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임시정부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 고위험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경제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 레즈비언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 아프가니스탄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069
  • 교가 개정 등 ‘학교 일제 잔재 청산’ 나선 충남교육청

    교가 개정 등 ‘학교 일제 잔재 청산’ 나선 충남교육청

    교가 개정·교포 변경 등 ‘일제 잔재 지우기’역사의식 함양 ‘독립유공자 학교’ 알리기 1939년 개교한 충남 천안의 보산원초등학교 교가가 지난해 8월 교체됐다. 학생·학부모·동창회 등 교육 가족의 동의를 거쳐 노랫말과 멜로디를 모두 바꿨다. 친일 경력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일 충남교육청에 따르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18년부터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섰다. 도교육청이 학교 내 일제 잔재 조사 결과 도내 24개교에서 친일 행적이 있는 인물이 작사·작곡한 교가를 사용했다. 교내 일본인 학교장 사진이 게시된 곳도 29개교에 달했고, 학생 생활 규정 중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징계 항목도 100개교에서 확인됐다. 도교육청은 2020년까지 ‘1기 일제 잔재 청산’으로 학교 내 일본인 교장 사진과 4개교에 설치된 일제식 머릿돌을 모두 철거했다. 징계 항목에 ‘동맹휴학’·‘백지동맹’ 등의 용어를 사용한 100개교의 학생 생활 규정은 교육 가족 의견 수렴을 거쳐 수정했다. 4개교에서는 친일 행위 경력자가 작사·작곡한 교가가 개정됐다. 2기(2021~2023년) 일제 잔재 청산에서는 서천여자정보고 등 4개교에서 친일 행위 경력자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개정했다. 논산 양촌초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가 연상되는 학교 휘장인 교표를 변경했다. 도교육청은 지난해부터 독립운동 역사 계승과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을 위해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학교에 ‘독립유공자’ 학교 현판을 설치하고 있다. 논산의 강경중앙초와 천안의 목천초 등 54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14개교에 독립유공자 학교 현판이 설치될 예정이다. 도교육청은 일제 잔재어 청산을 위해 ‘한글사용 책임 관제’나 ‘이끎 학교’ ‘우리말 우리글 꿈 잔치’ 등을 운영하고 있다. 김지철 교육감은 “충남의 학생들이 독립운동의 가치를 기억하고 그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본받아 미래 세대의 당당한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공천 물갈이’ 경쟁 불붙은 여야… 승패 관건은 새 얼굴·잡음 관리

    ‘공천 물갈이’ 경쟁 불붙은 여야… 승패 관건은 새 얼굴·잡음 관리

    경쟁력 없는 중진 추리기 중점낙선자 관리 실패하면 되레 ‘독’15대 총선, 파격 영입한 YS 승리 오는 4월 10일 총선에 적용할 여야의 ‘공천 룰’이 드러나면서 거대 양당의 ‘물갈이 경쟁’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체로 ‘물갈이 폭이 곧 승리였다’는 경험칙에 따라 여야 모두 역대급 인적 쇄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승패의 관건은 ‘새 얼굴의 등장’과 ‘공천 탈락자 관리’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예비후보 평가로 현역 의원 중 하위 10%인 7명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하위 10~30%는 총점의 20%를 감점한다. 한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한 중진은 15% 감점하고 중복 감점도 가능하다. 민주당 역시 현역 의원 하위 20%에 경선 득표율의 20%를, 하위 10%에는 30%를 감산하기로 했다. 양당의 목표는 ‘경쟁력 없는 중진’ 솎아내기다. 하지만 현역 물갈이는 역대 선거마다 혁신의 기준이 됐지만, 공천 탈락자 관리에 실패하면 되레 ‘독’이 됐다.지난 20년간 17대 총선을 제외한 4번의 총선에서 3번은 현역 물갈이 비율이 높은 당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소위 ‘탄돌이’(초선의원)들을 대거 탄생시키며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과반을 확보한 17대 총선은 물갈이폭을 계산할 수 없는 신생 정당 사례여서 제외했다. 하지만 인적 쇄신 과정에서 잡음이 컸던 경우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현역 교체율이 44.6%였고 텃밭인 대구·경북(TK)지역에서는 60% 이상을 바꿨다. TK에서 현역 20명 가운데 6명을 컷오프(공천 배제)하고 5명이 불출마한 결과다. 중진 의원은 인위적으로 ‘험지’에 배치했다. 그 결과 공천 과정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해 공천 탈락자들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결과적으로 ‘어제의 같은 편이 오늘의 가장 경쟁력 있는 적’이 됐다. 컷오프된 민경욱 의원의 공천 결과가 뒤집히는 등 ‘사천 논란’도 벌어졌고, 미래통합당(84석)은 불과 28%만 물갈이한 민주당(163석)에 대패했다. 반면 탄핵 역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148명 현역 가운데 최병렬·오세훈 전 의원 등 불출마자와 컷오프 탈락자를 합쳐 60여명에 달하는 40.5%를 물갈이했고 선거에서 121석을 얻으며 선방했다. 잡음을 최소화한 인적 쇄신이 기사회생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 최초로 시스템 공천을 도입하며 대규모 인적 쇄신을 꾀하고 있지만, 공천 탈락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이들이 제3지대로 편입하면서 고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여당이 낙천자 관리에 적극 나설 경우 이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대거 진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이 역대 총선보다 3주가량 앞당겨 첫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서 곧바로 공천 규정을 공개한 것은 시스템을 통한 ‘질서 있는 세대교체’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적 쇄신을 앞둔 민주당도 잡음 관리가 고민이다. 벌써 계파에 따른 물갈이 우려가 나온다. 한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가고, 결국 표가 나뉜다. 공천 공정성 담보가 득표의 지름길”이라며 “친명 봐주기 논란이 나오는 상황에서는 결국 이재명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큰 인적 쇄신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물갈이 의지에 비해 눈에 띄는 새 얼굴이 아직은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국민의힘은 정성국 한국교총 회장과 박상수 변호사, 강철호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 등을 영입했지만 상징성이 큰 인물은 아직 선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다. 기후환경 전문가 박지혜 변호사를 시작으로 이날 여덟 번째 인재로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를 영입한 민주당도 매한가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역을 돌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선거에 뛸 사람을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며 인재 영입의 어려움을 전했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숨어 있는 인재를 정계에 유인할 동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신상털기’를 우려해 정계 입문을 망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새 얼굴로 총선의 분위기를 바꿨던 예로는 1994년 15대 총선이 꼽힌다. 당시 신한국당 총재를 겸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성수대교 붕괴 같은 각종 악재에도 이념을 뛰어넘는 파격적 인재 영입으로 제1당(139석)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실제 검사 모델인 홍준표 대구시장, ‘대쪽 법관’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던 이회창 전 총리,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등이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던 2015년 20대 총선 인재 영입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였던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진 박주민 의원 등이 이때 참여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역대 선거마다 혁신과 능력을 이야기해 왔지만 룰(규정)대로 운영이 되지 않았던 게 늘 문제”라면서 “공천 과정에서 얼마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 또 적절한 영입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느냐가 이번 총선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 ‘공천 물갈이’ 경쟁 불붙은 여야… 승패 관건은 새 얼굴·잡음 관리

    ‘공천 물갈이’ 경쟁 불붙은 여야… 승패 관건은 새 얼굴·잡음 관리

    경쟁력 없는 중진 추리기 중점낙선자 관리 실패하면 되레 ‘독’15대 총선, 파격 영입한 YS 승리 오는 4월 10일 총선에 적용할 여야의 ‘공천 룰’이 드러나면서 거대 양당의 ‘물갈이 경쟁’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체로 ‘물갈이 폭이 곧 승리였다’는 경험칙에 따라 여야 모두 역대급 인적 쇄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승패의 관건은 ‘새 얼굴의 등장’과 ‘공천 탈락자 관리’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예비후보 평가로 현역 의원 중 하위 10%인 7명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하위 10~30%는 총점의 20%를 감점한다. 한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한 중진은 15% 감점하고 중복 감점도 가능하다. 민주당 역시 현역 의원 하위 20%에 경선 득표율의 20%를, 하위 10%에는 30%를 감산하기로 했다. 양당의 목표는 ‘경쟁력 없는 중진’ 솎아내기다. 하지만 현역 물갈이는 역대 선거마다 혁신의 기준이 됐지만, 공천 탈락자 관리에 실패하면 되레 ‘독’이 됐다. 지난 20년간 다섯 차례의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신생 정당인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17대 총선을 제외하면, 4차례 중 3회는 현역 물갈이 비율이 높은 당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인적 혁신 과정에서 잡음이 컸던 경우는 예외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현역 교체율이 44.6%였고 텃밭인 대구·경북(TK)지역에서는 60% 이상을 바꿨다. TK에서 현역 20명 가운데 6명을 컷오프(공천 배제)하고 5명이 불출마한 결과다. 중진 의원은 인위적으로 ‘험지’에 배치했다. 그 결과 공천 과정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해 공천 탈락자들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결과적으로 ‘어제의 같은 편이 오늘의 가장 경쟁력 있는 적’이 됐다. 컷오프된 민경욱 의원의 공천 결과가 뒤집히는 등 ‘사천 논란’도 벌어졌고, 미래통합당(84석)은 불과 28%만 물갈이한 민주당(163석)에 대패했다. 반면 탄핵 역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148명 현역 가운데 최병렬·오세훈 전 의원 등 불출마자와 컷오프 탈락자를 합쳐 60여명에 달하는 40.5%를 물갈이했고 선거에서 121석을 얻으며 선방했다. 잡음을 최소화한 인적 쇄신이 기사회생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 최초로 시스템 공천을 도입하며 대규모 인적 쇄신을 꾀하고 있지만, 공천 탈락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이들이 제3지대로 편입하면서 고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여당이 낙천자 관리에 적극 나설 경우 이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대거 진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이 역대 총선보다 3주가량 앞당겨 첫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서 곧바로 공천 규정을 공개한 것은 시스템을 통한 ‘질서 있는 세대교체’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적 쇄신을 앞둔 민주당도 잡음 관리가 고민이다. 벌써 계파에 따른 물갈이 우려가 나온다. 한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가고, 결국 표가 나뉜다. 공천 공정성 담보가 득표의 지름길”이라며 “친명 봐주기 논란이 나오는 상황에서는 결국 이재명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큰 인적 쇄신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물갈이 의지에 비해 눈에 띄는 새 얼굴이 아직은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국민의힘은 정성국 한국교총 회장과 박상수 변호사, 강철호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 등을 영입했지만 상징성이 큰 인물은 아직 선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다. 기후환경 전문가 박지혜 변호사를 시작으로 이날 여덟 번째 인재로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를 영입한 민주당도 매한가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역을 돌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선거에 뛸 사람을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며 인재 영입의 어려움을 전했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숨어 있는 인재를 정계에 유인할 동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신상털기’를 우려해 정계 입문을 망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새 얼굴로 총선의 분위기를 바꿨던 예로는 1994년 15대 총선이 꼽힌다. 당시 신한국당 총재를 겸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성수대교 붕괴 같은 각종 악재에도 이념을 뛰어넘는 파격적 인재 영입으로 제1당(139석)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실제 검사 모델인 홍준표 대구시장, ‘대쪽 법관’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던 이회창 전 총리,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등이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던 2015년 20대 총선 인재 영입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였던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진 박주민 의원 등이 이때 참여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역대 선거마다 혁신과 능력을 이야기해 왔지만 룰(규정)대로 운영이 되지 않았던 게 늘 문제”라면서 “공천 과정에서 얼마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 또 적절한 영입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느냐가 이번 총선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 윤봉길 손녀 윤주경, ‘김구 폄하’ 박은식에 “국제정세 몰라서 폭탄 던졌겠나”

    윤봉길 손녀 윤주경, ‘김구 폄하’ 박은식에 “국제정세 몰라서 폭탄 던졌겠나”

    윤봉길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백범 김구 선생을 ‘폭탄 던지던 분’이라고 비하해 표현해 논란이 된 박은식 당 비상대책위원을 정면 비판했다. 앞서 박 비대위원은 2021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막장 국가 조선시대랑 식민지를 이제 막 벗어난 나라의 첫 지도자가 이 정도면 잘한 거 아니냐. 이승만이 싫다면 대안이 누가 있나”라며 “김구? 폭탄(이나) 던지던 분이 국제 정세와 나라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잘 알까”라고 적어 논란을 일으켰다. 윤 의원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932년 5월 4일 일제의 상해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예심관이 자신의 조부(윤봉길)를 심문한 내용을 인용해 “폭탄 던진 분이 과연 국제정세를 몰라서 폭탄을 던졌을까”라며 박 비대위원을 저격했다. 군법회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예심관은 윤 의사에 ‘폭탄 투척이 과연 독립에 도움이 되겠느냐’라고 질문을 했다. 이에 윤 의사는 “1~2명의 상급 군인을 죽여서 독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폭탄 투척 목적은 조선의 각성을 촉구하고 더 나아가 세계 사람들에 조선의 존재를 명료하게 알리기 위해서다. 지금은 세계 사람은 조선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조선이라는 관념을 세계인의 머리에 새기는 것도 독립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비대위원이 김구 선생을 ‘폭탄 던지던 분’이라고 폄훼하자 윤 의원이 자신의 조부인 윤 의사 또한 ‘폭탄 던진 분’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박 비대위원의 언행을 지적한 것이다. 윤봉길 의거, 독립운동 판도 바꾼 ‘게임 체인저’ 원래 상하이 임시정부는 사제폭탄 사용을 금지하고 외교적 노력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김구는 이 원칙만 고수해선 임정은 존재감을 상실해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임을 잘 알고 과감히 노선을 바꾼다. 1931년 10월 임정 주석이던 그는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고자 김원봉(1898~1958)을 단장으로 한 무장투장단체 의열단을 모델로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5개월간 6건의 암살, 폭파를 기획했지만 대부분 실패하거나 미수에 그쳤다. 그럼에도 1932년 1월 이봉창(1900~1932)이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1901~1989)에 수류탄을 던져 한국인들의 저항의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봉창 의거 뉴스를 듣고 상하이 훙커우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던 허름한 차림의 동포 한 명이 김구를 찾아왔다. 자신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으니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충남 예산에 아내와 세 자녀(1녀 2남)를 남겨두고 혼자 상하이로 건너왔다는 스물네 살 청년 윤봉길(1908~1932)이었다. 일본이 파시즘으로 치닫던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 히로히토(1901~1989)의 생일 축하연이 열렸다. 일제가 점령지 한복판에서 보란 듯 승전고를 울리는 모습에 중국인들은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윤봉길이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1869~1932) 등 일본군 수괴들을 한꺼번에 처단했다. 그의 희생으로 한국 독립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각지에서 지원금이 쇄도하며 임정의 권위가 되살아났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모욕을 한국인이 대신 갚아준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때부터 두 나라는 항일 역사 인식을 공유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도 이때부터 임정을 ‘진정성 있는 파트너’로 대하기 시작했다.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1887~1975)는 임정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을 마련했다. 이곳 출신들은 1940년 9월 임정 최초 정규 부대인 한국광복군의 주축이 됐다. 장제스는 일본의 패망이 유력하던 1943년 전후처리를 논의하려고 연 카이로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의 반대에도 한국 독립 약속을 받아냈다. 임정 연구의 권위자인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919년 임정이 세워진 뒤로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다. 하지만 (항일투쟁의 최종 목표인) 군대 편성 계획을 실현한 이는 김구뿐이었다”며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충칭에서 광복군을 만들어 낸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윤봉길이 훙커우 공원에서 던진 폭탄이 끝없이 추락하던 임정의 판도를 극적으로 바꿔 놓는 ‘게임 체인저’가 됐다. 윤봉길의 의거가 없었다면 임정 존속과 한국 독립 또한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박 비대위원은 자신의 글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자신의 페이스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 4·3 때 수백명 살린 ‘제주 쉰들러’ 국가유공자로

    4·3 때 수백명 살린 ‘제주 쉰들러’ 국가유공자로

    제주 4·3사건 당시 학살 위험에 놓인 무고한 주민들을 구한 ‘제주의 쉰들러’가 국가유공자가 됐다.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고 문형순 전 모슬포경찰서장은 1919년 만주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20년대에는 한국의용군 등에, 1945년에는 임시정부 광복군에 몸을 담았다. 광복 이후 제주청 기동경비대장으로 입직한 문 전 서장은 제주 4·3사건 당시 주민 수백 명의 생명을 구했다. 당시 제주에서는 과거 한번이라도 군이나 경찰에 끌려갔다 온 적이 있거나 무장대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대거 구금돼 집단 희생됐다. 1948년 말 모슬포경찰서장이었던 문 전 서장은 무고하게 좌익 혐의를 받던 주민 100여명을 자수케 하고 방면했다. 또 6·25전쟁이 발발한 뒤인 1950년 성산포경찰서장 시절에는 계엄군이 예비검속자(미리 잡아놓은 혐의자)에 대한 총살 명령을 내리자 ‘부당한 명령은 이행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러한 조치로 살린 생명이 295명에 달한다. 당시 총살 명령이 이행되지 않은 곳은 제주에서 성산포 지역이 사실상 유일했고 성산포 관내에서는 단 6명만 희생되는 데 그쳤다. 이후 1953년 제주청 보안과 방호계장으로 퇴직한 문 전 서장은 1966년 제주도립병원에서 70세의 나이로 유족 없이 생을 마감했다. 이후 문 전 서장의 의로운 행동이 4·3사건 연구자 등에 의해 알려졌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가며 유대인 학살을 막았던 ‘오스카 쉰들러’에 비유해 ‘제주의 쉰들러’로 불리고 있다. 경찰청은 2018년 문 전 서장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지만 국가유공자 지정은 6차례나 불발됐다. 국가보훈부는 ‘자료상의 인물과 동일인 여부 불분명’ 및 ‘당시 입증자료 미비’ 등을 이유로 독립유공을 인정하지 않고 기각(서훈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에 경찰은 그가 6·25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지리산전투사령부(빨치산 토벌부대)에서 근무한 이력에 착안해 참전유공으로 서훈을 요청했다. 지난달 보훈부는 문 전 서장을 참전유공자로 등록했다. 경찰은 제주호국원과 협의해 문 전 서장의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 4·3사건 때 수백명 살린 ‘제주 쉰들러’ 문형순, ‘국가유공자’ 인정

    4·3사건 때 수백명 살린 ‘제주 쉰들러’ 문형순, ‘국가유공자’ 인정

    제주 4·3 사건 당시 학살 위험에 놓인 무고한 주민들을 구한 ‘제주의 쉰들러’가 국가유공자가 됐다.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고 문형순 전 모슬포경찰서장은 1919년 만주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20년대에는 한국의용군 등에서, 1945년에는 임시정부 광복군에 몸을 담았다. 광복 이후 제주청 기동경비대장으로 입직한 문 전 서장은 제주 4·3 사건 당시 주민 수백명의 생명을 구했다. 당시 제주에서는 과거 한 번이라도 군이나 경찰에 끌려갔다 온 적이 있거나 무장대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대거 구금돼 집단 희생됐다. 1948년 말 모슬포경찰서장이었던 문 전 서장은 무고하게 좌익 혐의를 받던 주민 100여명을 자수시키고 방면했다. 또 6·25 전쟁이 발발한 뒤인 1950년 성산포경찰서장 시절에는 계엄군이 예비검속자(미리 잡아놓은 혐의자)에 대한 총살 명령을 내리자 ‘부당한 명령은 이행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러한 조치로 살린 생명은 295명에 달한다. 당시 총살 명령이 이행되지 않은 건 제주에서 성산포 지역이 사실상 유일했고, 성산포 관내에서는 단 6명만 희생되는 데 그쳤다. 이후 1953년 제주청 보안과 방호계장으로 퇴직한 문 전 서장은 1966년 제주도립병원에서 향년 70세로 유족 없이 생을 마감했다. 이후 문 전 서장의 의로운 행동이 4·3 사건 연구자 등에 의해 알려졌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가며 유대인 학살을 막았던 ‘오스카 쉰들러’에 비유돼 ‘제주의 쉰들러’로 불리고 있다. 경찰청은 2018년 문 전 서장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지만, 국가유공자 지정은 6차례나 불발됐다. 국가보훈부는 ‘자료상의 인물과 동일인 여부 불분명’과 ‘당시 입증자료 미비’ 등을 이유로 독립유공을 인정하지 않고 기각(서훈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에 경찰은 그가 6·25 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지리산전투사령부(빨치산 토벌부대)에서 근무한 이력에 착안해 참전유공으로 서훈을 요청했다. 지난달 보훈부는 문 전 서장을 참전유공자로 등록했다. 경찰은 제주호국원과 협의해 문 전 서장의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 광복회 “‘독도 논란’은 국방부 장관의 편향된 역사 인식 때문”

    광복회 “‘독도 논란’은 국방부 장관의 편향된 역사 인식 때문”

    광복회는 1일 국방부가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데 대해 “국방부 장관의 가장 큰 임무는 국토 수호인데 기본적인 자세조차 망각했다”며 비판했다. 광복회는 이날 언론에 보낸 새해 첫 성명에서 이같이 밝히며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이며, 앞으로도 대일 자세는 한 치도 밀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광복회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겨냥해 “언론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자 정당한 것처럼 변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을 질책하자 그제야 서둘러 교재를 전량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며 “지금도 장관은 독도가 분쟁지역이라 믿는데 대통령의 질책으로 겉치레로 수정할 뿐이라고 우리는 인식한다”고 했다. 단체는 신 장관이 ‘편향된 대일관’을 가졌다며 이번 일이 예견된 참사였다고 주장했다. 광복회는 “홍범도 등 독립운동가들의 흉상과 전시실을 치우며 애국 저항정신을 외면해왔는데, 그런 장관이 어떻게 우리 군의 정신전력을 강화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광복회는 “국방부가 편찬한 ‘정신 나간’ 정신전력교재가 그동안 신원식 장관의 일탈적 언행과 역사의식, 대한민국과 군 정체성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의 반영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며 “교재를 다시 만들기 전에 올바른 군의 정체성에 대한 장관의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광복회는 군이 “국군의 뿌리를 해방 후 일제 잔재들이 몰려들어 조직된 국방경비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광복회는 “국군의 정체성은 1907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 해산된 대한제국군 성원들이 일제히 봉기하여 일으킨 의병, 그분들이 만주로 이동하여 안중근 의사처럼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고 외치며 조직했던 독립군, 그 후 항일 투쟁 대열에서 임시정부 이름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한 광복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장관은 이번 일을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친일 매국적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의를 국민에게 먼저 보여주고 장관직을 수행하라”고 요구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말 전군에 배포할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구를 기재했다가 논란이 일자 전량 회수키로 했다. 신 장관도 해당 논란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 [사설] ‘독립운동가 이승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사설] ‘독립운동가 이승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국가보훈부가 2024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선정했다. 1992년 이후 매년 선정해 온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독립투사이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 전 대통령이 이제서야 선정됐다니 한편으론 다행스럽고 한편으론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일제 치하에서 이 전 대통령은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 전쟁 극복 등을 이끌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1960년 3·15 부정선거라는 과오를 지닌 인물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무려 32년간 독립운동의 공적 자체를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은 이념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냈고, 주미외교위원회 위원장으로 한인자유대회 개최와 한미협회 설립 등의 활동을 했다. 미국에서는 언론 출판과 강연 등을 통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특히 미국이 원치 않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관철해 낸 혁혁한 공로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기틀이기도 하다. 이 전 대통령을 ‘친일파’, ‘독재자’로 규정하며 모욕을 일삼아 온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선정에 대해서도 “피와 눈물로 쓰인 독립운동의 역사를 조롱하는 만행”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 자금을 횡령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들먹였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6·25 전쟁 때 세운 공으로 북한 고위직까지 지낸 김원봉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텐가. 진영 논리에 떠밀려 외면받아 온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공적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승만…‘尹 정부, 과오 무시 업적만 강조’ 논란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승만…‘尹 정부, 과오 무시 업적만 강조’ 논란도

    국가보훈부가 202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선정했다. 보훈부는 25일 ‘세계 속 독립운동’을 주제로 선정한 2024년 1~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총 38명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 전 대통령이 선정됐다. 보훈부는 “이승만은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했고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서 한인 자유대회 개최와 한미협회 설립 등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 전 대통령을 ‘국가 영웅’으로 기리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1절 기념식 배경으로 안중근·김구·안창호·유관순·윤봉길 등 독립운동가 11명의 얼굴이 현수막에 담기자 여권에서 “이 전 대통령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민식 당시 보훈처장(현 보훈부 장관)은 “3·1절 행사는 행정안전부 소관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빠진 건 솔직히 아쉽다”며 “훈격으로 보나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위상으로 보나 이 대통령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하와이·미국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계 내 이견이 없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에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를 했다는 것은 또 다른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퇴행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공과 과가 뚜렷한 인물을 두고 현 정부가 그의 업적만 띄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으로 집권한 그는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를 했고 4·19 혁명으로 하야한 오점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그를 ‘건국 대통령’으로 추앙하면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상하이임시정부가 수립된)1919년이 아닌 (미군정 하에서 남한 단독정부가 세워진) 1948년으로 못 박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렇게 되면 1919년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주도한 임시정부 활동의 의미가 축소되는 동시에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의 행각도 희석된다. 쉽게 말해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나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 모두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못했다. 그러니 이들을 지나치게 추앙하거나 증오할 필요가 없다’는 속내다. 전형적인 뉴라이트의 논리다. 박 장관은 반 년간 수행한 장관직을 오는 26일부로 내려놓고 제22대 총선을 준비한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이 전 대통령을 띄우고자 임기 중 ‘마지막 지시’를 내린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지난 20일 이임 인사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소관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지, 장관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위원의) 대부분은 교수님들이고 광복회도 참여한다”고 말했다.
  • “운전사 채용” 취업한 줄 알았는데 군입대…미얀마 ‘꼼수 징집’

    “운전사 채용” 취업한 줄 알았는데 군입대…미얀마 ‘꼼수 징집’

    미얀마 군사정권이 허위 채용 공고로 청년들을 군으로 징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항 세력과의 교전이 장기화하면서 병력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꼼수를 쓴 것이다. 24일 현지 독립 매체 미얀마나우에 따르면 군정은 18~25세 남성을 대상으로 군 입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용 공고를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구직자들을 모았다. 채용 공고는 운전사나 기계공 등을 뽑는다며 급여와 교육, 숙박 제공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면접을 거쳐 지원자들이 교육 일정에 들어가면 그때서야 군대에 강제로 동원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미얀마나우는 경험자 증언을 바탕으로 보도했다. 채용 과정에서 군 관련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았고, 합격자들은 최전선 부대 등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허위 채용 공고에 속았다는 한 20세 남성은 “그들은 교육 결과에 따라 급여가 결정된다며 교육에 참여하게 했는데, 그 교육이 군사훈련일 줄은 몰랐다”면서 “나를 포함해 약 50명이 면접장에서 훈련장으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 등을 압수당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면서 “만약 부대를 떠나면 가족들이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협박했다”라고 주장했다. 강제 징집된 신병들은 약 6개월간의 군사기본훈련 뒤 미얀마 전역의 교전 지역에 투입됐다. 2021년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부는 최근 저항 세력의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 아라칸군(AA), 타앙민족해방군(TNLA),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으로 구성된 ‘형제 동맹’은 지난 10월 27일 북동부 샨주에서 미얀마군을 상대로 합동 공격을 시작했다. 다른 지역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민주 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 산하 시민방위군(PDF)이 가세하면서 전선이 확대됐다. 저항 세력은 중국과의 국경무역 거점을 대부분 장악하고 미얀마군 기지를 다수 점령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반군의 거센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얀마군은 징집 규모를 늘리고 있다. 군정은 부족한 병력을 확충하기 위해 탈영병이 복귀하면 처벌받지 않고 복무를 재개할 수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군인의 가족들까지 군사훈련을 받도록 하고, 공무원과 퇴역 군인들로 구성된 부대를 조직할 계획도 밝혔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이후 미얀마에서 난민이 약 50만명 발생했다. 또 반군을 상대로 한 미얀마군 공습 등으로 민간인이 250여명 사망했다.
  • 강정애 보훈장관 후보 “홍범도 장군 행적, 국가정체성 논란 야기”

    강정애 보훈장관 후보 “홍범도 장군 행적, 국가정체성 논란 야기”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21일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가로서 예우를 받아야 하지만 이 분의 행적이 우리나라의 정체성 등 여러 논란을 야기하기에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점검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후보자는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홍 장군의 육군사관학교(육사) 내 흉상 철거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김 의원은 후보자의 시부인 권태휴 선생이 몸담은 조선의용대를 약산 김원봉이 창설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시부에 대해) 그런(좌익 논란에 대한) 공격이 들어와도 이렇게 답변하시겠나”라고 물었다. 이에 강 후보자는 “1945년 광복 이전에는 모두가 독립을 위해 (운동을) 했기 때문에 계열이 달라도 독립운동에 애쓴 부분이 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국익과 국가 정체성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받기 어렵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 견해”라고 했다. 이어 “저희 시부모, 시조부는 김원봉과 결을 달리 해서 대한민국 독립 이후 건군을 하고 발전소를 짓는 등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홍 장군과) 같은 선상에서 얘기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정부 수립 초대 대통령”이라고 표현한 강 후보자는 “‘건국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써야한다”라고 했다. 건국절 논란에 대한 야당 의원 질의에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답변한 강 후보자는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뉴라이트냐고 묻자 “뉴라이트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자문단 위원으로 참여해서 인연이 이어지긴 했지만, 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참여한 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강 후보자는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에 대해 “법안 조문으로는 다양한 민주화운동 가운데 어떤 사건이 민주유공 사건인지 예측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안다”며 “어떤 법안이 통과되려면 국민 전체의 공감과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민주유공자법은 그런 과정이 미흡했다”라고 했다. 강 후보자가 과거 작성한 논문의 자기표절 논란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강 후보자가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에 임용되기까지 작성한 8편의 논문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표절이라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업무방해다. 전문성도 없는데 도덕성과 학자로서의 자질도 없는 후보자는 정말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강 후보자는 “제가 특별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다. 의도를 가졌으면 절대 그렇게 안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현재 잣대로 보면 너무나 잘못됐고 죄송한 부분”이라고 했다.
  • 경남도, 미서훈 독립운동가 24명 정부포상 신청

    경남도, 미서훈 독립운동가 24명 정부포상 신청

    경남도는 경남 출신 미서훈 독립운동가 20명과 경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4명 등 총 24명을 대상으로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이번 신청은 지난 6월 구성한 경남도 독립운동가 발굴·서훈신청 전담조직(TF) 활동이 밑바탕이다. TF는 그동안 총 388명의 독립운동 관련 행형기록(판결물·형사건부·수형인명부 등 독립유공자 포상 필수 거증자료)을 찾았다. 이 중 신문기사나 관련 문헌 등에서 구체적인 독립운동 공적이 확인된 24명을 포상 신청 대상자로 우선 선정했다. 친일행적·이적행위 등 사유로 포상 신청에서 탈락한 사실이 있는지 검증도 마쳤다.대상자 중 박소수(밀양, 이하 출신지)·김성선(울산군) 선생은 1919년 당시 14세의 나이로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 20~30명을 규합해 만세시위를 벌이다 연행됐다. 이들은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하남식(진주) 선생은 임시정부 요원으로 경남단을 조직하고 독립운동자금 출자 활동을 하던 중 체포돼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았다.이들 외 백정기(창원), 오경팔(창원), 감태순(창원), 박성오(진주), 이영규(진주), 천명옥(진주), 강대익(사천), 김성도(김해), 장준식(밀양), 장춘식(밀양), 전병한(양산), 노오용(의령), 이태수(의령), 윤보현(함양), 정순귀(함양), 최석룡(함양), 김수천(거창), 손치봉(합천), 김도운(영천), 이봉정(김천), 홍태현(황해도) 선생도 이번 신청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목숨을 걸고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이지만 그동안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없어 서훈받지 못했다. 포상 신청에 필료한 서류는 공적조서와 평생이력서, 거증자료다. 하지만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스스로 기록을 숨기는 일이 잦았고 일제에 의해 삭제·축소·왜곡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독립유공자 인정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경남도는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제보해 달라”며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독립운동가와 유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경남도는 내년 사학전공 기간제 노동자 2명을 추가로 채용해 독립운동가 발굴과 포상신청을 이어갈 계획이다.
  • 폴란드 새정부 “이전 정부의 무기도입 계약 존중” 안심하긴 일러

    폴란드 새정부 “이전 정부의 무기도입 계약 존중” 안심하긴 일러

    폴란드 새 연립정부가 13일(현지시간) 공식 출범한 가운데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이전 정부가 체결한 무기 도입계약을 존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궁에서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의 취임 선서를 받고, 임명장을 수여했다. 전날 폴란드 의회는 찬성 248표, 반대 201표로 투스크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를 통과시켰다. 2007~2014년 폴란드 총리, 2014~2019년 유럽연합(EU) 상임의장을 지낸 투스크 총리는 자신이 이끄는 자유 보수주의 성향의 시민연합과 기독교 보수주의 성향의 제3의 길, 그리고 좌파 연합 레비카로 구성된 연립정부를 이끈다. 이들 3개 정당으로 이뤄진 야권 연합은 지난 10월 15일 치러진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했지만, 애국 보수주의 성향의 집권 법과정의당(PiS)이 두다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정권의 수명을 2개월 연장했다. 전임 PiS 정부는 EU와 사법개혁 때문에 충돌해 왔다. EU 집행위원회는 폴란드를 상대로 협약 위반을 문제 삼아 여러 소송 절차를 제기했고, 수십억 유로의 코로나19 지원기금 지급을 막았다. 투스크 총리는 전날 의회에서 한 국정연설을 통해 “폴란드는 EU와 협업을 잘해 EU 내 주도자가 될 것”이라며 “EU가 강해질수록 우리는 더 강력해지고, 자주·독립적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결된 코로나19 지원기금이 지급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스크 총리는 또 국방정책과 관련해서는 “군비증강을 통한 군 현대화 정책을 지속 추진할 것”이라며 “부패가 연루된 경우를 제외하고 전 정부가 체결한 모든 무기 도입계약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규모 재정 지출을 수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면밀히 재검토하되, 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게 신임 정부의 일관된 입장인 만큼, 한국에 대한 방산 의존도가 높은 데 대한 재검토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전 정부가 체결한 모든 무기 도입계약에는 총선 이후 이뤄진 계약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일 폴란드 군비청과 K9 자주포 152문 등 3조 4475억원 규모를 수출하는 내용의 2차 실행계약을 맺은 바 있다. 앞서 폴란드 야권 연합의 일원인 시몬 호워브니아 하원의장은 폴란드 민영방송에 “PiS 임시정부가 서명한 합의는 무효가 될 수도 있다”고 밝힌 일이 있다.10월 15일 총선 이후 PiS는 예산을 쓰지 않고 국가 관리에만 권한을 제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 업무 이해도 높은 ‘보훈 가족’… 인사·경영 전문[장관 후보자 프로필]

    강정애(66)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 관리와 경영 분야 전문가다. 숙명여대 총장을 역임했다. ‘보훈 가족’이며 2015~2019년 보훈기금운용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해 보훈업무 이해도가 높다. 부친(강갑신)은 무공훈장을 받은 6·25전쟁 참전용사. 시할아버지(권준)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의열단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초대 육군 제50보병사단장을 지냈다. ▲서울 ▲숙명여대 경영학 ▲파리1대 인적자원경제학 박사, 숙명여대 교수, 한국인사관리학회장
  • 나주시, ‘한말 나주의병 생애·활동 학술행사’ 성료

    나주시, ‘한말 나주의병 생애·활동 학술행사’ 성료

    전남 나주시가 한말 구국에 앞장선 나주 의병 활동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나주시는 최근 나주시민회관에서 ‘한말 나주 의병의 생애와 활동’이란 주제로 기조발제, 주제발표, 종합토론 순의 학술행사를 개최한다고 27일 밝혔다. 나주시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지역 출신 한말 의병인 ‘김태원·김율 형제’, ‘박사화’를 위시한 박민홍·박근욱·박화실 등 밀양박씨 가문 의병, 김창균과 그의 자녀 김석현·김복현(김철), 손자 김재호로 이어지는 3대 민족 운동사를 다뤘다. 한말 호남의병 연구에 매진한 홍순권 동아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말 의병 항쟁과 나주의병’이란 주제로 기조 강연에 나섰다. 주제발표는 홍영기 순천대 명예교수의 ‘한말 김태원·김율 형제의 의병 활동’,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의 ‘한말 밀양박씨 청제공파의 의병 활동’, 한규무 광주대 교수의 ‘김창균가의 민족운동 -의병항쟁에서 독립운동으로-’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전경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을 좌장으로 박민영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은영 광주교대 강사, 최기영 서강대 명예교수가 참여하는 종합토론도 펼쳤다. 김태원은 1870년, 김율은 1882년에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 갈마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1908년 광주 광산구 어등산에서 투쟁하다 붙잡혀 순국했다. 김태원은 1962년, 김율은 1995년 각각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으며 나주시민공원에는 김태원의 행적을 적은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박사화는 1880년 나주시 왕곡면에서 태어났다. 의병장 박민홍과 함께 심남일 의병장 휘하에 소속돼 중군장으로 맹활약했다. 영암 국사봉 일대를 중심으로 유격전을 펼치다 일본군에 체포돼 1910년 순국했다. 남한폭도대토벌작전으로 체포된 호남의병장들 사진 속에서 박사화 의병장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창균은 나주 읍내에서 태어나 1886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반발한 나주의병 중군장으로 활약했다. 그해 아들 김석현과 함께 순국했으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김창균의 다섯째 아들인 김철(김복현)은 광주3.1운동의 주역이었다. 손자인 김재호는 의열단, 조선의용대,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했다. 김재호의 부인 신정완은 해공 신익희 자녀로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김창균 가(家)는 3대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광주·전남지역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 가문으로 꼽힌다. 나주시는 임진 의병에서 한말 의병까지 구국에 앞장섰던 나주 의병에 대한 연구자료, 유적, 활용 방안 등의 총 4권의 ‘나주의병사’를 지난해 발간하는 등 호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용산구, 효창원 8위선열 의열사 숭모제전 지원

    용산구, 효창원 8위선열 의열사 숭모제전 지원

    서울 용산구가 오는 23일 임시정부 요원 환국 78주년을 맞아 효창공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30호) 의열사 본전에서 열리는 ‘제13회 효창원 8위 선열 의열사 숭모제전’을 지원한다고 22일 밝혔다. 완전한 자주독립을 꿈꾸며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 15명은 1945년 11월 23일 개인 자격으로 김포비행장에 도착했다. 8위 선열 숭모제는 매년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 또는 요원 환국일에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가 주최한다. 이날 행사는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규중 광복회 사무총장, 나치만 서울지방보훈청장, 기념사업회 관계자, 지역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본전 제례는 ▲전폐례(세 번 향을 올리고 신주 앞에 폐백드리는 예) ▲초헌례(첫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 ▲아헌례(두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 ▲종헌례(마지막 잔을 올리는 의식) ▲음복례(제사가 끝난 후 술이나 음식을 먹는 의식) ▲망요례(축문을 태우는 의식) 절차를 거친다. 본전 제례 종료 후 희망 주민들도 분향에 참여할 수 있게 준비했다. 애국지사 8위 선열의 넋을 기리며 나라 사랑과 자주독립 정신을 높인다는 취지다. 8위 선열은 효창공원 의열사에 위패로 모셔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김구 선생, 이동녕 선생, 조성환 선생, 차리석 선생)과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 안중근 의사를 말한다. 김구 선생이 광복 직후 이들 유해를 효창공원으로 직접 모셔와 묘역을 조성했다. 안중근 의사의 묘역은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해 가묘로 남아있다. 김구 선생도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박 구청장은 “임시정부 환국일을 맞아 광복의 기쁨을 안겨주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에 다시금 감사드린다”며 “순국선열을 기리고 보훈가족을 챙기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박유진 서울시의원, 서울시 학교 종소리 독립군가 등 의미 있는 종소리 교체 제안

    박유진 서울시의원, 서울시 학교 종소리 독립군가 등 의미 있는 종소리 교체 제안

    서울시의회 박유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평구 제3선거구, 행정자치위원회)은 지난 16일 시정질문을 통해 학교 종소리를 독립군가 등 의미 있는 종소리로 교체하자고 제안했다.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 학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다르체프스카 소녀의 기도,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빅벤 소리로 그 이름은 생소하지만 누구나 학창 시절에 매일 들었던 익숙한 학교 종소리다. 빅벤 종소리의 경우 과거 일본 중고등학교에서 먼저 채택돼 쓰였고, 그러한 배경으로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에서도 별다른 의미 없이 널리 오랜 시간 쓰이고 있다. 박 의원은 조희연 교육감에게 학교 종소리를 독립군가 등으로 교체할 것을 제안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광복군 군가이자 신흥무관학교 교가, 도산 안창호가 작사한 격검가 및 한반도의 학교 종소리 버전을 들려주며, 이미 다른 지역에서는 많이 만들고 있는데 서울에서도 우리 민족을 한 번 더 상기할 수 있는 음원으로 학교 구성원이 직접 만드는 등 의미 있는 종소리로 교체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조 교육감은 “학교 종소리가 우리 시선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 같다”라며 “TF를 만들어 새로운 음원 개발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정서를 제한하지 않고, BTS 음악이나 랩도 넣어보고 다양한 음원 개발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2023 수능을 맞이해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학교 안에서 의미를 찾는 시간, 마음껏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시정질문을 마쳤다.
  • 미얀마 군부 소수민족 반군 공세에 밀려…“약해 보이고 물리칠 만해”

    미얀마 군부 소수민족 반군 공세에 밀려…“약해 보이고 물리칠 만해”

    “이제 약해 보이고, 물리칠 만해 보인다.” 2021년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부가 아라칸군(AA), 타앙민족해방군(TNLA),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 등 북부 샨주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의 협공에 고전을 면치 못해 미얀마의 사실상 내전이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접경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 집권 이후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영국 BBC가 8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샨주의 3개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은 지난달 27일 합동 공격을 개시해 미얀마군 기지 수십 곳과 중국과 국경 무역 물자가 통과하는 주요 도로 등을 점령했다. BBC는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겪은 가장 심각한 패배”라며 “이번 공격은 샨주 무장 반군들이 군정을 전복시키고 민주적 통치를 회복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한다고 처음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얀마는 135개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로, 쿠데타 이전에도 자치를 요구하는 소수민족과 정부군 교전이 계속돼 왔다. 쿠데타 이후 카렌족, 카친족, 친족 등의 무장단체들은 민주 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와 연대했지만, 샨주 무장단체들은 거리를 두고 독자적으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아라칸군 등 3개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은 이번 공격을 시작하면서 “억압적인 군사독재를 뿌리 뽑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자신들 영역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쿠데타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힌 것이다. 여기에 NUG 산하 시민방위군(PDF)과 다른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가세하면서 미얀마 군정을 향한 공세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NUG는 “모든 국민과 PDF, 소수민족 단체들이 군부독재 타도에 전면적으로 나설 순간이 왔다”고 더 많은 세력의 동참을 촉구했다. 저항 세력이 당장 주요 도시와 핵심 지역은 넘보지 못하지만, 외곽 지역 공세는 성과를 내고 있다. 샨주 무장단체들이 중국과의 국경무역 거점인 친쉐호 등 주요 마을을 점령했고, NUG는 사가잉주 까울린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군정은 지상전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전투기 등을 이용해 반격하고 있지만, 빼앗긴 지역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 쉐 군정 대통령 권한대행은 “정부가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나라가 여럿으로 쪼개질 것”이라고 전날 국가방위안보위원회(NDSC)에서 말했다고 관영지 글로벌뉴라이트오브미얀마가 전했다. 앞으로 주목할 변수로는 군정을 지지해온 중국의 태도와 샨주의 또 다른 무장단체인 와주연합군(UWSA)의 행보가 꼽힌다. 사태를 주시하던 중국은 국경 지역 교전으로 자국 사상자가 나온 데 대해 엄중 항의했다. 지난 4일 미얀마군이 발사한 포탄이 중국 측 영토에 떨어져 중국인 1명이 숨지고 여럿이 다쳤다. 중국 외교부는 국경 지역 충돌과 관련해 즉각 싸움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지만,북부 지역 무장단체들은 중국으로부터 직접적인 요청을 받은 것이 없다고 밝혔다. UWSA는 중국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샨주의 또 다른 소수민족 무장단체로, 현대식 무기와 2만명의 병력을 보유했다. 샨주에서 가장 강력한 무장단체로 꼽히는 이들은 그동안 정부군과 휴전 협정을 맺고 무력 충돌을 피해 왔다.
  • 역사가 된 육아일기… 독립운동가도 서툰 부모였음을

    역사가 된 육아일기… 독립운동가도 서툰 부모였음을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부모에게 큰 기쁨이다. 지금이야 휴대전화로 손쉽게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소셜미디어(SNS)에 기록을 남기지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엔 손으로 써 내려간 육아일기가 아이와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는 매체였다. ‘제시의 일기’는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 최선화(1911~2003) 부부가 딸 제시를 낳고 기록한 육아일기다. 부부가 직접 제목을 지었고 제시가 태어난 1938년부터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온 1946년까지 8년간의 일을 기록했다. 한 부부의 평범한 육아일기지만 독립운동의 흔적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상해에서 시작한 임시정부가 시기별로 어떻게 이동하며 활동했는지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사료로 의미가 남다르다. 임시정부 가족들의 생활상과 독립운동가들의 인간적 모습도 생생하게 담겨있고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투항했다는 소식을 임시정부가 1945년 8월 10일 오후 8시(중국시간)에 알게 된 사실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부부의 딸 제시를 아껴주던 주변 어른들의 이름으로 김구, 조소앙 등도 언급된다.지난달 29일 초연의 막을 내린 창작뮤지컬 ‘제시의 일기’는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부부의 소중한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활자 기록으로는 와 닿기에 한계가 있는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실감 나게 구현했다. 양우조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고 1999년 국가보훈처 9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최선화는 1991년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뭔가 다른 사람들일 것만 같지만 ‘제시의 일기’에서 좌충우돌하는 부부의 일상은 이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날이 좋으면 일본의 공습을 걱정하고 비가 내리면 낡은 집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는 일상, 갓 백일이 지난 아이를 안고 피신하던 모습 등을 통해 한 가족의 추억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기에 겪는 일들이 따뜻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오세혁 총괄프로듀서는 “4년 전 원작을 처음 접하고 공연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면서 “제시는 자라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지만 어른들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계속 싸우고 소통이 단절된다. 모든 어른이 아이처럼 발전하며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와닿았다”고 말했다. 부부의 둘째 딸이자 제시의 동생인 양제니씨도 공연장을 찾아 직접 관람하는 등 ‘제시의 일기’는 의미 있는 초연을 마치고 다음을 기약했다.
  • [최보기의 책보기] 삼천만 부르는 소리에 젊은 가슴 붉은 피 펄펄 뛰고

    [최보기의 책보기] 삼천만 부르는 소리에 젊은 가슴 붉은 피 펄펄 뛰고

    1943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중 태평양 미드웨이 해전 참패로 전세가 기운 일제는 ‘반도인 학도 특별지원병제’를 감행했다. 이전까지는 ‘불령선인’에게 총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며 징집에서 배제했었는데 정책 선회로 전쟁터로 끌려간 한국 청년 학생들이 20만 명에 달했다. 평안북도 강계 출신으로 신의주동중을 졸업, 도쿄 게이오대학 동양사학과에 유학 중이던 ‘김준엽 학생’도 여기에 포함됐다. 최남수, 이광수 등 변절자들이 일본과 천황폐하께 충성을 강조하는 연설회를 하며 전국을 돌던 때였다. 1944년 1월, 일본군 39여단에 입대한 21세 청년 김준엽은 고향 강계를 출발, 평양역에서 기차로 중국 쉬저우에 주둔 중이던 츠카다 부대에 도착, 다슈자역 경비중대에 배치됐다. 강계를 출발할 때부터 독립군 부대로 탈출을 결심했던 김준엽은 ‘중국어 교본, 중국 지도, 나침반, 현금, 단검’ 등을 배낭에 챙겼다. 아버지의 유품인 단검은 탈출 실패 때 사용할 계획이었다. 1944년 3월 29일, 부대 운영과 주변 지형지물을 미리 익혀 두었던 김준엽은 새벽 2시 분대장 사물함에서 훔친 자살용 수류탄 1개를 몸에 지닌 채 철조망과 해자를 뚫는 탈출을 감행했다. 29일은 달이 없는 그믐밤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 점지해준 날이었고, 고향에 탈출을 의미하는 암호 ‘草草(초초)’를 쓴 편지를 보낸 후였다. 40km 밖 중국군 유격대가 있는 수양으로 향하던 중 정체불명 중국군 무리에게 체포됐는데 친일 괴뢰군으로 위장한 중국군 유격대였다. 생과 사를 가르는 천운이었고, ‘학병 탈출 1호’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중국 국민 정부군 유격대원’이 된 김준엽은 뒤이어 일본군 부대를 탈출한 ‘장준하, 윤경빈, 홍석훈, 김영록 학병’을 만났다. 다섯 청년은 강변에서 몸을 씻은 후 동북쪽을 향해 머리를 깊이 숙여 ‘조국 배례’를 했다. 그리고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을 목이 메도록 몇 번이나 불렀다. 김준엽은 1절 가사만 알고 있었는데 장준하는 2절까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망국 10년 후에 태어나 일제하 20년을 산 까닭에 민족교육을 받지 못한 청년들이었다. 다섯 청년은 유격대 책임자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 광복군 사령부가 있는 충칭(重慶)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힌 후 길을 떠났다. 장장 2,400km에 이르는 험로였다. 1945년 1월, 충칭의 임시정부 청사에 무사히 도착한 이들은 난생처음 보는 태극기를 향해 경례했고, 김구 주석의 환영사에 장준하 청년이 답사하는 와중에 조소앙, 이시영, 김원봉 등 백전노장 독립투사들이 비통의 눈물을 터트렸다. 일제 학도병에서 한국 광복군이 된 김준엽은 800km 떨어진 시안(西安)으로 가 한국 본토 진공 작전을 위해 미군 OSS에서 특수훈련을 받았으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광복군 진공의 꿈은 무산됐고, 역사는 한반도를 분단과 내전이라는 뼈아픔으로 내몰고 말았다. 김준엽 선생은 『장정(長征)』, 장준하 선생은 『돌베개』로 이때의 역사를 기록했다. 님웨일즈가 쓴 한국 독립투사 이야기 『아리랑』에는 주인공 김산(장지락)이 무일푼으로 하얼빈에 내려 남만주에 있는 민족주의 계열 군사학교로 가기 위한 700리, 30일간의 대장정을 감행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겨우 열한 살에 집을 나와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 주린 배 옆구리에 3개 나라 사전을 끌어안고 일본, 만주, 중국을 떠돌아다니던 초라하나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울음소리가 함성으로 바뀔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 했던 김산의 당시 나이가 14살, 지금으로 치면 잘해야 중2였다. 저자 윤영수는 <불멸의 이순신>을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대본 작업에 참여해온 드라마 작가다. 고 김준엽 고려대 총장의 3,200km 장정 이야기와 80년 후 저자가 그 길을 따라가며 쓰는 현대 중국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드라마 작가답게 경쾌한 문체로 재미있게 잘 썼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