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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정선열 5위 유가족 상해도착/봉환준비작업 본격화

    박은식선생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봉환을 위해 유가족 일행이 3일 상오 중국 상해에 도착,본격적인 봉환 준비작업에 들어갔다고 보훈처가 밝혔다. 이들 유가족들은 5일 상오 9시30분부터 상해 만국공묘에서 유해봉환단과 현지 동포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천묘식에 앞서 선열 5위의 묘소를 성묘한뒤 유해를 국내로 모시기 위한 화장절차를 끝낼 예정이다. 한편 이충길국가보훈처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선열 5위 봉환단 60여명은 5일 상오 6시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상해로 출발한다.
  • “임정요인 5위 유해 봉환/애국심 되새기는 계기로”/황 총리

    황인성국무총리는 2일 대전엑스포 개최와 관련,『대전을 중심으로 한 주요도로의 교통소통대책을 마련하고 공항에서의 대테러대책등 안전대책도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황총리는 이날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난 이틀간 계속된 엑스포 리허설에 대한 보고를 받고 『엑스포 장내에서 관람객들의 흐름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관리대책을 마련하라』면서 『특히 수준높은 관람분위기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장내방송등을 통한 질서정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황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오는 5일 열리는 상해임시정부 선열5위의 유해봉영식과 관련해 『이번 행사가 선열들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게 된 이유와 순국선열의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도록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하라』고 당부했다.
  • 남자현여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 선정/항일단체 결속 앞장선 「독립군의 어머니」/서로군정서가입,일제관리 독살 기도/투옥·부상동지들 정성껏 보살피기도/임종땐 평생 모은돈 「독립축하금」으로 희사 「독립군의 어머니」로 통했던 남자현여사는 1873년 12월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씨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났다.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김씨 김영주에게 시집을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지하에서 다시 보자』며 결사보국을 결심하고 의병활동에 나섰으나 곧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여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3대독자 유복자인 아들과 시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양잠을 하며 손수 명주를 짜 내다 팔아 가계를 이어 나갔다.여사 나이 46세에 일어난 1919년 3·1운동은 여사에게 남편의 원수 갚기를 결심하도록 만든다.항일 구국하는길만이 원한을 갚는 길임을 깨닫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에 정착하게 된다.여사는 우선 그 곳에서 활동하는 비밀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 가입,군인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만주일대의 농촌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건립한다.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망명생활 6년을 맞은 1925년에는 조선총독을 독살하기 위해 동료 한 명과 함께 국내에 잠입,거사를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지로 되돌아 가야 했다.마침 인근 길림주민회장인 이규동과 편강렬·양기탁등이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고 독립운동단체들을 믿아다니며 통합을 독려,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1927년 봄 상해 임시정부 요인인 안창호선생이 길림 조양문 밖에서 나석주의사 추도회 겸 민족장래에 대한 강연회를 독립운동단체 간부·지방유지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자 일제는 중국 헌병사령관을 협박,안선생등 3백명을 무차별 체포했다. 여사는 안선생뿐아니라 투옥중인 애국지사들이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다. 일제는 1931년 9월 소위 만주사변을 일으켜 여사의 망명지 요녕성뿐아니라 길림성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자 안선생과 함께 보석으로 풀려난 독립운동단체 핵심간부인 김동삼은 할 수 없이 길림성을 떠나 하얼빈의 한 애국지사 집에 묵고 있다가 일경에게 체포된다.아무도 김동삼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사는 그의 친척으로 위장,면회를 허가받고 연락책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여사는 김동삼의 지시내용과 정보사항을 동지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가 국내에 호송될 때 빼돌릴 계획도 세웠으나 시간이 촉박한 바람에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그러나 여사의 슬기롭고 대담무쌍한 기질이 없었다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계획이었던 것이다.여성다움도 잃지 않았던 여사는 항일운동중 병들고 상처받아 고생하는 애국청년들에게는 항상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손길로 위로·격려했다. 여사는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왼쪽 약손가락 두마디를 잘라 흰 천에다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쓴뒤잘린 손가락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전달했다.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키면서 간악한 일인들에게 속지 말도록 호소하기 위함이었다.여사의 항일정신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졌고 남편의 복수심은 꺼질 줄 몰랐다. 여사는 1933년 초 동료들과 소위 만주국 건국일인 3월1일에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부도 노부요시(무등신의)를 독살하기로 하고 그해 2월29일 거지로 변장,폭탄·권총 1정과 탄환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서 장춘(당시는 신경)으로 가던 중 일영사관 형사에게 발각돼 붙잡히게 된다.일본군에게 전사당한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편단심으로 14년간 동분서주하던 여사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다.여사는 잔악한 일경들의 고문을 6개월이나 버텨냈다. 여자의 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냈다. 여사는 그해 8월 마침내 죽기로 결심,옥중에서 15일동안의 단식투쟁을 벌인다.악독한 일경들도 여사의 강인한 저항에 두 손을 들고 여사를 석방했다.그러나 여사는 6개월에 걸친 옥중생활로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여사는 즉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고 하얼빈에 있는 여관에서 가료를 받았으나 옥중에서의 고문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933년 8월22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여사는 임종을 맞을때까지도 항일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유복자인 아들을 앞에 앉히고는 보따리를 풀어 중국화폐 2백48원을 내놓은 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했다.여사는 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독립운동은 정신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유족들은 여사의 뜻대로 1946년 3월1일 조국광복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전에서 독립축하금으로 여사가 남긴 돈을 김구·이승만선생에게 전달한다. 정부는 여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상해 임정요인 5인 유해/내일 화장·10일 고국안장

    ◎유족대표 오늘 현지로 5일 상오 중국 상해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 5위의 유해봉환에 앞서 유족대표 5명이 유해화장을 위해 3일 상오 대한항공기편으로 현지로 출발한다. 유족대표는 박은식선생의 손자 박유철씨(55·건설공무원연수원장),노백린선생의 손자 노영훈씨(55),김인전선생의 외손자 최순성씨(64),신규식선생의 외손자 민영수씨(72·전대만 공사),안태국선생의 손녀사위 이의석씨(72·해운회사중역)등 5명이며 국가보훈처에서는 하태석사무관등 2명이 함께 출국한다. 유족대표들은 3일 상오9시 대한항공편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4일 상오 상해 만국공묘안에 안치된 선열 5위의 유해발굴과 유해화장행사를 지켜볼 예정이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5일 상오9시30분 만국공묘에서 이충길보훈차장등 유해봉환단과 유족등이 참석한 가운데 천묘식을 가진뒤 하오2시 김포공항에 도착,제2청사 귀빈주차장에서 봉영식을 가질 예정이다. 봉영식을 마친 유해는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되며 10일 상오 국민제전으로 영결식을 갖고 임정요인묘역에 안장된다.
  • 임정요인 5위 해방 48년만에 고국에…

    ◎5일 환국… 준비상황·봉환성사 경위/국립묘지 성토·마무리작업 한창/영결식 10일 국민제전으로 거행/문민정부의 상해임시정부 법통계승 노력 결실 오는 5일 하오 광복 48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상해 임시정부 순국서열 5위 유해봉환을 위한 마무리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현재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뒤편에는 오는 10월말 완공예정으로 임정요인묘역이 조성중이다.규모는 조성묘역 8백20평,예비묘역 3백30평,녹지및 조경지역 8백10평등 모두 1천9백60평으로 잔디심기 작업등이 진행되고 있다. 임정묘역 상단에는 수반급 7위의 묘역이 자리잡게 되며 그아래 3개계단에는 국무위원급 26위가 모셔진다.이번에 봉환되는 박은식선생은 맨 위 수반급 묘역 중앙에,국무위원급인 노백린·신규식·김인전선생은 바로 아래 중앙에 각각 유택이 마련됐다.국무위원급이 아닌 안태국선생은 묘역 아래쪽 애국지사 묘역에 따로 안장된다. 정부는 상해 임시정부요인 유해봉환을 임시정부의 법통계승및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인에 있다고 보고 두달여동안 「대한민국 선열5위 봉환국민제전위원회」를 위시해 국민제전추진위원회·국민제전집행위원회등을 구성,봉환을 준비해왔다. 유해봉환에 앞서 중국 상해 만국공묘에서는 봉환단·유족·현지동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묘식이 엄숙히 거행된다. 이를 위해 이충길보훈처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봉환단 60여명이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5일 상오 현지로 출발한다. 천묘식은 한·중양측이 이미 합의한대로 한국식의 제단과 현판,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의 화환이 놓여진채 우리측 의식으로 30여분간 진행된다. 선열 5위의 유해는 화장된 뒤 국내에서 특수제작한 직경 30㎝ 높이 30㎝크기의 백자도자기 항아리인 「옥함」에 넣어져 오동나무곽에 봉안된다. 유해는 4일 하오 지난4월13일 복원된 임시정부 청사터앞 마당로에서 노제를 지내고 청사안을 한바퀴 돌아 만국공묘관리처에 임시 안치된다. ○한국의식으로 봉환 천묘식이 끝난 직후 옥함에 모셔진 유해는 당일 상오11시30분 상해공항을 출발,하오1시30분 김포공항에 도착하며 하오2시부터 공항 귀빈주차장에서박은식선생의 손자인 박유철씨등 유족 대표와 제전위원,일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환식이 열린다.봉환행사를 마친 유해는 김포공항에서 동작동 국립묘지까지 20여대의 긴 차량행렬로 운구돼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으로 옮겨져 제전위원장인 황인성국무총리등 3부요인과 각계 대표등의 헌화와 분향을 받게된다.봉환된 유해는 오는 10일 상오7시30분까지 공무원·시민·학생등 일반조객의 참배를 받으며 영결식은 같은날 상오10시 국립묘지 현충문 앞에서 각계인사·외교사절·시민등 6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 수준인 국민제전으로 거행된다.이어 유해는 낮12시쯤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묻힌다. 이번 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하게 된데는 군사통치 30년만에 출범한 문민정부의 상해 임시정부 법통승계 노력이 컸다. ○화장뒤 옥함에 모셔 김대통령은 지난 5월27일 방한한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만국공묘안에 있는 박은식선생등 임정요인 5위의 유해를 본국으로 봉환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헌법전문에서 상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고 또 본인의 취임사에서도 이를 밝히고 있으나 양국관계가 성숙되지 못해 지금까지 이분들의 유해를 봉환하지 못했다』면서 중국정부의 협조를 촉구했다.중국정부는 지난 6월3일 공식으로 임정선열 5위의 유해봉환을 수락해왔다. 이에따라 우리 정부는 지난 6월23일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선열 5위 봉환 국민제전계획을 최종확정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임정요인들의 유해봉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중국측의 비협조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지난해 8월 한·중수교로 봉환의 길이 열렸다. ▷유해봉환 추진일지◁ ▲5.27=김영삼대통령,방한중인 전기침중국외교부장에게 유해봉환을 제의 ▲6.3=중국정부,유해봉환수락 ▲6.23=국무회의에서 임정 선열5위봉환 국민제전계획 확정 ▲6.29∼7.3=유해봉환 실무협의반 파견,이장절차와 의식관계등 합의 ▲8.5=중국 상해 만국공묘에서 한국식으로 천묘행사 거행.김포공항서 유해봉영행사,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 ▲8.5∼9=일반인 참배및 분향 ▲8.10=영결식및 유해안장 ▷임정 약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때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한 3·1운동의 이념을 바탕으로 중국 상해에서 탄생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3·1운동 당시의 독립선언에따라 1919년 4월13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4월23일에는 서울에서 한성정부가 각각 탄생했다가 9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된다. 행정·입법·사법의 3권분립을 원칙으로한 대통령중심제의 민주공화정부로 출범했다. 임정은 미·영·중·소·프랑스등 여러나라와 외교교섭을 벌이면서 정부로 승인받기위해 노력했고 상해에 육군무관학교를 설치하고 무관생을 양성,청산리전투등에 병력을 파견했다.또 박달학원·인성학교등을 설치해 근대교육제도 마련에도 노력했다.기관지로 독립신문을 1925년까지 격일제로 발행했다. 지도체제는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25년),국무위원중심의 집단지도체제(27년),주석지도제(40년),주석·부주석지도제등으로 바뀌었다. 역대 수반은 1∼5대 이승만,6대 박은식,7대 이상용,8대 홍진,9대 김구,10대 이동령,11대 안병조,12대 양기탁,13∼14대 이동령,15∼18대 김구등이다.
  • 유해 봉환 임정요인 5인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민족사상를 고취/박은식/을사조약때 음독/신규식/미서 독립군 양성/노백린/한국노병회 결성/김인전/상민공동회 조직/안태국 ◇박은식(1859∼1925년)황해도 황주태생.1898년 「황성신문」을 창간했으며 1905년 황성신문에 장지연의「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자 영국인 배설이 경영하던 「대한매일신보」로 옮겨 주필을 역임하는등 민족언론인으로 민족사상을 고취. 1924년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에 취임하고 대통령대리를 겸직했으며 1925년 3월에는 이승만대통령의 탄핵면직을 계기로 2대 대통령으로 취임,독립운동에 헌신하다 같은해 11월1일 노환으로 상해의 한 병원에서 작고.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신규식(1879∼1922년)충북 청원태생.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비분강개,음독자살을 기도했다가 오른쪽 눈을 실명.1911년11월 중국으로 망명,손문의 신해혁명에 참여했으며 상해·남경등지에서 망명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를 조직.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출범과 함께 법무총장에 임명되고 임시의정원 부의장에 선출됐으며 1921년에는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에 취임하는 등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쳐오다 1922년 9월25일 과로로 상해에서 43세로 별세.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노백린(1873∼1926년)황해도 송화태생.1910년 일제에 국권이 침탈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와이에서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달려가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하고 군무부총장에 임명됨.1922년 국무총리대리를 거쳐 다음해 국무총리에 정식 취임했으며 1924∼25년까지 국무총리,교통 및 군무총장직을 겸임하다 1926년 1월22일 상해에서 지병으로 별세.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김인전(1876∼1923년)충남 서천태생.1919년 4월 상해로 건너가 이듬해 임시의정원 재무예산위원직을 시작으로 의정원부의장,임시정부 재무부 비서국장과 임시공채관리국장,임시정부의학무총장대리 등을 역임. 1922년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에 피선됐고 같은해 4대 의정원의장에 선출돼 임시정부의 의정활동을 이끌었다. 김구·여운형 등과 함께 한국로병회를 결성,군대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 조달에 주력. 1923년5월24일 과로로 순국.1980년 건국훈장 국민장. ◇안태국(1875∼1920년)평남 평양태생.평양에서 협동사라는 회사를 설립,실업구국운동에 앞장섰으며 이승훈 등과 함께 상민공동회를 조직하고 1917년 신민회가 창립되자 여기에 가입,최고위간부로 활동.1911년 간도의 독립군기지 설치운동과 관련,경찰에 체포돼 징역 2년을 언도받았다.
  • 유해봉환 선열 유족/황 총리,초청 환담

    황인성국무총리는 30일 박은식 상해임시정부대통령등 다음달 중국으로부터 유해가 봉환될 예정인 상해임정 순국선열 5위의 유족들을 공관으로 초청,만찬을 함께하며 환담했다. 이날 만찬에는 박임정대통령의 손자 박유철씨와 신규식임정국무총리 외손자 민영수씨,노백린임정국무총리 손자 노영훈씨,김인전임정 의정원의장 외손자 최순성씨,안태국선생의 손녀 안효실씨등이 참석했다.
  • 봉환 임정선열 안장/8월10일 국기 게양

    「8월10일에도 국기를 게양합시다」 금년에는 8월15일 제48주년 광복절은 물론 8월10일에도 국기를 달도록 되어 있다. 8월10일은 「임정선열봉환국민제전일」.정부는 지난 6월23일 국무회의에서 중국으로부터 임시정부선열 5위의 유해를 인계받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8월10일을 국민제전일로 지정,범국민적·범정부적 추모의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했었다.이에 따라 29일 관보에 「집집마다 국기를 게양해 가슴마다 나라를 사랑합시다」라는 내용을 고시,전국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 「기록물전시실」 오늘 오픈/정부보관 희귀문서 등 8백여점 공개

    ◎역대대통령 취임식 영상시청도 가능 얼마나 급했으면 3군 총사령관임명장을 편지지에 대통령이 직접 썼을까. 23일 문을 여는 「기록물상설전시실」(서울 종로구 창성동소재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 1층)에 오면 희귀한 자료들을 다수 접할수 있다.그중 하나가 이승만 전대통령의 친필임명장.50년6월30일 남쪽으로 한창 쫓기던 시절,이 전대통령은 당시 정일권중장을 육해공 3군 총사령관및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면서 편지지에 만년필로 임명장을 직접 써 수여했던 것이다. 정부는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소장 김기옥)가 보관하고 있는 주요 문서와 사진류등 시청각자료 8백여점을 선별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이 전대통령의 친필임명장 이외에도 대한민국정부수립이후 각급 행정기관이 작성한 주요문서와 조선시대·대한제국·일제시대및 대한민국 임시정부문서등 희귀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전시실은 「대통령기념코너」「청백리코너」등의 특별코너와 정부기능에 따른 18개 주제별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문서·사진류와 함께 30년대의 무성기록영화 「경성」및 각종 비디오테이프등 시청각자료도 입체전시되어 있다. 역대 대통령기념코너에는 초대 이 전대통령으로부터 김영삼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결재문서등 핵심적 역사기록들이 처음으로 공개된다.휘호,동정사진등 대통령재임시의 상징적 기록물이 시대순으로 배치·전시되어 있다.특히 컴퓨터시스템에 의해 육성녹음과 취임장면의 시청도 가능하다. 주제별 코너에서는 헌법개정원본등 법제자료,관보 제1호등 행정자료,공문서식변천,상훈자료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 흥미를 끄는 부분은 수결전시장.역대 대통령과 총리,각 부처 초대장관,조선조 국왕은 물론 케네디,대처,네루,장개석,모택동등 외국 유명인사의 사인이 소개된다.김일성의 수결도 있다.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관청에서 사용하던 인장류 1백60여종도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일반인들의 관람시간은 평일 상오9시에서 하오 6시까지.토요일은 하오 1시까지 공개한다.개관후 한달동안 일요일에도 관람할수 있으며 방문객이 많을 경우 계속 일요공개를 한다는 방침이다.관람료는 무료이며 문의는 720­2705,4549.역사교육을 위해 학생들의 단체관람을 기대하고 있다.
  • 이원규 대하소설 「거룩한 전쟁」(이작가 이작품)

    ◎항일의병 투쟁 다룬 본격 전쟁소설/문경대의병장 이강년 중심,10여년 활약 담아/2년동안 격전지 직접 답사 사실성 더해 이원규(46)의 대하역사소설 「거룩한 전쟁」(신구미디어간)은 유림주도의 항일의병투쟁을 소설화한 작품이다.한국근·현대사의 여명을 전쟁사적인 입장에서 파헤친 본격 전쟁소설이기도 하다. 전4부 12권 분량중 이번에 출간된 1부 3권의 소제목은 을미의병의 선봉장 이강년(1858∼1908)의 기병 격문 「누가 이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에서 따왔다.일천대가 넘었던 구한말의 의병진가운데 가장 극적인 투쟁을 전개한 이강년의 문경 의병진대를 중심축으로 잡아 최초 기병에서부터 10여년의 투쟁,그리고 간도독립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극사실주의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어느 역사가의 말처럼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역사속으로 찾아가서 독립전쟁의 탁월한 영웅들과 수많은 무명소졸들을 만났고 그 결과 이 시기의 역사가 패배와 굴종이 아니라 치열한 항쟁과 승리 바로 그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거룩한 전쟁」1부에는 이강년 유인석 홍범도 신돌석 김수민 이인영등 의병사에 빛나는 주역들이 200여명의 또다른 역사실존인물들과 함께 등장한다.여기에 이형재·노광등 가상인물들이 가세,18 95년 이후 15년동안 지속된 의병전쟁사에 대한 소설적 재미를 돋운다.제1부 전3권가운데 상권에서는 경북 문경의 사대부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한 이강년이 을미년(1895)고향에서 소백산 포수들을 규합,기병해 고모산성등지에서 전투를 전개하다가 제천의 유인석이 이끄는 호서의병대와 합류하는 과정이 전개된다.이후 관군연합부대에 의해 패퇴,유인석진이 서북지방을 거쳐 서간도로 들어가는 과정과 함께 만주유민들의 고난사와 수전개척이 다뤄졌다.중권은 북간도에 진출해있던 유민들이 자생적으로 간도의병대를 조직하는 과정이,하권에서는 정미년(1907)군대해산과 더불어 일본수비대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의병의 기세가 꺾이고 생존자들은 북간도와 연해주로 흘러 들어가 재기하는 의병사가 역사보다 더 흥미롭게 서술되고 있다. 이원규는 지난 84년 등단이래 88년 대한민국문학상신인상(침묵의 섬),90년 박영준문학상(황해),93년 동국문학상(천사의 날개)을 수상하면서 「우리 문단의 두터운 허리」로 각광받아 온 작가.이 작품집필을 위해 18년동안 몸담아온 고교교사직을 지난해 사직한뒤 배낭을 메고 중국으로 건너가 한달동안 만주일대를 배회하며 자료를 수집했다.91년 1차 답사에 이은 두번째 여행길이었다.작가는 또 이 소설을 쓰기 위해 2년동안 소백산을 중심으로한 호서의병대의 격전지를 답사했다.당시 의병토벌에 쓰인 일본군 작전지도등 19 00년대 지도 100여본을 입수하는등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오는 95년 완간을 목표로 집필중인 제2부에서는 경술국치후 북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백두산정계비를 둘러싼 국경문제,홍범도의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어랑촌전투등 독립군의 투쟁을,3부는 임시정부계열의 민족주의파및 19 30년대이후 중국동북지역의 파르티잔투쟁을,마지막 4부는 해방과 분단을 거쳐 6·25발발까지의 숨가쁜 시기가 그려질 예정이다.역사소설의 공간적 지평을 넓힐 대작 「거룩한 전쟁」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맥을 대는 새로운 대하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서재필박사 유해 국내봉환 추진/신문협이사회 결정

    한국신문협회(회장 김병관 동아일보회장)는 15일 제 2백26차 이사회를 열고 미국 필라델피아시에 있는 고 서재필박사의 유해를 국가보훈처 및 유족들과 공동으로 국내 봉환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서박사는 1898년 이후 1945년까지 미국에서 임시정부 구미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한 적이 있어 정부는 77년12월 13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신문협회는 지난 90년 4월7일 제34회 신문의 날을 맞아 서박사의 동상을 독립문 옆 서대문 독립공원에 세웠다.
  • 임정­우리의 첫 문민정부(일요일 아침에)

    1919년 4월13일 중국 상해 프랑스조계 내에서 정식으로 수립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5)는 전통적인 군주제를 청산하고 민주공화제를 채택,민간인이 대통령이된 최초의 문민정부였다.그것은 3·1혁명(운동)이 국내에서 일어난지 45일만의 일로서 민족 최대의 경사요 쾌거로 기록될 일이다.임정은 27년간 중국대륙을 누비면서 하루도 그 간판을 내리지 않고 비록 일제에 의한 단절의 역사를 강요받았으나 계속성의 민족사로 전환,5천년의 정통성을 잇는 임무를 확실히 수행하였다. 국내에서의 3·1혁명은 곧 해외및 국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의욕에 넘친 민족지사를 활동하기 편리한 교통의 요지요,국제도시로서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중국 상해로 집결케 하였다.이동령·신규식·이시영·조소앙·김구·노백린·박은식·여운형·조용구·조동우·이유필·안창호·김인전·신익희·박찬익·최창식·윤현진·김규식·남형우등 20대로부터 50대까지 40여명이 이곳에 와서 정통민간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마침내 역사적인 3권분립형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김신부로22호(현 서금2로)에서 수립,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전통 민간정부 표방 임시의정원의장 이동령은 국호를 「대한민국」이라했고 연호를 「민국」으로 했다.1919년을 민국1연으로 호칭해서 단기와 병기,공식문서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들은 임시정부청사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회의때 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며 환희의 눈물 속에서 조국을 향해 묵도를 올리곤 했다. 이틀에 세끼를 때울 때가 한두번이 아닌 이들의 모습은 초췌하기 이를데 없었다.중국인이 먹다버린 배추를 다시 집어다가 씻어서 허기를 채우면서도 정통정부의 각원(장관)으로서의 품위와 질서를 유지하는등 근엄성과 애국열의를 잃지 않았다. 이들은 내정교통·외교군사·교육문화·재정사법 등에 걸친 민간정통 정부로서의 광복정책을 펴나가면서 대표성과 대본영으로서의 통제적 사명을 가슴깊이 자긍심으로 여기고 세계정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중국·프랑스·폴란드·소련의 승인을 받으면서 상해로부터 중경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자존심은 드높았고 선비로서의 지조나 기품을 의연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후 27년간 율사를 동원,5번의 개헌과정을 통해서 지도원리를 광복정책에 맞게 적응시키느라 의회에서 사심없는 열변의 토론과정을 거친 것이다.이들이 만든 헌법은 대개 10개조에서 많을 때는 70여조에 이를 때도 있었다.그 제1조의 내용은 오늘날 1백30여조,부칙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헌법제1조와 동일하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 군주제의 양반체제로부터 결별인 동시에 문민공화정치의 입문이었다.이것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법통성이 임정으로부터 기연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광복군은 곧 의병과 독립군을 이은 우리 군의 정통성을 더해 준다.그러나 8·15는 이들의 법통성을 외면케하여 충격을 주었다.그뒤 1988년 제9차 개헌 전문에 비로소 대한민국의 법통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시하게 됐다.8·15광복 이래(1945)정통성을 찾는데 43년(1988)이 걸린 셈이다. ○43년 걸린 법통회복 그동안 정통성의 기반이 미약했던 군사정부나 임정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자유당정부는 임정의 법통성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피하거나 평가하려 들지 않았다.모두 밀착되게 관련이 있으면서도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회피했던 것이 사실이다.북한 당국도 오랫동안 임정의 정통성을 외면한 채 비방·폄하·성토·질책일변도로 달려왔다. 일부 운동권 시각도 임정을 성토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문민공화정부를 맞아 임정의 법통성문제가 거론될 때 30년간 임정을 연구한 보잘 것 없는 필자는 감격의 뜨거운 낙루를 금치 못하면서 오랜만의 법통성을 올바르게 찾았구나 싶어서 현대사의 정당한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임정의 법통성이 공식 인정되었으면서 아직도 그에 따른 후속법제조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임정27년사가 대한민국의 제1공화정이 되어야 함은 물론 「민국」의 연호 또한 단기와 병기되어야 한다.그리고 임정의 대통령(국무령·주석등)·국무위원의 예우 역시 소급적용 되어야 문민정부로서 뒷날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민국」 연호 병용을 임정의주석이었던 이동령의 천안 생가는 비가 새고 도로도 협소한데다가 표지판마저 불분명한 채 방치되어 있는게 작금의 실정이다.8·15이후 대통령을 역임한 분의 유적이 늘 관심속에 손질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비교가 되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이번 8월5일에 돌아오는 박은식씨등 임정요인 5위의 유해 봉송과 때를 맞추어 흩어져 있는 임정요인의 묘역이 국립묘지에 다듬어지고 있는 2천평 위에 가지런히 함께 모셔지길 바란다. 상해임정청사의 복원전시에 이어 중경임정청사의 복원작업도 이미 시작되었다.속히 임정의 법통성이 원만히 지켜져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는 절차와 순서가 이어지길 빈다.
  • 김성수·이은상·이갑성·윤익선씨등 8명/친일행적 논란…서훈취소 심의

    ◎보훈처 8일 국가보훈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부통령인 인촌 김성수씨(62년 대통령장)를 비롯한 8명의 독립유공자들이 친일행각 혐의를 받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김성수씨외에 3·1운동 당시 33인중 한명으로 광복회장을 지낸 이갑성씨(62년 대통령표창),시조시인 이은상씨(77년 애국장),그리고 윤익선(62년 독립장)·윤치영(82년 건국포장)·서춘(63년 대통령표창)·이종욱(77년 독립장)·전협씨(82년 애국장)등이다. 보훈처가 민주당의 김병오·이해찬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성수씨는 친일단체인 총력연맹이사로 재직하며 학병을 권유한 혐의를 받고있다. 또 시조시인 이은상씨는 친일지인 만선일보에 재직했으며 임시정부 구미위원회위원을 역임한 윤치영씨는 41년 미영타도간담회 연사로 참석,대동아공영권 논리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이갑성씨는 일제때 밀정혐의를 받고있으며 3·1운동을 주도,1년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윤익선씨는 친일단체인 서울 원서정 총대와 북부정회 총대회간사를 역임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춘씨는 친일지인 매일신보주간을 지내면서 조선임정보국단에 간여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종욱씨는 총력연맹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전협씨(대동단 결성)는 일진회 평의원과 부평군수를 지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이들의 친일혐의가 드러남에 따라 독립유공자 재심사위원회를 구성,상훈법등 관련법령을 개정해 친일독립유공자 서훈취소등의 근거조항을 신설해 처리할 방침이다. 정부는 그러나 이들에 대한 소명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내년 1·4분기까지 본인이나 유족들에게 소명자료를 제출토록할 계획이다. 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이는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친일인사 14∼15명중 보훈처가 파악한 명단』이라고 밝혔다.
  • 임정선열 유해5위 봉환/국민장수준 거행

    ◎중과 협의 마쳐… 새달5일 운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 5위의 유해봉환을 위한 한·중간의 실무협의가 끝나 봉환에 따른 국민적 행사가 예정대로 치러지게 됐다. 보훈처의 유해봉환실무협의반(반장 장귀호보상지원국장)은 3일 하오 중국측과의 협의를 마치고 귀국했다. 한·중 양국은 지난달 29일부터 상해에서 유해봉환협의를 벌여 유해는 화장후 봉환하며 천묘행사는 유해가 있던 만국공원내에서 한국측 의식으로 거행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이와 함께 ▲제단및 현판은 한국측 요구대로 제작,설치 ▲천묘행사시 태극기게양 ▲김영삼대통령등 3부요인 화환근정 ▲전세기 출입국절차및 교통편의 제공등에도 합의했다. 이에따라 박은식(임정 국무총리·2대 대통령)선생등 임정 유해 5위는 계획대로 다음달 5일 전세기편으로 운구, 봉환된 뒤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모셔져 5일동안 일반인들의 분향을 받게 되며 영결식은 10일 상오 국립묘지 현충문 앞에서 각계 인사와 시민 6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수준의 「국민제전」으로 거행된다.
  • 돌아온 최형우의원…거취에 촉각/「13일간 방중」마치고 조용한 귀국

    ◎“개인자격” 불구 「실력자」 예우/의회차원 한·중협력방안 모색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최형우 민자당전사무총장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다. 최전총장의 방중은 57일간의 은둔생활을 마치고 재개한 첫 외부활동으로 앞으로의 거취와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개혁의 일선으로 복귀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도 성급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그의 방중 일정에 대해 일단 주목하고 있다.중국에서 보여준 활동상이 곧바로 현재의 위상으로 직결됨은 물론 앞으로의 역할을 점칠 수 있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최전총장 본인은 이번 방중에 대해 애써 단순한 개인차원의 외유로 치부하고 있다.그는 국회의원의 입장내지는 개인차원에서 안중근의사가 처형 당한 여순감옥소,상해임시정부 청사,북경대학 등을 다녀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밖의 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외유에는 어느 정도 무게가 실려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그는 중국에 13일동안 머물면서 중국정부로부터 「상당한」 예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한국의 일개 국회의원으로서는 다소 과분할 정도로 「귀한 손님」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상해·청도·대연·북경 등 4개 도시를 순방하는 동안 중국 정부에서는 한인교포와 중국인 통역관 2명을 줄곧 수행토록 해 「편안한 여행」을 배려했다.주용기부총리를 비롯,전기운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상임부위원장,등소평의 사위인 장굉중국과학기술총공사 부총재 등 실력자와도 만났다. 중국측은 앞으로 구성될 한중의원친선협의회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그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세심함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일의원친선협의회 부회장의 경우 외무·국방위의 부위원장인데 비해 우리측과의 협의회는 주양외무·국방위 위원장이 회장직을 맡아 격이 한층 높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또 중국정부가 자국민은 물론 웬만한 국가원수급에도 쉽게 공개하지 않는 명소에도 초청받았다는 후문이다.한국의 「특사」내지는 「실력자」에 걸맞는 예우를 했다는 반증이다. 그는 귀국하기에 앞서 중국측에서 보여준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그곳의 거물급 실력자에게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비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전총장은 귀국후 기자들과 만나 『당분간은 자숙하며 의회차원의 한중협력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당장은 개혁의 전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아울러 시간이 지나면 나름대로의 역할을 맡을 수 있지않겠느냐는 기대의 표시라는 분석도 가능하다.따라서 그가 개혁의 전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인지,그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 크메르루주 수도귀환 승인/「캄」 임정/통합군 참여도 요청

    【방콕 AFP 연합】 캄보디아 임시정부는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의 프놈펜 귀환을 승인하고 크메르 루주군에 통합군 참여를 요청했다고 노로돔 라나리드 임시정부 공동수반이 28일 밝혔다. 라나리드는 이날 프라송 순시리 태국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크메르 루주 지도부는 오는 7월1일 프놈펜으로 돌아올 것이며 7월11일 이전에는 시아누크공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시아누크공은 지난 4월13일 평화정착 과정에 불참을 선언하고 프놈펜을 떠난 크메르 루주를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며 이들의 수도 귀환에 반대했다. 라나리드는 이와 함께 자신이 지난 27일 크메르 루주 지도자 키우 삼판과 만나 통합군에 합류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했다고 말했다.그는 이에 대한 회신은 아직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크메르 루주,“임정 참여”/시아누크 자문제의 수락

    ◎키우 삼판 곧 귀환/「캄」 사태 평화적해결 “청신호” 【프놈펜 AP 연합】 크메르 루주가 24일 지도자 키우 삼판의 프놈펜 귀환의사를 밝힌데 이어 25일에는 임시연립정부에 자문역으로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수락함으로써 캄보디아 사태의 평화해결전망이 한층 밝아지고 있다.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최고민족회의(SNC) 의장도 25일 성명을 통해 키우 삼판의 귀환을 적극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총선에서 승리한 시아누크 계열의 민족연합전선(FUNCINPEC)과 훈센 총리의 프놈펜 정부측이 24일 임시정부 구성및 권력분할에 최종합의한지 하루만에 이뤄졌다. 크메르 루주 라디오방송은 25일 크메르 루주가 오는 8월 새 정부 공식 출범때까지 임시정부에 자문역으로 참가해 달라는 시아누크 의장의 제의를 수락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대해 크메르 루주의 새정부 각료입각을 반대해온 프놈펜 정부측도 이날 크메르 루주가 임시정부에 자문역으로 참여하는 것은 내전종식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크메르루즈,「캄」 임정 불참

    【프놈펜 AFP 연합】 지난 달 유엔 주관하에 진행된 캄보디아 총선을 거부하며 불참했던 크메르 루주는 집권 인민당(CPP)과 선거에서 승리한 캄보디아 민족연합전선(푼신펙)등이 모색중인 임시정부에 참여할 의사가 없음을 밝혀왔다고 푼신펙의 한 관리가 23일 말했다.
  • 임정요인 유해5위 8월5일 봉환

    ◎6일간 분양소 설치… 10일 국립묘지 안장/국무회의 의결 정부는 23일 중국 상해의 만국공원에 안장돼있는 임시정부요인 5명의 유해를 오는 8월5일 봉환,국립묘지에 안장키로 하고 봉환행사는 국민장수준으로 치르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황인성국무총리주재로 제30회 국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상해임시정부선열5위봉환 국민제전계획안」을 의결했다. 이번에 유해가 봉환되는 선열은 박은식(임정 국무총리·2대대통령),노백린(임정 군무총장·국무총리),김인전(임시의정원 부원장),신규식(임정 법무총장·국무총리),안태국(데라우치총독 암살로 6년복역)등 5위로 김포국제공항에서 봉영식을 거행한 뒤 차량으로 국립묘지까지 운구돼 영현봉안관에 안치된다. 이어 6일동안 조문객들의 분향을 받은 뒤 10일 상오 3부요인과 각계 대표 6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을 갖고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다.
  • “정부·언론 오보 최소화 공동 노력 절실”/국무회의:23일

    ◎전시 양곡 강제수매안 “현실성 없다” 이 부총리 이의 93을지연습과 맞물려 예정보다 하루 빠른 23일 소집된 제30회 국무회의는 전시비상계획에 대한 각 국무위원들의 심도있는 논의로 3시간동안 진행됐다. 특히 의안심의에 앞서 열린 제2차 비상국무회의에는 진지한 분위기속에 2시간남짓 진행돼 을지연습비상국무회의사상 최장시간을 기록했다. 공보처와 법제처등 4개부처의 개혁과제 진행상황및 자체사정에 대한 보고는 이에따라 다음 회기로 순연됐다. 이날 국무회의는 대통령령안 3건과 일반안건 5건을 처리했다. ○전시대책 신중 토론 ○…지난 21일에 이어 2차로 열린 비상국무회의는 형식에 그쳐왔던 과거와 달리 전시에 대비한 각종 대책의 시행상 문제점등을 검토하고 수정안을 마련하는등 심도있게 진행. 특히 전시에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양곡을 정부가 강제수매토록 돼있는 전시양곡관리대책에 대해 이경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현실성이 부족하다』며 이의를 제기. 이부총리는 『정부보유물량이나 국민의식수준으로 볼때 양곡강제수매는 비현실적』이라며 『자유시장원리는 유지하되 사재기등을 방지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내무·재무·공보처장관등의 호응을 받았다. 각 국무위원들의 지적과 의견제시가 잇따르자 회의를 주재한 황인성총리도 『깊은 통찰력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각 국무위원들의 자세에 감사한다』고 격려하고 『각 부처는 보다 심도있는 전시대책을 마련하라』고 당부. ○…중앙일보 오보사건과 관련해 오린환공보처장관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언론에서도 오보의 심각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언론뿐 아니라 정부도 오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 이에대해 황총리도 『국무위원이 언론인을 고발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각 부처는 국민에게 알릴 사항은 적극적으로 공개해 이같은 오보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개혁상황 성실 보고” ○…다음달 2일 열리는 임시국회와 관련해 김덕용정무1장관은 『이번 회기에 처리할 법안은 국회가 충분히심의할 수 있도록 미리 제출해 달라』고 당부. 이에대해 황총리도 『각 국무위원은 소관부처의 개혁정책및 추진상황을 성실히 국회에 보고,언론을 통해 국민이 소상히 알도록 노력하라』고 지시. 한편 국무회의 심의안건이 아닌 상해 임시정부유해봉환계획은 영결식이 열리는 8월10일 전국적으로 조기를 게양하는 등 국민장에 준하는 행사로 치르기로 함에따라 의안으로 상정해 처리. ▷의결안건◁ ◇대통령령안 ▲경찰공무원 승진임용규정 개정안 ▲대외무역법시행령 개정안 ▲국가기술자격법시행령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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