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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태국대사 등 6명에 노대통령 신임장 수여

    노태우대통령은 29일 상오 청와대에서 한탁채 주태국·이정수 주코스타리카·최남준 주카타르·임인조 주네덜란드·이종무 주쿠웨이트·김용규 주자메이카대사등 신임대사 6명에게 신임장을 수여했다(사진). 노대통령은 또 이병대 주호놀룰루·박종기 주오사카 총영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 “6공정책 마무리”… 다목적 포석/「6·25개각」에 담긴 뜻

    ◎“통치력누수 차단”… 호흡맞는 인사 중용/대선·14대국회 앞두고 당정협조 강화 노태우대통령이 25일 단행한 개각은 앞으로 8개월여 남은 임기 뒤끝을 다지기 위한 중폭의 전열정비로 해석할수 있다. 노대통령은 이제 정권말기에 으레 나타나는 통치권의 약화를 최소화하면서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과 사업들을 말끔히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랐다. 이러한 시기적 상황과 연결시켜 볼때 이번 개각의 구체적 배경으로는 14대 국회의 개원을 우선 꼽을 수 있다.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기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간의 대립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개원국회에서는 민주·국민당등 야당의 치열한 정치공세가 예고되는 상황이다.따라서 보다 확고한 당정협조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각료 개개인도 투철한 의지를 갖고 대처해 나가는 자세가 요구될 수 밖에 없고 이같은 필요성이 중폭의 내각개편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보다 길게는 연말의 대선과 연관지어 특히 당쪽에서 몇몇 각료들의 업무추진력등을 문제삼아 왔고 이같은 지적이 이번 개각을 통해일부 수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각의 직접적인 촉발요인은 오는 7월4일까지로 되어있는 김영순감사원장의 임기만료,14대 국회에서 민자당전국구의원으로 활동하게 될 최병렬노동부장관의 경질의 필요성등으로 함축할 수 있다. 김감사원장은 역대 감사원장중 2번째로 임기를 채워 명예퇴진을 하게 됐다는 점을 내세워 연임을 고사했으나 적절한 후임자가 없다는 등의 사정으로 결국 연임으로 낙착됐다.여기에는 김원장의 정년(65세)이 내년으로 새정부 출범과 함께 퇴진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한때 김원장의 후임으로는 정해창 청와대비서실장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노대통령의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비서실장의 교체는 업무효율상 부적절하다는 판단에서 백지화됐다.또 감사원장이 비록 임기제(4년)라고 하더라도 정치 도의적으로나 직무 성격상 새정부가 들어서면 사표를 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것. 최병렬노동부장관의 경질은 최장관이 민자당 당무위원으로까지 임명됨에 따라 시간문제로 여겨져 왔다.민자당 전국구의원으로 지명되면서 교체대상으로 꼽혀왔던 최장관은 총액임금제실시와 노사문제등 주요업무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동안 몇차례의 개각과정에서 누락됐었다. 최장관의 후임으로는 소관업무의 지속이라는 차원에서 정동우차관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지난 3·24총선 당시 총무처장관직을 물러나 전주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연택씨가 낙점됐다.이신임장관의 임명은 강현욱농림수산부장관과 마찬가지로 호남지역 출마를 마다하지 않은데 따른 배려의 성격이 짙다. 최호중통일원장관과 최상엽법제처장은 임기 2년을 훨씬 넘긴 최장수장관이라는 점에서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경질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후임 통일원 장관인 최영철 청와대정치특보에게는 본무대인 민자당의 전국구의원에서 누락된 것과 연관지어 심기일전의 기회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한영석신임법제처장은 6공출범 당시 청와대민정수석을 맡아 업무를 무난히 추진한 점을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권이혁환경처장관은 69세의 비교적 고령에다 3부장관을 거쳤다는 점에서 후진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차원에서 퇴진한것으로 청와대측은 설명하고 있다. 신임 총무처장관인 이문석전1군사령관은 노대통령이 특별히 아끼는 군후배로 결단력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받아 일찍부터 정부요직에 중용될 것으로 점쳐져 왔었다. 이해원서울시장은 정치권쪽에서 완만한 업무추진을 문제삼아 경질된 케이스. 후임으로는 「일을 벌이면 끝장을 보고마는」성품의 이상배총무처장관이 발탁됐다. 서동권 전안기부장은 한때 후임감사원장,청와대비서실장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김감사원장의 유임이 확정되면서 청와대정치특보로 낙착됐다.민자당 차기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 나타난 김영삼대표와의 밀접한 관계등을 고려할 때 대선과 관련해 노대통령과 김대표간의 핵심적인 교량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학준청와대대변인은 이날 개각내용을 발표하면서 『이번 개각에서는 행정 경험이 없는 생소한 사람보다 계속 행정부에서 일해온 사람이 바람직하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이점에서 6공 출범이후 노대통령과 호흡을 같이해 온 인사들이 상당수 기용됐다는 것이다.
  • 인지세 최고6배 인상/과세대상 문서는 19종으로 줄여

    ◎새달부터 시행 인지세 과세대상 문서가 27종에서 19종으로 간소화되고 세율은 최고 6배까지 대폭 오른다. 또 인지세 납부도 현행 인지첨부방식에서 인지세 납부를 증명하는 인쇄방식으로 바뀐다. 국세청은 25일 이같은 내용의 인지세법 개정안을 마련,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오는 7월1일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지금까지 인지세를 내야했던 과세문서중 ▲약속어음및 환어음 ▲수표장 ▲위임장 ▲입금장 ▲수금장 ▲권리의 설정·이전·변경에 관한 증서 ▲질권·저당권에 관한 증서 ▲승인 또는 추인에 관한 증서등 8종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 대사 2명에 신임장

    노태우대통령은 15일 하오 청와대에서 윤태현주베네수엘라대사와 경창헌주파라과이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했다.
  • 3국대사 신인장 받아/노 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26일 상오 청와대에서 디터 지메스 주한독일대사,모이즈 쿠무에 코피 주한크트디부아르대사,타르시스 은타키비로라 주한부룬디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았다.
  • 주북 러시아 대사/어제 신임장 제정

    【평양 이타르 타스 연합】 유리 파데예프 신임 북한주재 러시아대사는 12일 이종옥 북한 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 외언내언

    1905년 11월,일제의 특명전권대사로서 콧대높이 서울에 온 이토(이등박문).주한군사령관 하세가와(장곡천호도)와 헌병대장이 지휘하는 수십명헌병을 데리고 전후 세번이나 궐내를 들락거렸다.◆「보호조약」이라는 이름의 오조약을 받아들이라는 강압수단.이토는 어전각의를 열게 하여 회의에 간섭한다.나중에는 여덟 대신 개개인에게 가부를 묻는 협박까지.마침내 한규설등 세 대신은 거부하고 이완용등 다섯 대신은 찬성한다.그래서 외부대신 박재순과 일공사 하야시(임권조)사이에 조인된 것이 저 굴욕의 을사오조약.외교권은 박탈 당하고 침략기지 통감부가 설치된다.◆서울대 규장각은 이 조약이 무효라고 발표했다.발견된 원본은 국제법상 필요요건인 통치권자 고종황제의 위임장과 추가서명이 없는 문서라는 것.고종은 칙재를 강요 당했지만 끝내 거부하자 부랴부랴 공포를 서둘렀던 듯하다.이는 고종이 당시의 헐버트 미국공사에게 보낸 밀서에도 나타난다.『짐은 총칼의 위협 아래 한일간에 체결된 소위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짐은 이에 동의한 적도없고 금후애도 아니할 것이라…』◆1907년의 정미칠조약의 경우는 아예 순종의 수결을 위조해 버린다.진짜와 너무나 다른 「●」자.하여간 당시 상황에서 모든 조약은 눈가림 요식행위.힘의 과시였다.대신들의 찬반이나 황제의 재가여부에 관계 없이 침략은 계획대로 진전되었을 터이니까.또 무효고 유효고 간에 그들의 강점 터널도 지나와 버린시점.다만 그들의 방자하고 악랄했던 침탈과 당해야 했던 우리의 정정에 한번더 가슴 미어질 뿐이다.◆얼마전 「분노의 왕국」이란 드라마에서 그들의 왕에게 총을 겨누었다 하여 우리재일공관까지 쳐들어갔던 「이토」의 후예들.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어떤 몹쓸짓을 했나부터 바르게 알아야겠다.한국의 마음은 거기서부터 읽어야 한다.
  • 을사조약 고종 인준없이 체결/일제/정미조약 칙령은 순종수결위조

    ◎“구한말맺은 모든 한­일조약 무효”/서울대 규장각 발표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은 국제법상 효력이 없는 무효조약이며 일제는 순종의 서명을 위조,이에따른 칙령을 발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대 규장각 이태진관장(국사과교수)은 11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1905년 체결한 을사조약은 고종황제의 반발속에 국제법상의 요건인 위임장과 인준서를 갖추지 못한 무효조약』이라면서 『지금까지 을사조약이 대한제국과의 협의아래 체결되었다는 일본측 주장은 모두 허위임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관장은 또 『대한제국의 국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1907년의 정미7조약도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됐음이 드러났다』고 말하고,『특히 정미7조약에 따라 반포된 각종 칙령은 일제가 순종의 서명을 위조해 반포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관장은 이날 고종의 위임장이 첨부되지 않은 을사조약원본및 순종의 자필서명과 함께 위조된 사실이 뚜렷한서명을 공개했다. 이관장은 이와함께 『일본공사와 외무대신 박제순이 체결한 을사조약을 인허하지 않았고 수결을 압인하지도 않았으며 독립된 황제권을 조금도 다른나라에 양여하지 않았다』는 고종의 친서를 실은 1907년 1월16일자 대한매일신보도 공개했다. 이에대해 서울대 신용하교수(한국사회사)는 『이 문서는 을사조약이 국제법상 요건을 갖추지 않은 강제조약으로 원인무효에 해당한다』면서 『이로 미루어볼때 1910년의 한일합방조약등 당시 한일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이 무효이며 따라서 일제 36년동안 행해진 정책들은 모두 불법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일합방등 “불법” 판명/규장각서 밝혀낸 「국권찬탈」 실상

    ◎“대한제국과 협의” 일 주장 허위 입증/고종 끝내 항거… 근대사 재조명 돼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토록한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의 정미7조약이 국제조약상 반드시 필요한 당시 통치권자인 고종황제의 강력한 저항속에 위임장과 인준서없이 작성된 「무효문서」로 밝혀짐에따라 을사보호조약체결에서부터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는 근대사부분에 대한 학계의 재평가가 불가피하게 됐다. 한일합방이 일제의 무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이 다시한번 극명하게 확인된 동시에 당시 대한제국이 무기력하게 국권을 넘겨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따라 우리의 역사교과서의 수정은 물론 일본의 교과서 역시 사실을 바로잡아야 하게 된 것이다. 11일 서울대 규장각(관장 이태진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일제는 이외에도 1907년 12월13일 조선총독부체제에 거의 접근한 「각부관제통칙」등 48건의 각종 칙령을 당시 순종황제의 서명을 위조해 공포함으로써 1910년이전에 반포된 일체의 법령에 대한 정밀조사가 필요하게됐다.이태진관장은 『그동안 일제의 침략이 형식적으로는 법적절차를 갖춘 합법적인 것으로 알려져왔으나 사실은 을사조약자체가 체결조차 되지 않은셈』이라면서 『일제가 조약체결을 추진하다 고종황제를 설득할 수 없게 되자 황제의 동의없이 부랴부랴 세상에 공표해 마치 기정사실인양 역사적 사실을 위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고종황제는 자신이 을사조약에 서명·날인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런던트리뷴지 특파원 투글내스 스토리에게 위탁한 친서(1907년 1월 16일자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를 통해 밝혔고 같은해 6월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세계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2차례에 걸쳐 천명한 것으로 확인돼 고종이 마지막 순간까지 한일합방을 막기 위해 항거했다는 사실에 대한 학계의 재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신용하교수(서울대)는 또 『일제가 고종을 퇴위시킨 것도 일제의 을사조약에 수결할 것을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교수는 『1907년 반포된 48건의 칙령에 있는 순종의 수결은 순종이 1898년 독다사건이후 신체의 일부가 마비돼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사실에 비춰볼때 놀라울 정도로 달필이어서 순종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일제에 의해 위조된 것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을사조약과 정미조약이 법적효력이 없는 「무효문서」임이 증명됨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 일이 국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약체결의 다른 당사자인 일본에서도 마땅히 병행되어져야 하며 일제의 한반도 침략으로 인한 배상의 시기 역시 1910년이 아니라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으로 앞당겨져야 한다고 학계에서는 지적한다.
  • 4국 대사 신임장 받아

    노태우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스테판 모라베크주한체코슬로바키아대사,사무엘 루돌프 인사날리주한가이아나대사,라울 라베주한필리핀대사,투시 보가리주한파푸아뉴기니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았다.
  • 총선민의 수렴·국정기조 유지“양면포석”/「3·30개각」함축과 배경

    ◎안기부장 교체는 선거과정 흠집 문책/「경제자문위」신설… “재도약” 의지 표현/차기 대권후보 결정뒤 또한차례 교체 있을듯 「3·30」개각은 노태우대통령의 국정운영구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기조위에서 총선이후의 분위기쇄신에 초점을 맞춘 「소폭」의 내각개편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당국자들은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민의를 수렴한다는 차원에서 개각이 관행처럼 단행돼 왔다는 점을 구체적인 배경으로 꼽고 있다.이번 개각도 이같은 관행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하며 일각에서 주장하는 「선거부진에 대한 인책」의 의미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이점에서 개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동권안기부장의 경질에 대해서는 안기부직원들의 흑색유인물배포사건,즉 선거결과보다는 선거과정상의 하자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 조차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의 최고책임자를 유임시킬 경우,개각의 기본인 「분위기 쇄신」의 효과마저 상실될 수가 있다는판단이 종국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관련 김학준청와대대변인은 서부장이 이사건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지난주에 이미 노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권력의 핵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안기부장의 교체여부는 민자당의 차기대통령후보 결정시기를 불과 2개월여 남겨두었다는 현실적 특성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끌어왔다.서부장이 유임이 될지,또는 어떠한 인사가 신임부장에 임명되느냐에 따라 차기 대권흐름의 방향을 어느정도 가늠해 볼수 있을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서부장의 경우 누구보다도 노대통령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측근이라는 점에서 한때는 유임쪽으로 기우는 것으로 관측됐었다.대통령 임기말의 과도기적 상황을 노대통령의 의도대로 끌어나가는데는 서부장이 최적임자라는 것이 유임을 점치는 쪽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서부장의 유임은 자칫 야권을 비롯한 여론의 지속적인 표적이 될 수 있고 결국 집권말기 통치에 있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상연내무장관의 안기부장기용은 서부장의 경질을 전제로 할때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경북출신의 이신임부장은 전임자 못지 않게 노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6공의 실세」로 여겨져 왔었다.군출신으로 서울시부시장,안기부1차장,청와대민정수석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보여준 행정수완,특히 탁월한 조직장악력을 높이 평가받아 왔다. 이같은 배경에서 놓고 볼때 신임 이부장 역시 전임자와 같은 역할범주내에서 노대통령의 성공적인 임기 마무리를 위해 진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시비의 소지는 있지만 차기정권창출이라는 측면에서 견주어 보더라도 신임 이부장과 전임 서부장과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일부에서는 이부장의 발탁을 민자당 이춘구의원의 사무총장 기용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어려운 시기에 노대통령이 가장 믿고 중용할 수 있는 인사가 바로 이들 두사람이라는 것이다. 안기부장을 제외한 일반 각료들의 교체는 최병렬노동부장관과 김종인경제수석의 민자당 전국구진출로 일찍부터 예고됐었다.그러나 최장관의 경우,임금협상을 둘러싼 쟁점이 남아있는등 시기적 이유때문에 이번 개각에서 제외된 것으로 발표됐다. 김경제수석의 경우도 현재의 경제기조를 그대로 유지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유임이 유력시 되기도 했으나 지난해 12월 개각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재임 6개월만에 물러난 이진설전건설부장관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강현욱전경제기획원장관의 농림수산부장관기용은 지난번 총선당시 호남(군산)지역에서의 선전을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강신임장관은 총선출마 당시 설사 낙선하더라도 적절한 배려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었다. 이동호충북지사가 내무장관으로 입각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청와대측은 『재무관료 출신이지만 충북지사취임이후 내무관료로서도 상당한 업적을 쌓았고 앞으로 경제활성화를 추진하는데에 있어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시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노건일청와대행정수석의 교통부장관 승진은 오랜기간 청와대에서 무리없이 업무를 수행해 온데 대한 「배려」의 성격이 강하고 심대평국무총리실행조실장의 청와대행정수석기용은 심실장의 개인적 능력등을 고려한 자연스런 자리바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록 김경제수석은 물러났지만 선거기간중의 「경제정책실패」시비에도 불구하고 최각규부총리등 대다수 경제각료가 유임된 것은 현재의 경제기조를 유지해 나가면서 경제활성화를 도모해 나가겠다는 노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이점에서 노대통령이 청와대비서실에 「경제자문위원회」를 신설토록 특별지시한 것은 유념해 볼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개편된 내각이 1년이 채 남지 않을 노대통령의 임기말까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이번에 유임된 최노동장관이 14대 국회 원구성에 즈음해서는 교체될 것이라는 개연성때문이다.다만 오는 5월에 있을 차기대통령후보결정이후 재조정될 여권내의 역학관계와 맞물려 그 시기와 폭이 좌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개각있던 날… 부처별 표정

    ◎“「공명선거」높은 점수” 희색/내무부/갑작스러운 교체에 “의외”/농수산/임 장관 식사중 전화받아/교통부 개각이 발표된 30일 하오 해당부처에서는 이날 상오의 술렁거림과는 달리 정작 발표가 되자 인선이 의외라는 평과 함께 업무의 인수인계를 위한 관계관들의 움직임이 빨라지는등 부서장교체에 따른 업무차질을 해소하기 위한 활동에 분주했다. ▷내무부◁ ○…내무부직원들은 이상연장관이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동호충북지사가 후임장관으로 내부승진하자 「이번 인사는 내무부인사」라며 밝은 표정들. 게다가 역시 내무부출신인 노건일청와대 행정수석마저 교통부장관으로 기용된데 대해 자신의 일처럼 반기는 모습. 그러나 이동호지사의 장관발탁을 놓고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일각에서는 『재무부출신에 내무부의 안방자리를 내준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기도. 직원들은 이상연장관이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지난 총선을 공명정대하게 이끈 것이 높은 평가를 받은것 같다면서 『매사에 합리적인 이장관이안기부차장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한때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 안기부의 면모를 쇄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 ▷농림수산부◁ ○…농림수산부직원들은 조경식장관이 그동안 무리없이 농정을 펴와 유임되거나 영전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갑자기 경질되자 다소 의외라면서도 후임 강현욱장관이 전북지사와 경제기획원차관 등을 거친 때문에 농정의 일관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반기는 모습. 직원들은 『조장관이 그동안 42조원의 예산이 드는 농어촌구조개선대책·품목별경쟁력종합대책 등 굵직한 대책을 4개나 추진했고 우루과이라운드(UR)농산물협상에서도 적절한 대처를 해왔었다』며 이번에 교체된 것은 단지 재임기간이 1년6개월로 현직 각료중 최장수라는 것이 그 이유같다고 분석. ▷교통부◁ ○…교통부는 전임 임인택장관이 무난하게 업무를 수행해 온데다 이번 개각대상폭에 전혀 거론되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으나 경질소식이 전해지자 당황해하는 분위기. 임장관은 이날 상오 주례확대간부회의를 3시간동안 주재하며 1·4분기 업무를 분석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에 임한뒤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중 정원식국무총리로부터 경질사실을 전화로 통보받고 급히 청사로 돌아와 이임준비. 교통부 간부직원들조차 발표시각때 까지도 설왕설래 하다가 공식발표를 방송으로 전해듣고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교통부 직원들은 경부고속전철·영종도신국제공항착공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장관이 경질돼 업무의 연속성을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임 노건일장관이 내무행정관료와 청와대행정수석으로 쌓은 폭넓은 행정경험이 교통행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기를 기대.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개각에서도 내부승진이 안된 점을 아쉬워하기도.
  • 4국 대사 신임장 받아

    노태우대통령은 27일 상오 청와대에서 알프레도 팰라 카세다 주한페루대사,나세르 빈 하마드 주한카타르대사,지오반니 불라이티스 주한교황청대사,파루크 카스라위 주한요르단대사등 4명의 신임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았다.
  • 사실규명 못한 「문협청문회」(건널목)

    ○…제19대 문협이사장 후보등록신청서 접수거부 논란에 관한 문단 초유의 청문회가 25일 열렸으나 사실규명에 이르지 못한 채 혼란상만을 더하는 씁쓸함을 남겼다. 이날 청문회에는 황명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부이사장단과 각 분과위원장 등이 30여명 참석,내용증명을 발송하여 청문회 소집의 발단이 됐던 피 소환인인 시인 이충이씨와 유한근문협사무국장을 상대로 질의를 벌였으나 참석자들의 회의진행 미숙과 치밀하지 못한 편가르기성 질문에 의해 청문회 본래의 목적이었던 사실규명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특히 청문회 초반 회의진행자 선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한 참석자가 퇴장을 선언하고,질문이나 답변과정에 감정이 격앙되어 탁자를 치거나 큰 소리를 내는등 기대밖의 풍경이 연출돼 참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조병화씨를 이사장 후보로 대리접수 시키려던 이충이씨의 서류 거부여부로 이날 관심의 초점이 됐던 문협사무국장 유한근씨는 답변에서 자신의 행위는 『위임장을 첨부하지 않은 서류는 대리접수할 수 없다는선거관리위원회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거부행위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이어 그는 정관에는 없는 위임장의 근거가 선거에 앞서 열렸던 선관위 2차회의의 결정사항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공고나 공지문을 낸 적은 없다고 답변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서류를 접수시키기 위해 이씨가 유씨를 만났던 문협 지하다방이 공식적인 자리였느냐 사적인 자리였느냐하는 점과 이씨가 위임장을 받으러 조병화씨에게 가서 접수마감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은 점이 자의에 의한 것이었나 타의에 의한 것이었나 하는 점이 논점으로 떠올랐다.이씨는 다방에서의 만남이 유씨가 자신을 속여넘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유씨는 당시의 자리를 사적인 만남으로 알았다고 답변했다.또한 추천인 날인 부분에서도 이씨는 본인들의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한 반면 유씨는 이씨가 추천인 한 명의 허락만 받고 나머지는 직접 도장을 새겨 찍었다는 말을 당시했다고 말해 답변이 엇갈렸다.
  • “성숙한 문화의 길” 이수정장관에 듣는다/대담=임영숙문화부장

    ◎“청소년 정서함양 「산문화교육」힘쓸터”/문화의 중앙집중 탈피,지역시설 확충/국립극장등 예술공간의 특성화추진/국민의 문화욕구­정부재정의 갭 해소가 과제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맞물린 올해 국민들의 관심은 어쩔수 없이 그쪽으로만 쏠려 한가롭게 문화가 비집고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취임 2개월을 넘긴 이수정문화부장관은 『어렵고 조심스러운 때』의 문화행정을 조용히 이끌어 나가고 있어 「바람개비 효과」를 노린 떠들썩한 문화행정을 폈던 이어령전임장관 시절에 비해 문화가 더욱 잊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성숙한 사회라면 정신활동의 소산인 문화가 현실정치에 짓눌리지 않으며 떠들썩하게 강조될 필요도 없다.또한 초대 문화부장관이 문화바람을 일으킨 것으로 그 역할을 다 했다면 2대장관은 그 바람에 실체를 부여하는 차분한 문화행정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우리 사회가 냄비처럼 쉽게 들끓지 않고 열린 다양성을 지닌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때보다 문화의 조용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의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수정장관의 문화부는 문화를 앞세우기 어려운 오늘의 상황에서 큰 강점을 지닐수 있다. ­지난 두달동안의 문화행정을 통해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국민의 문화욕구와 정부재정 사이의 갭을 메우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지금은 정치·경제·문화 모든면에서 전환기입니다.조급하지 않게 벽돌 쌓듯 최선을 다해 가면 조만간 욕구가 현실화되는 시기가 오리라 믿습니다. ­그 갭을 메울 구체적인 방안은 있으신지요.이른바 「실세장관」으로 알려진 이장관의 힘으로 현재 국가예산의 0.5%에 불과한 문화부예산이 93년에는 좀더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청와대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바 일을 성실히 했을뿐 「실세」라는 정치적 파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물론 올해 문화부 예산 1천6백억원은 다른나라의 문화예산에 비해서도 월등히 적습니다.그래도 우리의 발이 현실이라는 땅을 딛고 서있는 만큼 예산타령만 할수는 없으며 제한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야지요.분명히 말씀드릴수 있는 것은 제가 이자리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 하겠다는 것입니다. ­최근 문화부와 산하기관 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셨습니다.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수정시대」가 열리는 셈인가요. ▲문화부에 상당히 오랜 기간 인사가 없었습니다.조직의 활력을 찾기 위해선 일정기간이 지나면 진용을 개편해야 합니다. ­예술의 전당 직제를 개편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술의 전당은 영국의 바비칸센터나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에 뒤지지 않는 하드웨어를 갗추었습니다.이에 걸맞는 소프트웨어를 채워 넣기 위해서는 체제개편이 필요했지요.예술공간이 특성화돼야 한다는 것이 제 기본생각입니다.이를테면 국립극장은 전통적인 공연만 하고 예술의 전당에 궁극적으론 교향악단등 산하 예술단체가 만들어져야 겠지요.또 예술의 전당 자료관과 문화발전연구소의 자료실을 통합한다든지 해서 그곳에만 가면 예술관계자료는 무엇이든 찾을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장관이 구상하고 있는 장기적 문화정책과 단기적 문화정책을 말씀해주십시오. ▲무엇보다 삶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문화정책을 중·장기적으로 펴 나갈 생각입니다.또한 민족이 민족이게끔 하는 독창성을 바탕으로 문화를 창달해 나가야지요. 가장 독창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그렇다고 배타적이어서는 안되겠지만 말입니다. 열린 문화·생명력 있는 문화가 문화발전의 요체입니다.이를 위해 정부는 자유로운 문화예술활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현재 전국 곳곳에 마련되고 있는 종합문예회관 등 문화의 마당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활동체제를 확립해야지요.입시위주 교육에서 정서가 고갈된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끼는 법」을 심어주느냐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취임 당시부터 청소년문화 육성문제는 특별히 강조해 오셨지요. ▲일단 대학입시에 매달려야 하는 고등학생은 접어두더라도 국민학생·중학생은 적어도 1년에 한번 좋은 연극·음악회장을 찾아서 이해하고 느껴야 합니다.학교에서 집에 돌아 오면 공부방에 박혀 책만 달달 외며이어폰을 꽂고 외국가수의 노래만 듣다 직접 그들을 만나 보니 졸도까지 하게 된 것이 바로 「뉴 키즈 소동」입니다.교육부 소관이긴 하지만 교육 자체에도 산교육이 필요합니다.그래서 문화부가 청소년을 초대하고 찾아가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교육부에도 현장학습을 교과제도에 반영시켜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자주 피력하고 있습니다.이렇게 가능한것 부터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지요. ­문화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모든 것,겨레를 겨레답게 하는 것,언어 풍속을 포함,국민들의 자기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가치체계』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신바 있는데 모든 국민이 문화향수권자가 될 수 있도록 하기위한 특별한 구상이 있는지요. ▲경제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여건이 조성되어 정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중전체의 문화향유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1년에 대학을 졸업하는 음악·무용전공자가 1만여명에 달하고 미술전공자도 5천여명이나 됩니다.예술전공학생이 이만큼 배출되기 위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엄청난 숫자의 예비 학생들이또 있습니다.우리 사회의 과제는 이를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됐음에도 문화의 중앙집중현상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그 대책은 무엇입니까. ▲문화부는 올해 지역문화시설 확충에 어느때보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그러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있는만큼 이제는 지역주민이 그 지역문화를 일으키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시·도의원들부터 문화투자를 회피하고 있지 않습니까.지방자치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지방자치제는 지역민의 경제적 부담을 필요로 합니다. ­지난해 떠들썩했던 구조선총독부 청사 이전문제는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철거돼야 한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능은 잠시라도 중단시킬수 없고 새 박물관을 세우려면 6천억원 이상이 필요하지요.지금과 같은 경제상황에서 너무 조급한 명분론은 찬성할수 없습니다.그러나 용산 미군기지가 옮겨가면 그자리에 국립박물관과 국립극장,국립미술관을 세울수있는 부지를 마련해달라고 건설부와 서울시에 적극적으로 요청해 놓고는 있습니다. ­남북문화교류는 어떻게 추진하실 계획입니까. ▲남북이 하나라고 말할수 있는 것은 문화때문입니다.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에 교류를 하려면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요.우선 언어·고대사·문화재 등 민족의 기본적인 것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수용할수 있는 것부터 교류해 나가야겠지요. ­대학시절 4·19선언문을 기초하셨고 그 원고가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는데 문화부 장관으로서 독립기념관에 갔을 때 감회가 어떠하셨습니까. ▲독립기념관 개관 당시 육필원고를 써 달라고 해서 새로 써 준 것입니다.그때는 제가 문화부장관이 아닐때지요.저희 세대가 살아온 기간은 파란이 많았습니다.일제하에 태어나 해방의 감격을 맛보았고 한글 첫 세대로서 6·25와 4·19,5·16,유신을 겪었습니다.지금은 과거 희망이 없었던 시대에 우리 선렬들이 꿈꾸었던 소망이 이루어져가는 과정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그것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그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 대사 6명에 신임장/노 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13일 상오 청와대에서 이상열 주이란대사·김정훈주파키스탄대사·이상구 주말레이시아대사·김이명 주벨기에 대사·송영식 주트리니다드 토바고대사·최락천 주가봉대사등 6명의 신임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했다.
  • 대사 14명에 신임장/노 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3일 상오 청와대에서 유종하주유엔대사등 신임대사 14명에게 신임장을 수여했다.
  • 한­러연 동맹관계 희망/러연 부통령/양국협력증진 기반 튼튼

    ◎홍순영대사 신임장 받고 밝혀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연방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동맹관계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국가로 보고 있다고 루츠코이 부통령이 2일 밝혔다. 루츠코이 부통령은 이날 홍순영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으나 동맹의 성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루츠코이 부통령은 또 취임 이래 지금까지 여섯 차례의 한국사절단을 만나본 결과 한국인들이 러시아에 호의적 시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하고 따라서 양국간 상호 협력 증진의 기반은 튼튼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최고위급 지도자가 우리나라를 잠재적 동맹국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올 9월에 성사될 것으로 보이는 옐친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서 동맹국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중장 1명등 장성 32명 배출/장교 10여만 길러낸 ROTC

    ◎72개 대서 연 3천∼4천명 임관/“군번은 아우가 빨라”… 쌍둥이장교 탄생/현역상사 4명의 아들들 소위계급장 ○…지난 61년에 창설된 ROTC(학군사관후보생)제도는 63년에 제1기생을 배출한 이후 해마다 3천∼4천명의 초급장교를 임관시켜 지금까지 모두 10만여명의 장교를 양성했다. ROTC 출신 초급장교들은 대부분 2년4개월의 의무복무기간을 마치면 전역하나 10%정도는 장기복무를 지원,직업군인의 길을 걷는다. 그간 ROTC 출신장교 중에서는 중장 1명,소장 8명,준장 23명 등 장성 32명이 배출됐다. 창설 당시 전국 16개 종합대학에만 설치됐으나 현재는 72개 대학으로 늘어났다. ○…올해 임관식에는 성균관대 출신의 쌍둥이 육군소위가 탄생,화제가되고 있다. 김상철소위(23·문과대 문헌정보과 졸) 김현철소위(23·농대 농업경제과 졸)가 주인공. 이들은 69년 8월20일 5분 간격으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로 대학입학부터 ROTC를 지원,졸업·임관식까지 함께한 뒤 보병소위로 임관했다. 형 김상철소위는 『대학에서 성적은 아우보다 앞섰으나 군사훈련성적으로 정해진 군번은 아우가 앞섰다』며 『아우가 더 훌륭한 선임장교』라고 말했다. ○…이날 임관식에는 현역 육군상사들의 아들 4명이 소위로 임관,아버지 보다 계급이 높은 군인이 태어났다. 김영일소위(22·경희대 영문과)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러워 ROTC를 지원했다』며 아버지 김유근상사(51·비호부대 선임하사)에게 거수경례로 임관신고를 했다. ○…서봉룡소위(23·명지대 생물과)는 아버지 서웅경씨(48)도 ROTC 6기로 임관한 예비역 장교여서 2대에 걸친 ROTC장교 부자가 됐다.
  • 김 부자 권력승계 4월께 윤곽잡힐 듯(오늘의 북한)

    ◎김정일 전권장악 어떻게 이뤄질까/7차당대회의 전격 소집과 때맞춰 작업/주석·당총비서직 한꺼번에 물려줄지도/형식적 절차 거친뒤 주민지지 노려 장엄한 의식 준비 북한이 지난해 12월24일 김정일을 인민군최고사령관에 임명한데 이어 새해들어서면서 관영 언론매체들을 총동원,김정일후계체제구축을 과시하는 보도활동강화에 나섬으로써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임박했음을 더욱 뚜렷이 하고 있다. 현재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권력승계과정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북한이 바야흐로 「김일성의 유일체제」로부터 김정일의 「유일적 지도체제」로 대체되는 중간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이 김일성의 국가주석,당총비서직을 언제 어떤 절차에 따라 승계받게 될 것인가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에서의 권력승계의 핵심은 국가기구로서의 「주석」직과 당차원의 「당총비서」직 장악이다. 지난 72년 12월27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채택시 신설된 국가주석은 「국가의 수반」이자 「국가주권의대표」로 ▲중앙인민위 지도 ▲정무원회의 소집 및 지도 ▲전반적 무력의 지휘통솔 ▲조약비준 및 폐기 ▲특사권 행사 ▲외국사절의 신임장·소환장 접수 ▲각종 법령·명령·결정의 공포 등 국가권력 전반에 걸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한다. 이에대해 당총비서는 지난 66년 10월12일 당중앙위 제4기 14차 전원회의에서 기존의 당위원장·부위원장제도를 폐지하고 신설한 포스트다.당총비서는 각 소관 업무별로 당의 모든 사업을 관장하는 당중앙위 비서국 비서들을 전반적으로 지도·감독하는 직위로 당 우위 정치체제인 북한에서는 사실상의 최고 실권자로 여겨지고 있다. 김일성이 초대 「국가주석」「당총비서」에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단 한번의 승계없이 혼자 이 권력의 핵을 독차지해오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제6장 90조는 주석을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격)에서 간접선거형태로 선출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그 임기도 4년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지난 72년 제5기 1차회의(12월25∼28일)에서 사회주의헌법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동시에 국가주석직을 신설,초대주석으로 김일성을 선출했으며 헌법상의 임기를 1년 넘긴 77년(12월15∼17일) 제6기 1차 회의에서 다시 김일성을 2대 주석으로 추대했다. 북한은 또 제7기 1차회의(82년4월)때 제3대 주석을 선출한데 이어 86년 8기 1차회의(12월)에서 김일성을 제4대 주석으로 선출함으로써 비록 요식행위에 불과하긴 하지만 최고인민회의 매기 1차회의에서 김일성을 국가주석에 유임시키는 모양새를 갖춰왔다. 지난 90년 5월24∼26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와 함께 시작된 김일성의 제5대 주석 임기는 오는 94년 최고인민회의 개최때까지로 돼있다.이에따라 차기 국가주석은 94년 새롭게 구성될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규범적 절차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12월 『주석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되며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는 헌법 제93조의 규정을 무시한채 주석이 아닌 김정일을 군최고사령관직에 앉혔다.북한은 또 주석직에 수반되는 직위인 군최고사령관 추대절차를 최고인민회의에서 밟지 않고 당중앙위 전원 회의에서 결정하는 위헌을 했다. 이는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그만큼 다급해진 북한사정을 내비친 대목이자 자신의 80회 생일인 4월15일 이전에 김일성의 주석직포기라는 「탈규범적」상황 유추를 낳게한 「변칙」플레이이기도 하다. 김일성의 국가주석직포기의 경우에도 최고인민회의의 소집은 필요하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소집,국가주석을 선출해야한다.북한사회주의 헌법 제77조는 1년에 1∼2회의 정기회의와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 임시회의를 개최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어 최고인민회의 소집은 항시 가능하다. 더욱이 북한은 통상 4월초에 결산및 예산심의를 위한 회의를 매년 소집해오고 있기때문에 김일성부자의 권력승계시점으로 점쳐지고 있는 4월15일은 정례적인 최고인민회의 소집시기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총비서」의 승계는 주석직에 비해 오히려 그 절차가 간단한 편이다. 북한로동당규약 제24조에 따르면 총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출하게 돼있고 회의소집은 6개월에 1회이상 당중앙위원회가 하도록 명시돼 있다. 또한 이 규약에는 총비서의 임기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따라서 당총비서는 임기가 일정하지 않고 당중앙위전원회의의 소집이 항시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가주석보다 승계절차가 간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규약은 당대회를 당의 최고지도기관으로 못박고 있고 그의 기능으로 ▲당강령과 규약의 채택 또는 수정보완 ▲당노선과 정책및 전략전술에 관한 기본문제등 당사업의 중추적 현안결정권을 부여하고 있어 당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당총비서의 선출은 당대회와 무관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80년 북한은 제6차당대회 마지막날인 10월14일 당 제6기 1차 전원회의를 열고 김일성을 총비서로 재추대하고 김정일을 정치국상무위원·비서·군사위원으로 선출한바 있다. 또 북한으로서는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동의 내지 지지가 어떤 수준이냐에 따라 체제유지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주석」「당총비서」직 승계는 규범적인 간편한 절차를 거친후 내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7차 당대회라는 장엄한 「통과의식」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관측통들은 4월중에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제9기 3차회의에서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가 이뤄지거나 아니면 로동당중앙위 전원회의를 소집,당총비서직을 승계케하는 형식을 통해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공식화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김일성이 갖고 있는 주석직과 당총비서직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김정일에 넘겨줄 것이냐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한 정보가 없다.다만 북한이 철저한 가부장적 논리에 기초한 정치체제임을 감안할때 ▲주석직만 먼저 승계하거나 ▲주석·총비서 두 직위를 한꺼번에 물려줄 수는 있어도 총비서직을 먼저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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