAspect 초청 국제예술제 국제 고쟁 명가대회참가 ▲88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국악원 국악당) ▲89년 서울시향 범세대연주회(세종문화회관) ▲89년 KBS국악대상 축하공연외 해외연주8회 ▲90년 백두산 제천대회,가야금독주회(예음홀)해외연주 7회 ▲91년 KBS 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 해외연주 10여회 ▲91년 고 죽파 김난초선생 추모음악회주관(국립영화제작소 영화제작)등 해외연주 20여회 ▲92년 미 조지워싱턴대 초청연주 ▲92년 대한민국음악제 연변 김진교수와 남북한 가야금 비교연주등 해외연주 20여회 ▲93년 우즈베크스탄 공화국대 한국학과 설립기금모금외 유럽지역 연주 황병기 작곡 「비단길」「영목」 「밤의소리」「남도소리」 관현악곡 「7현을 위한 새봄」편곡 「Amaging Grace」나인용작곡「가야금 협주곡 도약」「용」「영상」이강덕작곡 「가야금 협주곡Ⅴ」정윤주작곡 「황병기주제에 의한 가야금 콘체르토」백병동작곡 「환명」 제1회 KBS 국락대상,중요무형문화재 예술상 공로상,KBS FM 명인 CD 출반
  • 최윤 단편 「그의 침묵」(이달의 소설)

    ◎역사의 그물속에 갇힌 강요된 침묵 지난해에 「회색눈사람」이라는 수작을 발표함으로써 많은 관심을 모았던 최윤이 새해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주목에 값할 만한 작품을 내놓았다.『문예중앙』봄호에 실린 단편 「그의 침묵」이 그것이다. 「그의 침묵」의 화자는 조각가이다.그는 가난한 섬마을의 무지한 토공의 아들로 태어나,지금 생각해도 되풀이하기 싫은 어려운 생존의 계단들을 밟아온 끝에 소설속의 현재 시점에서는 그런 대로 상당한 지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그의 아버지는 박삼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장이로서 그의 어머니와 똑같이 지독하게 과묵한 사람이었으며 역시 그의 어머니와 똑같이 화자가 태어난 이후 단 한번도 육지로 나들이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화자는 아버지나 어머니나 모두 월남한 실향민으로서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들어왔고 또 그렇게 믿어왔다.그런데 부모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의 어느날 화자는 여행중 들린 소도시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구한,1949년에 개최 되었던 진덕우라는 좌익조각가의 전시회를 알리는 팸플릿에서,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전시회의 주인공으로서 그 팸플릿에다 조각품들의 사진과 함께 「형태와 세계의 변증법적 대결」이라는 제목의 글을 싣고 있는 진덕우라는 사람의 사진이야말로 화자가 갖고 있는 아버지 박삼돌의 젊은 날을 증명하는 단 한 장의 사진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화자는 이 엄청난 발견 앞에 경악하면서,비로소 아버지의 임종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아버지는 운명하는 순간 자네 이 말뜻을 아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야릇한 바람 소리같은 이상한 소리를 힘들게 흘려내었는데,그 소리의 정체는 바로 역사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게쉬히트였던 것이다. 대략 이상과 같은 줄거리를 가진 「그의 침묵」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한 총명하고 진지한 예술가로 하여금 그의 생애 가운데 후반부를 가장 참담한 침묵의 공간으로 채우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한 저 역사라는 데몬의 괴력을 상기하고 전하지 않을 수 없다.진덕우의 삶에 엄청난 힘으로 개입하여 원래 거기에 내장되어 있던 모든 가능성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역사,구체적으로 말해 한국 현대사라는 것의 마성으로부터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가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인간은 그를 둘러싼 역사의 그물에 의하여 철저히 일방적으로 규제당하게 마련이라는 투의 패배주의적 발상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잘못이리라.그러나 이러한 잘못에 빠져들 가능성을 우려한 나머지 진덕우가 임종의 순간 힘들게 흘려낸 게쉬히트라는 말의 무게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 될터이다.우리가 「그의 침묵」이라는 소설을 가장 지혜롭게 읽는 길은 패배주의적 발상에 빠지지 않는 한계 내에서 역사라는 데몬의 괴력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자세를 이 소설로부터 배우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를 함부로 무시하는 경박한 태도가 유행하고 있는 최근의 세태를 상기할 경우,더 큰 절실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옴을 느낄수 있다.
  • 호스피스 활동 김리호할머니(봉사하는 삶:6)

    ◎말기암 등 임종앞둔 환자들에 말 벗/아름답게 세상마감 하도록 위로/무의탁 환자 수발·끼니마련까지/“좌절·고통 극복하는 이들 모습서 성스러움 느껴” 『죽음을 목전에 둔 말기 암환자들이 형언 할수 없는 고통과 좌절을 극복해내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올해 일흔셋의 김리호(호 소전)할머니.여교장1호로 지난 86년 40여년의 교직생활에서 은퇴한 그는 호스피스활동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있다.그 자신 기관지천식과 퇴행성백내장등으로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지만 『늘그막에 이정도의 건강함을 주신것은 봉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매주 한두번 각종 말기암과 노환등으로 임종을 맞이한 환자의 가정을 방문,이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곁에서 위로해준다. 갑작스런 죽음선고를 받고 극도의 분노와 불안,좌절상태에 빠진 환자들에게 그들이 가족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살아온 삶이 얼마나 긍지로운 삶인지를 알게하고,가족과 친구사이의 묵혔던 미운감정과 아쉬움을 풀도록 해 아름답게 세상을 마감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가족이 없는 환자들의 경우엔 간호봉사자와 함께 배변을 치우는등 그들의 수발노릇도 함께 하며 호주머니돈을 털어 끼니와 간식을 마련해준다. 환자들이 온몸에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해달라』며 울부짖을 때는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김할머니.몇년을 해왔어도 이들의 집을 방문하기 전에『성모님 나,울지 않도록 해주세요』하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처음엔 세상의 모든 것에 마음을 닫고선 제가 찾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요.그러던 이들이 나중에는 몇시간전부터 방문을 열어놓고 저를 기다릴때는 보람을 느낍니다』 김할머니가 호스피스봉사를 하게 된것은 강원도 용평군 용원중학교의 교장직을 지난 86년 정년퇴직하고 3년뒤인 89년 「자원봉사자 능력개발원」에서 호스피스교육을 받고 부터. 그러나 사실 김할머니와 환자들과의 인연은 지난 19 3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경기여고와 경성여자사범대학에 다니던 시절,당시 카톨릭 대학의 이재현신부님을 따라 다니며 늙고 연고자 없는 불치환자를 돌봐주는 일을 했던것이 일생동안 떨칠수 없었던 환자에 대한 연민의 시작이었다. 김할머니의 호스피스봉사자세는 카톨릭 회관 사회복지관(명동성당옆)에서 함께 일하는 87명의 젊은 가정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게 항상 청량한 자극제가 된다. 『환자들에겐 제가 교장선생이었다거나 좀더 배웠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습니다.그냥 그들이 토해내는 괴로움을 들어줄 뿐이죠』 환자들에겐 그냥 「루시아 할머니」로 통하는 김할머니는 얼마전 장암을 앓다 세상을 떠난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낸다.『제가 가면 배를 쓸어달라고 자신의 불룩한 배에다 내손을 올리곤 했죠.간호사 출신인 며느리가 자신의 이불을 자주 크레졸로 소독한다며 전염병도 아닌데 그런다고 그토록 섭섭해했습니다.임종시에는 며느리에게 고마웠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채 아름다운 죽음을 맞았죠』 좀더 밝고 손쉬운 봉사일을 찾아보라는 자식들의 권유에도 불구,김할머니는 자신이 아파 더이상 거동을 못할 때 까지 이일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다른 이들을 위한 거창한 봉사가 아닙니다.나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는 「나를 위한 봉사」일 뿐입니다』 여러차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다 「가정호스피스일이 홍보가 돼 환자의 보호자들이 자원봉사자들을 찾는 기회가 될것같다」는 주위의 설득에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해준 김할머니가 하는 겸손의 말이다.
  • 병원영안실 유감/김민숙(여성칼럼)

    나이 들면서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가는 횟수가 많아졌다.특히 추운 날씨가 죽음을 재촉하는 건지 해마다 설을 전후해서 몇번씩 장례식에 가게 된다. 예전에는 임종의 자리로 자신이 살던 집을 최고로 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도 때가 되면 서둘러 집으로 모시곤 했는데,요즘은 대개 모든 장례가 병원 영안실에서 치러진다.옛날보다 쉽게 의료혜택을 누리게 된 이유도 있고,아파트같은 곳은 장례에 어울리지 않는 요즘의 주거환경 때문이기도 하고,초상을 당해 당황해하는 유족들에게 병원 영안실이 갖춘 여러가지 의례절차의 간편함이 신뢰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문상하는 입장에서도 낯선 집을 찾기보다 병원 영안실 찾기가 쉬운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병원 영안실을 찾을 때마다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영안실은 꼭 이래야만 하나 싶은 것이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심리적인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이겠지만,영안실은 대개 병원 한구석 지하실 같은 외진곳에 숨듯이 위치하고 있다.환하고 깨끗하면 불경한 건지 어둡고 초라하고 지저분하다.페인트 칠이라고 하기는 했을 터인데도 무슨 색깔을 어떻게 칠했는지 대개는 그냥 시멘트 창고 같은 느낌이다.시멘트 벽의 그 황량한 느김을 그대로 페인트로 살려낸 것도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장례는 한 인간을 위한 마지막 통과의례인데 그 마지막 잔치를 이렇듯 어둡고 초라한 장소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치러야 할까? 죽음 또한 삶의 한 과정이며,어떤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 과정이다.영안실을 숨겨놓는다고 죽음으로부터 숨을 수는 없다.죽음에 대해 쓸데없이 꺼림칙하고 두려운 느낌만 부축일 뿐이다.살아남은 사람들이 먼저 떠난 사람을 위해 벌이는 마지막 잔치장소답게 깨끗하고 산뜻하고 아름다운 영안실을 꾸며줄 병원은 어디 없을까?
  • 일선 경찰관 애환·보람 수록/남대문서,수기집 펴내 화재(조약돌)

    ○…서울남대문경찰서(서장 윤웅섭총경)가 일선 경찰관들이 근무를 하면서 느낀 애환과 보람을 담은 수기집을 펴내 화재. 「3분 거리,그러나 마음은 하나」라는 제목의 이책에는 남대문서 직원들과 가족·시민들이 쓴 1백20편의 수기와 편지형식의 글을 담고있다. 부녀자 인신매매가 극성을 부리던 90년 당시 사창가의 업주를 처벌해달라는 윤락녀의 눈물어린 고발을 접수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부터의 잘봐주라는 압력을 물리친 채 업주에게 철퇴를 가한 「압력에도 굴하지 말고 소신껏…」이란 시원스런 글에서부터 26년여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경찰은 불효자인가」등 법집행자로서의 번민과 고통을 담담하게 그린 짤막한 글이 진한 감동을 주고있다. 남대문서가 수필집 발간을 계획한 것은 지난해 9월 윤서장이 부임한 직후. 87년 경기 여주경찰서장재직시 「이강의 메아리」라는 직원수필집을 만들어 호응을 얻었던 윤서장은 『시민들이 경찰관의 고충을 이해하고 사랑받는 경찰관이 될수있는 산교과서로 활용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만들었다』면서 『서울시내 모든 파출소와 동사무소등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보내 국민과 경찰이 보다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도록 할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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