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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배자 시절 성동署에서 안잡혀 죄송”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이 대학시절 쫓고 쫓기는 관계로 인연을 텄던 서울 성동경찰서를 16년 만에 찾았다. 이번에는 수배자 신분이 아니라 강연자로서 경찰들 앞에 섰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이었던 임 의원은 신출귀몰한 변장술로 검거망을 피해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16일 성동서 강당에서 김용판 서장 등 직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강연회의 주제는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 하지만 임 의원은 한양대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던 1989년 치열했던 경찰과의 추격전으로 말머리를 열었다.임 의원이 “한양대가 성동서 관할이었지만, 잘 피해다닌 덕분에 자주 오지는 않았다.”면서 “고생시킨 경찰분들이 생각나 그해 12월 청량리서에 연행됐을 때는 ‘기왕이면 성동서에 잡혔어야 하는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당시 임 의원 검거를 전담한 선병윤 경사는 요즘도 임 의원과 연락을 하며 돈독한 사이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의원은 강연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사찰을 받게 하도록 하는 동시에 안전을 보장해 주고 경제제재를 해제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임시국회가 아니면 올해 정기국회에서는 일단락될 것으로 본다.”면서 “경찰과 검찰 사이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성동서는 매월 한 차례씩 각계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있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긴급진단 집값 이렇게 잡자] (上) 재건축 정책 바꿀 때다

    [긴급진단 집값 이렇게 잡자] (上) 재건축 정책 바꿀 때다

    서울 강남권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강남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는 한달새 가격이 5억원이나 뛰기도 했다. 상승세는 수도권 남부로 이어져 분당의 30평형대가 평당 2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집값 상승세는 더 이상 국지적 현상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수요억제 등 규제책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와 발상을 달리하는 과감하고 용기있는 공급확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20∼30년간 주택 규제정책만으로 집값을 잡은 적이 있습니까.”대형 건설업체 한 임원의 얘기이다. 주택건설 공급의 증대로 반사이익을 얻는 업계의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과거 집값 추이를 보면 맞는 얘기다. 실제로 1980년 이후 쏟아졌던 투기대책만으로 집값을 잡은 적은 거의 없었다. 지난 90년 연간 집값상승률이 60%에 달했던 시기에도 집값을 잡은 것은 5대 신도시 건설을 통한 주택 200만가구 건설이었지, 규제책은 아니었다. 2001년 이후의 집값상승 때도 규제책이 줄을 이었지만 단기효과에 그쳤다. 건설산업연구원은 ‘부동산 대책이 건설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서 2001년 이후 나온 투기대책이 집값을 조금이나마 떨어뜨린 것은 10·29대책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투기대책인 10·29대책도 1년이 조금 지나자 약발이 떨어졌다. 규제책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정책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재건축 규제를 풀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재건축 규제가 부른 화(禍) 서울에서 가장 효율적인 주택공급 방안은 재건축과 재개발뿐이다. 하지만 재건축 정책은 규제로 일관해 왔다. 가격을 잡기 위해 네거티브전략을 펼치면서 2003년에 소형평형의무비율과 후분양제, 개발이익환수제(시행은 2005년 5월19일)가 도입됐다. 재건축은 또 지구단위 계획이나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을 통해 국토계획법에 규정된 용적률보다 50%가량 낮은 용적률이 적용되고 있다. 서울의 재건축단지 가운데 2종 주거지역은 용적률 200%에 12층 이하(단독주택지구는 7층 이하)의 한도를 적용받는다. 교통혼잡 등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공급증대는 전혀 고려치 않았다. 하지만 소형의무비율 확대와 개발이익환수제로 중대형 공급이 줄고, 또 후분양제로 당분간 공급중단 사태가 올 것이란 우려가 퍼지면서 강남의 중대형 집값이 뛰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같은 상승세가 비강남지역과 분당·용인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이른바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모두 87개단지,9만 1246가구이다. 이들 단지의 용적률을 평균 50% 높여주면 2만 2000여가구,100%를 높여주면 4만 4000여가구가 각각 늘어난다. 미르하우징 임종근 사장은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평균 용적률은 200%정도 된다.”면서 “용적률이 100% 높아지면 가구수가 50% 정도로 늘어난 4만 4000가구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는 분당신도시(9만 7000가구)에 못미치지만 판교(2만 6000여가구)를 훨씬 웃돈다. 이 정도면 강남권 수급불안 해소에 충분한 물량이라고 할 수 있다. ●용기있는 공무원이 필요하다 재건축 규제는 지난 20여년 동안 정책입안자들의 숙제였다. 고밀도 개발을 하고 싶은 생각이야 모두 가졌지만 해당 단지의 집값상승과 도시 과밀화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내가 있을 동안만은’이라는 생각으로 재건축에 과감히 메스대는 것을 꺼려 왔다. 따라서 이 참에 재건축 용적률을 과감히 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부연구위원은 “고밀도 개발이나 소형의무비율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은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고밀도 개발의 효과가 훨씬 뛰어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적절한 가수요 대책과 함께 재건축 제도를 과감히 뜯어 고치는 용기있는 공무원이 필요하다는 게 부동산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한국 급진주의는 서양 자유주의 수준”

    “한국 급진주의는 서양 자유주의 수준”

    “한국인들 사이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과 다르지 않으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어느 쪽이 우선권을 가질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 지난 5월1일부터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실의 인턴인 정책비서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 크론(28)의 지적이다. 그는 “경제 발전을 위해 노동자 계층 등 소수자들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침묵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도 위험하다.”면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인 재벌과 노동자, 학생, 시민단체들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족주의와 경제발전은 공존해야” 크리스의 한국 경험은 2001년부터 2년 동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의 영어강사를 한 데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크리스는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빅토리아 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에 있는 ‘정치학도’다.‘문화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도 쓴 그는 한국사회의 유교문화, 권위주의, 샤머니즘, 시민사회운동 등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그가 임종석 의원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국제대학원 인터넷에 뜬 ‘외국인 인턴 채용’이라는 광고였다. 크리스는 “채용 전에는 임 의원이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는 그를 몰랐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며 386의원인 임 의원의 유명세를 평가한다. 그는 한국에서 임 의원은 ‘레디컬(급진적)하다.’고 평가받는다고 지적하자 “한국사회에서 레디컬은 서양식으로 볼 때 자유주의자이며 개혁적인 수준이고, 인텔리전트하다.”고 평가한다. 인텔리전트하다는 표현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부연했다. ●“한국 정치사중 광주학살 가장 경악스러워” 2004년 뉴질랜드 의회의 인턴을 했던 그는 “한국과 뉴질랜드의 정치환경이 아주 유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뉴질랜드도 1996년 이전에는 행정부가 발의한 법안들이 의회를 무사통과했지만, 지금은 야당이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한국도 1992년 민주화 이후로 강력한 야당에 부딪혀 곤란을 겪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사 중 ‘광주학살’이 가장 경악스러웠다.”면서 “그러나 건국 50년 만에 경제적 도약을 이뤄내고 학생·시민들이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에 감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국회의원을 목표로 하는 그는 “한국에 대한 이해·경험이 뉴질랜드 한인사회의 선거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우리당 1박2일 워크숍이 남긴 2가지 숙제

    우리당 1박2일 워크숍이 남긴 2가지 숙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과 중앙위원 180여명은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가진 1박2일간의 워크숍에서 ‘불법대선자금 국고환수 추진’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31일 채택했다. 문희상 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이날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진행된 비공개 종합토론에서 당정분리 재정립, 당정쇄신,7∼8월의 민생탐방과 ‘24시간 국회의원 민원실’운영을 골자로 하는 뉴스타트 운동 등 다양한 처방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의 정체성 확립과 위기의 원인 진단 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혁·실용의 노선 갈등도 해소되지 않은 채 잠복했다는 평가다. ●“月50만~100만원씩 공제… 불법대선자금 반납” 눈에 띄는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 ‘불법대선자금 국고 환수’도 지난해 정동영 전 의장의 제안을 재탕했다는 평가도 있다. 의원들은 남은 17대 국회 임기 동안 월 50만∼100만원씩을 세비에서 공제해 불법 대선자금을 반납하기로 결의했다. 워크숍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위기의 원인을 노무현 대통령이 천명한 당정분리에서 찾으면서 당정관계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오영식 원내부대표는 “당정분리 원칙을 재검토해 백지화시켜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없었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당정분리를 강조할 때가 아니며, 매우 긴밀한 협의와 공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설명했다. 윤호중 의원은 “당정분리 원칙에 얽매여 당정관계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당정관계를 시급히 재정비하자는 제안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워크숍은 어떤 결론을 내는 자리가 아니고, 토론 내용이 청와대에 전달된 적도 없다.”면서 “당정분리 원칙은 변경된 게 없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무특보인 김두관 전 장관은 전날 토론에서 “정책을 중심으로 새로운 당정관계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에게도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기남 의원은 “당정관계는 당이 우위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선도할 능력없으면 불가능” 정세균 원내대표는 그러나 퇴소식에서 “열린우리당 의원 개개인의 정책 역량이 확충될 때만 당정협력을 제대로 해내갈 수 있다.”면서 “당 우위의 당정이 필요하다고 해도, 정부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던졌다. 지도부는 치열한 토론의 노선 갈등을 봉합하려 했지만, 참석자들의 워크숍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신기남 의원은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지만, 김태홍 의원은 “4∼5시간 토론했지만, 미진했다.”고 이의를 달았다. 임종인 의원은 “혁신위를 재구성해 지도부를 배제하자.”고 제안했다. ●“지도부 배제한 혁신위 재구성하자” 천정배 의원은 “민생을 살리는 개혁을 실용적으로 하자.”고 제안하면서도 “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안을 중심으로 한 개혁과제를 앞장서 실천한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고 발언했다고 오영식 부대표는 전했다. 전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의 ‘열린우리당은 무능·태만·혼란’이라는 지적에 대해 실용파 의원들은 “이미지 비평 아니냐.” “열린우리당 과반의석이 탄핵에 의한 ‘거품’이라는 지적 등은 과도하다.”는 비판을 거두지 않았다. 무주 문소영 박지연기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임종/우득정 논설위원

    어머니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닦아내려는 순간, 건너편 병실에서 비명에 가까운 여성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온다. 일순간 병실 환자들과 간병인들의 얼굴에 긴장된 빛이 스친다.‘또 누가 세상을 떠난 것일까?’행여 어머니가 충격을 받지나 않았을까 하고 되살펴보지만 지그시 감은 어머니의 눈에는 미동도 없다. 어쩌면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바심과 궁금증에 급히 건너편 병실로 나섰다.‘다른 환자들을 위해 울음소리를 좀 낮춰달라.’는 말이 입가를 맴돈다. 병실 침상의 환자 위로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여성의 어깨를 흔들며 “누나, 이러면 아버지가 편히 가실 수가 없잖아.”라며 스무살이 채 될까말까 한 청년이 울먹인다.1인실 병실에 붙은 환자 명패를 보니 ‘52세’다. 떠나보내기에는 서러운 나이다. 고인의 형제나 친척으로 보이는 이들이 휴대전화로 사망 사실을 알리는 사이, 병원 직원들이 서둘러 환자에게 부착했던 기계를 떼어내 철수한다. 이어 검은 관이 병실을 나선다.10분 남짓한 시간이다. 병실에서 짐을 챙긴 유족들이 간호사실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인사를 받는 간호사도, 이를 지켜보는 간병인들도 모두 텅빈 모습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유비쿼터스 정치’

    정치판이 바야흐로 ‘사이버 열국지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최근엔 사이버 정치공간을 겨냥한 ‘기술 경쟁’도 불붙었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등은 모바일 홈페이지를 개설해 언제 어디서나 유권자들과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유비쿼터스 정치’에 첫발을 디뎠다. 급기야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다음달 초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모바일 의정보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동영상·모바일 다큐멘터리 등 첨단 자료로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해 ‘유비쿼터스 세상’속으로 성큼 다가간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등은 블로그 회원들에게 모바일 문자서비스(SMS)로 주요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홈페이지는 기본 사양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남녀노소 정치인을 불문하고 미니홈피(싸이)와 블로그로 세를 넓히고 있다. 최근 고건 전 국무총리가 싸이를 개설하면서 정동영 통일부·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여야 유력 대권주자 모두 ‘싸이 정치’에 합류했다. ●고건등 유력대권주자 ‘싸이정치’ 합류 사이버 정치공간은 더 이상 진보적 인사나 은 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 사이트가 조사한 정당 홈페이지 접속률에서 한나라당이 최근 열린우리당을 추월했다는 발표가 이같은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나라당 의원 125명 가운데 싸이나 블로그를 개설한 사람은 118명이다. 거의 모든 의원이 이용하는 셈이다. 열린우리당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싸이만 최소 40여명의 의원이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만 등록된 의원들의 블로그만 60여개에 이른다. 일부 의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모바일(휴대전화)과 인터넷을 연동시켜 마침내 ‘유비쿼터스 정치’가 살갗에 다가온 느낌이다. 개별 의원만이 아니라 정당도 열기가 뜨겁다.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당 홈페이지에 ‘윗몸 벗은 알통 사진’을 게재하는 등 정당마다 유권자의 ‘클릭 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이다. ●홈피 유시민, 싸이 박근혜, 블로그 원희룡·전여옥 정치인의 이런 뜨거운 ‘사이버 유목’의 모멘텀은 지난 2002년 대선과 4·15 총선이었다. 두 선거에서 ‘사이버의 힘’을 실감한 정치인들에게 사이버 세계는 ‘엘도라도’였다. 사이버라는 노다지에서 금광을 캐려는 정치인의 탐험은 사이버 세계의 유행과 궤를 같이 한다. 즉 네티즌들이 홈페이지 시대에서 포털사이트 카페 시기를 거쳐 미니홈피(싸이), 블로그 시대로 ‘유목’함에 따라 정치인들의 행보도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굵고 묵직한 주제(홈페이지),1촌맺기 등 아기자기한 감성문화(싸이), 개방성이 강화된 커뮤니티(블로그)라는 각각의 특장을 적절하게 활용한 정치인도 등장했다. 네티즌 사이에는 ‘홈피는 유시민, 싸이는 박근혜, 블로그는 원희룡·전여옥’이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다. 이런 열기 속에 네티즌들의 성향도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초기엔 진보·개혁적 목소리가 높다가 차츰 보수의 주장도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종수 박지연기자 vielee@seoul.co.kr
  • 내년 지방선거 잠룡 대리전? 차차기 대결?

    내년 지방선거 잠룡 대리전? 차차기 대결?

    내년 ‘5·30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여야가 ‘빅2’, 즉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 구도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선거 결과는 이후의 정국 운영은 물론 오는 2007년 대선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소지가 많은 탓에 전초전격인 ‘빅2선거’에 관심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오는 8월 말까지 당원으로 가입해야만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당헌 당규를 개정하면서 계파별로 ‘인물 고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전체 후보의 30%를 전략공천 몫으로 남겨놓아 ‘거물급 영입’은 뒤로 미뤄질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전 기획위원장은 “젊은 의원들 중심으로 ‘차차기’ 구도로 갈 것인지, 아니면 각 계파의 ‘대선 대리전’으로 갈 것인지를 봐야 한다.”면서 ‘2대 관전포인트’를 제시했다.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느냐에 따라 출마 후보도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차차기 구도’는 18대 대선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가게 될 젊은 의원들이 후보군의 중심이다.‘대리전’ 구도는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계파들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게 되는 상황이다. 당 내분 격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당내 경선이 연령·선수에 따라 차차기냐, 대리전이냐는 구도로 형성되기보다 본선 경쟁력 위주로 짜여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취임 초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장 출마자에 이해찬 총리, 진대제 장관도 있고, 경기도에는 김진표 부총리가 출마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들 세 사람이 유력하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총리는 지난 20일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한번 해 봤으니 또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총리가 여전히 거론되는 가운데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 김한길·신기남 의원과 유인태 서울시당위원장이 후보군에 든다.‘주니어 그룹’에는 김영춘·임종석 의원 등이 있다. 경기도지사 출마자로 부천시장을 지낸 원혜영 정책위의장과 김진표 교육부총리, 배기선 의원, 천정배 전 원내총무 등이 유력한 가운데 ‘주니어 그룹’에서 김부겸 원내수석부대표가 뛸 것으로 예상된다. ‘친노’ 직계 및 재야파 출신으로 분류되는 이 총리와 유 서울시당위원장, 신기남 의원, 원혜영 정책위의장, 배기선 의원 등은 정동영(DY) 통일부장관보다 비교적 김근태(GT) 복지부장관과 친한 편이다. 김한길 의원과 천정배 의원은 ‘구 당권파’로 DY계로 분류된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경선에 양대 세력이 각각 출마하면 4·2전당대회처럼 세력대결의 양상이 재현되며 ‘대리전’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 대선 대리전과 차차기 구도가 복잡하게 얽힐 것 같다. 우선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이른바 ‘3룡(龍)’의 대선 대리전 성격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당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차기 주자’들과의 합종연횡도 불가피하게 될 상황도 미리부터 그려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시장와 손 지사를 각각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당내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와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 의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수도권 패키지 출마론’이 흘러나오는 등 발빠른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에 비해 박 대표는 ‘측근 정치 불가’ 원칙을 고수하며 특정인과의 연대를 멀리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3룡의 경쟁구도에 따라 세불리기를 위해 탄력적 응집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박 대표와 가까운 인사로는 맹형규·진영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발연에서는 이재오·홍준표·박계동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수요모임에선 원희룡 의원이 뜻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주류인 ‘국민생각’의 박진 의원도 ‘차차기’를 위한 포석으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경기지사 후보의 경우 ‘친박(親朴)’ 진영에서는 이렇다 할 인사가 없는 상태다. 국민생각의 임태희 의원이 있긴 하지만 성향상 ‘친손(親孫)·비박(非朴)’에 가깝다. 반면 발전연에서는 김문수·전재희 의원이, 수요모임에서는 남경필·정병국 의원이 출마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친 상태다. 문소영 전광삼기자 symun@seoul.co.kr
  • 韓·美의회 ‘브레인’ 北核해법 토론

    韓·美의회 ‘브레인’ 北核해법 토론

    북핵문제, 남북 경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미간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열린우리당 및 한나라당 국회의원 브레인들과 미 하원 의원들의 브레인들이 새달 1일 처음으로 머리를 맞댄다. 특히 방한하는 미측 브레인들이 보좌하는 의원들 가운데 외교통상 분야에서 영향력이 높은 중량급이 다수 포함돼 있어 주목된다. 열린우리당 국회 보좌관 외교모임인 ‘다파’(DAPA:Diplomacy Association of Policy Advisors)의 송해영 회장(임종석 의원 보좌관)은 19일 “한·미 양국의 국회 및 의회 의원 보좌관들이 오는 6월 1일 여의도 국회에서 첫 간담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美의원입법만 허용… 보좌관 파워 막강 송 회장은 “북핵문제의 해법과 남북 경협, 한·미 FTA, 테러와의 전쟁 등 한·미 양국의 정치·경제 현안에 대해 미국 의회 입법조사관, 보좌관들과 자유토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상호 이해를 넓혀 해법을 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과 달리 의원입법만이 허용된 미국에서 보좌관이나 입법조사관의 파워는 막강하다.”며 이 모임의 높은 비중을 소개했다. 미측 참석자는 지한파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 공동의장인 마이클 카푸아노 하원의원의 루시 해낸 보좌관과 미 의회 농무위원장인 태드 코크란 상원의원의 라첼 존슨 선임정책보좌관, 에드워드 마키 민주당 하원의원의 캐티 도널리 보좌관 등과 의회조사국(CRS)의 한나 피셔와 래리 노웰 연구위원 등 10명이다. ●경수로취소 요청의원 보좌관 포함 마이클 카푸아노 의원은 2002년 11월 ‘대북 경수로 사업의 즉각적인 취소’를 요청해 경수로 사업 중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에드워드 마키 의원도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에 관한 공화 및 민주 양당 TF 공동의장’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키 의원은 2003년 4월 경수로 사업을 영구 폐기시키는 내용을 담은 ‘콕스-마키 수정안’을 하원에서 247대 175로 통과시킨 적이 있다.‘다파’는 외교통상 분야에 관심이 높은 문희상 의장과 김명자 임종석 한병도 우윤근 이호웅 의원 등의 보좌관들이 참석한 모임으로 17대 국회 출범한 지난 6월 결성됐다. 지난 2월과 3월,4월 월례모임을 통해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EU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루마니아 스리랑카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참사관 부영사, 부대사 등 외교사절과 교류를 가졌다. ●코리아 코커스 매사추세츠의 마이클 카푸아노와 민주당 하원의원과 뉴욕의 비토 포셀라 공화당 하원의원이 공동의장으 로 2003년 1월 결성한 지한파 모임. 민주당 의원 33명, 공화당 의원 21명이 참여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與 ‘힘있는 無계파’ 뜬다

    열린우리당의 임채정 전 의장을 비롯해 3선의 배기선 의원, 유인태 서울시당위원장 등 재선 및 중진의원들이 ‘무(無)계파 모임’을 당내 최대 계파로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중량급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 모임은 구당파-재야파-개혁당파 등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세력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파장이 예상된다. 또한 문희상 의장 등 새 지도부가 노선 투쟁 등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이 모임의 역할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은 지난 4·2전당대회에서 GT(김근태)계와 개혁당파(유시민 의원)가 연대해 DY(정동영)계와 갈등하는 양상을 빚었다. 일부 계파가 과도하게 전당대회에 개입하는 등으로 불협화음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계파 모임’이 양대 세력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이 모임의 한 참석자는 “열린우리당에 DY계도,GT계도, 개혁당파도 아닌 의원들이 최소 70∼80명”이라면서 “특정 계파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면서 당의 화합과 발전, 정권 재창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모임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 모임에는 임 전 의장을 비롯해, 배기선 의원, 김덕규 국회의장 비서실장, 임종석·송영길·민병두·우상호 의원과 원혜영 정책위의장, 김부겸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과거사법이 통과된 직후 이 모임 소속 의원들은 긴급 회동을 갖고 지도부 중 4명이 당론에 반대 또는 기권표를 던진 데 대해 비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그는 “과거 민주당이 ‘동교동’에 따라 투표했지만 동교동이 사라진 지금은 네티즌이 ‘동교동’이라고 비판하면서 재발 방지책 등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국정원장 “핵실험 징후 증거없다”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은 13일 “한·미 양국은 90년대 말부터 함북 길주지역에서 용도 미상의 갱도굴착 징후를 포착하고 관련 동향을 추적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고 원장은 이날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참석, 함북 길주 지역 일대에서의 핵실험 준비설 보도와 관련,“아직 핵실험 징후로 파악할 증거는 없다.”면서 이같이 보고했다고 정보위 열린우리당 간사인 임종인 의원이 전했다. 고 원장은 이날 외신들이 핵실험 준비설을 보도하고 있는 길주 일대의 최근 동향을 위성사진 판독 결과 등을 바탕으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길주지역에서 터널 메우기, 관람대 신축 등 핵실험 준비 동향이 포착됐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보고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예전에 지하 핵실험을 수직·수평 갱도에서 했고, 인도와 파키스탄도 그렇게 (핵실험을) 했다.”면서 “우리도 계속 (북한을) 관찰하고 있으나 그런 징후는 없다.”고 설명했다고 임 의원은 전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문희상 의장도 간담회 참석 후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북한 핵실험의 특이징후는 없다. 이는 한·미 양국이 똑같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문 의장은 “북한이 수직·수평으로 길주지역에서 90년대 말부터 지하갱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특이하게 변화하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지하갱도 부근에) 10명 정도의 인력과 흙을 파낸 무덤 등이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고 원장은 “핵실험을 위해서는 관측소 등 추가시설을 세우고 이를 위해 많은 사람과 물품이 포착돼야 하는데 이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다른 한 정보위원이 전했다. 다만 고 원장은 “길주 지역은 암반지역으로 핵실험 장소로 좋은 환경”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한편 고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북한이 최근 폐연료봉 8000개의 인출 작업을 완료했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핵무기고 증강 주장이 허언이 아니라고 압박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배경을 분석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유림 속 한자이야기] (71) 奔喪(분상)

    儒林 (322)에는 ‘奔喪’(달릴 분/잃을 상)이 나오는데,‘먼 곳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이다. ‘奔’자의 金文(금문) 자형을 보면 사람이 팔을 휘젓고 있으면서 그 아래에는 발을 뜻하는 ‘止’(지)자가 세 개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會意字(회의자)이다. 用例(용례)에는 ‘奔忙(분망:매우 바쁨),奔放(분방:규칙이나 규범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임),奔走(분주:몹시 바쁘게 뛰어다님)’ 등이 있다. ‘喪’자는 뽕나무 한 그루와 그 가지에 걸린 대바구니들을 본뜬 글자로, 원래 뜻은 ‘뽕잎을 따다’였다. 그런데 뽕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누에의 먹잇감으로 잎을 모두 잃어버린다. 여기서 착안하여 喪에서 ‘잃어버리다’‘죽다’의 뜻이 派生(파생)되었다고 한다.用例에는 ‘喪明(상명:아들의 죽음을 당함. 자하가 아들의 죽음에 너무 상심하여 실명한 고사에서 나온 말),喪心(상심:근심 걱정으로 맥이 빠지고 마음이 산란하여짐),喪妻(상처:아내가 죽음)’ 등이 있다. 상례란 사람이 殞命(운명)하여 땅에 묻힌 다음,大祥(대상)을 지내고 吉祭(길제)를 지내고 脫喪(탈상)까지의 一連(일련)의 의식 절차를 말한다.近代化(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각종 傳統意識(전통의식)이 退色(퇴색)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상례에 관한 풍습만큼은 여전히 전통적인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전통 상례의 節次(절차)의 대강만을 거론하더라도,“臨終(임종:운명이라고 하는데 원래 사람이 장차 죽을 때를 말함)-皐復(고복:生時(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이름을 부르는 일)-設奠(설전:死者(사자)를 생시와 같이 섬기기 위해서 매일 한 번씩 음식을 드림)-小殮(소렴: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함)-大殮(대렴: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하는 의식)-成服(성복:大殮이 끝난 이튿날,五服(오복)의 사람들이 각각 그 복을 입고 조곡을 하며 조상함)-遷柩(천구:영구를 상여로 옮기는 의식으로 발인 전날 행함)-발인(發靷:영구가 장지를 향해 떠나는 것을 말함)-成墳(성분:흙과 회로 광중을 채우고 흙으로 봉분을 만드는 일)-虞祭(우제:神主(신주)를 위안시키는 제사로 초우는 葬日(장일) 당일 집에 돌아와 지낸다)-卒哭(졸곡:삼우 종료 후 3개월이 경과한 剛日(강일)에 지냄)-小祥(소상:초상을 치른 지 만 1년이 되는 날 지내는 제사)-대상(大祥:초상 후 만2년만에 지냄)-吉祭(길제:담제를 지낸 직후 택일하여 지냄)” 등 매우 복잡하다. 다음 奔喪의 설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내용 또한 까다롭다.“무릇 服(복)을 입어야 할 親戚(친척)의 喪(상)이 났으나 다른 곳에서 訃音(부음)을 들었으면 神位(신위)를 설치하고 哭(곡)을 한다. 만일 奔喪을 해야할 경우라면 그 집에 도착하여 成服(성복)을 하고,奔喪이 어려우면 나흘만에 成服을 한다.” 이렇게 喪禮(상례)의 절차를 까다롭게 規定(규정)해 놓은 것은 哀悼(애도)의 뜻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한 制度的(제도적) 裝置(장치)이기도 하지만 슬픔을 적절히 調節(조절)하여 喪主(상주)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크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패한 프랑스가 물러간 다음 베트남 북쪽에서는 총성이 멈췄다. 호찌민은 즉시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모든 정책과 사업은 현장에서 결정됐다. 호찌민 노선이 대중의 감정과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자신이 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찌민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까오방 사람들은 호찌민이 주석이 된 다음 다시 찾아왔을 때를 잊지 못한다. 까오방의 당 서기장은 성대한 음식으로 호찌민을 대접했다. 그러나 호찌민은 화를 내며 “당신이 다 먹으라.”고 자기 앞의 음식 접시를 모두 당서기장에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지금 까오방성의 인민들이 어떻게 먹고 있느냐.” 밖에서는 기근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 뒤 호찌민은 지방시찰 때마다 도시락을 싸갔다. 예정된 코스를 불쑥불쑥 벗어나서 방문에 대비한 어떤 준비도 헛수고로 만들어버렸다. 가뭄이 든 남딘성 이옌마을을 예고없이 찾은 호찌민은 갈라터진 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몇 바가지의 물이라도 대려고 바닥이 보이는 개울을 바가지로 긁고 있는 아낙네를 비키게 한 호찌민은 직접 물을 펐다. 그러나 갈라진 논의 틈새조차 채울 수 없었다. 이 때 호찌민은 관개수로사업을 구상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에 걸친 ‘박흥하이 관개수로사업’이 시작된 것. 삽과 들것, 수레에 의존한 이 건설운동은 디엔비엔푸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 공사과정에서 수동식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수많은 운반도구들이 발명됐다. 호찌민은 전쟁에서 발휘되었던 베트남인의 창의성과 애국심을 생산운동으로 이끌어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을 가뭄에서 해방시킨 이 공사과정이 담긴 기록영화 ‘박흥하이에 물이 들다’에 1959년 모스크바영화제는 다큐부문 최고상을 안겼다. 이 영화의 감독 부이딘학은 현장을 방문한 호찌민을 네 차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물이 들어오는 것을 찍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까 호 아저씨가 오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돌려서 아저씨를 찍으려는데 갑자기 난리가 났어요. 일하던 사람들이 아저씨를 알아보고 마구 몰려드는 거예요. 곡괭이, 삽을 든 채로 말입니다. 당황한 경호원들이 놀라서, 연장을 들고 달려들면 아저씨는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어요. 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달려오는데, 가까이 올수록 더 빨라지는 거예요.” 하노이의 한국식당 춘하추동에서 만난 부이딘학은 마치 어제 일처럼 말했다. “이때 호 아저씨가 재빨리 옆에 있던 나무에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손을 흔들면서 이렇게 소리쳤어요. 호 아저씨 여기 있다. 다들 봤지. 봤으면 이제 자기 자리로 가서 일하자.” 그러나 호찌민의 인민생활 향상정책은 10년이 지난 1964년이 되면서 중대한 도전에 처했다. 미국은 이미 국민들조차 등을 돌린 사이공정권의 응오딘지엠을 제거한 뒤 직접 베트남에 개입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미국과의 전면전이 불러올 ‘재앙’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호찌민은 이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1964년 8월, 통킹만을 항해하던 미국항모가 공격당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북폭을 감행했다. 이 때 국제정세도 좋지 않았다.‘수정주의’ 논쟁으로 등을 돌린 소련과 중국은 베트남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호찌민은 국제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을 호소하며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당시 반소파였던 서기장 레주언을 비롯한 당의 실세 그룹은 의견이 달랐다. 호찌민의 오른팔 보응우옌잡은 대중적 지지와 호찌민의 적극적인 변론으로 무사했지만 그외 측근들은 레주언 그룹에 밀렸다. 그의 뜻과 달랐음에도 ‘항미전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인민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은 여전히 호찌민의 몫이었다. 호찌민이 처음 유서를 쓴 것은 1965년 5월19일,75회 생일 때였다. 자신의 건강이 미국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견뎌낼 수 없다고 예감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우리의 투쟁, 민족 해방을 위한 우리의 투쟁에 많은 역경과 희생이 따른다 해도 우리가 승리할 것임은 분명하다. 만약 그날이 온다면 나는 우리의 동지들, 전사들과 함께 남쪽에서 북쪽까지 순회하며 노인들과 젊은 청년들을 만나려던 참이었다. 국민을 대표해서 우리의 우호국을 방문하여 미국과의 전쟁에서 우리를 지지해준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할 작정이었다.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다. 올해 나는 일흔다섯이다. 나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자고로 드문’ 사람에 속한다. 마음은 아직도 거뜬하지만 육체는 갈수록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그 누가 혁명을 위해 더 오래 살라고 내게 말할 수 있겠는가.” 호찌민은 죽음을 예감한 뒤 남부지방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미국과 전쟁이 한창이던 남부에 꼭 가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남부전선 방문은 제지당했다. 그러자 1968년 레주언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레주언 동지! 동지들은 내 건강을 생각해서 나를 멀리 보내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꾸어 바닷바람을 마시고 투쟁하는 인민들 속에서 생활한다면 오히려 내 건강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입니다.10일간 준비해 6일 동안 해로를 통해 남부에 닿은 다음 육로로 3일을 가면 남부전선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언제쯤 출발할 수 있는지 내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B(Bac/아저씨)로부터- 호찌민이 레주언에게 애걸에 가까운 편지를 쓰면서까지 남부에 가려 했던 이유는 남부 민중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물러가면서 제네바협정이 체결되자 남부혁명가들은 호찌민이 있는 북을 선택했다. 사이공 정권은 남부에 남은 이들의 가족을 줄줄이 처형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터진 뒤 북부 청년들은 그 유명한 ‘호찌민 루트’를 타고 남부전선으로 내달렸다. 수많은 북부청년들은 호찌민루트에서, 남부전선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가 ‘호찌민’이라는 이름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때에 일흔이 넘은 나이를 이유로 후방에서 자연사한다는 것은 호찌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레주언은 끝내 호찌민의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9년 호찌민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79회 생일을 며칠 앞둔 5월10일, 호찌민은 해마다 손을 보아온 유서를 다시 꺼내 마지막으로 가필했다. 그 내용은 세금감면을 비롯한, 전쟁이 끝났을 때 농민·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민생대책들이었다. 전선에서 싸운 전사들에 대한 예우도 매우 구체적으로 썼다.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자신이 그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호찌민의 유서 최종본에는 2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견디고 있는 인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 있다. 베트남 인민들은 수십년 동안 프랑스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와 미국 폭격기의 굉음, 이웃과 친척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인민들은 단 하루도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항전을 이끌어온 호찌민은, 미안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한 항전은 참으로 위대했으나 위대함을 감당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베트남 인민들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혹한 것이었다. 그 희생은 베트남 인민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희생해서 싸우자고 호소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찌민이었다. 그해 8월12일 호찌민의 건강은 더 악화됐다. 당과 정부, 군대의 핵심부는 이미 호찌민의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다. 남부의 전선사령부가 파견한 대표단은 호찌민루트를 타고 하노이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8월18일 호찌민은 비서 부끼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주석관저,10평짜리 목조주택의 계단을 올라갔다. 마지막 걸음이었다.8월24일, 호찌민의 방은 병실로 변했다. 당의 정치위원들과 군사지도자들이 병문안을 왔다.5평도 채 안 되는 호찌민의 방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장 무더운 8월이었고 에어컨은 없었다. 비서 부끼는 호찌민의 머리맡에 앉아 계속 부채질을 했다. 호찌민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먹고 마시려 했다. 간호사 오안이 시중드는 것도 사양했다. 대신 다른 것을 부탁했다. “노래나 하나 불러줘.” 호찌민이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단 한 점의 혈육도 없었다. 라디오 소리만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호찌민은 라디오를 계속 켜두라고 했다. 최후의 순간은 다가오고, 호찌민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호찌민이 겨우 잠깐 잠이 든 것을 보고 비서 부끼는 라디오를 끈 다음 그도 잠깐 눈을 붙일 요량으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힘겹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끼 어이.(부끼야)” 놀라 몸을 돌렸을 때 호찌민은 라디오를 다시 켜라고 손짓했다. “아저씨, 왜요? 오랜만에 눈을 붙이시기에 쉬시라고 껐는데요.” 호찌민은 손을 저었다. “그래도 사람소리가 들려야지…….” 9월2일 오전 9시45분, 호찌민은 숨을 거뒀다.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던 비서 부끼와 보응우옌잡 장군이 그 곁에서 울고 있었다. 호찌민은 이미 임종과정을 찍지 말고 화장하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창밖에서 몰래 호찌민의 최후를 찍고 있었던 군대영화사 팜꾸옥빈의 촬영팀은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에야 방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소령으로 예편한 팜꾸옥빈은 호찌민이 자리에 누운 순간부터 임종하는 때까지 전 과정을 비밀리에 촬영했다는 사실을 집으로 찾아간 필자에게 밝혔다. 호찌민의 시신은 영구 보존처리되었고 그 장면도 모두 기록됐다. 장례절차까지 담은 이 필름은 최고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편집하지 않은 원본 그대로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 공개된 부분도 있지만 원본 가운데 20분 분량도 채 안 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베트남의 당과 정부는 호찌민 서거일도 9월2일에서 하루 늦춘 3일이라 발표하고, 이 사실을 오랫동안 비밀에 붙여왔다. 팜꾸옥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9월2일은 1945년 호 아저씨가 베트남독립정부를 수립한 날이었어요. 호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만도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인데 거기다 날짜가 9월2일이라고 하면 9월2일에 호 아저씨가 세운 나라도 뒤따라 망한다는 적의 심리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 베트남에는 사흘 밤낮으로 비가 내렸다. 베트남 전역에서 울음소리와 눈물이 이어졌다. 남부 정권의 수도 사이공에서도 모든 상가가 철시했다. 장례기간 동안 베트남 전역에서 절도사건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남부의 대통령 우옌반티우조차 정중한 조의를 표해야 했다. 그토록 호찌민을 헐뜯었던 미국 언론들도 애도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호찌민을 표지인물로 세우고 장문의 조사를 내보냈다.‘지금 살아있는 민족주의자 가운데 그만큼 불굴의 정신으로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 버티고 서 있었던 사람은 없다.’고. 그런 호찌민이 죽어서 남긴 것은 10평 남짓한 목조주택 한 채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다가 무엇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주이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퇴직교원 562명에 훈·포장

    정부는 8일 지난 2월 말 명예·의원퇴임한 교원 562명에게 훈·포장 및 표창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과 이무근 경일대 총장, 박명수 전 중앙대 총장, 고재식 전 한신대 총장 등 4명에게는 1등급인 청조근정훈장이 수여된다. 문병언 경기부광초 교장 등 34명에게는 황조근정훈장, 서기원 부산 브니엘예술고 교장 등 35명은 홍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조동균 전남 목포인성학교 교장 등 83명은 녹조근정훈장, 이문호 충북 청안중 교사 등 136명은 옥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이밖에 79명은 근정포장,36명은 대통령 포장,55명은 국무총리표창,100명은 교육부총리 표창을 받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청조근정훈장(4명) 1 박찬석 朴贊石 (前)총장 경북대학교2 이무근 李茂根 총장 경일대학교3 박명수 朴命洙 (前)총장 중앙대학교4 고재식 高在植 (前)총장 한신대학교 ◆황조근정훈장(34명) 5.고문자 高文子 교사 동산초등학교6 故 신중배 愼重培 교감 서울연촌초등학교7 정화자 鄭和子 교장 서울덕수초등학교8 박승봉 朴勝鳳 교장 서울잠동초등학교9 김상욱 金相旭 교감 서울학동초등학교10 박인홍 朴寅弘 교장 서울남성초등학교11 신웅 申雄 교장 서울광장초등학교12 최진흡 崔振洽 교감 서울동자초등학교13 박부자 朴富子 교장 달북초등학교14 송후덕 宋厚德 교감 낙동고등학교15 황봉진 黃鳳鎭 교감 분포초등학교16 이호기 李好基 교감 초읍초등학교17 이연무 李然武 교감 학남고등학교18 김윤환 金允煥 교장 대구칠곡초등학교19 故 김휘영 金輝永 교장 대구동호초등학교20 윤덕자 尹德子 교사 인창초등학교21 문병언 文炳彦 교장 부광초등학교22 김영수 金永壽 교장 오남초등학교23 양건 梁健 교장 청곡초등학교24 오영자 吳英子 교장 부림초등학교25 장대홍 張大弘 교장 안말초등학교26 김재섭 金在燮 교장 구운초등학교27 최일웅 崔一雄 교감 교동초등학교28 故 조공성 趙孔聖 교장 대진초등학교29 김순택 金淳澤 교장 아우내중학교30 김영석 金永錫 교장 화순제일초등학교31 김경자 金京子 교감 야은초등학교32 강승구 姜勝求 교감 북성초등학교33 故 김정섭 金正燮 교장 신현초등학교34 김종인 金宗仁 교수 대구미래대학35 권용호 權容浩 교수 동부산대학36 홍은택 洪殷澤 학장 배화여자대학37 조문규 曺文圭 교수 포항1대학38 故 이창효 李昌孝 교수 한양대학교 ◆홍조근정훈장(35명)39 전태준 田泰準 교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40 최종희 崔鍾姬 교감 신구중학교41 이철구 李哲求 교장 서울방배초등학교42 이병천 李炳天 교감 서울양재초등학교43 노병하 盧秉河 교장 서울송중초등학교44 김효진 金孝鎭 교장 서울경운학교45 서기원 徐基元 교장 브니엘예술고등학교46 이채익 李埰翼 교사 금정고등학교47 류백우 柳伯友 교감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48 김하진 金夏辰 교사 지원중학교49 고병석 高炳錫 교감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50 신봉섭 申鳳燮 교감 동대전초등학교51 김영자 金英子 교감 가평초등학교52 이병숙 李炳淑 교감 마성초등학교53 최우현 崔又鉉 교감 석수초등학교54 정경일 鄭炅日 교감 백마고등학교55 김동환 金東煥 교감 소양초등학교56 김남화 金南和 교감 양양초등학교57 조현묵 趙鉉默 교감 봉오초등학교58 최재필 崔在弼 교감 충주중앙초등학교59 우용의 禹溶義 교감 충주중앙초등학교60 이복희 李馥熙 교장 청주동중학교61 윤복한 尹福漢 교감 강서초등학교62 권오인 權五仁 교감 청산초등학교63 김상근 金相根 교감 공주중동초등학교64 故 김동진 金東振 교장 가사초등학교65 정화자 鄭花子 교감 충남체육고등학교66 성길호 成吉鎬 교감 여산고등학교67 윤종철 尹鍾鐵 교감 촉석초등학교68 송영호 宋英浩 교감 동진초등학교69 홍도윤 洪道潤 교감 덕오초등학교70 오정환 吳正煥 교장 경화초등학교71 김광웅 金光雄 교장 밀성중학교72 임종국 林鐘國 학장 대구미래대학73 최천택 崔天鐸 교수 한신대학교 ◆녹조근정훈장(83명)74 권영문 權寧文 교장 예일여자실업고등학교75 정영순 鄭英順 교장 정원여자중학76 김영기 金英起 교장 충암고등학교77 방현기 方玄基 교장 선정고등학교78 故 김원영 金元永 교사 중앙고등학교79 이승호 李勝浩 교장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80 송한성 宋漢星 교사 중평중학교81 유정민 劉政敏 교감 혜화여자고등학교82 장현숙 張鉉淑 교감 잠실고등학교83 권순규 權純珪 교감 서울불광초등학교84 손관명 孫寬明 교장 서울유현초등학교85 김길성 金吉成 교감 낙동초등학교86 김명자 金明子 교감 신남초등학교87 선현태 宣鉉泰 교사 안민초등학교88 이영조 李榮助 교감 대동고등학교89 박성훈 朴成勳 교사 동명정보공업고등학교90 김영창 金永昌 교감 공산중학교91 한영학 韓永學 교장 영남공업고등학교92 장인식 張仁植 교감 대건고등학교93 故 정명교 鄭明敎 교사 대구용지초등학교94 김영숙 金英淑 교감 대구용지초등학교95 최창길 崔昌吉 교감 영남고등학교96 유태영 兪泰寧 교감 청구고등학교97 이천곤 李天坤 교감 경구중학교98 김종명 金鍾鳴 교장 인제고등학교99 구자서 具子書 교감 인천여자공업고등학교100 박성빈 朴聖彬 교장 살레시오중학교101 양세원 梁世元 교감 대전송촌중학교102 故 송병직 宋炳直 교육연구관 대전교육연수원103 박노정 朴魯貞 교장 호수돈여자중학교104 김여산 金麗山 교감 부천부안초등학교105 방묘희 方妙姬 교감 대야초등학교106 박병익 朴炳益 교감 성남중앙초등학교107 양종호 梁鐘湖 교감 늘푸른초등학교108 류훈열 柳訓烈 교감 주엽공업고등학교109 민철기 閔鐵基 교감 시화공업고등학교110 박경자 朴慶子 교감 근명여자중학교111 민중기 閔中基 교감 진위고등학교112 양승복 梁承福 교감 동춘천초등학교113 정호섭 鄭浩燮 교감 동춘천초등학교114 이상진 李相振 교감 동춘천초등학교115 김희민 金熙敏 교감 후평초등학교116 권창주 權昶周 교감 봉대초등학교117 김희만 金熙萬 교감 명덕초등학교118 기노봉 奇老鳳 교감 구송초등학교화성분교장119 조현영 趙顯榮 교감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120 조영수 曺永秀 교장 강릉명륜고등학교121 이광구 李光求 교감 진천고등학교122 연규만 延圭晩 교감 율량초등학교123 권정자 權貞子 교감 금천초등학교124 이종환 李鍾煥 교감 풍광초등학교125 이규숙 李圭淑 교감 율량초등학교126 박선희 朴仙姬 교감 율량초등학교127 김재용 金在容 교사 공주중동초등학교128 故 박일남 朴一南 교감 논산여자고등학교129 故 오택근 吳宅根 교장 삼례여자중학교130 조동균 趙東鈞 교장 목포인성학교131 서영순 徐永順 교사 쌍봉초등학교132 조태용 曺泰用 교감 영천초등학교133 주홍임 朱洪任 교감 안계초등학교134 김규승 金圭勝 교감 문경공업고등학교135 김광득 金光得 교장 의성고등학교136 故 김창록 金昌錄 교장 양북중학교137 최명 崔明 교감 대구가톨릭대학사대부속무학고등학교138 황장홍 黃金長弘 교장 옥계중학교139 김상순 金相淳 교감 안평중학교140 하용성 河龍成 교감 합포초등학교141 정종상 鄭宗相 교감 함양초등학교142 구태용 具台用 교사 대아중학교143 정만기 鄭萬基 교감 김해여자중학교144 김청 金淸 교사 양산고등학교145 이용우 李龍雨 교감 양산남부고등학교146 故 양문식 梁文植 교장 삼천포중앙고등학교147 신진영 申珍泳 교장 동광초등학교148 양창구 梁昌九 교감 제주중앙초등학교149 박진종 朴鎭宗 교사 신성여자중학교150 석정자 石靜子 교수 동주대학151 김도용 金到勇 교수 동주대학152 조열 趙烈 교수 동서울대학153 임병오 林炳午 학장 영남이공대학154 심종섭 沈宗葉 교수 강원대학교155 윤형자 尹亨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156 김두석 金斗錫 교수 호원대학교 ◆옥조근정훈장(136명)157 김인종 金仁鍾 교사 동성중학교158 문용호 文勇浩 교장 중앙고등학교159 서정구 徐廷龜 교장 광문고등학교160 남호법 南浩法 교장 대일고등학교161 故 이상세 李相世 교사 성내중학교162 최영호 崔英鎬 교감 혜화여자고등학교163 이영자 李英子 교감 강남공업고등학교164 故 피용진 皮容鎭 교사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165 양길자 梁吉子 교감 증산중학교166 김일천 金一天 교사 부산정보관광고등학교167 박태순 朴泰淳 교장 해운대여자중학교168 손영식 孫鍈植 교감 장서초등학교169 하태진 河太鎭 교감 부산중앙고등학교170 이영희 李永熙 교감 운봉초등학교171 박옥수 朴玉守 교감 용호중학교172 김승석 金承石 교감 해운대공업고등학교173 故 이병욱 李丙旭 교감 구서여자중학교174 정경혜 鄭慶惠 교감 동주여자상업고등학교175 김정시 金正市 교감 성광고등학교176 김홍 金弘 교감 평리중학교177 이상백 李相伯 교감 와룡고등학교178 이팔수 李八洙 교감 원화여자고등학교179 권태승 權泰昇 교장 영진고등학교180 정재영 鄭載榮 교감 구남중학교181 이정석 李正錫 교감 현풍고등학교182 안신영 安信瑩 교사 인천남동초등학교183 박민호 朴敏鎬 교감 인천신광초등학교184 김명애 金明愛 교감 인천신흥초등학교185 이우만 李愚萬 교감 인천용현남초등학교186 故 장경선 張慶善 교감 인천서운초등학교187 최지선 崔志瑄 교감 인천박문여자중학교188 김옥은 金玉恩 교감 광주문화초등학교189 박명진 朴明辰 교감 상일중학교190 박내길 朴來吉 교감 각화초등학교191 박정식 朴定植 교감 두암초등학교192 김종윤 金鍾潤 교사 광주효덕초등학교193 강중구 姜重久 교감 동대전중학교194 황태운 黃泰雲 교감 대전고등학교195 나능찬 羅能燦 교감 회덕초등학교196 이옥선 李玉善 교감 도덕초등학교197 故 김은기 金銀起 교감 상패초등학교198 김남주 金南珠 교감 부용초등학교199 강태진 姜太珍 교장 의왕부곡초등학교200 전갑순 全甲順 교감 오마초등학교201 이영휘 李永徽 교감 화성장안초등학교202 황연욱 黃蓮旭 교감 운암초등학교203 故 한민교 韓敏敎 교장 이천송정초등학교204 엄귀순 嚴貴順 교감 원천초등학교205 이정애 李貞愛 교감 조원초등학교206 허관철 許關鐵 교감 이천중학교207 고삼직 高三直 교감 수성여자중학교208 이양자 李洋子 교감 동부여자중학교209 엄준섭 嚴準燮 교감 안양공업고등학교210 오영일 吳英日 교감 평택여자고등학교211 장재영 張在濚 교감 동두천중앙고등학교212 김선희 金善姬 교사 동내초등학교213 신춘애 申春愛 교감 강릉초등학교214 김헌우 金軒友 교감 현북초등학교215 정의환 鄭義煥 교감 천곡초등학교216 권만희 權萬喜 교감 광덕초등학교217 이필동 李弼東 교감 도계고등학교218 이기조 李基祚 교감 고성고등학교219 이문호 李文鎬 교사 청안중학교220 장주현 張周鉉 교감 충북공업고등학교221 강태영 姜泰榮 교감 제천농업고등학교222 권태호 權泰鎬 교감 동량초등학교223 박영상 朴榮相 교감 청주농업고등학교224 안광원 安光源 교감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225 故 한광복 韓光福 교사 진흥초등학교226 김홍빈 金洪 교사 개신초등학교227 이우복 李愚福 교감 삼성중학교228 김응실 金應實 교장 풍세초등학교229 조석교 趙錫敎 교사 대왕초등학교230 김형선 金炯善 교장 판교중학교231 이성우 李成雨 교감 천안북중학교232 김혁석 金赫石 교장 금산여자중학교233 조용호 趙瑢鎬 교감 공주농업고등학교234 김형태 金亨泰 교감 논산공업고등학교235 하봉균 河奉均 교감 천안공업고등학교236 박무영 朴茂永 교감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237 故 유기철 柳起哲 교사 성수초등학교238 故 전이곤 全二坤 교장 아영초등학교239 양봉규 梁鳳圭 교사 원광정보예술고등학교240 강현욱 姜炫旭 교감 전주솔빛중학교241 홍남기 洪南基 교사 상산고등학교242 임성민 林成敏 교감 전주중앙중학교243 이규룡 李圭龍 교감 심창초등학교244 故 최종근 崔種根 교사 순천선혜학교245 정박신 鄭博信 교장 광양중마초등학교246 이병조 李丙祚 교감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247 문병숙 文炳淑 교장 망운중학교248 이명희 李明姬 교감 예천동부초등학교249 故 김재현 金在顯 교감 온혜초등학교250 손성애 孫聖愛 교감 유림초등학교251 안덕환 安德煥 교감 용황초등학교252 정윤옥 鄭潤玉 교감 장기초등학교253 장헌문 張憲文 교장 영광여자고등학교254 故 김경동 金炅東 교사 문경서중학교255 이영옥 李英玉 교감 청도전자고등학교256 안문현 安文鉉 교장 경북인터넷고등학교257 정문호 鄭文昊 교감 구미신평중학교258 류승환 柳承煥 교감 구미정보여자고등학교259 김정순 金晶順 교감 봉원초등학교260 故 조찬래 趙贊來 교감 주동초등학교261 故 안수경 安守敬 교사 밀양초등학교262 故 배영동 裵英東 교사 밀성초등학교263 권영숙 權榮淑 교감 사포초등학교264 故 박무재 朴武在 교장 산외초등학교265 전경주 全炅柱 교감 삼천포초등학교266 박정제 朴正濟 교감 정곡중학교267 이종석 李鐘碩 교감 고성여자중학교268 임일석 林逸錫 교장 해성중학교269 김국치 金國治 교감 마산공업고등학교270 최배규 崔培奎 교감 마산공업고등학교271 故 이우섭 李佑燮 교감 밀성고등학교272 장세철 張世哲 교사 함안고등학교273 신호향 申鎬享 교장 마산중앙고등학교274 박중구 朴重久 교감 합포고등학교275 문정일 文丁一 교감 노형초등학교276 오광균 吳廣均 교감 서귀포초등학교277 정화철 鄭和喆 교수 우송공업대학278 정은식 鄭垠植 교수 동의공업대학279 문창아 文昌兒 교수 동주대학280 구대회 具大會 부교수 대구미래대학281 이종수 李宗秀 교수 경남정보대학282 임채현 林采鉉 교수 동부산대학283 박재환 朴載煥 교수 동부산대학284 인주철 印柱哲 교수 경북대학교285 한은재 韓恩在 교수 계명대학교286 이길룡 李吉龍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7 곽광자 郭光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8 황석자 黃晳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9 故 강진경 康珍敬 교수 연세대학교290 故 송세목 宋世穆 교수 청주대학교291 전용기 全勇起 교수 호원대학교292 박현빈 朴鉉彬 교수 호원대학교 ◆근정포장(79명)293 신승철 申承澈 교장 보인중학교294 故 이달수 李達壽 교사 은평웹미디어고등학교295 신동범 愼東範 교장 상계제일중학교296 백금순 白金順 교감 둔촌고등학교297 故 박도원 朴道元 교사 서울용암초등학교298 박임희 朴臨熙 교장 서울신답초등학교299 故 홍완석 洪完錫 교사 신재초등학교300 윤승삼 尹勝三 교감 계성정보고등학교301 박명복 朴明福 교감 동현중학교302 이인숙 李仁淑 교감 장림여자중학교303 전철부 田鐵夫 교사 대양전자정보고등학교304 김해원 金海元 교감 대구서부고등학교305 송옥헌 宋玉憲 교감 성명여자중학교306 박대흠 朴大欽 교감 현풍고등학교307 정승현 鄭承鉉 교감 경북여자정보고등학교308 유순종 劉順鍾 교감 인천신광초등학교309 오순학 吳淳鶴 교감 문학정보고등학교310 이용성 李勇成 교감 인천함박초등학교311 박오순 朴五順 교사 문산초등학교312 故 신명식 申明植 교사 문산중학교313 박장환 朴長煥 교장 보문고등학교314 김영철 金榮喆 교감 대전양지초등학교315 故 서원기 徐源基 교감 신탄진초등학교316 김순희 金純姬 교감 가납초등학교317 임충균 林忠均 교감 매화초등학교318 이영임 李榮壬 교감 용정초등학교319 김정원 金貞媛 교감 경의초등학교320 신비식 申妃植 교감 성남매송초등학교321 김영희 金英姬 교사 도곡초등학교322 권태범 權泰範 교감 소하고등학교323 김찬용 金讚鎔 교감 수원공업고등학교324 박상열 朴相烈 교사 평택기계공업고등학교325 박군자 朴君子 교감 군포정보산업고등학교326 심현국 沈鉉國 교감 유신고등학교327 황미자 黃美子 교감 영성여자중학교328 강윤석 姜允錫 교장 심석중학교329 김현숙 金賢淑 교감 홍천초등학교330 류영오 柳瑩五 교감 남원주중학교331 이세구 李世求 교감 영월중학교332 박광모 朴光模 교장 심천중학교333 고평식 高平植 교사 개신초등학교334 故 전경우 全敬寓 교사 제천동중학교335 김학수 金學洙 교사 운호고등학교336 故 김창동 金昌東 교사 석교초등학교337 조옥명 趙玉明 교감 온양여자중학교338 차인호 車仁鎬 교장 신풍종합고등학교339 손원의 孫源義 교사 군산영광중학교340 김상칠 金相七 교감 이리영등초등학교341 안병진 安秉鎭 장학관 전라북도교육청342 유재덕 兪在德 교감 전주인후초등학교343 신재도 申載道 교사 호남고등학교344 최성호 崔盛皓 교사 불갑초등학교345 이경호 李京浩 교감 석보초등학교346 허영숙 許英淑 교감 상주초등학교347 정태환 鄭泰煥 교감 지곡초등학교348 정영화 鄭永花 교감 형일초등학교349 김소경 金素卿 교감 인동초등학교350 김영옥 金永玉 교감 경산서부초등학교351 조희축 曺喜丑 교감 자인초등학교352 장영희 張永熙 교장 현일고등학교353 신인묵 辛仁默 교장 오천고등학교354 조봉환 趙鳳煥 교장 경주중학교355 정해유 丁海酉 교감 병곡중학교356 박종현 朴種鉉 교감 청도여자고등학교357 김채숙 金菜淑 교감 회원초등학교358 이상훈 李相勳 교장 거창대성중학교359 김종환 金鍾煥 교사 성지여자고등학교360 조병철 曺秉鐵 교감 삼계중학교361 오경순 吳京順 교수 숭의여자대학362 오인식 吳仁植 부교수 우송공업대학363 김영찬 金榮燦 교수 인덕대학364 김진숙 金辰淑 교수 동부산대학365 양삼승 梁三勝 교수 포항1대학366 심영학 沈永鶴 교수 연세대학교367 조규철 調圭哲 교수 울산대학교368 이정전 李正典 교수 전남대학교369 한기영 韓基榮 교수 제주대학교370 한준노 韓俊老 교수 호원대학교371 이종복 李鍾福 교수 호원대학교 ◆대통령표창(36명)372 故 박종출 朴鍾出 교사 서울상월초등학교373 이옥희 李玉姬 교감 교리초등학교374 김천규 金千圭 교감 부산여자고등학교375 故 김영신 金渶信 교사 덕명정보여자고등학교376 최돈규 崔敦圭 교감 남성여자고등학교377 박정순 朴正順 교감 부산혜성학교378 정헌찬 鄭憲澯 교장 장안제일고등학교379 김재일 金載一 교감 덕원중학교380 이영희 李英姬 교감 인천만수북초등학교381 지진호 池珍昊 교감 인천외국어고등학교382 박인수 朴仁秀 교장 동산고등학교383 안영진 安暎珍 교감 가좌여자중학교384 권선유 權善有 교감 유성여자고등학교385 故 김용호 金龍鎬 교감 전하초등학교386 정점순 鄭占順 교감 부광초등학교387 오세화 吳世和 교감 경의초등학교388 이상희 李相姬 교감 덕풍초등학교389 장인숙 張仁淑 교감 구운중학교390 김안자 金安子 교감 백석중학교391 故 오영진 吳永鎭 교감 광주고등학교392 故 오종덕 吳鍾德 교감 안내중학교393 이규현 李揆炫 교사 상산고등학교394 소선영 蘇善永 교감 이리동중학교395 김정애 金貞愛 교사 여수부영초등학교396 최종구 崔鍾九 교감 포항동부초등학교397 이명애 李明愛 교감 풍기중학교398 송국자 宋國子 교감 봉곡중학교399 최충길 崔忠吉 교감 함창고등학교400 허정숙 許貞淑 교감 명서중학교401 구갑순 具甲順 교감 문산중학교402 이원부 李源夫 교감 김해고등학교403 곽오계 郭五季 교수 대구과학대학404 윤현중 尹玄重 부교수 경북전문대학405 이진표 李振杓 교수 대불대학교406 정원배 鄭元培 교수 부산대학교407 故 고소웅 高昭雄 교수 연세대학교 ◆국무총리표창(55명)408 윤병욱 尹炳旭 교감 유석초등학교409 故 최응도 崔應燾 교감 경희초등학교410 장현숙 張賢淑 교사 성신초등학교411 신유섭 申庾燮 교사 수송중학교412 김연심 金連心 교사 이사벨중학교413 김인근 金仁根 교감 금사중학교414 최정숙 崔貞淑 교사 사직여자중학교415 정정순 鄭靜順 교감 내성중학교416 마동호 馬東浩 교감 부산국제고등학교417 이국웅 李國雄 교사 대구광명학교418 최호숙 崔好淑 교감 대구범어초등학교419 김우태 金瑀泰 교감 삼산고등학교420 조병남 趙炳楠 교감 신흥여자중학교421 김복순 金福順 교감 광주제일고등학교422 김영현 金榮賢 교사 대전백운초등학교423 김정선 金貞善 교사 대전석봉초등학교424 故 안의환 安義煥 교사 대전중학교425 염근호 廉根浩 교감 동구초등학교426 박광희 朴光熙 교감 성복초등학교427 김성태 金聖泰 교감 양곡초등학교428 장은주 張恩珠 교감 의정부서초등학교429 김순옥 金順玉 교감 금상초등학교430 이상옥 李相玉 교감 포천초등학교431 故 최도철 崔道撤 교감 평촌공업고등학교432 전주영 全珠英 교감 부일중학교433 박순자 朴順子 교감 군포중학교434 한명옥 韓明玉 교장 여주제일중학교435 원옥희 元玉姬 교감 여주중학교436 정순희 鄭舜姬 교감 도농중학교437 故 서정호 徐廷晧 교사 중흥고등학교438 故 임상철 林相喆 교사 이월중학교439 故 윤택중 尹宅重 교사 경천초등학교440 오인순 吳仁順 교감 신풍중학교441 이정옥 李貞玉 교감 광천고등학교442 박영수 朴英秀 교사 전주덕진중학교443 이종암 李鍾岩 교사 전주영생고등학교444 유명심 兪明心 교감 정읍여자중학교445 이순희 李順姬 교감 경산중앙초등학교446 故 김동원 金東源 교사 정평초등학교447 김영열 金永烈 교감 안동중앙고등학교448 박종욱 朴鍾郁 교감 김천농공고등학교449 최영철 崔永喆 교사 상주고등학교450 정명숙 鄭明淑 교감 남양초등학교451 이정기 李政基 교감 삼천포제일중학교452 진옥선 陳玉善 교감 영운중학교453 김연실 金硏實 교감 애월상업고등학교454 박금옥 朴今鈺 부교수 신구대학455 원송대 元松大 교수 천안연암대학456 김일남 金一男 교수 포항1대학457 김욱동 金旭東 교수 서강대학교458 이원섭 李元燮 교수 경북대학교459 황윤식 黃潤植 교수 동국대학교460 함병문 咸秉文 교수 서울대학교461 故 심재룡 沈在龍 교수 서울대학교462 백인욱 白寅煜 교수 인제대학교 ◆장관표창(100명)463 서경호 徐璟鎬 교사 중동중학교464 이선종 李善鍾 교사 신정여자중학교465 김경환 金敬煥 교사 등촌중학교466 황선현 黃善鉉 교사 혜원여자중학교467 권순택 權純宅 교사 대일고등학교468 홍익의 洪翼義 교사 서울대현초등학교469 장경신 張慶信 교사 서울포이초등학교470 정용오 鄭用五 교사 서울역삼초등학교471 故 조재식 趙宰湜 교사 수유중학교472 양종화 梁鐘和 교사 종암중학교473 故 권태형 權泰亨 교사 방산중학교474 선일영 宣逸永 교사 경서중학교475 김선혜 金善惠 교사 서울보광초등학교476 이은적 李殷適 교사 서울염창초등학교477 박순희 朴順姬 교사 서울신목초등학교478 박용조 朴龍祚 교사 서울정목초등학교479 이희숙 李喜淑 교사 서울구의초등학교480 이인숙 李仁淑 교감 영도중학교481 엄애숙 嚴愛淑 교감 부산고등학교482 서혜원 徐惠媛 교감 데레사여자고등학교483 김영숙 金永淑 교감 다선중학교484 손양숙 孫陽淑 교감 구남초등학교485 이명옥 李明玉 교감 해운대여자중학교486 남광이 南光二 교감 소선여자중학교487 이현정 李賢貞 교사 가좌여자중학교488 황예자 黃禮子 교사 인천소양초등학교489 최현주 崔賢珠 교사 인천능허대초등학교490 박태구 朴泰求 교감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491 故 이길선 李吉仙 교사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492 김은희 金恩姬 교감 새일초등학교493 김욱생 金旭生 교감 동천초등학교494 이성옥 李成玉 교감 효정고등학교495 김혜자 金惠子 교감 광명북초등학교496 김혜숙 金惠淑 교감 광명북초등학교497 권영숙 權英淑 교감 광명동초등학교498 조계환 趙啓煥 교감 주엽초등학교499 이수자 李修子 교감 고양화정초등학교500 이규영 李圭英 교사 문촌초등학교501 故 노두한 魯斗漢 교사 전곡초등학교502 강춘식 姜春植 교감 상갈초등학교503 故 김재웅 金載雄 교사 양성초등학교504 故 양내석 梁來錫 교사 현덕초등학교광덕분교505 문기섭 文奇燮 교감 세교초등학교506 김차옥 金次玉 교감 수성초등학교507 선향영 宣享榮 교감 중탑초등학교508 김경숙 金京淑 교감 관양초등학교509 곽용임 郭勇壬 교감 의정부고등학교510 김귀식 金貴植 교감 용호중학교511 윤상화 尹相和 교사 용호중학교512 이선애 李仙愛 교감 저동중학교513 故 이승호 李承鎬 교사 호성중학교514 홍정임 洪貞任 교감 양영중학교515 故 최진화 崔鎭和 교사 구리중학교516 전윤주 全潤珠 교사 경화여자고등학교517 변미숙 卞美淑 교사 충북대학교사범대부속중학교518 이정옥 李晶玉 교사 매괴고등학교519 이미미 李美美 교사 삼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520 김영자 金英子 교사 천안부영초등학교521 송해성 宋海星 교사 부여여자고등학교522 오재균 吳在均 교사 천안백석중학교523 문승태 文承泰 교사 공주정명학교524 故 김영순 金榮順 교사 천안봉서중학교525 황금순 黃錦順 교감 신풍중학교526 정종섭 丁鍾燮 교사 남성여자고등학교527 김장욱 金장旭 교사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528 김영표 金永標 교사 상산고등학교529 김종배 金鍾倍 교사 상산고등학교530 김연수 金蓮秀 교감 고산고등학교531 故 김지순 金智淳 교사 남평중학교다도분교장532 조혜숙 趙惠淑 교사 월야초등학교533 양선옥 梁先玉 교사 영주초등학교534 서정숙 徐貞淑 교감 신동초등학교535 최병길 崔丙吉 교감 안강제일초등학교536 윤창식 尹昌植 교감 옥산초등학교537 노윤희 盧允熙 교감 구미신평초등학교538 故 김정화 金貞和 교사 남성초등학교539 김은희 金恩姬 교사 신동초등학교540 박선희 朴善熙 교감 신녕중학교541 故 최우남 崔羽南 교사 구미여자중학교542 김효철 金孝哲 교감 서라벌여자중학교543 故 김명미 金明 교사 구미신평중학교544 채수광 蔡洙光 교사 이동중학교545 염찬기 廉贊基 교사 남해해성고등학교546 故 정훤 鄭煊 교사 김해고등학교547 김철 金哲 교감 선명여자고등학교548 최진숙 崔珍淑 교감 중문상업고등학교549 이영진 李榮振 교사 오현고등학교550 홍순태 洪淳泰 부교수 대구산업정보대학551 김경학 金京鶴 교수 동부산대학552 김경호 金暻浩 교수 대불대학교553 구본식 具本植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554 故 임창호 任昌虎 교수 서울대학교555 이택수 李宅洙 부교수 이화여자대학교556 故 이동수 李東洙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557 조백현 曺伯炫 교수 전남대학교558 정영숙 丁英淑 교수 전북대학교559 송요한 宋要翰 부교수 전북대학교560 정태기 鄭泰基 교수 한신대학교561 이대남 李大南 교수 호원대학교562 박노준 朴魯俊 교수 관동대학교(끝)
  • [부고]

    ● 한병구 경희대 명예교수 한병구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가 6일 오전 5시50분 별세했다.77세. 고인은 경희대 학생처장, 정경대학장, 신문방송대학원장, 제7대 한국신문학회(옛 한국언론학회) 회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인귀(시인) 여사와 장녀 지원(미국 유학), 정원(일러스트레이터), 기태(조선호텔 근무)씨 등 1남 2녀. 빈소는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발인은 8일 오전 8시.(02)958-9545. ● 조계종 명예원로 벽암 스님 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신원사 조실인 벽암(碧岩) 스님이 6일 오전 8시 충남 공주 신원사 벽수산방에서 입적했다. 세수 81세, 법랍 60세. 고인은 이날 법전·지성 등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게에서 “시간을 던져 지옥에 들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면서 “해가 가고 해와 달이 시냇물처럼 흐르누나. 마음에 머금은 바 있되 채우기도 전에 흰머리만 휘날리누나. 한 번 할하다.”고 전했다.192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 간사이(關西)공업전문대에서 공학을 배운 뒤 45년 서울 호국사 역경원에서 월봉 스님을 계사로, 적음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불국사 주지, 중앙선학원 원장과 이사장, 동국학원 이사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조계종 종정 직무대행, 원로의원, 원로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해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10시 신원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된다. ●신호식(건축업)영식(자영업)명식(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직원)태식(자영업)씨 부친상 6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 399번지 자택, 발인 8일 오전10시 (043)533-3905 ●문용린(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용제(의왕시청 계장)용철(자영업)씨 모친상 조광연(해룡목장 대표)정환구(자영업)씨 빙모상 6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31)787-1511 ●권장혁(한국과학기술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남혁(서울남부지방법원 법원장)진혁(대원과학대 사무처장)씨 모친상 하종태(전 포항시 건설국장)조정희(전 우촌초등학교 교감)이원기(전 동국무역 상무)배선욱(전 대우자동차 이사)씨 빙모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3410-6915 ●김성수(뉴욕액셀런트 대표)성택(한국무역협회 홍보실장)윤섭(YTN 마케팅국 부장)씨 모친상 이종두(전주이신경외과원장)김열(국민건강보험공단 부장)민병록(동국대 교수)임준수(미국 거주·공학박사)씨 빙모상 김수진(뉴욕시 검찰청 검사)씨 조모상 이승환(목원대 교수)씨 외조모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6 ●이성수(스포츠한국 광고국 부장)씨 상배 6일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959-1099 ●김기천(전 덕수상고 교감)기원(한라공조 상근감사)기근(배가텍 부사장)씨 모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239 ●권준상(세계로열린교회 목사)문상(종가 팀장)씨 부친상 강준원(선일상사 전무)김진형(구리열린교회 목사)김용호(초원레스토랑 대표)씨 빙부상 박정순(실버코치 대표)씨 시부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291 ●서정남(서울디자인고 교사)성남(국민은행 차장)창남(회사원)씨 모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94 ●최순호(포항스틸러스 기술고문)씨 빙부상 5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7일 오후 12시 (02)590-2660 ●김원식(머니풀 대표·전 매일경제TV 보도국장)씨 모친상 6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590-2697 ●이양우(전 수협중앙회 상무)철우(전 SK 상임감사)숙희(화순산부인과 원장)숙진(전 국민대 교수)행자(재미 〃)숙환(포천중문의대 〃)숙영(성악가)씨 모친상 권오윤(제양 회장)서재남(재미 회계사)이수택(전 SK 전무)씨 빙모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2)3410-6917
  • “사업다각화로 5년내 이익 5배로”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한전선의 임종욱 사장은 3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전선 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의류, 레저에 이은 지속적인 사업 다각화로 현재 1000억원 수준인 에비타(EBITDA·법인세, 이자 및 감가상각비 차감전 이익) 기준 이익 규모를 향후 5년안에 50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 1955년 2월 창립 이후 50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와 쌍방울을 인수하는 등 활발한 인수·합병(M&A)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왔다. 선박용 전선업체인 진로산업과 소주업체인 진로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보유 중인 진로의 채권만으로도 3000억원의 수익이 예상되는 등 ‘알짜 경영’을 자랑한다. 지난달에는 전북 무주군과 기업도시개발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하고 오는 2015년까지 총 7600억원을 들여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금평리·덕산리 일대 248만평을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개발하기로 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難産’ 과거사법 후유증 심상찮다

    ‘難産’ 과거사법 후유증 심상찮다

    과거사법이 3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겪은 ‘통과제의’는 전날 여야 원내대표단이 합의에 이른 과정 만큼 멀고도 험했다. 뿐만 아니라 ‘산후 후유증’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내부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과 민주노동당,‘올바른 과거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의원’ 소속 의원들은 이날 법안의 진실규명 범위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를 포함한 것과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단서조항을 둔 것에 강력 반발했다. ●여당 의원총회 “현실론” “원칙론” 맞서 열린우리당이 이날 과거사법을 당론으로 추인하려는 의원총회는 예상했던 대로 원내대표단 결정에 대한 강경파 의원들의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오영식 원내부대표는 브리핑에서 “유선호·임종인·정청래 의원 등이 이번 여야 합의안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인권 침해 사실을 재조명하고 진실을 규명한다는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논지로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형사상 재심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조사대상에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항도 마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조사대상에 포함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발이 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원혜영 정책위의장은 “과거사법 원안을 만든 사람으로 유감스럽고,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 법을 통해 은폐되거나 왜곡된 주요 사건의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의미있는 것 아니냐.”며 “국가보안법과는 달리 과거사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인과 증거들이 묻혀버릴 수 있기에 여야 타협물이라도 수용해야 한다.”고 현실론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올바른‘소속 의원들 “법안 철회” 촉구 한편 열린우리당 임종인·김원웅 의원,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민주노동당 심상정·이영순 의원, 민주당 손봉숙 의원 등 ‘올바른‘ 소속 의원들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야가 합의한 과거사법안은 당리당략의 산물이기에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과거사법 제정을 위해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종인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밀실 논의로 만든 과거사법은 민족적·역사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소리를 높였다. 김원웅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과거사법을 타협한 것은 독일이 히틀러 추종세력의 동의를 얻어서 나치 처벌법을 만든 셈”이라고 가세했다. 이들은 특히 진실 규명 범위에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조항을 넣은 것은 국가보안법이 애매한 규정으로 민주화운동가를 탄압했던 것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강력 반발했다. 또 과거사청산위원회 상임위원 수 및 자격과 관련,“실질적으로 과거사 규명을 위해 활동한 분들을 제외한 것은 위원회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과거사 청산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고 성토한 뒤 “공소시효 조항이 불분명하고 조사권한에 제한을 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성토했다. 한편 민주노동당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민주인사를 부관참시하려는 입법”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종수 문소영기자 vielee@seoul.co.kr
  • DJ측 ‘국정원 개입’ 부인

    김대중 전 대통령측은 뒤늦게 ‘숨겨진 딸’ 문제가 터져나오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사생활 문제’라며 언급을 회피하거나,SBS TV의 보도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며, 일부 의원은 국정원 개입 의혹에 비판적인 견해를 표시하는 등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딸 아니냐’ 질문에 부정 안해 김 전 대통령의 공보업무를 맡고 있는 최경환 비서관은 20일 “퇴임 후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애쓰고 노심초사하는 분에 대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해서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국정원 개입 문제는 해당 방송에 나온 국정원 관계자들조차 모두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승현씨 측의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마치 뭔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비서관은 ‘숨겨진 딸’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말만을 반복해 궁금증을 남겼다. ●“중요한 역할하는 분을…” “국정원개입 있을 수 없는 일”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북한 핵과 외교 문제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인데 이런 식으로 상처를 입히는 문화가 안타깝다.”면서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그런 걸 갖고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면서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당 권영세 전략기획위원장은 “가장 민주화된 정부라고 자랑했던 ‘국민의 정부’의 국정원이 그같은 문제에 개입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野 “친미·반미 이분법적 사고”

    동북아균형자론과 노무현 대통령의 ’국내 친미주의자’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와 국방위는 1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NSC(국가안정보장회의) 사무차장을 각각 출석시켜 동북아균형자론 등 현 정부 외교정책의 허점을 따졌다. 특히 야당은 노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을 “친미·반미의 이분법적인 사고”라며 강력 비난했다. 여야는 북한인권 문제를 놓고도 시각차를 보였다. ●균형자론 및 친미주의자 발언 야당 의원들은 능력과 효과에 대해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인기영합적 외교를 경계하면서 “차리리 ‘탈미친중(脫美親中)’이 더 솔직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송영선 의원도 갈등조정 능력을 강조했고, 통외통위 박계동 의원은 “자기 힘의 과대 평가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국방위 소속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균형자론은 누구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한 것”이라면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균형자론의 근본 취지”라고 정부를 거들었다. 통외통위 김원웅 의원은 “야당도 큰 차원에서 뜻을 모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방위에선 노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을 놓고 한나라당은 건전한 비판을 친미주의라고 했다면서 발끈했고, 열린우리당은 굳건한 외교정책 수립을 당부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국가 미래를 위해 건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을 친미주의라고 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면서 “친미·반미의 단세포적인 이분법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한·미 동맹에 금이 가도록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극우파나 지나치게 친미적인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굳건하게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해달라.”고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방위에선 NSC의 위상과 관련해서 야당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NSC가 자문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대일 독트린’을 공표하는 등 국가 외교·안보정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은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권경석 의원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대일 독트린’을 발표한 것과 관련,“자문기관의 상임위원장이 어떻게 대외정책을 발표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안영근 임종인 의원 등은 “(작계 5029는) NSC가 대처를 잘했다.” 등의 발언으로 NSC를 옹호했다. ●북한 처형 동영상 공개 통외통위에서는 북한의 공개처형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됐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지난달 북한 함경북도 회령에서 진행된 공개처형 장면을 ‘몰래카메라’ 형태로 찍은 동영상을 10여분간 상영했다. 그는 “판사가 사형을 선고하면 항소권한 없이 즉시 형이 집행된다.”고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폭로했다. 상영 전 열린우리당이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이유로 비공개를 요구해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공개 처형과 관련,“야만적 행동에 통일부가 그냥 넘어간 것은 유감”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박준석 김준석기자 pjs@seoul.co.kr
  • [길섶에서] 어느 부부사랑/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사촌 형부의 죽음을 뒤늦게 알았다. 딱딱한 엔지니어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아내와 가족 사랑이 남다르게 섬세했다. 그의 아내사랑 이야기는 친척들 사이에 곧잘 회자됐는데 그 중에는 겨울철 연탄갈이는 남편이 도맡았다는 것도 있다. 당시만 해도 온돌방 구들장 아래 연탄화덕을 밀어넣고 빼고 하면서 난방을 할 때였다. 이 방 저 방 다니며 시간맞춰 무거운 연탄을 갈아대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은 보통 주부들 몫이었지만 그만은 달랐던 모양이다. 얘기를 화제 삼던 친척들 눈에 감탄과 선망의 빛이 역력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하면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난 것도 아내사랑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암투병하던 아내의 병구완 중 자신이 더욱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말았지만 아내를 임종하기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그다. 장례식에서 그를 만난 조문객들은 그가 곧 아내 뒤를 따를 것이란 예감을 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할 일은 끝냈고 이젠 저세상에서 아내를 사랑해야 할 것이므로. 한달새 양친을 잃어 ‘고아’가 된 조카에겐 슬퍼하지 말라고 말해야겠다. 부모의 행복은 자식에게 기쁨이 아니던가. 부부는 저 세상에서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아! 100번째 프러포즈

    |뉴델리 연합|결혼 100회라는 목표를 세웠던 한 인도인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IANS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인도 오리사주에 살면서 지금까지 92번 결혼했던 우다야나트 다키나 라이라는 남자는 93번째 배필을 놓고 저울질하다 안타깝게도(?) 목표달성 8회를 남겨두고 지병을 이기지 못해 지난 5일 숨을 거뒀다.1924년 4월29일생인 라이가 처음 결혼한 여성은 이웃마을인 덴카날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시바프리야라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의 첫번째 결혼은 신접살림을 어디에 차리느냐는 문제로 불과 보름 만에 파경을 맞게 된다. 라이는 자신이 거주하던 오랄리 마을에서 계속 살고 싶었던 반면 시바프리야는 직장이 가까운 덴카날을 원했던 것. 첫 부인이 떠나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라이는 “세상에 여자가 너밖에 없느냐.”며 자신이 괜찮은 남편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최소한 100명의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게 이 통신의 설명이다. 이후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이 했던 라이는 나야가르 마을의 쿠니 다키나를 92번째 부인으로 맞아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뒀고 이들이 그를 임종했다. 라이는 사망 직전에 미국(3건)과 일본(3건), 독일(2건)에서 들어온 8건의 혼처를 놓고 고심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들은 내 목표 달성을 도우려고 시집오려는 것”이라며 자랑했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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