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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깃든 민족혼 <서울남부보훈지청 보상팀장 강현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깃든 민족혼 <서울남부보훈지청 보상팀장 강현주>

    다가오는 4월 13일은 지금으로부터 98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암흑과도 같았던 일제 강점기, 1919년 3월 1일 민족지도자들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천명하였고, 우리 국민들은 방방곡곡에서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 후 독립운동가들은 독립국으로서의 우리 정부를 세우기 위해 국내․외에 흩어져있던 여러 임시정부들을 통합하고, 대동단결의 정신으로 결집해 4월 13일 상하이에서 역사적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조직으로서 미국, 중국 등 외국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전개하는 한 편 각종 교육, 문화 활동을 전개해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 광복군 창설 등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또한 우리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주인이 되고 의회가 중심이 되는 민주공화제 정부를 천명한 바,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큰 나무의 씨앗이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광복을 쟁취하기까지 27년간이나 정부조직을 유지한 채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펼쳤고, 이는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27년이라는 그 긴 시간동안 애국지사들은 일본의 억압을 피해 중국, 러시아 등 해외로 옮겨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타지를 떠돌면서도 애국지사들의 염원은 오직 하나였을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님의 나의 소원은 첫째도 독립이요, 둘째도 독립이요, 셋째도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말씀은 그 당시 모든 애국지사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국권을 빼앗긴 후 40년간의 항일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선열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조국의 제단에 바쳤는지, 지금도 만주나 연해주의 이름 모를 산야에 몇 분이나 묻혀 계신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 분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본받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현재 전국에 계신 60여분의 생존 애국지사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정성을 다해 예우하는 것 또한 우리 국민의 도리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 이서진, 600억 재벌설 진실은? “수발들면서 방송 했겠냐”

    이서진, 600억 재벌설 진실은? “수발들면서 방송 했겠냐”

    ‘풍문쇼’에서 배우 이서진 집안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27일 방송된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서는 학벌과 스펙, 집안의 재력이 남다른 스타로 배우 이서진, 김지석, 슈퍼주니어 최시원이 소개됐다. 특히 이서진은 ‘초특급 로얄패밀리’의 일원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이서진의 조부는 1960년대 은행장을 지낸 故이보형 씨로 명실상부한 ‘금융계의 대부’였다. 또한 부친인 故이재응 씨는 A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서진은 한 방송에서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일하는 도우미 분들이 매우 많았다”는 발언으로 조부의 재력을 입증한 바 있다. 또 이서진의 증조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故이상룡 선생. 구한말 퇴계 학통의 안동지역 유학자인 故이상룡 선생은 독립운동에 투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다. 이런 가문의 내력 때문인지 이서진은 ‘재벌설’,‘600억 자산가설’등 각종 풍문에 시달려 왔다. 이에 대해 이서진은 “나에게 600억이 있었다면 (꽃보다 할배 촬영 당시)유럽 가서 수발들면서 방송을 했겠느냐”며 재벌설을 간접적으로 부인한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명예기자 마당] # 자동차세 “삼육구” “삼육구”

    [명예기자 마당] # 자동차세 “삼육구” “삼육구”

    # 자동차세 “삼육구” “삼육구” 올 1월 말쯤 지방세 인터넷 납부 시스템인 ‘위택스’는 주요 검색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도대체 자동차세 연납이 뭐길래 이토록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울까. ‘자동차세 연납’은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납부하는 자동차세를 1월에 미리 낼 경우 납부금의 10%를 할인해 주는 제도이다. 1994년 도입 당시 1년 기준 14% 내외였던 은행 예금금리가 지금은 2% 내외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납세자가 체감하는 혜택은 7배 정도 높아졌다. ‘자동차세 연납’은 1월 뿐만 아니라 이번 달을 비롯해 오는 6월, 9월에도 가능하다. 할인율은 각각 7.5%, 5%, 2.5%가 적용된다. 지난 1월 연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 남녀노소 쉽게 즐기는 게임인 ‘삼육구 삼육구’를 떠올려 보자. 이달 말까지 신청해도 7.5%를 할인받을 수 있다. 신청은 위택스 홈페이지를 접속하거나 구청에 전화하면 된다. 홍이정 명예기자(행정자치부 지방세입정보과 주무관) # 상서→판서→대신→ ? 말은 시대를 거치면서 모습을 바꾼다고 한다. 모습이 바뀌면 그 의미도 바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의미가 바뀌지 않았는데도 모습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경우도 있다. ‘장관’(長官)이란 용어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국무를 맡아 보는 행정 각 부의 수장으로 일반인에게 국무위원으로 알려진 용어다. 우리나라에서 행정 각 부의 수장을 가리키는 말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고려시대에는 상서(尙書)라고 불렀다가 몽골 침략 후에는 판서(判書)로 고쳐 불렀다. 조선시대에도 6조(吏·戶·禮·兵·刑·工)를 설치해 여섯 명의 판서를 두었는데, 지금의 차관(次官)은 참판(參判)이라 했다. 다시 조선 말기 고종 때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개편하면서 대신(大臣)으로 바꿨다고 한다. 참고로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는 총장(總長)이라 했다. 지금처럼 중앙부처의 장을 장관으로 부르게 된 것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다. 민진기 명예기자(인사혁신처 대변인실 사무관)
  • [이덕일의 역사의 창] 3·1 ‘혁명’과 촛불 ‘혁명’

    [이덕일의 역사의 창] 3·1 ‘혁명’과 촛불 ‘혁명’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을 받고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사실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한국사회가 왕정(王政)에서 다시 시민정(市民政)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물들은 시대를 역행하는 왕정식의 통치에, 이원집정부제를 통한 장기집권까지 꿈꾸다가 촛불민심과 1987년 6·10 항쟁 때 시민들이 만든 헌법시스템에 의해서 쫓겨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즉 시민들이 왕정에 맞서 저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을 표방하는 뿌리는 1919년의 3·1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8월 28일 한국을 점령한 다음 날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본관이 이번 성지(聖旨·일왕의 지시)를 받들어 이 땅에 부임한 것은 다스리는 생민(生民)의 안녕과 행복을 증진코자 하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고 말장난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함부로 망상을 품고 정무 시행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협박했는데, 데라우치가 말하는 ‘망상’이 바로 한국인에 의한 자주 독립 국가 건설과 민주공화정이었다. 일제는 헌병 통치와, 소학교 선생님들까지도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가게 하는 무단(武斷)통치로 한국인들을 억압했다. 또한 토지조사를 빙자해 전국 각지의 토지를 광범위하게 강탈했다. 이런 폭압 정치 10년에 한국인들이 맨손으로 저항한 것이 3·1 혁명이다. 일제의 총칼에 진압되었지만 3·1 혁명이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임은 1987년 제정된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데서 알 수 있다. 1919년 4월 12일 중국 상해에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장 선포문에서 “한성에서 의(義)를 일으킨 지 30여일에 평화적 독립을 300여 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조직된 임시정부”라고 명시해 3·1 혁명 발발 30여일 만인 4월 12일에 대한민국이 건립되었음을 명기했다. 임시정부 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함”이라는 것이고 제4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통신·주소이전·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현행 헌법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 민주공화제를 표방했다. 박근혜 정권이 1948년 건국 운운한 것은 이런 대한민국의 뿌리와 민주공화제의 전통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런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광범위한 저항이 촛불혁명이었다. 현행 헌법은 또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미 1923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탄핵당한 전력이 있었다. 임시의정원은 탄핵판결문에서 “(이승만은)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시킴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수입을 방해하였고…대한민국의 임시헌법을 근본으로 부인(‘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보’)”했다면서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의 진행을 기하기 불능하고 국법의 신성을 보존키 어려울뿐더러 순국제현을 바라보지 못할 바”라고 선언했다. 3·1 혁명과 4·19 혁명 정신은 1961년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와 전두환이 자행한 1980년의 5·17 군사반란으로 거듭 부인되었다가 6·10 항쟁으로 다시 되살아났고 그 결과물이 현행 헌법이다. 현행 헌법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권과 헌재의 대통령 파면권을 준 것은 이 나라가 다시는 왕정으로 회귀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제도였다. 이제 다시 시민정으로 복귀하는 초입에 있는 대한민국 시민들은 3·1 혁명과 4·19 혁명을 계승한 촛불 ‘혁명’이 소수 정객의 전리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해방과 동시에 다시 권력을 장악한 친일세력들과 그 후예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회 각 분야의 적폐를 청산하고 다시는 훼손당하지 않을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지난한 임무가 남아 있다.
  • LG하우시스, 독립운동가 이회영 기념관 개·보수 지원

    LG하우시스, 독립운동가 이회영 기념관 개·보수 지원

    LG하우시스는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우당기념관’ 시설을 개·보수하고 14일 재개관식을 가졌다. 서울 종로구 신교동의 우당기념관은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신민회 창립을 주도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이회영 선생의 생애 기록과 유물 등이 전시된 곳이다. LG하우시스는 2주에 걸쳐 기념관 내부의 노후한 바닥과 출입문을 교체하고 전시관 전체 벽면을 도색했다. 기념식에는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구남신 서울북부보훈지청장, 김장성 LG하우시스 상무 등이 참석했다. LG하우시스는 현충시설 개·보수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중국 충칭 임시정부 청사, 서재필기념관, 윤봉길기념관 등의 시설 개선을 지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열린세상] 분열의 끝에서 본 대한민국의 미래/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분열의 끝에서 본 대한민국의 미래/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올해로 아흔여덟 번째 맞은 3·1절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탄핵 기각에 동참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란다. 일본에 빼앗겼던 나라를 순국선열의 피로써 되찾아 비로소 태극기를 다시 세상에 펄럭이게 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태극기를 들까 말까 우물쭈물한다니….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대대로 물려받은 이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두 쪽이 된 것도 모자라 탄핵으로 또 둘로 나뉘어 세 쪽이 돼 간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조차 흥분한 국민을 달래기는커녕 내란이니 혁명이니 하면서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고 헌법재판소를 위협한다. 남들 눈이 있으니 마지못해 헌재 결정에 승복한다고 하지만 글쎄, 정작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결정이 나와도 과연 그럴까. 그런데도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아무 잘못이 없단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400억원이 넘는 돈을 빼앗긴(?) 기업들이 있는데도 자발적으로 낸 것이고, 재단을 만들어 최순실에게 송두리째 맡겨 놓고도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최순실, 정유라와 관련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을 했으면서도 국민이 듣고 싶은 진실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명도 없이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결국 스스로 탄핵의 문턱에 섰다. 결자해지라고 대통령만이 두 편으로 갈라진 이 나라를 봉합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그에겐 자신의 입장만 중요할 뿐 분열의 끝에 선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는가 보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은 참으로 대단한 나라다. 5000년 역사 속에서 오늘날 같은 힘을 가져 본 적이 있었는가.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조선왕조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에 터를 잡은 우리 조상은 온갖 고난을 겪으며 힘들게 이 나라를 지켜 왔다. 한때 요동 땅을 호령했고 만주를 공략하려 했으며 대마도를 정벌하는 등 국력을 떨친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시기에 우리의 국력은 자신을 외세로부터 지키기에도 버거웠다. 하지만 60년 넘게 침략에 저항하면서도 몽골에 국권을 빼앗기지는 않았었다. 그랬던 우리가 거친 제국주의적 팽창 속에 결국 일본에 국권을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좌절 속에서도 학교를 설립해 후세 교육에 힘썼고, 3·1 운동을 계기로 임시정부를 수립해 끊임없이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했다. 국내에서는 뜻있는 사람들의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 지원이 끊이지 않았고, 하와이 국민회는 본토 수복을 위해 사관학교까지 만들어 군사훈련을 했으며,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은 공군을 양성하기까지 했다. 세상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국권을 잃고도 이처럼 수십 년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을까.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에 따르면 모든 강대국의 등장에는 경제성장이 선행됐다. 6·25 동란을 거치며 국가 안보를 위해 성장한 군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인권침해의 논란 속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산업화를 성공시키는 배경이 됐다. 경제성장은 교육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고등교육의 확산을 통해 성장한 중산층은 산업화와 동시에 정치적 민주화의 기반이 돼 21세기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주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이제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생각해 보자. 고구려가 망한 것은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연개소문 사후 자식들이 분열됐기 때문이었고, 1억 인구의 명나라가 100만 인구의 여진족 후금에 의해 망한 것도 지배 세력의 분열 때문이었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멸하고 돌아왔을 때 당태종이 물었다고 한다. 기왕에 갔으면 신라도 정벌하고 오지 그랬느냐고. 소정방의 대답은 이러했다. 신라는 비록 작은 나라지만 위로 임금과 신하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아래로 백성이 지배층을 존경하고 신뢰하여 상하가 모두 하나가 돼 있으니 비록 작은 나라지만 함부로 도모할 수가 없었다고. 분열된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안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체된 경제, 희망을 잃어 가는 청년들, 안보 문제를 두고도 극도로 분열된 사회, 서로 생각이 다르면 타협은커녕 대화조차 거부하는 정치권…. 우리의 미래는 고구려를 닮을 것인가, 아니면 신라를 닮을 것인가.
  • [사설] 오늘 3·1절에도 정치인들 계속 선동할 텐가

    오늘은 98주년 3·1절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에 맞서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한데 모아 독립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펼친 바로 그날이다. 하지만 침략의 당사자인 일본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반성은커녕 과거사의 흔적을 지우는 데 급급하다. 한걸음 나아가 아베 일본 총리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부르짖으며 ‘평화헌법’마저 바꾸려 하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강대국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임에도 중국의 경제적 보복은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지금 우리는 마음을 한데 모아 외세(外勢)의 도전을 막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3·1정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탄핵 심판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쌓인 적폐가 적지 않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따라서 지금은 헌재의 최종 결론을 조용히 기다리며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승복을 다짐해야 할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 서울시내 한복판에서는 탄핵을 찬성하는 쪽과 탄핵을 반대하는 쪽이 각각 대규모 집회를 연다고 한다. 양쪽 모두 ‘사상 최대의 집회’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사상 최대의 집회’가 ‘사상 최대의 분열’을 의미한다는 것을 양쪽 모두 정말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태극기가 분열의 매개체로 떠오른 것도 걱정스럽다. 탄핵 찬성파와 탄핵 반대파가 ‘촛불’과 ‘태극기’로 지칭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태극기는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국기였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상징했다. 그런데 3·1절에도 탄핵 반대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달 수 없다는 분위기마저 없지 않다니 안타깝다. 오늘도 탄핵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태극기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기로 했다 표현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집회에 참여해 소신을 표출하는 것 역시 기본권에 속한다. 하지만 지지하는 쪽을 편드는 것을 넘어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폭력적 언동으로 다른 쪽을 부정하는 행태는 용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탄핵 국면에서 인내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정치인들의 선동은 차고도 넘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치는 국민의 행복이 목적이어야 한다. 집권이 정치의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탄핵 국면의 국민 선동은 앞뒤가 뒤바뀐 것은 아닌지 정치인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 오늘 통합을 말하지 않는 정치인은 어떤 집회에도 참석하지 말라.
  • 79년 만에 발견된 임시정부 광저우 청사

    79년 만에 발견된 임시정부 광저우 청사

    ‘동산백원’… 현재 주택으로 사용돼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일전쟁 당시 두 달가량 사용했던 중국 광저우 청사 건물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임시정부가 1938년 7월 22일부터 같은 해 9월 19일까지 사용한 광저우 청사의 현재 위치와 건물이 현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당시 임시정부가 머물렀던 ‘동산백원’은 광저우 동산구 휼고원로 12호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은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수립돼 1945년 11월 국내로 환국할 때까지 27년간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포산, 류저우, 충칭 등지에 머물렀다. 광저우에는 1938년 중일전쟁이 격화되자 이를 피해 약 두 달간 머물렀다. 외교부 관계자는 “광저우 청사 건물은 멸실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주광저우총영사관이 광저우시 문화국과 협조해 소재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현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중국 화남지역 임시정부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중국 정부와 청사 보존방안을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한국혁명여성동맹’ 6명 등 75명 독립유공자 포상

    ‘한국혁명여성동맹’ 6명 등 75명 독립유공자 포상

    국가보훈처는 제98주년 3·1절을 맞아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한 여성 독립운동가 6인 등 75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한다고 27일 밝혔다. 건국훈장 43명, 건국포장 18명, 대통령표창 14명 등이다.1940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독립운동단체인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해 활동한 김병인·오건해·이헌경·김수현·이숙진·윤용자씨 등 6명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한국혁명여성동맹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지원과 교육활동 등에 주력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미국 하와이 한인 여성계의 지도자로서 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한 황마리아씨에게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황씨는 1930년 하와이 한인협회 조직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후원했고 1936년에는 임시정부 김구 선생 앞으로 100달러의 군인양성자금을 보냈다. 딸 강혜원(1995년 애국장), 아들 강영승(2015년 애국장)씨 등은 이미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이성희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강북구 관광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 개최

    이성희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강북구 관광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 개최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성희 위원장(바른정당, 강북2)은 지난 24일 강북구 문화예술회관 1층 행복실에서 정양석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이복근 시의원, 박문수 구의장, 김도연, 김명숙, 이정식, 장동우 구의원과 지역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북구 관광활성화 방안’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서울관광마케팅(주)의 김병태 사장이 발표자로 참여하여 강북구 관광현황을 분석하고 방안을 제시했다. 강북구 현황을 살펴보면, 강북구는 북한산을 끼고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연간 약 천만 명이 방문하는 곳으로 3·1운동이 시작된 봉황각, 임시정부 광복군 16위를 모신 합동묘역, 국립 4.19민주묘지, 손병희 선생·이시영 초대 부통령 묘역 등 근현대 역사유적이 풍부한 강점이 있으나, 숙박, 엔터테인먼트, 관광안내 등 전반적인 관광인프라가 부족하고 낙후된 상황으로 대부분의 역세권 발달이 미비하여 강북구 자체의 중심상업권이 열악한 상황이다. 또한 비교적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활용하거나 이용률이 낮으며, 체험관광상품이 대체적으로 미비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지하철, 버스 노선 등 교통망은 잘 구축되어 있으나 서울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어 타 자치구와 연계된 관광코스가 미흡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5 서울시 외래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의 관광목적이 쇼핑, 식도락 관광, 고궁 및 역사 유적지 방문 순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식도락 관광으로 많이 찾는 곳은 명동 길거리 음식, 광장시장, 홍대 연남동 거리 순으로 확인되었고, 59.3%의 관광객이 지하철을 이용하였으며, 74.1%가 호텔, 11.2%가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핵심고객인 중국인의 경우, 단체관광에서 개별관광객이 증가하고 있으며, 가이드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면세점에서 대량구매로 이루어졌던 쇼핑방식이 가로수길, 강남 등지의 소매점에서 단품구매로 바뀌고 있었다. 이에 김병태 사장은 △생태+역사문화를 핵심 콘텐츠로 테마 개발 및 인프라 조성, △템플스테이, 관음사찰 순례 등 성지순례 형태의 틈새상품 개발 △재래시장투어+맛집 탐방, △테마 중심의 스토리텔러 양성, △문화교류 프로그램 발굴 및 운영, △서울시 홍보 채널 및 네트워크 활용 홍보 지원 등 강북구의 관광활성화 방안을 제안했다. 더불어 참석자 중 삼각산 포럼 안중만 前회장은 “우이동의 경우 사대문안의 높은 산자락과는 다르게 높이가 완만하여 서울의 위용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조망이 가능한 케이블카 최적지로 7월에 개통될 예정인 경전철의 운영 적자 문제도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해소될 수 있고, 우선적으로 북한산국립공원이 해제되어 서울시, 경기도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관할이 되어 개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북구 이종환 외식업지회장은 “미아사거리, 수유역쪽에 계절별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사계절 내내 내·외국인의 관광객이 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했으며, 수유2동 남재영님은 “숙박시설을 완비하기 위한 고도제한의 해제, 여의도 벚꽃, 진해 벚꽃 축제와 같은 축제행사 개발, 한복체험, 김치 담그기, 예절 배우기 등 전통체험 등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유재래시장 종사자는 “수유재래시장이 현재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선도시장으로 지정되어 3년간 지원을 받아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등 상인들도 노력을 하고 있는 중으로 오늘과 같은 토론회가 일회성이 아닌 민관이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행업 종사자 엄태길님은 “경전철과 사슴농장을 연계하고, 대한노인회, 강북복지관 등이 외국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어 교류하는 방안, 미아사거리에 마천루와 같은 100층 이상의 호텔이 건립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양석 국회의원은 “케이블카의 경우 해결방안에 대해 빠른 시일내에 관련자들을 만나 해결 방안에 대해 강구하며, 여행사가 강북구를 잘 알아야 관광객을 모객해 온다. 이는 즉 우리 강북구민 모두가 세일즈를 해야 하며, 공동식당제, 전통시장 체험관, 화장실 개선 등 모두가 힘을 합쳐 작은 것부터 소통하고 해답을 찾아가야 된다고 보며 이런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성희 위원장은 “우이동 먹자골목을 합법화하고 정비하여 외식업 관광으로 활성화 시켜야 한다.”며, “관광은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한 사업이나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강북구에서만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상품들을 개발하여 내·외국인들이 찾아올 수 있는 관광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서대문형무소 뒤흔들 3월 1일 ‘그날의 함성’

    서대문형무소 뒤흔들 3월 1일 ‘그날의 함성’

    독립선언서 낭독·만세 삼창 등 순국선열 저항 정신 되새겨3·1만세운동의 감격을 되살리는 행사가 순국선열의 흔적이 생생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다. 서울 서대문구는 제98주년 삼일절인 다음달 1일 오전 9시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년 일제가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개소한 이래 3·1만세운동 때 잡혀온 유관순 열사가 순국하는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은 곳이다. 특히 올해는 서울시가 이 일대를 독립운동 유적 클러스터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히 뒤 처음 열리는 행사다. 독립운동 유적 클러스터는 서대문구 의회 자리에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문을 엮어 역사유적지로 조성하는 계획이다. 이날 행사 하이라이트인 ‘3·1독립만세운동 재현 퍼포먼스’는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열린다. 역사관 관람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역사관 내 특설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일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의 염원을 담은 퍼포먼스를 펼친다. 33명으로 구성된 서대문역사어린이합창단은 독립군가, 태극기, 삼일절노래를 부른다. 애국지사 후손과 어린이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민들과 함께 만세 삼창을 한다. 이어 역사관 정문에서 독립관을 거쳐 독립문까지 약 400m 구간에서 3·1독립만세운동 행진이 펼쳐진다. 시민들은 현장에서 나눠주는 소형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 깃발과 대형 태극기를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한다. 김구, 유관순,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대형 초상화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500여명의 이름을 새긴 캘리그래피 현수막은 사물놀이패 장단과 함께 행렬을 이룬다. 거리 행진 후에는 대동놀이를 통해 선조들의 협동·단결 정신을 기억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이번 행사가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되새기고,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역사 정체성을 높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서대문 ‘임정 기념관’ 용산 ‘이봉창 기념관’ 생긴다

    서대문 ‘임정 기념관’ 용산 ‘이봉창 기념관’ 생긴다

    市, 17개 사업 올해 112억 투입 구의회 자리에 임시정부기념관 박원순 “국립 시설로 운영돼야”3·1운동 100주년을 2년 앞두고 서울시와 자치구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각종 추모사업에 박차를 가한다. 국내 최초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2019년 서대문구에서 문을 열고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의 기념관이 고향인 용산에 생긴다. 서울시는 현재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세우고 인근 딜쿠샤(3·1운동을 외신으로 최초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옛집)와 독립문, 구 서대문형무소 등 역사 유적지를 아울러 독립운동 유적지구로 꾸미는 ‘3·1운동 100주년맞이 서울시 기념사업 계획’을 8일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중국 상하이와 충칭에는 임시정부 기념관이 있지만 정작 서울에는 없다”며 사업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기념사업은 ▲독립운동 기념시설 조성 ▲시민 참여 행사·교육 ▲독립운동가 예우 강화 등 3대 분야 17개 사업으로 추진되며 올해는 112억원을 투입한다. 임정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 총면적 5000~6000㎡(약 1500~1800평) 규모로 짓는다. 시 관계자는 “구의회 건물을 리모델링할지 또는 허물고 새로 지을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시는 임정기념관을 국립 시설로 건립·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가보훈처는 기념관 건립은 민간이 하고 건립 이후 운영도 국가와 서울시가 비용을 반반씩 내자는 안을 내놨다. 박 시장은 “임정기념관은 마땅히 ‘국립’ 시설로 운영해야 함에도 중앙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시는 인사동 등 관광 명소가 있고 한용운·여운형 선생 등 독립운동가 집터와 가까운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을 ‘독립운동 테마역사’로 꾸며 오는 8월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3·1운동에서 이름을 딴 거리인 삼일대로와 그 일대는 10억원을 투입해 내년까지 3·1운동 대표길로 조성한다. 자치구 중에서는 용산구가 일제강점기의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데 앞장선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이날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까지 이봉창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봉창 의사 옛집이 있던 효창동 118번지 인근에 조성되는 역사공원에 내년까지 연면적 60㎡ 규모의 작은 기념관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1901년 용산에서 태어난 이 의사는 1932년 도쿄 경시청 정문 앞에서 히로히토 일왕 일행에게 폭탄을 던졌다.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서 폭발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일제에 큰 두려움을 줬다. 그의 유해는 백범 김구가 1946년 국내로 들여와 효창공원에 안장했다. 성 구청장은 “이 의사는 결혼하지 않아 자손이 없어 다른 독립운동가처럼 추모·기념사업이 활발하지 않았다”면서 “용산구민 30만명이 자식 같은 마음으로 기념관 건립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용산구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2월 14일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오는 13~14일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성 구청장은 “(밸런타인데이이기도 한) 2월 14일에 초콜릿 대신 안 의사를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13일에는 성 구청장과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숙명여대 학생 등 40여명이 효창공원 내 안 의사 가묘에 단체 참배한다. 다음날에는 용산구 홈페이지와 서 교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소원’ 영상을 배포한다. 성 구청장은 “용산에는 효창공원과 전쟁기념관, 유관순 추모비 등 여러 보훈 유적지가 있는데 2013년부터 이 유적을 도는 용산문화탐방코스를 운영 중”이라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민들이 애국선열들을 잊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오류 653건 추가 제기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의 오류가 고교 한국사에서만 600개가 넘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낸 중·고교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서 760건을 수정해 지난달 31일 최종본을 냈지만 잇따라 문제가 불거지면서 ‘졸속 제작’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역사교육학회 등 7개 진보 역사단체로 구성된 역사교육연대회의(연대회의)는 국정 역사교과서 가운데 고교 한국사 최종본 오류 분석 결과 일부를 3일 공개했다. 연대회의가 한국사에서 발견한 오류만 653개에 이른다. 연대회의는 이를 ‘명백한 사실 오류’, ‘부적절한 서술’, ‘편향된 서술’, ‘비문’으로 분류하고 대표 사례 29개를 이날 공개했다. ‘사실 오류’는 전후 관계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이 많다. 예컨대 한국사 80쪽 ‘후삼국 통일 이후 태조는 조세 감면을 실시하여 농민의 부담을 줄이는 등…’에 관해 연대회의는 “고려 태조가 조세 감면을 실시한 것은 건국(918년) 직후”라고 지적했다. 또 222쪽엔 ‘학생 비밀 결사인 성진회 등 광주 지역의 학생 운동 조직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돼 있지만, 성진회는 1926년 조직했다가 곧 자진 해산했다. 광주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한 것은 성진회의 후계 조직인 독서회였다. 불필요한 표현으로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는 내용도 있다. 218쪽 ‘자료 탐구-민립대학 설립 운동의 목표’에는 참고자료로 도산 안창호의 ‘동지들에게’라는 글을 실었다. 그러나 연대회의는 “안창호의 이 글은 민립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21년에 쓴 것이라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도산에 대한 오류는 현장검토본부터 드러나 중요 인물 분석조차 안 한 채 교과서를 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검토본에서 통합임시정부 내 도산의 직책을 내무총장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노동부 총판이었다. 앞서 최종본에서는 대한인 국민회 3대 회장인 도산을 초대 회장이라 표기하기도 했다.<서울신문 2월 2일자 10면> 연대회의 측은 “국정교과서 최종본은 교과서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오류와 편향, 부적절한 문장도 그대로 남아 있다”며 ‘광주민주화운동’, ‘4·3사건’, ‘박정희 정권 서술’ 등 반드시 수정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은 고치는 척 흉내만 냈다고 꼬집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육부가 지금이라도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고, 내년부터 2년 동안 검정교과서를 충실히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제기된 주장을 검토해 오류로 확인되면 연구학교에서 쓰일 교과서에 정정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 ‘추모식’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 ‘추모식’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독립운동가 성재 이동휘(1873~1935) 선생 82주기 추모식이 31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다. 참석자가 많지 않아 추모식장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공개] ‘김구 선생 암살’ 추가… “반민특위, 친일 청산 미흡” 서술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공개] ‘김구 선생 암살’ 추가… “반민특위, 친일 청산 미흡” 서술

    교육부가 31일 발표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은 ‘일부 표현만 수정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현대사 관련 서술이 상당 부분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날 교육부가 함께 발표한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한 것은 그동안의 행보로 미뤄 볼 때 크게 물러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교육부가 이날 발표한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국정교과서에서 논란이 됐던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다.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성취 기준)과 집필 방향에는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을 파악한다’고 돼 있다. 이는 국정교과서의 편찬 기준 내용과 같다. 그러나 하위 항목인 ‘집필 유의사항’에 ‘대한민국 출범에 대해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음에 유의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제기된 것이 이 부분(대한민국 수립)에 대한 논쟁이었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검정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용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집필 기준을 중심으로 출제한다”고 덧붙였다. 상위 항목인 집필 기준과 집필 방향은 그대로 두고 하위 항목인 유의사항에 반영한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이날 함께 발표한 국정교과서 완성본도 지난해 11월 28일 발표했던 현장검토본에서 진보진영 의견이 일부분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학교 역사는 310건, 고교 한국사는 450건에 이른다.개항기 및 일제강점기 관련 부분에서는 친일 반민족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예컨대 중학교 역사②에서는 최근 일본과 논란을 빚었던 위안부 소녀상 서술이 들어갔다. ‘일본이 위안부 모집에 관헌이 직접 가담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서술도 새로 들어갔다. 현대사 관련 서술도 강화됐다. 김구 선생 암살이 새로 들어가고, 반민특위에 관해서는 ‘친일파 청산이 미흡했다’는 식의 부정적 서술이 덧붙여졌다. 제주 4·3 사건 관련 부분은 고교 한국사에 제주 4·3 관련 서술에서 오류가 있었던 특별법 명칭을 정정하고, 제주 4·3 평화공원에 안치된 희생자 위패 관련 내용도 들어갔다. 다만 재벌과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 관련 서술은 크게 변동이 없다는 게 진보진영 측의 주장이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관련해 대규모 조선소 건립 자금을 마련하려고 거북선 지폐를 영국 투자 은행에 보여 주었던 영웅적 일화는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 포니 개발을 추진하는 등’으로 고쳐졌다.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농촌 개발 사업으로 출발했지만 관 주도의 의식 개혁 운동으로 나아갔다’는 서술을 추가하는 수준에 그쳤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은 9쪽 내용 모두 그대로였다. 진재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은 “박 전 대통령의 집권 기간이 18년으로 다른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었고, 기존 검정교과서에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 적지 않다”고 반박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용어 클릭]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차이 언뜻 보면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공식 정부로 인정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를 품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 독립선언에 기초해 일본 제국주의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고자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설립됐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뒤 꼬박 3년이 지난 1948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취임하기 전까지를 임정 시기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8월 15일을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논쟁이 붙었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쪽에서 말하는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은 임정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런 경우 일제강점기 한반도는 국가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본 통치는 정당하고 독립운동가의 항일 투쟁은 일종의 테러 행위로 왜곡될 수 있다.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단어를 쓰는 대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를 전제로 깔아 우려를 희석시켰다.
  •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공개] “다양한 교과서 사용 체제 되도록 결정”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발표한 31일 이영 교육부 차관과 금용한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장, 진재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이 차관과의 일문일답. →그동안의 기조와 달리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을 허용한 이유는. -의견수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제기된 것이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이었다. 어떤 한 의견을 따라가기 쉽지 않아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편찬 유의점을 정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한반도에서 정통성을 가진 정부라는 취지가 정확하게 기술된다면,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정교과서 관련 국민 의견에서 ‘대한민국 수립’에 대한 이의제기가 가장 많았는데(984건 중 413건), 정작 최종본에 반영한 760건에 포함이 안 된 이유는. -그런 논의는 최근에 불이 붙은 것이다. 솔직히 비전문가로서 생각은, 정통성을 갖고 제대로 출범했다면, 그리고 임시정부 법통을 이었다면, 표현은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의 시각에서 두 입장을 다 수용했다는 말씀을 드린다. →혼용하면 혼란이 지속되지 않나. -교육부 내에서 장관 중심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다양한 교과서를 사용할 체제가 될 수 있도록 결정했다고 이해해 달라.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정교과서 최종본에 진보교육감들 “국민 뜻은 즉각 폐기” 반발

    국정교과서 최종본에 진보교육감들 “국민 뜻은 즉각 폐기” 반발

    진보성향 교육감들은 31일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과 관련해 ‘국정교과서는 폐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날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혼용한다는 내용의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과 친일파의 친일행위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서술 등이 강화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발표했다. 이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교육부는 교육과 학교현장에 혼란을 만들지 말라”며 “국정 역사교과서는 국민의 뜻에 따라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교육감은 “교육부가 현장의 의견을 듣는다고 하면 당연히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반헌법적, 비민주적, 반교육적 방식으로 추진한 ‘박근혜 교과서’ 자체를 즉각 중단하고 폐기해야 한다”며 국정교과서 금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주장했다. 아울러 이 교육감은 교육부가 함께 발표한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장휘국 광주교육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안타깝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정 역사교과서가 학교현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모든 역량을 다해 대응하겠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폐기되는 그 날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 검토본에서 문제가 됐던 내용을 대부분 수정하지 않고 단순히 오·탈자나 사진을 수정하는 수준에 그쳤다”면서 “특히 국민적 논란을 일으켰던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고수해 헌법 전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장 교육감은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에 대해 “국정 역사교과서와 매우 유사하다. 편찬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집필하면 유사품을 대량 복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 8종의 또 다른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인천시교육청과 경남도교육청,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등도 기존의 ‘국정교과서 철회 요구’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교육부의 국정교과서에 사실상 찬성 뜻을 보였던 대구시교육청과 경북도교육청, 울산시교육청은 이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교과서 선택권은 학교에 있다는 기존 방침을 밝혔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국정교과서 신청 안내 교육부 공문을 일선 학교에 이미 전달했으며 일선 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거친 뒤 다음 달 10일까지 사용 결정 여부를 결정한다”며 “교과서 선택권은 학교에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동휘 임시정부 초대 총리 오늘 82주기 추모식 개최

    이동휘 임시정부 초대 총리 오늘 82주기 추모식 개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독립운동가 성재 이동휘(1873~1935) 선생 82주기 추모식이 31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고 국가보훈처가 30일 밝혔다. 추모식은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며 유족 및 보훈처, 독립운동 관련 단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 선생은 1873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한성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강화도 진위대장을 맡았으나 1906년 군직에서 물러나 구국계몽운동에 투신했다. 1913년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떠나 독립군 양성에 나선 선생은 191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올랐으며 1935년 1월 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거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교육부, 국정교과서 최종본 오늘 공개

    교육부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31일 공개한다. 하지만 교육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심하고 국회에서 국정교과서 금지법이 추진되고 있어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30일 “기존에 밝힌 것처럼 내일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공개한다”며 “오전 11시 이영 차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예정대로 올해는 희망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교과서를 쓰도록 하고 내년부터 전체 중·고교가 국정 및 검정교과서를 자율적으로 선택해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새로 개발될 검정 역사교과서에 적용할 집필 기준도 이날 함께 발표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중학교 국정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을 펴내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가장 큰 쟁점인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임시정부 설립의 의의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교과서 편찬 기준이 되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이미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일’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새마을운동과 한·일 국교 정상화 등 총 9쪽에 걸쳐 기술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서술은 분량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일부 내용을 축소하는 방향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3월부터 새 국정교과서를 이용할 연구학교를 다음달 10일까지 전국 시·도교육청별로 모집할 예정이다. 한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20일 전체회의에서 ‘역사 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국정교과서 금지법)을 의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희망을 주는 기업 특집] LG, 국가·사회의 귀감 되는 ‘의인’ 31명 발굴… 독립운동 시설·유공자 후원

    [희망을 주는 기업 특집] LG, 국가·사회의 귀감 되는 ‘의인’ 31명 발굴… 독립운동 시설·유공자 후원

    LG는 남다른 사회공헌 철학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LG는 지난 연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웃 사랑 성금 120억원을 기탁하는 등 기부에 적극 참여해 왔다. 나아가 사회의 귀감이 되는 의인을 발굴, 지원하고 독립운동 시설과 유공자를 돕고 있다. 미래 주역들인 청소년들을 위한 30여개 지원 프로그램도 전개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좀더 나은 사회가 되는 ‘의미 있는 일’을 찾는 데 LG는 힘써 왔다. 지난해 11월 강원도 삼척 초곡항 교량 공사 현장에 고립된 근로자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파도에 휩쓸려 순직한 김형욱 경사와 박권병 순경을 비롯해 지금까지 31명이 LG복지재단이 2015년 신설한 ‘LG의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LG의인상’엔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보답한다”는 LG와 구본무 회장의 뜻이 녹아 있다. ‘LG의인상’을 본격 시상하기 전부터 LG는 사회에 귀감이 된 의인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2015년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 폭발로 중상을 입은 군 장병 2명에게 5억원씩 위로금을 전달했다. 2014년엔 진도 팽목항 세월호 사고 현장 지원 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소방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 5명의 유가족에게 1억원씩 위로금을 지원했다. 2013년엔 바다에 뛰어든 시민을 구하려다 희생된 인천 강화경찰서 소속 정옥성 경감 유가족에게 5억원의 위로금과 자녀 3명의 학자금 전액을 지원키로 했다. 당시 구 회장은 LG 최고경영진들과 버스를 타고 충남 천안에 위치한 LG전자 협력회사를 방문하던 길에 정 경감의 영결식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위로금 전달을 논의,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공자 돕기 활동은 1942년 충칭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찾아온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1만원을 희사했던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정신에서 비롯됐다. 창업회장의 부친 춘강 구재서 공 역시 상하이 임시정부에 5000원을 지원한 바 있다. LG하우시스는 2015년 충칭 임시정부 청사 및 서재필 기념관 등의 개보수 사업에 나선데 이어 지난해부터 ‘독립유공자 주거환경 개선’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매헌기념관 재개관을 위한 개보수 공사에 시스템창, 알루미늄창, PVC창 등 약 2억원어치의 창호자재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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