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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분 힘내세요”…칠곡할매글꼴 주인공과 제주 천재작가 전이수 ‘칠곡할매글꼴 특별전’ 개최

    “여러분 힘내세요”…칠곡할매글꼴 주인공과 제주 천재작가 전이수 ‘칠곡할매글꼴 특별전’ 개최

    ‘칠곡할매글꼴’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경북 칠곡 할머니들과 제주 소년이 국민 기(氣) 살리기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경북 칠곡군은 손글씨를 디지털 글씨체로 만든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과 어린이 동화 작가 전이수가 오는 3월 16일부터 제주시에 있는 미술관 ‘걸어가는 늑대들’에서 ‘괜찮아’라는 주제로 특별 기획전을 연다고 16일 밝혔다. 기획전은 ‘10대 같은 80대 칠곡군 할머니’와 ‘80대 같은 10대 제주 소년’이 코로나19와 고물가로 힘들어 하는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 작가가 2020년 10월 칠곡군 가산면 수피아미술관에서 가족과 자연, 사랑을 그려낸 그림 전시회를 연 것이 계기가 됐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걸어가는 늑대들에 전시된 전 작가의 작품 40여 점에 담겨있는 의미를 칠곡할매글꼴로 설명하고 칠곡 할머니의 인생과 삶이 녹아있는 시집과 시화를 선보인다. 할머니들은 전 작가의 그림을 감상하고 “시험 못 봐도 괜찮아, 손자는 잘만 살더라”처럼 “00해도 괜찮아 000하더라”라는 형식의 대국민 응원 문구를 캔버스에 담아 전시한다. 또 전 작가 그림과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그림엽서에 자신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남기면 일 년 후에 도착하는 ‘느린 시간도 괜찮아’도 마련한다. 전시회는 3월 16일 칠곡군청과 제주시 걸어가는 늑대들을 온라인으로 열결해 열리는 오픔식을 시작으로 4월 16일까지 열린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전시회를 통해 일상에 지친 많은 분들이 용기와 위로를 얻었으면 한다”고 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칠곡군이 마련한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다섯 명의 칠곡 할머니가 넉 달 동안 종이 2000장에 수없이 연습한 끝에 제작된 글씨체다. 한컴과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국립한글박물관 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의 마지막 수업… “못 배운 한 풀어”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의 마지막 수업… “못 배운 한 풀어”

    70~80년 전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 등으로 학교에 다닐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과 40여년 만에 교단에 선 이철우 경북지사의 ‘마지막 수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지사는 25일 도청 1층 ‘미래창고’ 도서관에서 칠곡할매글꼴의 주인공 5명 가운데 추유을(89)·이원순(86)·권안자(79)·김영분(77) 할머니 4명을 초청해 특별한 수업을 진행했다. 최고령인 이종희(91) 할머니는 한파와 건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수업은 일제강점기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200만명이 넘는 문해력 취약 계층에 대한 관심과 평생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뤄졌다. 이 지사는 할머니들을 위해 미래창고를 개조해 1970년대 교실을 재현하고 1978년부터 1985년까지 7년간 몸담았던 교단에 올라 할머니들의 일일 교사가 됐다. 할머니들은 10대 시절 입지 못한 교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수업은 할머니들의 인사와 이 지사의 큰절, 출석 체크, 가족과 대한민국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할머니들에 대한 이 지사의 감사 인사, 받아쓰기 시험, 경북도민행복대학 졸업장 수여, 상장 전달 순 등으로 진행됐다. 수업을 마친 할머니들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동생 뒷바라지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며 “오늘 수업을 통해 마음에 억눌려 있던 한을 조금이나마 푼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이 지사는 “수업 시간 내내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 마지막 수업이 되지 않도록 건강 관리를 잘해 달라”고 당부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성인문해교육으로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다섯 명의 칠곡 할머니가 넉 달 동안 종이 2000장에 수없이 연습한 끝에 2020년 12월에 제작된 글씨체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신년 연하장은 물론 한컴과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국립한글박물관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과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마지막 수업’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과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마지막 수업’

    70~80년 전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 등으로 학교에 다닐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과 40여년 만에 교단에 선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마지막 수업’이 화제다. 이 지사는 25일 경북도청 1층 ‘미래창고’ 도서관에서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5명 가운데 추유을(89)·이원순(86)·권안자(79)·김영분(77) 할머니 등 4명을 초청해 특별한 수업을 진행했다. 최고령인 이종희(91) 할머니는 한파와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수업은 일제강점기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200만명이 넘는 문해력 취약 계층에 관한 관심과 평생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 지사는 할머니들을 위해 미래창고를 개조, 70년대 교실을 재현하고 1978년부터 1985년까지 7년간 몸담았던 교단에 올라 할머니들의 일일 교사가 됐다. 할머니들은 10대 시절 입지 못한 교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이날 수업은 먼저 할머니들의 인사와 이 지사의 큰절, 출석 체크, 가족과 대한민국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할머니들에 대한 이 지사의 감사 인사, 받아쓰기 시험, 경북도민행복대학 졸업장 수여, 상장 전달 순 등으로 진행됐다. 수업을 마친 할머니들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동생 뒷바라지 등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며 “오늘 수업을 통해 마음에 억눌려 있던 한을 조금이나마 푼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철우 지사는 “수업 시간 내내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 마지막 수업이 되지 않도록 건강 관리를 잘해 달라”고 당부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다섯 명의 칠곡 할머니가 넉 달 동안 종이 2000장에 수없이 연습한 끝에 2020년 12월에 제작된 글씨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각계 원로와 주요 인사 등에게 보낸 신년 연하장은 물론 한컴과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국립한글박물관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새 장가 갈 일 있능교”… 화마 속 뛰어들어 90대 노부부 구한 70대

    “새 장가 갈 일 있능교”… 화마 속 뛰어들어 90대 노부부 구한 70대

    전파를 타고 들려온 목소리에서도 힘이 느껴졌다. “선생님, 어디서 뵈면 될까요?”라 묻자 “지금 공사하는 곳이 불 난 집과 가까우니 거기서 보자”고 했다. 손씨가 알려준대로 찾아간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주택은 뼈대만 남아 겨우 지탱하는 듯했다. 불이 난 지 10여일이 지났지만 대문 가까이에서부터 맵고 싸한 냄새가 진동했고, 집 안에 있던 가재도구는 모두 검게 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약속시간보다 5분 일찍 나타난 손수호(70)씨는 구조 당시 화상을 입어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허름한 차림이었지만 누구나 흉내 낼 수 없는, 통화에서 느낀 것보다 강력한 ‘아우라’가 풍겼다. “올해 일흔살이시라고 들었는데...”라고 하자 “에너지가 넘쳐서 그런지 사람들이 젊어 보인다고 합디다”란 답이 돌아왔다. 그는 지난 9일 오전 10시 30분쯤 불이 난 주택 인근에서 집을 고치던 중 화재 현장을 발견, 검은 연기와 화염으로 서슴없이 들어가 90대 노부부를 구조한 인물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났긴 했지만,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는 이미 불길이 커질대로 커져 손씨 자신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공사를 하다 불이 난 것 같아 이 집으로 왔는데 혼자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구하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위험을 직감했다”며 “이미 불이 많이 번진 상황이어서 현관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집 뒤편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불길이 치솟는 거실 소파에 할머니가 멍하게 앉아 계셨고 할아버지는 웅크리고 있었다. 할머니를 업고 할아버지 팔을 잡아당겨 밖으로 빠져 나왔다”며 “뒤에 들은 얘기지만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셔서 빠져나올 생각을 못 하고 앉아 계셨던 것 같다”고 했다. 경주시와 주민들에 따르면 다행히 주인 할머니는 퇴원해 큰 외상없이 통원 치료를 받고 있고, 기저질환이 있던 할아버지는 아직 입원 중이다. 손씨도 얼굴과 팔 등에 깊은 화상을 입었다. 흉터가 남겠다는 기자의 말에 손씨는 “내가 뭐 새장가 갈 일이 있능교. 사람 살았으면 됐지, 얼굴 흉터쯤은 괜찮다”며 웃었다. “가족들은 뭐라고 하더냐”고 묻자 그는 “많이 걱정했다”면서도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사람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위험에 빠진 사람을 지나치지 말라고 배웠다. 나도 자식들을 그렇게 가르친다”고 했다. 손씨 부친은 경주에서 소방공무원을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했다는 이웃 주민 역시 “이분 아니었으면 집주인 부부 모두 큰 화를 입었다. 용기가 대단한 분”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이어갔다. 이들은 119 출동과 관련 “지난해 연말까지 인근 내남면에 소방차가 한 대 있었는데 올 초에 철수했다고 들었다”며 “출동이 늦어져 피해가 커진 것 같다. 이 동네 규모면 소방차가 꼭 필요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손씨 미담을 접한 경주시는 손씨를 의사상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주낙영 시장은 “이웃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는 시민 정신은 우리 공동체의 가장 숭고한 가치”라며 “이를 실천한 손수호씨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 [사설] 여성·비법관 출신 퇴진, ‘헌재 다양성’ 지켜져야

    [사설] 여성·비법관 출신 퇴진, ‘헌재 다양성’ 지켜져야

    대법원이 오늘부터 이선애·이석태 헌법재판관의 후임 인선 절차에 들어갔다. 열흘간 각계 추천을 받는다고 한다. 이선애 재판관은 오는 3월 임기 6년이 끝난다. 올해 일흔인 이석태 재판관은 4월 정년퇴임한다. 두 사람을 시작으로 헌법재판관 9명은 윤석열 정부 임기 안에 모두 순차적으로 바뀌게 된다. 11월에는 유남석 헌재소장도 임기가 끝난다. 헌재에 여성이 처음 진입한 것은 2003년이다. 전효숙 당시 부장판사가 시민사회 추천을 통해 여성 재판관 1호로 지명됐다. 이선애 재판관은 세 번째다. 이 재판관이 물러나면 헌재에는 두 명의 여성 재판관이 남게 된다. 이석태 재판관은 최초의 비(非)법관 출신 재판관 기록을 갖고 있다. 법관 일색이던 헌재에 2018년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처음 입성했다. 이선애 재판관은 상대적으로 보수, 이석태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다문화, 다변화되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의 이념적 양극화도 극심하다. 변화하는 시대상과 소수자·약자 등 각계각층 국민의 권익을 담아내려면 헌재의 다양성은 필수다. 헌재는 헌법정신을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과거 헌재는 남성, 법관, 엘리트에 편중됐다. 30여년 동안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서울대와 판사 출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40대는 한 명도 없다. 이석태 재판관이 물러나면 비법관 출신은 한 명도 없게 된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뽑는다. 이번에 바뀌는 두 재판관은 대법원장 몫이다. 두 사람의 퇴임으로 헌재의 다양성이 퇴보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기우에 그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좀더 강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지의 시험대가 두 재판관의 후임이다.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 “더 올곧은 소리 전하겠다” 일흔셋 명창의 곧은 초심

    “더 올곧은 소리 전하겠다” 일흔셋 명창의 곧은 초심

    “앞으로 많이 공부하고 몸 관리도 잘해 더 올곧이 우리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계획입니다.” 지난 9월 안숙선(73)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가 됐다. 판소리 다섯 마당에 통달한 예인으로 특히 춘향가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고, 해외에서도 활발히 판소리를 선보여 온 그가 스승 박귀희(1921~1993)를 이어 1997년 8월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가 된 지 25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오는 3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송년판소리-안숙선의 춘향가’는 판소리 보유자가 된 뒤 첫 완창 공연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국립극장은 안 명창이 소리와 창극을 배우고 성장한 곳으로 세월과 함께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에겐 첫사랑 같은 떨림을 주는 장소다. 안 명창은 27일 “매년 연말에 관객들과 판소리로 만나 왔지만 이번에는 더 긴장된다”며 “마침 송년판소리에서 춘향가를 선보인 게 오래되기도 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송년판소리는 제자들과 함께 꾸며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안 명창은 “제자들의 소리를 정말 오랜만에 집중해서 들어 본 것 같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소리도 관객 입장에서 들어 보려고 노력했다”며 “어릴 때부터 가르쳤던 제자들이라 항상 어리고 귀엽게만 봤는데 이제 진중한 소리꾼의 모습이 보여 좋았다”고 흐뭇해했다. 그는 판소리 공연에서 관객들의 호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저를 포함한 6명의 소리꾼 각자의 매력을 느껴 보시는 게 이번 무대를 즐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판소리 보유자로서 안 명창은 이번 무대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우리 소리를 널리 전하는 게 목표다. 안 명창은 “많은 분의 격려와 도움으로 저에게 의미 있는 자리와 기회가 주어졌다”면서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귀중한 소리를 제가 배웠고, 이제는 이후 세대의 소리꾼들에게 전달하고 대중에게 전하는 무거운 자리라고 생각한다. 몸 관리를 잘해 되도록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판소리 한바탕녹음, 어린이를 위한 국악동요 제작 등 향후 계획만 들어도 안 명창은 쉴 틈이 없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행복한 결말을 쓰고 있는 안 명창이기에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따뜻했다. 그는 “우리 판소리에는 희로애락 모든 것이 들어 있는데 마지막에는 모든 문제가 잘 풀리고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된다”면서 “여러분도 올해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기뻤던 일, 화났던 일 많으셨겠지만 다가오는 2023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란다”고 덕담을 전했다.
  • “버려진 아기 ‘2034명’ 살린 아내, 치매로 아기 됐다”

    “버려진 아기 ‘2034명’ 살린 아내, 치매로 아기 됐다”

    13년 동안 ‘베이비박스’ 운영하며 2034명의 버려진 아기들을 먹여살린 이종락 목사의 아내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 베이비박스에서 보호하고 있는 아기들은 다섯 명이다. 일흔이 다 된 나이에도 직접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돌보는 이 목사는 육아 베테랑이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한 계기에 대해 “(2005년) 꽃샘추위가 있던 날 새벽 3시 20분쯤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는데 ‘미안합니다. 못 키워서 대문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라고 하더라. 바로 나가보니 작은 박스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 아이를 보듬고 계단을 올라오는데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자칫 잘못하다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베이비박스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로 아이 2034명을 구했다. 장애가 있어 입양 못 한 아이 16명은 직접 거뒀다.이 목사가 이렇게 힘든 길을 꿋꿋이 걸어올 수 있었던 건 늘 아내 정병옥 여사의 내조와 희생이 뒤따랐던 덕택이다. 하지만 묵묵히 견뎌준 아내는 최근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극한 우울증과 함께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 목사는 “아내가 많은 고생을 했는데 지금은 많이 몸이 아파 오히려 아기가 됐다. 돌봄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아내에 대해 “극한 우울증에 치매라고 한다. 이건 희귀병이다. 꿈을 꾼다든지 자기가 생각하는 게 현실로 나타난다. 남이 보기엔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데 자기는 이게 진심”이라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아내의 병세가 자기 탓이라고 했다. 정 여사는 분식집을 하며 뒤늦게 신학공부를 시작한 남편을 뒷바라지했고, 목사 부부가 된 뒤에도 수천 명의 아이를 돌보며 늘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아내는 3년 전 중증장애인이었던 아들을 떠나보내고, 평생 장애아에게 헌신했던 선의를 의심받는 억울한 일까지 겪으면서부터 달라졌다. 그는 “아내를 위로하고 좋은 말 할 여유조차 없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굉장히 인색함 없이 관대한데 우리 식구들에겐, 특히 아내에겐 굉장히 인색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 목사는 정작 가족인 아내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며 “아내가 건강해지면 같이 손잡고 다니며 운동도 하고 드라이브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싶다”고 소망했다.한편 이 목사의 이야기는 지난 2016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미국에서 이례적인 흥행 기록을 썼다. 영화는 해외에서 베이비박스가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으며 지난 9월 이 목사는 미국 최대 생명보호단체 라이브액션이 주최한 시상식에서 아시아 최초로 ‘올해의 생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그는 예술이 싫었을까/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그는 예술이 싫었을까/미술평론가

    검푸른 물속에 커다란 금붕어가 있다. 주변의 작은 물고기들은 신비하게 빛나는 금붕어에 놀란 듯 사방으로 흩어진다. 검푸른 바탕에 지그재그 선으로 물결과 수초가 묘사돼 있다. 클레는 물고기를 좋아했다. 1902년 이탈리아 여행 중 나폴리 동물원의 수족관을 보고 감명을 받은 클레는 바우하우스 교수로 데사우에 정착하자 자신의 작업실에 수족관을 설치했다. 이 그림은 그 시절에 그린 것이다. 1977년 3월 29일 한 남자가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전시실에 걸려 있던 이 그림에 황산을 뿌렸다. 한스 요아킴 볼만. 이를 시작으로 2006년까지 30년 동안 예술품 50여건을 파괴한 정신병자. 사춘기에 정신병 증세를 드러낸 볼만은 전기충격, 인슐린 요법 등 새 치료법이 나올 때마다 온갖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큰 효과가 없었고 어떤 치료는 오히려 그의 지능을 감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그는 마약성 약물에 의존했고 신앙으로 병을 이겨보려고 하면서 막노동으로 먹고살았다. 결혼도 했다. 그런데 1977년 그의 아내가 유리창을 닦다가 떨어져 죽었다. 아내의 죽음은 그를 붙잡아 두던 어떤 끈을 탁 풀리게 한 것 같다. 아내가 죽고 며칠 뒤부터 볼만은 예술품을 손상하기 시작했다. 독일 북부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루벤스, 렘브란트, 크라나흐의 그림을 공격했다. 붙잡혀서 형을 살고 나오면 또 미술관에 갔다. 그의 범죄로 발생한 손해는 약 1억 3800만 유로로 추산된다. 여기에 미술품 복원에 드는 시간은 계산되지 않았다. 볼만은 1990년 함부르크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됐고 16년 만인 2005년 사회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다음해 또 일을 저질렀다. 이번에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들어가 판데르 헬스트의 대작 ‘뮌스터 평화조약을 기념하는 암스테르담 민병대의 연회’(1648)에 황산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 범행으로 3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2008년 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풀려났고 다음해 1월 일흔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이 살아 있을 때 함께 미술관에 가곤 했던 사람, 남이 좋아하는 걸 파괴하면서 희열을 느꼈다고 고백한 사람, 정신병원에 있을 때 치료의 일환으로 1500점의 그림을 그린 사람. 그는 진정 예술이 싫었을까. 자신에게 평범한 행복조차 허용하지 않은 세상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 골라보는 재미…나타샤 트레스웨이, 커트 보니것 책 동시출간

    골라보는 재미…나타샤 트레스웨이, 커트 보니것 책 동시출간

    유명 작가의 여러 작품이 동시 출간돼 눈길을 끈다. 끌리는 작품을 골라 읽어도 좋고, 작품 간 연관성을 찾아보는 일도 즐거울듯하다. 출판사 은행나무는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2006년 퓰리처상 수상작 ‘네이티브 가드’와 2020년 애니스필드 울프 문학상, 남부 문학상 등을 받은 회상록 ‘메모리얼 드라이브’를 국내 첫 출간 했다. 트레스웨이는 2000년 첫 시집 ‘가사 노동’으로 릴리언 스미스 문학상과 미시시피 예술원상, 카베 카넴상 등을 수상하며 등장부터 화제가 됐다. 이어 2006년 퓰리처상, 2012년과 2013년 미국의회도서관 2년 연속 계관시인에 올랐다. ‘네이티브 가드’는 살해당한 어머니 이야기와 보수적인 남부에서 혼혈로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 남북전쟁 당시 참전에도 공을 인정받지 못한 최초의 공식 흑인 부대인 네이티브 가드 등에 대해 쓴 26편의 시를 담았다. 미국 역사 이면에 숨겨진 흑인 병사들의 희생과 작가가 겪었던 인종차별, 그리고 연장선에 있는 어머니의 죽음까지 불편한 주제를 풀었다. ‘총검처럼 날카롭다’는 평가와 함께 퓰리처상을 받았다. 작가가 열 아홉 살에 겪었던 어머니의 죽음을 돌아보는 회상록 ‘메모리얼 드라이브’도 함께 나왔다. 흑인 여성으로 태어나 주체적인 삶을 개척했지만 새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어머니를 기억고, 어머니의 사랑이 자신을 시인으로 이끈 과정을 담았다. 책 제목은 어머니와 살던 메모리얼 드라이브 5400구역에서 따왔다. 은행나무 담당자는 “시와 회상록이라는 다른 형식이지만,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한 대표작 두 권을 우선 선정해 출간했다”고 설명했다.문학동네는 SF 거장 커트 보니것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타이탄의 사이렌’, ‘타임 퀘이크’, ‘제5도살장’을 동시 출간했다. 보니것은 우주전쟁과 시간여행 등을 소재로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 작가로 2007년 별세했다. 출판사 측은 그의 대표작이자 세계관 엿볼 수 있는 세 작품을 선별했다고 설명했다. ‘타이탄의 세이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차 세계 대공황이 닥치는 ‘신우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평생 이어진 행운으로 최고의 갑부가 된 남자가 4차원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그래픽 노블로 출간한 ‘제5도살장’은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전선에서 낙오해 드레스덴에서 가축 도살장으로 사용하던 제5도살장에 독일군 포로로 갇히는 내용이다. 1945년 어느 날 미영 연합군의 폭격으로 드레스덴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서 필그림은 자신의 죽음과 탄생을 마주한다. 보니것은 실제로 기자로 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군에 입대하고, 1944년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서 지냈다. 작품에는 1945년 미영 연합군의 폭격을 마주한 체험이 그대로 녹았다. ‘타임 퀘이크’는 보니것의 마지막 작품이다.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면서 10년 동안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일흔이 넘은 그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고 자신이 쓴 글들을 모두 퇴고한다는 생각을 쓴 작품으로, 보니것의 은퇴작이기도 하다.
  • ‘가왕‘ 조용필 4년 만의 단독 무대, 싱글 형태 앨범 낼 수도

    ‘가왕‘ 조용필 4년 만의 단독 무대, 싱글 형태 앨범 낼 수도

    ‘가왕’ 조용필(72)이 4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연다. 다음달 26∼27일과 12월 3∼4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옛 체조경기장)에서다. 공연 기획사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는 조용필의 단독 공연이 지난 2018년 50주년 콘서트 이후 4년 만이라고 17일 밝혔다. 특히 전국 투어 형식이 아니라 ‘K팝의 성지’로 통하는 KSPO돔에서만 열려 많은 팬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이트 측은 “늘 최고의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 조용필은 국내 콘서트 최다 관객 동원 타이틀을 가진 것은 물론,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의 무대를 오래 기다린 팬들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용필은 이번에 또 한 번의 전설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싱글 형태로 신곡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호랑이띠 해를 맞아 연초부터 조용필이 새 앨범을 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 2013년 국내 음악계를 강타한 ‘바운스’가 실린 정규 19집 ‘헬로’ 이후 그는 신곡을 발표하지 않았다.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로 데뷔한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덤에 올랐다.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가왕’의 칭호를 얻었다. 팝 발라드부터 트로트, 민요, 가곡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러 왔다. 4년 전 전국 투어 공연을 거뜬히 소화할 정도로 평소 골프 등으로 체력을 다져온 조용필은 일흔을 넘기고도 매일 운동으로 기초체력을 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가요계 최고 스타이자 거장인 조용필은 지난 2018년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연 ‘방탄소년단’(BTS)에게 ‘빌보드 200’ 2관왕을 축하하기 위해 꽃바구니를 보낸 일이 있다. 맏형 진이 꽃바구니 인증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티켓 예매는 19일 오후 2시부터 예스24티켓에서 할 수 있다.
  • [속보] 벨라루스 대통령 “러시아와 합동지역군 합의”

    [속보] 벨라루스 대통령 “러시아와 합동지역군 합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공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고 AFP·로이터통신이 현지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벨라루스 관영통신 벨타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나는 이미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 영토에 대한 공격을 단순히 논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러시아 연방과 벨라루스 공화국으로 구성된 합동 지역군 배치에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와의 합동부대를 서쪽 접경지역에 배치할 예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공식화한 것은 아니지만, 양국의 합동군 배치로 긴장이 고조되며 전쟁이 확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벨라루스의 이 같은 발표는 지난 8일 크림대교 폭발 이후 이뤄진 것이라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대표적 친푸틴 인사다. 지난 7일 푸틴의 일흔 번째 생일엔 트랙터를 선물하기도 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광부의 딸’이자 페미니스트 가수 로레타 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광부의 딸’이자 페미니스트 가수 로레타 린

    영화 ‘광부의 딸’ 주제곡을 만든 컨트리 음악의 여왕 로레타 린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고인이 4일(현지시간) 아침 미국 테네시주 자택에서 잠자다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로레타는 1960∼70년대 컨트리 음악계를 대표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페미니스트였다. 자신의 인생 경험을 녹여 곡을 썼고 늘 강인함과 독립심을 여성에게 심어주는 가사를 붙였다. 그녀는 켄터키주 탄광 마을에서 8남매를 둔 광부 가족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통나무 오두막은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대공황 때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는 밤새 탄광에서 일하고 낮에는 옥수수를 길렀디. 가족의 고단한 삶에 위안이 된 것이 음악이었다. 어머니가 기타를, 아버지가 밴조를 연주하면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고 2016년 AP 통신 인터뷰를 통해 돌아봤다. “아빠가 ‘로레타, 그 큰 입 좀 다물렴. 이 홀 안의 모두가 듣겠다’ 그러면 난 ‘아빠,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들은 모두 사촌들인데’라고 대꾸하곤 했어요.” 열다섯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에는 파이를 구워 그걸 맛있다고 먹는 남자와 데이트하는 유행이 있었는데 로레타는 그만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 구웠다. 그게 맛있다고 군인 올리버 린이 말했고, 둘은 한 달 뒤 결혼해 워싱턴주 커스터란 곳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네 아이를 키웠다. 올리버는 아내를 ‘두리틀’(Doolittle)이라 불렀고, 프로로 노래하라고 권하며 17달러짜리 기타를 사줬다.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를 결성한 그녀는 남동생 제이 리 웹도 멤버로 넣어 제로 레코드란 회사에서 데뷔 싱글 ‘아임 어 홍키 통크 걸’을 내놓았다. 1960년의 일이다. 워싱턴주에서 친해진 여성이 남편에게 버림 받은 얘기를 낡은 화장실 벽에 기댄 채 작곡했고 10분 만에 영감이 떠올라 가사를 썼다고 했다. 부부는 모든 카운티를 돌아다니며 라디오 DJ들에게 틀어달라고 공짜 음반을 뿌렸다. 이렇게 해서 이 노래는 컨트리 음악 차트 14위까지 올랐고 가족은 내슈빌로 이사한 뒤 데카 레코드와 계약했다. 2년 뒤 첫 앨범 ‘석세스’를 내놓아 1990년대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내놓았다. 1965년 발표한 ‘술 취해 집에 오지 마’가 처음 1위를 차지한 뒤 무려 15차례 더 영광을 차지했다. 통산 60장의 앨범에 18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올라 세 차례 수상했다. 페미니스트들의 애창곡 ‘더 필’, 남편에게 접근하는 여자를 혼내주겠다고 다짐하는 ‘피스트 시티’ 등 체험담을 오선지에 그린 히트곡들을 연달아 내놓았다. 남편이 음악 활동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고, 그녀도 많은 인터뷰를 통해 고마움을 밝혔지만 둘은 종종 심하게 다퉜다. “남편이 한 방 먹이면 나도 먹이고, 늘 그런 식이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래도 올리버와는 1996년 먼저 세상을 등질 때까지 48년을 해로했다. 로이터 통신은 “남성 중심의 컨트리 음악계에서 대담하고 재능있는 산골 페미니스트로 명성을 쌓았다”며 “고인의 노래는 남녀 불평등, 피임약과 여성의 성적 자유 문제 등을 다뤘다”고 전했다. 1975년 발표한 ‘더 필’은 피임약이 있었다면 나중에 두 자녀를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내용의 노래였다. 이렇게 그의 노래 14곡은 당시로는 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사 때문에 라디오 방송 금지곡에 오르기도 했다. 그 무렵 동료 콘웨이 트위티와 듀오를 결성해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1976년에 시골마을 주부에서 컨트리 음악 여왕이 되기까지를 자서전으로 펴냈는데 제목이 ‘광부의 딸’이었다. 같은 제목으로 1980년 개봉한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린을 연기한 배우 시시 스페이섹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1980년대 들어 곡을 드문드문 발표했고 1990년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래도 앨범 몇 장을 내놓았는데 1993년 ‘홍키 통크 위민’에 돌리 파턴, 태미 와이넷이 협업했다. 나중에 음식에 관심을 돌려 로레타 린스 키친이란 레스토랑을 창업하고 인생 얘기와 조리법을 버무린 요리책을 시리즈로 내놓았다. 파턴의 돌리 우드를 본떠 테네시주에 로레타 린 목장을 열고 미술전, 캠핑장, 음악 공연 등을 개최했다. 2004년 자신의 광팬 잭 화이트가 그녀를 설득해 앨범을 다시 녹음하고 밴조가 등장하는 밴드를 조직해 음악에로 돌아왔다. 작사 실력도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나이 일흔둘에 새로운 청중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미상 베스트 컨트리앨범으로 뽑혔다. 고인은 미국 최고 권위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받았고, 1988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2013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시민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받아 목에 걸었다. 그 뒤에도 새 곡과 옛 노래를 리메이크한 ‘풀 서클’ 앨범을 발표했고 지난해에도 ‘스틸 우먼 이너프’란 곡을 써 마고 프라이스, 타냐 터커와 듀엣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2017년 졸도해 투어 공연을 중단했고 이듬해 집에서 넘어져 골반을 다쳐 고생했다.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그녀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보도했지만 연주하고 녹음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 무렵 페이스북에 “오랜 세월 그들은 나보고 파산했네. 집이 없네, 사기를 치네, 술 마시네, 미쳤네, 불치병이네, 심지어 죽었네 했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그런 낡고 쓰레기 같은 타블로이드들이 날 희롱할 정도면 딴 사람들은 박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난 조금만 손을 뻗으면 그놈들에게 ‘피스트 시티’ 먹일 수 있다고!”라고 적었다. BBC 음악 전문기자 마크 새비지는 지난 60년 동안 팬들에게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당당함을 보여줬다며 그런 요소가 그녀의 음악을 믿을 만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2004년 인터뷰했을 때 로레타는 “난 실제의 삶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오늘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내 생각에 사람들이 내 레코드를 사는 이유는 나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그것을 꽉 잡는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여섯 자녀 가운데 클라라, 어니스트, 쌍둥이 페기와 팻시만 남아 있고 17명의 손주, 네 증손주를 뒀다.
  •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유해 조사....“국가권력에 의한 야만행위”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유해 조사....“국가권력에 의한 야만행위”

    “농경지 한복판, 도심지 한복판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야만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잡혀와 노역과 구타에 시달리다 숨진 선감학원 희생자들의 개토식이 열린 26일 경기 안산시 대부동 산 37-1번지. 추도사를 맡은 김훈 작가는 묵묵한 목소리로 이같이 성토했다. 그는 “(희생자들의 유해가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기는 농경지 바로 옆이다. 주민 생활의 일상 한 가운데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라며 “(선감학원 사건이) 과거사일 뿐 아니라 현재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야만행위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선감학원 자리에 세워진 경기창작센터에서 작업을 하던 중 과거사를 알게 된 후 견딜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부연했다. 또 “과거의 악과 화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오직 사실의 바탕 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조사로 많은 사실이 확인돼 사실의 힘으로 화해가 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선감학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앞두고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개토식을 열었다. 진화위는 오는 29일까지 4일 간 유해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4~6개 봉분을 시굴할 계획이다. 해당 봉분은 과거 GPR검사(전자파를 이용해 땅속 물질을 확인하는 검사)로 확인한 곳이다. 조사는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책임조사원을 맡을 예정이며 호미 등을 이용해 40㎝ 깊이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확인하게 된다. 연구팀은 매장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유골이 발견될 가능성은 낮으나, 어린아이의 신발이나 치아, 뼛조각 등은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이날 개토식에는 선감학원에 끌려갔다가 도망쳐 나와 생존한 김영배 선감학원피해자대책협의회 회장을 비롯한 9~10명의 피해생존자도 함께했다. 지난 62년 불과 8살의 나이에 선감학원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았던 김 회장은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김 회장은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혹독한 강제노동과 심한 폭력, 인권유린을 당하고 생명을 잃었다. 배고픔과 괴로움에 못 이겨 달출하다 죽어가면 적합한 절차도 없이 암매장됐다”며 “선감마을 공동매장지가 된 이곳 선감묘역에는 150구의 시신이, 어린 나이에 수용돼 견디기 힘든 시간 속에 (사회에서) 방치됐고, 버려진 존재들이 잠들어 있다”고 말했다. 진화위는 지난 2021년 9월 27일 선감학원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조사 개시 결정을 하고 진실규명을 위한 다방면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 신청인 190명과 참고인을 대상으로 진실조사를 벌였고, 경기도기록원에 남아 있는 원아 대장 등 문건 조사 등도 마쳤다. 진화위는 시굴조사로 희생자를 확인한 후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정근식 진화위 위원장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감학원에서만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고, 상당수는 탈출하다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희생자 유해 일부라도 확인해 진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개토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 안산 대부동에 있는 선감도는 간척사업으로 땅과 연결되기 전 다리 하나 없는 고립된 섬이었다. 일제는 지난 1942년 이곳에 소년 강제수용소인 선감학원을 세웠다. 1956년부터 폐원하는 1982년까지는 도가 길에서 혼자 있는 아동 등을 잡아와 강제노역을 시키는 부랑아 수용소 등으로 운영했다. 당시 명부에는 원아 4691명과 사망자 24명이 확인된다. 그러나 피해생존자들은 사망자가 수백명에 달했으며, 탈출을 시도한 뒤 행적을 알 수 없는 사람도 부지기수라 증언하고 있다.
  • 제주 무대 서는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제주 무대 서는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제주무대에 선다. 제주아트센터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초청 리사이틀 ‘백건우와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를 오는 27일 화요일 오후 7시 30분에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본 공연에서 스페인 출신의 대표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를 연주한다.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는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스페인의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낭만적이고 따뜻한 선율을 그려낸 인물이다.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는 스페인 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람회를 본 후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구현해낸 작품으로, 그라나도스가 남긴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피아니스트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지 올해로 65년이 된 백건우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피아노 연습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곡에 도전하여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불린다. 제주아트센터는 “‘백건우와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공연을 통해 이국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특별한 기회가 되길 바라며,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 불멸의 헤비메탈 스타, 74세 오즈번 음반 발매

    불멸의 헤비메탈 스타, 74세 오즈번 음반 발매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오지 오즈번(74)이 새 앨범 ‘페이션트 넘버 9‘(Patient Number 9)을 발매했다고 14일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코리아가 밝혔다.  오즈번은 1970년대 헤비메탈의 선구자 블랙 사바스의 보컬 출신으로 유명하다. 197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를 만들어 독립했다가 1997년부터 이따금 블랙 사바스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대중음악계 최고의 영예인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기행에 가까운 무대 위 라이브 퍼포먼스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유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와 강렬한 목소리를 자랑하는 그는 일흔이 넘은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 오며 전 세계 록스타의 우상으로 꼽힌다.  ‘오디너리 맨’(Ordinary Man) 이후 2년 만에 나온 신보는 오즈번의 열세 번째 솔로 앨범이다. 특히 ‘기타의 신‘ 에릭 클랩턴이 타이틀곡 ‘원 오브 도스 데이스’(One of Those Days)에 참여해 눈길을 끈다. 그 밖에도 블랙 사바스 멤버인 토니 아이오미(기타), 메탈리카의 로버트 트루히요(베이스), 건스 앤 로지스의 더프 매케이건(베이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채드 스미스(드럼), 올해 초 세상을 떠난 푸 파이터스의 테일러 호킨스(드럼) 등 쟁쟁한 뮤지션이 대거 힘을 보탰다.
  • 내일모레 일흔 명예교수, 석사하러 美 간다

    내일모레 일흔 명예교수, 석사하러 美 간다

    건축구조물 내진 설계 분야 권위자인 이한선(68)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명예교수가 미국에서 수학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 22일 고려대에 따르면 2019년 1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한 이 교수는 이번 가을 학기부터 미 텍사스A&M주립대 수학과 석사 과정을 밟는다. 이 교수는 한국지진공학회 내진설계위원장과 한국지진공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30여년간 이 분야 교육과 연구를 주도했다. 그는 내진 설계를 하려면 수학은 ‘기본’이라고 했다. 박사 과정 당시 최소 이수 학점(36학점)을 훌쩍 넘겨 72학점을 취득한 것도 수학 공부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현재 출국 준비에 예습까지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특히 첫 수강 과목인 ‘추상 대수학’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석사 과정 중 강의조교로도 일하게 돼 익숙하지 않은 영어 수학 전문용어를 익히려고 유튜브로 해외 강의도 찾아 듣고 있다. 이 교수는 수학을 제2의 인생 목표로 삼는 데는 아들이 선물한 책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퇴직하고 나서 서너 번은 본 것 같다. 어려운 이 책이 그렇게 재밌었다”면서 “수학을 제대로 한번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지난 3월 초 유학을 결심했고 배울 기회만 있다면 어디든 좋다는 마음으로 대학 문을 두드렸다. 늦깎이 유학생을 자처한 한국의 노교수에게 텍사스A&M주립대는 장학금까지 주겠다며 문을 활짝 열어 줬다. 이 교수는 “미국 유학을 결심한 건 이렇게 은퇴한 사람에게도 젊은이와 차별하지 않고 기회를 보장해 주는 미국 문화 때문”이라며 “한국은 정년만 지나면 어디든 받아 주지 않는 문화가 있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데 이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대의 한 교수님은 정년이 10년이나 지난 75세에 큰 업적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나이만 빼고 보면 팔팔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현역’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를 언급하며 “허 교수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오려면 나처럼 수학이 재밌다는 사람이 많이 생겨 인적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성적이 세계 2위일 정도로 뛰어난데도 수험용으로만 접하다 보니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이런 분위기를 바꿔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재밌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 고려대 건축전공 명예교수, 일흔 앞두고 미국서 수학 석사 도전

    고려대 건축전공 명예교수, 일흔 앞두고 미국서 수학 석사 도전

    이한선 고려대 명예교수미국 텍사스 주립대서 석사 과정70세 앞두고 ‘수학’ 새로운 도전건축구조물 내진 설계 분야 권위자인 이한선(사진·68)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명예교수가 미국에서 수학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 22일 고려대에 따르면 2019년 1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한 이 교수는 이번 가을 학기부터 미 텍사스A&M주립대 수학과 석사 과정을 밟는다. 이 교수는 한국지진공학회 내진설계위원장과 한국지진공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30여년간 이 분야 교육과 연구를 주도했다. 그는 내진 설계를 하려면 수학은 ‘기본’이라고 했다. 박사 과정 당시 최소 이수 학점(36학점)을 훌쩍 넘겨 72학점을 취득한 것도 수학 공부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현재 출국 준비에 예습까지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특히 첫 수강 과목인 ‘추상 대수학’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석사 과정 중 강의조교로도 일하게 돼 익숙하지 않은 영어 수학 전문용어를 익히려고 유튜브로 해외 강의도 찾아 듣고 있다. 이 교수는 수학을 제2의 인생 목표로 삼는 데는 아들이 선물한 책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퇴직하고 나서 서너 번은 본 것 같다. 어려운 이 책이 그렇게 재밌었다”면서 “수학을 제대로 한번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지난 3월 초 유학을 결심했고 배울 기회만 있다면 어디든 좋다는 마음으로 대학 문을 두드렸다. 늦깎이 유학생을 자처한 한국의 노교수에게 텍사스A&M주립대는 장학금까지 주겠다며 문을 활짝 열어 줬다. 이 교수는 “미국 유학을 결심한 건 이렇게 은퇴한 사람에게도 젊은이와 차별하지 않고 기회를 보장해 주는 미국 문화 때문”이라며 “한국은 정년만 지나면 어디든 받아 주지 않는 문화가 있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데 이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대의 한 교수님은 정년이 10년이나 지난 75세에 큰 업적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나이만 빼고 보면 팔팔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현역’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를 언급하며 “허 교수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오려면 나처럼 수학이 재밌다는 사람이 많이 생겨 인적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성적이 세계 2위일 정도로 뛰어난데도 수험용으로만 접하다 보니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이런 분위기를 바꿔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재밌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 26번째 가오카오도 실패 “40년 대입 도전에 포기란 없다”

    26번째 가오카오도 실패 “40년 대입 도전에 포기란 없다”

    40년째 대학 입학의 꿈을 접지 못한 중국의 50대 남성이 지난 8일 26번째 대학 입학 시험인 ‘가오카오’(高考)를 치러 화제가 됐는데 이번에도 실패했다. 남서부 쓰촨성 메이산에 사는 사업가 량스(55)씨는 올해 시험을 앞두고 이과에서 문과로 바꿔 다시 도전해 지난 23일 성적표를 받았다. 750점 만점에 428점을 얻어 이 나라에서도 명문대로 손꼽히는 쓰촨대 입학 커트라인 605점에 한참 모자랐다. 문과로 전과하면 더 나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실제로 일년 전의 403점보다 조금 높아진 것을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낙담한 량스는 “예술과인문 과목에서 적어도 200점은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171점 밖에 안 나왔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털어놓았다. 그의 대입 도전사는 집념으로 점철됐다. 1983년에 처음 도전했는데 내리 삼수를 해야 했다. 1986년 한 해를 거른 뒤 1987년부터 5년 연속 가오카오에 응시했으나 대학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미혼이어야 한다든가 응시 연령 제한(25세)에 걸려 가오카오를 보지 못한 횟수는 14차례였다. 대학 진학의 꿈을 접은 그는 농민공을 전전하다 1990년대 쓰촨성 성도인 청두에서 건축 자재 사업으로 큰 돈을 만져 성공한 사업가 평판을 들었지만 대학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대입 연령 제한이 폐지되자 2002년부터 다시 대학 문을 두드린 그는 중간에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2006년부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오카오에 응시했다. 일부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고 곁눈질을 했고, 주변에서도 포기를 권했지만, 그의 집념을 꺾지 못했다. 그는 “부모님 모두 교사이셨는데 다섯 자녀 중에 누구도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을 통탄해 하셨다”며 “부모님이 ‘너라도 대학에 꼭 가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가오카오 알박기(Dingzihu)”라고 이죽거렸다. 그는 26번째 실패에도 흔들림이 없다. 보름이나 한달 동안 쉬면서 마음을 추스른 뒤 다시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 온라인매체 넥스트샤크가 전한 그의 각오다. “지난해 난 사업이나 가정사로 방해받으면서도 하루 10시간가량 공부했다. 팬데믹 때문에 지금은 업체를 운영하기 어려워 그만 두고 있다. 해서 남은 시간을 내년 가오카오 준비에 쏟아부었으면 한다.” 그와 비슷한 사례는 2019년에도 있었다. 당시 일흔두 살의 강량시 할아버지가 열아홉 차례 낙방한 끝에 마지막으로 도전했다. 물론 그는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젊은 학생들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올해 가오카오에는 역대 최대인 1193만명이 응시했으며 7∼8일 중국 전역에서 치러졌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응시 인원이 1000만명을 넘긴 것은 네 번째였다.
  • 작은 역할은 없어…작은 배우만 있지

    작은 역할은 없어…작은 배우만 있지

    까만 무대 뒤에서 아직도 벌벌 떨어(손숙) 월급도 안 받는데 은퇴가 어디 있어(박정자) “작은 역할이란 없어요.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죠.”(윤석화) 연기 경력 도합 165년. 이름만으로도 중량감을 뽐내는 연극계 트로이카 배우 박정자(80), 손숙(78), 윤석화(66)가 새달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햄릿’의 단역으로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연극 ‘햄릿’ 연습실에서 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박정자는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1964년 연극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로 데뷔한 손숙은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에서 활약해 왔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윤석화는 배우뿐 아니라 제작·연출자로서도 인정받았다. 세 사람은 1985년 문을 연 소극장 산울림의 여성 연극 시대를 이끌었으며 이해랑 연극상을 줄이어(6회 박정자, 7회 손숙, 8회 윤석화) 받기도 했다. 또 이제는 고전이 된 ‘신의 아그네스’를 함께 했으며 2000년 이해랑 선생 11주기 추모 공연이었던 안톤 체호프 원작 ‘세자매’의 무대에 같이 올랐다. 손숙은 “이 어려운 연극계에서 서로 힘이 되니까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며 “동료보다 전우 같다”고 했다. 박정자는 “이런 동료를 갖는다는 게 쉽지 않고 서로가 귀한 존재”라며 “동시대를 같이 살고 있다는 게 참 고맙고 따뜻하다”고 말을 보탰다. 세 사람은 6년 전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햄릿’ 공연도 함께 출연했다. 당시 박정자는 왕의 최측근 폴로니어스 역을, 손숙은 왕비인 거트루드 역을, 윤석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버지를 잃고 결국 물에 빠져 죽는 오필리어 역을 맡았지만, 지금은 단역인 배우 1~3으로 등장한다. 윤석화는 “연극다울 것이라는 기대감만 있으면 행인을 해도 좋고 반대라면 주인공 역이라도 마다할 수 있다”며 “이전 역을 그대로 맡으면 편했겠지만, 이런 게 새로 작품 하는 묘미”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햄릿’과 같은 고전이 꾸준히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윤석화는 “햄릿과 같은 고전 작품은 울림과 감동의 폭이 더 커질 수 있는 두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손숙은 “우리나라 연극 환경이 고전을 올리기 쉽지 않다”며 “국립극장과 같은 곳에서 관객이 고전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0~60년 동안 셀 수 없이 무대에 올랐지만, 여전히 떨린다고 고백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늘 새롭고 설레고 겁나요. 무대 뒤가 깜깜하잖아요. 거기서 엄청나게 떨어요”(손숙), “웃기지도 않아. 나도 떨어요. 이제 남은 건 이렇게 떠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아요. 책임감도 그렇고 (연극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박정자) 세 사람에게는 은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내가 뭐 월급, 보너스 받아 본 적도 없는데 은퇴가 어딨어요. 무대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은퇴는 없죠.”(박정자) “예전에 예순 살이 되면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손숙) “일흔 살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걸요. 동네 꼬마 세 명이 관객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언제 어디서든 제가 설 수 있는 무대, 나눌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되는 거죠. 아마 천국에 가서도 나는 배우를 하고 있을 거예요.”(윤석화)
  • “작은 역할은 없어요,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지”…연기 경력 도합 165년, 연극계 트로이카

    “작은 역할은 없어요,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지”…연기 경력 도합 165년, 연극계 트로이카

    “작은 역할이란 없어요.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죠.”(윤석화) 연기 경력 도합 165년. 이름만으로도 중량감을 뽐내는 연극계 트로이카 배우 박정자(80), 손숙(78), 윤석화(66)가 새달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햄릿’의 단역으로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연극 ‘햄릿’ 연습실에서 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박정자는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1964년 연극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로 데뷔한 손숙은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에서 활약해 왔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윤석화는 배우뿐 아니라 제작·연출자로서도 인정받았다. 세 사람은 1985년 문을 연 소극장 산울림의 여성 연극 시대를 이끌었으며 이해랑 연극상을 줄이어(6회 박정자, 7회 손숙, 8회 윤석화) 받기도 했다. 또 이제는 고전이 된 ‘신의 아그네스’를 함께 했으며 2000년 이해랑 선생 11주기 추모 공연이었던 안톤 체호프 원작 ‘세자매’의 무대에 같이 올랐다. 손숙은 “이 어려운 연극계에서 서로 힘이 되니까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며 “동료보다 전우 같다”고 했다. 박정자는 “이런 동료를 갖는다는 게 쉽지 않고 서로가 귀한 존재”라며 “동시대를 같이 살고 있다는 게 참 고맙고 따뜻하다”고 말을 보탰다. 세 사람은 6년 전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햄릿’ 공연도 함께 출연했다. 당시 박정자는 왕의 최측근 폴로니어스 역을, 손숙은 왕비인 거트루드 역을, 윤석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버지를 잃고 결국 물에 빠져 죽는 오필리어 역을 맡았지만, 지금은 단역인 배우 1~3으로 등장한다. 윤석화는 “연극다울 것이라는 기대감만 있으면 행인을 해도 좋고 반대라면 주인공 역이라도 마다할 수 있다”며 “이전 역을 그대로 맡으면 편했겠지만, 이런 게 새로 작품 하는 묘미”라고 말했다.세 사람은 ‘햄릿’과 같은 고전이 꾸준히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윤석화는 “햄릿과 같은 고전 작품은 울림과 감동의 폭이 더 커질 수 있는 두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손숙은 “우리나라 연극 환경이 고전을 올리기 쉽지 않다”며 “국립극장과 같은 곳에서 관객이 고전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0~60년 동안 셀 수 없이 무대에 올랐지만, 여전히 떨린다고 고백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늘 새롭고 설레고 겁나요. 무대 뒤가 깜깜하잖아요. 거기서 엄청나게 떨어요”(손숙), “웃기지도 않아. 나도 떨어요. 이제 남은 건 이렇게 떠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아요. 책임감도 그렇고 (연극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박정자) 세 사람에게는 은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내가 뭐 월급, 보너스 받아 본 적도 없는데 은퇴가 어딨어요. 무대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은퇴는 없죠.”(박정자) “예전에 예순 살이 되면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손숙) “일흔 살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걸요. 동네 꼬마 세 명이 관객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언제 어디서든 제가 설 수 있는 무대, 나눌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되는 거죠. 아마 천국에 가서도 나는 배우를 하고 있을 거예요.”(윤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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