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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디오스타’ 홍서범 “10년째 발기부전 홍보대사”

    ‘라디오스타’ 홍서범 “10년째 발기부전 홍보대사”

    ‘라디오스타’ 홍서범이 10년째 발기부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과 함께 사명감 넘치는 홍보대사 역할 수행(?)으로 수요일 밤을 웃음바다로 만들 예정이다. 특히 그는 현장에서 이무송에게 홍보대사 자리 이양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져 궁금증과 관심을 높이고 있다. 오는 25일 방송되는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대한민국 대표 중년 남편 최수종, 이재룡, 이무송, 홍서범이 출연해 ‘브라보 마이 와이프’ 특집으로 입담과 예능감, 그리고 솔직함으로 큰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홍서범은 각각 야구, 배드민턴, 캠핑, 술을 함께하는 연예인 모임만 네 개여서 방송이 없어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고 밝혀 시작부터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홍서범은 10년째 발기부전 홍보 대사를 맡고 있다고 밝혀 시선을 집중시킬 예정이다. 녹화 당시 홍보대사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그는 “병이 아닌데 숨기는 거야”라며 올바른 처방과 치료를 강조했는데, 이를 유심히 들으며 대화에 참여한 이무송에게 즉석에서 홍보대사 이양을 시도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후문. 그런가 하면 홍서범은 이번 ‘라디오스타’ 녹화에서 한국 최초 래퍼로 이름을 올리게 해준 자신의 곡 ‘김삿갓’ 발표 당시 ‘음정 불안’으로 재심의를 받은 사실과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과의 일화를 들려줄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그는 ‘김삿갓’을 듣고 랩을 시작했다는 서태지와 아이들과의 첫 만남 일화를 밝힐 예정이다. 또한 홍서범은 아내 조갑경과 결혼 생활 전체를 통틀어 각방을 쓴 적이 없다고 하면서 특별한 이유까지 밝혀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아내 조갑경이 화가 났을 때 화해하는 그만의 특급 비법까지 공개했다고 전해져 궁금증을 높인다. 발기부전 홍보대사 홍서범으로 인해 시작된 건강한 중년의 이야기와 한국 최초 래퍼 홍서범의 ‘김삿갓’ 무대는 오는 25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MBC ‘라디오스타’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나팔바지 입고 유신반대…김어준이 기억하는 노회찬

    나팔바지 입고 유신반대…김어준이 기억하는 노회찬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씨가 23일 별세한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의 10년 인연을 떠올리며 “노 의원은 청교도적 풍자가였다. 그 빈자리가 크다. 그리고 메워지지 않을 것 같다”며 애도했다. 24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노 의원의 육성으로 시작됐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서른 해만 서른 해만 더 함께 살아볼꺼나”라는 가사의 노래였다. 김씨는 “노 의원이 고등학생일 때 직접 작곡한 소연가라는 곡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 곡은 삼국유사에서 모티브를 딴 서정주 시인의 수필 ‘석남꽃’의 한 대목에서 노랫말을 따고 노 의원이 직접 음을 붙였다. 김씨는 “악보는 없는 걸로 아는데 누가 악보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면서 “노 의원이 음치라서 음이 잘 들릴지 모르겠다”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노 의원은 지난 1년간 뉴스공장에 고정출연했다. 매주 수요일 ‘노르가즘’ 코너에서 촌철살인의 정치 논평으로 청취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김씨는 언론에 잘 알려진 대중정치인 노회찬 대신 자연인 노회찬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싶다며 몇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노 의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2004년 KBS 심야토론 이야기가 가장 먼저였다. 노 의원은 당시 토론에서 “50년 동안 쓰던 고깃판을 갈아야 한다. 거기에 구워 먹으면 고기 다 탄다”는 재치 넘치는 비유와 풍자로 큰 주목을 받았다. 김씨는 “그때까지 운동권의 이미지는 삭발, 빨간머리띠처럼 과격했다. 이런 화법이 진보진영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은 지금도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정치인의 죽음이 아니라 친구가 갑자기 떠난 것 같은 그런 상심감을 느낀다”고 착잡해 했다. 김씨는 노 의원을 문화예술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노 의원은 첼로를 켤 줄 알았다. 2007년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 쯤은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고 했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또 “노 의원이 중학교때 100m 기록 12초의 육상부 단거리 선수였다고 한다. 외모는 그렇지 않지 않나…”라며 애써 농담하기도 했다.좋아하는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좋아하는 영화는 벤허, 쿼바디스, 전쟁과평화로 클래식한 취향이었다고 김씨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노 의원에게 패션 취향을 물었더니 고등학교 때 (바짓통이) 11인치 나팔바지를 입었다고 했다. 나팔바지 입고 유신에 반대했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용접 자격증을 따고 운동권에 투신하고 3년간 감옥생활을 한 덕에 마흔살이 돼서야 처음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노 의원에게 선글라스가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평생동안 딱 하나 있었다고 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이런게 마음이 아프다. 좀 더 멋부리면서 인생을 살아도 되는데 지나치게 엄격하게 살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노 의원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노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의 주범 ‘드루킹’ 김모씨가 이끈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으로부터 40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용접공 노씨’서 진보정치의 별로… “삼성 떡값” “50년 판 갈아야” 권력 겨눠

    ‘용접공 노씨’서 진보정치의 별로… “삼성 떡값” “50년 판 갈아야” 권력 겨눠

    2004년 민노당 비례대표로 여의도 입성 떡값 검사 밝힌 ‘X파일’로 의원직 잃기도 연동 비례대표·특활비 폐지 등 개혁 앞장 “정의당 아껴달라” 남기고 30년 정치 마감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소탈하고 서민적인 행보, 재치 있고 날카로운 화법으로 한국 진보정치의 대중성을 확장한 진보정당의 거두였다.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고 정치 기득권 타파에 앞장서며 거대 양당 틈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노 의원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하던 1982년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인천에서 ‘용접공 노씨’란 별칭으로 일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한 그는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결성했다. 이 일로 노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1989년부터 2년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제도권 정당 정치를 시작한 건 1997년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의 기획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민노당 창당 후에는 2000년 부대표, 2002년 사무총장을 거쳐 2004년 민노당 비례대표 8번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 방송 토론회 때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는 발언으로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이른바 ‘판갈이론’을 펼친 뒤 노 의원은 진보진영의 ‘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시련도 적지 않았다. 2012년 서울 노원병에서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지 9개월 만에 ‘삼성 안기부 X파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시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형을 받았다. 노 의원은 2014년 7·30 서울 동작을 재보궐 선거에서 재기를 노렸다. 선거 막판 기동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해 야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나경원 당시 새누리당 의원과 정면 승부를 펼쳤으나 낙선했다. 20대 총선 때는 경남 창원성산으로 지역구를 옮겨 진보 정치인 중 드물게 3선 고지에 올랐다. 노 의원은 의정 활동 내내 개혁적 입법에 공을 들였다.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를 극복하자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줄곧 주장했다. 국회의원들의 ‘눈먼 쌈짓돈’으로 불리는 특수활동비 관행을 바로잡는 데에도 주력했다. 노 의원은 지난 6월 교섭단체 원내대표로서 3개월 동안 받은 특활비를 반납했다. 하지만 지난달 ‘드루킹 특검´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졌다. 2016년 3월 경공모가 노 의원에게 5000만원을 전달한 정황이 담긴 회계 장부 등이 확인됐다. 30여년간 한국 진보정치를 이끈 노 의원은 23일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건축의 소통은 창에서 시작한다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건축의 소통은 창에서 시작한다

    4차산업 시대라 하여 소통과 융합이라는 단어가 주인공이 되었다. 분야별로 타 분야와의 소통과 협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건축에서의 소통은 작은 구멍에서 시작된다. 바닥과 벽과 천정으로 구획된 하나의 공간에 다른 공간과의 소통을 위해 작은 구멍이 하나 뚫리며 비로소 빛이 들어오고 소리가 들린다. 건축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 중 소통이라는 단어와 가장 연관성이 높은 것은 창(문)이다. 창이 커지고 열리면 문이 되고 벽면이 개방되어 두 개의 공간이 통합된다. 열린 벽에 바닥이 연장되어 통로가 생기고 그 통로는 다른 공간들과 연결된다. 바닥과 지붕이 이 뚫리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elevator) 같은 수직통로가 붙어서 마천루가 된다. 면벽수양을 하는 수도자가 꽉 막힌 벽면만 보이다가 스스로와 소통이 되면 면벽에 바늘구멍이 뚫리고 빛이 들어온단다. 그 구멍이 커져서 벽이 걷히면 있어도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 이르러 벽 너머의 세계가 보인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도 역시 같다. 마음의 벽에 작은 구멍이 생기고 벽이 걷히는 과정이 소통이다. 건축에는 이처럼 소통의 마중물이 되는 작은 창들이 있다. 전통건축에서는 이런 작은 창을 봉창이라 한다. (봉창, 율현동 물체당 봉창, 한국학 중앙연구원) 창은 창이되 작아서 트였다 할 수 없어서 봉창이라 하고 개폐시설이 없는 막힌 창이라 하여 봉창이다. 창이라기보다는 구멍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창이다.“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한다”라는 말은 머리맡에 봉창으로 빛이 스며드니 문과 착각하여 열려고 더듬는 소리다. 남의 다리 긁는다는 말과 함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비유적으로 쓰는 말이다. 아침이 밝으면 스며드는 빛으로 날이 밝았음을 느끼고 굵은 마사토가 깔린 밖에 발걸음 소리를 듣고 사람이 있음을 느낀다. 밖에서는 봉창을 두드려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은 창들은 위치에 따라 제 역할이 다르다. 부엌의 아래위에 뚫린 살창은 환기를 시키고 방의 높은 곳에 배치된 작은 창은 내다볼 수는 있으나 들여다보지 못하는 보안창이다. 천창이나 고창은 빛을 끌어들이는 창이다. (사진 2. 천창, 아모레 퍼시픽 신사옥)천창은 실내에서 별이 그려진 하늘을 이불 삼아 누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필자가 예전에 설계한 어린이집에 천창이 있다. 늦게 별빛을 보며 퇴근하는 워킹맘의 아가들이 엄마를 기다리며 엄마와 같은 별을 보게 해 주고 싶었다. 천창을 제법 크게 뚫어 비용이나 하자염려를 이유로 건축주가 반대했다. 겨우겨우 설득하여 천창이 만들어졌다. 입주 후 일 년여가 지나서 저녁초대를 받아 갔다가 늦게 어린이집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천창 밑에 누워서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장과 필자를 본 아이들이 별을 가리키며 별이 쏟아진다는 의미의 무슨 말을 하였는데 그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무척 감동적이었다. 천창을 반대할 때 자신을 설득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이 천창 아래를 제일 좋아해서 그 시간이면 모두 천창 아래로 모인다고 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벽면에 크고 작은 창들로 천상의 빛이 예배당으로 쏟아진다. 나치에 협력했다는 코르뷔지에게 이 성당은 면죄부를 주었다. (사진 3, 롱샹성당의 채광창)빛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창들은 벽면에 비해 크지 않은 작은 창들이다. 이러한 작은 창들은 최소한의 크기로 소통을 하지만 그 작은 창이 없는 벽이나 천정과는 완전히 다르다. 건물의 본체가 아닌 담장에서도 창은 유효한 소통수단이다. 조선시대 유교로 인해 여성들의 행동이 제약이 많던 시절 아낙들이 모이는 우물가 담장에는 소리샘이이라는 창이 뚫려 있었다.(사진 4, 강골마을 소리샘)아낙네들의 수다 장소인 우물가지만 담장 밖의 세상과 소통이 어려웠기에 바깥세상 돌아가는 세상물정을 엿듣던 구멍이다. 소리샘이라 하여 다소 높이가 높았으나 적극적인 여성이라면 무엇이라도 밟고 올라서 세상 밖을 구경하지 않았겠는가? 남녀칠세부동석의 시절에 안채와 사랑채 사이엔 담장이 있었다. 남녀가 유별하다지만 사실은 여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통제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외부인이 안채에 들어가려면 사랑채 마당을 거쳐서 중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고 안채에 기거하는 여인들이 밖엘 나가도 같은 경로를 거쳤다. 물론 공식적이지 않은 출입을 돕는 샛문은 있었지만, 동네 아낙들의 비공식 출입구였다. 이 담장에도 간혹 창이 나있다. 보통은 기왓장을 마주보게 쌓아서 기와의 곡면이 만들어낸 원형 구멍을 만들었다. (사진5. 담장의 기와구멍)이 구멍의 용도 역시 엿보기 용이다. “이리 오너라.” 듣기 좋은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면 안채에 기거하던 젊은 처자는 목소리 주인공이 궁금하다. 하녀가 있다면 어떻게 생긴 사내냐고 보고 오라 했겠지만, 하녀가 없으면 스스로 기와구멍으로 엿보기도 했을 것이다. 신랑의 얼굴도 모르고 시집을 가야했던 시절에 혼사가 오가는 총각이 사랑채에 들면 어미는 딸을 담장의 창 앞으로 불러내 신랑감의 얼굴을 몰래 보여주었을 것이다. 왈가닥 루시같은 아가씨라면 신랑감과 밀담도 나누고 연서도 교환했으리라. 사랑채에 손님이 들면 눈치 빠른 아낙은 손님이 몇인지 밥상을 들릴지 주안상을 들일지 분위기를 파악하고 미리 준비를 할 것이다. 물론 설렁줄을 통해 사랑채의 주인이 무전으로 알려줄 수도 있다. 설렁줄은 설렁이라는 방울을 매달아 채와 채를 긴 끈으로 연결한 통신수단이다. 사랑채에서 체면을 지켜야 하는 양반님은 하인을 통하지 않고 이 설렁줄로 직접 안채의 누군가와 밀어를 나눌 수도 있다. (사진 6, 설렁줄)막힌 벽에 작은 구멍은 갑갑한 여인들의 생활에 숨구멍이었다. 이 작은 소통이 있어서 조선 여인들은 좀 위안이 되었으리라. 창밖 담장에 능소화가 보인다. 임금의 성은을 입어 빈이 되었지만 구중궁궐의 구석 처소로 밀려난 소화는 다시는 찾지 않을 무정한 님을 기다리며 담장 밑에서 밖으로 귀를 기울이고 기다리다 죽는다. 구석으로 밀려나 왕에게서 멀어진 빈은 장례도 없이 님을 기다리던 그 담장 밑에 묻혀서 마치 담장 밖으로 귀를 내밀 듯 꽃을 피웠다는 전설이 있다. 여인의 한이 왜 그리 부러운 것인지. 궁녀가 임금의 여자가 되었다 하여 딸을 낳으면 능소화를 심었다는 옛날 아비들의 비정함이 단지 유교 성리학 때문이었을까? 만족치는 못하나 이 땅의 여인들이 겪은 불편부당함에 대한 보상이랄까? 여성용 화장실의 칸수를 늘려보려고 지금 남성 건축주와 힘든 소통을 하고 있다. 작은 소통의 창이 커지며 적극적인 소통이 일어난다. 창은 환경과 소통하고 확장되어 벽 전체가 창이 되고 문이 되어 공간을 통합하고 연결한다. 요즘 많이 쓰이는 poiding door(사진7, 폴딩도어)나 전통건축의 들문(사진8, 들문)은 창 중에 가장 적극적인 소통을 주문한다. 발코니는 외부와 내부의 완충공간이며 창공을 향한 날개 짓이다. 수직으로 쌓인 주택에 유일한 외부공간이며 주변과 소통하는 장소다. 마당이 있는 집의 소통의 중심은 마당이다. 마당을 통해 들고 나며 손님을 맞고 가사 일을 하고 집안의 행사를 치른다. 세면이상이 다른 공간으로 둘러싸인 마당을 중정이라 한다. 중정이 있는 집은 창과 문이 중정을 향하며 중정을 마주보고 눈을 맞춘다. 당연히 많은 소통이 일어난다.고택의 마당은 곳곳에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뒤로 연결되어 있다. 벽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고 샛문으로 연결된다. 건물 역시 툇마루형식의 복도로 연결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지만 비공식 통로는 어른들의 묵인하에 아들과 며느리가 집안의 대를 잇는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고양이 걸음으로 드나들던 통로인 것이다. 마당의 울타리는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시설이지만 높이에 따라 더러 열고싶은 전망좋은 장소가 있다. 자연과의 소통을 위해 담장에 뚫린 회재 이언적의 독락당 살창은 현대에나 있을법한 열린 담장으로 특이하다.(사진9, 독락당 담장의 살창)영역으로 들어오는 문이 대문이다. 제주도에는 정낭이라는 특별한 대문이 있다. 문대신 막대를 한 개에서 세개 걸어서 주인의 위치를 알리고 알아서 들어오게 한다. (사진10, 제주도 전통대문 정낭)(그림1, 정낭의 식별법)요즘 공동주택은 개인의 마당이 없고 거실이 마당을 대신한다. 집의 방문들은 프라이버시(privacy)를 앞세워 숨겨져 있고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 보고 있다. 대청마루로 마주보고 있는 방까지는 아니어도 거실로 작은 창 하나라도 뚫어진 아파트는 어떨까? 어찌보면 privacy와 소통은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하다. 가족 간의 대화가 없어진 것은 생활패턴이 변한 이유도 있지만, 가족이 함께할 공공 공간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도시의 녹지와 광장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카페와 pc방이 채우다보니 가족간의 대화는 점점 줄어든다. 생활패턴의 변화에 맞는 공공 공간의 모델이 필요하다. 주차요금에 ?겨서 나와야 하는 사설 여가시설 말고 가족이 여유있게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의 모델이 개발되어야 한다. 건축은 사용자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담아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발주자가 아닌 사용자가 우선이다. 옛날 사립학교에는 이사장이나 교장의 사택이 교내에 있었다. 대개 그들은 발주자가 된다.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시설임에도 그들의 사택이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나머지 땅에 학교를 배치하라는 주문이 있었다. 어떤 건축가는 설계비를 깎아주는 조건을 내세워 사택의 위치를 조정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해 줄 거야?” “해 드릴께요” “목욕탕이나 지어줘.” 말하는 건축가로 많이 알려진 고(故) 정 기용선생이 면사무소 설계를 위해 만난 할머니의 말에 목욕탕이 있는 면사무소가 탄생했다.(사진11,12 정기용의 안성 면사무소)디자인이 목적에 의해 형상화된 결과물이라면 건축은 디자인이다. 건축은 그 목적이 사용자에게 있으며 사용자와 건축가가 함께 디자인하는 것이고 이들의 소통이 결과물의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소통능력이다. 집을 짓는다면 디자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축가보다는 사용자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주는 건축가를 만나길 권한다. 선택은 독자 분들의 몫이지만.<글: 한건축 대표>
  • ‘섹션TV’ 양치승 “스타들 중 최고의 몸매는 김우빈”

    ‘섹션TV’ 양치승 “스타들 중 최고의 몸매는 김우빈”

    23일 방송되는 MBC ‘섹션TV’에서는 톱스타들의 몸매를 만들어주는 ‘호랑이 관장’ 양치승과 만난다. MBC ‘나혼자산다’를 통해 이름을 알린 헬스트레이너 양치승 관장이 여름을 맞아 몸매를 가꾸고 싶은 시청자들을 위해 ‘섹션TV’를 찾았다. ‘섹션TV’의 새 리포터로 합류한 김정현 아나운서와 배순탁 작가가 그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그와 만났다. 양치승 관장은 자신의 손을 거쳐 간 수많은 몸짱 연예인들의 시작은 2AM과 2PM이었다고 밝히며 “왜 우리나라 아이돌 중에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멋진 몸이 없을까 생각하다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많은 스타들 중 최고의 몸매로 배우 김우빈을 꼽기도 했다. 양치승 관장은 김우빈의 넓은 어깨는 자신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며 “처음 김우빈을 만났을 때는 마치 연필 같았다”고 비유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자신이 힘들었던 시절 김우빈에게 도움 받았던 일화를 소개하며 지금까지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꾸밈없는 진솔한 인터뷰로 즐거움을 선사한 양치승 관장과의 만남은 23일 오후 8시 55분 공개된다. 사진제공=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건축의 소통은 창문에서 시작된다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건축의 소통은 창문에서 시작된다

    4차산업 시대라 하여 소통과 융합이라는 단어가 주인공이 되었다. 분야별로 타 분야와의 소통과 협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건축에서의 소통은 작은 구멍에서 시작된다. 바닥과 벽과 천정으로 구획된 하나의 공간에 다른 공간과의 소통을 위해 작은 구멍이 하나 뚫리며 비로소 빛이 들어오고 소리가 들린다. 건축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 중 소통이라는 단어와 가장 연관성이 높은 것은 창(문)이다. 창이 커지고 열리면 문이 되고 벽면이 개방되어 두 개의 공간이 통합된다. 열린 벽에 바닥이 연장되어 통로가 생기고 그 통로는 다른 공간들과 연결된다. 바닥과 지붕이 이 뚫리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elevator) 같은 수직통로가 붙어서 마천루가 된다. 면벽수양을 하는 수도자가 꽉 막힌 벽면만 보이다가 스스로와 소통이 되면 면벽에 바늘구멍이 뚫리고 빛이 들어온단다. 그 구멍이 커져서 벽이 걷히면 있어도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 이르러 벽 너머의 세계가 보인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도 역시 같다. 마음의 벽에 작은 구멍이 생기고 벽이 걷히는 과정이 소통이다. 건축에는 이처럼 소통의 마중물이 되는 작은 창들이 있다. 전통건축에서는 이런 작은 창을 봉창이라 한다. (사진1. 봉창, 율현동 물체당 봉창, 한국학 중앙연구원) 창은 창이되 작아서 트였다 할 수 없어서 봉창이라 하고 개폐시설이 없는 막힌 창이라 하여 봉창이다. 창이라기보다는 구멍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창이다.“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한다”라는 말은 머리맡에 봉창으로 빛이 스며드니 문과 착각하여 열려고 더듬는 소리다. 남의 다리 긁는다는 말과 함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비유적으로 쓰는 말이다. 아침이 밝으면 스며드는 빛으로 날이 밝았음을 느끼고 굵은 마사토가 깔린 밖에 발걸음 소리를 듣고 사람이 있음을 느낀다. 밖에서는 봉창을 두드려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은 창들은 위치에 따라 제 역할이 다르다. 부엌의 아래위에 뚫린 살창은 환기를 시키고 방의 높은 곳에 배치된 작은 창은 내다볼 수는 있으나 들여다보지 못하는 보안창이다. 천창이나 고창은 빛을 끌어들이는 창이다. (사진 2. 천창, 아모레 퍼시픽 신사옥)천창은 실내에서 별이 그려진 하늘을 이불 삼아 누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필자가 예전에 설계한 어린이집에 천창이 있다. 늦게 별빛을 보며 퇴근하는 워킹맘의 아가들이 엄마를 기다리며 엄마와 같은 별을 보게 해 주고 싶었다. 천창을 제법 크게 뚫어 비용이나 하자염려를 이유로 건축주가 반대했다. 겨우겨우 설득하여 천창이 만들어졌다. 입주 후 일 년여가 지나서 저녁초대를 받아 갔다가 늦게 어린이집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천창 밑에 누워서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장과 필자를 본 아이들이 별을 가리키며 별이 쏟아진다는 의미의 무슨 말을 하였는데 그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무척 감동적이었다. 천창을 반대할 때 자신을 설득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이 천창 아래를 제일 좋아해서 그 시간이면 모두 천창 아래로 모인다고 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벽면에 크고 작은 창들로 천상의 빛이 예배당으로 쏟아진다. 나치에 협력했다는 코르뷔지에게 이 성당은 면죄부를 주었다. (사진 3, 롱샹성당의 채광창)빛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창들은 벽면에 비해 크지 않은 작은 창들이다. 이러한 작은 창들은 최소한의 크기로 소통을 하지만 그 작은 창이 없는 벽이나 천정과는 완전히 다르다. 건물의 본체가 아닌 담장에서도 창은 유효한 소통수단이다. 조선시대 유교로 인해 여성들의 행동이 제약이 많던 시절 아낙들이 모이는 우물가 담장에는 소리샘이이라는 창이 뚫려 있었다.(사진 4, 강골마을 소리샘) 아낙네들의 수다 장소인 우물가지만 담장 밖의 세상과 소통이 어려웠기에 바깥세상 돌아가는 세상물정을 엿듣던 구멍이다. 소리샘이라 하여 다소 높이가 높았으나 적극적인 여성이라면 무엇이라도 밟고 올라서 세상 밖을 구경하지 않았겠는가? 남녀칠세부동석의 시절에 안채와 사랑채 사이엔 담장이 있었다. 남녀가 유별하다지만 사실은 여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통제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외부인이 안채에 들어가려면 사랑채 마당을 거쳐서 중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고 안채에 기거하는 여인들이 밖엘 나가도 같은 경로를 거쳤다. 물론 공식적이지 않은 출입을 돕는 샛문은 있었지만, 동네 아낙들의 비공식 출입구였다. 이 담장에도 간혹 창이 나있다. 보통은 기왓장을 마주보게 쌓아서 기와의 곡면이 만들어낸 원형 구멍을 만들었다. (사진5. 담장의 기와구멍) 이 구멍의 용도 역시 엿보기 용이다. “이리 오너라.” 듣기 좋은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면 안채에 기거하던 젊은 처자는 목소리 주인공이 궁금하다. 하녀가 있다면 어떻게 생긴 사내냐고 보고 오라 했겠지만, 하녀가 없으면 스스로 기와구멍으로 엿보기도 했을 것이다. 신랑의 얼굴도 모르고 시집을 가야했던 시절에 혼사가 오가는 총각이 사랑채에 들면 어미는 딸을 담장의 창 앞으로 불러내 신랑감의 얼굴을 몰래 보여주었을 것이다. 왈가닥 루시같은 아가씨라면 신랑감과 밀담도 나누고 연서도 교환했으리라. 사랑채에 손님이 들면 눈치 빠른 아낙은 손님이 몇인지 밥상을 들릴지 주안상을 들일지 분위기를 파악하고 미리 준비를 할 것이다. 물론 설렁줄을 통해 사랑채의 주인이 무전으로 알려줄 수도 있다. 설렁줄은 설렁이라는 방울을 매달아 채와 채를 긴 끈으로 연결한 통신수단이다. 사랑채에서 체면을 지켜야 하는 양반님은 하인을 통하지 않고 이 설렁줄로 직접 안채의 누군가와 밀어를 나눌 수도 있다. (사진 6, 설렁줄) 막힌 벽에 작은 구멍은 갑갑한 여인들의 생활에 숨구멍이었다. 이 작은 소통이 있어서 조선 여인들은 좀 위안이 되었으리라. 창밖 담장에 능소화가 보인다. 임금의 성은을 입어 빈이 되었지만 구중궁궐의 구석 처소로 밀려난 소화는 다시는 찾지 않을 무정한 님을 기다리며 담장 밑에서 밖으로 귀를 기울이고 기다리다 죽는다. 구석으로 밀려나 왕에게서 멀어진 빈은 장례도 없이 님을 기다리던 그 담장 밑에 묻혀서 마치 담장 밖으로 귀를 내밀 듯 꽃을 피웠다는 전설이 있다. 여인의 한이 왜 그리 부러운 것인지. 궁녀가 임금의 여자가 되었다 하여 딸을 낳으면 능소화를 심었다는 옛날 아비들의 비정함이 단지 유교 성리학 때문이었을까? 만족치는 못하나 이 땅의 여인들이 겪은 불편부당함에 대한 보상이랄까? 여성용 화장실의 칸수를 늘려보려고 지금 남성 건축주와 힘든 소통을 하고 있다. 작은 소통의 창이 커지며 적극적인 소통이 일어난다. 창은 환경과 소통하고 확장되어 벽 전체가 창이 되고 문이 되어 공간을 통합하고 연결한다. 요즘 많이 쓰이는 poiding door(사진7, 폴딩도어)나 전통건축의 들문(사진8, 들문)은 창 중에 가장 적극적인 소통을 주문한다. 발코니는 외부와 내부의 완충공간이며 창공을 향한 날개 짓이다. 수직으로 쌓인 주택에 유일한 외부공간이며 주변과 소통하는 장소다. 마당이 있는 집의 소통의 중심은 마당이다. 마당을 통해 들고 나며 손님을 맞고 가사 일을 하고 집안의 행사를 치른다. 세면이상이 다른 공간으로 둘러싸인 마당을 중정이라 한다. 중정이 있는 집은 창과 문이 중정을 향하며 중정을 마주보고 눈을 맞춘다. 당연히 많은 소통이 일어난다. 고택의 마당은 곳곳에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뒤로 연결되어 있다. 벽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고 샛문으로 연결된다. 건물 역시 툇마루형식의 복도로 연결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지만 비공식 통로는 어른들의 묵인하에 아들과 며느리가 집안의 대를 잇는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고양이 걸음으로 드나들던 통로인 것이다. 마당의 울타리는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시설이지만 높이에 따라 더러 열고싶은 전망좋은 장소가 있다. 자연과의 소통을 위해 담장에 뚫린 회재 이언적의 독락당 살창은 현대에나 있을법한 열린 담장으로 특이하다.(사진9, 독락당 담장의 살창) 영역으로 들어오는 문이 대문이다. 제주도에는 정낭이라는 특별한 대문이 있다. 문대신 막대를 한 개에서 세개 걸어서 주인의 위치를 알리고 알아서 들어오게 한다. (사진10, 제주도 전통대문 정낭)(그림1, 정낭의 식별법) 요즘 공동주택은 개인의 마당이 없고 거실이 마당을 대신한다. 집의 방문들은 프라이버시(privacy)를 앞세워 숨겨져 있고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 보고 있다. 대청마루로 마주보고 있는 방까지는 아니어도 거실로 작은 창 하나라도 뚫어진 아파트는 어떨까? 어찌보면 privacy와 소통은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하다. 가족 간의 대화가 없어진 것은 생활패턴이 변한 이유도 있지만, 가족이 함께할 공공 공간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도시의 녹지와 광장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카페와 pc방이 채우다보니 가족간의 대화는 점점 줄어든다. 생활패턴의 변화에 맞는 공공 공간의 모델이 필요하다. 주차요금에 ?겨서 나와야 하는 사설 여가시설 말고 가족이 여유있게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의 모델이 개발되어야 한다. 건축은 사용자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담아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발주자가 아닌 사용자가 우선이다. 옛날 사립학교에는 이사장이나 교장의 사택이 교내에 있었다. 대개 그들은 발주자가 된다.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시설임에도 그들의 사택이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나머지 땅에 학교를 배치하라는 주문이 있었다. 어떤 건축가는 설계비를 깎아주는 조건을 내세워 사택의 위치를 조정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해 줄 거야?” “해 드릴께요” “목욕탕이나 지어줘.” 말하는 건축가로 많이 알려진 고(故) 정 기용선생이 면사무소 설계를 위해 만난 할머니의 말에 목욕탕이 있는 면사무소가 탄생했다.(사진11,12 정기용의 안성 면사무소) 디자인이 목적에 의해 형상화된 결과물이라면 건축은 디자인이다. 건축은 그 목적이 사용자에게 있으며 사용자와 건축가가 함께 디자인하는 것이고 이들의 소통이 결과물의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소통능력이다. 집을 짓는다면 디자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축가보다는 사용자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주는 건축가를 만나길 권한다. 선택은 독자 분들의 몫이지만. 한건축 대표
  • 7선 이해찬·5선 이종걸, 민주당 당대표 출마 선언

    7선 이해찬·5선 이종걸, 민주당 당대표 출마 선언

    7선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5선의 이종걸 의원이 20일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은 강력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해찬 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한 리더십과 유연한 협상력 그리고 최고의 협치로 일 잘하는 여당, 성과 있는 국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당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성공과 재집권에 무한 책임을 지고 자신을 던질 사람이어야 한다”며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튼튼하게 뒷받침 하겠다”고 말했다.  친문 그룹의 좌장인 이해찬 의원은 당초 유력 후보로 주목받았다. 이해찬 의원은 “당의 한 중진으로 당과 정부에 기여해도 되지 않을까 수 없이 자문했다”며 “그 결과 제가 아직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다”고 장고의 배경을 설명했다.  1988년 평민당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해찬 의원은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맡았고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선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이해찬 의원의 출마로 친문 그룹에서 출사표를 던진 후보는 4선의 김진표, 재선의 박범계, 3선의 최재성 의원에 더해 4명으로 늘었다. 5선의 이종걸 의원도 이날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문재인정부를 민주당 정부로, 민주당 정부를 민주 정부로 더 강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정책 연대, 개혁입법연대에서 연정에 이르기까지 민주 진영의 ‘빅 텐트’를 적극 설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초선의 김두관 의원도 지난 19일 출마선언을 했고 4선의 송영길 의원도 당권 도전을 선언한 바 있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대표주자’로 3선의 이인영 의원은 22일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마를 검토하는 6선의 이석현 의원까지 고려하면 최대 8~9명이 당권 경쟁을 벌일 수 있다.  오는 26일 치러질 예비경선까지 ‘컷오프 3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예정이다. 친문 그룹 후보들 간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선 최재성 의원은 일단 부인했다. 그는 20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서로 비슷하면 따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선배 세대와 경쟁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박범계 의원은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당을 관리하느냐 혁신하느냐 두가지의 구도이다”라며 “누구나 다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새 얼굴이 아니면 혁신이 되겠냐”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평양인 듯, 서울인 듯… 선입견 깨뜨린 평양의 모습

    [그 책속 이미지] 평양인 듯, 서울인 듯… 선입견 깨뜨린 평양의 모습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진천규 지음/타커스/316쪽/2만원수십 명이 풀장에서 인공 파도를 즐긴다. 형형색색 파라솔, 풀장 너머 큰 다이빙대가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 어딘가의 워터파크 같다. 이곳은 평양 대동강구역 능라3동 문수물놀이장이다.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훈풍이 분다. 그래도 우리는 북한을 여전히 잘 모른다. 언론에 가끔 보이는 모습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진천규씨가 지난해 10월부터 이번 달까지 4차례에 걸쳐 평양,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서해갑문 등을 취재한 결과다. 평양은 ‘조금은 궁색하고 어느 정도 움츠린 모습’일 것이라는 그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모란봉 공원에서 만난 시민들과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고,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당돌한 여학생들을 만난 일화도 소개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문재인·김정은 남북대화 원활했던 건 ‘1937년 표준어’ 덕분”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문재인·김정은 남북대화 원활했던 건 ‘1937년 표준어’ 덕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정상회담을 갖고, 도보 산책을 하면서도 대화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던 것은 같은 민족, 같은 말을 쓰기 때문이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공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학회는 1933년 맞춤법, 1937년 표준어 제정을 통해 우리말을 하나로 엮는 기반을 만들었다. 분단되면서 조선어학회의 이극로 선생이 북으로 건너가 북한의 언어정책을 이끌었다면, 최현배 선생은 남에 남아 1930년대의 맞춤법, 표준어를 바탕으로 우리말을 지켰다. 분단 70년에도 언어의 이질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이들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언어 통합의 산증인인 권재일 한글학회장은 “남북의 원활한 언어 소통을 위한 준비 작업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권 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남북 언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흔히 남북 언어 이질화란 표현을 쓰지만 학술적으로는 이질화는 없다고 말한다. 언어를 이루는 세 요소가 말소리, 단어, 문법이다. 남북의 말소리가 차이가 없고, 기본적인 어휘도 다르지 않고, 문법은 더더욱 차이가 없다. 그래서 언어학적으로는 이질화가 없다고 한다. 내가 북한 학자를 만나서 어떤 얘기를 해도 의사소통이 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을 할 때 우리가 못 알아듣는 게 거의 없다. 우리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북한 사람들이 듣더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분명히 남북 언어 차이가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어휘만 보면 기본적인 것은 같지만 새로 어휘를 만들고 다듬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차이가 생겨났다. 북한의 총화(반성) 같은 이념적인 말들이다. 두 번째로는 남한 말에는 지나칠 만큼 불필요하게 외국어, 외래어가 많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의 일상 대화를 들으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북 정상회담, 각종 남북 회담은 원활히 이뤄진다. -남북이 함께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북한의 이념적 어휘, 남한의 외래어는 가급적 쓰지 않는다. 당연히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게 조선어학회와 후신인 한글학회 덕분이다. 학회가 분단되기 전에 한글맞춤법을 통일하고 표준어를 정리했기 때문에 지금도 큰 혼란 없이 남북이 어떤 자리에서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 →1937년에 만든 표준어란. -그때 기준으로는 ‘현대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이다. 1988년 이후 남에서는 중류라는 계급 개념을 뺀 ‘현대 서울의 교양 있는 사람이 쓰는 말’로 바뀌었다. 북한도 ‘37년 표준어’를 지켜 왔는데 1966년 김일성 주석의 교시로 표준어 대신 문화어를 제정했다. 평양, 평안도, 함경도 사투리를 받아들였는데 기본적으로는 1937년에 제정된 표준어다. 평안도 사투리를 고집했다면 전기를 뎐기, 정거장을 뎡거장이라고 해야 하지만 전기, 정거장을 문화어로 쓰고 있다. 북한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자어, 외래어 5만개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었다. 하지만 성공한 것은 절반 정도다. 강요해도 말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스크림을 대체한 ‘얼음보숭이’인데 아무도 안 썼다. 북한 사전에 실렸다가 사전에서도 없어졌다. 지금은 얼음보숭이란 말을 아는 북한 사람은 없다. 승합차를 뜻하는 특정 업체의 고유명사 봉고가 일반명사화한 것처럼 북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에스키모라고 한다.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다. 언어 부문에서는 움직임이 있나. -남북 정세가 좋아지면 가장 먼저 열리는 게 문화 쪽이다. 문화 쪽은 꼭 두 가지다. 하나는 남북 언어 통합을 위한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개성 만월대 발굴 사업이다. 이 두 가지가 남북 정세에 의해 열렸다가 막히곤 한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에 따라 2019년에 사전을 내고 종료하게 돼 있다. 남북의 공동 편찬 사업이 중단됐기 때문에 종이사전은 어렵고, 웹 기반 사전은 2019년에 낼 작정이다. 그게 가능한 게 남과 북이 과거 1년에 네 차례씩 협의를 했기 때문에 거의 사전 편찬의 기본은 끝났고, 정리만 남았다. 남측 편찬사업회에서 막바지 정리 사업을 하는데 남북 교류가 재개되면 우리가 한 것을 북측에 주고 검토를 해 달라고 하면 마무리된다. 겨레말큰사전이 물꼬가 되어 다양한 언어 문제가 열릴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에는 몇 단어가 실리나. -북한의 조선말큰사전,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을 기반으로 공통되는 어휘 23만 단어를 합의해서 뽑았다. 나머지 7만~8만 단어는 문헌과 지역 방언에서 골라 30만 단어를 남북이 합의했다. 남북이 공동으로 뜻풀이를 진행해 절반에 합의했다.→하나의 사전을 만들자면 그 전제인 어문규범도 같아야 할 텐데. -2005년부터 1년에 네 차례 만나 어문규범 단일화를 위한 남북 공동 작업을 했다. 내가 실무 책임을 맡고, 북측은 문영호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장이 맡았다. 대표적인 게 띄어쓰기다. 예를 들어 의존명사 ‘것’, ‘줄’, ‘바’를 우리는 띄는데 북에서는 다 붙인다. ‘가는 것’, ‘마음먹은 바’가 북에서 ‘가는것’, ‘마음먹은바’가 되는 것이다. 보조용언도 ‘가고 싶다, 가게 되었다, 가게 했다, 가고 있다’가 북에서는 다 붙인다. 이 두 가지는 남한식으로 띄우기로 합의했다. →남한이 하자는 대로 한 건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우리말, 우리글 이 세 단어는 우리는 다 붙이는데, ‘우리 나라’, ‘우리 말’, ‘우리 글’로 북한식을 따른 것도 있다. 어문규범 통일 작업을 하면서 이 기회에 우리의 현행 어문규범에 불합리한 것은 북한 쪽으로 양보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북한 규범이라면 한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가 될 것을 우리 규범을 따르면 한국 대학교 사범 대학 부속 고등학교가 된다. 실제로 그렇게 안 쓰지 않는가. 단위별로 붙이는 북한 규범을 따르는 게 합리적이다. 결과적으로는 남과 북이 서로 반반씩 양보했는데 내 입장에서 보면 우리 현실대로 하면 북한하고 규범이 같아진다. 두 번째 논의된 것이 사이시옷이다. 우리는 된소리가 나오면 사이시옷을 쓰는데 북한은 아예 사이시옷이 없다. 그래서 절충한 것이 순우리말을 붙여 쓸 때, 예를 들어 깻잎, 냇가는 우리식으로 사이시옷을 넣기로 했다. 한자와 결합한 ‘장맛비’, ‘등굣길’은 ‘장마비’, ‘등교길’처럼 사이시옷을 안 쓰는 것이다. 아직 협의조차 못한 게 두음법칙이다. 역사(력사), 노동(로동), 여자(녀자) 같은 단어인데 북한이 1949년부터 새로운 표기법을 쓰면서 달라진 게 두음법칙이다. →왜 그랬을까. -언어학적 이론을 보면 글자가 앞에 있든 중간에 있든 같은 소리를 내는 게 맞을 수 있다. 그래서 북에서는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광복 이후에 바꿨고 우리는 관례대로 쓰고 있다. 북한 언어학자 중에 광복 전 교육받으신 분은 공식 회의에서는 철저하게 ‘력사’, ‘로동’ 하다가도 저녁 식사 같은 자리에서는 ‘노동’,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광복 이후 태어난 내 또래 북한 학자들은 결코 ‘역사’, ‘노동’ 발음을 안 한다. →남북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일상생활 어휘나 분야별 전문용어 통합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 남한 사람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 지나친 외래어·외국어 사용은 자제하고 우리말을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 둘째는 남북의 화법 차이가 현격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탈북민과 같이 있다가 헤어질 때 간접화법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나중에 밥 한번 먹자”고 하면, 직접화법에 익숙한 탈북민은 전화를 기다린다. 전화가 안 오면 남한 사람들 신뢰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한 사람들은 그냥 헤어지면서 하는 인사인데 그걸 이해 못하는 거다. 북에서는 칭찬, 사과 표현이 약한데, 조그만 일에도 칭찬하고 사과하는 남한 사람을 보면 가볍다고 생각한다. 남북이 의사소통을 하려면 우리는 북한의 직설적 화법을 이해해야 하고, 북은 남의 간접화법을 이해해야 한다. 셋째가 경제 교류나 학술 교류를 위해 전문용어를 통일하는 일도 시급하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마이너스’를 ‘미누스’라고 쓰고, ‘바이러스’를 ‘비루스’, ‘백신’을 ‘왁찐’이라고 하는데 전문용어 통일이 안 되더라도 서로의 용어를 알 수 있도록 대조표라도 만들어야 한다. →한민족의 언어 통일을 위한 큰 그림이 있다면. -정부와 민간이 할 일을 나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남북 언어 차이가 뭔지를, 조사연구 사업을 해 놓고 일상 표기법, 표준어에 대한 것, 화법에 관한 것, 전문용어에 대한 것을 예비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한 뒤 남북 학자가 만나서 통합하는 두 단계의 작업이 있다. 민족의 핵심이자 통일의 핵심이기도 한 언어의 통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민간도 한글학회는 물론 관련 단체와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부 방송에서 북한 사투리를 희화화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남북 언어 차를 좁히기는커녕 역효과를 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언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marry04@seoul.co.kr ■권재일 회장은 누구 北 언어학자와 공동 실무작업…정부·민간 자격으로 모두 참여1953년생.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제8대 국립국어원장(2009~2012년)을 지냈고, 2016년부터 한글학회장을 맡고 있다. 2003~2004년 국립국어원에 파견 가서 남북 언어학자 간 교류를 시작했다. 북한의 상대방은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의 문영호(1941년생) 소장이었다. 두 정부 기관의 학자가 중국 옌볜, 선양, 베이징 등에서 만나 남북의 어문규범 통일, 언어 전산화, 지역 방언 보존 등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2005년에는 민간의 겨레말큰사전편찬위원회가 조직되면서 어문규범 단일화 위원장 자격으로 2009년까지 북한과 공동 실무 작업을 했다. 남북 국어학자 교류에서 정부·민간 두 축에 참여한 유일한 학자다. 권 회장과의 80분짜리 인터뷰 녹음을 풀어 보니 1만 3000자가량. 말을 그대로 기사로 옮겨도 될 만큼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고, 단 한 자의 외래어·외국어도 쓰지 않고 쉬운 우리말로 남북 언어의 미래를 말하는 노학자가 새삼 존경스럽다.
  • 단일화 없이 무더기 출마… 민주 당대표 컷오프 ‘혈투’

    더불어민주당 최재성·김두관 의원이 19일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면서 20~21일 후보 등록을 앞두고 당권 대진표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4선의 최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는 당대표, 시스템 당대표”가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친문(친문재인) 중진 의원인 그는 앞서 친문 그룹 중 출마 선언을 한 김진표·박범계 의원 등과의 후보 단일화에 대해 “애초 단일화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최 의원은 “저는 선배 세대와 영광스러운 경쟁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초선의 김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무한책임, 지역 분권, 당원주권으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혁신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당권 도전의 뜻을 밝혔다. 행정자치부 장관, 경남지사 등을 역임한 김 의원은 친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당내 계파주의를 의식한 듯 “주류도 없고 비주류도 없는 수평적인 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 의원과 김 의원의 출마에 앞서 4선의 김진표·송영길, 재선의 박범계 의원이 당권 도전을 선언했고 6선의 이석현, 5선의 이종걸 의원도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7선의 이해찬 의원을 포함하면 최대 10명이 당권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조수빈 아나운서 “김건모와 소개팅, 나이 차이 때문에 거절”

    조수빈 아나운서 “김건모와 소개팅, 나이 차이 때문에 거절”

    조수빈 KBS 아나운서가 가수 김건모와 소개팅할 뻔한 사연을 공개했다. 19일 오전 방송된 KBS2 ‘그녀들의 여유만만’에서는 조수빈 KBS 아나운서가 가수 김건모와 소개팅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조 아나운서는 이날 “2005년 이야기”라며 “KBS에 입사하니 친한 연예부 기자가 김건모 씨와 친하다며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검색해보니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더라. ‘싫다’고 했더니 김건모 씨는 ‘자긴 더 싫다고 했다’더라. 그래서 만나질 못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조수빈 아나운서는 1981년생으로 올해 38세, 김건모는 1968년생 올해 51세로 두 사람은 13세 차이가 난다. 한편 이날 이선영 아나운서는 “난 소지섭 씨와 소개팅할 뻔했다”며 자신의 일화도 공개했다. 그는 “모 선배가 소지섭 씨가 공익근무할 때 딱 내게 해주려 했는데 기가 막히게 그사이에 선배 사촌 따님이 (외국에 있다)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라며 “그 사촌 따님에게 소개팅을 해줬다”고 밝혔다. 사진=KBS2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준형♥김지혜 부부, 딸 주니-혜니 최초 공개 “아빠 99.9% 닮았다”

    박준형♥김지혜 부부, 딸 주니-혜니 최초 공개 “아빠 99.9% 닮았다”

    ‘외식하는 날’ 개그맨 박준형-김지혜 부부가 두 딸과 일상을 공개했다. 18일 방송된 SBS플러스 예능 ‘외식하는 날’에는 개그맨 박준형, 김지혜 부부와 두 딸 주니, 혜이가 출연했다. 김지혜는 이날 방송 최초로 두 딸을 공개한 것과 관련 “가족 예능 출연 제의가 왔었는데 그때는 아이들이 어렸다”며 “또 ‘갈갈이 패밀리’를 오픈하기엔 준비가 덜 됐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계속 트레이닝 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외식하는 날’ 섭외를 받고, MC가 강호동과 김영철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여긴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에서 숨겨놨던 우리 무기를 풀 때가 됐다’ 싶어서 출연하게 됐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김지혜 말대로 두 딸은 ‘웃음 무기’였다. 각각 12살, 10살인 두 사람 딸 주니와 혜이는 아빠 판박이 외모로 등장부터 시선을 끌었다. 특히 둘째는 박준형, 김지혜 부부 끼를 그대로 물려받아 가수, 배우 등을 꿈꾸고 있었다. 혜이는 “가수로 시작해 배우를 할 것”이라며 자작 랩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외식에 나선 네 사람은 예능감 넘치는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김지혜가 “혜이는 아빠를 닮았다”고 말하자, 첫째 주니는 동생 어깨를 토닥였다. 이에 박준형이 “너 왜 위로하냐”고 말했고, 주니는 “난 혜이만큼 아빠를 닮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박준형은 둘째 혜이에게 “아빠 닮은 게 창피하냐”고 물었고, 혜이는 “응”이라며 망설임 없이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지혜는 “혜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 첫째는 아빠를 70%, 둘째는 99.9%를 닮았다”며 “둘째가 학교에서 ‘아빠가 연예인이다’라고 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아빠가 박준형이냐’고 했다. 그 정도로 닮았다”고 일화를 전했다. 그러면서 “주니와 혜이가 싸울 때, 공격 포인트가 ‘아빠랑 똑같이 생겨서’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지혜는 “우리는 ‘갈갈이’ 패밀리로, 개그 군단으로 나온 것”이라며 아이들을 달랬다. 사진=SBS플러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백파의 자전적 육필수기 ‘삶과 운명’] “친자식처럼 키워준 송파스님께 수경학·지리학 배워”

    [백파의 자전적 육필수기 ‘삶과 운명’] “친자식처럼 키워준 송파스님께 수경학·지리학 배워”

    인생이란 삶의 집합체란 말이 있다. 삶이란 인생이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만나면 사람들은 이를 운명이라 부른다. 4차원적 인간이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인생들의 삶이다. 그런 인생들의 삶과 운명이라는 희로애락과 함께하며 흥망성쇠를 이어온 사람이 있다. 동양 수경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백파 윤대현(84)이다. 그는 ‘백파 카운셀러 상담원’을 서울 종로와 충북 청주에 각각 두고 이를 오가며 ‘삶과 운명’을 나누고 있다. 백파의 자전적 육필수기 ‘삶과 운명’은 서울 종로5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구술을 받아 정리했다. 그의 자전적 육필수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제가 살아온 80년 일생을 돌이켜 보고 회향(廻向)하는 마음으로 보탬도 뺌도 없이 한 치의 거짓 없이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아버지 윤만갑과 어머니 조재현의 장남으로 1941년 12월 24일에 옛날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 좌천리 187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으나 주위 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태어난 8·15 해방 직전 당시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전시동원체제로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던 시절이었고, 일제의 약탈과 수탈로 모든 국민이 모두가 먹고사는 것조차 어렵던 와중에 전염병을 포함한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 여파였는지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전염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뒤를 잇듯 9일 만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그렇게 부모님을 여읜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삼촌에게 맡겨지게 되었고 삼촌 집에서 1년 정도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방 직전의 혼란한 시기에 불안정한 생활을 연연하던 삼촌과 숙모도 어린 저를 더 이상 거둘 수 없게 되자 먼 친척의 도움으로 동네 인근의 옥정사라는 사찰에 계시던 어느 비구니 스님에게 전해져 그분이 저를 한동안 키워주셨답니다. 하지만 그분도 오래지 않아 돌아가시고 세 살 나이의 저는 주위 분의 도움으로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큰스님이셨던 송파 스님께서 받아주고 키워주셨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전후의 어려운 시절에는 스님들이 고아 같은 아이들을 많이 데려다 키워주시곤 하셨나 봅니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보니 성철 큰스님의 일화 중에도 세 살짜리 아이를 데려다가 1년 이상 키우고 함께 생활한 일화도 있고요. 송파 스님은 저를 친자식처럼 정성을 다해 키워주셨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해 불편함 없이 보살펴준 것은 물론, 동자승 생활을 하는 저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 수경학과 지리학에 몰두하도록 집중적으로 공부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송파 스님도 제 나이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는데 어린 저에게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이별이었습니다. 당시 스님 연세 104세였습니다. 송파 큰스님이 돌아가신 후 해인사 경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스님들이 저를 일부러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했고, 저는 도저히 마음을 의지할 곳 없는 몸이 되어 살얼음판을 걷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해인사에 머물 입장이 아니라고 고민하던 차에 돌아가신 송파 큰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당시 부산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님과 부산의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저에게 힘들면 부산으로 오라고 하시며 주소를 메모하여 주셨습니다. 당시 자동차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던 저는 막상 부산에 가려 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더구나 돈도 없는 무일푼 신세였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래도 부산에 사는 신도가 해인사에 오기라도 하면 그분께 부산에 가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고 얼마간 망설이며 부산에 갈 방법을 궁리하였습니다. 하루하루 편치 못한 마음과 많은 생각으로 해인사 생활을 하던 중에 어떤 연유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어느 스님이 저의 뺨을 때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평소 그 스님은 저를 모질게 대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해인사에 더는 머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무슨 용기가 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새벽 불전에 놓여 있는 시줏돈을 가지고 도망을 치게 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전에 부산 신도로부터 들어서 기억한 대로 일단 합천면 소재지로 가서 부산행 버스를 타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버스를 타본 경험이 없었기에 버스는 신발을 벗고 타는 줄 알았고, 실제로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버스를 타려 했습니다. 저의 이상한 행동을 지켜본 버스 차장이 웃으면서 신발을 신고 타라고 하여 겸연쩍었던 기억이 납니다. 성급하게 새벽에 절을 빠져나온 저는 부산행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도 몰라서 가져온 돈 모두를 버스 차장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차장은 조금 모자란다고 하였으나 고맙게도 부산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여 난생처음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버스는 한국전쟁 때 사용하던 트럭을 개조하여 만든 것으로 앞에 엔진이 튀어나온 차였는데, 제가 탄 부산행 버스는 아침 6시경에 출발하여 비포장도로로 부산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동자승으로 삭발 된 머리에 승복을 입고 있었는데 부산에 첫발을 딛고 어떻게 할지 몰라 하던 중 지나가는 어느 분께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과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이 적어주신 주소 메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저를 보고 너무나 순진하다고 하시며 그 두 분께 자기가 연락을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산 범일동 주위였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저를 데리고 다방 같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제 기억에는 당시 젊은 아가씨들이 많았고, 그 아가씨들 중에는 까까중이 왔다고 놀리면서 찐빵도 사주고 설탕물도 타주곤 했습니다. 저를 그곳으로 데려간 분이 다방에 설치된 전화기의 손잡이를 돌려 교환원에게 어떤 번호를 연결해 달라고 하고 상대방과 한동안 대화를 하더니, 전화를 끊고 저에게 다가와 “이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라. 곧 너를 데리러 올 거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어떤 키 큰 사람이 들어와 저에게 따라 오라고 하여 그 사람을 따라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으로 나와 보니 가재처럼 생긴 이상한 물체가 있었고, 저를 불러내온 분이 문을 열면서 타라고 하여 생전 처음 보는 가재 같은 그 물체 속으로 들어갔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상한 물체는 승용차였는데, 그것이 움직일 때 사람과 집과 건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님 댁이었고, 강 회장 부인께서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를 잘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강석진 회장과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께서 부산에 집을 마련해 주셔서 빠르게 안정된 생활을 찾게 되었습니다. 송파 스님이 알려주신 수경학을 이제는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당시 부산에서 ‘총각도사’라는 소문이 자자해질 정도로 열심히 사람들의 운세를 보았습니다. 당시에 어느 정도로 유명했냐 하면, 저를 만나려면 적어도 3~4일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단한 역술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당시에는 정해진 감정료가 없었고 본인들 성의대로 돈을 주었습니다. 제가 앉는 책상 위에는 조그마한 대바구니가 놓여 있었는데 하루를 상담하면 그 바구니에 돈이 한 가득씩 되었고, 각목으로 만들어진 밀가루 포대에 돈이 한 가득씩 채워지곤 했습니다. 돈이 그냥 종잇조각처럼 생각되어 매일같이 종이 쓰레기인 양 부대에 담아놓고 지내곤 했습니다. 절에서만 생활했던 저는 돈의 가치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또한 그 돈을 주체할 곳이 없었던 겁니다. 당시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께서 부산 남포동 미화당백화점 앞에 있던 2층집을 소개해 내 이름 석 자의 집을 처음 소유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수경학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부산 생활은 저에게 ‘총각 점술가’ 평판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곳이었습니다. 정리 홍의석 객원기자 hong5960@seoul.co.kr ■ 글 싣는 순서 ① 해인사와의 인연 ② 동양 수경학의 창시 ③ 한국 근대화의 산증인이 되다 ④ 오해와 억울함으로 굴곡진 세월, 그 불편한 진실 ⑤ 평화, 봉사 그리고 나눔의 길
  • [문화마당] 양성평등 사각지대인 문화예술행정/박조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문화마당] 양성평등 사각지대인 문화예술행정/박조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통적으로 문화예술 분야는 정계, 재계, 학계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한 분야로 꼽힌다. 지금이야 집권 여당 대표가 여성이고 이름을 날리는 여성 기업인, 학자들이 많지만 과거 손꼽을 만한 여성 정치인, 기업인, 학자가 없던 때에도 여성 문인, 여성 화가 등 여성 문화예술인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과거 정계, 재계, 학계 등이 남성들만의 리그였다면 문화예술계는 그나마 여성의 비율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문화예술계가 여성들이 성차별을 덜 받고 능력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럼 문화예술행정은 어떨까? 문화예술계가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능력이 인정되는 분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문화예술행정에서도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이 다른 행정 분야에 비해 높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일 것이다. 그래서 살펴봤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 “이거 실화냐?”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우리나라 문화예술행정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무직 공무원은 세 명이다. 장관과 차관 2명. 모두 남성이다. 물론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하지만 두 명의 차관 가운데 한 명 정도는 여성으로 임명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무직에 가까운 차관보가 여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아쉽다. 문체부 본부에는 21개의 실국장 자리가 있다. 그 가운데 문화정책관과 예술정책관은 현재 공석이다. 그러니까 현 문체부 본부에 19명의 실국장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 여기서 예상해서 맞혀 보기 퀴즈 하나. 현직 실국장 19명 가운데 여성은 몇 명이나 될까. 그래도 서너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면 15~20% 정도? 그런데 아니다. 그렇게 많지 않다. 서너 명이 많은 거라면 그래도 두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10% 정도로 낮춰 잡으면 맞을 거라는 예상. 그런데 실상은 놀랍게도 0%다. 실국장급 19명 가운데 여성은 한 명도 없다. 문체부 본부 조직도를 보면 과장급이 55명인데 그 가운데 여성은 11명이다. 정확히 20%다. 그나마 실국장급에 비한다면 여성의 비율이 높기는 한데 그래도 남성 편중이 너무 심하다. 그렇다면 문체부 소속 기관은 어떨까. 소속 기관은 국가 기관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해외문화홍보원, 국립국악원,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극장,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16개 기관이 있는데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체부 본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기관장이 공석인 국립중앙극장과 국립민속박물관을 제외한 14개 소속 기관의 기관장들 가운데 여성은 그나마 국립국악중고등학교장 단 한 명뿐이다. 비율로 따지면 겨우 6% 정도다. 문체부 홈페이지에 링크돼 있는 46개 산하, 유관 기관들 역시 양성평등의 사각지대에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위원 8명이 모두 남성이다. 과거 2~3명의 여성 위원이 임명됐던 것을 감안하면 양성평등은 오히려 후퇴한 것 아닌가. 미디어산업 진흥과 정부 광고 대행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이사장 이하 모든 경영진이 남성으로 채워져 있다. 획일화된 체제에서는 문화예술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예술행정이 남성 위주의 획일화된 체제에서 벗어나 양성평등을 지향하도록 함으로써 여성들이 문화행정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길 고대한다. 국무위원만 여성 할당을 제도화할 것이 아니라 문화행정에도 여성 할당을 제도화할 필요는 없을까?
  • ‘직장 괴롭힘·폭력’ 형사처벌·산재 인정 추진

    ‘직장 괴롭힘·폭력’ 형사처벌·산재 인정 추진

    신고·조사·처벌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 이 총리 “수직적·단세포적 의식이 원인” 신고 창구 단일화·소송·심리상담 지원 2차피해 없게 사용자 책임도 대폭 확대 10월까지 가이드라인·취업규칙 마련앞으로 직장에서 폭력이나 괴롭힘이 발생하면 국가기관이 직권조사해 형사처벌을 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한다. 정부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을 확정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회의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3%가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했고, 12%는 거의 날마다 괴롭힘을 당한다고 한다”며 “직장에서의 괴롭힘에도 수직적, 단세포적 의식이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체 취업자의 78.1%(2114만명)가 직장 내 괴롭힘에 잠재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판단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생활 적폐로 규정했다. 우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 신고·조사·처벌이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법과 가이드라인에 개념을 명시하기로 했다. 또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의 신고대상·방법·절차 등을 포함하도록 의무화한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피해자 본인 외 직장동료 등 사업장 내 누구든지 할 수 있도록 한다. 다음달부터 구축되는 범정부 갑질신고센터와 분야별 신고 홈페이지를 연계하는 등 신고창구도 일원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사용자에게는 예방교육과 괴롭힘 발생 시 조사·조치 의무가 부여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내 문제 혹은 동료나 선후배 간의 사적인 문제로 치부돼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의 조사뿐 아니라 고용노동부도 신고를 접수하면 해당 사업장을 직권조사할 수 있게 된다. 법에 괴롭힘 금지의무 규정이 만들어지면 수사를 통해 가해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다. 신고 이후 2차 피해 발생을 막기 위한 대책도 마련된다. 정부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해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할 계획이다. 예방교육 의무 미이행 시에는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 밖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방안,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법률 상담, 소송지원, 심리상담 지원 등 피해자 지원 대책도 마련된다. 간호사들의 직장 내 괴롭힘인 ‘태움’ 문화와 대학원생을 노예처럼 부리는 교수 등 분야별 맞춤대책도 마련한다. 정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의료인은 면허를 정지하도록 의료법을 개정하고 국가연구개발과제 수행 중 대학원생을 괴롭혀 징계를 받은 교수에 대해서는 연구과제 수행을 중단시키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의료법·고등교육법·예술인복지법 등 5개 법률과 근로감독관 집무규정, 취업규칙 표준안 등을 개정하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 특별법 제정을 검토한다. 법률 제·개정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우선 오는 10월까지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 유형, 사례, 판단 기준을 담은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 표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월드 Zoom in] 美여성 정치신인 약진…백마디 말보다 솔직 영상 하나가 낫네

    [월드 Zoom in] 美여성 정치신인 약진…백마디 말보다 솔직 영상 하나가 낫네

    자전적 인생 비디오로 당내 경선 돌풍 가정폭력·군대 보직 차별 헤쳐 온 헤거 영상 공개 뒤 8억원 가까이 후원금 모여 바텐더 일상담은 코테즈, 10선 의원 꺾어 F18 첫 女조종사도 영상 180만명 클릭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당내 경선(프라이머리)에서 무명에 가까운 여성 후보들이 쟁쟁한 남성 경쟁자를 꺾고 본선 티켓을 따냈다. 자금력과 인지도 측면에서 현저하게 불리했던 여성 후보들이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 요인으로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된 홍보 영상이 주목을 받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은 다소 직설적이면서도 인생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영상이 여성 후보들을 일약 신인 정치인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신들은 “이른바 ‘언더독’(이길 확률이 적거나 불리한 약자)의 약진”이라고 표현했다. 연방 하원의원 텍사스주 제31번 선거구의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메리 제닝스(MJ) 헤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공군 소령으로 복무한 헬기 조종사 출신 헤거는 ‘도어스’라는 제목의 홍보 영상으로 큰 히트를 쳤다. 영상은 폭력적인 헤거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밀쳐 유리 문이 깨졌던 어린시절 일화를 보여주는 자전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가정폭력을 이겨내고 조종사라는 꿈을 이뤘지만, 여군에 대한 전투임무 배치 금지라는 규정에 부딪혀 버락 오바마 전 정부를 상대로 이를 폐지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이 담겨 있다. 헤거의 저항은 2015년 미 국방부가 군 내 모든 보직을 여성에게 완전히 개방하기로 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헤거의 홍보 영상은 그가 살면서 어떻게 자신 앞에 놓인 난관(문)을 헤쳐왔는지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영상 마지막 부분에서는 본선에서 겨루게 될 공화당 소속 존 카터 의원을 언급하며 “그는 지금껏 힘든 싸움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가 그에게 겨루기 힘든 상대가 되어주겠다”고 도전장을 내민다. 영상이 처음 공개된 지난달 헤거의 선거 캠페인에는 10일 만에 70만 달러(약 7억 9000만원)가 모였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유저 500만명이 영상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USA투데이는 “‘도어스’가 많은 (지지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주 제14번 선거구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10선인 백인 남성 의원을 꺾고 기적 같은 역전승을 만들어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는 ‘변화를 위한 용기’라는 홍보 영상으로 ‘푸에르토리코계 노동자 계급’임을 강조하며 유권자에게 다가섰다. 코테즈는 영상에서 “나 같은 여성은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면 안 되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면서 바텐더로 일하는 자신의 일상을 담았다. 미 뉴저지주 러트거스대 여성정치센터 켈리 디트마르 박사는 “과거엔 하나같이 똑같은 머리와 바지 정장을 입고 나왔던 여성 후보들이 이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군 최초 해병대 여성 F18 전투기 조종사인 에이미 맥그래스도 켄터키주 제6번 선거구 경선에서 당내 지원 없이 상대 후보를 꺾었다. 그의 홍보 영상 역시 유튜브를 통해 180만명이 봤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송영길 이어 최재성·김두관 출마…민주 당대표 후보 10명 이내 정리

    송영길 이어 최재성·김두관 출마…민주 당대표 후보 10명 이내 정리

    불출마 박영선 사법개혁특위원장 유력20~21일 후보 등록…이해찬 심사숙고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친문(친문재인) 최재성 의원이 19일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한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인 전해철 의원은 출마를 접고 김진표 의원은 출마를 선언하는 등 당대표 후보군이 속속 정리되는 모양새다. 범친문계로 분류되는 송영길 의원은 18일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마지막까지 문 대통령을 지켜 나가겠다”며 386세대가 당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송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주자들을) 친문과 비문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범친문 쪽에서 공식 출마 선언을 한 건 송 의원이 처음이다. 반면 범친문에서 유력한 당권 도전 후보로 거론됐던 박영선 의원은 이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17일쯤 출마 선언을 하려고 했던 박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원내지도부로부터 사법개혁특별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고심 끝에 불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문(비문재인)으로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의 설훈·이인영 의원은 19일 다시 만나 후보 단일화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쉽진 않을 전망이다. 김두관 의원은 19일 출마를 선언할 계획이다. 또 이석현·이종걸 의원도 출마를 고심 중이다. 이에 따라 20명 가까이 되던 민주당 당대표 후보군은 20~21일 후보 등록을 앞두고 10명 안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당권 주자가 하나둘씩 입장을 밝히면서 관심의 초점은 친노(친노무현)·친문 좌장인 이해찬 의원에게 쏠리고 있다. 막강한 경쟁자였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불출마를 선택한 가운데 이 의원의 출마 여부에 따라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현재 심사숙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상황을 잘 아는 한 중진 의원은 “또 다른 친문 유력 후보인 최 의원이 출마를 준비하고 박범계 의원도 출마 선언을 해 친문 내 일사불란한 교통정리는 힘들어 보인다”며 “본인이 나서는 게 혹시나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빨리빨리 통일’ 강박 버려야…남북, 잦은 왕래 통한 신뢰부터

    ‘빨리빨리 통일’ 강박 버려야…남북, 잦은 왕래 통한 신뢰부터

    “통일은 멀지 몰라도 다시는 전쟁 걱정을 하지 않도록 확고한 평화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보훈가족 오찬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를 만나 “남북이 서로 교류하고 오가면 김구 선생의 간절한 꿈이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핵문제 해결 및 항구적 평화 정착,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 발전,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추진 등을 추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궁극적 목표인 남북 통일에 닿지 않겠냐는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통일을 하려면 ‘통일 강박’을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남북이 하나의 주권을 가진 국가가 되는 것만을 통일이라고 정의하면 ‘평화 공존’이 힘들어진다고 했다. 남북이 오랜 기간 왕래해 상호 신뢰가 구축된 후대에 상황에 맞는 ‘통일 모델’을 결정하면 된다는 의미다.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지난달 말에 발간한 저서 ‘평화의 규칙’에서 “통일에는 단일민족 국가,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남북연합 등의 네 개의 길이 있다”며 “꼭 단일민족 국가로 통일을 해야겠다면 흡수 통일이거나 무력 통일밖에 없는데 남북이 원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이 평화롭게 살며 자유롭게 왕래하면 통일’이라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나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 구상도 통일 모델 중 하나라는 뜻이다. 실제 통일은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분단을 극복한 지리적 측면에서의 ‘국토 통일’, 정치적인 ‘체제 단일화’, 경제적인 면에서 ‘두 경제권의 통합’,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민족 고유의 동질성 회복’ 등이다. 남북이 그간 진행한 통일 논의 중 가장 발전한 모델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이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 1조에서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라고 선포했다. 여기서 ‘자주 통일’은 7·4 남북공동성명(1972년)에서 언급한 통일의 3대 원칙(자주·평화·민족대단결)에서 나왔다. 판문점 선언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출한 ‘6·15 선언’의 정신도 담고 있는데 이 선언에는 통일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들어 있다. ‘남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대목이다. 연방제는 통일 국가의 중앙정부가 군사권과 외교권을 행사하고 지역정부는 내정에 관한 권한만 행사한다. 연합제는 각각 군사권이나 외교권을 가진 주권 국가의 협력 형태다. 이 둘의 공통점은 군사권과 외교권은 남북이 각각 보유하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베트남(1975년), 독일(1990년), 예멘(1994년) 등의 통일 사례도 향후 남북이 발전시킬 통일 모델을 위한 중요한 교과서다. 우선 독일은 동독이 자발적으로 서독에 편입되면서 통일을 이뤘다. 이들은 ‘평화 통일 및 주변국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박경서 대한적십자회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통일을 위해 무거운 의제 보다 ‘서로 접촉하며 서로 변하자’는 기치 아래 자주 만났다”면서 “프랑스와 영국이 세계전쟁을 떠올리며 독일의 통일을 반대하자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평화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로 주변국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국민적 합의도 필수적이다. 소수 권력층에 의해 통일을 이룬 예멘의 경우, 북예멘의 이슬람 문화와 남예멘의 공산주의가 공존하지 못해 내전이 일어났다. 무력 통일을 한 베트남도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체제를 급격히 도입하면서 남베트남에서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해피투게더3’ 이소라 “아직도 길거리에서 헌팅 당해”

    ‘해피투게더3’ 이소라 “아직도 길거리에서 헌팅 당해”

    ‘해피투게더3’ 모델 이소라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오는 19일 방송되는 KBS2 예능 ‘해피투게더3’는 ‘소라찜 특집’으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는 모델 이소라가 직접 ‘찜’한 방송인 홍석천, 가수 나르샤, 개그우먼 김지민, 김민경 등이 출연한다. 1990년대 인기 모델로 우뚝 선 이소라는 이날 방송에서 여전히 남성들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입증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진행된 녹화에서 이소라는 “아직도 길거리에서 헌팅을 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뒤에서 어떤 남자가 계속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라며 한 일화를 공개했다. 이를 들은 MC 군단은 이소라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려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이소라는 1992년 제1회 슈퍼모델선발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다. 27년째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등 자기관리에 철저한 이소라는 많은 여성의 선망이 대상이 되고 있다. 이소라가 출연하는 ‘해피투게더3’는 오는 19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된다. 사진=KBS2 연예팀 seoulen@seoul.co.kr
  • KB국민은행, 맞춤 포트폴리오로 자산 키우는 ‘케이봇 쌤’

    KB국민은행, 맞춤 포트폴리오로 자산 키우는 ‘케이봇 쌤’

    KB국민은행이 시중은행 최초로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명령 체계)을 탑재한 로보어드바이저 ‘케이봇 쌤’을 통해 고객들을 공략하고 있다. 국민은행이 지난 3월 출시한 케이봇 쌤은 고객의 투자 규모와 성향, 선호 지역별로 수백 가지의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자금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개의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보유할 수 있어 보다 세밀한 자금 관리도 가능하다는 게 국민은행의 설명이다. 기존 로보어드바이저가 몇 가지 유형으로 획일화된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인공지능(AI) 로봇이 자산을 관리해 주는 서비스다. 철저한 사후 관리 서비스도 보장된다. 케이봇 쌤은 금액과 포트폴리오 가입 건수에 관계없이 모든 고객의 자산을 관리한다. 시장 상황에 따른 수익 변화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현재 시점에서 최적의 포트폴리오가 무엇인지 알림을 보내 준다. 실제 국민은행이 케이봇 쌤 가입자와 개별 펀드에 가입한 고객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을 비교해 보니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투자한 고객이 더 높게 나타났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지난달부터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해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보수적 포트폴리오로 리밸런싱(자산 재배분)을 제안했다. 이 기간에 국내외 시장이 급락했고, 케이봇 쌤은 수익률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다. 국민은행은 “AI를 활용한 케이봇 쌤 로보어드바이저는 매일 시장 분석을 통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제안하고 있다”면서 “자산 규모에 관계없이 언제나 편하고 안전하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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