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엽기녀’로 왕창 망가졌어요”
기자의 기분을 살피는 톱스타는 드물다.CF 카피 ‘부∼자 되세요.’로 정상에 우뚝 올라선 김정은(26)이 그 몇 안되는 사근사근한 톱스타에 든다.약속시간에 늦더니 연신사과의 말에다 안절부절.촬영현장에서 “착한 배우” 소리를 듣는 이유를 대번 감 잡겠다.
그가 첫 영화를 찍었다.한국 최초의 패러디물 ‘재밌는영화’(12일 개봉,좋은영화·시선 공동제작)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다.제목 뺨치게 재밌는 캐릭터의 상미 역.패러디영화의 참맛을 보여주기 위해 사정없이 ‘팍’ 망가졌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보다 더 매스껍고 적나라한 구토 연기를 구사했다면 얘기는 끝난 거다.
“자진해서 바닥까지 망가지려고 애썼죠.단순히 원작을베끼는 패러디는 재미 없잖아요.진짜 ‘엽기녀’는 어떤모습일까,얼마나 많이 고민했다구요.” 전지현의 지하철안 구토 장면을 어떻게 더 엽기만발하게 패러디했을지,상상에 맡긴다.
솔직함이 매력이다.예쁘지도,그렇다고 연기가 수준급인것도 아니라고 남의 얘기하듯 자신을 평한다.“깎은 듯한미인보다는 까놓고 자신을드러내는 스타일이 대중에게 먹히는 시대이며,시대를 잘 만난 덕”이라고 말할 수 있는배우.‘필살기’는 애드립이다.그가 나오는 CF속 재미있는 멘트들은 십중팔구 그의 아이디어로 즉석에서 ‘급조’됐다.
“뭘해도 제 방식으로 가버려요.말투도 마찬가지고.대본대로만 따라하는 건 도통 낯간지러워서요.CF에서 갈고 닦은 애드립이 데뷔영화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MBC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올해로 데뷔 6년째.스크린 데뷔는 아주 오랜 꿈이었다.그러나 패러디물을 첫 영화로 찍는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미쳤다고들 말렸단다.“영화를찍고 싶어 칼을 싹싹 갈고 있었어요(칼가는 시늉까지 하며).꼭 여배우 데뷔작은 멜로라야 돼요? 제 생각은 달라요.
광고에서 ‘딱 좋아,딱 좋아’하며 까불다가 느닷없이 고상한 멜로 찍는다면 7000원 내고 보러올 관객이 얼마나 될라구요.” 영화작업에 매달린 게 5개월.최근 엑스터시 음성 판정을받기까지 남모르는 속앓이가 엄청났었다.하지만 개봉을 며칠 앞둔 지금 기분은 다시 “최상”이다.집채만한 스크린에 김정은이란 이름 석자가 콱 박힌다고 생각하면 소름돋게 즐거워진단다.데뷔작이 그렇게 자신있단 얘길까.“제가 패러디한 배우들,그러니까 김윤진(‘쉬리’)·전도연(‘접속’) 모두 불러서 빨리 보여주고 싶다니까요.”황수정기자 sjh@
■'쉬리' 줄거리의 코믹 패러디…'재밌는 영화'.
손익 따지기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장규성 감독의 데뷔작 ‘재밌는 영화’는 이래저래 주판알부터 튕기게 만든다.우선 국내 최초의 코믹 패러디 영화라는 기획 아이디어만으로도 흥행의 절반을 보장받고 들어갈 거란 계산이다.
이 영화가 패러디 대상으로 끌어들인 작품은 ‘순 한국산’ 히트작 28편. 다음 순간 또 주판 위로 올라가는 생각은 ‘과연 그 많은 히트작들의 인기에 무임승차할 자격을 갖췄을까?’이다.대답은 쉽지 않다.
‘롱풀리 어큐즈드’,‘무서운 영화’같은 할리우드 패러디물에 익숙하다면,이 영화가 교과서로 삼았을 한국산 히트작들을 어림잡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예상대로 영화의 굵직한 줄거리 얼개는 ‘쉬리’다.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막으려급파된 일본 극우 천군파 소속의 킬러 상미(김정은)는 한국 정보요원 황보(임원희)의 애인으로 감쪽같이위장한 채 살아간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황보와 그의 절친한 동료 갑두(서태화)는 상미를 놓고 미묘한 삼각관계를 엮는다.이들과힘의 대칭을 이루는 역할이 천군파의 대장 무라카미(김수로).상미를 부추기며 테러를 계획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마는 ‘단순무식형’ 테러리스트이다.
‘쉬리’의 수족관,‘엽기적인 그녀’의 지하철안 구토등 인기작들의 명장면들이 코믹한 대사에 엮여 쉴 새 없이 패러디된다.큰 욕심없는 관객이라면 복습하는 기분으로느긋하게 다음 화면을 연상하는 재미가 쏠쏠하겠다.
하지만 반복되는 패러디 기법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신선도와 긴장도를 갉아먹기 시작한다.촘촘한 드라마없이 짜깁기를 남발했다는 아쉬움이 고개드는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