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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각협력의 새 시대 열다(사설)

    김영삼대통령이 6박7일간의 일본및 중국공식방문을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문민정통성과 개혁의 바탕위에 국가적 세일즈맨으로 나서 새롭게 도약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고 한·중·일 삼각협력체제를 구축한 이번 순방은 그 상징성과 성과면에서 정상외교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된다. 김대통령은 이번 일·중 두나라방문을 통해 탈냉전과 무한경쟁의 새로운 세계질서속에서 우리의 통일과 번영의 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한반도주변 4강과의 새로운 협력관계 구축이라는 장기포석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작년 미국방문이 그러한 출발이었다면 그 마무리가 될 오는 6월의 러시아방문을 앞둔 이번 순방은 현재의 경제대국 일본과 다음 세기의 초강대국 중국과의 동반협력의 큰길을 연것이라 할 수 있다.우리가 이 두나라를 양날개로 하여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신질서를 형성하는 주도국으로 발돋움한 뜻이 있는 것이다.아·태시대의 견인차가 될 동북아 3국간 협력의 틀을 새롭게 짜는 김대통령의 국제지도력의 과시인 것이다. 이번 순방에서 현안으로 부각된 북한 핵문제 해결의 경우 일본이 국제제재를 포함한 전폭적인 협력을 다짐했고 중국이 대화를 통한 해결원칙을 강조하는 차이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핵투명성의 보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할때 중국의 동참을 담보하는 방향에서 두가지 흐름을 조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것은 국제공조분위기의 조성과 안보기반의 확충으로 단기적인 대응의 차원을 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번 정상외교의 성과는 경제협력과 교류의 토대를 크게 넓힌 점이다.일본과 기술이전과 산업정보확대 기술자연수등 공동협력프로그램을 추진키로 했고 중국과는 자동차 항공기 전자교환기등 광범한 분야에서의 합작생산과 공동개발에 합의하고 투자보장협정 문화협정등을 체결함으로써 획기적인 협력관계의 발전이 가능하게 됐다. 김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보여준 역동적인 정상외교의 스타일도 내외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국내적 개혁이미지로 호소카와 일본수상 강택민 중국주석등 이지역 정상들과의 친분과 유대를 공고히 한것은 소중한 외교자산이 아닐 수 없다.일본방문에서 떳떳하게 과거역사의 교훈을 강조하고 중국방문에서 상해임시정부의 역사현장을 답사했으며 천진의 한국공단시찰및 교민들과의 만남등은 우리의 민족정통성을 살찌우고 자존심을 고양시킨 흐뭇하고 자랑스런 모습이었다. 과거 소모적 정상외교와는 달리 환영과 경청의 대상이 되는 지도자로서,세계 어느나라와도 당당히 협력하는 동반자로서의 새로운 국가위상과 주도적 외교역량을 보여준 김대통령의 정상외교는 면밀한 후속노력과 국민적 개방의지로 뒷받침될때 그 성과와 의미가 한층 커질 것이다.
  • 김 대통령 북경대 연설문 요지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북경대학을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방문하여 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나는 이번 방문을 통해 상해의 거대한 포동개발지구에서 고도 북경에 이르까지 약동하는 중국의 발전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중국국민의 근면과 성실,그리고 중국 지도자들의 탁월한 영도력이 오늘의 중국을 있게 했다고 믿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수천년에 걸친 두터운 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한자를 사용하고 유교문화적 전통을 공유해 왔습니다.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습니다. 1919년 한국의 3·1 독립운동과 북경대학 중심의 5·4운동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20세기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나라 관계가 일시적으로 단절되었을 뿐입니다. 한국은 산업화를 시작한지 30년이 지났습니다.한국은 국민총생산이나 무역면에서 세계유수의 산업국가가 되었습니다. 중국국민이 위대한 저력을 발휘하여 현대화를 성공시키고 있듯이 한국국민도 세계사에 유래없는 기적을 창출했습니다.이런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양국의 공동번영과 아태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계는 지금 21세기를 앞두고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아시아의 경제적 역동성이 세계 경제지도를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평화적으로 그리고 원만히 해결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나는 중국의 능동적인 역할을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우리는 결코 북한의 고립을 원치 않으며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서는데 필요한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서해안지역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북한이 개방·개혁의 조류에 동참하게 된다면,「황해경제권」이 급속히 부상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하여 황해는 「평화와 번영의 호수」가 될 것이며 동북아는 더욱 활력이 넘치는 지역이 될 것입니다.한반도 통일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될 것입니다.동북아의 긴장을 완화시켜 지역발전을 더욱 촉진시킬 것입니다.나아가서 통일은 동북아 질서에 참된 균형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손을 맞잡고 「상생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특히 한·중간의 상생관계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기본축이 될 것입니다. 한·중양국은 문화적 동질성,지리적 근접성,오랜 역사적 유대라는 유리한 조건은 물론 높은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양국은 인력과 자원,자본과 기술,발전경험 등 모든 면에서 서로 주고 받을 부분이 많습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국가의 하나가 되었습니다.한국 또한 세계속의 주요국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한·중양국은 긴밀한 협력으로,21세기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는 데 책임있는 역할을 다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나의 이번 방문이 한·중간 「상생의 시대」를 활짝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UR 이행계획 제대로 알려라”/이 총리(국무회의:28일)

    28일 국무회의는 재무부가 상정한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제4조의 시행에 관한 규정 제정안의 의결이 보류되고 대통령의 해외순방기간에 즈음한 이회창국무총리의 지시등으로 2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이총리는 『한 개인이 어떤 금융기관과 거래를 한다는 사실까지 비밀보장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하다』면서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제4조의 시행에 관한 규정 제정안」의 제3조 「비밀보장의 대상이 되는 정보등의 범위를 특정인의 금융거래 사실과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거래자의 금융거래에 관한 기록의 원본및 사본과 그들로부터 알게 된 것으로 한다」는 조항에서 이 부분을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 또 제5조 2항 「명의인의 동의에 대한 정보등의 제공」 가운데 「동의서의 유효기간은 동의서의 작성일로부터 6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이 수사목적등의 조사를 저해할 우려가 있고 반드시 유효기간을 못박을 이유가 없음을 들어 홍재형재무부장관에게 재검토를 지시. 이총리는김양배농림수산부장관으로부터 우루과이라운드 농수산물시장개방 이행계획서에 대한 보고를 받은뒤 『국민들이 이행계획서에 관해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수정경위와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 ○…최형우내무부장관은 동교동 김대중씨 자택 인근 경찰경비숙소 현황과 대책을 보고,『서울시와 경찰공제회가 2채씩 소유하고 있는 경찰경비숙소 4채가 있었으나 지난 87년 7월9일 이후 분식점주인 버스운전사등에게 전세를 주고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서 『28일 김화남경찰청장을 대동하고 현장을 둘러본 자리에서 입주자들을 즉각 내보내고 매각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 최장관은 『동교동에 이어 상도동 김영삼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한 결과 과거 경찰의 경비가옥이 있었고 이웃 노인정 지하에도 경비경찰관들이 사용하던 숙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처럼 경찰경비가옥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청와대의 안가 철거 지시때 보고에서 누락됐기 때문』이라고 해명. ▲단기금융업법시행령(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시행령(제) ▲국유재산법시행령(개) ▲신용카드업법시행령(개) ▲군인사법시행령(개) ▲농지의 보전및 이용에 관한 법률시행령(개) ▲농어촌전화촉진법시행령(개) ▲건설공제조합법시행령(개) ▲부동산중개업법시행령(개) ▲행정규제및 민원사무기본법시행령(제) ▲95년도 예산안 편성지침 ▲94년도 일반회계 재해대책 예비비지출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공화국간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 ▲93회계연도 국민투자기금 결산보고서 ▲대전세계박람회유공자등에 대한 영예수여 ▲75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행사 기본계획(안) ▲34주년 4·19의거 기념행사기본계획(안)
  • 고구려·발해 유적 발굴 “청신호”/한·중 문화협정 체결의 함축

    ◎방송·영화·체육 교류도 활성화 김영삼대통령과 강택민주석이 28일 체결한 한·중문화협정은 같은 문화적인 뿌리를 가진 두나라간의 교류를 더욱 활기차고 긴밀하게 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데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번에 체결된 협정은 문화예술교류는 물론 역사·학술·문화유적의 보존에 관한 자료교환과 공동조사에도 서로 협력하고 교과서 등 공식출판물에서 상대국의 역사·지리적 사실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이와함께 방송과 영화·청소년·체육분야의 교류협력을 더욱 강화한다는 사실도 명문화 했다. 두 나라 정상은 이에 머물지 않고 이같은 내용의 문화교류가 더욱 확실하고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두 나라 정부의 실무진들로 구성되는 「한·중 문화공동위원회」를 설치,운영한다는데도 합의했다.이에따라 우리나라는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승인과 협조를 얻어 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 등 중국 동북지역에 산재해 있는 고구려와 발해 등 우리 고대 국가들의 유적을 발굴·조사할 수 있게 됐다.중국정부는 그동안 이곳의유적에 대해 변방에 집단적으로 살고있는 소수민족의 유산정도로만 여기고 우리와는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해와 보존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지역에 대한 두 나라의 역사시각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우리는 이 지역을 우리 고대사의 무대로 판단,이의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늘 한 지방정권의 관할 지역으로만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이번 문화협정의 체결로 고대사 부분에 대한 조사를 통해 시각조율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두 나라가 서로 협력,연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만도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때를 맞춰 정부는 중국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고구려­발해 유적조사 7개년 계획」을 수립,빠른 시일내에 추진할 계획이다.우선 올 하반기에 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을 주축으로 「고구려­발해 유적조사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조사활동을 벌인다는 것이다.이 조사단은 국내 전문가는 물론 중국측 관련학자들도 조사위원으로 위촉할 예정이다. 이번 협정체결의 보다 가시적인 성과로는 지난해 4월 상해임시정부청사 복원에 이어 내년 8월까지 중경임시정부청사도 중국정부의 협조를 얻어 복원해 민족사의 법통성을 완전히 회복하기로한 점이다.김대통령 스스로 문민정부의 법통성을 임시정부에서 찾고있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 김 대통령의 「상해 감회」/김영만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김영삼대통령에게 상해는 어떤 감상을 주었을까. 김대통령은 1박2일의 상해체류기간동안 세군데의 의미있는 장소를 방문했다.도착 첫날인 26일에는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했고,27일에는 윤봉길의사가 의거를 했던 강구공원과 중국 미래산업의 꿈이 담겨 있는 포동지역을 돌아봤다. 임시정부청사와 홍구공원에서 김대통령의 감회는 남다른 것이었다.스스로 문민정부의 정통을 상해 임시정부에서 찾은 바 있고,강구공원은 임시정부의 역할이 상징화되어 있는 곳이다. 모두가 우리의 과거에 관한 감상을 안겨주는 곳들이다.이에 비해 포동은 우리경제와 필연적으로 사활을 걸고 부닥치게 될 중국경제의 역동성과 광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옛 시가지가 있는 황포강 서안을 재개발하고 비어있는 동안을 중점개발해 중국의 금융·무역·과학기술·정보의 중심지로 만든다는게 지난90년 발표된 포동개발계획이다.그로부터 4년.대통령 일행이 묵은 상해 신금강호텔은 44층짜리 고층 빌딩이다.이곳 스카이라운지에서 보이는 포동지역은 지평선 끝간데 없는 곳까지,최고 88층까지 하늘로 향해 치솟은 50여개의 고층빌딩이 외국의 여행객들에게 무언의 시위를 한다. 지난 한해 외국인 투자로만 9백24건 17억2천9백만달러가 이곳에 퍼부어졌다.높이 2백20m,총연장 8㎞의 남포대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포동지구는 그 웅장함에서만도 보는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한다.97년까지 중국에 반환되는 홍콩을 대신해 아시아의 금융·정보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중국과 상해당국의 의욕은 거침이 없어 보인다. 김대통령은 이날 포동지구에 있는 금교수출가공구 개발공사에서 상해부시장으로 부터 개발계획을 브리핑받고 개발완료후의 모형을 관람했다.김대통령은 특별한 소감피력 없이 『나의 중국방문이 양국경협을 증진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대통령은 이날 길이 7㎞의 양포대교를 통해 포동지구로 들어갔다가 8㎞길이의 남포대교를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김대통령은 양포대교에서 잠시 내려 황포강과 포동지구의 전경을 보았다. 우리가 주변강대국들과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가를 피부로 느끼게하는 곳이었다.그것은 임정청사나 강구공원방문에 못지 않은 상해방문의 또 하나의 의미에 충분했다.
  • “북이 핵입장 바꾸면 상응조치”/한·일 정상 공동회견

    ◎동북아 안정에 한일미중 협조긴요/일,한국의 안보리 진출 지원/환경 등 「신라운드」 공동대응/김 대통령 상해안착… 내일 한·중 정상회담 【상해=김영만특파원】 김영삼대통령은 26일 하오 3일동안의 일본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도쿄를 떠나 상해에 안착,4박5일동안의 중국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해공항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한데 이어 상해임시정부청사를 시찰하고 상해시장주최 만찬에 참석했으며 27일 노신공원과 포동개발지구를 시찰한 뒤 북경으로 간다. 김대통령은 28일 북경에서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어서 이번 한·중정상회담이 북한핵문제 해결의 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26일 상오 도쿄에서 한·일확대정상회담을 마친 뒤 호소카와(세천)일본총리와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북한핵문제에 언급,『한일양국정상은 한·일·미·중 4국이 긴밀하게 협의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갔으며 북한이 지금이라도 태도를 바꾼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중국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해 미리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중국 역시 북한이 핵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한·일 두나라는 아·태경제협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공동노력과 함께 새로운 다자간 통상협상 대응에서 서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면서 『두나라의 무역불균형 문제도 긴밀한 경협을 통해 경제관계를 확대하면서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소카와총리도 『북한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미·중 4국의 긴밀한 의견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이 문제는 동북아지역의 안보에 최대의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소카와총리는 한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문제에 대해 『일본이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대통령은 한·일 확대정상회담에서 일부품산업의 대한투자를 확대하고 중소기업 사이의 교류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면서 일본건설시장에 한국업체가 진출토록 배려해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에서 거론되지 못했던 「한자의 국제 표준화」 「동양의학공동연구기금 조성」 「동북아 환경협의체 구성」을 한·일·중 3국이 공동추진하자고 제의,호소카와총리도 이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혀 합의를 이루었다.
  • 중국에 대한 우리의 기대(사설)

    일·중순방의 김영삼대통령은 도쿄에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새 한·일관계를 다진데 이어 휴식의 틈도 없이 26일 곧바로 상해에 도착,중국방문에 들어갔다.선렬의 독립투혼이 서린 임시정부청사등을 찾아보며 독립운동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확인한 후 27일 북경으로 들어가 강택민주석등 중국지도자들과 회담을 갖고 공동관심사를 논의한다. 당초 김대통령 방중의 중요관심사는 그동안 양적 팽창을 거듭해온 양국관계를 질적이고 화학적인 결합단계로 차원을 높이는 데 있었다.한·중산업협력위를 구성하고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하며 항공협정도 완결시켜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 상호보완적인 양국의 경제협력파트너관계를 확대발전시켜 그러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관계발전을 통해 군사·안보 등 기타 한·중관계일반의 긴밀화도 촉진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한 관심사엔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다.다만 최근의 사태로 또하나의 시급한 괌심사가 추가되었다.북핵문제인 것이다.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대북영향력이 막강한 중국이다.북핵개발은 반대하나 대화해결만 강조하고 있다.때마침 그러한 중국을 우리대통령이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북핵문제에 대한 논의가 비상한 관심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여러차례 촉구한 바 있다.중국은 대화해결의 원칙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방법을 제시하고 관철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협력적인 중재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그것은 개방·개혁의 아시아대국이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이 다해야 할 국제적 책임이자 의무일 것이다.그동안의 중국은 북핵에 관한 한 무책임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한·일정상이 중국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핵문제외도 북한과 관련해 중국에 기대하는 바는 많다.특히 중요한 것은 북한의 개방·개혁 유도다.북한의 개방·개혁지체로 동북아의 안보와 경제적 발전이 큰 지장을 받고 있는 사실은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북한의 개방·개혁은 한·중·일·러로 이어지는 동북아·태평양경제발전및 번영의 결정적인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우리대통령은 이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고 있다.중국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 또 한가지 우리는 북탈란민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북한과의 관계등을 감안한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나 보다 인도적인 차원의 대응을 바라는 것이다.기아를 못이겨 국경을 넘는 그들을 단순월경자로 체포해 사형이 확실한 북한으로 송환하는 것은 대국 중국의 체면에 관계되는 비인도적 처사다.한·중양국과 유엔관계기관도 참여하는 관심과 대책마련이 있기를 기대하는 바다.
  • 상해(외언내언)

    「상해」라는 도시는 우리에게는 부르기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풍겨준다.「샹하이」하면 세기말의 향락과 퇴폐가 물씬 풍기는듯하다.「니꼬랑」의 「야래향」이 이앓는 소리처럼 흘러나올 듯한 이국도시다.그러나 실제의 도시 상해는 너무 퇴락하고 인총이 바글거리는 낡은 도시였다. 프랑스와 영국조계지역의 그 섬세하고 우아한 모습이 오랜동안 손질없이 방치되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같은 모습으로 조밀한 인구밀도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한편 「상해」하고 부르면 우리에게는 전혀 다른 정서로 다가온다.조국독립의 열망에 피끓던 열사와 지사와 그 지망생들이 모여들어 분기충천하여 외치고 좌절도 하고 마침내는 한에 맺혀 쓰러지기도 한곳.그런 흔적들이 공원에도 살아있고 거리에도,조그만 연립주택의 좁다란 복도와 계단에도 새겨져 간직되어오는 곳이다.그곳은 그래서 우리의 발길을 끈다. 그곳에 우리 대통령의 발길이 닿게 되었다.뜻깊은 일이다.광복과 신생독립국을 이룩하고도 반세기를 지나서야 비로소 문민다운 문민정부를 수립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챙겨,망국의 한으로 지하에서도 눈감지 못하던 어른들을 모셔다가 떳떳이 고국의 산하에 안치해드린 대통령이 그곳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를 감개무량하게 한다. 12억의 공룡같은 나라,이념을 달리하며 적대하던 역사를 가진 나라,오랜동안 등돌리며 살아온 그 커다란 나라 중국이 생존과 발전의 동반자로 함께하기를 정중하게 청하는 나라로 대한민국은 성장했다.그 대등한 위치에서 새로운 「한중시대」를 창출하기 위한 정상외교의 도정에 우리 대통령은 올라 있고 그 첫 기착지가 「상해」인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나라 사랑하는 열정을 공유하는 선렬의 영령들 앞에서 성공적인 만리장성외교를 다짐하며 대통령은 깊이 묵념을 드렸을 것이다.경건하게 우리도 그 묵념을 함께 한다.
  • 「임정 구지」 현판 만지며 감회 젖어(김대통령 방중여로)

    ◎「한민족 독립운동의 성전」 기념휘호 남겨/연도의 중국인,김대통령 알아보고 박수 ▷상해시장 접견및 만찬◁ ○…김영삼대통령내외는 상해도착직후 임정청사를 둘러본뒤 숙소인 신금강호텔 4층 백옥란청에서 황국상해시장 일행을 접견,10여분간 환담한뒤 황시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 김대통령은 황시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처음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지만 공항에서 오면서 1천3백만 인구의 상해시가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다고 느꼈다』며 『특히 우리나라 주요기업들의 간판이 거리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대단히 반가웠다』고 상해방문 소감을 피력. 김대통령은 『우리나라와 중국은 수교역사가 불과 1년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도 놀라운 교역량 증가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상해시는 중국 발전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큰 희망이 있다』고 언급. 김대통령은 또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청사를 돌아보면서 선조들이 그 좁은 장소에서 독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감회가 깊은 표정. 김대통령은『상해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을 잇는 큰 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임정청사를 잘 보관해온데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명. 황시장은 이에앞서 『대통령의 상해시 방문은 한국기업의 중국진출등 양국간의 경제협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인사. ▷임정청사방문◁ ○…상해의 숙소인 신금강호텔에서 한시간의 휴식을 취한 김대통령내외는 승용차편으로 상해시 노만구 306동4호에 있는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30여분 방문. 김대통령은 청사건물 골목을 걸어들어가 건물입구의 흰대리석에 새겨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란 현판을 손으로 만져보며 잠시 감회어린 표정을 지은뒤 건물관리소장인 장명목씨의 안내를 받으며 3층 건물내부를 돌아봤다. 김대통령은 장소장으로부터 임시정부 원년인 1919년 첫 임정국무원 요원들이 기념촬영한 사진설명을 듣고는 『너무 젊을때 사진이라 잘 알 아 볼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시. 김대통령은 특히 신익희선생의 모습을 보고는 『어제도 와세다대학에서 선생님 얘기를 했었는데…』라며 『그분을 모시고 정치를 처음 시작했었다』고 회고. 이어 3층에 올라가 요인숙소를 둘러본후 『이렇게 좁은집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지냈으니 얼마나 어려웠겠느냐』고 임정요인들의 애국심을 되새기기도. 이어 숙소옆방에 마련된 전시실로 자리를 옮긴 김대통령은 임정수립당시의 활동상황이 실린 당시 신문기사·사진·그리고 도산 안창호선생의 친필휘호 「애기 애타」등을 어루만지며 관심을 표명. 김대통령은 장관리소장에게 『귀중한 자료들을 잘 보관해주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1층회의실에 내려와 회의용 탁자에 준비된 방명록에 「한민주 독립운동의 성전」이라고 기념휘호. 임정청사는 건평 44평에 3층연립주택형 벽돌건물로 현재 상해시가 「노만구 문물보호」건물로 지정,관리하고 있는데 비교적 깨끗이 관리되고 있는 상태. 한편 김대통령 내외가 청사방문을 마치고 나오자 큰길 양편에 몰려있던 수백명의 중국인들이 김대통령을 알아보고 박수를 보냈고 이에 김대통령은 특유의 제스처로 손을 흔들어 답례. ▷상해도착◁ ○…김영삼대통령은 26일 하오 도쿄를 출발한 지 3시간만에 상해에 도착,4박5일의 중국 공식방문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윤해중상해주재총영사와 중국의 전차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오며 태극기와 오성홍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민 1백여명에게 손을 들어 답례. 이어 트랩을 내려와 영접나온 황국상해시장과 장정연주한중국대사내외등 중국측 인사와 반갑게 악수를 교환하고 상해시 남녀화동 2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서는 이들의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 김대통령은 이어 「선진조국의 영도자 김영삼대통령」「성공적인 중국방문을 기원합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고 환호하는 교민들에게 다가가 특히 앞줄에 선 어린이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숙소인 신금강호텔로 출발. ▷현지반응◁ 중국의 각 신문들은 이날 일제히 김대통령의 약력과 치적등을 중심으로 방중관련기사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 당이론지 광명일보는 「김영삼,누적된 폐해(적폐)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여론조사결과 대다수 한국인들이 김대통령의 지난 1년간의 정치개혁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 이 기사는 김대통령이 그동안 한국병의 근원적인 치료를 위해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등을 추진해왔고 계속적인 개혁을 통해 문민통치하의 「청렴정치」를 실현해가고 있다고 소개. 당기관지 인민일보도 이날 1면에 김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약력등을 소개하고 2면과 3면에서도 한국관련 특집기사를 게재. 인민일보는 이어 2면에서 「합작을 확대,공동발전한다」는 제목으로 서울주재특파원이 쓴 특집에서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해외투자대상국이자 세번째로 큰 파트너가 됐다고 지적.이 기사는 또 요즘 한국에서는 중국붐이 일어나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가 하면 도로표지판에 한자가 등장하고 한자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등 사그러들던 한자들이 다시 부활되고 있다고 소개.
  • 고 조경한선생 유해 오늘 임정묘역 이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중 마지막 생존자로서 지난해 1월 숨진 조경한선생과 임정 내무총장겸 재무장을 역임한 이유필선생의 유해가 25일,30일 하오2시 국립묘지 임정요인 묘역으로 각각 이장된다.
  • 김 대통령 방일·방중 일정 발표

    ◎24·26일 호소카와­28일 강택민과 정상회담 김영삼대통령내외가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일본,26일부터 30일까지는 중국을 국빈자격으로 공식방문한다고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이 21일 확정된 방문일정과 함께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일본방문기간 아키히토(명인)일왕과 면담하며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와 두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인 선린관계 구축,호혜적 경제협력 증진,북한핵문제의 투명성 보장을 위한 협력,아태지역협력의 활성화 방안등을 폭넓게 논의한다. 김대통령은 이어 중국의 상해를 거쳐 북경을 방문,강택민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며 이붕총리및 교석전인대위원장등 정계지도자들과 만나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과 한·중경제통상협력 확대방안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의 일본 중국 방문일정과 공식수행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일정◁ ◇24일 ▲출국 도쿄도착 ▲공식 환영행사 ▲일왕내외 예방 ▲재일동포리셉션 ▲호소카와총리와 단독정상회담 ▲일왕내외 주최 공식만찬 ◇25일▲주일특파원과 조찬 ▲국회연설및 국회지도자 접견 ▲경제단체 공동주최 오찬 ▲와세다대 박사학위 수여식 ▲일본 연립여당간부 접견 ▲자민당간부 접견 ▲일본 각계유력인사 다과회 ▲호소카와총리 내외주최 공식만찬 ◇26일 ▲호소카와총리내외와 조찬 ▲한·일확대정상회담 ▲호소카와총리와 공동기자회견 ▲일왕내외 작별예방 ▲도쿄출발 중국 상해도착 ▲상해임시정부청사 시찰 ▲상해시장내외접견및 만찬 ◇27일 ▲노신공원(구홍구공원) 시찰 ▲포동지역 경제특구시찰 ▲상해주재상사원 오찬 ▲상해출발 북경도착 ▲북경주재 상사원 리셉 션 ◇28일 ▲공식환영행사 ▲강택민국가주석과 한·중정상회담및 협정서명식 임석 ▲한·중경제인 오찬 ▲만리장성시찰 ▲강택민주석 주최 공식만찬 ◇29일 ▲북경대학 연설 ▲수행기자단 오찬간담회 ▲전인대 위원장 접견 ▲서예가접견 ▲내외신 기자회견 ▲이붕총리내외 접견및 만찬> ◇30일 ▲주중특파원조찬 ▲북경출발 천진도착 ▲천진한국전용공단 시찰 ▲천진출발 서울도착 ▷공식수행원◁ ◇일본=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 김우석건설부장관 김시중과기처장관 공로명주일대사내외 김윤환한일의원연맹회장 이양호합참의장 박상범경호실장 강재섭민자당총재비서실장 박재윤청와대경제수석 정종욱외교안보수석 주돈식공보수석 신두병외무부의전장 김석우청와대의전비서관 유병우외무부아주국장 ◇중국=한승주외무부장관 윤동윤체신부장관 황병태주중대사내외 추가,김우석건설부장관 공로명주일대사내외 제외
  • 「문민정부」 아닌 「제3민주정부」/이달순(기고)

    ◎「김영삼정부」의 성격과 명칭 「문민」시대와 「개혁」을 외치고 있다.그런데 문민정부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우리는 오랫동안 「양반」시대를 살아왔다.「무」반과 「문」반의 시대였다.우리는 그 양반권위주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지금부터 꼭 1백년전인 1894년 동학교도혁명을 일으켰다.일본의 침략으로 그 혁명은 실패했다.그뒤 우리 조상들은 일본인들을 내쫓고 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싸웠다.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민주정부였다.3·1민족독립혁명으로 세운 우리나라 제1민주정부였던 것이다. 8·15해방과 함께 우리는 노래불렀다.『남대문을 열어라.동대문을 열어라.임시정부 들어온다.광복군이 들어온다』그러나 임시정부는 들어오지 않았다.이승만이 들어와 이씨왕조를 「이은」(승) 그것도 「뒤늦게」(만) 나타난 왕으로 행세했다.백성들은 그를 국부 즉,임금으로 떠받들었다.우리는 그의 정부를 제1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현대판 이승만왕조였다.왕조정치는 혁명으로 무너진다.4·19학생혁명이다.그리고 장면내각이 성립되었다.임시정부에이은 제2민주정부의 탄생인 것이다. 혁명 뒤에는 온건파가 집권한다.그 시대는 이중주권시대로 불린다.혼란한 질서가 나타난다. 이때 쿠데타가 발생한다.5·16이다.쿠데타는 민주혁명에 대한 반동이지만 역사가들이나 정치학자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혁명의 이념을 이상으로 삼고 그 실천을 위해 광신도처럼 날뛰었다.우리는 조국근대화,민족중흥의 역사를 창조했다. 이 시점에서 민주정치만 실시되면 금상첨화다.그러나 집권자는 장기집권의 독재자로 변신한다.박대통령은 18년(목=십,팔) 집권하고 점(복=박)을 보러갔다.당신은 일단(일) 끝났다고(지=정) 했다. 이를 무시했더니 자기의(기) 신하(신=와)가 총을 네방(····=희) 쏘았다.궁정동 한모퉁이에서 그때 그사람 노래듣다 그때 그사람이 되고 말았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그 뒤로는 민주화가 구현될 것 같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왕정복고를 불러왔다. 12·12(두)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대통령은 왕(팔+왕=전)이 되어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오야」맘대로 하던 이승만왕조로의 복고였다.민주정치를 위한 국민의 투쟁은 맹렬했다. 3김씨의 싸움은 국민의 표를 갈라놓았다.군사권위주의에 종지부를 찍으려던 국민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12·12세력의 한 사람인 노태우대통령이 들어섰다. 군사통치의 권위주의시대였다.이때에도 「양반」의 시대였다.군출신인 「무」반이 주도권을 행세했고 지식인들이 들러리를 섰다.「문」반인 것이다.양반의 시대는 조선왕조이래 노태우정부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3·4·5·6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다.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장기집권하고 독재공포정치를 한 「양반」정권을 공화국이라고 계속 불러줘야 하는가 말이다. 앞으로 다시 양반권위주의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공화국이라 불러서는 절대 안된다. 역사의 정률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명예혁명으로 민주정부로 발전했다.국민의 지지와 집권층의 도움까지 얻어 김영삼정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군사통치의 「밀리터리언」시대에서 「시빌리언」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문민정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호칭인 것 같다. 「문」은 선비또는 지식인을 뜻하기 때문이다.「반」이 아니고 「민」이기 때문에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법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고,오늘의 세계가 산업사회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귀에 거슬리고 전제주의시대의 양반을 연상시키는 용어다.국민을 문민으로 대치할 수 없다.이제 우리는 김영삼정부를 제3민주정부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 김 대통령 3·1절 75돌 기념사 요지

    ◎“경쟁력 갖춰야 진정한 자주독립국” 오늘 우리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온 겨레가 맨주먹으로 분연히 일어섰던 3·1운동 일흔다섯돌을 맞이했습니다. 75년전 오늘 우리 선조들은 3천리 방방곡곡에서 민족자존의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민족의 높은 기상과 이상을 세계만방에 떨쳤습니다. 참으로 우렁찬 민족의 함성이요,세계사에 뚜렷이 기록될 역사적 용단이었습니다. 선조들의 넘치는 기개와 숭고한 희생정신은 깊이 가라앉아 있던 민족혼을 일깨웠습니다.3·1운동을 계기로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고 끝내 조국의 해방을 쟁취했습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통성있는 문민정부는 위대한 3·1정신을 올바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지난해 임시정부 지도자 다섯분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모신 뜻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또한 태평양시대를 능동적으로 열어나갈 위대한 나라의 건설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독립선언서의 표현대로 「세계개조의 대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위력의 시대가 지나고 국민의 역량과 나라의 경쟁력이 국운을 결정짓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선조들은 높은 이상을 지녔습니다.자주독립을 외쳤지만 결코 배타적이거나 편협한 민족주의에 머물지 않았습니다.동양평화,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을 지향했습니다. 선열들은 또한 당시의 세계조류를 간파하고 기민하게 대처했습니다. 온 겨레가 뜻을 같이 한다면,어떠한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고 아무리 어려운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지금 민족도약의 호기를 맞고 있습니다.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세계무대에서 버틸 수 있는 국가경쟁력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모두가 분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자기혁신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무한경쟁의 시대에는 경쟁력있는 나라만이 진정한 자주독립국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감정에 연연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과거를 소중한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향해,세계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야만 합니다.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순국선열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민족적 긍지를 가지고 일본과 당당하게 협력하며 경쟁해 나가야 합니다.미래지향적인 역사인식과 성숙된 민족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새로운 일본,새로운 아시아,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통일 없이는 자주독립국가 건설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민족분단은 청산되어야 할 과거역사의 유산입니다.민족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의 벽을 허물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민족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인류의 공영과 세계평화에 더욱 기여할 수 있는 책임있는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통일은 세계사적 조류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계는 불신과 대립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개방과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북한은 개혁과 개방만이 민족을 하나되게 하며,민족의 복리를 보장하는 첩경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애국영령들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역사적 정통성에 입각한 문민정부를 통하여 민족적도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변화와 개혁을 통하여 희망찬 미래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정신문화적으로 앞서가는 「성숙한 시민사회」,쾌적하고 고루 잘사는 「살기좋은 사회」,7천만의 역량을 하나되게 할 「통일국가」와 같은,자랑스러운 신한국의 건설을 위해 우리 모두의 지혜와 뜻을 모읍시다. 이것이야말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며,3·1정신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민족사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3·1운동의 거룩한 정신을 가슴깊이 되새기면서 영광된 신한국창조의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 “친일파 묻힌 애국자묘역 싫다”/국립묘지 안장 조경한선생 유언

    ◎25일 효창공원 구정묘역에 이장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 안장됐던 임시정부 국무위원 백강 조경한선생의 유택이 오는 25일 임정요인 묘역으로 이장된다. 미망인 최운영여사(79)등 유족들과 국가보훈처가 추진하는 묘지이장은 백강선생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선생은 지난해 1월 타계하기전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혀있는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며『백범 김구선생이 모셔진 효창공원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고인의 유언과 유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의전절차에 따라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 안장됐다. 유족들과 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그뒤 각계에 청원을 내 효창공원으로 이장을 추진했으나 관계당국이 난색을 보여오다 지난해 8월 박은식선생등 임정요인의 유해가 봉환되면서 임정요인묘역이 마련되자 국가보훈처가 『선생의 유택을 이곳으로 모시자』고 유족들을 설득해 이장이 성사된 것이다. 1900년 전남 승주에서 태어난 백강선생은 24세때 중국으로 망명,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항일무력투쟁에 참가하다 43년부터 임정 국무위원으로 일했다.
  • “과거감정에 연연말고 일과 당당히 경쟁·협력”

    ◎김 대통령,3·1절 75돌 기념사 김영삼대통령은 1일 『세계는 불신과 대립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개방과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히고 『북한은 개혁과 개방만이 민족을 하나되게 하며 민족의 복리를 보장하는 첩경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5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기념사를 통해 『통일 없이는 자주독립국가 건설이 완성될수 없으며 민족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의 벽을 허물었을 때 우리는 인류의 공영과 세계평화에 더욱 기여할 수 있는 책임있는 국가가 될수 있다』면서 『통일은 세계사적 조류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지난날의 감정에 연연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전제하고 『자신감과 민족적 긍지를 가지고 일본과 당당하게 협력하며 경쟁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이 끝난 뒤 관계수석비서관들과 함께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애국지사묘역과 임시정부요인묘역을 참배하고 박은식선생의 손자인 박유철씨등 유족대표들을 위로했다.
  • 문민정부 첫 총리 황인성씨의 회고(인터뷰)

    ◎“YS의 신속한 군장악에 탄복”/독선아닌 경청… 통일관변화 보고 안심/언론의 성급한 「무능내각」 비판에 고통 『문민정부의 한해는 한마디로 변화와 개혁의 연속이었습니다.정직한 사회를 이루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봅니다』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초대 총리로 개혁과 사정,금융실명제 실시,우루과이라운드 협상등의 가파른 길을 걸었던 황인성전총리는 개혁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역사적 과제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황전총리는 『새 정부가 개혁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활성화의 기틀을 확고히 마련,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칫 자화자찬으로 비칠까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군출신인 그는 『민간인 대통령이 등장해서도 군부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가 우리나라 정치의 커다란 과제였다』고 상기시키고 『김영삼대통령이 군부의 과거 잘못을 바로잡으면서도 단시간안에 군통수권을 확립,문민정부가 국정전반을 자신있게 이끌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다행스런 일이었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리라고 미리 예상했었는지. 『김대통령의 대선공약 제1항이 깨끗한 정부,깨끗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었다.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를 확실히 믿었다.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개혁의 방법과 시기는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법적 근거를 마련하기에 앞서 대통령이 먼저 재산을 공개하고 정치자금을 안 받겠다고 공개선언,정치권의 개혁을 선도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개혁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의식개혁이 온 국민에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정치권의 개혁도 늦어지고 있다.또 각종 안전사고에서 보듯 아직도 우리사회에 대형사고의 위험을 내포한 취약요소들이 상존하고 있는 점등을 들고 싶다』 ­가까운 거리에서 김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보아왔는데. 『김대통령은 재임기간동안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올려놓겠다는 일념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목표를 향해 비상한 집념을 갖고 전력투구하는 점이 김대통령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보았다.어떤 상황에서도 독창적인 돌파력을 지녀 난관을 극복하는 힘이 대단히 출중하다』 ­김대통령의 장점이 돌파력이라고 하지만 다소 독선적이라는 평도 나오고 있는데. 『정치분야에서는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편이었다.그러나 행정과 경제등 일반분야에서는 늘 국민여론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광범위하게 청취한다.예를 들면 처음 북한에 대한 인식과 통일에 대한 생각이 매우 「순수」했으나 제때에 「건전한」 판단과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총리 재임기간동안 보람있었던 일을 꼽아본다면. 『김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실시의 결단을 내린 뒤 이른바 「10월대란설」이 유포되는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내각이 전력을 다해 커다란 부작용 없이 실명제를 정착시킨 것을 꼽을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상해임시정부 요인유해 5위를 봉환하면서 전국민이 다시 한번 나라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커다란 보람이었다』 ­아쉽거나 가슴 아팠던 일은. 『첫 조각에서 장관 경력자는 나 한명뿐이었다.새 장관들이 업무를 파악하고 정책을 추진하기까지 3∼4개월의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내각 무능론」을 펼 때 고통스러웠다.또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몹시 가슴이 아팠다.특히 서해훼리호 사건은 정부의 잘못도 많아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 4년동안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또 과거 청산뿐만 아니라 새 정부아래서 일어나는 부정부패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야 개혁과 사정이 평가받을 수 있다.통일은 신중하게 접근하되 통일에 대한 대비는 서둘러야 하며 힘도 비축해야 한다.이와 함께 공무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공무원의 자질이 낮으면 지방자치에도 악영향을 줄뿐 아니라 국제경쟁에서도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재임중 사의는 몇번 표명했나. 『선친께서 물러날 때는 폐리(폐리:헌신발)처럼 버리고 떠나라는 말씀을 남겨 주셨다.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을 때와 대형사고(서해훼리호침몰사고인듯)가 일어났을 때 사의를 표명했었다』
  • 실명제 실시… 맑은 정치의 틀 구축/대선공약 얼마나 이뤄졌나

    ◎두차례 재산공개… 비위공직자 몰아내/금리자유화 시행… 금융 선진화 토대 마련/「하나회」 해체 등 “군 거듭나기” 계기 만들어/정치개혁 입법·물가 3% 유지 등 숙제로 남아 김영삼정부 1년의 대선공약 실천성적표는 과연 몇점일까.앞으로도 4년이 남아 있어 정확한 채점을 하기는 어렵지만 예산의 뒷받침,정부의 추진의지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연역적인 평가는 가능할 것 같다. 김대통령은 대선 때 정치·경제·사회등 제반분야에 걸쳐 77개의 공약을 내걸었다.구체적인 세부사업으로는 모두 1천2백26건이다.이 가운데는 냉엄한 국제환경,현실적 어려움등으로 이미 「공약」이 된 것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장기적인 플랜에 의해 계속 추진되고 있다. 공약을 분야별로 살펴본다. ▷정치◁ 깨끗한 정치풍토조성과 행정개혁이 주요골자다. 깨끗한 정치구현과 관련,김대통령은 『재임중 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자신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단행,공약대로 「윗물맑기운동」을 실천했다.청와대예산부터 줄이고 식단을칼국수로 바꾸는등 솔선수범을 보였다.두차례의 재산공개파동으로 국회의장·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직인사들이 상당수 옷을 벗었다.비위로 파면·해임·면직된 공무원도 1천3백63명이나 됐다.이는 공직자들의 옳지 못한 부의 축적,특히 「검은 돈」과의 연결고리를 끊었다는 점에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약대로 부정방지위원회도 설치돼 부패를 조장할 소지가 있는 불합리한 제도를 과감히 수술했다.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개방,청와대주변 「안가」철거및 시민공원조성,지방청와대의 시민편의시설로의 전환,안기부·기무사의 지방조직 대폭축소등 권위주의잔재도 없앴다.군인사비리및 율곡사업비리 감사를 포함한 성역없는 사정도 같은 맥락이다.감사원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된 것도 과거정권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선거의 95년이내 실시」약속은 여야합의에 의해 구체적인 날짜까지 정해졌고 지방화시대에 맞게 행정구역을 개편하겠다는 공약도 곧 여야협상을 통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획기적인 행정쇄신을통한 능률행정,즉 「작은 정부」약속은 문화부와 체육부,상공부와 동자부의 통폐합을 비롯해 경제기획원등 부처별 직제축소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깨끗한 정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등 정치개혁입법은 지난 1년을 허송세월했고 아직까지 미해결과제로 남아 있다.이와 함께 행정개혁달성을 실현하기에는 관료체제의 벽이 여전히 두껍다.공직사회도 사정태풍의 여진 탓인지 아직까지 「복지불동」이다.무엇보다 정치권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경제◁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가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건전한 정치풍토와 경제질서조성을 명분으로 내건 실명제는 바람직한 금융질서의 정착,무자료거래의 여지축소,유통질서의 선진화,기업경영혁신운동의 확산에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2단계 금리자유화를 시행,금융질서의 정상화와 사회형평의 제고를 위한 토대도 마련했다. 자율경제정책으로 불리는 행정규제완화도 새정부 출범직후 발족된 행정쇄신위원회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그동안 세차례에 걸쳐 모두 2백45건의 과제를 선정,이 가운데 2백20건은 완료되고 나머지 25건은 올 3월까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경제활성화정책과 관련,30대대기업의 업종전문화를 이뤄냈고 도로·항만시설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위한 민자유치촉진법을 입법예고하는등 대기업의 투자확대를 적극유도하고 있다.민자유치촉진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이다.중소기업지원에 대해서도 경상경비절감분과 중소기업구조조정기금 1조8천억원을 지원키로 했고 자금난완화를 위해 법인세·소득세의 20∼40% 경감,긴급자금 1조9천억원 지원등의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또 신농정은 UR파고를 극복하기 위해 청와대에 농수산수석실을 신설했고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인 농어촌발전위원회도 이미 설치돼 종합적인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다.농지거래에 관한 규제도 완화됐고 농어촌정비법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땅값은 지난해 1∼9월에 5.9%가 하락,부동산투기근절의 이정표를 세웠다.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지난해 1백44건의 분규가 발생,전년도의 2백35건에 비해 크게 줄었다.또 지난해 무역수지가 4년만에 흑자로 돌아서 흑자경제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달성했다. 다만 지난해 물가인상률이 5.8%였고 올해도 6%를 웃돌 것으로 예상돼 「물가를 2년안에 3%수준으로 안정시킨다」는 공약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금리 한자리수 실현과 은행문턱을 낮춘다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쌀개방을 안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회·문화등 기타◁ 더불어 잘사는 건강한 사회,입시지옥해소와 인간중심의 교육을 위한 개혁,여성이 존중되는 평등사회의 실현으로 요약된다.하지만 건강한 사회와 관련된 공약은 성격상 단시일안에 이뤄지기 힘들다.특히 최대이슈인 맑은 물공급대책은 낙동강오염사태로 강한 불신마저 받고 있다.교육개혁도 마찬가지다.교육재정을 98년까지 GNP대비 5%로 끌어올리고 사학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장기적인 플랜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우리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주요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성격을 규명한 것과 93년을 「민족사복원의 원년」으로 정해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립한 것은 문민정부이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현직대통령으로서는 최초의 4·19묘역 참배,광주문제해결을 위한 특별담화등은 전자와 관련된 것이고 구총독부청사 철거,임시정부요인들의 유해봉환,범국민적 광복50주년 기념사업등은 후자에 해당되는 사항들이다. 군내 부조리일소와 「하나회」해체등 군인사개혁을 통해 군이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역·계층간 갈등해소를 위한 국민대화합조치도 실천됐다.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등 4만1천1백81명에 대한 사면복권,공안사범 5천5백66명의 특별가석방,법령·제도개선을 통한 5백만여명의 전과말소,2백30명의 지명수배해제및 자수자 1백2명에 대한 관용,전교조 해직교사의 복직,학생운동 관련 제적생의 재입학허용(85개대 2천46명)등 화합조치를 단행했다.
  • 김 대통령 일·중방문 확정/일 새달 24·26일 중 26·30일

    ◎청와대 공식 발표 김영삼대통령은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오는 3월24일부터 26일까지 일본,이어 26일부터 30일까지 중국을 국빈자격으로 공식방문한다고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이 18일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일본 도쿄에서 아키히토(명인)일왕과 면담하며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와 두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의 경제통상협력및 우호증진방안등을 논의한다. 김대통령은 2박3일동안의 도쿄방문을 마치는 26일 곧바로 중국 상해로 건너가 옛 임시정부청사를 시찰한다. 김대통령은 이어 북경을 방문,강택민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중국측의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두나라의 경제협력 강화방안을 중점 논의할 예정이다.
  • 중국 중경 임정청사 건물/내년 8월15일까지 복원

    ◎한·중 정식개관 합의 한국과 중국은 28일 중국 중경시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건물 4개동을 광복 50주년인 내년 8월15일까지 복원해 정식 개관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정부는 임정청사 복원을 위해 민간출연을 통해 1백30만달러를 중국에 제공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국가유공자 기본연금 12% 인상

    ◎보훈처/서재필·전명운·김공견선생유해 상반기 봉환/「유공자용 아파트」 2천가구 건설/동성동본 불혼 폐지 등 검토/정무2장관실 정부는 올해 국가유공자와 유족에게 지급되는 기본연금을 12% 올리는 등 보상 및 복지수준을 대폭 개선키로 했다. 또 광복 50주년을 앞두고 올해안에 해외선열유해 실태조사를 완료해 종합적인 봉환 및 현지 단장계획을 마련키로 했다. 이충길국가보훈처장은 27일 이같은 내용의 올해 국가보훈처 업무계획을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처장은 이날 보고에서 『국가유공자 기본연금을 올해 31만6천원으로 지난해보다 12% 인상하는 등 오는 97년까지 월 45만원으로 대폭 올리고 현행 보상금 체계를 재검토해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처장은 고령의 국가유공자를 위해 수원·부산등 5개 지역에 13평형 아파트 2천가구 건설공사를 착공하고 3백 병상 규모의 대전보훈병원과 2백병상 규모의 정양원을 신축하는 등 의료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올 상반기중에 서재필박사와 전명운·김공견선생 등 애국지사 3명의 유해를 봉환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지의 미확인 묘소 62위에 대한 실태조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보훈처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공훈록에 등재된 독립유공자 3만6천명중 인적·공적사항이 확실한 2만명을 2년동안 정밀심사,대대적으로 포상키로 했다. 이와함께 국내에 흩어져 있는 독립유공자 묘소중 국립묘지로 이장을 희망하는 2백47위는 광복 50주년 이전에 이장시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 묘역으로 단장키로 했다. 이밖에 고엽제후유증에 폐암·후두암 등 6개 질병을 추가,보상대상 범위를 10개종으로 확대하고 가칭 국가유공자 묘지관리법에 관한 법률을 제정,기관별로 중복된 묘지관리를 일원화하고 국립묘지에 납골당을 설치키로 했다. ○여성전문가 적극 육성 정부는 개혁과 국제화의 성공적 실현을 위한 대열에 여성을 적극 동참시키기 위해 올해 실질적인 각종여성정책들을 적극추진키로 했다. 권영자 정무제2장관은 27일 김영삼대통령에게 한 업무보고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에 전국민의 역량을 총집결해야할 때임을 인식,여성의 정치·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주력하겠다고 보고했다. 권장관은 여성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해온 호주제와 동성동본 불혼제 폐지등의 가족법 개정을 적극 검토하며 남녀고용평등법의 실질적인 개정및 여성에게 3군사관학교와 학군단등 특수교육기관의 문호를 개방,각 분야의 여성전문가를 적극 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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